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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勞, 유급 전임자 204명→21명… 20년만에 무파업 임단협

    기아자동차 노사가 20년 연속 파업의 고리를 끊고 임금·단체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특히 노동계 최대 쟁점인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 적용을 놓고 개정 노동법을 준수하기로 한 점에서 주목된다. 이로써 완성차업계 5개사는 노조 출범 이후 사상 처음 ‘무(無)파업’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기아차 노사는 31일 경기 광명 소하리공장에서 진행된 18차 본교섭에서 모든 종업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에 노조 전임자는 크게 줄이는 데 합의를 이끌어 냈다. 노사는 타임오프제 시행에 대해 개정된 노사관계법에 따라 유급 노조전임자 수를 204명에서 21명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사측은 유급 전임자 21명에 대해선 급여를 지급하되, 전임수당은 폐지하기로 했다. 무급 전임자는 노사 협의를 통해 따로 결정하기로 했다. 대신 기아차는 전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고용보장합의서’를 제시했다. 또 임금부분 합의 내용을 보면 ▲기본급 7만 9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일시금 300%+500만원 지급 ▲신차 성공 및 생산·판매 향상을 위한 회사주식 120주 지급 등이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지 20일 만에 전격 합의를 이뤄낸 것은 노사 갈등이 최근 ‘잘나가는’ 기아차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노조는 특근 및 잔업 거부를 강행해 대내외적인 비판을 샀고, 사측도 노조와의 협상이 원활하지 못해 최고의 사업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여기에 일부 노조원들이 노조 지도부의 강경투쟁 방식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노사 모두가 유연한 자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는 2일 실시된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 노동법을 준수하기로 한 기아차 노사의 합의는 내년 단체협약 개정을 앞둔 다른 강성 사업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노정렬, 방송서 불구속 기소 관련 심경 전한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을 짐승에 빗대 모욕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개그맨 노정렬이 방송을 통해 관련 입장을 전한다. 1일 오전 ’민중의 소리’가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노정렬은 오는 3일 방송되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개구쟁이’를 통해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앞서 노정렬은 ‘민중의 소리’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선 “아직 정식으로 서류를 받은 것도 없다”며 “지금 정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서울남부지검 제4형사부(부장검사 홍순보)는 지난 5월 16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조 창립 21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에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을 짐승에 빗대 지칭한 혐의로 개그맨 노정렬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사진=포털 프로필 서울신문NTN 뉴스팀 기자 ntn@seoulntn.com ▶ ‘원걸’ 소희, 키 인증 사진…“귀엽다 vs 정말 165cm?” ▶ 유재석-박명수, ‘2PM 겨냥한’ 2PR 결성…가요계 출격 ▶ 박한별, 속옷화보로 명품 8등신 몸매 ‘섹시미 폴폴’ ▶ 나르샤, ‘청춘불패’ 녹화중 실신 “정확한 병명은…” ▶ 장미인애, 누드화보 공개…“지금, 가장 아름다운 시기”
  • ‘G20 국회의장 회의’ 참석차 加로

    박희태 국회의장은 다음달 2일부터 사흘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리는 ‘G20 국회의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일 출국한다. ‘G20 국회의장 회의’는 G20 의회 정상들이 만나 식량생산 및 분배 수요 충족을 위한 국제 공조전략 등 다자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박 의장은 3일 회의에서 제1 의제인 ‘식량 생산 및 배분 필요성 충족을 위한 국제공조전략’에 대해 첫 번째로 대표연설을 한다. 박 의장은 이어 스티븐 하퍼 총리 등 캐나다 주요 인사, 응웬 푸 쫑 베트남 국회의장 등과 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협력강화 방안 등을 논의한다. 순방에는 한나라당 정해걸·조윤선, 민주당 최인기 의원과 윤원중 의장비서실장, 한종태 국회대변인 등이 수행한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김정일 돌연 訪中] 베이산공원은…김일성 복무 동북항일연군 유적지

    [김정일 돌연 訪中] 베이산공원은…김일성 복무 동북항일연군 유적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일행이 26일 오후 방문한 베이산(北山)공원은 항일 유적지이자 지린시의 대표적인 시민공원이다. 옛날부터 지린8경으로 불렸던 각종 정자와 누각, 사찰, 사당 등이 산재해 있다. 1920년대에 공원으로 조성됐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불상 등을 유심히 살펴본 뒤 혁명열사릉과 혁명열사기념관 등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산공원은 김 위원장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1920년대말 공원내 약왕묘 지하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 소년부를 책임지게 되는 일종의 ‘김일성 유적지’다. 1953년 1만 500㎡의 면적에 조성된 혁명열사릉에는 웨이정민(魏拯民)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사령관 등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6·25(중국명 항미원조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 특히 김 주석이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2군 6사장을 거쳐 이후 제1로군 2방면군 지휘관을 지내는 등 동북항일연군은 북한 정권 1세대를 이어주는 핵심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혁명열사릉 앞에는 30m 높이의 혁명열사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기념탑 상층부에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샤오치(劉少奇), 주더(朱德) 등 혁명원로 4명의 추모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혁명열사릉 옆 야산 정상에는 혁명열사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1993년 준공한 5000㎡ 규모의 기념관에는 웨이정민 등 항일전쟁과 6·25 혁명열사 22인의 업적 내용이 전시돼 있어 김 위원장의 눈길을 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타임오프 위반 사업장 전국 첫 시정명령 의결

    지난달 도입된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와 관련,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이 노동관계법에 위배되는 단협을 체결한 사업장들에 처음으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25일 “에코플라스틱, 광진상공, 일진베어링 등 경주와 포항지역 19개 금속 사업장들이 최근 단협을 체결하면서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한 노동 관계법을 위반해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이 요청한 시정명령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포항지청은 조만간 이들 사업장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해당 사업장 노사는 명령서를 전달받은 날로부터 30일 안에 노조전임자에게 타임오프 범위에서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단협을 새로 체결해야 한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이색 세제…바나나막걸리·딸기약주 등장

    내년 4월 이후에는 바나나막걸리나 딸기약주 등을 맛볼 수 있게 된다. 현행 주류법은 탁주나 약주를 제조할 때 발효과정에서 첨가물을 넣는 것을 금하고 있다. 만약 과일 같은 첨가물을 넣는다고 해도 과일주로 인정돼 높은 세율(약주 5%→과일주 30%)이 적용됐다. 이 때문에 살균과정에서만 첨가물을 넣을 수 있어 전통주를 다양화하는 데 한계가 있고 고유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발효과정 등에서 과실이나 열매채소를 첨가할 수 있게 했다. 맥주나 소주를 만드는 주류제조시설의 기준도 완화된다. 대기업 외에도 중소규모의 지역 주류회사가 생길 수 있게 된 셈이다. 현재는 맥주회사를 만들려면 370만병(500㎖)을, 희석식 소주회사는 36만병(360㎖)을 만들 수 있는 발효조를 반드시 갖춰야 했지만 앞으로는 맥주 20만병, 소주 6만 9000병을 만들 수 있는 생산시설만 갖추면 된다. 충청과 강원도 중 수도권과 경계가 맞닿은 당진·충주·음성·횡성군, 원주·천안·춘천시 등 9개 시·군 소재 골프장 이용료가 오를 전망이다. 지방 골프장의 개별소비세 감면 일몰기한이 2년 연장되지만, 감면율은 지역별로 차등 적용되기 때문이다. 수도권 인접 시·군의 골프장은 50%, 그 외 수도권과 바로 인접하지 않은 골프장과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는 이전과 같이 그대로 100% 감면된다. 비인기 스포츠를 육성하기 위해 운동팀을 창단하는 법인에 세제지원책을 준다. 정부는 올림픽 및 아시안 게임에 지정된 종목 가운데 지원 필요성이 인정된 육상, 탁구, 유도, 사이클, 럭비, 스키 등 33개 종목의 운동팀에 대해 법인세·종합부동산세 등의 ‘세제혜택’을 신설키로 했다. 법인이 팀을 창단하면 창단 후 3년 동안 인건비와 운영비의 7%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팀이 사용하는 운동장 등 토지에 대한 종부세도 비과세 대상이 된다. 하지만 창단 후 3년내 팀을 해단하면 지원액을 모두 추징하게 된다. 또 내년 1월1일부터는 노동조합법을 위반해 노조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면 비용처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 7월1일부터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이 원칙적으로 위법이지만 예외적으로 사용자와의 교섭, 노조 유지·관리활동 등을 할 경우 일정(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급여지급을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타임오프 한도를 벗어나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기존 경마장이나 경륜장, 경정장에 입장할 때 부가되는 개별소비세(경마 500원, 경륜·경정 200원)가 장외발매소로까지 확대된다. TV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람하지만 장외발매소에서도 똑같이 사행성 행위를 하고 있고, 수익도 전체 수익의 77%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금영수증 사용자 중 매월 5000명을 추첨해 1인당 5만원씩 상금을 지급하던 현금영수증 당첨금제는 내년부터 사라진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망국의 치욕 감내했던 흥복헌… 슬픈 역사만 오롯이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망국의 치욕 감내했던 흥복헌… 슬픈 역사만 오롯이

    2010년 8월20일, 여름의 한복판. 창덕궁의 하늘은 한없이 파랬다. 대조전(大造殿) 흥복헌은 말 그대로 구중심처, 깊숙하기만 했다. 돈화문으로 들어선 뒤 몇 개의 문을 지나 선정전, 희정당을 거치며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줄곧 훔쳐내고서야 대조전 흥복헌에 이를 수 있다. 왕비가 거처했던 공간인 대조전은 연못과 정자, 넓은 숲 등이 아름답게 갖춰진 후원 바로 앞쪽에 있다. 흥복헌은 대조전 왼쪽에 있는 작은 방. 그러나 100년 전 망국의 치욕을 묵묵히 감내했던 이곳은 그때의 흥복헌이 아니다. 1917년 큰 화재로 불탄 뒤 1920년 중건된 곳이다. 흥복헌의 문은 굳게 닫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저 창덕궁 직원 임동수씨의 몇몇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1910년 8월22일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리던 날 병풍 뒤쪽에 앉아 있던 순정효황후가 강제 합병을 슬퍼하며 국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는 이야기, 1910년 그날 이후 1917년 불이 나기 전까지 왕실의 이발소로 사용했다는 이야기, 1926년 4월26일 순종이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 등을 심상히 듣기에는 100년 전의 슬픈 역사도, 무더운 날씨도, 내밀했을 이 공간도 모두 심상하지 않다. 그날 오후 4시에 채 못 미쳤을 시간, 어전회의를 박차고 나섰을 이완용의 걸음을 좇았다. ‘일한합방조약’에 대한 전권 위임장을 손에 쥐고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과 함께 마차에 오른 이완용은 한시라도 바삐 ‘기쁜 소식’을 전하고픈 마음에 마부를 재촉했다.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있는 관저까지는 4~5㎞ 되는 거리이니 내처 달리면 20분 남짓이면 도착했을 것이다. 오후 4시께 도착해서 불과 1시간 만에 일본에 나라를 넘기는 형식적 절차를 마친 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을 것이다. 지금은 서울 예장동 2의1번지, 서울유스호스텔이 들어선 곳 어귀 즈음 오른쪽에 벤치 네다섯 개가 덜렁 놓여있는 작은 잔디밭 공원이 있다. 통감 관저가 있었던 곳이다. 기념할 만한 어떤 표지도 없다. 도로의 가장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다. 그저 옛날 사진 속과 마찬가지로 진입로 왼쪽 편에 어른 세 명이 팔을 둘러도 닿지 않을 만큼 굵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만 여전히 남아 일제강점기 조선 백성들의 수탈과 핍박의 총지휘관이 살았던 곳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은행나무 옆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돌로 된 벤치 같은 것이 놓여 있다. 통감부 설치 이전, 일제 강점의 기초작업을 한 공을 기려 1936년 세워진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의 동상 좌대 판석이다. 다행히 서울시는 오는 10월 이곳에 연혁과 함께 한·일 강제병합조약 체결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안 등을 담아 ‘녹천정 터’라는 표지석을 설치할 예정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치욕의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계언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에선 무슨 일이…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에선 무슨 일이…

    그러니까 그해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즉위한 지 4년째인 융희(隆熙) 4년이었다. 대부분 백성들은 그냥 경술년이라 불렀고, 뒷날 서기년도를 본격 도입하면서 1910년으로 기록했다. 허나 한동안 신문, 자료 등 여러 기록에서는 그해를 메이지(明治) 43년으로 표기했다. 백중도 지나갔건만, 여름 막바지 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그해 8월22일 ‘국치의 날’ 이후부터였다. 꼬박 100년 전 그날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한합방조약’이 체결됐다. 무력한 나라의 가여운 백성들은 하루 아침에 나라를 잃고 황국의 신민이 되고 말았다. 그날 오후 2시 서울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興福軒)에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회의 안건은 단 하나였다. 한·일병합조약의 전권을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순종과 총리대신 이완용은 물론,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탁지부대신 고영희, 법부대신 이재곤, 궁내대신 민병석, 시종원경 윤덕영 등 각료들과 왕족 대표 이재면, 원로 대표인 중추원 의장 김윤식 등이 참석했다. 회의 자리는 침울했다. 순종의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각료들도 쉬 입을 떼지 못했다. 침묵은 길었고 더위에 지친 매미만 흥복헌 바깥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이완용이 5년 전 1905년 을사조약 당시의 ‘활약’에 이어 다시 한 번 나선다. 합방의 필요성과 불가피성, 그동안 일본과 교섭한 내용 등을 한 시간 가까이 설명했고, 이미 닷새 전 이완용이 모두 손을 써 놓았던 나머지 각료들은 모두 마지못해 “옳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순종은 이완용의 발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어갔다. 마침내 순종은 “권신이 모두 가(可)하다면 짐도 이의가 없다. 동양평화를 위해 기쁜 일이다.”며 조약에 관한 전권을 이완용에게 위임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완용은 위임장을 들고 지체 없이 농상공부대신 조중응과 함께 마차에 올라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있는 통감관저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명의로 데라우치와 함께 합방조약을 체결했다. 함께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했다. 숱한 외적의 침입과 전란 속에서도 지켜온 나라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910년 8월22일 월요일 오후 5시였다. 이날 서울 거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서울 주재 외신 기자들은 저녁 헌병사령관 아카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해 취재 라인이 사실상 봉쇄됐다. 거리를 순찰하는 헌병과 경찰의 눈초리는 더욱 엄중해졌지만 그들의 얼굴 표정에서는 어떤 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외교권 박탈은 물론, 군대가 해산되고 경찰권까지 넘겨주는 등 합병의 수순이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 가슴 속에 쌓인 체념은 이미 컸다. 그러나 이에 앞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겪은 혼란과 불안감, 전민족적 항거를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일주일 동안 이를 공포하지 않은 채 물밑 작업을 벌였던 점도 평온한 분위기 조성에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예비검속이 단행됐고, 수천명의 항일인사가 체포됐으며, 어지간한 민족주의 단체는 대부분 해산당했다. 모든 저항의 싹을 잘라낸 뒤, 8월29일 일본의 강제 병합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순종은 끝끝내 조인된 조약서에 국새를 찍지 않는 소극적 방식으로나마 저항했지만 일본의 강제 병합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훗날 국제법상 불법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라도 남겨 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날의 공로로 이완용은 훈1등 백작이라는 작위를 받고 은사금 15만원을 ‘하사’받았다. 36년의 일제 강점이 사실상 시작된 날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짜릿한 기쁨으로, 누군가에게는 무기력한 체념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심한 일상 속에서 저물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일반인엔 ‘철퇴’ 청문회선 ‘훈방’… 위장전입의 두얼굴

    일반인엔 ‘철퇴’ 청문회선 ‘훈방’… 위장전입의 두얼굴

    현행법상 위장전입은 중(重)한 범죄행위다. 주민등록법 제37조 3항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적발되면 예외 없이 처벌을 받는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09년 192명, 2010년 105명 등 최근 2년간 297명이 고등학교 배정과 관련, 위장전입으로 적발됐다. 이들 중 위장전입한 거주지에 ‘살아 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실거주지로 환원됐다. 2009년 검찰연감에는 위장전입 등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759명이었다. 같은 해 사법연감에는 149명이 재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2006년 전주에서는 아파트 분양권을 따내기 위해 위장전입한 주민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법원은 위장전입자 32명에 대해 총 2억 3100만원의 ‘벌금폭탄’을 선고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인천 남동을 지역에 출마하면서 서울에 있던 주민등록을 지역구로 급하게 옮겼다. 허위로 전입신고를 한 대가로 조 의원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벌금 20만원을 선고 받았다. 조 의원실 측은 “죄인지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조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법대로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진짜 힘 있는 인사’들은 위장전입을 하나의 ‘훈장’처럼 여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는 모두 자녀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 땅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등 다른 의혹과 달리 모두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깨끗이 시인’하고 있다. 인사철마다 고위공직자, 정치인의 위장전입 문제가 단골 소재처럼 터져 나오지만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면 해결된다는 식이다. 이 같은 도덕 불감증은 여당 대표의 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조그마한 결점을 끄집어내서 흠집내는 청문회는 지양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도 “위장전입의 시기나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그런 합의에 따라 대통령이 지명하면 논란의 여지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소가 지난 17일 91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5.6%는 위장전입 등 의혹을 받고 있는 후보자에 대해 “도덕성 문제가 직무 수행에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말로만 법치주의를 외치고 정작 본인의 죄는 묵인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고위공직자라면 일반 시민보다 위장전입에 대해 더욱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섭(58)씨는 “자녀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창피해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면서 “같은 죄목으로 일반 시민들만 처벌하면 누가 순순히 받아들이겠나.”라고 말했다. 김새미(27·여)씨도 “권력 있는 사람들은 위장전입해도 아무 문제되지 않는 나라냐.”고 질타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타임오프제라도 도입됐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타임오프라도 도입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에 반발하는 대부분의 민간노조와는 달리 공무원노조는 타임오프제를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6급 이하 공무원 2만 2000여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행정부 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노조는 법령상 제약이 많아 활동이 너무 위축돼 있다.”면서 “타임오프제를 적용할 경우 합법적으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전임자를 둘 수 있는 등 공무원 노조활동에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 노동조합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무원 노조법)에 따르면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근무시간에는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 관련 업무가 아니면 노조활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유급 노조전임자도 둘 수 없으며, 노조활동을 하려면 부득이 휴직을 하거나 주말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타임오프제가 공무원 노조단체에도 적용된다면 행정부 노조의 경우 최대 17명까지 유급 전임자를 둘 수 있게 된다. 민간노조에서 꺼리는 타임오프제도가 공무원 노조에는 오히려 득이 되는 셈이다. 공무원노조총연맹 관계자도 “우선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면서도 “타임오프제 적용을 단체협약 대상으로 고려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의 협상파트너인 행정안전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민간에서 타임오프제가 어떤 결과를 보이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행안부 차원에서 공무원 노조를 대상으로 이를 시행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앙드레 김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정부는 지난 12일 타계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에게 그간 패션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고인의 빈소에 조전을 보내 명복을 빌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앙드레 김 선생은 세계 수준의 패션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면서 “지속적인 기부와 봉사로 많은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앙드레 김 선생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를 표했다. 이 대통령의 조전은 진동섭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오전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을 찾아 대신 전달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오후에 빈소를 직접 찾아 조의를 표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8·15 65주년] 5대 궁궐 日帝 수난사

    일제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말살하고자 대대적인 궁궐 파괴를 자행했다. 박람회장으로, 동물원으로, 유원지로 전락시켜 조선 백성을 조롱했다. 그 상흔은 광복 65주년이 되는 지금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1915년 경복궁 전각 대부분 철거 법궁인 경복궁은 박람회장이 돼 버렸다. 일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열면서 정전과 편전, 침전 일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을 철거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남산에 위치했던 총독부 건물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이동시키고 지금의 흥례문 영역에 조선총독부를 건설했다. 경희궁은 가장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907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했다. 지형도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등 크게 변형시켰다. 이후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 등 얼마 되지 않은 건물들마저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이전되면서 궁궐의 면모를 상실했다. 정문인 흥화문은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 정문으로 팔렸다가 이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는 수난을 당했다. 1920년대가 지나면서 7만여평의 넓이에 120채가 넘는 전각이 있던 조선 왕조의 서궐 경희궁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됐다. 1930년대에는 전시 대비용 시설인 벙커가 건립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일제는 덕수궁도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수궁은 아관파천 후 고종이 환궁해 대한제국을 선포할 당시 경운궁이라는 이름의 정궁이었다. 덕수궁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궁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후 곳곳이 잘려 나가고 건물이 철거돼 궁궐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일제는 1931년 덕수궁 부지 2만여평 가운데 1만평을 경성의 중앙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부터 많은 전각이 철거됐고, 석조전은 1933년부터 미술관으로 바뀌어 1943년까지 일본 미술품만 전시했다. ●경희궁 전시 벙커 활용 창덕궁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가 막을 내린 장소다. 1919년 8월29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한·일강제병합 조약이 이뤄졌다. 1926년 4월25일에는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1917년 내전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일제는 이를 복구한다는 핑계로 경복궁 내전 건물들을 모두 헐어다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일제는 주인을 잃은 창덕궁의 전각을 헐고 전시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지어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전락하는 모욕을 당했다. 1907년 즉위한 순종은 창덕궁을 새로운 거처로 삼았다. 1908년 일제는 창덕궁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창경궁의 선인문 안에 동물원을 설치했다. 순종 황제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한다는 구실이었다. 뒤이어 식물원이 설치됐고, 이름조차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8·15 65주년] 훼손 궁궐 제모습 찾기 어디까지

    원형 복원된 광화문이 15일 일반인에게 공개되면 1990년부터 진행돼 온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은 마무리된다. 경복궁 복원사업은 일제 강점기에 변형, 훼손된 경복궁을 원형대로 복원해 민족 정기를 회복하고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한편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조성하려는 목표로 시작됐다. 1차 복원사업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거나 훼손된 전각을 새로 지어 정전(正殿), 편전(便殿), 침전(寢殿), 동궁(東宮), 빈전(殯殿) 등으로 이루어진 기본 궁제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1990~1995년 강녕전 등 임금과 왕비의 처소가 있는 침전 권역이 복원됐고, 1995년 동궁 권역 복원을 위해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됐다. 1999년에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 자선당 영역이 복원됐고, 2000년대 들어 흥례문, 건청궁, 태원전 등이 되살아났다. 20년간 총 89동을 복원했다. 일제의 철거를 피해 남아 있던 기존 건물 36동을 포함하면 총 125동으로, 고종 당시 500여동의 25% 수준에 도달했다. 1571억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경복궁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2차 복원 사업이 추진된다. 총 5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궐내 각사와 동궁 권역 등을 중심으로 6개 권역에서 254동의 건물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경희궁은 1980년 9월 궁터가 사적으로 지정됐고, 1985년에는 공원으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과 함께 서울시립박물관과 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경희궁터의 유구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발굴 결과와 문헌 고증을 거쳐 1987년 흥화문, 1991년 숭정전, 1998년 자정전과 회랑, 2000년 태령전과 그 일곽을 각각 복원했다. 다만 흥화문은 원래 있던 자리에 구세군회관이 자리해 서쪽으로 100여m 옮겨 복원했다. 창덕궁 인정전 행각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뒤 일제가 복원하면서 전통 궁궐 건축 양식으로 복원하지 않고 트러스 구조 위에 일본식 널개판과 루핑을 깔고 그 위에 한식 기와를 올렸다. 겉으로는 우리 전통 궁궐의 모습으로 보이나 내부 구조는 서구식이다. 정부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대규모 복원 사업을 벌여 돈화문 월대, 낙선재 일대, 진선문, 숙장문 등을 복원했다. 창덕궁과 종묘는 원래 담장을 사이에 두고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나 1931년 일제가 율곡로를 개설하면서 분리됐다. 서울시는 10월부터 이 구간의 일부를 지하화하는 등 복원계획을 추진 중이다. 덕수궁은 석조전의 내부 원형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10월까지 고종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해 ‘대한제국 역사관’(가칭)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에 최대의 행락지였고 광복 후에도 유원지로 전락했던 창경원은 가장 먼저 복원공사가 이뤄져 1983년 12월 창경궁으로 환원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헌재 결정 3題] 조전혁의원 권한쟁의 심판 ‘각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 공개를 불허한 법원 결정이 부당하다며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헌법재판소에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이 각하됐다. 헌재는 29일 조 의원이 서울남부지법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권한쟁의 심판은 공공기관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헌법 해석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헌재는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독자적인 권능을 행사하는 경우가 아닌 때에는 권한쟁의심판에서 말하는 권한이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며 “특정 정보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거나 언론에 알리는 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독자적인 권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법원의 가처분결정이 조 의원의 특정 법률안 발의나 심의·표결권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므로 권한침해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지난 3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전교조는 “공개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남부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전교조의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조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명단 공개를 강행했다. 전교조는 다시 조 의원을 상대로 간접강제 이행 신청을 했고, 법원은 조 의원에게 1일 3000만원의 이행금을 결정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덕수궁 분수 물개상 출생비밀 밝혀졌다

    덕수궁 분수 물개상 출생비밀 밝혀졌다

    고종 황제의 처소 겸 집무실이었던 덕수궁 석조전의 원형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석조전 앞 분수의 물개 조각상에 얽힌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가 발견됐다. 석조전 분수는 1938년 일제가 석조전 서쪽에 이왕가미술관(현 덕수궁미술관)을 만들 때 조성한 서양식 분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래 공개된 1920~30년대 사진자료에 지금과 다른 형태의 서양식 분수가 이미 존재했고, 물개가 아닌 거북 조각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조각상 교체 배경과 의도 등에 대해 의혹이 제기돼 왔다. 물개 조각상을 누가, 언제 제작했는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재미 큐레이터 선승혜(40·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일본미술 담당)씨는 26일 석조전 분수의 물개 조각상은 193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 조각공예부문 심사위원이었던 일본 도쿄미술학교 쓰다 시노부 교수가 디자인했으며, 1940년 1~8월 사이에 설치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선씨는 논문 ‘한국 근대의 양식(洋式)취미-석조전 정원과 쓰다 시노부의 분수조각’에서 이왕직(일제 강점기 조선의 왕족을 관리하던 직제)이 분수를 개·보수하면서 쓰다 교수에게 새 조각상을 의뢰한 공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1938년 7월16일 작성된 공문은 분수 디자인의 사진과 크기를 보내면 오사카 주조소에 제작을 의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공문에는 어떤 의도로 조각상을 의뢰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거북은 왕의 도장인 어새의 손잡이에 조각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서 “거북 조각을 물개 조각으로 대체한 것이 의도적인 것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조선 왕조를 부인하고 권위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타임오프’ 이후 노조전임자 무급 현실화

    양대 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노조 전임자들이 타임오프(유급 근로시간면제)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지급된 월급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체협약 갱신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업장이 많아 당분간 일부 전임자들의 무급 상태가 지속될 전망이다. 25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따르면 양 노총에 파견된 일부 전임자들과 소속 개별 기업의 일부 노조 전임자들이 노사 간에 단협 교섭이 마무리되지 않거나 타임오프 법정한도를 준수하기로 합의하는 바람에 7월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원래 소속사인 LG전자는 장 위원장의 7월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장 위원장과 LG전자 소속으로 한국노총에 파견된 전임자 3명은 이달부터 무급휴직 상태가 됐다. 장 위원장 외에 한국노총에 파견된 전임자 120여명 중 절반가량도 이달 월급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월급을 받지 못한 파견 전임자들에게 기존 월급날에 맞춰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원래 소속사인 코레일과 노조가 타임오프제에 따른 임금지급 대상자를 합의하지 못한 탓에 7월 임금을 받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지 않았지만 민주노총 본부와 산하 산별노조에 파견된 100여명의 전임자 중 일부가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코레일뿐 아니라 25일 월급을 주는 D버스 사무직 노조 등 일부 업체 역시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7월분 노조전임자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전임자 임금지급 여부는 노사자율의 문제”라면서 “노동 기본권 확보를 위해 타임오프제에 굴복당하거나 위협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 안상수號 화합과 쇄신으로 새 출발하라

    한나라당은 어제 전당대회를 열고 안상수 의원을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하는 등 앞으로 2년간 이끌어갈 새 지도부를 구성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11명의 후보들은 대부분 경선기간 동안 진흙탕 속의 개싸움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정책 경쟁이나 비전 제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6·2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반성도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웠다. 대신 헐뜯기와 흑색선전만 난무했다. 중도에 후보를 사퇴한 조전혁 의원의 말마따나 ‘이씨집(이명박 대통령) 하인’과 ‘박씨집(박근혜 전 대표) 종’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겠지만 같은 당 소속 후보 간의 경쟁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날 선 공방, 인신공격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특히 대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안상수·홍준표 의원은 ‘병역기피 의혹’, ‘개소리 공방’ 등 유치원생의 말싸움과 같은 치졸한 설전을 주고받았다. 사실상 남남처럼 된 친이와 친박 후보 간의 대립은 삼척동자도 알 정도니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친이 내의 싸움까지 겹치면서 집권당의 전당대회가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지 한심해 보였다. 새 지도부는 2주 앞으로 다가온 ‘7·28 재·보선’의 승리보다 전당대회를 통해 만신창이가 된 당의 화합을 먼저 이뤄내야 한다. 전당대회도 끝났으니 경선기간 중의 좋지 않은 기억은 지우고 책임 있는 집권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친이와 친박의 갈등, 여권 내의 권력투쟁으로 불거진 친이 내의 갈등은 국민의 불쾌지수만 높일 뿐이다. 새 지도부는 또 전면적인 쇄신을 통해 새로운 바람도 일으켜야 한다. 젊은 피를 수혈하는 등 세대교체도 과감할 정도로 이뤄내야 한다. 청와대의 새로운 진용, 앞으로 구성될 새로운 내각과 함께 일자리 만들기 등 서민과 중산층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귀를 활짝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어제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은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와 합당하면서 의석 수는 176석으로 늘어났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정치 본래의 모습, 상생의 정치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물론 한나라당이 이렇게 하려면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는 등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 [씨줄날줄] 돼지저금통/박대출 논설위원

    1961년 한 국산 영화가 개봉됐다. 제목은 돼지꿈. 주인공은 순박한 중학교 교사다. 아내, 아들과 어렵게 산다. 어느날 돼지꿈을 꾼다. 아내가 이웃의 권유를 받아 부업으로 돼지를 키운다. 그러다가 약을 팔면 큰 이익을 남긴다는 사기꾼의 꾐에 빠져 우여곡절을 겪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로는 안성기가 나온다. 배우 이덕화, 허준호의 작고한 부친 이예춘, 허장강 등 원로 배우가 출연한다. 소설가 추식의 ‘재건주택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당시 서울신문 시나리오 공모 당선 작품이다. 60년대 한국 영화의 걸작 중 한 편으로 꼽힌다. 영어 제목은 A Dream of Fortune. A Dream of Pig가 아니다. 돼지를 직역하지 않고,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 돼지는 다산(多産)과 부(富)의 상징이다. 돼지해에 태어나면 건강하고 부귀를 누린다고 한다. 중국 당사주(唐四柱)에 나오는 사주풀이다. 그러다 보니 저금통으론 돼지가 으뜸이다. 돼지저금통은 방 안을 장식하는 단골메뉴였다. 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매개체가 됐다. 돼지저금통은 ‘개인의 경제적 영역’에서 머물러 왔다. 부모님이 사주면, 동전을 모으고, 예금통장에 붓고…. 그런데 출발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나눔의 영역’에서 비롯됐다. 미국 캔자스 주 마을에 윌버란 어린이가 있었다. 용돈 3달러로 새끼 돼지를 샀다. 돼지를 키워 판 돈으로 한센병 환자 가족을 도왔다. 그 내용이 한 신문에 소개됐다. 감동을 받은 독자들이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이웃돕기에 나섰다. 이것이 최초의 돼지저금통이다. 2002년 돼지저금통의 영역 이동이 있었다. 사적(私的), 공적(公的)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왔다. 노무현 대선 후보의 ‘희망의 돼지저금통’ 얘기다. 이회창 후보에겐 ‘절망의 돼지저금통’이 됐다. 모금운동은 노무현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논란은 대선 와중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불법 선거운동 논란은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다. 모금액의 허위 논란도 벌어졌다. 그제 돼지저금통이 또 등장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돼지저금통 3개를 들고 전교조 사무실에 나타났다. 야당과 전교조는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강제로 막을 길이 없다.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조 의원은 “한 달에 한 번 내 발로 현금을 들고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우리에겐 늘 친근한 돼지저금통.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소란스러워진다. 원래 영역에 머무는 게 나을 것 같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현금 481만원 받으시오”

    “현금 481만원 받으시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을 직접 찾아 현금 481만원을 전달했다. 이 돈은 법원의 전교조 명단 공개금지 명령에 불응해 법원이 결정한 강제이행금 1억 5000만원의 일부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정치적 쇼’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조 의원은 오전 11시 보좌관과 함께 전교조 사무실을 직접 찾아 분홍 보자기에 쌓인 돼지저금통 3개를 전달했다. 준비해온 커터칼로 저금통의 배를 가르자 10원짜리를 포함한 동전이 쏟아져 나왔고, 함께 준비해온 10만원짜리 수표를 포함해 조의원이 이날 준비한 돈은 모두 481만 9520원이었다. 조 의원은 “전교조가 통장을 압류하는 바람에 돈을 전달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서 “(사전에 예고한 대로) 매달 돈을 빌려서라도 조금씩 강제이행금을 계속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무실 밖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한 조 의원은 “교육단체의 정보 공개를 막는 법은 없다.”면서 “나는 아직도 판사가 법을 잘못 적용했다고 생각한다. 항소심과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이 나올 것”이라고 말해 이행금은 계속 내되 교원명단 공개에 대한 자신의 소신은 철회하지 않을 뜻임을 내비쳤다. 이에 전교조 측은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이 법원 판결을 어겨놓고도 오히려 당당해하는 모습이 황당하다.”면서 “사전 협의도 없이 이처럼 일처리를 하는 것은 전교조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전교조는 조 의원의 행동과 상관없이 앞으로 정당한 절차에 따라 압류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전교조, 조전혁의원 재산압류 착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금융재산 압류 절차를 시작했다. 조 의원은 전교조 명단을 홈페이지에서 내리라는 서울남부지법의 명령에 불응, 하루에 3000만원씩 강제이행금을 물게 됐다. 전교조는 12일 조 의원의 재산을 언제든지 압류할 수 있는 채권압류 추심 결정문을 지난 8일 법원에서 발부 받았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해당 결정문을 근거로 조 의원의 예금을 압류할 방침이다. 조 의원은 지난 4월30일부터 5월4일까지 닷새 동안 전교조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 모두 1억 5000만원의 강제이행금 결정을 받았다. 전교조 관계자는 “조 의원 등이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식 주장으로 교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면서 “조 의원은 기자회견에서는 ‘돈이 마련되는 대로 주겠다.’고 해놓고 말과는 달리 가처분신청·권한쟁의 심판 등과 같은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봉급 통장을 압류하는 정도일 텐데 헌법기관인 의원 통장을 압류하고 이런 건 좀 모습이 좋지 않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돼지저금통도 꽤 보내줬고, 주변에서 친지들이 도와주는데 돈이 마련되는 대로 직접 갖다 주겠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주장한 권한쟁의 심판 등에 대해서는 “현재 고법에 항소했고 ‘가처분 판결 자체가 잘못됐다.’는 요지로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다.”고 덧붙였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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