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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 기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역목록될까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 기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역목록될까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기록을 담은 ‘단원고 4.16 아카이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등재에 도전한다. 국가유산청은 내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등재신청 대상으로 ‘단원고 4.16 아카이브’를 선정,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위원회에 제출했다고 15일 밝혔다. 한반도 전통 조리 지식에 대한 기록을 담은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도 함께 제출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이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에 따라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에서 시행하는 목록이다. 한국의 편액, 만인의 청원 만인소, 조선왕조 궁중현판, 삼국유사, 내방가사, 태안유류피해극복기록물 등 6건이 등재된 상태다. ‘단원고 4.16 아카이브’는 단원고 학생들의 생전 일상과 국민의 추모 활동,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회복 노력에 대한 기록물이다. “해당 기록물에 대해 시민과 유가족이 민간의 시각에서 사회적 재난의 실상을 기록했고 기록 과정 자체가 재난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가 높이 평가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함께 등재신청서를 낸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가운데 수운잡방은 민간에서 쓰인 최초의 조리서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보물로 지정됐다. 음식디미방은 양반가 여성이 쓴 현전하는 가장 오래되고 온전한 형태의 한글 조리서로, 여성이 지식의 전승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이번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한 2건에 대해 내년 6월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총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 “교수님 덕분에 이번 달에만 100% 수익”…‘기적의 리딩’ 보고 투자 결심한 은퇴자 [파멸의 기획자들 #10]

    “교수님 덕분에 이번 달에만 100% 수익”…‘기적의 리딩’ 보고 투자 결심한 은퇴자 [파멸의 기획자들 #10]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이놈들, 대단하지도 않은 종목 몇 개 추천해주고 수수료만 잔뜩 뜯어가는 건 아니겠지.’ 성갑의 머릿속에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래도 돈은 굴려야했기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 광고창에 연락처를 남겼다. 몇 시간 뒤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미모의 젊은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급등주 종목 추천을 요청하신 선생님 맞으시죠? 김가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이성조 교수님께서 운영하시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해 드릴게요. 초대를 원하시면 ‘777’을 눌러 주세요.” 너무도 인위적인 행운의 숫자가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졌지만, 가영의 예쁜 얼굴과 공손한 말투에 마음이 끌렸다. “감사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오시면 이 교수님의 단체 채팅방으로 입장하실 수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오랜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회원님들께 통찰력있는 투자 강의를 진행하십니다. 현재 수업이 진행 중이니 열심히 공부하시고 투자 수익도 얻어 가세요.” 성갑에게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잠시만요. 회비는 얼마인가요?” “우리 교수님은 회비를 받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교수님께서 차차 안내해드릴 예정이예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굳게 믿고 살아온 성갑에게 가영의 답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심을 완전히 거두진 못했지만 아직 돈을 넣은 것이 아닌 만큼 채팅방에서 강의 좀 듣는다고 해도 손해날 건 없어 보였다. 그는 PC를 켜고 카카오톡 링크를 눌러 이 교수를 찾았다. 낮 시간인데도 40명 정도 되는 회원들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업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증권 방송에 나오는 자칭 ‘전문가’라는 자들보다 핵심을 더 잘 짚어주는 것 같았다. “자,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하십시오. 제가 오늘 추천하는 종목은 바로 코스피 대표주 △△조선입니다. 매수가는 현재가에서 5% 이내로 진입하시고, 손절가는 -3%로 잡으세요!” 성갑은 스마트폰으로 주식 앱을 켰다. △△조선 주가가 이 교수가 지정한 매수 권장가를 살짝 넘어서 있었다. ‘그럼 이 교수라는 작자의 능력을 한번 볼까?’ 그는 상황을 좀 더 주시하기로 했다. 권장가에서 +6%까지 올랐다가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가가 손절가 부근까지 떨어졌다. ‘그럼 그렇지. 이 교수라는 인간도 사기꾼이었구만. 그런데 오늘따라 저 큰 기업이 이상하게 요동을 치네.’ 그에게 실망을 느끼고 채팅방에서 빠져 나가려던 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가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반등에 나선 것이다. 잠시 횡보하기도 했지만, 결국 용이 승천하듯 하늘로 치고 올라갔고 어느새 +11%까지 치솟았다. “여러분, 바로 지금입니다. △△조선을 전량 매도하세요!” 이 교수의 신호가 떨어지자 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몇 분 뒤부터 자신의 수익을 인증하는 사진들이 쏟아졌다. 사진 사이사이로 그를 찬양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너무 놀라워요. 교수님 덕분에 이번 달에만 100% 수익을 달성했어요!” “교수님은 예언가신가요, 아니면 초능력자신가요? 어떻게 이렇게 주가 예측이 늘 정확할 수가 있죠?” “쓰레기 같은 다른 리딩방에서 큰 손실을 입었는데요. 2주 만에 모두 회복했어요! 교수님 덕분입니다.” “교수님, 앞으로 저희를 평생 책임져주실 거죠?” 성갑에게 이곳 채팅방은 사이비 종교집단 모임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다만 이 교수가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리딩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단 몇 분 만에 거둔 10% 수익! △△조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코스피 대형주로, 소위 말하는 ‘작전 세력’이 붙어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다. 이 교수가 채팅방에 있는 40여명을 털어 먹으려고 이 회사 주가를 10% 넘게 끌어 올렸다고 가정하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카톡방 회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보다 저 기업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쓴 돈이 몇 백배는 더 클 테니까. 살면서 이런 놀라운 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교수의 탁월한 분석과 예측의 결과 말고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성갑은 이 교수의 주식 투자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문득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내와 먼저 상의하고 투자 여부를 정하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아내 정숙은 100%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투자의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녀들의 결혼 자금을 주식에 밀어넣는 건 미친 짓’이라고 소리만 칠 것이었다. 묻지 않아도 정숙의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결국 성갑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이 돈을 인출하기로 마음먹었다. ‘35년간 고생해서 번 퇴직금 2억원, 따지고 보면 다 내 돈 아닌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권도 나에게 있다고. 이 돈을 잘 굴려서 원금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보자. 정민이·정아 결혼에도 보태고 남는 건 가족 생활비로 쓰면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니겠어.’ 신분증을 챙겨서 은행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최근 몇 년 새 가장 가볍고 활기찼다. 이 교수의 기적과 같은 리딩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11회로 이어집니다. 사기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많은 이들과 기사를 공유해 주세요.)
  •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과학 같지 않은 과학적 관찰의 기쁨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과학 같지 않은 과학적 관찰의 기쁨

    물리학자·천문학자가 편지로 쓴 현실서 만날 수 있는 과학적 태도 과학,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다. 인류가 과학을 버리고 17세기쯤으로 돌아간다면 세계 인구의 90%는 목숨을 잃고 나머지 10%의 평균수명도 40세 정도에 머물 것이라는 한 과학자의 주장처럼 과학은 이미 현대인의 삶 그 자체다. 물고기가 제 주변이 모두 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듯 사람 역시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공기라는 사실을 늘 인식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과학적인 태도와 자세는 필요하다. 새 책 ‘과학산문’은 이런 과학적 태도로 가득찬 에세이다. 책에 과학 이론은 없다. 어떤 이론을 쉽게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빨래방에 앉아 빛과 어둠의 이야기를 끌어오고 간짜장에서 열역학의 엔트로피(에너지의 퍼짐 정도)를 본다. 평범한 풍경 속에서 과학적 태도를 길어 올리려는 시도가 전부다. 우주와 물질의 근원을 찾아 세상을 무한히 잘게 쪼개는 물리학자(오른쪽·‘상욱님’,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와 너무 거대하고 멀어 대상을 부수거나 변형할 수 없는 세상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왼쪽·‘채경님’,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행성탐사센터장)가 편지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이들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덧 과학적 사고의 한복판에 도달해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출신의 걸출한 여성 지리학자 겸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활짝 웃고 있다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 무슨 역설과 부조화인가. ‘채경님’은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했다. “관찰하되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열린 태도로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패턴을 찾아내는 것. 조선인의 웃음을 대하는 비숍의 태도는 과학적이었다.” 얼굴 가득 (아마도 계면쩍은) 웃음을 띠면서 배를 띄울 수 없게 됐다고 알린 조선인 사공의 모습에서 비숍은 몰상식을 느꼈다거나 그 모습에 짜증을 낸 게 아니라, 조선인들은 으레 그렇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는 거다. 사실 비숍의 행동은 무슨 대단한 과학에 근거했다기보다 상식 가까운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오늘의 한국인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찰하고 싶은 부분만 관찰한 뒤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데이터가 말해 주는 근거를 외면하다 냉소와 증오 가득한 사회를 열었으니 말이다. 과학은 마냥 골치 아픈 그 무엇이 아니라 삶의 지혜일 수 있다.
  • 희양산 정상 벼랑 끝에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되짚다

    희양산 정상 벼랑 끝에서… 불꽃같은 그의 삶을 되짚다

    일제 멸망 꾀한 아나키스트 가네코양녀로 고초 겪다 3·1운동 뒤 급변평생 같았던 4년 독립투쟁 끝 옥사박열의 흔적 따라 문경 자락에 영면찾는 이 적은 백두대간 내륙의 명산 불교의 성지이자 희양산문의 장소오르기 힘든 만큼 빼어난 풍경 자랑이름값에 견줘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산이 있다. ‘백두대간의 화강암 돔’ 희양산이다.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이 경계를 이룬 산. 명불허전이라 할 희양산의 풍경도 빼어났지만 그보다 마음을 빼앗은 건 자신을 사랑하고, 또 그만큼이나 조선의 남자를 사랑했던 일제강점기의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이야기였다. 힘들게 희양산에 오를 때에도 그의 이야기는 머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문경의 박열 의사 생가 옆에 홀로 잠든 그의 묘를 보고, 그의 일생을 정리한 글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희양산에 앞서 가네코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건 이 때문이다. ‘불량스러운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지사 박열(1902~1974)은 지난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통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데 그의 첫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1904~1926·대부분의 검색 사이트가 1903년 출생이라 적고 있지만 여기선 한국의 공훈전자사료관과 일본 국회도서관 기록에 따른다)는 당최 생경했다. 영화에선 꽤 비중 있게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열(이제훈)의 사상적 동지, 혹은 죽음도 가르지 못한 연인 정도로 그려져 그의 진면목을 알기엔 역부족이다. 영화에서 말하지 않은 가네코(최희서)의 어린 시절, 교도소에서의 극단적 선택(타살 의혹도 여전하다) 이후 처리 과정, 사형 선고 이후 박열의 행보 등까지 살펴야 비로소 그들의 삶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그 마지막 퍼즐이 있는 곳이 문경의 박열의사기념관이다. 기념관에 들면 왼쪽으로 묘지가 나온다. 묘비에 “이곳은 일본인으로서 일제의 멸망과 일왕 폭살의 필요성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이명 朴文子)의 묘”라고 적혀 있다. ‘박문자’는 남편의 성을 따르는 일본의 관습에 따른 이름이다. 묘역은 봉분 크기에 견줘 전체 면적이 어색할 정도로 넓다. 물론 북한에 잠들어 있는 박열의 유해가 봉환되는 상황을 상정해 넓게 조성한 것이다. 먼저 알아야 할 건 가네코는 조선 독립운동가의 일본인 아내이기 이전에 이미 군주제와 군국주의, 남성 우월주의 등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맞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혁명가였다는 것이다. 영화로 잠시 돌아가자. 교도소 간수가 가네코에게 말한다. “조선에서의 7년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가네코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거다.” 조선에서의 경험이 그의 삶에서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이 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가네코는 옥중 자서전을 통해서도 “3·1 독립운동을 목격했을 때 나에게도 권력에 대한 반역 정신이 일기 시작했으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감격이 가슴에 용솟음쳤다”고 했다. “그(박열)와 동지로서 투쟁했던 4년만이 진정한 나의 삶이었다”고도 했다. ●무적자에서 독립투사로 다시 태어나 가네코가 영화에서 독백처럼 읊은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면 이렇다. 그의 친할머니는 그를 “무적자”(無籍者)라고 불렀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자, 호적에 오르지 못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가네코가 태어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다. 하지만 처제와 살림을 차릴 정도로 난봉꾼이었던 아버지와, 재혼을 거듭하던 부창부수의 어머니는 그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무적자’인 탓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가네코는 친척 집에 얹혀살다 1912년 충북 청주 부강면(현 세종시)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돼 조선으로 건너간다. 기대와 달리 곧장 식모로 전락한 가네코는 극단적 선택까지 결심할 정도로 할머니와 고모에게 가혹한 학대를 받는다. 그는 부강역 앞 철길로 뛰어들려다 멈추는 일을 거의 매일 반복한다. 그가 이를 멈춘 건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목격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가네코는 도쿄에서 박열을 만나면서 급진적인 아나키즘에 심취하게 된다. ●박열에 대한 연모 갖게 된 시의 첫 문장 “나는 개××로소이다.” 박열이란 이름을 세상에 깊이 각인시킨 문장이다. 가네코에게서 박열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싹트게 된 것도 ‘나는 개××로소이다’라는 시의 이 첫 문장이었다. 둘은 1922년 동지로서의 동거 서약을 맺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일왕 암살을 계획했다는 대역죄로 체포돼 1926년 사형선고를 받고, 이 과정에서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 결혼식을 올리고, 당시 일본 내각 총사퇴를 불러온 ‘괴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내용은 널리 알려진 바다.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둘의 행보는 갈린다. 무기징역으로 감형한다는 일왕의 ‘은사장’을 발기발기 찢은 가네코는 도치기현의 우쓰노미야 여자교도소로 이감된 뒤 그해 옥사했다. 그의 죽음이 본인 의지였는지, 타살이었는지에 관해선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박열은 감옥에서 22년을 복역한 뒤 재일본조선거류민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다 6·25전쟁 때 납북돼 평양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죽어서 다시 돌아왔지만 빈자리 남아 교도소 인근 공동묘지에 묻힌 가네코의 유골은 우여곡절 끝에 그해 조선으로 돌아왔고, 11월 5일 박열 집안의 선산인 문경읍 팔령리에 묻혔다. 그의 소원대로 “박열의 고향마을”에 묻힌 건 2003년 박열의사기념관 조성 당시다. 다만 “박열과 나란히 묻어 달라”는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가네코는 꽃보다 상록수를 좋아했다. 그는 작성 연월일 불명의 옥중편지에서 자신의 묘를 찾는 이들에게 “새싹을 피워 올리고 있는 상록수 한 가지를” 올려 달라고 했다. 피었다가 시드는 꽃보다 “언제나 푸르게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나는 상록수의 새싹을 나는 끝없이 사랑”해서다. 죽음의 원인은 불명이지만 그가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 일본인으로 한국 독립유공자에 헌정된 인물이 둘이다. 한 명은 가네코, 또 한 명은 박열 부부를 변호한 후세다. 가네코는 2018년 애국장, 후세는 2004년 애족장을 각각 받았다. 그중 가네코에 관한 일본 내 재평가 움직임은 1972년 그의 일대기를 그린 ‘여백의 봄’ 출간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1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개막한 제30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도 그의 옥중 자서전과 이름이 같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다. 박열과 교도소를 달리한 이후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 그린 영화로 올 초에 개봉했다. 영화를 통해 100년 전 국가권력에 항거한 여성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길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박열’은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이제 희양산으로 간다. 희양산은 중부 내륙의 명산이면서도 찾는 이들이 적다. 산객들이 방문하기에 무척 불편해서다. 들머리는 괴산과 문경 두 곳이다. 한데 문경 쪽은 사실상 막혔다. 산 아래 봉암사가 조계종에서 지정한 특별수도원이라 연중 산문을 걸어 잠근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절집 문과 등산로를 연다. 조계종이 워낙 강력하게 보호하는 곳이라 그날 외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 괴산 쪽에선 연풍면 은티마을이 들머리다. 일반인이 희양산에 오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곳이다. 한데 여기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마을 아래 주차장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거리가 1㎞를 훌쩍 넘긴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30분 가까이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이를 알고 있는 등산객들은 어떻게든 산행 입구까지 차를 가져가려고 하지만, 이를 막는 주민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한쪽은 봉쇄, 한쪽은 눈칫밥이니 아예 희양산을 패스하는 이도 없지 않다. 명산이면서도 찾는 이가 드문 이유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이 남녘을 향해 치닫다가 중부 내륙에서 우지끈 솟아오른 돌산이다. 괴산 연풍면과 문경 가은읍이 이 산에서 경계를 이룬다. 높이는 999.4m.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화강암 암벽이다. 맑은 날 암벽이 볕을 받으면 환하게 빛을 낸다. 한자 이름을 ‘햇볕 희’(曦) 자에 ‘볕 양’(陽) 자로 쓴 이유다. 불교계에선 희양산을 성지처럼 여긴다. 통일신라시대의 선종을 대표하는 아홉 곳의 불교 성지, 이른바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이 문을 연 곳이라서다. 은티마을 초입에 금줄로 동여맨 돌탑이 있다. 남근을 상징하는 돌무더기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풍수지리상 은티마을은 여근곡 형상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이 마을에 은거한 백제군을 신통력으로 꿰뚫어 보고 병력을 투입해 전멸시킨 뒤 ‘남근입어여근즉필사의’(男根入於女根則必死矣)라는 표현으로 마을 지세를 설명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담긴 내용이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대놓고 남녀상열지사에 비유한 것인데, 마을 입구의 남근석은 그러니까 풍수지리상 비보(도와서 보충함)의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은티마을에서 희양산 정상까지는 편도 4.5㎞다. 마을 주차장에서 걷는 구간을 포함하면 거리는 좀더 늘어난다. 각종 온라인 게시물은 소요 시간을 편도 3시간~3시간 30분 정도라 적고 있다. 이는 전문 산꾼 기준이다. 일반 등산객이라면 최소 편도 4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하산길에서 소요 시간이 준다고 해도 최소 왕복 6시간,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7시간 이상 걸린다. 물론 ‘등린이’(등산 초보)를 기준으로 삼으면 소요 시간은 더 늘어난다. ●식수는커녕 화장실도 없는 오지 등산 희양산 정상까지는 지름티재를 거쳐 직벽 구간으로 오르는 코스와 희양산 성터를 거쳐 ‘상대적’ 완경사 구간으로 오르는 코스로 나뉜다. 전자가 거리는 짧되 매우 거칠고 힘들다면, 후자는 다소 길어도 덜 거칠다. 등산로에 계곡물은 거의 없다. 산짐승들이 마실 물 정도만 드문드문 고여 있을 뿐이다. 당연히 식수는 단단히 챙겨 가야 한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없다. 그저 정상부 일대에 최소한의 생명줄인 로프가 매어져 있는 게 전부다. 지름티재까지 3㎞ 구간은 된비알이 별로 없다. 이후 1.5㎞의 직벽 구간이 문제다. 특히 정상의 암반부에선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써야 간신히 오를 수 있다. 내려올 땐 더 위험하다. ‘등린이’라면 가급적 성터 코스로 오르길 권한다. ●봉암사 너머 굽이굽이 산세도 일품 정상에서 맞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이다. 특히 문경 쪽이 빼어나다. 봉암사와 그 너머 경북 일대의 산들, 조령천과 합류해 남녘으로 굽이쳐 흐르는 영강 등이 절경을 펼쳐내고 있다. 희양산이 깃든 괴산 연풍과 문경 가은 쪽에 가볼 만한 여행지가 많다. 괴산 연풍면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후기 순교자들의 유적지다. 너른 잔디밭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어우러져 쉬어 가기 딱 좋다. 문경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그가 태어나자 금빛 안개가 피어올랐다는 금하굴 등의 견훤유적지, 그의 아버지 아자개를 모티브로 삼은 아자개 장터 벽화 거리 등 볼거리가 있다. 등록문화재인 가은역, 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 등으로 구성된 문경 에코월드도 가은읍 내에 있다. 산행의 피로는 온천으로 푼다. 문경새재 아래 온천단지가 조성돼 있다.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충북 충주 수안보도 희양산에서 멀지 않다.
  • [포착] 제주서 체포된 중국인 밀입국자 “6명 함께 왔다” 진술…행방 묘연해 경찰 추적 중

    [포착] 제주서 체포된 중국인 밀입국자 “6명 함께 왔다” 진술…행방 묘연해 경찰 추적 중

    고무보트를 타고 제주 서쪽 해안으로 밀입국한 중국인이 경찰에 체포됐다. 앞서 지난 8일 오전 7시 56분쯤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녀탈의장 인근에 미확인 고무보트가 있다는 주민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제주해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고무보트에는 용량이 다른 유류통 12개, 구명조끼 6벌, 중국어가 표기된 포장지에 담긴 빵과 비상식량, 낚싯대 등이 버려져 있었다. 당국은 신고가 접수된 미확인 보트가 밀입국 또는 해양 사고와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하던 중 서귀포시의 한 모텔에서 중국인 A씨를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서부경찰서는 9일 “전날 오후 6시 30분쯤 서귀포시의 한 모텔에서 40대 중국인 A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일 오후 중국 남동부 장쑤성(省) 난퉁시(市)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출발해 8일 새벽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을 통해 밀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직선으로 약 460㎞ 떨어진 거리의 바다를 고무보트 하나로 이동한 셈이다. A씨는 자신을 포함한 중국인 남성 6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돈을 벌기 위해 밀입국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함께 제주로 밀입국한 다른 중국인들과는 서로 모르는 관계”라며 “우리는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각자 수백만 원을 내고 중국인 브로커를 통해 밀입국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찰은 “체포된 A씨는 과거 불법 체류로 추방당한 전력이 있어 정상 경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지난 2017년 10월 무사증으로 제주도에 입도한 후 불법 체류하다 2024년 1월 18일 자진 신고해 추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귀포시의 한 모텔에서 A씨를 체포할 당시 현장에는 역시 불법 체류자 신분의 50대 여성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해당 여성과 관련해 경찰에 “과거 제주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친구”라면서 “(중국 SNS인) 위챗을 통해 연락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 및 현행범으로 함께 체포된 여성 모두 출입국 외국인청으로 인계했다. 함께 밀입국한 다른 중국인 남성들은 어디?현재 경찰은 A씨와 함께 온 중국인들을 추적하고 있다. A씨에 따르면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제주로 밀입국한 다른 중국인들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다. 중국인이 배를 타고 한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20년 4월 충남 태안군 해안에서는 중국인 5명이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출발해 17시간 만에 고무보트를 타고 밀입국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중국 내 모집책을 통해 1인당 1만 위안 이상을 지불하고 밀입국을 시도했으며 대부분 과거 불법체류 또는 강제 출국 전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2023년에도 역시 태안군 해안에서 중국인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해상 밀입국을 시도했었다. 당시 해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 및 공식 입국 경로가 제한되자 소형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건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이 증가했다고 분석하고 감시를 강화했다. 2009년에는 중국 교포와 탈북자까지 포함된 36명이 산둥성을 출발해 공해상에서 한국 국적의 어선으로 갈아탄 뒤 보령시 폐업 조선소를 통해 밀입국했다. 지난 3월 인천에서는 30마력 엔진이 설치된 고무보트를 타고 밀입국을 시도한 중국인 남녀 2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 3월 7일 오후 6시께 중국 산둥성 룽청시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출항한 뒤 20시간에 걸쳐 234㎞를 항해해 이튿날 인천시 옹진군으로 밀입국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해안가를 통한 배 밀입국은 최근 20년 이상 지속해 발생했다. 주로 중국인 밀입국자가 고무보트 및 소형 모터보트를 이용, 서해안을 통과해 입국하는 사례가 많다. 밀입국자들은 육로보다는 해상이 단속망을 피하기에 수월하다고 판단하고 작은 배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며, 주로 일자리를 찾아 불법 취업을 노리고 밀입국을 시도한다.
  • “9번 져도 단 한번의 승리 위해”… 재일조선인 3세의 투쟁기[월요인터뷰]

    “9번 져도 단 한번의 승리 위해”… 재일조선인 3세의 투쟁기[월요인터뷰]

    ‘외국인 배제’ 日 극우정당의 부상차별 수단으로 돈·권력 획득대중들에겐 가장 값싼 오락2013년부터 혐한 세력과 싸움삶 담은 다큐, 국제영화제 대상한국, 식민지 출신 국가들의 ‘별’약자가 불편 없어야 모두 풍요공공성 확대 ‘정치’ 역할 중요많은 시련 속 ‘민주주의’ 쟁취한국의 선택, 세계 영향 미칠 것 “산다는 건 갉아먹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신숙옥(66)씨는 인터뷰 내내 ‘싸움’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누군가를 쓰러뜨리자는 싸움은 아니었다. 소수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싸움. “9할은 지는 싸움”이지만 그는 “그 한 번의 승리가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조선인 3세. 여성이자, 가난했고, 학력도 낮았던 그는 겹겹의 마이너리티를 뚫고 지난 30년간 인재 육성 사업을 일구는 한편 강연가, 평론가, 인권운동가로 일본 사회의 차별과 혐오에 맞서 왔다. 그러나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가 차별을 ‘연료’로 삼는 순간 사회는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해 흔들린다.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색출하는 데 쓰였던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 같은 폭력의 언어가 시대를 넘어 일본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지난 2일 도쿄 이다바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씨는 최근 일본 내 배외주의 담론을 “최악”이라 단언하면서도 “희망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외국인 배제를 내건 일본 ‘참정당’의 부상을 어떻게 보나. “최악이다. 완전히 선을 넘어 버렸다. 차별은 돈이 된다. 의석이 되고, 정치권력이 된다. 동시에 대중들에게는 가장 값싼 오락이다. 그러니 K팝을 좋아하면서도 조선인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도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으니 한일 관계가 좋아졌다는 식의 바보 같은 말이 나온다. 예전부터 한일의 부자들은 사이가 좋았다. 식민지 시절에도 함께 이익을 챙겼다. 문제는 그것을 넘어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이다.” 참정당은 전후 체제를 부정하고 외국인 배제를 전면에 내건 신흥 극우 정당이다. 지난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20~30대 젊은층의 지지를 업고 제도권에 들어섰다. 선거 기간 지지자들이 반대 시위자에게 ‘주고엔 고짓센’을 말해 보라고 강요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퍼지며 논란이 일었다. -이들의 부상은 일본 경제 쇠퇴와 불안의 산물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건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사회가 가난해지면 ‘차별’부터 꺼내 든다. 여성, 그다음은 소수자, 그리고 끝내는 저항할 수 없는 아이들로까지 향한다. 참정당의 ‘일본인 퍼스트’ 구호도 거기서 나온 거다. 따지고 보면 이미 충분히 일본인 퍼스트 아닌가.” 신씨의 싸움이 일본 사회에 각인된 때는 2013년이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혐한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한 연설이 불씨였다. 그날 이후 극우 세력의 집요한 스토킹과 협박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독일로 몸을 피해야 했다. 그곳에선 인권과 차별의 역사를 공부했다.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혐한 방송 DHC TV와 지난한 법정 투쟁을 벌였다. 신씨가 ‘외부 세력에게서 돈을 받고 반일 운동을 한다’는 거짓 음해가 계기였다. 최종 승소했지만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소수 집단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동안 이 사회는 나아졌는가. “시대는 이겼다가 지기도 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나아가기도 하면서 흘러간다. 다만 1990년대 다문화 공생과 국제화의 흐름에 비하면 지금은 기업도,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더 나빠진 부분이 많다. 그래도 멈추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재일 조선인이라면, 여성이라면 싸우지 않고는 얻을 게 없다. 산다는 건 곧 싸움이다.” -‘싸움’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는 잃을 게 없었다. 조선인이고, 여자이고, 가난했고, 학력도 없었다. 약한 상대를 괴롭히는 건 싸움이 아니다. 싸움은 강한 상대와 하는 거다. 대부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한 번은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번이 시대를 바꾼다고 믿는다.” -지금은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으니까 생각할 시간도 없고, 함께 생각할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자기 혼자만 기분 좋은 시간을 휴대전화 안에서 완결할 수 있게 됐다. 원래 사람과 어울리는 일은 귀찮고 힘든 일이다. 싸우기도 하고, 서로 안 맞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인데, 일본에서는 공동체적 대화와 교류의 장면이 한국에 비해 극히 드물다.” -일본 사회에서는 자기 의견을 드러내거나 정치 이야기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금기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한국은 많이 먹고, 많이 말하고, 자주 싸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표면적인 이야기거나 동아리 활동 외에는 그런 장면을 전혀 못 본다. 의견을 말하는 건 곧 관계를 끊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두려운 존재가 된다.” -한국은 어떤가. “적어도 한국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엉망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밀어내는 힘도 있다. 저는 한국을 ‘식민지 출신 국가들의 별’이라고 본다. 재벌 독점, 강한 유교 문화, 군사독재의 잔재… 이런 걸 안고도 빛나는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거다.” -어떤 조국이 되길 바라나. “많은 나라들이 도움을 구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얼마 전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터졌을 때 미얀마 젊은이들이 한국 대사관 앞에서 한국어로 ‘도와달라’고 외쳤다. 그 순간 ‘아, 이거구나’ 싶었다. 이제는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 차원을 넘어 세계를 견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살아남으려면 ‘인권 대국’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 가능성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 추월당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인권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차별이야말로 생산성을 갉아먹는 가장 큰 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관건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느냐다. 한국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싸움의 문화’를 가진 나라다. 대부분 지는 싸움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 정권을 무너뜨려 왔다. 불과 50년 만에 세계사 500년을 압축해 겪어 낸 나라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바뀌려면 무엇보다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약자가 불편하지 않은 사회야말로 모두에게 풍요롭고 즐겁다”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소는 결국 ‘정치’다. 다만 그는 정치를 곧바로 개인의 이익으로만 끌어오려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부족한 것은 결국 ‘공공성’이라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직전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호루몽’이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DHC TV와의 법정 투쟁을 축으로 그가 겪어 온 차별과 싸움의 역사를 스크린에 옮겼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감독이 받은 거지, 내가 받은 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활동가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본질적으로 단순하다. 어른은 젊은 세대를 뒷받침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실패를 감당해 주는 게 어른의 역할이다. 앞에서 달리는 게 아니라 뒤에서 젊은 세대를 지탱해 주는 것. 또 손주 세대를 지탱해 주는 것. 그게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거다. 힘내 달라.” ■ 인권운동가 신숙옥씨는 195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 3세. 젊은 시절 광고 회사에 다니고 모델로도 활동한 그는 고교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들어 1980년대 중반 인재 육성 회사를 세웠다. 30여년간 인재 육성 개발 사업을 이끌며 기업 교육 분야에서 입지를 다졌고 사업가이자 평론가·강연가로 여성·소수자·재일 조선인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저서로는 ‘차별과 일본인’ 등이 있다.
  • “화산 위에서 사진 찍다 추락”…몽골서 한국 인플루언서 사망

    “화산 위에서 사진 찍다 추락”…몽골서 한국 인플루언서 사망

    유명 한국인 여행 인플루언서가 몽골 현지에서 화산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외 관광지에서 위험구역 통제와 안전 관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5일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몽골 불간 주 오랑터거 화산에서 20대 여성 A씨가 추락해 사망했다. A씨는 팔로워 약 9만명을 보유한 여행 인플루언서로, 몽골 북부 지역으로 출장을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TV조선에 “당시 A씨가 화산 위에서 사진을 찍던 중 갑자기 강풍이 불면서 중심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현지 당국과 공조해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오랑터거 화산은 해발 약 1680m로, 분화구 지름이 500~600m, 깊이가 50~60m에 달한다. 분화구 내부에는 풀밭과 작은 물웅덩이가 형성돼 있으며, 독특한 지형과 지질학적 가치로 몽골의 대표적 화산 지형 관광지로 꼽힌다. 현재는 활동하지 않는 휴화산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홉스골 지역 인근에 있어 트래킹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해외 트레킹 관광지의 위험구역 통제와 안전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진 촬영이나 SNS 활동을 위해 절벽·화산 지대 등 위험 지역에 접근하는 경우가 늘면서 안전사고 예방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늘어난 男 난임…늦깎이 신랑들도 “2세 위해 ‘이것’ 끊어요”

    늘어난 男 난임…늦깎이 신랑들도 “2세 위해 ‘이것’ 끊어요”

    최근 40·50대 남자 연예인들이 자녀 계획에 대한 생각을 밝혀 화제를 모은 가운데, 국내의 남성 난임 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TV 예능 프로그램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 그룹 코요태 김종민(45)은 차가운 음료를 건네는 코미디언 김준호에게 “따뜻한 건 없냐”고 물었다. 그는 “따뜻한 걸 먹어줘야 신진대사나 호르몬이 조절돼서 임신 준비할 때 좋다”고 말했다. 이에 방송인 이상민이 “지금 2세 임신 노력 중이냐”고 묻자 김종민은 “노력 중이다. 술 끊고 병원 가서 확인할 예정이다.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민은 지난 4월 11살 연하의 비연예인 사업가와 결혼했다. 김준호(50) 또한 지난 1일 방송된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에서 “딱 11월 30일에 제가 술, 담배를 멈추기로 했다”며 “아이를 갖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어 “지민이도 술을 절대 안 먹기로 했다”며 2세를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지민이는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으로 (원하고 있어서)”라며 “저도 약간 운동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준호는 개그우먼 김지민과 지난달 13일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SBS TV 예능물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에서 난임부부의 성지로 유명한 한의원을 방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백진호 원장은 “지민씨는 임신 잘될 것 같다”면서도 “준호씨가 피곤해서 남성 기능이 좀 떨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男 난임 환자 증가세…“흡연·음주 영향”“결혼·출산 연령 늦어진 것도 주요 원인”남성 난임 환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된 남성 난임 시술 환자는 지난 2017년 5203명에서 2021년 6만 5900명으로 약 12배 증가했다. 그러나 남성 난임은 국가 차원의 조사에서도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며 난임 시술 지원에서도 배제되는 등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체외수정·인공수정 등 여성 보조생식술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정자증 환자가 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는 경우, 정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술 현미경 사용료, 특수재료비, 조직처리·검사비 등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수술비만 최대 300만원에 달해 여러 차례 시술을 받을 경우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전문가들은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 잘못된 식습관, 흡연·음주 등이 남성 호르몬 수치와 정자 운동성을 저하한다고 분석했다. 결혼·출산 연령이 늦어진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 딸 주애와 베이징 간 김정은… 시진핑·푸틴과 ‘反서방 깃발’

    딸 주애와 베이징 간 김정은… 시진핑·푸틴과 ‘反서방 깃발’

    김정은 열차 내리자 왕이 등 中간부 영접… 리설주·김여정 동행한 듯주애 외교무대 데뷔 후계자 힘 실려국정원 “북중러 정상 나란히 설 것”외교 보폭 넓혀 美 접촉 기회 볼 듯 중국의 80주년 전승절에 참석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출발한 특별열차를 타고 2일 오후 베이징에 도착했다. 6년 8개월 만의 방중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반(反)서방 국가 정상들과 잇달아 만나 연대를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방중에는 딸 김주애도 동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위원장이 오후 4시(현지시간)쯤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역에는 중국 안보라인 수장인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공식 서열 5위)와 왕이 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 인융 베이징시 당서기 등 주요 간부들이 영접을 나왔다. 김 위원장은 중국 측 간부들에게 “6년 만에 또다시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의 동선이 이처럼 실시간으로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외신들도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리는 장면 등을 포착해 긴급 타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한 사진에는 김 위원장의 바로 뒤에 주애로 추정되는 여성이 바짝 따라 내리는 모습이 담겼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밤 “김정은이 방중하면서 딸 김주애를 동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와 관련, 김주애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고 공지했다. 지난 5월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을 김 위원장과 함께 방문하며 외교행사에 데뷔한 주애가 이번 방중을 계기로 중러 정상들과 인사를 나눌 가능성도 높아 사실상 후계구도를 확정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정원은 앞서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3일 열병식에서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서서 냉전기 삼각 연대 구도를 재현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정보위 여야 간사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이 전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열차 내 집무실 칸에 최선희 외무상과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이 함께 탑승했다. 국정원은 이들 외에 현송월 당 부부장도 수행하고 있다며 특히 “리설주, 김여정도 동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중국 정부 공식 영빈관인 댜오위타이(조어대)에 여장을 푼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2시 42분쯤 댜오위타이 일대에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이 시작됐고, 댜오위타이 동문 앞에서는 행인들에 대한 강도 높은 통제가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과거 베이징 방문 때마다 댜오위타이 18호각에 묵었다. 과거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투숙한 곳이다. 중국은 단둥과 선양 등 주요 철도역에 가림막을 세우고 베이징의 주중 북한대사관 주변에 경찰 인력을 배치하는 등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췄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동급의 의전, 경호 등 각별한 예우를 받으며 방중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일 열병식과 이후 리셉션 갈라 공연에 참석해 각국 정상과 소통하고 주중 북한 공관을 찾거나 경제 등 관심 분야를 연계한 현지 시찰 행보가 예상된다. 우리 측 대표로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 위원장이 만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판단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방중을 결단한 데 대해서는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회의에서 “북중 관계 복원으로 대외 운신의 폭을 넓히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 체제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이라며 “러시아 편중 외교를 탈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중국의 지지 확보 및 미국의 태도 변화 유인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더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이날 발간한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80주년 참석 의도와 파장’ 보고서도 김 위원장 방중의 주된 의도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한 대미 협상력 제고를 꼽았다. 파병 이후 러시아 일변도로 진행된 대외관계를 극복하고 다시 균형을 잡으며 북한판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이어졌다. 한편 이날 북한은 김 위원장이 평양을 출발하기 전 열차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최 외무상, 조용원·김덕훈 당 비서와 대화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 한중일 전통극과의 조우

    한중일 전통극과의 조우

    국립극장이 오는 9월 3일부터 한 달간 ‘창극 중심 세계 음악극 축제’(세계 음악극 축제)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달오름·하늘극장에서 연다. 국립창극단을 주축으로 내세운 새로운 축제로, 현시대 음악극의 흐름과 현재를 조망하는 자리다. 올해는 ‘동아시아 포커싱’을 주제 삼아 해외 초청작 3편과 국내 초청작 2편, 국립극장 제작 공연 4편 등 9개 작품을 23회 공연한다. 해외 초청작은 중국 ‘죽림애전기’, 일본 ‘노가쿠: 노와 교겐’과 ‘망한가’를 준비했다. ‘죽림애전기’(12~13일, 달오름극장)는 2023년 홍콩 아츠페스티벌(HKAF)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경극을 기반으로 한다. 위진 시대 도가 철학을 추종하며 살던 ‘죽림칠현’ 후손들이 황제가 빼앗은 악기를 찾으려는 여정을 그렸다. ‘보기 드문 걸작’, ‘정통과 실험의 절묘한 조화’ 등 현지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일본 초청작은 전통극 노가쿠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연출가이자 배우인 시미즈 간지가 연출했다. ‘노가쿠: 노와 교겐’(19~20일, 달오름)은 14세기 후반부터 전해 오는 음악극 ‘노’ 네 작품, ‘교겐’(노 공연 중간에 상연되는 짧은 희극) 세 작품을 엮었다. 특히 노가쿠와 한국 농악을 접목한 한일 합동 음악극 ‘망한가’(17~18일, 달오름)가 관심을 끈다. 시미즈를 주축으로 한 공연 단체 노후카와 임성준 연주자가 중심이 된 망한가농악단이 함께 제작했다. 일제의 징용에 끌려온 노동자 아내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받아 전쟁과 폭력에 스러진 생명들을 기리는 작품으로 태어났다. 2022년 일본에서 초연했고, 지난해 재연했다. 시미즈는 극 중에서 한국 산촌에서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전쟁 중에 겪은 일을 말하지 않은 채 고독하게 살다가 남편의 유품을 받고는 가을 달빛 아래 춤을 추며 한을 드러낸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시미즈는 일본 공연에 대해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높았고, 한 인간으로서 작품이 주는 이야기가 와닿았는지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징용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앞서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견 없이 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초청작은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의 ‘종이꽃밭: 두할망본풀이’(6~7일, 하늘극장)와 타루의 ‘정수정전’(13~14일, 하늘)이다. ‘종이꽃밭’은 제주 무속 이야기 ‘생불할망본풀이’와 제주 민요, 무가, 판소리, 재즈를 접목한 1인극이다. ‘정수정전’은 조선 말 작자 미상의 동명 소설을 발굴해 시대를 앞서간 여성 영웅의 복합적인 내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세계 음악극 축제의 개막작은 국립창극단의 신작 ‘심청’(3~6일, 해오름극장)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요나 김이 극본과 연출을 맡아 판소리 ‘심청가’를 파격적으로 비틀었다. 한 마리 개의 시선으로 시대를 바라본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4~7일, 달오름), 창극 콘서트 ‘토선생, 용궁 가다’(25~26일, 달오름), ‘2025 창극 작가 프로젝트 시연회’(27~28일, 하늘)가 이어지면서 축제의 막을 내린다.
  • 아이돌 닮은 불상, 갤러리 품은 법당… 이토록 힙한 불교[마음의 쉼자리]

    아이돌 닮은 불상, 갤러리 품은 법당… 이토록 힙한 불교[마음의 쉼자리]

    ‘탈권위’ 나선 우리나라 최고 사찰법당 출입문엔 동화 속 ‘어린 왕자’내부엔 금빛 대신 무광택 흰색 불상한쪽 벽면에 그림 전시까지 열려 요즘 불교계 화두 중 하나가 ‘엄숙주의를 내려놓는 것’ 아닐까 싶다. 얕고 가벼워지는 것에 대한 불교계 일부의 우려가 분명히 있지만 주류적 지향점은 여전히 ‘힙하고 핫한’ 불교인 듯하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사찰이라는 인천 강화 전등사에도 이런 탈권위의 흐름을 목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무설전(無說殿)이 그곳이다. 법당 내부에 신진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있다. ‘예술 품은 법당’인 셈이다. 불교에 무지한 이에게 무설전이 가진 뜻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심오하다. 전등사 스님 등에게서 귀동냥한 내용을 요약하면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은 언어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는 의미다. 묵직한 이름과 달리 무설전은 안팎으로 가볍고 경쾌하다. 법당 출입문 위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앉아 있다. ‘악착 보살’ 같은 조형물은 봤어도 국내 법당에서 외국 동화의 주인공은 처음 본다. 젊은이들에게 절집 문턱을 낮추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법당 내부도 마찬가지다.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지장·보현·문수·관세음보살상이 모두 흰색이다. 여느 절집처럼 개금(改金·금칠을 입히는 것)한 불상이 아니다. 광택이 없는 흰 폴리우레탄 도료를 칠해 꼭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거부감을 덜어 주기 위해 문수보살에 남자 아이돌 이미지를, 보현보살에는 걸그룹 이미지를 담아냈다. 무설전 중앙의 석가모니불 좌상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모티브로 한다. 주불 뒤는 돔 형태로 파였다. 물론 광배를 형상화했을 터다. 돔 주변을 장식한 그림 역시 전통 탱화가 아닌 프레스코(회벽에 수용성 물감으로 그린 그림) 벽화다. 법당 프레스코화는 무설전이 국내 처음이다. 탱화에서는 보통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한다. 물론 무설전은 다르다.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등을 부처 가까이에 그려 넣었고 바이올린을 켜는 선녀상도 등장한다. 천장에는 닫집이나 단청 대신 보랏빛 전등을 달았다. 연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모두 999개다. 천장 전체의 큰 사각형은 마지막 1000개째 연등을 상징한다. 법당 한쪽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서운갤러리에서는 이유지 작가의 개인전 ‘KARMADISE’(카르마다이스)가 열리고 있다. 카르마다이스는 ‘Karma’(카르마·업)와 ‘Paradise’(파라다이스·낙원)를 조합한 단어다. 좋은 카르마를 통해 이상적인 삶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담았다. 전시는 30일 종료한다. 무설전이 깃든 전등사는 기록상 창건일이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까지 거슬러 오른다. 대웅전과 철종 등 국가유산 보물이 적지 않다. 철종은 중국 북송 시대 때 제작된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병기로 쓰기 위해 부평 병기창에 가져다 놓은 것을 광복 후 전등사로 옮겼다고 한다. 다른 나라 유물이 우리 국가유산에 선정된 것은 드문 경우다. 대웅전 처마 네 곳에는 나부상(裸婦像)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을 조각한 것인데, 여기에 담긴 전설이 재밌다. 조선 광해군 연간에 전등사 조성을 맡은 도편수가 주막집 주모와 사랑에 빠졌단다. 한데 도편수의 몸과 마음에다 돈까지 살뜰하게 챙긴 주모가 이를 홀라당 들고 튀었다. 이후 도편수가 평생 지붕을 인 채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살라고 처마에 주모의 형상을 새겼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이 전등사 주지로 있던 1957년에 지은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라는 시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네 곳의 나부상은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주의 깊게 살펴보시길. 여성이라기보다 야차나 원숭이를 조각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트럼프 “김정은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한미 최종 청구서 뒤로 미루나

    트럼프 “김정은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한미 최종 청구서 뒤로 미루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다”라며 이재명 대통령을 극찬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낮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서로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쌓는 시간이었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전 SNS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마치 숙청이나 혁명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할 수는 없다”고 글을 올리며 긴장감 속에 소인수 회담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을 겸한 확대회담에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 게 강 대변인의 설명이다. 양국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안건인 관세 협상 후속과 한미동맹 현대화 등 안보 분야에 대해 구체적 논의를 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한국 정치 상황을 묻고 교역 및 관세 협상 점검에 이어 미국 조선업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발언에서 언급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요구 등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강 대변인은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여부는) 아예 안 나왔다”며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등도) 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안보 분야 협상 등은) 앞으로도 조금씩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협상은 마무리된 것으로 양국 정상이 이견 없이 끝났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에는 분명 ‘무역부터 (논의) 합시다’라고 했는데 두 분의 친밀한 사적인 이야기로만 진행됐다”고도 했다. 특히 두 정상은 북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을 만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며 “(자신이) 대통령직을 잠시 안 한 후 북한의 핵 위협이 더 커졌다”며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초청하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하자고 권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슬기로운 제안”이라며 “당신은 전사다. 당신은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고 위대한 지도자. 한국은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에서 놀라운 미래를 갖게 될 것.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직접 써서 이 대통령에게 주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프로 여성 골퍼들의 실력을 극찬하며 비결을 묻는 등 친밀감을 보였다. 또 정상회담에 참여한 한국 측 참모진들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에 직접 사인해 돌려주는 한편 모자, 골프공 등 선물을 직접 고르게 한 뒤 직접 사인해 줬다고 한다.
  •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 되어 뜨거운 응원을 보냈던 당시, 거리 응원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였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패션 소품처럼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태극기 활용에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통해 애국심을 표출하고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국기는 국가의 존엄한 상징인데, 이를 몸에 두르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거나 상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태극기의 시작과 변천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가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로, 김홍집의 주도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83년 고종이 태극과 건곤감리 4괘를 그린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태극기의 공식적인 제작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마침내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고시’가 제정되면서 현재 태극기 규격이 확정되었다.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부속 건물 칠성각 복원 공사 중 벽 속에서 독립신문류들과 함께 태극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독립신문의 발행 시기로 미루어 볼 때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탄 흔적과 여러 곳에 남은 구멍으로 보아 실제 3·1 운동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백초월 스님’을 주목한다. 그는 만해 한용운,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3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진관사는 그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형태여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되었다. 태극기, 어린 날의 기억과 어른이 된 지금어린 시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태극기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그리기 쉬운 국기를 가진 일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음양오행과 태극, 건곤감리 4괘 등 태극기가 가진 준엄한 의미를 체득하기 어려웠고, 일부는 태극기를 예쁘게 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태극기는 여전히 그리기 어렵고, 건곤감리 순서가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사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한ZOOM]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가 전하는 사연 [한ZOOM]

    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 되어 뜨거운 응원을 보냈던 당시, 거리 응원의 상징은 단연 태극기였다. 젊은 여성들이 태극기를 패션 소품처럼 몸에 두르고 응원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태극기 활용에 찬성하는 쪽은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통해 애국심을 표출하고 새로운 응원 문화를 창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국기는 국가의 존엄한 상징인데, 이를 몸에 두르는 것은 국가를 모독하거나 상징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태극기의 시작과 변천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태극기가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로, 김홍집의 주도로 역관인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83년 고종이 태극과 건곤감리 4괘를 그린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태극기의 공식적인 제작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하던 태극기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도 통일된 규격이 없었다. 마침내 1949년 10월 ‘국기제작법고시’가 제정되면서 현재 태극기 규격이 확정되었다.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부속 건물 칠성각 복원 공사 중 벽 속에서 독립신문류들과 함께 태극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이 태극기는 독립신문의 발행 시기로 미루어 볼 때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탄 흔적과 여러 곳에 남은 구멍으로 보아 실제 3·1 운동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학계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백초월 스님’을 주목한다. 그는 만해 한용운,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3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진관사는 그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형태여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 일제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되었다. 태극기, 어린 날의 기억과 어른이 된 지금어린 시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태극기 그리기 수업이 있었다. 그리기 쉬운 국기를 가진 일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음양오행과 태극, 건곤감리 4괘 등 태극기가 가진 준엄한 의미를 체득하기 어려웠고, 일부는 태극기를 예쁘게 그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상징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태극기는 여전히 그리기 어렵고, 건곤감리 순서가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태극기가 사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태극기를 사용하는 목적과 방법,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 女보게 로맨스 말고 워맨스

    女보게 로맨스 말고 워맨스

    올 하반기 여성 서사를 다룬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강타할 전망이다. 기존의 정형화된 여성상을 벗어나 다양한 삶과 인생을 조명한 작품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거나 남녀 로맨스에 집착하던 K드라마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①고현정 ‘사마귀’ 연쇄살인마 역 컴백 오는 9월 맞대결하는 고현정과 이영애의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고현정은 다음달 5일 처음 방송되는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 연쇄살인마 이신 역을 맡았다. 다섯 명의 남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복역 중인 사형수 캐릭터다. 20년이 지나 모방 범죄가 발생하자 형사가 된 아들과 공조 수사에 나선다. 죄책감과 증오가 얽힌 복합적 인물을 통해 파격 변신을 예고한 고현정은 “작품 자체의 매력이 상당한 데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한번 빠져드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②이영애 ‘은수 좋은 날’ 강인한 모성 발휘 이영애는 같은 달 20일 시작하는 KBS 토일드라마 ‘은수 좋은 날’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남편의 병세 악화와 경제적 파산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가 우연히 마약 가방을 발견하고 금기의 세계로 뛰어드는 은수를 연기한다. 위기 속에 흔들리는 가정을 끝까지 지켜 내기 위해 강인한 모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그려 낼 이영애는 “현실에 닿아 있는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였지만 점점 본질을 넘어서는 인물로 변화하는 캐릭터가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첫 방송한 tvN ‘폭군의 셰프’는 조선 시대로 타임 슬립한 셰프가 최악의 폭군이자 절대 미각의 소유자인 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암투가 펼쳐지는 궁궐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실력파 요리사 지영 역을 맡은 임윤아는 “과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개척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소개했다. ③전지현 첩보물 ‘북극성’으로 복귀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9월 10일 공개되는 디즈니플러스 첩보물 ‘북극성’은 전지현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지현은 국적 불명의 특수요원 산호(강동원)와 함께 대통령 후보 피격 사건의 배후를 쫓는 외교관 문주를 연기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과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여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 온 정서경 작가가 ‘북극성’의 극본을 맡았다. 정 작가는 “처음부터 전지현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었다”면서 “외롭게 살았지만 강인하고 용기 있는 여성 캐릭터를 배우가 정확히 해석하고 잘 만들어 갔다”고 말했다. ④이하늬·방효린 ‘애마’ 현실 맞선 女 연대 여성 투톱 작품도 줄을 잇는다. 지난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애마’는 톱스타 배우 희란(이하늬)과 신예 주애(방효린)의 불꽃 튀는 경쟁을 그리면서도 여배우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던 1980년대 영화계의 어두운 현실에 맞서는 여성 연대를 보여 준다. ⑤김고은·박지현 ‘은중과 상연’ 친구 서사 9월 12일 공개되는 넷플릭스의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좋아하고 동경하지만 동시에 질투하고 미워하는 두 친구 이야기를 그린다. 김고은과 박지현이 10~40대에 걸친 여성 서사를 촘촘하게 그릴 예정이다. 하반기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는 남편을 죽인 용의자로 몰린 윤수와 마녀로 불리는 의문의 여자 모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도연과 김고은이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⑥전도연·김고은 ‘자백의 대가’서 재회 박상혁 CJ ENM 미디어사업본부장은 “등장인물이 전원 여성인 tvN 드라마 ‘정년이’가 지난해 흥행에 성공하는 등 여성 관계를 적대적으로 풀던 전형에서 벗어나 여성 연대와 우정을 다룬 이야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드라마에서 남녀 로맨스의 절대적인 비중도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김병만, 아들 공개 “아기인데 갈라진 근육 있어”

    김병만, 아들 공개 “아기인데 갈라진 근육 있어”

    ‘조선의 사랑꾼’에서 김병만 2세의 모습이 최초 공개된다. 오는 25일 오후 방송되는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에서는 9월 결혼식을 앞둔 개그맨 김병만이 ‘근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앞서 태명을 별명처럼 부르고 있는 남매 짱이, 똑이의 존재를 공개한 바 있는 김병만은 둘째 똑이에 대해 “군살이 없는, 갈라진 근육이 있다”고 밝혔다. 영상에 공개된 똑이의 몸은 선명하게 갈라진 근육이 아빠와 닮아 감탄을 자아냈다. 김병만은 “간호사가 그랬다더라. ‘아기가 무슨 알통을 갖고 태어나냐’고”라며 “만약 ‘출발 드림팀’이 부활하면 똑이가 가서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날 똑이는 넓은 야외 놀이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두려움 없이 탐방했다. VCR을 지켜보던 김국진도 “아이가 병만이를 똑 닮았다”며 감탄했다. 김병만도 “너무 신기하더라. 나를 하나하나 구석구석 닮은 게”라며 미소 지었다. 한편 김병만은 2010년 7세 연상의 비연예인 여성 A씨와 혼인신고를 하면서 A씨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B씨를 친양자로 받아들였다. 김병만은 A씨와 수년간 별거한 끝에 2023년 이혼했으며 B씨 파양 소송을 세 차례 제기했으나 두 차례 기각됐다. 다음 달 20일 서울 서초구 한강 세빛섬 루프탑에서 연하의 회사원인 여성과 재혼을 앞둔 김병만은 “전처와의 혼인관계 파탄 후 예비신부와의 사이에서 아이 둘을 낳았다”며 혼외자 2명의 존재를 인정한 바 있다.
  • 사할린에 남겨진 경계인들을 호명하다

    사할린에 남겨진 경계인들을 호명하다

    사할린 한인 이야기 담은 이금이 작가 신작일제강점기 女 디아스포라 3부작의 마지막희망·행복을 찾아가는 힘은 연대에서 나와인간다움 잃지 않는 삶이 슬픔의 틈새 메워 거대 담론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있다.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을 호명해 온 이금이(63) 작가는 신작 장편소설 ‘슬픔의 틈새’를 통해 이방인 내지 경계인, 소수자로 삶을 이어 가야 했던 사할린 한인들의 목소리를 소환한다. 작가는 2016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거기)를 시작으로 2020년 ‘알로하, 나의 엄마들’(알로하), 이번 ‘슬픔의 틈새’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이산) 3부작을 완성했다. ‘거기’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정국의 혼란기에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그렸다면 ‘알로하’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떠난 이민 1세대 재외동포와 결혼해 생활을 꾸려 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부터 3부작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2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첫 작품을 쓸 때만 해도 후속작에 관한 생각이 없었다”며 “일제강점기를 공부하면서 마주한 ‘사진 신부’(1910~1924년 하와이로 이주한 남자들과 결혼하기 위해 서로의 사진만 보고 이국 땅으로 향한 신부들)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알로하’를 쓰게 됐으며, 이 작품이 일제강점기 초반을 다루고 ‘거기’가 중반을 다루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후반을 다룬 이야기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자리를 준다는 일본의 회유책에 속아 남사할린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은 일본이 조선에 시행한 ‘국가총동원법’의 일환인 줄도 모른 채 계약 기간만큼 돈을 벌고 돌아와 식구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려던 사람들이었다. 비행기로 3시간도 안 돼 올 수 있는 거리를 50년을 돌고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 남쪽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40년간 지배했다. 당시 일본은 그 땅을 가라후토라 불렀고 조선인들은 한자 음대로 화태(樺太)라 불렀다. 하지만 1945년 소련·일본 전쟁으로 사할린은 다시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됐다. 몇 번의 지배 체제가 바뀌는 동안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조선인도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고 이어 1948년에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지만, 끝내 조선인들을 위한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조국에 배신당한 이들은 큰 상심에 빠지지만 식구의 누울 곳과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견뎌 내야만 했다. 작품은 굴곡진 역사의 무대에 ‘단옥’, ‘야케모토 타마코’, ‘올가 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야만 했던 단옥과 일본인 어머니가 재혼한 한국인 남성을 아버지로 두고 살아갔던 유키에라는 두 여성을 내세운다. 작가는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 때 모두가 어려웠지만, 특히 여성들의 삶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며 “두 여성이 이중고, 삼중고 속에서도 자매애로 이겨 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은 슬픔의 틈새에서도 희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힘은 연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품은 두 가족의 일대기를 다루며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 준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린 시절 사할린으로 온 단옥은 조국에 대한 기억을 안고 있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있는 사할린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반면 사할린에서 태어난 동생 광복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 유키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서 살기 원하며 사할린에 남는다. 조국에서 찾아온 다큐멘터리 작가에게 전하는 단옥의 말에는 그들이 어떻게 슬픔의 틈새를 메우며 살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보듬으며 지나온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울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앞으로는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전할 때 우리가 모진 운명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슬픔의 틈새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 것 또한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소.”
  • 李, 한국계 최초·이라크전 참전 美상원의원 접견

    李, 한국계 최초·이라크전 참전 美상원의원 접견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한미 조선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미국 상원의원들을 접견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국계 최초로 미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상이 용사인 태미 더크워스 의원을 만났다. 이날 접견에는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임웅순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자리했다. 김 의원과 더크워스 의원은 방한 기간에 한국 조선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조선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정부는 미국 측에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유지·보수·운영(MRO) 등을 포괄하는 조선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제안한 바 있다. 두 의원은 한국 업체와의 회동에서 미국 해군의 비전투용 함정을 공동 건조·정비하는 프로젝트 합작투자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용 소형 선박 건조 방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 해군 함정의 정비 문제도 논의될 전망이다. 또한 두 의원은 미국 조선소에 대한 한국 조선업체의 투자 유치 가능성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더크워스 의원은 HD현대중공업을 거론하면서 “그들과 미국 본토에 있는 조선소를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민 2세대인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소속으로 뉴저지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미국 상원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2009년 이라크 전문가로 국무부에 입부해 2013~2015년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역임하며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기여했다. 2018년 뉴저지주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지냈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계 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더크워스 의원은 여성이자 아시아계 첫 미 육군 헬기 편대장으로 이라크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상이 용사다. 민주당 소속으로 2016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첫 참전 여성 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 [씨줄날줄] 매관매직

    [씨줄날줄] 매관매직

    매관매직(賣官賣職). 관직을 사고파는 부패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를 병들게 했다. 중국 명·청 말기에도 관직 매매가 몰락의 전조였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후기의 기억이 유독 쓰라리다. 세도가문이 권력을 독점하고 돈으로 관직을 거래하면서 나라 기강이 무너졌다. 관직을 산 자들은 부임과 동시에 백성을 수탈해 본전과 이자를 챙겼고 이는 홍경래의 난, 임술농민봉기, 나아가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졌다. 매관매직은 조선 멸망을 재촉한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이 부패 구조 속에서 여성들도 권력의 한 축을 차지했다. 중종·명종 때 외척 윤원형의 부인 정난정은 남편과 함께 인사를 매매하며 재물을 축적했다. 조선 말 명성황후(민비)도 외척과 측근을 요직에 앉히고 관직 임명을 대가로 뇌물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왕권을 등에 업은 전형적인 부정부패였다. 최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매관매직’ 의혹은 이런 뼈아픈 역사적 기억을 소환한다. 서희건설 회장에게 고가의 목걸이를 받고 그의 사위를 고위 공직에 앉힌 정황, 사업가로부터 받은 명품 가방과 초고가 시계 의혹까지 더해지며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대통령의 권세를 발판 삼아 특혜를 누리는 모습은 조선 말기 국운을 기울게 한 궁중 외척과 권력 여성들의 부패를 떠올리게 한다. 감시와 견제가 사라진 권력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런 권력 사유화를 막기 위해 2014년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인척, 고위 참모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초대 감찰관 사퇴 이후 9년째 공석이다. 김건희 여사 의혹처럼 민감한 사안 앞에서 제도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복원을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져야만 권력 주변 부패를 막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마련된다. 역사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 나라가 어떤 운명을 맞는지 이미 증명했다. 반복의 고리를 끊는 것은 우리 몫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 “내 남은 희망은 조선 독립뿐”…하와이서 조국 독립 꿈꾼 숨은 영웅들 서훈 신청

    “내 남은 희망은 조선 독립뿐”…하와이서 조국 독립 꿈꾼 숨은 영웅들 서훈 신청

    “내가 (나이) 70에 남은 희망이라고는 조선 독립밖에 없소. 내가 절용절급하여 평생 소원성취하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제일 기쁘오.” 1905년 노동 이민으로 미국 하와이에 정착해 빅아랜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번 돈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이만정(1870년 7월 20일~1949년 2월 5일) 선생이 한 말이다. 그는 하와이 한인들에게 독립운동자금 지원을 독려하는 등 한인사회 결속과 조국 광복 기반 마련에 큰 역할을 했지만, 살아생전 그 공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창원대 박물관은 이처럼 독립운동을 했지만 국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이들을 찾고 널리 알리고자 2019년부터 ‘하와이 한인 이민자 연구’를 진행했다. 소재가 불분명했던 묘비를 직접 발굴하고 기록 교차검증 등으로 독립운동 업적을 꼼꼼히 확인한 국립창원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들이 정당히 예우받을 수 있도록 국가보훈부에 추서를 신청했다. 14일 학교 측에 따르면 이번에 추서를 신청한 독립운동가는 65명이다. 이만정 선생처럼 일제강점기 하와이 한인 이민 사회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 교민 교육, 한인회 활동, 민족정신 고취 등으로 조국 광복 기반을 마련한 이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그 공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해외 한인 사회의 결속과 항일운동 지속성 유지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윤계상(1867년~1922년 5월 23일) 선생은 하와이 결사 단체 ‘포와하나연합회’ 총무로,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부회장·중앙총회 하와이특명위원 등을 역임했다. 하와이 한인여학교·한인기독학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수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유영로(1868년~1947년 7월 7일) 선생은 1909년 국민회 산하 아이야 지방회 총무 겸 서기, 1910년 유년밀 지방회 학무원, 1914년 가와일로아 지방회 서기 겸 학무원을 역임했다. 그는 국민의무금·인구세 등 독립운동자금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했다. 손점상(1899년 9월 9일~1983년 6월 12일) 선생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16년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이민했다.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혈성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해방 후 1961년 본국시찰원으로서 귀국했고 이때 인하대학교에 700원의 거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자신이 자랐던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에 자활양재학원을 설립해 가난한 여성들에게 무료로 기술을 교육하는 등 독립이 된 이후에도 꾸준히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이들의 서훈 수여 여부는 국가보훈부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박민원 국립창원대 총장은 “이번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통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헌신했으나 머나먼 타국에 잊혀 있던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며 “대학의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한 분의 애국지사라도 더 찾아내고 그 위업을 알리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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