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의硏-일선교사 중·고교 사회교과서 16종 분석
“마지막 한 그루 나무가 잘려지고,
마지막 강물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히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순 없다는 것을….”
캐나다 중앙부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크리(Cree)족’의 한 예언자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오랜 세월, 자연을 수탈의 대상으로만 삼아 온 인류 문명의 어두운 결말을 내다본 불길한 경고로도, 파멸에 이르기 전에 현명하게 맞서라는 잠언으로도 읽힌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급속한 감소, 북극 빙하가 수십년내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전망, 그리고 초강대국 미국을 무릎 꿇린 태풍 ‘카트리나’ 등 인류는 여전히 환경에 위해를 주고 있지만 자연의 반격 또한 점점 거칠어져 가고 있다.
●“환경교육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인디언 예언자의 말대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면, 그 주체는 누구일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물려 줄 책임이 있는 어른들의 당연한 몫이지만 ‘미래 세대’도 이에서 빠질 수는 없다.
환경정의연구소(소장 한면희)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환생교)’은 이런 점에 천착해 지난 2001년부터 청소년들이 배우는 중·고교 교과서의 내용을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분석해 왔다. 여러 환경문제에 대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떤 안목으로, 어떻게 해결책을 찾도록 가르칠 지에 대한 의무가 현 세대에 주어져 있는데, 그 주요한 수단이 ‘교과서를 통한 환경교육’이라는 것이다.
수년 전 중·고교 선택과목인 ‘환경교과서’를 도마에 올린 데 이어, 올해엔 ‘사회교과서’를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달 28일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과 함께 개최한 ‘중등 사회교과서의 환경 건전성 평가’ 세미나를 통해 결과를 발표했다. 사회교과서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설득력이 높다.“현대사회에서 환경문제는 단순 재해와 같은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인간가치와 욕구, 그리고 사회적 제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환생교 이수종 사무처장)”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들 단체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들이 배우는 16종의 사회교과서를 꼼꼼히 분석한 뒤,‘환경 지속성’ 등 관점에서 이를 평가했다. 이들은 “학교 환경교육이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진단하면서도,“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배워도 될까?”란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대목도 분석대상 교과서 대부분에서 발견됐다고 지적한다.
●핵폐기장 문제 등 ‘님비´ 탓으로
우선 환경문제의 주체와 원인 등에 대한 입체적 접근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디딤돌출판사에서 펴낸 고교 1년 사회교과서 ‘열대우림 파괴’(120쪽)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림설명을 통해 “열대림 축소의 주 요인은 (원주민의)화전경작 때문”이라고 썼을 뿐 다른 어떤 요인도 제시하지 않았다. 요컨대 지구의 ‘산소통’ 역할을 하는 열대림이 빠른 속도로 감소해 인류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원인을 전적으로 원주민 탓으로 돌린 셈이다.
조지연(서울 양재고) 교사는 “열대우림 파괴의 가장 큰 원인은 선진국의 목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벌목과 (대부분 선진국에서 소비되는)식육용 가축을 키울 목장을 만들기 위한 벌채”라면서 “이런 사실을 누락시킨 것은 사안을 왜곡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쟁점과 갈등을 불러일으킨 환경문제에 대한 편향된 시각도 노출됐다. 거의 모든 고1 사회교과서들이 핵폐기장과 화장장, 쓰레기소각장 건설과 지역주민의 반발을 언급하면서 이를 ‘님비(NIMBY·내 뒷마당엔 안된다)’ 및 지역이기주의 현상으로 부각시켰다.
직접적으로 환경권·건강권을 침해받는 주민쪽에서의 접근은 부족한데, 이럴 경우 민주사회에선 당연한 시민의 권리주장을 학생들이 부정적 안목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얘기다.‘성숙한 시민의식의 출발점’이란 시각을 제공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균형잡힌 관점을 갖추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일방적 편들기’에 가까운 중3 교과서의 기술은 특히 문제로 꼽혔다. 핵폐기장 등 사례에서 주민과 환경단체는 이유없는 반발의 당사자로, 정부는 ‘국가 중요사업이 갈등으로 표류하는 것을 걱정하는 산업자원부 관계자’ ‘반발하는 주민들을 일일이 방문하는 공무원’ 등으로 묘사됐다. 이수종 사무처장은 “사례로 든 대부분의 환경쟁점 사안들이 진행과정이나 근본 원인에 대한 설명을 배제한 채 그저 갈등을 겪는 일반적 사건으로만 설명돼 있다.”면서 “다양한 관점 제시없이 갈등사례를 반복 나열할 경우 환경현안을 기계적·습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교육 양·질 향상시켜야”
중·고교에 환경과목이 선택적 독립교과(중학교는 ‘환경’, 고등학교는 ‘생태와 환경’)로 신설(1995년)된 지 10년이 지났다. 환경문제가 국내·국제적으로 인간의 삶과 생태계 전반의 화두로 떠오른 추세에 맞춰 환경교육의 관심도 꾸준히 높아져 왔다.
그러나 양적 측면에서의 환경교육은 지난해 하향곡선을 그렸다.2000년대 들어 3년 연속 증가해 온 일선학교의 환경과목 선택률이 지난해 뚝 떨어진 것이다.(그래프 참조) 중학교의 경우 전국 2858개교 가운데 368개교(12.9%), 고등학교는 2071개교 중 565개교(27.3%)로 전체 평균은 18.9% 수준에 불과했다. 더욱이 전체의 절반을 웃도는 부산(78%)과 충북(55%)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도는 5∼10%대 수준에 그칠만큼 관심도가 낮았다. 이 사무처장은 “학교 환경교육의 교육적 효과가 의문시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여러 선진국처럼 모든 교과에서 분산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환경교육 내용들이 생태적 합리성을 갖추도록 수정·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현재 환경관련 교과의 교육과정 개정을 진행 중인데, 교육부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다음달 개편시안을 마련해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환경부는 “현재로선 선택과목인 환경교과를 의무화로 바꾸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창규 민간환경협력과 사무관)”이라고 판단, 각 과목에 환경관련 교육의 양과 질을 확충·강화하는 쪽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환경과 사회, 인간의 삶과 생태계를 바라보는 올바른 안목을 키워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