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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천리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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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원주택/중부권을 노려라

    □경기·충청권 ­중부내륙 고속도 착공 ­여주·충주·괴산 등 각광 □경북권 ­문경권 곳곳에 명당 ­상주IC 부근도 유망 중부 내륙지방의 교통여건을 바꿔놓을 여주∼구미간 고속도로가 오는 2003년에 완공될 예정이다.이에 따라 중부내륙 고속도로 주변이 전원주택지로 인기를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인터체인지와 10여분 안에 연결되는 지역중 충주시 노은면,괴산군 장연면,문경시 마성면,상주시 공검면 등이 전원주택지로 유망한 곳으로 꼽힌다. ▷경기·충청권◁ 가남 분기점에 인접한 곳은 여주읍 연나리·상거리·상교리,가남면 안금리·금당리,점동면 청안리 등이다.이 일대 준농림지역 밭의 시세는 평당 6만∼7만원 선.장호원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전원주택지로 꼽힐 만한 곳은 홀인원 컨트리클럽이 있는 음성군 감곡면 지당리,능암온천과 가까운 감곡면 돈산리,충온온천을 낀 음성군 앙성면 사미리·조천리 등지다.준농림지역의 밭은 평당 10만원을 넘어 다소 비싼 편이다.노은 인터체인지는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와 문성리에 있다.보훈처 휴양림,수룡폭포가 있는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와 한포천이 흐르는 충주시 노은면 신효리 등지가 전원주택지로 적합한 곳이다.준농림지 밭은 평당 3만∼5만원선. 충주시는 충주 인터체인지와 인접한 이류면과 주덕읍 일대 1백50여만평에 첨단 생산시설과 주거시설을 갖춘 과학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으로 알려져 인터체인지와 가까운 곳에서 전원주택지를 찾는 것은 무리다. 3번국도를 타고 음성쪽으로 15분 정도 가면 음성군 금왕읍이 나온다.금왕읍에는 일상생활에 찌든 사람들을 위로할 만한 삼형제(육령지,백야지,무극지) 저수지가 있다.저수지 인근마을인 금왕읍 육령리,백야리,사정리가 전원주택지로 적합하다.농림보호구역으로 논과 밭은 평당 10만∼15만원 선. 수안보 인터체인지는 수안보온천,속리산 국립공원,월악산 국립공원 등과 가까워 개통후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중의 하나가 될 전망이다.광진리 위쪽의 괴산군 살미면 문강리 75만평은 온천지구로 고시된 상태라 고속도로가 개통될 때 쯤이면 온천관광지가 들어설 전망이다. ▷경북권◁ 문경은 온천개발과폐광지 개발계획에 따라 최근 땅값이 오르는 추세이지만 중부내륙 고속도로의 착공으로 전원주택지로도 각광받을 전망이다.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문경에서 전원주택지로 유망한 곳은 문경시 마성면 남호리,문경읍 마원리다.산과 물을 낀 명당을 쉽게 만날수 있는 곳들이다.마원리 일대 대지는 평당 15만원,남호리는 평당 35만원 선이다. 도시 동쪽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갈 상주시에는 함창,상주 인터체인지와 낙동 분기점이 설치된다.함창 인터체인지와 가까운 곳에 오대저수지가 있어 전원주택지로 쓸만한 곳이 꽤 있다.공검면 병암리,개곡리,오태리 등이다.외서면 백원리,연봉리 등도 함창 인터체인지와 가깝고 도심과도 가까워 눈여겨볼만한 곳으로 꼽힌다.상주 인터체인지가 설치될 곳은 헌신동 부근으로 병풍산 양자락의 병성동,낙상동과 낙동면 성동리,사벌면 화달리가 전원주택지로 좋다.시가지에 있는 대지는 평당 10만∼40만원,논과 밭은 평당 5만∼3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면 단위의 대지는 평당 5만∼20만원,논과 밭은 평당 2만∼3만원. ◎이것은 주의하자/각종 규제 감안 농가주택 있는 대지 구입이 편리/농지 살땐 6개월전부터 가족전원이 거주해야 도시생활에 찌든 시민들은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꿈을 한번 쯤은 꾸게 마련이다.하지만 전원주택에 들어가 사는게 그리 쉽지 많은 않다.유의할 점을 살펴본다.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부딪히는 문제는 각종 규제다.농가주택이 있는 대지를 구입하는게 속은 편하다.교통이 좋은 곳은 평당 1백만원을 넘어 만만치 않다.기존 농가주택은 대부분 주변환경은 그리 좋지않아 전원주택을 기대하기는 다소 힘든 면도 고려해야 한다.농가에 텃밭이 딸려있으면 텃밭이 303평은 넘어야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지역에 따라서는 거래허가조건에 「무주택」이나 「현지거주」를 요구하기도 한다. 값이 싼 준농림지로 눈을 돌릴 수도 있지만 변수도 있다.원래 준농림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밭이나 논,임야를 취득한 뒤 2년 내에 집을 지으면 대지로 전용할 수 있었다.현지에 살지 않아도 거래가 가능했지만 올해부터 농지전용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졌다.무분별한 농지전용을 막기 위해서다. 전에는 집을 짓겠다는 의사와 함께 서류를 내면 대부분 허가가 났지만 요즘은 면적 제한도 있다.특히 논일 경우에는 서류가 접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2년 내에 집을 지을 자금이나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그냥 농지를 사는 방법도 있다.이 때에는 6개월 전부터 가족 전원이 그 지역에 살아야 한다.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전원주택과 관련된 허가사항은 지역 및 땅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가령 준농림지라도 인가에서 외따로 떨어지면 전용허가가 나지 않는게 보통이다. 주택건설업체가 짓는 전원주택단지가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하지만 100% 안전지대는 아니다.단지개발의 경우 농지는 100%,임야는 30% 건물이 준공돼야 대지로 지목이 바뀌고 소유권 이전이 가능하다.따라서 미분양이 지속되면 먼저 분양받은 고객들은 피해를 볼수도 있다.원칙적으로 준농림지는 건축이 완공돼야 준공이 되고 준공이 된 뒤에라야 입주자들에게 이전등기를 해줄수 있다. 전원주택지를 선정하는데 다음과 같은 지침을 기억하는게 좋다.뒤에는 산,앞은 개울(강)이 있는게 좋다.예부터 내려오는 명당의 조건인 배산임수다.도로가 닿으면 남쪽을 보고 있는 땅이 좋다.자녀의 교육환경을 고려해 초·중·고등학교가 있는 지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생활필수품을 구입하는게 쉬운 대단위 아파트 주변지역이면 더욱 좋다.
  • “실종어선 월북 가능성”/8명 승선 대양호 6일께 통신두절

    【제주=김영주기자】 제주해양경찰서는 지난 8일 선장 등 선원 8명을 태우고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포항 동쪽 45마일 해상에서 실종돼 6일째 연락이 끊긴 남제주군 성산포선적 유자망어선 제707 대영호(39t·선장 고천권)가 북한 등 제3국으로 도피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이경우제주해양경찰서장은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영호가 실종될 당시부근 해상에서 조업하던 제905 기승호 등 3척의 어선과 7일 상오 10시까지 통신을 했으나 그 이후에 통신이 두절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사고 당시 이 배가 긴급구조신호를 보내지 않았던 점으로 미뤄 밀입북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대영호에 탄 선원은 다음과 같다.▲고천권(선장·58·제주시 도련2동 1816의 14) ▲김정언(기관장·37·서귀포시 서홍동 661의 9) ▲김명수(선원·42·전남 여천군 풍산읍 신복리 909) ▲조수남(〃·48·제주시 삼도1동 562의 7) ▲정학봉(〃·40·전남 여천군 돌산읍 군내리 471) ▲고영수(〃·38·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2360) ▲곽민수(〃·35·남제주군 성산읍 성산리 360의 9) ▲이길심(여·46·제주시 화북동 4294)
  • 내가 본 파랑도(서울신문 50돌 특집)

    ◎한국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는 말한다/“「태풍의 길목」 기상관측의 최적지”/기상예보 정확성 높여 태풍피해 최소화/대륙붕 개발·어업전진 기지로도 활용 『파랑도는 해양기상 연구와 구난활동·어업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구환경 변화 감시에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과학기지를 건설해 한국 해양연구의 일류화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해양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재직하다 85년 귀국 직후부터 파랑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해양공학자 이동영박사(46·한국해양연구소 해양환경공학실장).87년부터 4차례나 격랑속의 파랑도 현장을 답사하면서 기지건설 기초 조사등을 벌여온 이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바람직한 파랑도 이용 방안등을 들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귀국후 폭풍에 의한 재해방지 관련연구를 하게 됐는데 현장 관측자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태풍이 지나가는 동지나 해상에 고정 관측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됐습니다.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해양 한복판에 고정구조물이 있으면 해양과 대기의 경계면에서의 와동에 의한 운동량이나 열,수증기,각종 가스등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기때문에 해양및 기상예측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거든요.그러던 차에 87년 「전설의 섬 이어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돼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구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필요한 설계조건 도출을 위한 기초조사와 각종 관측연구를 했습니다.정부간 해양위원회(IOC)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목표로 세계 해양관측 시스템(GOOS) 구축을 제안해 와 90년부터 「국가 종합해양 관측망 구축」을 국책연구과제로 수행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고정연속 관측소의 필요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지요.97년까지 구조물 완공을 목표로 94년부터 파고 조위계 설치 암석채집 정밀수심 측량등을 했지요.과거 태풍 자료와 7년간의 파랑자료,위성자료등을 모으고 시뮬레이션해 설계 조건을 구했어요.섬주변에 등부표를 설치해 제한된 관측도 시도해 봤습니다. ­과거에도 파랑도 개발계획이 있었지요. ▲파랑도의 최초 이용계획은 1938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작성됐습니다.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부설계획을 세웠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 지점인 파랑도에 인공섬을 건설키로 했어요.2차대전으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그후 개발계획은 87년 어업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두 물양장등 대형시설을 갖춘 축구장만한 크기의 인공섬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수조원이 소요되는 무모한 계획으로 판단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도 인공섬,혹은 연구기지는 어떻게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파랑도는 태풍에 의한 큰 파도로 구조물의 설계 시공이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들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기본 설계,실시에 들어가야 합니다.우선 해양 기상 부이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자료에 의한 기초연구를 수행해 나가고 고정 구조물은 최소한의 규모로 설치해 시범 운영하면서 충분한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정보화 사회와 우주개발시대에 걸맞게 통신과 지구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위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활용도가 넓은 만큼 국내에서는 여러 관련부처를 망라한 기획위원회가 발족돼 부처간 업무분담과 사업추진및 활용 운영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파랑도 과학기지는 어떻게 활용됩니까. ▲정확한 해양예보와 기상예보,조류등 해양학적 연구측면은 물론 환경 감시,해상교통 안내,구난기지로서의 활용과 나아가서는 대륙붕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됩니다.사실 우리나라는 육상에는 매 14㎞마다 하나씩 조밀한 자동 기상관측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상에는 기상관측소를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는 서쪽 지역의 기상 관측자료가 중요한데 여기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할 경우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국가 산업,경제에 파급효과가 클것입니다.파랑도에는 이미87년부터 해운항만청에서 등부표를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는데 등대를 설치하면 매년 10만척이 넘게 이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항해지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공헌할수도 있습니다.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전설의 섬」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세계화 추진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7년 완공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수대교 사고 이후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재삼 제기됐고 예산상의 문제점도 있어 그렇습니다.우리나라는 각종 연안문제가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측시스템 개선이 시급한데 해운항만청,수로국,기상청등 관련부처에서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밖에 파랑도 건설에 장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규모에 따라 인접국가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고 또 환경감시를 행할 경우 인접국들을 자극할까 하는 점입니다.따라서 초기에는 규모를 최소화해 국제 분쟁을 피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획득된 자료들을 국제사회에 제공해 지구환경 문제에 한국의 역할 수행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추진하는것도 방법입니다.건설이후 유지 운영도 과제가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이박사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국가의지,기상연구자들의 적극적 자세가 파랑도 사업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파랑도 전설/폭풍만나 표류하던 한 선원이 도착… 과부들만 모여사는 환상의 외딴섬에 파랑도가 곧 「이어도」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으나 제주도의 대표적 부녀노동요인 「이어도 허라…」의 가사내용을 음미해 보면 파랑도와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랑도가 한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81해리,중국 동도에서 북동쪽으로 1백35해리에 위치한 제주도와 중국사이의 수중 암초라는 사실과 노래가사중의 「강남가는 남해항로의 절반지점에 이어도가 있다」는 내용이 부합됨을 들어 「이어도전설」을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파랑도가 설사 이어도가 아닐지라도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여인들에있어 이어도는 상상의 섬이요,사후에 돌아갈 피안의 섬이다.그것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이어도에 있으며 자신들도 결국 그곳으로 떠날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남편을 잃은,과부들만 모여사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환상의 섬이라고도 일컫는다. 향토사가인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60)은 이에 관계되는 전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 지금의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마을에 고동지라는 젊은남자가 살고 있었다.어느 해인가 중국으로 국마진상을 가게돼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수십척의 배에 말을 가득 싣고 조천포구인 「수진개」를 떠났다. 배가 수평선쯤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폭풍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고 몇날을 떠다니다 마침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됐다.동료들을 모두 잃은채 고동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태풍을 만나 수중고혼 되는 바람에 남자어른이 없는 이른바 과부섬이었다.고동지가 도착하자 과부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집 저집에서 다퉈가며 고동지를 묵도록해 고동지는 밤낮없이 이 과부 저 과부를 전전해가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뿐,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고동지는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보게됐다.마치 고향집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들렸다.불현듯 고향에서 밭을 갈고 멧돌을 돌리고 있을 아내와 부모형제가 그리워졌다.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이후 달밝은 밤이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면 늘 바닷가를 찾았다. 초승달이긴 해도 달빛이 유난히 밝던 어느날 밤.고동지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노래를 읊조렸다.자신의 신세를 달래는 구슬픈 노래가락이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엇말 허민 나 눈물난다.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난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여기서 「강남」은 중국이며 「해남」은 바로 남해항로인즉,강남가는 길목 절반쯤에 있는 「이어도」에 내가 있으니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이어도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됐다.고동지의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며 우는 과부들도 많았다.이윽고 「이어도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후 고동지는 뜻밖에 중국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됐다.이어도에서 고동지를 섬기며 사랑했던 한 여인도 함께 따라왔다. 고향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큰 잔치를 벌였다.고동지의 아내는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이어도여인을 받아들여 한 가족이 되게했다.
  • 베제크리크 천불동/허세욱(서역 문화기행:4)

    ◎화염산기슭 석굴 83개… 6세기 불교유적/위구르족 왕가 사원… 당시 생활상 벽화로 남겨/서유기의 무대… 삼장법사­손오공 등 3제자의 조각상 곳곳에 투루판은 그 동서를 관통하는 국도 312번에 놓여있다.그것은 신강의 최서단인 이닝(이령)에서 황하와 황해가 만나는 최동단의 상하이(상해)까지 장장 5천㎞,어쩌면 미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80번 하이웨이에 상당하다. 투루판에서 312번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40㎞쯤 달렸을 때,갑자기 그 왼편으로 빨간 바위산을 만나는데 그 형상은 얼핏 한국전쟁당시 철의 삼각지,아이스크림고지를 방불케하는 타원형으로 마치 험상궂도록 쪼글쪼글한 노인의 얼굴 혹은,여름날 여인의 풍덩한 주름 치마같았다.한 포기의 폴도 없이 세로의 주름살은 차라리 빨간 폭포가 쏟아지는 형상이었다. 그것이 바로 화염산의 남쪽 기슭이었다.그 맹렬한 화염의 섭곡을 보자 놀랍고 반가웠다.그 명성을 들은지 너무 오래라서 그렇다.당나라의 고승 현장(602∼664)의 「대당서역기」를 비롯,당나라의 유명한 변새시인 잠참(715∼770)이 이곳에서 벼슬하는 동안 썼던 경화산」,「화산운가송별」등의 명작,그리고 중국4대기서로 꼽히는 오승은(1500?∼1582?)의 「서유기」등에서 익히 화염산,그 「팔백리에 걸친 불길」을 들어 왔었다. ○홍산에 풀한포기 안나 화염산은 「홍산」혹은 「화산」으로 불렸다.그보다 위구르말로는 「쿠즈로다고」즉 홍산이란 뜻이다.그것은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넓고 낮은 동서 1백20㎞,남북 60㎞의 투루판분지에 동서 98㎞의 길이에 남북 9㎞의 폭으로 가장 높은 곳이라야 8백32m,평균 높이는 고작 5백m다.하지만 해발 이하의 분지라서 그 높이는 상당했다.연간 강우량이 겨우 16㎜의 초건조지역에 평균 기온이 섭씨38도 최고 기온이 49도나 된다.그래서 암석표면의 온도는 무려 80도를 넘는다.거기다 지층에 매장된 무진장의 석탄과 석탄에서 배출되는 가스로부터 폭발 연소도 적지 않다고 하니 「서유기」에 묘사한 대로 「화두 불길이 천길의 높이」란 형용도 결코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니었다. 필자가 화염산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은 지금부터 1천2백45년전인 기원749년,이곳에 당도했던 잠참의 「화산을 지나며」란 시에 잘 나타났다. 「화산금시견, 돌올포창동. 적염소로운, 염기증색공. 불지음양탄, 하독연차중? 아래엄동시, 산하다염풍. 인마주한류, 열지조화공」 (처음 만난 화염산은, 포창 동녘에 우뚝하여라. 화염은 오랑캐의 구름을 불지르고, 증기는 변방의 하늘을 찜질한다. 음양의 숯이, 어찌 여기서만 훨훨 타오르는가? 엄동설한에도 산밑엔 삼복의 열풍이. 사람도 말도 땀을 뻘뻘 흘리거늘, 누가 알랴? 자연의 조화를) 화염산 섭곡이 끝나는 승금구에서 312번 국도를 작별하고 좌회전하자 이윽고 빨간협곡이 열리면서 차는 화염산 북록을 휘돌았다.그 협곡의 정면에 보이는 둥근 모자모양의 홍산이 피라미드의 형세로 성큼 다가섰다.그것이 화염산의 주봉이었는데 주봉은 충격적 이라기보다 다소곳한 곡선으로 다만 풀 한 포기 없을 뿐 여느 동리앞을 지키는 안산의 크기였다.거기서 삼장의 길이 막히고 손오공이 파초의 부채로 재주를 부렸다는 곳이다. ○아래쪽 설수도 흘러 그 주봉아래로 기원6세기 고창왕국씨때부터 9세기까지 3세기에 걸쳐 위구르족들 왕가의 사원으로 건설한 석굴의 촌락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있고 천불동아래로는 파란 설수가 콸콸 흐르는 목두구.그리고 천불동 입구 편편한 산기슭엔 최근 「서주천성원」이라는 작은 전시장을 개설 해 놓았다.그 안에는 「서유기」의 주연으로 삼장법사를 비롯,손오공·저팔계등을 조소한 외로도 「팔십일난」을 도해한 동굴,동굴밖 언덕위로는 잠참의 입상과 그의 대표작인 「화산운가송별」을 새긴 시비가 있었다.그 시비에 새겨진 첫 절은 이러했다. 「화산돌올적정구, 화산오월화운후. 수운만산응미개, 비조천리불감래」 화산이 우뚝 적정 어귀에 섰거늘, 오월이라 불꽃 구름 뭉게 뭉게. 불꽃 구름 엉긴 채 풀리지 않거늘, 천리길 나는 새도 얼씬할 수 없네) 필자가 찾은 때는 다행히 쾌청한 9월중순 이어서 인지 불꽃구름커녕 흰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 진하디 진한 쪽빛 하늘 뿐이었다.그 쪽빛에 적갈의 산빛,골짜기와 석굴,길가에 굴러가는 돌멩이조차 일색으로 빨갰다. 그런데 그토록 숨 막힌 빨간 모랫벌과협곡에도 서원의 의지는 굴을 파고 예술의 꽃을 피웠었다.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이 그것이다. 화염산 주봉 동쪽 기슭엔 광장이 닦여 있었다.그 왼편엔 「서유기」의 일사삼도의 조상을 세웠는데 초입의 서주천성원에서 보았던 그것보다 규모가 큰데다 훨씬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었다.그 바른편 계단으로 내려가면 황갈색의 가파른 벼랑이 무르토크강(목두구))을 굽어 보고 있었다.과연 「베제크리크」란 지명이 「산 허리」라는 위구르말을 딸만했다. 기록상으로 석굴의 수는 83개라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50여개이며 그중 벽화를 소유했던 것이 40여개요 벽화의 총면적은 1천2백㎡라고.그것들은 열차의 창을 방불케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고,그 내부는 대체로 석굴의 길이 20m에 5m의 폭과 5m의 높이의 장방형,거기다 천장은 동그란 궁륭식이라 쿠차의 키질,돈황의 막고굴에 비해 훨씬 넓고 시원했다. ○일부 벽화 손실 아쉬워 기원6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금 위구르족의 조선인 고창왕국씨들의 왕가 사원을 비롯,당시 불가의 승려·신도들의 승방,고승을 기리는은굴,혹은 그들이 좌선하던 비가라굴로 쓰였었다.당대의 문헌인 「서주도경」에 고창지역 불교의 승지로 소개한 「영융굴사」가 바로 베제크리크 천불동인 것이다. 여기 벽화는 비록 석가모니 전생의 사적을 선양하는 본생고사를 비롯,서원도·경변도·공양상·인연고사등 불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왕공 귀족과 공양 신도들의 복식·가옥·거마·기악등을 통해 당시 불교를 신앙하던 회골사람들의 생생한 생활과 문화를 볼수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했다. 특히 33호 석굴의 「왕자거애도」에 그려진 여러나라 왕자의 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은 마치 오늘날 정상들의 모임을 발불케했고,39호 석굴의 커다란 공양 보살의 풍윤한 얼굴과 굵직한 청화의 무늬,그리고 31호 석굴의 설법도에 그려진 보살의 성장과 복식등은 생생한 역사와 문화가 묻혀 있음을 직감케 했다. 그러나 20호 석굴과 27호 석굴에서 만난 복사물의 대체와 훼손된 잔화를 대하면서 허탈과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특히 20호 석굴의 서원도,회골국왕과 왕후의 형상은 10세기 당시 회골국 복식을 알수있는 증거임에도 절취된 채 지금 영인된 사진만 걸려 있음은 27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필자가 참관한 9호,37호등 석굴에서도 불상의 눈이 뭉개지거나 벽면을 도려낸 칼날의 선이 남아 여기 저기서 수난의 흔적은 완연했다. 베제크리크의 수난은 크게 두번 있었다.13세기말,몽골의 말굽 아래 처음 망가졌고,그를 전후해서 이슬람교가 흥성하면서 불교의 석굴은 쇠락을 거듭하였다.또 한번은 금세기초인 1902년,독일의 그륀베델과 로코크 등이 네차례나 답사를 빙자한 예술품의 절취가 있었다. 그 속에는 20호,27호 석굴의 것 말고도 회골귀족과 몽골인들의 복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공양도」와 회골문자가 들어 있는 「본생고사도」등이 절취당한 것은 통석할 일이다.더구나 그중 베를린 박물관으로 납치되었던 벽화 일부가 2차대전의 전화에 소실되었다니 서역의 찬란했던 회골문화의 운명도 꽤나 기구한 것이었다.
  • 하계수련 수녀 7명 익사·실종/삼척군 앞바다

    ◎해변산책중 실족동료 구하려다 연쇄 참변/서울·광주 까르다스수녀원 소속 【삼척=조한종기자】 19일 하오 3시30분쯤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부남2리앞 해변에서 하계수련에 참가중이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천주교 까르다스수녀원(이사장 김순자) 수녀 한경임씨(31)등 5명이 파도에 휩쓸려 숨지고 김수미씨(29)등 2명이 실종됐다. 이날 사고는 까르다스수녀원의 전남 광주 본원과 서울 분원등 전국의 수녀 96명이 지난 16일부터 삼척군 근덕면 부남2리 수련원으로 하계수련회를 와 이가운데 13명이 수련원에서 1㎞쯤 떨어진 해변을 평소에 입고지내던 수녀복 차림으로 거닐던중 김수미수녀(29)가 바위에서 실족,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함께갔던 동료 수녀 12명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사슬을 만들어 구조작업을 하던중 갑자기 밀어닥친 파도에 휩쓸려 일어났다. 사고가 난 부남2리 해변은 철조망이 쳐진 수영금지 구역으로 사고당시 해변에는 2m가량의 파도가 일고 있었으나 수녀들은 일반인들의 눈을 피해 한적한 해수욕을 즐기려다 이같은 변을 당했다.사고가 나자 경찰은 민간인구조대와 인근 군부대등의 협조를 얻어 잠수장비등을 동원,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까르다스수녀원은 1939년 세계2차대전에 참전한 이탈리아 군종신부였던 안토니 가보리신부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일본에서 창설한 반관상수도회로 우리나라에는 1957년 광주에 처음 진출해 현재 14개 교구가운데 대구와 인천교구를 제외한 12개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수녀원은 각 교구의 성당에 수녀 1∼2명씩을 파견,전교활동을 하는 외에 양로원과 고아원·탁아소·유치원·병원등도 운영하고 있다. ◇사망자 ▲한경임(31·제주도 제주시건입동 1274의 30) ▲최소영(24·서울시 용산구 이태원2동 243의 8) ▲이난희(27·전남 나주시 성북동 성북아파트 112동 103호) ▲고윤임(24·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2215) ▲임미순(31·서울 강남구 방배동소라아파트 다동 714호) ◇실종자 ▲이숙희(25·전남 나주군 노안면 양천리) ▲김수미(26·광주시 광산구 원2동 544의 19)
  • 무형문화재 4호/갓일 기능보유자/고정생씨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의 기능보유자 고정생씨(85·여)가 1일 상오9시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상동 2247 자택에서 별세했다. 고씨는 갓일의 양태기능보유자로 지난 80년 지정됐다.발인은 3일.연락처(064)83­7522.
  • 칠머리당굿 기능보유자/안사인씨

    【제주=김영주기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71호 칠머리당굿 기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안사인씨(62)가 5일 상오2시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2651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지난80년 11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안씨는 칠머리당굿을 비롯,영등굿ㆍ연물놀이 등 제주도내 주요 민속놀이를 발굴,재현하고 후배를 양성하는데 힘써왔다. 발인은 8일 상오6시,장지 제주시 노형동 공설공원묘지. 연락처(064)83­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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