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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이럴 수가… ‘가요무대’에도 밀리는 가요순위 프로

    아! 이럴 수가… ‘가요무대’에도 밀리는 가요순위 프로

    방송 3사의 TV가요 프로그램들이 순위제 부활 등 눈물겨운 노력에도 여전히 바닥권 시청률을 헤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스타들을 동원하는 방송 3사의 가요프로그램 시청률을 다 합해도 KBS ‘가요무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팬덤 경쟁만 부추겨 아이돌끼리 격돌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송사들은 시청률을 높이고 가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취지에서 지난 3~4월 앞서거니 뒤서거니 TV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제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해 방송사들은 ‘죽을 맛’이다. 순위제 시행 전 3%대이던 시청률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은 아이돌 가수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도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다. ‘SBS 인기가요’와 MBC ‘쇼! 음악중심’이 순위제를 부활시킨 것은 각각 지난 3월과 4월. 2008년부터 K차트라는 순위제를 운영해 온 KBS ‘뮤직뱅크’도 경쟁 프로그램의 새 단장과 함께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시청률 조사업체 AGB닐슨코리아의 집계에 따르면 5월 마지막주 금·토·일요일에 방송된 KBS ´뮤직뱅크´의 시청률은 2.5%, MBC ‘쇼 음악중심’ 3.4%, SBS ‘인기가요’ 3.1%에 그쳤다. 세 프로그램을 다 합쳐도 시청률 10%를 넘기지 못하는 수준. 이는 중장년층 시청자를 대상으로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는 KBS ‘가요무대’의 시청률(지난 3일 9.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한 방송관계자는 “매 주 초마다 매니저들이 가요프로그램에 소속 가수를 출연시키기 위해 방송사에 일렬로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을 감안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라고 꼬집었다. 아이돌 그룹(가수)들만 득을 봤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순위제 부활 이후 1위를 차지한 가수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절반 이상이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하거나 대형 기획사를 등에 업은 아이돌 그룹(가수)이었다. 최근 실제 가요시장에서는 아이돌이 급락세를 타는 것과 정반대의 아이러니다. ‘비아이돌’로 정상에 등극한 얼굴은 조용필과 싸이 정도다. ‘인기가요’의 경우 3월 셋째주부터 6월 첫째주까지의 총 11회 중 남성 아이돌 그룹이 3회(샤이니 1회, 인피니트 2회), 여성 아이돌 그룹이 2회(포미닛), 여성 솔로가수가 3회(이하이 2회, 이효리 1회), 남성 솔로가수가 3회(싸이) 각각 1위에 올랐다. 대형 기획사 소속 또는 아이돌 가수가 점령하다시피 하는 실정. ‘쇼! 음악중심’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4월 셋째주부터 6월 첫째주까지 총 7회 중 남성 아이돌 그룹이 4회(인피니트 1회, B1A4 1회, 신화 2회)나 정상을 차지했다. 이처럼 순위제의 판세가 아이돌 그룹 위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청자 투표 때문이다. ‘인기가요’의 사전투표와 실시간 투표, ‘쇼! 음악중심’과 ‘엠카운트다운’의 문자투표 점수는 팬덤을 거느린 남성 아이돌 그룹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B1A4의 ‘이게 무슨 일이야’가 문자투표에서 2000점을 얻고 ‘쇼 음악중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음원, 음반, 투표, SNS 등 순위제의 기준에 따라 대형기획사와 군소기획사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대형기획사가 음원과 음반을 사재기한다는 의혹이 여전한 데다 동영상 조회수는 유튜브와 제휴한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SNS 점수 역시 자체 SNS팀을 운영하거나 바이럴 마케팅 회사와 결합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순위제를 운영하는 방송사들이 공정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방송사별로 기준이 달라 1위도 제각각이지만 객관성이 떨어지는 기준은 여전히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뮤직뱅크’가 반영하는 방송횟수는 자사 프로그램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인기가요’는 자사가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야 투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의 참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대로라면 가요프로그램의 순위제는 앞으로도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한 가요계 인사는 “팬클럽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대형 기획사, 스타 섭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방송사들 사이에서 힘없는 군소 기획사와 가수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순위제가 꼭 필요하다면 아이돌 대 비아이돌 가수의 순위를 따로 매기는 등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도 “순위제는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가요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장치이지만 음원, 음반, 방송횟수 등의 산정 방식과 반영 비율 등을 과학적으로 재조정해야 공신력 있는 차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2·끝)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하)

    [명사가 걸어온 길] (12·끝) 자수성가 정열과 집념의 여성 CEO 이길여(하)

    길병원의 모태가 된 자성의원(慈聖醫院)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태어날 생명들의 성스러움’을 떠올리면서 지은 이름이다. 이길여 회장의 집무실에는 ‘가회합례 수세인천’(嘉會合禮 壽世仁泉)이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참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른 삶 이루게 하고 마르지 않는 생명으로 온누리 건강하게 하리로다’는 뜻이다. 55년 전 출발 당시나 지금이나 의사로서 걷는 걸음걸음에 이러한 생명존중과 박애봉사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의과대학에 들어간 뒤 산부인과를 택한 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의식해서였다. 당시 임신부의 경우 의사가 남자라는 이유로 진찰을 거부하거나 아예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죽는 일이 적지 않았으며 산후조리를 소홀히 해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자들도 많았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 회장은 여성들에게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그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에 산부인과를 선택했다. “요즘에야 병원을 개원하면 한동안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홍보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하지만 그 시절 우리 병원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원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들이 물밀듯 찾아오는 바람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봄 여름 가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특히 함께 개업했던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대구로 내려가는 바람에 혼자서 진료를 하느라 끼니조차 거르는 날이 많았지요.” 이 무렵 시골에 있던 어머니가 인천으로 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딸에게 맞선을 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한번도 맞선을 보지 않았다. 눈만 뜨면 환자들이 찾았고 미국 유학도 가야 하는 등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환자와 결혼했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1964년 미국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미국 병원 10여곳으로부터 수련의 제의를 받았다. 그중에 뉴욕에 있는 메리 이머큘리트병원을 선택했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병원 일은 후배한테 부탁하고 그해 가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당시만 하더라도 병에 걸린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다 못해 찾는 곳이 병원이었지만 미국은 이미 예방의학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암검사, 대사 이상검사 등 병이 생기기 전에 진료를 받는 행태가 보편화돼 있었다. 아울러 체계적인 의료시스템과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친절과 열정 등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전 5시부터 한밤중까지 인턴과정을 겪었다. 환자에 대한 정보와 체크리스트를 달달 외우느라 밤잠을 못 이룬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잠을 이기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각오로 잠과 싸우며 공부를 했다. 이듬해 인근의 퀸즈종합병원으로 옮겨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5년에 걸친 미국 생활은 고달픔도 많았지만 세상을 크고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소득이었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실행하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도 이때였다. 소아과 인턴 시절에는 ‘주사 잘 놓는 의사’로 통했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단번에 혈관을 찾아내 주사를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해주는 포경수술을 5분(다른 의사들은 20분 정도)만에 끝내 놀라게 했다. 그는 미국 유학 때 직접 환자가 돼 선진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적도 있다. 어느날 난소에 혹이 생긴 걸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던 것. 이때 의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체험하게 된다. 이후 수술을 앞두고 불안해 하는 임신부의 엉덩이를 다독이며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라는 말로 환자를 위로하는 습관이 생겼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조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는데 기필코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1968년 10월 케네디공항을 출발해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 신축이었다. 자성의원 자리에 지상 9층 규모로 36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새로 짓고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미국에서 배운 선진 의료기술을 당당하게 펼쳐 보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던 것이다. 병원이 다시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들이 줄을 지어 찾아 왔다. 미국 유학을 갔다 온 여자 의사가 새로 병원을 지어 진료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구경 삼아 오는 손님들도 꽤 많았다. 개인 병원으로 인천에서 가장 컸던 이길여 산부인과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더욱 그랬다. 당시 엘리베이터는 서울 시내 일류 호텔이 아니면 보기 힘들었다. 그가 병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은 계단을 오르내리가 힘든 임신부들을 위해서였다. 그다음에는 유학시절에 접한 초음파 의료기기를 도입해 태아의 건강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임신부에게 태아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려주자 남편이나 시어머니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을 다시 개원하면서 ‘자궁암 무료 조기검진’을 실시했다. 환자는 더욱 늘어났다. 그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원칙을 정했다. 병원은 항상 환자가 중심이 돼야 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병원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을 망각한 것이지요. 가장 좋은 위치에 병실이 있어야 하고 환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가장 넓고 깨끗해야 하고 모든 시설과 장비와 서류들은 환자들이 쉽게 알아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돼야 한다는 것은 지난 55년 동안 지켜온 원칙이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이길여 산부인과’가 인기를 끈 데는 여러가지 까닭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흥미롭게도 ‘미역국’이었다. 병원 식당에서는 언제나 한 솥 가득 미역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36개 병상에서 매일 산모들이 먹어 대는 미역국의 양은 엄청났다. 밤참까지 하루 네 끼씩 미역국을 대느라 식당은 쉴 새 없이 바빴다. 겨울철에는 굴을 넣기도 하고 때로는 소고기를 섞었다. 퇴원한 산모의 남편들까지 찾아와 미역국을 얻어갈 정도로 인천에서 ‘이길여 산부인과 미역국’의 유명세는 자자했다. 이래저래 병원은 더욱 북적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의 일정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온종일 진료에만 매달리는 바쁜 시간의 연속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진료실 구석에 자는 날이 허다했다. “의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환자들을 진료할 때입니다. 의사에게는 세상 그 어느 것도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란 없지요.” 바쁜 와중에도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정기적으로 돌며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를 떠나기 전 섬 주민들에게 미리 날짜를 알려 영흥도나 이작도 등 큰 섬으로 모이도록 해 짧은 일정에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진료했다. 아울러 섬 아주머니들에게 여성의 몸은 어떻게 생겼으며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대비하는 요령, 여성에게 생기는 질병이나 예방법 등을 가르쳤다. 그는 진료를 할 때마다 청진기를 자신의 품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사용했다. 차가운 청진기는 가뜩이나 긴장된 환자들을 더 움츠러들게 한다는 생각에서 체온으로 청진기를 데웠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청진기’는 이후 해마다 가천의대 졸업생들에게도 직접 걸어주고 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75년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라 2년간 공부했다. ‘독성에 대한 토끼의 신장반응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일본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면서 귀국 후 종합병원을 세울 생각을 하게 된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주면서 인생의 목적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것. 또한 자신과 같은 의사를 많이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종합대학을 인수한 뒤 첨단 시설을 갖춘 여러 기초학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1978년 전 재산을 출연해 인천 중구 인현동에서 150개 병상 규모의 새 건물을 지어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개원식에 참석한 박승함 보건사회부 차관은 “인천길병원은 여의사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료법인화를 시도한 선도적인 병원”이라고 할 만큼 의료계에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개원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 교육기관으로, 또 조산 수습생 교육기관으로 잇따라 지정됐다. 의료법인 설립과 이를 통한 의료교육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양평길병원, 철원길병원이 생기면서 환자를 위한 의료시설을 더욱 확장해 나갔다. 2002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길병원의 원훈인 ‘박애, 봉사, 애국’의 정신을 꾸준히 펼쳐 나가고 있다. 여성전문센터, 심장센터, 치과센터, 암센터, 척추센터, 장기이식센터, 건강증진센터, 진료협력센터의 설립도 이 같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후 가천의대를 세우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 등을 인수하면서 가천길병원과 함께 오늘날 가천길재단의 면모를 갖추고 21세기 글로벌시대를 향한 새로운 도약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 회장은 평소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박애, 봉사, 애국’이란 말에 손사래를 치며 촌스럽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천길재단의 정신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의 목표이며, 현재진행형인 꿈입니다. 아직 마침표를 찍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 회장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은 아이만 수십만명, 그의 병원에서 새 삶을 찾은 사람이 100만명은 족히 넘는다. 그러는 동안 박애와 봉사, 애국의 깃발을 촌스럽게 내걸고도 한 치의 실패도 없이 성공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경영의 성공과 사회 봉사라는 큰 보람의 탑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애창곡은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이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오늘도 떠나지 않을까 싶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전우가 남긴 한마디’ 가수 허성희”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전우가 남긴 한마디’ 가수 허성희”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6월 호국 보훈의 달이면 떠오르는 가수가 있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의 허성희다. 그녀는 최근 국민들이 6월 한달만이라고 조국을 위해 희생분들의 고마움을 노래로서 되새기는 것 같아 기쁘다고 밝혔다.또 이 노래가 히트 한 계기는 “당시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우연히 들어보시고 군 부대에 노래 확산을 권장했었기 때문”이란 일화를 소개했다.  이번달 말 그녀는 오랜 공백을 깨고 신곡 ‘독도 찬가(작사 손기복·작곡 임정호)’를 발표 한다. ‘독도찬가’는 경쾌한 디스코풍 노래다.   “파도를 이겨내고 동해를 지켜온 자랑스런 한반도코리아 섬마을~” 시인이 지은 시적인 가사가 친숙하고 누구나 따라 부를수 있는 건전 가요이다.레코딩 판을 들어 보니 젊은 시절 같은 파워풀한 음색이 ‘전우가 남긴 한마디’처럼 힘찬 기운을 불어 넣은 듯 하다. 여가수가 불러서인지 기존의 여타 남성 가수들이 부른 독도 노래와는 색다른 맛을 준다.그녀는 “ ‘독도 찬가’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 응원가 처럼 불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79년말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정착했었다. 미국서 CEO에서 세일즈 우먼까지 다양한 변신을 거듭했다.비즈니스 우먼으로 성공을 맛보기도 했지만 본업인 노래를 놓지 않았다. 특히 한인 교포들을 위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노래로서 그들에게 향수를 달래 주었다고 한다.  무서울 것 없었던 미국에서의 다양한 생활 경험이 강한 가수로 재기하는데 용기를 주었다.신곡 ‘독도 찬가’를 계기로 ‘40소절의 왈츠 ‘뜨거운 사랑’등 그녀의 명곡들을 리메이크 음반에 담았다.‘전우가 남긴 한 마디’도 영어로 부를 계획을 갖고 있단다.   새 앨범 ‘독도찬가’로 다시 팬들앞에 서 신인가수로 돌아온 기분이라는 가수 허성희. 조용필, 문주란,김흥국 같은 노장 가수의 복고 열풍을 타고 올드팬은 물론 신세대들에게도 감동을 줄지 그녀의 활동에 기대가 모아진다.   장상옥 기자 007jang@seoul.co.kr
  • [열린세상] 네 마리의 두루미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날/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

    [열린세상] 네 마리의 두루미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날/김광선 한국기술교육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도시인 로렌스는 현재 전체 인구 8만 7000명으로 5만명 이상이 대학생으로 구성된 미국의 전통적인 대학 타운이다. 이곳에 있는 캔자스 대학교의 캠퍼스 안쪽 메모리얼 드라이브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작은 호수와 함께 대학의 130년 역사를 상징하는 큰 나무와 잔디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언덕 위 아담한 쉼터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는데 마주 보이는 앞쪽에 2m 높이의 두루미 4마리가 서로 엉켜 하늘을 향하여 막 날 것 같은 형상의 동판 조각품이 있다. 두루미 앞에는 캔자스 대학의 교수, 학생, 직원 중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한 44명의 이름이 새겨진 희생자 기념비가 놓여 있다. 조각품을 만든 캔자스 대학 디자인과 교수 존 해비너는 두루미는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평화를 상징하며 서로 엉켜 있는 4마리는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미국, 중국, 대한민국과 북한을 나타낸다고 했다. 한국전쟁의 희생자 44명의 목숨이 헛되지 않도록 두루미 4마리가 평화를 향하여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을 고대하면서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지구 건너편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조각품이 있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놀라웠다. 한국전쟁 희생자 기념을 위한 이 조각품과 기념비는 2005년 4월 완공되었다. 당시 로버트 헤멘웨이 총장은 전통적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전국대학농구대회 시즌이 되면 경기장에 직접 나와 관중에게 기념비 설립계획을 설명하면서 경기 관람권 판매대금의 일부를 적립하겠다고 이해를 구하였고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 일부 재미교포 독지가의 도움을 포함하여 학교 구성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총장의 집념으로 7년에 걸쳐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30만 달러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나고 52년 세월이 지났지만 대학 캠퍼스에 자유민주주의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44명의 교직원과 학생을 기리는 한국전쟁 희생자 기념비와 조각품이 미국 중부지방 대학 캠퍼스 중앙에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의 조국도 아닌 다른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숭고한 영혼에 대한 감사함을 반세기가 지났지만 잊지 않는 미국인의 자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오늘,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58회 현충일을 맞이했다. 국권회복을 위하여 헌신·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희생한 전몰 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명복을 빌고자 지정된 날이다.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1950년 전쟁의 시작으로 한반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국민이 갈래갈래 찢겼다.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간 우리 세대는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교훈 삼아 이를 악물고 대한민국 건설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국민 1인당 소득 2만 3000달러, 세계 무역 대국 13위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게 되면서,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정치적으로 좌와 우가 충돌하면서 이 땅에 피와 땀을 흘린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용사들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 같아 두렵다. 미국의 작은 시골 대학타운에서조차 먼 타향에서 전사한 자국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는 부끄러움이 없는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고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도 플레이오프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조용필과 싸이의 콘서트장에서, 대학의 축제가 열리는 운동장에서 유명한 연예인보다는 백령도 피격 용사와 희생자 가족이 나와 자연스럽게 존경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모금활동도 전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일상화되어야 하고 10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국가가 국민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국민 또한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캔자스 대학의 해비너 교수가 염원한 대로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두루미 4마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몸을 풀고 하늘 높이 날아야 한다. 대한민국 두루미가 더욱 강한 날갯짓으로 힘차게 하늘 높이 날아 다른 두루미도 끌어올려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오도록 해야 한다.
  • 보이스코리아1 우승자 손승연, 신곡 ‘미친 게 아니라구요’ 공개해 인기몰이

    보이스코리아1 우승자 손승연, 신곡 ‘미친 게 아니라구요’ 공개해 인기몰이

    가수 손승연이 ‘보이스코리아2’ 결승전에서 신곡 ‘미친 게 아니라구요’를 공개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Mnet ‘보이스코리아2’ 결승전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 ‘보이스코리아1’ 우승자 손승연이 신곡 ‘미친 게 아니라구요’와 조용필의 ‘바운스’ 무대를 선보였다. 손승연은 ‘보이스코리아1’ 출연 때보다 훨씬 세련미 넘치는 매력을 과시하며 이목을 끌었다. 특유의 파워풀한 목소리와 애절한 감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당초 신곡 ‘미친 게 아니라구요’를 이달 중순에 발표할 예정이었던 손승연은 ‘보이스코리아2’ 결승 무대를 위해 신곡 공개 날짜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손승연은 이날 ‘미친 게 아니라구요’ 무대에 이어 ‘보이스코리아2’ 출연자 신유미, 박의성, 김현수, 송수빈 등과 함께 조용필의 ‘바운스’ 무대를 선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주란 “조용필 성공에 용기… 내 목소리로 최선 다해 노래”

    문주란 “조용필 성공에 용기… 내 목소리로 최선 다해 노래”

    “조용필의 대중적 성공은 제게도 의미가 컸습니다. 이번 공연을 개최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나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가수 문주란(64·본명 문필연)이 다음 달 15일 예정된 데뷔 45주년 기념콘서트 ‘문주란 끝이 없는 길’을 앞두고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조용필의 성공 덕분에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형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용기를 내게 됐다”면서 “(나는) 악기를 다루거나 그룹사운드를 갖고 있진 않지만, 내가 가진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새달 15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무대는 그가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단독 대형 콘서트. 그는 “무대 타이틀은 지금까지 가수로서 걸어온 길과 앞으로 끝없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문주란은 16세이던 1966년 ‘동숙의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공항의 이별’, ‘백치 아다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 다양한 히트곡을 남겼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글로벌 시대] 노래로 가깝게/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장

    [글로벌 시대] 노래로 가깝게/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장

    좋아하는 한국 노래가 늘었다.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이다. 기타소리가 새겨지는 경쾌한 리듬. 60세를 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힘 있는 목소리. 게다가 내용도 순애. 48세인 내 마음도 ‘바운스 바운스’가 된다. 댄스그룹뿐만이 아닌, 한류의 깊이를 다시금 느끼고 있다. 최근 한국 노래에 대한 놀라움이 계속되고 있다. 가끔 ‘좋아하는 한국 노래는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하지만 ‘나의 베스트5’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아침이슬’인데, 이 곡이 과거에는 금지곡이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되었다. 시민운동 때 자주 불렸던 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시민운동이 탄압받았던 한국의 역사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발매금지를 당했을 줄이야. 공부가 부족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 이를 알려준 사람은 소설가인 유시춘씨.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의 1987년 헌법 개정에 대해 취재하면서 6월 민주항쟁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유씨는 “시민에게는 정치적인 자유가 없었다. 언론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없었다. 금지된 책도, 노래도 많았다” 고 했다. 노래가 언론이나 출판물처럼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당시의 권력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월 18일 광주에 다녀왔다. 5.18기념문화관의 민주화 운동자료실에서는 ‘사노라면’이 흘러나왔다. 순간 군인이나 경찰과 대치하던 학생들과 집회에 참가했던 많은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긴 머리에 조금은 야윈 학생들이 조용히 그리고 자랑스러운 듯이, 민족이나 시대를 넘어서 그때의 공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래의 힘을 느끼고 광주에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꿈 같은 일을 생각했다. 예전에 일본인은 조용필씨 등 한국 가수의 훌륭한 가창력에 놀랐고, 지금은 K팝 스타들의 멋진 모습과 잘 짜여진 군무에 매료되어 있다. 한국에도 일본 노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상대국의 노래를 계기로 한 상호이해가 한 발짝 더 진전되어, 같은 노래를 통해서 양국 시민의 공감이 깊어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예전,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때에 일본과 한국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 축구경기가 있었다. 대회는 대성공이었지만 두 나라가 각각 ‘분권 운영’을 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만약 대회를 상징하는 양국 공통의 노래가 있었다면,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월드컵을 성공시켰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양국 간에는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다. 문제 해결을 향한 노력과 병행해 앞으로도 다양한 테마에 대해서 여러 레벨에서의 협력이 계속될 것이다. 거기에 노래가 있다면, 더욱 멋진 협력관계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 ‘닫힌 너를 열어 너란 사람을 알고 싶어.’ 조용필씨가 신곡 ‘헬로’에서 노래하듯 양국의 많은 시민이 서로 알고 싶어하고, 머지않아 노래로 마음이 가까워져 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 ‘가왕’ 조용필 “내 나이 먹어도, 내 음악은 늙지 않는다”

    ‘가왕’ 조용필 “내 나이 먹어도, 내 음악은 늙지 않는다”

    “끝없는 도전이죠.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늘 새로운 음악을 추구해 왔습니다. 나이 먹은 것은 인정해도 내 음악은 늙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때까지 바둥거리면서 도전할 겁니다.” 10년 만에 발매한 19집 앨범 ‘헬로’로 세대 통합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가왕’ 조용필(63).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로 ‘국민가수’의 저력을 다시 한번 발휘하고 있는 그에게 45년 가수 생활의 신념을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YPC 프로덕션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신드롬의 중심에서 초연히 비켜 서 있었다. 오는 31일부터 새달 2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전국투어 콘서트 연습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요즘같이 공연을 앞두고 있는 때는 매일 연습을 거르지 않습니다. 저음, 중음, 고음, 가성을 점검하고 소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듬는 거죠. 가수라면 음역대를 확실하게 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는 ‘대박’이라는 세간의 말에 소년처럼 쑥스러워했다. 선공개한 ‘바운스’와 타이틀곡 ‘헬로’는 각종 온라인 음원 차트를 석권했고, 20여년 만에 TV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음반을 준비할 때) 10위권 안에만 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는 그가 스스로 꼽는 인기 비결은 뭘까. “10년 만에 나온 데 대한 호감도 작용했겠지만 10~30대까지는 제 이름은 알아도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 세대에게 저는 신인이나 마찬가지고 리듬이나 소리, 장르가 요즘 음악 패턴과 다른 게 오히려 흥행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록과 팝에 기반을 둔 그의 새 앨범은 음악이 경쾌하고 젊은 감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한국의 ‘한’(恨)을 대변하고 철학적 메시지를 전했던 조용필을 기억하는 기성 세대에게는 다소 가볍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하려고 마음먹었던 음악입니다. 들리기에는 가벼워도 무게는 오히려 옛날보다 더 무거워졌어요. 화음이나 악기가 1980년대에 비해 3배 이상 들어갔죠. 예전에는 그것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속으로 숨겼어요. 그래서 겉으로는 간결하게 들려도 믹싱하는 데 시간은 아주 많이 걸렸죠. 아마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들으면 다 들릴 겁니다.” 그는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들릴까봐 겁나’(바운스), ‘네게 빠져들어 정신 잃기 직전이야 좋아한다 말해’(헬로) 등 다분히 젊은 취향의 가사를 부를 때도 “전혀 민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 자신과 연관시켜 노래를 부른 적이 거의 없어요. 단지 가사가 곡의 분위기와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노래는 멜로디, 리듬, 가사, 편곡의 비중이 다 맞아야 하거든요. 1980년대는 ‘한’의 정서가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쉽고 경쾌한 곡을 만들었는데 어렵고 멋있는 가사만 가져오더라고요. 청바지에 캐주얼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데, 검은 턱시도가 계속 오는 것처럼요. 물론 창법도 달라졌죠. 예전에는 흐느끼듯 부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지르기보다는 조금 모자란 듯 불러서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도록 했어요. 멋부리지 않고 정박자를 지키면서 교과서적으로 불렀죠.” 아무리 인기가 치솟아도 대중과 만나는 그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수십억원대의 CF 러브콜이 쏟아지고 TV 프로그램 섭외가 쇄도하지만 팬들을 공연장에서만 만나겠다는 철학이다. “TV에 나가지 않은 덕분에 얼굴이 덜 알려져 얻은 자유가 너무 좋아요. 오직 제 음악을 통해서만 팬들을 만나고 싶어요.” 올해로 데뷔 45주년. 그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평양·뉴욕 라디오 시티홀에서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평양 공연(2007년) 때 배로 운반한 통에 공연 기자재도 많이 파손됐고 폭발물 검사를 받느라 리허설 시간도 제대로 못 갖고 공연을 했다”고 회상하면서 “육로로 편히 들어가 평양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삶의 고비에서 그를 지탱해 준 유일한 버팀목은 음악이었다. 2003년 부인 안진현씨와의 사별로 무릎이 꺾일 듯 좌절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거의 3년간은 기력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도 음악은 놓지 않고 있었죠. 음악에 더 열심히 매달렸고, 그러다 보니 외롭다고 느낄 틈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는 이번 앨범을 해외 유명 작곡가들과 함께 만들었다. 지금 작업 중인 20집도 국적과 신인, 기성 가리지 않고 참여시킬 계획이다. 그의 가수 이력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은 언제일까. “건강한 모습으로 실망을 주지 않을 때까지”라고 했다. “음악은 내 생명이고 음악이 잘못되면 내 생명이 끊기는 겁니다. 나는 가족도 자식도 없고 혼자인데 다른 욕심은 없어요. 오로지 음악에만 모든 것을 걸어요. 내 자신의 기록과 역사를 만들어 갈 뿐입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조용필’ 카트에 담고, 자녀와 콘서트 보고… 문화소비 ‘큰손’으로

    ‘조용필’ 카트에 담고, 자녀와 콘서트 보고… 문화소비 ‘큰손’으로

    ‘헬로(Hello)세대’가 문화시장을 흔들고 있다. 최근 가요계를 강타한 조용필의 19집 ‘헬로’ 신드롬에 기름을 부은 주역은 50~60대. 이들이 지금 가요계를 넘어 영화,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이들의 문화소비 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무기력하게 ‘실버세대’에 편입하는 대신 최신 문화 트렌드를 당당히 능동적으로 향유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20만장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조용필의 새 앨범은 지금 시내 대형마트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오프라인 음반 매장이 사라진 데다 인터넷 구매에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5060들이 소비처로 마트를 선택한 셈이다. 앨범 유통 및 배급을 맡은 유니버설 뮤직은 “대형마트의 계산대 옆에 광고판과 앨범 판매대를 설치했는데 판매율이 기대치를 휠씬 뛰어넘어 우리도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음반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현실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새 앨범의 경우 대형마트에서는 점포당 기껏 5장 정도만 비치했으나, 초기 반응이 좋아 별도의 대형 매대를 설치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구사했는데 전략이 먹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조용필 앨범 특수가 이어지면서 마트 음반 매장의 구매자 가운데 50대 이상의 비중은 37.1%로 껑충 뛰었다. 이처럼 5060이 맹렬히 가세한 ‘헬로세대’가 조용필의 앨범에 반색하는 배경은 뭘까. 문화가에서는 “막연한 향수도 있겠지만 그가 이번 앨범에서 로커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팝과 발라드는 물론 로큰롤과 일렉트로닉 등 장르를 아우르는 혁신적인 음악으로 승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아이돌 가수를 받아들일 준비는 돼 있지 않았던 장년층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는 것이다. “‘헬로’가 뽕짝은 따라 부르기 싫은데 그렇다고 소녀시대를 흉내낼 수도 없었던 세대의 소구점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헬로세대의 부상은 발 빠른 마케팅 덕에 가속을 붙였다. ‘헬로’ 제작사는 프로모션도 아이돌 가수 방식을 택했다. 음원 온라인 선(先) 공개, 뮤직비디오 티저 공개, 쇼케이스 개최 등 아이돌 가수들에게 적용한 마케팅 장치를 그대로 활용했다. 결국 다양한 세대가 한꺼번에 음악적인 소통을 하는 기대 이상의 상승 효과를 거뒀다. 이런 과정에서 새롭게 힘을 얻은 ‘헬로세대’는 앞으로도 세력을 꾸준히 얻어 갈 전망이다. 조용필 소속사인 YPC프로덕션의 조재성 실장은 “요즘 사무실에 조용필의 새 앨범 덕분에 사는 느낌이 새롭다는 5060들의 격려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음반 출시 전 사전 모니터링 단계에서도 헬로세대의 욕구는 뚜렷이 잡혔다. “우리도 록음악이 좋고 공연장에도 가고 싶다”는 5060들의 대답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공연시장 쪽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소녀시대, 샤이니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는 공연 때마다 ‘해피 패밀리존’을 만들어 5060세대와 자녀들이 함께 보는 객석을 만들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아이돌 가수들을 좋아하는 5060을 겨냥해 자녀, 손자들과 함께 와서 즐기는 좌석을 130~800석 만드는데 매회 전량 매진된다”고 말했다. 다음 달 1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5만명 규모의 대형 콘서트를 여는 가수 이문세도 5060세대의 단체 관람을 정조준해 10+1 ‘덤티켓’을 기획했다. 자녀 세대와 함께 온 부모에게는 특별 할인도 해 준다. 젊은 관객 이상의 소비력을 갖췄다는 것도 공연시장이 이들을 주목하는 대목. CJ E&M 음악 마케팅팀 이재향 과장은 “대중미디어가 일방적으로 골라 주는 음악을 받아들이는 어린 세대와 달리 5060세대는 다양한 음악 장르의 경험자들이라는 점도 마케팅 포인트”라면서 “시간과 지갑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올드 팝스타에서부터 최신 공연형 가수 콘서트까지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잠재적 ‘멀티’ 소비자들”이라고 말했다. 방송계에서도 5060은 리모컨의 주도권을 쥔 주요 시청층으로 대접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쪽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소재로 승부를 건다. SBS의 힐링 토크쇼 ‘땡큐’는 최근 사진작가 김중만, 만화가 이현세, 가수 이문세, 축구감독 허정무 등 50대 출연자들을 대거 동원했다. SBS ‘자기야’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 MBC ‘세바퀴’ 등 토크 프로그램들도 40대 후반부터 5060 등 중년 출연진을 간판으로 내세운다. 방송 관계자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은 특정 연령층만 공략하기보다 모든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된다”면서 “중년 출연자들이 부부관계, 고부갈등, 자녀양육 등 일상 이야기를 털어놓아 동년배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시장에서 5060의 영향력은 이미 입증됐다. 주말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한 MBC ‘백년의 유산’도 젊은 남녀 주인공보다 박원숙, 정보석, 전인화, 박영규 등 장년층 배우들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인구학적인 측면에서도 문화시장에서 헬로시장의 저력은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50~60대는 자신들을 노년이라고 자각하지 않는 데다 자녀 세대보다도 인구층이 더 두꺼워 전례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한 것은 이 같은 자의식과 자존감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과거 조용필 벗고 ‘신인’으로 다시 태어나”

    “과거 조용필 벗고 ‘신인’으로 다시 태어나”

    “프로듀서가 이번 앨범이 10만장 정도 나갈 것 같다고 했을 때 기대치를 낮추라고 했어요. 나중에 실망할까 봐서요. 지금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19집 앨범 ‘헬로’의 20만장 돌파를 앞두고 가수 조용필(63)이 1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흥행 돌풍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신곡 ‘바운스’는 최근 음원 차트와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앨범은 18만장(15일 현재)이 팔렸다. ‘가왕’으로 군림하는 그도 새 음반을 내면서 겁이 났다고 고백했다. “(지난달 23일) 쇼케이스 이후 음원 차트에 전곡이 올라가고 1위를 했을 때 이러다가 혹시 잘못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심스러워서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이고 행동 반경도 집과 사무실로 더 좁아졌죠.” 이번 앨범의 의미를 묻자 “과거 조용필의 무게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신인 조용필로서 어떤 음악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내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싹 지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준비 중인 20집 앨범은 더욱 과감하게 갈 수도 있다”면서 음악적 혁신을 계속할 것을 밝혔다. 그는 데뷔 45년 만에 처음으로 8월 슈퍼소닉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노개런티로 출연하는 것에 대해 “인디밴드 20~25개 팀이 ‘헬로 스테이지’에 서는 조건”이라면서 인디밴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일본 시그마 측이 19집 앨범의 일본어 발매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6년 이후 일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앨범이 발매된다면 콘서트만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는 3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전국 투어를 시작하는 그는 12월까지 20회가량 국내에서 공연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그때 그 시절 ‘별들의 귀환’… 5월 가요대전 접수하다

    그때 그 시절 ‘별들의 귀환’… 5월 가요대전 접수하다

    ‘역시 구관이 명관!’ ‘5월 대전’이라고 불리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가요계에 ‘구관’들의 맹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10년 만에 컴백한 ‘가왕’ 조용필을 시작으로 ‘국제가수’ 싸이, 3년 만에 돌아온 이효리, 발라드의 지존 바이브 등 10년차 이상 관록을 지닌 가수들이 가요계를 주도하고 있다. 5~6년간 브레이크 없이 계속되던 아이돌 음악의 흥행이 주춤하고 싱어송라이터의 약진이 계속되면서 국내 가요시장이 쏠림 현상을 벗어나 다양성을 되찾고 있다. 이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다. 지난달 23일 발매한 그의 19집 앨범 ‘헬로’(Hello)는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10일 현재 사전 주문을 포함해 15만여장이 판매됐다. 음반 유통·배급사인 유니버설뮤직은 이런 열풍이면 30만장도 거뜬하게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음반 시장이 2000년대 초반의 10분의1가량으로 줄어든 요즘 10만장은 과거 100만장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최근 10만장을 넘은 가수는 팬덤(열성팬)을 갖춘 아이돌 가수가 전부다. 조용필은 젊은 감각의 음악으로 음원에서 20~30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의 전성기를 함께한 40~50대 중장년층이 대거 음반 구입에 나서면서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석권했다. 그는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23년 만에 TV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가요계에 ‘세대통합’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31일~새달 1일 열리는 콘서트로 조용필 신드롬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13년차 가수 싸이는 신곡 ‘젠틀맨’으로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대선배 조용필과 팽팽한 경쟁을 펼쳤다. 5월에 들어서 왕년의 언니 오빠들은 더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6일 3년여 만에 정규 5집 앨범의 수록곡 ‘미스코리아’를 선공개한 이효리는 발매 직후부터 3일간 멜론 등 음원차트 1위를 독식했다. ‘미스코리아’는 외모 지상주의에 물든 사회 풍조를 비판한 자작곡으로 걸그룹으로 시작해 섹시 아이콘을 지나 아티스트로 안착한 가수로서의 그의 생명력을 입증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술이야’ 등으로 R&B계를 대표했던 데뷔 12년차 듀오 바이브도 신곡 ‘꼭 한번 만나고 싶다’를 통해 변치 않는 애절한 음색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98년에 데뷔한 실력파 R&B 그룹 포맨의 신곡 ‘청혼하는 거예요’는 공개 당일(8일) 음원차트에서 이효리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아이돌계에서도 신인보다 5~6년차의 중견 아이돌이 대세다. 4인조 여성 걸그룹 ‘포미닛’은 경쾌한 곡 ‘이름이 뭐예요?’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히트제조기 용감한 형제가 작곡한 신곡으로 선배 걸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지난 앨범에서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뒀던 이들은 올 초 전지윤, 허가윤이 듀오 ‘투윤’을 결성해 컨트리 음악으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음악적인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남자 아이돌계를 대표하는 2PM 역시 기존의 보이 그룹들과는 달리 한층 성숙한 ‘원조 짐승돌’로 차별화 했다. 이들은 6일 공개한 타이틀곡인 감성 댄스곡 ‘이 노래를 듣고 돌아와’에 이어 11일 남성미가 돋보이는 두 번째 타이틀곡 ‘하,니,뿐’을 공개한다. 여기에 오는 16일 16년차의 원조 아이돌 그룹 ‘신화’가 정규 11집을 내고 이 대열에 합류한다. 신인은 아이돌보다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성급하지만 아이돌 음악이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나온다. ‘슈퍼스타K’ 출신 로이킴은 포크 장르로 전 세대를 공략한 자작곡 ‘봄봄봄’으로 대선배 조용필과 싸이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유승우 역시 자신이 작곡한 ‘헬로’로 8일 데뷔했다. 반면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은 아이돌의 음원 성적은 저조했다. 걸그룹 ‘헬로 비너스’, 티아라의 새 유닛 그룹 ‘티아라엔포’ 등이 대표적이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이처럼 관록을 갖춘 ‘구관’들의 강세에 대해 “대중이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음악에 지친 데다 좀 더 질 높은 음악과 서비스를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TV를 통한 음악 소비보다 스마트폰을 통한 음악 소비가 최근 늘어나면서 ‘보는 음악’보다 ‘듣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중음악 관계자들은 아이돌에 대한 피로감이 많이 제기된 상황에서 관록 있는 가수들의 컴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또 음악적 다양성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아이돌 가수는 숱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변별력은 없는 상황에서 음악으로 검증받은 가수들의 재등장이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면서 “특히 레전드급이라고 평가받는 가수들의 활동이 뜸한 가운데 조용필이 음악가로서 모범적인 행보를 보이자 음악 소비에서 소외된 장년층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 수요자들의 달라진 기호와 능동적인 소비 패턴으로 인해 생긴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음악 수요자들이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음악을 벗어나 다양한 음악 콘텐츠를 원했다는 방증이고 미디어도 아이돌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면서 “좋아하는 음악과 좋은 노래를 능동적으로 찾아 듣는 대중이 나타나면서 세대의 벽을 허무는 음악의 ‘뷔페’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문화마당] 윤기 흐르는 대중음악계/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윤기 흐르는 대중음악계/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올해 상반기 대중음악계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중장년층에게는 새 앨범을 발표한 조용필을 필두로 이문세, 들국화가 방송과 공연을 통해 주옥 같은 곡들을 재조명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은 10, 20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작가수 악동뮤지션과 로이킴, 밴드 버스커버스커가 음악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또 걸스데이, 포미닛, 시크릿 등 걸그룹과 샤이니, 인피니트 등 아이돌 댄스 음악은 여전히 음악 시장의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이효리가 자작곡을 들고 관능적 자태로 귀환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에 이어 ‘젠틀맨’으로 다시 한 번 빌보드 정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장벽을 걷어낸 노래들이 음악차트 순위 경쟁에서 치열하게 다퉜다. 그동안 특정 음악에 대한 쏠림 현상의 우려를 씻어낸 듯하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음악 수용자들의 힘이 가장 컸다. 음악을 듣는 안목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홍보가 필요없는 음악이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치게 한다.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사랑받게 되어 있다. 어떤 자극적인 뉴스로도 음악 자체가 변형되거나 왜곡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세월, 음악의 흐름이 말해주고 있다. 좋은 노래는 세월을 견디며 사랑받아 왔다. 1980년대를 대표했던 조용필, 이문세가 2013년인 지금까지 여전히 대중음악계에 획을 긋는 지형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음악을 하고 있는 후배 뮤지션이나 가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들의 행보는 살아 있는 교과서나 다름없다. 63세의 뮤지션 조용필이 새 앨범 발표와 동시에 음악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2013년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충성도 높은 팬덤을 가진 아이돌 그룹이나 가능하다는 10만장의 앨범 판매는 정말 경이롭다. 자작가수인 그가 발표한 ‘바운스’ ‘헬로’는 요즘의 감성을 오롯이 담아내 앨범 제작에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직감하게 한다. 창작의 고통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역작의 온기가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이문세는 지난해 연말까지 650여회나 되는 공연을 벌였고, 82만명의 관객이 그의 공연장을 찾았다. 이문세는 그간의 공연 노하우를 총집결시켜 6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5만 관객과 조우한다. 공연계는 올해 단일 공연으로 가장 많은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 이문세의 저력에 놀랐다. 최근 이들은 음악 감상회를 개최하고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수십만명이 실시간으로 이들의 무대를 지켜보았고 가슴을 설레게 했다.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옛사랑’(1991년, 이문세 7집 앨범 수록곡)을 듣고 있으니 눈물이 핑 돈다. 그러고 보니 ‘옛사랑’은 벌써 23살이 되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결핍을 채우는 노래로 우리 곁을 지켜왔다. 요즘, 대중음악계는 다양한 노래가 경쟁하듯 발표되고 있다. 듣는 이들은 더없이 풍요롭다. 4분 내외의 시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 토막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일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지금의 노래가 세월이 흘러 또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 명치끝을 짓누르는 노래로 남는 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 [김문이 만난사람] ‘호랑나비’ 리메이크로 돌아온 가수 김흥국

    [김문이 만난사람] ‘호랑나비’ 리메이크로 돌아온 가수 김흥국

    화려한 곡선보다는 단순한 직선이 낫다는 말이 있다. 견인질직(堅忍質直)이라고 한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았는데 도대체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 하루 이틀 기다려도 도대체 사람 없네 이것 참 속상해 속상해 못 살겠네~’ 노래 ‘호랑나비’에 나오는 대목이다. 24년 전에 발표됐다. 그래도 ‘즐겨찾는 이’ 여전하다. 이 노래는 40대 중년층 이상인 경우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쓰러질 듯 넘어질 듯하는 특유의 춤은 예나 지금이나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가수 김흥국이다. 물론 ‘59년 왕십리’ 등 여러 곡이 있지만 ‘호랑나비’만큼 전 국민에게 애창됐던 곡이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호랑나비’ 하나로 가수 김흥국의 직선 인생(1959년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이번에는 ‘호랑나비2’로 제2의 인생 시작을 선언하고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호랑나비로 이어지는 ‘직선상의 아리아’를 들고 말이다. 그의 무대 복귀가 흥미로운 것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분개(?)해서 ‘강북스타일’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서울 인구의 반이 강북 사람인데 왜 강남 사람만 ‘대표적 스타일’이냐고 항변하면서 내놓은 곡이어서 눈길을 끈다. 또한 원래 호랑나비 춤이 싸이의 말춤보다 훨씬 앞선 선구적 춤인데 ‘유튜브’를 활용하지 못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했을 뿐이며 따라서 이번에는 유튜브에 뮤직비디오 동영상을 먼저 내보냈다. 반응은 ‘베리 굿’이다. 강북스타일로 새롭게 들이대는 김흥국씨를 지난 3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화창한 5월답게 밝은 옷차림에 까만 안경을 썼다. 늘 그렇게 안경을 쓰고 다니냐고 하자 “싸이도 쓰고 있지 않느냐, 김흥국은 원래부터 썼다”며 웃는다. 라일락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서 잠시 사진 촬영을 하자고 했더니 “호랑나비는 꽃을 좋아하지요. 허허”라고 응수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어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 엠바고룸에서 마주 앉았다. 녹음이 짙어가는 바깥 경치가 좋다는 말로 시작했다. 이어 ‘호랑나비2’를 만들게 된 계기를 물었다. “기러기 아빠된 지 10년이 됐어요. 방학 때면 미국에 있는 딸한테 가거든요. 13살된 딸인데 나중에 커서 세계적인 유튜브 스타가 되겠다고 자꾸 하더라구요. 예쁘게 가꾸고 사진도 찍고 자신만의 멋과 장기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해요. 춤도 잘 춰요. 아빠 닮아서 그런지 끼가 많구요. 그러면서 아빠도 유튜브를 활용하라고 하더군요. 호랑나비가 얼마나 멋있느냐고 해요. 그걸 다시 리메이크해서 유튜브에 올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3년 전이었습니다. 그래야겠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던 차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 쫙 번진 것이지요. ‘아이고 이것 참 속상해 속상해 못살겠네’라고 할 수밖에요(웃음).”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최근에야 ‘호랑나비’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새로 입혀 리메이크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이래뵈도 10대 가수 출신인데 그동안 노래를 부를 시간이 많지 않았으며 뮤직비디오 한 번 못 찍은 가수라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딸이 뮤직비디오 제작에 살짝 동참은 했지만 대부분 자신의 고향인 강북구 번동 주변에서 찍었다. 어릴 때 놀던 장소도 등장시켰다. 번동을 비롯, 왕십리, 인사동 등이 주요 무대이다. 호랑나비는 봄에 나오니까 계절의 타이밍도 맞췄다. 그런데 싸이의 ‘젠틀맨’이 나왔다. 주위에서는 “좀더 있다가 내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젠틀맨’과 ‘호랑나비2’는 스타일이 다르다. 24년 전 먼저 했던 호랑나비 춤을 리메이크해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강행했다. 그랬더니 여러 사람한테 “잘했다. 재미있다. 싸이보다 훌륭한 원조다”라는 평을 들었다. “때마침 조용필 형님도 훌륭한 신곡을 냈어요. 요즘 중년들이 대세 아닙니까, 하하. 좋은 작품을 들고 나오면 됩니다. 중년에 맞게 우리 문화, 우리 음식, 우리 가요 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순순한 자연 그대로 비디오 촬영을 했습니다. ‘호랑나비2’로 제2의 가수인생을 신나게 해볼랍니다. 자신있어요, 기대하셔도 됩니다.” ‘호랑나비2’로 ‘강북스타일’을 세계 만방에 떨치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힌다. 또한 “김건모, 이정, 박상민 등 여러 후배들도 ‘어릴 적 호랑나비를 들으면서, 또 그런 춤을 흉내 내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싸이도, K팝 스타도 물론이다. 가왕 조용필도 ‘호랑나비’가 처음 나올 적에 ‘야, 굿 아이디어다. 이 시대에 그런 노래가 필요하다.’며 칭찬해줬다”며 껄껄 웃는다. 아울러 “최근에 나온 용필 형의 ‘헬로’도 얼마나 훌륭한 곡이냐. 바야흐로 중년 이상의 시대가 왔어요, 왔어~”라고 흥을 다시 한 번 돋운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가요 평론가 등에 따르면 조용필씨가 10년 만에 발표한 앨범 ‘헬로’가 K팝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여기에 김흥국과 이용씨 등 조용필 이후 세대들이 잇달아 돌아오면서 K팝 또한 새롭게 태어나려는 준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다시 귀환하는 중장년 가수들의 경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음악의 트렌드를 도입해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시도를 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흥국씨는 호랑나비 리메이크 외에 내친김에 신곡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문득 24년 전 ‘호랑나비’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궁금했다. “보컬로 무명 10년을 보내던 중 ‘배따라기’의 이혜민씨한테 ‘호랑나비’를 받았어요. 고생했던 세월을 한방에 날렸습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가 됐습니다. 전 국민에게 호랑나비를 강타했지요. 그때는 뮤직 비디오 찍을 여건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아시아 쪽에서는 다 알더군요. 이제 ‘호랑나비2’로 세계를 강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 막내가 ‘호랑나비’ 하나로 온 가족을 먹여살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번동 사람들은 한결같이 “번동에서 스타가 나온 것이 기적이다”라며 많은 찬사를 보냈다. 어머니는 무명 시절을 보내는 아들이 안타까워 매일이다시피 절에 가서 불공을 들였다. 그는 서라벌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부 생활을 했고 해병대에서 전역한 후 ‘오대 장성’ 그룹을 결성, 음악활동을 했다. 따라서 그의 음악 인생은 30년을 훌쩍 넘는다. 앨범 13집, 발표한 곡은 100곡이 넘는다. 이러는 동안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느라 노래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후회 섞인 고백을 한다. 그는 월드컵 경기때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을 응원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 ‘응원의 원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2년 월드컵때에는 봉은사에서 월드컵 성공 기원을 위해 2002배를 할 만큼 축구에 열성적이다. 당시 새벽 3시부터 5시간 가까이 스님한테 ‘네가 쓰러지면 월드컵이 잘되겠느냐’고 죽비로 맞아가면서 2002배를 꽉 채웠다. 그의 휴대전화 번호 끝자리는 여전히 ‘2002’다. 뿐만 아니다. 2010년 6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콧수염을 깎겠다고 약속한 후 정말로 16강에 진출하자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여년간 애지중지 길러온 콧수염을 깎았을 정도다. “아버지가 평소 콧수염을 길렀다. 결혼식때에도 안 깎았던 수염을 월드컵때 처음으로 깎았다”고 술회한다. 내년에 브라질 월드컵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라며 웃는다. 월드컵때마다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털어 현지에 가서 직접 응원에 합류한다. 그는 축구 외에도 장학재단을 만들어 13년째 불우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1000원, 1만원, 5만원 등 주변 지인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여진 장학금이어서 더욱 값지다. 자신은 술값을 줄여 통장에 입금시킨다. 한때는 밥차를 만들어 전국에 돌아다니며 ‘밥퍼’ 봉사활동을 했다. 다시 ‘강북스타일’로 화제가 돌아온다. “아마 앞으로는 강북 땅값이 좀 올라가지 않겠어요. 어릴 때 추억, 고고 춤, 관광 춤, 해병대 춤 등으로 막 들이댔거든요.” 그는 1985년에 발라드 풍의 노래 ‘창백한 꽃잎’으로 솔로로 전향했다. 데뷔 시절부터 코털을 가지고 있어 별명은 코털 가수이고 나중에는 월드컵 가수가 됐다. 1989년에 3집 앨범을 발표하고 ‘호랑나비’ 열풍으로 대한민국 가요계를 휩쓸어 단번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주로 방송 진행과 축구 등에 관심을 쏟으면서 노래활동은 뜸하다시피했다. 이제 ‘제2의 가수인생’을 선언한 그가 어떤 모습으로 대중들과 친숙해질지 기대된다. 체력관리를 위해서는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주말에는 지인들과 함께 축구모임에 참여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흥국은 1959년 서울 강북구 번동에서 태어났다. 서라벌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생활을 했다. 해병대 전역후 그룹 ‘오대 장성’을 결성해 본격적인 노래 인생의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1985년 발라드 풍의 노래 ‘창백한 꽃잎’으로 솔로로 전향했다. 데뷔 시절부터 코털을 기르고 있어 별명이 코털 가수였다. 10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하던 중 1989년에 3집 앨범 ‘호랑나비’를 발표하면서 혜성같이 나타나 가요계를 휩쓸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1992년 ‘59년 왕십리’로 정통 트로트 장르까지 선보이며 인기가도를 이어나갔다. 1994년 ‘레게파티’를 발표, 처음으로 레게장르를 한국 대중가요에 접목시켰다. 1996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한동안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했다. 영화와 드라마에도 다수 출연했다. 이 밖에 월드컵때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위해 열띤 응원을 펼쳐 ‘월드컵 가수’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밥차’를 만들어 ‘법퍼’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김흥국 장학재단’을 통해 매년 불우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김흥국의 축구이야기(2002년)’,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2005년’) 등이 있으며 주요 수상으로는 MBC 10대가수상·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1989년), 국민봉사 장려상(1993년),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1996년), MBC 라디오 골든 마우스상(2010년) 등이 있다.
  • 조용필, 데뷔 45년만에 ‘록페스티벌’ 무대에

    조용필, 데뷔 45년만에 ‘록페스티벌’ 무대에

     ‘가왕(歌王)’ 조용필(63)이 오는 8월 14~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 ‘슈퍼소닉 2013’ 무대에 오른다. 조용필이 록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것은 데뷔 45년 만에 처음이다.  조용필은 이틀 공연 중 15일에는 1시간 30분 동안 19집 앨범 수록곡과 기존 히트곡을 부를 예정이다.  조용필은 “19집을 향한 대중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에 대한 감사의 의미”라면서 “도심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인 만큼 다양한 음악 문화가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후배 가수들이 오를 수 있도록 ‘헬로(Hello) 스테이지’를 마련하고, 자신의 출연료를 무대 설치와 운영 비용으로 기부한다.  페스티벌 주쵝 측은 7일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을 비롯해 영국의 팝 듀오 펫 샵 보이스, 북아일랜드 출신 일렉트로닉 밴드 ‘투 도어 시네마 클럽’등이 포함된 ‘슈퍼소닉 2013’의 1차 라인업을 공개했다. 국내 아티스트로는 밴드 십센치와 딕펑스가 포함됐다.  ‘슈퍼소닉 2013’은 도심의 실내 공연장에서 열리는 ‘도심형 록페스티벌’로, 일본의 록페스티벌 ‘서머소닉’과 연계해 열린다. 주최 측은 조만간 2차 라인업을 발표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가왕 조용필,데뷔 45년 만에 첫 록페스티벌 무대에…출연료 기부

    가왕 조용필,데뷔 45년 만에 첫 록페스티벌 무대에…출연료 기부

     가왕(歌王)’ 조용필(63)이 오는 8월 14~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 ‘슈퍼소닉 2013’ 무대에 오른다. 조용필이 록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것은 데뷔 45년 만에 처음이다.조용필은 이틀 공연 중 15일에는 1시간 30분 동안 19집 앨범 수록곡과 기존 히트곡을 부를 예정이다.  조용필은 “19집을 향한 대중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에 대한 감사의 의미”라면서 “도심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인 만큼 다양한 음악 문화가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후배 가수들이 오를 수 있도록 ‘헬로(Hello) 스테이지’를 마련하고, 자신의 출연료를 무대 설치와 운영 비용으로 기부한다.  페스티벌 주쵝 측은 7일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을 비롯해 영국의 팝 듀오 펫 샵 보이스, 북아일랜드 출신 일렉트로닉 밴드 ‘투 도어 시네마 클럽’등이 포함된 ‘슈퍼소닉 2013’의 1차 라인업을 공개했다. 국내 아티스트로는 밴드 십센치와 딕펑스가 포함됐다.  ‘슈퍼소닉 2013’은 도심의 실내 공연장에서 열리는 ‘도심형 록페스티벌’로, 일본의 록페스티벌 ‘서머소닉’과 연계해 열린다. 주최 측은 조만간 2차 라인업을 발표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2008년의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 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였다. 그렇게 600년 역사가 잿더미로 변하는 데는 여섯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5년이 지난 지금, 숭례문은 완벽히 복구됐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과연 5년간 숭례문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왕의 꿈(KBS1 토요일 밤 9시 40분) 황산벌을 돌파한 신라군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백제군을 섬멸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김유신의 기백을 보고 신라군을 경계하기 시작하고, 당나라 군대와 신라군 간에는 누가 먼저 사비성을 공략할지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인간의 조건(KBS2 토요일 밤 11시 15분) 대한민국 대표 개그맨 6인이 체험을 위해 모였다. 여섯 멤버에게 주어진 새로운 체험 과제, 이번에는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다. 바쁜 스케줄에 라면과 인스턴트 음식이 주식인 멤버들은 원산지에서 직접 음식을 구해 먹으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부하고 싶어도 이미 시작된 새로운 체험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5분) 늦은 밤, 불빛 하나 없는 경기도의 한 야산. 30㎏이 조금 넘는 왜소한 13살 소년은 얼굴만 드러낸 채 온몸이 구덩이에 파묻혀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 속에서 30분을 보낸 소년은 다시 끌려가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 했다. 놀랍게도 가해자는 소년이 머물던 보육원의 교사 3명이었다. ■문화 책갈피(KBS1 일요일 밤 11시 30분) 끊임없는 히트곡 행진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중가요의 황제’ 조용필이 19집을 들고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오페라의 황제로 불리는 베르디.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공연이 시작된다. ■어린이날 기획 출발 드림팀 시즌 2(KBS2 일요일 오전 10시 25분)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스페셜 MC 씨스타 보라와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초특급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또 40년 전통을 지닌 국내 최고의 어린이 태권도 시범단인 미동초등학교 태권도 시범단이 함께한다. 재밌고 기발한 장애물 5종 경기가 펼쳐진다. ■주말특별기획 백년의 유산(MBC 일요일 밤 9시 55분) 팽달은 자식들에게 안성 밀밭은 명의만 자신의 이름으로 돼 있는 종중 땅이라고 밝힌다. 채원은 철규에게 세윤과 정식으로 교제 중이라고 말한다. 기춘과 기문 가족은 모두 팽달의 집을 나간다. 한편 설주는 도희와 얘기하던 중 방 회장이 세윤과 채원을 불륜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조용필, 23년만에 지상파 1위

    조용필, 23년만에 지상파 1위

    가수 조용필(63)이 23년 만에 지상파 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3일 방송된 KBS 2TV ‘뮤직뱅크’에서 조용필의 19집 수록곡인 ‘바운스’는 로이킴의 ‘봄봄봄’을 꺾고 1위에 올랐다. 조용필이 지상파 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건 1990년 MBC ‘쇼네트워크’에서의 ‘추억 속의 재회’ 이후 23년 만이다. 또 KBS에서는 1989년 ‘가요톱텐’에서 ‘큐’로 1위를 한 지 2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조용필은 이날 미리 녹화된 영상을 통해 “1990년 ‘추억 속의 재회’를 마지막으로 순위 차트 프로그램을 은퇴했다. 훌륭한 후배들이 있는데(1위를 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는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집착을 버리고 결핍과 동거하세요

    부처님오신날을 앞둬선지, 요즘 ‘내려 놓기’가 화두다. 가왕 조용필이 최근 발표한 노래 ‘걷고 싶다’에서 수차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걷고 싶다 강조하더니, 스위스의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도 비슷한 내용의 경구를 전했다. 저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성귀수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를 통해서다. 그리 새삼스러운 표현이 아니니 대략의 내용이야 짐작할 만하다. 정작 중요한 건 대체 어떻게 내려 놓으란 거냐다. 먼저 저자에 대해 알아두자. 그는 장애인이다. 1975년 스위스에서 목에 탯줄을 감고 태어났다. 그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를 앓았다. 세 살 때부터 17년 동안은 요양시설에서 생활해야 했다. 지금 그는 결혼도 했고, 세 아이도 얻었다. 행복한 가장이 됐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장애 탓에 생긴 인간적인 고뇌를 해소하기 위해 철학에 심취했다. 책이 전하는 잠언 같은 에세이들은 그같은 과정을 겪은 뒤 깨달은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책 제목이 주는 뉘앙스는 ‘세상아, 덤벼라’류의 자기 계발서다. 하지만 책이 충고하는 건 ‘단련’ 보다 ‘초월’에 가깝다. 책 전체를 아우르는 것도 예리한 직관보다는 누그러진 달관의 정서다. 이와 관련해 걸핏하면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나는 내가 아니니, 비로소 그제야 나는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다”는 문장이다. 이게 무슨 개똥철학이냐 싶은데, 분명 족보가 있는 문구다. 금강경 제 8장의 “붓다는 붓다가 아니니, 바로 그래서 내가 이를 붓다라 이르니라”라는 대목을 인용한 표현이니 말이다. 나는 ‘나’라고 불려지는 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 전하는 허상에 집착하게 되면 나를 나라는 존재의 틀에 가둬버리고 만다. 그러니 무엇에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은 줄곧 이런 자세를 이어간다. 장애는 장애가 아니니 장애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당신이 어린이날을 앞둔 당신 자녀들에게 남들보다 저렴한 선물을 사주는 형편 없는 아빠일지라도, 이는 곧 형편 없는 아빠가 아니니, 스스로를 형편 없는 아빠라 불러도 좋다는 의미다. 이는 책이 줄곧 주장하는 두 화두, ‘집착 없는 삶의 자세’와 ‘결핍과 동거하는 삶의 자세’로 이어진다. 저자는 “하나의 생각에 머무는 순간, 생각의 흐름 자체가 멈추고 만다”며 집착 없는 삶을 살 것을 주문했다. 1만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빌보드 “싸이를 끌어내린 조용필 누구냐” 관심

    빌보드 “싸이를 끌어내린 조용필 누구냐” 관심

    미국의 빌보드지가 10년 만에 돌아온 ‘가왕’ 조용필의 활약을 다루며 관심을 보였다. 빌보드닷컴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조용필이 싸이를 K팝 핫 100 차트 1위서 끌어내렸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용필의 19집 ‘헬로’가 한국 음원 차트를 휩쓸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왕이 돌아왔고, 크게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빌보드닷컴은 “조용필은 한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며 “1980년대부터 여러 장의 LP를 발표, 각종 시상식을 휩쓰는 등 패권을 지켰다”고 전했다. 또 ‘창밖의 여자’ ‘촛불’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대표작을 열거하며 “미국의 영향을 받은 팝·록에서 한국 전통 음악과 트로트까지 장르 전반에 걸쳐 폭넓은 음악적 시도를 했다”며 “수십 년 동안 이뤄진 예술에 대한 용감한 접근은 그를 한국 가요계의 정상에 올려놓았다”고 보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조용필 새 앨범 ‘헬로’ 해적판 등장

    조용필 새 앨범 ‘헬로’ 해적판 등장

    가수 조용필(63)의 19집 앨범 ‘헬로’(Hello)의 해적판(불법 복제판)이 등장했다. 유니버설뮤직은 28일 “지방의 한 음반매장에서 해적판을 발견한 팬이 조용필의 기획사에 제보했다. 19집에 신곡 10곡이 담긴 것과 달리 해적판에는 신곡은 물론 기존 곡을 보태 36곡이 두 장의 CD에 담겼다”며 “범인 색출에 나섰으며 민·형사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발매된 19집은 음반매장에 풀린 첫날 2만장이 동났다. 추가 입고된 1만장까지 모두 3만장이 팔렸다. 현재 추가 주문 물량이 7만장에 달한다. 유니버설뮤직은 “해적판의 등장은 19집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하지만, 가왕의 컴백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라며 “앨범을 구입하지 못해 애타는 팬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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