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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대일 화해 제안, 역사의 원칙을 세워라/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대일 화해 제안, 역사의 원칙을 세워라/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우리 정부가 지난 19일 대일 화해 방안을 내놓았다.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를 확인한 지난해 10월의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이에 반발하면서 7개월 이상 한일 관계가 기능부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 내용은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재원에서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이 화해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일본 정부가 이를 수용할 경우 청구권협정에 따른 협의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정부가 역제안을 내놓았다는 점은 일단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과 화해하는 방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그동안 내비쳤던 부정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여전히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역시나 일본 정부는 우리의 제안이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방안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그러면서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구성을 재차 요구했다. 우리의 제안이 일본의 입장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의미다. 당분간 팽팽한 긴장은 지속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원칙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구제가 청구권 문제를 벗어나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 지배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주에 속한 문제임을 확인했다. 이는 식민지 지배의 기원을 이루는 협정과 조약들이 애초부터 무효라서 식민지 지배 그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서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해석이다. 일본은 1910년에 이르는 협정과 조약들이 유효했으나 1948년 한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됐다는 해석에 서 있다. 대법원 판결은 그 해석의 차이가 더이상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나아가 대법원은 청구권과 경제협력의 대가성 여부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은 양국 정부가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을 일치시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면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궁극적으로 뛰어넘기 위한 외교 노력에 나서야 한다. 이번 우리 정부의 제안이 한일 관계 반전의 계기가 돼 주기를 바라면서도 마음 한켠에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번 제안이 1965년 체제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안은 문제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구제의 문제에 한정해 일과적 해법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한편 피해자 구제의 방법으로 제시한 재원 마련에 일본 기업이 참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그동안 일본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보여 온 태도로 볼 때 비현실적인 대안이어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제기해야 할 문제는 한일 관계의 근본 구조이며, 역사의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대신 당장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서는 실질적이고도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떠안는 문제 또한 역사의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다시 한번 대법원 판결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 보자. 대법원 판결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신생국가로 건국됐다는 단절론을 배제하고 있다. 그 판결을 존중한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에서 일어난 ‘징용’ 및 ‘징병’ 등 강제동원으로 발생한 국민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의 일부는 대한민국 정부에 귀속된다. “대한민국은 대한인민으로 조직함”을 천명한 대한민국 임시헌법 1조에 따라 대한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대한민국 정부에 있고, 외국의 강점 상태를 용인해 그 불법행위로 인해 자국민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보호받지 못한 상태를 시정하지 못한 책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를 한국 정부 주도하에 실시하는 것이야말로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해에 임시정부 수립으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단절된 적이 없는 우리 법통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새달 ‘광주형 일자리’ 완성차 법인 설립

    새달 ‘광주형 일자리’ 완성차 법인 설립

    연내 공장 착공… 정규직 1000여명 고용 2021년 경형 SUV 年10만대 양산 돌입광주형 일자리 첫 모델인 자동차공장 설립을 위한 합작법인이 7월 중 만들어진다. 연내 자동차공장 건립에 착수한 뒤 2021년 하반기 양산체제에 돌입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23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완성차 공장 합작법인을 만들기 위한 행정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며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이 시장은 “그동안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을 통해 받으려던 ‘투자심사 면제’를 다른 방법으로 추진해 7월 중 합작법인 설립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500억원 이상 투자사업을 할 경우 국가재정법에 의해 투자심사를 받는다. 하지만 국회 공전으로 ‘투자심사 면제 조항’을 넣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이 계류되면서 진행이 중단될 뻔했다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와 행정안전부 결정을 통해 ‘투자심사 면제’를 받았다. 국회가 장기간 공전하면서 처리가 미뤄지자 중앙부처 협의를 거친 사업은 투자심사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적극 활용한 결과다. 시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요청해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 투자심사 면제사업에 해당한다’는 의결을 얻어냈고 지난 21일 행안부로부터 면제 대상으로 최종 결정됐다. 당초 상반기에 예정됐던 합작법인 설립은 국회 파행으로 막연히 연기될 뻔했으나 광주시의 적극적인 법 해석 추진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총 5754억원인 합작법인 자본금 중 2300억원에 달하는 자기자본금의 21%(484억원)는 광주시가, 19%(437억원)는 현대차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투자자를 모집해 마련한다. 자기자본금 이외의 나머지 자금 3454억원은 산업은행을 비롯해 재무적투자자와 지역기업, 현대차 협력기업 등 기타 금융권에서 조달할 방침이다. 광주형 일자리 완성차공장 설립사업은 합작법인이 빛그린산단에 연 10만대 규모의 생산라인을 구축해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현대자동차로부터 위탁받아 생산하고 정규직 1000여명을 고용하는 내용이다. 이 시장은 “사회대통합형 노사상생의 광주형 일자리 자동차공장 건설은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북중 정상회담에 일본 언론 “시진핑 영향력 과시 대미 협상카드 활용”

    북중 정상회담에 일본 언론 “시진핑 영향력 과시 대미 협상카드 활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에 대해 일본 언론 대부분은 중국이 북한 문제를 무역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은 중국 지도자의 과거 방북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부정적 시각도 드러냈다. 요미우리신문은 21일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 이달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미국에 협조를 할 카드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는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미중 관계의 심각한 악화가 영향을 미쳤다며 “대미관계를 안정시키려는 시 주석이 미중 간 이해가 일치하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과의 협조를 이뤄내려 한 것 같다”는 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국이 대미협상의 중개자로서 실리가 없다고 보고 중개자 역할을 시 주석에게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도쿄신문은 북중 정상회담의 배경과 관련,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각각 무역마찰과 핵 문제로 대립하는 북중 정상이 서로를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일치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G20 정상회의 때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격렬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시 주석이 북중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기념선물’로 가져와 회담의 초점을 분산시키며 대립관계를 타개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의 방북 일정이 최종적으로 굳어진 것은 지난주 중반”이라며 “시 주석이 방북을 결정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문제에서 무언가 긍정적인 태도를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시 주석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의식해 G20에서 북한을 카드로 활용할 생각이라며 이번 방북을 통해 중국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를 명확히 했다고 분석했다. 히라이와 순지 난잔대 교수는 “북중 정상회담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시 주석과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의 지원을 받으려는 김 위원장 사이의 단기적인 생각이 일치해 성사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다만 북한과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지 아닌지 등에서 미국에 대한 입장이 원래부터 다르다”며 “미국에 대해서는 북중 간 구조적인 입장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은 과거 중국 정상들이 북한 방문 후 자국 내에서 곤경에 처했던 상황을 소개하며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산케이는 중국 정상의 북한 방문을 ‘귀문(鬼門)’이라고 표현했다. ‘귀신이 드나드는 문’인 귀문은 나쁜 결과가 나오니 피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산케이는 이어 1978년 화궈펑 중국 공산당 주석, 1989년 자오쯔양 당 총서기 등이 북한을 방문한 뒤 자국 내 정치 상황에서 곤란을 겪다 밀려난 상황을 소개했다. 산케이는 또 한국 일부 언론들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 내에서 북중 정상회담으로 한국의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이 약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하기도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서울시, 전국 최초로 ‘주거안전 취약계층’을 위한 조례 제정

    서울시, 전국 최초로 ‘주거안전 취약계층’을 위한 조례 제정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민생실천위원회(위원장 봉양순, 노원3)가 상정한 「서울특별시 주거안전 취약계층 지원에 관한 조례」 (이하 「주거안전 취약계층 조례」)가 소관 상임위원회인 도시계획관리위원회의 심사를 마쳤다. 「주거안전 취약계층 조례」는 2018년 11월 9일 발생한 ‘종로 고시원 화재 참사’ 이후 고시원, 쪽방촌과 같은 주거안전 취약거처에 대하여 안전관리를 지원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민생실천위원회(이하 민생위)의 입법활동 첫 성과로, 서울시의 구조적인 문제인 주거빈곤과 그에 따른 안전문제에 대해 특화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근거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생위는 지난 2월 ‘서울시 주거빈곤, 현장에서 대안을 만든다.’라는 주제로 동자동 쪽방촌을 방문하여 주거빈곤의 현장을 확인하고, 시민단체, 지역주민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주거안전 취약계층 조례」 제정안을 발표하고 조례 제정 추진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간담회 자리에서는 김재형 민생위 부위원장의 사회,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과장의 제정안에 대한 발제, 김유식 지역건축안전센터 센터장과 정종대 주택정책개발 센터장이 서울시 집행부 입장에서 발표를 진행했고,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시민단체 입장에서 주거빈곤과 안전대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서울시 주거빈곤의 심각성과 주거취약계층의 고통, 안전관리에 대한 필요성 등이 논의되었다. 오는 28일, 제287회 정례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처리될 예정인 「주거안전 취약계층 조례」는 주거안전 취약계층에 대한 정의와 실태조사,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직접적인 상위법이 없는 상황에서 주거안전 취약계층 지원을 담은 전국 최초의 조례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의회 관계자는 조례제정에 대해 ‘주거취약계층의 안전사고 예방과 주거권 보호 차원에서 제도적 지원규정이 마련되는 것으로 조례 제정의 시급성과 필요성이 크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민생위 봉양순 위원장은 “지난 2월 현장 간담회에서 서울시 주거빈곤의 실정과 열악한 주거환경의 고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안전관리 지원을 시작으로 주거빈곤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들을 현장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만들어 가겠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청년이 구국의 영웅이라고? 기득권 책임을 떠넘기지 마

    청년이 구국의 영웅이라고? 기득권 책임을 떠넘기지 마

    “뭘 보나. 경제를 살리자는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성실한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국민의 1990년대 시대정신은 역시나 ‘나라 살리기’였다. 그러나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국민의 눈물 어린 노력에도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애국심 넘치는 국민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어른들은 장롱 속 깊이 모셔뒀던 아이들 돌 반지와 금목걸이 등 몇 없는 귀금속을 꺼내 ‘구국 자금’에 보탰고, 학생들은 “나라가 어려운 마당에 외제를 쓰는 것은 매국”이라며 부끄러운 꼬부랑 글씨가 붙은 제품에 작은 태극기를 붙여 이를 가리고 다니며 ‘구국 염원’을 더했다. 국부가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대작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까지 일었다. 대한민국은, 그 국민은 역시 위대했다. 나라의 큰 기업들이 문을 닫긴 했지만 빠르고 슬기롭게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상처는 깊었다. TV 인기 방송에서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대사가 반복됐다. IMF를 졸업하고, 두 번째 민주정부가 들어선 2004년 한국 사회 단면을 보여 주는 유행어다. 일련의 국가적 사태를 거치며 정치권은 늘 손 안에 있을 것만 같았던 권력이 언제든지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기업은 세계로 뻗어 나가다가도 하루아침에 문 닫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위기감이 고조된 정치권과 기업, 또 그들과 명운을 함께하는 언론은 구원자로 ‘청년세대’를 주목했다. ‘청년세대’는 정당에 표를 줄 유권자였고, 기업에 지갑을 열 고객이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언론은 저마다 목적을 위해 ‘청년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88만원 세대’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세월호 세대’ ‘달관 세대’ ‘촛불 세대’ 등 쏟아지는 청년세대론을 두고 이렇게 지적한다. “많은 ‘청년’ 담론은 청년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청년이라는 이름을 팔아 그 담론을 생산하는 본인의 가치를 높이고 이득을 도모한다”(15쪽). 또 “하늘 아래 같은 청년은 없고, 세대론은 무엇이든 주워 담는 마법의 상자로 활용된다”면서 ‘청년세대’ 담론 대부분이 실제 청년들의 현실을 왜곡·과장하고, 담론을 생산할 힘 또는 권력을 쥔 세력이 풀어야 할 사회 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청년세대에 떠넘기고 있다고 진단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잖아.”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열린세상] 책을 읽으면 정말로 예뻐질까/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열린세상] 책을 읽으면 정말로 예뻐질까/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많은 여성 모델을 관찰해 보니 책 읽는 모델의 생명이 가장 길더라.”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왜 책을 읽으면 생명력이 생겨날까? 그것은 지성미가 눈빛과 표정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예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성미가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거울도 안 보는 여자’는 차라리 괜찮다. ‘책도 안 보는 여자’는 정말 곤란하다. 이외수의 소설 ‘괴물’에 “누워서 등창 나도 거울 보는 게 여자다. 여자는 지붕 없는 집에서는 살아도 거울 없는 집에서는 못 산다”는 대사가 나온다. ‘거울’을 ‘책’으로 바꾸면 훨씬 멋있을 것 같다. 미인의 대명사인 클레오파트라는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미인은 아니었다는 설도 있다. 설의 진위와 관계없이 그녀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원전으로 독파했으며, 라틴어에도 능통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공동 통치자였던 동생이자 남편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숨어 지내다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밀히 찾아가서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해 권좌에 복귀했다. 카이사르가 그녀와 결혼까지 한 것은 지성미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어릴 적부터 유명한 독서광이었으며, 광범위한 독서에서 우러나오는 유려한 언변과 지혜, 지략은 카이사르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문헌에 전해진다. 영웅 카이사르가 로마에 미인이 없어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로마에는 미남미녀가 넘쳐난다. 오죽하면 로마로 신혼여행 가지 말라는 농담이 나왔을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눈팔다 다투면 자칫 신혼 기분 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알렉산드리아에는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일화를 간직한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 지중해변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사후 그의 후계자 안토니우스와도 결혼했다. 안토니우스는 결혼 선물로 로마의 속주인 페르가몬(오늘날 터키 지역)도서관의 20만 장서를 통째로 배에 싣고 가서 바쳤다. 그녀가 보석보다도 책과 도서관을 더 사랑했음을 말해 주는 일화다. 오늘날 포털사이트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치면 각종 보석 브랜드만 즐비하게 뜨는데, 이는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카사노바 역시 엄청난 독서가이자 저술가였다. 그는 수많은 여성과 사귀었는데, 특이한 것은 그와 사귄 여성들은 모두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그는 폭넓은 독서에서 우러나오는 교양과 언변으로 여성들을 사로잡으면서 한편으로는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대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면모를 부각시킨 ‘카사노바는 책을 더 사랑했다’(Casanova was a book lover)라는 책이 나왔다. 이와 대조적인 인물이 돈 주앙인데, 그와 사귀었던 여성들은 모두 그를 원망했다고 한다. 그는 여성을 인격체라기보다 쾌락의 도구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람둥이라 하더라도 지성적인 바람둥이가 낫다는 이야기다. 몇 해 전 어느 화장품 광고에 ‘여자의 피부는 권력이다’라는 카피가 있었다. ‘좋은 피부를 만들어서 권세 있고 돈 많은 남성을 사로잡아라’는 메시지다.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존재로서의 여성, 주체보다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듣기 거북했던 기억이 있다. 남성들은 여성의 미모에 눈이 가고 여성들은 남성의 복근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결정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말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외모만 보다가 진정 지혜로운 여성을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다. 남성의 돈만 보고 결혼하는 것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 꽃의 향기는 십 리를 가고, 얼굴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돈은 향기가 없다. 그러나 지성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세월에 의해 시들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세월에 의해 강화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일 년 중 여름 휴가철에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다가오는 휴가 때 독서와 사색을 통해 영원토록 지속되는 지성미로 무장하는 것은 어떨까.
  • 문 대통령 “고액 상습 체납자 은닉재산 끝까지 추적하겠다”

    문 대통령 “고액 상습 체납자 은닉재산 끝까지 추적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주재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고액 상습 체납자의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고 더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의 협의회 주재는 각 정부 부처들로부터 사립유치원 비리, 재개발·재건축 비리, 요양병원 비리, 공공분야 불공정 갑질 비리 대책을 보고받은 지난해 11월 3차 협의회 이후 7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고의로 면탈하고 조세정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악의적 고액 상습 체납자는 반드시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고액 상습 체납자가 더 이상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국세청 등 관련 부처가 적극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최근 교육부 감사 결과 일부 사학법인의 횡령·회계부정이 드러났다”면서 “회계·채용·입시부정 등 비리 발생 대학에 대한 집중 관리와 대학 감사에 대한 교육부 감독을 강화해 학생·학부모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부총리를 중심으로 관계기관·부처가 힘을 모아 신속한 대응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일부 요양원이 기준 이하 인력을 배치하고 운영을 속여 부정으로 수급하고 보조금을 착복했다”면서 “요양기관의 회계·감독·처벌 규정을 강화하라”고 말했다. 아울러 “돌봄의 질은 요양보호사들의 노동 환경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요양보호사들의 노동 강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어르신의 인권도 훼손된다”면서 “불법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을 과감하게 개선하라”고 주문했다.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2년이 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깨끗해지고 공정해졌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기성세대가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관행으로 여겨온 반칙·특권은 청년들에겐 꿈을 포기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거대한 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출발선이 아예 다르고 앞서 나가기 위해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허용되는 불공정한 운동장에서 사회적 신뢰는 불가능하다”며 “원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반칙을 하면 이득을 보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공정하게 이뤄진 경쟁이 곧 성장의 과정이고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밑천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사회에 공정·정의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은 한두 해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면서 “지속적이며 상시적인 개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제조업 르네상스, 기업 氣 살리기가 먼저다

    정부가 어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을 발표했다. 철강·섬유·화학 등 기존 주력산업은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시스템반도체·미래자동차·바이오 등 신산업은 새로운 주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수출 규모 기준 현재 전 세계 6위인 우리나라의 제조업 순위를 2030년에는 4강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제조업 활력 회복 및 혁신 전략’이 단기 대책 위주였다면 이번 대책은 중장기 비전과 그에 걸맞은 지원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일 우리 경제에 대해 “선진 경제를 추격하던 경제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혁신을 강조한 연장선이다. 남은 과제는 정부의 비전과 전략을 산업 현장에 녹여내는 일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18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로 0.5% 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지난 3월 무디스(2.1%)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2.4%)에 이어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모두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 것이다. 또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1분기 매출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다. 기업들의 매출이 뒷걸음친 것은 2년 6개월 만이다. 반면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분기 해외 직접투자는 역대 최고인 141억 1000만 달러에 달했다.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살길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찾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투자 감소는 고용 하락, 소득 감소, 소비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새 추진 전략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기업 심리가 움츠러든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 비리 기업인은 일벌백계로 다루되, 기업은 이와 분리해서 기부터 살려줘야 한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 크게 늘어나는 규제와 혁신에 따른 사회적 책임 부담이 개선돼야 한다”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의 그제 발언도 정부가 곱씹어 봐야 한다.
  • 최저임금 심의 시작… 경영계·여권 “속도 조절” 확산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 시작됐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이행을 압박하는 가운데 경영계는 물론 정부·여당 내에서도 최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물갈이 후 첫 논의를 갖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임위 3차 전원회의에서는 노사 대표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사용자위원인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은 “지난 2년간 30% 가까운 과도한 인상에도 감내하고 준수하고자 노력했지만 더이상의 인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하자, 근로자위원인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어려움은 알지만 끝까지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면 회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응수했다. 경영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 또는 소폭 인상 목소리가 나오면서 속도조절론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경영 여건상 최저임금 지급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내년도 최저임금은 동결에 가까워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 같은 분위기에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박준식 취임위원장이 지난달 간담회에서 속도조절론에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질타가 이어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현장 공청회 결과와 최저임금 적용 효과, 임금실태 분석 등 최임위 산하 전문위원회에서 심사한 연구용역 결과 보고와 토론이 이어졌다. 노동계는 “공청회 참석자에 정부부처나 대기업을 참여시키는 등 최저임금 외 구조적인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영계는 “최임위에서 최저임금 심의 외 문제까지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섰다. 노사는 이날 회의에서 서로 원하는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최임위는 법정 심의기한인 오는 27일까지 3차례 더 전원회의를 열 예정이다. 박 위원장은 전원회의 후 브리핑에서 “노사 양측에 최저임금 수준 최초안을 다음 전원회의인 오는 25일까지 제시해 달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세종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박용진 “감사 적발된 고려대 ‘비위 0원’ 허위 제출”

    박용진 “감사 적발된 고려대 ‘비위 0원’ 허위 제출”

    이사장 며느리, 학교에 아파트 비싸게 넘겨 부당이득‘낙하산 채용’ 이사장 아들딸, 일 않고 연봉 5000만원총장이 법인카드로 미용실, 골프장서 2300만원 긁어전국 사립대학이 횡령과 회계부정 등을 통해 최소 2600억원이 넘는 돈을 부당하게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대 등 일부 사립대는 정부 감사에 비위가 적발됐음에도 교육부에 비위 사실이 전혀 없다고 거짓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회계부정 사태를 고발해 공론화시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교육부에서 받은 ‘사학 비리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293개 사립대학이 개교한 이후 교육부 또는 감사원에 적발된 비리 건수는 1367건이었고 비위 금액은 2624억여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최소한으로 조사된 금액”이라면서 “이 자료는 교육부가 각 대학으로부터 자진해서 받은 자료이기 때문에,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면 비위 실태는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의 한 사립대는 감사원에 393억원 규모의 비위가 적발됐지만 박 의원실에는 비위 사실이 없다고 자료를 허위 제출했다. 박 의원은 “최근 교육부 감사를 통해 비위 사실이 적발된 고려대도 비위 건수와 금액을 ‘0’으로 제출했다”면서 “연세대 등 일부 주요 사립대들도 비위 건수와 금액을 ‘0’으로 제출해 자료를 은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사학 비리의 구체적 사례를 보면 사립유치원 회계부정과 유사한 사례가 많다”고 꼬집었다. A대학 이사장 며느리는 같은 대학 이사를 맡고 있는데, 자신이 소유했던 시가 3억 3000만원 상당 아파트를 학교에 4억 5000만원에 넘겼다. 1억원이 넘는 부당 차익을 챙긴 셈이다. B대학 이사장 자녀는 정식 절차 없이 학교에 채용된 뒤 출근도 하지 않은 채 5000만원이 넘는 급여를 받았다. C대학에서는 총장이 학교 법인카드로 골프장 비용 2000여만원과 미용실 비용 300여만원을 사용하고, 교직원은 유흥주점에서 1억 5000만원이 넘게 쓴 사실이 적발됐다. 박 의원은 “이런 회계 비리는 그동안 개별 대학의 문제 혹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돼왔으나, 비리가 계속되고 규모가 상당하면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면서 “구조적·제도적 개선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전날 학교법인 이사장의 친족을 이사로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사학혁신법’(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시론] 혁신성장에 없는 세 가지, 정비공/박용성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혁신성장에 없는 세 가지, 정비공/박용성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살다 보면 ‘세상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답’이 없고, 영원히 감출 수 있는 ‘비밀’도 없으며, 무엇보다 ‘공짜’가 없다는 걸 말이다. 이른바 ‘정비공’(正秘空)이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성장 절벽을 극복할 수 있는 모멘텀이 바로 ‘혁신성장’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성장에도 정답과 비밀, 공짜는 없다. 혁신성장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해답을 준비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해야 하며, 기꺼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치를 준비도 해 놓아야 한다. 첫째, 혁신성장은 그 어느 나라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길이다.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 나타나 대량 실업이 생길 수도 있고, 산업 간 경계와 직종 간 칸막이가 사라져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최근 중국은 빅데이터에 기반해 인공지능(AI) 의사에게 상담한 뒤 자동판매기에서 약을 구입하고 없는 약은 모바일로 주문해 1시간 안에 배송되는 서비스를 내놨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공중파 방송 3사가 1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지만, 유튜브에서는 억대 고수익을 올리는 유튜버가 대거 탄생했다. 오프라인 대형할인매장 매출액은 해마다 줄어들지만 온라인 쇼핑 매출액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의료와 바이오, 정보통신기술(ICT), 금융, 게임 등이 한국을 먹여 살릴 신사업 분야로 떠오르고 있지만, 기존 사업자들의 저항과 정부의 규제에 막혀 있다. 전기차 전용 충전소에 가지 않고도 기존 플러그에 꽂기만 하면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전기사업법에 막혀 시작도 못하고 있고, 유전자 검사만으로 맞춤형 질병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막혀 있다. 자동차 혁신성장은 공유자동차와 자율주행차를 결합한 융복합서비스 사업을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지만 한국은 자동차 공유서비스 자체가 불법이다. 혁신성장의 성공 여부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기술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느냐를 가늠할 정부의 제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과거 산업화 시대의 부처별로 파편화된 정답을 찾고자 몰두하고 있다. 이제라도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산업화시대 걸림돌을 모두 치워 버리고 새로운 규범 체계를 찾아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해답을 찾아야 한다. 둘째, 혁신성장에는 사생활의 비밀이 없다. 개인의 모든 정보가 AI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기술에 사용되면서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 기업과 공공 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정부나 기업이 ‘빅브러더’가 될 수 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 시대가 오면 그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셋째, 혁신성장에는 공짜가 없다. 산업혁명으로 세계 첫 자동차를 상용화한 영국에선 정작 혁신성장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 혁신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였다. 자동차가 많아지면 마부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 컸다. 1865년 영국 의회는 ‘붉은 깃발법’을 제정해 자동차 때문에 사라진 마부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마차를 타고 앞서고 보조기사 1명이 더 있어야만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게다가 의회는 자동차가 도심에서 시속 3㎞ 이상 속도를 낼 수 없게 규제했다. 이 법은 31년이나 유지되다가 폐지됐다. 영국의 자동차산업 기반도 독일과 미국으로 넘어갔다. 혁신에 대한 전방위적 저항은 당연한 일이다. 창조적 파괴를 거부하는 혁신은 성공할 수 없다. 아픔과 고통과 처절함이 동반돼야 혁신이 이뤄진다. 특정 소수가 혜택을 보려고 혁신을 거부할 때 정부는 표를 의식하지 말고 국민에게 이를 정확히 알려 줘야 한다. 정부가 기득권 저항에 굴복해선 안 된다. 혁신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가 혁신성장의 불을 댕기고 디딤돌이 될 때 우리나라는 비로소 희망이 있다. 한국의 미래는 우리가 마주한 성장절벽과 인구절벽, 격차절벽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달려 있다. 산업화시대의 낡은 칸막이 규제와 시스템을 부수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혁의 파고에 올라타야만 성공할 수 있다.
  • 비아이 수사 착수했지만···한서희 “바쁘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아이콘’에서 탈퇴한 비아이(본명 김한빈·23)의 마약구매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담팀을 구성한 경찰이 제보자 한서희씨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등 본격 수사에 나섰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아직 내지 못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전담팀은 이번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한 한씨에게 출석을 요구했다고 17일 밝혔다. 전날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한씨는 경찰이 전화로 출석을 요구하자, “바쁘다”며 자꾸 전화를 끊는 등 명확하게 출석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경찰은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한씨를 이번 주 안에 만나 공익신고 내용에 대해 진술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 2016년 한씨에게 마약을 판매한 혐의 등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B씨도 경찰수사에 비협조적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청송교도소에서 B씨를 면담해 김씨의 마약구매 의혹 등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너무 이슈화 되니까, 내년 출소를 앞둔 B씨가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한씨는 2016년 8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용인동부경찰서에 체포돼 조사받는 과정에서 마약구매와 관련해 김씨와 대화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조사에서는 변호사 조력을 받으며 “김씨가 마약을 구해달라고 한 것은 맞지만 전달하지는 않았고 함께 마약을 하지도 않았다”며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덕분에 마약구매 의혹을 받던 김씨는 별다른 조사 없이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한씨는 지난 4일 아이콘 출신 비아이(김씨)가 자신에게 마약을 구하려고 했던 대화 내용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신고했다. 3년 전 마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비아이도 같은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경찰과 소속사 인 YG엔터테인먼트의 유착이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기생충’ 왜 박서준인가..봉준호 감독 “그 자체로 존재감”

    ‘기생충’ 왜 박서준인가..봉준호 감독 “그 자체로 존재감”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이 전원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의 친구 ‘민혁’ 역의 박서준 스틸을 공개했다.(제작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 각본 감독 봉준호) 영화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되는 두 가족의 걷잡을 수 없는 만남을 그린 이야기. ‘기생충’에서 박서준은 전원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의 친구 ‘민혁’으로 분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생충’에서 14일 공개한 ‘민혁’의 스틸은 깔끔한 캐주얼 정장에 단정한 머리 스타일로 ‘기우’의 집안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모습으로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실제 ‘민혁’은 극 중 부유한 집안 환경을 가지고 있는 명문대 대학생으로 전원백수 가족 ‘기택’네 장남 ‘기우’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캐릭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우’와는 격의 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로, 극과 극 환경에 놓인 전원백수 가족 ‘기택’네와 글로벌 IT그룹 CEO ‘박사장’네를 이어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처럼 ‘민혁’은 향후 펼쳐질 예측불허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릭터인 것. 봉준호 감독은 “‘민혁’은 다른 세계의 인물 같기도 하고, ‘기우’에게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때문에 박서준처럼 그 자체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또 실제로 친구 사이인 최우식과 박서준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좋았기에 만족스럽게 찍을 수 있었다”며 박서준을 캐스팅한 배경을 밝혔다. 언제나 통념을 깨는 동시에 허를 찌르는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가족희비극 ‘기생충’.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연기파 배우들의 변신과 호연이 어우러져, 강렬하고 신선한 영화로 호평받고 있는 ‘기생충’은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상헌 ILO 국장 “핵심 협약은 보편 권리, 조건 달 문제 아니다”

    이상헌 ILO 국장 “핵심 협약은 보편 권리, 조건 달 문제 아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노동기구(ILO) 고위직에 오른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13일(현지시간)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 과정에서 경영계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방어권’을 요구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국장은 이날 ILO 총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용부 기자단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경영계의 방어권 요구를 묻는 질문에 “핵심 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어디에 있든 누려야 할 가장 보편적이고 최소한의 권리에 관한 것”이라며 “협상하고 조건을 달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그동안 ILO 핵심 협약 비준으로 노동자의 단결권이 강화되면 노사관계 균형이 노조쪽으로 기운다며 방어권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등을 요구했다. 이같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핵심 협약 비준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국장은 “핵심 협약을 다루면서 필수불가결한 문제가 아닌 것을 논의하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를 힘들게 하고, 핵심적인 것을 놓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ILO의 시각을 전했다. 그는 ILO 핵심 협약 비준으로 노조가 지나치게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노동자 단결권에 관한 핵심 협약(제87호·제98호)은 노조를 하자는 권리가 아니다”며 “단결할 권리, 조직할 권리이고 단결·조직의 힘으로 당사자와 협상할 권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열린 형태의 조직을 비정규직이나 취약계층이 스스로 구성할 길이 열릴 수 있는 것”이라며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대기업 노조에 더 힘을 실어주자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을 동시 추진하고, 노동계가 ‘선(先) 비준’을 요구하는 데 대해 “ILO 입장에서는 국내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할 방법론적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이 한국의 ILO 핵심 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간 데 대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무역 제재는 비관세 제재가 많고 다양한 데 EU는 비관세 제재를 오랫동안 사용해그런 방식의 제재를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가 비준을 추진 중인 강제노동에 관한 제29호 협약과 보충역 제도가 배치된다는 주장과 관련해 “배치 여부가 아닌 기술적인 문제로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 모집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보충역 제도를 손질하면 상충 소지를 없앨 수 있다는 정부 입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 국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최저임금을 올리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 예상됐다”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운용해야 했는데 모든 게 빠지고 최저임금만 앞서는 바람에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경제·산업정책이 구조적으로 바뀌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 굡箚� 반문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정정책 등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인 만큼 최저임금 인상만 떼어놓고 과도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다. 이 국장은 “소득분배 개선으로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이라며 “소득분배는 그 자체로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있기에 방향은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빈곤이라는 기생충 무관심을 먹고 큰다

    빈곤이라는 기생충 무관심을 먹고 큰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조문영 지음/21세기북스/324쪽/1만9000원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 가족이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보다 보면 마치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상황은 웃긴데 웃을 수 없는 이유이고, 그게 바로 영화의 묘미일 터다.신간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는 너무 멀거나 너무 막연하게 생각했던 가난을 학생들 관점에서 다룬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진행한 ‘청년, 빈곤을 인터뷰하다’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조 교수의 수업은 애초 ‘글로벌 빈곤’과 ‘청년 빈곤’에 맞춰졌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가난에 관한 관심이 대개 두 종류였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그 이유에 관해 “지금 청년 세대가 대한민국이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을 당당히 선포한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며, “21세기 저성장 한국 사회에서의 청년들 처지의 비참함에 관한 불안감” 탓이라 여겼다. 조 교수는 지난해 가을 수업 방향을 틀었다. 학생 40명을 10개 팀으로 나눠 반(反)빈곤 활동가 10명을 인터뷰하게 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난곡사랑의집 배지용, 관악사회복지 은빛사랑방 김순복,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선동수, 홈리스행동 이동현, 노들장애인야학 한명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최인기,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기 활동가다. 학생들이 만난 활동가들은 한국사회 가난의 현장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고, 문제는 무엇인지, 가난을 없애려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이야기한다. 예컨대 10년 전 용산참사 진압과정에서 시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지만, 결국 그 자리엔 개발의 풍경만 남았다. 이원호 활동가는 “개발에 묶인 땅은 ‘투자’의 대상으로 거듭나며 몸값을 올리지만,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쌓여 있던 먼지처럼 청소돼 버린다”고 했다. 유영우 활동가는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인식을 지적한다. “가난한 건 본인의 노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배웠고,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라고 배운다.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는 ‘가난’은 스스로의 문제인데, 철거싸움을 시작하고 오히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가난을 대하는 정부 정책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배지용 활동가는 “쪽방촌에 정부나 기업, 종교단체 등이 주민들한테 뭔가를 나눠주는데, 그러다 보면 받는 것에 길들여진다”고 설명한다. 이를 당연한 권리처럼 느끼면서 가난의 비인간화, 대상화가 진행된다. 반대로 정부가 부양의무제를 통해 가난을 가족에게 짐을 지우거나, 통제를 쉽게 하고자 시설에 가둬두는 문제도 짚어낸다. 장애인과 빈민단체들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을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3대 적폐’로 설정하고 5년 넘게 맞선 이유다. 이들의 인터뷰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가난에 관심을 두고 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마을에서 발생한 고독사를 계기로 시작한 은빛사랑방의 ‘서로돌봄 짝꿍마을 사업’은 좋은 사례다. 주민들 몇 명씩을 짝궁으로 묶은 이 활동은 주민 스스로 이웃의 소식이 뜸하면 찾아가 확인하며 연대를 키운다. 책은 반빈곤 활동가의 현장 리포트이자, 그동안 한국사회의 가난을 외면했던 학생들 이야기도 담아냈다. 학생들은 인터뷰 후 감상문을 통해 가난에 관한 자신들의 관점을 다시 생각했다. 제도 교육을 거부하고 고교 때 노점상을 위한 활동가로 나선, 자신들과 비슷한 연배의 공기 활동가를 만난 학생들 인터뷰 후기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공기 활동가는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나는? 조용히 나의 존재를 지워가며 눈에 보이지 않게 그렇게 환경에 녹아들고자 했다.” 책 제목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책은 가난한 이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난을 외면했기 때문에 결국 가난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불편했던 이유는 아마 그래서였을 터다. 영화를 보고 ‘나는 기택 가족만큼 가난하지 않다’는 안도감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았던가. 그 안도감은 결국 외면의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자치광장] 풍수해에 한발 앞서 대응하는 서울/이정화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

    [자치광장] 풍수해에 한발 앞서 대응하는 서울/이정화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장

    최근 풍수해로 인한 자연재해는 과거와 달리 예측하기 어렵고 단기간에 집중돼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는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전 세계적인 기상이변 때문이다. 이 때문에 풍수해에 대한 정책을 잘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다. 현장에서 집중호우, 태풍 등 재난 상황을 직접 맞부딪쳐야 하는 지방정부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서울시는 2010년 강남 침수 피해, 2011년 광화문 침수 피해, 우면산 산사태 등으로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를 입은 뒤 풍수해로부터 안전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펴 왔다. 침수취약지역 34곳을 선정하고 연평균 4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펌프장 및 저류조 신설, 하수관로 개선, 하천 단면 확장 등 방재시설 확충에 집중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까지 27개곳의 방재시설 확충을 마무리해 10년 빈도로 찾아오는 시간당 75㎜ 강우에는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21년까지 방재시설 확충을 모두 마무리하면 30년 빈도인 시간당 95㎜의 집중호우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 43곳도 2026년까지 시설을 완비할 계획이다. 효과적인 풍수해 예방을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방재 성능을 높이고 강우나 홍수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적인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이에 시는 올해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한 ‘침수예측시스템’을 시범 운영한다. 서울로 접근하는 강한 비구름대의 이동 경로를 사전에 기민하게 파악하고 침수가 예상되는 자치구에 사전에 알려 비상 대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는 2018년 한국수자원공사와 체결한 ‘스마트 도시홍수관리 기술 공동협력 협약’에 따라 고정밀 수문 레이더를 기반으로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개발한 강우 관측·예측 기술, 도시 홍수 분석 기술, 도시 홍수 관리 시스템을 제공받아 강우와 홍수 예측에도 활용할 방침이다. 집중호우 등 재난이 우려되거나 발생했을 때는 공무원들의 철저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시민들 또한 기상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기본적인 재난 대응 수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민관이 함께할 때 재난을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재난을 겪어도 신속히 라이프라인을 복구할 수 있다.
  • 결정적 패스 29회·팀 최다 볼터치… 이강인, 발에 GPS 달았나

    6경기 총 530분 뛰며 4도움 ‘공동 선두’ 상대팀 집중 견제에도 패스성공률 79% 러브콜 쇄도… “아약스·PSV·레반테 관심” 전 세계 축구팬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최고 스타인 이강인(18·발렌시아)의 진가는 기록이 증명한다. 폴란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이강인은 조별리그와 토너먼트 6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해 1골 4도움을 기록 중이다. 이번 대회 최다 도움 기록으로 옌스 헤우게(노르웨이)와 동률을 이룬다. 헤우게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온두라스전에서 무더기 도움을 올린 반면 이강인은 경기마다 고른 활약으로 한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13일 스포츠 데이터 분석 평가사인 스포츠매틱스에 따르면 이강인이 얼마나 정교한 킥과 뛰어난 시야를 갖고 창조적인 경기를 해 나가는지 잘 드러난다. 이강인은 6경기에서 모두 530분을 뛰었다. 이 가운데 ‘챌린지 패스’가 무려 29회나 됐다. 경기당 4.8회다. 18분에 한 번꼴로 챌린지 패스를 시도한 셈이다. 챌린지 패스는 공격 전개에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 도전적인 패스를 가리킨다. 에콰도르와 만난 4강전에선 75분만 뛰고도 챌린지 패스를 6번이나 기록했다. 이강인이 플레이메이커로 뛰었고 경기마다 상대의 거친 견제에 시달렸다는 걸 고려하면 이 같은 기록만으로 탁월하다. 이강인은 챌린지 패스를 많이 하는 중에도 패스성공률이 여섯 경기 평균 79.1%나 된다. 동료 선수들에게 과감하게 패스를 뿌려 주면서도 패스가 배달되는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이강인의 천재성이 잘 드러난다. ‘막내형’이라는 별명처럼 팀워크를 챙기면서도 “발에 GPS를 달았다”는 칭찬이 나올 정도로 정확도가 빈말이 아닌 셈이다. 공격에 활로를 뚫는 패스에 더해 탁월한 탈압박 능력까지 갖추다 보니 팀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지표가 볼터치 횟수다. 이강인이 여섯 경기에서 볼터치한 횟수는 1060회다. 한국 대표팀 전체 기록인 6128회 가운데 17.2%나 된다. 보통 볼터치가 가장 많은 건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인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연장전에 교체됐던 세네갈전에서 182회로 센터백 김현우와 동률을 이뤘을 뿐 나머지 다섯 경기에서 단독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15분 덜 뛴 에콰도르전에서도 2위 고재현(107회)보다 많은 143회를 기록했다. 유럽 각지에서 이강인에 대한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발렌시아가 이강인에게 지난 1월 8000만 유로(약 1070억원) 규모의 바이아웃(최소 이적료 조항)이라는 안전장치를 달았지만 영입 관심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 라디오방송 ‘카데나 세르’는 이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반테가 이강인의 에이전트에 영입 관심을 전달해 협상 채널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 스포츠전문 매체인 ‘수페르 데포르티보’는 “네덜란드의 아약스 암스테르담과 PSV 에인트호번도 이강인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대형 분식회계 터져도… 기업 회계 부담 줄인 금융위

    대형 분식회계 터져도… 기업 회계 부담 줄인 금융위

    감리 통한 제재→재무제표 사전심사로 상장 준비기업 대상 감리는 아예 빠져 회계부정 근절할 근본 대책 미흡 지적금융위원회가 회계감독 강화가 아니라 되레 기업들의 회계 부담을 줄여 주겠다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위는 13일 회계감독 방식을 감리를 통한 사후제재에서 재무제표 심사를 통한 사전예방 중심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상장 준비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감리는 아예 폐지된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논란을 계기로 외부감사에 관한 법(외감법)을 전부 개정하면서 추진해 온 회계 개혁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는 이날 ‘회계감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감리 대신 심사 중심의 감독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회계처리 기준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해당 기업을 정밀감리 대상으로 삼았다. 감리는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외부 감사의 공정성을 위해 감사보고서를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심사는 기업이 공시한 재무제표를 모니터링해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경미한 경우에는 제재 없이 수정공시 권고로 종결해 기업의 부담이 더 적다. 재무제표 심사 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한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감리를 없애는 대신 한국거래소와 상장주관사(증권사)의 책임을 강화한다. 상장주관사는 기업 재무제표 등 중요 사항의 허위 기재와 기재 누락을 적발할 책임을 갖게 된다. 상장 준비 기업 입장에서는 감리의 부담을 덜게 됐다. 기존에는 상장 준비 기업의 약 60%가 감리를 받았다. 이를 두고 대우조선해양,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굵직한 분식회계 사건이 연달아 터진 가운데 ‘시장 친화적’ 회계감독으로 전환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재정세제위원 안병선 세무사는 “2017년 10월 신외감법 이후 회계 개혁을 위한 올바른 방향 설정을 했는데 갑자기 뒷걸음질치는 느낌”이라면서 “회계법인이 피감사기관인 기업들로부터 비용을 받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분식회계가 근절될 수 있는데, 이런 내용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신외감법 이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고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 많았다”면서 “바뀐 회계제도하에서 감독을 시장 친화적으로 하고 무조건 ‘회초리’만 들지 말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안이 대형 회계부정 사건을 근절할 근본 대책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경우 우리나라 재벌 지배구조 문제도 배경에 깔려 있다”면서 “기업은 물론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전반적인 제도 개혁 없이 회계감독 하나만 바꾸는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상장 준비 기업에 대해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상장 준비 기업들이 주관사에 좋은 점을 보여 주고 나쁜 점을 감추니까 100%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권영준 한국뉴욕주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회계법인들은 감사와 함께 기업 컨설팅 업무도 함께하고 있는데, 미국의 사베인스옥슬리법(상장회사의 회계 개선 및 투자자 보호법)처럼 회계의 독립을 위해 컨설팅과 감사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예상대로’ 홍남기, ‘발목잡힌’ 김현미, ‘반신반의’ 박영선

    ‘예상대로’ 홍남기, ‘발목잡힌’ 김현미, ‘반신반의’ 박영선

    장관들의 업무 스타일은 큰 틀에서는 정치인, 관료, 학자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료 같은 학자도 있고, 학자 같은 관료도 있다. 그러나 장관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전임 장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전임 장관이 좌충우돌하다가 죽을 쑨 경우 현직이 돋보이지만, 거꾸로 전직 장관의 빛에 가려 존재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홍남기 기재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시 예상대로다”라는 반응이 주류다. 전임 김동연 부총리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각을 세웠던 것과 달리 “시키는 일을 잘할 것”이라는 취임 전후의 분석이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안팎에선 “역시 주사급 부총리”라는 혹평도 나온다. 김동연 부총리가 종종 직원들의 말을 듣는 대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면, 홍남기 부총리는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다. 디테일에도 강하고 선후배들과도 관계가 좋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리더십(Leadership)보다는 펠로우십(Fellowship)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동행 리더십’이라는 후한 평가도 있지만, 기재부의 떨어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내부에서 나온다. 최근 버스 파업 때 경제부총리가 국토교통부에 주도권을 내준 것도 기재부 공무원들은 불만이다. 자기 목소리는 사라지고, 청와대와 톤을 맞추면서 기재부의 존재감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공무원 평가는 좋은데 언론 평가 박한 김현미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언론과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지만, 내부 공무원들의 평가는 후하다. 소신이 있는데다가 청와대와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과 가까워서 국토부에 대한 울타리가 돼 주고,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론이나 정치인 등을 만날 때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 등이 있으면 솔직하게 “이 부분은 우리 국장이 답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쿨하게 바통을 넘기는 등 관료들의 역할을 보장하는 스타일이다. 국토부 공무원들이 최정호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것을 두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당분간 김현미 체제가 유지되는 것에 대해 불평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대부분 정치인 출신 장관은 언론과 관계가 돈독한데 김현미 장관은 언론과의 공식적인 접촉을 꺼린다. 간담회도 마지못해 하는 편에 속한다. 이런 이유로 언론의 평가는 박한 편이다. 자신의 발언이 확대재생산되는 경우가 많아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0년인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두고 혼선을 빚은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석에서 “정치부와는 다른 경제 부처 기자들의 취재 관행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현미 장관은 최근 3기 신도시 건설과 2기 신도시 전철 연결 등을 놓고 스탭이 꼬이면서 내부에서는 “일만 벌여 놓고 떠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관료 출신과 달리 과감하게 대안을 내놓은 것은 좋지만, 실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번 개각 때 발을 빼려다가 최정호 후보자의 낙마로 발목이 잡힌 격이다.  공포의 대상에서 안착에 성공한 박영선 장관 박영선 중기벤처기업부 장관은 의정 활동 기간 특유의 독한 이미지가 형성된데다가 청문회 과정에서 김학의 동영상으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공격하는 등 곡절을 겪으면서 공직사회에서는 “박 장관 밑에서 일하려면 고생 좀 할 것”이라며 중기부 직원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나는 그 부처에 가서 일하라면 공직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하는 관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진 이런 우려는 기우다. 중기부 직원들은 오히려 힘 있는 장관이 와서 울타리가 돼주니 좋다고 환영일색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등 일단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다가 교수 출신인 전임 홍종학 장관과 달리 존재감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청문회 때 중기부 노조가 박 장관 환영 성명을 낸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산하기관이나 기업들의 점수도 후하다. 박 장관은 취임 초 회의에서 “산하기관 책임운영제를 도입하겠다”며 자율과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의 얘기도 경청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언젠가는 박 장관 특유의 독한 면모가 나올 것”이라며 박 장관의 모습에 반신반의하는 직원들도 없지 않다. 최근 대변인을 공모키로 한 것이 변화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임 장관 인사 등 원위치시킨 조명래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부임 이후 먼저 한 일은 전임 김은경 장관이 한 인사의 상당 부분을 원위치시킨 것이다. 교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임 장관과 유사한 이력을 지녔지만, 업무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는 평이다. 김 전 장관은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어서 종종 직원들과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반면 조 장관은 취임 당시 공정한 인사를 강조하면서 전임 장관 때 이뤄졌던 인사를 상당 부분 바로잡았다. 직원들과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외부의 민원에 대해서도 “이행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검토해보고 논의하라”는 방식을 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임 장관의 인사를 원위치시킨 것 외에 학자 출신 장관으로서 소신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내부에서 나온다. 본부 간부들을 대거 산하기관 등으로 내려 보내고, 대신 소속기관 간부들을 끌어다 쓰는 등 환경부의 판을 뒤집은 김은경 전 장관의 빛에 가려 대내외적인 존재감이 떨어져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전임자 덕 보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성윤모 장관은 튀지 않고 후배들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관료 출신 장관이다. 업무도 꿰뚫고 있는데다가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공무원들은 일하기 편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전임 백운규 장관과 비교된다. 교수 출신인 백 장관은 공직 경험이 없는데다가 의욕이 앞서 이를 따르지 못하는 공무원들을 많이 질책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관료들과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 관료 출신으로 자상한 성 장관에게 공무원들이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산자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며 “낮아진 산자부의 존재감을 성 장관이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노동·경영계 줄타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노동부 관료 출신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 현안에 해박하다. 관료 출신 특유의 꼼꼼함도 지니고 있다. 실·국장들이 보고에 들어가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평가는 후하다. 직원들을 질책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대한다. 역시 전임 장관 덕을 보는 편에 속한다. 공무원들은 속성상 현직보다는 전직 장관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평가한다. 죽은 권력이기 때문인가. 공무원들은 “전임 김영주 장관이 칼을 내부를 향해 휘둘렀다”고 혹평한다. 경영계보다는 노동계 편향이었던 점도 이 장관과 대조적이다. 이 장관은 지금은 경영계와 노동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격해질 경우 이 장관의 줄타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성곤 선임기자 sunggone@seoul.co.kr ▶[장관 업무 스타일(상)] 실·국장회의 생중계에 경악한 고위 공직자들
  • 남북, 판문점서 ‘조문 외교’…김여정 “李여사 뜻 받들어 협력 계속”

    남북, 판문점서 ‘조문 외교’…김여정 “李여사 뜻 받들어 협력 계속”

    정의용·서호·박지원 참석… 北 리현 동행 DJ 서거 다음날 조문단 파견과 대조적 조의문엔 “고인의 통일 노력 못 잊을 것” 金위원장 남북 관계 메시지·친서는 없어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이희호 여사의 별세와 관련해 12일 조화와 조의문을 남측에 전달했다.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김 위원장이 이날 오후 5시에 이 여사 앞으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해 왔다”며 “북측에서 김 부부장 등이 김 위원장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러 판문점 북측지역 내 통일각으로 왔다”고 밝혔다. 북측에서는 리현 통일전선부 실장이 동행했고 남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 장례위원회를 대표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정 실장은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로 돌아온 뒤 ‘김 제1부부장의 메시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이 여사님이 그간의 민족 간 화합과 협력을 위해 애쓴 뜻을 받들어, 남북 간 협력을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여사님이 기여한 공로를 기억하고 유지를 받들어서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라며 “조문사절단이 오기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뜻과 함께 김 위원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제1부부장이 위원장께 그런 말씀을 드리겠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남은 15분간 진행됐으며 남북 관계에 대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나 친서 전달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의 조의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며 ‘이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화는 흰색 국화꽃으로 만든 화환 위에 ‘고 리희호 녀사님을 추모하여’라는 문구가 적힌 검정 리본이 달렸다. 지난해 대남 메신저 역할을 해 왔던 김 제1부부장은 여전히 남측을 접촉하는 창구역할을 맡았다. 일각에서 건강이상설이 제기됐지만, 박 의원은 “내가 지금 세 번째 보지만 아주 건강하다”고 말했다. 통상 북한에서 부부장급이 경호원들을 대동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위상도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제1부부장을 수행한 리 실장은 대남 분야 핵심 실무자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북측 조문단으로 방남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8월에는 6명으로 구성된 북한 조문단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고, 2박 3일간 대남 특사 역할을 수행했다. 이 여사는 반대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방북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만일 북한이 이번에도 조문단을 파견한다면 소위 ‘조의 정치’를 통해 남북 교착 상태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파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남북 교착 상황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우영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하반기에 승부를 걸고 있는 북한 내부에서 아직 남측에 전할 메시지 정리가 안 돼 있는 상황인 것 같다”며 “논의 상대인 문재인 대통령도 북유럽 순방 중이라는 점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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