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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식생활 바꾼 음식 이야기] 찌개에 퐁당 김밥에 쏙쏙 불판에 지글…맛있는 널 사랑햄~

    [우리 식생활 바꾼 음식 이야기] 찌개에 퐁당 김밥에 쏙쏙 불판에 지글…맛있는 널 사랑햄~

    햄(Ham)은 원래 돼지 뒷다리 또는 돼지 뒷다리를 자연 숙성시킨 것을 뜻한다. 스페인의 하몽, 이탈리아의 프로슈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는 돼지고기 부위 중 인기가 없는 뒷다리살 등을 염지(고기에 간이 배고 부드럽게 하는 과정), 훈연, 가열 등을 해서 만든 가공식품을 햄이라 부르고 하몽, 프로슈트는 생햄이라고 부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중기의 요리서인 ‘증보산림경제’에는 ‘납육’(肉)이라고 돼지고기를 밀 삶은 물에 데친 뒤 소금, 식초 등에 재었다가 말리는 요리법이 나온다. 외국의 햄 제조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40대 이상이 ‘햄’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은 생선과 전분으로 만든 ‘분홍 소시지’다. 젊은 세대는 “스팸?”이라고 되묻기도 한다. 우리의 햄은 어디서 길을 잃었을까.국내에 햄이 처음 소개된 때는 한국전쟁 이후다. 1937년 미국 호멜사에서 처음 출시한 ‘스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식량이 되면서 세계 각지에 퍼졌다. 출시 당시 스팸은 대공황의 여파가 남아 있던 1930년대 후반 미국 저소득층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와 직후 국내에서 스팸은 소시지, 베이컨에 김치를 섞어 만든 부대찌개의 주요 재료가 된다. 국내의 육(肉)가공 업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진주어묵을 팔았던 평화상사는 1969년 진주햄소시지로 이름을 바꾼다. 이때 나온 햄은 생선과 전분을 섞은 어육혼합 소시지다. 계란물을 살짝 입혀 기름에 구워 먹는 형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맛을 지닌 추억의 도시락 반찬으로 대접받는다.국내 햄 시장의 큰 변화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햄에 들어간 고기의 함량이 중요해지며면서 롯데, CJ 등 대기업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롯데햄(롯데푸드)은 ‘순살코기로 만든 본격 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살로우만’ 햄과 소시지를 1980년 9월 출시했다. 돼지고기 함량 88.3% 이상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프랑크 소시지, 비엔나 소시지, 베이컨 등도 ‘살로우만’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당시 나왔던 육가공 제품의 형태가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다.그해 12월 CJ제일제당은 ‘백설햄’을 내놨다. CJ제일제당이 육가공 업체 1위로 도약하게 된 제품은 1981년에 나온 ‘런천미트’다. 롯데푸드의 ‘로스팜’과 함께 그동안 미국에서 수입됐던 사각캔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은 이 여세를 몰아 미국 호멜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1987년 ‘스팸’을 내놨다. ‘세계적인 명성, 세계적인 품질, 스팸을 제일제당이 만듭니다’라는 광고에 이어 2002년 ‘따듯한 밥 위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TV 광고로 일반인들에게 ‘햄’ 하면 ‘스팸’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스팸 출시 첫해 500t이었던 매출 규모는 2016년 2만 1342t으로 늘어났다. 스팸을 명절 선물세트에 넣기도 하는 한국인의 스팸 사랑이 만든 결과다. 2014년 1월 24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국제판에 한국인의 스팸 사랑을 다룬 기사를 실었을 정도다.햄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다양한 용도로 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이 주식인 우리의 식단에 짠맛이 잘 어울렸다. 스팸김치볶음밥이 대표적이다. 요리하기 편하도록 김밥용 햄, 슬라이스 햄 등이 나오면서 햄은 1990년대 소풍이나 회사 야유회 김밥의 필수품이 됐다. 한국육가공협회에 따르면 육가공제품(햄, 소시지, 베이컨, 햄)의 판매량은 1990년 4만 5644t에서 지난해 19만 7924t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이 중 햄과 캔(햄) 제품의 판매량은 6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생선, 전분 등이 일부 들어간 혼합 소시지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3만 7518t에서 2만 7175t으로 줄어들었다.육가공 제품의 국내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인공첨가물 논란 등 건강 관련 뉴스가 발생할 때마다 줄어들었다. 이에 제조업체들은 고기의 함량을 높이고, 인공첨가물을 빼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내놓으면서 위기를 넘겼다. 롯데푸드는 2005년 경북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을 넣은 ‘의성마늘햄’을 출시해 건강 논란을 피해 갔다. 마늘은 미국 주간 타임지에 10대 건강식품으로 소개됐는데 의성 마늘은 단단한 ‘육쪽마늘’로 품질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햄에 암 예방 효과가 있는 마늘을 쓰면 고기 특유의 잡내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합성아질산나트륨 등 첨가물 이슈가 육가공 시장에 상존하는 위험 요소다. 고기 제품에 붉은색을 띠게 하는 합성아질산나트륨은 발암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에 CJ제일제당은 2010년 ‘더(The)건강한햄’, 롯데푸드는 2013년 ‘엔네이처’ 브랜드를 출시하고 합성아질산나트륨 등 첨가물을 넣지 않은 제품을 내놨다. 대신 고기의 함량을 높였다.가장 최근의 충격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2015년 10월 햄·소시지 등의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한 사건이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육류가 단백질, 비타민 등의 공급원으로 반드시 필요한 식품이며 우리나라 국민의 가공육 섭취 수준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가공육 섭취량은 1일 평균 6.0g이다. WHO 발표는 가공육을 매일 50g씩 먹으면 암 발생률이 18%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식약처는 다만 가공육 섭취가 상대적으로 많은 성장기 청소년의 경우 채소 등 다양한 식품 섭취, 적당한 운동, 균형 있는 식습관 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체들은 닭고기를 사용한 제품 생산을 늘렸다.햄과 소시지는 사회적 변화상을 반영해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 2013년 이후에는 캠핑 열풍으로 야외에서 구워 먹는 햄과 소시지가 한 부분을 차지했다. 캠핌용 제품은 가정용 제품보다 크고 굵다. 다른 식품을 더한 제품도 인기다. 대상은 캠핑용으로 4가지 치즈를 넣은 ‘콰트로 치즈 그릴비엔나’를 출시했다. 2015년 이후에는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브런치(아침 겸 점심) 문화가 식문화로 유행하면서 슬라이스 햄이 인기를 끌었다. CJ제일제당은 브런치 시장을 1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으로도 햄과 소시지 소비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1인 가구가 주요 가구 형태로 자리잡으면서 햄샌드위치, 소량 포장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혼술 문화가 퍼지면서 간편한 안주로 햄이나 소시지가 선호되고 있다. 어린이 간식으로 자리잡은 진주햄의 ‘천하장사’, 롯데푸드의 ‘키스틱’ 등은 다양한 형태의 제품으로 나오고 있다. 햄, 왠지 꺼려지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됐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정가은, 딸 소이와 화보 “성형 전 내 눈 닮았다”

    정가은, 딸 소이와 화보 “성형 전 내 눈 닮았다”

    정가은이 딸과 함께 동반 화보 촬영에 나섰다. 방송인 정가은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우리 소이와 함께한 시간~~엄마는 너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는 게 너무너무 신나고 감동이고 뿌듯했단다. #여성조선5월호”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정가은과 소이는 함께 화보 촬영 중인 모습이다. 블랙 의상을 입은 정가은의 카리스마와 몸매가 눈길을 끈다. 특히 엄마와 닮은 듯 한 귀여운 외모의 소이는 엄마 미소를 짓게 한다. 정가은은 지난해 7월 딸을 출산했다. 한편 정가은은 과거 한 방송에서 자신의 성형사실을 고백하며, 7개월 된 딸이 “성형 전 내 눈을 닮았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낸 바 있다. 사진 = 정가은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2㎞ 국장 행렬… 영월 단종문화제 개막

    1.2㎞ 국장 행렬… 영월 단종문화제 개막

    어가 행렬·제향 의식 등 화려…정순왕후 선발·체험행사 풍성“웅장하게 펼쳐지는 국장 재현, 왕릉 어가 행렬, 정순왕후 선발대회에 초대합니다.” 강원 영월군은 단종의 넋을 달래기 위한 강원 영월 단종문화제가 ‘단종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동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릉과 관풍헌, 동강 둔치 일원에서 열린다고 26일 밝혔다. 올해로 51회째를 맞는 단종문화제는 국내 최대 조선시대 국장을 재현, 단종 국장의 웅장함과 다양한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축제로 자리잡았다. 국장 재현은 27일 동강 둔치에서 출발해 장릉까지 펼쳐진다. 2007년 단종 승하 550주년을 맞아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실제 단종 국장을 치른 뒤 10년째 이어 온다. 재현 행사는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조상례보편에 의한 대도구 16종 202식과 소품 49종 275식으로 구성됐다. 발인 행렬에만 1391명이 참여하고 행렬 길이만 1.2㎞에 달한다. 이틀째인 28일에는 동강 둔치에서 정순왕후 선발대회가 열린다. 올해가 19회째로 전국 123개 시·군에서 추천한 1차 기혼여성들 가운데 뽑힌 16명이 무대에 올라 단종의 비 정순왕후로 최종 선발된다. 29일 동강 둔치에서 시작해 장릉까지 이어지는 왕릉 어가 행렬은 왕과 신하들이 장릉을 찾는 화려한 행차로 선보인다. 조선시대 군사행진과 의장행렬이 이어지고 조선시대 왕과 종친, 문무백관은 물론 전날 선발된 정순왕후까지 모두 영월읍내 거리를 지나는 장관이 연출된다. 이후 단종 제향 의식까지 이어진다. 특히 올해는 단종과 충신들의 역사적 의미를 새기며 역사·교육 체험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 ‘역사교육 체험관’을 처음 운영한다. 이 밖에 부대행사로 칡줄다리기 등 전통행사와 체험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단종국장 행렬 대도구 전시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역사물 전시, 사육신·생육신 등 충신을 소개하고 윷놀이, 투호, 그네뛰기 등 민속놀이도 펼쳐진다. 장릉 재실에서 진행되던 전통의상 체험행사를 동강 둔치 행사장으로 옮겨 진행하고 여중고생들이 참여한 ‘전통의상 포토경연대회’도 진행한다. 단종에게 소원을 빌고 복을 기원하는 ‘소원 테마존’도 선보인다. 관광객과 함께 체험하는 화합의 축제로 만들기 위한 ‘칡줄다리기’는 전국대회로 마련됐다. 9개 읍·면 대항과 군부대 경연대회, 영월대표팀과 서울·경기·충북팀 270여명이 참여하는 경연대회 등으로 펼친다. 먹거리, 체험장, 전시장 등을 용도에 따라 구분 배치해 관람객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박선규 영월군수는 “어린 세대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의 장으로, 기성세대에게는 역사의 교육과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추억의 여행지로 단종문화제가 새롭게 선보인다”고 말했다. 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사임당’ 이영애X송승헌 ‘미인도’에서 ‘금강산도’까지 “눈 호강”

    ‘사임당’ 이영애X송승헌 ‘미인도’에서 ‘금강산도’까지 “눈 호강”

    사임당이 그린 그림들이 브라운관을 수놓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스페셜 ‘사임당, 빛의 일기’(극본 박은령, 연출 윤상호, 제작 (주)그룹에이트, (주)엠퍼러엔터테인먼트코리아)에서 이영애가 ‘금강산도’를 그리면서 그동안 극중에서 그려진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의 4월 19일 24회 방송분에서는 사임당(이영애 분)은 금강산도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어 이겸(송승헌 분)까지 합심해 그림을 완성하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극중 예술혼을 지닌 사임당과 이겸, 그리고 휘음당 그려낸 작품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진 것이다. 우선 사임당의 경우 지난 13회에서 휘음당(오윤아 분)이 이끄는 중부학당 자모회 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묵포도도’를 시작으로, 18회에서는 실제 ‘월매도’를 모사한 ‘묵매화’를 그렸다. 이후 그녀는 ‘수묵산수도’와 ‘초충도’, ‘수박과 쥐’, 그리고 ‘노련도’를 연상케하는 ‘연과 백로’를 차례로 그렸는가 하면, 지난 23회와 24회에서는 극중 이겸과 함께 ‘함박꽃과 나비’, 그리고 ‘중종의 어진’과 ‘금강산도’를 차례로 그리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여기에다 어린 사임당(박혜수 분)이 그린 것으로 설정된 메뚜기와 나비그림, 양반풍자그림까지 포함하면 무려 스무작품의 이상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겸의 경우 첫회에 강렬하게 등장한 ‘미인도’를 시작으로, 아역(양세종 분)시절 ‘사임당아역의 초상화’, 기생의 몸에 그린 ‘매화그림’, ‘파초도, ’가응도‘, ’탁족도‘, 그리고 이암의 ’모견도‘를 모사한 ’모견도‘뿐만 아니라 해와 산, 새가 담긴 그림에다 동냥밥 퍼먹는 소년, 내관, 함박꽃, 소나무 그림에 등 형식을 갖추지 않은 그림도 다수 그렸다. 또 휘음당은 ’초충도‘와 ’장미 호접도‘에다 ’꽃과 나비‘ 등을 포함한 여러 그림을 그린 것으로 설정되었고, 특히, 조선시대와 현대에서 중요한 스토리를 이끌어온 안견의 ’금강산도‘ 또한 진품 못지않은 작품이 드라마에 선보여지면서 극적 재미를 더했다.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음영을 잘 살린 고운 채색과 여성스럽고 섬세한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역사속 신사임당의 실제 작품처럼 드라마 속 채색화와 묵화는 오순경화백, 그리고 장병언화백, 박순철화백이 참여하면서 덕분에 더욱 빛을 발했다. 이들은 극중 등장한 수십 여 작품을 위해 촬영 설정에 따라 한 그림에만 최소 다섯에서 여섯장을 그렸고, 이에 따라 총 백 여장이 훌쩍 넘는 작품을 그리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사임당과 이겸이 그린 중종의 ’어진‘과 ’금강산도‘, 그리고 사임당의 ’미인도‘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인 뒤에야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임당‘ 관계자는 “이번 ’사임당‘을 통해 실제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 뿐만 아니라 가상의 인물인 이겸과 휘음당이 그린 수 십여 작품을 드라마에서도 선보이면서 브라운관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라며 “앞으로 남은 방송분동안 또 어떤 작품이 등장하게 될지와 더불어 사임당과 이겸의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어떻게 그려지고, 금강산도를 둘러싼 진실이 어떻게 전개될지 마지막까지 꼭 지켜봐달라”라고 소개했다. ’사임당‘은 매주 수,목요일 오후 10시에 SBS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런웨이 조선]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한 천연 재료, 검은 머리·물광 피부… K뷰티 원조

    [런웨이 조선]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한 천연 재료, 검은 머리·물광 피부… K뷰티 원조

    아름다움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시대에 따라 혹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계층을 불문하고 맑고 깨끗한 피부를 선호하지 않았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고운 피부가 미의 기준이라는 전제 아래, 화장으로 어떤 점을 강조할 것인가는 다른 얘기이다.중국이나 일본은 색조 화장을 선호했다. 중국은 얼굴에서 화장으로 어디를 강조했느냐에 따라 시대를 구분할 정도다. 당나라 말기에는 짙은 눈썹에 이마 사이에는 화전을 그리고, 볼 양옆에 사홍(斜紅)과 보조개에 해당하는 면엽(面靨)을 그려 넣어 더욱 짙고 화려한 화장을 했다. 이후 송나라에서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며 이마, 콧등, 턱을 하얗게 칠하는 새로운 화장법이 등장했다. 일종의 하이라이트 효과로 얼굴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중국 여성의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을 방증한다.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일본 여성은 얼굴의 이목구비를 드러내어 입체적으로 하기보다는 빨간색, 흰색, 검정색의 세 가지 색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 얼굴과 몸을 은폐하고자 했다. 얼굴과 목, 등까지는 백분으로 하얗게 덮어 가리고, 입술과 뺨, 손톱에는 빨간색을 칠해서 덮었다. 치아는 검정 칠을 해서 치흑(齒黑)을 만들고, 눈썹은 밀어 이마를 변형시켰다. 이는 일본 여성의 화장법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추는 데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조선 여성은 어떻게 화장을 했을까. 조선 여성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색조는 약하게 하는 대신 피부 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은 얼굴이 아니라 머리카락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지난 회에서 언급한 바 있다. 길고 풍성한 머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검은 머리와 대조를 이루는 백옥 같은 피부로 머리 스타일과 조화롭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백옥 같은 피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맑고 깨끗한 것은 물론 물광, 즉 윤기가 필수적이다. 조선 여성은 중국이나 일본 여성처럼 덧칠하는 화장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피부 미용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정성을 쏟았다. 피부 관리는 당연히 깨끗한 세안에서 시작한다. 이때 사용된 것이 녹두와 팥 등을 갈아 만든 조두다. 조두는 곡식의 껍질을 벗긴 후 곱게 갈아 체에 쳐내 만든 가루비누다. 물로 얼굴을 적신 후 손바닥에 조두를 묻혀 문지르면 때가 빠지고 살결이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이 가루비누는 날비린내가 났다.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조선 여성은 향을 넣어 고급 향비누를 만들었다. 깨끗이 세안을 하고 난 다음, 액체 상태의 미안수를 바른다. 얼굴을 부드럽게 하는 동시에 화장이 잘 받게 하는 기초 케어다. 미안수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로 재료의 성질을 십분 활용하여 만들었다. 미안수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박이다. 가을에 박을 거두고 난 다음 뿌리에서 가까운 쪽의 줄기를 잘라 병에 꽂아 놓는다. 미끈미끈한 즙이 나오는데 이것을 바르면 피부에 자연스런 윤기가 흐르며 보습 효과가 좋았다. 오이 역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다. 흔하다 보니 미안수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게 개발했다. 오이 속을 삶아 씨를 걸러낸 후 그 즙을 사용하기도 하고, 삶을 때 발생하는 증기 자체를 미안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간단하게는 오이를 썬 다음 즙을 짜서 그대로 바르기도 했다. 또 유자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유자와 물, 술을 같은 양으로 넣고 푹 끓여 삼베로 걸러내면 겨울철에도 매끈한 피부로 관리할 수 있는 미안수를 만들 수 있으며, 유자를 껍질째 정종에 담가 1개월 정도 두면 고농축 ‘유자 로션’을 만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수박, 토마토, 당귀, 창포, 복숭아 잎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의 재료들이 미안수로 이용되었다. 조선 여성이야말로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하는 생활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미안수로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고 나면 다음에는 면지를 바른다. 면지는 얼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종의 세럼이나 영양크림에 해당한다. ‘규합총서’에는 계란을 술에 담가 밀봉하여 약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얼굴에 바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얼굴이 트지 않을 뿐 아니라 윤기가 나 마치 옥같이 되었다’는 조선판 사용 후기가 기록되어 있다. 실제 계란 노른자에 있는 레시틴 성분은 피부를 촉촉하게 가꾸어 줄 뿐 아니라 잔주름을 없애 주며, 흰자는 세정력이 있어 피지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다. ‘윤기’에 대한 조선 여인의 관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들깨, 살구씨, 목화씨, 쌀, 보리에서 추출한 기름도 사용하였다. 기름은 새살을 돋아나게 해 주근깨와 여드름 치료에 효과가 있거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촉촉한 피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모두 자연에서 얻은 순수한 화장품이다. 화려하고 진한 화장보다 피부 관리에 정성을 다했던 물광 피부의 원조, 조선의 여성들은 이미 천연 원료와 자연주의 콘셉트로 ‘K 뷰티’를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대선 후보에 바란다-3대 취약계층을 살리자] 가족 모두가 ‘비정규직’… 질 나쁜 일자리 놓고 ‘父子 전쟁’

    [대선 후보에 바란다-3대 취약계층을 살리자] 가족 모두가 ‘비정규직’… 질 나쁜 일자리 놓고 ‘父子 전쟁’

    ‘질 나쁜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부자(父子)간의 세대 전쟁’,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심화된 비정규직 문제의 완화는 유권자의 표심이 아쉬운 대선 후보들에게는 늘 중요한 공약 주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완화되기는커녕 ‘현대판 신분제’로 고착화되며 이른바 ‘헬조선’의 상징어로 통용되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의 실태를 점검해 보고 대선 후보들의 공약 분석 및 실제 비정규직의 목소리와 전문가 제언을 싣는다.# 대기업의 2차 하도급 업체에 다니다 6년 전 퇴직한 박재갑(61)씨는 4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5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아내 김순남(60)씨는 그때그때 연락이 오면 요양병원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간병인이다. 아들 철훈(30)씨는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뒤 9년째 일감을 찾아 건축 현장을 전전하고 있다. 며느리 이지희(28)씨는 최근 백화점 2층 여성복 매장의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이로써 박씨 집안은 모두 비정규직이 됐다. 철훈씨는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2년만 고생하면 본사 ‘정직’(정규직)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일을 비슷하게 해도 정직에 비해 급여가 적고, 심지어 ‘참’(간식)과 식사까지 따로 해야 했지만 ‘신분 상승’에 대한 믿음 때문에 ‘차별’에 대한 불만을 억누르며 일했다. 하지만 ‘공기’(공사 기한)가 끝나면 계약도 끝이란 걸 1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애초에 건설 쪽에 발을 내디딘 게 문제였던 거죠. 결혼하면서 중소기업이지만 정규직이었던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장담했던 게 후회될 뿐이죠.”아버지 박씨는 24시간 2교대 근무에 한 달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래도 이 바닥에서 (나는) 나이가 어린 편이라 쉽게 일을 구했고 주민들도 친절해. 아내도 틈틈이 일하고, 내년부터는 연금도 나오니까 살 만할 거야. 철훈이가 걱정이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까 봐. 초·중학교 때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켜서 대학에 보냈으면 정규직이 됐을지도 모르니까 너무 미안하지.” 비정규직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신분’이 돼 버렸다. 통계청의 근로형태별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체 비정규직 644만 4000명 가운데 고졸 이하는 68.2%인 반면 정규직 1318만 3000명 중 전문대졸 이상은 57.4%로 나타났다. 가정 형편에 따라 나뉘기 마련인 교육 수준이 근로형태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김복순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임금근로자 가운데 고졸자가 751만명이고, 이 중 38%인 286만명이 한시적 근로나 기간제 등의 비정규직”이라며 “연령대별로 봤을 때는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고졸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고졸자가 대부분인 15~24세 임금근로자 중 남녀 각각 52.4%, 47.1%가 비정규직으로 나타났다. 이 비중은 대졸자가 많은 연령대인 25~29세에서는 각각 23.8%, 24.3%로 떨어진다. 비정규직 비중은 49세까지는 여자 30%대 중반, 남자 20%대 이하로 유지되다가 은퇴가 시작되는 50대부터 커지기 시작한다. 60~64세의 비정규직 비중은 남녀 모두 50%가 넘는다. 지난 20일 서울의 대표적 인력시장 중 한 곳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의 인력시장에서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일자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용했던 새벽 거리는 오전 4시부터 30분 동안 어림잡아도 3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인도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일을 찾아 나온 사람들은 무질서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50여개의 인력사무소에 이름을 올린 뒤 은행 앞에는 ‘목수’, 슈퍼마켓 앞에는 별다른 기술이 없는 ‘잡부’들이 모이는 등 각각의 구획별로 나눠 서서 ‘콜’을 기다렸다. 잡부는 하루에 10만~12만원, 목수는 평균 18만원, 비계공은 최대 22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 모인 사람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500~600명 정도는 일을 구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D인력사무소 앞에서 만난 백충식(61)씨는 “환갑이 지난 뒤 일할 수 있는 공사장이 크게 줄었고, 건설자재를 정리하는 일을 주로 한다”면서 “젊은 중국 동포들이 건설 현장에 많이 나오니까 나이 먹은 사람 데려다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근 일을 하는 전모(56)씨는 “지금 남구로는 단가가 싸기 때문에 80~90%가 중국 동포”라고 말했다. 가방도 없이 비닐봉투에 짐을 담고 친구와 함께 수원의 주상복합 공사 현장으로 가던 김봉영(25)씨는 “올해 대학을 졸업했는데, 일자리를 못 구해서 용돈벌이를 위해 나왔다”며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어르신들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선호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일하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남구로 인력시장에서 현장으로 가게 되는 사람들은 건설업계의 일자리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이다. 시행사-시공사(원청)-1차 하도급-2차 하도급-3차 하도급-1차 십장-2차 십장-팀장의 아래에서 일하게 된다. 인천의 한 대학교 기숙사 공사 현장에 일하러 가게 됐다는 서우석(70)씨는 “10만원 받으면 그중 10%는 인력센터에 떼어 주고 5000원은 이동 차량 비용으로 낸다”고 말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서울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이것이 야생이다’ PD, 김국진·손연재 섭외한 이유?

    ‘이것이 야생이다’ PD, 김국진·손연재 섭외한 이유?

    ‘이것이 야생이다’ 김국진과 손연재 섭외 이유가 공개됐다.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EBS ‘이것이 야생이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손승우PD는 김국진과 손연재를 섭외한 이유에 대해 “남녀가 있었으면 했다. 남자는 거목 같은 느낌이 있었으면 했다”며 “여성은 한창 꽃봉오리에서 피어나려는 구도가 좋지 않을까 했다. 자연을 듬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분과 모습 자체가 자연과 닮아서 피어날 수 있는 분이었으면 했다”고 밝혔다. 손연재가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과 어울리는 매력이 있다는 것. 손PD는 “예능인으로서 이미지보다는 예능인답지 않은 진중함과 무게감이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촬영하고 나서 보니 느낄 수 있었다”며 자연 다큐멘터리와 만난 김국진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김국진은 다큐멘터리 출연에 대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있는 그대로 따라가보자 했다”며 “이렇게 프로그램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기 어려운 콘셉트다. 있는 그대로 마냥 기다리고 따라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다큐멘터리라 가능한 것 같다. 그대로 따라가는 느낌은 어떨까 했었다”며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손연재는 “항상 운동을 하면서 자연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자연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손연재는 “방송 데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프로그램을 선택한 것도, 리듬체조선수 손연재로서의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 새로운 것들이 많다. 자연다큐멘터리 제안이 왔고, 자연을 얼마나 생각하면서 살아왔을까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을 보고 느낀 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함께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 “운동을 하다보니 자연을 보러 간다거나 생각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더 새로웠다. 경쟁하는 것에서 벗어나 여유있는 자연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것이 야생이다’는 오는 4월 30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5분 방송한다. 사진 = 연합 연예팀 seoulen@seoul.co.kr
  • [副자 붙은 공무원 그들은…] 민원 해결 ‘아는 형님’ 단체장 보좌 ‘안방 마님’…지역 사회 ‘팔방미남’

    [副자 붙은 공무원 그들은…] 민원 해결 ‘아는 형님’ 단체장 보좌 ‘안방 마님’…지역 사회 ‘팔방미남’

    지방정부의 부단체장은 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다리’다. 행정고시, 기술고시, 특채 등으로 공직에 입문한 전문 공무원이다. 중앙 부처와 시·도의 요직을 거치면서 쌓은 화려한 인맥을 부단체장이 되면 활용한다. 전문가 특채, 정치인, 9급 공무원 출신도 없지 않다. 특히 중앙 정부와 정치권 인맥을 바탕으로 국비를 확보하고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민원 창구’가 되기도 한다. 또 정치인 출신 민선 단체장들을 보좌하는 ‘안방마님’이기도 하다. 서울·부산 등 전국 17개 광역 부단체장은 총 35명이다. 강원도 경제부시장은 현재 공석이다. 50대가 29명이고, 나머지 6명은 60대다. 행정고시 출신이 20명으로 전체 57%를 차지했고, 지역별로는 경북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출신대학은 서울대 12명, 성균관대 6명, 연세대 5명, 고려대 2명 등의 순이었다. 현역 광역 부단체장 중에 여성은 1명도 없다.#고시·특채 통해 등용… ‘9급’ 출신도 전국 17개 시·도의 행정부시장과 행정부지사는 총 19명이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행정 1·2 부시장·부도지사를 뒀기 때문이다. 19명의 행정 부단체장 중 16명이 행정고시 출신이다. 나머지 3명은 서울 행정2부시장, 세종 행정부시장, 충남 행정부지사로 기술고시 출신이다. 중앙부처 5급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정부부처와 지방정부를 오가며 행정 경험을 쌓은 엘리트들이다. 이때 쌓은 경험과 인맥이 국비 확보와 지역 현안 해결에 큰 힘이다. 서울시는 류경기(56) 1부시장과 이제원(55) 2부시장 등 2명의 행정부시장이 박원순 시장을 보좌한다. 특히, 박 시장이 대선 도전을 고민했던 지난해 6월부터 부시장들의 역할이 커졌다. 둘은 2015년 7월 부시장에 임명됐다. 류 1부시장은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을 기치로 내건 오세훈 전 시장 때 한강사업본부장과 디자인기획관 등을 역임했고 시장 비서실장도 했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시장이 대변인으로 발탁했을 때 “전임 시장의 역점 사업을 추진했던 사람을 새 시장의 ‘입’으로 써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능력 있는 사람을 쓴다’는 원칙으로 그를 중용했다. 류 부시장은 전형적인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스타일의 리더라는 평가다. 중요업무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큰 틀에서 교통정리를 해줘 직원이 편히 일하도록 돕는다. 이 2부시장은 시 직원 사이에서 ‘신사’로 통하는 도시계획통이다. 이 부시장과 함께 일하는 한 시 간부는 “도시계획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까닭에 일처리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적임자”라면서 “의견을 두루 듣고 결정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부시장은 박 시장의 남은 임기 최대 사업인 ‘서울로 7017 프로젝트’(옛 서울역 고가공원화 사업)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박재민(52·행정고시 31회) 부산시 행정부시장은 ‘인사통’이다. 서울시 재무국장 등을 역임해 지방재정 분야 전문가로도 알려졌다. 심덕섭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실장과 방기선 기획재정부 경제예산 심의관, 최병환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 등과 가깝다. 2015년 8월 취임한 전성수(56) 인천시 행정부시장은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장, 투자유치담당관, 총무과장 등의 요직을 거친 인물. 서울시와 탄탄한 인맥을 형성한 그는 인천과 서울의 첨예한 현안인 수도권매립지, 경인 아라뱃길 등의 껄끄러운 문제를 잘 풀어나갔다는 평가다. 이재관(52)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주로 충남도에서 공직생활을 했지만, 행자부 정책기획관과 국회 자유한국당 안전행정위 수석전문위원을 거치면서 정·관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허언욱(53) 울산시 행정부시장은 총무처, 내무부, 행정안전부, 주독일대사관 총영사, 행자부 지역발전정책관, 국무총리실 분권재정관으로 근무해 쌓은 인맥을 울산시 현안사업 해결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2월 부임한 허 부시장은 지난해 1200억원이었던 지방교부세를 올해 1568억원으로 늘렸다. 지난해 8월 취임한 김장주(53) 경북도 행정부지사는 경북도에서 잔뼈가 굵고 나서 행자부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등을 거치며 중앙 인맥을 쌓았다. 김 행정부지사는 강병규 전 안전행정부 장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등 행자부 출신 대구·경북(TK) 인맥과 친분이 두텁다.#정치인 단체장과 ‘찰떡궁합’인 정무 부단체장 단체장의 눈빛만 보고도 의중을 읽는 ‘찰떡궁합형 부단체장’도 있다. 단체장과 임기를 같이하는 유형이다. 정치인인 단체장의 부족한 행정능력을 적절히 보충한다. 또 지역 현안을 해결하려고 경제관련 부처에서 부단체장으로 영입하기도 한다. 지역 출신 인재가 부족할 때 지방정부가 많이 쓰는 영입 카드다. 김종욱(50)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3월 현직 시의원 출신으로는 처음 정무부시장에 임명됐다. 재선 시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의원을 맡기도 했다. 박 시장은 “진정한 의미의 지역 자치가 자리잡으려면 지역 의회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그를 부시장에 임명했다. 재선 출신인 임종석 전 국회의원 등이 맡았던 정무부시장에 임명돼 시의원의 위상을 재선 국회의원급으로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험 많은 정치인 출신인 김 부시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와 시의회의 원활한 협업을 이끌 전망이다. 김연창(62)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7년째 자리를 지키는 ‘장수’ 부시장이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79년에서 2008년 국가정보원에서 일했다. 국정원 1급으로 퇴직하고서 2010년 인천국제도시개발 대표를 거쳐 2011년 2월 경제부시장에 발탁됐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오규택(53)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예산통’으로 알려졌다. 2016년 임명돼 울산시가 역대 최대 규모 국가 예산을 확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최근에는 조선산업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울산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대안을 제시하는 등 경제분야 리더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허승욱(51)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안희정 지사의 핵심 정책인 ‘3농 혁신’의 전도사다.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시절에 충남도 3농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인연을 맺었고, 급기야 2014년 7월에 정무부지사로 임명됐다. 우기종(61) 전남도 정무부지사는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등을 거쳐 통계청장도 역임했다. 재정경제부 기획국장 근무 때 이낙연 지사와 인연을 맺었다가, 이 지사의 삼고초려로 2014년 8월 고향 전남으로 돌아왔다. 김방훈(63)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토목직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제주 공직 사회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현 원희룡 제주지사와 당시 새누리당 당내 후보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변신 ‘지름길’… 여성은 ‘0명’ 광역 부단체장 역임을 발판으로 국회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정태옥(56)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북갑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는 유일하게 광주·전남에서 금배지를 단 이개호(57) 국회의원이 있다. 전남도 행정부지사 출신이다. 정헌율(59) 익산시장과 박성일(62) 완주군수는 전북도 행정부지사 출신이다. 조은희(56) 서울 서초구청장은 2010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으로, 2014년 지자체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서울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진정한 컬렉터라면 딱 ‘한 점’만 가진다

    진정한 컬렉터라면 딱 ‘한 점’만 가진다

    30년간 조선의 미(美)에 미쳐 조선 도자기를 예찬해 온 컬렉터 전기열(65)씨. 부산의 한 중견기업 회장이자 사설 연구소인 한국조선백자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10여년 전 일본 교토에서 만난 일본인 학자에게 일본 국보인 ‘기자에몬 이도다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자에몬은 직경 15㎝, 높이 9㎝의 조선 사발로 16세기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찻잔으로 썼던 것으로 전해지는 기물(器物)이다. 당시 가치는 120억엔 정도로 평가됐다. 그러나 박물관장을 지낸 일본 학자는 서슴지 않고 1000억엔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한화로 1조원이다. “그 가격에 살 사람이 있겠느냐”고 되묻자 정색을 하며 일본의 컬렉터들은 살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 소장은 “머슴 밥그릇으로나 쓰던 조선사발에 대한 지독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조선 도자기의 미와 컬렉터 인생을 풀어낸 ‘조선 예술에 미치다’(아트북스)를 펴낸 전 소장은 20대 청년 시절부터 골동(骨董)인 고미술품을 수집해 온 이름난 컬렉터다. 그의 부친은 부산 온천장에서 요정을 운영했는데 목재 허행면 등 소문난 예술가들이 식객으로 거했다고 한다. 그가 그동안 수집에 투자한 돈은 수백억원. 한때 3000여점까지 모았던 수장품은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 컬렉터들과 옥션 등에서 팔려 현재는 수백점 정도가 개인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그의 수집품은 백자 달항아리, 백자철화 매죽문각병, 분청사기 덤벙문 소병, 사발 등 조선 도자기가 대부분이다. 이 밖에 남관, 이응노, 김환기, 최영림, 이우환, 김창열 등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도 50여점을 갖고 있다. 지난 3일 부산 해운대 인근의 개인 사무실. 전 소장이 ‘비마’(悲魔)라는 이름의 백자 사발(김해요)을 꺼내 들었다. 비마는 성불 전 경험하는 다섯 번째 마귀로, 세상 모든 게 슬프고 부질없게 느껴지는 ‘심마’(心魔)다. 그는 “이 사발을 볼 때면 곱게 빚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없는, 그저 손맛대로 빚어낸 무심함이 느껴진다”며 애착한다. 그런데 전 소장이 비마를 책상 위에 뒤집어 놓는 순간 별안간 그 사발이 달리 보였다. “영락없는 여성의 젖가슴같지 않나요”라는 그의 말대로 백색 태토에 옅은 노란색 기운을 띠는 사발의 뒤집어진 자태는 젖가슴 형상이었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선이 곱고 뚜렷한 사발에서 흙을 매만지는 도공의 탁월한 솜씨가 엿보인다. 그는 “가슴에 품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고, 그냥 기약없이 쳐다만 보기도 한다”며 “조선 사발은 만지고, 보고, 느끼고, 즐겨야 비로소 그 진가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일본 학자들의 도자기 이론이 아닌 우리 고유의 미감으로, 나아가 컬렉터라면 자신만의 시각과 안목으로 미를 이해하고 판별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에게 조선사발은 최첨단 과학의 유산이다. 전 소장은 “세계 최고의 사발 기술 종주국이 조선이었다”며 “일본 다이묘들이 조선 사발을 가리켜 일국(一國), 일성(一城)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한 건 과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한국의 컬렉터 문화는 태생적으로 일본, 특히 일제강점기와 깊이 연관돼 있다. 미술사학자인 김상엽 박사는 한국 근대 미술시장의 태동을 고려청자의 도굴 수난사에 빗댄다. 김 박사는 “청일전쟁 시기 일본 장사치들이 처음으로 고려도기 거래에 나섰으며 1906년 일본인 아키오가 도굴한 청자들을 경매한 게 국내 미술 경매의 시초”라고 말한다. 우리 근대 미술시장의 태동기가 일제강점기였고 이때 미술품 감식부터 전시기획, 매매상, 거간꾼 등 이전에 없던 직종과 산업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1930년대 경성의 인구는 40만명 남짓했고 1935년에도 45만명에 미치지 못했는데, 당시 경성에서 거의 매월 교환회 및 경매회가 열렸고 30개가 넘는 골동상들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보면, 당시에 골동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김상엽의 ‘미술품 컬렉터들’ 56~57쪽) 김 박사는 우리의 ‘근대 컬렉터’로 민족지사 오세창, 친일파 박영철, 국내 첫 치과의사인 함석태, 친일파로 해방 후 수도경찰청장을 지내고 국무총리까지 된 장택상, 조선 왕실의 마지막 내시였던 이병직, 민족유산을 수호한 위대한 수장가로 평가받는 전형필 등을 꼽는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이 간송 전형필(1906∼1962)과 송은 이병직(1896∼1973)이다. 간송은 탁월한 안목으로 정평 난 컬렉터다. 그가 전 재산을 털어 평생 수집한 미술품은 1938년 국내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에 보존됐다. 상당수 작품이 국보급으로,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등이 대표적이다. 간송이 1935년 일본인 골동상으로부터 사들여 골동계의 전설이 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당시 돈 2만원으로, 서울의 기와집 열 채 값에 달했다. 간송은 보성고등학교를 인수해 민족 교육에도 헌신하는 등 한국의 컬렉터 가운데 독보적인 민족문화 수호자로 꼽힌다.대한제국 마지막 내시 출신이자 구한말의 재력가였던 송은은 수장가뿐 아니라 서화가로 유명한 예술인이었다. 조선 유일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 경매회에서 실명 컬렉션으로 경매를 두 차례나 연 인물이다.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일연의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지켰고 전 재산을 고향의 양주중학교(현 의정부고등학교) 설립에 기부했다. 전 소장은 현대의 최고 컬렉터로 호암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주를 꼽는다. 이 회장의 수집품들을 모아 놓은 서울 리움미술관과 용인 호암미술관에는 국보 37건, 보물 115건이 소장돼 있다. 전 소장은 “리움과 호암의 2만여점에 달하는 컬렉션들을 보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안목이 높지 않으면 가치를 알수 없는 고미술품들이 수두룩하다”며 “그 점에서 이 회장은 미적 감각과 인문학적 시각이 탁월한 컬렉터였다”고 평가했다. 현재 활동 중인 국내 컬렉터 규모는 3000~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 소장은 그러나 대다수가 예술품에 대한 안목이나 심미안을 갖고 있지 않은 ‘투자(투기)형 컬렉터’로 본다. 그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통하는 대형 컬렉터는 20~30명 정도로 압축된다. 이들 정도가 당대 예술품의 ‘수장 경로’로, 예술품의 가치 지표가 된다고 본다. 그는 “컬렉터로 살아온 30년 동안 안목과 역사성, 미에 대한 사유와 관념을 갖춘 컬렉터는 국내에서는 1~2명이 떠오를 뿐”이라며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 골동 귀신이 붙는 것만큼 고약한 경우가 없다”고 말했다. “저 역시 골동 귀신에 홀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물을 찾아 나서죠. 진정한 컬렉터라면 딱 한 점만 소장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전에 충분한 눈으로 기물을 익혀야 하며, 눈앞에 영혼을 흔드는 일생일대의 기물이 나타날 때 혼신을 다하면 수집 인생은 완성될 것입니다. 두 점부터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거든요.” 그가 체험하고 깨닫게 된 컬렉터 인생의 노하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허난설헌 詩의 정취… 고운 몸짓, 나빌레라

    허난설헌 詩의 정취… 고운 몸짓, 나빌레라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가을바람 잎새에 한 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 소매를 적시네” (허난설헌의 시 ‘감우’)조선 중기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주옥같은 시가 무대 위에서 몸짓으로 꽃핀다. 국립발레단은 새달 5~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창작 신작 ‘허난설헌-수월경화’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이자 차세대 안무가로 주목받고 있는 강효형의 세 번째 안무작이다. 허난설헌은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서 자신을 평생 외롭게 한 남편, 일찍 떠나보낸 두 아이에 대한 슬픔으로 휩싸인 채 서글픈 인생을 살았다. 이번 무대는 허난설헌이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 시 ‘감우’, ‘몽유광상산’ 속에 등장하는 잎, 새, 난초, 부용꽃 등 시의 이미지를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공연 제목인 ‘수월경화’는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이란 뜻으로 시적인 정취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함을 비유하는 사자성어다. 뛰어난 글재주를 지니고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난 허난설헌의 삶을 의미한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음악이 미(美)를 더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유명 음악가들의 공연 의상을 만들어 온 의상 디자이너 정윤민의 화려한 의상도 볼거리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신승원과 박슬기가 허난설헌을 연기한다. 관람료는 1만~3만원. (02)587-6181.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런웨이 조선] ‘속옷만 6벌’ 겹겹이 쌓은 아름다움…서양사람 페티코트도 부럽지 않소

    [런웨이 조선] ‘속옷만 6벌’ 겹겹이 쌓은 아름다움…서양사람 페티코트도 부럽지 않소

    몸매 얽매이지 않고 여성미 최대한 돋보이게 만들어줘 우리 옷 한복은 중국의 치파오나 베트남의 아오자이, 일본의 기모노와는 구성부터 다르다. 이들은 모두 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원피스 스타일이다. 기모노는 온전하게 직선으로만 구성된 원피스 스타일로 직선의 미를 살리기 위해 여성의 몸을 직선 안에 감춰 버린다. 반면 치파오나 아오자이는 여성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젊고 몸매가 좋은 여성이 입었을 때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어디 젊고 몸매가 좋은 여성만 옷을 입을까. 그렇다면 치마저고리는 어떤가. 직선으로 마름질한다는 점에서는 기모노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여성의 몸을 드러내고자 하는 점에서는 오히려 원피스 스타일과 더 닮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한복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반드시 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몸매가 좋아야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성성을 가장 잘 드러낸 서유럽의 대표적인 드레스 ‘로브 아 라 프랑세즈’와 닮았다.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된 드레스를 보면 상의는 프랑스어로 ‘목둘레를 파다’라는 뜻을 가진 데콜테 스타일이다. 목, 어깨, 가슴이 노출되도록 상체를 파 가슴을 강조했다. 그 위에 코르셋을 입는다. 가는 허리가 미인의 기준이 되자 코르셋의 앞 중앙이 역삼각형으로 내려와 허리를 더욱 가늘어 보이게 만든다. 하의는 페티코트를 입어 엉덩이를 극대화시킨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은 급기야 허리는 더욱 가늘게, 가슴과 엉덩이는 더욱 크게 확대시키는 X자형 아워글라스 실루엣을 만들어 냈다. 우리나라 저고리 역시 처음부터 짧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상의처럼 엉덩이 중간까지 내려오던 저고리는 14세기 말부터 점점 짧아지더니 18세기에 들어서면서 20㎝ 안팎까지 짧아졌다. 이는 유두를 가릴까 말까 할 정도의 길이다. 치마를 입는 위치도 처음에는 허리였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허리에 둘러 입던 치마는 점차 가슴 위로 올라갔다. 짧아진 저고리와 함께 허리에서 가슴으로 올라간 치마는 더욱 길어지고 풍성해졌다. 상의는 상의대로, 하의는 하의대로 여성성을 드러낸 치마저고리는 드디어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새로운 스타일로 진화했다. 서양의 드레스와 치마저고리는 실루엣만 놓고 보면 둘 다 여성성을 강조한 아워글라스 실루엣이다. 그러나 여성성을 어떻게 무엇으로 표현했느냐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다. 서유럽에서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코르셋과 페티코트다. 이들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단순히 허리가 가늘어 보이도록 앞뒤에서 납작하게 끈을 달아 조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허리를 인위적으로 조이고 엉덩이를 과장하면서 코르셋과 페티코트는 나무나 고래 뼈, 심지어는 철로 만들기까지 했다. 신체의 왜곡도 여성성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치마저고리는 달랐다. 저고리는 작게 만들어 몸에 밀착시켰다. 치마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속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단순히 껴입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들은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해 보일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위해 쓰임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속옷을 만들어 입었다.맨 먼저 팬티와 같은 다리속곳을 입는다. 그 위에 바지통이 넓은 속속곳을 입고, 여기에 다시 통이 좁은 바지를 입음으로써 안에 입은 넓은 속속곳이 바지의 폭을 지탱하게 한다. 그리고는 다시 통이 넓은 단속곳을 입어 치마를 부풀린다. 대체로 일반적인 여성의 기본 속옷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재력이 있는 집안의 여성이라면 단속곳 위에 또 한지로 단을 만들어 붙인 너른바지를 입는다. 너른바지는 밑단을 퍼지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그 위에 캉캉치마와 같은 무지기치마까지 겹쳐 입는다. 무지기치마도 3층, 5층, 7층, 9층까지 다양하다. 속옷만 무려 6벌이다. 게다가 공주나 중전마마였다면 모시로 만든 대슘치마를 덧입어 최대한 부풀린다. 서양의 페티코트가 부럽지 않다. 이렇게 부풀려 입은 이유는 단 하나, 예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실제 여성의 저고리를 시험 삼아 입어 보았다. 일단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지기까지 했다. 간신히 입었더라도 잠시 후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아 팔에 부종이 생길 정도였다. 게다가 도저히 벗을 수 없어 결국 소매를 찢고 벗으면서 요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그는 저서 ‘청장관전서’에 “요즘 부녀자들이 입는 저고리는 너무 짧고 좁으며, 치마는 너무 길고 넓어 요사스럽다”고 하면서 “그러니 모든 부인은 이 치마저고리를 고쳐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안 그래도 작은 옷을 남자가 입었으니 좀 과장되었으리라. 그러나 이덕무와 달리 세속의 남자들은 오히려 그 자태에 매혹됐다. 이 패션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던 것도 사대부 남성들의 역할이 컸다. 가위로 찢어야만 가까스로 벗을 수 있는, 작고 딱 달라붙는 저고리와 반대로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치마의 아름다운 실루엣, 하후상박. 무엇이 이 아름다움을 이길 수 있을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평양 르포④/다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 본 북한

    ■첫날 서울과 평양의 직선거리는 200㎞가 채 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전주와 비슷한 거리인데, 육로와 항로가 닫힌 현재 평양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중국을 경유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예선 B조 취재를 위해 평양을 향할 때도 이 길을 따른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이었다. 지난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베이징으로 향한 뒤 3일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연결편이 마땅치 않아 중국에서 하루 체류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 북한 땅을 밟기까지 30시간 가까이 걸렸다. 남미 대륙의 어느 도시를 향한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건 태평양보다 넓은 분단의 벽 때문이었다. 50여 명의 한국 여자축구 선수단과 기자단을 태운 비행기가 3일 오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처음 반긴 건 2012년 새로 지어진 공항 청사였다.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공항 상단 가운데 줄에는 ‘평양’이라는 간판만 걸려있었고, 한국의 중소도시에 자리한 여느 공항처럼 아담한 규모에 익숙한 영어 간판까지 평양이라는 글자와 몇 대 보이지 않던 고려항공의 항공기 간판만 없었다면 북한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국제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는 순안국제공항의 제2터미널로 통하는 통로가 중국에서부터 타고 온 항공기와 연결됐다. 짐칸의 짐을 내려 조금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심호흡을 했다. 처음 본 북한 주민은 통로 입구에 서있던 여성 보안원이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의미 없는 시선을 주고 받았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야 하는 것인지 몰라 가볍게 묵례한 뒤 걸음을 재촉했다. 검역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곳에선 역시 아무 말이 없던 보안원이 보였고, 혹시나 트집 잡힐 일은 없을까 신고서를 여러 번 살펴보아야 했다. 입국 심사를 하는 곳에 섰을 땐 이미 우리 여자 대표팀 선수들과 중국 승객 등이 줄지어 있었다. 낯선 ‘위생실’이란 글자는 이곳이 북한임을 깨닫게 했다. 북한군이 입는 황토색 복장을 입은 보안원이 말을 건 것도 그때였다. “축구 때문에 오셨죠.” 조금 강한 억양이지만, 보안원의 얼굴엔 미소가 작게 보였고 “네. 안녕하세요”하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스스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오시는 거겠죠.” 역시 북한식 말투로 묻는 입국 심사대의 관계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여권 사이에 꽂혀 있던 북한 입국 비자에 도장을 찍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본 입국 심사대의 공항 관계자들과 같은 사무적인 태도였지만, 생소한 광경을 처음 목격한 그런 호기심이 느껴졌다. 방북 전 받은 교육에선 ‘노트북을 키고 여러 내용을 뒤져 본 뒤 트집을 잡을 수 있으니, 웬만한 내용은 모두 삭제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모든 자료를 지워뒀다. ’혹시 문제가 생겨 다시 돌아가라 해도 어쨌든 평양 땅은 한 번 밟아봤구나‘하고 생각하며 엑스레이 기기에 짐을 넣었다. ’이건 뭡니까‘하고 가방을 열어보며 하나하나 꼼꼼히 물어보는 보안원은 중년의 한국인과 닮았다. ”이건 감기약이고, 이건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에요.“하고 답하자 고개를 자연스레 끄덕였다. 황토색 제복과 왼쪽 가슴에 달린 김일성 부자의 휘장이 없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 나라 말을 하는 이의 검사를 받고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일은 무척 생소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미리 나온 영상·사진 선배들이 이미 자리를 잡아놓은 상태였다. 주위엔 생소한 듯 표정을 지은 북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일부 정장을 입은 이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온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바쁘게 공항을 빠져나간 선수들과 인터뷰를 한 뒤 잠시 여유가 생기자 북한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민화협 참사 아무개입니다“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소위 연락관이라고 불리는 북한 관계자들이 취재는 물론 사소한 행동하나까지 통제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이미 방북 교육에서 들어 알고 있었다. 민화협의 ’민족화해협의회‘의 약자로 민간단체의 외양을 하고 있고, 한국에는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8년 민족화해법국민협의회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단체와 인연을 맺으며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교류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회담이나 민간 교류 시에 한국 인사들을 안내하고, 관련 내용을 협상하는 역할도 맡았다고 한다. 민화협 관계자들만 연락관을 맡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온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기에 특별히 배치된 것으로, 이들은 대부분 통일전선부나 보위부 등 대남 활동을 하는 조직의 관계자들이 민화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화협 북한 관계자들은 민화협 사람들은 기자단이 북한에 머물며 가장 자주 대화를 나눈 북한 주민이다.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선수단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통일부 관계자들과 일정을 결정해 기자단에 알려주는 식으로 일과가 시작됐다. 오후 무렵 훈련이나 경기 일정에 맞춰 호텔 1층에 모인 뒤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게 보통이다.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조금 일찍 호텔을 떠나는 것 말고는 달라지는 건 없다. 북한 관계자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 큰 호기심을 보였다. 특히 한국의 대선과 세월호 사건, 최순실 사태 등에 대한 질문은 평양에 도착한 첫 날부터 계속 이어졌다. 이들은 보통 오전 8시쯤 출근해 오후 6시 30분쯤 퇴근하곤 하는데, 한국의 뉴스를 보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라고 했다. 물론 다른 업무가 많아 지는 날이면 야근을 해야한다는 건 한국과 같았다. 북한 관계자들에게 ’회사가 광화문 쪽에 있다‘고 하자 ”전 선생도 광화문에 나가보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최근 계속된 촛불시위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지난 선거에선 누구를 뽑았습니까“, ”이번에 누구를 뽑겠습니까“하는 간단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어 ”안철수 선생이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선생을 많이 따라잡은 것 같던데요”, “박근혜가 탄핵당하는 수치스런운 일이 있었는데, 그럼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박근혜가 세월호 때 주사를 맞은 게 사실입니까” 하는 식으로 자세한 질문도 쏟아냈다. ’체육부 기자라 잘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기자 선생들이 모를 수 있습니까“ 하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평양 평양은 극장 같은 곳이다. 영화가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진실이 아니듯, 평양은 북한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기자단이 볼 수 있는 곳은 북한 관계자들의 의도가 반영된 곳으로 김일성-김정일을 찬양하는 선전 문구와 높이 솟은 빌딩, 신식으로 꾸며진 거리 등이었다. 호텔 역시 외국인들이 묵는 호텔이었기에 평양의 일상을 전부 볼 수는 없었다. 북한이 의도대로 짜여 진 모습이 극장에 걸린 영화처럼 상영되었다. 하지만 이런 스크린은 단지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가리기 위한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한국 선수단이 묵은 숙소는 양각도국제호텔로 해외에서 온 여행객 등 외국인이 묵는 곳이다. 대동강 가운데 있는 양각도에 세워진 47층 높이의 고층 빌딩이다. 사실 평양에는 이 정도 규모의 빌딩은 적지 않은데, 105류경호텔로 불리는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은 아직 완공되진 않았지만, 곧 모두 지어져 호텔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평양 모든 곳에서 건축물은 류경호텔과 양각도호텔, 주체사상탑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동강 변을 따라 자리한 과학자거리에는 ’인재중시 과학중시‘라는 구호가 적힌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다. 호텔로 오던 길가의 건물엔 초록빛 핑크빛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창문마다 꽃 등 식물이 심긴 화분이 놓여있었다. 도로는 깨끗했고, 차는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국의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하는 인민복 등 평상복을 입은 시민들이 평범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북한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하늘에선 손바닥 크기 만하게 보이던 북한의 도시들은 큰 도로를 따라 초록색과 핑크빛 고층 건물이 보였고, 그 뒤로 잿빛 건물들이 하늘에서도 위태롭게 보일 만큼 듬성 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도로 변의 화려한 건물은 큰 길가와 거리를 둔 다수의 건물과 흑백사진처럼 대조를 이뤘다. 평양에서 머문 일주일 동안 흑과 백 같은 대조는 항상 눈에 띄었다. 가깝게는 호텔 방의 창문으로 보이는 방향의 평양 도시와, 방이 배치되지 않은 반대쪽의 도시 모습은 서로 달랐다. 한쪽은 고층 빌딩이 대동강을 따라 늘어섰고, 다른 한쪽은 둔탁한 소리가 울릴 것 같은 시멘트 건물의 앙상한 모습이 주를 이뤘다. 평양 길거리는 서울과 비교해 무채색에 가깝다. 화려한 광고판 위로 각종 영상과 사진이 컴퓨터 그래픽과 어우러져 표현되는 서울의 거리와 달리, 평양에선 상업광고판을 찾아볼 수 없다. 기자단이 평양에 머무는 동안 본 광고판은 김일성경기장 내부 그라운드 주위에 배치된 것들 뿐이었다. 버스 정류장, 건물 외벽, 지하철역 주변에도 광고판은 없었다. 대신 북한의 체제를 선전하는 문구로 가득했고,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의외였던 것은 김정은에 대한 찬양 문구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아직 평양에서조차 안정적인 기반을 닦지 못한 단면으로 보인다. 한국 기자단은 평양에서 주로 경기장-호텔만 오갔는데, 외부로 향할 땐 북한 관계자들이 버스 기사에게 어떤 길로 갈지를 정확히 일러준 뒤에야 버스가 출발한다. 양각도국제호텔과 김일성경기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구글 지도 검색을 통해 확인한 결과 평양역을 거쳐 승리역을 지나 만수대를 통과하는 코스로, 15분이 걸린다. 하지만 기자단을 태운 버스는 과학자거리를 지나 여명거리를 통과해 북쪽으로 길게 돌아 영생탑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로 향했다. 30분 정도 소요된 이 코스를 벗어난 적이 없기에 기자단은 ”걸어다녀도 외워서 가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북한 관계자들이 이런 코스를 택한 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겠다‘와 ’보여주기 싫은 것은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반면 평야에 도착한 3일과 떠난 8일은 순안국제공항을 향하는 길은 한국의 1960년대 시골 풍경과 흡사했다. 도로에는 나물을 뜯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눈에 띄었고, 페인트 칠이 낡아 곳곳에 금 간 흔적을 드러낸 건물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 버스가 흔들리기 일쑤였다. 북한 관계자들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은 곳‘이었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평양에 사는 이들은 짐작하건대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부와의 연결이 철저히 차단되었기에 그들이 비교할 수 있는 건 북한의 다른 도시들 뿐이니 말이다. 북한의 TV 채널은 오직 제한적으로 방영되는 한 개의 채널이 전부였다. 외국인이 묵는 호텔방 안에선 알자지라 등 외부 방송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오가는 호텔의 로비와 식당에선 오직 조선중앙TV가 흐를 뿐이다. 조선중앙TV는 평일엔 오후 3시부터 방송을 시작해 김부자 삼대에 대한 철 지난 다큐멘터리나, 북한 체재를 찬양하는 노래가 주를 이뤘다. 이처럼 평양의 시민들은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북한의 식량난 등 열악한 사정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았다. 평양에 주로 모여 사는 북한 로동당 수뇌부들은 주민들의 목숨을 건 보위를 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누릴 테다. 이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평양 카르텔‘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활 북한 사람들은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평양에서 만난 이들은 학창시절 혹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얻은 직업을 계속해서 했다. 기자단이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식당의 봉사원(종업원)들도 그랬다. 평양에서 식사를 하거나 호텔에 묵을 때 만나게 되는 봉사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장철구평양상업대학 출신이다. 지난해 장철구평양상업종합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이 학교는 봉사학부, 료리학부, 호텔경영학부 등의 전공으로 나뉘며 이곳을 졸업한 이들은 학창시절 배운 내용에 맡게 일을 하게 된다. 호텔이나 공항 식당에서 만난 이들에게 ”평양상업대학 나오셨나요“하고 물으면 모두 ”그렇다“고 말했다. 요리사들에겐 ”평양상업대학 료리학부 나오셨죠“하고 물으면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 5일 평양의 유명 음식점인 옥류관에서 만난 봉사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옥류관의 대표적인 요리인 평양냉면에 곁들인 음식으로 나온 녹두전은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는데, 봉사원에게 비결을 묻자 ”30년 동안 녹두전만 만든 료리사의 손맛“이라고 설명했다. 김일성경기장 앞에 자리 잡은 개선문에는 35년 동안 가이드를 맡은 중년 여성이 있었다. 이 중년 여성은 1982년 김일성의 70번째 생일에 맞춰 건립된 이 개선문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와, 숫자의 의미를 능수능란하게 설명했고, 아치 위로 적힌 김일성에 대한 노래를 편안히 불렀다. 직업 선택 뿐만 아니라 내가 살 곳을 정하는 일도 개인의 뜻대로 할 수는 없다. 북한 관계자와 버스에서 대화를 할 때면 ’남측 어디에 사냐‘, ’결혼은 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미혼인 기자는 ”요즘은 결혼하기 힘들어서 남측은 조금 늦게 결혼하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왜 힘드냐‘는 대답이 돌아오면 ”집값이 비싸서“라는 평범한 대답을 던졌다. ”혼자 살고 있는데 월세로 사는 것도 조금 부담이 될 때가 있어요.“ 기자의 말에 북한 관계자는 ”그 집은 나라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북한은 이론적으론 사유재산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토지와 부동산은 국가가 소유한다. 고층 아파트나 저층 주택이나 나라에서 배정한 대로 살아야 한다. 북한 정권이 살 곳을 배정해주면, 주민들은 일부 사용료를 지불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방이 몇 칸인지, 가족은 몇 명인지 등을 기준으로 배정된다고 북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낮은 곳 말고 저 높은 아파트에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고 북한 관계자에 물었을 때 ”그런 건 없다“고 간단히 답했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사고방식이 일상생활 곳곳에도 적용되는 셈. 결국 북한에서는 개인의 삶 자체보다는 ’나라와 당‘으로 대표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삶을 결정하는 셈이다. ■인터넷 기자단이 북한을 방문해서 가장 놀란 건 카카오톡을 비롯한 페이스북, 구글, 뉴욕타임스,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접속이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물론 무선인터넷(와이파이)가 잡히는 건 아니었고, 랜선을 통한 광대역 연결 방식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다. 평양에선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선 아이디를 따로 발급 받아야 한다. 기자단이 머문 양각도호텔의 아이디는 ’yang‘으로 시작해 두 자리 숫자로 끝난다. 랜선을 컴퓨터에 연결해도 아이디를 치지 않으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하다. 이상한 점은 김일성경기장에서도 호텔에서 발급 받은 아이디로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인데, 랜선이 설치된 곳이라면 어디든 이 아이디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인터넷 사용은 물론 컴퓨터 활용도 역시 극히 제한적인 북한의 환경상 인터넷 접속 아이디를 통제하는 것 만으로도 시민들의 외부 접촉을 쉽게 차단할 수 있는 셈. 인터넷 자체를 막아놓았기보다는 극소수에게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자들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한국에서 사용하던 휴대폰을 맡기고 평양에 왔기 때문에 전화가 가능한지, 스마트폰을 통한 로밍이나 인터넷이 가능할 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호텔과 경기장을 오가며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휴대폰 보급률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로 볼 수 있다. 기자단을 ’일대일‘ 마크한 북한 관계자들도 핸드폰을 갖고 있었고,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하며 익숙하게 통화했다. ’인터넷은 되는 거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 관계자들은 ”물론 되지“하고 아무렇지 않게 답하곤 했다. 실제 평양에 머무는 중국 특파원에 따르면, 유심 카드를 장착한 스마트폰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한국에서 사용하지 않던 오래된 핸드폰을 평양에 지니고 갔는데, 공항 검문요원은 별다른 검사 없이 한 두 번 보고는 그대로 돌려줬다. 검문요원에게 ’이 전화를 쓸 수 있냐‘고 묻자 ”카드만 사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심 카드 구입은 연락관으로 통칭되는 북한 관계자들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얘기. 유일하게 접속이 어려웠던 건 한국의 사이트에 접속할 때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는 접속이 가능하지만, 메인 화면 이후로는 진행이 되질 않는다. 북한에서 기사를 써 한국에 카카오톡 메신저로 전송하곤 했지만, 실제 어떻게 보도되었고 포털 사이트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접속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의 웹사이트를 살펴 보았으나 이내 포기했다. 생각보다 찾을 수 있던 웹사이트의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민족끼리나, 구국전선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남 선전 사이트는 모두 확인이 가능했지만, 찾아 볼 수 있는 표본 자체가 적었다. 대신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등에서 ’록화보도‘라는 제목으로 북측 선전 영상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북한 시민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인터넷 매체와 자료들은 해외 체류 중인 북측 주민이나 남측 언론 등 제한적인 대상만을 상대로 하는 것으로 보였다. 평양 공동취재단
  • “북한 김정은, 기쁨조 여성 속옷 위해 38억원 사용”

    “북한 김정은, 기쁨조 여성 속옷 위해 38억원 사용”

    북한 매체들이 13일 김정은의 국방위원장 추대 5주년을 맞아 ‘핵 업적’과 권력계승 정당성을 부각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수령복, 장군복 영원한 우리 조국의 앞길은 휘황찬란하다’는 제목의 글을 싣고 “4월 13일은 역사에 특기할 날”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25년 전 이날에 우리 인민은 탄생 80돌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 칭호를 삼가 드리었다”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부각했다. 한편 김정은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구성된 ‘기쁨조’ 여성들의 속옷 구입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5일(현지 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다수 언론은 “북한 김정은이 즐거움을 위해 구성된 기쁨조 여성의 속옷을 위해 약 270만 파운드(약 38억 원)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중국에서 여성 속옷인 가터벨트와 코르셋을 수입했다”며 “기쁨조 속옷 외에도 샴페인, 말, 화장품 구입에 수백만 파운드를 지출했다”면서 “2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은 하루에 650g의 식량만을 배급받는데 김정은은 샴페인, 와인, 초콜릿, 스위스 치즈를 사는데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쁨조’는 오직 김정은의 쾌락을 위해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집단이다.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기쁨조에 들어가려면 처녀임을 확인하는 검사를 강제로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웨이 조선] 목이 부러질지언정…가체, 벗지 못할 욕망

    [런웨이 조선] 목이 부러질지언정…가체, 벗지 못할 욕망

    조선 후기,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자 며느리가 벌떡 일어나다가 무거운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져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가체 때문에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어느 부잣집 며느리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퍼졌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목뼈가 부러졌을까. 도대체 가체가 뭐라고 죽음까지도 불사했으며 감당도 하지 못할 가체를 왜 그리도 높고 크게 올리고 있었을까.조선시대 미인의 기준은 얼굴의 생김보다도 오히려 머리카락이 얼마나 길고 윤이 나는가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 여성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갖고 싶어 했고, 큰머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머리숱이 많아야 하는데 자신의 머리숱만으로 머리를 치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크고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땋을 때 자신의 머리카락과 함께 남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일종의 가발을 이용해 꾸미는데 이때 사용한 것이 가체(加髢)다. 가체는 몽고에서 시작돼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카락에 대한 명성은 명나라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신이 오면 늘 요청하는 공물 중 하나가 가체이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외로 수요가 급증하자 가체를 장만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고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가체가 귀하면 귀해질수록, 머리를 더 크고 높이 올리고자 하는 부녀자들의 욕구도 같이 커져 갔다.신윤복의 ‘계변가화’를 보면 머리를 땋고 있는 젊은 여성의 앞쪽에 가체가 놓여 있다. 머리를 땋는 중간중간에 이 가체를 넣으면서 최대한 크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림 속 여인은 머리를 거의 다 땋은 것 같은데 아직도 바닥에 4개의 가체가 남아 있다. 도대체 얼마나 풍성한 머리를 만들려고 이미 꽉 차 있는 머리에 또 다른 가체를 4개나 넣는 것인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 그렇게 가체를 넣어 머리를 양쪽으로 다 땋은 후 타원형으로 가운데에서 댕기로 묶는다. 여기까지는 큰머리를 얹기 위한 공통된 머리 땋기다. 이제 본격적으로 각자의 얼굴형이나 스타일에 따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하나로 연결된 타원형의 땋은 머리를 뒷부분부터 틀어 올린다. 언뜻 보면 다 같은 스타일로 보이지만 어떤 사람은 정수리 부분을 더 높이 올렸고 어떤 사람은 앞뒤로 길게 내렸으며 또 어떤 사람은 비대칭을 만들면서 전체적인 조화가 흐트러지지 않게 꾸미고 있다. 그러나 풍속화 속 머리를 꾸미고 있는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거나 다리를 붙잡고 있거나 머리를 손으로 받치지 않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와 무게를 견디는 모습을 보인다.모든 여성의 로망이 돼 버린 큰머리는 점점 더 사치로 흘러 나라의 골칫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가체 치장은 더해져 여인들이 한번 머리를 꾸미는 데, 중인 계급이 사는 집 12채에 달하는 비용을 쓸 정도로 사치가 극에 달했다. 1747년(영조 23), 가체를 없애는 대신 족두리를 얹는 것으로 머리치장을 대신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검은색 비단으로 싼 작은 모자인 족두리를 얹으면 고통이 덜하고 사치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욕구를 채울 수 없었다. 이에 한 여인이 작은 모자 위에 진주 하나를 올렸다. 이를 본 또 다른 여인은 진주 위에 산호를 올렸고, 또 다른 여인은 진주와 산호 위에 마노를 올렸다. 1줄로 만족하지 않은 여인은 2줄, 3줄을 장식했다. 결국 단순한 족두리는 그 어떤 가체보다도 비싼 칠보족두리가 돼 버렸다. 칠보족두리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보여 주는 데 한계가 있다. 더욱이 족두리를 올려놓는 곳이 정수리이다 보니 더이상 얹은머리를 올릴 수 없게 됐다. 머리는 자연스럽게 뒤통수 쪽으로 길게 늘어지거나 쪽을 찌는 것으로 바뀌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체로 인한 폐해가 지속되자 1788년(정조 12)에는 가체를 금하도록 규정한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이 반포됐다. 이 규정은 양반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일반 백성들의 삶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한문본과 한글본이 동시에 제작, 배포됐다. 무거운 가체를 얹지 않게 되면서 이제 혼인을 한 지 수년이 지나도 무거운 가체 때문에 제대로 시부모님께 인사도 못 하고, 예를 올리지 못하는 패륜이 없어졌다. 또한 목이 부러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길고 윤이 나는 검은 머리를 자랑하고 싶은 여인들의 속내까지는 어찌 부러뜨릴 수 있었을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선생 별세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선생 별세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선생이 지난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23년 경북 하양 출생으로 이화여전 가정과에 입학하여 문학과 미술, 영화에 심취했다. 학교를 중퇴한 뒤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윤용균 감독의 소개로 조선영화사 촬영소에서 일하게 되면서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에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1955년 ‘미망인’을 연출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남겼다. ☞ 영화 ‘미망인’ 보러 가기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은 2001년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임순례 감독)을 통해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영화 인생을 조명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박남옥 감독은 “‘미망인’을 찍을 때 죽을 만큼 고생했지만 눈물이 나도록 그 당시가 그립다”고 말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박민영 연우진 이동건, 로맨스 사극 ‘7일의 왕비’ 확정 “신드롬 예고”

    박민영 연우진 이동건, 로맨스 사극 ‘7일의 왕비’ 확정 “신드롬 예고”

    로맨스사극 ‘7일의 왕비’ 주연 캐스팅이 완성됐다. 박민영 연우진에 이어 배우 이동건이 KBS 2TV 새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극본 최진영, 연출 이정섭, 제작 몬스터 유니온)의 주인공 출연을 확정 지었다. 캐릭터를 깊이 있게 그려내며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로 유명한 세 배우의 조합인 만큼,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7일의 왕비’는 단 7일,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를 둘러싼 중종과 연산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로맨스 사극이다.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반정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회오리 속에 가려졌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아 있는 캐릭터와 애틋한 멜로라인이 돋보이는 대본, 이정섭 감독의 유려한 연출이 만나 또 한 번 안방극장 사극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새롭게 합류를 확정한 이동건은 ‘7일의 왕비’를 통해 강렬한 연기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연산군’으로 기억하는 조선의 10대 왕 ‘이융’ 역을 맡은 것. 극중 ‘이융’은 만인지상 일국의 군주로 태어나 모두를 자신의 발 밑에 두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만큼은 가질 수 없었던 슬픈 왕으로 그려진다. 전작에서 보여준 반듯한 젠틀맨과는 180도 반전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동건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애끓는 사랑과 집착, 광기 등을 폭 넓게 그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연우진은 극중 조선의 왕제 ‘이역’으로 분한다. ‘이역’은 조선의 10대 왕 ‘이융(이동건 분)’의 이복동생. 아무것도 해선 안 되는 왕제의 신분으로 태어나 숨죽이며 살아야 했지만, 세상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던 열혈대군이다. 역사적으로 형인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좌에 앉은 중종이 바로 ‘7일의 왕비’ 속 이역이다. 연우진은 ‘7일의 왕비’의 중심에서, 뜨거운 사랑과 차디찬 권력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폭풍을 이끌어가는 ‘이역’이라는 인물을 통해 남성적인 카리스마로 다시 한번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이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여인이자, 7일 동안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단경왕후 신씨 ‘신채경’ 역을 맡은 박민영이 오랜만에 사극으로 돌아온다. 목적 없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지만 최고 권세가의 딸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가장 정치적인 사랑을 해야 했던 비운의 여인이다. 양반집 규수답지 않게 엉뚱하고 해맑던 여인이 이역(연우진 분), 이융(이동건 분) 두 형제 사이 ‘사랑’이라는 뜨거운 불덩이가 되는 극의 전개 속에서 박민영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깊은 감정 연기가 빛을 발할 예정이다. 특히 박민영은 ‘영광의 재인’, ‘힐러’에 이어 다시 한 번 이정섭 감독과 재회하며,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박민영 연우진 이동건 세 배우가 그려나갈 애틋하고 뜨거운 러브스토리 ‘7일의 왕비’는 ‘쾌도 홍길동’, ‘제빵왕 김탁구’, ‘힐러’,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연출한 이정섭 PD와 최진영 작가가 의기투합한 드라마이다.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후속으로 방송된다. 사진=문화창고, 점프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0대 그룹 2만명 감축…삼성 1만3006명 최다

    30대 그룹 2만명 감축…삼성 1만3006명 최다

    경기 불황이 고용 한파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30대 그룹이 지난해 2만명 가까이 고용을 줄였다.2일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 계열사 중 사업보고서를 낸 253개사의 지난해 말 고용 인원은 93만 124명이다. 2015년 말에 비해 1만 9903명(2.1%) 줄었다. 남성 직원은 2.1%(1만 5489명), 여성 직원은 2.0%(4414명)씩 줄었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1만 3006명(6.6%) 줄여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가 단행한 희망퇴직, 사업부 매각 등 대규모 구조조정의 결과다. 이어 현대중공업그룹이 4912명(13.0%)을 줄였고, 두산(1991명, 10.6%), 대우조선해양(1938명, 14.7%), 포스코(1456명, 4.8%), KT(1291명, 2.6%) 등도 1000명 이상씩 감축했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전년보다 고용을 1199명(9.4%)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롯데(684명, 1.2%), CJ(599명, 3.1%), 현대백화점(516명, 5.6%) 등 나머지 유통 중심 그룹들도 일제히 고용을 확대했다. 이 밖에 효성(942명, 5.8%), LG(854명, 0.7%), 한화(577명, 1.8%)도 큰 폭으로 고용을 늘렸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장기 수주가뭄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는 ‘조선 3사’는 지난해 고용 감축 기업 ‘톱5’에 모두 포함됐다. 이들 3사에서만 8347명(15.3%)이 줄어들었다. 삼성SDI(1969명, 17.8%), 삼성물산(1831명, 15.2%), 두산인프라코어(1517명, 37.7%), 삼성전기(1107명, 9.4%) 등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들의 고용이 1000명 이상씩 줄었다. 반면에 253개사 중에서 현대차(1113명, 1.7%)와 효성ITX(1045명, 13.9%)는 1000명 이상 고용이 늘어 대조를 이뤘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97.3%’ 꿈의 일본 취업률, 좋기만 할까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97.3%’ 꿈의 일본 취업률, 좋기만 할까

    지난해 일본의 대졸 취업률은 97.3%, 고졸 취업률은 97.7%를 기록했다. 졸업이 곧 취업인 셈이다. 구인난이 심각해지자 한국 청년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력 수입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일본 기업 채용박람회에 참가하는 일본 글로벌 기업이 35개사에서 올해 50개사로 늘어날 예정이라는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직장을 찾지 못해 3포, 5포를 넘어 N포세대에 이른 한국 젊은이들에게 일본의 취업률은 꿈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다. 100%에 육박하는 취업률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일본 출산율이 정점을 찍은 것은 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키는 ‘단카이 세대’가 고도성장을 이뤄 냈던 1973년이다. 당시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는 평균 2.14명이었다. 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매년 발간하는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추정치 기준 이 수치는 1.41명으로 떨어져 224개국 중 최하위권인 210위에 머물렀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율이 낮아지는 데다 만혼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둘째 아이 출산 감소로 이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12월 22일자 보도에서 “경제적 이유로 출산을 꺼리는 가정이 적지 않다”면서 “고령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회보장예산을 출산 및 육아 분야로 재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돼 취업경쟁에 뛰어들 사람도 줄어들었다. 일본 고졸·대졸 취업률이 97%를 넘어선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출산율이 꼽히는 이유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며 취업률은 97%를 넘어섰지만, 여기에는 ‘숫자의 함정’이 있다. 100%에 가까운 취업률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영업이 모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2012년에 비해 72만명 줄어든 6556만명이다. 2030년에는 6180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취업률 집계에 포함된 사람 중 40.5%가 비정규직이다. 즉 100명 중 97명이 취업했다면 이 97명 중 약 39.3명은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는 뜻이다. 일본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0.4%에서 2016년 37.5%로 확대됐다. 공격적인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회복되고 여성 일자리 늘리기 등 노동시장의 개혁으로 취업률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취업률 상당 부분이 거품이 아니냐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고용 및 소득 안정을 보장하는 양질의 취업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베 정부가 최저임금 1000엔,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정치적 카드로까지 쓸 만큼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취업률이 높아졌으니 젊은층의 소득이 높아지고, 이것이 결혼율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본의 결혼율은 출산율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혼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고령화를 꼽는다.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고령 부모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젊은층에게 결혼은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 일본은 2006년 초고령화 사회(65세 이상이 20% 이상인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부양해야 할 인구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본은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한 부양 의무까지 있다. 일본 민법 877조 제1항은 ‘직계 혈족 및 형제자매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고령의 부모 혹은 빈부 격차가 심한 형제를 부양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키기 위해 일부는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엇이 시작이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취업률과 출산율, 결혼율은 서로 맞물려 있다. 아베 총리는 2060년 이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겠다면서 표방한 ‘1억 총활약 사회 실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취업률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험료와 잔업수당 규정,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여성 일자리 확대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일본의 이 정책들의 효과가 구체적 수치로 내건 것처럼 여성 1인당 평균 출산 수를 1.8명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헬조선’이라는 비판과 자조가 넘쳐나는 국내 사정 또한 일본의 처지와 놀랍도록 비슷하기 때문이다. huimin0217@seoul.co.kr
  • 장가가려는 왕·도망가는 양반 딸… 조선 왕비 간택 프로젝트의 전말

    장가가려는 왕·도망가는 양반 딸… 조선 왕비 간택 프로젝트의 전말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임민혁 지음/글항아리/336쪽/2만원부와 명예, 권력 삼박자를 갖춘 조선시대 국왕은 양반가 처녀들이 바라는 최고의 남편상이었을까. 당시 국왕은 전국에 금혼령을 내린 뒤 왕실이 제시한 규정에 맞는 처녀의 이름을 쓴 처녀단자를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양반들은 딸의 나이를 늘리고 줄이거나 금혼령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피해 결혼을 시키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처녀단자 제출을 피했다. 간택에 참여하는 데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이 드는 데다가 궁궐에 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삶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차례에 걸친 간택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택된 여성은 별궁 생활을 거쳐 왕과 혼례를 올렸다. 국왕의 결혼에 관한 일을 맡았던 가례도감과 내수사에서 사용한 국혼 예산은 현재 가치로 따지면 모두 6억 800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책은 왕비 간택부터 결혼식, 조현례(왕실의 웃어른을 차례로 알현하는 의례), 후궁 가례까지 조목조목 들여다본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靑수석 권한 줄이고 檢 독립 보장… ‘제왕적 권력’ 해체해야”

    “靑수석 권한 줄이고 檢 독립 보장… ‘제왕적 권력’ 해체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31일 학계·정치계·관계 인사들은 지난 6번의 정권에서 대통령과 관련된 비위가 불거지며 소위 관례가 돼 버린 ‘대통령 잔혹사’를 끊기 위해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권한 축소, 검찰 독립, 지방자치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주변인이 아닌 본인의 과오가 사태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사람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청와대의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실무 부서가 아닌 청와대 비서관과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 이런 폐쇄적인 과정에서 최순실 같은 비선 실세가 개입할 여지를 줬다”며 “특히 명확한 관련 법규도 없이 수석비서관에게 너무 큰 힘이 쏠려 있다”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꾸준히 대통령이 본인 또는 친인척 비리로 물의를 빚는 것을 볼 때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결함으로 봐야 한다”며 “대통령제가 갖는 구조적인 한계로 정권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연결되지 않도록 일본처럼 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독립에 대한 제언도 이어졌다.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민정수석이 사건을 검찰에 이첩하면 검찰이 최우선으로 수사에 착수하는데 이것이 수사 청탁이고 표적수사”라며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청와대가 인사에 개입하니 권력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민정수석실을 축소하고 검찰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임기가 10년인 것처럼 검찰총장 임기를 연장하고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대통령과 검찰총장의 임기가 어긋나도록 하면서 인사·예산권을 총장에게 주면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고, 특히 청와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권의주의 정권의 구습으로 법치주의가 아직도 자리잡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법보다 권력이 우선시되면서 생긴 부작용”이라면서 “법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헌을 포함해 시민 의식 성숙과 언론 등 각 분야의 반성이 필요하며 사회 전체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조선시대만 해도 왕에게 상소하면 그 내용이 공개되고 기록으로 남겨졌는데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이 시스템이 사라졌다”며 “대통령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문건화해서 공개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감사원을 국회 산하에 둬 국회에 행정부에 대한 감사 권한을 주는 것도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는 방법이 될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대통령과 국회의 소통 및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관료들은 임명권자와 국정 철학을 공유하면서 일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하기 힘들다”며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일방적 지시보다 소통을 하며 풀어 나가는 행정 문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스스로를 왕머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왕이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에게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대통령을 위한 충성심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대통령은 통일, 외교, 안보, 국방을 맡고 경제, 사회, 문화 분야는 총리가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지방자치 활성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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