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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총련계 탈북자 3명 日정부서 재입국 지원”

    (도쿄 교도 연합) 일본 정부가 최소한 3명의 조총련계 탈북자에 대해 지난 1996년 이후 일본 재입국을 직접 지원해왔다고 일본 정부 소식통이 4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일본 정부의 입국지원을 받은 탈북자의 신상에 대해 1명은 재일 조총련계 출신으로 북한으로 건너간 뒤 관료를 지낸 사람으로,99년 비밀리에 일본에 재입국했다고 전했다.
  • 재일동포 홍여표씨의 감회 “”젊은이들 응원 앞장 60만 동포 하나됐다””

    (오사카 황성기특파원) “우리 선수들이 동포들에게 희망과 민족적 자부심을 안겨줬어요.사는 보람도 느끼게 해줬고,한마디로 쾌거였어요.” 60만 재일 동포들의 원점으로 일컬어지는 오사카(大阪) 이쿠노(生野)구 ‘코리아타운’에서 대를 물려 살고 있는 홍여표(洪呂杓·72)씨는 요즘 힘이 부쩍 난다.한국팀이 결승에는 나가지 못했어도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냐고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고국에서 날아 온 잇단 낭보로 생겨난 활기.그리고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조선인의 약칭)’로서 살아 온 복잡다단한 감회가 뒤엉킨 그는 가게 바깥을 물끄러미 내다보면서 말을 잇는다. “동포들은 일정한 일자리가 없었어요.아버지 대는 물론이고 우리 대도 그랬지.”그래서 그가 이곳에서 일군 것이 ‘덕산상점’이다.어머니의 행상으로 시작한 가게는 한쪽에서 파전,떡과 음식 재료를 팔고 한쪽의 공장에서는 냉면,떡국도 만들어낸다. 귀화를 하지 않으면 아직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어려운 일본 사회에서 홍씨의 5남 1녀 사위,며느리까지 일가가 이곳에서 일하며‘밥먹고’살아간다. “귀화,그것 하려고 했으면 진작 했지.그런 것 안해요.자식들도.그렇긴 해도 귀화는 역시 3,4세로 내려가면서 심각한 문제예요.” ‘코리아 타운’이란 이름은 8년 전 생겨났다.이전까지는 ‘조선시장’으로 불렸다.1920년대 오사카 히라노(平野) 운하 건설 때 제주도를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서 인부로 건너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정착하면서 조선인 마을을 형성했다.그의 아버지도 제주도에서 건너왔다.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어머니 맛을 전해주는 일본유일의 ‘조선 시장’이었다. “조선시장에서 돈을 벌어 도쿄,홋카이도로 이사가 성공을 하면 그곳에서 머물러 살고 망하면 다시 이곳으로 돌와왔다.”는 그의 설명대로 동포들의 상당수가 이곳을 발판으로 삼아 일본 각지로 퍼져나갔다. “해방 직후를 돌이켜보면 명태나 돼지머리,창자 같은 재료는 이곳 아니면 구하기 힘들어서 명절 때만 되면 조선사람들로 북적거렸어요.지금이야 일본 어딜 가나 슈퍼에서도 김치를 사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역설적이만 동포들 지위가 개선되고 한국 음식 재료를 어디서든 살 수 있게 되면서 조선시장은 활기를 잃어갔다.그래서 추진된 것이 코리아타운.“민족적인 특성을 살리지 않으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이곳 사람들이 8년 전 코리아타운을 설립했다. 조선시장 150여개 점포 중 3분의 2를 차지했던 동포 점포가 코리아타운으로 명칭이 바뀐 뒤에는 5분의 4로 늘었다. “다행히 일본 언론에 보도가 많이 되면서 일본 학생들도 이곳으로 견학을 올 정도로 활기를 찾아가고 있어요.” 인터뷰 중에도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홍씨 가게를 견학하고 있었다. 김치 얘기만 해도 고개를 젓던 일본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일본 젊은이들이 김치를 자기나라 음식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유행인 것을 보고 “시대가 변하긴 변했다.”고 생각한다.그는 “일본학교 급식에 떡국이나 떡볶이가 들어갈 정도가 된 지금이야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런 것들이 우리 민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부인 강안자(康安子·67)씨가 불쑥 옆에서 거든다.“그런데 며느리건 손자건 명태를 줘도 우리 요리를 썩 잘 하지 못해요.” 그는 “동포가 민족 넋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한국팀이 너무나 잘 싸워 동포 젊은이들에게 민족적 자각을 일깨워준 것은 정말 다행”이라며 “민단이건 조총련이건 할 것 없이 이번에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한국을 응원했다.”고 코리아타운의 ‘공기’를 전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정말 자랑스럽다.”는 그는 29일 밤 응원전이 펼쳐질 미유키(御幸)공원에서 동포들과 어깨동무하고 다시 한번 코리아타운의 하늘에 승리의 만세를 외치고 싶다. marry01@
  • [일본에선] 대한매일 객원기자 방담/“한·일 ‘월드컵 우정’ 이어나가야”

    개막 전부터 일본에서 월드컵을 한달가량 취재해 온 대한매일 객원기자 3명은 27일 대한매일 도쿄(東京)지국에서 방담을 갖고 “모처럼 생겨난 한·일 우호 무드를 차근차근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인하(辛仁夏·재일 한국인 2세),김현(金賢·재일 조선인 2세),간노 도모코(菅野朋子·일본인) 등 객원기자들은 “일본측의 대회 운영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공동개최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양국의 풀뿌리 교류를 보다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 동포들,특히 민단 사람들 사이에는 대회 전만 하더라도 한국전보다는 일본전을 보겠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동포들이 3,4세로 세대교체되어 가면서 의식이 바뀌는 경향이 눈에 띄었지만 경기가 거듭될수록 고국에 대한 관심은 커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동포들인데요.조총련 여성동맹 아줌마들에게 역시 안정환이 최고 인기였어요.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안정환이 나오면 ‘안동무’하며 외치곤 했습니다.이 아줌마들은 안정환의 부인이나 나이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어요. ◇신인하= 응원전이 열렸던 요코하마 민단 지부에서도 안정환의 인기는 최고였어요. ◇간노 도모코= 도쿄 코리아타운인 신주쿠(新宿) 쇼쿠안도리에서의 응원 열기는 대형 주차장이 딸린 한 음식점에서 불이 붙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장소를 제공하면서 수백명이 모이고 이것이 ‘입 선전’이 되어 스페인전 때는 수천명이 모였습니다.이날에는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일본 경찰이 헬리콥터까지 상공에 띄웠어요. ◇김= 집에서 TV 중계를 시청하는 동포가 많았다가 뉴스에서 “코리아타운의 한국응원열기가 높았다.”는 보도가 나가자 코리아타운에 나가 함께 응원하는 동포들이 늘었어요. ◇신= 응원열기도 뜨거웠지만 한국과 일본은 분명 달랐습니다.한국과 비교해 일본은 경기장 밖에서는 조용했어요. ◇김= 그렇습니다.결정적인 차이는 일본에서는 거리에 대형화면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인데,만일 도쿄의 도심인 긴자(銀座)나 신주쿠,시부야(澁谷) 거리에 서울에서와 같은 대형화면이 설치됐다면아마 좀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결국 경비당국이 안전상의 문제를 들어 허가하지 않았지요.세계에서 가장 여유가 많은 나라인데도 여유가 없는 게 아닌가 합니다. ◇간노= 삿포로(札幌)에서 대형화면을 설치했지만 화단이 망가진다거나 하는 혼란이 생겨서 중지된 일은 있었습니다. ◇신= 외국인들이 볼 때는 이상했지만 각국 팀을 골고루 응원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일본의 성숙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 뭐니뭐니 해도 한국 축구와 붉은악마의 응원은 일본에서 최대의 화제였습니다.축구로 본다면 최근까지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팀이었습니다.아시아 챔피언이 된 이후 관심이 유럽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TV를 통해 한국전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국은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봅니다.또한 거리의 붉은 물결은 “대단하지만 무섭다.”고 말하는 일본인이 많았습니다.무서우니까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많은 일본인은 한국 사정을 잘 모릅니다.안정환의 스케이트퍼포먼스를 단순히 미국에 실례되는 행동으로 받아들인다든지 ‘1966 어게인’을 보면서도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도 잘 모르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간노= 문외한의 눈에도 한·일 축구는 달랐습니다.일본인이 작게 보였어요.한국의 스피드만 보더라도 기백이 달랐어요.일본이 16강전인 터키전에서 전력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한국은 이탈리아전,스페인전에서 전력을 다했어요. 700만명에 육박하는 거리의 붉은악마들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하나에 열광하는 라틴 민족 같은 기질을 느꼈습니다.저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은 역시 뭔가 약하다는 느낌입니다. ◇신= 붉은 응원 물결을 보면서 재일 한국인 2세인 저로서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김= 대회기간 중 한국이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강팀을 잇달아 연파하면서 스타 부재의 월드컵이 된 느낌입니다. ◇신= 그래도 역시 베컴의 인기는 엄청났지요. ◇간노= 20∼30대 여성에게 특히 인기였는데 단순히 “멋있다,섹시하다.”보다는 가족을 소중히 하는 점이 일본인에게 어필한 것 같아요. ◇김= 한국 선수로는 단연 안정환이 인기였죠.일본 선수로는 2골을 넣은 이나모토와 배트맨 마스크를 유행시킨 미야모토 정도일까요. 대회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일본은 월드컵에서 부분적으로 성공했어요.훌리건 소동도 없었고 16강에 들었으며 경제효과도 어느 정도 있었구요.그러나 정부가 발벗고 나선 한국과는 달리 이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제각각의 효과에서 그쳤는데 이 점이 아쉽습니다. ◇신= 뭐랄까 일본조직위원회(JAWOC)나 자치단체가 일본인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김= 경제효과,경제효과 하지만 일본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간 일본 대표 유니폼은 실제로 중국제로 중국의 경제효과도 꽤 컸다고 할 수 있겠어요. ◇간노= 한·일관계인데요,제가 코리아타운의 취재 때 느낀 점은 역시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일체감을 느끼면서 한국을 응원한 경험이 소중하다고 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젊은이들의 10년 후,20년 후를 생각하면 두 나라 관계는 괜찮겠지요. ◇신= 앞으로가 문제입니다.풀뿌리에서부터 작은 연결고리가 생겨난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피부색과 모습이 같지만 너무나 다른 한·일 국민들이 서브 문화에서부터 이해를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김= 좀 다른 얘기이지만 축구 한·일전은 오히려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 2차례밖에 없었지만 앞으로 한해 1∼2회로 늘려 직접 라이벌을 경험하고 경쟁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좋겠습니다. 정리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현장칼럼/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눈물

    (오사카 황성기특파원) 코가 시큰했다.끝내 눈물이 났다.22일 해질 무렵 오사카(大阪) ‘코리아타운’에 있던 기자가 한국의 역사적인 월드컵 4강 진출에 감격해서만은 아니었다. 멍하니 TV를 응시하며 눈시울을 훔치는 소녀에게서,꼬마건 할아버지건 또렷하지 못한 발음으로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한민국”에서 민단·조총련 할 것 없이 서로 얼싸안고 합창하는 ‘만세’에서,일본 땅에서 응어리졌던 그들의 한이 잠시나마 풀리는 감동을 체험해서였다. “조선시장(코리아타운)은 60만 동포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재일 한국인 2세 홍영표(洪永杓·68)씨.일본에서도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이쿠노(生野)구쓰루하시(鶴橋)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그는 “우리 민족의 혼을 과시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마에 기무치 다베타카(너 김치 먹었냐).”라며 코를 막던 일본인들의 차별을 겪었던 그는 이날의 승리가 “생애 최대의 선물”이라고 말했다.1920년대 쓰루하시 근처의 히라노(平野)운하 건설 때 제주도에서 건너온 아버지를 비롯해 조선인들이 모이면서 이곳 조선마을을 형성하고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과거 우리가 겪은 차별의 역사를 자식들에게 빠짐없이 가르쳤다.”는 그는 이날의 감격이 “정말이지 동포들에게 큰 힘을 안겨줬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누가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코리아타운에는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동포들이 오후 2시쯤부터 모여들었다.수백명 동포들이 한꺼번에 모일 장소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거리 이곳저곳에 TV가 설치됐다. 일본-터키전이 열린 지난 18일 도쿄의 요요기(代代木) 국립경기장을 빌려 대형 스크린을 보며 ‘닛폰,닛폰’을 외치던 5만명의 일본 응원단.그리고 이날 20평 남짓한 비좁은 주차장 한편에 신문지를 깔고 옹기종기 소형 TV 앞에 모여 앉아 태극기를 흔드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고단함이 절절히 느껴졌다. marry01@
  • [일본에선] “한·일 벽 허무는 계기로”

    ■재일동포들의 희망·포부 (도쿄 김현 객원기자) 재일한국민단중앙본부 월드컵 후원회 사무국장인 조정방(32) 차장은 요즘 재일동포의 관전투어를 인솔해 몇 차례 한국을 다녀왔다.조 차장은 이번 여행을 통해 “한국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민이 월드컵 개최를 맞아 벌인 ‘문화시민운동’은 일본 언론들도 보도한 바있다.이번 월드컵 기간중 한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내기 좋은 한국’이란 인상을 강하게 받고 돌아왔다.물론 한국도 예전부터 친절한 나라였다.이를 알고 있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그러나 이번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이 달랐을 것”이라고 조 차장은 지적했다. -용기 있는 개혁/무너진 벽= “‘한국을 훨씬 좋게 만들자’라는 나라 전체의 목적의식이 사회 곳곳에서 배어나오고 있다.단점이나 부족한 점을 직시,이를 고치는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다.한국의 4강 진출로 한국 사회는 한 단계 성숙될 수 있게 됐다.이런 힘을 재일동포 사회에도 끌어들이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다만 이미 재일동포 사회도 3,4세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모국의 힘이 전해져 들어오는 것이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도쿄의 재일 조선인 3세 김모(30·회사원)씨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조총련계의 조선학교를 다녔다.일본 이름을 쓴 적이 한번도 없고 한반도가 조국이라는 점을 의심한 적도 없다.그런데도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역시 이방인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미묘한 감각의 차이나 말이 서투른 것 등 작은 차이들이 자신과 조국을 떼어놓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같은 벽은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와르르 무너졌다.스탠드에서 ‘AGAIN 1966’이란 카드섹션을 보았다.북한이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 이긴 사실은 조선학교 어린이들의 자랑이었다.한국인들도 똑같이 자긍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자 생활감각의 작은 차이 같은 것은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더구나 눈앞에서 ‘1966년의 승리’가 재현되지 않는가.“그감동과 자긍심이 나와 조국의 유대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교류에 여유/관심을 하나로 만드는 계기= 무너져야 할 벽은 일본인들과의 사이에도 있다. 97년부터 요코하마의 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권학준(31)씨는 “유학 초기 일본인학생 누구도 이야기를 걸어오지 않아 스스로 국제교류회를 만들어 이야기할 기회를 찾아야 했다.일본은 아직도 ‘구미(歐美)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어 이웃나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모두 응원했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당연히 있었다.내 나라라는 점도 있었다.하지만 일본인과의 지속적이고 강한 교류를 위해서는 정신적인 여유가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 3월 고베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의 한 IT기업에 취직한 이중권(29)씨 생각도 비슷하다.그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한국이 월드컵에서 약진한 것은 일본인들로부터 큰 주목을 끌고 있다.이 기회에 작은 것에서부터 이해를 높여 남은 편견을 없애나가는 것이 좋다.”고 그는 말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논픽션 작가 유재순(柳在順)씨는 “8강 진출에 실패한 일본인의 눈에 한국의 약진은 어떻게 비칠 것인가.일본의 약진을 보았을 때 한국인의 기분이 어땠는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은 비교적 한국에 대해 마음을 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일부 남아 있다.한국과 일본의 경쟁의식이 스포츠 같은 분야에만 머물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한국 축구가 멋진 약진을 이뤄낸 지금이야말로 이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kmhy@d9.dion.ne.jp ■日신문 ‘한국 4강' 대대적 보도 (오사카 황성기특파원)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4강 진출을 대부분 1면 머리기사로 전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한국 4강,아시아 처음’이라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30년의 제1회 월드컵 때 미국의 4강진출을 제외하고 남미와 유럽이 독점해 온 4강의 한 자리를 한국이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1면을 비롯,5개면에 걸쳐 한국의 승전보를 전한 아사히는 “지난 대회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진출시켰던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새롭게 탄생시켰다.”면서 “감독을 믿고 자신의 힘을 갈고 닦아 온 선수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덧붙였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빨간 호랑이,기적이라 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통해 “스페인은 기술력을 살린 공격으로 득점 기회가 많았으나 라울의 결장으로 골 결정력이 부족했다.”면서 “반면 한국은 후반전 중반부터 스태미너가 스페인을 앞지르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다.”고 체력싸움에서 승리한 한국팀을 높게 평가했다. 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를 통해 “아시아의 꿈이 광주에서 이뤄졌다.”고 한국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전하면서 일본 곳곳에서 펼쳐진 동포들의 열띤 응원모습도 상세히 보도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공을 잘 다루는 젊은 선수를 많이 뽑아 투입한 것이 주효했으며 롱 패스로 포워드가 골을 넣은 과거의 한국 축구와는 달리 스스로가 공을 드리볼해 상대편 수비수와 정면 승부를 거는 장면이 많았다.”면서 “무엇보다 눈에띄는 것은 정신력과 전술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전 한국 축구를 ‘육탄적 공격,신흥공업국의 이미지’라며 깎아내렸던 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는 이날 스포츠 호치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한국의 첨단적인 축구를 깨닫지 못하고 실례의 말을 썼다.”고 사과했다.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축구 애호가인 그는 이날 ‘나는 잘못했었다’는 칼럼에서 “한국은 스페인을 상대로 믿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수적 우위를 만들었다.”면서 “한국의 전술이나 테크닉은 완벽에 가까웠다.”고 극찬했다.
  • [일본에서] 60만동포 “요코하마서 보자”

    [오사카 황성기특파원 도쿄 김 현·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요코하마 신인하 객원기자] “우리는 이제 4강 민족입니다.” 감격은 바다 건너 일본 땅 오사카(大阪)나 도쿄(東京),요코하마(橫浜) 어디건 하나였다.60만 재일 동포들이 생애 최고의 기분을 만끽한 120분,그리고 페널티킥이었다. ●오사카= “지금 기분 최곱니다.” 오사카에서 재일 동포가 가장 많이 몰려사는 이쿠노(生野)구 쓰루하시(鶴橋)코리아타운에서 경기를 지켜 본 신명희(15·조총련 조선고급학교 1학년)양은 흥분으로 얼룩진 붉은 얼굴 그대로 “안정환 최고”를 외쳤다. 그녀는 “120분간 다소 불안했지만 이겨서 너무 좋아요.”라면서 “민족이 이기는 데 남조선이건 조국(북한)이건 없습니다.”라고 친구 3명과 ‘대∼한민국’을 외쳤다. 코리아 타운 곳곳에 설치된 대형 TV 앞에서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던 동포들은 4강 진출이 결정되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 이날 코리아 타운에서 응원을 주도한 오성기(吳誠起·40·재일 한국인 2세)씨는 “꿈만같다.”면서 “이제 우승으로 가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재일 동포들과 섞여 코리아 타운에서 한국을 응원한 일본인 구로사와 사토시(黑澤聰·29·회사원)는 “일·한 공동개최의 의미를 비로소 느꼈다.”면서 “아시아의 힘을 세계에 보여줘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다. 곳곳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동포들은 일제히 코리아 타운의 거리로 나와 만세 삼창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코리아 타운 상점가 회장인 문우평(文友平·62·재일 조선인 2세)씨는 “60만 동포들에게 힘과 긍지와 희망을 안겨준 생애 최고의 날”이라면서 “코리아 민족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 지를 일본인들에게 단단히 보여줬다.”고 기뻐했다. 코리아 타운은 23일 ‘일한 월드컵 기념 행사’를 갖고 상점들이 이날 하루동안‘반액 세일’을 실시하기로 했다. 오사카 총영사관에도 600여명의 재일 동포와 유학생이 몰려 김병수씨(52) 부부의 트럼펫 반주에 맞추어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며 한덩어리가 됐다.유학생 정재호씨(25)씨는 “광주에 없었던 게 너무 분하다.”면서 “한국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측은 승리가 확정된 직후 건물에 ‘축 한국 축구 4강진출’플래카드를 내걸었다.유병우(兪炳宇) 총영사는 “승패에 관계없이 이번 월드컵으로 동포들의 긍지가 더욱 높아져 그 의미가 값지다.”고 말했다. ●도쿄= 도쿄 신주쿠(新宿)의 쇼쿠안도리는 온통 빨간 물결이었다.이곳에 코리아 타운이 형성된 이후 사상 최대의 재일 동포,유학생,주재원이 몰려 승리를 기뻐하며 밤 늦게까지 결승 진출을 염원했다.눈어림으로도 대략 수천명은 족히 되는 동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승리를 축하하고 또 축하했다. 한 유학생은 상의를 벗고 승리를 축하했으며 한 여학생은 즉석 춤을 춰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또 쇼쿠안도리 빌딩의 한국인 사무실에서는 창문에서 화장지를 던지거나 맥주를 뿌리기도 했다. 이들은 경기가 끝나자 쇼쿠안도리의 6차선 도로로 나가 한때 차량통행이 마비됐으며 일본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헬리콥터까지 띄어 경계에 나섰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남금실(28·여·회사원·재일 동포 3세)씨는 “이제 결승 진출을 믿으며 요코하마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곽석진(25·요리사)씨는 “스페인에 이기는 순간 코리아는 8강 민족에서 4강 민족으로 뛰어 올랐다.”면서 “이제 우승을 노리자.”고 흥분했다. 승리에 취한 동포들은 근처 가부키쵸와 신주쿠역까지 진출해 ‘대한민국’을 외치고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으며 일부 일본인들이 함께 이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쿠나다 히토미(28·여·회사원)는 “간코구 스고이(한국,대단해요).”라면서 “한국팀이 요코하마에 올 날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다른 일본인은 “한국팀은 정신력에서 일본과 다르다.”고 칭찬했다. ●요코하마= 요코하마 시내 가나가와(神奈川)현 민단 지부에도 100여명의 응원단이 모여 TV 중계를 지켜보며 감격스런 4강 진출에 축제 분위기였다. 손기정씨의 아들 손정인(孫正寅·59·요코하마 민단 지부 사무부장)씨는 “한국이 이긴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면서 “이날 승리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marry01@
  • 현장칼럼/ 북한에 이은 쾌거

    [도쿄 김현 객원기자] 지난 2월 유럽으로 연수갔던 재일 조선인 3세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월드컵 특집을 꾸민 잡지에 1966년 잉글랜드대회 때 이탈리아가 북한에 무릎 꿇은 기록이 또렷이 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아시아 첫 8강 진출을 이뤘지만 당시 스타 플레이어가 유럽 명문 구단에 스카우트되어 명성을 떨친 것도 아니다.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사랑하는 민족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을 ‘보통이 아닌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나 북한 국적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에게 1966년의 영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재산이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동포의 아들 딸들은 우리말을 가르치는 ‘민족학교’를 다니며 민족을 가르치는 다채로운 ‘소재’를 배우고 있다.그 소재에는 1966년의 영광도 들어 있다. ‘민족학교’ 어린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그 얘기를 수십번이나 듣고는 어린 가슴을 두근거렸다.대학교까지 민족학교를 다닌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요수십년 북한이 놓인 복잡한 정세 때문에 재일 조선인은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일본이나 국제여론의 바람도 거세다.그렇지만 그럴 때 1966년의 영광은 결코 빛 바래지 않고 언제라도 재일 조선인에게 빛나는 무엇인가를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기사를 찾아 낸 친구는 “무심결에 가슴을 폈다.”고 한다.다른 친구는 18일의 한국-이탈리아전에서 ‘어게인(again) 1966’의 플래카드를 보고 “자랑을 느꼈다.”고 했다. 지금도 1966년의 영광은 민족 공동의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번의 승리로 그것은 완전한 것이 됐다.언젠가 조국이 통일된다면 우리 민족의 월드컵 첫 8강 진입은 1966년으로 역사 교과서에 쓰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대표에는 영광의 ‘갱신’을 바라마지 않는다.4강,그리고 우승을 향해 필승 코리아. kmhy@d9.dion.ne.jp
  • [일본에선] “한민족 기상 높였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김 현·간노 도모코 객원기자·요코하마 신인하 객원기자] “가자,결승도 두렵지 않다.”“동포들 체면을 세웠다.” 11명의 코리아 전사,4700만 국민,바다건너 일본 동포 60만명이 함께한 120분의 사투(死鬪)였다. 도쿄의 ‘코리아 타운’ 신주쿠(新宿) 쇼쿠안도리 하늘로 동포들의 환희와 열광이 날아올랐다.‘대∼한민국,대∼한민국’.한국은 웃고 일본은 울어버린 18일 밤이었다. ●코리아 타운= 경기가 끝나자 쇼쿠안도리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동포,유학생 3000여명은 “해냈다.”며 일제히 바깥으로 나서 순식간에 거리는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재일 한국인 3세 강순화(회사원·여)씨는 “진짜 히딩크 축구는 최고”라면서 “이탈리아를 꺾은 만큼 세계 일류임이 증명됐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씨의 친구로 한국을 응원한 네덜란드인 파울 에렌다스(27)는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인으로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함께 기뻐했다. 일본인 가에리야마 아야미(26·여·회사원)는 “낮에 일본팀의 패배로 울었지만 밤에는 한국팀의승리로 울었다.”면서 “한국축구 최고”라고 말했다. 쇼쿠안도리의 ‘붉은악마’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가부키초로 진출,곳곳의 ‘울트라 닛폰’과 합류,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곳곳에서 경계를 섰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일 언론,한국 부럽다= 일본 방송들은 “히딩크 축구도 놀랍지만 응원객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 경기로 역사가 짧은 일본 응원객들도 배워야 한다.”면서 “일본인들도 한국이 보여준 훌륭한 기백에 박수를 보내자.”고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한 TV 아나운서는 경기 도중 “일본은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한국이 일본 몫까지 열심히 해줬으면 한다.”고 한국 응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아사히와 닛케이 등 일본 신문들도 경기가 끝난 것과 거의 동시에 인터넷판에 한국의 8강 진출을 톱기사로 올렸다.아사히는 한국의 승리를 “경이적”이라며 “연장전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뛰어 체력이 떨어진 이탈리아 선수들과 대조를 보이며 응원단의 끊임없는 성원에 보답했다.”고 말했다.닛케이는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해 8강에 올랐다며 끝까지 선전해줄 것을 기원했다. ●조총련= 일부 조총련 지부에서도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국·이탈리아전을 관전하며 ‘한국,한국’을 응원했다.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산하 재일 조선인 체육연합회 임권길(林權吉·47) 부이사장은 “같은 민족이니까 응원에 남과 북이 없으며 오늘도 집에서 TV를 보며 한국을 응원했다.”고 말했다. ●일본전= “믿어지지 않아요.”열도는 경기장에 내리는 비처럼 울었다.터키에 아깝게 0-1로 져 8강 진출에 좌절하자 일본 방송들은 ‘일본 열도 한숨’이라는 제목을 내보내면서 “일본이 월드컵 16강 진출로 끝나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한 여자 아나운서는 울면서 일본의 패배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센다이(仙台) 미야기 경기장의 5만여 ‘울트라 닛폰’ 응원단은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8강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눈물로 대신했다.스포츠 호치(報知)는 ‘일본 0-1 감동’이란 호외를 통해 “일본,고맙다.”고 선전을 격려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유감이지만 잘 했다.”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흥분과 감동을 준 일본팀과 트루시에 감독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marry01@
  • [일본에선] 한·포르투갈전 일본표정

    [도쿄 황성기특파원 김 현·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요코하마 신인하 객원기자] “코리아,닛폰.닛폰,코리아.” 젊은이들의 거리 도쿄 신주쿠(新宿)의 가부키쵸(歌舞伎町)는 한·일 두 나라의 16강 동시 진출을 자축하며 열광에 빠졌다.무려 3000여명.‘붉은 악마’ 1000명,‘울트라 닛폰’ 2000명.이들은 ‘코리아,닛폰’을 외치며 서로 껴안고 꿈에도 생각 못했던 동시 16강 진출을 축하하고 축하했다. ◇코리아 타운= “역시 매운 고추,태극 전사.” 도쿄의 ‘코리아 타운’ 신주쿠(新宿) 쇼쿠안도리에서는 밤 늦게까지 16강 진출을 축하하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서로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한 음식점 주인은 “쇼쿠안도리가 생긴 이후 이 일대에 가장 많은 한국인이 모인것 같다.”고 흥분했다. 경기가 끝나자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은 유학생들을 비롯,한국인 응원객 1000여명은 일제히 나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이국 땅에서 맞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가부키쵸(歌舞伎町)로 몰려 갔으며 이들이 도로로 한꺼번에 나서는 바람에 교통정리에 나섰던 일본 경찰은 몹시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들은 가부키쵸 고마 극장 앞에 집결,일본 응원객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이들은 코리아,닛폰을 외치고 불꽃을 쏘아올리며 새벽까지 젊음과 승리를 즐겼다. 경기를 집에서 지켜본 재일 한국인 신희근(辛熙根·73·가나가와 거주)씨는 “한국이 자력으로 16강에 올라간 것을 보니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라고 아쉬워했다. ◇민단,한국 기업= 도쿄 시내의 민단 중앙본부는 8층 회의실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일반인에게 시청을 개방.지난 10일 60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던 미국전 때와는 달리 일본 민방이 중계방송을 한 탓에 300여명이 경기를 관전. 도쿄 시내의 현대 모터스 저팬(현대자동차 일본 판매법인)에는 직원 30여명이 모여 일본전에 이어 한국전을 시청하며 양국의 동시 16강 진출을 응원했다. ◇조총련=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산하 단체인 재일 조선인 체육연합회 회원들 80여명은 이날 인천에 가 포르투갈전을 응원했다. 지난 10일 미국전을 대구에 가서 직접 보고 왔다는 체육연합회 정지해(鄭智海·59) 부회장은 “경기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이 힘이 통일의 힘으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했다. 조총련 한 지부에 모여 한국을 응원한 차원미(車元美·23·여·회사원)씨는 “이겨 너무 좋아요.우리 민족 최고”라면서 “한국까지 응원하러 가겠다.”고 기뻐했다. ◇일본전= “해냈다.” 일본 열도는 이날 오전 도쿄에서 발생했던 지진처럼 크게 흔들렸다. 구청,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을 제외한 일본 대부분의 기업들은 일본-튀니지전이 열린 오후 3시30분 전부터 ‘한큐(半休·오후 휴무)’를 실시,일본 응원전에 돌입했다.경기가 열린 시간에는 도심을 지나는 열차가 텅비어 운행하는 등 일본 열도의 축구열기를 반증했다. 일본의 16강 진출에 흥분한 일본인들은 “일본인으로 태어나 보람”이라든가 “믿을 수 없다.”며 초흥분 상태에 빠졌다.이날 오후 5시 25분쯤 일본팀의 2-0 승리가 확정되자 샐러리맨이 많이 모이는 도쿄 신바시(新橋)에서는 모여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일본의 예선 돌파를 서로 축하했다. 일본 신문들은 역사상 첫 16강 진출의 위업을 다룬 호외를 일제히 발행,도심에 뿌렸다.도쿄신문은 이날 오후 이례적으로 ‘일본 결승 토너먼트 진출’이라는 4면짜리 호외를 발행,도심의 전철역을 중심으로 10곳에 뿌렸다. 한편 이날 일본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도쿄의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 가부키쵸에 3000명을 비롯, 신주쿠에만 7000명의 경찰관을 배치했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marry01@
  • [일본에선] “한국축구 약진에 취재 신바람”

    ■재일동포 프리랜서 작가들 맹활약 ‘월드컵 대목’ 속에 재일 한국인·조선인 프리랜서 작가들에 활약이 두드러지고있다. 한·일 공동개최 덕에 양국을 모두 아는 재일동포 프리랜서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높은 잠재력을 주목해온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재일 한국인 3세 프리랜서 신무광(31)씨.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일본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부침이 심한 한국 대표팀의 전적을 들어 “월드컵에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그러나 그는 일관되게 한국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민족학교’를 다녔던 그는 조총련계 조선대에 가지 않고 일본 대학에 진학,1994년 졸업과 함께 스포츠 프리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996년 5월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결정 직후“운명을 느껴” 한국 축구 취재에 매달렸다.국적도 북한에서 한국으로 바꾸었다. 그는 매월 한국 출장을 다니고 대한축구협회와 한국 프로축구계 인맥을 넓혔다.한국 대표팀의 해외원정 때에는 중동이든 유럽이든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지난해부터 원고 청탁이 줄을 이어 연재나 특집 원고를 합쳐 한달에 20편 이상 쓰고 있다.지난해 말 한국 축구를 상세히 다룬 ‘With Korea-한국축구 성공의 길’이라는 책도 출판했다. 개인 사무실을 두고 TV 출연도 하는 그이지만 수입으로 따지면 중류기업의 샐러리맨 수준.취재비,자료구입비 등 높은 경비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해외 출장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휘청거린다. 재일 조선인 작가 A(30)씨도 요즘 대목이다.회사를 다니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지난해 수입은 300만엔 정도.살인적 물가의 일본에서 겨우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경비를 빼면 수십만엔 적자였다.”고 A씨는 말한다. 월드컵은 재일동포 프리랜서들에게는 큰 대목이다.“지난해 수입이 제로에 가까운 달도 있었다.”는 A씨지만 올해 월드컵 관련 일로 바빠져 4,5월은 50만엔씩을 벌었고,6월에는 70만엔의 수입이 예상된다.보통의 2∼3배인 셈이다. 그래도 꿈은 크다. “월드컵에서의 한국 대표 약진은 민족에 대단한 용기를 주었다.”는 신무광씨는 “남북과 해외 교포도 포함한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있다면 도전하고싶다.”고 강조한다. 경제·국제문제가 전문인 A씨는 “월드컵 준비기간 중에도 역사교과서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둘러싼 마찰이 일어났다.”면서 “성공적인 한·일 공동개최가 일본과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에 좋게 미칠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포부를 털어놓았다. 도쿄 김현 객원기자 kmhy@d9.dion.ne.jp ■동경신문에서/ 日, 튀니지전 경찰 7700명 투입 14일 경기 앞두고 일본 전국 ‘계엄’ 일본 경찰청은 14일 일본-튀니지전이 끝난 뒤 흥분한 응원객들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대해 경비와 단속 대책을 강화할 것을 전국 경찰에 12일 지시했다. 오사카(大阪) 경찰은 12일 오사카 나가이 경기장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잉글랜드전에 이어 14일 튀니지전에도 사상 최대인 7700명의 경찰관을 투입한다. 특히 지난 9일 일본이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에 승리한 뒤 흥분한 일본 응원객들이 오사카시의 한 다리에서 잇따라 강물로 뛰어내렸던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행위를 엄격히 다루겠다.”고 다짐했다. 경찰 당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 9일 러시아전 승리 이후 번화가에 1000명 이상 모인 곳은 도쿄,삿포로(札幌),사이타마(埼玉),나고야(名古屋),오사카,후쿠오카(福岡) 등이었다. 경찰은 16강 진출이 걸린 14일의 경기 때에는 응원객 소동이 보다 격렬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팀 귀국= 3경기를 모두 패해 1차 리그 탈락이 결정된 E조의 사우디아라비아 선수,관계자 등 64명이 12일 오전 방콕행 태국항공으로 나리타(成田)공항을 출발,귀국길에 올랐다.1차 리그 탈락팀이 귀국하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처음이다. 또 같은 조의 카메룬 대표선수 11명도 예정을 앞당겨 이날 오후 파리행 프랑스 항공편으로 나리타 공항을 떠났다. ●러시아 14일도 가두중계= 지난 9일 일본전 패배로 흥분한 시민들의 난동으로 사상자를 냈던 모스크바시는 14일의 러시아-벨기에전도 시내 중심부에 대형 화면을 설치하고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 루시코프 시장은 가두 중계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서 “(중지하면)사람과의 교류,모스크바시 근대화를 저지하려는 훌리건들의 뜻대로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중계를 하는 것이)문명도시의 증거”라고 덧붙였다. ●심야 신칸센 운행= JR(일본철도)는 11일의 카메룬-독일전 관람객들의 수송을 위해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이후 처음으로 심야 신칸센을 운행했다. 12일 새벽까지 도쿄행 6편과 나고야행 2편이 운행돼 승차율 150%를 기록했으며,카메룬과 독일팀 유니폼을 입은 일본인들의 승차가 눈에 띄었다. 정리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일본에선] “”통일조국 축구 세계 No.1 소망””

    ■북한 국가대표 출신 재일조선인 김종성씨 [오사카 김현 객원기자] 한국 대표팀 미드필더 윤정환이 소속된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 월드컵 출전을 꿈꿨던 또 한 사람의 ‘우리 축구인’이 있다.북한 대표 출신인 김종성(金鍾成·38)이다.그는 지난 1월부터 이 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재일본 조선축구협회 기술부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는 그는 도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민족학교 축구부에 몸담았던 재일 조선인 3세이다. “어릴 때는 조국(북한)의 강한 축구가 마음의 의지가 됐다.”는 그는 “대표팀에 들어간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민족학교가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따돌림을 당해도 참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9년부터 3년간 북한 대표로 활약했던 그는 1992년 일본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렸다.‘50m를 5초8에 주파하는’ 경이적 스피드가 눈에 띄어 J리그‘주빌로 이와타’에 스카우트됐다. 북한 대표 시절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뛰기도 했지만 예선 통과의 꿈은이루지 못했다.그렇다고 꿈마저 접은 것은 아니다.“월드컵을 목표로 하지 않고서는 진짜 축구선수가 아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궁극적인 꿈은 통일 조국의 축구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면서도 “그 전에 나를 키워준 북한 축구를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그러나 언제쯤 북한 축구 발전에 공헌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른다.1966년 월드컵 8강 진입을 자랑했던 북한 축구가 지금은 국제교류 부족으로 부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월드컵에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윤정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솟아오르는 생각도 있다. “한국 대표가 우리 축구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는 그는 “남과 북,그리고 일본에 있는 동포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열심히 싸운다면 그것을 통해 모두의 마음을 통일 조국의 축구로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kmhy@d9.dion.ne.jp ■월드컵 외국인 홈스테이 [도쿄 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일본인 오노 도루(小野亨·30) 집에 1박2일간 홈 스테이를 하고 있는중국계 캐나다인 장 캐서린(35·여)은 점심은 우동,저녁은 다코야키를 대접받았다.간사이(關西) 출신인 부인 미유키(美由起·35)의 아이디어였다. 낙지를 넣어 만든 간사이 명물 다코야키는 먹어 본 적이 있지만 집에서 만든 것은 처음이라는 캐서린은 “만들기 어려웠지만 맛있었다.”고 기뻐했다. 세살배기 쓰구메(緖芽)와 3인 가족인 오노는 도쿄 이타바시(板橋) 구청이 월드컵행사로 마련한 외국인 홈 스테이에 응모했다. 오노는 응모 이유에 대해 “축구를 너무 좋아해 외국에서 오는 응원객들에게 일본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응모했습니다.딸에게도 좋은 추억을 갖게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라고 말했다. 캐서린은 지난 4월부터 일본어학교에 다니고 있는 유학생.학교의 소개로 일본 가정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오노 집에 홈 스테이를 하게 됐다. 캐서린은 “매일 밤 목욕을 하는 습관을 비롯한 보통 일본인의 생활을 알 수 있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미유키도 “홈 스테이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여러가지 얘기도 나눌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타바시 구청측은 당초 월드컵 입장권,추천장을 가진 외국인에 한해 홈 스테이 응모를 받았으나 까다로운 조건을 싫어하는 외국인들의 응모가 없자 조건을 완화했다. ktomoko@muf.biglobe.ne.jp ■동경신문에서/ ‘첫승 골' 이나모토 英아스날서 방출 ●일본 영웅 영국팀서 방출= 일본의 영웅으로 떠오른 이나모토 준이치(사진·23·아스날)가 정작 소속팀에서 버림을 받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아스날은 2002∼2003시즌을 앞두고 이나모토와의 재계약을 포기,방출대상 명단에 올리고 10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수협의회(PFA) 공식 사이트에 공시했다. 이에 앞서 아스날의 아르센 웽거 감독은 “이나모토가 월드컵에서 두 골을 넣었다고 해서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의문을 자아냈다. BBC와 스카이스포츠,로이터 등 영국 언론들은 이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아스날의 방출 결정을 비중있게 보도했으며 이를 접한 일본 언론들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라며 공분을 표시하고 있다. 이나모토는 지난해 7월 감바 오사카에서 아스날로 옮길 당시 ‘1년 임대 후 활약여부에 따라 완전 이적한다.’는 조건으로 5년간 계약했지만 기량을 인정받지 못하고 1년 만에 방출됨에 따라 월드컵을 통해 월드스타로 떠오른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일본대표팀 부동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이나모토는 월드컵 H조 벨기에,러시아전에서 연속골을 작렬하며 플레이메이커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와 견줄 일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월드컵 방한 재일 조선인 1300명 넘어= 월드컵 관전을 위해 한국을 찾게 될 재일조선인(북한 국적)이 1300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이 가운데 800여명은 개인 관전 그룹으로 대부분이 분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찾게 된다. 하나의 이벤트로 이처럼 많은 재일 조선인이 한국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월드컵을 계기로 재일 동포 사이에 남북 우호 무드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월드컵 관전에는 10∼20명 단위로 민단을 통해 임시 여권을 발급받아 방한한다.앞서 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는 400여명의 월드컵 응원 방한단을 구성한 바 있다. 정리 도쿄 황성기특파원
  • [일본에선] “아쉽지만 잘 싸웠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김현·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아쉽지만 잘 싸웠다.”,“포르투갈전에서 승부를 내자.” 한 덩어리가 됐다.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남과 북 없이 민족의 승리를 염원하며 한목소리로 응원했다.불굴의 투혼을 살려 안정환이 동점골을 터뜨리자 TV를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동포들은 목청을 드높여 “한국,한국”을 외쳤다.이국땅이어서 더욱 뜨거운 민족애를 느낀 90분이었다. ●코리아 타운= 도쿄의 ‘코리아 타운’ 신주쿠(新宿) 쇼쿠안도리도 빨간색으로 물들었다.한·미전을 생중계한 곳곳의 한국 음식점마다 ‘붉은 악마’들이 넘쳐났다. 이들은 하프타임 때 아리랑과 애국가를 합창하며 분위기를 돋웠으며 ‘이긴다,이긴다.’를 연호했다. 한 유학생은 르투갈이 폴란드를 큰 점수차로 이긴데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으나 “전세계 동포들이 한마음으로 성원을 보내는 만큼 선수들이 온힘을 다해 승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쇼쿠안도리에는 ‘재일 한국인은 한국과 일본의 8강 진출을 기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일본 방송사들도 코리아 타운의 뜨거운 열기를 다투어 취재했다. ●대사관= 주일 한국대사관에서도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여 한국전을 응원했다.이날 오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2002년 FIFA 월드컵 개최 기념 한국의 명보(名寶)’ 개막식에 참석했다가 돌아온 조세형(趙世衡) 대사도 후반전을 집무실에서 관전했다. ●민단= 8층 회의실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일반인에게 시청을 개방한 도쿄 시내의 민단 중앙본부에는 이날 600여명이 모여 경기를 관전했다. 민단 직원들은 사무를 일부 중단하고 경기를 관전했으며 유학생들과 재일 한국인들이 모여 한국의 16강 진출을 가름하는 중요한 일전을 지켜봤다. ●조총련=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산하단체인 재일 조선인 체육연합회 직원들은 이날 분쿄(文京)구 출판회관 사무실에 모여 위성 TV 중계를 관전했다.지난 3일 4박5일 일정으로 한국-폴란드전을 관전하고 돌아왔다는 임권길(林權吉·47) 부이사장은 “같은 민족이니까 응원에 남과 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인 팬들= 9일의 러시아전에서 사상 첫 승리를 따낸 일본도 ‘한·일 16강 동시 진출’을 기원하며 위성으로 중계된 한국-미국전을 집이나 사무실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이노 신지(26·자영업)는 “어제(9일) 한국이 일본을 응원을 해준 데 고마움을 느끼고 한국을 응원했다.”고 말했다. marry01@
  • 월드컵/ 한총련 월드컵 열기에 反美심기

    ‘반미(反美)시위를 한·미전 응원으로.’ 오는 10일 한·미전을 앞두고 한총련과 재일 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 응원단 등 일부 ‘반미 세력’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지난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의 실격과 FX 사업 등을 둘러싼 반미 감정을 응원전을 통해 쏟아 내겠다는 것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이날 “월드컵 열기를 틈타 대통령이 FX사업을 재가했다.”면서 “미군기지 이전,차세대 구축함 사업 등 반미 현안을 다루는 집회를 이번 경기 응원전으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총련은 한·미전 당일 전국 대학별로 멀티비전을 설치해 ‘대∼한민국’ 대신 ‘미∼국 반대’를 외치면서응원전을 벌일 계획이다. 최근 입국한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 300여명도 “미국은 없다.”며 붉은악마 티셔츠를 준비했다.오사카 출신 이상수(50)씨는 “미국팀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경찰은 대표적인 길거리 응원장인 광화문 네거리 근처의 미 대사관 경비문제를 두고 노심초사하고 있다.4일 폴란드전 직후 광화문 일대 8만여명의 응원단 가운데 일부가 미 대사관 담장 바로 옆까지 몰려가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경찰이 잔뜩 긴장하기도 했다. 경찰은 한·미전을 전후해 대사관 주변에 일반인의 출입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
  • [일본에선] 남·북 하나되어 ‘월드컵 아리랑’

    [사이타마 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아리랑,아리랑 아라아리이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일본 대 벨기에전(4일)이 열리는 사이타마(埼玉)에 울려 퍼진 아리랑.한국인 유학생과 재일 조선인 학생이 어깨동무를 하며 합창했다.코리아(Korea)는 하나였다. 1일 오후 3시 사이타마시 경기장 옆에 마련된 월드컵 기념무대에서 노래와 춤의퍼포먼스 ‘원 코리아 이벤트’가 펼쳐졌다. “이런 이벤트를 한국 유학생과 함께 하기는 처음일 겁니다.같은 민족이고 2년 전 남북 정상의 6·15 선언과 통일 분위기 속에서 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토양이 생겼다고나 할까요.자연스런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재일 조선인총연합(조총련) 사이타마 지부 이창용(李昌勇) 문화선전부장의 말이다. ‘원 코리아’ 행사는 원래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조총련 사이타마 지부 100명이 기획한 것으로 한국인 유학생이 참가하는 형식이 됐다.춤과 노래로 꾸며진 행사에서 조총련 기타간토(北關東)가무단은 핑클의 힛트곡과 ‘월드컵 송’을 부르기도 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흰색,조선대생들은 검은색 티셔츠에 ‘원 코리아’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이고 어깨동무를 한 채 목청 돋워 아리랑을 불렀다. 한 한국 유학생은 “연습은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금세 익숙해졌다.”고 말했다.참가한 유학생 중에는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이 남과 북의 국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된 학생도 적지 않다. 이 행사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재일 동포의 존재조차 몰랐다.”든가 “북한 국적의 사람들과 뭔가 같이 일을 하는 게 무섭다.”든가 “북한에 끌려간다.”는 얘기들이 돌았다.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행사에 참가하게 되면서 없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유학생이 조총련이 기획한 행사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지난 4월 열렸던 미니 축구였다.조선대 학생이 알고 지내던 한국 학생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미니 축구에 참가했던 이석민(李錫旻·23·와세다대 2년)씨는 “조선대생들이 ‘우리가 하는 월드컵 행사에 오지 않을래’라고 제의해서 좋다고 했습니다.일본에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저로서는 귀중한 경험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리랑을 부르자고 제의한 것은 한국 유학생이었다.이씨는 “거절당할 것으로 생각했더니 ‘좋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고 덧붙인다. 한국인 유학생과 재일 조선인이 사이타마 하늘에 날려 보낸 아리랑은 그들의 마음에 어떤 생각을 남겼을까.아리랑의 한(恨)을 알 리 없는 일본인이지만 무대로부터전해져 오는 가슴 뭉클한 그 무언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ktomoko@muf.biglobe.ne.jp ■골키퍼 3명 장외 주전다툼 [도쿄 황성기특파원] ‘울트라 닛폰’의 수문장 3명이 4일의 벨기에전 출전 ‘티켓’을 놓고 뜨거운 장외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23명의 전사 가운데 골키퍼는 1998년 프랑스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가와구치요시카쓰(川口能活·26),나라자키 세이고(樽崎正剛·26)와 이번 대회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는 소가하타 히토시(曾ヶ端準·22) 등 3명. 이들은 각자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일본팀의 수호신임을 호소했다. 수려한 얼굴로 여성 팬들이 많은 가와구치는 “젊을 때에는 자신의 행동이 팀에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운을 뗀 뒤 “위기에 몰리면 모두들 골키퍼의 얼굴만 바라보는데 그럴 때 표정만으로 그들의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프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특히 고공전에서의 기술을 충분히 익혀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다.가와구치의 오랜 라이벌인 나라자키는 “출장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프랑스 대회 때 대표팀에는 들었으나 출장기회는 갖지 못해 “이번이 첫 출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일본 대표팀으로 첫 출전했던 신예 소가하타는 당시 이탈리아 전에서 1골밖에 내주지 않은 점을 은근히 내세웠다. 큰 무대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인정받아 트루시에 감독에게 발탁됐다.이들 3명 가운데 과연 누가 벨기에전에 나설지도 관전 포인트의 하나이다. marry01@ ■우에노역 한·일 자원봉사자 [도쿄 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도쿄와 나리타(成田) 공항을 잇는 게이세이센(京成線)의 도쿄쪽 종점인 우에노(上野)역. 한국인 유학생과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나리타 공항에서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착할 때마다 길을 헤매는 사람이 있는 지를 살핀다. “일본 사람을 한국 사람으로 잘못 알고 말을 걸었던 적이 있어요.”라는 한 한국인 유학생.한국인,일본인을 분간하는 것도 꽤 어려운 ‘기술’이라고 했다.처음에는 긴장해서 말도 걸지 못했다. 운영위원인 다른 유학생.“모처럼의 한·일 공동개최인 만큼 우리들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어요.일본말을 모르는 한국사람들을 위한 자원봉사가 괜찮다고 생각해 유학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사람은 어렵지 않게 모았지만 처음에 역으로부터 허가를 받기란 쉽지 않았다.그러나 일단 활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역에서도 반기는 눈치다. 게이세이 전철의 홍보담당 하토 다쿠지(鳩拓治)는 “월드컵 때문에 일본에 오는외국 손님들을 능숙하게 대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쁜 틈을 쪼깨 만든 한·일 여학생들의 수다시간.“일본에서는 친구집에 놀러가도 냉장고를 멋대로 열거나 하지 않아.”(일본인) “정말? 왜?”(한국인)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미묘한 문화 차이.월드컵은 서로의 다른 점을 알고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개최의 의미가 있다. ■동경신문에서/ 아프간서 ‘평화의 컵' 축구 결승전 열려 ●월드컵 개막일 카불에선 결승전= 월드컵이 개막한 31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는 일본의 자원봉사단체가 기획한 축구대회 ‘평화의 컵’ 결승전이 열렸다. 국가 재건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평정을 되찾은 카불 시민들은 모처럼 축구를 만끽했다.행사를 주최한 것은 게이오(慶應)대 학생이 주축이 된 자원봉사단체 ‘2002 클럽 아프간 프로젝트’.이들은 “축구 진흥이 현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아프간 부흥에도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은 TV방송을 금지한 탈레반정권의 영향으로 일반 가정에 TV가 보급돼 있지않아 월드컵 시청은 꿈같은 일. 그래서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카불 시청 주변에 위성방송 수신기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월드컵 주요 경기를 서비스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한정 티셔츠 15분만에 매진= 일본 대표팀의 한정품 티셔츠가 1일 시즈오카(靜岡)현 미디어 센터의 편의점에서 판매를 시작,15분 만에 매진됐다. 이날 판매된 상품은 일본 대표팀의 유니폼형 티셔츠에 미디어 센터의 약칭인 ‘JAMPS’의 로고가 들어간 것.약 100장이 준비된 티셔츠는 오전 10시의 개점 전에 이미 50장이 팔려 나갔다. 담당자는 “판매점에서만 발매 안내를 했기 때문에 이만큼 팔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프린트에 다소 품이 들어갔지만 다음 주에도 제2탄을 판매하겠다.”고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정리 도쿄 황성기특파원
  • [일본에서] “”벨기에 꺾겠다”” 日 사기충천

    ■개막전야 이모저모 [도쿄 황성기특파원] “두번째 월드컵 출전,내친 김에결승 토너먼트 진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개막일을 하루 앞둔 일본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하다.트루시에 감독이 이끄는 사상 최강 대표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일본 국민들의 기대도크다. NHK를 비롯한 일본 TV들은 30일 정규 뉴스시간은 물론 특집을 통해 개막을 하루 앞둔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풍경과 일본 개최지의 이모저모를 다투어 생중계로 내보내면서 분위기를 달구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프랑스인 트루시에 감독의 지휘아래 일본팀은 개최국의 특권으로 지역 예선없이 4년간 세계 강호들과 시합을 벌이며 힘을 붙여 왔다.”면서 “외국팀보다 열세인 체력을 메울 조직 축구가 일본의 비결”이라고 사기를 북돋았다. 대진운이 좋은 일본으로선 첫 대전인 4일 벨기에전을 필승으로 이끈다는 전략이다.천만다행으로 일본팀 공격의 핵인 오노 신지(小野伸二·22)가 복통으로 사흘간 병원 치료를 받은 뒤 29일 밤부터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안해 하던 일본 국민들도 안도하는 모습이다. 기대에 부풀은 일본이지만 개막식이 열리는 한국과는 달리 특별한 전야행사 없이 차분한 하루를 보냈다. 경기장이 있는 요코하마(橫濱),사이타마(埼玉) 등 10개도시에서는 경기장을 최종 점검하는가 하면 이곳저곳에서개막을 자축하는 조그만 행사들이 열려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marry01@ ■동경신문에서/ 민단·조총련, 한국전 공동관람 화합 ◆조총련 월드컵 방한단= 재일본 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함께 월드컵의 한국전 등을 관전하는 ‘재일 동포 참관단’의 개요를 민단 중앙본부가 29일 발표했다. 이들 참관단은 한국전 3개 경기와 개막전,준준결승 2개경기,준결승 등 모두 7개 경기를 관전한다. 한국전 3개 경기에서는 조총련측 참가자 269명을 포함해1500명이 공동 참관한다. 공동 관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재일 한국·조선인사회의 화해와 단결을 향한 신뢰구축을 위한 것이다. ◆관전 못하면 제소= 월드컵 해외 판매분 입장권이 제때배달되지 않고 있는 문제와 관련,일본조직위원회(JAWOC)는“도착하지 않으면 경기장에서 나눠주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입자들의 불안하기만 하다. 판매대리점인 영국의 바이롬사에는 “관전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겠다.”는 구입자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어떤 구입자는 “바이롬사가 현지에서 입장권을 나눠주겠다고는 하지만 만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며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인 출신 스모선수 월드컵 전에 꿈 이뤄= 일본 씨름인 스모계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김성택(金成澤·일본명 가스가오·春日王)이 ‘주료(十兩)’로 승진,본격적인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김성택은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승진하고 싶었다.”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에 뭔가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서울 출신으로 3년 전 스모계에 진출한 김성택은 한국 축구 대표팀의 미드필더인 김일남과는 인천 부평고 동기. 정리 도쿄 황성기 특파원 ■“나카타, 너만 믿는다” 기대 한몸에 [도쿄 간노 도모코객원기자] “나카타,너만 믿는다.” 일본 대표팀의 플레이 메이커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25)가 변했다.변해도 많이 변했다.트루시에 감독은 말한다.“나카타는 자기를 죽이는 법을 배웠다.나카타가 바뀌었다.” 일본팀의 최고 스타 플레이어 나카타와 트루시에 감독의 불협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한 스포츠지 기자는 “나카타가 일등석을 타고 대표팀에 합류한다든지 호텔 1인실을 고집하는 건방진 모습을 트루시에 감독이 싫어했다는 설이 있지만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컵 때 감독의 설득을 뿌리치고 이탈리아에 돌아가 사이가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트루시에 감독은 왜 그를 칭찬하고 나섰을까.그건 그가 일본팀의 결승 토너먼트 진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데다 실제 나카타도 변했기 때문이다.올해 이적한 이탈리아 프로팀 ‘파르마’에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었던 쓰라린 경험은 그를 성숙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25세 나카타의 인생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활짝 펼쳐지고 있다.일본에서 불고 있는 ‘나카타 신드롬’이 그것이다. 지난 4월 19일 그는 도쿄역에서 10분 거리의 중심가인 유락쵸(有樂町)에 ‘나카타 카페(nakata.net.cafe)’를 오픈했다.“일본을 찾는 외국인이 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나카타. 매스컴도 나카타 일색이다.언론 기피증으로 소문난 나카타이지만 곧잘 TV 인터뷰에 나오기도 하고 잡지의 표지도 온통 나카타 일색이다. 그를 다룬 책도 5월 한달 2권이나 나왔다.나카타의 친구이자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와의 대담을 엮은 ‘문체(文體)와 패스의 정도(精度)’는 1주일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일본 열도를 사로잡는 나카타의 매력은 무엇일까. 주니치·도쿄스포츠의 세기 요이치(關陽一郞)기자의 말.“노력형입니다.런닝 훈련 때 다른 선수 같으면 그라운드안을 돌지만 그는 훈련량을 늘리기 위해서 일부러 혼자서 바깥을 돌 정도입니다.언젠가 버스 이동 중에는 헤드폰을 끼고 뭔가를 듣고 있었는데 영어 테이프였습니다.‘자장가 대신’이라던 그는 노력을 해서 뭔가를 움켜잡는 그런 사람입니다.” 일본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나카타는 이제 또한편의 ‘월드컵 드라마’ 만들기에 나섰다. ktomoko@muf.biglobe.ne.jp ■돌아온 노장과 사라진 주역 [도쿄 간노 도모코 객원기자] 파란만장한 월드컵 드라마는 일본 대표팀 선발에서 1차로 명암이 엇갈렸다.백전노장의 기용과 꿈나무의 좌절이 그것이다. ◆백전노장의 기용= “일본에는 ‘곤’이 있다.” 지난 24일 스웨덴과의 친선경기를 하루 앞두고 트루시에 감독은 이렇게 장담했다.‘곤’은 트루시에 감독이 막판에 대표팀에 합류시킨 34세의 백전노장 나카야마 마사시(中山雅史). 축구 전문가들은 그의 대표팀 합류를 예상하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당당히 일본 대표팀의 리더를 상징하는 등번호10번을 부여받고 다시 월드컵 무대에 섰다. 그의 합류는 신문 호외의 머릿기사를 장식했다.샐러리맨의 거리인 도쿄의 신바시(新橋)에서는 호외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한 회사원은 “나카야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잖아요.보고 있으면 힘이 나고 뭐랄까 나도 용기가 생깁니다.”라고 말한다.트루시에가 그를 기용한 것은 그의 정신력.비록 천재적 소질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는 대표팀 합류를 소망하며 정규 연습이 끝나도 혼자 남아 추가 트레이닝을 할 만큼‘연습벌레’다.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그런 그의 끈기 있는 모습이 ‘고집쟁이’ 트루시에를 감동시켰고 98년 프랑스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맏형’으로서 팀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사라진 주역= 지난 17일 발표된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한 나카무라 슌스케(中村俊輔·23). 천재 미드필더로 불리던 그가 탈락하자 그의 팬들과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어떤 인터넷 사이트에는 “트루시에 감독은 죽어라.”는 극언까지 올랐다. 실력으로 봐서 탈락할 이유가 없는 그의 탈락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나카무라의 종교를 트루시에 감독이 싫어했다는 설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무라에 대한 팬들의 지지는 여전히 뜨겁다.한 축구용품 관계자는 “나카무라가 대표팀에서 탈락한 이후 오히려 그의 등번호를 붙인 유니폼을 구입하는 손님들이늘어났다.”고 말했다.이 역시 의리와 인정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의 정서 탓이 아닐까.
  • [월드컵 일본통신] 결승전 열릴 요코하마 열기 후끈

    대한매일은 월드컵 D-10을 맞아 일본의 젊은 필진 3명을객원기자로 초빙해 ‘월드컵,일본통신’연재를 시작한다. 재일 한국인,재일 조선인,일본인으로 구성된 객원기자들은 열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월드컵에 관련된 흥미있는 일본얘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아울러 재일 한국·조선인과 일본인이 본 한국과 일본의 모습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나갈 예정이다.대한매일 제휴사인 도쿄(東京)신문에 게재된 월드컵 관련기사도 선별해 함께 싣는다. ■달아오르는 열도 [도쿄 간노 도모코기자] 순식간에 달아오른 느낌이다. 일본 열도 1억2000명이 저마다 축구 평론가에 저마다 대표팀 감독이 된 순간이었다.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구장을밟을 대표팀 엔트리 23명이 발표된 지난 17일을 고비로 일본의 월드컵 열기는 비로소 비등점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34살의 백전노장 나카야마 마사시(中山雅史)가 대표팀에 막판 합류했는가 하면 기대주 나카무라슌스케(中村俊輔·23)가 어이없이 탈락했다.희극과 비극이 엇갈리는 극적인 발표였다. 그렇다.6년을 기다리고 기다려온 월드컵 드라마의 막이오른 것이다. 지난 주부터 외국 대표팀이 속속 선수촌 입촌을 위해 일본에 들어오고 그 모습을 일본인들이 눈으로 확인하면서열기는 가열되고 있다. 가미조 노리오(上條典夫) 덴쓰 종합연구소 연구1부장은“일본인은 늦게 반응하는 ‘형광등 체질’입니다.일본 대표팀의 활약이 두드러지면 그때가서 지금이 열기는 100배,1000배로 달아오를 겁니다.”라고 말한다. 분명 일본인의 특성이다.일본이 1승이라도 올린다면 열도는 그야말로 초흥분 상태에 빠질 것이다. 20일 오후 결승전이 열릴 요코하마(橫濱)시 남부에 있는지하철 마이타(蒔田)역.역 이곳저곳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개찰구로 들어서면 한국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과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나라 이름도 큼직하게 적혀 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월드컵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마이타 역개찰구 직원) 요코하마시는 시영 지하철 역이 32개인 점에 착안해 ‘1개역1개국 응원’ 제도를 도입했다.마이타역의 응원국가가 한국이다.개찰구 직원은 열광팬이 유니폼을 훔쳐가지않는지 감시하는 게 요즘의 주 업무가 됐다고 익살을 떤다.그는 “인사말이라도 한국어로 하고 싶지만 좀체로 익혀지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요코하마시 월드컵 추진위원회의 스즈키(鈴木) 과장의 말에도 열기가 가득하다.그는 “월드컵은 세계의 축제로 세계에 요코하마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번이 겨우 두번째 월드컵 출전이다.그렇지만 1승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열망은 하늘을 찌른다.프랑스인 트루시에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자칭타칭 사상 최강이다.전력은 물론이고 사기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표팀의 최고 스트라이커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가 이번 월드컵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이전과 다르다.” 어느 스포츠신문 기자의 말이다.세계적 스타이면서도 ‘일본 대표팀에서 겉도는 존재’로 여겨져 온 나카타 선수가 이제는 팀을 이끄는 인물로 변모했다는 평가가 일본 언론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월드컵 열기는 경기에 거는 기대뿐 아니다.이른바 ‘월드컵 효과’를 노린 비즈니스 열기도 뜨겁다.일본을 통털어3조엔에 이른다는 보고서가 있는가 하면 요코하마 1개 도시에서만 257억엔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조사도 있다.월드컵 효과를 노려 ‘켄터키 치킨’은 최근 일본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은 그룹 ‘스마프’의 구사나키 쓰요시를 등장시켜 고추장 소스가 들어간 한국풍 메뉴의 시판에 들어갔다. 이제 월드컵까지 열흘.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월드컵 상품을 팔고 있는 고무로 지카오(小室智郁夫)씨는 말한다.“매스컴에서 떠드는한·일 두 나라 우호는 기본입니다.우리들은 아시아라는틀 안에서 하나입니다.”6년 전.유학지였던 한국에서 한·일 공동개최를 앞두고 여러가지 잡음을 들어야 했던 기자로선 그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때린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월드컵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훈풍을 일본과 한국에 불게 할지 모른다. 본사 在日 객원기자 3인 ◆신인하(辛仁夏) 재일 한국인 2세.1967년생.요코하마(橫濱)시립대 동양사학과.전 도쿄신문 기자. ◆김현(金賢) 재일 조선인 2세.1972년생.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조선대 영어과.전 조선신보 기자. ◆간노 도모코(管野朋子) 일본인.1963년생.주오(中央)대학 서양사학과.전 슈칸분슌(週刊文春)기자. ktomoko@muf.biglobe.ne.jp ■일본속 한국 붐/ 맵고 짠 김치 日 식탁 점령 [도쿄 간노 도모코기자]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가 결정된 이후 일본에서는 급격히 한국 붐이 일었다.한국을 찾는 일본인도 지난 해 무려 240만명으로 해외 여행 1위의나라가 됐다. 일본인의 식탁에 정착된 김치의 소비량은 4년 전의 갑절에 달하는 35만t으로 급증했다. 식품수급연구센터의 한 관계자는 “고추가루에 땀을 내게 하는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소비가 크게 늘었다.”면서 “예전에 일본인 입맛에 맞춘 싱거운 김치가아닌 맵고 짠 본격 한국식 김치가 최근엔 유행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식품 회사인 ‘아지노 모토’에서는 불고기나 갈비,낙지볶음 등 한국요리를 위한 조미료를 지난 해 8월과 올1월 내놓았다.이 회사 홍보 관계자는 “구매층인 일본 여성이 한국에 여행가서 접한 한국요리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점에 착안해 재작년 연구개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당초 두 가지 조미료에 걸었던 41억엔의 매상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올 여름 다른 상품을 출시할 계획. 편의점 ‘로손’은 지난 7일부터 손말이 김밥인 ‘갈비불고기’와 ‘비빔밥’을 출시했다.14일에는 유명 잡지 만화 연재물에 등장하는 ‘김치볶음밥 주먹밥’을 발매한데이어 ‘한국풍 튀김빵 잡채’,‘비빔면 사라다’ 등을출시할 예정이다. 로손의 관계자는 “반응이 좋은 편으로 월드컵 분위기를띄우자고 생각해 최근 한국 식품을 등장시키고 있다.”면서 “반응이 좋으면 월드컵이 끝난 뒤에라도 고정 메뉴로판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고기 구이집 일색이던 도쿄 거리에도 닭갈비나 삼겹살,감자탕 전문점이 생겨나는 등 그야말로 한국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어디를 가든 한국식 반찬을 파는 집도 늘어나고있다.도쿄도 스기나미(竝杉)구의 한 상점가에는 얼마전 나물,파전,만두,김치,라면 등을 파는 ‘한국촌(韓國村)’이라는 반찬가게 2곳이 생겨나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동경신문에서/ 산토스 귀화인으로 첫 日대표로 출전 ●고민하는 교육위=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일본 전국 10개도시의 교육위원회는 시합 당일 공립 초·중학교의 수업을 할 것인지 휴교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과감히 휴교하는 학교가 있는가하면 “과잉반응은 국제교류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는지적에 따라 보통 때처럼 수업을 하는 학교도 있다. 고베(神戶)시 인근 6개 초등학교는 시합이 있는 6월 4일휴교하는 대신 토요일에 대체 수업을 실시키로 했다.시교위측은 “어린이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오사카(大阪)시는 6월 12,14일 경기장 주변의 4개 초·중학교에 대해 휴교 조치하고 2개 중학교에 대해서는 오전수업만 실시키로 했다.반면 요코하마(橫濱)시와 삿포로(札幌)시는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것은 어린이의 국제이해에 역효과”라며 정상 수업을 실시키로 했다. ●귀화인 첫 월드컵 출전=산토스 알레산드로(24)가 일본으로 귀화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입고 월드컵에 출전한다. 그는 1994년 일본의 축구 명문 고등학교에 스카우트돼 브라질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당시 16세이던 그는 “열심히 하면 J리그(일본 프로축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일념으로 축구와 일본말 익히기에 매달렸다. 그는 결국 J리그 소속인 ‘시미즈(淸水) 에스팔루스’ 구단에 들어가 꿈을 이루고 지난 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산토스라는 성(姓)도 일본식 음을 따 ‘三都主’로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일본말을 가르쳐 준 선생님은 얼마전 그가 일본 대표팀으로 시합에 출전하기 전 “일본사람이상으로 노력을 하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지난 17일 발표된 일본 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 산토스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한 산토스의 부모들은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면서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일본으로 올 예정. 정리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총련 월드컵 한국응원단 360명 규모로 축소 파견

    [도쿄 황성기특파원]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월드컵 기간 치러지는 한국 대표팀의 예선 3경기를 응원하기위해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도쿄(東京)신문이 15일보도했다. 조총련은 오는 6월4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국과 폴란드 전을 포함해 3경기에 360명 규모의 응원단을 보낼 계획이다.조총련은 당초 600명 가량의 응원단을 보낼 계획이었으나규모를 축소했다. 이와 관련,재일 민단 측은 월드컵 관전 티켓 확보와 조총련 응원단원들의 한국 입국에 필요한 임시 여권을 발급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marry01@
  • [씨줄날줄] 박근혜와 김정일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11일부터 14일까지 북한을 방문한다.드러난 방북 목적은 지극히 사무적이다.재단법인 주한(駐韓)유럽연합상공회의소·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와 만나 남북간 상호협력 및 교류 문제를 협의한다고 했다.지난해 5월 유럽 24개국 주한 외교관과 상공인 등 600여명으로 구성된 재단법인이 북한 어린이에게 축구공 3만개를 보내는 등 민간 차원의 지원 활동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박 의원의 북한 방문은 예사롭지 않다.사흘이나 북한에 머물다 보면 십중팔구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만날 것이다.두 사람의 하고픈 얘기로 말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말머리는 아버지 시대로 올라 갈 것이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북은 본격적인 대결 시대를맞는다.1917년생 박 대통령이나 1912년생의 김일성이 모두50세 전후로 나름대로 지도력을 발휘하던 시절이었다.박 대통령은 강인한 의지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부국강병 경쟁에서 김일성 주석을 압도했다. 세상 일이 선의의경쟁에서 지면 폭력을 쓰게 되나 보다.박 의원이 22살이던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어머니를잃는 쓰라림을 맞는다.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계 문세광이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저격하는 테러를 자행했다.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육 여사였고 보면 박 의원의 슬픔은 원한으로 응어리질만도 했을 것이다.박 대통령의 장녀였던 박 의원은 많지 않은 나이에 어머니의 빈 자리를 대신해야 했다.자신을 돌볼겨를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박 의원은 독자적으로 정당을 하나 창당할 만큼 무게있는 정치인이 되었다.두 사람은 아버지들이 치열한 부국강병 경쟁을 벌이던 그 나이가 되었다.박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을 조금 부풀린다면 두 사람의 역할도 엇비슷한처지다.박 의원은 어머니가 끔찍한 불행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두사람이 마주할 첫 장면이 궁금해진다.그리고 두 사람의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무슨 말을 이어갔는지 나중에도 알았으면 좋겠다.꼬박꼬박 계산서를 주고 받을 수만도 없는민족 분단사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박 의원 다짐대로 두 사람의 만남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구름판이 되기를기대해 본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북녘 어린이에 영양과자·구충제를”

    “통일 시대에 남북 어린이가 ‘어깨동무’할 수 있도록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녘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거창한 통일 구호보다도 영양과자(영양증진제)와 구충제가더 절실합니다.” 월드컵 대회와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을 앞두고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이사장 權根述)가 더 바빠졌다. 남북 어린이들이 서로 친구가 돼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자는 취지로 96년 설립된 이 단체는 다음달 5일 ‘2002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대행진-안녕? 친구야,함께 달리자’라는행사를 연다.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과 주변 도로에서 남녘어린이들이 북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뜀박질을 펼친다. 어린이 한명이 주어진 코스 한바퀴를 돌 때마다 북녘 어린이들에게 1만원과 영양제 1만정을 전달키로 했다.남북 어린이들이 스스럼 없이 마음의 친구가 되고 ‘평화’를 체험할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지난 3월에 남한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편지 100여장을 북한 어린이들에게 전해주고 그 답례로받은 북한 어린이 그림 70여장과 편지도전시한다.96년 6월부터 벌여온 ‘안녕,친구야’ 캠페인을 통해 북녘 어린이들에게 보낼 남쪽 어린이들의 그림편지 1만여장을 모아 이중1000여장을 7차례에 걸쳐 북한 어린이들에게 전달했다.이캠페인에는 남북 어린이뿐만 아니라 조총련계와 북경 한인학교 어린이들도 참여하고 있다. ‘남북어린이 어깨동무’는 북녘 어린이들에게 비타민·영양제와 같은 약품과 이유식·분유 등의 식품을 보내는 대북지원 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지난 1월에만 구충제,항생제 등 36억원어치를 지원했다. 박진원(朴璡遠·36) 사무국장은 “남북인적교류라하면 대부분 이산가족상봉만을 생각하지만 통일 이후의 사회를 이끌고 기존 이산가족들의 아픔도 치유해줄 남북의 어린이들의 만남이 더 중요하다.”면서 “키도 10여㎝나 작고 체격도 왜소한 북한 어린이들이 남한 어린이들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때 통일의 초석이 마련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남북어린이 어깨동무는 올해에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사업과 평화교육사업,남북어린이 문화교류사업등 다양한활동을 펼친다. 우선 각 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이 학생과 교사들에게 ‘평화’ 교육을 실시한다.여름방학 때는 ‘평화교육 캠프’를 열 방침이다. 다음달 8일에는 22번째 대북 지원사업으로 과자 등 2000만원어치의 구호품을 전달한다.올해 안에 평양에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관련 질병 치료와 연구를 담당할 ‘어린이 영양증진 센터’도 건립할 예정이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는 지난해 ‘온 겨레 손잡기 운동본부’가 제정한 제1회 화해와 평화상 단체부문상을 수상했다.문의(02)743-7941∼2. 이영표기자 tomcat@
  • 총련 계열 신용조합 피습…총알4발 난사 자국 발견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의 신용조합인 조긴간토(朝銀關東) 신용조합이 총격을 받아 일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1일 오전 8시5분쯤 요코하마(橫濱)시 가나가와(神奈川)구 조긴간토 신용조합 본점에 4발의 총알이 난사돼 있는 것을 출근하던 조합 직원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오전 2시쯤 사건이 발생한 조합 건물 앞에서 검은색 승용차가 정차해 있었다는 목격자를 찾아냈다. 경찰은 수사반을 설치,사건 현장에 대한 검증을 끝냈으며 조총련 계열의 신용조합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의 소행으로보고 수사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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