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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6)충담(忠談),백성을 사랑하는 노래

    765년 신라 경덕왕 24년 봄이었다.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강압통치를 시작한 지 100년이 되던 760년,경덕왕은 승려 월명(月明)에게 부탁하여 ‘도솔가’를 짓게 했다.국가의 큰 변괴를 막고 화평을 가져오도록 해 달라고 하늘에 비는 기도의 노래였다. 흔히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력으로 정벌하고 두 나라 백성들을 잔혹하게 짓밟아 복종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한 때를 통일신라시대라 부른다.‘통일’이란 말이 지닌 미묘한 정치적 갈등과 인권탄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그래서 늘 긴장과 불화가 삶을 온통 짓이겨 놓은 것을 통일이라는 단어 속에 억지로 가둬버린 사실을 뜻밖에도 경덕왕은 간접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은 나라를 빼앗긴 지 한 세기가 되도록 끈질기게 저항했다.저항은 때때로 크고 작은 지역민의 반란으로 나타나거나,농사 지은 곡식을 세금으로 내지 않고 항의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거나,신라식 지명 표기를 거부하거나,신라 정부가 내린 명예직 직함을 던져 버리기도 했다.그 점을 경덕왕은 ‘변괴’라고 본 것이다.화평을 하늘에 기원한 것은 지난 한 세기가 얼머나 많은 불화와 피를 부르는 갈등으로 점철되어 왔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경덕왕 대중에 인기있는 충담에게 安民歌 부탁 백제와 고구려 정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 경덕왕은 도솔가를 지어 전국에 보급시키면서 통일신라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우고자 했었다.그런데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은 여전히 저항을 계속했다.760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옛 백제와 고구려 땅의 모든 지명을 신라 명칭으로 바꾸면서 행정구역까지 바꾸어 유민들의 결속력을 느슨하게 하고,지역의 관습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경주의 신라 정권이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경덕왕은 다시 충담에게 백성을 사랑하고 세상이 편안하게 될 수 있는 안민가(安民歌)를 부탁했다.충담이란 승려는 신라 전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이자 노랫말 작사가였다.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충담의 이름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 것이다. 충담은 왕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는지를 노래했다.충담은 백성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정치가 올바르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백성들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즉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백성에게 먹는 문제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백성의 기본적 의식주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면 백성들은 그 나라와 임금을 하늘처럼 여기게 되고,웬만한 환란이 있어도 나라를 버리고 떠나지 않게 되며,이것이 바로 바른 정치라는 유교적 철학을 펼쳐 보였다.실제로 신라에 정복당한 고구려와 백제 땅에서는 신라의 조세정책이 균등하지 않은 점 때문에 배고픈 백성들이 일본이며 중국으로 도망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탈출하여 만주 벌판을 떠도는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아프게 되짚어 보게 하는 옛 역사기록이다.765년 어느 봄날,경덕왕이 승려 충담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삼국유사는 매우 자세하게 그려 놓고 있다. ●봄 가을 남산 삼화령 미륵불상에 茶공양 왕이 그 해 삼짇날(3월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라가 있다가 충담을 만난다.그때 충담은 허름한 옷차림이었고 등에는 앵통(櫻筒)을 짊어지고 있었다.벚나무로 짜맞춘 통으로,그 안에다 생활 도구를 넣고 운반하거나 할 때 사용하는 생활 용품이었다.왕이 어디 갔다 오는지를 묻자 충담은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불상에게 차를 끓여 바치고 오는 길이라 대답한다.그러자 왕이 자신에게도 차 한 잔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충담이 앵통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도구를 꺼내어 차를 달여 왕에게 내놓는다.왕은 차를 마신 뒤 그릇에서 좋은 향기가 풍겨나는 것을 감상한다.그런 다음 ‘안민가’를 짓도록 부탁하여 즉석에서 시가 완성되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충담이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 두 차례에 걸쳐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불상 앞에 차공양을 해 오고 있다는 대목이다.또한 경덕왕도 차(茶) 마시는 일이 낯설거나 서툴지 않고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신라왕실과 차문화는 이미 선덕왕(632∼647) 때의 기록에 나타나 있고,661년에는 문무왕이 종묘사직에 차를 올리고 있으며,718년에는 신라의 왕자 김교각이 중국 구화산으로 출가하면서 신라의 차종자를 가져가서 심은 것이 오늘날의 금지차(金枝茶)이며,뒤이어 765년 충담의 미륵불 헌다 사실이 이어진다.이 사실은 중국 차문화의 성인(聖人)으로 존경받은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펴낸 760년보다 무려 100년 더 앞서 신라에 차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신라 왕자 김교각 中에 茶종자 전파 더욱 기이한 것은 고려 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기록에 통일신라의 대렴이란 자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차 종자를 구하여 돌아와 지리산록에 심은 828년을 우리나라 차문화의 기원으로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우습고도 부끄러운 기록이 ‘삼국사기’라는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오늘날 한국의 차문화 연구자는 물론 수많은 차인들이 이 기록을 그대로 믿고 따라간다는 것이다. 선덕왕 때의 차문화 역사로 따져 무려 200여년이나 뒤의 일을 어찌하여 기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 충담이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불상 앞에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씩 헌다했다는 사실은 이미 신라에 삼월삼짇날과 구월구일이면 하늘의 신라 땅의 여러 신들,그리고 부처에게 차를 공양하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그렇다면 충담이 미륵불에게 올린 차는 어디서 난 것일까? 선덕왕은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백제 고구려를 정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차문화 생활을 주도하고 있는데,이 때의 차는 또 어디서,어떻게 만들었으며 그 의식은 어디서 근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충담이 경덕왕에게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했던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한 나라의 음식문화의 뿌리와 전통을 사실대로 적고 이해하는 점이다.음식은 인간의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더욱이 차는 음식 중에서도 정신성이 가장 강하고 높은,최고의 음식이어서 차의 기원과 차문화사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민족 문제이기도 하고,문화 종속 문제를 낳고 푸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력이 우려를 넘어서 폐해로까지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면 중국산 농산물에 의한 한국 농업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차문화에 대한 중화사대주의가 불러들인 현실적 재앙이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 백성은 어린아이로고 하실지면 백성이 (임금의) 사랑을 알리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주어진 날을 순응하며하루 하루 살아가는 백성은 먹는 일이 가장 절실하나니 백성을 배불리 먹여 다스린다면 (백성이)신라를 버리고 어디 가리이까 나라는 그렇게 유지되어질지이다 아,임금답게,신하답게,백성답게 할지면나라 안이 편안해질 것이이다. ˝
  • 다주택자 재산세 최고 9배 더 낸다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개편구상 지금은 땅과 건물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각 지자체가 토지세(땅)와 재산세(건물)를 걷고 있다.정부는 내년부터 ▲각 지자체가 지금처럼 세금을 걷은 뒤 ▲이 가운데 집부자·땅부자만 골라내 ‘종합부동산세’를 매기는 이원화 방안을 추진중이다.아울러 주택에 대해서도 토지처럼 한 사람이 전국에 갖고 있는 집을 모두 합쳐 과세하기로 했다.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재산세+토지세) 개편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성공 관건은 ‘살인적 세금증가’가 없도록 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와 세율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다.3일 조세연구원이 개최한 공청회에서도 세율인하 지적이 잇따랐다.이날 행정자치부와 지방자치단체 대표들은 재정경제부의 ‘보유세 이원화’ 방침 자체에 거세게 반발해 추진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쟁점을 짚어본다. ●“최고세율 적용기준점 너무낮다” 현재 결정된 것은 주택도 땅처럼 개인별로 합산해 세금을 매긴다는 점.총 금액은 같은데 집을 몇 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세금부담이 현저히 차이나는 현행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다.예컨대 2000만원짜리(과표 기준) 집을 네 채 소유한 A씨의 재산세(38만 4000원)는 8000만원짜리 집 한 채를 소유한 B씨의 세금(365만 6000원)보다 무려 327만여원이나 적다(표 참조).그러나 현행 과표와 세율 체계에서 주택 합산과세가 이뤄지면 A씨의 세금은 B씨와 같아져 9.5배나 오르게 된다.웬만한 집은 1억원이 넘는데도 최고세율 적용 기준점이 4000만원으로 지나치게 낮은 점도 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타워팰리스 1채는 제외? 최대 관심사의 하나는 누가 ‘종합부동산세’(국세) 대상이 되느냐다.정부가 검토하는 적용 잣대중 하나는 ‘2개 이상 시·군·구에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여러 안(案)중 이 안이 채택되면 서울 강남 한 곳에 20억원짜리 타워팰리스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종합부동산세 대상에서 비껴난다.반면 서울과 시골에 싼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상이 된다.불합리한 데다 조세저항마저 야기할 수 있다. ●지방자치 후퇴 아닌가 또 하나의 대안은 모든 주택을 합친 가격이 ‘일정액’ 이상인 사람만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다.주택 수는 관계없어 타워팰리스 한 채 소유자도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한다.행정절차가 간편하고,‘부동산 부자’들만 겨냥할 수 있어 실속도 있다.하지만 지방자치제 후퇴라는 단점이 있다.2개 이상 지자체에 집이 흩어져 있으면 중앙정부가 개입할 명분이 있지만,단일 지자체에 있는 집에 대해서는 개입 명분이 약하다.지자체의 법정 소송도 예견된다.공청회에 참석한 지자체 대표들은 “지방자치 말살 음모”라며 격분했다.정부가 당초 ‘일정액 이상’만 염두에 뒀다가 ‘2개 이상 시·군·구’라는 복수대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재경부 이종규 세제실장은 “지자체에 낸 1단계 세금이 정부에 낼 2단계 세금보다 많은 사람만 종합부동산세 납부대상으로 결정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억울한 ‘세금 역전’ 없나 정부가 구상하는 세율구조는 1단계는 낮게,2단계는 높게 한다는 것이다.종합부동산세 적용 기준이 어느 쪽으로 결론나든 기준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간발의 차이로 억울하게 ‘운명’이 갈리게 된다.경우에 따라 재산이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보다 세금을 더 내는 ‘역전’ 현상도 생길 수 있다.정부는 1·2단계 세율을 똑같이 적용해 이같은 시비를 해소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주택 합산과세의 타당성도 시비의 소지가 있다.경실련 박정수 재정세제위원장은 “토지와 달리 건물은 한정된 재원이 아니어서 개인별 합산을 통한 중과세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참여연대측은 “전국합산 토지가액이 8억∼10억원 이상,가구당 3주택 이상자에게만 종합부동산세를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안미현 김미경 기자 hyun@seoul.co.kr ˝
  • [사설] 종합부동산세 단계적 접근을

    정부가 전국의 부동산 부자들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시행할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신설의 주된 목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다.지방세인 종합토지세나 재산세 외에 종합부동산세를 국세로 도입,토지나 건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매겨 부동산 보유를 억제하는 효과를 얻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부동산 값 폭등으로 서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데다,전 세계적으로 집값 거품 붕괴론이 솔솔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값의 하향 안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그러나 종합부동산세 신설이 부동산 값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최근 재산세 표준세율을 낮춘 서울 강남지역 지자체의 예에서 보듯,조세 저항도 우려된다. 따라서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토지 부문의 종합 부동산세 과세 대상은 5만∼10만명으로 예상되고 있다.이들 땅 부자 가운데 투기꾼들도 많겠지만 선의의 투자자와 보유자 등 투기와는 거리가 먼 이들도 있을 것이다.조세 저항을 줄이려면 현재 70%선인 토지 공시지가의 시가 반영 비율을 높이는 작업부터 선행해야 한다.세금 부과 기준인 과표를 현실화할수록 세율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은 커지게 된다.종합부동산세를 지방세가 아닌 국세로 거둔 다음 이를 다시 지자체에 골고루 배분하겠다는 발상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세제를 부동산 시장 안정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역의 특성을 무시하게 되는 등 지자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가 생긴다.˝
  • 전국 ‘땅부자’ 5만~10만명 재산세 중과세

    내년부터 전국에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재산세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집을 사고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거래세)에 이어 재산세(보유세)마저 중과(重課)되기 때문이다.연간 토지세를 10만원 이상 내는 전국의 ‘땅부자’ 5만∼10만명도 마찬가지다.부동산 부자들 만큼은 아니지만 1가구 1주택자 등 일반인들도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현실화됨에 따라 보유세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는 31일 이같은 내용의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지난해 10월 발표했던 기본골격보다 상당부분 완화됐다.오는 3일 공청회 등을 열어 정부안을 확정한 뒤 연내 국회 동의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보유세 부담을 높이는 대신 거래세 부담을 줄이겠다던 당초 취지와 달리,취득·등록세율(거래세) 인하는 세수(稅收) 감소 등을 이유로 2∼3년 뒤로 늦춰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불필요한 조세저항을 야기해 ‘보유세제 개편’이라는 큰 그림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종합부동산세 부과기준 ‘알부자’ vs ‘多소유자’ 보유세제 개편의 핵심은 여러차례 예고됐던 대로 ‘종합부동산세’(국세) 도입이다.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지금처럼 누구나 토지와 건물에 대해 각각의 세금을 내되,일정기준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종합부동산세를 별도로 물어야 한다.물론 처음에 냈던 일반세금은 전액 공제해줘 이중으로 세금을 물 일은 없다.그러나 종합부동산세는 한 사람이 전국에 걸쳐 갖고 있는 부동산을 땅은 땅대로,집은 집대로 합쳐 누진과세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세금 부담이 크게 늘게 된다. 땅은 지금도 개인별로 합산 과세하고 있지만,건물은 그렇지 않다.핵심 관심사인 종합부동산세 납부대상 기준은 ▲전국의 부동산 합산가액이 일정액 이상이거나 ▲2개 이상 시·군·구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사람 가운데 결정된다.당초 정부는 집부자·땅부자를 겨냥해 ‘금액 기준’의 전자를 유력하게 검토했으나 부동산 구입에 따른 은행빚 등이 감안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발견돼 후자도 대안으로 검토중이다. 그러나 이 경우 과세대상이 대폭 확대되는 데다 값싼 부동산 소유자도 모두 해당돼 조세저항 소지가 있다. ●‘투기 다잡기’ 초심(初心) 후퇴? 당초 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서는 건물과 토지를 따로 떼지 않고 하나의 부동산으로 간주해 중과세하는 방안도 거론됐다.정부는 지금도 ‘유효한 대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살고 있지 않는 집에 대해서는 7%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이 역시 폐기되는 양상이다.서슬퍼렇던 기세가 적잖이 꺾인 것이다.조세연구원 노영훈 연구위원은 “애초부터 건물·토지 합산과세나 비거주 주택에 대한 보유세 중과세 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면서 “정부가 부동산투기 근절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했던 것 뿐”이라고 냉소했다. 종합부동산세가 매겨지는 ‘건물 대상’에는 주택과 사업용 건물이 모두 후보로 올라 있으나 주택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사업용 건물은 지금처럼 단일세율(0.3%) 적용이 유력시돼 기업체와 임차인 부담은 커지지 않을 전망이다. ●과세표준 시세 가깝게 올부터 현실화 모든 부동산 소유자들이 내는 토지세와 재산세는 올해에 이어 내년과 내후년에도 오른다.과세표준이 시세에 가깝게 올해부터 점차 현실화돼(39.1%) 2006년에는 50%로 오르기 때문이다.물론 정부는 세율을 낮추고 과표구간을 손질해 급격한 세 부담 증가를 방지할 방침이지만 어느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하다.게다가 취득·등록세율은 2∼3년후에나 내리기로 했다.재경부 이종규 세제실장은 “현재 토지·재산세수(2조 6000억원)가 취득·등록세수(13조원)의 5분의1에 불과해 보유세를 올려도 거래세를 당장 내릴 여력이 없다.”고 해명했다.그러나 노 연구위원은 “조세저항을 줄이려면 취득·등록세율도 절반 수준으로 당장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재산세율 區마다 ‘제각각’

    서울시가 재산세율 인하를 결정한 강남·서초·강동 등 강남권 3개 자치구에 대한 행정자치부의 재의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서울시는 25일 재산세율 인하안을 의결한 강남·서초·강동구에 “자치구의회의 재산세 인하안 의결은 구청장이 판단할 사항이다.”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행자부의 권고사항에 대해 시가 적극적인 재의 요청 대신 구청장의 입장을 존중함에 따라 정부와 이들 지자체간에 마찰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행자부의 권고를 받고 고민하던 시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재의의 요건인 자치구 의회가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익을 현저히 해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이상하 세제과장은 “각 자치구마다 재산세 상승률과 재정 여건이 다른 만큼 자치구청장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재의 요구 여부를 결정토록 했다.”면서 “정부정책도 따라야 하고 재산세가 많이 오른 지역 주민들의 민원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만큼 시가 직접 재의 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논란이 됐던 자치단체간의 차등화된 재산세 부과는 불가피하게 됐으며 조세 형평성 문제와 조세저항도 우려되고 있다. 행자부 권고안에 따르면 서초구의 아파트 등 공동주택재산세가 지난해에 비해 평균 73.8%,최고 420%까지 오르지만,세율을 20%로 낮추면 42.3% 오른다. 반면 단독주택은 평균 10% 가량 내려간다.예를 들어 지난해 재산세 7만 6000원이 부과된 방배동 현대2차 아파트 33평형의 경우 행자부안은 24만 3000원을 내야 하나 재산세율 20% 인하에 따라 19만 9000원만 내면 된다. 이에 대해 행자부 배진환 세정과장은 “현재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종합부동산세 배분시 이들 지자체에 불이익을 주거나 탄력세율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강남구의회는 재산세율 30% 감면안을,서초·강동구의회는 20% 감면안을 최근 각각 통과시켰다.재산세율 30% 감면안을 부결시켰던 송파구의회도 상임위원회에서 25% 감면안을 재상정,통과시켰으며 27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양천구도 재산세율 20% 낮추기로

    서울 양천구(구청장 추재엽)가 강남구에 이어 두번째로 재산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양천구는 다음달 1일 부과되는 재산세율을 20% 인하하는 내용의 ‘양천구세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구의회에 상정했다고 14일 밝혔다.구의회는 오는 21일 임시회를 소집해 조례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추 구청장은 “올해 재산세 산출기준이 대폭 변경되면서 관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재산세가 지난해에 비해 최고 3∼4배 올라 1가구 1주택 소유자 등 성실한 납세자에게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조세저항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재산세율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양천구의 이번 조치는 강남구에 이어 두번째로 이뤄졌다.강남구의회는 지난 3일 임시회를 열어 재산세율을 정부안의 50% 수준으로 낮출 것을 의결했다.그러나 권문용 강남구청장은 지난 10일 재산세 인하율을 50%에서 30%로 조정해 줄 것을 제안했으며,강남구의회는 20일 이내에 심의·재의결할 예정이다. 장세훈기자 shjang@˝
  • [시론] 재산세 개편은 보유세 강화로/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

    정부가 지난해부터 적극 추진 중인 재산세 개편과 관련,최근 서울 강남구를 중심으로 한 일부 자치구들의 반발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재산세의 과세표준이 개편된 결과,주로 강남지역 아파트들의 세부담이 3∼4배까지 증가하게 되자 강남구의회가 자치단체의 세율조정권을 활용해 세율을 50% 인하했기 때문이다. 재산의 보유 정도는 소득과 함께 납세자의 부담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인 만큼 재산세 개편을 포함한 종합토지세의 과표인상 등은 공평한 세부담을 실현한다는 조세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개편이다.물론 강남지역 아파트의 가격 급등이 이런 개편을 추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보유과세의 강화는 과거 문민정부는 물론 국민의 정부에서도 핵심 정책과제로 추진됐던 것이다.다만 납세자 수와 세부담 인상에 따른 조세저항을 의식한 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 이를 인상하기가 쉽지 않아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다.특정 수익이나 거래,공공서비스의 이용 등과 연계되지 않고 보유사실 자체에서 부담능력을 찾아 과세하는 보유과세의 경우,다른 세목들에 비해서 세부담에 대한 인식이나 저항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 보유과세 강화 문제는 우리나라 조세체계의 전체적인 합리성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취득세와 등록세 등 재산의 거래과세 인하와 병행해서 추진돼야 한다.우리나라의 재산과세 부담구조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매우 예외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재산의 보유과세와 거래과세,그리고 상속세와 증여세 등을 포함한 전체 재산과세의 세수가 조세 총액에서 점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재산과세 부담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다. 또한 재산과세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보유과세가 전체 재산과세 부담의 70% 이상을 점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거래과세의 세수가 70% 이상을 점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논리적으로 볼 때 재산을 거래한다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그 거래자의 진정한 부담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주택을 취득할 때 그 구입자금은 전세나 은행융자,또는 이미 가지고 있던 다른 주택을 매각한 자금이거나 예금을 사용한다. 즉,재산 취득은 재산의 보유형태를 변경하는 것이지 취득한 재산가치만큼의 부담능력이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재산의 보유과세 강화와 관련해 제기되는 또 다른 이슈로는 이것이 부동산 투기억제라는 정책수단보다는 지방세로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인 재원조달수단이라는 인식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현재 종합토지세와 별도로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해 투기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또한 재건축에 따른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 등 여러 요인에 의해서 투기가 발생하는 경우 보유과세의 강화를 통해서 투기를 억제하는 효과는 사실상 미미한 것이며,필요한 세제상의 정책수단은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의 정상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시대에 기초자치단체의 핵심 세목인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는 지방자치의 기본이념을 실현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다시 말해서 자치단체들이 제공하는 행정서비스 수준과 이들 보유과세 부담이 연계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함으로써 주민들이 자신들의 세부담에 걸맞은 행정서비스가 제공되는지를 판단케 해 자치단체의 책임성을 확보하고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
  • 서초·강남구 공청회 개최등 재산세 탄력세율 적용 방침

    재산세 납부일이 두 달 보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조세저항을 우려한 서울 서초·강남구 등이 자치단체장의 조정권을 내세워 인상률에 대해 탄력세율을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행 지방세법에 따르면 자치단체장은 조례를 통해 재산세율을 50%까지 낮출 수 있다.이를 활용해 자치구가 직접 세율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자치구들이 재산세율을 낮출 경우,구청장의 재산세율 조정권을 중앙정부로 환수하고 재정지원 등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입장이다.이에 따라 지난해말 행정자치부가 초안과 수정안을 만들 때처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마찰이 재연될 조짐이다. 서울 서초구는 30일 조세전문가와 주민들이 함께하는 토론회를 열고 구청장이 세율조정권을 발동,세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남호 서초구청장은 ‘재산세 인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서초구 아파트 주민 가운데 약 75%가 국민주택 규모에서 산다.”면서 “강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세를 최고 5배 이상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정부안을 비판했다.이어 “정부는 구청장의 고유권한인 세율조정권을 환수해서라도 재산세 인상을 강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재산세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방침은 1가구1주택을 가진 주민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안겨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완규(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산세 인상과 탄력세율 제도의 활용’이란 주제발표에서 “재산세제 개편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급격한 조세부담 증가를 완화시키면서 정부 정책에 부응하려면 지자체에 법적으로 보장된 탄력세율 제도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감산세율을 30% 적용하면 공동주택(아파트)의 재산세는 지난해보다 142∼370.3% 증가해 정부정책에 부응하면서도 재산세 인상 부담도 덜 수 있다.”면서 “그러나 상당수 단독주택의 재산세는 감소하는 만큼 감산세율을 공동주택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서초구측은 “정부의 재산세 권고안에 따라 단지별 인상내역을 분석한 결과,전용면적 25평 이하 아파트는 2∼3배,40∼50평형대는 4∼5배 상승한다.”면서 “특히 잠원동 롯데캐슬 42평형은 520%가 오르는 등 중대형 아파트일수록 급격한 인상폭을 보여 조세형평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남구도 오는 3일 구의회 주도로 ‘재산세율 조정을 위한 주민공청회’를 열 계획이며,탄력세율 적용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자부는 과세 불형평을 시정하고 부동산 보유과세 정상화를 통한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재산세를 서울 강남의 경우 기존보다 5∼6배,강북은 20∼30% 인상키로 했었다.재산세는 오는 6월1일을 기준으로 과표가 정해지며,7월 중순∼하순에 납부해야 한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재산세 ‘인상 파동’ 재연 조짐

    지난해 말 재산세 인상 폭을 높이려는 중앙정부와 이를 낮추려는 서울 강남·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간에 재산세 ‘인상파동’이 재연될 조짐이다.오는 7월 재산세 부과를 앞두고 강남구 등이 인상폭을 완화해 줄 것을 행정자치부 등에 다시 건의했다.‘부동산보유세’ 개혁을 지난해 가장 우수한 정책 성공 사례로 꼽아온 행자부는 지자체와 주민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제도개선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감산율을 낮춰달라” 서울 강남구는 30일 “재산세의 과표 산정기준이 면적에서 국세청 기준시가로 바뀌면서 재산세가 전년대비 평균 59.3%(공동주택 138.6%) 인상되고,아파트는 최고 460%까지 올라 극심한 조세저항과 집단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에 완화건의문을 냈다고 밝혔다.구는 건의문에서 “보유세액 인상은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뤄져야 납세자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면서 “최대 100%까지 규정된 국세청 기준시가별 가감산율을 60%까지 낮출 수 있도록 조정해 달라.”고 덧붙였다.서초구도 국세청 기준시가 3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해 가감산율 적용기준을 단계별로 10%씩 낮출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을 3억원 이상 아파트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을 건의했다. 지난연말 정부의 재산세 인상안 최종안을 수용했던 이들이 다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올 7월 세금부과를 앞둔 주민들의 집단민원 때문이다.실제로 지난해 12만 6000원을 낸 강남구 A아파트는 올해 77만원을 내게 돼 511%나 올랐다.반면 용인의 C아파트는 지난해 117만 3000원을 냈지만 올해에는 44.5% 줄어든 65만 1000원만 내면 된다.전반적으로 강남의 고가 아파트는 5∼6배까지,서울 강북은 20∼30% 올라 서울 대부분의 자치구가 부담을 안고 있다.특히 강남구 대치동 삼성래미안,도곡동 삼성래미안,압구정동 미성,신현대아파트 등의 주민들은 집단서명까지 하며 재산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강남구의회도 “자치구가 건물과표를 하향 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지방세법상 자치단체장이 재산세 세율의 50%를 가감할 수 있는 탄력세율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서울시 관계자는 “재산세 과표는 지난 1월1일자로 고시됐지만 재산세 납부 고지서가 발부되는 7월15일 이전인 5월말까지 수정,고시할 수 있다.”면서 “자치구의 건의문과 함께 서울시의 의견도 행자부에 냈다.”고 자치구를 거들었다. ●행자부 “다시 바꾸면 신뢰성에 문제” 행자부는 이미 고시된 재산세 과표는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결정고시까지 마친 것을 시행도 하지 않고 다시 바꾸면 행정의 신뢰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더구나 지난연말 합의할 때와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반응이다. 관계자는 “강남구가 독자적으로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는 있지만,그렇게 되면 다른 곳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이 또한 쉽지 않다.”면서 “대폭 인상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담세력이 있는지 시뮬레이션중이지만,현재로선 수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조덕현 장세훈기자 hyoun@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5)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5)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下)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을 ‘민중의 시대’라고 부른다.진주지방농민들이 일으킨 항쟁은 ‘민중의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었다.1862년 2월18일의 진주농민항쟁을 시작으로 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는 32년 동안 조선전역에 걸쳐 70여 차례의 농민항쟁이 들불처럼 타올랐었다. 그래서 진주농민항쟁을 동학혁명의 씨앗이라고도 하며,성리학 이념에 봉사한 유생들의 허망한 정치실패를 입증한 피와 박해의 증거라고도 부른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류계춘 원작의 이 노래는 농민항쟁이 일어난 지역마다의 중요한 쟁점에 따라 약간씩 노랫말이 바뀌는데,그것은 그 지역 농민들에게 공통된 분노와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냄으로써 농민들의 결집을 강화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류계춘 선생의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또 한번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19세기 후반은 풍양 조씨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인한 사회 질서의 문란이 극점에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여기에다 조선왕조의 조세제도 핵심인 삼정(三政)의 실패가 겹쳐 조선은 국가로서의 통제력을 상실하여 가난한 민중의 삶은 참담했다. ●민중 오랜 착취와 압박에 신음 순조,헌종,철종년간 조선사회의 모순은 이미 깊어져 있었고,봉건제도 붕괴 과정에서 민중은 오랜 착취와 압박으로 신음했다.지옥같은 학정의 세월 한 가운데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횃불이 맨 먼저 진주에서 타올랐다. 그 혁명의 전주곡인 나팔소리를 맨 처음 낸 나팔수가 류계춘 선생이었던 것이다.왜 그는 혁명의 나팔소리인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노래를 지어 퍼뜨렸을까? 조선왕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은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을 말한다. 전정은 토지세,군정은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환곡은 봄철의 식량부족과 파종기 종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 수확 때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제도였음은 일반 상식이다. 이 같은 국가 조세제도의 골격인 삼정제도가 오랜 모순으로 폐단이 커지자 이에 따른 구체적인 폐해는 농민들의 부담으로 귀결되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세금은 결국 가장 낮은 계층인 농민들의 육신과 농사 지은 곡식,베틀로 짠 포목이기 때문이다.양반 사대부는 병역의 의무도 없었고,부역 등 노동력을 바쳐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세금 낼 까닭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어려울수록 항상 고통받는 것은 농민들뿐이었다.끊임없이 늘어만가는 삼정폐해에 따른 부담은 농민들을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전정 즉 토지세 모순은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정묘 병자호란으로 더욱 심각해졌다.오랜 전쟁 때문에 많은 토지가 황폐해진데다 양반,관리,토호들이 고의적으로 토지대장에 등록하지 않고 숨겨둔 토지와,세금을 안내는 면제토지가 늘어나자 국가의 조세수입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렇게 줄어든 세금을 모두 농민들에게 부담시켰으니 농민들의 삶은 고통뿐이었다.여기에다 관청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개인적으로 탕진해버린 공금을 채워넣기 위하여 도결(都結)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만들어 마음대로 부과하여 거둬들였다. ●일부 농민들 세도가에 붙어 병역기피 군정,즉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은 군포(軍布)라는 이름의 베를 징수하는 것이다.그런데 양반,아전,관노(官奴)는 병역이 면제된데다 정치기강이 문란해지자 일부 농민들도 세도있는 양반가문에 붙어서 병역을 기피하는 폐단이 생겼다. 환곡제도는 앞의 두 제도보다 더 심했다.아예 고리대(高利貸)로 변질되어 지방관청 관리들의 탐욕을 키우는 가장 악질적인 농민수탈 방법이었다.처음부터 월급이 없는 아전들은 농민을 착취하고 공금과 관청곡식을 횡령착복하는 협잡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만큼의 부정부패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묵인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이 얄궂은 제도는 오늘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심판할 때 일정액수 이하의 금액을 뇌물로 받거나 횡령했을 때 이른바 ‘통상적인 떡값 또는 관례’라 하여 면죄부를 주는 원류가 되었다. 이같은 모순이 계속되다 보니 탐관오리의 간악한 작폐로 인하여 농민의 생활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으로 변했고,고통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재정은 고갈되고,착취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망하여 유민이 되기도 했다.유민들 중에는 장길산처럼 도둑떼로 변질되기도 했고,깊은 산중 절간에 찾아가서 절 머슴이나 승려가 되기도 했다.살아남기 위하여 긴급피난한 농민들이 사찰로 몰려들어 승려가 되는 것은 한 때 커다란 유행이었다.실제로 한때 승려 숫자가 조선 인민의 10분의 1이 된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한때 조선인민 10분의1 승려 되기도 아무튼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 불만이 쌓이자 농민들은 필연적으로 정부에 항거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이래도 죽고,저래도 죽을 바엔 할말이나 해보고 죽자는 공감대가 조선의 모든 농민들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전 국가적 모순에 저항의 횃불을 맨 처음 쳐든 것이 진주지방 농민들이었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 어느 지방보다 진주지방의 모순이 더 크고,착취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진주는 진주목사가 다스리는 행정관청 외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다스리는 군사기관인 병영까지 있어서 관리와 아전의 숫자가 그만큼 많았다.아전 숫자가 많다는 것은 곧 농민들을 수탈하는 정도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뜻이다. 또한 향교와 서당이 많아서 향교의 교생(校生),서원의 원생(院生)은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는데,그 면제액만큼 농민들의 부담은 늘어났다. ●농민들 존재 양반의 ‘갓걸이’ 에 비유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에서 모든 힘없는 농민들 숫자는 곧 양반들의 갓을 걸어두는 ‘걸이’,즉 양반을 위해 존재하는 목숨없는 말뚝이나 갓 걸어두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독하고도 절묘한 은유인 것이다. 1862년 이전 류계춘 선생은 이 같은 진주목과 병영아전들의 혹독한 수탈에 대하여 여러해 동안 문제제기를 했었다.해당 관청에 진정서를 내거나 고발장을 접수시키기도 하면서 폐단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아전들은 류계춘선생을 온갖 방법으로 박해하고 괴롭혔다.구속시켜 매질을 하기도 했다.이런 선생을 지켜보던 진주지방 농민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선생에게 직·간접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격려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농민수탈은 더욱 심해졌다.농민들은 최후의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류계춘 선생이 농민의 대표자로 뽑혔다.그때부터 선생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해 나갔다.먼저 농민들을 결속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런 다음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농민들을 결속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농민들에게 가장 악랄한 아전으로 알려진 자와 양반으로서 가장 탐학과 착취가 심한 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구체적인 비리내용과 이름을 적은 일종의 전단을 만들어 사방에다 붙이고 뿌렸다.모두 한글로 적었기 때문에 이를 언방(諺榜)이라 했다.농민들이 더 이상 참기만해서는 안되는 이유,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왜 농민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소상하게 적어서 비밀리에 돌려 읽히는 회문(回文),거사 날짜가 정해지면 각자의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통문(通文)등 방법으로 농민들과 조직 책임자를 정하고 준비했다. 마침내 1862년 2월 18일 이른 아침부터 농민들은 미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봉기를 시작하여 약속된 장터나 공공 집회장소로 집결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를 소리높여 부르면서 농민시위대를 만들어 갔고 시위대의 규모가 순식간에 홍수처럼 불어났다.겁을 먹고 숨어있던 자,반대하던 자,피신해있던 자들까지도 농민시위대의 함성과 노랫소리에 이끌려 합류했다. 이렇게 결집된 농민들은 진주성문을 열고 들어가 우병사 백낙신,진주목사 홍병원으로부터 항복을 받고,악질 관리로 손꼽히던 권준범,김희순을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자진해산하기까지의 4일동안 농민들의 원성을 산 토호들과 양반,부패관리들을 응징하고 끝났다.누구의 강압이나 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자진해산한 것이다. 그리고 류계춘 선생과 동지들 또한 스스로 관청에 나가 진실을 밝히면서 잘못된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그 대답은 반역죄에 따른 참수형이었다.그들이 죽은 뒤 조선의 농민들은 32년간의 긴 기간에 걸쳐 정부에 책임을 물었고,동학농민혁명으로 승화되었다. 선생이 떠난지 14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농민과 농업은 여전히 고난에 처해있다.선생의 초라한 무덤이 자꾸 오늘날 한국 농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5)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下)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을 ‘민중의 시대’라고 부른다.진주지방농민들이 일으킨 항쟁은 ‘민중의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었다.1862년 2월18일의 진주농민항쟁을 시작으로 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는 32년 동안 조선전역에 걸쳐 70여 차례의 농민항쟁이 들불처럼 타올랐었다. 그래서 진주농민항쟁을 동학혁명의 씨앗이라고도 하며,성리학 이념에 봉사한 유생들의 허망한 정치실패를 입증한 피와 박해의 증거라고도 부른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류계춘 원작의 이 노래는 농민항쟁이 일어난 지역마다의 중요한 쟁점에 따라 약간씩 노랫말이 바뀌는데,그것은 그 지역 농민들에게 공통된 분노와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냄으로써 농민들의 결집을 강화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류계춘 선생의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또 한번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19세기 후반은 풍양 조씨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인한 사회 질서의 문란이 극점에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여기에다 조선왕조의 조세제도 핵심인 삼정(三政)의 실패가 겹쳐 조선은 국가로서의 통제력을 상실하여 가난한 민중의 삶은 참담했다. ●민중 오랜 착취와 압박에 신음 순조,헌종,철종년간 조선사회의 모순은 이미 깊어져 있었고,봉건제도 붕괴 과정에서 민중은 오랜 착취와 압박으로 신음했다.지옥같은 학정의 세월 한 가운데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횃불이 맨 먼저 진주에서 타올랐다. 그 혁명의 전주곡인 나팔소리를 맨 처음 낸 나팔수가 류계춘 선생이었던 것이다.왜 그는 혁명의 나팔소리인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노래를 지어 퍼뜨렸을까? 조선왕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은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을 말한다. 전정은 토지세,군정은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환곡은 봄철의 식량부족과 파종기 종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 수확 때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제도였음은 일반 상식이다. 이 같은 국가 조세제도의 골격인 삼정제도가 오랜 모순으로 폐단이 커지자 이에 따른 구체적인 폐해는 농민들의 부담으로 귀결되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세금은 결국 가장 낮은 계층인 농민들의 육신과 농사 지은 곡식,베틀로 짠 포목이기 때문이다.양반 사대부는 병역의 의무도 없었고,부역 등 노동력을 바쳐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세금 낼 까닭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어려울수록 항상 고통받는 것은 농민들뿐이었다.끊임없이 늘어만가는 삼정폐해에 따른 부담은 농민들을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전정 즉 토지세 모순은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정묘 병자호란으로 더욱 심각해졌다.오랜 전쟁 때문에 많은 토지가 황폐해진데다 양반,관리,토호들이 고의적으로 토지대장에 등록하지 않고 숨겨둔 토지와,세금을 안내는 면제토지가 늘어나자 국가의 조세수입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렇게 줄어든 세금을 모두 농민들에게 부담시켰으니 농민들의 삶은 고통뿐이었다.여기에다 관청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개인적으로 탕진해버린 공금을 채워넣기 위하여 도결(都結)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만들어 마음대로 부과하여 거둬들였다. ●일부 농민들 세도가에 붙어 병역기피 군정,즉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은 군포(軍布)라는 이름의 베를 징수하는 것이다.그런데 양반,아전,관노(官奴)는 병역이 면제된데다 정치기강이 문란해지자 일부 농민들도 세도있는 양반가문에 붙어서 병역을 기피하는 폐단이 생겼다. 환곡제도는 앞의 두 제도보다 더 심했다.아예 고리대(高利貸)로 변질되어 지방관청 관리들의 탐욕을 키우는 가장 악질적인 농민수탈 방법이었다.처음부터 월급이 없는 아전들은 농민을 착취하고 공금과 관청곡식을 횡령착복하는 협잡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만큼의 부정부패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묵인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이 얄궂은 제도는 오늘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심판할 때 일정액수 이하의 금액을 뇌물로 받거나 횡령했을 때 이른바 ‘통상적인 떡값 또는 관례’라 하여 면죄부를 주는 원류가 되었다. 이같은 모순이 계속되다 보니 탐관오리의 간악한 작폐로 인하여 농민의 생활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으로 변했고,고통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재정은 고갈되고,착취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망하여 유민이 되기도 했다.유민들 중에는 장길산처럼 도둑떼로 변질되기도 했고,깊은 산중 절간에 찾아가서 절 머슴이나 승려가 되기도 했다.살아남기 위하여 긴급피난한 농민들이 사찰로 몰려들어 승려가 되는 것은 한 때 커다란 유행이었다.실제로 한때 승려 숫자가 조선 인민의 10분의 1이 된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한때 조선인민 10분의1 승려 되기도 아무튼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 불만이 쌓이자 농민들은 필연적으로 정부에 항거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이래도 죽고,저래도 죽을 바엔 할말이나 해보고 죽자는 공감대가 조선의 모든 농민들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전 국가적 모순에 저항의 횃불을 맨 처음 쳐든 것이 진주지방 농민들이었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 어느 지방보다 진주지방의 모순이 더 크고,착취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진주는 진주목사가 다스리는 행정관청 외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다스리는 군사기관인 병영까지 있어서 관리와 아전의 숫자가 그만큼 많았다.아전 숫자가 많다는 것은 곧 농민들을 수탈하는 정도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뜻이다. 또한 향교와 서당이 많아서 향교의 교생(校生),서원의 원생(院生)은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는데,그 면제액만큼 농민들의 부담은 늘어났다. ●농민들 존재 양반의 ‘갓걸이’ 에 비유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에서 모든 힘없는 농민들 숫자는 곧 양반들의 갓을 걸어두는 ‘걸이’,즉 양반을 위해 존재하는 목숨없는 말뚝이나 갓 걸어두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독하고도 절묘한 은유인 것이다. 1862년 이전 류계춘 선생은 이 같은 진주목과 병영아전들의 혹독한 수탈에 대하여 여러해 동안 문제제기를 했었다.해당 관청에 진정서를 내거나 고발장을 접수시키기도 하면서 폐단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아전들은 류계춘선생을 온갖 방법으로 박해하고 괴롭혔다.구속시켜 매질을 하기도 했다.이런 선생을 지켜보던 진주지방 농민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선생에게 직·간접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격려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농민수탈은 더욱 심해졌다.농민들은 최후의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류계춘 선생이 농민의 대표자로 뽑혔다.그때부터 선생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해 나갔다.먼저 농민들을 결속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런 다음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농민들을 결속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농민들에게 가장 악랄한 아전으로 알려진 자와 양반으로서 가장 탐학과 착취가 심한 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구체적인 비리내용과 이름을 적은 일종의 전단을 만들어 사방에다 붙이고 뿌렸다.모두 한글로 적었기 때문에 이를 언방(諺榜)이라 했다.농민들이 더 이상 참기만해서는 안되는 이유,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왜 농민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소상하게 적어서 비밀리에 돌려 읽히는 회문(回文),거사 날짜가 정해지면 각자의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통문(通文)등 방법으로 농민들과 조직 책임자를 정하고 준비했다. 마침내 1862년 2월 18일 이른 아침부터 농민들은 미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봉기를 시작하여 약속된 장터나 공공 집회장소로 집결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를 소리높여 부르면서 농민시위대를 만들어 갔고 시위대의 규모가 순식간에 홍수처럼 불어났다.겁을 먹고 숨어있던 자,반대하던 자,피신해있던 자들까지도 농민시위대의 함성과 노랫소리에 이끌려 합류했다. 이렇게 결집된 농민들은 진주성문을 열고 들어가 우병사 백낙신,진주목사 홍병원으로부터 항복을 받고,악질 관리로 손꼽히던 권준범,김희순을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자진해산하기까지의 4일동안 농민들의 원성을 산 토호들과 양반,부패관리들을 응징하고 끝났다.누구의 강압이나 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자진해산한 것이다. 그리고 류계춘 선생과 동지들 또한 스스로 관청에 나가 진실을 밝히면서 잘못된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그 대답은 반역죄에 따른 참수형이었다.그들이 죽은 뒤 조선의 농민들은 32년간의 긴 기간에 걸쳐 정부에 책임을 물었고,동학농민혁명으로 승화되었다. 선생이 떠난지 14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농민과 농업은 여전히 고난에 처해있다.선생의 초라한 무덤이 자꾸 오늘날 한국 농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 [인물] 종합부동산세 주도 ‘세무달인’ 이종규 실장

    “남들한텐 별 일 아닌 일이 저한텐 늘 특별한 일이 되는군요.” 9급으로 출발해 1급에 오른 이종규(李鍾奎·57)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화제에 오르는 것 자체가)결국 나 못났다는 얘기 같아 민망하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국세청에서 재경부 국장으로 옮겨올 때도 그랬다.지난해 4월 대전지방국세청장에서 재경부 재산소비세심의관에 발탁되자,언론은 “비(非)고시가 재경부 본부국장이 됐다.”며 앞다퉈 카메라를 들이댔다.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와 행시 출신들이 즐비한 재경부에서,시골세무서 출신의 그가 ‘로또복권에 당첨’(1급 승진에 대한 청와대 정찬용 인사수석의 비유)됐으니 ‘야단법석’을 떨 만도 했다.그가 20년 전에 쓴 ‘법인세법 해설’이 스테디셀러에 오르고,대학교재로 쓰일 때도 세상은 비슷한 수식어로 그를 조명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게서는 이렇다 할 흥분도,희열도 찾기 어려웠다.“기분 좋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지요.”라며 담담하게 웃는 얼굴에서 복잡한 심경이 전해져 왔다.동기야 어찌됐든 결과가 좋은 만큼 그럴듯하게 포장할 법도 하건만 그는 “고등학교 졸업후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이나 고시를 보지 않은 것은 평생의 핸디캡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고졸’ 창피 야간대학원 졸업 그는 1965년 충남 홍성고를 졸업했다.서울의 좋은 대학이 아닐 바에는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있겠나 싶어 이듬해 9급 공무원 재경직시험을 쳤다.첫 배치받은 곳은 인천세무서.이때만 해도 세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은 없었다.직장생활 중 입대(육군)해 ‘정보분석’을 맡으면서 “앞으로는 뭘 하든 전문가가 승산있겠다.”고 생각했다.그러다가 이력서에 매번 ‘고졸’이라고 쓰는 게 ‘창피해’ 뒤늦게 건국대 야간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76년)했다.재경부로 발령난 것은 74년.재산세·부가세·소비세·소득세 등 세제실 핵심부서를 사무관으로,과장으로 평균 두 번씩 돌았다.김진표(金振杓) 전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과는 ‘백지 위에 토지초과이득세와 금융실명제를 그리면서’ 각별한 동료애를 쌓았다. 그의 이력이 꽤 알려진 지금도 더러 전·현직 장관들은 “(고시)몇 회더라?”하고 묻곤 한다.지금이야 아무렇지 않게 “아,저는 아닌데요.”하고 받아넘기지만 젊은 시절에는 아픈 질문이었다.전문가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힌 계기이기도 하다.그러자면 낮시간만으로는 부족했다.새벽 2시에 일어나는 횟수가 잦아졌다.지금도 그는 취미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다. ●작년 부동산값 폭등때 사표? 그런 그도 부동산값이 폭등하던 지난해 어느 날 사표를 쓴 적이 있다.몇날 며칠 날밤을 새워가며 대책에 매달리다 보니 온몸의 기운이 꺼지고 회의가 치밀었다.그런데 실무과장(김문수 재산세과장)의 말이 걸작이었다.“지금은 너무 바쁘니까 (사표를 낼 때 내시더라도)일단 대책지시부터 해달라.”는 것이었다.머쓱해진 그는 사표를 주워담을 수밖에 없었다.1가구 3주택자 중과세방안이나 이른바 ‘땅부자세’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가칭) 밑그림이 모두 이때 이뤄졌다. “집을 몇 채씩 갖고 있어도 세금부담이 거의 없다 보니 부동산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겁니다.선진국처럼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높이는 쪽으로 틀을 다시 짜야 합니다.” 세제실장으로서의 가장 큰 짐도 이 부동산세제 개편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는 것이다.일부 계층의 조세저항이 예상되지만,그는 “선진세정으로 가는 과도기에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며 일축했다.실무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전문지식으로 촘촘하게 정책을 짜 밀어붙이는 강단은 그의 장점이다. 그러나 단점이기도 하다.‘국가경제의 큰틀 아래에서 세제가 움직여야 하는데 미시(세금)에는 강하되 거시(경제)엔 약하지 않으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조심스럽게 세간의 우려를 전했더니 의외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이다.부족한 점을 열심히 메워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아무래도 취미생활(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기)을 더 살려야겠다.”면서…. 안미현기자 hyun@˝
  • “부동산 등록·취득세 2.5%가 적정수준”

    정부가 추진 중인 부동산 실가(實價)과세가 이뤄질 경우,취득·등록세를 매기는 부동산 과표 총액이 284조원에서 671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이에 따른 세수(稅收) 증가분을 감안하면 취득·등록세율은 지금의 절반 수준인 2.5%로 낮춰야 적정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그동안 취득·등록세율 인하방침을 밝혀왔으나 세수 감소를 우려한 지방자치단체 등의 반발에 밀려 적정 인하폭을 찾지 못했었다.구체적인 세수증가 규모가 추산된 만큼 정부의 세율인하 작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세연구원 노영훈 연구위원은 17일 발표한 ‘실거래가격 신고에 따른 적정세율 추정 및 제도적 실행방안’ 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조세저항 우려 최대한 앞당겨야 보고서에 따르면 취득세가 매겨지는 부동산 과표총액은 2001년 165조원에서 실가과세후 최소한 370조원으로 불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2.4배(205조원) 증가하는 셈이다.등록세 과세대상 부동산 과표총액도 119조원에서 182조원(2.5배)이 늘어난 301조원에 이른다. 취득·등록세수 모두 2배 이상 불어나는 만큼 절반가량의 세율인하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즉 취득세율은 현행 2%에서 1%로,등록세율은 3%에서 1.5%로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노 연구위원은 “올해부터 당장 과표 현실화율이 오르는 만큼 불필요한 조세저항을 줄이려면 취득·등록세율 조정을 최대한 앞당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다만,과표 증가율이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충남·전남 등에 대해서는 지방재정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지세 실가과세도 검토해볼 만 양도세 실가과세가 정착되려면 부동산을 산 가격과 판 가격이 정확히 파악돼야 한다.그러자면 취득시점의 실거래가 신고가 선결돼야 한다.이를 위한 방안으로 노 연구위원은 “취득·등록세를 실거래가로 과세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그러나 국세(양도세) 당국과 지방세(취득·등록세) 당국의 유기적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로서는 이 방안의 활용도가 현실적으로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따라서 대안으로 ▲집을 살 때 반드시 내야하는 인지세(국세)를 실거래가(현행 시가표준)로 과세하거나 ▲취득·등록세를 부동산 가격에 비례해 매기는 현행 ‘종가세’에서 정부가 일정기준에 따라 일률적으로 매기는 ‘종량세’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 가능하다고 제안했다.아울러 다음달 말부터 시행되는 주택거래신고제나 중개업자 거래가격 전산신고제는 정책적인 허점이 많아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취득·등록세의 실가과세 비율이 현재도 50% 가까이 된다.”면서 “100% 실가과세가 이뤄진다고 해서 과표총액이 실제 2배 이상 늘어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안미현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⑪ 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중)

    함양군 휴천면 엄천마을 가는 길 볕바른 쪽 논에는 입춘을 며칠 앞둔 청보리들이 푸른 돛을 올리고 지리산에서 불어내리는 눈바람 속으로 신춘의 항해에 나서고 있다. 엊그제 내린 눈은 엄천강 주변 첩첩 산봉들과 논밭,겨우내 따지 않고 버려둔 감홍시가 얼어붙은 채 매달려 있는 감나무 가지에도 묻어있다.엄천강으로 이어지는 작은 봇도랑 살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엔 얼핏 봄 빛깔이 느껴진다. 나그네의 발걸음은 엄천마을 앞 길가에 서있는 자연석으로 된 비석 앞에 멈춰섰다.‘점필재 김종직선생 관영차밭 조성터’라고 적힌 비석이다.뱀사골 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길로 달리는 차들의 굉음이 비문을 읽어내리는 나그네의 귓전을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간다. ●생산되지도 않는 차를 나라에 바치라니… 저렇게 달리는 차안에 타고 있는 누군가는 지리산 어느 깊고 고요한 자락에 들어 앉은 찻집에 가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거나 마시게 될는지 모른다.그러면서도 엄천마을 앞 길가에 세워진 이 비석의 존재는 전혀 관심 밖일지도 모른다.야속하다. 비석 뒷면의 시를 읽다말고 마을 옆 양지쪽 언덕을 바라본다.차나무들이 무릎 높이로 자라 눈바람을 맞으며 더욱 푸르다.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영험한 차를 올려 우리 임금 오래오래 사시도록 하고 싶은데 신라 때 심었다는 종자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겠네 이제야 두류산 아래서 차나무를 구하게 되었으니 우리 백성 조금은 편케 되어 기쁘구나. 대숲 밖의 황폐한 밭 몇 이랑을 개간했으니 새 부리 같은 보랏빛 찻잎 언제쯤 볼만해질까 백성들의 마음 속 걱정을 덜어주려는 것일 뿐 무이차처럼 명차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네.” 이 시를 짓게 된 동기를 김종직은 ‘점필재집’제 10권에다 다음과 같이 적었다. “차(茶)를 조정에 올려야 하는데 우리 군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해마다 백성들에게 차를 공물(貢物)로 바치라 한다.백성들은 전라도에 가서 차를 사와서 공물로 바치는데,쌀 한 말을 가져가면 차 한 홉을 살 수 있다.내가 이 군에 부임한 초기에 그 폐단을 알았다.그리하여 차 공물을 백성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군의 돈으로 차를 사서 공물로 바쳤다. 일찍이 삼국사기를 보다가 신라 때 당나라에서 차나무 종자를 구해다 지리산에 심으라고 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군이 지리산 아래 있으니 어찌 신라시대에 심은 차나무 종자가 남아 있지 않겠는가? 노인들을 만날 때마다 차나무에 대해서 물어보곤 하였다.그러다가 엄천사 북쪽 대밭에서 몇 그루를 찾아냈다. 나는 매우 기뻐서 그곳에 차밭을 만들도록 했다.그곳 주위는 모두 백성들의 땅이라서 군에서 다른 곳의 토지로 대신 보상해주고 모두 사들였다. 몇 년이 지나자 차나무가 제법 번성하여 차밭 안에 골고루 번졌다. 앞으로 4∼5년만 기다리면 조정에 올릴 정도의 수량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이 일로 시 두 편을 지었다.” 앞의 시가 바로 그 두 편의 시다.얼핏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의 글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이 글 속에는 조선시대 전기의 조세제도인 공물의 폐단이 산골 농민들에게까지 미쳤고,지나치게 무거운 세금에 짓눌린 농민들은 나라와 제도를 원망하다가 마침내는 집을 버리고 도망길에 올라 참담한 유랑민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의 불행한 민중사가 피눈물로 어른거림을 보게된다.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해 오기 전부터 함양 농민들에게는 여러 가지 세금 외에 차를 공물로 바쳐야 하는 특별한 의무가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실제로 차밭이 있어서 차를 생산하는 곳이 아닌데도 그런 부담을 지게한 것은 단지 함양이 지리산 아래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농민들은 해마다 차를 마련하기 위해 전라도까지 가야했고,완제품 차 한 홉을 구입하려면 쌀 한 말이 필요했다.한 홉은 약 180g 정도다.오늘날 처럼 쌀이 흔하지 않은 시대에 자기 땅도 없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완제품 차를 한 되나 그 이상씩 부담시켰다는 것은 가혹한 정책이었다.한 두 번에 그치는 것도 아니어서 평생토록 차 공물 부담을 져야 하는 농민들로서는 원망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김종직 이전의 모든 군수들은 이같은 폐단을 외면했던 것 같다.김종직은 부임 초기에 이 폐단을 알고 바로 잡으려 해봤지만 국가의 공물제도를 없애거나 고치지 않는 한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고심하던 끝에 군청의 공금을 이용하여 차를 대신 사서 공물로 바치기로 하는데,김종직 이전 군수들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엄천사 북쪽 대밭에서 차나무 발견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보다 많은 부정부패를 일삼아 한몫 챙기려는 욕심 때문이었다.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는 커녕 농민들로부터 온갖 명분으로 재물을 착취할 생각을 하는 군수들이 더 많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김종직은 계속해서 공금으로 차 공물을 대납할 수는 없으므로 장기적인 대책을 세웠다.가장 확실한 방법은 차밭을 만들어서 차를 만들어 바치는 것인데,그러자면 먼저 차 종자를 확보해야 하고,차나무를 심을 땅이 있어야 했다. 차 종자를 구하기 위해 함양 곳곳을 다니면서 노인들에게 묻고 있는 김종직의 모습은 지방의 외진 산중 군수가 아니라 중생의 고뇌를 풀어주기 위해 길거리에서 법문하는 성자같은 느낌을 받는다. 오랜 탐문 끝에 차나무를 발견해 내고 기뻐하는 모습도 그렇다.엄천사 북쪽 대숲 속에서 차나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언젠가 그 지역에서도 차나무를 키웠음을 뜻한다.어느 때 차나무를 모조리 없애버려야 할 사정이 생겨서 차나무가 일제히 제거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이같은 짐작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로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있는 고려의 해동공자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의 시를 들 수 있겠다. “…옛일 생각하니 서러운 눈물이 나는구나. 운봉의 그 훌륭한 맛과 향기는 남쪽에서 마시던 그 맛 완연하구나. 그로하여 화계에서 찻잎 따던 일을 말하게 되는구나. 관청에서 어린 것,노인 가리지 않고 마구 불러내어 험준한 산비탈 다니며 간신히 찻잎 따 모아 머나 먼 서울까지 등짐으로 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고혈이나니 수많은 이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나니 …… 일천가지 허물어서 한 모금 차 마련하나니 이 이치 알고보면 참으로 어이 없구나 그대 다른 날 간원(諫院)에 들어가거든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해주시게나. 산과 들의 차나무 불살라버려서 차 세금을 금지한다면 남녘 백성 편히 쉼에 이로부터 시작되지 않겠는가.” ●세금에 짓눌린 농민들 집 버리고 유랑생활 이처럼 지리산 동남쪽 기슭에 사는 농민들은 고려 때부터 차 공물의 폐단으로 시달리며 살았음이 증명되었다.그러다보니 고려말 혼란기와 조선초의 어수선하던 시기에 이 지방 농민들은 차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불을 지르기도 하여 수 백년 동안 끈질기게 있어 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없애버리려는 행동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유서 깊은 사찰 부근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차나무가 모두 없어져버린 것이다.농민들의 이같은 저항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조선 조정에서는 고려가 하던대로 지리산 동남쪽 농민들에게 다시 차 공물을 부과했다.조선시대부터는 중국에 바치는 조공(朝貢) 품목에까지 차(茶)가 포함되면서부터 농민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가혹해졌다.그때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했던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⑪ 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중)

    함양군 휴천면 엄천마을 가는 길 볕바른 쪽 논에는 입춘을 며칠 앞둔 청보리들이 푸른 돛을 올리고 지리산에서 불어내리는 눈바람 속으로 신춘의 항해에 나서고 있다. 엊그제 내린 눈은 엄천강 주변 첩첩 산봉들과 논밭,겨우내 따지 않고 버려둔 감홍시가 얼어붙은 채 매달려 있는 감나무 가지에도 묻어있다.엄천강으로 이어지는 작은 봇도랑 살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엔 얼핏 봄 빛깔이 느껴진다. 나그네의 발걸음은 엄천마을 앞 길가에 서있는 자연석으로 된 비석 앞에 멈춰섰다.‘점필재 김종직선생 관영차밭 조성터’라고 적힌 비석이다.뱀사골 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길로 달리는 차들의 굉음이 비문을 읽어내리는 나그네의 귓전을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간다. ●생산되지도 않는 차를 나라에 바치라니… 저렇게 달리는 차안에 타고 있는 누군가는 지리산 어느 깊고 고요한 자락에 들어 앉은 찻집에 가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거나 마시게 될는지 모른다.그러면서도 엄천마을 앞 길가에 세워진 이 비석의 존재는 전혀 관심 밖일지도 모른다.야속하다. 비석 뒷면의 시를 읽다말고 마을 옆 양지쪽 언덕을 바라본다.차나무들이 무릎 높이로 자라 눈바람을 맞으며 더욱 푸르다.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영험한 차를 올려 우리 임금 오래오래 사시도록 하고 싶은데 신라 때 심었다는 종자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겠네 이제야 두류산 아래서 차나무를 구하게 되었으니 우리 백성 조금은 편케 되어 기쁘구나. 대숲 밖의 황폐한 밭 몇 이랑을 개간했으니 새 부리 같은 보랏빛 찻잎 언제쯤 볼만해질까 백성들의 마음 속 걱정을 덜어주려는 것일 뿐 무이차처럼 명차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네.” 이 시를 짓게 된 동기를 김종직은 ‘점필재집’제 10권에다 다음과 같이 적었다. “차(茶)를 조정에 올려야 하는데 우리 군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해마다 백성들에게 차를 공물(貢物)로 바치라 한다.백성들은 전라도에 가서 차를 사와서 공물로 바치는데,쌀 한 말을 가져가면 차 한 홉을 살 수 있다.내가 이 군에 부임한 초기에 그 폐단을 알았다.그리하여 차 공물을 백성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군의 돈으로 차를 사서 공물로 바쳤다. 일찍이 삼국사기를 보다가 신라 때 당나라에서 차나무 종자를 구해다 지리산에 심으라고 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군이 지리산 아래 있으니 어찌 신라시대에 심은 차나무 종자가 남아 있지 않겠는가? 노인들을 만날 때마다 차나무에 대해서 물어보곤 하였다.그러다가 엄천사 북쪽 대밭에서 몇 그루를 찾아냈다. 나는 매우 기뻐서 그곳에 차밭을 만들도록 했다.그곳 주위는 모두 백성들의 땅이라서 군에서 다른 곳의 토지로 대신 보상해주고 모두 사들였다. 몇 년이 지나자 차나무가 제법 번성하여 차밭 안에 골고루 번졌다. 앞으로 4∼5년만 기다리면 조정에 올릴 정도의 수량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이 일로 시 두 편을 지었다.” 앞의 시가 바로 그 두 편의 시다.얼핏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의 글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이 글 속에는 조선시대 전기의 조세제도인 공물의 폐단이 산골 농민들에게까지 미쳤고,지나치게 무거운 세금에 짓눌린 농민들은 나라와 제도를 원망하다가 마침내는 집을 버리고 도망길에 올라 참담한 유랑민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의 불행한 민중사가 피눈물로 어른거림을 보게된다.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해 오기 전부터 함양 농민들에게는 여러 가지 세금 외에 차를 공물로 바쳐야 하는 특별한 의무가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실제로 차밭이 있어서 차를 생산하는 곳이 아닌데도 그런 부담을 지게한 것은 단지 함양이 지리산 아래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농민들은 해마다 차를 마련하기 위해 전라도까지 가야했고,완제품 차 한 홉을 구입하려면 쌀 한 말이 필요했다.한 홉은 약 180g 정도다.오늘날 처럼 쌀이 흔하지 않은 시대에 자기 땅도 없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완제품 차를 한 되나 그 이상씩 부담시켰다는 것은 가혹한 정책이었다.한 두 번에 그치는 것도 아니어서 평생토록 차 공물 부담을 져야 하는 농민들로서는 원망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김종직 이전의 모든 군수들은 이같은 폐단을 외면했던 것 같다.김종직은 부임 초기에 이 폐단을 알고 바로 잡으려 해봤지만 국가의 공물제도를 없애거나 고치지 않는 한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고심하던 끝에 군청의 공금을 이용하여 차를 대신 사서 공물로 바치기로 하는데,김종직 이전 군수들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엄천사 북쪽 대밭에서 차나무 발견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보다 많은 부정부패를 일삼아 한몫 챙기려는 욕심 때문이었다.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는 커녕 농민들로부터 온갖 명분으로 재물을 착취할 생각을 하는 군수들이 더 많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김종직은 계속해서 공금으로 차 공물을 대납할 수는 없으므로 장기적인 대책을 세웠다.가장 확실한 방법은 차밭을 만들어서 차를 만들어 바치는 것인데,그러자면 먼저 차 종자를 확보해야 하고,차나무를 심을 땅이 있어야 했다. 차 종자를 구하기 위해 함양 곳곳을 다니면서 노인들에게 묻고 있는 김종직의 모습은 지방의 외진 산중 군수가 아니라 중생의 고뇌를 풀어주기 위해 길거리에서 법문하는 성자같은 느낌을 받는다. 오랜 탐문 끝에 차나무를 발견해 내고 기뻐하는 모습도 그렇다.엄천사 북쪽 대숲 속에서 차나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언젠가 그 지역에서도 차나무를 키웠음을 뜻한다.어느 때 차나무를 모조리 없애버려야 할 사정이 생겨서 차나무가 일제히 제거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이같은 짐작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로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있는 고려의 해동공자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의 시를 들 수 있겠다. “…옛일 생각하니 서러운 눈물이 나는구나. 운봉의 그 훌륭한 맛과 향기는 남쪽에서 마시던 그 맛 완연하구나. 그로하여 화계에서 찻잎 따던 일을 말하게 되는구나. 관청에서 어린 것,노인 가리지 않고 마구 불러내어 험준한 산비탈 다니며 간신히 찻잎 따 모아 머나 먼 서울까지 등짐으로 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고혈이나니 수많은 이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나니 …… 일천가지 허물어서 한 모금 차 마련하나니 이 이치 알고보면 참으로 어이 없구나 그대 다른 날 간원(諫院)에 들어가거든 내 시의 은밀한 뜻 부디 기억해주시게나. 산과 들의 차나무 불살라버려서 차 세금을 금지한다면 남녘 백성 편히 쉼에 이로부터 시작되지 않겠는가.” ●세금에 짓눌린 농민들 집 버리고 유랑생활 이처럼 지리산 동남쪽 기슭에 사는 농민들은 고려 때부터 차 공물의 폐단으로 시달리며 살았음이 증명되었다.그러다보니 고려말 혼란기와 조선초의 어수선하던 시기에 이 지방 농민들은 차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불을 지르기도 하여 수 백년 동안 끈질기게 있어 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없애버리려는 행동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유서 깊은 사찰 부근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차나무가 모두 없어져버린 것이다.농민들의 이같은 저항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조선 조정에서는 고려가 하던대로 지리산 동남쪽 농민들에게 다시 차 공물을 부과했다.조선시대부터는 중국에 바치는 조공(朝貢) 품목에까지 차(茶)가 포함되면서부터 농민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가혹해졌다.그때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했던 것이다.
  • [폴리시 메이커]조대룡 서울시 재무국장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부동산 보유세 강화 방침에는 공감하지만,정부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서울시의 세입과 지출 등 ‘안방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조대룡(51·행시 18회) 재무국장의 말이다. 조 국장은 지난해말 정부와 서울시간 재산세 ‘인상파동’ 과정에서 서울시가 사실상의 ‘판정승’을 거두는 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그는 재산세 인상 폭을 높이려는 정부와 이를 낮추려는 강남구 등 기초자치단체 사이에서 중재역을 맡았다. 조 국장은 “자칫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충돌처럼 비쳐질 수 있었던 정책결정 과정에서 광역자치단체가 갈등을 조절하는 롤모델(role model)을 찾은 게 성과”라면서 “또 지방세제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을 싹트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조 국장은 국내 최초의 ‘지방세연구소’를 오는 3월 발족시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그는 “서울시 직속기관인 서울시립대학에 세무학과가 있지만,국세 위주의 교육과정으로 지방세 연구엔 한계가 있다.”면서 “연구소는 지방세 관련 정책수립 및 집행과정에서 실질적인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한다는 정부의 보유세 개편안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종합부동산세는 지방세인 현재 순수한 지방세인 종합토지세 가운데 일부를 국세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조 국장은 “국세청 기준시가를 근거로 한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제도 도입에 걸림돌이 없지만,단독주택은 과세 근거자료가 없어 ‘선(先) 보완,후(後) 도입’의 원칙을 지켜야 과세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지방재정분권을 강조하면서 지방세를 국세로 전환하는 것은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현행 시·군·구세인 재산·종토세 가운데 지자체별로 재정수요를 초과하는 부분을 광역시·도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럴 경우 서울 강남지역의 초과재정을 강북에 재분배해 뉴타운 건설 등 강남·북 균형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이어 “장기적으로는 지자체별 재정수요를 고려해 재산·종토세 등 부동산 보유세 뿐만 아니라,자동차세 등 지방세 전반에 대한 세율조정 방안이 검토돼야 조세저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무국은 이명박 시장 취임 이후 업무의 중요성 때문에 과단위 부서에서 확대 개편됐으며,조 국장이 신설 이후 지금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다. 특히 재무국 계약심사과는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된 ‘예산집행 사전심사제’를 통해 물품구매나 공사발주 과정에서 5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올해에는 산하 구청 및 공사까지 업무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shjang@
  • 서초등 강남지역 자치단체 반발

    서울시는 22일 행정자치부의 재산세 인상안에 대해 “인상률이 완화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자체 전산분석을 해본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 조대룡 재무국장은 “재산세 인상안 최종안을 바탕으로 서울시내 104만여 가구에 대한 전산분석을 실시해 지역간·계층간 재산세 부담률 등을 파악할 것”이라며 “재산세 최종 고시 권한은 시와 자치단체장에게 있는 만큼,각 구청의 의견을 다시한번 수렴해 행자부 권고안을 따를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인상안 완화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게 된 서초·강남구는 여전히 반발하는 분위기다. 강남구 이택규 재무국장은 “강남지역 아파트는 대부분 기준시가가 3억원 이상이기 때문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재산세 폭증과 이로 인한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면서 “특정지역만 재산세 인하 효과를 볼 수 없도록 만든 현 방침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아파트 재산세 인상률은 50% 정도가 적절하고,재산세를 분납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서초구 권영중 기획재정국장도 “기준시가 3억원 이하 아파트만 자치단체장이 재산세를 낮출 수 있도록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에서 행자부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최종 방침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이춘실 재정경제국장은 “송파에는 아직 기준시가 3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산세 인하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면서 “지난번 반대는 지나치게 급격한 재산세 인상에 대한 반대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편집자에게/ “부담금 부과·징수 공정하게 집행해야”

    -“‘학교용지 부담금’ 커지는 반란” 기사를 (대한매일 12월18일자 11면)읽고 국가는 각종 부담금의 부과와 징수를 납세자의 담세능력에 따라 공정하고도 평등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도 ‘학교용지확보에관한특례법’은 300가구가 넘는 소형평수 입주자에게는 부담금을 부과하는 반면 300가구 미만의 대형 평수 입주자는 부담금을 안 물리고 있다. 따라서 소형주택 수요자라는 이유만으로 더 큰 부담을 주는 현행 제도는 정의에 어긋나고,합리적인 이유 없이 소형 평수의 입주자를 차별하는 등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특히 납부의무자를 입주 여부에 상관없이 최초 계약자로 해 분양계약자들로부터 집단 반발을 사고 있다. 실제로 학교용지부담금 징수율이 70%대에 머물 정도로 주민들의 조세저항이 크다.전국적으로 7155명이 불복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금액만도 143억 2000여만원에 달한다. 최근 인천지법 행정부에서도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많다.”고 판단,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한 상태이다.헌법재판소의 학교용지부담금에 대한 위헌 혹은 헌법불합치 판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판결이 났더라도 불복을 제기한 사람만 학교 용지부담금의 일부를 환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남은형 한국납세자연맹 간사
  • ‘학교용지 부담금’ 커지는 반란

    시민단체들이 현행 300가구 이상에만 부과하는 학교용지부담금제도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불복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용인·남양주 등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불복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납세저항 움직임은 최근 인천지방법원의 학교용지부담금제도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 이후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6일 경기도와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현행 ‘학교용지 확보에 관한 특례법’은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의 경우 분양가의 0.8%,단독주택은 1.5%를 학교용지 부담금으로 납부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납세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부과기준이 평형과는 관계없이 단지 규모만을 적용,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불복운동에 나서고 있다. 인천지법 행정부는 지난 9월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입주자에게 부과되는 학교용지부담금은 조세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어 헌법상 평등원칙에 따라 부과되어야 하는데 특례법의 관련 조항이 평등원칙,비례성원칙 등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이에 따라 용인시 동백지구 아파트 분양자 가운데 1700여명이 최근 2개월 사이 불복신청서를 제출했다.용인시는 동백지구 내 임대주택과 300가구 미만 단지 입주자를 제외한 6900여명에게 가구당 200여만원씩 130여억원의 학교용지 부담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같은 지구 내 한국토지신탁이 분양한 C12-2블록 289가구와 C13-1블록 279가구,H건설이 분양한 C10-1블록 248가구 등 40평형 이상 대형 평형은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총 8135건에 97억원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한 남양주시의 경우도 92건의 불복신청서가 접수됐으며,상당수 아파트 계약자들이 불복신청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시도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300가구 이상 신규 택지개발지역 아파트 분양자들에게 6700건,69억 5000여만원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했으나 이중 338명이 청주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데 이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한국 납세자연맹 남은영 간사는 “전국적으로 6900여명이 불복신청을 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이 청구돼 있는 이 제도가위헌판결을 받으면 부담금 고지서를 받은 후 90일 이내에 불복청구를 한 사람은 환급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측은 “학교용지부담금 부과징수는 관련법에 따른 적법한 행정처분”이라며 “이 규정이 헌법정신에 합치되지 않아도 부담금 환급 사유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10월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대상을 300가구 이상에서 20가구 이상 공동주택으로 확대하고 납부자를 최초계약자에서 개발사업자로,부담금 비율을 0.8%에서 0.4%로 변경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재산세 개편안 88%가 “찬성”

    정부의 재산세 개편안에 대해 상당수 국민이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그러나 과도한 세금인상은 문제가 있는 만큼 인상폭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16일 행정자치부가 여론조사전문기관인 TNS에 의뢰해 14·15일 전국 만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산세 과세방식을 ‘집값이 높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정부안에 대해 ‘찬성’ 88.8%,‘반대’ 10.7% 등으로 나타났다. 재산세 개편안이 적용될 경우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재산세가 평균 2배,최고 7배까지 인상돼 무리한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조세정의를 위해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 57.8%,‘과도한 세금인상 문제가 있으므로 인상폭을 낮춰야 한다.’ 40.0% 등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서울지역 응답자들은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53.0%,인상폭을 낮춰야 한다는 견해가 47.0% 등으로 팽팽히 맞섰다. 서울시가 조세저항을 이유로 정부의 재산세 개편안을 거부할 경우 정부의 대처방법에 대해‘법을 개정해서라도 국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61.8%,‘자치단체 의견을 따라야 한다.’ 35.4% 등으로 나왔다. 또 재산세 개편안이 부동산 투기 근절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을 것’ 62.7%,‘효과가 없을 것’ 34.6% 등이었다.이번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3.1%,신뢰수준은 95%이다. 행자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계부처 등과 협의한 뒤 18일 재산세과표결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재산세 개편안을 확정,각 시·도에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sh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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