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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상 말뚝 테러’ 극우 일본인 재판, 올해도 공전 거듭할까

    ‘소녀상 말뚝 테러’ 극우 일본인 재판, 올해도 공전 거듭할까

    2012년 6월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한 극우 성향의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 재판이 올해 7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스즈키의 거듭된 출석 불응과 일본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로 재판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상주 부장판사는 오는 20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스즈키의 올해 첫 공판을 열 예정이다. 스즈키는 2012년 6월 당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세워진 소녀상 옆에 ‘다케시마(일본에서 독도를 부르는 말)는 일본땅’ 등이 적힌 말뚝을 묶어놔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3년 2월 기소됐다. 그는 2012년 9월 윤봉길 의사의 순국기념비에 ‘말뚝 테러’를 하고 윤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모욕한 혐의(사자명예훼손)도 받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경기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 등에 피해자를 모욕하는 소녀상 모형과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어가 적힌 흰색 말뚝 모형을 국제우편으로 보낸 혐의로도 이듬해 추가 기소됐다.하지만 일본에 있는 스즈키는 출석통지서를 적법하게 송달받고도 2013년 9월 열린 첫 공판기일부터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법원은 그를 법정에 데려오기 위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 탓에 집행되지 못했다. 지난해 재판에도 스즈키가 불출석하자 법원과 검찰은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를 밟았다. 재판부의 주문에 검찰이 법무부에 스즈키의 범죄인 인도를 청구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즈키가 올해에도 법정에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가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2013년 7월 법원이 윤봉길 의사의 조카가 스즈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스즈키는 이 민사재판 변론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았고, 출석 대신 재판부에 나무 말뚝을 보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알쏭달쏭+] 북극과 남극의 오로라는 왜 모양과 색이 다를까?

    [알쏭달쏭+] 북극과 남극의 오로라는 왜 모양과 색이 다를까?

    지구의 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는 초록이나 붉은빛의 띠가 하늘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우주쇼로,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을 매료해 왔다. 이런 천문 현상은 북극권과 남극권에서 비슷한 발광 패턴을 갖지만 관측되는 빛에는 차이가 있어 연구자들은 ‘북극과 남극의 오로라는 왜 모양과 색이 다를까?’라는 의문을 갖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조사하고 있다.지구에는 이른바 지자기로 불리는 자기장이 존재해 자석의 N극은 S극에 해당하는 북극을 가리킨다. 반대로 자석의 S극은 N극에 해당하는 남극을 향하는 것이다. 특히 지자기에서 발생하는 자력선은 남극권에서 북극권으로 지구의 대기를 뚫고 호를 그리며 존재한다. 지구의 자기장이 작용하는 범위를 지구 자기권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지구 중심에서 지구 반지름의 10배 정도(고도 약 6만 ㎞)다. 이런 지구 자기권에는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풍의 플라스마가 맞닿아 떨어지는 데 플라스마는 자기권을 쉽게 통과하지 못하고 자력선을 따라 이동한다. 플라스마는 자력선이 대기와 교차하는 극지방을 향해 가속하면서 나아가며 자력선을 따라가 마침내 지구의 대기에 부딪힌다. 그러면 플라스마가 대기의 원자와 분자에 충돌해 환상적인 빛의 띠를 생성한다. 바로 이것이 오로라의 원리로 여겨진다. 지구 자기권과 태양풍 플라스마의 관계를 나타낸 그림은 아래와 같다. 붉은 선은 지구 자력선이며 이 자력선을 따라 플라스마가 하강해 북극이나 남극 근처에서 대기와 충돌한다. 지구의 자력선은 외부에서 힘이 있어야 대조적인 모양을 갖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지닌 강력한 자기장에 의해 자력선이 뒤틀리므로 태양 측(지구의 낮 쪽)이 짓눌린 타원 모양으로 태양과 반대 측(지구의 밤 쪽)이 오래 지연되고 있다.오로라는 똑같은 자력선을 따라 하강한 플라스마가 남북에서 동시에 대기와 충돌하므로 북극권과 남극권에서 비슷한 색과 모양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같은 자력선으로 연결돼 있는 남북의 지점을 켤레점이라고 부르지만 켤레점이어도 어떤 이유에 의해 완전히 똑같은 모양의 오로라를 관측할 수는 없다.연구자들은 남북의 오로라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구 자기권에 있어서의 자기 재결합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지구 자기권의 자기 재결합은 변동하는 태양풍이 지구의 밤 쪽에 해당하는 자력선의 꼬리를 흔들어 지연시켜 자력선을 원래의 켤레점보다 지구에 가까운 곳에서 재결합시키는 것이다. 자기 재결합에 의해 자기권 꼬리에 쌓인 플라스마가 단번에 지구 측에 방출됨으로써 남북으로 비대칭한 위치에 색상과 모양도 다른 오로라가 만들어지는 모델이 기존의 것이었다. 그런데 노르웨이 베르겐대 연구팀은 이 자기 재결합에 의한 오로라의 변동 모델이 잘못된 것임을 발견했다.‘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우주 물리학’(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Space Physics) 최근호에 실린 연구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동시에 관측된 오로라에 대해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을 분석했다. 이 관측 결과를 지구 자기권의 꼬리 부분에서 발생한 활동에 비춰보면 자기 재결합에 의해 오로라의 상태가 남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재결합의 발생과 함께 오로라의 대칭성이 더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연구를 이끈 니콜라이 외스트고르 베르겐대 교수는 “지구 자기권에서 자기 재결합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반대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 대신 연구팀은 태양의 자기장이 지구 자기장을 남북에서 불균일하게 압박하고 남북에서 자력선의 왜곡이 발생함으로써 남북에서 오로라의 색상과 모양, 발생하는 위치가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자기 재결합은 이 왜곡(비대칭성)을 감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연구논문을 살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ICL)의 행성과학자인 인고 뮐러-보다그 박사는 외스트고르 교수팀의 발견에 대해 기존 모델과 전혀 다른 점에서 “놀랍다”고 밝혔다. 사진=오로라(CC BY-SA 1.0)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경제 ‘역풍’을 피하려면/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경제 ‘역풍’을 피하려면/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지난 12일 한국 정부와 정책 협의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에 강력하게 ‘중단기적 역풍’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과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 관심을 끈다. IMF의 지지가 정책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제안은 ‘포용국가’의 목표정합성 측면에서 엄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 그것이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불리던 IMF가 한국 정부에 9조원의 추경 편성을 포함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적극 권장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지만, 신자유주의의 ‘낙수효과’를 부정하는 기관으로 변신한 상황에서는 당연하다. 이는 2022년까지 주로 재정을 통해 모든 국민이 ‘기본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사회정책 비전과도 상통한다. 다만 IMF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재정적자를 통한 지출 증대를 시사하면서 증세에 거리를 취한 점은 신자유주의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다. 2018년에만 25조원이 넘는 초과세수를 거둔 정부에 당장은 지출 증대가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추경의 정례화에 대한 비난은 물론 증세 없이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부담될 수 있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증세를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은 수십 년 된 IMF 권고에 속한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공론화됐지만 현실에서는 유연성만 실행됐고, 안정성은 ‘철밥통’으로 폄하됐다. 현 정부 들어 고용난이 심화되면서 유연안정성 의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IMF 협의단의 기자회견과 같은 날 국회 연설에서 덴마크 모델을 언급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상황에서 이 모델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덴마크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이 한국 경사노위의 현주소에 비추어 볼 때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변경이나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의 확대에서 보듯 위원회의 운영 실태가 ‘주고받기’의 타협이 아니라 노조에 대한 압박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민주노총에 오히려 불참의 안도감을 심어 주고 있다. 더욱이 경제 활력이 기업 지원과 등치되면서 ‘노동존중’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대통령이 “기업과의 활발한 접촉”을 지시하자마자 경제보좌관이 경총에 가서 “20대는 물론 30~40대도 동남아시아 가라”는 망언을 한 것은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친기업’ 행보는 경사노위에 대한 노조의 불신을 가중시켜 경사노위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덴마크 모델은 엄밀히 말하자면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에 관한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복지 기반 생활안정의 결합이다. 이 모델은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많아지면 실업수당 지급은 증가하지만, 세수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34조 ②항에도 불구하고 복지 증대에 관한 사회적, 정치적 합의가 없는 현실도 걸림돌이다. 해고의 자유와 사회안전망의 확충이 맞교환된다면 그것은 현찰과 어음의 부등가 교환이 될 것이다. 덴마크 모델에서는 정부의 능동적인 일자리 정책이 세 번째 구성 요소이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 정부의 실적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덴마크 모델의 도입은 비정규직을 전면화해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결국 성장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대안은 기업 내부 노동시장에서 유연안정성을 실현하는 독일 모델을 기본으로 경사노위에서 ‘한국형 유연안정성 모델’에 합의하는 것이다. 유연성은 해고가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고용은 최대한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임금이 줄어든 노동자는 기왕에 초과 근무시간을 적립해 둔 노동시간 계좌에서 시간을 인출하거나 사회정책으로 지원을 받아 생활안정도 기대할 수 있다. 노사 협력의 전통이 거의 전무한 한국 경제에 이 모델을 도입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평등을 완화하고 ‘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건설하려면 시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 말레이, 김정남 암살 베트남 여성 석방 불허… 베트남 “매우 유감”

    말레이, 김정남 암살 베트남 여성 석방 불허… 베트남 “매우 유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가운데)이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석방 불허 판정을 받은 뒤 울음을 터뜨린 채 현지 경찰에 이끌려 나오고 있다.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사흘 전 풀려난 것과 대조적이라 말레이시아 정부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차별 대우한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샤알람 EPA 연합뉴스
  • ‘정원 품은 미술관’으로 변신한 녹사평역...태양빛 담는 거대 캔버스 ‘눈길’

    ‘정원 품은 미술관’으로 변신한 녹사평역...태양빛 담는 거대 캔버스 ‘눈길’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 ‘정원 품은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1년간 진행한 ‘녹사평역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14일 완성된 모습을 드러냈다.2000년에 문을 연 녹사평역은 역 천장 정중앙에 반지름 21m의 큰 유리 돔이 있고 지하 4층까지 자연광이 내려쬐는 35m 깊이(일반 건물 지하 11층 깊이)의 아름다운 중정을 지니고 있다. 그 안을 긴 에스컬레이터가 가로질러 내려가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번 프로젝트는 역사가 지닌 구조적 미학을 최대한 활용해 지하예술정원이자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당초 지하 2층에 있던 개찰구를 지하 4층으로 내려 승강장(지하 5층)을 제외한 역사 전체 공간의 품을 시민들에게 내줬다. 녹사평역이 남산과 미래에 조성될 용산공원을 잇고 이태원, 해방촌, 경리단길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심이 될 것을 염두에 둔 변신인 셈이다.역사에 들어서 승강장이 있는 지하 5층까지 내려가다 보면 층층마다 역의 독특한 구조를 이용한 예술 작품과 지하 정원을 만끽할 수 있다.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역사 이름, 녹사평(綠莎坪)의 의미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대형 중정 안쪽 벽면에는 얇은 메탈 커튼이 걸려 있다. 이 커튼이 천정 유리 돔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역사 내부를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담아내는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텅 비어 있던 지하 4층 원형홀에는 남산 소나무 숲길을 걷는 듯한 설치예술작품, 600여개의 식물이 자라나는 ‘식물정원’을 감상하며 숲에 들어온 듯한 치유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날 개장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녹사평역은 과거 서울시청 이전 계획 아래 만들어진 최고의 지하철인데 그간 숨겨진 보물처럼 녹슬고 빛이 바래 있다가 이번 예술 프로젝트로 다시 살아나게 됐다”며 “박물관, 미술관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 삶의 예술이 중요한 만큼 앞으로도 하루 수백만명의 유동 인구가 오가는 지하철역을 전반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시는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개장과 함께 역부터 용산공원 갤러리까지 걸으며 투어를 할 수 있는 ‘녹사평 산책’ 프로그램을 이날부터 시작한다. 3월 중에는 매주 목요일 1회로, 4월부터는 목·토요일 주2회로 운영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설] 노인 일자리가 주도한 2월 취업자수 증가

    통계청이 어제 공개한 ‘2019년 2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1년 전보다 26만 3000명이 늘었다. 지난해 1월 33만 4000명 이래 13개월 만에 최대로 증가했다. 경기침체로 취업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용대란이 진정될 기미가 나타났다는 기대감도 커진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반길 수만은 없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1년 전보다 39만 7000명이 증가해 1983년 7월 통계 작성 후 3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공공 일자리사업 확대와 농림어업 종사자 증가의 영향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15만 1000명 감소)이나 금융 및 보험업(3만 8000명 감소), 취업자와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도매 및 소매업(6만명 감소) 일자리는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30대와 40대 취업자는 각각 11만 5000명, 12만 8000명 감소했다. 청년이나 중장년층 등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세대 대신 노인 복지 차원의 질 낮은 일자리만 늘어났다는 뜻이다. 올해 2월 실업자는 130만 3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 8000명 늘었다. 실업률은 4.7%로 여전히 높다. 정부는 자화자찬 대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더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그제 한국의 경제성장이 ‘중단기적 역풍’을 맞고 있다면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고 밝힌 점을 주목해야 한다. IMF는 또한 한국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를 비판하고, 노동유연성 강화를 주문했다. IMF는 또 한국이 대내외 리스크 요인에 직면했다면서 최소 9조원대 추경 편성과 금리인하 등의 완화된 통화정책을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추경 편성을 앞당겨 기업들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민간 중심의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에다 IMF가 지적한 고용법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사회안전망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서비스업 규제 완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 “무역협상 굿딜 아니면 노딜”… 美, 中 막판 압박

    USTR “협상 마지막 주간… 장담 못해 120쪽 최종 합의안 매우 구체적 기술” “농업부문 못 뺀다” EU와 접점 못 찾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2일(현지시간) “현 시점에서 미중 무역협상 성공을 예측할 수 없다”며 ‘노(no) 딜’ 가능성을 언급하며 막판 대중 압박에 나섰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도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이날 미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중국과 주요 이슈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그런 이슈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합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 어떤 합의도 (중국의) 이행 강제력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일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좋은 합의’가 아니면 아예 합의가 없을 것”이라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중국과의 합의가 임박했음도 시사했다. 그는 “중국과의 협상이 (합의를 위한) 마지막 주간에 들어섰다”면서도 “합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확실한 중국의 약속 강제 이행 장치 마련을 위해 미국이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현재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가 어떻게 되든 합의 위반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관세를 올릴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없으면 (중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른바 ‘스냅백’ 조항을 합의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어 “중국과의 협상에서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구조적 이슈를 정교하게 다루고 있다”면서 “마지막 합의 문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돼 120쪽에 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EU와의 무역협상은 교착상태이고 어떻게 될지 볼 것”이라면서 “미국은 EU와 농업 부문이 빠진 무역협상 합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U는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농업 부문 배제를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USTR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철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철폐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대체하게 된 새로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 멕시코와 캐나다 의회의 비준을 받기 어렵다는 우려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본질은 개인 일탈 아닌 性상업화”… 무분별 루머에 2차 피해도 확산

    “본질은 개인 일탈 아닌 性상업화”… 무분별 루머에 2차 피해도 확산

    ‘단톡방 참여 의혹’ 용준형·지코 등 반박 몰카 피해자 거론 여자연예인 “법적 대응” 전문가 “거대 연예산업 문제 등 논의 촉발” “관심 분산돼 클럽·경찰 유착 묻힐까 우려”버닝썬 사태에서 촉발된 빅뱅 승리(29·본명 이승현)의 성접대 의혹이 가수 정준영(30)의 ‘몰카 공유’ 파문으로 번지면서 연예계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지점을 제언하고 있다. 승리를 가리키던 의혹의 화살이 다수 연예인으로 확대된 것은 승리의 해외 투자자 성매매 알선 의혹의 단초가 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복수의 연예인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부터다. 지난 11일 경찰은 대화방에 있던 연예인 중 일부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후 해당 연예인들의 실명이 거론되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고, 정준영의 불법촬영물 유포로 관심이 옮겨가며 새로운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승리와 정준영 의혹은 마약류 유통, 성범죄 등과 관련이 있는 만큼 이와 연루된 것으로 지목되는 것만으로도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는다. 이 때문에 연예계는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루머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고 있다. 12일에는 다수 연예인 측 해명이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하이라이트 멤버 용준형 측은 전날 SBS ‘8시 뉴스’ 보도와 관련해 “용준형은 그 어떠한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와 관련이 없고, 정준영의 불법촬영 동영상이 공유됐던 어떤 채팅방에도 있었던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단체방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엑소 멤버가 지목되자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대해 선처 없이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단체방 참여 연예인으로 알려진 FT아일랜드 최종훈 측은 “해당 연예인들과 친분이 있어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을 뿐 성접대 등 의혹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13일에도 지코 등 정준영과 친분이 알려진 연예인들과 ‘몰카’ 피해자로 거론된 여자 연예인들의 해명은 계속됐다. 정준영과 관련한 지라시가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애꿎은 피해자도 등장했다. 단체방 참여자라는 의혹을 받은 모델 허현 측은 “동명이인일 뿐 전혀 친분도 없고 관계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연예인이 몰카 범죄 피해자라는 루머가 돌자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에 대해 법적으로 가용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알렸다. 정준영이 경찰에 입건되면서 불길은 방송계로 옮겨 붙었다. 정준영이 출연 중인 KBS2 ‘1박 2일’과 tvN ‘짠내투어’, 현지 촬영 중이던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 측은 서둘러 정준영의 하차를 발표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또 다른 연예인이 연루될지, 어디까지 번질지에 대한 위기감이 있다”며 “제작진이 출연자에 대해 문제는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려고 하는 등 긴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연예계에서 반복돼 터져 나오는 약물, 성추문 등 논란을 단순히 특권의식에 빠진 연예인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획사의 이른바 ‘리스크 매니지먼트’란 것이 인성 교육 등 예방보다는 사건이 터진 뒤 대처가 일반적이어서 연예인 일탈이 소속사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속 연예인이 문제를 일으키면 소속사는 이른바 ‘관리’를 앞세워 덮기에 급급하다 슬그머니 활동을 재개시키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연예산업 자체가 성적인 요소들을 상업화하고 있는 점과 산업 종사자들이 공인임에도 윤리의식이 약한 점 등 구조적인 문제에 개인의 성적·도덕적 특성이 맞물려 발생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닝썬 폭행 사건이 승리 게이트로 비화했듯이 현재 사건이 다양한 어젠다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 사건이 트리거(방아쇠)가 돼 우리 사회에 쌓여온 경찰에 대한 불신, 거대 연예산업에 대한 불신 등이 터져나왔다”며 “그간 제기되지 않았던 YG 등 기획사의 소유·경영 문제, 연예인의 실제와 TV에서 보여지는 삶의 간극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개인의 범죄를 연예계 전체로 확대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했고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연예계 전체가 매도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또 다른) 연예인 찾기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클럽과 경찰의 유착 같은 사안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안락사 시행은 이르지만 논의는 시작해야…사회적 돌봄 제공하는 의료복지 구축부터”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안락사 시행은 이르지만 논의는 시작해야…사회적 돌봄 제공하는 의료복지 구축부터”

    ‘존엄한 죽음’에 대한 해법 - 전문가 좌담서울신문이 6회에 걸쳐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를 연재한 건 높아진 한국인의 삶의 질과 달리 죽음의 질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한다. 임종 직전까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지속하다가, 삶을 정리하고 가족과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죽음을 맞고 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사무총장,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 윤영호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가나다 순)를 서울신문 본사로 초청해 ‘존엄한 죽음’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이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호스피스 돌봄을 확대하고 병원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되 사회적 돌봄을 충분히 제공하는 의료복지 체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안락사를 도입하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좌담은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이 진행을 맡았다. -시행 1년을 맞은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에 대한 평가는. 김 총장 우리가 그동안 금기시했던 죽음에 대한 논의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법을 통해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죽음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다. 그동안은 임종이 임박환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언제까지 지속할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 법이 마련되면서 서로 논의를 통해 임종 시기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신 변호사 존엄사법이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를 내팽개치는 일종의 ‘고려장’법 아니냐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오히려 ‘말기 환자 권리보호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중환자실에 환자를 데려갔다가 치료를 중단할 수 없어서 파산할 때까지 퇴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이 법의 시행으로 환자가 원하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게 됐다. 박 교수 존엄사법 시행 후 실제 현장에서 보면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전처럼 처절하지 않다. 과거에는 개인이 혼자 죽음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법과 제도 안에서 개인이 어떤 죽음을 선택하고 어떤 치료를 중단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윤 교수 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매년 28만~29만명이 사망하는데, 이 중 0.1%만이 본인이 사전에 직접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라 임종을 맞았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단순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품위 있는 죽음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뭔지 논의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정책과 조직과 예산이 갖춰져야 한다.-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돌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윤 교수 말기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완화 의료나 호스피스 돌봄이 최소 임종 6개월 전부터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임종기가 다 돼서야 호스피스에 입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의 남은 삶이 3~6개월 이내로 판단되면 치료 과정에서도 언제든지 완화 의료나 호스피스 돌봄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신 변호사 호스피스는 종교인이나 사회복지사, 봉사자가 중심이 되고 의료진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게 이상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대다. 호스피스는 원래 회복 가망이 없는 노숙인 환자를 수녀원으로 데려가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돌보는 데서 시작됐다. 호스피스가 선진화된 독일 등에선 의료진이 중심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호스피스를 보면 깜짝 놀란다. 윤 교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선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의료 영역뿐만 아니라 정신적, 경제적 문제까지 전반적으로 돌보는 사회복지영역과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는 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의료 영역만 강조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은 호스피스 전체 돌봄 과정에서 최소 5%는 봉사자가 담당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독일도 봉사자가 130시간의 교육을 받고 2년간 의무적으로 활동한다. 봉사자 교육 비용은 정부가 지원한다. 김 총장 호스피스가 선진화된 국가 대부분은 의료진과 사회복지사, 봉사자가 왕진을 가는 형태의 가정형 호스피스가 주축을 이룬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구조, 주거형태, 사회·경제적인 문제들로 아직은 많은 사람이 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정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정형 호스피스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 우리나라 사회복지 체계도 억지로 연명의료를 강요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사가 아픈 노인을 발견했는데 그대로 두면 방임이 된다. 그래서 그들을 입원시키고 병원에서 운명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의사로부터 직접 이들의 사망 선고를 받아야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강하게 원해도 시스템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 전반의 문화와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여론조사 결과 안락사 찬성이 80%를 넘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김 총장 서울신문 보도를 통해 안락사 도입 여론이 생각보다 높다는 걸 알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시대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 구축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치료비를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자녀들에게 간병과 경제적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는 건 힘들 수밖에 없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며 제출된 연명의료의향서를 봐도 환자 스스로 쓴 경우는 3분의1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2는 보호자의 합의로 쓰였다. 이들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과연 명확하게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아직까진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윤 교수 안락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시행은 시기상조다. 환자가 안락사를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병의 고통이 극심한 육체적 문제,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등 정신적 문제,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문제, 비참하게 사는 걸 원치 않는 존재론적 문제다. 이 중 육체적·정신적·경제적 문제는 사회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런 문제로 안락사를 선택한다는 건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몰아세운 사회 제도적인 모순들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박 교수 안락사를 제도화거나 정책화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논의는 빨리 시작해야 한다. 윤 교수가 말한 안락사를 원하는 네 가지 이유는 사실 자살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사회에 호소하거나 도움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고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삶을 더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죽음을 앞둔 당사자와 그 가족, 사회가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시각은 서로 다를 것이고, 이를 합의하는 과정은 오래 걸릴 것이다.신 변호사 안락사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안락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 만큼 논의를 시작할 적기라고 본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하는 적극적 시행과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고자 영양분 공급 등을 중단하는 소극적 시행으로 나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공급한 영양분이 암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양분 공급을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오히려 환자를 위해 필요한 때도 있다. 윤 교수 우리 사회는 영양분 공급 중단이 굶겨 죽인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어 특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신 변호사 말대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게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등 해를 가하는 상황이 있다. 이럴 땐 공급을 중단하는 게 맞지만,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라 그러지 못한다. 법 때문에 환자에게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공론화돼야 할 부분이다. -안락사 논의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윤 교수 풀어 가는 방식이 중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목적은 궁극적으로 존엄한 죽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존엄한 죽음의 토양을 마련하는 데 소홀한 실정이다. 안락사 논의도 이런 식으로 진행돼선 안 된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보다 사회적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삶을 마무리하려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김 총장 연명의료결정법도 20년에 걸친 논쟁 끝에 시행된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목소리가 쌓이고 다양한 논의를 거쳐 입법화된 것이다. 안락사도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사회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신 변호사 안락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나라는 의료가 거의 무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안락사를 허용하면 결국 돈에 떠밀려서 안락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순수하게 자기 뜻이 아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안전망 확보가 우선이다. -사회적 여건을 따지지 않고 개인적인 안락사에 대한 생각은. 박 교수 안락사의 필요성을 부정할 순 없다. 서울신문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40대 남성의 사연을 보도했다. 이 남성이 단순히 통증과 고통만으로 스위스행을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역할 수행이 불가능해지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등 존재론적 고민도 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더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경우, 죽음을 준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길을 뚫어 주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윤 교수 진통제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마저도 잘 안 되는 상황이다. 진통제로도 통증 관리가 불가능하고 의학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면, 스위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안락사의 한 형태인 의사 조력자살(의사가 처방한 치명적인 약을 환자가 스스로 마시는 행위)에 대해 논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전에 정밀한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김 총장 안락사는 반대하지만, 의사 조력자살에 대해선 찬성한다. 조력자살은 환자가 죽음을 결심하면 의사가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다. 의사가 약물을 직접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나 영양 공급 등을 중단해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소극적 안락사는 반대한다. 신 변호사 2~3개월밖에 살 수 없고, 신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극한의 고통을 겪는다면 의사 조력자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순수하게 본인의 결정으로 안락사가 가능하려면 사회적으로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세계에서 가장 적은 나라에 속하는데. 김 총장 임종기 환자의 통증 완화에 사용되는 약물이 모르핀 등 마약성 진통제다. 한국 의사의 모르핀 사용률이 해외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르핀은 환자의 고통을 줄여 주기도 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킨다. 이게 종종 의료 현장에서 문제가 된다. 모르핀 사용으로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 변호사 한번 모르핀을 투여하면 한 달 뒤에는 18배나 많은 용량을 써야 같은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내성이 강하다. 모르핀의 과도한 투여는 죽음도 앞당길 수 있다. 이것이 법적 처벌 대상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치료를 위한 모르핀 투여로 인해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은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게 형법 학계의 통설이다. 윤 교수 국내 의료계에 모르핀이 들어온 지 벌써 15년 정도 됐다. 문제는 모르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어느 정도 사용량이 적절한 수준인지 조사와 평가를 안 하고 있다. 과다하게 쓰면 호흡곤란으로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지만 환자의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 써야 할 필요가 있는 약물이다. 현재 모르핀을 사용하는 상황이 어떤지, 어느 정도로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리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신 변호사 돌봄 시스템을 환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게 공급자 중심이다. 그래서 병원이나 시설에 입원하고 여기서 죽음을 맞는다. 임종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죽음은 내가 자던 침대에서 치료받고 일상을 영위하다 떠나는 것이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가족들 손 붙잡고 있다가 편하게 떠나는 게 많은 사람이 원하는 죽음일 것이다. 그러려면 집이든 직장이든 의료진이 찾아와 돌보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기 전 온 가족이 모여 애틋하게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이게 바로 존엄한 죽음이라고 느꼈다. 박 교수 낯선 공간과 모르는 사람 속에서 떠나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시간이 담긴, 나의 공간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존엄한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사망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이 어떤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게 행복할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단순히 장례비를 지원하는 게 아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엔 그런 옵션이 없다. 병원에서 홀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 개념을 정립하고, 삶을 마감하는 다양한 길을 열어 주는 게 국가의 책무다. 윤 교수 고통을 완화해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삶을 잘 정리하고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유산은 물론 정신적인 유산, 자신이 존재한 가치를 주변 사람들에게 남기고 떠나는 게 존엄한 죽음이다. 이런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려면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도 정부가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말기 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돌봄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정도 인력과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지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선진국 수준의 완화 의료 및 호스피스를 제공할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는 비용의 20~40%를 절감하면서 존엄한 죽음을 확대할 수 있다. 캐나다는 개인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죽음의 권리를 담은 ‘모든 캐나다인의 권리’를 만들었다. 영국은 매년 국가가 나서서 ‘좋은 죽음’을 정의한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기고] 자치분권으로 사회적 비용 줄이자/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고] 자치분권으로 사회적 비용 줄이자/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우리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1960년대에는 해외 원조를 받던 국가였으나, 그중에서 현재 공식적으로 해외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를 따지면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또한 공정한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 교체는 각 분야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에 기초한 중앙집권체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기간 내에 선택과 집중에 의한 경제발전을 견인하기 위해 중앙집권체제의 운영은 불가피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수도권의 비대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경제, 문화, 교육 및 정부 기능의 집중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특별자치시와 혁신도시 건설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분산을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인구 집중은 여전하다. 한정된 지리적 공간 내에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은 사회적 비용을 폭증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 주거, 교통, 의료 등 일상생활에 소요되는 비용의 증가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교통체증, 공기오염, 소음, 사회적 범죄 등에 의한 사회적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을 살고 싶은 공간으로 발전시켜 인구를 분산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치분권이다. 우리나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1999년 이후 매 정부마다 자치분권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일부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수사적인 차원에서 자치분권을 추진한 정부도 있었다. 혹은 진정성은 있었지만 자치분권이 지니는 정치적 특성과 행정적 전문성으로 말미암아 각 정부가 제시한 정책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여전히 중앙과 지방의 행정권한은 7대3, 재정권한은 8대2의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자치분권에 열성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자체 중심의 자치분권이 아니라 지방의회 및 주민 중심의 주민주권을 구현할 예정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이 같은 청사진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중앙과 지방의 행정권한이 6대4, 재정분권의 실행으로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6대4로 조정된다면 그때야말로 자치분권의 르네상스를 열 수 있을 것이다.
  • 직원 19명 잃은 유엔 ‘충격’…中, 보잉 추락기종 운항 중단

    환경회의 참석차 탑승…각 기관 조기 게양 ‘737맥스8’ 4개월만에 또 사고…결함 논란 추락기 블랙박스 회수…부분적으로 파손 에티오피아 여객기 추락 사고의 157명 희생자 신원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19명이 유엔 산하기구 관계자들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유엔이 충격에 빠졌다. 유엔은 10일(현지시간) 희생자 19명이 산하 세계은행, 유엔환경계획(UNEP),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이주기구(IOM), 유엔식량계획(WFP) 및 난민기구(UNHCR) 소속 직원들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11일부터 유엔본부를 비롯한 각 기관에서 조기를 게양한다. 유엔 직원의 희생이 컸던 이유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유엔 환경 콘퍼런스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이 행사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정상과 각료, 기업가 4700여명이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고 전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희생자 및 유족, 유엔 직원과 에티오피아 정부 및 국민에 대해 애도 및 연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직원 7명을 잃은 WFP 데이비드 비슬리 사무총장도 “그들은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임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의 차세대 기종이 4개월여 만에 또 추락하면서 기체의 구조적 결함이 제기됐다. 사고기는 보잉 ‘737맥스8’ 기종으로, 지난해 10월 29일 인도네시아 해상에서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모두 숨진 라이언에어 여객기 역시 같은 기종이다. 사고 과정도 비슷하다. 라이언에어는 이륙 13분 만에, 에티오피아항공은 이륙 6분 만에 각각 추락했다. 보잉 737 기종은 1만대 이상 생산됐다. 보잉은 2017년 737맥스 기종 전부에 대해 엔진 문제로 일시적 비행 금지 조처를 한 적이 있다고 CNN은 전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11일 사고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했지만 부분적으로 파손됐다고 밝혀 추락 원인을 밝히는 단서가 될지 주목된다. 한편 중국과 인도네시아 당국은 자국 항공사들에 사고 여객기와 같은 기종인 보잉 737맥스 시리즈의 운항을 잠정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경제매체 차이징은 중국에 해당 기종이 96대 있다고 전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열린세상] 막말은 ‘실수’가 아니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막말은 ‘실수’가 아니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비난이 쏟아지면 ‘실수’, ‘오해’라고 둘러댄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유감”이라면서 마지못해 이런저런 군색한 해명을 덧붙인다. 그러나 그 말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그런 뜻’이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의 세상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3월 첫 주일의 가톨릭 복음도 그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 주었다.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약한 자는 (마음의)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한다.’ 굳이 성서(집회서)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말은 마음이고, 그 마음에 ‘실수’란 없다. 반대로 마음에 넘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닥칠 불리를 생각해 가슴이 아닌 머리로 계산한 변명과 해명은 말이 아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그칠 줄 모르는 막말에 상처받고, 이어지는 어설픈 해명에 분노하는 이유다. ‘20대는 지난 정권의 잘못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 건강한 판단을 못 하는’ 세대이고, ‘50·60대 퇴직자와 실직자들은 할 일 없다고 산에나 가고 SNS에 험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 가야 할’ 대상이다. 정치권(야당)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이 많이’ 있으며, ‘5ㆍ18 유공자는 괴물’이다. 그들로서는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 놓고 “젊은 세대를 겨냥해 발언한 게 아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주어를 갑자기 바꾸고, “신남방정책의 취지”라는 거창한 말로 억지 포장을 한다고 그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말이 진심일지 모른다. 비난을 미리 염두에 두거나 계산하지 않은 마음이 넘쳐 저절로 나온 것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은 선(善)에 대한 집착이다. ‘나와 우리는 선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악을 숨기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몰고, 그 악을 드러내려 한다. 내 눈의 들보는 그대로 두고, 남의 눈의 티만 빼려고 한다. “선을 이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어느 신부는 말했다. 하나는 나 스스로 선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적으로 내가 조금 더 선해지기 위해 남의 악을 들춰내고 바꾸려는 것이라고.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는 내가 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변할 필요가 없이 남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짓의 나부터 변해야 한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남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퇴계 선생이 ‘자성록’에서 말한 “기질을 바로잡는 일은 나에게 있지 남에게 있는 게 아니다”와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나는 변하지 않는 그 선이 자기에게만 이롭고 남에게는 해롭다면. 맹자(孟子)는 “순임금과 도척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닌 이익을 추구하느냐, 선을 추구하는가에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줄기차게 사방을 향해 부르짖는 적폐청산, 그것을 내세워 자신들의 적폐까지 ‘선’이라고 우기며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이 순임금의 마음인지, 도척의 마음인지 그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게 되면 결말에 가서 일이 뒤집어지는 것이 어찌 이상하다 하겠는가.” 퇴계 선생의 말이다. 해마다 3월이 돼 강의를 시작할 때, 신입생들에게 설문을 받는다. 나의 꿈,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그들의 대답에 늘 놀란다. 그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롭고, 선하고, 아름답고, 깊고, 넓다. 그동안 입시지옥에서 시달렸지만, 학교가 아닌 곳에서의 배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도 날카롭고 냉정하고 팽팽하다. 그들이야말로 이제 20대를 시작하는 우리나라 보통의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건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그런 눈과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막말로 쏟아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오로지 자기 욕심에만 사로잡혀 ‘건강한 판단’을 못 하는 도척이란 소리를 들어야 할지 모른다.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않은 채 자신이 순임금이며, 자신의 악이 선이라고 착각하면서.
  •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좋은 죽음 목표로 정부 주도 ‘생애말 돌봄 전략’ 시행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좋은 죽음 목표로 정부 주도 ‘생애말 돌봄 전략’ 시행

    영국은 비교적 죽음을 맞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5년 작성한 ‘죽음의 질 지수’ 보고서를 보면, 영국은 100점 만점에 93.9점을 받았다. 2010년 1위에 이어 두 번째다. 우리나라는 각각 18위(2015년), 32위(2010년)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영국이 ‘죽기 좋은 나라’가 된 건 정부 주도로 ‘생애말 돌봄 전략’을 추진한 게 결정적이었다. 정부 주도로 좋은 죽음을 고민해 긍정적 변화를 이룬 대표적 사례다. 영국에서 생애말 돌봄 전략이 시행된 건 2008년이다. 이때만 해도 영국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해 관심은 적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기준 국민의 58%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집에서 사망한 국민은 18%였고, 주거용 요양시설 17%. 호스피스는 4%에 그쳤다. 당시 영국 국민 74%가 자택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컸다. 영국 정부는 1년여에 걸쳐 생애말 돌봄 전략을 개발했다. 목표는 국민이 보다 ‘좋은 죽음’(Good Death)을 맞게 하는 것이었다.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사망에 이르는 것을 좋은 죽음이라 정의했다. 돌봄 전략은 총 6단계다. 말기 환자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전략을 수립하는 1~3단계부터 실제 돌봄이 이뤄지는 4단계, 임종과 임종 후 서비스를 제공하는 5~6단계까지 촘촘히 전략을 세웠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환자가 집, 병원, 호스피스 등 어디에 있든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기준 집에서 사망한 영국인은 24%, 주거용 요양시설은 23%, 호스피스는 6%로 각각 상승했고, 병원은 46%로 감소했다. 정은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주임연구원은 “영국은 좋은 죽음을 고민하는 민관 합동기구를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사회인식 바꾸기에 성공했다”면서 “우리도 죽음에 관한 국민의 인식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태움’ 의혹 박선욱 간호사 산업재해 인정

    지난해 2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박선욱씨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됐다. 당시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에 대해 간호사들 사이의 괴롭힘 문화를 뜻하는 ‘태움’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박씨 유족의 급여와 장의비 청구에 대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박씨 사건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7일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간호사 교육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과중한 업무와 개인의 내향적인 성격 등으로 인한 재해자의 자살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면서 “향후 동일·유사 직종 사건을 판단하는 데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재해자(박씨)는 매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업무를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하던 중 신입 간호사로서 중환자실에 근무함에 따라 업무상 부담이 컸다”면서 “직장 내 적절한 교육체계나 지원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해 피로가 누적되고 우울감이 증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길섶에서] 지공거사/박록삼 논설위원

    ‘지공거사’. 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을 점잖게 일컫는 말이다. 65세가 넘어 지하철을 무료 탑승하니 좋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그리 부실하지 않은데 세상이 자신을 강제로 노인 취급한다는 자조적 느낌도 실려 있다. 한국 사회 노인은 두 가지를 연상시키고 생각이 서로 뒤엉키게 한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여성을 흘겨보거나 꾸짖는 노인들이 가끔 있다. 미세먼지가 자욱하건 말건 태극기, 성조기 하나씩 손에 들고 시청 주변 휩쓸며 생각 다른 이들과 대거리도 서슴지 않는 노인들 또한 있다. 그 혈기방장한 에너지만 보면 연령으로 노인 여부를 따지면 안 되지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국내외의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가난의 멍에를 벗어던지려 몸부림쳤던 치열하고 고단했던 청춘이 떠오른다.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혜로움과 너그러움이야말로 늙음의 특권이다. 많은 이들은 그 특권을 충분히 누리며 다음 세대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하철 무료 승차 대상을 65세에서 70세로 늘리려 한다. 적자 탓이다. 자칫하면 노년의 삶을 집 안에만 묶어두게 될 수도 있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적자 해소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youngtan@seoul.co.kr
  • “기존 산업에 기댄 한국, 신산업 미약…통합적 관점서 성장·고용 해결해야”

    성장·고용이 기존 산업에서 부진하고, 신산업에서 고성장을 이루는 글로벌 추세와 달리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신산업이 경제 활력을 적극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현안별·단편적 접근법으로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통합적인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싱크탱크인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6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우리 경제, 이제 다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주제로 열린 SGI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밝혔다. 주제 발표를 한 서영경 대한상의 SGI 원장은 “글로벌 성장과 고용을 보면 기존 산업에서 부진하고 신산업에서 고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신산업이 미약하다”고 평가하면서 “성장과 고용의 원천인 기술혁신이 확산되려면 산업 간 융합, 무형자산 투자 등 민간의 노력과 함께 규제개혁, 이해갈등 조정,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한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진국 사례를 보면 신산업 발현, 고령화 등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노동시장 이동성이 증가한다”면서 “고용안전망 중심의 사회안전망 강화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해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과 혁신성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 원장이 언급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란 대기업·정규직 노동시장은 유연성이 낮고,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시장은 안정성이 낮은 방향으로 양극화된 현상을 일컫는다. 참석자들은 한국 경제가 혁신을 지향하는 체질로 전환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토론자인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은 “최근 장기 저성장 탈출이 쉽지 않는 이유는 경제 내 선도 부문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고부가가치 및 신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여러 부처에서 분절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보다 경제·통상·산업정책을 포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헌 유엔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은 “성장·일자리·분배라는 세 톱니바퀴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적극적인 고용정책을 펴고 인적자본 투자를 확대하되 사회안전망에 대한 민간의 도덕적 해이는 방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서면 인사말을 통해 저성장·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각 전환을 역설했다. 박 회장은 “정부 정책 주도의 개발연대 방식에서 벗어나 자율규범 환경 속 사회안전망 비용 분담 방식으로 민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단기적 안목에서 현안별로 단편적 접근을 할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여러 이슈 간 인과관계를 고려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탄핵’ 칼 뽑는 美민주… 81곳에 “트럼프 의혹 자료 내라” 총공세

    ‘탄핵’ 칼 뽑는 美민주… 81곳에 “트럼프 의혹 자료 내라” 총공세

    하원, 러 스캔들·부패 등 광범위 조사 착수 트럼프 아들·사위·참모진·회사 등도 대상 NYT “하원 장악 두 달 새 탄핵 토대 마련” 트럼프 “난 누구에게나 협조”… 반격 노려 일각선 “재선 저지 무리한 조사땐 역효과”민주당이 주도권을 장악한 미국 하원이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권력남용·부패 등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소속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은 전날 예고한대로 81개 개인·기업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필요한 정보와 문서 제출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보내며 총공세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지 2개월 만에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뒤흔들어 탄핵의 토대를 마련하는 절차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내들러 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하원은 더이상 (지난 20개월 넘게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 결과만을 기다리지 않겠다. 대부분 사안이 중복되지만 범죄 기소를 위한 특검과는 다른 증거 기준을 가지고 있다”며 그동안 잠복해 있던 탄핵론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미 언론들은 법사위가 이번 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의혹 외에도 수사 중이던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한 사법 방해 혐의, 선거자금법 위반, 사익을 위한 권력 남용 등을 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제외한 장·차남과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 가족을 비롯해 트럼프 그룹 회사들과 최고재무책임자 앨런 와이즈버그, 트럼프재단도 조사 대상이 됐다 지난달 말 의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비위 의혹을 폭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마이클 코언 변호사와 뮬러 특검의 ‘1호 기소’ 대상이었던 폴 매너포트 전 선대본부장, 코미 전 FBI 국장 등이 자료 제출 요구 명단에 포함됐다. 이밖에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 대선 캠프에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유출한 영국의 정치 컨설팅 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등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측근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여성 2명에게 ‘입막음용 돈’을 지급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아메리칸미디어(AMI)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페커도 자료 요청을 받았다. 법사위는 향후 2주 내 자발적인 자료 제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환장을 발부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혐의를 부인한 채 “나는 항상 어느 누구에게도 협조하고 있다”고 협조적 자세를 취하면서 반격 카드를 노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의 탄핵을 염두에 둔 하원 법사위의 야심찬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을 막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감행할 경우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12년 만에 3만 달러 고지 올랐지만… 양극화·고용 부진에 ‘반쪽 성과’

    12년 만에 3만 달러 고지 올랐지만… 양극화·고용 부진에 ‘반쪽 성과’

    인구 5000만 이상 국가 중 7번째 3만弗 올 성장률 작년 2.7% 수준 이하 전망 우세 4만 달러 진입에는 10년 안팎 걸릴 듯 中 성장목표 낮춰 한국경제 영향 불가피 성장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사상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성장률 하락과 양극화 심화, 고용 부진 등으로 ‘반쪽짜리 성과’라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2018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 1349달러로 전년(2만 9745달러)보다 5.4% 늘었다. 1인당 GNI는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한 국가 국민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2006년(2만 795달러) 2만 달러 벽을 깬 지 12년 만에 3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일본·독일(5년), 미국(9년), 영국(11년)보다는 길었지만 프랑스·이탈리아(14년)보다는 짧았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GNI가 3만 달러 이상인 ‘3050클럽’에 7번째로 가입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은 곳은 25개국뿐이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어선 것은 선진국 수준의 경제 규모가 됐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잠재성장률(물가 상승 등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유지되면 4만 달러 진입에는 10년 안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성장세가 빠르게 꺾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14년 3.3%에서 2015년 2.8%, 2016년 2.9%로 낮아졌다가 2017년 3.1%로 반등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2.7%로 떨어졌다.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 수준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은 이날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정부공작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6∼6.5%’로 지난해(6.5% 정도)보다 낮춰 잡았다. 대중 무역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올해 한국 경제를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환율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다. 2017년 평균 113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101원으로 낮아졌다. 이는 달러화로 표시하는 GNI를 올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소득은 환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금은 오히려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양극화 심화, 고용 부진,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3만 달러 시대가 지속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쉽지 않다. 실제 스페인과 그리스, 키프로스 등은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재정 위기를 겪고 2만 달러대로 뒷걸음질쳤다. 더욱이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성장의 효과를 체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체감 경제와 밀접한 고용 시장은 꽁꽁 얼어 붙었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취업자 증가 폭(전년 대비 9만 7000명)은 2009년(-8만 7000명) 이후 최소, 실업률(3.8%)은 2001년(4.0%) 이후 최고였다. 또 지난해 4분기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2인 이상 가구)은 1년 전보다 역대 최대인 17.7% 감소한 반면 최상위 20%(5분위) 가구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10.4%)으로 증가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멍완저우 호화판 연금 생활에 비판 고조

    멍완저우 호화판 연금 생활에 비판 고조

    화웨이그룹 상속자인 멍완저우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호화판’ 가택연금 혜택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일부터 캐나다 법원에서 멍 부회장에 대한 미국 인도 여부에 대한 심리가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멍 부회장이 ‘호화판’ 가택연금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과 중국에 수감중인 캐나다 인들에 대조적인 차별 대우에 대한 밴쿠버 시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멍완저우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 밴쿠버에 있는 1600만 캐나다달러(약135억달러)짜리와 600만 캐나다달러짜리 집에 머물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멍완저우는 밤 11시까지 외출이 가능하며, 밴쿠버 외곽에 있는 리치먼드 시에 가서 외식과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또 딤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화려한 쇼핑몰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에 억류돼있는 캐나다 외교관 출신 마이클 코브릭 등은 비밀 구치소에 수감돼 변호사와 가족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대비된다. 이런 대조적인 대우 속에서 멍완저우의 ‘행각’에 대한 밴쿠버 주민들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앞서 중국 신화통신은 4일 익명의 중국 당국자를 인용해 “코브릭이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중국 국가기밀과 정보를 훔치려 해 중국 법을 어겼다”고 잔했다. 코브릭의 스파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중형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중국 법원은 마약밀매 혐의의 캐나다인 로버트 로이드 셸렌버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밴쿠버 소재 사이먼 프레이저대학 앤디 얀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멍완저우의 밴쿠버 가택연금 생활이 보여준 엄청난 불평등이 분노를 촉발시켰다”면서 “외국인들이 밴쿠버에서 돈으로 자유를 사고, (부동산 투자로) 돈을 묶어두는 곳으로 만들어버린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멍완저우는 저택에서 가택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데 코브릭 등 캐나다인들은 중국 감옥에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속상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얀 교수에 따르면 멍완저우의 저택이 밴쿠버시 서쪽의 던바 지역에 있다는 사실도 시민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요인이 됐다. 출세지향적인 중산층, 즉 여피 족의 거주지로 유명한 이곳에 외국 자본이 몰려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현지 중국계 주민들 사이에서는 멍완저우 사태를 계기로 캐나다 정부의 과거 차별정책을 떠올리고 있다는 상반된 지적도 나왔다. 캐나다는 1885~1923년 중국 이주민을 막기 위해 ‘인두세’를 징수한 적도 있다. 중국인들에게 화웨이는 중국 기술의 ‘자부심’이며 멍완저우는 ‘타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공주’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중국 환구시보는 4일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화웨이는 힘내라’라는 평론을 통해 “화웨이는 이번 소송을 통해 멍완저우 부회장의 결백을 지키고 미국의 공세를 피해야 한다”며 멍 부회장의 수감을 국가적 차원의 일로 부각시켰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연구소 원란장 선임연구원은 “밴쿠버는 매우 아시아적인 도시”라면서 “멍완저우는 어떤 이들에겐 중국 국민이 또다시 차별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강력한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는 ‘보안 위협을 이유로 자사 장비를 배제한 것은 부당하다’며 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의 제재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며 여론 조성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멍 부회장은 이에 앞서 자신의 체포 과정에 위법 행위가 있었다며 캐나다 정부에 대해서도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다산은 유배된 후 할 일이 없어 고금을 연구하고 민생 문제와 국가의 대계에 유념하여 토론하고 저술하였다. 그는 근본적인 것을 규명하여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학문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저술은 모두 후세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황현, ‘매천야록’ 권1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고, 민과 국가가 처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개혁 사상을 내세운 실학자다. 그가 남긴 저술과 제시한 개혁안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새로운 차원에서 기억되고 호출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는 그가 남긴 학문적 성취가 현재까지 남아 현재로 이월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의 학술적 역량과 개혁적 사유는 ‘여유당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천이 다산의 저술을 두고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범으로 주목한 것은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을 주목한 것일 터이다.#시대를 아파하고 민을 노래한 거인 다산은 실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남긴 시문은 여느 시인과 달리 현실 문제를 소재로 포착하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더욱이 다산의 남시문은 그의 학술적 성취와 안팎을 이룰 정도로 조화를 이룬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다산시문집’ 권21, ‘아들 연아(淵兒)에게 보냄’ 다산은 일찍이 “나는 조선사람. 조선시를 즐겨 지으리라”라고 해 ‘조선시 선언’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한시 특유의 음풍농월과 달리 민의 삶을 포착하여 민을 위한 비가(悲歌)로 표출한 바 있다. 나라와 시대를 걱정하고 권선과 징악을 풍자하는 시만이 진실한 시라고 주장한 다산의 사유 속에는 항상 민과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산은 다른 글에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매우 단호한 문학인식을 보여 줬다. 그 문학적 단호함은 ‘애절양’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군적을 만들어 군포(軍布)를 거두는 폐단을 고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애절양’을 인용한 바 있다. ‘애절양’은 조선조 후기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군포 착취로 농민이 스스로 자신의 남근을 자른다는 비참한 내용을 담은 한시다. 다산은 ‘경세유표’ 앞머리에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거니와, 이는 남근을 스스로 자르는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자 당대 현실의 정확한 진단이다.#좌절을 딛고 고뇌 속에 꽃핀 창조 다산은 유배 생활에서 숱한 좌절을 겪지만, 그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학단을 만들어 제자를 기르는 한편 그들의 학문적 역량을 빌려 저술활동을 하고 개인적 좌절도 이겨 내었다. 그는 유배 기간 내내 학문적 고뇌 속에 창조적 예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세유표’를 비롯해 ‘목민심서’와 ‘흠흠심서’ 등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은 대부분 유배 시기에 구상하거나 저술했다. 학술적 두 축인 경세학과 경학의 성취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해 학술적 역량을 꽃피운 것이다. 유배를 마친 이후에도 다산은 저술을 보완하고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이 구상한 사회개혁과 새로운 국가건설의 대안을 녹여 내었다. 하지만 자신의 학술적 성취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내 죽은 뒤에 아무리 정결한 희생과 풍성한 안주를 두고 제사를 지낸다 하여도, 내가 진정 흠향하고 기뻐하는 것은 내 책 한 편을 읽고 내 책 한 장을 베껴 주는 일보다는 못할 것이니, 너희는 그 점을 기억해 두어라. -‘다산시문집’ 권21, ‘두 자식에게 보여 주는 훈계’ 유배지에서 학술 교류가 없던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성취를 외면하지 말 것을 자식에게 당부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저술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는 민을 위하고 국가를 혁신하는 대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산의 저술은 민과 국가를 자양분으로 사고한 학술적 꽃이다. 무엇보다 다산 스스로 유배지에서 넉넉한 민의 품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를 개혁하려 한 역사적 전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산이 시문에서 ‘민’을 중심에 놓고 노래한 것이나, 사서삼경과 같은 경전을 재해석한 저술과 ‘경세유표’와 같은 경세서에서 국가를 중심에 놓고 혁신적 안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낡고 오랜 우리 조선을 새롭게 혁신’(新我之舊邦)할 것을 주장했다. ‘경세유표’ 머리글에서는 “지금 곧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라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 #난세에 호출되는 ‘여유당전서’ 다산의 저술은 한국학의 거점이자 19세기 학술의 뛰어난 성과다. 그의 저술은 이후 역사 공간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의 역사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된다. 고종은 부강정책에 예의주시하여 경장을 서둘렀다. 그러나 많은 신하 중에서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을유년과 병술년 사이에 ‘여유당집’을 올리라고 하였다. -‘매천야록’ 권1 고종이 부국강병을 위해 다산의 저술을 기억한 것은 새로운 국가체제의 구상에 필요한 대안을 다산의 경세서에서 찾으려 한 것임은 물론이다. 시대의 호출에 다산의 저술이 부활한 것이다. 다산의 혁신적 사유와 개혁적 여러 안들은 갑오농민전쟁 시기에도 다시 주목을 받는다. 1930년대 실학 연구의 선구자인 최익한은 ‘강진읍지’를 인용하면서 전봉준, 김개남 등의 갑오농민군 지도자들이 ‘경세유표’를 활용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는 정약용의 저술이 역사적 변혁기에 재발견되고 호출하고 있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다산의 저술은 일제강점기에 이월돼 조선학 운동을 추동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1930년대 중반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등은 ‘신조선사’라는 출판사에서 ‘여유당전서’와 ‘담헌서’ 등을 출간하면서 조선학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근대적 학술이 식민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식민지학에 대응한 자국학의 정립에 방점이 있다. 자국학의 구체적 학술적 성과에 ‘여유당전서’를 그 중심에 둔 것은 지금의 한국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다산의 저술은 시공을 넘어 수시로 기억된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 여유당전서는 다산의 저술 정리한 문집 필사·목판본 등으로 간행 다산의 저술은 일찍이 필사본과 목판본, 연활자본 등으로 유통됐다. 다산의 자제와 제자들은 문집 간행을 위해 원고본을 만들었지만 500권 100책에 이르는 저술은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도 간행하지 못했다. 그의 저술 중에서 실용적인 문헌은 19세기까지 필사본으로 유통됐지만, 공식 출판은 19세기말 목판본인 ‘이담속찬’이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일부 학술단체의 일본인들이 다산의 저술을 필사하고 연활자로 간행한 바 있고 이후 장지연, 최남선, 정인보 등 지식인들은 다산의 저술을 재발견해 일부 저술을 연활자로 간행했다. 다산 서거 100주년을 전후로 1934~38년 신조선사에서 154권 76책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이 ‘여유당전서’는 정약용 스스로 구상한 체재와 다르게 7집 체재로 돼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일찍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번역했고 1982~94년 ‘여유당전서’ 중에서 시문집 22권 10책을 국역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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