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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겨울여자’ 쓴 조해일 작가 별세

    소설 ‘겨울여자’ 쓴 조해일 작가 별세

    소설 ‘아메리카’, ‘겨울여자’ 등을 썼던 조해일(본명 조해룡)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19일 별세했다. 79세. 고인은 1941년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을 맞고 귀국했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매일 죽는 사람’이 당선돼 등단했다. 고인은 일상 속에 만연된 폭력의 여러 양상을 우의적으로 형상화했으며, 1970년대 송영, 조선작과 함꼐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미군 부대 기지촌 여성들의 소외된 삶을 조명한 ‘아메리카’를 비롯, 소설집 ‘왕십리’, ‘무쇠탈’,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 등이 있다. 특히 장편 ‘겨울여자’는 1975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다 단행본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70년대 대중소설의 전형인 ‘겨울여자’는 1977년 장미희·신성일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경희대, 서울예전 전임강사를 거쳐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에게 소설 창작을 지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굉미씨와 아들 대형씨가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303호. 발인은 21일 오전 9시.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 2018년 메이지 150주년을 앞둔 일본 전역에 관한 기행문. 재일 한인 2세로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인 저자가 전국 30여개 일간지에 동시 연재했던 기행문 ‘강상중 사색의 여행 1868년부터’를 묶었다. 그에 따르면 메이지 이후 일본의 역사는 국민을 버리는 정책들로 가득했다. 228쪽. 1만 3800원.조선영화라는 근대(정종화 지음, 박이정 펴냄) 1901~1945년 한국 근대 영화의 역사를 정리했다. 일제강점기 영화를 ‘조선영화’라 부르며 초창기 무성영화 전·후기, 발성영화기, 전시체제기로 구분해 살핀다. 친일 혹은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잣대 외에 조선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일제와 식민지 조선의 교섭, 조선과 일본 영화인들 교류의 역사에 초점을 두고 서술했다. 472쪽. 2만 4000원.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셸리 케이건 지음, 김후 옮김, 안타레스 펴냄) 인간과 동물의 도덕적 지위와 의무론적 권리, 윤리적 공존에 관한 고찰. 8년 전 ‘죽음이란 무엇인가’로 인생의 의미를 탐구했던 저자는 사람과 동물의 도덕적 차이를 철학적으로 살피며 무엇이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지 곱씹게 한다. 512쪽. 1만 9800원.혐오와 한국 교회(권지성 지음, 삼인 펴냄) 민중신학자인 저자가 한국 개신교는 어떻게 혐오의 첨병이 됐는지 들여다본다. 개신교 교회는 1945년 해방 이래 공산주의, 북한, 국내 좌파에서부터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슬람교도, 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을 혐오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혐오는 역설적으로 한국 개신교를 성장시킨 동력으로 기능했다. 312쪽. 1만 6000원.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제레미아스 아담스 프라슬 지음, 이영주 옮김, 숨쉬는책공장 펴냄) 앱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배달대행, 대리운전, 가사노동 등의 수요가 폭발한다. 빠르며 유연한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불안정과 저임금, 위험을 떠안긴다. 옥스퍼드대 막달렌칼리지 법학 교수인 저자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이 건강하게 진보할 방안을 제안한다. 316쪽. 1만 6000원.우리는 같은 곳에서(박선우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 대체로 퀴어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체화하면서 마주하는 내적 불안과 분열, 대립과 갈등, 화해와 통합의 여정을 서사화했다. 퀴어의 사랑과 관계성 속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감정의 갈래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252쪽. 1만 3000원.
  • [시론] 우리가 역사부정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시론] 우리가 역사부정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독일 국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정부를 상대로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국민이 자기 나라 전쟁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식민시기 조선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국민으로서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도운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가지고 친일이라 하는 것은 몰상식하다.” 일본 우익의 발언일까. 이는 2003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친일 진상규명 특별법 공청회에 반대 측으로 출석한 작가 김완섭의 진술이었다. 그는 당시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일으킨 주인공이었고 ‘신친일파’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반일종족주의’가 화제를 일으켰다. 대표 집필자인 이영훈 교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편향된 역사인식을 표출하고 있다. 2003년의 김완섭과 지난해 반일종족주의 집필자들이 가진 대일 역사 인식의 공통점은 식민 지배에 관한 것이다. ‘한일강제병합의 강제성 부정’, 즉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법적 과정의 산물로 인정하고 강제성을 부정하려는 인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 자체와 강제성을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들의 주장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일본 국적을 가졌으니 법적으로 평등한 관계라는 주장이다. ‘제국 신민’, ‘내선 일체’라는 언설은 있었으나 법 체계도 제도도 달랐다. 한일병합조약은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다는 것만 명기했을 뿐 주민의 국적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물론 내부 방침은 있었다.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얻지만 국내적으로는 차별 취급이 가능하며 외국에 대해서만 일본인”인 이중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방침이었다. 의무에서는 일본인이지만 권리에서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인은 당연히 지역에 따라 구별되는 존재였고, 법적 지위와 권리 규정은 없었다. 그러므로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둘째, 일제 말기 동원의 합법성 주장이다. 일본은 스스로 정한 법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일본이 제정한 법에서 규정한 연령 제한은 법조문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법에서 명시한 연령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을 노무자로 동원했다. 더구나 일본 국내법에서도 불법으로 금지한 ‘여성 약취(掠取)’를 어긴 대표적인 사례가 위안부 동원 아닌가. 설령 법이 있다 해도 각종 동원 관련 법령은 일본 스스로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1930년)에도 위반된다. 셋째, 강제성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역사부정론자들이 주장하는 강제성은 국제 사회의 인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자는 강제성을 인신적 구속 상태로 본다면 후자는 ‘신체적 구속이나 협박은 물론 황민화 교육에 따른 정신적 구속, 회유, 설득, 본인의 임의 결정, 취업 사기, 법적 강제에 의한 동원’을 의미한다. 본인이 결정했다면 강제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결정했으나 약속과 다른 상황이라면, 본인이 결정을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어야 강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총동원체제에서는 당연히 이것이 불가능했다. 보편적 구속과 강제성에 대한 인식은 일부 학자들만의 고담준론이 아니다. 2002년 일본변호사협회 조사보고서에도 실린 내용이다. 2007년 3월 일본 아베 총리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을 내세워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했다. ‘좁은 의미의 강제성’이란 ‘유괴범처럼 무단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방식’의 강제연행이다. 아베 총리가 굳이 좁은 의미의 강제성을 내세운 것은 강제성을 희석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역사부정론자도 동일한 의도를 표출하고 있다. 2003년의 역사부정론자가 ‘작가’의 신분이었다면, 2019년의 역사부정론자들은 ‘학자’라는 외피를 쓰고 정치 행위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고언을 제 입맛대로 해석해 세를 키우려는 역사부정론자들이 등장하는 이때 한국 사회가 건강한 역사 인식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한 역사 인식은 피해자성을 공유하는 길이며 자유·인권·평화·평등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피해자성이란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전쟁을 일으킨 권력이 아닌 민중의 시선으로 태평양전쟁을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일 때 지킬 수 있다. 우리가 저들이 주장하는 역사부정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며 근대교육자인 임면수는 이회영이나 이상룡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 수원 삼일학교를 설립했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에 몸바치는 등 만주독립운동을 뒤에서 도운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 분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결사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돼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기거할 방 한 칸도 없었다. 임면수 선생은 1874년 6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현 화성시)에서 아버지 임진엽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2남으로 출생했다. 삼일학교 설립에 기부한 재산을 보면 그의 가계는 중농 이상의 부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는 필동(必東) 또는 필동(弼東)을 사용했다. 임면수는 19세 때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돌본 전현석과 결혼했다.선생은 어려서는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했지만 늦은 나이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수원양잠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화성학교에 진학, 2년 동안 공부했다. 당시 화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군자금을 기부하는 등 일본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러일전쟁에 통역으로 참가하는가 하면 각종 기관의 일어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항일투쟁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주시경·이동휘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 선생은 1905년 서울로 와서 한국사와 한국지리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던 상동청년학원에 입학했다. 선생은 국어강습회를 열었던 주시경과 이동휘 등 애국지사들을 그곳에서 만나 교류했다. 경기 강화에서 사학을 30여곳 설립해 교육 사업을 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는 선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수원에서 이하영, 김태제 등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다. 국한문 취지서를 자비로 발간해 동참을 호소하고 경기도 각 지역에 배포했다. 반향은 컸다. 수원에서는 취지서 발표 2~3일 만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여원이 모금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1903년 29세의 선생은 젊은 동지들과 함께 유명한 신여성 화가 나혜석이 졸업한 수원 삼일여학교를 설립했다. 학교는 북감리교회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설립 후 3년이 지나자 재정난을 겪게 됐다. 부호 강석호는 1906년 5월 거금을 기부했고 나중석도 부지 900여평을 기증했다. 선생도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내놓았다. 현 매향정보중고등학교가 자리잡은 곳이 그가 희사한 땅이다. 1909년 선생은 삼일학교 교장이 됐고 다른 사립학교 설립도 도왔다. 선생은 1907년 기호지방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기호흥학회에서도 활동했다. 서우학회, 교남교육회, 호남학회와 같은 교육진흥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역마다 학회가 조직됐는데 기호흥학회도 그중 하나였다. 광주와 수원 등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19개 지부가 있었고 수원 지역 교육자로서 선생은 교육과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신민회에 가입하고 양기탁의 집에서 열렸던 구국운동회의에 참여했다. 신민회의 결의에 따라 모국을 떠나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결심했다. 삼일학교 운영은 나홍석에게 위탁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초 선생은 극비리에 가족을 이끌고 만주 봉천성 환인현 횡도촌으로 망명했다. 그곳에 먼저 정착한 이회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6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농가 2칸을 빌려서 신흥강습소를 개설했고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 신흥중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중학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데 수만 평의 연병장과 수십 칸의 내무실은 생도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통화현 합니하는 독립군 무관 양성의 본영이 됐다. 선생의 역할은 재원 조달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고자 영하 40도의 한파와 폭설을 무릅쓰고 썩은 좁쌀, 강냉이, 풀나무 죽으로 연명하면서 동포들의 도움을 구하러 다녔다. 선생 부부는 객주업에 종사했는데 독립군의 연락소, 휴식소, 무기보관소, 회의실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독립운동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부인 전 여사는 수시로 방문하는 별동대, 특파대 등의 식사를 하루에 대여섯 번이나 내놓았고, 그들의 보따리와 총기를 맡아 챙겨 주는 등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독립군으로서 전 여사의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전 여사의 인내심과 온순함, 예의 바른 행동에 누구나 머리를 숙였고 ‘독립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았다. 선생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당시 독립운동가로 선생댁에서 잠을 안 잔 이가 별로 없고, 그 부인 전현석 여사의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으니 실로 선생댁은 독립군 본영의 중계 연락소이며 독립운동객의 휴식처요, 무기보관소요, 회의실이며 참모실이며 기밀 산실이었으니….” 만주의 한인자치기관 부민단에서는 1916년 3월 16일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를 위협할 일본영사관 분관 설치를 제지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 방책으로 결사대 200명을 편성했고 7~8명은 통화현 시가에 잠입했는데 선생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9월 9일 안동 주재 일본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재만 조선인 비밀결사 취조의 건에 대한 회답’ 등에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지(통화현)의 배일자 중 유력자인 결사대원 임필동”이란 표현에서 당시 만주 독립운동계에서의 선생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양성중학교 교장 일하며 제2 신흥무관학교로 선생은 1910년대 중반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는 제2 신흥무관학교 격이었다. 교수로 재직한 이세영과 재무감독 이동녕 등은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인 중심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일본군들은 1920년 간도로 출병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은 1920년 6월 12일 밤 해룡현 북산성자 삼도가 김강의 집에서 체포됐다. 일본 경찰관과 친일 조선인을 암살하고 동지들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하려 한 혐의였다. 선생은 압송돼 가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여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선생은 낮에는 숨고 밤이 되면 걸어서 14일 만에 길림성 이통현 고유수 한인 농촌마을에 도착해 동포 박씨 집에 은둔했다. 그곳에 머물다 장춘을 거쳐 부여현에 도착해 안승식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 고문 후유증에 타계 그러나 1921년 2월쯤 길림시내에 잠입해 활동하다 밀정의 고발로 길림영사관에 체포된 뒤 평양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전신이 마비될 정도의 위중한 상태가 되자 일제는 선생을 석방했고 수원으로 귀향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의 가족사도 불운했다. 만주에서 20세가 돼 독립운동에 가담한 장남 우상이 1919년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마련하고 만주로 돌아가다 동상을 입어 객사한 것이다. 선생은 1923년 삼일학교 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1930년 11월 29일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4년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선생의 유골은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기념비도 세워졌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묘소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2015년 기념사업회가 발족했으며 손자 임병무씨도 유품을 수원박물관에 기증하고 조부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정치국 ‘민생 안정’ 강조·삐라 규탄집회…北 연일 투트랙으로 내부결속 다지기

    남북 간 통신선을 단절한 북한은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재 정치국 회의 결정사항을 강조하는 동시에 대북전단(삐라) 살포 항의 군중 집회를 이어가며 ‘투트랙’으로 내부 결속을 다졌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정치국 회의 내용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이번에 소집된 정치국 회의는 조성된 혁명 정세의 요구에 맞게 인민 생활 향상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데서 중요한 계기”라며 김 위원장이 회의에서 강조한 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정치국 회의를 열고 화학공업 발전과 평양시민 생활 향상 방향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담화문에서 삐라 문제와 남한 정부를 비난한 반면 김 위원장은 한발 물러서 내치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신문은 각지에서 삐라 살포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소개하며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신문은 전날 조선사회주의 민주여성동맹이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앞에서 열린 대북 전단 살포 항의 군중집회를 전하며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며 죄악을 덧쌓는 인간쓰레기들의 천하의 망나니짓과 그를 묵인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너절한 처사는 온 나라 여성들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야외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들이 ‘민족 반역자이며 인간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죽이라’는 구호와 함께 도열한 집회 사진도 공개됐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문 이후 탈북자 삐라 규탄 군중집회는 지난 5일 평양 종합병원 건설 노동자 집회, 6일 평양 청년공원 야외극장 집회, 7일 개성시 문화회관 앞마당 집회에 이어 네 번째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음악프로듀서는 ‘단디’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음악프로듀서는 ‘단디’

    유명 음악프로듀서가 지인의 여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고 보도된 가운데, 해당 프로듀서가 ‘귀요미송’ 작곡가로 알려진 단디(본명 안준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서울동부지검은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A씨를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지난달 29일 지인의 집에서 지인 여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A씨는 지난 4월 초 여성 지인의 집에 방문해 지인의 여동생과 함께 3명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이들이 각자 방에서 잠들자, A씨는 지인 여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성폭행했다. 범행 직후 A씨는 성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도 “실제 성폭행은 없었고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에서 A씨의 DNA가 나오면서 범행이 들통이 났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DNA 검사를 한 결과 피해자의 신체에서 가해자의 DNA가 나왔기 때문에 가해자는 기존의 허위 변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네티즌들의 추측이 이어진 가운데, A씨는 ‘귀요미송’ 작곡가 단디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0년 싱글 앨범 ‘Feel Sympathy’로 데뷔한 단디는 ‘쇼미더머니4’, ‘너의 목소리가 보여’, ‘미스터트롯’ 등 다수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SD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걸그룹 세러데이를 론칭하기도 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DNA 검사에 덜미”...유명 음악프로듀서,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

    “DNA 검사에 덜미”...유명 음악프로듀서,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가 지인의 여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9일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서울동부지검은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A씨를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지난달 29일 지인의 집에서 지인 여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A씨는 지난 4월 초 여성 지인의 집에 방문해 지인의 여동생과 함께 3명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이들이 각자 방에서 잠들자, A씨는 지인 여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성폭행했다. 범행 직후 A씨는 성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도 “실제 성폭행은 없었고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에서 A씨의 DNA가 나오면서 범행이 들통이 났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은 “DNA 검사를 한 결과 피해자의 신체에서 가해자의 DNA가 나왔기 때문에 가해자는 기존의 허위 변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편, A씨는 2010년대 초 자작곡을 빌보드코리아 차트에 올리며 유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여성 아이돌그룹을 프로듀싱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통신 단절한 북한, 남한에 적개심 폭발 “얼빠진 자들”

    통신 단절한 북한, 남한에 적개심 폭발 “얼빠진 자들”

    대북전단 문제를 내세워 남북한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끊은 북한이 10일에도 남측을 규탄하는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 관영·선전매체들은 10일 각지에서 각계각층 인사들의 비난 목소리를 앞다퉈 소개하면서 남한 당국을 향한 강한 적개심과 불만을 드러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앞에서 진행된 조선사회주의민주여성동맹의 항의 군중집회와 규탄모임 소식을 실었다. 6·25전쟁 때의 미군 만행을 전시했다는 신천박물관은 ‘반미 교양’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은 “어머니들은 쓰레기들의 망동을 묵인하는 남조선 당국자들의 행태가 더 역겹다. 북남관계를 총파산시켜야 한다고 하며 격분을 누를 길을 없어 하고 있다”면서 남측 정부를 겨냥했다. 야외에서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낀 여성들이 “자멸을 재촉하는 역적무리들을 송두리째 불태워 버리자!” “민족반역자이며 인간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 죽여라” 등의 구호와 함께 선 집회 모습이 사진으로도 공개됐다. 노동신문은 군에 입대하면서 최전방 초소 배치를 희망하는 고급중학교(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 저속한 표현으로 남측을 비난하는 시를 지은 김형직사범대 어문학부의 최남순 강좌장 등의 인터뷰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온 나라가 분노의 불길로 활활 타 번지는 때”, “어디를 가나 폭발 직전의 긴박한 공기” 등의 표현을 통해 남측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북한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음을 드러냈다. 항의 집회를 촉발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지난 4일자 담화를 최고지도자 교시처럼 떠받드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또 대외 선전매체들은 남한 당국이 미국에 굴종하면서 매국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조선의오늘’은 남한 당국의 남북협력사업 추진을 “얼빠진 자들의 부질없는 몸부림”이라고 폄하하면서 “친미사대와 동족대결 책동으로 북남관계는 날이 갈수록 개선이 아니라 파국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별도 기사에서도 “오늘 긴장 격화의 주된 원인은 친미사대행위에 매달리는 남조선 당국과 그에 맞장구를 치며 돌아가는 집권여당에 있다”면서 남북관계 악화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당국이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하고 뒤돌아 앉아서는 외세와 작당질하여 무력으로 동족을 압살하려는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서 “동족대결의 흉심이 더 교활·악랄해졌다”고 일갈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 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통신선 차단을 ‘첫 단계’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연락사무소 통신선, 동·서해 군 통신선, 통신시험연락선(기계실 간 시험 통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핫라인이 모두 끊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외할머니와 약산 김원봉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외할머니와 약산 김원봉

    젖을 못 먹어 사흘 밤낮 울기만 하는 나를 설탕물 먹여 키운 외할머니는 스물두 살에 과부가 된 여자였다. 징용 간 외할아버지는 일본 홋카이도 비행장 건설현장에서 죽었다고도 하고, 어느 탄광에서 죽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5년 일본에서 귀국하다가 배가 난파돼 죽었다고 답변했다. 일본이 일부러 배를 폭파시켰다는 얘기도 많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 뒤에야 외할아버지에 대한 보상금 2000만원이 어머니와 이모의 통장으로 들어왔다.스물두 살짜리 과부 외할머니는 배를 곯으며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성깔 있고 경위가 바른 여자, 남의 것은 조금도 탐내지 않고 스스로의 살과 뼈를 저며 어린 자식들을 먹인 여자. 6ㆍ25전쟁 때는 인민군이 여자의 마을을 지나갔다. 낙동강 전투에 열을 올리던 인민군은 후방작업으로 마을마다 신망 있는 사람, 출신성분 좋은 사람들을 마을 대표로 뽑았다. 남편이 일본에 끌려가 죽고 경위 바르게 홀로 살던 외할머니는 당연히 출신성분이 좋은 여자였다. 영순면 인민군여성동맹위원장을 하게 된 외할머니는 이후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고 마을에 국군이 들어왔을 때 총살당할 처지가 됐다. 동네 사람들의 탄원과 우익 쪽 친척의 애원으로 구사일생 살아난 외할머니는 온갖 눈치를 다 보며 어머니와 이모를 키웠다.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시집을 오고 이모마저 시집을 가자 홀로 된 외할머니는 망설일 것 없이 짐을 싸서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받아 키운 외할머니는 가끔 한숨을 쉬며 “너이 할배가 돈이나 한보따리 싸들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떤 밤에는 6ㆍ25 때 이야기를 하며 국군 때문에 엄마를 마루 밑에 숨긴 이야기, 여성동맹위원장이 됐을 때 마을 사람들의 응원, 국군의 총구가 입안에 들어왔을 때 살아남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어디 가서 얘기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며 당신의 지난날들을 내게 심어 주었다. 죽어서도 내 머리 위에 빙빙 돌며 지켜 주겠다던 외할머니는 지금도 내 머리 위를 돌고 있을까. 대학에 가서야 나는 외할머니가 인민군여성동맹위원장이었음을 무섭게 여기지 않게 됐다. 군대를 다녀와서 1991년 대학 4학년 때 낸 첫 시집에 “인민군여성동맹위원장을 지낸 외할머니가 1984년 8월에 돌아가시고 나는 정신이 허황했음”이라고 밝혔다. 연약했던 한 여자 우리 외할머니와 참으로 위대한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 선생을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우리 외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약산 김원봉 선생을 존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북한군에 부역했든 말든 외할머니는 나의 자랑스러운 외할머니이듯이 북한에서 고위층을 지냈든 말든 약산 김원봉 선생은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독립투사인 것이다. 외할머니가 내게 그러하듯 약산 김원봉 선생은 죽어서도 인민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며 서러운 인민을 호위하고 있을 것이다. 김원봉 선생은 8·15해방 후 12월에 귀국, 여운형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민공화국’이 결성되면서 중앙인민위원 및 군사부장을 맡았다. 1947년까지 일제강점기 형사 출신의 경찰에게 체포와 고문, 수모를 겪었다. 이후 계속되는 좌익 단체에 대한 탄압과 테러에 실망과 좌절이 반복된 후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9월에는 국가검열상에 올랐지만, 1958년 10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됐다. 그 후 숙청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원봉 선생은 남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북쪽에서도 끝내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바른 길을 간 분인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와 김원봉 선생, 저승에서나마 행복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Queen 창간 30주년 기념식 개최...‘대한민국을 이끄는 여성리더 30인’ 대상 시상

    Queen 창간 30주년 기념식 개최...‘대한민국을 이끄는 여성리더 30인’ 대상 시상

    여성지 Queen(전재성 대표)이 창간 30주년 기념식을 8일 오후 6시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했다. 1990년 창간된 Queen은 이날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여성 리더 30인’을 선정, 시상식을 진행했다. 정희선 한국여성과학총연합회 회장, 정호정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여에스더 대표,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전현정 변호사, 동양화가 오명희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교수, 김문정 음악감독 등 ‘과학, 교육, 기업, 사회, 예술·체육’ 분야에서 정상에 선 여성 리더 30인을 시상했다. Queen에 따르면, 변도윤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심사위원장으로 한 7인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여성 리더 30인’ 심사위원회는 지난 5월 18일 추천 후보자를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거쳐 대한민국 여성리더 30인을 선정했다. 이익선 방송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그랜드볼룸의 300석 좌석을 꽉 채우며 행사 내내 축하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 기념식에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참석해 Queen의 30주년을 축하하고 응원해 박수를 받았다. 여성계 원로로서 신낙균 민주 평통 여성 부의장,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김정숙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무대에 올라 퀸 30주년을 격려했다. 이어진 영상축사에서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여왕의 품격’ 여성지 퀸이 앞으로도 여성들의 희로애락을 잘 담아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모든 여성을 응원한다”고 전했다. 정동만 의원(미래통합당)은 축배의 잔을 들어 건배사로 퀸의 30년을 축하했다. 변도윤 심사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7인의 심사위원회를 통한 심사과정을 전하고 여성가족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후원으로 수상자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수상이 되었다고 격려했다. Queen 발행인 전재성 대표는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Queen은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리더 30인’ 수상자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겠다”고 감회를 밝혔다. 내빈으로 김재형 대법원 대법관, 나경원 전 의원, 최대석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황영기 한미협회 회장, 심재철 고려대학교 교수, 안병준 서울신문 사우회장, 이대영 중앙대학교 교수, 김덕진 변호사, 이재만 변호사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한편 기념식 3부에서는 도예가 신경균 작가의 양구백자 달항아리와 약토 발이 자선경매로 나와 10여 차례 경합 속에 낙찰되었으며, 경매 낙찰금액은 전액 기부를 통해 사회적 가치 실현에 동참한다. 마지막 피날레 무대는 창립 25주년의 이영주 패션쇼로 장식했다. ‘Dreams come true’를 주제로 한 이날 무대에서 디자이너 이영주는 코로나19로 암울한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다음은 수상자 30인 명단이다. 김귀순 세무법인 부민 대표, 김문정 한세대학교 교수·음악감독, 김성옥 (사)글로벌미래환경협회 회장, 김재희 이화다이아몬드공업 대표이사, 김혜경 엔지켐생명과학 부회장, 김희정 하프시코드 연주자, 마은주 유엑스 디자인그룹 대표, 민은자 드림에듀 대표, 박재숙 라온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박지향 유앤젤보이스재단 이사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손정은 MBC 아나운서, 양영은 KBS 기자, 여예스더 에스더포뮬러 대표이사, 오명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교수, 오숙영 오즈리서치 대표이사, 유은실 서울 아산병원 교수, 이명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성주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이영미 세미성 대표이사, 이영주 이영주콜렉션 대표, 이주희 중앙대학교 교수, 임계화 장안요 갤러리 관장, 임인경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전현정 법무법인 KCL 변호사, 정호정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정희선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교수, 조선영 학교법인 광운학원 이사장, 조수빈 방송인, 조향 한국융복합콘텐츠컴퍼니 대표이사 (가나다 순).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버러지·징벌의 불줄기…” 北, 거친 표현으로 남측 비난

    “버러지·징벌의 불줄기…” 北, 거친 표현으로 남측 비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노동당 기관지를 통해 “버러지”, “인간쓰레기” 등 거친 표현을 써 가며 남측에 책임을 돌렸다. 조선중앙통신 역시 “징벌의 불줄기를 퍼붓고 싶다”는 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노동신문은 6일 ‘절대로 용납 못할 적대행위’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현 사태는 북남관계 개선의 좋은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게 만들고 정세를 긴장 국면에로 몰아가는 장본인이 누구인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제기한 탈북자들의 삐라(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거론하며 “버러지 같은 자들이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는 천하의 불망종 짓을 저질러도 남조선에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남측에 책임을 돌렸다. 특히 “더욱 격분스러운 것은 사태의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라며 “남조선 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노동신문은 과거에도 대북전단 살포 등 적대행위로 남북관계가 전쟁 국면으로 치달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며 “지금처럼 가장 부적절한 시기에 감행되는 비방·중상 행위가 어떤 후과(결과)로 돌아오겠는가 하는 것쯤은 미리 내다보고 인간쓰레기들의 경거망동을 저지시킬 수 있는 조처부터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현 남조선 당국의 처사가 ‘체제 특성’이니 ‘민간단체의 자율적 행동’이니 하면서 반공화국 삐라 살포 행위를 부추긴 이전 보수정권의 대결 망동과 무엇이 다른가”라면서 “공허한 외침만 늘어놓으면서 실천 행동을 따라 세우지 않는다면 북남관계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남합의를 진정으로 귀중히 여기고 철저히 이행할 의사가 있다면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하라. 과단성 있는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며 “남조선 당국이 제 할 바를 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사태를 맞이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노동신문은 논평 외에도 지난 3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담화 발표에 대한 주민 반응을 이날 지면에 비중 있게 실었다. 김영환 평양시당위원장, 박명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장춘실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주철규 황해남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 오유일 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 등은 한목소리로 대남 압박에 나섰다. 이들은 “남조선 당국은 이번 망동이 저들의 비호와 묵인 조장 하에 빚어졌다는 데 대하여 입이 열 백개라도 변명하지 못 한다”며 “남조선 당국이 대결광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거든 인간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촉구했다. 노동신문은 평양종합병원건설장 노동자들이 “탈북자 쓰레기 죽탕쳐(짓이겨) 버려야” 등 선전물을 들고 비난집회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전했다. 북한이 모든 주민에 노출되는 노동신문을 통해 거듭 대남 비난 논평을 낸 것은 이번 사안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 역시 이날 ‘인간쓰레기들을 내세워 감행한 반공화국 망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노동신문의 남측 비난에 가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종수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강철직장 용해공, 리명옥 룡천군 신암협동농장 농장원, 림현기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강은일 해주공업기술대학 학생 등의 반응을 종합해 “조국을 배신한 자들이야말로 신성한 민족의 명단에서 영원히 삭제해야 할 인간오물들”, “당장이라도 손에 총을 틀어잡고 가증스러운 개무리들에게 징벌의 불줄기를 퍼붓고 싶다”고 썼다. 앞서 전날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관련 대응 조치의 검토를 지시했다면서 그 첫 조치로 “할 일도 없이 개성공업지구에 틀고 앉아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문화 블로그] 귀를 의심했습니다, 공영방송 책임감… KBS, 불법촬영에 “직원 아니다’’ 발뺌

    [문화 블로그] 귀를 의심했습니다, 공영방송 책임감… KBS, 불법촬영에 “직원 아니다’’ 발뺌

    KBS 연구동 여성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기기가 발견된 사건이 며칠째 온라인 공간을 달구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공영방송에서 범죄가 일어난 만큼 국민들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사건이 처음 알려진 후 하루 만인 지난 1일 조선일보는 “피의자가 KBS 직원”이라고 보도했다. KBS는 당일 밤 12시가 넘은 시간 입장문을 냈다. “긴급히 경찰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직원(사원)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 2일 오전 “용의자가 KBS 공채 출신 개그맨”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KBS 대표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모 코미디언이 지목됐다. KBS는 이에 대해 “경찰의 수사를 기다린다”는 말 외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공채 개그맨은 직원이 아니다”라며 “선발 후 1년간 전속계약이 끝난 후에는 프리랜서로 회당 출연료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번도 없는 출연자에게 직원이라는 표현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해명에 한 여성단체는 즉각 입장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감을 가지고 역할을 하는 게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KBS는 지난해 3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 중이던 가수 정준영이 불법 촬영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방송을 잠정 중단하고 출연자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이번 일의 피의자가 해당 코미디언인지 여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건 공론화 후 만 3일간 KBS에서 어떤 유감 표명이나 사과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판이 계속되자 KBS는 3일에야 “용의자가 KBS 직원은 아니더라도 출연자 중 한 명이 언급되는 상황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재발 방지와 피해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KBS는 지난해 4월 ‘성평등 기본 규정’을 만들며 피해자 보호 범위를 비정규직까지 확대했다. 이번 사건은 비정규직을 포함해 KBS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출연자들이 피해자일 확률이 높다. KBS가 관리 부실에 대한 사과나 피해자 보호 의지를 먼저 표명했다면, 성폭력에 대해 진일보한 대응 의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가해자 ‘신분’이 어떻든 그는 내부에 있었고, 피해자도 다름 아닌 KBS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역사를 품으려고, 몸을 낮췄다

    역사를 품으려고, 몸을 낮췄다

    전북 익산에는 11개의 크고 작은 박물관이 있다. 문화재, 종교, 군사 등 영역도 다양하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틀리지 않겠다. 화룡점정이 된 건 국립익산박물관이다. 올 초 개관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졌던 백제의 보물들을 한곳으로 모았고, 그 덕에 고도(古都) 익산의 진면목도 갖출 수 있었다. 박물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다. 없는 듯 있는 게 이 박물관의 매력이다.국립익산박물관 개관 소식에 가장 궁금했던 건 외형이었다. 어떤 형태의 건축물일까, 건축가는 어떤 이상을 건물에 구현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릴 때까지도 박물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로 미륵사지 석탑의 존재감 넘치는 자태만 아련히 보일 뿐이었다. 대체 이 상황은 무엇? 국립익산박물관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보이지 않는 박물관’(Hidden museum)이다. 저 유명한 미륵사지 석탑의 자태를 가리지 않는 것이 설계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이를 위해 지하로 몸을 구부리고 지면에서의 높이를 최대한 낮췄다. 몸을 낮춘 건물이라 해서 존재감까지 없는 건 아니다. 문화유산을 가리지 않되 건물 스스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도록 하는 것,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건물 설계를 담당한 이가 여성 건축가인 신수진(47)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마음 정화시키는 사찰의 진입 방식 따라 건물의 외형을 구상할 때 그는 무엇에서 영감을 얻었을까. 익산박물관은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다. 진입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각각 전시공간을 둔 형태다. 그는 이를 “심주석(心柱石)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심주석은 건축물의 중심이 되는 기둥을 뜻한다. 불탑의 경우 이곳에 사리장엄구를 안치하는 게 보통이다. 미륵사지 석탑 역시 심주석에서 여러 사리장엄구들이 출토됐다. 박물관 입구는 낮은 경사로의 평탄한 길이다. 여느 박물관처럼 계단을 오르는 방식이 아니라 걸어 내려가는 형태다. 신 소장은 이에 대해 “일주문을 통과해 마음을 정화시키며 진리의 세계에 다다르는 사찰의 진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하심(下心)의 자세로 문화유산에 다가가 심주석 안에 담긴 역사의 정수를 마주하게 한다는 게 익산박물관의 외형에 담긴 정신인 셈이다. 건물 안으로 들면 백제의 유물들이 반긴다. 3000여점의 유물이 상설 전시돼 있다. 상당수가 국보와 보물인 데다 대부분이 진품이다. 시간 너머에서 건너온 기억의 한 조각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건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작고 아름다운 금빛 사리호(보물 1991호)다. 부처의 사리를 보관한 용기다. 입구에 사리호를 배치했다는 건 곧 절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1965년 발견 이후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다 55년 만에 익산으로 돌아온 왕궁리오층석탑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 발굴된 지 103년 만에 다시 공개된 쌍릉 대왕릉의 목관 등이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끈다.●1400년 견뎌 낸 대왕릉 ‘나무널’ 범부들에게 사리장엄구 등 불교 관련 유물들이 다소 형이상학적이라면 대왕릉의 나무널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1400년 가까운 시간을 견뎌 낸 나무널의 주인은 누굴까. 사실(史實)로 확립된 건 아니지만, 현지 주민들은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은 백제 무왕, 작은 능은 신라 선화공주의 능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 나무널에 누웠던 이 역시 ‘당연히’ 백제 무왕일 수밖에 없다. 순금으로 테를 만든 나무널을 보고 있으면 속세의 영욕을 갈무리하고 영면에 들었을 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박물관 지붕은 전망대이자 산책로다. 신 소장은 박물관 내부를 보고 난 뒤 잔디가 푸르른 지붕을 천천히 오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할 것을 추천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나 석양 무렵에 미륵사지가 가장 잘 보이는 박물관 북측 지붕의 전망대에 올라 관람객들 스스로의 미륵사지를 상상해 보라고도 했다. “지금은 비어 있지만 이야기로 가득 찬 백제의 역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지는 마음으로 봐야 하는 여행지다. 미륵사지 석탑의 채 아물지 않은 상처 너머를, 석탑보다 훨씬 더 컸을 목탑의 위용을,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대가람의 애틋한 모습을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 미륵사지의 온전한 모습을 심상으로 개괄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익산박물관 지붕이라는 것이다. 미륵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석박물관이 있다. 백제 금세공술을 잇고 있는 익산의 보석 세공술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륵사지 목탑을 재현한 ‘보석탑’, 다이아몬드와 백수정 등으로 만든 ‘보석꽃’ 등 볼거리가 많다. 공룡화석, 모형 등이 전시된 화석전시관은 아이와 함께 돌아보기 좋다. 밤에는 더 ‘블링블링’한 공간으로 변한다. 박물관 벽면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 분수쇼, 경관조명 등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미디어 파사드는 오후 8~9시, 경관조명은 오후 7시 20분~10시 30분에 각각 운영된다. 백제의 왕궁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리에는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있다. 국내 최고의 위생시설로 꼽히는 대형화장실 유적이 특히 인상적이다. 화장실 뒤처리용으로 불리는 측주 등을 볼 수 있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사이에는 서동공원이 있다. 고즈넉한 금마저수지를 끼고 있는 공원으로, 선화공주와 무왕의 서동요 전설을 토대로 조성됐다. 공원 한쪽에 마한관이 있다. 삼한시대 마한의 땅이었던 익산의 역사와 생활상을 살필 수 있다.●인근 익산교도소세트장 등 둘러볼 만 이제 익산에서 ‘뜨는’ 여행지 몇 곳을 곁들이자. 성당면의 익산교도소세트장은 익산에서 가장 ‘핫’한 인증사진 명소다. 독방, 면회실, 감시탑 등 실제 교도소를 그대로 재현한 곳에서 저마다의 포즈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가 300여편에 이른다고 한다. 두동교회는 1920년대에 지어진 ‘ㄱ자형’ 예배당으로 유명한 한옥교회다. 예배당 내부는 남녀 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의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건물 가운데 모서리의 강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남자, 왼쪽은 여자 신도만 앉을 수 있었다. 출입문도 남녀를 달리했다. 건물이 ‘ㄱ자’가 된 건 이 때문이다. 글 사진 익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국립익산박물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된다. 시간당 200명만 입장할 수 있고 인원이 미달될 경우 미예약자의 현장 입장도 가능하다. 입장료, 주차비는 없다. (063)830-0901. -익산교도소 세트장의 죄수복, 간수복 대여는 코로나19로 중단된 상태다. 촬영이 있는 날(홈페이지 공지)과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입장료는 없다. -익산의 대표 먹거리 중 하나는 황등비빔밥이다. 보통의 비빔밥이 ‘비빌 밥’인 것에 견줘 황등비빔밥은 주방에서 육회 넣고 비벼 나오는 ‘비빈 밥’이다. 얼추 90년 가까이 된 진미식당, 35년 전에 ‘새로 생긴’ 한일식당 등이 알려졌다.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익산을 좀더 편하게 돌아볼 수 있다. 순환형, 테마형으로 나뉘어 매주 토·일요일, 공휴일에 하루 12회 운행한다.
  • ‘총장 직인파일 정경심 PC서 발견’ SBS 보도, 법정제재 받을 듯

    ‘총장 직인파일 정경심 PC서 발견’ SBS 보도, 법정제재 받을 듯

    동양대 휴게실 PC에서 발견된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PC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한 SBS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방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3일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SBS 8시 뉴스에 대해 ‘법정제재’(주의) 의견으로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SBS 8 뉴스는 지난해 9월 7일 “[단독] 조국 아내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 발견”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정경심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사용하던 PC를 임의제출했는데, 검찰이 이 PC에서 동양대 총장 직인이 컴퓨터 사진 파일 형태로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정경심 교수의 9차 공판에서 검찰은 동양대 직원 박모씨 증인신문 중 SBS 보도가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히면서 오보 논란이 불거졌다. 이날 회의에 출석한 SBS 기자는 당시 보도와 관련해 ‘총장 직인 파일’이나 ‘총장 직인 파일을 캡처해 그 부분만 오려낼 만한 정경심 교수 아들 상장 같은 원본 파일’ 등이 있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동양대 총장의 직인 파일은 동양대 휴게실 PC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SBS는 정경심 교수의 PC에서 직인 파일이 나왔다고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확인 없이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면서 해당 보도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사안임에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여론 형성에 저해가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재영 위원은 “기자는 전문 직업인이다. 중요한 사실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일을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 나르는 사람이 아니다. 언론은 취재원이 말한 사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위를 최대한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정경심 교수가 사문서 위조죄로 기소된 만큼 총장 명의 직인을 어떤 방식으로 날인했는지는 사안의 핵심이다. SBS가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을 거치지 않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뒤 “좀 더 신중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tvN의 ‘코미디 빅리그’, KBS 2TV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 대해 각각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다. ‘코미디 빅리그’는 여성 치어리더가 춤을 춘 뒤 구걸하자 출연자들이 환호하면서 돈을 던진 장면을 방송했고,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호객 행위를 하는 김밥집 여성 종업원의 신체 일부를 근접 촬영해 보여주고 양육비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방송했다.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를 노출한 KBS 1TV ‘코로나19 통합뉴스룸 KBS 뉴스 9’, 등장인물이 옥상에서 투신하는 장면을 내보낸 SBS의 ‘아무도 모른다’, 귀신 소환 장면을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방송한 캐리TV ‘오싹오싹 이야기 시즌2 분신사바’에 대해서도 ‘권고’가 결정됐다.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한 인터뷰 영상을 방송한 TV조선 ‘TV조선 뉴스 7’에 대해서는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결정했다. ‘권고’와 ‘의견제시’는 법적 불이익이 주어지지 않으나, 중대 사안에 대한 ‘과징금’과 ‘법정제재’는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방송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KBS “불법촬영 용의자, 직원 아니지만 책임감 느껴”

    KBS “불법촬영 용의자, 직원 아니지만 책임감 느껴”

    여자화장실 불법촬영 기기 설치 사건이 발생한 KBS가 “용의자가 KBS 직원은 아니더라도 출연자가 언급된 상황에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KBS는 3일 입장문을 내고 “연구동 건물에서 불법 촬영기기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 (사건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 촬영과 관련해 재발 방지와 피해 예방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KBS는 불법촬영 기기를 발견한 즉시 경찰 신고한 후 조사에 협조했으며 본관과 신관, 별관, 연구동을 긴급 점검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지역(총)국의 여성 전용 공간도 전면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KBS는 “철저한 수사와 처벌의 중요함, 그리고 이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KBS는 이번 사건에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 방지와 2차 피해 예방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거듭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 착수가 알려진 지난달 31일 이후 회사 차원의 책임을 언급한 공식 입장은 처음이다. 앞서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용의자는 KBS에 근무하는 남성 직원”이라고 보도했으나 KBS는 약 3시간 만에 이를 부인하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후 “용의자가 KBS 공채 출신 개그맨”이라는 보도에 “용의자의 신원은 확인할 수 없지만, 공채 개그맨은 사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몰카 용의자, 직원 아니다” KBS 무책임 해명에··· 여성단체 비판

    “몰카 용의자, 직원 아니다” KBS 무책임 해명에··· 여성단체 비판

    KBS “공채 개그맨, 직원 아니다” 입장에“직접 고용 아니어도 책임감 가져야” 비판 정준영 사건 땐 “출연자 관리 소홀” 사과 KBS 연구동 여성화장실에서 불법 촬영기기가 발견된 가운데, 사건에 대한 KBS 해명에 대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일 홈페이지에 ‘KBS, 강력한 손절의지, 부끄럽기나 합니까?’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KBS의 직원이 아니라고 입장을 표명하면 KBS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카메라가 없는 것이 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1일 조선일보는 “사건의 피의자가 KBS 직원”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KBS는 당일 자정이 넘은 시각 입장문을 내 “경찰에 용의자의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직원(사원)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에 법적 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2일 오전 용의자가 KBS 공채 출신 개그맨이라는 보도가 이어지자, KBS는 이에 대해 “경찰의 수사를 기다린다”는 것 외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공채 개그맨은 직원이 아니며 1년 전속계약이 끝난 후에는 프리랜서로 회당 출연료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번도 없는 출연자에게 직원이라는 표현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여성민우회는 “KBS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더라도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KBS는 가해자가 내부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적극적인 예방과 엄벌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제대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국민의 방송사가 되라”고 덧붙였다. KBS는 지난해 3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 중이던 가수 정준영이 불법촬영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방송을 잠정 중단했다. 이어 “출연자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깊이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이후 지난해 4월에는 성평등 위원회 출범과 함께 성평등 기본규정을 만들어 피해자 보호 범위를 확대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글로벌 In&Out] 다문화사회, ‘단군신화’ 등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다문화사회, ‘단군신화’ 등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역사는 참 신기한 현상이다. 역사는 학문의 영역이고, 때로는 수많은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기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는 역사를 낭만적으로 접근하고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교리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교훈을 얻으려고 역사에 접근하고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쓴다. 역사는 인류의 제일 큰 사회적 실험실이다. 그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를 감정이나 정체성, 신념에서 벗어나 분석하면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이렇게 긴 서론을 쓰는 이유는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아서다. 한국 TV에 자주 출연한 한 외국인과 대화하다가 ‘단군신화’에서 멈추게 됐다. 그 외국인 친구가 단군신화의 내용을 모른다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는 모른다고 시인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한국어도 그렇게 잘하고, 한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단군신화를 모를 수 있나 싶어서 물어봤다. “어학당 다닐 때도 안 배웠어? 나는 단군신화를 충남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운 거 아니야. 난 어학당에서 배웠어. 4급 때는 가르치던데? 넌 6급 졸업한 거 아니었어?” “응, 4급이나 5급 때 그런 거 배운 적이 없어. 우리 교과서가 다른가 봐.” 이 친구가 진짜로 단군신화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바로 설명했다. 일단은 단군신화를 요약했다. 환인과 환웅 이야기를 하고, 다음에 곰과 호랑이 이야기를 하면서 단군의 탄생을 서술하고, 아사달에서 건국됐다고 하는 고조선의 배경을 알려 줬다. 물론 그 친구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어디에 쓰여 있어?” “단군에 대한 언급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그리고 ‘동국통감 외기’ 같은 문서에 있는데, 단군신화가 제일 이쁘게 나온 대표적인 문서는 일연 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야.” 그다음 대화는 왜 일연 스님이 갑자기 삼국유사를 집필했는지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외국인 관점에서는 당시에 유력한 종교의 스님이 불교적 교리와 어긋난 이야기들을 가지고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그러다 보니까 대화의 주제가 몽골 제국의 한반도 침략 및 고려시대가 돼 버렸다. 몽골 지배하에서 지식인들이 종교보다는 민족적인 감정이 강해져서 삼국유사 같은 책이 나오게 됐다. 신기한 것은 삼국유사가 몽골 침략이 끝나고 나서 살짝 잊혀졌다가 조선시대 말에 다시 한번 크게 관심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말에는 주권이 다시 위협받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그 당시에 탄생한 신흥 종교 대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홍익대학교, 단국대학교 그리고 경희대학교의 성립 배경을 이야기했다. 다음에 개천절이 국경일로 지정된 역사적 흐름을 말해 주니까 그 친구의 눈이 좀 커졌다. 단군신화 하나로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물론 나는 단군신화에 속 이야기를 믿지는 않는다. 무슨 곰이 40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참았다고 여성으로 변신해서 한국 여성의 조상이 됐겠는가. 오히려 개인적으로 그 동굴에서 여성으로 변신한 동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군신화가 성경이나 불경 같은 신성한 종교적인 문서는 아니지만, 한국의 공동체를 하나의 국민으로 묶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론은 한국에서 살려고 결심한 외국인은 한국어만큼 한국인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요소인 역사나 신화 등을 알아야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각 대학의 어학당이나 한국어 교육을 하는 장소들에서 언어 교육 속에 한국의 신화와 역사를 녹여서 교육해야 한다.
  • 국내 가짜뉴스에 북한 유튜브까지 대응… 골치 아픈 통일부

    국내 가짜뉴스에 북한 유튜브까지 대응… 골치 아픈 통일부

    정부, 접속차단 어렵고 시청도 못 막아 단순한 감상·제3자 전파 ‘경계’ 불명확 北소식통발 가짜뉴스 대응도 골칫거리 방심위, 콘텐츠 차단 결정해도 안 지켜쌍방향 소통의 대명사 ‘유튜브’가 정부부처의 주요 홍보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유튜브의 인기를 환영할 수만은 없는 부처가 있다. 남북 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다. 북한이 유튜브를 활용한 대외선전선동에 힘을 쏟으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최근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북한 소식통발 정보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을 알리기 위해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가짜뉴스 대응’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 북한은 유튜브를 활용해 새로운 대외선전선동을 시도하고 있다. ‘Echo DPRK’ 계정은 젊은 여성 ‘은아’가 유창한 영어로 평양 시민의 일상을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고 ‘New DPRK’ 계정은 평양에 사는 7세 어린이의 일상을 보여 준다. 기존 대외선전과는 달리 따로 홈페이지를 개설하지 않았고 정치적 내용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 준다는 차이가 있다. 유튜브 이용이 자유롭지 않은 북한 특성상 선전선동기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우리 국민이 북한의 선전선동 유튜버들의 콘텐츠를 시청·전달하는 것에 대한 법적 판단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국가보안법과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북한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과 같은 인터넷 콘텐츠의 경우 접속을 차단하고 출판물은 특수 도서관에 분리·관리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선전선동 방식은 기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접속 차단이 쉽지 않다. 또한 정부는 단순 콘텐츠 감상은 법에서 금지되지 않고 제3자 전파만 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유튜브에서는 시청과 전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댓글을 남기거나 계정을 구독하는 것을 단순한 감상으로 볼지, 제3자 전파로 볼지 명확하지 않다. 이용자 관심도에 따라 동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로 기존의 처리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고 했다. 북한특수자료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 등 관계부처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북한 소식통발 가짜뉴스도 통일부로선 골칫거리다. 최근 북한 소식통발 정보가 유튜브에서 활발히 유통되면서 ‘정부의 북한 마스크 지원설’ 등 일부 사실과 다른 주장도 파급력을 얻었다. 문제는 언론중재위 등을 통해 정정·반론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존 매체나 보도와는 달리 유튜브 콘텐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차단 결정이 내려져도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통일부는 지난달 초 정부 부처 중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가짜뉴스 대응’ 코너를 신설해 방통심위의 시정요구 결정을 받은 유튜브 콘텐츠를 공지했다. 국산 마스크가 중국을 통해 북으로 유입됐다고 주장한 ‘김흥광튜브’와 북한에 지원할 마스크가 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한 ‘문갑식의 진짜TV’에 대해 정부가 반박한 과정이 실렸다. 그러나 방통심위가 접속차단을 의결한 지 한 달 가까이 된 1일에도 해당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망설처럼 오판으로 인한 실수와는 달리 악의적 의도를 가진 가짜뉴스에 대해선 기록으로 남겨둘 것”이라며 “북한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왜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했나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왜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했나

    예전 의복 쓰임새는 바람과 추위를 막아 몸을 따뜻하게 하고 옷의 색깔과 문채(文彩)로 신분의 귀천을 나타냈다. 따라서 나라와 문화에 따라 복색의 이미지가 달랐다.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서 “한나라 때 관리들은 검정 옷을 입고 급사나 관청에서 심부름하는 천한 사람은 흰옷을 입었는데, 조선은 온 나라 안이 모두 흰옷을 입으니 중국 사람들이 이를 조소한다”고 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검정 옷을 숭상했고 일본은 청색을 숭상해 남색을 즐겨 입었다. 하지만 푸른 옷을 뜻하는 청의, 청포는 오히려 신분이 낮거나 빈한하거나 무력한 사람을 의미했다. 해진 옷을 뜻하는 ‘남루’도 “누더기가 된 푸른 옷”에서 나온 것으로, 죄수들의 청색 수의도 여기서 비롯됐다. 서양에서도 여성의 생리일을 블루데이라 하고, 휴일 다음 월요일을 블루먼데이라 하여 청색은 부정적인 의미를 뜻했다. 우리 민족의 흰옷 사랑은 남달랐다. 1894년 3월 초 서울을 방문한 파란 눈의 여인 영국 이저벨라 비숍은 남산에 올라 “흰 눈더미처럼 보이던 그것은 하얀 두루마기의 물결이었다”고 1898년 출간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회고했다. 우리의 백의 습속은 역사가 아주 깊다. 기원전 1세기경 쓴 진수의 ‘삼국지’에도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상중에는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는다”고 하였다. 중국의 ‘수서’나 ‘당서’에서도 “신라 사람들은 흰옷을 숭상한다”고 했다. 흰옷 숭상은 고려 때에도 이어졌다. 안정복(1712∼1791)도 ‘동사강목’에서 “고려의 사녀(士女)들은 흰옷을 숭상하였다”고 했고 문신 서거정(1420∼1488)도 ‘필원잡기’에서 “고려 사람들은 흰옷을 좋아했다”고 했다. 송나라 때 서긍은 “고려왕은 평상시 쉴 때 흰 모시 도포를 입으므로 백성과 다를 바가 없다”고 ‘도려도경’에 기록했다. 조선시대에도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흰옷은 여전히 사랑받고 즐겨 입었다.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흰색이 갖는 포용과 상징성 때문이다. 본색·본연 그대로인 흰색은 가장 자연과 합일되는 순색으로 지고함과 진실, 지조와 기개, 순결, 장수를 상징하며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시초를 의미한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흰색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요, 현실을 넘어선 지고의 아름다움을 담은 완벽한 색으로 성과 속, 죽음을 넘나드는 원초적인 색인 동시에 성스럽고 세속적인 색이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흰색에 대해 “우리나라 풍속은 갓과 흰 베로 만든 도포를 가장 존귀한 의복으로 삼아 길사나 흉사에 모두 통용하였다”고 했다. 둘째, 흰옷을 즐겨 입게 된 것은 염색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흰옷은 그 어느 색보다 더러움을 잘 타 비경제적이다. 육당 최남선은 때가 타지 않는 무색옷을 입어야 함에도 흰옷을 입는 것은 시대를 맞출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라며 흰옷의 폐단을 지적했다. 흰옷은 염색이 필요 없다. 성호 이익은 옷 한 벌을 염색하는 데 네 식구가 한 달 먹을 양식이 들어가며, 한 필 염색하는 데 한 필 값이 들어간다고 했다. 오히려 언제라도 빨기만 하면 깨끗하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흰옷이 훨씬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보니 자연히 흰옷을 즐겨 입게 된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백의 습속에는 왕과 왕비의 국상도 커다란 몫을 했다. 실학자 이수광은 1565년 이후 여러 번 국상을 치르며 계속해서 흰옷을 입다 보니 마침내 하나의 국속이 되었다고 했다, 거기에 흰색이 상징하는 절제와 검소, 결백의 미덕과 잘 부합됐던 조선시대 국시인 성리학적 이념도 백의 습속을 지속시키는 토양이 됐다. 우리의 백의민족은 단순히 흰옷을 숭상해서가 아니라 이런 요인들로 흰옷을 즐겨 입은 데서 자연히 생겨난 것이다.
  • [근대광고 엿보기] 공창제 여파로 만연한 성병 치료약/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공창제 여파로 만연한 성병 치료약/손성진 논설고문

    조선시대에 성매매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기생 제도가 있어서 사실상 매춘을 하고 있었고 은근자, 탑앙모리, 색주가 등도 매춘과 연관이 있었다. 한말에 와서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로 등급이 나뉘었는데 이패를 은근자, 삼패를 탑앙모리라고도 했다. 은근자는 기생 출신으로서 남몰래 매춘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탑앙모리는 매춘을 업으로 삼는 여성이었고 기생이 하는 노래와 춤을 할 수 없었으며 한다고 해도 잡가 정도였다. 색주가는 술과 함께 젊은 여성의 몸을 파는 집을 말하고 색줏집이라고도 했다. 이곳 여성들은 기예 없이 하층민을 상대로 술과 몸을 팔았고 갈보, 작부라고도 불렸다. 청일·러일전쟁 이후 일본 군인과 군속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서울과 지방에 매음녀들이 늘어났다. 일본인을 따라 일본 창기들도 흘러들어 왔다. 1909년 서울에만 2500여명의 매음녀가 있었다고 한다. 덩달아 성병이 번져 사회 문제가 됐는데 1906년에 처음으로 매음녀들을 상대로 성병 검사를 시작했다. 성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매춘업을 그만두어야 했기에 기생들의 반발이 심했다. 성병이 없는 매음녀들에게는 건강증을 나누어 주었다. 성병 검사는 곧 공창제도 도입을 의미했다. 일본 창기와 함께 조선인 매음녀를 고용한 유곽이 나타난 것은 서울에서는 1904년, 부산과 원산에서는 1902년 무렵이라고 한다. 서울 최초의 유곽은 현재의 중구 묵정동에 생긴 ‘신정유곽’이며 1906년에는 용산 도원동에 ‘도산유곽’이 만들어졌다. 1918년 무렵에는 신정유곽 옆 현재의 쌍림동에 ‘병목정 유곽’이 들어섰다. 일제는 1904년 ‘예기취체규칙’에 이어 1916년엔 ‘대좌부 창기취체규칙’을 만들어 공창제를 제도적으로 도입했다. 유곽에서 세금도 거뒀다. 일본의 창기 진출과 공창제 허용의 영향으로 이른바 ‘화류병’이라 불리는 성병, 즉 매독과 임질 등이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만연하게 됐다. 처음에는 일본 군인이나 민간인들이 주로 유곽을 찾았지만 조선인들의 출입도 잦아졌다. 식민지 지배와 수탈에 대한 반발을 합법적 성욕 해소라는 퇴폐적 수단으로 잠재우려는 일제의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성병 검사를 정기적으로 한다고 해도 최소한 몇 %의 매춘녀들은 성병보균자여서 유곽을 찾는 남성들에게 전염됐다. 성병약 광고가 1910년대 초반부터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매독은 치유가 어려워 인육이나 수은이 매독에 좋다는 헛소문을 믿고 따라하거나 매독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도 허다하게 발생했다.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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