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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한라건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풀무질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은 정인영(85) 전 한라건설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50) 회장이다. 한라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이 황무지에서 일궈낸 그룹이다. 형님과 함께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창업했다. 소비재·경공업 제품보다는 장치산업 중심으로 키웠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재계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던 기업 집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계열사끼리 상호출자·지급보증이 족쇄로 작용, 그룹 전체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운명을 맞게 되면서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한라건설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한라건설은 연간 매출 규모 8000억원 규모인 중견업체로 자회사도 없다. 그래서 한라건설은 한라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직책도 ‘한라건설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 직책도 ‘한라건설 명예회장’이다. ●미군 공병대 일감 현대건설 연결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 야간 YMCA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운명은 한국전쟁이 갈라놓았다. 외신부 기자였던 그는 형과 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고, 형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부산까지 내려간 두 형제는 두 끼 먹을 밥값밖에 없어 유일한 재산이던 손목시계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를 들렀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했다. ‘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동생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영이가 통역으로 취직하면 미군 식당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가져와도 먹는 것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통역 취직을 했다.”고 회고했다. 자서전은 “아우가 공사라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병대 장교 통역을 자원했는데 일이 뜻대로 잘 풀렸고, 공병대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줬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를 인연으로 정 명예회장은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휴전 이후에는 국내 공사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 그러나 공사를 잘못 수주하는 바람에 미군 공사에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넣고도 모자라 ‘왕 회장’은 자신의 집과 동생, 매제(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85)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지만 엄청난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57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수주,40%의 이익을 거두면서 ‘건설 5인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그 뒤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쟁력을 기르고 ‘세계속의 현대건설’로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맡았다. ●현대양행에서 출발, 중공업에 치중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1962년에 세운 현대양행에서 출발한다. 이 때는 정 명예회장이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질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중공업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62년 경기도 군포에 독자적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현대양행이다. 그는 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현대양행은 80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중공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인 130만평 부지에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는 장치산업 중심의 그룹으로 우뚝 섰다.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 매출 5조 3000억원,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재계 12위의 대기업 군으로 성장했다. 주력 기업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을 키우는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은 유별난 ‘독서광’이라고 말한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캐내 읽을 정도였다. 집무실에서도 불편한 손으로 영어단어를 외우고 돋보기를 들이대면서까지 셰익스피어전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휠체어의 부도옹’‘오뚝이 기업인’‘프런티어 기업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명예회장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터라 2세에게는 계열사 사장을 맡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재계 12위그룹, 건설이 명맥 유지 96년 말 한라그룹의 상황은 다른 대기업 집단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와 지급보증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96년 말 한라의 경영상태는 부채비율이 현상유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기계는 수익성이 높고 지주회사 성격을 지녔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라공조와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주력기업에 속했던 한라중공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공업을 뺀 수익성이 좋은 3개 주력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무를 떠안아야 했고 특히 중공업에 발목이 잡혔다.8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삼호공단 조성 및 조선소, 플랜트 공장 건설이 뒤따랐다. 이 때 시작된 자금난이 그룹 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아도 된다.96년 조선소가 가동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투자비를 일시에 회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룹 총수도 전셋집,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충실 한라그룹이 쓰러질 때는 정몽원 회장 체제였다.97년 1월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외환위기 파고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그룹 해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결국 정 회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우량 회사와 적자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은 물론 명예회장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렸다. 재계 12위 그룹 총수였던 명예회장은 지금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잘 나가던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을 팔고 싶어도 중공업에 서준 지급보증 때문에 매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찾던 중 미국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10억달러 정도를 투자, 주력 업체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를 따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기아나 한보 등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업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한라는 종업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도 이후에도 생산성이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각된 계열사들이 곧바로 정상을 되찾고 우량 기업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룹 경영권 차남에게 지명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국(52)씨는 89년부터 92년까지 한라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94년 말 정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차남을 그룹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형 몽국씨는 95년 초부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한때 배달학원(한라대학교)이사장을 맡고 부인 이광희(51) 여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2남으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89년 만도기계 사장을 거쳐 92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부친과 함께 한라를 키웠다. 차남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형제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2003년 형 몽국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룹 기획실에서 임의 처분했다며 민형사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형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민사건은 형제간의 원만한 화해로 ‘왕자의 난’을 비켜갔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홍두 사장이 있다.78년 한라 공채로 입사,96년 관리 분야 부사장에 올랐다.2003년 이후 사장을 맡고 있다. 한라그룹의 부침을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조로운 혼맥, 독실한 기독교 집안 한라그룹의 혼맥은 다른 현대가처럼 얽혀있거나 거물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없다. 결혼은 자유로웠고 상대 집안도 평범했다. 몽원 회장의 어머니인 고 김월계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자연히 두 형제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매쟁이도 교회였다. 두 형제가 모두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장남 몽국씨는 이광희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을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알려졌다. 동생 정 회장도 역시 교회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인화(48) 여사를 만났다. 홍여사는 TBC아나운서 출신이다. 장인·장모가 약사였고 굳이 따지자면 장모가 서상목 전 국회의원 누나다. 정 회장은 최근 다니던 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명예회장도 늦게 교회를 나왔고,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근에는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곤 한다. chani@seoul.co.kr ■ 성우그룹 성우그룹의 모태는 현대시멘트다. 1970년 1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순영(83)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성우그룹의 역사는 출발한다. 당시는 성우그룹이 아닌 현대시멘트라는 단일 회사였다. 현대 방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성우그룹도 ‘왕 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일부 사업을 떼어주면서 시작됐다.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을 때라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현대건설이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즈음이라서 분가도 쉬웠다.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다. 성우리조트를 설립하고 사옥을 현재의 서울 서초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룹 우산 키우기 미미 정순영 당시 현대시멘트 사장은 5년 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 그러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그룹의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룹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가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자동차 부품산업이었고,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발전 추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룹 우산을 제대로 펴기 시작한 것은 현대시멘트를 독립 운영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다.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옥을 지금의 서울 잠원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성우그룹’이 통용되기 시작했다.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사, 건설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몇몇 업체는 부도를 맞기도 했고 그룹 위상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그룹보다 경영권 이양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경영권 이양, 순조롭게 마무리 정 명예회장은 2세들에게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주로 시멘트를 거치도록 했다. 다만 딸과 사위들은 성우그룹 경영과 거리를 두었다. 장녀도 사위가 먼저 세상을 떴지만 단지 현대시멘트 고문으로 있다가 최근 별세했다. 차녀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사위 역시 개인사업을 한다. 경영권은 97년 1월에 이전됐다.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거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단순 주식분배 차원이 아닌 전공을 찾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이던 현대시멘트를 잇도록 했다. 자신과 정 회장이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분야다. 현대시멘트는 시멘트 사업부와 성우리조트를 개발·운영하는 레저사업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3∼4위를 지키고 있다. 성우종합건설도 장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반 건설사처럼 민간 공사 수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체 공사와 관계사 공사를 벌일 정도다. 신생 회사 성우이컴도 정 회장이 지휘한다. 골프장 관리·운영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4월에는 형제간 계열 분리도 마쳤다. 주력기업인 현대시멘트는 부실기업인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성우캐피탈 등 3개사를 계열사에서 제외해버렸다. 정몽훈(46) 성우전자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이로써 형제간 지분정리까지 마치게 됐다. 둘째아들 몽석(47) 회장은 현대종합금속을 받았다. 포항 공장에서 용접봉과 카바이트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현재는 용접봉만 생산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많은 양을 납품한다. 3남 몽훈 회장은 성우전자, 성우캐피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44) 회장은 88년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맡아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를 물려받았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시트, 알루미늄 휠 등을 생산하는 회사. 포항공장에서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충주공장에서는 자동차 알루미늄 휠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시트 생산 부문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매각했다. 에너셀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다.㈜성우는 육상 시멘트 화물 운송 회사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우그룹 혼맥 현대가의 혼맥이 그렇듯이 성우그룹에도 특별히 튀는 집안이 없다. 그런데도 성우그룹은 혼맥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린다. 혼맥이 비치는 자체를 싫어한다. 장남인 현대시멘트 몽선 회장과 결혼한 김미희 여사(작고)는 집안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장남 결혼을 시키면서 말 그대로 평범한 교육자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장인 김태휴씨는 뒤에 현대성우리조트 고문을 지냈다. 김수진 서울대 교수, 차연택 현대백화점약국 대표, 최동일 연세산부인과원장, 정 회장, 전동진 경원대 교수 등이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김 여사는 93년 10월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둘째딸과 함께 불의의 화재사고를 당했다. 이때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전용기를 내주어 일본 행림대학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았으나 아깝게도 함께 세상을 달리했다. 이를 계기로 사업상 앙금이 있던 왕 회장과 조중훈 회장이 화해하는 계기가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진영심(36)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으로 알려졌다. 둘째아들 현대종합금속 몽석 회장 처가도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던 평범한 집안이라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 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장인은 직업군인이었다. 장성으로 예편한 뒤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다는 정도만 알려진다. 하지만 넷째 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결혼 때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인촌 김성수가와 사돈을 맺는다. 몽용 회장의 장인이 체육계 원로인 김상겸 박사다. 김 박사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막내아들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평생을 바친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지난해 별세했다. 김 박사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스키협회회장,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고려대 사범대학장 등을 지냈다. 장녀, 차녀도 평범한 집안과 결혼했다.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대(44)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은 정 회장의 매제. 미국 하트포드대학원 경영·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88년 현대시멘트에 입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올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성우리조트는 엄준섭(53·부사장) 본부장이 정 회장을 돕고 있다. 성우이컴 김연문(55) 대표이사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74년 입사해 경리파트를 맡으면서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했다.2001년 부사장에 오른 뒤 2002년부터 이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골프장 개발 운영업을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복지부문 예산비율 두배로 확대”

    기획예산처는 앞으로 복지부문에 대한 재정지출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 오는 2030년쯤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신 경제분야에 대한 지출은 대폭 줄여 민간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또 재정의 경기대응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현행 단일 연도 균형방식을 5∼10년 단위의 중장기 균형방식으로 바꿔 경기순환 국면에 따라 재정지출 규모를 조절하는 등 다양한 재정대응수단을 활용하기로 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21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중장기 정책방향과 2005년 주요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예산처는 앞으로 국가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는 국가전략기획본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중장기적 시각에서 재정당국이 나가야 할 역할과 과제에 초점을 맞춰 정책목표와 추진전략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예산처는 우선 중장기 재원배분을 선진국형 구조로 바꿔 복지분야 재원배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이로 인한 국민부담을 덜기 위해 경제 분야 지출을 대폭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대신에 복지부문 예산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분야를 중점 지원하고 ▲재정건전성을 위협하지 않는 선을 유지하며 ▲구조개혁을 통해 기존의 옳지 않은 방향으로 배분되던 복지예산을 정비하는 등의 3가지 원칙을 확립하기로 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기술 있으면 ‘창업 OK’

    기술 있으면 ‘창업 OK’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의 틀이 대폭 바뀐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회사 차리기가 쉬워지지만, 그동안 과도한 정부보호의 우산 아래에 있던 기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지원이 끊긴다. 창업과 퇴출을 활성화함으로써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미국 실리콘밸리형으로 국내 중소·벤처 생태계의 체질을 바꿔가겠다는 목적이다. ●기술신보 창업·벤처 전담 20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제도 개편안을 마련, 이르면 다음달 종합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보증체계 개편안은 한정된 자금을 기술력 있는 창업자 중심으로 배분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들은 퇴출시킨다는 게 핵심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양대 중소·벤처 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기능을 명확히 구분, 신보는 기존 업무를 계속하되 기술신보는 창업·벤처기업 전담기관으로 차별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두 기관은 업무가 엇비슷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기술신보는 100% 신기술 사업자에 대해서만 보증을 서도록 하는 내용이 기술신용보증기금법에 명문화된다. 지금까지는 신기술 보증을 75%까지만 하면 됐다. 기술신보는 기술평가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12일 중앙기술평가원을 신설했다. 중앙기술평가원과 기존 10개 지역기술평가센터를 통해 정밀 평가에 따른 보증을 지난해 15.2%에서 오는 2007년까지 50%로 늘릴 계획이다. ●보증료 최고 두배로 오른다 정부는 또 국민세금이 보증의 재원이 되는 만큼 수혜자 부담을 대폭 높이기로 했다. 신보는 기준 보증료 요율을 현행 1%에서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2%까지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기술신보도 기준보증료 요율을 최고 1.5%까지 올리기로 했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보증을 통해 혜택을 보는 기업이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보증료 체계개편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동안 꾸준히 권고해 왔다. 케네스 강 IMF 서울사무소장은 최근 “한국 금융권이 신생 기업보다는 보증확보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기업들에 신용대출을 해주는 경향이 강했다.”며 “특정기업에 보증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용보증 대출을 연장할 경우 더 높은 보증료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년 넘으면 보증 중단 검토 일정시점이 되면 보증을 끊어버리는 ‘보증졸업제도’도 도입된다. 신보는 보증기간 10년 이상, 보증금액 15억원 이상의 경우 보증 만기도래 시점부터 3년간 유예기간을 준 뒤 보증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신보의 경우, 한 기업에 10년 이상 보증이 지원되는 비율이 전체 보증액의 13%에 달하고 있으며, 한 기업에 20억원 이상 지원된 사례도 18%에 이른다. 정부 관계자는 “한정된 재원을 여러 기업들에 나눠주는 한편 보증을 통해 간신히 생명만 유지해온 한계기업들의 퇴출 등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관이 신보·기술신보에 내는 출연료도 차등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금융기관이 신보와 기술신보에 낸 돈은 6525억원인 반면 보증사고 등으로 변제받은 돈은 5배에 육박하는 3조 1417억원에 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강동수 연구위원은 “출연료율이 보증사고율, 대위변제율 등 실적과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신용심사가 허술해지는 등 부작용이 컸다.”고 지적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내수중심 경제회복 조짐 뚜렷 지표보다 체감경기 더 나을것”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일 “경기회복 조짐이 분명하게 관찰되고 있으며, 특히 올해에는 내수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4%대(경제성장률)라고 하더라도 체감경기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 부총리는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민간경제연구협의회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기회복이 실물경제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최근 여러 지표들이 나오는데 정부는 한 두가지 지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거시경제 안정차원에서 확장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경기회복 조짐은 과거처럼 경기부양의 한 측면에서 나타나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결과로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하고 “인플레이션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정 속 성장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간담회에는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 노성태 한국경제연구원장 등 15개 연구소 전·현직 연구원장이 참석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우아한 침실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우아한 침실

    결혼식 준비과정은 행복한 추억이다.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준비과정이다. 너무나 중요한 단계라 아무리 발품을 팔아 웨딩드레스를 입어봐도 고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신부를 가장 예뻐보이게 하는 드레스는 커튼을 열고 나온 바로 그 순간,“아∼”하는 탄성이 나오게 하는 드레스다.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트렌드라는 것이 웨딩드레스에도 있는 만큼 흐름을 따라주는 것이 좋다. ●아름다운 신부를 위하여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황재복씨는 “올 시즌에는 로맨틱하고, 세부장식을 배제한 심플한 스타일을 트렌드로 꼽을 수 있다. 노출이 심하지 않으면서 개성이나 스타일에 맞춰 약간의 장식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소재나 장식은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지만, 따뜻한 봄·여름 기운이 느껴지도록 가벼운 느낌의 실크와 레이스를 주로 사용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실루엣을 연출한다. 드레스 전체에 보석·구슬 장식을 해 조명을 받으면 화려하게 반짝이도록 하는 게 유행이었지만, 최근에는 세부장식을 제한하면서 약간의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이 인기다. 가슴이나 스커트 아래, 허리 뒷부분을 장식해 산뜻하면서 세련된 느낌으로 표현한다. ●신부 체형과 장소에 따라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부의 얼굴형과 체형이다. 키가 작다면 목선을 드러내는 것이 기본. 통통한 경우는 어깨를 감싸고, 말랐다면 장식을 위쪽으로 올려 시선을 상체에 고정시켜 키가 커보이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키가 크고 통통한 체형은 심플하면서 절제된 장식으로 시선을 한쪽으로 모아주는 것이 좋다. 키가 크고 말랐다면 풍성하고 화사한 스타일이 좋다. 예식장소도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데 중요한 요소다. 예식장이 현대적인지, 고풍스러운지 살펴보고 그에 따른 드레스 스타일을 택하는 것이 신부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 모던하면서 화려한 분위기라면 드레스는 심플한 것이 좋다. 예식장 분위기가 안정적이고 차분하다면 화사한 웨딩드레스로 신부의 아름다움을 확실히 살릴 수 있다. 야외 결혼식이라면 산뜻한 느낌의 웨딩드레스를 골라보자. 드레스 뒷자락이나 베일도 길게 늘어뜨리지 않으면서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로 야외의 싱그러움에 녹아드는 스타일을 추천한다. 성당이나 교회 등 약간 어둡고 넓은 장소라면 보석, 레이스 등의 장식으로 신부에게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화려하게 하는 것이 좋다. ■ 자기와 나의 러브하우스 둘만의 보금자리인 신혼집을 꾸미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특히 요즘 신혼부부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신혼집 인테리어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침실과 부엌. 늘 첫날밤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고, 알콩달콩 함께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부엌, 어떻게 꾸밀까. ●주방은 새콤달콤하게 넓지 않은 신혼집엔 흰색의 싱크대가 좋다. 광택이 있는 하이그로시 느낌의 흰색 싱크대라면 관리도 쉽고 넓어보인다. 여기에 넓은 주방에서 보조조리대 기능으로 이용하는 아일랜드식 조리대를 작은 신혼집에 과감하게 식탁대신 이용하는 것도 좋다. LG데코빌의 신보현 디자이너는 “아일랜드 조리대는 평상시에는 식탁으로, 요리할 때는 조리대로 이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전자레인지나 밥솥, 냄비 등을 수납할 수도 있는 1석3조의 효과를 가진 작지만 강한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저렴하게 주방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시트지를 사다가 붙이는 것이다. 접착식의 시트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라 넓은 면적보다는 좁은 곳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벽면 일부를 장식하는 경우에는 타일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특히 위생 관리가 중요한 부엌에서는 타일이 효과적이다. 초록 노랑 분홍 등 작고 상큼한 캔디컬러의 모자이크 타일을 주방 창문 테두리나 싱크대 벽면의 포인트로 붙이는 것은 쉽고 간편하다. 서울 을지로 3가 타일거리나 인터넷 타일이야기(tilestory.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침실은 알콩달콩하게 신혼집에서 가장 궁금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 침실을 꼽지 않을까. 침실은 로맨틱할수록 좋다. 흰색으로 치장한 로맨틱한 분위기에 도전해볼만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소 부담스럽다. 로맨틱한 가구와 벽지는 쉽게 싫증을 낼 수 있으므로 조명, 이불, 쿠션 등의 소품으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좋다. 최근엔 분홍, 파랑, 보라 등 강한 색상을 활용해 화려하면서 이국적인 침실을 만드는 것도 인기다. 실크 새틴과 같이 촉감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광택이 있는 원단에 독특하고 입체적인 자수 장식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수납의 기능성과 분위기를 한꺼번에 잡을 수도 있다. 침대와 3단 서랍장, 협탁, 베네치안 스타일 거울로 이뤄진 한샘의 ‘댄디 5002 그레이오크 침실패키지’는 검은색 계열의 오크와 패브릭으로 절제된 화려함이 돋보인다. 까사미아의 ‘페로’는 천연무늬목의 결을 그대로 살려 현대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혼합했다. ■ 연지곤지 예쁜 메이크업 신부 메이크업은 핑크와 오렌지가 좋다. 촉촉하면서도 화사한 피부톤의 표현이 더 예뻐보인다. 피부 표현은 본인의 피부보다 화사하게 한 톤 정도 밝게, 잡티를 가리는 컨실러는 최대한 얇게 펴발라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파우더를 사용하기 전에 살구빛이나 핑크톤의, 립 컬러와 같은 계열의 크림 타입 블러셔를 이용하면 피부가 생기있어 보인다. 보통 파우더로 마무리하지만 적당한 광택이 요구되는 이번 트렌드에 따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눈화장은 은은한 펄감이 가미된 파스텔 계열로 청순하면서도 깨끗하게 연출한다. 파스텔 계열의 바이올렛이나 오렌지 계열을 이용해 피부색과 너무 대비되지 않을 정도로 음영을 주면 화사하다. 눈썹은 본인의 눈썹 결을 살려서 헤어톤과 매치하여 살짝 그린 후 투명마스카라로 결을 살려 빗어준다. 입술은 블러셔 컬러와 같은 계열로 고르고 범벅이 되지 않도록 바른다. ●스튜디오 촬영에서는 굵은 웨이브 머리로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헤어스타일도 매우 중요하다. 스튜디오 촬영에서는 자연스러우면서 화사한 분위기를 위해 굵은 웨이브로 볼륨감을 넣는 경향이 강하다. 긴 머리 신부는 굵은 웨이브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고, 짧은 머리는 웨이브와 컬러감 있는 머리장식으로 귀엽게 연출하는 것이 요령이다. 본 예식의 머리스타일은 웨딩드레스와 한복 모두에 어울릴 수 있는 업스타일이 가장 이상적이다. 동양인의 얼굴형에 가장 어울리며 얼굴이 작아보여 키까지 커보일 수 있다. 완전히 뒤로 넘긴 머리는 실제보다 나이가 들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앞머리를 정리하거나 정수리 부분에 볼륨감을 주어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티아라(왕관), 베일 등이 화려하다면 좀 더 깔끔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이 좋다. ■ 도움말 정샘물 원장(정샘물 인스피레이션)
  • [재계인사이드] 사돈기업 두산·LS “사업도 함께”

    최근 사돈을 맺기로 해 화제가 된 두산과 LS그룹이 이번에는 합작사를 만들어 또 한번 주목받고 있다. LS전선은 19일 삼양중기, 두산엔진과 함께 주조(鑄造) 관련 사업에 공동으로 투자키로 하고 합작조인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5월말 출범하는 합작법인의 지분은 LS전선 50%, 삼양중기 33.8%, 두산엔진 16.2%로 초기 자본금은 140억원이다. 합작법인은 선박용엔진, 사출성형기 및 각종 산업기계류에 사용되는 주물 제품을 생산, 판매하게 된다. 올해 매출목표는 400억원 이상이며 앞으로 190억원을 들여 전북 전주에 1600t 규모의 신규공장을 짓는다. 중국에도 2008년 가동을 목표로 다롄(大蓮)에 1만 3000t 규모의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LS전선은 사출성형기 및 각종 산업기계용 주물 등을, 삼양중기는 선박용엔진 주물 등을 생산한다. 두산중공업이 지분 51%를 갖고 있는 두산엔진은 세계적인 선박용 엔진업체다. LS그룹과 두산그룹의 합작은 최근 ㈜두산 박용만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LS그룹 구자홍 회장의 동생인 ㈜한성 구자철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의 결혼 사실이 알려진 뒤여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S전선 관계자는 “주조사업의 분리를 추진하던 차에 삼양중기와 합작사 설립 의견이 맞았고 이후 삼양중기의 주거래처인 두산엔진이 자연스럽게 지분에 참여한 것”이라면서 “두 집안의 결혼과 합작이 겹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결혼과 합작사업 못지않게 사돈이 된 박용만 부회장과 구자철 회장의 남다른 우정도 화제를 낳고 있다. 경기중·고 동창으로 ‘40년지기’인 둘은 지난 2003년 매물로 나온 대한주택공사의 자회사인 한성을 공동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도가 나 98년 정리가 결정된 한성은 2003년 네오플럭스 컨소시엄에 인수됐는데 네오플럭스는 박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전문회사다. 컨소시엄에 지분 74.42%를 투자한 세일산업은 바로 구 회장이 LG상사를 떠나 독립하면서 설립한 회사. 친구가 힘을 합쳐 ‘알짜기업’ 인수에 성공한 뒤 사돈까지 맺기로 한 것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토종 사모펀드 ‘날갯짓’

    토종 사모펀드 ‘날갯짓’

    “외국계 사모펀드와의 경쟁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최근 국내 최초로 사모투자펀드(PEF) 전문회사를 차린 ‘보고(Bogo)인베스트먼트’ 변양호(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대표는 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제 토종 PEF 시대가 열렸다.”며 이렇게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 국내 자본에 의한 PEF 설립이 허용된 뒤 지지부진하던 토종 PEF 활동이 날개를 달고 있다. 금융당국의 활성화 대책과 국민연금 참여 등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올 상반기 중 6∼7개의 토종 PEF가 선보일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국내시장을 장악한 외국계 펀드들과 경쟁하려면 자금력·전문인력을 갖춰 수익성을 검증받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토종 PEF 활성화 모색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은행 및 미래에셋 자회사인 맵스자산운용이 PEF를 출범시킨 뒤 지금까지 승인받은 PEF는 5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의 투자기업도 우리은행이 지분을 취득한 건설회사 우방 1곳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당국은 최근 업계 관계자 등과 함께 ‘PEF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규제완화 등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이에 따라 그동안 늦춰졌던 은행·증권사들의 PEF가 속속 출범할 전망이다. 국책은행인 산업·기업은행을 비롯, 하나은행·대우증권 등이 올 상반기 중 설립을 추진 중이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가 설립한 PEF에 다른 자회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이 최근 개정되면서 4개월째 준비해온 신한금융지주의 신한PEF도 신한은행·연기금 등의 자금을 유치,5월 중 펀드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최근 본격적인 자금모집 활동을 시작한 보고인베스트먼트의 보고PEF도 6월 말까지 국내외 자금을 유치해 7월쯤 펀드를 출범, 투자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자산운용업계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PEF 투자도 관심의 대상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3500억원을 PEF에 투자하기로 하고, 오는 20일까지 운용위탁사 선정을 위한 접수를 진행한다. 오는 6월 초쯤 PEF 2곳에 각각 2500억원,10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할 예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다수 은행·증권사 PEF가 국민연금 자금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력·매물 여부가 관건 토종 PEF가 성공하려면 자금력은 물론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전문적인 운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 이인영 사모펀드팀 부장은 “외국계의 막대한 자금력과 검증된 수익률에 비해 토종 PEF는 초기 단계”라면서 “기업에 대한 접근성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외국계와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아직 성공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아 추가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연기금 및 보험·학교재단 등의 자금을 유치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쏟아졌던 구조조정 기업들이 많이 정리돼 PEF시장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보고PEF 변양호 대표는 “외환위기 때처럼 물량이 많지 않고 인수가 쉽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매물이 많이 있다.”며 주변의 우려를 일축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삼성 ‘2차 디자인혁명’ 선언

    삼성 ‘2차 디자인혁명’ 선언

    ‘감성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삼성스타일을 만들어라.’ 1993년 신경영 선포에 이어 96년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언했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의 본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삼성 디자인의 재도약을 주문했다. 삼성은 이 회장이 14일 밀라노에서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어 ‘월드 프리미엄 브랜드’를 육성키로 하고 그룹 차원의 디자인 역량 강화를 위한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이 회장과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부회장 및 김인주 사장, 삼성전자 이기태(정보통신총괄, 최지성(디지털미디어총괄)·이현봉(생활가전총괄) 사장, 제일모직 제진훈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회장의 외아들인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와 둘째딸인 제일모직 이서현 상무보도 참석했다. 이 회장은 회의에서 “최고 경영진부터 현장 사원까지 디자인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해 삼성 제품을 명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월드 프리미엄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브랜드 등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해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모두 넘어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 96년 신년사에서 “기업 디자인은 상품의 겉모습을 꾸미고 치장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은 이후 독일, 일본, 미국 등 3곳에 불과했던 글로벌 디자인 거점을 6곳으로 늘리고 650명 수준이던 디자인 인력을 1000명으로 늘리는 등 디자인 강화에 박차를 가해 왔다. 삼성은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을 통해 누가 봐도 한눈에 삼성 제품임을 알 수 있도록 고유의 철학과 혼을 반영한 독창적 디자인과 UI(User Interface·사용이 편리하도록 제품 모양이나 재질, 기능을 배치하는 것) 체계를 구축키로 했다.‘소니스타일’ 못지않은 ‘삼성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또 국적·성별 등을 가리지 않고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할 천재급 인력의 확보와 함께 기존 디자인 인력들의 역량을 강화키로 했다. 디지털미디어, 휴대전화, 가전, 패션 등 디자인 비중이 큰 사업부문의 디자인 강화 전략도 공개됐다. 이기태 사장은 UI 부문에만 2006년까지 200명 이상의 인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고 이현봉 사장은 디자인금형그룹을 신설하고 핵심인력을 두배 이상 확충하겠다고 보고했다. 제진훈 사장은 올해 신설된 ‘디자인 혁신 R&D팀’과 ‘패턴연구실’ 등을 통해 컬러, 패턴, 소재 등 전 부문을 혁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니 등 선진 제품과 삼성의 주요 제품 100여개를 비교할 수 있는 ‘비교 전시회’를 가진 이 회장과 주요 경영진들은 지난 13일에는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를 관람했다. 이 회장은 “가구는 전자제품, 패션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기호와 욕구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제품”이라면서 “세계적인 명품 가구업체들이 어떻게 유럽의 고급취향 문화를 접목시켜 디자인에 반영해 나가고 있는지 경험해 보라.”고 주문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시중銀, BIS비율 11% 첫 진입

    시중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지난해 말 처음으로 11%대에 들어섰다. 시중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외환위기때 권고안(8%) 밑으로 추락했으나 계속된 구조조정과 경영정상화 노력으로 권고안을 3%포인트 이상 웃도는 수준으로 회복됐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12월 11.31%로 전분기인 지난해 9월의 10.92%보다 0.39%포인트 높아졌다. 자기자본비율은 외환위기 때인 97년말 6.66%에 불과했으나 98년말 8.22%로 회복됐고 2000년 이후에는 10%대를 유지해 왔다. 은행별로 보면 한미은행이 지난해 12월 현재 12.42%로 가장 높았고 이어 우리은행(12.20%), 신한은행(11.94%)의 순이었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위험가중자산에 대한 자기자본의 비율로, 높을 수록 재무건전성이 좋다는 뜻이다. 또 시중은행의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지난해 12월 2.00%를 기록, 지난해 9월의 2.46%에 비해 0.46%포인트 낮아지면서 1%대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98년 말 7.20%에 달했으나 이후 계속 낮아져 지난해 3월 3.14%,6월 2.68%를 기록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1.39%로 가장 낮았고 한미은행(1.40%), 하나은행(1.44%), 제일은행 (1.50%)도 낮은 편에 속했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3개월 이상 연체된 여신 즉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여신을 합한 개념으로 낮을수록 여신건전성이 양호하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지금 대구에선] “기업은 미래다” 투자유치 올인

    [지금 대구에선] “기업은 미래다” 투자유치 올인

    ‘기업이 살아야 대구가 산다.’ 30여년간 권력의 중심으로 정치논리가 지배하던 대구에서 경제논리를 앞세워 지역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대구시 공무원들은 요즘 수시로 지역기업을 찾아 “뭐 도와줄 게 없느냐.”며 기업 지원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지역기업인들은 “진작 좀 그러지.”라면서도 “늦은 감이 있지만 대구시가 기업의 가치에 대해 비로소 눈을 떴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대구는 과거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누가 더 좋은 자리,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가에 관심이 높았고 유망기업 유치 등 미래에 대구가 뭘 먹고 살것인가는 등한시해왔던게 사실이다. 정치논리에 비해 경제논리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 지역기업은 제대로 평가도, 대접도 받지 못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에 올인 요즘 대구시내에는 ‘기업이 살아야 대구가 삽니다.’라는 현수막이 거리마다 물결치고 있다. 기업의 소중함을 알리고 기업인이 존경받고 기업이 사랑받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를 두고 지역 기업인들은 “대구에서 기업이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구시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민원실에는 ‘기업민원전용창구’가 별도로 개설됐고 기업지원에 소홀한 공무원은 문책하는 ‘기업민원처리 평가제’도 도입했다.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지난 해 말에는 기업인과 가족을 위한 ‘사장님 힘내세요’라는 이색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사’라는 식의 비난이 있을 법도 했지만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달성산업단지 분양 성공에 고무 ‘위천국가산업단지만 조성됐더라면‘ 91년 이후 1인당 지역총생산(GRDP) 전국 꼴찌인 대구 경제는 낙동강 오염을 우려한 부산·경남권의 반발로 결국 무산된 위천산업단지에 매달려 10여년을 허송세월했다. 위천산업단지 조성 여부를 놓고 90년대 초부터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대구의 기업들은 더 이상 공장을 지을 부지가 없다며 하나둘 외지로 나가버렸다. 공장용지난이 심각해지면서 기존의 공장용지 가격도 폭등해 대구에 투자하려는 외지기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대구시와 지역경제계는 선거 때마다 터져나오는 ‘장밋빛 공약’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10여년 세월을 허비하면서 대체 산업용지 조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뒤늦게 산업용지 조성에 나선 대구시는 지난해 말 달성 2차 산업단지 분양에 성공을 거두었다.30만평 분양에 321개사에서 45만 1000평을 신청, 제공가능 면적보다 50% 정도 초과했다.30만원대의 국내 최저가 분양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치밀한 홍보전략이 어필했지만 대구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아직 많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여희광 대구시 경제국장은 “입주신청 업체 중 76%가 자동차 기계금속업종이어서 대구의 주력산업이 섬유업에서 기계·금속 관련 업종으로 바뀌는 산업간 구조조정의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는 달성 2차단지 외국인전용지 10만평은 투자금액의 20∼30% 지원, 법인·소득세 7년간 면제 등의 조건을 제시, 해외 투자업체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중견 첨단기업 유치에 집중 대기업이 없는 대구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첨단 중견기업 유치에 눈을 돌렸다. 산업용지난으로 대규모 공단개발이 어려운데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당장 대구로 올 만한 대기업이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한몫을 했다. 시는 지난해 10월 국내 4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주) 본사 유치에 성공했다. 대구시가 지역 출신 재계 인맥 등을 동원하는 등 1년여간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또 국내 유수의 컨택기업인 대성글로벌네트웍의 본사 유치에도 성공했다. 옛 삼성상용차재개발단지에는 중견 첨단기업인 현대LCD, 디보스 등과 용지공급 협약을 협의 중이다. 지난 2003년 조성한 성서첨단산업단지에는 희성전자(주) 등 12개 중견 첨단기업이 입주, 올해 매출액 1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는 옛 삼성상용차부지재개발사업(19만평)과 성서 4차단지(12만평), 봉무산업단지(36만평) 개발이 3∼4년 내 완료되면 대구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치적 푸대접론 극복해야 대구가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 대구의 주력산업이었던 섬유업계는 어려울 때마다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은 외면한 채 청와대로 몰려가 그때그때 땜질식의 지원을 받아냈다. 그 결과 섬유업계는 자체 구조조정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경영혁신에도 실패, 지금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다. 대구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자 이번에는 정치적 푸대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구시는 최근 제2정부통합전산센터와 외국계 대규모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 리나마(Linamar)사의 아시아 생산공장 유치에 나섰으나 광주시와 군산시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를 두고 정치논리에 놀아나고 말았다는 푸념이 터져나왔다. 홍철 대구경북개발연구원장은 “정치적 푸대접이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기업유치고 뭐고 아무 일도 못한다.”면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가지고 중앙정부나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3대도시’ 명성 찾으려면 대구는 인구수는 물론 각종 경제지표에서 인천에 밀리면서 ‘3대도시 대구’라는 등식이 무너진지 오래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국가산업단지가 없는 곳.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 전력사용 증가율 전국 최저 등이 요즘 대구의 경제 지표다. 이대로 가다간 인천에 이어 신행정도시 건설 등의 영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대전에도 밀려 머잖아 ‘5대 도시’로 내려앉게 되는게 아니냐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전문가들은 대구가 ‘3대 도시’의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서는 대구 특유의 보수성과 폐쇄성, 패거리 문화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폐쇄성을 벗어던지고 열린 도시를 만들어야 기업도 인재도, 모여들고 대구 경제도 살릴수 있다는 진단이다. 인천대 총장, 인천발전연구원장을 지낸 홍철 대구경북개발연구원장은 “대구는 내륙분지라는 특성으로 인해 폐쇄성이 강하고 실리보다는 의리나 명분에 치우치는 반면 항구도시인 인천은 개방적이고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대구 스스로가 폐쇄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사회·경제 분야 등에서 인천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호 영남대 교수(법학과)는 “60년대부터 30년 동안 대구가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스스로 개혁을 게을리했고 요즘은 정치적 푸대접론에 기웃거리고 있다.”면서 “시민들 스스로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열린 도시를 만들어야만 기업도, 인재도 찾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에서 자동차부품공장을 하고 있는, 충청도가 고향인 김모 사장은 “대구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인정하려 들지 않고 왕따를 시킨다.”면서 “끼리끼리만 노는 패거리문화가 뿌리깊은데 외지인이 누가 대구에 선뜻 투자를 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구시내에서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는 박모씨는 “대구의 기관장들은 모였다 하면 한정식집만 가는데 이는 사소한 것 같지만 지역의 리더들이 아직 다양성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희태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도시로 탈바꿈시켜야만 경제에도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박형도 대구시투자유치단장 ‘대구로 오이소.’ 박형도(48) 대구시 투자유치단장은 삼성에서 20년 근무한 삼성맨이다. 봉급은 삼성SDI에서 받고 근무는 대구시에서 한다. 대구시는 기업 마인드 확산과 투자유치 등을 위해 삼성에 특별히 요청, 지난해 6월 박 단장을 파견받았다. 빈사상태에 빠진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류기업인 삼성으로부터 구원투수를 지원받은 것이다. 박 단장은 대구는 기업유치에 장점이 많은 도시지만 그동안 공무원의 도시마케팅 마인드가 부족했다고 진단한다. “매년 5만명이 넘는 양질의 풍부한 전문대 이상 인력이 배출되는데다 사통팔달 교통과 통신, 정주환경 등 도시 인프라가 우수한 것은 기업유치의 큰 강점입니다.” 특히 대구의 단점으로 꼽히는 보수적인 도시분위기가 때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매사 의리를 중시하는 도시분위기는 다른 지역보다 조직충성도가 높고 이직이 적다면서, 이는 기업 경영측면에서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른지역에 비해 노사관계가 비교적인 안정된 것도 대구 투자유치의 장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기업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도시 브랜드를 꼽았다. “대구가 살려면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민간 수준의 획기적인 대구 브랜드 제고 노력이 수반돼야 합니다.” 박 단장은 이를 위해 공무원 조직도 부문별로 선진타깃을 정하고 벤치마킹을 전개, 과감하게 변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입주가 가능한 저렴한 산업입지가 절대 부족한 것도 기업유치의 걸림돌이라며 신규 부지개발 및 기존공단 리모델링 전담팀 구성 등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혔다. 또 대구는 외국인이 살기 힘든 도시라며, 외국인학교와 외국인주거정보센터 등 외국인 정주환경 개선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기업이 살아야 대구가 산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 자체가 이미 대구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면서 “앞으로 대구의 장점을 내세워 도시마케팅을 활발하게 전개하면 대구에 투자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외환銀 ‘주가연동 보너스’ 속내는?

    외환은행이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대상을 본부장급까지 확대한 데 이어 전직원을 대상으로 ‘주가연동형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임직원의 사기 진작 차원이라고 하지만, 최대주주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기에 앞서 ‘주가 띄우기’ 차원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외환은행은 지난 2월 주총에서 임원 및 본부장 22명에게 총 141만 5000주의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본부장급까지 스톡옵션을 준 것은 외환은행이 처음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외환은행은 본점 부장과 지점장, 팀장·차장급까지 실적에 따라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부·차장급 중 업무성과가 뛰어난 상위 10% 정도까지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 올 상반기 중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반 직원들에게도 스톡옵션제와 비슷한 ‘주가연동형 보너스’를 단발성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주가 상승분만큼 보너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은행측은 지난 2003년 10월 론스타에 매각된 뒤 대규모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침체된 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지난해 흑자 실현의 혜택을 나누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론스타가 오는 11월부터 보유지분을 매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앞서 주가를 띄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후 2년간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는 매매조건이 오는 11월부터 풀린다.”면서 “인수 당시 주당 4300원꼴로 51%를 보유한 만큼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매각차익도 커진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주가와 인센티브가 결합된 만큼 외환은행 직원들이 주식가치 상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국 대주주 배만 불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외환은행 주가는 지난 8일 8290원에 마감됐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⑤ 청해진에서 해법을 찾는다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⑤ 청해진에서 해법을 찾는다

    ■ 어류양식 ‘쪽박’… 전복양식은 ‘대박’ “빼도 박도 못하요.”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전남 완도군 신지도. 쪽빛 바다와 모래사장, 해송 등 빼어난 경관 뒤로는 어민들의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육지와 바다에 온통 어류 양식장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지금 빚과의 전쟁 중이다. 불과 5년 전, 완도읍 내 단란주점 등 술집에서 “신지도 사장님과 사모님들 덕분에 산다.”는 말이 돌았다.90년대 말 광어와 우럭을 키워 뭉텅이 돈을 만졌을 때다. 신지면사무소 앞 금모래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5년 전에는 면 소재지에 다방만 9개나 됐고 여종업원만 20명 가까이 됐으나 지금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완도수협 신지지점 남자 직원도 “신지도 수협 대출자 1000여명 중 10% 가량이 악성 연체자”라고 실상을 전했다. 완도군 내 어류양식 400여 가구 중 신지도(1900여가구)에만 160여 가구가 우럭과 광어를 기르고 있다. 나머지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 양식을 한다. 이 섬에서 ‘부자마을’로 통하던 송곡리.163가구 중 45가구는 어류양식이고 나머지는 패류와 해조류를 기른다. 어류양식 중 35가구는 바다에서 가두리를 막아 우럭을,10가구는 육상 축양장에서 광어를 키운다. 이 마을 김원재(59) 이장은 “마을 주민 중 50명 이상이 신용불량자이고 빚 5억원은 기본,10억∼20억원도 부지기수다. 일반대출 때 서로가 연대보증해 줄초상 났다.”고 말했다. 사모님 소리 듣던 이 마을 젊은 아낙들 가운데는 완도읍 내 전복 선별장이나 미역·톳 가공공장을 전전하며 날품을 팔고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던 박종두(50·송곡리)씨는 “수협과 농협 빚이 10억원도 넘소.2년 동안 키운 우럭이 30만마리나 되는 데도 본전은 커녕 연체이자(17.0%)도 못낼 판이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해상 우럭과는 달리 육상 광어는 값이 지난해 절반으로 폭락하면서 부도자가 속출하고 있다. 신지도에서는 지난해 말이후 네집이 부도처리됐고 서너집이 경매로 나올 태세다. 2㎏짜리 광어는 마리당 5000원가량 손해보고 1만 500원이나 1만원에 넘긴다. 사료값을 아끼기 위해서다.8만마리 기르는데 한 달에 사료값 3600만원, 전기료 700만원, 영양제·어병 약품비·인건비(3명) 600만원 등 5000만원이 든다. 20∼50% 수입관세를 무는 중국산 농어는 ㎏에 5000원선이다. 완도지역 양식업자들이 중국으로 건너 가 기른 뒤 다시 들여오기도 한다. 수입된 농어와 점성어는 완도읍 내 농공단지 축양장에서 기른다. 지난해 완도항으로 수입된 중국산 활어는 1만 7000㎏. 농어·점성어·감성돔 순이다. 지지난해는 2만㎏ 넘게 들어왔다. 반면 완도군 노화읍은 대박을 터트린 전복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미역과 다시마 등 전복 먹이를 직접 기르는 복합양식으로 생산원가를 줄였고 남들보다 먼저 시작해 성공했다. 지난해 노화읍 내 830㏊에서 400억원을 벌어들였다. 미라리 마을에서만 150억원을 벌었다. 미라리 최운재(45) 자율어촌계장은 “92년 전복 시험양식을 거쳐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고 지금은 70가구가 호당 연 평균 3억원을 번다.”고 말했다. 글 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기고] 어획량 제한 어종 확대해야/ 김영규 국립수산과학원 원장 최근 우리나라의 수산자원은 지속적인 생산을 위협할 정도로 자원이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어획물의 구성도 고급어종에서 저급어종으로 바뀌고 각 어종의 미성어 어획비율도 증가하는 등 생태적으로 불안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수산자원 회복정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정부뿐만 아니라 과학자, 업계, 어업인 등 수산관련분야에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과학자들은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자원을 보다 정확히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자원조사전용선 등을 이용해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원조사를 하고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 주요 어종들에 대한 정확한 자원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산란, 성숙, 성장, 분포 이동 등 자원생태학적 변동요인 역시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어업인 스스로 자원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자율관리어업체제의 확산을 유도하고, 현재 고등어 등 9개 어종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총허용어획량 대상 어종을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수산자원보호를 위한 법령, 규제 등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하며, 수산자원관리법 같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법령제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과다사용 어구수를 제한하고 어구의 실명제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생분해성어구, 치어탈출장치 등 환경친화적이고 자원관리형의 어구를 어업인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적극적인 자원조성을 위해서 생태학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우량품종인 수산종묘의 연구개발 및 환경보전을 위한 연안환경의 변화와 예측능력을 높이는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 황폐화되어 가는 연안어장에 대해서는 연안 해조장, 해중림의 조성, 종묘생산과 방류, 인공어초어장 조성 등을 통해 산란장과 성육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생활하수의 유입을 차단하는 하수처리종말처리 시설 등을 확충해 바다 오염을 최대한 막고 해상쓰레기 수거시설을 확대해 깨끗한 바다를 유지하는데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산자원을 이용하는 어업인들은 수산자원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우리 앞바다 자원은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양식 성공사례 2題-경남 거제수협 김선기 조합장 “품종 선택만 잘하면 해외시장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경남 거제수협 김선기(42) 조합장은 내로라하는 어류양식업체 3개를 경영하면서 2000여 조합원의 소득증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경영자다. 김 조합장은 지난해 7월 아무도 생각지 못한 해삼 종묘생산에 성공, 이를 어민들의 소득증대로 연결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해삼은 해저의 모래나 뻘 속에 포함된 유기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어느 해역에서도 양식이 가능하다.”며 “양식대체 품종으로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진 넙치·우럭 등을 대신할 경우 생산량 조절로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해삼은 판매가 용이해 1석2조라는 것이다. 지난해 울진 어류센터로부터 종묘를 분양받은 ‘강도다리’도 ‘대박’이 예감된다. 곧 채란할 수 있어 종묘를 대량으로 생산할 채비도 갖췄다. 희귀종을 선호하는 중국 바이어들이 몸길이 5㎝를 기준으로 마리당 3달러에 사겠다며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6남매의 맏이로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그는 거제고를 졸업한 84년 피조개 양식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2년 후 우렁쉥이 종묘생산에 성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넙치와 우럭 종묘를 생산, 히트를 쳤다. 그는 “대량생산의 ‘노하우’는 초기 먹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먹이의 영양과 양, 방법, 시기 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의 수산통계는 엉터리”라며 정확한 통계와 어자원 보호를 위해서는 수산물 ‘강제상장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임의상장제로는 집계가 제대로 될리 없고, 치어 남획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1차 산업도 하늘만 쳐다보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배우고 연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거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양식 성공사례 2題-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 아미노산이 풍부한 건강식품 참전복 등의 양식사업으로 ‘부자(富者) 어촌’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 어촌계. 이 마을은 지난 96년부터 황폐화된 마을어장을 새롭게 단장, 고부가 품종인 참전복을 비롯해 성게·미역·해삼 등을 대량 생산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연산 참전복 6.6t을 비롯해 미역 등 어패류 50여t을 생산,37명의 계원들이 가구당 27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을어장의 연간 어업생산에 따른 어촌계원들의 수입은 50만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어촌계는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 어린 전복 100만 마리를 방류하는가 하면, 불가사리 등 어패류 해적생물 퇴치와 함께 오·폐수 수거작업 등을 꾸준히 벌여 왔다. 이른바 어촌계원들이 타율적 어업관리에서 벗어나 어장과 어자원을 직접 관리하는 ‘자율관리형 어업’을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2002년 전국 최우수 어촌계로 선정돼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사업비 10억원 전액도 양식장 개발사업에 투자했다. 아울러 매년 어촌계원들의 수익금 가운데 20%를 적립했다가 다시 어장에 투자하는 등 ‘기르는 어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어촌계는 이와 함께 양식장 개발과 관광기반 조성을 위해 1㏊의 먹이어장을 개발하고, 전복초를 이용한 양식 및 보라성게 채취 체험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근 들어 나정2리 어촌계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서·남해 어민 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규섭(53) 나정2리 어촌계장은 “이런 추세라면 2007년쯤에는 가구당 4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④연근해 어업 구조조정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④연근해 어업 구조조정

    ■ 최저입찰제 도입… 어선감척 보상 ‘갈등’ 바다에는 지금 ‘사라호’보다 강력한 구조조정 태풍이 휘몰아 치고 있다. 50년 이상 ‘관행’을 이유로 지속된 싹쓸이 조업이 해경의 날선 단속으로 자취를 감추거나 꽁무니를 빼고 있다. 이와 맞물린 연·근해 어선 감척도 보상 액수와 범위로 폭풍전야다. 통상 10t이상인 근해어선은 지난해까지 보상이 마무리됐다. 문제는 국내 등록어선의 90%를 웃도는 10t미만의 연안어선을 정리하는 일이다. 다음달 말부터 보상에 들어간다. 전남은 전국 등록어선의 절반을 웃도는 3만 6898척이 있으며, 이 가운데 1000척을 2008년까지 줄인다. 지난해까지 485척을 줄였다. 이 가운데 근해어선이 127척, 연안어선이 160척이다. 전남 여수 국동항에서 만난 근해어선 선주 이관형(51)씨는 “10t짜리 근해유자망 보상가로 1억 6000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5t짜리 5000만원 보상설… “부족” 하지만 연안어선은 대상자가 많고 예산이 부족하다. 전남도는 올해 134억원으로 124척을 보상한다. 어민들은 노령화와 채산성 악화 등을 이유로 감척보상 확대에 적극적이다. 여수시 화양면 용진어촌계장 채형채(54)씨는 “연안어선 5t짜리 보상가로 5000만원설이 나오지만 어가마다 4000만원이 넘는 빚이 있다.”며 “수협이 먼저 보상비를 챙기면 어민들은 배만 날리는 꼴”이라며 가슴을 친다. 이 마을 어민들은 최소한 8000만원을 요구했다. 현재 전국 어촌계는 1913개, 어촌계별로 1척씩 5000만원에 보상한다고 쳐도 950억원이 든다. 정부의 올 감척보상비는 470억원이다. 정부는 이번에 감척 보상가를 매기는 데 입찰제를 도입한다. 정부가 어선별·업종별 위판실적 평균가를 내 어업손실액(폐업)을 제시하면 어민들이 폐업 응찰가를 써내는 최저 입찰제 방식이다. ●입찰제 도입으로 보상금 줄까 걱정 하지만 어민들은 폐업액은 물론 어선·어구에 대한 감정평가액이 시가보다 턱없이 낮을 것을 우려한다. 1t짜리 연안낭장망배가 있는 임채운(57·전남 여수시 남면 송고리)씨는 “멸치와 새우만 잡아도 한해 7000만원 이상을 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어선정리에 따라 양식업과 관광업 등으로 업종 전환을 꾀하고 있다. 어민들도 감척보상 대가로 양식업 면허를 요구한다. 그러나 국내 양식장도 이미 포화상태다. 양식 어류는 수입량이 늘고 소비가 줄면서 설상가상이다. 전남 완도의 한 수입업자는 “중국산 점성어(점민어)는 ㎏당 5000∼6000원에 소매상에 넘긴다.”고 말했다. 완도 어류양식수협 관계자는 “국내 양식산인 광어는 ㎏당 1만원선에, 우럭은 500g당 1만 1000원선”이라고 밝혔다. 여수·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어선감척 후 대안은-값싼 중국산 공세에 양식업도 위기 정부가 어선 감척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양식업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에게는 녹록지가 않다.‘대박’보다는 ‘쪽박’이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게 양식업자들의 주장이다. 지금 국내 어류와 패류, 해조류 등 3대 양식업은 총체적인 위기다. 경기침체로 횟감 소비량이 크게 줄면서 어류 양식업자들이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린다. 값싼 중국산의 공세에 국내 양식업이 송두리째 거덜날 상황이다. 지난해 전남지역 수산물 생산량(68만t)만 보더라도 양식업이 53만t(79.4%)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고기잡이로는 14만t(20.6%)에 그쳤다. 지금 국내 양식업 중 그래도 목돈이 되는 것은 전복이다.3년가량 키워 ㎏당 5만원 이상이면 남는데 지금 6만원선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전복도 3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최대 전복 양식장이 있는 전남 완도군. 지난해 2400가구가 2463㏊에서 1270t을 생산해 670억원을 벌었다. 김종식 완도군수는 “완도군에서는 지난 3년 동안 단 한 건도 신규로 전복양식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며 “지금 시설로도 포화상태인데 이제 시작한다면 내다 팔 때쯤에는 공급 과잉이 불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또 굴이나 홍합 등 패류는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뒷받침해 주질 못한다. 김·톳·다시마 등 해조류는 젊은층이 외면하면서 소비량이 급감, 어민들 사이에서는 사양업종으로 인식된다. 한창 미역을 출하중인 완도군 금일읍 하화전 안정길(50)씨는 “지난해 양식 미역을 ㎏당 80∼100원에 팔았는데 올해는 홍수출하로 40∼50원이라도 공장에 넘긴다.”고 말했다. 가장 문제는 어류양식장이다. 한마디로 풍전등화다. 어민들은 해놓은 시설물을 놀릴 수 없어 고기를 넣는다고들 스스로 비하한다. 심하게 말하면 어류 양식업자 열에 다섯은 신용불량자 신세다. 국내산에 비해 절반 값도 안 되는 중국산 점민어를 비롯해 농어 등이 시장을 석권하면서부터다. 지난해 중국산 활어 수입량은 2만 3000t(940억원)으로 집계됐다. 육상 축양장은 열에 아홉 곳은 광어를 기른다.2002년부터 “광어 기르면 돈 번다.”는 소문에 엄청난 시설자금을 들여 앞다퉈 뛰어들었다.3년이 지난 지금 공급과다와 소비 급감으로 광어는 판로가 막혔다. 양식어민들은 한 푼이라도 사료값을 줄이기 위해 생산원가도 안 되는 값에 앞다퉈 출혈판매 중이다. 축양장에서 만난 직원 이일주(35·완도군 신지면 동고리)씨는 “광어는 ㎏당 생산원가가 1만 5000원인데 1만원에 팔고 있으니 마리당 5000원을 손해보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바다 가두리에서 키우는 우럭은 지난해 태풍과 중국에서 수입량이 줄면서 값을 물고 있다. 박홍광(65·여수시 남면 화태도)씨는 “우럭은 물량이 달려 500g에 1만 1000원을 넘고 있어 그나마 괜찮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홍해삼과 청해삼 양식에 성공한 김용덕(38·완도군 완도읍 군내리)씨는 주위에서 성공한 양식어민으로 통한다. 양식장 400여평에서 해삼 130만마리를 부화시켜 연간 2억원 벌이를 한다. 그러나 김씨는 “다시마와 미역 등 사료를 직접 길러 전복을 기른다. 전기료와 기자재, 시설비 소모품비 등으로 연간 8000만원이 들어가고 재투자비를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사실상 2000만∼3000만원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벌려면 전복과 미역 등을 함께 기르거나 종묘를 직접 생산하는 복합양식밖에 없지만 어민들에게는 기술력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바뀐 위판장 풍경 위판장이고 시장이고 펄떡거리는 쓸 만한 자연산 활어는 이제 ‘천연기념물’쯤으로 치부된다.99%가 국내외 양식산으로 자리바꿈됐다. 전국에서 하루 2000여명이 찾는다는 활어 판매 전문인 전남 여수 남산시장. 수족관에서 양식농어를 꺼내 바쁜 손놀림을 하던 순천횟집 여주인 기은정(49)씨는 “여그와서 자연산 찾으먼 바보라고. 인자 손님들도 국내산 양식을 선호한당게.”라고 웃었다. 위판장도 1995년을 정점으로 가파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바다에 고기가 없다 보니 고깃배가 크게 줄었다. 여수를 상징하던 안강망배(돔·농어·조기잡이배)는 160척에서 지금은 26척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8일 새벽 4시 여수 중앙시장. 고테구리 단속 이전 발디딜 틈이 없이 붐비던 경매시장이었으나 상인과 어민 등 합쳐봐야 50명 남짓이다. 여수시 남면 서고지 양식장에서 들어온 값싼 양식 숭어 수백마리가 시장바닥에 널부러져 그나마 고기맛(?)을 불어넣었다. 어른 팔뚝만 한 게 마리당 1700∼2000원이다.8년째라는 강종남(42·여수시 중앙동) 경매사는 “고테구리 단속 이후 사실 경매 물량이 없다.5t 미만 채낚기로 잡은 돔이나 농어 몇 마리가 보다시피 전부”라고 말했다. 활어가 사라진 자리는 냉동처리된 수입산 상자로 채워졌다. 병어·민어·삼치·갈치·명태·가오리·도다리는 상자당 3만∼4만원선에 낙찰됐다. 양태·서대·민어·조기도 80% 정도는 중국산이었다. 한 아주머니는 “갈치는 요즘 독도를 들먹거리는 일본 것인디. 안 먹어야 한디, 고기가 있어야제….”라면서 갈치 상자를 끌고 갔다. 같은 날 새벽 5시30분. 국동 여수수협내 위판장. 소흑산도와 동지나해 등에서 조업 보름 만에 들어 온 안강망과 저인망 등 중선배 4척이 냉동 고기상자 3000여개를 토해냈다. 입찰자 200여명, 트럭 10여대가 있었지만 위판장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즘 동지나해에서 잘 잡힌다는 조기와 아귀가 위판장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조기는 상자당 10만원, 젓갈을 담그는 송어는 3만원. 양식장 사료로 쓰이는 조기 새끼인 깡다리는 위판장에 못 들어오고 산더미처럼 밖에 쌓아뒀다. 동이 훤히 틀 때쯤 대여섯 번 위판장소를 옮겨가던 경매는 싱겁게 끝이 났다. 수협위판장 김향모(55·여수시 신월동) 경매실장은 “올 들어 위판장 반입량도 지난해 대비 2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95년까지만 해도 이곳 하루 위판량은 10만 상자. 연간 위판액이 1800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800억원대로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경매사들은 “고기가 적어 흥이 나질 않는다.”고 푸념이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애경 안용찬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애경 안용찬 사장

    “실적을 단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판촉 활동과 이벤트 행사를 늘리는 것은 고통받는 환자에게 치료 대신 마약을 투여하는 것과 다름 없다. 당장은 약 기운에 의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기업의 목숨을 갉아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곪은 곳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새 살이 될 만한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늦지만 가장 확실한 기업의 생존 전략이다.” 1995년 7월 취임 이후 9년 연속 흑자경영을 이어오는 안용찬(47) 애경 사장.1등군에 들지 않는 10개의 브랜드보다 단 하나의 1등 브랜드가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역설한다.‘죽여야 산다.’는 안 사장의 ‘브랜드 경영’의 전제 조건이다. 시장에서 ‘싹수’가 안보이는 잡다한 브랜드를 과감히 죽여,1등이 될 만한 브랜드에 집중하는 것만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양보다 질을 강조한 셈이다. 안 사장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브랜드 죽이기’의 연속이었다. 한정된 자본에서 기업의 부채를 줄이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의 효율적 분배가 무엇보다 당면 과제였던 것. 다양한 브랜드로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기업과는 발상 자체가 반대였다. 애경의 경영실적이 안 사장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10년전 870%에 달했던 애경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205%, 올해는 200% 미만으로 떨어진다. 또 매출은 연평균 10%씩 성장, 지난해 3571억원을 기록했다. ●소탈한 전략가 생각보다 동안(童顔)인 탓일까. 국내 생활용품의 대표기업 최고경영자(CEO)인데도 얼굴에 장난기가 다분히 묻어난다. 또 ‘범생’의 모습속에 불량기(?)도 엿보인다. 다부진 체격에 웃음을 머금은 안 사장은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10년간 묻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한껏 풀어놓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술·담배를 했었죠.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께서 좀 개방적이셨습니다. 이왕 할 거면 밖에서 하지 말고 집에서 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당시로서는 ‘깨신’ 분이랄까. 덕분에 친구들이 저희 집에 놀러 오기를 굉장히 좋아했죠. 요즘에는 저도 딸에게 술을 자주 권하는데 싫어하더라고요.” 대학 시절에는 공부뿐 아니라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수업이 끝나면 교내 헬스센터로 직행했습니다. 들고, 내리고 하다 보면 그렇게 몸이 상쾌할 수 없어요. 지금은 많이 (근육이) 줄었지만 그때는 몸이 남부럽지 않았습니다.”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그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맏사위이다. 재벌가(家)의 일원으로 젊은 나이에 CEO에 올랐다는 평도 적지 않게 들었을 법도 하지만 막힘이 없다.“(사위라는 점이)기업 경영에 장점이 많아요. 전문경영인은 아무래도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오너 가족이다 보니 그런 부문은 초월할 수 있잖아요. 기업의 중장기 비전을 세워놓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고, 한 해 실적 나쁘다고 자리에 위협을 느끼는 것도 아니니까…. 초창기에는 장 회장으로부터 꾸중도 많이 들었어요. 제 방 맞은 편(장 회장 집무실)에 많이 갔습니다. 집사람(채은정씨)은 지인 소개로 만났어요. 미국에서 공부하다 일시 귀국한 터여서 잠깐 연애하다 바로 미국으로 되돌아갔죠. 어느 유학생 부부와 다름 없이 고생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안 사장은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서 탁월한 전략가로 통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무통’으로 한때 위기에 처했던 애경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이다. 오너가(家)라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사내에서는 어떤 평판일까.‘소탈한 전략가’라는 평이 압도적이다. 권위 대신 친근함과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한다. ●1등 브랜드를 키워라 안 사장의 ‘1등 브랜드주의’는 1992년 다국적기업인 유니레버와의 합작법인이 깨지면서 시작됐다. 신제품을 비롯해 영업, 마케팅 등에서 유니레버의 의존도가 컸던 애경(당시 애경산업)은 한동안 ‘혼수 상태’에 빠졌다. 매출은 무려 50%가 줄어든 데다 영업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가 갈수록 악화됐다. 시장의 반응은 더욱 차가웠다. 일각에서는 ‘부도설’마저 나도는 실정이었다. 이를 통해 안 사장은 유니레버의 ‘폰즈’나 ‘도브비누’ 등의 강력한 1등 브랜드 제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등만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과감히 브랜드 죽이기에 나섰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브랜드 경영’은 애경의 현실적 여건에서 출발한 셈이었습니다. 아깝더라도 향후 3년내 1,2위를 차지할 브랜드를 빼고는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결단을 내렸죠.” 이 과정에서 ‘유탄’을 맞은 브랜드로는 분말세제인 ‘팍스’, 삼푸 ‘그랑비아’와‘나이브’, 비누 ‘생금’ 등이다. 잡다한 브랜드로 전선을 확대시켜 ‘싹수’가 엿보이는 브랜드마저 죽이는 잘못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의 브랜드 전략은 이렇다. 치약시장 전체로는 경쟁업체가 1등이지만 단일 브랜드로는 우리가 1등하는 치약을 만들자는 것. 그 대표주자가 ‘2080’이다. 성숙시장인 치약제품 사상 최단기간에 뿌리를 내린 성공적인 브랜드로 대학에서 연구사례로 채택될 정도다. 현재 이렇게 가꾼 1등 브랜드가 세탁세제 ‘스파크’와 ‘퍼펙트‘, 주방세제 ‘트리오’와 ‘순샘’ 등을 포함해 15개를 웃돈다. 그는 생활용품에 치우친 매출 구조를 바꾸기 위해 화장품 사업군을 별도로 법인화시킬 계획이다.1등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화장품을 생활용품과 같이 끌고가기에 부담스럽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에서 3등은 없다고 확신합니다.1위권 브랜드는 매장진열이나 입점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또 고객은 각 카테고리에서 1,2등을 제외한 3등 이하 제품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1등 브랜드의 파워가 있습니다.” 1등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품질 노력에도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있다. 안 사장은 외환위기 시절 다른 기업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연구소를 매각하거나 연구원들을 줄일 때 300억원을 들여 연구소를 설립했다.“(92년에)매도 먼저 맞아서 그런지 외환위기 때는 다른 기업과 달리 재무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경쟁기업들이 어려울 때 공격 경영을 추진하는 것이 1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재가 ‘돈’이다 안 사장은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사원 교육비는 줄이지 않았다고 한다.‘인재가 기업의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경의 지난해 1인당 교육비는 업계 최고 수준인 200만원선. 이밖에 어학교육비(1인당 연 120만원)와 대학원 학비를 전액 지원한다.3개월짜리 미국 연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9년째를 맞은 미국 연수 프로그램은 10년 이상 근속 사원을 대상으로 현지 체험과 여행 등의 일정으로 짜여져 있다. 안 사장은 “9년연속 흑자경영의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사람이었다.”며 “어려운 시절에도 사원 교육비를 늘린 것은 그동안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직원과의 대화를 중시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산책경영’.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시작한 것이 직원과의 대화 창구로 바뀌었다. 그는 거의 매일 파트너(임직원)를 바꿔가며 1시간씩 회사 주변을 걷는다. 안 사장은 “회사의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정담도 나누고, 건강도 좋아지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애경은 어떤 회사 애경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비누제조업체로 출발, 생필품을 생산하는 국민기업으로 성장했다. 애경유지공업㈜이 전신인 애경은 1985년 4월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와 합작, 선진 외국기술 및 경영관리 기법을 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창립 50돌을 맞아 ‘애경산업’에서 ‘애경’으로 사명을 바꿨다.‘깨끗함, 신뢰, 혁신’을 경영 목표로 삼아 최근 10년간 출시한 대부분의 제품을 성공적으로 상륙시킴으로써 생활용품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특히 지난 50년간 한우물만 판 뿌리깊은 기업으로,‘삶의 가치를 높이는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아름다움과 건강함, 깨끗함과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것이 실천 목표다. 대덕연구단지내 애경종합기술원은 신제품 개발과 미래산업의 중장기적인 전략기술을 집중 연구·개발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충남 청양과 대전 공장에서는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낸다. 안용찬 사장 취임 10주년을 맞는 올해의 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4380억원. 제 2도약을 위해 선택과 집중,1등 브랜드 전략을 더욱 강하게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 [사설] 공기업비리 마사회 뿐인가

    검찰이 밝힌 마사회 전 회장과 간부들의 뇌물수수 수법과 비리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다.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아웃소싱이 온통 청탁성 뇌물로 얼룩져 있다. 뒷돈을 대가로 사업을 몰아주고 납품단가를 올려줬으니 구조조정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게다가 회장은 수억원대의 급여와 판공비로도 모자라 편의제공의 대가로 수시로 뇌물을 챙기고 ‘카드깡’으로 공금을 빼돌렸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뇌물파티는 다음 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하지 않은가. ‘간고등어 상자 3000만원’‘곶감 상자 2000만원’‘초밥 도시락 300만원’ 등 현금 전달 수법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회장부터 이처럼 악취를 풍겼으니 ‘월사금’이 전달되지 않은 다음 달에는 전달치까지 챙길 정도로 직원들의 도덕성 불감증이 극에 달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지 모른다. 마사회가 비리 경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뇌물문화에 감염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층의 측근이 낙하산으로 기용되는 등 잘못된 인사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본다. 조직 상층부가 온통 연줄로 채워지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이권부터 챙기는 분위기가 은연 중에 확산된 것이다. 최근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방편으로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공기업과 민간기업도 실천강령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인 비리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는 한 결의대회는 전시성 요식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수자원공사에 이은 마사회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썩은 부위가 완전히 도려내질 때까지 사정의 칼날이 멎어선 안 된다. 이에 앞서 전문성과 상관없는 낙하산 인사의 중단이 전제돼야 한다.
  • 5개그룹 ‘주채무계열’ 신규 지정

    LG에서 분리된 GS와 STX,GM대우, 에쓰-오일, 대림 등 5개 기업집단이 금융감독원 지정 ‘주채무계열’로 새로 편입됐다. 금감원은 11일 이들 5개 기업을 포함해 금융권의 신용공여액이 지난해 말 현재 6655억원 이상인 29개 기업집단을 2005년도 주채무계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규정을 받게 되지만, 금감원의 주채무계열에 선정되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주채권은행이 지정되고, 주채권은행은 재무구조가 취약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할 수 있다. 경영악화로 여신 부실화가 우려되면 채권은행협의회도 구성할 수 있다. 또 계열 주채권은행은 여신상황을 포함한 기업정보를 종합관리하게 되고, 주채무계열 소속사에 대해서는 계열사 채무보증을 담보로 한 은행의 신규여신 취급이 금지된다. 올해 주채무계열 1위 기업집단은 삼성이며, 이어 현대자동차,LG,SK, 한진의 순이다. 주채무계열 신용공여 기준은 전체 금융권 신용공여액의 0.1% 상당액으로, 지난해 6258억원에서 올해 6655억원으로 379억원 증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채무계열의 신용공여 기준이 증가하고 주채무계열 기업집단 수가 늘어난 것은 은행의 신용공여가 늘어난 데다 자산유동화 관련 신용보강 수단이 새로 신용공여 범위에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③반발하는 어민들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③반발하는 어민들

    어민들은 고테구리 어업이 불법이지만 수십년 넘게 생계를 유지해온 생업인데 정부가 전업 등에 필요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단속만 해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어민들은 전업을 하거나 자구책으로 영어조합설립과 수산양식장 조성, 조업구역 확대, 어업허가권 변경 등 정부 지원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지역 어민들은 수자원 보호를 위해 고테구리업을 포기하고 전업을 고려하고 있으나 해안쓰레기 수거와 같은 생계지원 사업이 극히 형식적이고, 전업자금 지원 역시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전국어민총연합 전 회장 정남준(69 부산 서구 암남동)씨는 “부산은 주로 통발업 허가를 갖고 있는데 이 방법으로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며 “부산앞바다 실정에 맞는 연승업으로 허가를 바꿔줄 것”을 주문했다. 경남 통영지역 어민들은 영어조합 법인을 구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사천지역 어민들은 수산양식장 및 어장 피해의 주범으로 떠오른 불가사리 퇴치를 위한 퇴비공장과 대형양식장 면허를 각각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사업비의 일부를 자신들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전남 지역 어민들은 어선과 어구에 대해서만 보상키로 한 정부방안에 강력하게 반발해오다 최근에는 감척 배에 대해 시가수준으로의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또 ▲새우조망허가 및 조업구역 확대▲인공어초 사후관리사업 용역을 영어조합법인에 발주▲현재 10t 미만인 낚시어선을 20t 미만으로 상향 조정해줄 것과 실뱀장어 안강망어업을 끌망어업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어민 총연합회 여수지구회 이영춘(51·여수시 돌산읍 우두리)회장은 “소형기선저인망 어선을 갖고 있는 어민들은 위판실적이 없어 일반감척 보상기준처럼 3년치 어업손실을 받을 수 없다.”며 “감척 대상 어선에 대해 시가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800여척의 소형기선저인망이 있는 전남 여수지역은 관광낚시어선, 체험관광단지 개발, 수산물 가공공장 유치, 관광숙박시설 확대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정부의 차별화 정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 다대어민회 박상규(55)회장은 “고테구리가 불법어업이지만 어민들은 정부의 묵인아래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배를 뺏는 것처럼 정리해서는 안 된다.”며 “어민들이 전업을 준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뒤틀린 ‘활어회 문화’ 불법어로 부채질 전남 여수시내 어느 횟집과 식당에서도 세코시(뼈코시)가 나온다. 세코시는 아직 덜 자란 어른 손바닥만한 도다리·노래미·광어·돔·농어·숭어 등을 뼈째로 썬 것. 된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진하게 배어나와 술 안주로 그만이다. 활어회보다 값이 싸고 “믿고 자연산을 먹는다.”며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일부 양식장에서 빠져 나온 돌돔이나 도다리 새끼도 있지만 세코시 재료는 자연산으로 보면 맞다. 여수시청 앞 횟집의 남자 주인은 “요즘 고테구리 단속으로 수족관에 고기가 없을 정도여서 값이 큰폭으로 올랐다.”며 “하지만 우리 집은 자연산 아니면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집에서는 도다리 세코시를 1인분에 3만원 받다가 물량이 달리는 바람에 얼마 전부터 4만원으로 33%나 올렸다. 자연산 치어를 선호하는 뒤틀린 활어회 문화가 귀중한 어족자원의 남획을 부추기고 있다. 수요만 있다면 공급은 물불을 안 가리기 마련. 산란기인 금어기에 연안으로 모여드는 어린 고기는 표적 대상이다. 소형기선저인망뿐 아니라 연안에서 조업이 금지된 대형기선저인망과 트롤어선 등도 가세해 1㎝ 이하 치어까지 모조리 쓸어담고 있다. 이들과 연계해 ‘자연산’ 치어만을 전문으로 식당이나 횟집, 회센터에 공급하는 중간상들은 점조직으로 활동한다. 고테구리로 모아 온 치어 운반선을 인적이 뜸한 곳에 대고 활어차로 옮긴다. 좀 크다 싶으면 횟집으로 넘기고 더 작은 것은 양식장으로 넘기기 때문에 이문이 쏠쏠한 편이다. 이런 까닭에 살벌한 단속에도 “돈이 된다.”며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린다. 적발된 어선의 절반 가까이가 소형기선저인망이다. 목포해경 직원은 “지난해 뜰망으로 치어만을 잡은 어부를 잡아 여죄를 추궁했더니 100번 이상 조업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고테구리 조업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다. 무전기 이용은 기본이고 바람 부는 밤에 어로작업을 하는 것이 철칙이다. 특히 도피로 확보와 판매망 점조직은 안전판 역할을 한다. 잡혀서 벌금을 무느니 그물을 끊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고 새 그물을 사는 게 오히려 더 싸다는 얘기다. 전남도청 단속직원은 “지난해 말 여수와 고흥반도 사이에서 고테구리 배를 적발했다.”며 “그러나 바람이 세고 날이 어두워 단속선에서 보트를 내려 쫓아가니 양식장 사이로 달아나 버렸다.”고 털어놨다. 수백만원 벌금을 물게 된 김모(56)씨는 “고테구리로 잡은 고기를 트럭으로 옮겨 싣다가 대기중이던 해경에 적발됐다.”며 자신의 재수없음을 탓했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육지에서 적발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어민들이 신고한 덕분”이라고 어민들의 신고를 당부한다. 안강망 선장 김모(50대 초반)씨는 “조업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완도 청산도 근방에서 고테구리 배들이 단속망을 피하면서 조업하는 무전 내용을 여러번 엿들었다.”고 귀띔했다. 여수시내 몇몇 횟집 주인들은 “병어나 삼치·농어·돔 등은 냉동했다가 회로 치거나 이를 냉장고에서 숙성하면 육질이 쫄깃쫄깃해진다.”며 “선어회가 활어회보다는 깊은 맛이 더 난다.”고 강조했다. 생선회의 원조격인 일본에서도 활어보다는 선어회를 즐긴다고 하는데 우리들만 유달리 활어회를 고집하고 있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정영훈 해양부 어업지도과장 해양수산부 정영훈 어업지도과장은 소형기선저인망어선(일명 고테구리) 정리특별법 시행과 관련,“어장을 보호하고 영세어민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지원금 수준 등은 전문가·어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특별법이 제정된 배경은. -고테구리 어업은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배를 사들여 정리하려는 것이다. 고테구리 어업을 금지한 수산업법에 따라 단속하다 보니 영세어민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반발도 컸다. 이에 따라 특별법을 통해 정부 예산으로 어민들의 배를 사들이고 이들의 어업활동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어민들은 보상가가 낮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데, 보완할 점은 없는가. -처음에는 배만 감정가만큼 보상하려고 했지만 입법과정에서 어민들의 의견을 반영, 어업허가 폐지에 따른 지원금을 최고 2000만원까지 더 주게 된 것이다.5t짜리 배의 경우 배 감정가 2000만원에 지원금 2000만원까지 최고 4000만원을 받는다. 배를 정부에 팔지 않고 보유하면서 합법어업으로 전업할 경우 5000만원까지 융자해준다. 또 고테구리 어업을 못하게 된 어민들이 해안 쓰레기수거사업에 참여하면 1인당 하루 3만원씩 준다. 특별법에 따른 보상금은 전문가와 어민 대다수가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일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예산이 없어 5년간 연차 정리할 경우 완전 근절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예산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나. -5년 한시법이지만 올 4월부터 1년간 신청을 받기 때문에 1년내 대부분 정리가 될 것이다. 폐기처리 등 사후관리를 위해 5년이란 시한을 둔 것이다. 올해는 기존 예산 전용을 통해 집행하고 내년에는 국회에서 새 예산안에 반영할 것이기 때문에 예산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 지자체와의 예산 분담비율 문제는 현재 협의 중으로, 사업 수행을 위해 원만히 해결될 것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고테구리어업 소굴’ 오명 듣던 부산 다대포 얼마전까지만 해도 불법어로인 고테구리어업의 소굴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부산 사하구 다대동 다대포 연안. 지난해 8월 정부의 소형기선저인망(고테구리)에 대한 단속이 실시된 이후 된서리를 맞았다. 전성기(?)였던 지난 1995,96년도에는 고테구리 어업에 종사하던 배만 무려 400여척에 달했을 정도로 다대포는 불법어업의 전진기지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부산 미식가들에게는 ‘자연산 활어를 맛보려면 다대포로 가라.’ 는 말이 돌 정도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귀한 자연산 고기가 넘쳐나는 등 불법어획물이 판을 쳤다. 횟집들도 ‘자연산 전문 취급’이라는 글귀를 내걸고 손님을 끌어왔다. 특히 겨울철이면 불법으로 잡은 ‘돌가자미회’맛을 보기 위해 먼 외지에서도 손님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97년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경기가 나빠지고 단속이 강화되자 고테구리업도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성기때의 4분의 1수준인 99척이 남아 있으나 이중 일부만 허가를 받은 자망업을 할 뿐 거의 다 배를 매달아 놓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어민 오학갑(47·부산 사하구 다대동)씨는 “바다에 고기가 나지 않아 정상적인 조업으로는 고기가 안 잡힌다.”며 “기름값과 인건비 빼고 나면 적자.”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어민들 대부분은 이곳보다 다소 사정이 나은 포항, 울산 등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주인 잃은 텅빈 배들만이 정리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횟집들도 덩달아 타격을 입고 있다.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업소가 여러곳 생겨나는 등 지역 경제도 꽁꽁 얼어붙었다. 양식활어는 집 가까운 횟집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어 구태여 멀리 다대포까지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 S횟집 주인 김모(48)씨는 “경기불황 등 여파도 크지만 자연산 횟감의 공급 감소로 인해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마사회=비리경연장?…前회장 2명 수뢰적발

    마사회=비리경연장?…前회장 2명 수뢰적발

    전직 마사회장 두 명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분사시킨 시설물 관리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받아오다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고건호)는 10일 마사회 시설물 관리용역 비리를 적발, 전 마사회장인 윤영호(65)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윤씨 후임인 박창정(59)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황모(47)씨 등 마사회 시설팀 직원 3명을 불구속기소 또는 약식기소하고, 금품수수 액수가 적은 배모씨 등 3명은 마사회측에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 2000년 11월부터 2003년 6월까지 마사회장을 지낸 윤씨는 마사회에서 분사한 R사 전 대표 조모(44·불구속기소)씨로부터 편의제공 청탁 등과 함께 회장 재임 중에 13차례에 걸쳐 1억 4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마사회는 2001년 3월 공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R사를 분사시켜 수의계약 형식으로 시설물 관리용역을 맡겨 왔다. 조씨 등 R사 직원 대부분은 마사회 출신이다. 윤씨는 또 넥타이 등 마사회장용 기념품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공금 3000만원을 빼돌리고, 법인카드를 업무용으로 사용한 것처럼 속여 1500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 후임인 박씨 역시 조씨한테서 경마장시설용역 등과 관련된 편의제공 명목 등으로 1800여만원 상당의 금품과 고급양주 등을 받았다고 검찰은 전했다. 박씨는 이같은 비리 의혹에 대해 청와대측이 조사에 착수하자 최근 사퇴했다. 검찰 관계자는 “고위간부뿐 아니라 하위직 역시 회식비 등 각종 명목으로 용역업체로부터 뇌물을 상납받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심했다.”면서 “이번 수사를 계기로 유사 공기업 비리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재경부 경제총괄부서 위상 찾는다

    “개별부처로서 맡은 일은 잘하고 있지만 부총리급 총괄부처로서 역할은 미흡한 것 같다.”(지난달 24일 재정경제부 혁신워크숍에서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재경부가 경제정책 총괄부처로서 위상을 되찾기 위해 변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시, 금융, 세제, 외환 등 재경부 고유의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전체 경제부처를 아우르며 국가의 미래비전을 디자인하는 기능이 많이 퇴화돼 있다는 내부 반성에 따른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달 15일 취임한 한 부총리가 주도하고 있다. 한 부총리는 동북아시아 중심국가 육성,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 지역 균형발전 등 종합적인 비전을 세울 곳이 재경부밖에 없는데도 그 기능이 그동안 단기부양, 구조조정 등 업무에 가려져 있었다고 취임 초부터 지적해 왔다. 특히 “전임 이헌재 부총리가 경제팀을 이끌면서 신용불량 사태 등 급한 불은 어느정도 껐기 때문에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지를 집중적으로 다루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최근 사안별로 19개 사업팀을 구성했다. 국가 주요사업의 추진상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지원방안을 검토하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고령화·저출산팀, 국민연금팀, 새만금사업팀, 고속철2단계사업팀,J/S프로젝트팀(서남해안 개발사업 담당), 국민임대건설사업팀 등 19개 팀이 만들어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원(부총리급)이 재정경제부(장관급)로 바뀐 이후 재경부의 정책총괄과 미래비전 수립 기능이 크게 약화됐고, 이후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경부 안팎에서는 한 부총리의 행보를 놓고 성장, 시장, 구조조정 등으로 대표되는 ‘구원투수’형 전임자(이헌재 부총리)가 아니라 미래비전에 대한 ‘선발투수’로서의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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