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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하수구 저널리즘과 알 권리의 경계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하수구 저널리즘과 알 권리의 경계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스펜서 전 영국 왕세자비. 이미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뒤였지만 그녀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높았고, 그녀는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 ● 다이애나 사망 20주기, 공인의 사생활 보도 논란에 불 지핀 언론 지난 31일로 다이애나 사망 20주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편히 쉴 수 없다. 언론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헤집고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6일 영국 준공영방송 채널4가 방송한 ‘다이애나 다큐멘터리’는 공인의 사생활 보호와 언론의 국민 알 권리 보장 논란에 불을 지폈다.해당 다큐멘터리는 다이애나가 생전 연설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찍은 영상으로 구성됐다. 여기에는 찰스 왕세자와의 불화, 왕실 경호원과의 불륜,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갈등 등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다이애나 측근들은 사생활 침해라며 방영 취소를 요구했다. 유족이 받을 상처도 염려했다. 그러나 채널4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명분으로 예정된 날짜에 방송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보다 10년이나 앞선 2007년 다이애나의 사생활이 담긴 영상을 입수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채널4의 판단과 달리 아무리 공인이더라도 그저 사생활에 대한 것이라면 ‘공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인의 사생활과 알 권리라는 두 가치의 충돌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공인의 사전적 의미는 ‘공직에 있는 사람’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사람’ 정도로 통용된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이 음주운전을 하거나 폭력 시비에 휘말리면 ‘공인으로서’ 잘못을 사죄한다. ‘알 권리’는 법에 명시된 개념은 아니지만 통상 국민이 정치·사회·경제 등 공적인 영역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거나 이를 요구할 권리 등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제21조에 근거해 알 권리를 국민이 요구하고 국가가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로 두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공인의 정의 자체도 광범위하면서도, 공인의 사생활은 그저 알 권리 보장이라는 논리에 짓눌리며 발가벗겨졌다. 최근의 사례로는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리얼스토리 눈’의 배우 송선미 남편 장례식장 몰래카메라 방송이 대표적이다. 송씨는 피살된 남편의 장례식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 자제를 요청했고, 대부분의 매체가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장례식장에 몰래 출입해 영상까지 담아 방송했다.방송 직후 MBC와 제작진은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고서야 유족에게 사과하고 논란이 된 장면을 삭제했다. 이는 단순히 과잉취재·보도 논란을 넘어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공인에 대한 관점이 점차 사전적 의미와 가깝게 좁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과거에 비해 언론 보도에 비판적인 수용자가 늘어나면서 사생활 보호에 대한 대중의 요구 또한 커졌음을 시사한다. ● 프랑스 “사생활이 공직과 무슨 상관?” 공인의 사생활 보도 논란과 관련해 주목 받는 국가로는 프랑스가 꼽힌다. 대체적으로 개인 생활과 공직자로서의 능력은 분리해서 본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1981년과 1988년 두 차례 당선될 정도로 프랑스인들의 신망을 얻었다. 1984년 주간지 파리 마치는 그에게 혼외 딸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다른 언론사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르몽드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르 피가로도 ‘하수구 저널리즘’이라면서 사생활 보도를 비판했다. 올해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39세다. 그의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는 현재 64세로 마크롱과는 25살 차이가 난다.마크롱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났다. 트로뉴는 당시 기혼 상태였다. 아이가 셋이었고, 그중 맏이는 마크롱과 같은 학년이었다. 한국사회에선 부도덕하게 보일 수 있는 관계가 프랑스에선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 채동욱의 혼외자, 그리고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 한국에서는 공인의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충돌에 있어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등 아직 확립된 문화는 없다. 정치권 혹은 언론의 이중 잣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논란에서 두드러졌다. 조선일보는 2013년 9월 6일 1면 기사를 통해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고 보도했다.채 총장이 고위공직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밝히지 않았으며 혼외 관계의 여성과 아들이 사는 집의 전세자금을 마련해줬다면 재산 허위 신고에 해당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검찰총장 업무와 직접적 연관성은 떨어지지만, 여론의 비난이 빗발쳤다.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는 학교 생활기록부까지 까발려졌다. 당시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되는 과정에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고, 정치권의 갖은 외압을 채 총장이 직접 막으며 수사팀을 이끌었지만 황교안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채 총장 감사를 지시하면서 결국 자리에서 쫓기듯 물러났다.이후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통해 ‘채동욱 혼외자’ 보도 과정에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채 전 총장은 이미 부도덕했던 공직자로 낙인찍힌 뒤였다. ‘대통령 혼외 딸’ 보도 이후 프랑스의 상황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 사생활 있다”는 궤변 채 전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에는 깊이 개입했던 박근혜 정부는 국민적 관심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으로 향하자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인 대통령의 평일 집무시간 행적에 대한 언론과 국민의 물음에는 철저하게 입을 닫았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31분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완전히 침몰했지만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은 시간은 오후 5시 15분이었다. 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세월호 승객 구조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시를 내렸는지는 지금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박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의 7시간’ 등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 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 생명권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할 의무는 탄핵 심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는 판단에 따라 탄핵에 직접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탄핵 사유로 거론될 만큼 중대한 일이었다. ● 공론화를 통한 조정이 필요한 시점 공인의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보장에 대한 자의적 선택에 대해 공론화를 통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는 “한국은 지금까지 국민의 알 권리가 절대적 명제처럼 보장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알 권리를 내세워 선정적이고 비도덕적 보도를 일삼는 황색 저널리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론화를 통한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공직자의 경우 보도 내용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 조금이라도 효용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사생활이라도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신문협회의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 요강’에는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도·평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있다. 또한 “공인의 사생활을 보도·평론하는 때에는 절제를 잃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도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문화 된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손성진 칼럼] 조선의 ‘대간’ 정치와 소통

    [손성진 칼럼] 조선의 ‘대간’ 정치와 소통

    박근혜 정권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간언(諫言)을 멀리한 것이다. 대신에 환관과도 같은 ‘문고리 3인방’의 입만 바라봤으니 도통 민심을 알 수 없었다. 최순실의 농간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언로를 막아 놓은 탓이 컸다. 최순실이 몰래 들락날락하며 대통령과 부정한 행위를 해도 감히 진언을 할 비서, 관료가 없었다. 이런 맥락의 칼럼을 작년 11월 3일자에 쓴 적이 있는데 그 후에도 박 전 대통령에게 고언을 아뢴 청와대 인사는 없어 보였고 결과는 정권의 몰락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간언’이란 말이 날수로 따져 1456일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 10분의1인 141회가 연산군일기에 나온다. 그만큼 간언이 활발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연산군이 간관(諫官)들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임금의 그런 행동을 탓하는 간언을 재차 삼차 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폭군의 실정을 바로잡으려 극력으로 간언을 하다 귀양을 가거나 참형을 당한 간관들이 연산군대에 허다했다. 그럼에도 목숨을 건 간관의 입을 막지 못하자 연산군은 마침내 재위 말기인 12년 4월 사간원과 홍문관을 없애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야당으로부터 ‘쇼통’이라는 비아냥 섞인 비판을 들어도 국민, 언론과의 소통을 어떤 대통령보다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광화문 1번가’도 민성(民聲)을 직접 들어 보려는 소통 창구로서 목표로 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인 위민관으로 옮겨 비서진들과 가까이 있으면서 거리낌 없는 진언과 간언을 듣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탁현민 선임행정관의 경우를 볼 때는 문 대통령이 언론과 관료의 제언과 고언에 귀를 열고나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언론은 그렇다 쳐도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고군분투는 안쓰럽게까지 느껴진다. 탁 선임행정관의 능력을 떠나 언행의 문제점을 잘 알기에 정 장관은 수차 청와대에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력감마저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정 장관은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젊은 비서실장의 점잖은 질타를 받은 뒤라 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탈원전’에 찬성하는 쪽도 많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그만큼 된다. 언론을 포함해 찬성파와 반대파가 각자 자기 논리를 전개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요즘 탈원전에 반대하는 학자나 전문가들은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공개적인 석상에서 소신 밝히기를 꺼린다고 한다. 뭔가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 때문이거나 아니면 정부 기관의 압력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탈원전을 놓고 공론화 과정이 진행 중이지만 반대파의 입을 막으면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공론화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쓴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차대한 국사(國事)일수록 반대파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나중에 무탈하다. 설령,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야당의 주장일지라도 귀담아듣고 혹시 바른 소리가 있다면 받아들이는 게 큰 정치다. 한 눈만 뜨고 한쪽 귀만 열어서야 바른길을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 공영방송이 파행에 이른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제작 거부 사태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다음 경영진도 정권과 밀착해 언론으로서 간언과 쓴소리를 하지 못한다면 이후의 정권에서 똑같은 과정을 겪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노조를 비롯한 여러 이익 집단들이 연일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길 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그들의 원(願)도 합당하다면 풀어 줌이 마땅하다. 그러나 언로를 열어 준다는 것은 ‘해 달라는 것’을 듣는 것만이 아니다. ‘하지 말라는 것’도 들을 줄 알아야 성공하는 정치다. 조선이 왕의 1인 지배로 6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간(臺諫·간언을 맡아 보던 관리) 정치’의 덕이다. 다행히도 문 대통령은 간언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비서, 관료들이 할 일만 남았다.
  • 이제 36명 남았다…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별세

    이제 36명 남았다…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오전 9시 10분쯤 별세했다. 89세. 하 할머니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이날 “하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 생활을 하던 중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44년 16살 때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책의 말에 속아 경성(서울), 평양 등을 거쳐 중국 우한 지역으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 8개월 가까이 수용생활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자궁을 들어냈다. 해방 후 일본군에게 수치를 당한 몸으로 고향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며 중국에 남았다. 27살 때인 1955년 세 딸을 가진 중국인과 결혼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하 할머니는 남편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길렀고, 1994년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막내딸과 함께 지냈다. 하 할머니는 광복 이후 중국에서 조선 국적으로 남았지만 남북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은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된 탓에 북한 국적으로 바뀌었다. 1999년 민간단체 도움으로 한국 정부의 국적회복 판정을 받은 뒤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2003년 중국에 머문 지 59년 만에 귀국했다. 하 할머니는 이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와 일본 규탄 집회 등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에 참여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인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이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못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고국 땅을 밟은 지 2년여 뒤 하 할머니는 딸들의 권유로 가족이 있는 중국 우한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2월 중국인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다 2층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 생활을 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차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28일 별세…국내 생존자 36명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28일 별세…국내 생존자 36명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하 할머니가 이날 오전 9시 10분쯤 패혈증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4년 16세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살다가 6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처음 귀국했다. 종전 이후 중국에서 ‘조선’ 국적으로 남았으나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이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1999년 한국 정부의 국적회복 판정을 받기 전까지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하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국내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철성 경찰청장 “인권침해 진상조사 대상에 성역 없다…경찰도 포함”

    이철성 경찰청장 “인권침해 진상조사 대상에 성역 없다…경찰도 포함”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도를 넘은 경찰의 공권력 행사로 초래된 주요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을 밝힐 별도의 조사위원회가 지난 25일 출범했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찰 추천위원 중 박진우 경찰청 차장이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차장은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대회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을 당시 경찰청 수사기획관이었다.이에 이철성 경찰청장이 “조사 대상에 성역이 없고, 필요한 경우 진상조사위 위원을 포함한 경찰 지휘부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28일 밝혔다. 이 청장은 이날 “원활한 조사 협조 등을 위해 경찰개혁위원회 논의에 따라 (진상조사위의) 당연직 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라면서 “위원 개인이 사건과 연관되어 공정성을 해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훈령상 제척·기피·회피 규정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경찰은 진상조사위의 모든 조사에 성실한 자세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행정 분야에서도 조그마한 어려움이 없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관계자 조사, 관련 시설 방문·이용, 자료제출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부 진상조사위원과 조사관에게 2급 비밀취급 인가를 부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진상조사위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징계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실질적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이 청장은 설명했다. 앞서 경찰청은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자는 지난달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지난 25일 민·경 합동으로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진상조사위는 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전체 위원 9명 가운데 3분의2인 6명을 민간위원으로 구성했다. 민간위원은 유남영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진상조사위원장),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전승 흥사단 사무총장, 노성현 서울지방변호사회 노동인권소위원장, 위은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사다. 나머지 3명은 경찰 추천위원으로 박 차장과 박노섭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 민갑룡 경찰청 기획조정관이 맡았다. 진상조사위는 20명 규모로 민간·경찰 합동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하기로 결정한 사건의 진상과 인권침해 내용, 원인, 재발방지책을 포함한 조사 결과를 공표할 예정이다. 활동 기간은 1년이며, 최장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진상조사위는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6건의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우선 선정했다. 2013년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한 사건과 2011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 한 사건도 포함됐다. 또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강제진압 사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사건’도 조사 대상이다. 이 청장은 “진상조사위 활동을 통해 과거 경찰력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의 객관적 진실을 규명하고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을 밝혀서 경찰력 행사 과정과 제도, 관행을 인권 친화적으로 개선하는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04년에도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를 설치·운영해 경찰이 연루된 불법 선거개입·민간인 불법 사찰·용공 조작 의혹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한 적이 있다. 당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을 비롯해 서울대 깃발 사건(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1985년),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1991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1979년),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 사건(6·25전쟁 당시), 1946년 대구 10·1사건(1946년),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의혹 사건(1950년)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명희 서울시의회 여성특위위원장, 여성상 수상자와 간담회

    한명희 서울시의회 여성특위위원장, 여성상 수상자와 간담회

    서울시의회 여성특별위원회(위원장 한명희)는 8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6월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및 성평등 실현 등에 공적을 인정받아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상한 최영미 대표(한국가사노동자협회)를 포함한 4명의 수상자가 참석했다. 여성특별위원회 한명희 위원장(더불어민주당, 강서 4)은 인사말을 통해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정말 힘든 일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여성상이 그 노고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또한 “우미경 부위원장님의 제안으로 마련된 오늘 이 간담회는 서울시 여성정책에 대한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마련된 만큼 여성정책 발전을 위한 좋은 결실을 만들어나가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간담회에서는 여성상 수상자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이어졌다. 대상 수상자인 최영미 대표는 “서울에만 28만명 이상(조선족 8만 명 포함)의 가사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의 문제가 일자리·여성·노인의 문제로 중첩되어 있다보니 소관부서가 정해지지 않고 있다”며 가사노동자들이 느끼고 있는 애로사항을 이야기 했다.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서비스 등 분절된 형태의 각종 사회서비스를 통합돌봄바우처로 전환하는 방안과 서울시가 가사노동자를 위한 이동쉼터의 활성화문제 등 현장의 시각에서 여러 가지 문제와 요구를 전달했다. 최우수상 수상자인 안인숙 비전위원장(행복중심소비자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점차 고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라고 강조하며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거리를 찾아 여성들에게 매치시켜줄 수 있는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최우수상 수상자인 최진협 사무처장(여성민우회)은 “최근 여성혐오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정치권에서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밖에 성별임금 격차 해소의 문제, 여성의 대상화, 문화계 성폭력문제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지적다. 마지막으로 우수상 수상자인 서덕순 위원장(강서여성포럼 안전분과)은 “경력단절여성의 일자리 문제는 3·40대뿐만 아니라, 5·60대 중장년층까지 모두가 요구하는 절박한 문제다”라고 지적하며, “현재 서울시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역할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교육 이후 2·3차 심화 교육까지 진행할 수 있도록 하여 여성들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미경 여성특별위원회 부위원장(자유한국당·비례대표)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후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현장에서 느끼는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듣게되어 기쁘다. 오늘 이 자리가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통로가 되길 바란다”며, “논의된 의제들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번 서울시 여성상 공적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혜련 위원(더불어민주당, 동작 2)은 “당시 심사를 하며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에 대한 감사를 느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고 말하며, “특히 지역사회 내 마을 공동체 활성화와 협동조합에 대한 욕구들이 많은 만큼 풀뿌리 활동가들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며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또한 김 의원은 온라인 매체의 과도한 성상품화 문제를 지적하며 “시민단체와 전략적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명희 위원장은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오늘 간담회에서 가사노동자 및 돌봄노동자에 대한 관련 정책 발전방안과 고령화와 연계된 여성 일자리 발전방향, 여성혐오·성별임금격차 해소·문화계 성폭력 문제 등 많은 과제들이 제시되었다”며 “오늘 간담회를 통해 이야기된 문제들을 검토해서 성숙한 의제로 발전시켜가겠다”고 말하며 현장과의 소통과 협치를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준식의 거듭나기] 적폐 유교 청산

    [최준식의 거듭나기] 적폐 유교 청산

    권력이나 돈이 있는 자들의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어떤 회사 회장이 갑질하더니 이번엔 육군 대장이 같은 짓을 했다. 이 사람은 부인까지 가세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아연(啞然)실색했다. 4차 혁명을 바라본다는 21세기에 19세기에나 어울리는 봉건적인 태도가 유세하니 말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이런 일은 앞으로도 또 일어날 것이다. 이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되고, 갑질한 본인은 개망신을 당하지만 이런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 추측을 할까. 그것은 기본적인 문화의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틀일까. 억압을 일삼는 잘못된 유교의 신분 차별이 그것이다. 유교가 원래 그렇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조선은 유교를 가지고 극심한 신분 차별을 행했다. 양반들의 갑질은 극에 달했다. 그들은 노비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노비를 셀 때 소를 세는 ‘두’(頭)라는 단위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노비가 사람이 아니니 양반은 그들에게 별짓을 다 했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인 앞에서 상전 노릇하면서 권력을 행사해야 진정한 양반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있는 자들의 갑질을 보면 꼭 이 꼴이다. 조선 양반이 하던 짓과 똑같다.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욕을 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게 양반짓을 방불케 한다. 아랫사람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엄연한 민주사회 아닌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19세기 유교의 봉건 잔재가 횡행하는 것일까. 조선이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양반질이 통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우리가 조선의 봉건적인 유교 문화를 한 번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조선에 대해 대대적인 반성을 한 적이 없다. 비판은 많이 했지만 그것은 철저한 반성도 아니었고 따라서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조선의 적폐 유교 문화를 극복하려면 사회 전체가 총체적인 반성을 하고 대안 제시에 모든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망했으니 어떤 정리도 할 수 없었다. 일제 때는 식민지 신세였으니 당연히 할 수 없었다. 해방 후에도 한국의 지성계에서 유교를 총정리하자는 움직임은 없었다. 갑자기 미국 문화가 밀려와 다들 그것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시민 정신을 가르쳤지만 그런 문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조선의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려면 과거를 한 번 총체적으로 쓸어 버려야 한다. 그렇게 강하게 하지 않으면 봉건적 적폐는 없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은 공산주의로 구체제를 뒤엎어 버렸다. 물론 많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 덕에 봉건적인 잔재는 많이 없어졌다. 그 결과 그들은 현재 상하평등이나 남녀평등의 면에서 우리보다 앞선다. 이것은 내 중국 제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은 다른 식으로 전통과 결별했다. 메이지유신을 하면서 어떻든 과거 일본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멘텀이 없었다. 전통적인 것을 한 번 뒤집어엎고 까발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통렬한 반성이 없었다. 그냥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민주적인 것과 봉건적인 것이 섞여 버려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봉건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나이 타령하면서 상전 노릇 하려 하고 고향 따지고 여전히 여성을 차별한다. 이 세 가지, 그러니까 나이나 고향, 성별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라 바꿀 수 없다. 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이 세 가지를 극복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여기에 묶여 있다. 그래서 봉건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적폐 청산은 이 봉건적인 잔재를 걷어 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큰 바위에 새겨진 ‘공동묘지’…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흔적일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큰 바위에 새겨진 ‘공동묘지’…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흔적일까

    오늘은 서울 근교의 불암산(佛巖山)으로 간다. 서울 동부의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불암산은 바위 봉우리가 송낙을 쓴 부처의 모습이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송낙이란 완만한 삼각 모양의 승려들이 쓰는 모자다. 불암산은 천보산(天寶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동쪽 기슭인 남양주 별내면에는 불암사(佛巖寺), 서쪽 기슭인 노원구 중계동에는 학도암(鶴到庵)이 있다. 두 곳에서는 흔치 않은 마애부도 혹은 마애사리탑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부도(浮屠)란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이다. 산스크리트어의 붓다(Buddha)를 음역한 것이라고도 하고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stupa)나 팔리어의 투파(tupa)가 변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부처를 가리키거나 부처의 유골을 모신 탑(塔) 혹은 탑파(塔婆)를 의미한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지정문화재는 이제 ‘부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승탑’(僧塔)으로 표기한다.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東) 승탑’도 과거에는 ‘구례 연곡사 동 부도’로 불렀다. 흔히 탑이라 부르는 불탑(佛塔)과 승려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묘탑을 구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도 지정 문화재는 지금도 부도라는 이름을 쓴다.하지만 부처의 무덤이 아닌 불교식 묘탑은 꼭 승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안 안국사에는 15세기 전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행호조사 모탑’(行乎祖師 母塔)이 있다. 세종시대 이 절을 중창한 행호조사가 출가하지 않은 어머니의 무덤을 이런 모습으로 조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물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른바 재가신자(在家信者)의 묘탑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은 이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은 인문지리서 ‘택리지’에 ‘청평산에 절이 있고 절 옆에는 고려시대 처사 이자현이 살던 곡란암 옛터가 있는데, 그가 죽자 절의 승려가 세운 부도가 지금도 산 남쪽 10리 남짓한 곳에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자현(1061~1125)이라면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춘천 청평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선학(禪學)을 닦았다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승탑의 조성은 선종(禪宗) 불교의 도래와 궤를 같이한다.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은 때마침 발호하던 호족에게도 ‘세력을 키우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리잡았고 결국 송도 호족 왕건이 신라를 무너뜨리고 고려 왕조를 세우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통일신라 시대에는 선문(禪門)을 이끌 정도의 고승(高僧) 반열에 올라야 승탑 건립 대상이 됐다. 고려 시대에도 국사(國師)나 왕사(王師)급 지위에 올라야 승탑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러니 크고 화려한 승탑과 탑비(塔碑)의 건립은 국가적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조선시대 상황은 다르다. 억불(抑佛)의 강도가 높아 불사(佛事) 자체가 위축됐던 초기에는 승탑 건립 역시 부진했다. 하지만 불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위상도 다시 높아졌다. 18세기가 되면 지위가 높지 않은 승려라도 입적하면 묘탑을 다투어 세우게 된다. 불교국가에서 승탑의 건립은 정치적 의미가 큰 의례였지만 역설적으로 유교국가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자들의 묘탑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었다. 18세기 중반부터 본격 조성된 재가신자들의 묘탑은 19세기가 되면 더욱 늘어난다. 이자현 부도나 행호조사 모탑만 해도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은 신선한 파격이었지만, 이제 신자들의 묘탑을 세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19세기 서울 주변 지역에서는 마애부도가 다투어 출현한다. 곧 바위에 조각한 부도다. 승려보다 재가신자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을 지녔다.불암사는 산 아래 별내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일주문으로 들어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곧 절이다. 그런데 마애부도를 찾기는 쉽지가 않다. 절의 일을 돕는 보살님에게 그 존재를 물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란다. 마애부도는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가야 만날 수 있다. 작은 시내를 건너 올라가다 보면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포장도로를 내기 전에는 굽이돌아가는 이 길이 주(主)통행로였을 것이다. 바위에 가까이 다가서면 나란히 직사각형의 구획을 지어 조각하고 그 위에 사리공(舍利孔)에 해당하는 감실(龕室)을 판 흔적이 보인다. 바위 남쪽면의 마애부도는 다섯 기다. 주인공의 이름을 새기지 않은 맨 왼쪽 것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네 기는 모두 조선 후기 조성한 것이다. 서쪽면에도 최근의 마애부도 두 기가 있다. 옆에는 역시 근해의 원구형 부도 두 기도 보이니 명실상부한 불암사의 부도밭이다. 일반적인 부도가 개인 묘지라면 큰 바위에 복수로 새겨진 부도는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 서쪽면 부도의 주인공은 오른쪽부터 청신녀 덕원(德元), 청신녀 정심(淨心), 청신녀 상념(常念)이다. 정심의 부도에는 ‘가경(嘉慶) 17년’이라고 새겨져 있으니 1812년 조성된 것이다. 가경은 청 인종의 연호다. 청신녀(靑信女)란 재가 여성신자를 가리킨다. 많은 시주 등으로 절과 깊은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 왼쪽은 청송당(靑松堂) 성감선사(性鑑禪師)의 승탑이다. 조각에서 승려와 신자의 위계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불암사는 세조가 한양 사방에 왕실 원찰(願刹)을 정하며 동불암(東佛巖)으로 낙점했던 만큼 마애부도의 청신녀들은 왕실과 주변 여인들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불암산 서쪽의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자락 도선사(道詵寺) 주변에는 ‘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이라는 명문이 있는 마애부도가 있다. 서울 서대문 안산 자락의 봉원사(奉元寺)에서도 또 다른 ‘상궁 김씨’의 마애부도를 찾을 수 있다. 상궁을 비롯한 궁인들이 출궁 이후 근교 절에서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음을 방증한다. 학도암의 마애부도 역시 왕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계동 아파트 단지와 주택 밀집지역의 골목 사이로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학도암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학도암에 오르면 서울에 이런 곳에 있을까 싶을 만큼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두 기의 마애부도는 학도암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 바위에 있다. 왼쪽은 청신녀 월영(月影)의 묘탑, 오른쪽은 환□당(幻□堂) 취근(就根)선사의 승탑이다. 월영탑에는 1819년 조성했음을 알리는 명문이 있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취근선사 것도 비슷한 시기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학도암은 높이 22m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높이 13.4m의 관음보살로 유명한 절집이다. 마애관음은 1872년 명성황후가 시주해 조성한 것으로 사지(寺誌)는 기록하고 있다. 왕실과 깊은 연관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불암사에서도, 학도암에서도 등산객과 참배객은 대부분 무심하게 마애부도 곁을 지난다. 무심하다기보다 마애부도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불어 마애부도가 유행한 이유를 밝히는 학계의 노력도 아직은 부족하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부도의 명칭에도 여운이 남는다. 문화재청이 쓰는 ‘승탑’이라는 표현은 재가신자의 묘탑을 수용하지 못한다. 신자의 묘탑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가 없으니 용어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서울시는 시 마애부도를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마애사리탑’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재가신자의 무덤을 사리탑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마애부도의 성격을 밝히면서 용어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민·경 합동 ‘진상조사위’ 출범…경찰 인권침해 사건 조사

    민·경 합동 ‘진상조사위’ 출범…경찰 인권침해 사건 조사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도를 넘은 경찰의 공권력 행사로 빚어진 주요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밝힐 기구가 출범했다.경찰청은 2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에서 민·경 합동으로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열어 조사 대상과 향후 일정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달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자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경찰청이 수용해 꾸려졌다. 경비·수사·정보수집 등 경찰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거나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사안, 인권침해 진정이 접수된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 등이 진상조사 대상이다. 진상조사위는 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전체 위원 9명 가운데 3분의2인 6명을 민간위원으로 구성했다. 민간위원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전승 흥사단 사무총장, 노성현 서울지방변호사회 노동인권소위원장, 위은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유남영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사다. 나머지 3명은 경찰 추천위원으로 박노섭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 박진우 경찰청 차장, 민갑룡 경찰청 기획조정관이 맡았다. 진상조사위는 20명 규모로 민간·경찰 합동조사팀을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하기로 결정한 사건의 진상과 인권침해 내용, 원인, 재발방지책을 포함한 조사 결과를 공표할 예정이다. 활동 기간은 1년이며, 최장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조사 대상으로는 지난 2004년 이후 경찰의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사건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11월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고, 2009년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농성 진압 사건도 조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진상조사위 사무실은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설치된다. 경찰청은 진상조사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 시설 등을 지원하고 진상조사위가 요구하는 자료도 가능한 한 제공할 방침이다. 조사 결과는 향후 인권정책 수립에 반영하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04년에도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를 설치·운영해 경찰이 연루된 불법 선거개입·민간인 불법 사찰·용공 조작 의혹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한 적이 있다. 당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을 비롯해 서울대 깃발 사건(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1985년),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1991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1979년), 보도연맹원 학살 의혹 사건(6·25전쟁 당시), 1946년 대구 10·1사건(1946년),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의혹 사건(1950년)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우리 창원이 확~달라졌어요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우리 창원이 확~달라졌어요

    대도시가 대개 그렇듯, 경남 창원 역시 양파와 비슷합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곳과 만나고 익숙했던 곳도 어느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도심에 깃든 용지못에선 밤마다 보름달이 뜨고, 솔라타워 같은 거대한 구조물들은 소박한 주변 섬과 어우러져 SF영화 속 미래도시를 보는 듯합니다. 전남 담양‘급’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마주하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이 키 큰 나무들은 늦가을에 얼마나 더 서정적인 풍경을 선사할까요. 다소 이른 방문이 아쉬웠지만, 가을옷 입은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이번 창원행은 그러니까 변화했거나 새로 발굴한 명소들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예쁘다! 달라진 너 변화한 명소부터 꼽자. 먼저 ‘콰이강의 다리’. 1987년 세워진 철교다. 생김새가 옛 영화 ‘콰이강의 다리’ 속의 다리와 닮았다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옛 마산의 남쪽 끝자락에서 돼지 형상의 저도(猪島)와 육지를 잇고 있다. 그러다 2004년, 바로 옆에 저도연륙교가 놓였다. 새 다리가 놓이면서 콰이강의 다리는 차량 통행이 중지됐고, 사람만 오가는 인도교로 명맥을 이어 왔다. 빨간색 철골 구조의 다리는 예부터 ‘연인의 다리’로 불렸다. 당시엔 콰이강의 다리가 별칭이었다. 지금은 공식 이름이 콰이강의 다리다. 최근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비롯된 변화다.창원시는 지난 3월 교량 상판의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특수 강화유리를 깔았다. 이른바 ‘스카이 워크’ 구간이다. 딛고 선 발의 13.5m 아래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밤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빛을 낸다. 이 덕에 신비로운 은하수 길이 연출된다. 사라진 것도 있다. 연인들의 자물쇠다. ‘연인의 다리’로 불리던 시절엔 양쪽 다리 난간에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자물쇠들이 빼곡했다. 지금은 다리 건너기 전 공터에 따로 자물쇠를 걸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뒀다. 낡은 교량의 안전과 환경 미화를 위해서다. 그렇다 해도 영 제맛이 나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다리 위에 자물쇠를 거는 건 어떤 위태로운 환경에서도 사랑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위일 터다. 그런데 다리와 거리가 있는 평탄한 곳에 자물쇠를 걸어야 하니 강렬한 상징성을 원하는 연인들로서는 맥이 빠질 법하다. 콰이강의 다리는 10월까지 오전 10시~오후 10시, 11월~2월은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옛 마산 시내 방향으로 돌아 나오면 신촌삼거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해양관광로, 오른쪽은 1002번 지방도다. 둘 다 시내로 향한 길이지만, 다소 돌더라도 해양관광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남해안을 끼고 돌며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 끝자락엔 사물놀이섬이 있다. 장구섬과 징섬, 북섬이 장구마을 앞에 있고, 꽹과리섬은 콰이강의 다리 왼쪽에 있다. 이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해거름 풍경이다. 장구섬 등 고만고만한 무인도 너머로 해가 지는데, 제법 장관이다.우도로 넘어간다. 옛 진해 지역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섬의 해안선 길이는 겨우 2.8㎞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돌아볼 거리다. 우도로 가려면 창원해양공원에서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사람만 오갈 수 있는 보도교다. 다리의 형태가 빼어나다. ‘바다를 가로지르며 항해하는 배와 그 뒤로 나타나는 뱃길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우도는 ‘나비섬’이라고도 불린다. 섬이 나비를 닮았다고 해서다. 창원해양공원의 솔라타워에 올라 굽어보면 날개를 팔랑대는 나비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섬에 들면 예쁜 벽화로 단장한 마을이 객을 맞는다. 2015년 조성된 ‘휴(休) 벽화길’이다. 우도 왼쪽으로는 거대한 방파제가 새로 놓였다. 길이 480m의 ‘명동마리나 방파제’다. 바다 산책로 겸 요트 계류장 등의 용도로 쓰일 예정이다. 우도 오른쪽으로 돌면 뜻밖에 너른 풍경과 만난다. 짙푸른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수평선 위로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그림처럼 떠 있다. 저물녘에 찾는 것도 좋겠다. 우도와 맞은편의 솔라타워가 어우러져 멋진 일몰 풍경을 선사한다.우도와 맞닿은 창원해양공원은 창원의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곳이다. 136m짜리 솔라타워에 오르면 사방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 바닥 일부엔 투명유리를 깔아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해양공원 옆 동섬은 초등학교 축구장만 한 크기의 무인도다. 썰물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동섬에서 부산 방향으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삼포가 나온다. 강은철이 부른 대중가요 ‘삼포로 가는 길’의 배경이 된 포구다. 마을 초입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노랫말만큼은 아니지만 도시 속 소박한 갯마을과 만날 수 있다. ■반갑다! 새로운 너 이제 새로 발견한 것들을 말할 차례다. 가장 앞줄에 세울 곳은 용지못이다. 창원시청 앞에 있는 작은 호수다. 둘레는 겨우 1.2㎞ 정도. 크기로만 보면 최근 조성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연혁을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에 조선시대에 가 닿는다. 용지못은 조선시대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다. 당시 이름은 용지제. 그러다 1970년대에 창원이 계획도시로 건설되면서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용지못은 밤에 더 멋들어지다. 곳곳에 조성한 설치미술 작품과 이를 밝히는 경관 조명 덕이다. 낮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하다. 호수 뒤쪽의 잔디광장에선 다양한 형태의 조각 작품들이 은은한 불빛에 자태를 드러낸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밈모 팔라디노의 ‘말’ 등 지난해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출품됐던 작품들이다. 많은 가족과 연인이 작품 아래 돗자리를 깔고 여름밤의 서정을 즐긴다. 분수쇼도 펼쳐진다. 음악과 조명이 결합된 음악분수쇼다. 용지못의 밤 풍경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건 보름달이다. 지름 3.8m짜리 등(燈)으로 달을 형상화했다. 등 겉면에 달 표면의 무늬를 그려 넣은 덕에 불이 켜지면 꼭 보름달을 보는 듯하다. 그러니 용지못에선 매일 밤 보름달이 뜨는 셈이다. 용지못 주변은 가로수길이다. 도로 양쪽으로 높지거니 솟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630여 그루가 이색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가로수 길은 장방형으로 총 3.3㎞ 구간에 걸쳐 조성돼 있다. 나무 아래로는 카페촌이 형성돼 있다. 모두 50여개 업소에 달한다. 작은 갤러리 등도 군데군데 들어섰다. 경남도민의 집(옛 경남도지사 관사)과 경남 여성능력개발센터, 창원남산교회 주변의 가로수 풍경이 빼어나다. 마지막으로 삼풍대를 덧붙이자. 못생긴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이다. 규모는 작아도 2013년 산림청 등 주최로 열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만큼 ‘내공’은 만만치 않다. 삼풍대는 인공숲이다. 삼계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정기가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 숲은 북풍을 막는 방풍림 역할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삼계마을의 삼(三),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풍(豊) 자를 따서 삼풍대(三豊臺)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숲은 제 모습을 잃었다. 숲의 곧고 굵은 나무들은 베어져서 통영의 세병관 기둥이나 거북선, 함선 등의 자재로 쓰였다. 그리고 어리고 굽어 쓸 수 없었던 나무들만 남아 현재의 숲을 이루게 됐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 셈이다.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에 있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맛집:옛 마산 일대는 먹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중심지는 마산어시장이다. 예서 반경 1㎞ 안에 맛집이 수두룩하다.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아귀찜거리’와 ‘복거리’가 조성돼 있다. 옛날우정아구찜(223-3740), 오동동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246-0427), 마산아구찜(222-8916) 등이 이름났다. 복거리 쪽에선 남성식당(246-1856), 고성복집(221-5848), 광포복집(242-3308) 등이 알려졌다. 남성동 수협 어판장 일대엔 장어거리가 조성돼 있다. 운치 있는 마산항 야경은 보너스다. 마산장어구이(242-0992), 신포장어(221-3630), 합포장어구이(224-5206) 등이 이름났다. 옛 진해 쪽에선 석동 제주복집(547-5555), 선학곰탕(543-6969) 등이 알려졌다. →잘 곳:호텔 사보이(247-4455)는 한국관광공사의 호텔 체인인 베니키아 가맹점이다. 온천욕을 겸하고 싶다면 마금산 근처 북면온천 단지를 찾으면 된다. 시내에선 돝섬유람선터미널 주변에 깔끔한 모텔이 많다.
  • 재입북 임지현에 탈북인권연합 “반년 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봐야”

    재입북 임지현에 탈북인권연합 “반년 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봐야”

    재입북한 탈북 여성 임지현(북한명 정혜성)이 북한 대외선전용 매체에 또다시 출연한 가운데 임지현의 납치설을 주장한 탈북인권연합회장의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탈북인권연합회장 김용화씨는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리얼스토리 눈’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악질적으로 노는 탈북자를 제거하라’라는 게 지금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임씨가 재입북 과정에 의문을 표했다. 그는 “북한에서 직접 전화가 와서 부모님이 아프다거나 감옥에 갇혔다고 말한다. 이게 북한 정찰 총국의 유인 납치 방법이다”라면서 “반년을 지켜봐야 한다.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북한은 반년이 지나게 되면 거의 다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지현은 북한매체를 통해 “남조선 사회에서 정말 허무함과 환멸을 느꼈다. 국(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신기하게 본다”면서 “돈의 꼬임에 넘어간 탈북자들을 유도해서 조국에 죄를 짓게 만든다”면서 압록강을 헤엄쳐 재입북했다고 밝혔다. 강에서 나왔을 때 북한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았고 식사 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한 그는 “(북한 측이) 죄를 묻는 것도 없이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줬다”며 목이 메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입북 임지현, 북한 매체에 또 나온 이유…함께 나온 20대 여성 때문?

    재입북 임지현, 북한 매체에 또 나온 이유…함께 나온 20대 여성 때문?

    국내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재입북한 탈북 여성 임지현(북한명 전혜성)씨가 지난 18일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에 또다시 출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임씨와 함께 출연한 북한 여성 리련금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일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를 보면 전날 유튜브 계정에 ‘따뜻한 품으로 돌아온 전혜성(임지현) - 지옥 같은 남녘 생활 3년을 회고’라는 제목으로 임지현씨와 미국의 친북 웹사이트 ‘민족통신’을 운영하는 노길남씨의 대담 영상을 올렸다. 특히 이날 대담에는 리련금씨가 임씨와 함께 나왔다. 리씨는 현재 북송을 요구하고 있는 탈북 여성 김련희씨의 딸이다. 리씨는 “6년 이상 한국에 강제 억류되고 있는 김연희의 딸 이연금이고 25살이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임지현씨는 남한 내 탈북자들에게 “김련희 어머니, 권철남 아저씨처럼 조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떳떳하게 투쟁해서 돌아오는 방법을 선택하면 나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영상을 공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임씨는 ‘보위부라든지 북의 누가 와서 납치(했다는 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노길남씨의 질문에 “새빨간 거짓말이고 날조”라고 대답했다. 그는 재입북 배경과 관련해 “남조선 사회에서 정말 허무함과 환멸을 느꼈다”며 “공화국(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신기하게 본다”고 남한 사회를 비난했다. 아울러 “20대, 30대 젊은 탈북자 여성들이 대체로 음지 생활 쪽으로 흘러들어 간다. 저도 몰려서 그런 길로 들어갔던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또 과거 음란 방송에 출연했다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서는 지인이 나오는 ‘성인방송’에서 ‘장난삼아’ 춤을 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종편 프로그램에 대해 “모략 방송”, “거짓말 방송이고 교활한 방송”이라는 등의 표현을 쓰며 “돈의 꼬임에 넘어간 탈북자들을 유도해서 조국에 죄를 짓게 만든다”고 비난했다. 재입북 과정과 관련, 임씨는 ‘중국에서 (북한에) 들어올 때도 (국경을) 그냥 넘어서 들어온 것이냐’는 노길남씨의 질문에 “네”라며 “압록강을 헤엄쳤다”고 말했다. 강에서 나왔을 때 북한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았고 식사 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한 그는 “(북한 측이) 죄를 묻는 것도 없이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줬다”며 목이 메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날 대담에서 ‘평안남도 안주시 문봉동 10반에서 살고 있는 전혜성’이라며 “2011년 11월경에 경제적 곤란으로 중국으로 비법(불법) 월경을 했다. 2014년 1월부터 2017년 초까지 남조선에서 생활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미연, 다른 여성과 살고 있는 아버지 “나보다 3살 많다고..”

    오미연, 다른 여성과 살고 있는 아버지 “나보다 3살 많다고..”

    ‘마이웨이’ 오미연이 가족사를 털어놨다. 지난 17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오미연은 집을 떠나 다른 여성과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해 밝혔다. 오미연은 “그 때는 제가 나이도 어느 정도 됐고, 제가 아버지한테 ‘아버지 집으로 들어오시면 어떠시겠냐고’고 그랬다. 애들도 셋 다 결혼 했고. 어머니 혼자시고 그러니까. 그랬더니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배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내가 인사불성일 때 3년을 날 지극정성으로 해서 내가 깨어나 다시 살게 됐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랑 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나보다도 그 여자랑 산 기간이 길다’ 그래서 ‘엄마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그 때 물어봤다. ‘같이 살고 계신 분은 건강하고 몇 살이냐 됐냐’고 물어봤다. 저보다 3살 많다고 했다. 진짜 할 말이 없더라. 그러고서 그 때 가시고 또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는 걸 원치 않으신다고 그러니까”라고 덧붙였다. 이후 오미연은 “그런데 얼마 전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리셨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가니까 그 분이 계시더라. 그래서 내가 ‘어머니라는 소리는 죽어도 못 하겠다’고 그랬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너무 기막히고 고생스러운 인생을 사셨네요.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회상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나영 복귀작은 ‘뷰티풀 데이즈’...5년 만에 배우 활동 ‘노 개런티’

    이나영 복귀작은 ‘뷰티풀 데이즈’...5년 만에 배우 활동 ‘노 개런티’

    배우 이나영이 5년 만에 배우로 돌아완다. 18일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 제작사 (주)페퍼민트앤컴퍼니 측은 “이나영이 출연을 확정했다”며 “촬영 준비에 돌입한 상태”라고 전했다. 배우 원빈과 결혼한 이후 출산 등의 이유로 5년간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나영은 이번 영화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오게 됐다. 제작사 측은 “이번 복귀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나리오와 신예 윤재호 감독의 독특한 영화 세계에 대한 이나영 본인의 확신으로 이뤄졌다”며 “제작비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노 개런티 출연을 자처했다”고 밝혔다. 10월 중순 크랭크인 될 예정인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조선족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간 엄마와 그런 엄마를 미워하던 아들의 16년 만의 재회를 통해 분단국가의 혼란과 상처를 희망의 메시지로 표현될 예정이다. 이나영은 고통의 기억을 품고 있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의 여정을 지속하는 엄마 역할을 맡았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기원 “소녀상은 강간 대자보” 막말 제명에도 반성없는 궤변

    이기원 “소녀상은 강간 대자보” 막말 제명에도 반성없는 궤변

    이기원 바른정당 충남도당 창당준비위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과 관련해 “할머니가 강간당한 사실을 대자보로 붙여 놓는 꼴”이라고 막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이기원 위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충남 보령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된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소녀상과 부국강병’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위원은 “위안부가 자발적인 거냐 강제적인 거냐 논란이 있는데 논점은 이것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역사가 우리나라에는 아주 많았다. 고려에 공녀, 조선에 환향녀, 일정에 위안부 그리고 군정에 기지촌녀 등 모두 공통점은 한국 여성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유별나게 위안부는 동상까지 만들면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고 한다. 이것은 민족 자존심에 스스로 상처만 내는 일이다. 어느 가정 사회 국가든 비극과 감추고 싶은 게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이 위원은 또 “인생의 최대 기쁨은 적을 정복하고 그 적의 부인이나 딸의 입술을 빠는 데 있다는 칭기즈칸의 명언이 있다. 의례히 전쟁에선 부녀들의 대량 성폭행이 이뤄져 왔다. 베를린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당시 헬무트 콜 수상 부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베를린 여자들이 비극을 당했다. 이 사람들의 상처가 한국 위안부의 상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외국 사람들에게 마이크 대주면서 소녀상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면 겉으로는 비극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서자마자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조선여자들을 비웃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세계의 ♥집이라고 말이다”라고 적었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됐다. 바른정당은 17일 “바른정당 충남도당은 18일 오후 3시 운영위원회를 열어 위안부 소녀상 막말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이기원 전 충남도당 대변인을 제명 조치하기로 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은 당의 제명 조치가 알려진 뒤에도 페이스북에 “이왕 쓴 김에 소녀상 문제에 대해 더 적고자 한다. 소녀상을 전국에 세우면 우리는 그것을 매일 봐야 한다. 우리 국민은 트라우마를 항상 안고 사는 부담이 생긴다. 굳이 어린 유소년들에게까지 이런 부끄러운 일을 미리 알게 할 필요가 없다. 민족 자긍심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

    의사 출신 이태준, 과학자 김용관…영화감독 나운규간도 참변 취재 중 실종된 장덕준·‘독립군 어머니’ 남자현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 5인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관심이 쏠리고 있다.문 대통령이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은 우리나라의 대표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인물들로 대부분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뽑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의사·기자·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을 위해 애쓴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우선 이태준(1883∼1921) 선생은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하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몽골로 망명했다. 선생은 몽골 고륜(지금의 울란바토르)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어 근대 의술로 몽골인들을 치료했고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냈다. 선생은 신한천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러시아 혁명 반대세력) 대원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장덕준(1892∼1920) 선생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14년 평양 일일신문사에 입사해 언론인이 됐다. 191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추송’이라는 필명 하에 ‘조선 소요에 대한 일본 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로 일본의 3·1 운동 왜곡을 비판했다.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이 독립군의 청산리 대첩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으로 가 일본군의 만행을 취재했다. 취재 중 일본인에게 불려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은 선생이 일본군에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선생은 한국 언론사상 첫 순직 기자가 됐다. 남자현(1872∼1933) 선생은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 등 항일 단체에 가담했다. 북만주 일대에서 예수교회와 여성교육기관을 만들어 여성계몽운동을 벌이고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부상한 독립군 치료에 힘을 쏟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다. 1932년에는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수건에 쓴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란 혈서와 손가락을 국제연맹조사단에 보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1933년 일본 고위관리를 암살하려고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기고 순국했다.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경성공전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운동가였다. 민족의 힘을 키우는 데는 과학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932년 ‘발명학회’를 조직했고 이듬해 일제강점기 대표적 대중 과학기술 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발명학회의 활동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화하며 급속히 위축됐고 김 선생도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1967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운규(1902∼1937) 선생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군 출신 영화감독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선생은 고향에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연해주를 거쳐 북간주로 이주했다. 간도지역에서 무장 독립운동이 활발할 때는 철도와 통신 등 일제의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철도 파괴 계획이 일본의 손에 들어가 2년간 옥고를 치른 선생은 1924년 극단 예림회에 가입,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심청전’, ‘흑과백’ 등의 연극에도 출연했다. 1926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고 ‘풍운아’, ‘잘 있거라’, ‘사랑을 찾아서’ 등의 작품도 만들었다. 1937년 폐병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또 불거진 초상화·사진 논란…진짜 명성황후는 누구?

    또 불거진 초상화·사진 논란…진짜 명성황후는 누구?

    광복절을 앞두고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1851∼1895)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초상화가 나온 가운데 지금껏 명성황후 초상화·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명성황후 사진은 1970년대 이전까지 1910년 이승만이 쓴 ‘독립정신’에 사용된 사진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후 1970년대 중후반 해외여행의 확산으로 국내 학자들이 외국에서 찾아낸 다양한 명성황후의 사진을 국내로 갖고 들어와 소개하며 진위 논란이 빚어졌다.하지만 1975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La Coree’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이 국내에 소개된 뒤 “이 사진이 명성황후가 맞는다”는 원로 학자들의 주장이 잇달아 제기됐다. 그리하여 1977년부터 이 사진이 국정교과서에 실리게 됐다. 주한 이탈리아 공사였던 카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나, 1904년’이라는 책의 궁중여인 사진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사진 속 주인공이 궁녀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교과서에서 삭제됐다.2006년에는 독일 출신 사진 작가의 19세기 사진첩에서 ‘시해된 왕비’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 공개됐으나 1890년대 미국립박물관 보고서 등에 ‘조선의 궁녀’라는 설명과 함께 실린 사실이 확인돼 진위 논란이 일단락되기도 했다. 한편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다보성갤러리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광복 72주년을 맞아 14일 개막한 특별전에서 평상복 차림의 ‘전(傳) 명성황후 초상’을 공개했다. 이 초상화는 세로 66.5㎝, 가로 48.5㎝ 크기로, 두건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족자 뒷면에는 ‘부인초상’(婦人肖像)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적혀 있다. 다보성갤러리 측은 적외선 촬영 결과 ‘부인’ 글자 위에 ‘민씨’(閔氏)라는 글씨가 있었으나 나중에 훼손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보성갤러리는 그림 속 인물이 착용한 신발이 고급 가죽신인 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독립정신’의 명성황후 추정 사진과 용모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명성황후의 초상화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를 명성황후 초상화로 단정할만한 결정적 단서가 없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어 진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제징용자상 세우는 데 일본보다 한국서 시간 더 걸려”

    “강제징용자상 세우는 데 일본보다 한국서 시간 더 걸려”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하나의 형상으로 압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든 작가 김운성(52)씨는 지난 12일 동상 제막식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징병, 광산, 농장, 군수공장, 토목공사 등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겪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용산역은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하거나 모집해 일본으로 데려간 전초기지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최소 100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용산역광장에 집결해 나가사키 군함도 등 일본과 사할린, 쿠릴 열도, 남양군도 등으로 끌려갔다.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질병과 지진, 원자폭탄 투하 등으로 사망했다.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부인 김서경(53)씨와 제작했던 김씨는 이번 노동자상 제작에 대해 “일본에는 바로 세워졌는데 오히려 한국에 세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면서 “(동상을) 만들긴 작년에 다 만들었다. 이는 아직도 친일파들이 알게 모르게 작동한다는 걸 방증하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동자상은 지난해 8월 24일 일제 강제징용 역사를 증언하는 일본 교토시 단바 망간광산 기념관에 처음 세워졌다. 이어 두 번째 동상을 바로 제작했지만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초 올해 삼일절에 제막식을 하려고 했으나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 부지라 부적절하다’며 건립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번 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과는 달리 ‘예술로의 승화’ 측면에서 성에 차지 않는다”면서 “동상을 세우기에 앞서 조사를 하다 들은 애절하고 애잔한 많은 얘기를 형상화해야 하는데 이를 승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이번에는 탄광에서 일한 피해자만을 형상화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착취당한 피해자들도 반드시 작품으로 다뤄 사람들이 강제징용 피해자 모두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면서 “앞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시리즈’로 만들어 나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인 피해자뿐 아니라 이들을 도와준 일본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작품에 담아 내고 싶다”면서 “예술을 통해 슬픔과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고, 그래야지 더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VR+모바일’ 특별한 다큐 세계로의 초대

    ‘VR+모바일’ 특별한 다큐 세계로의 초대

    올해 14회를 맞이하는 EBS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오는 21~27일 경기 고양과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EIDF에서는 가상현실(VR)과 모바일 단편 등 최첨단 기술들을 활용해 표현을 확장한 특별전이 신설돼 더욱 눈길을 끈다. 얀 쿠넹, 빌 모리슨, 아모스 기타이 등 거장들의 신작과 틸다 스윈턴, 헬렌 미렌, 콜린 파렐 등 세계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마르투족 고향으로의 가상여행 ‘흔적들’ 영상 미술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넘나드는 리넷 월워스 감독의 ‘흔적들’(Collisions)은 VR기술을 활용해 호주의 원주민 마르투족의 고향을 아름답게 재현해낸다. 서호주 필바라 사막의 원주민 마르투족은 1960년까지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하고, 마르투족의 원로 니아리 모르간이 처음 마주친 현대 문명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핵실험이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다. 월워스 감독은 “VR은 관객을 단순히 보는 사람으로 놔 두지 않고 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고 했는데, 관객은 기존 카메라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360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월워스 감독은 화면에 비쳐지는 모습에 따라 화자의 목소리도 달라질 수 있도록 설정함으로써 VR의 경험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조선인을 도운 일본인 ‘기록작가 하야시의 저항’ 주목할 만한 아시아 다큐멘터리를 한자리에 모은 ‘아시아의 오늘’ 섹션에서는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에서 제작된 4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일본 후쿠오카 지역 방송의 PD인 니시지마 신지 감독이 만든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은 불편한 역사의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려는 용기 있는 작품이다. 후쿠오카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돕다가 고문당해 죽은 아버지로 인해 ‘비국민’으로 비난받으면서도 평생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며 저항해 온 작가 하야시의 일대기를 담았다. 하야시는 50년 동안 조선인 강제 연행을 기록하며 57권의 책을 냈는데, 류승완 감독 역시 영화 ‘군함도’를 쓰면서 하야시를 만났다고 밝힌 적이 있다. 오는 24일 오후 6시 30분 일산 메가박스 킨텍스에서 영화 상영 후 ‘다큐 콘서트’를 통해 니시지마 감독과의 대담이 열린다.●낯선, 그러나 본 듯한 기억들 ‘모자란 기억’ ‘월드 프리미어’에 소개된 박군제 감독의 ‘모자란 기억’은 EIDF가 직접 발굴한 작품으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경기 남양주 마석가구공단에 간 감독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인천 남동공단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살았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사진뿐이다. 기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과 애니메이션, 사진,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들이 모여 영화를 완성한다. 기억을 통해 복원된 모습은 20여년 전 경제 개발 논리가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채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 공단의 모습이다.●중동의 지형을 바꾼 여성 ‘바그다드에서 온 편지’ ‘월드 쇼케이스’에는 전 세계에서 제작된 거장들의 신작, 화제작, 논쟁작들을 모았다. ‘설국열차’와 ‘옥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틸다 스윈턴이 제작과 해설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된 ‘바그다드에서 온 편지’는 영국의 고고학자 거트루드 벨의 삶의 궤적을 쫓는다.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뒤 중동에 수시로 드나들며 오스만제국의 해체와 이라크 건국에 관여한 벨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영국 정보국 장교 토머스 로렌스 못지않게 중동의 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서빈 크라옌부히, 제바 오엘바움 등 두 여성 감독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벨의 일기와 편지, 사진, 엽서 등을 토대로 주변인물들의 인터뷰를 재연한다. 개막작으로는 청소년들이 문학과 음악, 미술 교육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은 찰스 오피서 감독의 ‘나의 시, 나의 도시’가 선정됐다. 신은실 EIDF 프로그래머는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난민과 이주노동자, 어린이 등 소외된 계층과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게 나타났다”면서 “동시에 유명 배우들의 참여와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전기가 많아졌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日경찰, 위안부 ‘유괴’로 조사”…日군부 개입·강제연행 증거

    “日경찰, 위안부 ‘유괴’로 조사”…日군부 개입·강제연행 증거

    일본 경찰이 자국에서 위안부 모집 과정을 ‘유괴’ 범죄 혐의로 인지, 조사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 경찰 문서가 나왔다. 조사 과정에서 군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1938년 2월 7일 일본 와카야마현 경찰부장이 내무성 경찰국장에게 보낸 ‘시국 이용 부녀 유괴 피의 사건’ 문서를 13일 공개했다. 문서에 따르면 쇼와 13년(일본력·1938년) 1월 6일 오후 4시 와카야마현 후미사토 음식 상가에서 후미사토 수상파출소 순사는 거동이 불편한 남성 3명을 발견하고 수상쩍게 여겼다. 이에 남성 2명은 순사에게 “의심할 것 없다. 군부로부터 명령을 받아 황군위안소에 보낼 작부를 모집하고 있다. 3000명을 요구받았는데 지금까지 70명을 육군 군함에 실어 나가사키항에서 헌병들 보호 아래 상하이로 보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군부로부터 명령을 받았다’는 부분은 일본이 강력하게 부인하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어 주목된다. 문서에는 이후 정보계 순사가 이들을 수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군을 위문하기만 하면 음식 등을 군에서 지급한다’는 방식으로 ‘유괴’한 혐의가 있다”면서 이들 3명에 대해서는 ‘피의자’(被疑者)라고 지칭하며 신분과 이름을 문서에 기록해 놓았다. 이 문서가 내무성으로 보내진 열흘 뒤 나가사키 경찰서 외사경찰과장이 와카야마 경찰서로 답신을 보낸다. 답신에는 “부녀자 유괴 사건은 황군 장병 위안부 모집에 관한 것”이라며 “상하이에 있는 영사관에서 앞서 나가사키 수상경찰서에 이런 내용을 통보하기도 했다”고 적어 놨다. 이어 “본국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모집하고 있으니 증명서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편의를 봐주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군부와 영사관이 개입한 사실을 알기 전에는 일본 경찰도 위안부 모집 과정을 보고 ‘범죄’로 판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자국에서조차 위안부를 동원하려고 ‘유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 조선에서는 어떻게 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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