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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 달 5월, 가족과 함께 ‘공연 나들이’ 가볼까

    가정의 달 5월, 가족과 함께 ‘공연 나들이’ 가볼까

    5월은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맞아 자녀 혹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공연장 나들이를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어린이들의 동심을 두드릴 재기발랄한 음악극과 콘서트는 물론, 부모님의 향수를 자극할 정겨운 공연도 풍성하다. 가족 뮤지컬 ‘캣 조르바’는 중세 벨기에를 배경으로 명탐정 고양이 ‘조르바’의 모험과 활약을 그린다. 고양이의 도시 ‘이페르’에서 고양이들이 흑사병을 옮긴다는 소문이 퍼진 가운데, 조르바는 수학 퍼즐을 풀어 가며 한 엄마 고양이의 잃어버린 남편과 아이를 찾아 나선다. 중세 유럽을 옮겨 놓은 웅장한 무대 세트와 24인조 오케스트라가 녹음한 수준 높은 음악 등으로 어린이는 물론 부모들의 눈과 귀까지 사로잡는다. 올해로 초연 10주년을 맞은 어린이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는 그동안 대극장에서 공연됐던 작품을 300석 규모의 소극장으로 옮겨 새롭게 태어났다. 그림형제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가수 유열이 설립한 유열컴퍼니가 제작한 창작뮤지컬이다. 당나귀, 개, 고양이, 닭 등 네 마리의 동물이 꿈을 찾아 떠나는 모험 속에 ‘꿈과 자존감, 함께’의 가치를 전한다. 서울발레시어터의 가족발레 ‘비밀의 인형 코펠리아’도 주목할 만하다. 엉뚱하고 기괴한 코펠리우스 박사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만든 태엽 인형 코펠리아를 사람으로 만들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희극발레 명작으로 손꼽힌다. 클래식한 원작 대신 화려한 색상이 돋보이는 무대와 의상, 말풍선 등을 소품으로 활용해 만화적 요소를 가미한 게 특징이다. 음악극 ‘솟아라 도깨비’에서는 판소리, 민요 등 구성진 우리 소리로 무장한 도깨비들을 만날 수 있다. 국립국악원과 ‘마당을 나온 암탉’ ‘이야기 심청’ ‘똥벼락’ 등 독창적인 어린이 연극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극단 민들레의 합작품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더이상 땅속에서 살 수 없게 된 도깨비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인간을 골탕 먹이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내용이다. ‘2015 예술의전당 동요콘서트’는 주옥 같은 동요로 동심을 사로잡는다. 1920년대~1945년 해방 전 동요, 1945년 해방 후~1970년대 동요, 어린이날 인기 동요 퍼레이드 등으로 꾸며진다. 국내 최고의 어린이 합창단·중창단과 성악가들은 물론 가수 윤형주와 혜은이가 무대에 올라 감미로운 동요를 선사한다. 지난해 5월 첫선을 보인 뒤 대표적인 가족 공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전래동요·동화에 클래식을 접목한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의 ‘어린이 앙상블 마티네’도 놓치기 아까운 공연이다. 전래동화를 토대로 제작한 창작음악극 ‘흥부와 놀부’와 멀티미디어 창작극 ‘두부와 콩나물’로 구성됐다. ‘흥부와 놀부’는 판소리 소리꾼이 내레이터가 돼 극을 이끌어 가며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려준다. ‘두부와 콩나물’은 일터에 나간 엄마·아빠를 기다리는 윤이와 윤이의 음악 친구들인 콩나물 삼 남매, 무담이가 펼치는 흥겨운 음악 놀이다. 5060세대의 추억을 끄집어내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공연도 많다. 악극 ‘봄날은 간다’는 남편에게 버림받아 과부로 살아가는 여인 명자와 가족을 버리고 꿈을 찾아 떠난 남자 동탁, 이들과 함께하는 가극단 사람들의 기구한 인생을 그린다. 최주봉과 윤문식, 양금석 등 배우들의 열연에 9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 추억의 옛 가요들이 어우러진다. ‘그랜드 쇼단’이 보여주는 볼거리도 화려하다. ‘1970뮤지컬’을 표방한 ‘꽃순이를 아시나요’도 화제다. 19세 순이와 20세 춘호의 1970년 첫 만남에서 이들의 중년, 노년기까지를 1960~90년대를 풍미한 노래 30여곡과 엮었다. 김국환, 이미자, 김추자, 신중현, 이장희, 김정호, 심수봉, 조용필, 이용, 이문세, 이선희 등의 히트곡이 공연 내내 들려온다. 가수 권인하가 춘호 역을, 도원경이 순이 역을 맡았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조용필과의 특별한 인연 무엇?”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조용필과의 특별한 인연 무엇?”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조용필과의 특별한 인연 무엇?” ’조용필을 키운 PD’ ‘KBS의 전설적 예능 PD’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닌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이 지난 15일 별세했다. 71세.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던 진 전 국장은 이날 입원 중이던 서울대학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생전 TV 쇼프로그램의 대부로 활약했다. 각종 가요쇼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연출해냈고 퇴직 후에도 KBS ‘가요무대’ ‘콘서트 7080’의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고인은 특히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 조용필과의 남다른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기리에 데뷔했지만 이후 대마초 복용으로 무대를 떠나 있을 때 그를 재기할 수 있게 해준 인물이 바로 진 전 국장이다. 고인은 KBS ‘100분 쇼’ 등을 통해 조용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조용필이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줬고, 이후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 등을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에 조용필도 평생 진 전 국장을 ‘은인’으로 모셨고, 지난 9일에도 진 전 국장이 입원 중인 병실을 찾아 문병했다. 이날 조용필과 함께 진 전 국장을 병문안한 김성일 가넷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날도 조용필 씨는 진 전 국장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은인이라고 말했고 형님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연출력을 인정받아 1984년 올림픽주경기장 개장공연의 기획·연출, 19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연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연출, 2000년 10월 ASEM 개·폐회식 총연출, 2001년 12월 월드컵 본선 조 추첨 행사 총연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광화문 축하공연 연출,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 전야제 연출 등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2층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7일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조용필을 키운 PD 지다”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조용필을 키운 PD 지다”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 별세 “조용필을 키운 PD 지다” ’조용필을 키운 PD’ ‘KBS의 전설적 예능 PD’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닌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이 지난 15일 별세했다. 71세.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던 진 전 국장은 이날 입원 중이던 서울대학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생전 TV 쇼프로그램의 대부로 활약했다. 각종 가요쇼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연출해냈고 퇴직 후에도 KBS ‘가요무대’ ‘콘서트 7080’의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했다. 고인은 특히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 조용필과의 남다른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기리에 데뷔했지만 이후 대마초 복용으로 무대를 떠나 있을 때 그를 재기할 수 있게 해준 인물이 바로 진 전 국장이다. 고인은 KBS ‘100분 쇼’ 등을 통해 조용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조용필이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줬고, 이후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 등을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에 조용필도 평생 진 전 국장을 ‘은인’으로 모셨고, 지난 9일에도 진 전 국장이 입원 중인 병실을 찾아 문병했다. 이날 조용필과 함께 진 전 국장을 병문안한 김성일 가넷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날도 조용필 씨는 진 전 국장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은인이라고 말했고 형님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연출력을 인정받아 1984년 올림픽주경기장 개장공연의 기획·연출, 19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연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연출, 2000년 10월 ASEM 개·폐회식 총연출, 2001년 12월 월드컵 본선 조 추첨 행사 총연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광화문 축하공연 연출,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 전야제 연출 등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2층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7일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진필홍 前 KBS 예능국장

    [부고] 진필홍 前 KBS 예능국장

    ‘조용필을 키운 PD’로 불리는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이 15일 오후 1시 별세했다. 71세.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던 진 전 국장은 이날 입원 중이던 서울대학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기리에 데뷔했던 조용필이 대마초 복용으로 무대를 떠나 있을 때 KBS ‘100분 쇼’ 등을 통해 그를 재기할 수 있게 해 줬다. 조용필도 진 전 국장을 평생 은인으로 모셨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2층 3호실, 발인은 17일. (02)2072-2014
  • 진필홍 전 KBS국장 별세…조용필, 패티김 등 배출한 ‘거장’

    진필홍 전 KBS국장 별세…조용필, 패티김 등 배출한 ‘거장’

    진필홍 전 KBS국장 별세…조용필, 패티김 등 배출한 ‘거장’ ‘진필홍’ 진필홍 전 KBS 예능국장이 별세했다.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던 진필홍 전 국장은 지난 15일 오후 1시, 입원 중이던 서울대학병원에서 향년 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생전 수많은 쇼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조용필, 이미자, 나훈아, 패티김, 남진 등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고인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2000년 ASEM 개·폐회식,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광화문 축하공연 등을 연출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진중원(신한카드 기관영업팀 부부장), 진성원(가천대 초빙교수)씨 등이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2층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마당] 올디스 벗 구디스/이애경 작가·작사가

    [문화마당] 올디스 벗 구디스/이애경 작가·작사가

    북미 2대 음악축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가 열리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봄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젊음의 열기로 가득했다. 100여개의 클럽, 라이브 바에서 이뤄지는 2000여 팀의 공연은 관객 30만명의 기대를 유감없이 만족시키며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 방향으로 폭발하는 젊음, 그 뜨거운 열기 속에 더욱 도드라졌던 것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관계자들의 참여였다. 해외 음악 마켓에 가보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경력이 오래된 노장들이 많이 참석한다는 점이다. 음악 프로듀서는 물론 프로모터,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나이 지긋한 관계자들도 참석해 음악 트렌드를 점검하고 좋은 뮤지션들을 발굴하기 위해 모든 안테나를 동원한다. 이들은 젊음 가득한 힙합이나 록 공연장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 빠르게 찾아다니며 급변하는 세계 음악시장의 흐름을 주시한다. 각종 정보를 모으고, 관계자들을 만나 얼굴을 익히고, 인맥을 만들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살핀다. 잘 제작해 세상에 내놓을 만한 좋은 뮤지션들이 있는지를 지금까지의 경력을 바탕으로 ‘감’으로 살핀다. 이들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가면 적어도 기대 이하의 음악을 듣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더욱 빛나는 그레이 헤어. 이들에게 나이는 오래된 경력을 증명해 주는 빛나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한국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친 ‘케이팝 나이트 아웃’에도 이 노장들은 존재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만 한정돼 있는 것 같던 케이팝의 열기가 본토 미국인들에게도 전달돼 현장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고, 그 흐름을 타고 노장 관계자들도 찾아왔다. 음악 트렌드와 산업에 관해 논하는 콘퍼런스장에도, 시간을 벌기 위해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는 근처 카페에도 노장들은 있었다. 한국에서 참석한 나로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일하는 노장들의 모습들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경우 음악 산업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대부분 20~40대의 젊은 인력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업계의 특성상 시장조사나 현장정리 등은 발 빠르고 민첩한 젊은 인력들이 대부분 처리하고 노장 경력자들은 주로 현장보다는 디렉터로서 관리를 하거나 다른 곳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형태로 자리잡았다. 실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곧 내한해 공연을 펼칠 예정인 폴 매카트니는 나이가 73세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에릭 클랩턴은 일흔을 넘겼고, 스팅도 환갑을 넘은 지 오래다. 지난해에도 빌보드를 점령한 노익장 열풍이 화제가 될 정도로 노장들은 건재하다. 그러나 10대에 데뷔해 10년차가 된 20대 가수만 돼도 음악 방송에 나가는 것이 뻘쭘해지는 것이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이고, 조용필의 노래가 히트를 치는 것이 커다란 이슈가 될 정도로 우리 음악시장은 아이돌, 10대 음악 소비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구조 속에 들어가 있다. 옛것이 좋은 것이라는 뜻의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옛날에 만들어진 음악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랜 경력을 지닌 뮤지션들, 척박한 대중음악계를 일궈낸 노장 관계자들 자체도 수작이자 명품이다. 대한민국의 명품들이 활발히 현장에서 활동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면 그건 꿈결 같은 세상일까.
  • 47. 남진, “지구 떠나겠다” 선언…나훈아 끌어들인 데 반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7. 남진, “지구 떠나겠다” 선언…나훈아 끌어들인 데 반발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조용필이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 가요계를 지배했다면 그 이전 10여년은 남진과 나훈아의 시대였습니다. 몸짓 하나, 눈짓 하나만으로도 뭇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두 사람은 말하자면 ‘원조 아이돌’쯤 됐던 것이죠. 영화 ‘국제시장’을 보셨다면 극중에서 나훈아가 더 낫네, 남진이 더 낫네 하며 주인공들이 다퉜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남진은 1946년 9월 전남 목포 출생. 우리 나이로 올해 일흔살이 됐습니다. 나훈아는 이보다 몇개월 늦은 1947년 2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창법에서도 크게 대비가 됐고, 각각 호남과 영남을 대표한다는 상징성도 갖고 있어 유달리 라이벌 의식이 강했습니다. 그것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사람 간의 불꽃 튀는 신경전을 다룬 1972년 3월 선데이서울 기사를 소개합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7. “지구 떠나겠다” 남진이 선언…라이벌 나훈아 끌어들인 데 반발 -1972년 3월 26일자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전속가수로 ‘달러 박스’였던 나훈아가 지구 레코드사 전속으로 옮기자 이제까지 지구의 전속가수였으며 오는 4월 말로 지구와의 전속계약이 만료되는 남진이 이에 반발, “어떤 후한 대우를 해줘도 지구와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훈아 전속에 따른 남진의 반발로 그동안 표면상으론 선의의 경쟁을 내세웠던 두 사람 간의 ‘정상의 자리다툼’이 한층 미묘하게 노골화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또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오아시스 대 지구’라는 양대 레코드 회사 간 싸움으로 인식돼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진이 지구와의 재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이번엔 나훈아를 지구에 빼앗긴 오아시스가 그 보복책으로 남진의 스카우트에 열을 올릴 것은 뻔하다. 오아시스 외에 몇몇 군소 레코드사가 스카우트의 손을 뻗치고 있으나 남진이 전속금을 750만원이나 요구하고 있어 엄두도 못 낼 것이고 보면 오아시스가 남진 스카우트의 유력사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말로 오아시스와의 계약이 끝난 나훈아가 비밀리에 지구로 옮긴 것은 대우 문제보다도 지구 전속인 작곡가 박춘석씨와의 개인적인 약속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아시스에서 히트곡은 숱하게 냈으나 “곡 다운 곡을 받지 못했다”고 늘 불평해 온 나훈아는 자신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 이미 3개월 전에 박춘석씨 곁으로 가기로 합의했다는 것. 나훈아의 계약조건은 1년 반 동안 150만원이니까 한 달에 약 10만원꼴이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44. “나 자신의 이야기 같아 연기도 일상생활처럼”…첫 출연영화 촬영 끝낸 조용필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4. “나 자신의 이야기 같아 연기도 일상생활처럼”…첫 출연영화 촬영 끝낸 조용필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얼마 전 이 코너를 통해 ‘가왕’(歌王) 조용필이 세상에 이름 석자를 알리기 시작했던 당시의 인터뷰(기사 바로가기 ☞ 클릭)를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선데이서울 1977년 3월 13일자 기사였습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흘렀습니다. 조용필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국민가수가 되었습니다. 1979년 3월 발매한 공식 1집 ‘창밖의 여자’를 통해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앨범 판매 100만장 돌파의 위업을 달성한 그였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는 동명 타이틀곡 ‘창밖의 여자’를 비롯해 ‘단발머리’,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정’, ‘너무 짧아요’, ‘잊혀진 사랑’, ‘슬픈 미소’ 등 어느 하나 우리 가요의 역사가 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여세를 몰아 그는 1980년 11월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죽음이 갈라놓은 비련의 사랑 이야기 ‘그 사랑 한이 되어’(이형표 감독)라는 멜로물에 배우 유지인과 함께 주연으로 나섭니다. 가수로서 인기를 발판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요즘 말하는 ‘연기돌’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죠. 당시는 조용필이 물만 마셔도 국민들이 환호하던 때였으니 뭐는 못했겠나 싶기도 합니다. 서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아래는 1981년 2월 1일자 선데이서울 기사입니다. 그해 2월 5일 설 특선개봉에 즈음해 쓴 기사입니다. 조용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이 영화는 흥미로운 사연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궁금증은 인터넷에서 영화 제목을 검색하셔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꼭 제가 직접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용필은 영화를 위해 주제곡을 작사·작곡했는데 이 노래가 그해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바로 ‘촛불’입니다.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연약한 이 여인을 누구에게 말할까요…사랑의 촛불이여 여인의 눈물이여…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44. “나 자신의 이야기 같아 연기도 일상생활처럼”…첫 출연영화 촬영 끝낸 조용필 -1981년 2월 1일자 키스 신을 두고 유지인(1956년생)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던 조용필(1950년생)의 데뷔작이 크랭크업(촬영 종료) 됐다. 초장에 키스 신을 거부했던 조용필도 결국 속셈을 드러내고 3차례의 키스 신을 능숙하게 처리, 유지인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는데…. “부딪쳐 보고 말을 해야지 미녀 앞에서 자기가 뭐 군자라고… 유지인양이 들으면 가소롭다고 웃을 거야.” ‘그 사랑 한이 되어’가 크랭크인(촬영개시) 되기 직전 각본을 본 조용필이 “쑥스러워 키스 신을 못하겠다. 또 무대에서 포옹만 해도 팬들의 항의가 빗발치는데 골치 아프니 빼달라”고 했을 때 이형표(1922~2010) 감독이 껄걸 웃으며 했던 말. 농담 삼아 흘린 조용필의 발언이 잽싸게 유지인의 귀를 발끈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유지인이 조용필과의 러브 신을 거부하고 나선 것. 결국 조용필이 사과를 했다. “선배를 몰라보고 함부로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어요.” 부산 로케 중에 조용필에게 사과를 받은 유지인은 피식 웃고는 표정을 풀었다고. “처음 연기하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조용필과 러브 신을 어색하지 않게 마무리한 유지인의 평. 조용필은 작년 7월 재미교포 위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로 개런티 2000만원(특별 출연에 따른 제반 혜택까지 합치면 2600만원)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배우로 나섰다. “저는 절대로 연기를 하려고 애를 쓰지 않았어요. 일상생활 속의 내 행동거지와 개성을 꾸밈 없이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크랭크인 5개월만인 지난 주말 조용필은 사랑하는 연인 유지인의 꽃관을 둘러메고 수원 공동묘지에 오르는 신을 끝으로 첫 작품의 출연을 마쳤다. “글쎄요.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이 작품은 기타를 둘러메고 집을 나온 뒤 방황 끝에 친구와 연인의 격려를 얻어 대가수로 성공한다는 내용의 뮤지컬 멜로물. 조용필의 출세담이 작품의 테마가 됐다는 이야기도 잇으나 본인은 아리송한 대답이다. 그의 연인으로 나오는 유지인은 떠돌이 가수 지망생에게 사랑과 희망을 안겨주고 끝까지 불치의 병을 감춘 채로 눈을 감는다. 비련의 연인으로 눈물을 짜게 하는 역. 조용필은 자신의 과거에 정말 그러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면 장가를 안 가고 그녀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고 살 거라며 ‘지난 사랑 이야기’를 드라마라고 부인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촬영무대까지 조용필의 발자취를 다음어 동두천 미군부대와 부산 등지를 깔아놓고 있다. 제대로 스타를 키우지 못한 채로 스타가 없다고 타령만 늘어놓는 게 요즘 우리 영화계인데, 가수로서의 인기를 업고 영화에 데뷔한 조용필의 인기세가 과연 어느 정도나 작용될 지가 영화계의 관심거리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인물에 대해 출생연도, 사망연도 등을 추가했습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경제 블로그] 조용필 다음 무대 누가 오르고 싶을까요

    [경제 블로그] 조용필 다음 무대 누가 오르고 싶을까요

    데뷔 40년이 넘은 가수 조용필에게는 여전히 ‘가왕’(歌王)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여러 가수들인 모인 대형 무대에서도 여전히 피날레는 조용필의 몫입니다. 그의 가창력과 무게감을 따라올 가수를 감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죠. 지난달 25일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가 된 임종룡 전 회장을 떠나보낸 농협금융지주에선 요즘 조용필 얘기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금융사에 중견 가수의 조합이 좀 생뚱맞긴 합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농협금융은 임 전 회장이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영전’하는 바람에 회장 공백 사태입니다. 당초 경영 공백 최소화를 위해 차기 회장 선출 작업에 곧바로 착수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조차 꾸리지 않았습니다. 임 전 회장이 청문회(10일)를 통과하고 임명장을 받은 뒤에 회장을 선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게 전임 회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농협금융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진짜 속내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후보군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아서입니다. 임 전 회장이 선출됐던 2013년 6월과 지금 농협금융의 지위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올해부터 공직자윤리법이 적용되는 취업 제한 영리기관에 농협금융이 포함돼서죠. 퇴임 후 3년이 안 된 공무원은 물론 농협중앙회 출신도 농협금융 회장이 되는 데 제한을 받습니다. 결국 민간 금융사 출신 최고경영자(CEO) 중에서 후보를 물색해야 합니다. 문제는 농협금융 임직원들의 눈높이가 너무 올라갔다는 데 있습니다. 신동규 전 회장이 중앙회와의 지배구조에 문제 제기를 하고 중도 사퇴할 때만 해도 “중앙회와 농협금융의 관계를 잘 조율할 수 있는 회장”이라는 조건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임 전 회장 재임 기간 동안 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했고, 은행 자산도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금융권 변방에서 ‘리딩뱅크’를 꿈꾸기 시작했죠. 이런 눈높이를 맞춰 줄 수 있고, 중앙회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인물이 차기 회장의 조건입니다. 현재 서치펌 두 곳에서 저인망식으로 후보군을 추리고 있습니다. 서치펌에서 추천한 인물이 회장에 발탁되면 연봉의 20%(5000만원)를 사례비로 줘야 합니다. 비싼 비용을 치러서라도 괜찮은 인물을 선임하겠다는 의지가 묻어 있습니다. 농협금융의 고위 관계자는 “조용필 다음엔 그 어떤 가수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처럼 임 전 회장 후임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슈퍼스타’는 언제나 등장하는 법입니다. 한때 ‘관피아의 놀이터’로 불렸던 농협금융이 외부 입김 없이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반듯한 차기 회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38. 6년 묵은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복고풍 탄 조용필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8. 6년 묵은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복고풍 탄 조용필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요즘은 ‘가왕’(歌王)이란 호칭이 남발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고유명사로서 우리 가요계 ‘가왕’ 타이틀의 주인공은 단언컨대 단 한 사람, 조용필입니다. 주민등록상 1950년생인 그의 나이, 올해로 66세가 됐습니다. 숱한 명곡과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는 조용필이지만 역시 ‘가왕’으로서 출발점은 ’돌아와요 부산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71년 발표했다가 그냥 묻혀버렸던 걸 1976년 우연찮게 재취입한 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조용필 자신은 이 노래 부르는 걸 꽤나 마뜩치않아 했던 모양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조용필 인터뷰 기사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8. 6년 묵은 노래로 복고풍(復古風) 탄 조용필 -1977년 3월 13일자 가요계에 별난 이단아가 나타났다. 때아닌 복고풍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조용필. 가요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보컬리스트로선 꽤 경력을 지녔다. 1971년 선데이서울이 주최한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서 가수왕으로 뽑힌 일이 있었을 정도니까… 다음은 돌아온 중고신인 조용필의 음악적 산책. “꽃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이렇게 시작되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황선우 작사 작곡)이 요즘 전국을 석권하고 있다. 트로트 멜로디에 고고 리듬으로 편곡된 이 노래는 다소 흐느끼는 듯한 허스키의 목소리로 불려지고 있는, 마치 흘러간 노래를 듣는 듯한 복고풍의 무드. 별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없는 데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자신이 ‘뽕짝’(트로트)이라 해서 외면하던 곡. 이 노래는 또 서울서부터 히트돼 전국으로 번지는 통례를 깨고 부산 다방가에서부터 히트되어 서울로 북상, 전국을 누빈 지방 출신의 히트곡이기도 하다. 부산에서부터 히트를 한 이유를 조용필은 “부산항이라는 지명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이 노래는 조용필이 이미 1971년 아세아레코드에서 취입했던 곡이다. 디스크까지 내놓았으나 녹음이 잘 안된 불량음반이어서 방송에서 틀지를 못해 사장됐던 노래다. 이 노래가 다시 햇볕을 보게 된 것은 조용필이 지난해 6월 킹레코드와 인연을 맺으면서다. 이 레코드사에서 독집 디스크를 내놓기로 한 그는 회사 측의 권유로 ‘뽕짝’도 한 곡 넣기로 했다. 그때 떠오른 곡이 바로 이 곡. “사실은 뽕짝이라 다시 부르기 싫었어요.” 대개 팝계열의 가수들은 트로트를 외면하기 일쑤다. 멜로디는 그대로 두고 현대 감각에 맞게 템포만 고고 리듬으로 바꾸어 취입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독집의 타이틀곡이 “너무 짧아”였고 ‘돌아와요 부산항’은 제1면의 두번째 곡으로 깔았다. 그러니까 취입할 때부터 괄시를 받았던 곡이다. 그런데 독집을 낸 지 두 달쯤 지나자 부산에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묘하게도 반응을 보인 게 타이틀곡이 아니라 괄시를 하던 ‘돌아와요 부산항’이었다. “너무 기가 차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돌아와요 부산항’과 비슷한 케이스로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있다. 이 곡도 디스크의 맨 끝 곡으로 수록한 게 히트되어 나중에 다시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제작했던 것. “실은 30살이죠” 그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노래를 불러 일약 유명해진 조용필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앳되다. 166cm의 자그마한 체구에 애송이 같은 인상과 달리 연예계 경력은 자그마치 10년. 경동고를 나온 그는 1967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를 치는 보컬리스트로 데뷔했다. 정릉에 살 때였다고 한다. 한 동네에 살던 미8군 무대의 드럼을 치는 친구의 소개로 미8군 쇼의 대행업자인 한국흥행에 들어갔던 것. 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만졌던 악기. 그러니까 취미가 직업이 된 것이다. “처음엔 조금만 하다가 집어치우려고 했었죠.” 그러나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러 공부를 하려고 미8군 무대를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지 못했다는 그는 미8군 무대를 나선 지 8개월만에 4인조 보컬그룹을 조직해 일반 무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호텔에 있던 고고클럽이 일반 쪽으로는 첫 무대. 보컬그룹 계열에서 무명에 지나지 않던 그에게 영광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 연예협회 산하 연주 분과의 그룹사운드 분실장이던 김대환이 이끌던 3인조의 ‘김트리오’ 멤버가 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무렵인 1971년 선데이서울이 주최한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출전, ‘길잃은 철새’를 불러 가수왕이 된 것. 당시 그를 가수왕으로 뽑았던 심사위원들은 “언젠가는 빛을 볼 유망주”라고 입을 모았다.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아무튼 그때의 유망주는 마침내 정상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일반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가수왕이 된 뒤로 그는 보컬그룹 계열에서는 스타급 대우를 받으며 밤무대를 누벼왔다. 1974년에는 자신이 리드하는 6인조 보컬그룹 ‘그림자’를 조직, 부산의 살롱에 있다가 1975년 3월에 서울로 올라와 현재 나이트 클럽과 카바레 2곳에 출연하고 있다. 한곡의 히트로 주가가 껑충 오른 그는 요즘 하루 5회 이상의 방송 출연과 밤무대의 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한달 수입도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뛰었고, 여자팬의 극성에도 시달린다고 한다. “대개 살롱에선 젊은 여자들이, 카바레에선 중년부인들이 프로포즈를 해와요.” 중년 부인들이 웨이터를 시켜 “술 한잔 하자”는 주문을 하고 어떤 여인은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한번 연락하라”고 유혹해 오기도 한다며 씁쓸한 웃음이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단 한번도 빠져본 일은 없다고. “여자 친구는 몇 명 있어요. 하지만 정해놓은 애인은 아직 없습니다.” 동료들간에 퍽 착하다는 말을 듣는 그는 70이 넘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 경기도 화성 태생에 3남4녀중 3남. 주량은 2홉 들이 소주 한병쯤이란다. 아무리 히트곡을 냈다 해도 보컬그룹은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응답하라 1988, 나왔다 하면 대박스타 ‘기대 폭발’

    응답하라 1988, 나왔다 하면 대박스타 ‘기대 폭발’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이 나올까. 11일 한 매체는 “신원호 PD의 신작은 ‘응답하라’ 시리즈로 이번엔 1988년이 배경”이라고 ‘응답하라 1998’ 제작 소식을 전했다. 해당 매체는 “지난해부터 언급된 것처럼 2002년과 1988년 등 많은 시기를 두고 고민했지만 1988로 가닥을 잡고 제작 준비 중이다. 방송 시기는 오는 7월을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응답하라 1988’은 이미 지난해 한 차례 얘기가 나왔다. 당시 몇몇 소속사에서 제작진과 미팅을 갖는 등 움직임을 보였지만 무슨 일인지 제작이 중단됐다. 신원호 PD도 “여러 가지 회의를 했는데 사정이 있어 전부 올스톱 됐다.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88년은 많은 얘기를 다룰 수 있다.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주윤발·왕조현 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국내 가수도 화려하다.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 등과 1988년 ‘대학가요제’ 우승자 故 신해철도 그릴 가능성이 높다. 마스코트 호돌이를 내세운 세계인의 대축제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는 지강헌 인질극과 MBC ‘뉴스데스크’ 생방송 중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모습이 전파를 탄 사건도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응답하라 1997’의 서인국, 정은지, ‘응답하라 1994’의 정우, 고아라, 유연석 등 청춘스타들을 재발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응답하라 1988’의 캐스팅에도 벌써부터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CJ E&M(응답하라 1988)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 “당시엔 어떤 것이 유행이었을까?”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 “당시엔 어떤 것이 유행이었을까?”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 “당시엔 어떤 것이 유행이었을까?” tvN의 응답하라 새 시리즈 편성이 화제다. ’응답하라 1988’이 유력한 상황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일단 tvN 측은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신원호 tvN PD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CJ E&M 측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사고도 있었따. ‘무전유죄, 유전무죄’ 지강헌 인질극도 벌어졌다. 또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이 국내팬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이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tvN의 응답하라 새 시리즈 편성이 화제다. ’응답하라 1988’이 유력한 상황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일단 tvN 측은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신원호 tvN PD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CJ E&M 측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사고도 있었따. ‘무전유죄, 유전무죄’ 지강헌 인질극도 벌어졌다. 또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이 국내팬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이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주윤발·변진섭·왕조현의 추억 살아나나”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주윤발·변진섭·왕조현의 추억 살아나나”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네티즌 반응 폭발“주윤발·변진섭·왕조현의 추억 살아나나” tvN의 응답하라 새 시리즈 편성이 화제다. ’응답하라 1988’이 유력한 상황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일단 tvN 측은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신원호 tvN PD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CJ E&M 측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사고도 있었따. ‘무전유죄, 유전무죄’ 지강헌 인질극도 벌어졌다. 또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이 국내팬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이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나온다..당시 이슈보니 ‘대박’

    응답하라 1988 나온다..당시 이슈보니 ‘대박’

    11일 한 매체는 “신원호 PD의 신작은 ‘응답하라’ 시리즈로 이번엔 1988년이 배경”이라고 ‘응답하라 1998’ 제작 소식을 전했다. 해당 매체는 “지난해부터 언급된 것처럼 2002년과 1988년 등 많은 시기를 두고 고민했지만 1988로 가닥을 잡고 제작 준비 중이다. 방송 시기는 오는 7월을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응답하라 1988’은 이미 지난해 한 차례 얘기가 나왔다. 당시 몇몇 소속사에서 제작진과 미팅을 갖는 등 움직임을 보였지만 무슨 일인지 제작이 중단됐다. 신원호 PD도 “여러 가지 회의를 했는데 사정이 있어 전부 올스톱 됐다.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88년은 많은 얘기를 다룰 수 있다.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주윤발·왕조현 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국내 가수도 화려하다.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 등과 1988년 ‘대학가요제’ 우승자 故 신해철도 그릴 가능성이 높다. 마스코트 호돌이를 내세운 세계인의 대축제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는 지강헌 인질극과 MBC ‘뉴스데스크’ 생방송 중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모습이 전파를 탄 사건도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응답하라 1997’의 서인국, 정은지, ‘응답하라 1994’의 정우, 고아라, 유연석 등 청춘스타들을 재발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응답하라 1988’의 캐스팅에도 벌써부터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응답하라 1988, 기대 만발 “주윤발·변진섭·왕조현 추억 되살리나”

    응답하라 1988, 기대 만발 “주윤발·변진섭·왕조현 추억 되살리나”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기대 만발 “주윤발·변진섭·왕조현 추억 되살리나” tvN의 응답하라 새 시리즈 편성이 화제다. ’응답하라 1988’이 유력한 상황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일단 tvN 측은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신원호 tvN PD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CJ E&M 측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사고도 있었따. ‘무전유죄, 유전무죄’ 지강헌 인질극도 벌어졌다. 또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이 국내팬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이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답하라 1988 ‘장국영·주윤발·이선희·변진섭’ 추억 되살리나

    응답하라 1988 ‘장국영·주윤발·이선희·변진섭’ 추억 되살리나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장국영·주윤발·이선희·변진섭’ 추억 되살리나 tvN의 응답하라 새 시리즈 편성이 화제다. ’응답하라 1988’이 유력한 상황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일단 tvN 측은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신원호 tvN PD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CJ E&M 측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사고도 있었따. ‘무전유죄, 유전무죄’ 지강헌 인질극도 벌어졌다. 또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이 국내팬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이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88년 사회적 이슈보니 “기대감폭발”

    응답하라 1988,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88년 사회적 이슈보니 “기대감폭발”

    응답하라 1988, ‘응답 신드롬 이어갈까’ 88년 사회적 이슈보니 “기대감폭발” ‘응답하라 1988’ ‘응답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응답하라’ 세 번째 시리즈가 1988년으로 가닥을 잡아 화제다. 11일 한 드라마 관계자는 한 매체를 통해 “신원호 PD가 신작 ‘응답하라’ 시리즈를 1988년을 배경으로 가닥을 잡고 제작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언급된 것처럼 2002년과 1988년 등 많은 시기를 두고 고민했지만 1988로 가닥을 잡고 제작 준비 중”이라며 “방송 시기는 오는 7월을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응답하라 1994’의 서명혜 미술감독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응답하라 1988’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더불어 1988년 사회적 이슈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88년은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주윤발·왕조현 등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며 국내 가수도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김완선·이선희·변진섭 등 그리고 1988년 ‘대학가요제’ 우승자 故 신해철 이야기도 담을 수 있다. 또한 세계인의 대축제 서울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 등도 이슈였으며 지강헌 인질극과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것도 88년이다. 한편 2012년에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팬덤 문화를 그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제작된 ‘응답하라 1994’는 서울 신촌의 한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재연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응답하라 포스터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응답하라 1988, 반응 폭발 ‘아이돌은 엑소 멤버?’ 가능성 봤더니..

    응답하라 1988, 반응 폭발 ‘아이돌은 엑소 멤버?’ 가능성 봤더니..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어 온 신원호 PD는 12일 “여러가지 회의를 했는데 사정이 있어 전부 올스톱됐다.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고 전했다. 신원호 PD는 또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CJ E&M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한 드라마 관계자는 “신원호 PD의 신작은 ‘응답하라’ 시리즈로 이번엔 1988년이 배경이다”면서 “방송 시기는 오는 7월을 바라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또 일각에서는 아이돌그룹 엑소(EXO)가 ‘응답하라’ 새 시리즈에 출연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네티즌이 연예매체를 인용, tvN의 서명혜 미술감독이 엑소가 출연하는 웹드라마 작업에 한창이라고 전했기 때문. 서명혜 감독이 ‘응답하라 1994’에서 미술과 소품을 담당했던 만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응답하라 1988’이 웹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신빙성은 떨어진다. 1988년에는 장국영·주윤발·왕조현 등 중국과 홍콩 영화의 부흥,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김완선·이선희·변진섭 등 화려한 가수들의 등장, 1988년 ‘대학가요제’ 우승자 故 신해철, 세계인의 대축제 서울올림픽 등 다양한 소재가 기다리고 있어 시청자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2012년에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팬덤 문화를 그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응답하라 1997’은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된 1990년대를 배경으로, 오빠들에 미쳐있던 여고생과 다섯 친구들의 감성복고 드라마로 그려졌다. 특히 마지막 회는 최고 시청률 9.4%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응답하라 1988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응답하라 1988..진짜 방송됐으면 좋겠다”, “응답하라 1988..신해철 다룰까?”, “응답하라 1988..엑소가 출연하면 꼭 봐야지”, “응답하라 1988..기대된다”, “응답하라 1988..인기 많을 거 같은데”, “응답하라 1988..제발 방송해주세요”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응답하라 1988) 연예팀 chkim@seoul.co.kr
  • 응답하라 1988, 기대 만발 “당시에 무슨 사건 있었나 보니…” 대박

    응답하라 1988, 기대 만발 “당시에 무슨 사건 있었나 보니…” 대박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 기대 만발 “당시에 무슨 사건 있었나 보니…” 대박 tvN의 응답하라 새 시리즈 편성이 화제다. ’응답하라 1988’이 유력한 상황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일단 tvN 측은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신원호 tvN PD는 “‘응답하라 1988’이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하고 있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CJ E&M 측도 이날 “아직 확정된 바 없다. ‘응답하라 1988’은 논의 중인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논의 변경될 정도다. 제작 가시화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 속 굴렁쇠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고 MBC ’뉴스데스크‘ 중 괴한이 침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친 사고도 있었따. ‘무전유죄, 유전무죄’ 지강헌 인질극도 벌어졌다. 또 중국·홍콩 영화의 최대 부흥기 시절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등이 국내팬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가수로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문세, 김완선, 이선희, 변진섭이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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