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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광·풍력·조력 중 한두곳 집중 투자해야”

    “태양광·풍력·조력 중 한두곳 집중 투자해야”

    멜리사 실링(43)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19일 서울 남대문 라마다앤드스위트호텔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대체에너지 개발 투자는 풍력·조력·태양광 등 여러 분야에 계획 없이 이뤄지는 것보다 한두 가지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정유사의 석유값을 내리도록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물가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대체에너지 수요를 줄일 수 있다며 그보다는 경쟁 체제를 갖추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에 대해서는 대기업에만 이익이 집중되는 한국 경제구조 하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 주식을 일부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기술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스마트폰 세상에서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링 교수는 기술경영 분야의 권위자로서 저서 ‘기술혁신을 위한 전략경영’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 교환 교수로 있으며, 20일 서강대 경영기술대학원이 주최하는 ‘대체 에너지를 향한 큰 발걸음’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 20일 콘퍼런스에서 발표할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풍력·지력·조력까지 정부나 민간이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는데 정부가 관리한다면 적은 노력으로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태양광에 많은 투자가 있었지만 성과는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풍력이나 지력이 투자에 비해 빠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강조하는 한두 분야의 대체에너지가 있다면 투자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은 정부의 요청으로 정유사들이 일시적으로 가격을 내렸다. -정부 말대로 업체가 석유값을 내리면 언젠가 정부도 자신의 요청을 들어준 업계 요청을 들어줄 것이다. 따라서 보기와 달리 정부와 업계의 결합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정부가 석유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물가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에너지 개발 측면에서 나쁜 뉴스다. 석유값이 올라가면 대체에너지 개발을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진다. → 스마트폰의 통신비를 내리도록 하는 정책도 진행 중인데. -만일 통신업체가 이윤이 많고, 과점 상태라면 담합의 냄새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통신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정부는 다른 회사가 진입하게 한다든지 대체재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유럽은 일반 전화 가격이 너무 싸서 휴대전화 가격을 올릴 수가 없는 형국이다. (한국은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결합하는 상품을 쓰면 더 싸게 해준다고 하자) 시장을 개방해 국제적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 전파는 공공성이 있는데 쉽게 시장을 움직일 수 있겠나. -전파는 공공 소유이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서비스업체의 경쟁은 공공성과 전혀 다른 문제다. → 스마트폰 시장의 미래는. -스마트폰의 힘에 MS까지 무너질 수 있다. 이제 경영기법이 아닌 기술 자체가 힘이다. 개인용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드웨어와 응용프로그램을 통제하던 MS의 힘은 작아질 것이다. 윈도 시스템 대신 스마트폰 기능을 사람들이 더 쉽게 느끼고 가장 중요한 기술 시스템으로 각인하면서 스마트폰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 한국은 이익공유제 때문에 논란 중이다. -사실 미국에는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많은 돈을 벌고 하청 기업들은 이익이 없다면 정서적, 경제적 불균형 상태다. 자유시장이라면 하청업체가 돈을 더 벌려고 노력하면서 이익균등 상태가 이뤄질 텐데 그렇지 않다면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의 힘도 미치지 못하고 하청업체가 대기업에 대항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제도적으로 풀어줘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주식을 사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개발도상국은 재벌시스템을 통해 발전했다. 정부가 몇 개 기업을 도왔고 국민은 입을 다물었다. 어려운 나라에서 재벌이 잘되면 국가와 국민에게 혜택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국민들은 예전에 기대하던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것 같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대전 구도심·변두리 학교공동화 심각

    대전이 구도심과 변두리를 중심으로 농어촌처럼 심각한 학생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등 대형 개발 호재로 인구 유입이 기대되지만 이런 현상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대전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유성구 학하초, 동구 동명초 등 구도심이나 변두리의 8개 초등학교가 전체 학생 60명도 안 된다. 동명초 57명, 동구 산흥초 41명, 동구 세천초 52명, 대덕구 장동초 50명 등이다. 전교생이 48명밖에 안 되는 학하초는 3·4학년이 각각 5명과 4명에 그치는 등 대부분 학년당 학생 수가 채 10명이 안 된다. 이는 학생들이 교육환경이 좋은 둔산과 노은 등 시내 신도시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에는 유성구 보덕초가 송강택지개발로 인근에 두리초교가 문을 열면서 6학급으로 줄어들자 폐교된 바 있다. 1998년 문을 연 보덕초는 개교 직후 37학급 규모를 자랑했었다. 특히 구도심 공동화로 1911년 대전 첫 초등학교로 문을 연 동구 삼성초등학교와 중구 선화초도 전체 학생 수가 각각 300명과 200명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전성기 때 전체 50학급이 넘었다. 10개 반이 넘는 학년이 수두룩하고 학급당 학생이 학생 수용 기준 30명을 크게 초과해 과밀학급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둔산 한밭초·샘머리초 등 대다수 신시가지 초등학교와 대조적이다. 시교육청은 전체 학생 60명 이하 초등학교를 상대로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으나 학부모와 동문들의 반대로 한 곳도 성공하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는 마을의 구심점이고, 통폐합되면 학교가 멀어진다.”고 반대한다. 농어촌 지역 통폐합을 반대하는 이유와 같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과학벨트 입지 등으로 대전 인구가 늘어도 구도심이나 변두리 거주를 꺼려 이곳 학교 학생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면서 “이 문제를 푸는 데는 학교 통폐합 방법 외에 없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고위험 주식워런트 시장 과열양상 금감원 올 분담금 100억 챙길 듯

    금융감독원이 고위험 파생상품인 주식워런트(ELW) 시장의 급팽창을 막지 못했으면서도 ELW 발행분담금 형태로 올해 100억원을 챙길 것으로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ELW는 개별 주식, 주가 지수 등과 연계해 미리 매매 시점과 가격을 정한 뒤 약정한 방법에 따라 사고 파는 상품이다. 투자 위험도가 크기 때문에 ‘개미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지만 ELW 시장의 과열 양상은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ELW 시장이 커질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금감원이 규제보다는 시장 친화적인 감독으로 일관해 일을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ELW 발행액은 82조 2187억원으로 2009년 대비 111%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가 ELW를 발행할 때마다 금감원에 내는 발행분담금은 74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 1~3월 ELW 발행액이 26조 480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이상 급증한 것을 감안하면 금감원이 거둬들일 수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금감원이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것은 피감독기관에서 감독수수료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회사들이 유가증권 발행신고를 할 때 발행가액 대비 일정 비율의 분담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법규 때문이다. ELW 시장이 단기에 급성장한 데다 주식·채권 발행시장의 호황이 이어지면서 금감원이 해마다 챙기는 전체 발행분담금 규모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06년 298억원에 불과했던 전체 분담금은 2007년 373억원, 2008년 475억원, 2009년 723억원 등으로 불어났다. 감독분담금이 2006년 1765억원, 2007년 1771억원, 2008년 1725억원, 2009년 1596억원 등으로 점차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과 협의해 ELW 시장 건전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금감원의 예산은 발행분담금 규모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며 예산보다 분담금 수입이 많으면 납부 비율대로 금융회사에 돌려주고 있다.”고 해명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사회갈등 다룰 공공토론위 상설 운영 바람직”

    “사회갈등 다룰 공공토론위 상설 운영 바람직”

    송석구(71)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은 17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신공항 등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국가정책과 관련, “상시 기구인 공공토론위원회를 따로 두고 그때그때 사안별로 논의를 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같은 의견을 이미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을 위한 7대 종교 간 대화’ 토론회에 참석한 송 위원장을 만나 종교계 상생 방안, 지역 갈등 해소 등 사통위의 향후 과제와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사안별로 논의해 국민 의견 수렴” →과학벨트 선정,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 등에서 나타난 지역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서구 사회는 근대화하는 데 200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60년 동안 압축적으로 이뤘다. 다른 나라가 겪었던 갈등 구조도 우리는 압축해서 끝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사회통합위원회는 어떻게 했는지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독립 기관인 프랑스의 공공토론위원회(CNDP)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4대강, 과학벨트, 신공항 같은 문제는 물론 찬반이 엇갈리는 원전 정책 등 국가 정책을 시행할 때 공공토론위원회를 상시 구성해서 사안별로 풀어 나가면 된다. 물론 별도의 법률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에게도 이런 기구가 꼭 필요하다는 보고를 이미 드렸다. 위원회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1기 고건 위원장 때와 비교해 2기 사통위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나. -사회 통합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책적 전달이라든가 공정 사회 문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맞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복지 문제 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지역 갈등 해소, 나눔과 개인 기부 문화 활성화도 과제다. →7대 종교 간 토론회는 어떻게 마련됐나. -갈등으로 인해 소비되는 경제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연간 300조원에 달한다. 이념, 세대, 지역, 계층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도 과거엔 없었던 종교 갈등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해 부족이 원인이다. 그래서 이번에 종교 간 소통의 자리를 만들었다. ●“중간층 종교인들 상호 대화 늘어야” →종교 간 갈등을 해소하려면. -7대 종단협의회를 비롯해 종교계 지도자들은 서로 만나면 이해를 잘한다. 문제는 중간층과 신도들이다. 교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많다. 서로 (다른 종교계와) 대화를 안 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신도들을 비롯한 중간 층 간의 상호 대화가 더 늘어나야 한다. →소통을 위한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과거 강원룡 목사, 김수환 추기경 등 1세대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 자주 만나 대화를 많이 했다. 오늘 토론회에 나온 종교계 대표들은 1.5세대나 2세대다. 이 분들도 앞으로 더 자주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다만 과거 1960년대 1세대 종교 지도자들의 대화를 재연해서 한 차원 높은 2000년대에 맞는 종교계의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입각 제의 오더라도 고사하겠다” →대학총장, 신문사 사장, 정부 쪽 일 등 다양한 경험이 있어 하마평에도 가끔 오르는데 입각 제의가 온다면.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 와 다행이며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입각) 제의도 없겠지만 제의가 오더라도 고사하겠다. 글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산학협동상 대상’에 강신일 교수

    산학협동재단은 17일 강신일 연세대 교수를 ‘제33회 산학협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해, 18일 서울 서초동 산학재단빌딩에서 시상한다. 강 교수는 고밀도 데이터 저장 매체의 저가 보급화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우수상은 국내 최초로 경구용 용법 용량 개량 신약을 개발한 이범진 강원대 교수와 와이어로프를 이용한 조적조(組積造)의 내진 보강 설계 개발을 연구한 양근혁 경기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들 교수의 연구에 협력한 ㈜JMI,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고려E&C에는 기업체 특별상이 수여된다.
  • [공정사회 고삐 죈다] 50대 공기업감사 54% 여권 출신

    금융감독원 직원이 금융회사의 감사로 내려가는 일명 ‘낙하산 감사’에 철퇴가 내려진 가운데 한나라당·청와대 등 여권 인사들이 알짜배기 공기업의 요직인 감사 자리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1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시스템 알리오를 분석한 결과 시장형 공기업 14개, 준시장형 공기업 13개,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 17개,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6개 등 50개 공기업에 대통령 또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임명으로 27명의 한나라당, 청와대 등 여권 인사가 감사로 재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 출신 공기업 감사의 대부분은 2007년 대선 승리를 도운 공로를 인정 받은 인물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덕수 한국거래소 감사다. 김 감사는 17대 대통령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위원을 지낸 뒤 국가청렴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에 재직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 야당 의원들로부터 “정권 실세인 포항·청와대 출신으로 낙하산 감사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임명된 이병용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는 한나라당 정책관리실장, 대통령인수위 전문위원, 국무총리실 정무실장 등을 거친 여당 출신이다. 이원형 한국관광공사 감사는 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이고 지난 1월 임명된 한대수 한국전력공사 상임감사위원은 한나라당 제2사무부총장, 청주시장, 충북 행정부지사 등을 지냈다. 50개 공기업 감사 중 대학 교수 등 민간 인사는 9명으로 18%에 그쳤다. 예비역 장성 등 군인 출신 감사가 6명, 감사원·공무원·법조계 출신 감사가 각각 2명이었다. 감사 50명은 7384만~1억 3598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논공행상의 수단으로 전락한 공기업 감사 제도를 구조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 이익과 직결되는 공기업 감사직이 월급만 많이 받고 책임 없이 편히 지내다 가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상근감사를 없애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제도로 바꾸는 등 구조적인 개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중화권 리메이크 무비 천녀유혼·옥보단3D 동시개봉

    중화권 리메이크 무비 천녀유혼·옥보단3D 동시개봉

    1980~90년대는 홍콩 영화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설·추석이면 미국 할리우드도 청룽(成龍)을 껄끄러워했다. 저우룬파(周潤發)의 ‘영웅본색’(1986) 등 홍콩 누아르가 휩쓸더니 리롄제(李連杰)의 ‘황비홍’(1991) 등 무협물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열혈남아’(1987)를 시작으로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4) 등 왕자웨이(王家衛)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이 같은 확고한 분할구도 속에 이질적인 두 편이 눈에 띈다. 변형된 무협물(판타지+무협+멜로) ‘천녀유혼‘(1987)과 코믹 에로영화 ’옥보단’(1995)이다. 무술감독 출신인 청샤오둥(程小東)의 ‘천녀유혼’은 기술적 한계 탓에 특수효과는 엉성했다. 하지만 인간과 귀신의 사랑이라는 참신한 소재에, 청순가련 커플 장궈룽(張國榮)과 왕쭈셴(王祖賢)을 캐스팅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91년 홍콩에서 개봉된 ‘옥보단’은 4년 뒤 한국 관객과 만난다. 홍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위압적인 체구와 빡빡 민 머리, 콧수염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서금강이 펼쳐 보이는 애크로바틱한 정사 장면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1990년을 전후로 극장가를 정복했던 두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 지난 12일 나란히 개봉했다. 첫 주말 희비는 엇갈렸다. 홍콩과 타이완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흥행기록을 뛰어넘었다는 소문 덕인지 ‘옥보단 3D’(오른쪽·5만 8244명)가 ‘천녀유혼’(왼쪽·4만 8218명)을 근소한 차로 앞섰다. 물론 원작의 명성을 감안하면 두 편 모두 기대에 못 미친다. 2011년판 천녀유혼은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마음껏 사용했고, 액션도 강력하다. ‘반헬싱’(2004)을 참고한 듯 2011년 천녀유혼 속 퇴마사들은 연속사격이 가능한 석궁으로 귀신들을 손쉽게 죽인다. 1987년판에서 퇴마사 연적하(우마)가 부적과 주문에 의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러브라인도 손을 봤다. 위샤오췬(영채신)과 류이페이(섭소천) 만으로는 약했는지 구톈러(연적하)를 삼각관계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제작진은 한 가지를 놓쳤다. ‘신화’로 남은 장궈룽과 30~40대 팬에게 ‘청순가련 종결자’로 각인된 왕쭈셴과 비교하면 2011년의 배우들은 한없이 작아진다는 점. ‘천녀유혼’ 리메이크의 태생적 한계다. 섹스와 코미디의 결합으로 쾌락의 덧없음을 강조했던 유쾌한 원작과 달리 ‘옥보단 3D’는 노골적인 성(性) 묘사로 승부수를 띄운다. ‘3D 에로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한 전략. 하지만 원작의 해학과 재기발랄함은 희석되고 가학적 묘사가 늘어난 탓에 보기가 불편하다. 섹스 중독자 미앙생이 조강지처 옥향에게 순애보적 사랑을 드러내는 결말도 느닷없다. ‘B자 비디오테이프’에 의존했던 1990년대의 ‘옥보단’은 파격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패착이다. 굳이 ‘3D’로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노총에 ‘혼쭐’난 황우여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16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지도부와의 상견례 자리에서부터 혼쭐이 났다. 오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인사말에서부터 “3년 동안 한나라당과 15번의 대화를 했는데 아무런 결론도 없고 ‘적극 검토하겠다’면서 돌아가면 끝이었다.”며 “합의를 해도 합의서는 바로 휴지조각이 됐다.”고 쓴소리를 했다. 앞서 황 원내대표가 “우리가 오랜 우정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했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건넨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황 원내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를 주도했었다. 당시에도 한국노총 쪽 파트너였던 이용득 위원장과 다시 자리를 함께한 것에 대한 반가움을 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정책연대를 하기로 해놓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그냥 만나는 선에서만 (연대가) 이뤄졌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2월 한국노총이 정책연대를 파기하자 당 정책위 차원에서 조직한 노동 태스크포스(TF)팀에 대해서도 “한두 번 만나서 립서비스만 하고 끝났고, 진정성 없이 청와대의 조정을 받는 TF였다.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당초 상견례 차원에서 만들어진 간담회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노동현안에 대한 정책간담회로 진행됐다. 한국노총은 노조법 재개정에 대한 요구사항을 설명하며 당론으로 채택해줄 것과 6월 임시국회에서 노·사·정과 국회가 한자리에서 노조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황 원내대표는 안홍준 노동분야 정책위 부의장과 한국노총 출신의 김성태 의원에게 실무적 해결을 하도록 위임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9)‘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간디! 흔히 ‘인도 독립의 아버지’, ‘힌두의 성자’라고 불리는 ‘위인’. 그러나 청년 시절의 간디는 조혼이나 카스트 제도를 부끄럽게 여겼고, 육식을 금지하는 힌두교 전통을 낙후된 것이라 생각했던 식민지의 젊은 문명론자였다. 그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도의 대개혁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당연한 일. 이 촌뜨기 식민지 유학생은 식민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영국 신사’의 꿈을 꾸면서 새 옷을 맞추고, 실크 모자와 야외복과 고급 넥타이를 사고, 그것도 모자라 댄스와 프랑스어와 웅변술과 바이올린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빠진다. 물론 이런 부박한 충동은 금세 극복되었다. 그렇다고 ‘문명=개혁’에 대한 간디의 이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간디는 귀국 후 집안에서 자녀에게 체조 교육을 시키고, 음식을 개량하고 의복을 서구화했다. 그에게 영국은 문명과 이성의 대명사였고, 인도는 교화시키고 개혁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식민지 엘리트 청년은 스스로를 위대한 대영제국의 신민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샤 계급 출신으로 인도 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 ‘식료품상’이란 뜻의 ‘간디’란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변호사 자격을 따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개업하기가 어려웠다. 집안의 꿈이었던 정치 관료로 출세하기란 더 난감해 보였다. 간디는 스물넷에 ‘잘나가는 변호사’를 꿈꾸며 남아프리카로 떠난다. 안타깝게도 날선 바지에 영국식 양복을 입은 변호사도 그곳에선 ‘갈색 피부’에 불과했다. 1등석 차표를 지녔지만 “같이 못 타고 가겠다.”는 백인의 말 한마디에 강제로 끌려나와 낯선 기차역에 버려진다. 최초의 충격! 그랬다. 간디는 당시 남아프리카에 5만명가량 존재했던 이주노동자, ‘쿨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쿨리들의 구심점이 되어 버린 간디. 이제 스물여섯 살 청년 간디는 ‘쿨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결국 남아프리카의 나탈에서 인도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가, 혁명가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간디는 23년간 남아프리카에서 그리고 귀국 후 조국 인도에서 죽을 때까지 정치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에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대영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전국적인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해 왔던 것은 정치적 실험이 아니라 “정신적 실험”이며 ‘모크샤’(자기 구원)를 향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징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기억이 없다.”거나 도둑질을 했을 때 깊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속죄를 했다는 식의 자기 성찰은 진지하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모든 위인이나 성인의 특징이라고 말해버리면 간디는 그냥 ‘본투비(Born to be) 성인’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간디의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매번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낯선 상황, 낯선 사건에 놓였고, 매번 그 현장에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영국에 협력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정치적 문제에서부터 육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까지 간디에게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 그는 책을 통해서 진리의 길을 발견했다. 그가 자발적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유학 시절에 읽었던 책들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시절 이후 그가 생산해야 하는 진리의 길은 매번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투쟁의 한복판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놀라울 정도의 윤리적 감수성으로 매번 창조적인 ‘진리 실험’을 한다. 소위 ‘비폭력 불복종’이라고 불리는 ‘사티아그라하’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사티아그라하’는 단순한 정치적 불복종, 지문찍기를 강요하는 영국 지배에 대한 정치적 저항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 고결함을 파괴하며, 인간 관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폭력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그것은 영국을 향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이기도 했다. 나부터 한없이 고귀해지겠다는, 나부터 한없이 낮아지겠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맹세. 간디의 진리 실험이 더해질수록 그는 유명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은 점점 더 간결해졌다. 그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만큼만 입었으며(윈스턴 처칠은 그가 “반쯤 벌거벗은 몸으로 총독 궁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보자 기절초풍하며 “경악스럽고 역겹다.”고 했다), 가장 비천한 불가촉천민이 하는 일, 청소나 똥 푸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간디의 아내는 때때로 절망하고 울부짖었으며,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났다. 맏아들은 마치 아버지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명하고 단호했다. 비록 때때로 좌절하고 비틀거렸지만 그는 단 한번도 ‘사티아그라하’, 모든 폭력과 지배에 대한 그 위대한 불복종을 멈춘 적이 없다. 간디의 물레! 그건 간디의 상징이고, 인도 독립의 상징이고, 나아가 모든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서 진부하기조차 한 물레! 그러나 간디의 물레, 그것은 단순한 ‘국산품 애용’ 운동이 아니다. 흔히 자치로 번역되는 ‘스와라지’ 역시, 단순한 정치 체제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그건 사람들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 인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형제, 자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나아가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정신적 힘을 의미했다. 도대체 인도가 왜 식민지가 되었는가. 물론 동인도회사의 지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 때문인가. 그 이면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들어온 영국 상인만큼 단숨에 돈을 벌고자 했던 인도인의 욕망과 협력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인도인의 마음에 뿌리박힌 영국 문명에 대한 동경, 물질과 화폐에 대한 욕망. 독립과 해방은 영국 통치가 끝나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영국적 삶의 방식 전체, 근대 문명 전체가 종식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물레’는 도구가 아니라 비전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힘으로 노동하고, 그 노동의 힘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그 자립하는 정신들이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이상적인 꿈. 그걸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나 대량생산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수공업들이 리바이벌되는 작은 마을들의 연합. 간디가 꿈꾼 인도의 미래였다. 마을 스와라지에 모든 사람이 환호와 갈채를 보냈을까. 아니다. 타고르는 ‘실을 잣고 천을 짜는 것’이 과연 한 민족의 구루가 전하는 메시지로 적절한가에 대해 간디에게 물었고, 간디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고칼레조차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어리석은 짓이라 비웃었다. 간디는 대답했다. “나는 원시적 방법 자체를 위해 원시적 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시적 방법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는 것은 이 방법 말고는 할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마을 사람에게 일자리를 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 걸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네.” 절대적 빈곤 속에서 술과 아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존심과 고결함을 돌려주는 일. 상호 의존과 형제애를 일상에서 실감하는 일. 노동과 명상과 섬김이 함께하는 마을에서의 삶! 그건 어떤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간디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인도의 비전, 아니 인류의 비전이었다. 1947년 의회를 통과한 인도독립법령에 따라 8월 15일 영국의 인도 지배가 종식되었다. 어찌 보면 간디의 이상이 실현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의 날, 그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독립은 온갖 적대와 폭력 속에서 힌두와 이슬람이 결국 결별을 하는 분단 인도가 탄생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평생 간디를 추종했고 간디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네루는 간디의 스와라지 이상을 버렸다. 그는 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발전된 인도’를 열망했다. 간디의 머리에는 타고르의 시가 떠나지 않았다. “혼자 걸어가라!” 간디는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얼마 못가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투비 성인’으로 출발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영혼’으로 잠들었던 간디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간디의 출발점에 다시 서고 있는 게 아닐까. 혁명의 길과 구원의 길이 다른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 ‘비단장사 왕서방’ 개인전 여는 임동식

    ‘비단장사 왕서방’ 개인전 여는 임동식

    동·서양의 대비를 강렬하게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무엇보다 간결하게 툭툭 치고 끊어 버리는 붓질이 시원스럽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임동식(66) 개인전 ‘비단 장사 왕서방’ 얘기다. 전시는 동양의 비단 포목점과 서양의 양복점을 대비시켰다. 화려한 문양의 비단 천이 가득한 가게에 있는 동양 ‘왕서방’과 곧추 선 손님의 치수를 재느라 마치 몇 배속으로 돌린 짐 캐리(미국 영화배우)처럼 움직이는 서양 ‘왕서방’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캔버스에 담았다. “사변적인 서양과 정감 있는 동양을 대조해 보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왜 하필 비단 대 양복인가. -동양의 문양성에 집중해 보고 싶었다. 문양은 약간 민속 미술, 토속 미술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컨셉트를 중시하는 서양 미술 전통에서는 더더욱 퇴기 취급을 받았다. 그런 걸 한 번 전복해 보고 싶었다. 지적인 기반을 중시하는 서양 미술의 끝자락은 도대체 어디쯤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다른 이유도 많다. 색깔도 다르고, 지어 입는 방식도 다르고…. →안 그래도 색 느낌이 극히 대조적인데. -도시 문명이란 게 그렇다. 우리 농촌만 떠올려 봐도 알록달록 색동옷도 있고 그렇지 않나. 그런데 도시 문명은 워낙 번쩍대는 것들이 많으니 옷에 무거운 색을 많이들 쓴다. 특히 양복은 더 그렇다. 지하철 타 보면 남자들은 대부분 검은색 일색이다. 옷 색깔을 그렇게 무겁게 해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게 도시 문명의 특징인 것 같다. →왕서방을 키워드로 동·서양 대비를 끌어낸 게 재밌다. -독일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그는 독일 함부르크미술대 출신이다). 서양은 아벤트란트(Abendland), 동양은 모르겐란트(Morgenland). 밤의 나라,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다. 필름 사진 시절에는 코닥과 후지가 달랐단다. (일본 필름인) 후지는 벚꽃을 찍어야 하니 화사한 톤에 맞췄고, (미국 필름인) 코닥은 어두운 서양 톤에 맞춘 거였다. 그래서 후지로 서양 찍고, 코닥으로 동양 찍으면 사진의 맛이 안 났다고 한다. 정일성 촬영감독 별명이 ‘소방수’인 거 알고 있나. 화사한 빛의 톤을 살리기 위해 촬영 전 현장에 미리 물을 뿌린단다. 그래야 햇볕이 번지면서 고명도의 빛감이 살아나니까. 동·서양의 그런 느낌 차이를 캔버스에 주려 했다. →그림 속 인물도 대조적이다. 동양 왕서방은 누드인데 서양 왕서방은 엄격히 치수를 재는 모습이다. -그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치수 재는 행위는 굉장히 규격에 맞춘 구속적인 행위다. 서양 왕서방에게는 그걸 표현해 주고 싶었다. 그에 반해 비단은 그야말로 자연 아닌가. 비단 가게에 어울리는 형태는 누드라고 생각했다. 동양 왕서방에게는 스토리도 담겨 있다. 퇴락해 가는 전통 문화, 즉 왕서방은 대체 어디로 가고 그 유산은 누가 물려받는가 하는 문제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비단 포목점 유산을 어떻게,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가 인물들의 동작에 다 들어 있다. 전시는 하지 않았지만 맨 마지막 작품은 할아버지 기저귀를 손자가 갈아 주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거기에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동양 왕서방은 비슷한 인물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특정 모델이 있나. -그게 재밌다. 오완근씨라고, 공사 현장 인부다. ‘왕서방’이란 작업을 하는데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그 사람 하는 얘기가 자신도 왕년에 이름 때문에 왕건, 왕서방으로 자주 불렸다며 흔쾌히 허락하더라. 그래도 초면에 옷 벗자고 할 수 없어서 사진은 옷 입고 찍되 그림 속에서는 누드로 할 거라고 했더니 어떻게 그림을 가짜로 그릴 수 있느냐며 함께 목욕탕에 가자더라. 덕분에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웃음). →홍익대 회화과 출신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왔다. 최신 유행은 다 해 봤을 거 같은데 왜 이런 작업으로 돌아섰나. -1970년대 홍대에 다녔는데 팝아트를 제일 먼저 한 게 우리들이었을 거다. 최신이란 거는 다 해 봤다. 그런데 서양 미술은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흰 캔버스를 앞에 두고 뭘 그릴까 한참 고민하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기로 하면 그게 곧 예술이 되는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개구리를 안 보고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탐미적 탐닉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돌아선 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관예우 = 전관범죄… 제도·인식 모두 변해야”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제도에 그칠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화까지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수 권력기관의 인사들이 인간관계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관예우라는 말보다 ‘전관범죄’라고 봐야 한다.”면서 전관예우금지법 도입을 반겼다. 그러면서 홍교수는 법안이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 문화적 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조계는 물론 사회 전반의 인사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전관예우가 자기 사람을 심어 놓은 고위 법조인들이 퇴직한 뒤 그 인맥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사시스템과 문화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교수는 “1년은 너무 짧다. 최소 퇴직 전 2년간 직전 근무지에서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도 “법 하나 만들었다고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외국의 경우 판검사를 하다가 변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를 하다가 법원이나 검찰로 간다. 이런 시스템적인 개혁이 수반돼야 사회문화가 바뀌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1989년에도 법조인들의 수임을 제한하는 법률이 만들어졌다가 헌재에서 기각됐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법연수원 입소를 앞둔 예비 법조인 최정필(26)씨는 “젊은 법조인의 경우 전관예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히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쟁을 거치지 않고 법조인이 과거의 경력으로 이득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어 “단순히 이 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학연과 지연, 과거의 인연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법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사실상 전관예우가 보편화돼 있다.”면서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법조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전관예우 문화가 퍼져있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 전관예우를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관’들을 영입하는 이유가 그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인맥을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국방개혁 미적 ‘김관진 국방장관’ 못하나 안하나

    국방개혁 미적 ‘김관진 국방장관’ 못하나 안하나

    정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이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개혁의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는 군 출신 장관이 국방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연말 장관 교체설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12일 청와대 및 여권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정책 가운데 하나인 국방개혁이 군 내부 반발 등에 부딪히면서 지지부진하자 청와대 안팎에서 국방부의 개혁 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방개혁 추진 임무를 부여받아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 장관의 리더십도 시간이 갈수록 외부에 휘둘리면서 약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 장관의 리더십은 국방부가 지난 3월 8일 군의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 추진계획인 ‘국방개혁 307계획’을 발표한 뒤 예비역 장성들의 반대에 부딪혀 더욱 흔들리고 있다. 국방부는 오는 17~19일 예비역 장성들을 대상으로 국방개혁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해·공군 전직 참모총장들이 12일 오전 김 장관에게 공문을 보내 불참을 통보했다.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에 반발하는 해·공군 예비역 장성들은 지난 9일 각각 해군협회와 공군전우회 명의로 ▲합참의장에게 지나친 권한 편중 ▲육군 위주 인적 구성 ▲의견수렴 과정 부재 등을 이유로 국방개혁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방부에 전했다.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에도 국방부는 예정대로 설명회를 개최할 방침이지만, 군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한 군사 전문가는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 회원들은 기수를 따지며 현직 장관이나 합참의장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김 장관이 이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예비역 장성들에 대한 김 장관의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일단 김 장관에게 전권을 맡기겠다는 입장이지만, 근본적인 국방개혁을 위해서는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 국방장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방개혁 밑그림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상우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국방 담당 인수위원을 지냈던 홍두승 서울대 교수 등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는 “국방개혁은 일부 반발 세력이 지금 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풀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며, 장관에게 이미 전권을 맡긴 만큼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 일부에서 장관을 흔드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장관 교체설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국방부는 국방개혁 ‘307계획’의 명칭을 ‘국방개혁 기본계획 11-30’으로 바꾸기로 했다. 바뀐 ‘11-30’은 2011년에서 2030년까지 국방개혁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 김미경·오이석기자·코펜하겐 김성수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금융감독권 ‘밥그릇 다툼’ 변질 안 된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및 부실검사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의 감독권 독점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논거를 앞세워 한국은행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금융감독권의 분산을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거시 건전성 강화를 위해 중앙은행의 직접조사권을 강화하고 있고, 공정한 금융거래 질서 유지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감독권의 분산을 통한 협력과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저축은행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와 금감원 전·현직 직원의 개인적인 유착 비리에 있지 통합감독체계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참극이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일 출범한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TF)’가 명칭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벌써 회의적인 시각마저 대두되고 있다. 지난 3년간 되풀이된 것처럼 한은과 금융당국 간의 ‘밥그릇 다툼’으로 변질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따라서 우리는 TF가 이해당사자의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금융시장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금융감독의 기본 취지에 맞춰 혁신안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헌법의 행정권 조항을 들어 감독권 분산에 반대하지만 행정 제재의 최종 결정권을 금융위에 부여하면 위헌의 소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상근감사제도 대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지금처럼 사외이사가 연고 중심으로 선임되어서는 상근감사보다 더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확인됐듯 금융영역별 칸막이가 사라지면서 금융상품은 감독당국이 미처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통합감독권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TF는 금융 검사 및 감독의 모든 부문을 검토대상에 올리되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그 이전에 감사가 대주주나 경영진의 그늘에서 벗어나 선량한 감시자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해당사자들은 더 이상의 장외투쟁을 자제하기 바란다.
  • “김관진 장관, 국방개혁 의지 있나?”

    “김관진 장관, 국방개혁 의지 있나?”

    정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이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개혁의지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는 군 출신 장관이 국방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연말 장관 교체설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12일 청와대 및 여권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정책 가운데 하나인 국방개혁이 군 내부 반발 등에 부딪히면서 지지부진하자 청와대 안팎에서 국방부의 개혁 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방개혁 추진 임무를 부여받아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 장관의 리더십도 시간이 갈수록 외부에 휘둘리면서 약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 장관의 리더십은 국방부가 지난 3월 8일 군의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 추진계획인 ‘국방개혁 307계획’을 발표한 뒤 예비역 장성들의 반대에 부딪혀 더욱 흔들리고 있다. 국방부는 오는 17~19일 예비역 장성들을 대상으로 국방개혁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해·공군 전직 참모총장들이 12일 오전 김 장관에게 공문을 보내 불참을 통보했다.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에 반발하는 해·공군 예비역 장성들은 지난 9일 각각 해군협회와 공군전우회 명의로 합참의장에게 지나친 권한 편중 육군 위주 인적 구성 의견수렴 과정 부재 등을 이유로 국방개혁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방부에 전했다. 예비역 참모총장들은 국회를 직접 찾아 여야 의원들에게 반대 의견을 전달하는 등 반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에도 국방부는 예정대로 설명회를 개최할 방침이지만, 군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한 군사 전문가는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 회원들은 기수를 따지며 현직 장관이나 합참의장 위에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김 장관이 이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예비역 장성들에 대한 김 장관의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일단 김 장관에게 전권을 맡기겠다는 입장이지만, 근본적인 국방개혁을 위해서는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 국방장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방개혁 밑그림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상우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국방 담당 인수위원을 지냈던 홍두승 서울대 교수 등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는 “김 장관이 국방개혁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대통령도 최근 전군 지휘관과의 오찬에서 국방개혁을 빨리 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장관에게 힘을 실어 준 바 있다.”면서도 “군 합동성 강화 등 일부 부분에서 장관이 조금 미진한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개혁은 일부 반발 세력이 지금 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풀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며, 장관에게 이미 전권을 맡긴 만큼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 일부에서 장관을 흔드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장관 교체설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서울 김미경·오이석기자 코펜하겐 김성수기자 chaplin7@seoul.co.kr
  • “금융감독 체제 개편보다 기능 효율성 높이는 게 중요”

    “금융감독 체제 개편보다 기능 효율성 높이는 게 중요”

    “철저하게 감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저축은행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태준(56) 한국금융연구원(KIF) 원장은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축은행 부실 및 도덕적 해이 사태를 “전형적인 감독 실패 사례”로 규정했다. 이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감독 실패와 관련된 책임 소재를 엄중하게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 대부조합 파산 사태가 일어났을 때 관련 감독기관을 해체하고 관련 인사도 엄중 처벌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금융감독 체제 개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체제 개편보다는 감독 기능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음은 일문일답. →금융 보안 대란, 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금융당국의 신뢰가 무너졌는데. -저축은행 사태는 은행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감독 당국이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다. 특히 영업정지 직전 부당 인출은 금융감독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확실하게 개선돼야 신뢰가 살아날 것이다. →금융감독 체제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전반적인 금융감독 체제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우리 체제는 글로벌 외환 위기 뒤 거시건전성 확보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에서 출발했다. 개편 문제는 한국은행법 개정도 필요하고 매우 복잡하다. 기득권과 관련한 여러 문제도 뒤따른다. 규제의 효율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영업 관련 규제는 풀어주고 건전성 규제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감독 실효성을 높이고 견제와 투명성을 살리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의 검사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론을 놓고 대기업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있는데. -동반성장론과 맞물려 나오다 보니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연기금의 순기능을 도입해 기업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생각한다. 연기금 의견을 통해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주주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구체적인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이 좋은 예다. 연기금 주주권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행사한다면 호혜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단, 정부 입김을 어떻게 배제하느냐가 중요하다. 주주권 행사위원회를 독립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올해 하반기 경제에 대한 전망은. -우리 연구원은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4.0%, 하반기 4.7%, 연간 4.4%로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와는 달리 수출 역할이 늘고 내수 역할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물가 상승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상반기 4.6%, 하반기 3.7%, 연간 4.2%로 내다보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물가 상승 압력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선제적인 금리 인상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른 저신용층의 부담은 별개의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금리 인상기로 접어들며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모의 문제와 구조의 문제가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를 넘었다. 영국(170%)보다 낮지만 미국(128%)보다 높다. 이를 낮추려면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해도 소득분배율이 떨어져 가계는 그보다 작게 성장한다는 데 있다. 구조 문제는 가계대출이 대부분 변동금리 거치식 일시상환이라는 데 있다. 충격을 분산하기 위해 장기 고정금리 분할 납부 구조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도 장기 고정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커버드본드 등 채권 발행 지원이나 장기 고정금리 대출에 인센티브 등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제2의 카드대란 이 우려 되는데. -카드론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규모에 있어서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 카드대란 재연 가능성은 적지만 한 번 연체되기 시작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카드사들은 카드 발급 때 신용판매와 현금서비스 한도를 먼저 설정하고 나중에 추가로 카드론 한도를 보탠다. 잠재적인 빚 규모를 늘리는 셈이다. 처음부터 신용판매와 현금서비스, 카드론을 모두 합쳐 한꺼번에 한도를 설정하도록 규제해야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KIF는 서민금융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민금융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나름의 수익 창출을 통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 적극적인 컨설팅을 통해 서민의 자립 능력을 키워주며 돈을 빌리고 갚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지역 사회에 밀착된 서민금융기관을 설립해 운영 비용을 줄여야 한다. 대출 위주의 운영보다 서민을 위한 보험, 적금, 예금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금융기관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역시 해외 진출에서 찾아야 하나. -결국 돌파구는 세계 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규모도 엄청나게 늘어나 우리 자본시장이 소화하지 못할 정도다. 해외 투자를 해야 한다. 거기에 우리 금융회사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화가 상당히 미흡한 편이다. 일본만 해도 유수 은행은 초국적지수가 50~60%나 되는데 우리는 4~5%에 불과하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비교 우위 분야를 잘 선택해 어떤 나라가 적합한지 판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소매금융에 자신이 있다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시점에 진출하느냐도 관건이다. 사전에 전략과 정보를 충분히 구축해야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는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김태준 원장은 ▲1955년 인천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동덕여대 교수·부총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상임자문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 유영숙 장관 후보자… 환경부 직원들 반응

    유영숙 장관 후보자… 환경부 직원들 반응

    “한동안 뜸했던 여성장관이 다시 내정된 데다 어떤 성향을 가진 분인지 잘 알려지지 않아 우려되는 게 사실입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리더십과 행정능력을 검증받았다는 점은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업무 브리핑 어디까지 해야 될지… 유영숙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환경부 직원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역대 4명의 여성 장관이 거쳐 갔기 때문에 여성이 수장으로 오는 것이 생소하진 않지만, 의외의 인물 발탁에는 모두가 놀랍다는 분위기다. 환경부는 앞으로 있을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와 실·국별 사전 브리핑 준비 등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딱히 환경부와 인연도 없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건설교통해양부와 노동고용부의 경우, 각각 전·현직 차관이 후보자로 내정돼 상대적으로 청문준비팀이 안도하는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유 장관 후보자는 정부과천청사와 가까운 별양동 환경부 별관 3층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 청문회 준비와 부처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게 된다. 신고된 재산과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는 “청와대의 사전 인사 검증과 예비 청문회 과정에서 유 후보자의 재산(남편 포함)은 10억원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한 간부는 9일 “과학계에서는 인정받았지만 환경 분야의 경험은 부족해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면서 “과거 여성 장관 후보자가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언론과의 접촉도 매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부는 유난히 여성 장관 후보자와 인연이 많다. 유 후보자는 다섯 번째 여성 환경장관 후보자이다. 변호사 출신의 황산성 장관을 시작으로 연극인 손숙, 교수 김명자, 여성운동가 한명숙 등이 장관을 지냈다. 현 정부 들어서 초대 환경장관으로 내정된 박은경씨는 부동산 투기의혹 등이 불거져 자진 사퇴한 바 있다. ●환경부 수장은 섬세한 여성 몫? 이처럼 환경부에 여성장관이 많았던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부처를 너무 쉽게 해석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최진(행정학 박사)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환경이라는 이미지가 기존에 있는 것을 지키고, 방어하는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섬세하고 보호 근성을 가진 여성 몫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면서 “환경문제는 지구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고, 어느 때보다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처의 평가는 수장의 조직 장악력과 정책 마인드, 일에 대한 열정으로 평가된다.”면서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추었는지가 인사 청문회의 주요 쟁점이 되지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④ 이·취임사에 나타난 장·차관 리더십

    [테마로 본 공직사회] ④ 이·취임사에 나타난 장·차관 리더십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나 기관장들의 취임사에는 재임기간 조직을 이끌고 갈 기본방침과 포부가 담겨있다. 대부분 취임사에는 새로운 목표설정과 조직의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이 많다. 반면 이임사는 재임기간 소회를 다양한 유형으로 표출한다. 특히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물러날 경우, 알 듯 말 듯 애매한 말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눈길 끄는 이·취임사를 통해 고위 공직자나 기관장들의 당시 심경과 공직관을 되짚어 봤다. 1988년 2월부터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가 되면서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0개월~1년에 불과하다. 차관 역시 큰 차이가 없다. 개인적인 결함이나 능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겠지만, 정책실패에 따른 문책과 정략적인 이유에서 교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대 장관들의 취임사에는 당시의 사회 문제나 실패한 정책을 만회하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내용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길이 멀면 허공도 짐” 詩서 따와 ‘5·6 개각’으로 2년 3개월여 만에 퇴임하게 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시 구절을 인용해 경제적 위기상황을 표현했다. 윤 장관은 2009년 2월 취임사에서 “길이 멀면 허공도 짐(시인 조정의 표현)이라는 말에 공감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게 넘어가는 요즘 경제상황은 그만큼 어렵다.”고 토로했다. 당시 실물 경제 위축이 시작되던 시기였던 만큼 시장의 신뢰회복과 소통을 강조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 회복을 위해 위기 극복에 동참할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윤 장관은 평소에도 고사성어나 고전 속에 나오는 명언을 즐겨 인용해 왔다. 취임 후 직원들에게 일자리 나누기를 ‘부뚜막의 절미통’(節米桶·어려웠던 시절 쌀을 절약하려고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덜어내 조금씩 담아 모으던 통)에 비유하며 확산되기를 희망했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토적성산’(土積成山: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으로 비유했다. 당시 이용걸(현 국방부 차관) 재정부 2차관도 취임사에서 ‘천류불식’(川流不息:흐르는 강물은 쉬지 않는다)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현 정부 들어 3대째 행정안전부 수장이 된 맹형규 장관은 지난해 4월 15일 취임사에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경제성장률이 5% 내외로 전망되고 있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보다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으로 취약계층과 차상위 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켰다. 이후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개각으로 물러나게 되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내각을 지켜온 ‘장수 장관’들은 직원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한 취임사로 기억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부처 직원들은 ‘친정 식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정 장관에게 국토부는 교통부와 건교부 시절부터 줄곧 몸 담았던 곳이고, 이 장관도 국민의 정부 때 차관으로 환경부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었다. 정종환 장관은 취임사에서 “30여년 간 공직자로서 젊음과 열정을 바쳤던 이곳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고 얼굴 하나하나가 무척 반갑다. 마치 오랜 기간 출가했던 딸이 친정집에 다시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하다.”며 한 식구임을 강조했다. 취임사 끝도 “우리 모두 한 가족이라 생각하고 희망을 나누며 뜻을 모아 최선을 다하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만의 장관도 취임사에서 “헤어진 지 5년 만에 다시 환경가족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첫 번째 환경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큰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는 말로 직원들에게 친숙함을 드러냈다. ●“손자병법 전략은 風林火山” 풀어  2008년 2월 당시 김석동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의 이임사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28년간의 공직생활을 접으면서 이임사에 남긴 ‘5가지 자기 반성’에 대한 회한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섭공호룡(葉公好龍)’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 미래과제에 적절히 맞서지 못한 심경을 토로했다. 용을 좋아한다던 섭공이 막상 실제 용을 보고는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 기절해 버렸듯, 고령화·저출산 문제나 기후변화 등 미래과제에 대한 실체와 위험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을 반성한 말이다.  한편 김 차관은 3년여 ‘칩거생활’ 끝에 올해 초 금융위원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금융위원장 취임사에서 “손자병법의 전략은 풍림화산(風林火山) 네 글자로 압축된다.”면서 “금융위원회가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진중하게 대내외 환경변화에 선제적이고 창조적으로 변화되길 기대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학철지부(涸轍之鮒: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를 인용, 서민금융 대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곤궁에 빠진 물고기에는 강물이 아니라, 물 한 바가지가 더 절실한 것처럼 서민금융 역시 응급처방이 절실함을 강조한 말이다.  참여정부 때 강금실 법무장관 이임사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이자 검찰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던 그는 이임사에서 “개혁은 서로 믿고 사랑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 가로막고 있는 오해와 불신을 녹이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또한 “어느 순간에는 정치의 중심에 서서 진짜 해야할 일을 소중히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장관직에 회의가 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해야할 일 못해 장관직 회의” 비쳐 2008년 12월 우형식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이 이임사에서 밝힌 내용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기도 했다. 우 차관은 교과부에서 28년간 재직했고, 교과부 1급 공무원의 일괄사표에 앞서 사의표명 후 물러나는 자리였다. 그는 서산대사의 시로 송별사를 짧게 대신하겠다며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이라는 시를 읊었다.  해석해 보면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뜻이다. 당시 이임사에 담긴 의미를 놓고 해당부처에선 “눈밭을 함부로 밟고 더럽히면 뒤따르는 사람이 길을 잃게 되는 것처럼 정부의 정책 추진도 신중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 아니겠느냐.”고 긍정적인 해석을 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권 입맛에 맞춘 교육정책이 급전환되는 것을 놓고 쓴소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공식성상에서 리더들의 발언은 파급효과가 큰 만큼, 무책임한 발언 등은 삼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길성 한국행정DB센터 소장은 “과거 장·차관이나 기관장들의 이·취임사를 보면 당시의 사회상이나 정책, 리더로서 의지와 회한 등이 잘 나타나 있다.”면서 “사자성어 등 고전 속의 명언 한두 마디씩은 인용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훌륭한 리더는 화려한 이·취임사보다 재임기간 만들어낸 성과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말 안 듣는 水墨, 한번쯤 완벽하게 꺾고 싶다”

    “말 안 듣는 水墨, 한번쯤 완벽하게 꺾고 싶다”

    “수묵을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오기 때문에라도 그만두질 못하겠어요.” 서울 관훈동 미술공간 현에서 개인전 ‘도시사유’를 열고 있는 박성식(39)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이다. 여전히 한지에 수묵을 고집하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말 같지만, 동양화 전공 가운데 수묵을 유지하는 작가는 흔치 않은 게 현실이다. 현대를 담아내기에는 먹이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서양 물감을 가져다 쓰거나, 아예 설치미술처럼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 작가는 대놓고 동양화 ‘티’를 확실하게 낸다. 한지 위에 수묵을 올리는 점이 그렇고, 하얀 바탕으로 구름이 주는 여백을 한껏 살린 점이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대상이다. 옛 산수화의 구름 뒤 산봉우리나 폭포수가 낡고 오래된 상가 건물과 아파트로 대체됐다. →낡은 건물보다 초현대식 건물을 그렸으면 기법과 대상이 더 대조적이지 않았을까.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어릴 적 감성이 받쳐주지 않는다. 고향인 충남 공주에 어릴 적 살던 3층짜리 아파트가 있다. 얼마 전에 가보니까 낡았지만 그대로 있더라. 그런 풍경이 와닿는다.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보다 그런 건물에서 각 가정의 신산스러운 얘기들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아직도 수묵화냐는 핀잔을 듣지 않나. -집안 내력 같다. 미대 가기 전에 서양화도 해봤는데, 결국 어릴 적 익숙했던 묵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평생 서예를 하셨다. 얼마 전 가보로 주신 것도 통째로 직접 쓴 천자문이다. 그 영향에서 못 벗어난 셈이다. →동양화 전공자들도 수묵을 외면하는데. -솔직히 수묵을 놓는 사람들 가운데 70%는 수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수묵이란 게 쉽지 않다. 김을 뜨듯 종이를 뜨는 게 한지라 질이 모두 다르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를 써서 만들어도 다 다른 게 한지다. 수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바로 이 천차만별인 한지를 살살 달래가며 쓸 줄 안다는 거다. 이게 정말 어렵다. →버리고 싶은 유혹은 없었나. -왜 없겠나. 안 그래도 수묵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농담 삼아 “버티자, 무조건 버티면 대가가 된다.”고 말한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해 버리니 살아남는 자가 이긴다는 거다. 하하하. 공개를 안 해서 그렇지 나도 화려한 작업을 한다. 실험 차원에서 여러 시도를 해 본다. 그렇지만 그런 작업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수묵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싶다. 말 안 듣는 이 수묵을, 한번쯤 완벽하게 꺾어 보고 싶다. →도시풍경을 사진처럼 묘사하면서도 수묵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수묵을 고집한다고 산과 물만 그릴 필요 있나. 그건 윤선도, 김홍도 때 얘기다. 그리고 사진기법 같은 것도 배워올 수 있지 않나. 호방하다거나 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호방하다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대가들이나 하는 거라 생각한다. 고된 단련 없이 젊었을 때부터 대가 흉내내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안 그래도 중국 작가들은 대학생 때부터 자기 세계를 내세우는 우리나라 풍토를 신기하게 여기더라. -맞다. 중국은 미대생들에게 송나라, 명나라 때 그림 펴놓고 그대로 베끼라고 한다. 배울 때는 정확하게 배우고, 자기 세계는 나중에 가서 펼치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일찍 새로운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까지 수묵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나. -나도 도전 중이다. 갈 데까지 가볼 생각이다. 일단 집사람은 포기시켰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 하하. 13일까지. (02)732-5556.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유홍준·정태인 교수가 말하는 ‘신경제사회학’은

    유홍준·정태인 교수가 말하는 ‘신경제사회학’은

    “아이폰 쇼크에 당황하는 삼성을 보며 안타까웠다. 대기업이 관료들보다 더 관료화됐다.”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던진 ‘말폭탄’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외국 유명대학 출신 재벌 2, 3세들에 대해 “파이낸싱(자금조달 기법)만 배워 와서 막상 물어보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잘 모르더라.”고 평가했다.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안 한다는 현 정권의 불만이나, 그렇기에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선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이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의 관점과 유사하다. ‘혁신’(Innovation),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을 내놓은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생산’ 노동 개념을 대공장제 생산이 일반화되지 못한 초기 자본주의 단계의 얘기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지도’ 노동 개념을 내세웠다. 생산 그 자체보다, 시장의 흐름을 보고 무엇을 생산해서 얼마나 공급할지 결정하는 경영자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덕분에 경영자는 ‘피도 눈물도 없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냉혈한’에서 ‘창조적 파괴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모험가(Entrepreneuer)’로 위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슘페터의 경제학적 논의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학적 논의가 있다. 이 지도 노동을 수행하는 자가 누구냐 하는 점이다. 슘페터는 전문 기술관료, 즉 테크노크라트를 지목했다. 한국과 같은 재벌가 2, 3세 세습오너들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철폐·고환율 정책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행보를 해도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터져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사회학적 이유 때문은 아닐까. 유홍준(53)·정태인(51) 성균관대 교수가 내놓은 ‘신경제사회학’(성균관대출판부 펴냄)은 그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경제학 책과 함께 사회학 책을 펴 보자고 제안한다. 두 저자는 사회학의 중요한 개념인 ‘권력’과 ‘계층’ 문제를 기존 경제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배제해버린 점을 문제 삼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이론을 추구하다 보니 현실에서의 ‘더러운 손’(Dirty Hand)을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이 독립하는 계기가 되는 19세기 유럽의 ‘방법론 대논쟁’을 일부 다룬 점이 눈길을 끈다. 이 논쟁은 경제학이 수학적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에 대해 얼마나 비합리적인 가정을 했는지 드러내준다. 예컨대 ‘아노미’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1858~1917)은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나가던 경제학에 대해 “인간을 사회적으로 일탈된, 즉석사진(snapshot)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경제학적 인간을 두고 ‘합리적 바보’ 혹은 ‘사회적 저능아’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는 산업혁명이 인간을 상품화했다고 비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렇듯 인류학적·문화적 관점에서 경제에 접근하는 폴라니 진영은 ‘인센티브’(Incentive)라는 경제학적 개념으로 사회현상 전반을 설명하려 드는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괴짜 경제학’은 몇 년 전 국내에서도 번역돼 큰 인기를 끌었던 스티븐 레빗(44)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다. 유홍준·정태인 두 저자는 폴라니의 핵심 개념(배태·Embedness)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괴짜 경제학’ 또한 거리낌 없이 인용한다. ‘통섭’이란 이름으로 사회학이 경제학을, 혹은 경제학이 사회학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장점을 한데 따서 모아야 ‘경제사회학’이라는 분야가 확립될 수 있다는 저자들의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사회학 콘서트’ 같은 대중적인 책을 다음 작품으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경제사회학’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은 여기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금감원, ‘감사추천’ 폐지 검토

    금융감독원이 금감원 직원을 금융회사 감사로 추천해 내려보내는 관행을 폐지하거나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낙하산 감사’에 대한 비난 여론에 더해 전·현직 금감원 직원이 수사선상에 오른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3일 “금감원 직원을 추천하는 형식으로 금융회사에 감사를 보냈지만 앞으로는 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감원 출신을 완전 배제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보고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경우 대부분 1년인 감사 임기를 2~3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이 추진하는 금감원·예보의 교차검사제도 도입과 예보의 단독조사 활성화 방안이 성사돼 금감원의 검사 독점구조가 깨질지 금융계는 주목하고 있다. 현재 국내 모든 금융기관의 감독과 검사는 금감원이 담당하는 단일 감독체계다. 공동검사 제도가 있지만 한국은행과 예보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 금융 보안 대란에 이어 저축은행 부실 및 도덕적 해이 사태가 불거지며 금감원의 검사 독점이 ‘눈먼 검사’로 이어진다는 비난이 일자 금감원은 최근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에 이어 보해저축은행·제일저축은행이 총체적 비리상을 보이며 수사대상이 된 것이 금감원의 입장 변화에 직접적인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금감원이 이 참에 추진하는 포괄적 계좌추적권 도입에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계좌추적권이 없어서 저축은행 부실과 비리사태를 막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서울 고검의 한 검사는 “금융시장의 건전성 확보라는 행정적인 목적을 갖고 있지만 포괄적인 계좌추적은 최근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면서 “계좌추적은 수사기관도 법원 통제를 받아야 하고, 혐의를 특정해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선숙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을 대상으로 138일 동안 검사를 벌였다. 하지만 대주주의 비위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부실 검사에 그쳤다. 금감원은 임직원이 금품을 받고 부동산개발업체에 600억원을 대출해줬다가 검찰로부터 기소된 제일저축은행을 대상으로 뒤늦게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한편 한국은행과 금감원은 해외사용 목적인 김치본드(국내 시장에서 발행한 외화표시채권) 발행 자금을 국내에서 사용하는지 등을 점검하기 위해 외환공동검사 대상을 확대하고 검사기간도 연장키로 했다. 김치본드 인수형태 및 연계거래, 발행자금 용도,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을 포함한 선물환 거래내역 보고, 선물환 포지션 운영 및 관리 실태, 내부통제장치의 적정성 등을 중점 점검할 계획이다. 홍지민·오달란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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