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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아소의 웃음/박정현 논설위원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고대 그리스의 웃음의 어원은 ‘헬레’(hele)였고, 그 뜻은 건강(health)이었던 것을 보면 고대인들도 웃음의 효능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혈액순환도 좋아지고 뼈도 튼튼해진다고 한다. 웃음이 갖는 의학적 효과를 오랫동안 연구한 미국 리버트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에게는 암의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세포의 양이 증가했다. 면역력 증가는 물론이고 감기에도 쉽게 걸리지 않는다. 웃으면 얼굴 근육의 14개가 펴지고 찡그리면 72개의 근육이 수축된다. 웃음은 건강뿐 아니라 행복도 가져다 준다. 미국 한 대학의 조사에서 50명은 시종 웃는 표정을 짓도록 했고, 50명은 험상궂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물건을 판매하도록 했더니 ‘웃음팀’은 목표량의 3~10배까지 팔았다. 이에 비해 인상을 쓴 팀은 하나도 팔지 못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를 그대로 실증해 주는 조사결과다. 웃을 때는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의 양이 급증한다. 엔도르핀은 인간의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는 점에서 모르핀과 같지만 모르핀보다 300배 강력하면서도 중독성이 없다. 엔도르핀의 최대 장점은 공짜라는 데 있다.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분비를 위해 하루에 한번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웃음에 인색하다. 어린이는 하루에 평균 400번 웃지만 어른들은 6번에 그친다. 웃음에도 많은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포복절도(抱腹絶倒) 같은 호탕한 웃음이 있는가 하면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미소(微笑), 웃음을 머금는 함소(含笑) 등은 조용한 웃음에 속한다. 비아냥거리는 조소(嘲笑)와 코웃음인 비소(鼻笑), 바보같이 웃는 치소(痴笑)는 호르몬과는 무관하다.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의 웃는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것도 모자라 두 다리를 팔짝 들어올린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엔저정책을 위주로 한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견이 나오지 않아 무제한 엔저정책이 면죄부를 받은 게 감격스러웠을 법하다. 일본은 2015년까지 무제한 엔저 공습을 펼 수 있게 됐고, 달러당 엔화는 107엔까지 오를 기세다. 그럼에도 “엔저정책이 주변국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과 반발을 의식했더라면 대놓고 웃었을까. 그의 웃음은 아무래도 호르몬 분비와는 무관해 보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베르디의 ‘레퀴엠’ 전곡을 들어볼 시간

    베르디의 ‘레퀴엠’ 전곡을 들어볼 시간

    레퀴엠(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한 미사곡)만큼 작곡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곡도 드물다. 교황령 일부였던 이탈리아 파르마 출신인 탓에 태생적으로 반(反)교권주의자였지만, 신앙심은 누구보다 깊었던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레퀴엠’에는 그의 재능과 종교적 진실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동시대에 살았던 독일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교회 복장을 한 오페라’라고 빈정댄 건 베르디의 레퀴엠이 형식적으로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에게 마치 아리아를 부르듯 독립적 역할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에서 네 파트가 일종의 콰르텟(사중창)처럼 구성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레퀴엠’이 오페라 ‘돈 카를로’, ‘아이다’ 등과 더불어 베르디의 걸작으로 꼽히는 까닭은 특별한 작곡 동기도 한몫했다. 베르디가 존경하던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와 문호 알렉산드로 만초니(1785~1873)의 죽음을 추모하려고 만들었기 때문. ‘레퀴엠’ 중 마지막 곡 ‘리베라 메’(나를 구원하소서)는 애초 로시니를 위한 레퀴엠이었다. 책장 속에 잠들어 있던 ‘리베라 메’는 만초니의 죽음을 계기로 빛을 본다. 1874년 5월 만초니의 사망 일주기를 기념, 밀라노의 산마르코 성당에서 완성된 ‘레퀴엠’을 초연했다. 어떤 레퀴엠보다도 강렬한 ‘진노의 날’(Dies Irae) 대목은 한 번쯤 들어봤겠지만, 베르디의 ‘레퀴엠’ 전곡을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 새달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플래티넘시리즈Ⅱ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휘하고 마리아 루이자 보르시(소프라노), 미쉘 드 영(메조소프라노), 그레고리 쿤드(테너), 그리고 사무엘 윤(바리톤)이 나선다. 특히, 지난해 7월 바그너만 공연하는 유럽의 대표적 음악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동양인 최초로 주역(‘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맡았던 사무엘 윤에게 눈길이 쏠린다. 애초 캐스팅됐던 러시아의 바리톤 예브게니 니키틴이 가슴에 새긴 나치문양(卍) 문신 탓에 출연이 취소되면서 공연 당일 6시간 전에 ‘대타’로 투입돼 스타덤에 올랐던 그다. 1만~12만원. 1588-1210.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식료품집 딸에서 11년 최장수 총리로…‘영국병’ 고친 여걸

    식료품집 딸에서 11년 최장수 총리로…‘영국병’ 고친 여걸

    8일(현지시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87) 전 영국 총리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보수당을 이끌며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의 대표적인 지도자다. 대처 전 총리는 1925년 영국 중서부 랭커셔주 그랜섬에서 보수적인 감리교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식료품점을 운영했던 아버지 앨프리드 로버츠는 학력은 짧았으나 성실히 일해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대처가 두 살 때 시의원에 당선된 이래 그랜섬의 시장 자리까지 올랐다. 대처 전 총리가 여성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장관을 거쳐 총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이러한 성실함과 책임감 덕분이었다. 대처 전 총리는 옥스퍼드대학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법학과 화학을 공부했다. 1950년 여성 후보로 최초로 총선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하지만 11살 연상의 기업인인 남편 데니스 대처를 만나 쌍둥이 남매를 낳은 뒤 금전적인 도움에 힘입어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1959년 보수당 소속으로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됐을 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1961~1964년 연금·국민보험부 차관을 지냈고 교육 장관을 거쳐 1969년에 과학장관까지 역임했다. 1975년에는 보수당 대표인 히스를 물리치고 영국 최초의 여성 야당 당수가 됐다. 이후 1987년 총선거 때까지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영국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대처 전 총리는 총리 취임사에서 “문제는 사회주의적 병폐”라면서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11년 재임 기간에 전후 복지 자본주의 모델인 ‘케인스주의’와 결별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여 당시 영국 내 만연했던 나태함을 버리고 ‘영국병’으로 불리던 고질적인 문제를 치유해 영국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동시대 정치적·역사적 친구로 ‘레이거 노믹스’라는 용어를 남긴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시장자유주의의 효시로 불린다. 취임 당시 장기 불황에 빠진 영국 경제를 강인한 지도력으로 회생시켰으며 과감한 민영화와 교육·의료 부분에 대한 복지 지출 삭감을 통해 1980년대 초 치솟던 인플레도 잡았다. 특히 경쟁력이 떨어진 공기업은 과감히 민영화하고 대대적인 탄광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통치철학을 가리켜 ‘대처리즘’이라는 단어도 생겨날 정도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한편으로는 실업자를 양산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반공주의와 함께 ‘강한 영국’을 표방했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당시 영국 사회는 전쟁 찬반론으로 양분됐으나 “타국의 무력 침공은 영국의 주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명예와 주권을 위해서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해 두 달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외교적으로는 레이건과 함께 옛 소련에 대해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며 강력히 대응해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반면 1983년에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미국 크루즈 미사일을 배치하고, 1986년에는 리비아 폭격을 위해 미군 전투기의 영국 공군기지 사용을 허가하면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원수로부터 ‘피의 보복’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대처의 외교 노선에 대해 ‘미국의 푸들’이라는 조소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한계를 드러냈고, 새로 출범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당의 반발에 부딪혀 1990년 11월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미국 윌리엄메리대 총장과 필립 모리스 고문 등을 지냈다. 2002년 가벼운 뇌졸중을 겪은 이후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데니스 경은 2003년에 사망했다.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뇌졸중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에 각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버락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대처 전 총리의 서거로 전세계는 위대한 자유의 투사를 잃었고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대처는 대단한 총리였다. 그녀는 뚜렷한 의견을 가진 훌륭한 여성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그녀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그녀가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내년을 맛보라 오페라 갈라

    내년을 맛보라 오페라 갈라

    8개월 동안 200여 회가 넘는 공연이 열리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턴 오페라 극장은 ‘오프닝 나이트 갈라’를 시작으로 화려하게 시즌을 연다. 시즌 개막을 관객과 함께 축하하고자 특별공연 형식을 취한 것.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한 시즌으로 보는 북미·유럽과 달리 봄부터 겨울까지 한 시즌으로 꾸리는 국립오페라단은 ‘갈라’의 시점을 틀었다. 올해 무대에 올린 작품들의 하이라이트와 함께 2013년 선보일 작품의 맛보기를 중심으로 29~30일 오후 3시와 7시30분, 총 4회에 걸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지난 10월 티켓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회 공연을 추가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던 비제의 ‘카르멘’ 서곡으로 막을 올린다.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카르멘 역을 맡고, 테너 서필, 소프라노 조정순과 김민지, 바리톤 공병우,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함께 한다. 모차르트의 발랄한 연애담 ‘코지 판 투테’도 선보인다. 올해와 내년 레퍼토리와는 무관하지만, 갈라의 흥겨운 분위기를 살리려고 연출자 김홍승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포함했다. 약혼녀의 정절을 두고 내기를 건 두 명의 젊은 장교가 펼치는 귀여운 사기극이다. 지난달 오페레타 ‘박쥐’로 한국 무대 데뷔를 한 바리톤 안갑성이 굴리엘모 역을 맡는다. 올해 벨베데레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신예 테너 김범진이 페란도 역으로 데뷔무대를 갖는다. 캐스팅만 놓고 보면 갈라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신선하다. 2013~2014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파르지팔·니벨룽겐의 반지)에 도전하는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무대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첫 걸음을 뗀다. 악마에 영혼을 판 죄로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벌을 받게 된 노르웨이 유령선 선장의 전설을 다룬 바그너의 초기작품이다. 7년에 한 번, 그것도 단 하루 뭍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그에게 죽음으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순수한 여인이 나타나면서 저주가 풀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갈라에서는 1막을 중심으로 베이스 최웅조와 전준한, 테너 전병호가 합창단과 함께 웅장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1만~10만원.(02)586-528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명량대첩때 사용 추정 소소승자총통 첫 발굴

    명량대첩때 사용 추정 소소승자총통 첫 발굴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이 1597년 명량대첩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유물이 발굴된 전남 진도 오류리 해저는 명량대첩이 벌어진 울돌목에서 직선 거리로 5㎞ 정도 떨어져 있다. ‘청자기린형 향로뚜껑’ 등 국보급 고려청자 3점도 이번에 함께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이 일대에 대한 수중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통 3점과 석제(石製) 포환 1개를 발굴했다고 28일 밝혔다. 총통 3점은 길이 58㎝, 지름 3㎝로 거의 같으며 무기의 위쪽에 ‘만력무자/사월일좌영/조소소승자/중삼근구/양/장윤덕영’(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重三斤九/兩/匠尹德永)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명나라 연호인 만력 무자년 4월(1588년, 선조 22년)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으로, 무게는 3근 9냥(약 2.5~3㎏), 장인은 윤덕영이라는 설명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안성희의 전설적 장구춤 영상 발굴

    안성희의 전설적 장구춤 영상 발굴

    월북 무용수 최승희(1911~1969)의 딸인 안성희(왼쪽)의 장구춤과 평양기생 출신 가수 왕수복(오른쪽·1917~2003)의 ‘아리랑’ 독창 등 1950년대 북한 공연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영상자료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의 연해주, 사할린 등에 퍼져 있는 무형유산 현항을 조사한 결과를 16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독립국가연합(CIS) 고려인 공동체 무형유산 전승실태 연구성과 발표회’에서 공개했다. ●안, 어머니에게 춤 배워 러 유학… 67년이후 행불 알마티 오페라 극장 공연실황 영상은 임상영 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장이 지난 2007년 카자흐스탄 국립영상물기록보존소에서 발굴했는데 모두 9분 분량이다. 이 중 4분 정도가 구소련 시기 북한 공연예술단의 중앙아시아 순회 공연물로 추정되는데,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된 ‘장구춤의 달인’ 안성희와 일제 강점기 조선을 신민요로 사로잡은 왕수복의 공연, 장검무의 나숙희 공연 모습이다. 이번 영상물은 북한에서 주체철학이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전인 1950∼1960년대 북한 공연예술의 모습을 알 수 있어 문화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최승희와 안막 사이에서 태어난 안성희는 어머니에게 춤을 배운 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발레무용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했다. 1967년 최승희가 돌연 숙청되자 안성희는 오빠(또는 남동생)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껏 행방이 묘연하다. ●왕, 이효석의 연인… 2년 사귀며 임종 지켜 이번 자료에는 북한 민속성악을 발전시킨 왕수복의 아리랑 단독 공연 실황도 흥미거리다. 왕수복은 12살에 평양 기생학교에 입학해 졸업 후에 레코드 대중가수로 진출했다.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린 왕수복은 신민요 가수이자 이탈리아 성악을 전공해 메조소프라노로도 활동했다. 1935년 잡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왕수복의 연애사도 화려했다.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으로 2년 사귀며 그의 임종을 지켰고, 1947년 시인 노천명의 약혼자였던 김광진 보성전문학교 교수와 결혼했다. 김광진과 함께 월북한 왕수복은 1959년 북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고 현재 애국 열사릉에 묻혀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연프리뷰] 카르멘

    [공연프리뷰] 카르멘

    이탈리아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청순가련형 소프라노였다. 1875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초연된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이 뒤집힌 건 그런 전통적인 여성상과 도덕관념을 무력화한 메조 소프라노 여주인공 카르멘의 모습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군인 돈 호세가 카르멘의 꽃을 받아든 순간 파멸은 시작된다. 여자 때문에 탈영하고, 쫓기던 그는 결국 다른 남자 품 안에 안긴 카르멘을 죽이고 만다. 알면서도 빠져드는 치명적인 매력의 팜파탈(나쁜 여자) ‘카르멘’은 창단 50주년을 맞아 국립오페라단이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오페라 1위로 뽑혔다. 응답자 1282명 중 697명(54%)이 선택했다. 덕분에 2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역대 최고의 캐스팅과 스태프들이 꾸민 ‘카르멘’을 보게 됐다. 현존하는 가장 매혹적인 카르멘으로 꼽히는 메조소프라노 케이트 올드리치(39)가 주인공을 맡았다. 2006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카르멘’으로 데뷔한 뒤 메트로폴리탄, 도이체오퍼, 베로나, 몽펠리에, 잘츠부르크페스티벌 등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페스티벌에서 이 역을 독식했다. 지난 16일 프레스 전막 리허설에서 올드리치는 왜 “이 시대의 카르멘”이란 찬사를 받는지를 입증했다. 1막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사내를 외면하고 돈 호세를 유혹하기 위해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는 물론 아슬아슬한 눈빛과 은근한 몸짓까지 카르멘 그 자체의 모습을 뽐냈다. 호흡을 맞출 돈 호세 역의 테너 장 피에르 퓌흐랑(51)도 만만치 않았다. 프레스 리허설에서 퓌흐랑의 연기와 노래는 사랑에 미쳐 파멸하는 남자의 모습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뚫고 객석 맨 뒤쪽까지 전달될 만큼 성량도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올드리치와 퓌흐랑, 강형규(에스카미요)가 출연하는 공연은 20일 오후 3시에 볼 수 있다. 19일과 20일 오후 7시 30분, 21일 오후 3시에는 김선정과 정호윤, 정일헌이 각각 카르멘과 돈 호세, 에스카미요 역을 맡는다. 테너 정호윤은 2006년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극장의 솔리스트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던 차세대 간판이다. 2008년에는 소프라노 신영옥과 함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번 무대의 연출은 200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관록의 연출가 폴 에밀 푸흐니가 맡았다. 프랑스 태생으로 현재 슬로베니아 국립오페라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벤자망 피오니에가 지휘한다. 1만~15만원. (02)586-536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고려오페라단의 ‘나라 사랑’ 아리아

    고려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이기균)은 1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작곡된 국내외 오페라 아리아들을 골라 갈라쇼 ‘위 러브 코리아’를 선보인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해설이 곁들여진다. 베르디의 ‘나부코’와 ‘아이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 벨리니의 ‘청교도’ 등 오페라의 고전들은 물론 류진구의 ‘안중근’, 박재훈의 ‘손양원’, ‘유관순’ 등 국내 창작오페라의 아리아를 들려줄 계획이다. CMK교향악단과 함께 오미선(소프라노), 이아경(메조소프라노), 김진추(바리톤), 신동원(테너), 함석헌(베이스) 등 성악가들과 라루체 합창단이 함께한다. 3만~12만원. (02)883-775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1948년 그 모습을 드러냈던 건국헌법에 대해 널리 알려진 해석은 한마디로 ‘날림 공사’다. 좀 있어 보이는 표현을 쓰자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어수선하던 해방 공간에서, 더구나 다가오는 광복 3주년에 맞춰 하루빨리 건국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급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을 꼭 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조항은 얼렁뚱땅 통과시키면서도 내각제만큼은 엄청난 몽니를 부려 대통령제로 뒤집었다는 정도다. 이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커 그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일정 정도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 주장이 한발 더 나아가면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독재자들은 시대 상황상 무죄라는 논리에 가닿는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 수준이 그 모양인데 그 좋다는 해외 명품을 가져다 놔 봤자 어디에다 쓰겠냐는, 대개 국민을 비하하고 독재의 불가피성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민도’(民度)라는 표현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 부분에서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건국헌법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만 어색해진다. 헌법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건국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대거 포함했다고 평가했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 이승만 정권에다 헌법상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을 정도로 좌편향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흥재 서울대 교수는 기업 이윤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하라고 못 박아 둔 건국헌법 18조, 소위 말하는 ‘이익균점권’ 조항이 경제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립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얘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나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이란 표현이 성립하느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김육훈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1948년 시한이 촉박했던 헌법기초위원회에서 건국헌법이 성립됐다는 그동안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 광복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적 시야 아래 건국헌법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선왕조에 망조가 들 무렵부터 광복한 직후까지 한국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저자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역사교과서모임 회장을 지냈고 초중고 및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의 연구모임인 역사교육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현직 역사 교사다. 그래서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듯 부드럽게 풀어 쓴 서술 또한 매력적이다. 저자는 3·1운동을 핵심에 놓는다. 그러니까 그 이전 시기는 왕조를 부활할까, 왕정보다는 그래도 입헌군주제가 낫지 않을까, 아니 차라리 왕정을 없애고 공화주의로 나갈까라는 각기 다른 생각들이 교차했던 시기로 본다. 그러나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마침내 왕정 복고 운동은 종말을 맞고 공화주의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근거를 든다. 3·1운동 와중에 고종의 친아들 이강을 상하이로 빼돌려 황제 중심의 임시정부를 구성하려다 실패한 대동단 사건이다. 오랜 습관 때문에 왕조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벌어진 일이었으나 이 사건 이후 왕조 부활 운동은 사라진다. 또 하나는 3·1운동 이후 각종 임시정부의 설립 운동이다. 대조선공화국을 내건 한성정부, 신한민국을 내건 경성독립단에다 너무도 잘 알려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이들 모두 각기 다른 국가명과 정부 조직 체계를 내세웠지만 핵심은 이들 모두 왕정 폐지와 공화주의를 선언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다 ‘3·1운동’을 못 박아 둔 것은 3·1운동이 일제에 한 방 먹인 통쾌한 사건이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작업에 관여한 이동년 임시의정원 의장은 “우리는 이제 군주제를 부활하려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해 뒀다. 이승만도 1948년 제헌의회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뒤 기념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1919년의 민국을 재건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니까 3·1운동을 계기로 이제 우리가 피땀 흘려 싸워서 되찾아야 할 나라는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합의에 모두가 도달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봐야 할 점은 이때의 민주공화국이 ‘우파 정체성’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조소앙이다. 그의 지향점은 1917년 상하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대동단결선언’에서 이미 확인된다. 조소앙이 기초하고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등이 관여한 이 문건에는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하는 때요,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곧 신한국 최초의 하루다. (중략) 그러므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들에 대한 묵시적 선위이니 우리 동지들은 당연히 주권을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라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대한제국 끝, 공화주의 시작’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이 논리 아래 조소앙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언, 1941년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등 헌법에 준하는 각종 문건 제정 작업에 참여했다. 그 내용도 눈길을 끈다. 조소앙은 기본적으로 우파였으나 좌우파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치열한 항일투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받아들일 내용이 많다는 점도 인정”했으나 “사회주의 러시아에서 무산자 독재란 이름으로 정치적 자유가 소멸되고 있음을 준열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돈 많은 이들과 많이 배운 이들의 독재가 이뤄진다.”고 봐서다.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 데모크라시”,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데모크라시”를 배격한 자신의 주장을 조소앙은 ‘신민주주의’라 불렀다. 이제는 한물간 듯한 표현을 빌리자면 조소앙식 제3의 길이었던 셈이다. 조소앙이 통합시켜 놓은 이런 큰 물줄기 때문에 길게 보면 남한의 건국헌법이 “자유경제를 주장하면서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북한의 첫 헌법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를 두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소앙을 일컬어 “헌법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좀 더 전문적인 논의를 원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서희경 지음, 창비 펴냄)을 참고해도 좋다. 헌정사 연구자인 저자는 만민공동회에서 시작해 3·1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의 헌법과 규약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 헌법의 원형질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앞선 저자의 논지와 일치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동시에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공화주의의 효시로 꼽고 이에 참여한 조소앙의 중요성을 부각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근대 한국 헌법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동안은 유진오가 그런 인물에 해당한다고 평가됐다. 1945~48년만을 놓고 보면 유진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조소앙의 역할이 한층 더 근본적이고 유진오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해뒀다. 더 두껍고 학술적이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입체적 묘사가 돋보인다. 각 권 1만 5000원, 3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가을 문턱서 누구나 즐기는 발레·오페라 페스티벌 풍성

    가을 문턱서 누구나 즐기는 발레·오페라 페스티벌 풍성

    8월 말부터 오페라와 발레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 줄줄이 열린다. 비교적 쉬운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관람료를 저렴하게 책정해 ‘어려운 오페라’와 ‘값비싼 발레’라는 벽을 해체하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쉽고 감성미 넘치는 발레 국내외 유명 발레단체가 참여하는 ‘2012 서울국제발레페스티벌’이 오는 23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과 예술가의집 등에서 열린다. 23일 개막공연부터 국제발레페스티벌 성격을 제대로 보여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어떤 죽음’(Petite Mort),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발레단의 ‘칙 투 칙’,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박세은·피에르 아르튀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차이콥스키’ 2인무(최영규·권세현), 베네수엘라 CPBC의 ‘파사칼리아’(파비오 핀에이로·파트리시아 엔리케스) 등 다국적으로 준비했다. 세계 발레계의 젊은 무용수들은 24~25일 영스타 클래식에서 만날 수 있다. 박세은과 아르튀르의 ‘아다지오토’, 최영규 권세현의 ‘돈키호테’, 김리회·정영재(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원진호·나대한(한국예술종합학교)의 ‘라 실피드’를 공연한다. 20~50대 무용수들이 꾸미는 ‘발레 2050 프로젝트’는 30일부터 열린다. 현대무용 안무가 정연수는 20~30대 무용수들과 작업한 신작을 내놓고, 독일에서 활약하는 안무가 허용순은 40~50대 무용계 인사들과 호흡을 맞춘 작품을 선보인다. 젊은 감성과 노련한 완숙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밖에 창작 발레 신인안무가전, 국내 3대 발레단의 최태지·문훈숙·김인희 단장이 들려주는 명작해설발레,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수진의 마스터 클래스도 마련했다. 공연별로 2만~10만원. (02)538-0505. ■젊고 관록 넘치는 오페라 젊고 창의적인 오페라를 올리는 ‘대학 오페라 페스티벌’과 64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오페라단의 ‘오페라 페스티벌’이 비슷한 시기에 열린다. ‘대학 오페라 페스티벌’은 예술의전당이 오페라계를 이끌 신진 음악가를 발굴하고 오페라 관객 저변 확대를 위해 지난 2010년부터 3년 프로젝트로 추진한 행사다. 25일부터 새달 1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에는 한양대·국민대·상명대가 관객을 만난다. 한양대는 베르디의 관현악법이 두드러지는 오페라 ‘리골레토’(지휘 최희준·연출 이범로)를, 국민대는 푸치니의 유일한 희극인 ‘잔니 스키키’와 ‘수녀 안젤리카’(지휘 김훈태·연출 정갑균)를 준비했다. 상명대는 많은 오페라팬에게 친숙한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지휘 마이클 쾰러-호프만·연출 최지형)을 공연한다. 1만∼4만원. (02)580-1300. 올해로 창단 64주년을 맞는 조선오페라단은 NH아트홀과 손잡고 23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충정로1가 NH아트홀에서 ‘제1회 오페라페스티벌’을 연다. “수준 높은 오페라를 쉽고 가깝게, 또 비싸지 않게 감상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는 오페라단의 설명대로 프로그램은 많은 사랑을 받는 비제의 ‘카르멘’(연출 최이순)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연출 김숙영)로 채웠다. 테너 이정원·이동명·김도형·신재호, 소프라노 김희정·정꽃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박수연, 바리톤 박경준·조영두 등 막강 출연진이 눈에 띈다. 3만~7만원. 1599-2299.
  • “대한민국 이름 지은 사람은 조소앙…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첫걸음”

    “대한민국 이름 지은 사람은 조소앙…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첫걸음”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한 의미는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임정 내부에서 왕정복귀 주장 적지 않아 이완범(오른쪽)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 조계지 내 허름한 셋집에서 열린 임시정부의 첫 의정원(국회)에서 결정한 국호의 의미를 1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당시 임시정부 내부에서 왕정복귀의 주장이 적지 않았지만 신석우와 조소앙, 여운형의 반대로 공화제인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정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망명정부였지만 민권의식이 성장했던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독립운동가 신석우 의원이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자고 제안했으며, 표결을 통해 대한민국이 국호로 채택됐다고 알려졌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조소앙(趙素昻·왼쪽·1887~1958) 선생은 자서전에서 대한민국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조소앙의 ‘자전’(自傳)과 ‘회고’(回顧)에 따르면 ‘나는 의정원의 창립자로, 10조 헌장(임시헌장)의 기초자로, 대한민국의 명명론자로, 위원제의 주창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오는 7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광복 67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연구논문 ‘국호로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대한제국은 조선왕국·대한민국 이어준 징검다리” 이 교수는 “대한제국은 조선왕국과 대한민국을 이어준 징검다리였으며 그 사이에 역시 징검다리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재차 왕정복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남북통일정부 구성을 호소했던 김구를 견제하던 이승만이 여러 논의를 중단시키고 대한민국 안을 통과시켰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여름밤 시원한 야외공연에 신바람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지속된다.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이기는 것도 열대야를 버티는 좋은 방법일 터. 속속 생기는 여름밤 야외 공연을 눈여겨보면 멋진 공연과 함께 더위도 날리고 추억도 덤으로 챙길 수 있다. 서울 필동 서울남산국악당은 8월 8~12일 ‘2012 별빛 달빛 콘서트’를 선보인다. 남산 자락 아래서 잔칫집에 놀러온 듯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으면서 편안한 분위기로 즐기는 야외 공연이다. 8일과 10~11일에는 서울시극단이 마당극 ‘신(新)흥보전’을 펼친다. ‘생각을 바꿔 보는’이라는 부제대로,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가 아니다. 흥보는 ‘인생은 한 방’을 목표로 달리는 동생, 놀부는 동생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사려 깊은 형으로 설정했다. 해학과 풍자가 신나면서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재미를 준다. 본마당 전에는 버나놀이, 상모돌리기 등 길놀이로 흥을 돋운다. 9일에는 생황과 첼로가 만나 어우러지고 우리 소리를 아카펠라로 풀어 내는 공연이 열린다. 생황 연주자 김효영이 피아니스트 박경훈, 첼리스트 김재준과 창작곡을 선보인다. 판소리·경서도민요·정가 등 우리 소리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국악아카펠라 토리’S도 출연해 색다른 국악의 매력을 뽐낸다. 12일에는 퓨전국악그룹 바이날로그가 대금, 소금, 단소, 태평소, 해금, 아쟁, 드럼, 베이스기타, 피아노, 타악기 등 전통악기와 서양악기를 아우르며 왈츠보다 경쾌하고 록보다 강렬한 무대를 선사한다. 5000원. (02)399-1114~6. 경기도문화의전당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중간휴식 시간에 와인파티를 하는 유럽식 야외 콘서트를 기획했다. 8월 11일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콘체르탄테 한여름 밤의 향연’이다. 오페라 콘체르탄테는 오페라에서 연기 부분을 축소해 노래 중심으로 극을 진행하는 오페라로,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형식이다. 구자범 지휘자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소프라노 서혜연, 테너 신동원, 바리톤 유동직, 베이스바리톤 권영명, 메조소프라노 정수연·김선정, 테너 이장원 등이 무대에 선다.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를 준비했다. 1부 연주가 끝난 뒤에는 스탠딩 파티가 열려 와인과 음식을 즐기고, 연주자들과 자연스러운 만남도 가질 수 있다. 19세 이상. 3만~5만원. (031)230-332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국현대 조각 선구자’ 우성 김종영 30주기 특별전

    ‘한국현대 조각 선구자’ 우성 김종영 30주기 특별전

    김종영 미술관(관장 최종태)은 7월 26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우성 김종영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김종영 그 絶對를 향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소묘, 서예 등 모든 분야에서 상승의 경지를 이룩한 거장 김종영의 예술적 면모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조각가 우성 김종영(1915~1982)은 한국현대 조각의 대부로 한국 근 현대 조각사에 큰 획을 그은 예술가이다. 치열한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반성과 자아성찰을 통해 예술 활동에 전념했으며 미술의 상업화를 경계하고 치열한 작가정신을 자기수양의 덕목으로 삼아 활동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며 서울대학교의 학풍을 세우고 한국 현대조각의 주춧돌을 마련한 교육자로도 인정받았다. 우상 김종영의 조각세계는 모더니즘예술의 이념이자 기초정신이기도 한 단순미와 물질과 정신을 잇는 진리체계의 파악 그리고 남다른 실험정신이 모여 만들어 졌다. 특히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추구했던 예술성은 진리와 미가 합치되는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시회는 김종영 미술관 본관 불각재와 신관 사미루 전관에서 열린다. 불각재에서는 다양한 재료와 양식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신관 사미루에서는 입체와 드로잉, 지필묵과 도구를 전시하는 쇼케이스 및 김종영의 작품세계를 안내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서예 작품들과 함께 김종영의 대표작인 ‘철조<전설>’도 선보인다. 김종영 미술관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거장 김종영의 예술이 지닌 전통과 현대의 미를 선사할 것”이라며” 대중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이 서구화된 산업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전통의 융합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뉴스팀
  • [영화프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프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길은 할리우드에서 꽤 팔리는 시나리오 작가다. 돈벌이에는 관심 없던 그는 시나리오를 접고 통속소설도 아닌 순수문학으로 전업을 결심한다. 때마침 ‘된장녀’인 약혼녀 이네즈와 미래의 장인·장모와 함께 파리여행을 간다. 쇼핑과 관광에만 몰두하는 그들과 달리 길은 위대한 예술가의 도시 파리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뿐. 어느 날, 자정을 알리는 종이 열두 번 울리자 거리를 홀로 산책하던 길 앞에 클래식한 푸조 승용차가 멈춰 선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1920년대 파리. 평생 동경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F 스콧 피츠제럴드, T S 엘리엇, 루이스 부뉴엘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을 만나 친구가 된다. 그리고 헤밍웨이와 피카소를 동시에 애타게 했던 여인 아드리아나와 묘한 감정에 빠진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뤘다. 그렇다고 공상과학(SF) 영화는 아니다. 지적이고 재치 있으며 로맨틱하고 귀여운 판타지다. 시니컬한 풍자와 조소를 즐기던 뉴욕 깍쟁이 앨런의 영화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정점에 서 있는 듯하다. 앨런이 헌사를 바친 파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매력적인 도시다. ‘파리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는 극 중 길의 대사가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여든 살을 눈앞에 둔 노감독(77세)의 한 수 가르침도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약혼녀와 그 가족들에게 질린 길은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하지만 1920년대 파리 사교계에서 ‘만인의 여인’이던 아드리아나는 툴루즈 로트레크, 폴 고갱 등이 활약했던 1880~1890년대 파리야말로 진정한 ‘벨에포크’(황금시대)라며 추앙한다. 이 대목에서 길은 깨달음을 얻는다. 과거로 회귀하고픈 욕망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과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했도 그때의 사람들은 ‘대과거’를 동경한다는 것을, 결국에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다. 지난해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작품을 배우들이 튀지 않는 연기로 품격을 더했다. 길 역의 오언 윌슨과 아드리아나 역의 마리옹 코티아르가 최적의 캐스팅인 것은 물론이다.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살바도르 달리)와 케시 베이츠(거투루드 스타인)를 비롯해 로맨틱 영화의 단골 여주인공 레이철 맥애덤스,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카를라 브루니(박물관 가이드) 등이 조연에 머문 건 우디 앨런의 영화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터. 해외에서는 지난해 5월 개봉했다. 불과 1700만 달러(약 19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미드나잇 인 파리’의 흥행수익은 1억 5111만 달러(약 1737억원). 앨런 감독의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인 셈. 평점을 취합하는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영화의 신선도를 93%로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5일 개봉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통진당 혁신안은 유시민 작품

    통진당 혁신안은 유시민 작품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새로나기특위가 지난 18일 발표한 당 혁신방안이 쇄신을 주도하고 있는 신당권파 내에서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신당권파 측 후보로 나선 강기갑 비대위원장의 기반세력인 민족해방(NL)계열 정파 인천연합이 반대하고 있어 새 지도부가 들어서더라도 원안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새로나기특위는 혁신안에서 북한 인권에 우려를 표시하고 북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3대 세습 문제에 대해서도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벌해체론과 강령 중 주한 미군 철수 조항에 대한 재검토 의지도 내비쳤다. 그러나 인천연합의 한 핵심관계자는 “새로나기특위의 쇄신안은 하나의 시각일 뿐”이라며 “보고서 내용이 모호한 데다 혁신비대위의 동의나 승인의 과정도 없었다. 채택되려면 상당한 토론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연합의 미온적 태도로 혁신안의 힘이 빠지자 신당권파 일부에선 “쇄신에 동참한 인천연합이 여전히 과거 NL계열 논리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NL계열의 또 다른 정파인 ‘울산연합’의 강병기 당 대표 후보는 이날 혁신안에 대해 “명백한 진보적 가치의 후퇴”라고 대립각을 세웠다. 새로나기특위의 혁신안 중 북한인권·북핵·3대 세습·주한 미군 철수 부분은 유시민 전 공동대표의 측근이자 참여당계인 천호선 전 대변인이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부분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승호 부소장이, 총론은 시민사회계의 박원석 의원이 작성했다. 일부에서는 혁신안에 대한 NL계열 정파들의 집단 반발이 구참여당계 견제 심리에서 시작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구당권파는 혁신안을 둘러싼 신당권파의 내분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의엽 전 정책위의장은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정체성, 당원에게 듣는다’는 주제로 공청회를 열어 “이런(혁신안)주장을 하는 분들은 당 활동도, 선거도 한 번도 안 한 분들”이라며 “새로나기특위의 보고서가 그대로 통과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 높이보다는 민중의 눈 높이, 노동자·농민의 눈높이가 강조돼야 한다.”며 “당을 위해 한결같이 헌신해 온 분들을 믿지 못하고 국민의 눈 높이를 얘기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공청회에선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당을 쇄신하겠다고 밝힌 신당권파에 대한 조소가 오갔다. 구당권파는 이날 당 지도부 선거에 집중하겠다며 당원비상대책위원회를 해산했다. 울산연합 측의 강병기 후보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당권 다툼에서 한 발 물러서 ‘백의종군’하는 듯한 모습을 대외적으로 내보이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한편 박원석 새로나기특위 위원장 측은 22일쯤 구당권파의 이상규 의원과 당 쇄신안을 놓고 ‘맞짱 토론’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오늘 부처님 오신 날] 1600년 절집, 서양미술을 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 1600년 절집, 서양미술을 품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27일 인천 강화군 온수리 전등사 무설전(無說殿) 공사 현장. 김영원(65) 홍익대 조소과 교수, 오원배(59) 동국대 서양화과 교수, 이정교(51) 홍익대 공간디자인과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절반가량 진행된 법당의 공정을 확인하러 나온 이들은 무설전의 불상, 불화, 공간구성을 각각 맡고 있다. 서양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어떻게 ‘전통의 벽’이 높은 불사에 손을 대게 됐을까. 원래 전등사(381년 고구려 때 창건)에서는 템플스테이에 쓸 건물을 짓고 있었다. 이것을 본 오 교수가 지난해 이맘때쯤 “이왕 할 불사라면 새로운 방식으로 해 보자.”고 전등사 측을 설득했다. 옛날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미술가들이 현대적 감각으로 새로운 걸 한번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작가들로서는 도전이겠지만, 절의 입장에서는 모험이다.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이 고심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일은 시작됐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아랫부분 공간만 따로 떼내어 딴판의 설계에 들어갔다. 절집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전통불교와 서양미술의 짜릿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18억원이라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용을 들인다. 지난 4월부터 재공사가 시작됐고 9월 불상이 들어오면 마무리된다. 욕심낸 이유를 묻자 세 교수 모두 호흡이 척척 맞았다. “부처와 대중이 한 몸이라는 것, 그래서 깨달음도 바깥에서 찾지 말고 자기에게서 찾으라는 것, 그래서 모든 대중이 부처라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꾸 부처를 높이다 보니 부처가 마치 별개의 존재처럼 만들어지면서 부처에게서 인간의 모습이 사라졌어요. 인간의 모습을 되돌려 놓고 싶어요.”(김 교수) “서양미술사를 보면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 십자가 도안 같은 것에서 시대의 변화가 읽혀져요. 그런데 우리 불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어요. 시대가 안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100~200년 뒤 후손들이 지금의 불화를 봤을 때 ‘아, 100~200년 전에는 저렇게 살았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오 교수) “설법하는 곳은 부처가 대중과 가장 친숙하게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전체 공간의 콘셉트를 ‘만남의 광장’으로 정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이것저것 볼거리가 있어서 꼭 신자가 아니어도 기웃댈 수 있는 공간이 목표입니다.”(이 교수) ●불상마다 캐릭터 부여해 친근하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 김 교수는 제작 중인 불상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으로 보여 줬다. 주불은 1m 60㎝, 그 옆에 배치될 협시불 4개는 1m 40㎝ 높이다. 모두 잘생기고 늘씬해서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럼요. 전 정말 아름다운 불상을 만들 겁니다. 고려시대 불상은 무신정권의 영향 때문에 너무 용맹한 모습이에요.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 때문에 손재주는 있다 해도 비전문가인 스님들이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머리가 크고 인체 비례에 안 맞는 불상이 많아요.” 불상마다 캐릭터도 부여했다고 한다. “주불은 그야말로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입니다. 대웅이라는 게 큰 수컷이라는 뜻이잖아요. 대신 관세음보살에겐 다정한 엄마, 보현보살에게는 앳된 여성, 지장보살에겐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문수보살에겐 유니섹스한 매력을 넣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봐도 ‘거 참 멋지다’ 할 수 있도록요.” 이번 작업에 관심이 많은 이기선 불교조형연구소장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를 떠올리면 됩니다. 원래 불경에도 깨달음을 얻으며 벌린 팔의 길이가 키와 똑같다는 식으로 인체비례에 대한 언급이 나와요. 고대 인도와 서구의 문명교류 때문이에요. 그게 서양에선 다빈치로, 동양에선 불상으로 이어진 거죠. 석굴암 본존불을 보세요. 비례가 환상의 극치잖아요. 신라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일본이 아끼는 국보 중에 호류지(法隆寺) 백제관음상이 있어요. 백제가 만들어 일본에 준 것인데, 앙드레 말로가 감탄했을 정도로 비례미가 빼어나요. 그 전통이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차츰 사라져 버린 거죠.” 불상은 원래부터 쭉쭉빵빵이었다는 얘기다. 주불은 프레스코 기법의 탱화에 둘러싸인다. 이 부분은 오 교수가 맡았다. 우선시한 것은 공간의 성격이었다. 명칭 자체가 무설전, 그러니까 설하지 않고 설을 전파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림을 좀 달리 그렸습니다. 보통 불화는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하는데 저는 제자인 가섭과 아난을 부처 제일 가까이에 그렸습니다.” 권위적이기보다 다정한 부처를 그려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설법을 하는 곳이라면 제자가 부처 곁에서 친근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어울린다고 봤어요.” ●탱화엔 프레스코 기법 넣어 거부감 없게 무설전 입구 왼쪽 벽에 걸어 둘 탱화도 완성된 뒤 꼭 보라고 권했다. 붉은 안료 바탕에다 얇은 은색 선을 넣어 그리는데, 일단 색을 부드럽게 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불화를 두고 무섭고 이상하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강렬하니까 위협적이고 이질적이어서 당집 같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걸 자연스럽게 풀어 주고 싶어요.” 주불 뒤의 불화에다 프레스코라는 서양화 기법을 적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프레스코라는 게 결국 물감을 벽에다 흡착시키는 거예요. 기존 불화는 발색이 너무 강렬해서 서양미술하는 사람들은 불편해하거든요. 벽에다 흡착시키면 장엄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렬한 발색으로 인한 거부감을 확 줄일 수 있는 거지요.” 등장인물도 파격적일 거라고 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같은 현대 악기들이 등장하고요, 몇몇 인물은 베레모를 쓰거나 쌍꺼풀 수술한 자국도 있을 거예요.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그림을 봤을 때 ‘아, 저게 바로 우리 모습이지’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법당은 베네치아 광장처럼 편안하게 전체적인 그림은 이렇게 된다. 주불 뒤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불화가, 협시불 뒤에는 천불상이 들어선다. 눈길을 끄는 건 이들 불상이 모두 하얀색, 그러니까 백색불이라는 것. 무설전 입구에 들어서면 높이 3.5m, 너비 28m에 이르는 정면 공간에 햐얀 부처가 가득 들어찬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노리는 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런 표현이 어울릴까 모르겠는데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느낌, 그러니까 조명을 비추면 불상은 하얗게 빛나면서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로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존 법당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약간 낯설 수도 있지만, 산 속에 있는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이 교수의 포인트도 ‘한발 빼기’다. “중간중간에 배흘림기둥 형식을 배치해 둬서, 비유하자면 베네치아 광장 같은 분위기를 낼 겁니다. 그 누구보다 불자들이 이 공간의 주인인 만큼 너무 나서기보다 물러서서 내주는 공간으로 구성할 겁니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이해받기 어려운 법이다. 오 교수는 “우리가 하는 것을 완벽하다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동상에다 광화문 세종대왕상도 만들었다. 참 많은 말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이런저런 말이 없다면 그건 졸작이란 뜻”이라면서 “오히려 조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냥 법당이 아니라 법당을 넘어선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남아 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웃었다. 강화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특파원 칼럼] 블랙아웃 공포, 일본에서 배워라/이종락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블랙아웃 공포, 일본에서 배워라/이종락 도쿄 특파원

    지난해 일본은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무더위를 겪었다. 6월 말부터 도쿄 도심의 기온이 섭씨 35~40도를 오르내렸다. 여름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1.6도나 높았다.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1600명으로 예년의 8배 이상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보다 동쪽에 위치한 일본은 일출 시간이 빠르다. 초여름부터 새벽 5시만 지나면 태양이 쬔다. 기자가 살고 있는 맨션은 동향이다. 햇볕을 그대로 받아 이른 아침부터 수은주가 급상승한다. 쏟아지는 땀으로 자주 잠을 깼다. 더위를 견디다 못해 에어컨을 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실외기 소음이 워낙 커 여러 번 망설였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전력난을 겪던 일본인들이 에어컨을 켜지 않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더운 기운이 바로 턱 밑에서 엄습했다. 지난여름 내내 냉방 설정온도를 28도로 맞춰 놨기 때문이다. 러닝셔츠만 입고 있다가 누가 노크라도 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하철 역내 플랫폼은 설정온도를 31도로 맞췄다. 출퇴근길에 열차 안에서 다른 승객들과 몸이 닿으면 서로 땀이 스친다. ‘지옥철’이라는 말 그대로다. 백화점과 점포는 실내온도를 30도로 올렸고 조명은 70% 줄였다. 한국의 상점들처럼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화장실에는 이색 글귀가 걸려 있다. 용무를 본 뒤에는 반드시 전등을 끄라는 안내판이다. 화장실을 나갈 때 무의식적으로 스위치를 내렸다가 좌변기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기자가 가끔 가는 도쿄 메구로의 스시집 주인 할아버지는 가게 문을 닫으면 양초를 사러 다녔다. 정전사태를 걱정해 집에 돌아가면 전기 대신 양초를 켜 놓고 지낸다고 했다. 일본 정부와 전력당국이 도쿄 등 수도권과 원전 사고가 발생한 도호쿠(동북) 지역에 15% 절전을 의무화한 것이 지난해 7월이었다. 규제 대상을 기업과 상업용 빌딩으로 한정했지만 가정집까지 대거 동참했다. 물론 계획 정전도 있었으나 절전율 21%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올해 여름에는 오사카 등 간사이 지역에 정전사태가 우려된다.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30%가 넘는 간사이 지역에 모든 원전의 가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올여름 하루 두 시간씩 에어컨 가동 없이 무더위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지난해 수도권과 도호쿠에 이어 올해 간사이 지역도 정전 위기를 잘 넘길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모자라는 전기를 ‘초(超)절전’ 의식으로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 전력 사정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들었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걱정된다고 한다. 올여름 전력 수요가 최대 7700만㎾에 이를 전망이다. 전국의 발전소가 풀가동해야 만들 수 있는 최대 공급량 7940만㎾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지식경제부 고위관계자가 지난 15일 도쿄를 방문해 전력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대규모 정전사태를 피하기 위해 전기료를 인상하거나 국민 절전운동을 전개하는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전기료 인상은 즉각적인 저항에 놓일 게 뻔해 범국민적인 절전 캠페인을 시작해야 하지만 국민들이 선뜻 따라 줄지 염려된다고 했다. 기업들은 과태료를 물더라도 공장 가동을 위해 전기를 쓸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음식점은 손님 다 떨어진다고 볼멘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의 고민을 들으면서 지난해 9월 서울과 경기 등에서 일어난 정전사태가 떠올랐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블랙아웃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정작 정전사태는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조소가 잇따랐다. 이들의 지적이 귀에 거슬리지만 전력난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일본인의 절전 의식만은 배워야 할 때다. jrlee@seoul.co.kr
  • [부고]

    ●김명환(서울대 영문과 교수)씨 부친상 이동익(한국투자공사 전무)씨 장인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6 ●서성호(노벨리스코리아 이사)성일(GM Tex 대표)성모(포스코 전문연구원)씨 부친상 장민영(기업은행 IR부장)씨 장인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2072-2011 ●성금선(잠실고 교사)씨 별세 서양원(매일경제신문 경제부장)씨 부인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30분 (02)3410-6915 ●김현승(전 일간스포츠 스포츠데스크)씨 모친상 6일 순천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61)721-1444 ●김두제(고려디자인 대표이사)조용명(조소아과의원 원장)강연국(한국씨티은행 개인심사부 부부장)씨 장인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31 ●이관희(충암고 교사)씨 별세 권연선(건강보험심사평가원 차장)씨 남편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2227-7556 ●박장규(전 육군본부 감찰감실)씨 별세 종현(서울성락교회 목사)종권(경기대명 대표)씨 부친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5시 (02)2227-7587 ●채승우(조선영상비전 멀티미디어 영상부 차장)승훈(자트코 코리아 엔지니어링 수석연구원)씨 모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2 ●이천표(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성표(사업)씨 모친상 5일 건국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2030-7901
  • “수족관 속 활어 월급쟁이 내 신세 닮아 리얼리티 살리려 횟집 아르바이트도”

    “수족관 속 활어 월급쟁이 내 신세 닮아 리얼리티 살리려 횟집 아르바이트도”

    화가를 꿈꾸던 이대희 감독은 뒤늦게 색약(2도 색약)이란 사실을 알고 조소 전공으로 대학을 갔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이현세 만화가가 색약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고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로 진로를 틀었다. 2003년 어느 날 그는 회사 근처 횟집에 들렀다. 수족관에 빼곡히 들어찬 물고기와 ‘교감’을 한 건 그 순간이었다. 애니메이션 기획·제작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는 자신의 현실과 횟집 수족관에 갇힌 활어의 처지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상영된 이대희(35) 감독의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그렇게 시작됐다. 순제작비 10억원이 투입된 ‘파닥파닥’은 망망대해에서 잡힌 고등어 ‘파닥’이 어촌의 한 횟집 수족관에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파닥’은 틈만 보이면 수족관 밖으로 몸을 내던진다.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뿐이다. 그런데 수족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올드 넙치’를 비롯한 다른 활어들의 시선은 싸늘할 따름이다. 하지만 자유를 찾으려는 ‘파닥’의 몸부림이 계속되면서 양식장 출신들도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한다. ‘파닥파닥’이 전주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을 한 지난 1일 이 감독을 만났다. ‘파닥파닥’의 기획은 2007년부터 구체화됐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사표를 던진 이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횟집 취업이었다. 영화 엔딩크레딧의 ‘스페셜 생스 투’(제작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부분)에 횟집 이름이 네 개나 나온 연유다. 이 감독은 “2007년 말쯤이었다. 사표를 내고 나온 터라 돈도 필요했다. 낮에는 백화점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나르고 틈틈이 각본을 쓰고 저녁에는 대형 횟집에서 아르바이트했다. 6개월쯤 주로 서빙을 했고 전어를 딱 한 번 떠봤다.”며 웃었다. 덕분에 ‘파닥파닥’ 각본은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리얼리티를 얻었다. 횟감으로 테이블에 올라 힘겹게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고등어에 담배를 물리는 몰상식한 손님이나 뜰채로 활어를 건져 관상용 금붕어가 있는 작은 어항에 빠뜨리는 짓궂은 꼬마 등 작품에 녹아든 일화들은 그가 횟집에서 목격한 장면에서 비롯했다. 편집에서 빠졌지만 ‘파닥’이 바다에서 그물에 걸리는 과정을 묘사하려고 강원도 속초 동명항에서 고깃배를 타기도 했다. 미술감독, 촬영감독과 함께 올랐다. “(바다에서 잘못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간신히 허락을 얻었다. 손바닥만 한 고깃배였는데 처음에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 것처럼 재밌었다. 먼바다에 나가자 파도가 요동쳐 밧줄로 몸을 배에 묶어놓은 채 간신히 버텼다. 온갖 구멍으로 분비물을 토해냈다.” ‘파닥파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고등어, 넙치, 놀래미(원래는 ‘노래미’가 맞다.), 붕장어, 줄돔, 농어, 도미 등 어류들의 성향에 착안해 캐릭터를 설계했다는 점. 낚시를 할 때 잡았다가 다시 놓아줘도 3초 만에 바늘에 걸린다는 놀래미는 아둔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밤에 먹이를 포획하는 성향을 지녀 ‘바다의 갱’으로 불리는 붕장어는 1인자에게 복종하지만 동지도 먹이로 삼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파닥’과 관련해 이 감독은 “고등어는 직진하는 성격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곧잘 욱한다. 저돌적인 행동파로 봐야 한다. 횟집 어항에 들어오면 계속 벽에 몸을 부딪쳐 코가 깨지고 멍들어 일찍 죽는다는 점에 착안해 바다로 탈출하려 하는 집념의 캐릭터로 삼았다.”고 말했다. ‘웬만한 횟집에서는 고등어를 구경도 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가을에 딱 2주 나온다. 우리가 아는 고등어처럼 등이 푸른색이 아니라 형광등 불빛처럼 희멀건 색이라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출신 성분(바다 혹은 양어장)에 따라 수족관 내 계급과 서열이 결정된다든지, 절대 권력의 전횡에도 모두가 침묵하는 설정은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그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정면에 내세울 생각은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자유 의지를 말하고 싶었다. 바다로 돌아가려는 고등어의 의지가 꿈이 없는 현실에 만족한 채 근근이 살아가던 놀래미와 넙치의 생각마저 바꿔 놓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애니메이션 관객 기록을 갈아치운 ‘마당을 나온 암탉’, 평단과 마니아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낸 ‘돼지의 왕’에 이어 토종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이끌 기대작으로 꼽혀온 만큼 영화제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처음부터 수족관을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으로 표현하길 원했는데 생각보단 어두운 톤으로 나왔다.”면서 “(인간 세계에 잡혀 온 열대어의 탈출기를 그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기대한 분들이야 실망하겠지만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7~8월에 50개 안팎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했다. ‘파닥파닥’의 제작비 10억원 중 절반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지원받았지만 나머지는 이 감독이 대출을 받는 등 스스로 마련했다. “기획 때만 해도 투자를 받는 데는 관심도 없었다. 하물며 캐릭터 상품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땐 어렸던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일까. 차기작으로는 다섯 살짜리 딸도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디즈니풍은 아닐 거다. “악당과 마녀, 사악한 계모는 잔인한 최후를 맞고 착하면 행복하게 산다는 식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담고 싶지도 않고 그게 교육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전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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