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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SF 선정 ‘올해의 기자’에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기자회(RSF)는 12일(현지시간) 투옥 중인 미얀마 언론인 우 윈 틴(76)을 ‘올해의 기자’로 선정했다. 우 윈 틴은 국가 전복 및 반체제 혐의로 1989년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민주화 조직 ‘민주를 위한 국가연맹’을 포기하라는 집권 세력의 요구를 거부하며 열악한 투옥 생활을 견디고 있다. 이날 상은 그의 조카 딸 틴 티리가 대신 받았다. RSF는 또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에 매체 부문상, 콩고의 언론 조직 ‘위험 속의 저널리스트’에 언론자유 수호 부문상, 쿠바의 사이버 반체제 인사 길레르모 파리나스 헤르난데스에 사이버 반체제 부문 상을 각각 수여했다.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에서 금기시되는 이슈인 정부 부패 및 인권 침해 사례를 보도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체첸 인권유린 상황을 집중 보도하다 피살된 여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이 매체 소속 기자였다.파리 연합뉴스
  • 故김형칠선수 눈물의 귀국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서울 이재훈기자|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부문에 출전했다 불의의 낙마사고로 숨진 김형칠(47) 선수가 10일 오후 7시50분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02-3010-2295)에 안치됐다. 태극기에 씌워진 김 선수의 갈색 관이 빈소에 들어가자 김 선수의 어머니 마정례(74)씨는 고인의 영정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마씨는 “사고장면을 TV로 수차례 봤는데 비통하고 슬픈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국립묘지에 안장돼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망인 소원미(41)씨, 딸 민지(11)양과 아들 민섭(10)군 등은 믿기지 않는 듯 울먹이다 소씨는 결국 탈진해 쓰러졌다. 삼성전자승마단, 마사회 후배 선수 등 70여명의 조문객이 승마복을 입고 고인의 영정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고인을 운구해온 김 선수의 형 성칠씨는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의미도 잘 모르는 어린 조카 아이들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선수의 충북승마협회 후배 이재문(29)씨는 “항상 열심히 하던 분이며, 승마인들에게는 별과 같은 존재였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선수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쯤 카타르항공편을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장례식은 오는 14일 대한올림픽위원회장으로 치러진다. 앞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도하 선수촌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에서 정현숙 선수단장과 안덕기 대한승마협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제사를 올렸으며, 하마드 종합병원에서 입관절차를 가진 뒤 고인의 시신을 고국으로 떠나보냈다. 개회식 성화 점화자였던 카타르 승마선수단 주장 셰이크 모하메드 알 타니(18) 왕자는 공항 귀빈실에서 유족을 직접 배웅했다. 선수촌 국제지역엔 도하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말을 탄 기수 형상의 대형 깃발에 ‘김형칠씨,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Hyung Chil KIM in memory)’라고 새겨 놓았다. 카타르는 셰이크 아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국왕의 지시에 따라 사고가 난 크로스컨트리 코스 8번 장애물 지점에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argus@seoul.co.kr
  • “보챈다”…15개월 조카 살해 비정한 삼촌

    생후 15개월 된 조카아이를 살해한 뒤 길거리에 버린 비정의 삼촌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용산구 원효로에 사는 A씨를 붙잡아 조사중이다. A씨는 지난달 23일 새벽 0시 30분쯤 자신의 집에서 울며 보채던 조카를 발로 걷어차 머리가 벽에 부딪쳐 숨지게 한 뒤 새벽 1시 30분쯤 시신을 집 근처 주차장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A씨는 동생이 이혼하자 동생의 아들을 맡아 길러 오면서 평소 주먹과 발로 때리며 학대해 오다 사건 당일 조카가 평소 보다 심하게 보채자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범행 직후 달아났다 숨진 아이의 전단지를 알아본 한 목격자의 신고로 8일 오후 11시 50분쯤 용산구 갈월동의 한 PC방에서 출동한 경찰과의 격투 끝에 붙잡혔다. 노컷뉴스(www.nocut.co.kr)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33년 말과 함께… 최고베테랑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 7일 승마 종합마술 크로스컨트리 경기 도중 숨진 김형칠(47)은 경력 33년의 베테랑이다.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승마계 원로인 고(故) 김철규씨의 2남으로 중학교 때 승마를 시작, 말과 함께 평생을 보내왔다. 김형칠의 조카인 김균섭(25) 역시 국가대표를 지낸 대표적인 승마가족이다. 이론에 대한 욕심도 남달랐던 김형칠은 건국대를 졸업한 뒤 용인대에서 체육생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양대 겸임교수로 나선 ‘학구파’였다. 자택이 있는 용인시 구성읍 태광CC 근처에 개인 마장을 운영하는 한편 ‘금안(금빛 안장)회’란 승마클럽을 운영해 왔다. 국가대표 선수로도 굵은 족적을 남겼다.1976년부터 선수로 나선 김형칠은 198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86서울아시안게임 때 동메달을 딴 김형칠은 94년 히로시마와 98년 방콕,2002부산대회에 이어 도하대회까지 아시안게임 4회 연속 출전했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도 나섰다. 하지만 메달과는 별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서울대회 동메달에 이어 부산대회에서 김균섭과 함께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딴 은메달이 전부. 도하대회를 앞두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잔뜩 별렀던 이유다. 공식적인 목표는 동메달이었지만 내심 생애 첫 금메달을 노렸던 김형철은 첫날 취약종목인 마장마술에서 25위로 부진했다.3일 동안 마장마술과 크로스컨트리, 장애물 경기를 치른 뒤 합산해서 메달 색깔을 가리기 때문에 남은 이틀이 중요했다. 물론 자신감은 넘쳤다. 크로스컨트리와 장애물이 주종목인 데다 부산대회에서 호흡을 맞췄던 호주산 ‘애마’ 분더버그 블랙(11)과 함께 했기 때문. 그러나 아침부터 퍼부은 빗줄기와 미끄러운 땅 때문인지 말과의 호흡이 흐트러졌고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오랜 세월 고인과 호형호제했던 김동환 대한승마협회 국제이사 겸 심판위원장은 “말이란 동물이 워낙 예민해 몇 년씩 호흡을 맞췄더라도 순간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때가 있는데 형칠이에게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중학교 영어교사인 부인 소원미씨와 1남1녀가 있다. argus@seoul.co.kr
  • 사내가 2년새 집안식구 5명을 독살한 내막은

    “유산 몇 푼 더 챙기려고….부모와 조카들을 죽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패륜아가 되다니!” 중국 대륙에 유산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부모와 조카들을 무참히 독살해버린 패륜 부부가 붙잡혀 물신 풍조의 만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5일 중국신문(中國新聞)망에 따르면 독살사건의 용의자는 쓰촨(四川)성 루저우(瀘州)시에 살고 있는 장(蔣)모 부부.이들 부부는 2년여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를 독살했을 뿐 아니라,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는데 걸림돌이 되는 동생부부와 조카딸을 무참히 독살한 혐의로 붙잡혔다. 장씨 부부가 독살한 아버지 장씨는 이발사를 호구지책으로 삼아 슬하에 2남2녀를 키웠다.이발사를 하면서 생기는 샐닢도 허투루 쓰지 않고 조금씩조금씩 여투어온 덕에 생활에는 어느정도 여유가 있었다.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맏아들 장씨 등 두 아들과 큰딸을 이미 결혼시켰으며 이들도 자녀를 두고 있다.둘째 딸은 루저우의 한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아버지 장씨 부부는 생전에 둘째 아들 부부와 손녀 딸과 함께 생활해왔다. 사건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버지 장씨의 아내(사건 용의자 어머니)와 그의 작은 며느리가 사망했다.건강했던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사지를 부르르 떨며 아주 고통스럽게 숨졌다.1년 뒤 2005년 이번에는 10살 밖에 안된 손녀딸인 둘째 아들의 딸이 같은 증상으로 보이며 사망했다. 올들어서는 4월 아버지 장씨마저도 또다시 같은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데 이어,7월에는 둘째 아들마저 입과 코 등에 흰거품을 물고 사망한 시신으로 발견됐다.불과 2년여 동안 장씨 집안 일가족 5명이 모두 저승길에 오른 것이다. 그 친척들은 모두 “불과 2년새 일가족 5명이 죽은 사실이 조금은 이상했다.”며 “그래도 갑작스럽게 몹쓸 병을 얻어 모두 세상을 떠났구나.”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들을 양지바른 곳에 안장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을 없게 마련.장례식이 끝난 뒤 아버지 장씨의 두 딸과 맏아들간에 말다툼이 대판 벌어졌다.아버지 장씨가 남긴 유산을 둘러싸고 서로 많이 챙기려고 시끌벅적하게 떠든 것이다. 장씨의 두 딸에 따르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은행에 수만원(약 수백만원)을 에금했는데,이를 큰 오빠가 모두 삼킬려고 한다는 것.이 때문에 의심이 생긴 두 딸은 공안(경찰)당국에 집안 가족 5명의 사인이 불분명하다며 신고한 것이다. 공안당국은 즉각 매장된 집안 가족 5명의 시신를 부검한 결과 이들 모두 독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이에 따라 여러가지 정황상 혐의가 짙은 맏아들 장씨 부부를 고의살인죄 혐의 등으로 긴급 제포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 SBS ‘사랑도 미움도’ 출연 이혜은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 SBS ‘사랑도 미움도’ 출연 이혜은

    통통한 얼굴과 몸매처럼 항상 밝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듯한 그녀가 편안한 옆집 언니로 브라운관에 모습을 나타냈다. 바로 영화배우 이혜은(34)이다. SBS 아침드라마 ‘사랑도 미움도’(연출 배태준 극본 이근영)에서 “사는 것이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냥 ‘꾹’참고 살아.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야.” 눈시울 적시며 하소연을 하는 친구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는 서글서글하고 마음씨 푸근한 푼수 아줌마 ‘순영’으로 브라운관 나들이에 나선 그녀. 벌써 10년 전인 1996년 영화 ‘코르셋’에서 몸무게를 무려 15㎏이나 불려 화제를 몰고 다녔던 그녀는 청룡영화상과 영평상 신인여우상을 잇달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신인 여배우였다.2002년 결혼과 함께 잠시 연예계와 멀어졌다 본격적인 활동의 신호탄으로 이번 드라마 출연을 결정했다. 순영은 여자 주인공인 정희(이아현)가 힘들 때면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곤 하는 직장 선배이자 친구의 역할이다. 때론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줌마처럼 푼수도 떨고 주책도 부리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자로, 자칫 우울한 드라마에 웃음과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역이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제가 이번 작품의 출연을 결정한 것은 ‘순영’이란 캐릭터가 저와 아주 비슷해서예요. 어려운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마음씨 푸근한 아줌마. 그게 바로 저예요.”라며 맑게 웃는 이혜은. 이제 34살인데 ‘아줌마’란 단어가 쉽게 나오다니 좀 의외다. “배우로서 아줌마가 되면 더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아줌마란 호칭이 전혀 낯설지가 않아요.”라며 당당한 그녀. 그래서 더욱 폭넓은 연기를 할 수 있는가 보다. 하지만 아직도 앳되 보이는 그녀가 벌써 결혼 5년차란다.“그동안 제가 안보인다고 집에서 쉬는 줄만 아셨죠. 연기에 대한 ‘감’을 잊지 않기 위해 4년 동안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를 계속했어요.”라며 “이번 드라마를 통해 한층 성숙하고 정제된 이혜은, 연기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이혜은을 다시 보실 수 있을 겁니다.”며 당찬 포부를 밝힌다. 또한 자신이 가진 작은 소망을 이야기한다.“이번 드라마가 ‘대박’이 나는 것도 물론 소망이지만 개인적으로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라고 얼굴을 붉힌다. 지금까지는 별로 아이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 예쁜 조카를 보면 내년에는 꼭 자신처럼 통통하고 밝은 아이를 가지고 싶단다. “정말 연기가 아닌 진정 엄마로서의 역할에서 또 다른 연기 내공을 쌓고 싶다.”며 예쁜 소망을 내비친다. ‘겨울연가’ 이후 4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 이혜은. 솔직하고 밝은 모습처럼 내년에는 소망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을 듯한 희망의 빛이 비추는 것 같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04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YTN 오후 1시40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21세기. 첨단 과학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여성 과학기술인의 활동 범위는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다. 해마다 이공계를 졸업하는 여성 졸업자 수는 6만여명에 이르지만 고용시장에서 입지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여성 과학기술인의 사회 진출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8시55분) 결혼 이후 시댁에서 형님 내외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며 살게 된 여자. 유난히도 남편을 따르는 조카가 의아했고 조카라면 끔찍이 여기는 남편에게 야속하기도 하였는데…. 어느 날 조카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남편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 이혼을 요구하며 위자료를 요구하는데….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세계가 사랑하는 술, 와인. 매년 11월 셋째주,‘보졸레 누보’ 출시로 세계 와인 마니아들이 흥분하는 시기다. 얼마 전에는 세계 와인 명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와인에 대한 국내의 애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사람들이 와인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2년전, 아이의 입 속이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아연이가 유전성 거대 백악종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아빠, 이영학. 그 역시 아홉살의 나이에 진단을 받은 거대 백악종 환자다. 입 안에 가득 찬 종양 때문에 밥 대신 모유를 빨고, 언제 기도가 막힐지 몰라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풀피리 무형문화재 1호’ 박찬범. 풀피리 예능보유자인 박찬범 그의 입에선 흔한 나뭇잎 한장도 훌륭한 자연의 악기로 변신한다. 목수였던 그가 풀피리 연주의 대가가 되기까지 남다른 열정과 집념,50여년간 풀피리를 불어온 사연, 전통 풀피리의 멋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쌀 개방과 함께 값싸고 질이 좋지 않은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우리 식탁의 안정성에 대한 염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수입산 제품이 국산으로 둔갑해 고가에 판매되는 일이 많아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국산과 수입산 농산물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자세히 알아본다.
  • “위조카드로 현금인출, 은행이 보상책임”

    위조된 신용카드로 현금이 인출됐을 때에는 카드를 발급한 은행이 보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물품구매 또는 현금서비스와 달리 현금인출에 대해서는 보상을 거부해왔던 은행의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모씨는 지난 2월 A은행에서 카드를 발급받았다. 오씨는 카드를 분실한 적이 없었지만, 지난 7월 이 카드를 통해 434만 8400원이 인출됐다는 것을 알았다.확인 결과 오씨는 6월 말 인터넷 쇼핑몰에서 건강식품을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판매자가 방문해 싸게 판매하겠다며 휴대용 신용카드 조회기를 통해 결제할 것을 요구했고, 이 때 건네준 카드가 복제된 것이었다. 범인은 복제 카드로 결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A은행은 “은행 잘못이 아니므로 책임질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분쟁조정위는 “신용카드의 마그네틱에는 비밀번호에 대한 정보가 없어 구입 당시 결제를 위해 신용카드를 제공한 사실만으로는 비밀번호가 누설된 데 대해 오씨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이창구기자window2@seoul.co.kr
  • 儒林(73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儒林(73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6) 참으로 편안한 죽음이었다. 평생 동안 갖은 질병과 병고에 시달리던 퇴계에게 있어서 마지막의 임종 순간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평화스러운 죽음이었던 것이다. 주역에 나와 있는 ‘겸사’의 점괘 그대로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최후였다. 퇴계의 죽음과 더불어 어느덧 한 치 정도 쌓이던 눈이 그치고 곧바로 구름이 걷혔다. 이에 대한 기록이 임종을 지킨 이덕홍의 ‘간재문집’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2월8일. 아침에 분매에게 물을 주라고 지시하셨다. 유시 초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편안하게 서거하셨다. 이날 날씨가 맑았는데, 유시 초에 갑자기 흰 구름이 집주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가량 내렸다. 퇴계 선생이 서거하자 곧바로 구름이 걷히고 눈이 그쳤다. (酉時 靑天忽白雲集 宅上雪下寸許 須臾先生命整臥席 扶起而坐逝 卽雲散雪霽)” 퇴계의 서거 소식은 뒤늦게 선조에게 전해진다. 퇴계가 죽은 지 3일후 선조는 뒤늦게 퇴계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내의(內醫)에게 약을 가지고 역마를 타고 급히 가서 구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전의가 채 도착하기 전에 퇴계가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전해 듣자 12월18일 선조는 퇴계에게 영의정을 추증(追贈)하고는 그에 맞추어 치제(致祭) 장례 등의 제반사를 조치토록 하였다. 이때 선조가 내린 시호는 다음과 같다.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물론 퇴계는 죽기 사흘 전 조카 영에게 절대로 ‘국장을 쓰지 마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정하면 반듯이 유명이라고 말하여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라는 유계를 내렸으나 선조가 친히 내린 어명이었으므로 이를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조는 2일간 조회를 폐하게 한 뒤에 의정에 합당한 일 등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이에 필요한 각종 제물을 부의(賻儀)로 보내도록 친히 지시하였다. 선조는 직접 퇴계의 빈소를 찾아가 거애(擧哀)하고 싶어 하였으나 거리가 멀었으므로 대신 승지를 보내어 조제(弔祭)토록 하였다. 이때 율곡은 스승 퇴계의 슬픔을 애도하여 ‘퇴계 선생을 곡하다(哭退溪先生)’란 만시를 짓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좋은 옥 정한 금처럼 순수한 정기타고 나시어 참된 근원은 관민(關:장재와 주희를 가리킴)에서 갈려나왔다. 백성들은 위아래로 혜택입기를 바랐건만 자신의 행적은 산림에서 홀로 몸을 닦으셨네. 호랑이 떠나고 용도 사라져 사람의 일 변했건만 물결 돌리고 길 여신 저서가 새롭구나. 남쪽 하늘 아득히 저승과 이승이 갈리니 서해 물가에서 눈물 마르고 창자 끊어집니다. (良玉精金稟氣純 眞源分派自關 民希上下同流澤 迹作山林獨善身 虎逝龍亡人事變 瀾回路闢簡編新 南天渺渺幽明隔 淚盡腸西海濱)”
  • 儒林(73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儒林(73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5) 오직 이덕홍의 ‘간재문집’에만 기록되어 있는 퇴계의 마지막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퇴계가 숨을 거둔 그날은 하루종일 청명한 날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퇴계가 물었던 ‘내 머리맡에서 바람이 불고 비 소리가 들린다. 너도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라는 말은 생사가 갈라지는 순간에 남긴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대적 예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퇴계가 숨을 거둔 지 10여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의 전 국토는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혈풍혈우(血風血雨). 피의 바람과 피의 비가 쏟아지는 대란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퇴계의 이 말은 퇴계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조국에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였던 선지자의 묵시(默示)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덕홍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스승의 임종이 임박하였음을 직감하였다. 이덕홍의 예감은 정확하였다. 유시(酉時)가 가까워오자 퇴계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싶게도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정돈하도록 하였다. 유시는 12시 중에 10번째 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오 5시에서 7시의 시간. 이때 청명하던 날씨가 돌변하여 흰 구름이 집주위에 몰려들더니 갑자기 흰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상서로운 백설이었다. 어지러이 쏟아지는 눈발은 속세를 정화시키듯 순백의 세례로 온 산야를 흰빛으로 표백시켰다. 그때 퇴계는 좌우에 부탁하여 자신을 부축하여 일으키도록 몸짓하였다. 이덕홍과 조카 영이 계속 누워계시도록 만류하였으나 퇴계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부축하여 일어나 앉히자 퇴계는 방문을 열어주도록 손짓하였다. 몹시 추운 겨울날씨였으므로 조카 영은 멈칫거렸으나 스승의 임종을 직감한 이덕홍이 방문을 열도록 눈짓하였다. 방문을 열자 펄펄 내리는 눈발이 뒤덮인 도산서당의 뜰이 한눈에 드러났다.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은 퇴계는 물끄러미 그 뜰을 내려다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가 유시 초. 그러므로 퇴계가 숨을 거둔 것은 오후 5시에서 5시30분 사이의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앉아있던 퇴계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덕홍이 다시 부축하려고 손을 내민 순간 이덕홍은 스승이 숨을 거둔 것을 깨달았다. 스승의 몸에서 아직 온기는 남아 있었으나 숨은 어느새 끊겨져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덕홍은 떨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승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들은 눈이 내리는 뜰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이덕홍의 입에서 부음을 알리는 기별이 전해지자 제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눈을 맞으며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 儒林(73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4)

    儒林(73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4)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4) 죽어가는 소크라테스는 이승에서의 삶은 고통스러운 병이었으나 죽음으로써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영원의 자유와 해방을 얻었으니, 자신이 직접 가서 아스클레오피스의 신전에 감사의 제물을 바치지 못하는 대신 친구인 크리톤에게 닭 한 마리의 제물을 바쳐달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는 죽기 직전 ‘매분에게 물을 주라.’는 이퇴계의 유언과 상통하고 있다. 이퇴계는 사람이 낳고,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일생이 매화에게 물을 주는 일상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듯 죽음을 편안하고 조용하게 맞아들일 준비를 끝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임종의 순간에까지 물을 주라며 명관(命灌)하였던 퇴계의 유언은 다만 생명이 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사랑하는 퇴계의 철학적인 사유 때문이었을 뿐일까. 아마도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퇴계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 매분. 퇴계가 말년에 극진히 사랑하여 ‘매형(梅兄)’이라고까지 의인화하여 부르면서 직접 열정에서 길어 올린 정화수를 주었던 매분. 잠시 한성에 두고 이별하였을 때 ‘잊혀지지 않는구나. 지난해 봄 서울에서 분매 두고 돌아오는 소매 신선바람에 스쳤더니’하고 노래하며, 오매불망 그리워하였던 그 매분. 심지어 죽기 닷새 전 침석에서 설사를 하자 매형에게 불결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니,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였던 그 매분. 그 매분이야말로 2년 전 두향이가 보내주었던 바로 그 매분이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퇴계는 비록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기원을 올리고 있을 두향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하기 위해서 그러한 유언을 남긴 것이 아니었을까. 그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퇴계의 고종기(考終記)를 남기고 있는 책들은 이 장면을 한결같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2월8일. 아침에 분매에게 물을 주라고 지시하셨다.(初八日 命灌盆梅)” 그러나 퇴계의 임종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오직 이덕홍만은 퇴계에게 마지막 유언이 따로 더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이덕홍은 조카 영을 비롯한 친족들과 마지막까지 스승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이덕홍의 증언은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홍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간재문집’에는 다른 책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와 있다. “오시(午時:상오11시부터 하오1시까지의 시간) 스승께서는 조카 영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 머리 맡에서 바람이 불고 비 소리가 들린다. 너도 역시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吾頭上有風雨聲 汝亦聞否)’ 이에 조카 영은 대답하였다. ‘들리지 않습니다.’”
  • 儒林(732)-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3)

    儒林(732)-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3)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3) 마침내 주역을 통해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천기를 점지 받았으므로 제자들은 누구나 스승 퇴계가 곧 종언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실제로 이튿날인 12월8일. 퇴계의 병은 한층 더 위독해졌다. 이날 아침 퇴계는 이덕홍과 조카 영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이 퇴계의 침상 곁에 앉자 퇴계는 간신히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키려 하였다. 그러나 온몸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조카 영이 퇴계의 얼굴에 바짝 귀를 들이대자 퇴계는 띄엄띄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매형에게…물을…주어라.” 퇴계의 임종을 기록하고 있는 수십 권의 책들은 퇴계의 이 말이 그가 생전에 남긴 최후의 유언으로 명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분에게 물을 주라.’는 말은 공식적인 퇴계의 마지막 유언인 것이다. 죽기 직전 자신의 머리맡을 지키던 매분에게 물을 주라는 퇴계의 유언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생전에 그토록 상사하던 매분이었으므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물을 주라는 퇴계의 유언은 이 세상에 모든 삼라만상이 너와 나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둘이 아닌 하나라는 상생(相生)의 철학을 의미하고 있는 심오한 최후설인 것이다. 이러한 참군자 최후설은 세기의 철인이었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소크라테스와 퇴계는 궤변론이 팽배하던 어지러운 난세에 올바른 진리로 청년들을 일깨우던 세기적인 사상가. ‘아테네 청년을 부패시키고 새로운 신을 섬긴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된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편안한 여행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 다음 태연히 독약을 마신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이 모두 얼굴을 감싸고 통곡하기 시작하자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웬 통곡 소리들인가. 이런 창피한 꼴을 보게 될까봐 아낙네들을 먼저 보냈거늘,‘사람은 마땅히 평화롭게 죽어야 한다.’고 나는 들었네. 그러니 부디 조용히 하고 꿋꿋하게 행동하게.” 감각이 사라지고 온몸이 뻣뻣해지며 죽어가던 소크라테스는 온몸을 덮었던 천을 벗기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역사상 유래가 없는 그 유명한 유언을 남긴다. “이보게 크리톤.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자네가 잊지 말고 기억했다가 내 대신 갚아주시게나.” 진리의 철인이었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스클레오피스는 그리스인들의 의신(醫神). 뱀이 기어오르는 지팡이를 짚고 다녀서 오늘날에도 병원이나 약국에서 뱀의 지팡이로 상징되고 있는 문장은 바로 아스클레오피스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 [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三復白圭 삼복백규

    ‘논어’ 선진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남용(南容)이 백규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하여 외우니 공자께서 자신의 형님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도록 했다.” 남용은 춘추시대 공자의 제자. 그가 외운 시는 “흰 구슬에 난 흠은 그래도 갈 수 있지만 말에 난 흠은 어찌할 수가 없구나(白圭之 尙可磨也 斯言之 不可爲也)”라는 내용으로 ‘시경’에 실려 있다. 이 시는 본래 위나라 무공이 여왕을 풍자하고,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것. 남용이 이 시구를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 읊었다고 하니 말을 신중하게 하기 위한 그 노력이 눈물겹지 않은가. 얼마나 가상했으면 공자가 자기 조카딸을 아내로 삼게 했을까. 이런 고사를 초들어 말하는 것은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이 말을 너무 가볍게 하지않나 하는 우려에서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최근 ‘개성 춤판’의 여진이 여전한 가운데 또다시 정제되지 않은 정치언어를 쏟아내 뒷말을 낳고 있다.“개각 과정서 드러난 김승규 국정원장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엄중 경고한다. 국정원장 자격으로 얻은 정보로 자기 주장을 펴고…” 일각에선 김 의장의 이런 ‘호통’이 김승규 전 국정원장의 “(386간첩사건은) 고정간첩이 연루된 간첩단사건이 확실하다.…”라는 말을 겨냥한 것이라는 자의적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어찌됐건 김 의장의 발언이 그리 적절치 못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회지도급의 공인이라면 삼복백규는 고사하고 일복백규라도 해 말을 아끼는 습관부터 들여야 할 것이다. jmkim@seoul.co.kr
  • [공연+새앨범]

    ■ 보니 엠 ‘The Magic Of Boney M’ 80년대 디스코 열풍의 주역 보니 엠의 베스트 앨범.30년전 영국 차트 1위였던 ‘대디 쿨’을 비롯,‘해피 송’,‘리버 오브 바빌론’ 등 80년대 ‘디스코 테크’와 롤러장 등에서 숱하게 들어왔던 명곡들이 수록되어 있다.7080세대들에게 디스코의 추억을 음미할 수 있는 선물이 될 듯하다.SonyBMG. ■ 로비 윌리엄스 ‘Rude Box’ UK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앨범을 팔아치우고 있는 사나이, 로비 윌리엄스의 7번째 앨범. 발표하는 앨범마다 변화를 거듭하는 그가 이번 앨범에서 선택한 주제는 댄스와 힙합 일렉트로닉이다. 총 16곡 수록.EMI. ■ 이루마 ‘h.i.s monologue’ 투명한 피아니즘과 실험적 사운드의 조화로 한국 연주음악의 새 장을 연 아티스트 이루마의 다섯번째 앨범. 높은 인기를 누리며 활동하다 돌연 군 입대를 결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의 음악적 본령인 피아노 솔로가 주를 이루고 있다.STOMP MUSIC. ■ 가오리 고바야시 ‘Fine’ 금년 2월 발매돼 일본 재즈차트 정상을 차지한 여성 색소폰 연주자 가오리 고바야시의 두번째 앨범. 자작곡 5곡과 샤카 칸, 마빈 게이 등의 팝송을 재해석한 커버곡 4곡 등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다. 라이브 실황 등을 담은 DVD와 패키지로 발매됐다. 인더가든. 미술 ■ 검은 숲 12월3일까지 서울 삼청동 아트파크. 몇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가진 동그란 얼굴의 캐릭터 ‘동구리’로 알려진 권기수의 개인전.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옛 선인들처럼 동구리가 현대적 환경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02)733-8500. ■ Psychic Scope-이토 존+아오키 료코 12월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C. 최근 일본과 유럽, 미국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두 젊은 작가 이토 존과 아오키 료코 2인전. 섬세한 드로잉과 초현실주의적인 기법, 몽환적 시선으로 주변을 왜곡시켜 담아낸 자수 평면화와 페이퍼 드로잉, 영상 애니메이션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02)547-9177. 클래식 ■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연주회 14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세종문화회관이 기획하는 모차르트 시리즈로 마술피리 서곡, 피아노 협주곡 제8번 C장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토 D장조 등을 들려준다. 피아노 김혁 김명선 바이올린 김선희 김정미 등.3만∼5만원.(02)399-1114. ■ 알렉상드르 타로 피아노 리사이틀 16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 지난 5월 파리 샹젤리제 극장의 연주 이후 평단의 주목을 받은 신예인 타로의 독주회. 라모의 쳄발로를 위한 모음곡집, 라벨의 ‘거울’, 쇼팽의 왈츠곡 등.2만∼4만원.(02)751-9607. 연극 ■ 태 10∼19일 화∼금 7시30분·토 4시·7시30분, 일 4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어린 조카를 내몰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끝없는 권력욕과 비극적 역사에서도 핏줄을 이어가는 한국인의 생명의지를 전통미학으로 표현. 오태석 작·연출, 장민호 백성희 김재건 등 출연.2만∼3만원.(02)2280-4115. ■ 한국사람들 10∼19일 화∼금 8시, 토 5시, 일 3시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프랑스 작가 미셸 비나베르의 희곡을 무대화한 한불 합작극. 마리온 스코바르트·변정주 공동연출, 고기혁 서민성 등 출연.1만 5000∼2만원.(02)762-0810. 무용 ■ 아시아퍼시픽 발레페스티벌 9일 오후8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서울발레시어터, 상하이발레단, 홍콩발레단, 도쿄시티발레단 등 한중일 3국의 합동무대.2만∼7만원.(02)588-6411. ■ 현대무용단 탐 정기공연 13·14일 7시30분 서강대메리홀. 창단 25주년을 맞은 무용단의 정기공연. 정지영, 조은미, 김예림 안무작.2만원.(02)3277-2584. 뮤지컬 ■ 이 10일∼12월3일 화∼목 8시, 금∼일 3시·7시30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에 노래와 춤을 입힌 토종 뮤지컬. 영화를 빛나게 했던 광대들의 줄타기 대신 부채와 지팡이로 만들어내는 무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김태웅 작·연출, 최성원 금승훈 김법래 등 출연.3만∼6만원.(02)523-0986. ■ 아이두 아이두 14일부터 무기한 화∼금 8시, 토 4시·7시30분, 일 3시·6시30분 KT&G상상홀.20대 신혼기부터 70대 황혼기까지 50년에 걸친 부부의 희로애락 결혼 이야기. 뮤지컬배우 박해미가 제작 겸 주연을 맡았다. 설청일 연출, 양꽃님 김선영 등 출연.4만∼7만원.(02)334-5211.
  • 儒林(72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6)

    儒林(725)-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6)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6) 간신히 의관을 정제하고 나서 퇴계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꼿꼿이 한 자세로 제자들을 맞았다. 제자들의 모습을 한참동안 일일이 돌아본 후 퇴계는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평소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제군들을 종일토록 가르친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소.” 퇴계의 말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말속에 퇴계가 하고자 하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이었다. 생전에 8만의 경전을 설법하였으면서도 임종에 이르러서는 ‘나는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고 말하였던 부처처럼 퇴계 역시 제자들에게 종일토록 가르쳤지만 그것은 모두 그릇된 견해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부처는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긴다. “너희는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만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 다음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어 나와 함께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라.” 제자들에게 남긴 퇴계의 마지막 유훈은 마치 부처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제자들에게 종일토록(평생토록) 가르쳤으나 이 역시 그릇된 견해였을지도 모르니, 오직 자신만의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이에 대해 임종을 지킨 이덕홍은 ‘간재문집’에서 스승의 장엄한 유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2월4일. 스승께서 윗옷을 걸치게 한 다음 제자들과 영결하면서 말씀하셨다. ‘평소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제군들과 종일토록 강론한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平時以謬見 與諸君講論 是亦不易事也)’” 제자들과의 영결을 마침으로써 모든 주위를 정리한 퇴계는 마침내 자신이 묻힐 수기(壽器)에 대하여 언급한다. 수기는 살아있을 때 미리 만들어 놓는 관을 가리키는 말로 퇴계는 자신이 죽은 후에 묻힐 관을 준비하라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임종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퇴계는 자신의 수명이 마치 바람에 깜빡이는 촛불과도 같아 길어야 사흘이나 나흘 더 지탱하면 꺼져버릴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듯 보인다. 이러한 사실 역시 ‘간재문집’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2월5일. 수기를 마련하라고 지시한 다음 제자들에게 3,4일 더 지탱하면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날 조카 영에게 대간(臺諫)들이 을사위훈(乙巳僞勳)의 삭탈(削奪)을 청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셨다. 영이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그 일이 끝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재삼 탄식하였다.”
  • 부시방문 앞두고 양국 무역 걸림돌

    베트남에 억류된 한 베트남계 미국 여성이 무역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미국과의 협상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1972년 베트남을 탈출한 이 여성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공공연하게 지지한 인물로, 지난해 고국을 찾았다가 테러용의자로 몰려 1년 넘게 구금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31일 이 여성 때문에 다음달 15일 베트남을 방문하는 부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이 양국의 무역을 정상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APEC) 참석차 처음으로 베트남 땅을 밟아 베트남전 이후 최대의 선물 보따리를 풀려고 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사는 덩 앤구엔 꾹 포시(58)는 지난해 9월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베트남에 갔다가 당국에 체포됐다. 베트남 정부는 그녀와 일행 2명이 라디오 방송을 장악해 정부를 음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난해 6월 당시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가 부시 대통령을 만날 때 워싱턴에서 베트남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주도했는데 이 사진이 언론에 실리면서 베트남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후문이다. 미국 정부는 증거 위주와 국제적 관례를 존중해야 한다며 압박에 나섰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최근 베트남측에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 의회에선 포시가 풀려나지 않으면 양국의 무역정상화 법안은 처리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포시는 2001년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2000달러를 기부하고 2004년엔 부시-체니 캠프를 위해 아시아인 조직을 이끄는 등 맹렬히 활동했다. 속앓이는 고스란히 미국 기업들 몫이다. 베트남은 150번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확실시되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이다. 때문에 이번 부시 대통령 방문 때 따라붙는 미국 기업만 200개가 넘는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儒林(72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5)

    儒林(724)-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5)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5)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비석 뒷면에는 ‘가례에 언급된 대로 간략하게 순서대로 기록하라’는 퇴계의 유계는 그대로 지켜진 셈이 되었으나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짓게 하면 기대승처럼 서로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실속 없는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는 유계는 지켜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비석 뒷면에 새겨진 퇴계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는 명문은 퇴계가 생전에 걱정하였던 대로 기대승이 직접 글을 지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퇴계는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병세가 위중해지자 퇴계는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 서적과 병족들을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한편 조카를 불러 호화로운 장례식과 묘지를 만들지 말 것 등의 장례절차를 직접 유언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남은 절차는 서당주위에 머물고 있던 제자들과의 이별이었다. 이때 계상서당에는 애제자 이덕홍을 필두로 칠십여 인의 제자들이 초조하게 퇴계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족에게 유계를 마치고 난후 퇴계는 마침내 서당주위에 머물고 있던 제자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당부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이 퇴계 선생 연보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12월4일. 이날 낮에 퇴계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계상서당 주위에 머물고 있던 제자들을 만났다.” 이때 이덕홍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아무래도 무리이니 만나지 말 것을 종용하였으나 퇴계의 태도는 단호하였다. 퇴계는 이덕홍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몸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한 달 가량 몸져누워 있었으므로 퇴계의 몸은 검불처럼 가벼웠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긴 하였으나 퇴계는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기도 무리인 듯 그 자리에 쓰러지곤 하였다. “아니되옵니다.” 보다 못한 이덕홍이 쓰러지려는 퇴계의 몸을 부축하면서 말하였다. “병이 쾌차하시면 그때 제자들과 만나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자 퇴계는 이덕홍을 돌아보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니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죽고 사는 것이 갈리는 이때에 만나보지 않을 수가 없다.(死生之際 不可不見)” 그러고 나서 퇴계는 이덕홍에게 자신의 의관을 입혀주도록 부탁하였다. 제자 정유일(鄭惟一)은 스승 퇴계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 적이 있었다. “스승께서는 평상시에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갓을 쓰고 띠를 띠어서 서재에 나가면 얼굴빛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 조금도 어디에 기대는 일이 없으셨다.” 평상시에 그러한 율신의 태도를 취하였던 퇴계였으니 비록 병이 위중하였으나 마지막으로 제자를 만나는 영결(永訣)의 순간 의관을 정제하여 제자들에게 예를 갖추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儒林(723)-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4) 퇴계가 실질적인 유계(遺戒)를 내린 것은 다음 날인 12월4일이었다. 이날은 마침 퇴계의 병세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자 퇴계는 주위를 물리치고 조카 영(寗)을 불러 자신의 곁에 앉게 한 다음 지필묵을 준비토록 하였다. 이때의 장면이 ‘퇴계언행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2월4일. 병이 조금 덜해진 틈을 타서 좌우를 물리치시고 조카 영에게 유계를 받아 적게 하셨다. 기침 소리가 심하였는데, 좌우를 물리치고 말씀하실 때에는 문득 질병이 몸에서 떠난 듯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쓰기를 마치자 직접 한번 읽어보시고는 영에게 봉하고 서명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런 뒤에야 기침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퇴계의 유계는 그가 죽은 후에야 밀봉이 뜯기고 공개되었다. 퇴계가 남긴 유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국장(國葬)을 쓰지 말라. 해당 관청에서 규례에 따라 국장을 청하면 반드시 유명(遺命)이라 말하고 상소하여 고사토록 하라. 2. 유밀과(油蜜果)를 쓰지 말라. 과일은 넉넉지 못할 것이니 간소하게 한 단씩만 차리고 그 외에는 일절 쓰지 말도록 하라. 3. 비석(神道碑)을 세우지 말라. 다만 작은 돌에다 그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쓰고, 그 뒷면에는 향리(鄕里)·세계(世系)·지행(志行)·출처(出處)의 대략을 ‘가례(家禮)’에 언급된 대로 간략하게 순서대로 기록해라.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짓게 하면 기대승처럼 서로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실속 없는 일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뜻한 바를 스스로 적고자 하여 먼저 자명문(自銘文)을 지었으나 그 나머지는 미루다가 마치지 못했다. 그 초고가 여러 원고들 중에 섞여 있을 것이니 찾아서 쓰도록 하라. 4. 선세(先世)의 묘갈(墓碣)을 세우는 일을 마치지 못하고 이렇게 되니 영원한 한이 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이 이미 갖추어져 있고, 형편도 어렵지 않으니, 반드시 문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새겨서 세워라. 5. 동쪽의 작은 집은 본래 너(퇴계의 맏아들 준을 가리킴)에게 주려했고, 적(寂)을 위하여 따로 작은 집 한 채를 짓고 있었는데, 반도 못 짓고 이렇게 되었다. 적의 모자는 가난해서 반드시 완성하지 못할 것이니, 네가 맡아서 집을 완성해주면 정말 좋겠다. 만약 형편이 어려우면 차라리 네가 그 재목과 기와 등의 물자를 가져다가 재실(齋室) 등에 사용하고 적 모자에게는 이 집을 그대로 주는 것이 좋겠다.” 퇴계의 유계는 지금도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도산의 동쪽 끝자락인 청량산 쪽으로 달려 나와 온계에서 흘러내린 퇴계의 물이 하계마을에 이르러 낙천물과 합쳐지는 지점을 직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지산 기슭에 묻힌 퇴계의 묘소 앞 비석에는 다만 다음과 같은 1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도산으로 물러나 만년을 숨어산 진성이씨의 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 남성편력 화려했던 페기의 삶

    하루에 한점씩 그림을 사는 것으로 유명했던 페기 구겐하임.20세기 현대 미술계의 대표적인 후원가이자 컬렉터였던 페기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립자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딸로, 그녀의 화려했던 삶은 곧 20세기 서양미술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페기 구겐하임-모더니즘의 여왕’(메리 디어본 지음, 최일성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은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페기는 “엄청난 재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 사이에서 보헤미안 같은 삶을 사는, 죄악에 가깝도록 문란한 여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열살 이상 연하였던 극작가 새뮤얼 베케트, 독일 화가 막스 에른스트, 프랑스 출신 화가 이브 탕기, 그리고 20년 이상 친구로 지내다 성관계까지 맺은 마르셀 뒤샹에 이르기까지 그의 남성편력은 지루하다 못해 숨이 찰 정도다. 페기의 삶이 크게 달라진 건 마흔살을 기점으로 해서다. 풍요의 바다에서 뒹굴던 말괄량이 페기는 1938년 런던에 갤러리 ‘구겐하임 죄느’를 개관하고 1942년 뉴욕 웨스트사이드에 ‘금세기 예술갤러리’를 열면서 작품 수집과 전시에 매달리게 된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오빠 살고있는데… 방사능 나왔으면 어쩌나”

    “내 고향에서 핵이 터질 줄이야, 오빠랑 올케 언니랑 조카들 정말 별 탈 없어야 할 텐데….” 지난 9일 핵 실험이 이뤄진 것으로 유력시되는 함경북도 김책시 상평리 인접지역에서 살았던 새터민(탈북주민)들은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분통을 터트렸다.2000년을 전후로 김책시와 인접 길주군 등지에서 빠져 나온 새터민 3명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고향에 군사시설이 있었지만 그게 핵 실험에 이용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함북 김책시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1999년 혈혈단신 탈북한 A(여)씨는 “핵 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평리는 우리 고향에서 겨우 20∼30리 떨어져 있어 걸어서 한 시간이면 간다.”면서 “오빠 세 명이랑 올케 언니들, 조카들까지 살고 있는데 방사능이라도 나온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방사능이니 뭐니 걱정하는데 만일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어떡해요. 가족들한테 연락도 못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해요.” 길주군에서 2000년에 탈북한 B(여)씨는 “엄청 큰 군수 공장이 지하에 만들어지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 그게 핵과 연관돼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그는 자기 동생이 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방사능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폐쇄된 북한사회에서 핵 실험 사실 자체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풍계리 산 밑에 노동자들을 동원해 엄청난 ‘지하기지’를 만들어 놓았었다.”고 증언했다. 길주군에 몇 년간 살았다는 C씨도 “근처에 미사일 발사 기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도 김정일이 ‘우리가 지면 땅덩어리 없앨 것이다.’고 항상 얘기했기 때문에 핵 실험을 언제 해도 할 거라고 생각은 했다.”며 씁쓸해 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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