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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괴벨스’ 김기남 영결식…김정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

    ‘北괴벨스’ 김기남 영결식…김정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사망한 김기남 전 노동당 선전 담당 비서의 발인식과 영결식에 참석한 뒤 장지까지 동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김 위원장은 전날 평양 서장회관에서 고인의 발인식을 지켜보며 “우리 당의 참된 충신, 견실한 혁명가, 저명한 정치활동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또 김 위원장은 “김기남 동지와 같은 혁명의 원로들이 있어 역사의 풍파 속에서도 주체혁명 위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올 수 있었다”며 “노혁명가가 지녔던 고결한 풍모는 충성과 애국으로 빛나는 삶의 본보기”라고 했다. 직접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고인의 장례를 지휘한 김 위원장은 발인식에 이어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거행한 영결식에도 참석해 고인의 관 위에 손수 흙을 얹었다. 조선인민군 명예의장대가 늘어선 채 진행한 영결식에서는 고인을 기리며 조총 180발이 발사됐다. 애도사는 리일환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낭독했다. 리 비서는 고인이 “견디기 어려운 병상에서도 자기의 몫까지 합쳐 김정은 동지를 잘 받들어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운구행렬이 시내를 지나갈 때 주민들이 인도에 일렬로 서서 묵념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발행했다. 노환과 다장기기능부전으로 치료받다 94세 일기로 숨진 고인은 1956년 당 중앙위원회에 첫발을 들인 이래 60여년에 걸쳐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에 앞장서 ‘북한의 괴벨스’로 불렸다.
  • 5만 7천명 응원 일본, 3천명 응원 북한에 1-0 진땀승…다나카 결승골

    5만 7천명 응원 일본, 3천명 응원 북한에 1-0 진땀승…다나카 결승골

    약 6년 3개월 만에 성사된 남자축구 북일전에서 일본이 북한에 진땀승을 거뒀다. 일본 축구대표팀은 21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킥오프 2분 만에 터진 다나카 아오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이겼다. 무실점 3연승을 달린 일본은 승점 9점을 쌓아 B조 선두를 질주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랭킹 18위인 일본으로서는 이날 진땀승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결과다. 일본은 미얀마(162위)와 1차전, 시리아(89위)와 2차전에서 거푸 5-0으로 이긴 바 있다. 북한은 114위다. 일본은 2017년 12월 동아시아 E-1 챔피언십 1-0 승리에 이어 북한전 2연승을 달렸다. 일본은 지난달 2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여자축구 3차 예선 2차전에서 2-1로 이겨 본선 진출권을 따내기도 했다. 반면 시리아와 1차전에서 0-1로 지고, 미얀마와 2차전에서 6-1로 이긴 북한은 승점 3점으로 제자리걸음 했다. 북한은 이날 미얀마(1무2패)와 1-1로 비긴 시리아(1승1무1패)에 밀려 조 3위에 자리했다. 이날 약 6만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는 6만명가량이 들어차 응원전을 펼쳤다. 대부분 푸른색 의상을 입고 일본을 응원하는 일본 팬들이었으나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응원단 3000여 명이 북한을 응원했다. 이들은 ‘이겨라 조선’, ‘공화국의 위용을 떨치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대형 인공기를 흔들며 ‘필승 조선’을 외쳐 눈길을 끌었다. 일본은 전반 2분 도안 리쓰가 골 지역 오른쪽 구석에서 페널티지역 정면 쪽으로 내준 패스를 다나카가 오른발 슈팅으로 북한 골대 구석을 갈랐다. 일본은 마에다 다이젠과 도안이 거푸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며 북한을 몰아쳤다. 일본은 전반 44분도 도안이 결정적인 왼발 슈팅을 때렸으나 북한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일본은 전반에 점유율 80%를 유지하며 6차례 슈팅(유효슈팅 2개)을 시도했다. 북한은 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 채 끌려다녔다. 북한은 후반 초반 흐름을 가져갔다. 후반 2분 한광성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때린 왼발 슈팅이 일본 골키퍼 손에 맞은 뒤 오른쪽 골대를 때려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진 상황에서 백충성이 왼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지만 앞서 부심의 반칙 깃발이 올라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북한 선수들은 주심을 에워싸고 항의하며 비디오판독(VAR)을 요청했지만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시아 2차 예선에서는 VAR을 가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점유율을 50% 넘게 늘려간 북한은 후반 11분 강국철이 기습적인 중거리 슛을 날려 일본 골문을 위협하기도 했다. 주춤하던 일본은 다시 공세를 강화했으나 추가 골을 넣지는 못했다. 전반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보여준 북한도 경기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한편, 오는 26일 북한과 일본의 4차전이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북한 측이 평양 개최 불가를 통보해 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은 일본에서 감염자가 늘고 있는 연쇄상구균독성쇼크증후군(STSS)을 이유로 든 것으로 알려졌다.
  • 김이중 日 민단 단장 “재일교포 4세 역사 인식 높이는 게 과제”

    김이중 日 민단 단장 “재일교포 4세 역사 인식 높이는 게 과제”

    “일본 내 한류 바람으로 재일교포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역사 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나갈지가 과제입니다.” 재일교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김이중(64) 신임 단장이 13일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에 있는 민단 회의실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민단 가나가와현 본부 상임 고문이었던 김 단장은 지난달 28일 제56회 정기 중앙대회 겸 단장 선거에서 임기 3년의 단장으로 당선됐다. 그는 간토가쿠인대를 졸업하고 민단 가나가와현 본부 감찰위원장과 단장, 중앙본부 부단장 등을 지냈다. 특히 그는 민단 내 최초 조선학교 출신 단장이다.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로 분류되며 북한 국적 이외에 한국과 일본 국적자도 재학하고 있다. 김 단장은 “저는 재일교포 3세로 제 아이들은 4세가 된다”며 “(재일교포 중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재일교포로서의 인식을 어떻게 가지게 할 수 있을지가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나라에 사는 교포와 재일교포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재일교포는 과거 역사와 현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가 있어 다른 해외 교포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재일교포들의 고국에 대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단장은 “재일교포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고국에 가서 여러 가지 체험 학습을 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다”며 “이 사업을 재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 학생들이 한국의 민속놀이 등을 체험하며 전통문화를 소개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선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에 맞서 재일교포 사회가 목소리를 낼 필요성도 나왔다. 하정남 기조실장은 “자민당이 우경화하면서 옛날에 있었던 사실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며 “이런 풍조에 대해 민단으로서 올바른 목소리를 좀 더 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도태우, 5·18 北 개입설 논란 사과…“정제되지 못했다”

    도태우, 5·18 北 개입설 논란 사과…“정제되지 못했다”

    국민의힘 대구 중구·남구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된 도태우 변호사가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과거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도 변호사는 9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제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다고 하는 일부 언론 매체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이자 허위”라면서도 “정제되지 못한 개인적인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는 “5·18 당시 북한의 왜곡방송, 조총련의 활동 등 북한의 개입 시도에 대해 위원회가 이를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런 요청에 대해 5·18 북한 개입을 마치 제가 주장한 것처럼 왜곡 보도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계승한 흐름의 5·18민주화운동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결코 부정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며 “정제되지 못했던 5년 전 저의 개인적 발언에 대해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드린다. 언행에 더욱 신중하겠다”고 했다. 도 변호사가 2019년 2월 22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5·18이 북한과 무관하면 검증에 당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도 변호사는 “5·18은 자유민주화적 요소가 있지만, 그것으로 포섭되기 어려운 굉장히 문제의 부분들이 있다”며 “특히 북한의 개입 여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재조사해보면 당시 과연 북한의 광범위한 개입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북한 개입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충실히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광주시는 지난 8일 “(도 변호사가)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돼 있다고 지속해 왜곡했다”며 “그런 도태우를 국회의원 후보자로 공천한 국민의힘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같은 날 이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후보가 되면 당의 전체 가치를 중요시해서 해나갈 것이니 문제없다고 본다”고 했다.
  • 멍드는 공무원

    멍드는 공무원

    악성 댓글·민원에 공직 몸살 “내가 일부러 독약을 처방해 주진 못하지만, 혈압 130/80 나올 거 150/100 되게 해 줄 수 있다. … 복지부 공무원 가족이 평생 제대로 된 진단·치료 못 받게 최선을 다하겠다.” 의료대란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의사 혹은 관계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복지부 공무원을 겨냥해 협박성 글을 의사 커뮤니티에 올리고 있어서다. “세종의 한 산부인과 검진에서 복지부 공무원 부인을 골탕 먹였다”, “복지부 공무원의 정상 조직을 떼어낸 뒤 악성 종양일 수 있다고 했더니 안색이 안 좋아지더라”는 등 ‘선’을 넘은 악질적 주장들도 ‘경험담’ 형태로 올라왔다. 대한의사협회는 “명백히 조작된 글이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구체적 장소·정황과 함께 전문용어가 다수 적혀 있어 사실일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공무원 80% “악성 민원 경험” 복지부의 한 공무원은 5일 “직원들 사이에서 ‘병원 가서 약 타기가 두렵다’는 말이 나온다”며 “해당 게시물을 의사가 올리지 않았더라도 의사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런 게시물에 ‘좋아요’ 1만여개가 달린 게 더 소름 끼쳤다”고 말했다. 복지부뿐만이 아니다. 공무원노조총연맹(공노총)이 지난해 조합원 70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최근 5년 새 악성 민원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84%, ‘월평균 1회 이상 악성 민원을 처리 중’이라는 응답은 70%로 조사됐다. 얼토당토않은 민원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제기된다. 해당 기관 업무나 정책과 관련해 일방적으로 떼쓰는 식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업무를 담당하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악성 민원이 많기로 세종 관가에서도 유명하다. 환경부에는 ‘전기차 보조금을 적게 받았다’, ‘집 앞 공사장에 먼지가 풀풀 날린다’는 민원이 쏟아진다. 국토부 도로국·철도국에는 다짜고짜 “내 집 앞에 도로·철도를 깔아 달라”는 민원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온다. ●“집앞에 길 내라”… 식칼 협박도 기획재정부에는 유선 전화로 예산 삭감에 항의하며 폭언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최근 기재부가 운영하는 국민참여예산 홈페이지 사업 제안 게시판에는 ‘지구촌 풋살 중계를 구축해 달라’는 등 허무맹랑한 글을 특정인이 400여건이나 도배했다. 민원봉사실은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세금 관련 민원을 응대하는 세무서 민원실에는 고성이 잦을 날이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폭언과 욕설은 애교 수준이다. 식칼을 들고 공무원을 협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경기 동(東)화성세무서 민원실장이 부동산 세금 관련 서류를 떼러 온 악성 민원인을 응대하다 쓰러져 숨졌다. 이후 국세청은 전국 133개 세무서 민원실 공무원에게 신분증 케이스 모양의 증거 수집용 녹음기를 보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총괄하는 우체국도 악성 민원 온상이다. 2017년 한 악성 민원인은 우체국 직원이 통장에서 돈을 훔쳐 갔다며 2년간 500회 이상 찾아와 그 공무원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살해 협박을 하기도 했다. ●전화번호·이름 비공개 전환 악성 민원이 멈추지 않자 일부 기관은 공개된 전화번호와 공무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홈페이지에 직원별 유선번호를 지우고 과별 대표번호만 남겼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민원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정청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했다.
  • “조선 사커를 동포 모두가 응원하자”… 5년 만의 북일전 열기

    “조선 사커를 동포 모두가 응원하자”… 5년 만의 북일전 열기

    “필승 조선!” 28일 2024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놓고 북한과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의 최종 예선 2차전이 열린 도쿄 국립경기장. 추운 날씨에도 붉은색 옷차림의 북한 응원단 3000여명이 응원봉과 인공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을 응원했다. 북한과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 경기가 주목받은 데는 올림픽 출전권뿐만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일본의 견제가 이뤄지는 가운데 열리는 국제경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선수들이 일본을 방문한 건 2019년 3월 사이타마시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5년 만이었다. 북일 간 교류가 단절된 만큼 경기 개최도 까다롭게 결정됐다. 올림픽 최종 예선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돼 1차전은 평양 김일성경기장, 2차전은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각각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본축구협회 측에서는 평양행 항공편이 없는 데다가 북한에서 경기를 열면 불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24일 1차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렸다.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 뒤 대북 제재로 북한 국적자의 일본 입국을 금지했지만 스포츠 교류는 특별한 사례로 인정해 북한 축구대표팀 입국을 허용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는 3000여장의 단체석을 구입해 놓는 등 경기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북한은 세계랭킹 9위, 일본은 8위 등 팽팽한 전력으로 1차전은 0-0으로 비겼다.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은 2012 런던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만큼 각오가 상당했다. 조총련 측은 축구 응원 알림문에서 응원을 위한 드레스 코드로 ‘붉은색’을 정하고 “이겨라! 조선”이라며 “조선 사커를 동포 모두가 열광적으로 응원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역 오에도선 국립경기장역에 내리자 조총련 관계자가 ‘잘오셨습니다’, ‘조선측 응원석’ 등이 써 있는 팻말로 단체석 자리를 안내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일본대표팀을 상징하는 파란색 응원석 반대편에 외딴섬처럼 붉은색으로 조총련 단체 응원석이 눈에 띄었다. 응원석 밑에는 ‘이겨라 조선!’, ‘공화국의 위용 떨지차!’ 등 대형 플래카드가 경기장에 붙어 있었다. 북한 응원단은 북한 선수들의 움직임에 맞춰 붉은색 응원봉을 흔들고 꽹과리를 울리며 홈팀인 일본 응원단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북한팀은 일본을 상대로 1대2로 패하며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 조총련 3000명 응원에도 북한 여자축구, 일본에 1-2로 져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 좌절

    조총련 3000명 응원에도 북한 여자축구, 일본에 1-2로 져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 좌절

    북한 여자 축구가 일본에 패해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 복귀가 좌절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위 북한은 2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 3차 예선 2차전 원정 경기에서 8위 일본에 1-2로 무릎을 꿇었다. 나흘 전 북한 평양이 아닌 중립 지역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0-0으로 비겼던 북한은 이로써 1, 2차전 합계에서 1-2로 밀려 오는 7~8월 파리올림픽 여자 축구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앞서 북한은 2008 베이징, 2012 런던올림픽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했으나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바 있다. 북한은 이날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대형 인공기를 흔든 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대학생과 고등학생, 조총련 관계자 3000여 명의 열띤 응원을 받았으나 아쉬움을 남겼다. 북한은 전반 26분 다카하시 하나, 후반 31분 후지노 아오바에게 연속 골을 얻어맞아 승기를 내줬고, 후반 36분 김혜영이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일본은 2020 도쿄올림픽(8강)에 이어 2회 연속이자 통산 6번째 올림픽 여자 축구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일본은 2012년 런던 대회 때 은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쓴 바 있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다른 아시아 3차 예선 경기에선 호주가 우즈베키스탄을 10-0으로 대파하고 1, 2차전 합계 13-0으로 앞서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4위 호주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8강), 도쿄 올림픽(4위)에 이어 3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나선다. 이날까지 파리올림픽 여자 축구에 출전할 12개 팀 중 9팀이 결정됐다. 프랑스, 미국, 브라질, 콜롬비아, 캐나다, 뉴질랜드, 스페인, 일본, 호주가 출전을 확정했고, 유럽 1개 팀이 29일 결정된다. 아프리카 2개 팀을 가릴 예선은 4월 열린다. 23세 이하가 출전하는 올림픽 남자 축구와는 달리 성인 대표팀이 뛰는 올림픽 여자 축구는 본선에 12개국밖에 나설 수 없어 32개국이 출전하는 여자 월드컵보다 바늘구멍이다. 한국은 올림픽 여자 축구 본선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지난해 10~11월 진행된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 [르포] 北 응원단 3000명 “필승 조선” 외쳤는데…여자축구 패배

    [르포] 北 응원단 3000명 “필승 조선” 외쳤는데…여자축구 패배

    “필승 조선!” 28일 2024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놓고 북한과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의 최종 예선 2차전이 열린 도쿄 국립경기장. 3000여명의 붉은색 옷차림의 북한 응원단이 응원봉과 인공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을 응원했다. 이번 북한과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 경기가 주목받은 데는 올림픽 출전권뿐만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일본의 견제가 이뤄지는 가운데 열리는 국제경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선수들이 일본을 방문한 건 2019년 3월 사이타마시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5년 만이었다. 북일 간 교류가 단절된 만큼 경기 개최도 까다롭게 결정됐다. 올림픽 최종 예선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돼 1차전은 평양 김일성경기장, 2차전은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각각 개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본축구협회 측에서는 평양행 항공편이 없는 데다 북한에서 경기를 열게 되면 불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24일 1차전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렸다.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 후 대북 제재로 북한 국적자의 일본 입국을 금지했지만 스포츠 교류는 특별한 사례로 인정해 북한 축구대표팀 입국을 허용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는 3000여장의 단체석을 구입해 놓는 등 경기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북한은 세계랭킹 9위, 일본은 8위 등 팽팽한 전력으로 지난 2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1차전은 0-0으로 비겼다.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은 2012 런던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만큼 각오가 상당했다.경기에 앞서 북일 간 신경전도 펼쳐졌다. 일본 단체응원석 티켓 3천장이 경기 전날까지도 다 팔리지 않자 일본축구협회가 협회 소셜미디어(SNS)에 티켓 판매 현황을 올리며 판매를 독려했다. 이케다 후토시 일본 대표팀 감독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조총련 측의 압도적 응원을 경계하듯 “서포터의 힘을 빌려 파리 출전권을 따낼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리유일 북한 대표팀 감독은 질문에 ‘북한’이라는 명칭이 나오자 “우리는 북한팀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팀”이라며 국호를 정확히 부르지 않으면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조총련 측은 사전에 축구 응원 알림문에서 이날 응원을 위한 드레스코드로 ‘붉은색’을 정하고 “이겨라! 조선”이라며 “조선 사커를 동포 모두가 열광적으로 응원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역 오에도선 국립경기장에 내리자 조총련 관계자가 ‘잘오셨습니다’, ‘조선측 응원석’ 등이 써있는 팻말로 단체석 자리를 안내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일본대표팀을 상징하는 파란색 응원석 반대편에 외딴섬처럼 붉은색으로 조총련 단체 응원석이 눈에 띄었다. 응원석 밑에는 ‘이겨라 조선!’, ‘공화국의 위용 떨지차!’ 등의 대형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북한 응원단은 선수가 한 명 한 명 소개될 때마다 꽹과리를 울리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리유일 대표팀 감독이 소개됐을 때 가장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북한 응원단은 북한 선수들의 움직임에 맞춰 붉은색 응원봉을 흔들며 홈팀인 일본 응원단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북한팀은 일본을 상대로 1대 2로 패하며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 “열렬히 환영합네다”…日 조총련, 한복 입고 北 축구선수단 반겨[포착]

    “열렬히 환영합네다”…日 조총련, 한복 입고 北 축구선수단 반겨[포착]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가 2024 파리올림픽 최종예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일본에 입국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에게 격한 환영의 뜻을 표했다. 25일(이하 현지시간) 밤 10시경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은 붉은색 코트를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본 하네다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팀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도착 당시 공항 측에서 통제하는 경로로만 이동하고 대화를 삼가는 등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입국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조총련 관계자들로 보이는 수십 명이 모여 손뼉을 치거나 인공기를 흔들며 선수들을 환영했다. 환영인파 중 일부는 “환영한다”면서 목청껏 외치거나 연신 스마트폰으로 대표단의 모습을 담느라 바빴다. 뿐만 아니라 한복을 입은 조총련 소속 여성들이 북한 대표팀에게 직접 다가가 꽃다발을 건넸고, 이에 북한 측 관계자는 “동포들의 열렬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북한 대표팀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공항을 빠져나온 후에도 ‘열렬한 환영’은 계속됐다. 현장에 있던 인파와 취재진이 “인공기를 흔들어달라”고 요청하자 이에 응하기도 했고, 버스에 탑승한 후에도 취재진을 바라보며 손 인사를 하기도 했다. 교도통신은 “북한 선수들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2019년 3월 도쿄 인근 사이타마시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5년만”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특별 사례로 인정해 북한 축구팀 입국 허용” 앞서 일본 정부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 따른 대북 제재의 일환으로,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해왔다. 그러나 스포츠 교류는 특별한 사례로 인정하면서, 북한 축구대표팀의 입국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 대표팀은 지난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일본과 1차전을 치렀다. 이후 일본과 2차전을 치르기 위해 카타르를 경유해 일본으로 입국했다. 1차전에서 북한과 일본은 0대 0으로 비겼으며, 2차전은 28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치러진다. 본래 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일본 축구협회는 평양행 항공편이 없고 경기 운영 측면에도 불투명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경기 장소가 중립 지역인 사우디로 변경된 바 있다.
  • 北 여자축구 대표팀 日 입국…“동포들 열렬한 환영 감사” [포착]

    北 여자축구 대표팀 日 입국…“동포들 열렬한 환영 감사” [포착]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이 2024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 참석 차 25일 도쿄 하네다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했다. 붉은색 코트를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북한 선수단과 관계자들은 공항 측에서 통제한 경로를 따라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동했다. 하네다공항 입국장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관계자들로 보이는 수십 명이 모여 손뼉을 치거나 인공기를 흔들며 선수들을 환영했다. 환영 인파 중 일부는 팔을 들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환영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한복을 차려입은 조총련 여성들은 북한 대표팀 관계자에게 꽃다발을 건네기도 했다. 꽃다발을 받은 북한 관계자는 “동포들의 열렬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공항을 나와 버스에 탑승한 북한 선수들은 취재진을 보며 손 인사를 하거나 “인공기를 흔들어 달라”는 요청에 응했다.북한 대표팀은 지난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일본과 1차전을 치른 뒤 카타르를 경유해 이날 오후 10시쯤 일본에 입국했다. 올림픽 최종예선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돼 1차전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축구협회가 평양행 항공편이 없고 경기 운영 측면에서 불투명한 점이 있다고 지적해 경기 장소가 중립 지역인 사우디로 변경됐다. 북한 선수들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2019년 3월 도쿄 인근 사이타마시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5년 만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 후 대북 제재의 하나로 북한 국적자 입국을 원칙상 금지했다. 다만 스포츠 교류는 특별한 사례로 인정해 북한 축구대표팀 입국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차전에서 북한과 일본은 0-0으로 비겼으며, 오는 28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2차전을 통해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거머쥘 팀을 가린다.
  • ‘한복 혐오’ 日의원, 조선인 추도비 철거 반대에 ‘색깔론’

    ‘한복 혐오’ 日의원, 조선인 추도비 철거 반대에 ‘색깔론’

    여러 차례 혐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일본 자민당 스기타 미오 의원이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 문제에 ‘색깔론’을 덧씌운 갈라치기 발언으로 논란을 낳고 있다. 18일 도쿄신문과 교도통신에 따르면 스기타 의원은 전날 일본의 인터넷 방송 ‘니코니코’에 게시된 동영상에서 시민들의 추도비 철거 반대 운동에 대해 “조총련계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총련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줄임말로,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재일한인단체다. 현재 군마현에서는 현립 공원인 ‘군마의 숲’에 설치돼 있던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철거하는 문제로 논쟁이 오가고 있다. 이 추도비는 태평양전쟁 당시 군마현에 있는 공장과 공사 현장에 강제 징용됐다가 희생된 조선인을 기리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가 2004년 설치한 것이다.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후대에 알리고 양측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추도비였다. 그런데 군마현 당국은 ‘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제에서 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했다’는 우익들의 주장에 동조해 2014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결국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군마현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철거 절차가 가시화되자 현지 시민단체 등은 철거 반대에 나섰다.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 등 150명은 철거 개시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현장에 모여 추도비에 헌화하고 반대 의사를 재차 밝혔다. 또 철거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이 일본의 유명한 팝아티스트인 나라 요시토모씨를 비롯한 4300명분의 서명을 모아 군마현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군마현은 끝내 지난달 말 추도비를 철거했다. 단순히 추도비를 끌어내린 데 그치지 않고 추도비를 산산조각 냈다. 스기타 의원이 영상에서 ‘조총련계가 주도한다’는 발언을 한 것은 이번 사안에 이념 문제를 덧칠해 추도비 철거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교도통신은 철거 반대가 불온한 움직임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재일 코리안에 대한 증오와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기타 의원은 추도비 철거에 대해 지난 3일에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정말 잘됐다”면서 “일본 내에 있는 위안부나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의 비 또는 동상도 이 뒤를 따랐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스기타 의원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등 우익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그는 2016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여했을 때 한복 차림 여성을 비꼬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지난해 일본 법무성 산하 조직으로부터 인권 침해 주의를 받기도 했다. 당시 스기타 의원은 엑스에 “회의에는 지저분한 차림뿐 아니라 (한복)치마저고리와 아이누 민족 의상을 입은 코스프레 아줌마까지 등장했다”며 “완전히 품격에 문제가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며 “유엔을 떠날 무렵엔 몸이 이상해질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이 게시글로 그는 지난해 법무당국으로부터 ‘인권 침해’라는 지적을 받았다.
  • “다음 생엔 행복하길, 끝까지 기억하겠다”… ‘두 영웅’ 눈물의 영결식

    “다음 생엔 행복하길, 끝까지 기억하겠다”… ‘두 영웅’ 눈물의 영결식

    “수광이형, 수훈이형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우리 또 만나자.” 화재 현장에서 인명 수색 중 순직한 경북 문경소방서 119 구조구급대 소속 고(故)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의 영결식이 주말인 3일 경북도청장(葬)으로 엄수됐다. 두 ‘영웅’을 실은 운구 차량이 이날 오전 10시쯤 경북도청 동락관에 도착하자 도열한 소방관들은 거수경례로 맞았다. 유가족은 장례식장에서부터 영결식장까지 운구행렬 내내 두 청년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오열했다. 김 소방장의 모친이 “엄마는 우리 수광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어쩔래, 보고 싶어 어떡하나”라고 흐느끼자 박 소방교의 어머니는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간 아내의 곁에서 눈물을 삼켜왔던 두 부친도 목 놓아 울었다. 생전 두 소방관이 몸담았던 문경소방서 119 구조구급대 동료들 역시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주황색 활동복을 입은 채 두 청년에게 경례를 한 대원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떨구었고, 일부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아픔을 삼키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마지막 길에는 유족, 친지, 경북도지사, 소방청장, 도의원 등 1000여명이 함께했다.영결식은 개식사, 고인에 대한 묵념과 약력 보고, 1계급 특진·옥조근정훈장 추서, 윤석열 대통령 조전 낭독, 영결사, 조사, 고인께 올리는 글,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 폐식사 순으로 진행됐다. 두 청년과 한 팀이었던 윤인규 소방사는 조사에서 “그날 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재 출동 벨 소리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현장으로 뛰어갔던 우리 반장님들, 늠름한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고인을 기렸다. 윤 소방사는 “뜨거운 화마가 삼키고 간 현장에서 결국 구조대원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반장님들의 모습을 보며 저희 모두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또 느꼈다”고 아파했다. 그러면서 “반장님들이 그러했듯이 내일부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달려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생명을 지켜낼 것”이라며 “남겨진 가족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떠나간 그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김 소방장의 20년 지기인 전남 광양소방서 소속 김동현 소방관은 ‘고인께 올리는 글’에서 “함께 소방관이란 꿈을 꾸며 어둡고 좁은 독서실에서 너와 붙어 지낸 시간이 더욱 생각난다”며 “술잔을 기울이며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자던 너의 말이 오늘 더욱더 기억나고 내 마음을 울리게 한다”고 울먹였다. 그는 “다음 생에는 희생하며 사는 인생보단 너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너의 행복,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소방교의 친구 송현수 씨는 “우리 둘이 태권도 사범 생활이 힘들어 매일 밤을 지새우며 서로 끌어안고 목 놓았던 시간을 기억하느냐”며 “앞으로 그런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당신이 없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시간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에게는 잊혀 과거로 남겠지만, 나는 끝까지 기억하고 추억하며 잊지 않고 살겠다. 자랑스러운 박수훈을 웃으며 보내겠다”고 명복을 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관섭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전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두 소방관을 화마 속에서 잃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공동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긴박하고 위험한 화재 현장에 뛰어든 고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영결사에서 “오늘 우리 경북도는 두 청춘을 떠나 보낸다. 구해내지 못해, 이렇게 떠나보낼 수 없어서 미안하다”며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현장의 근무 환경을 더욱 살피고, 부족하고 어려운 사항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결식 후 두 소방관은 문경 지역 화장장인 예송원에서 화장을 거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두 젊은 소방관은 영결식에 앞서 이들이 근무한 문경소방서에서 가족과 동료들의 배웅을 받았다. 두 구조대원은 지난달 31일 오후 7시 47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산업단지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에서 ‘하늘의 별’이 됐다. 혹시 남아 있을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찾기 위해 화염을 가르고 뛰어들었다가 갑자기 번진 화마를 끝내 피하지 못했다. 김 소방장은 5년여의 재직기간 동안 500여차례 현장에 출동했다. 박 소방교는 특전사 부사관 출신으로 2년간 400여차례 화재·구급 현장에서 인명 구조에 헌신했다.
  • ‘두 청년 영웅과 작별’…문경 화재 순직 소방관들 영결식

    ‘두 청년 영웅과 작별’…문경 화재 순직 소방관들 영결식

    경북 문경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두 청년 소방관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를 기리는 영결식이 3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경북도청장(葬)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에는 유족, 친지, 경북도지사, 소방청장, 도의원 등 1000여명이 참석해 두 청년의 넋을 추모한다. 영결식은 개식사, 고인에 대한 묵념과 약력 보고, 1계급 특진·훈장 추서, 윤석열 대통령 조전 낭독, 영결사, 조사, 고인께 올리는 글, 헌화와 분향, 조총 발사, 폐식사 순으로 계획됐다. 영결식 이후 두 순직 소방관의 유해는 문경 지역 화장장인 ‘예송원’으로 운구돼 화장을 거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영결식에 앞서 두 청년의 유해는 순직 직전까지 그들이 자랑스럽게 몸담았던 문경소방서로 이동해 동료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게 될 예정이다. 두 구조대원은 지난달 31일 오후 7시 47분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산업단지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숨을 거뒀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민간인의 말을 듣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 인명을 검색하던 중 급격히 번진 화마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 통일부 “조총련 무단 접촉” 영화인 무더기 조사

    통일부 “조총련 무단 접촉” 영화인 무더기 조사

    통일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인사들을 무단 접촉했다는 이유로 영화인을 비롯한 개인과 단체들을 조사하는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통일부는 관련 법 적용을 정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지만 해당 인사와 단체들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통일부는 영화 ‘차별’을 제작한 김지운 다큐멘터리 감독과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제작한 조은성 감독에게 지난달 조총련이 일본에서 운영하는 조선학교 인사들과 접촉하고도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두 영화는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 무상화 배제 등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다룬다. 조 감독은 통화에서 “10년 넘게 재일동포 다큐를 만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나는 이들이 모두 조총련계인지 알 수 없으며 (접촉 신고 대상이 아닌) 한국 국적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로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도 “조선학교 교원 등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지난달 발송됐다. 몽당연필은 지난 5월 사전 신고 없이 일본 교토 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며 경고 처분을 받았다.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갑작스럽게 방문했다고 사후 신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뒤 조선학교를 방문하는 행사를 취소했더니 2019년 행사에 대한 경위 설명을 요구했다”며 “민간 남북교류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총련 인사와 접촉하려면 통일부에 대북 접촉 계획을 사전에 신고해야 하며 예상치 못하게 접촉이 이뤄진 경우 사후에 신고해야 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두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에 따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장기간 사전 신고가 없던 개인과 단체 6곳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 통일부 ‘조총련계 무단 접촉’ 이유로 영화인·단체에 경위 요구

    통일부 ‘조총련계 무단 접촉’ 이유로 영화인·단체에 경위 요구

    통일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인사들을 무단 접촉했다는 이유로 영화인을 비롯한 개인과 단체들을 조사하는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통일부는 관련 법 적용을 정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했지만 해당 인사와 단체들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통일부는 영화 ‘차별’을 제작한 김지운 다큐멘터리 감독과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제작한 조은성 감독에게 지난달 조총련이 일본에서 운영하는 조선학교 인사들과 접촉하고도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두 영화는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 무상화 배제 등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다룬다. 조 감독은 통화에서 “10년 넘게 재일동포 다큐를 만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나는 이들이 모두 조총련계인지 알 수 없고 (접촉 신고 대상이 아닌) 한국 국적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로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도 “조선학교 교원 등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지난달 발송됐다. 몽당연필은 지난 5월 사전 신고 없이 일본 교토 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며 경고 처분을 받았다.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갑작스럽게 방문했다고 사후 신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뒤 조선학교를 방문하는 행사를 취소했더니 2019년 행사에 대한 경위 설명을 요구했다”며 “민간 남북교류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총련 인사와 접촉하려면 통일부에 대북 접촉계획을 사전에 신고해야 하고 예상치 못하게 접촉하게 된 경우 사후에 신고해야 한다. 통일부는 장기간 사전 신고가 없던 개인과 단체 6곳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두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에 따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면서 “과거 법 적용이 다소 느슨하게 운영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른 교류협력 질서와 체계를 확립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또 “교류협력을 원천적으로 막겠다거나 과태료를 엄정 부과하겠다는 게 아니라 법적인 신뢰를 높여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류협력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는 또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 등 엄중한 남북관계 상황과 북한이 우리 측의 방북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있던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과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차원에서 이산가족 문제라든지 필수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접촉을 관리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 통일부, 다큐멘터리 감독 등에 ‘조총련 무단접촉’ 경위 요구

    통일부, 다큐멘터리 감독 등에 ‘조총련 무단접촉’ 경위 요구

    영화인들이 재일 조선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인사를 무단 접촉했다는 이유로 통일부로부터 경위 설명을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과거 느슨하게 운영된 측면 개선” 12일 통일부에 따르면 재일동포 차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을 제작한 김지운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통일부 공문이 발송됐다. 조총련이 일본에서 운영하는 조선학교 인사들과 접촉하고도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공문이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만든 조은성 프로듀서와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몽당연필)에도 같은 내용의 공문이 발송됐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르면 조총련 인사와 접촉하려면 통일부에 대북 접촉계획을 사전 신고해야 하며, 예상치 못하게 접촉하게 된 경우 사후에 신고해야 한다.연합뉴스에 따르면 통일부 당국자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두 감독의 사전 접촉신고 미이행에 대한 지적이 제기돼 법령 위반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몽당연필은 웹사이트에 조선학교 방문·교류 사실이 공개돼 있는데, 역시 사전 접촉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이 인지돼 경위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과거 북한주민 접촉과 관련하여 교류협력법의 적용이 다소 느슨하게 운용된 측면이 있다”면서 “교류협력에 대한 법적 신뢰를 높여 국민들이 공감하는 지속 가능한 교류협력 여건을 마련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창작활동 위축”…학술적 접촉도 불허 반면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은 영화인들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일이라며 반발했다. 조은성 프로듀서는 연합뉴스에 “재일동포 관련 다큐멘터리를 10년 이상 여러 편 만들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통일부 조치는) 재일동포 관련 창작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며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몽당연필 관계자는 “7월에 미신고 접촉으로 서면경고를 받은 후 추가 일정을 아예 취소하자 통일부는 과거 행사를 갖고 경위를 설명하라고 다시 공문을 보냈다”며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법을 과도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교류협력 질서·체계를 확립한다는 기조로 남북교류협력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한편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령 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대북교류 단체와 인사들은 규정대로 접촉 신고서를 사전에 제출해도 통일부가 이를 수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를 아예 차단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통일부는 최근 위안부 연구를 위한 조총련 인사 접촉 신고 수리를 거부, 학술적 목적의 접촉도 불허한 상황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관계가 나쁘고, 북한이 지난 7월에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는 필수적인 사안이 아니라면 대북 접촉 신고를 제한적으로 수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접촉 신고 없이 조총련 행사에 참석한 윤미향 의원에 대해서도 신고 의무 위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 日 환멸·조선 흠모에 투항한 왜군 장수… 능숙한 조총·화포술로 전공[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日 환멸·조선 흠모에 투항한 왜군 장수… 능숙한 조총·화포술로 전공[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항왜(降倭)란 글자 그대로 투항한 왜인을 가리킨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순한 항왜는 1만명 이상으로 알려진다. 숫자의 근거가 된 것은 1597년 5월 18일자 선조실록의 ‘원수 권율이 적정을 자세히 보고하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부산포의 왜인 가운데 사정을 알 만한 사람을 찾아 은냥을 주고 정세를 은밀히 물었더니 ‘일본에서 꺼리는 것은 항복한 왜인이다. 이미 1만에 이르는데, 일본의 용병술을 모두 털어놓았을 것이다. 조선에서 산성을 쌓고 있는 것도 역시 이 왜인들의 지휘일 것’이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왜인은 ‘조선이 항왜를 발탁하기로 했다는 것은 이미 일본에서도 자세히 알고 있다. 조선이 후대하고 죽이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들뿐이겠는가. 우리를 인솔해 가라’고 했다는 내용이다.사야가(沙也加) 김충선(金忠善·1571~ 1642)은 항왜의 대표적 인물이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 제2진의 선봉장으로 부산포에 상륙했지만 싸움도 하기 전에 경상좌병사 박진에 귀순했다’고 후손들이 편찬한 ‘모하당문집’에 적혀 있다. 모하당(慕夏堂)은 김충선의 아호다. 조총과 화포를 능숙하게 다루고 화약제조법도 잘 알고 있었으니 사야가는 조선에서 쓰임새가 컸다. 선조는 그에게 김해 김씨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선조는 오늘날의 대구시 달성군 우록동 일대 땅도 김충선에게 하사했으니 후손들이 지금껏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오고 있다.지금 우록동에는 김충선을 기리는 녹동서원(鹿洞書院)과 그의 무덤이 있다. 서원 곁에는 2012년 세워진 달성 한일우호관이 여행객을 반긴다. 마을 이름은 우미산 아래 소 굴레 모양이라 우륵(牛勒)이라 했던 것을 김충선이 사슴과 벗하는 마을이라는 우록(友鹿)으로 고쳤다고 한다. 김충선은 ‘산중에 은거하는 사람은 대개 사슴을 벗하며 한가로움을 탐한다. 우록은 내가 평생을 산중에 숨어서 살고자 하는 뜻과 부합한다. 여기 한 칸 띠 집을 지어 자손에게 남기니 이곳이 바로 내가 원하는 땅’이라고 녹촌지(鹿村誌)에 적었다. 김충선과 관련된 기록을 모은 ‘모하당문집’은 6대손 김한조가 1798년 초간하고 그의 동생 김한보가 1842년 개수했다. 사야가의 투항 과정은 문집에 실려 있는 김충선의 큰아들 김경원이 1675년(숙종 원년) 썼다는 행록(行錄)에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다. ‘임진년 가토 기요마사가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정벌했다. 가토는 담용절륜하고 기개가 뛰어난 공을 우선봉장으로서 뽑았으니 불과 22세였다. 4월 13일 바다를 건너와 조선의 문물을 보자 일본과는 달리 전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람은 누구나 예법과 질서, 의관문물을 갖추고 있었는데 평소에 듣던 것과 같았다. 그날로 사야가는 한 차례 접전도 없이 본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강화서를 보낸 후 조선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모하당문집’은 사야가가 부산에 상륙한 이후 4월 17일 효유서(曉諭書)로 조선에 침략할 뜻이 없음을 밝혔고 4월 20일에는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강화서(講和書)를 보내 3000명의 군사와 귀순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개전 직후 밀양부사로 작원관 전투를 이끌었던 박진은 5월이 돼서야 경상좌도병마사에 올랐으니 ‘4월 20일’이나 ‘박진에게’라는 표현 가운데 하나는 착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3000’이라는 숫자가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서울대 사범대가 편찬한 중학교 도덕교과서(1998)는 ‘며칠 밤을 고민하던 끝에, 사야가는 자신을 따르는 군사 500여명을 이끌고 귀순해 왔다’고 적었다.김충선은 한일 두 나라 학자들이 모두 와카야마현 기슈의 사이가 집단(雜賀衆)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이가 집단은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철포(鐵砲), 곧 조총 용병 집단이었다고 한다. 사야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하고 보복을 피해 지금의 구마모토 지역인 히고로 도망한 집단의 일원이라 보는 것이다. 사이가 집단을 이끈 스즈키 마고이치는 조총의 연속발사 전법을 창안한 인물로 알려진다. 조선인들에게 ‘사이가’는 ‘사야가’에 가깝게 들렸고, 이름을 대신해 한자로 이렇게 썼다는 것이다. 김충선이 사이가 집단의 일원이었다면 히데요시 치하에서의 입지는 불안정했을 것이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는 1971년 ‘길을 걷다-한국기행’에서 우록리를 다뤘다. 작가는 ‘일본의 오랜 내전 규칙에 의하면 항복한 자는 어제까지 적군이었던 아군 편에서 어제까지의 우군을 향해 화살을 쏜다. 사야가도 그런 점에서 조금도 고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야가가 조선에 투항한 즉시 일본군을 상대로 전공을 세우고, 이후 조선 조정으로부터 관직과 이름을 하사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일본은 1449~1473년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다스렸다. 후계자가 없어 동생 요시미에게 쇼군의 자리를 물려받도록 했지만, 뜻밖에 이듬해 아들 요시히사가 태어난다. 한 발도 양보할 수 없었던 양쪽은 11년 동안 처절하게 싸우니 ‘오닌의 난’이다. 막부와 쇼군의 권위가 크게 추락하면서 군소 세력까지 저마다 주도권을 잡겠다고 나서 100년 이상 싸움이 그치지 않는 전국시대가 개막한다. 이렇게 되자 막부와 연합정권을 이뤘던 각 지역의 지배자 슈고 다이묘는 몰락하고 센가쿠 다이묘가 득세한다.1543년 포르투갈 선박이 가져온 조총의 대량 보급과 전술 개발로 전쟁의 양상을 바꾼 인물이 센고쿠 다이묘의 하나인 오다 노부나가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피살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잡고 1590년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일본인들에게 ‘지켜야 할 국가’란 존재하지 않았다. 항왜의 반대편에 침략자에게 협력한 순왜(順倭)가 있다. 조선 같은 신분사회에서 주인의 소유물인 노비계층에 국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군은 점령지에서 관직을 나눠 주는 등 이들을 회유하는 데 힘썼다. 물론 노비만 순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을 틈타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게 김충선은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던 것 같다. 통감부에 협력하며 경성신문을 발행한 아오야기 쓰나타로는 1910년 ‘세상에 배움이 얕은 역사가가 있어 사야가의 황당무계한 큰소리에 현혹돼 당당하게 기요마사 선봉의 부장이라고 하거나 혹은 일본무인이라고 결단하는 자에 이르러서는 그 난폭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남해안의 왜구와 조선인 사이 잡혼에서 태어난 혼혈아 가운데 일본의 사정에 조금 밝은 자가 거짓으로 일본무장이라 칭하여 조선군에 투항한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일본에서 사야가의 존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자리잡은 데는 시바 료타로의 한국 여행기에 이어 역사학자 기타지마 만지의 연구서를 바탕으로 NHK가 제작해 1992년 TV로 방영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또 하나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기타지마는 일본이 패전한 이유의 하나로 히데요시군의 도주와 조선으로의 투항을 들었다. 일본 국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출병을 강행한 데다 군역이 기한 없이 길어져 군대 전체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는데, 전황마저 악화되자 견디지 못한 병사들이 일본으로 도주하거나 조선에 투항하는 사태가 빚어졌고, 그렇게 조선에 넘어간 사람의 하나가 사야가였다는 것이다. 이제 우록동은 수학여행단을 비롯해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가 됐다. 김충선은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도 전공을 세워 ‘임갑병 3난의 공신’으로도 불린다. 이괄의 난이 일어난 1624년은 갑자년이다. 이때 김충선은 반란군의 부장(副將)인 항왜 서아지(徐牙之)를 벤 공으로 사패지를 받았지만, 사양하고 수어청의 둔전으로 삼게 했다. 이괄의 난 초기에는 항왜가 선두에서 싸운 반란군이 관군에 연승하며 도성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항왜와 항왜가 이국땅에서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당사자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었을 것이다. 사패지 반납의 이면에도 이런 복잡한 심경이 뒤얽히지 않았을까 싶다.
  • 옥탑방에서 감기약서 마약류 추출… 제조·판매·투약한 50대 3명 붙잡았다

    옥탑방에서 감기약서 마약류 추출… 제조·판매·투약한 50대 3명 붙잡았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감기약 등에서 마약류 물질을 추출해 필로폰으로 제조해 투약 판매한 50대 남성 3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옥탑방에서 필로폰 제조기구 등을 설치하고 일반 의약품과 화학물질을 혼합해 필로폰을 제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경찰청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7월까지 경기지역 한 3층 건물 옥탑방에서 마약류를 만들기 위한 시설을 차려놓고 10여 차례에 걸쳐 필로폰 약 20g을 제조해 판매 또는 투약한 혐의로 제조총책 A씨(56)와 B씨(51), B씨로 부터 필로폰을 교부받고 투약한 C씨(52) 등 3명을 검거해 제조책 2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은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에서 필로폰의 원료가 되는 성분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직접 필로폰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A씨로부터 90만원을 주고 필로폰 3g을 구매하기도 했으며, C씨는 B씨로부터 필로폰을 제공받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월 12일 필로폰을 투약했다며 마약수사대로 자수한 C씨를 상대로 B씨로 부터 필로폰을 교부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에 착수해 B씨를 붙잡았다. 또 필로폰 제조총책 A씨를 지난 8월 경기도의 한 주거지인 3층 옥탑방을 급습해 체포했다. 현장에서 냉동실에 보관중인 필로폰 2g, 사용한 주사기 등 20개, 일반의약품 2460점, 화학물질 6종 34통, 제조기구 9종 89개 등 다량을 압수했다. 제조총책 A씨는 해외사이트를 통해 필로폰 제조과정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른 기구 등을 구입 설치해 약 10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제조한 뒤 일부 판매했으며 나머지는 투약해 왔다고 진술했다. 특히 필로폰 제조를 위해 필요한 의약품을 사전에 약국에서 구입하고 제조시 심한 암모니아 냄새가 발생하는 문제로 옥탑방에서 야간에 제조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경찰청은 “현재 이들의 필로폰 제조기술이 초보단계로 보여지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체계화 고도화되면서 대량의 필로폰을 제조해 유통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럴 경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으나 다행히 조기에 검거됐다”면서 “국민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며 심각해지는 마약류 범죄 척결을 위해 대대적인 단속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 남궁민이 연기한 ‘연인’의 주인공 장현의 해피엔딩을 바라며 [한ZOOM]

    남궁민이 연기한 ‘연인’의 주인공 장현의 해피엔딩을 바라며 [한ZOOM]

    같은 남자가 봐도 정말 잘 생겼다. 트랜드에 맞는 외모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다. 잘생긴 외모를 배역에 녹이는 능력도 탁월하다. 2020년 SBS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는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이지만 속은 더없이 따뜻하고 인정 많은 야구단 단장 백승수 역할을 소화해 냈다. 2022년 SBS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는 엉뚱하고 유쾌한 변호사 천지훈 역할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남궁민 배우는 2023년 MBC드라마 ‘연인’에서 세속에 물든 것 같지만 정이 많고 따뜻한 역관 이장현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연인’의 주인공 이장현의 실존 인물 재미있는 사실은 남궁민 배우가 연기하는 이장현은 조선시대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다. 이장현의 모티브가 된 그 인물은 조선시대 역관이었던 드라마 상의 이름과도 비슷한 장현(張炫, 1613~1695) 이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장현이라는 사람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인물들이다.  역사에 기록된 장현은 조선시대 인조시대에서 숙종시대에 활동한 역관(譯官)이었다. 역관은 통역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역관들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과 상민의 중간계층인 중인(中人)에 속했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대신 이들은 외국을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밀무역을 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장현 역시 역관으로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주변국과 밀무역을 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이때 장현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따라 청나라 심양(瀋陽)으로 갔다. 그 곳에서 6년 동안 두 왕자를 모시면서 청나라 사정을 파악하고 청나라 주요 인물들과 관계를 만들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 볼모로 끌려가기는 했지만 세자 신분이었다. 따라서 인조가 물러나면 조선의 왕이 될 인물이었다. 그런데 장현은 소현세자보다 동생인 봉림대군과 더 가깝게 지냈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청나라를 본받아 조선을 강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소현세자보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후에 효종(孝宗)이 되는 봉림대군과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소현세자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1649년 동생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효종은 오랜 볼모생활에 대한 치욕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꿈꾸면서 북벌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군사제도를 재편하고 조총과 화포와 같은 신무기를 도입했다. 이때 효종의 뜻을 따라 효종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장현이었다.  북벌정책을 위해서는 무기와 군대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 때문에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조선 최고의 부자 중에 한 명이었던 장현은 효종에게 갔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북벌정책에 써달라고 효종을 설득했다.  한편 청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다시 군사력을 길러 청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에 화포와 같은 무기제조를 금지하고 있었다. 장현은 목숨을 걸고 청나라로 가서 몰래 화포를 밀수하는 등 효종의 북벌정책을 도왔다. 비록 북벌정책은 효종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장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현과 장희빈의 인연 시간이 흘러 효종의 손자 숙종(肅宗)이 왕위에 올랐다. 숙종은 조선시대 왕 중에서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왕이다. 드라마에서 숙종은 인현왕후(仁顯王后), 장희빈(張禧嬪), 그리고 영조(英祖)의 어머니가 되는 최숙빈(崔淑嬪)을 비롯한 많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사랑꾼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숙종은 이 여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냉정한 정치인이자 야심가였다. 숙종의 여인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여인은 장희빈이었다. 그리고 장희빈은 장현의 조카였다. 장현은 장희빈을 궁녀로 만들었다. 장희빈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미모가 언급될 정도로 미인이었으니 금방 숙종의 눈에 들었다. 장희빈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궁녀에서 왕비까지 올라간 유일한 여인이었다.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장희빈이 왕비에서 희빈으로 강등되고, 남인세력이 몰락했다. 반면 서인세력이 다시 집권하고 궁궐에서 쫓겨났던 인현왕후가 복귀했다. 이때 장현은 장희빈의 친족이라는 죄명으로 유배되었다. 유배 이후 장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여러가지 기록을 통해 유배지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다리며 실존인물 장현은 무역을 통해 엄청난 재물을 모은 부자였고, 효종 때는 북벌정책을 돕기 위해 목숨과 재산을 건 애국자이기도 했다. 또한 숙종 때는 조카 장희빈을 통해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실존인물 장현을 모티브로 창조된 이장현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자못 궁금하다. 드라마의 시작부분에 이장현이 조선 관군과 싸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이장현의 최후가 해피엔딩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남궁민 배우가 맡은 역할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 진주에 오면 생각나는 이름, 천하무쌍 황진 장군과 논개 [한ZOOM]

    진주에 오면 생각나는 이름, 천하무쌍 황진 장군과 논개 [한ZOOM]

    경남 진주는 곡선으로 흐르는 남강(南江)이 만든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도시다. 경남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부경남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진주의 대표적인 명소는 진주성이다. 남강을 앞에 두고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성되어 있는 천혜의 요지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도시개발을 이유로 외성을 허물어 버려 지금은 내성만 남아 있다. 진주성에 들어가면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차 진주성 전투인 ‘진주대첩’은 권율의 ‘행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주대첩의 승리로 조선은 왜군으로부터 전라도를 지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의병들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할 수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도 육지 본영을 걱정하지 않고 해전(海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시민 동상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진주성 성벽에 올라서 남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 올라설 때면 항상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2차 진주성 전투를 이끌다가 전사한 천하무쌍(天下無雙) 황진(黃進,1550~1593) 장군이다.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 육지에는 황진 장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군이었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실질적인 총대장으로 진주성을 방어했으나 왜군 시신 사이에 숨어 있던 적병의 조총에 전사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황진 장군은 우리에게는 ‘황희 정승’으로 유명한 명재상 황희(黃喜, 1362~1452)의 5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무예가 뛰어났으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 1590년 5촌당숙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호위군관 자격으로 조선통신사 일행에 합류했다. 이때 황진 장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의도를 간파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황진 장군은 지금의 화순인 동복현감으로 있으면서 무예를 익히고 군사들을 철저히 훈련시키면서 전쟁에 대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한양을 점령했다. 일본군은 조선을 명나라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량보급이 필요했다. 하지만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로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수군 때문에 해상보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전라도 확보를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전라도의 중심도시 전주 점령을 명령했다. 고바야카와는 군대를 이끌고 금산으로 내려갔다.  일본군이 금산에서 전주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웅치’와 ‘이치’ 두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조선군은 일본군이 100년 가까운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공성전(攻城戰)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산악지형을 이용하기 위해 웅치와 이치에 군대를 나누어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 고바야카와는 군대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안코쿠지’에게 제1대를 주어 웅치로 향하게 했고, 자신은 제2대를 이끌고 이치로 향했다. 조선군은 웅치에 3겹의 방어진을 만들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첫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시작된 총공격에 방어진이 무너졌다. 일본군보다 한참 적은 병력에 화살까지 떨어져 돌을 던지면서 싸웠지만 결국 방어진이 무너졌다. 남은 병력은 진주성으로 합류했다.  한편 황진 장군은 일본군이 남원을 통해 전주로 공격해올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남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웅치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웅치로 돌아왔지만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다. 황진 장군은 웅치전투에서 살아남은 병력과 함께 안덕원에 진을 치고 있던 안코쿠지 군대를 기습했다. 일본군은 소양평으로 도주했지만 황진 장군은 이들을 끝까지 추격해 섬멸한 후 이치로 향했다.죽주산성을 탈환한 황진 장군  며칠 후 고바야카와의 제2대가 이치를 공격했다. 황진 장군이 이끈 조선군은 가파른 고객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화승총(조총) 공격을 막으며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하루 종일 이어진 치열한 전투는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황진 장군에게 패배한 일본군은 병력손실로 전주성을 공격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선군의 협공으로 몰살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전주성을 포기하고 금산으로 철수했다.  황진 장군은 다음 해인 1593년 교통의 요지인 안성에 있는 죽주산성(竹州山城)을 탈환했다. 죽주산성은 고려시대 몽골도 점령하지 못한 성인데 황진 장군은 치밀한 전략으로 이 성을 되찾은 것이었다. 황진 장군의 죽주산성 탈환으로 일본군은 한양에 고립되어 버렸다. 결국 일본은 명나라에 휴전협상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와 휴전협상을 진행하던 일본군은 부산으로 철수했다. 조선군은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명나라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은 일본군 공격을 금지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일본군의 명나라 침입을 막아내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있는 모든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1차 진주성 전투의 설욕을 갚고 앞으로 전라도를 확보하기 위해 진주성을 공격하라. 만약 진주성을 점령하지 못한다면 모든 장수들과 인질로 잡혀 있는 가족들의 목을 치고 모든 영지를 몰수할 것이다’ 명나라 심유경(沈惟敬)은 일본군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진주성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시니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며, 차라리 진주성을 비워 두면 진주성을 잠시만 점령했다가 물러나겠다고 전했다.  황진 장군과 김천일, 최경회와 같은 의병장들은 패배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진주성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전라도를 지키기 위해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1593년 6월 22일 일본군이 진주성에 포위했다. 진주성의 3천명 조선군은 10만명의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일본군은 하루 이틀 안에 진주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력부대가 모인 일본군은 수적으로도 우세했고 진주성에 모인 일본군 장수들은 전국시대 수많은 전투를 제패한 장본인들이었다. 그러나 총사령관인 황진 장군의 진주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전투가 쉽게 풀리지 않아 진주성 해자를 메우고, 귀갑차를 동원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지만 조선군은 쉽게 밀리지 않았다.  전투가 무르익을 무렵 황진 장군은 야간에 진주성 성벽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때 시신 사이에 숨어 있던 일본군 병사가 조총을 쏘았고, 총알을 이마를 맞은 황진 장군은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황진 장군이 전사한 다음 날 진주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진주성에 들어간 일본군은 조선군과 백성들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살육전을 벌였다.  진주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황진 장군이 살아 계셨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도 ‘황진 장군이 전사해 나랏일이 어긋나겠구나’라며 탄식했다.  논개(論介)와 의암(義巖)’ 진주성이 뚫린 후 조선군 장수들은 촉석루에 올라 북쪽을 향해 임금에게 절을 한 후 일본군 병사들의 목을 붙잡고 남강으로 뛰어들면서 죽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촉석루 아래에는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바위가 하나 있다. 진주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승리의 연회를 벌였다. 술기운이 무르익어 갈 무렵 한 기생이 이 바위로 일본군 장수를 유인한 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버렸다. 그녀는 기생으로 알려진 ‘논개’다.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 논개의 이야기는 입으로만 전해지다가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논개를 기생으로 소개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논개를 기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논개는 주달문(朱達文)의 딸로 태어난 양반 가문의 규수였고, 의병을 일으킨 최경회(崔慶會)의 아내였다. 논개는 진주성에서 최경회를 보필했고, 2차 진주성 전투로 최경회가 순국하자 기생으로 분장해 남강 의암바위 위에서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안고 투신해 남편의 복수를 한 것이었다. 진주성과 촉석루를 떠나며… 촉석루(矗石樓)는 2012년 미국 CNN이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으로 선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이 촉석루 아래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뿌려진 곳이기도 하다.  진주성을 떠나며 황진 장군과 논개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랬듯이 만약 황진 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제라도 전쟁 초기에 전사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황진 장군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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