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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극우세력 ‘조직적 이지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 도지사의 ‘3국인’ 발언을 비판하는 재일 한국인과 일본 지식인들이 강도높은 집단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을 맹렬히 비판하며 지난 12일 지사직 사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재일동포 신숙옥(辛淑玉·41·여)씨 사무실에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로부터 협박성 전화와 팩스,이메일이 잇따르고 있다. 신씨측은 “12일 이후 지금까지 20여건의 전화 등을 통해 ‘한국이 베트남전쟁때 베트남인을 학살하고 사죄한 적 있나’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협박을 받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씨측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비슷한 협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말을 종합해보면 조직적인 행위일 수 있다”고 말해 일본 내 극우 세력의 정치적 집단괴롭힘(이지메)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신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인 작가 미야사키 마나부(宮崎學)씨의홈페이지에도 익명의 협박 메일이 상당수 들어오고 있다.미야사키씨는 “상당히 조직화된 움직임으로 보고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도쿄도청 광장에서 열린 이시하라 발언 항의 집회에 참가했던 도쿄의 한 여성 시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집단 성폭행하겠다”는 내용을 포함,무려 300여건의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홈페이지에 이시하라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렸던 그녀는 악의적인 메시지가 잇따르자 게시판을 폐쇄했다. 도쿄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사에는 이시하라 발언 직후 항의전화가 빗발쳤으나 최근 들어 이시하라 발언을 지지하는 전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실정이다. 신씨 등은 19일 문서를 통해 ‘유감’의 뜻을 표명한 이시하라 지사의 사과가 미흡하다고 보고 21일 오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대응책을 발표할 계획이다.재일동포 작가 양석일(梁石日)씨는 “유감이라는 표현은진정에서 우러난 사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문서에서 “재일 한국·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 지극히 유감”이라고 해명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대한광장] 국민,민족,여성

    일본인 친구들 몇 명이 한국을 다녀갔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또 역사를 가르치는 친구들이다.한국에 오기 전,이들은 일본 보수파가 주도한 일장기와 기미가요에 관한 법률제정에 반대하는 지식인모임을 결성하고 인터넷을통한 서명운동과 여러차례의 집회를 개최했다.이들은 글과 정치적 실천을통해 2차대전의 기억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수정주의 사관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일본 민족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는 진보적 탈민족주의의 입장을 분명하게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일본과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늦은 밤까지 비교적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일본 제국주의의 조선과 대만에 대한 식민지 교육사를 전공하는 한 친구는,순배가 꽤 돌자 한국에 대한 솔직한 자기심정을 피력했다.일본에서 일장기에 반대하는 운동을 열심히 펼치다,한국에 와 보니 도처에 태극기 물결이라 무척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국기로 상징되는 일본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고 비판적인 한국 지식인들이 유독 자기나라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이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모양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일본과 한국의 국가주의에 대한 한국 지식인들의 이중적 잣대를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었다.덧붙여 그는 일제시기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중국대륙에 대해서는 강한 연대감을 표하면서도,정작 같은 식민지인 대만의 민족주의자들은 무시해버리는 일종의 우월의식이 존재한 것같다고 말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좌파 지식인이라는 굴레 때문에 그는 몹시 신중한 표현을사용했지만,나는 그의 지적이 옳다고 동의했다.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이 한국의 국가주의를 자동적으로 정당화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친구는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이 일본의 역사학계에 미친 엄청난 파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문서화된 사료가 없다는 이유로 정신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우파 역사학에 대해,할머니의 증언 자체가 바로 사료라는 것이이들의 입장이었다.문서로 된 사료들은 지배자의 입장이 기록으로 남은 것이며,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이야말로 피억압자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구술된 더중요한 사료라는 것이었다.그것은 곧 실증주의와 역사인식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일본 지식인들의 이러한 진지함에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정신대 할머니의 증언에 대한 한국사회의 주된 반응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한분노에서 멈추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일본에서는 2차대전에 참전했던 노병들의 양심선언이 나온 데 비해,한국에서는 정작 동이나 마을 단위에서 정신대를 모집했던 한국인들의 양심선언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한국측 모집책들의 철저한 침묵은 정신대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큰 공백이 아닐 수 없고,일본의 우파들이 정신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당한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더 중요하게는 정신대문제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조선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착취를 의미할 뿐 아니라,같은 식민지 조선남성의 조선여성에 대한억압과 착취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이다.더욱이 그것은 과거의 기억으로만그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제국주의 역사의 가장 큰 피해자 중의 하나라 할수 있는 이 할머니들에게 무려 50여년 동안이나 침묵을 강요했던 한국사회의 성적 억압구조를 함축적으로 드러내준다.반성해야 할 주체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뿐만 아니라,식민지 조선의남성과 대한민국의 남성들인 것이다. 민족문제의 프리즘으로 정신대의 역사를 바라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또 다른 반성의 주체로서 식민지 조선과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생략된다는 점이다. 정신대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한국인 정신대 모집책을 설득하여 그들의 증언을 받아내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남성국수주의에 대한비판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스스로에 대한 점검과 반성은생략한 채,상대방에 대한 반성만 촉구한다는 것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林 志 鉉 한양대교수·사학
  • 민중가수·노래패 “새앨범 향해 진군”

    민중음악을 표방하고 나선 곽주림,김호철,이지상 등 한국민족음악인협회소속 가수들이 일제히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 운동권 가요의 ‘2000년대 버전업’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로고송 ‘바꿔’를 불러 주목받았던,대학노래패 ‘조국과 청춘’출신 곽주림은 여성로커로서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 독집을 12일부터녹음한다.“음악으로 승부하겠다”며 극구 내용 공개를 꺼리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국과 청춘 분위기의 노래들과 ‘노란 참외’ 등이 수록될 예정이다. 역시 같은 단체와 ‘노래마을’ 소속이었던 손병휘가 포크를 기조로 한 프로그레시브 분위기의 새 앨범을 만들고 있다.도종환 시 ‘오늘 하루’와 안도현 시 ‘그대를 만나기 전에’ 등을 담아 5월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전대협노래단 준비위 출신으로 손병휘와 함께 작업했던 이지상은 ‘사람이사는 마을 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에서 치열한 삶의 뒤안길에서 고통받는 공허와 허무에 대해 노래한다.백창우,정지원,신동호,민병일 등의 시에 곡을 붙여 조선독립군 출신 노인과 북한동포,기지촌 여성으로 살다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고 윤금이씨 사연 등을 노래한다.‘통일은 됐어’‘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철길’등. 노래마을에서 활동하고 ‘산책’ 영화음악에도 참여했던 윤정희도 서정적인삶과 희망을 노래한 앨범을 기획 중이다.가장 고전적인 의미의 민중음악 진영에 속하는 대구지역 노래패 ‘소리타래’는 준비중인 4집 ‘화수분’에서우리 가락과 록리듬의 접목을 꾀해 솔직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다.불러도 불러도 지치지 않는 희망의 화수분을 퍼올리겠다는 것이다. 80년대 ‘단결투쟁가’‘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등 전투적인 노동가요히트곡들을 양산한 바 있고 90년대 들어 인터넷 방송 ‘노동의 소리’를 운영중인 김호철도 박준 2집,박은영,류금신 등의 새음반을 통해 그간 가다듬은목소리를 토해낼 계획이다. 이들의 실험정신이 21세기들어 어떤 변화를 치러낼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 [시베리아 대탐방](16)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

    시속 100㎞는 되는 것 같았다.로만은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손바닥처럼훤하다”고 자신했지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안되겠다 싶어 몇번이나‘안전운전’을 부탁했지만 허사였다.‘정식 렌터카를 빌릴 것을 괜히 돈 몇푼 아끼려다가 목숨을 거는구나’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실제로 정면충돌하거나 뒤집힌 차들이 이따금씩 목격됐다.갑자기 숲에서 찻길로 뛰어드는 사슴 등 들짐승도 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고 한다. 오전 7시 15분 드디어 목적지인 우수리스크 중국인 시장에 무사히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동이 트지도 않았지만 시장은 벌써 가게를 열고 상품을 들여놓는 상인들로생동감이 넘쳤다. 정식명칭이 ‘우수리 쉔트르(센터)’인 우수리스크 중국인시장은 극동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가장 큰 민간시장이다. 중국인시장이란 별칭은 러시아 국경지역인 중국 지린(吉林)과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국인들이 중국산 물품을 들여와 장사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러시아 극동지역 공산품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는 만큼 ‘극동유통센터’로도 불린다. 지난 94년 건립된 이 시장이 취급하는 품목은 의복이 가장 많다. 이와 함께 카페트,소파,가전제품,벽지,장판,건설재,조명기구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식품 가운데는 한때 러시아 전역을 휩쓸던 초코파이와 쌕쌕,봉봉같은 캔음료는 몇년전만큼 찾기가 쉽지 않았다.대신 최근에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고있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노점과 옥내점이 공존하는 구조였지만 간판이나 모습이 꼭 우리의 50,60년대를 연상케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컨테이너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중국 지린성 무역발전협회 우수리스크 지점’이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러시아에한번 들어오면 한달이상 머물러야 하는 중국상인들에게 싼 값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기숙사였다. 취재팀과 통역이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갑자기 “한국분이예요?”하며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가죽 의복 장사를 하는 조선족 양성학(梁成學·40)씨였다.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양씨는 “여기 상인 80%가 조선족”이라고 귀띔해줬다.그는 “요즘 러시아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가죽옷은 잘 안팔린다”며 “대신 한벌에 150루블 하는 T셔츠가 주력상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 불이행) 선언 이후 러시아 국민소득이 급락하면서 이곳도 타격을 입었다. 옌벤(延邊)출신의 직물상인 신영호씨(43)는 “7달전 친구한테서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장사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신씨는 “그래도 얼마전 러시아 여성을 점원으로 고용한 뒤로는 말이 조금통해서 벌이가 나아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단층 옥내점인 하얼빈 상품판매점에서는 TV 장식대에 ‘유즈나야 코레아(남한) 80달러’란 꼬리표가 붙여져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왠지 허술해 보이기도 해서 “정말 한국산이냐”고 캐물었더니 한족 점원은 “사실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털어놓은 뒤 “잘 팔릴까 해서 그렇게 썼다”며 겸연쩍어했다. 5년전부터 하얼빈 상품점에 근무했다는 조선족 김모씨(43세)는 “지금은 불경기지만 지난 93∼95년 여기서 큰 돈을 번 조선족들도 많았다”며 “중국에서도 못 본 물건이 여기는 있을 정도로 구색이 다양하다”고 자랑했다. 시장의 연혁과 앞으로의 계획등을 취재하기 위해 시장 관리사무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관리인격인 제 1부소장이 발레리 쉐크,우리 성(性)으로 서(徐)씨인 고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서 부소장은 다소 서툴지만 분명한 우리말로 “나도 고려인입니다”라고 밝혔다.우수리 시장은 상인도 조선족,관리인도 고려인이었다. 결국 중국인 시장이 아니라 한국인 시장인 셈이다. 서씨는 “현재 이곳의 정식 등록상인은 750명이지만 여름에는 1,500여명까지 늘어난다”면서 “지금도 주말이 되면 러시아 상인까지 들어와 상인 수는 900여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점의 경우,상인과 손님 모두가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고생이심하다”며 “곧 건물을 신축해 시장을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중 국경무역의 상징인 우수리시장은 우리에게도 기회의 장(場)이다.중국 현지공장에서 값 싸게 생산한 물품이라면 이곳을 통해 극동 러시아의교두보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oosing@. * 고려인학과장 한국어 완벽 구사.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극동 러시아의 양대축인하바로프스크에도 한국어는 낯설지 않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는 아무런 현판도 붙어있지 않아취재반이 찾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한국어학과가 있는 2층 복도에 들어서니 고려인인 임 발렌치나 한국어학과장이 취재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반은 그녀의 완벽한 우리말에 잠시 놀랐다.북한식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단어 선택과 문장 표현이 완벽에 가까왔다.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다닌 덕택이었다.그녀의 부모는 외교관이었다고 한다.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의 한국어학과 재학생은 1학년 18명,2학년 19명 등 5개학년(러시아대학은 5년제)에 걸쳐 모두 69명이다. 한 학년 재학생이 평균 14명으로 사범대에서 학생수가 가장 적다. 사범대에서 인기가 최고로 좋은 학과는 일본어과.한 학년 재학생이 35명수준이다. 임 교수는 “한국의 IMF사태로 최근 졸업생들이 한국어를 활용할 수 있는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러시아인들 가운데는 한국의 경제난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있지만,일부에서는자동차나 가전제품같은 물건은 계속 갖다 팔면서 사무실은 철수하느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취재반은 1,2학년생들의 수업을 지켜봤다. 대부분 고려인이겠거니 하던 취재팀의 예상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여지없이 깨졌다. 슬라브족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고려인처럼 보여 말을 건네보면 절반은 야쿠트족이었다. 임교수는 “69명중 고려인은 23명뿐”이라고 말했다.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에 도착하기 앞서 들렀던 하바로프스크 한국어교육원(교육부 산하기관)의 석윤균(石允均)원장도 “교육생 대부분이 슬라브족”이라고 말했다.이제 우리말도 국제화됐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들의 우리말 실력은 저학년임을 감안해도 기대 이하였다. 국민학교 수준의 교과서였지만 제대로 읽는 학생들이 없었다.임교수는 “교수들도 한국에 유학해보지도 못하고 교단에 서니 학생들 실력이 이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1학년 수업중이던 올가 비예트로스카야 교수는 “지난 97년 이 대학을 졸업하고 막바로 교단에 섰다”고 실토했다. 우리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의 눈빛만은 반짝거렸다. 2학년인 김 나타샤는 “한국어를 쓸 수 있는 비즈니스 계통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국제팀 김규환기자 정치팀 이도운기자 사진팀 유재림 오정식차장, 김명국기자.
  • [표밭 점검] (6)광주 동구,남구

    광주 동구와 남구는 민주당과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출마자간 대결로 압축된다.민주당은 정부의 안정적 개혁 추진을 위해 압도적 지지로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며 표심을 파고들고 있는 반면 무소속 후보들은 인물론을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동구 ‘호남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과 함께 남녀후보간 성(性)대결로 관심을 끌고 있다.민주당 여성 공천자인 김경천(金敬天)후보와 공천에서 탈락,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영일(李榮一)의원간 선두다툼이 펼쳐지고 있다. 김후보측은 최근 중앙당에서 조사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가정사문제’로시끄럽던 이달 초보다 크게 높아져 현재는 상대인 이영일 후보보다 10∼12%앞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시간이 갈수록 김후보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김후보의 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 경력 등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면서 낙승을 예상하고 있다. 무소속 이영일 후보는 그동안 의정보고회 등 현역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선거운동을 펼쳐왔다.특히 소외계층과 직능사회단체를 파고들고 있다.최근 동구의회 기초의회 의원 13명 중 8명이 민주당을 탈당,가세하면서 지지세가 확산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 조봉훈(趙俸勳)위원장과 자민련 구봉우(具鳳祐)위원장은 “호남에서 민주당 일색을 타파하는 것이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길”이라며 지역정서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무소속 조규범(趙圭範)씨는 14·15대에 출마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표심을공략하고 있다.양회창(梁會昌)전문건설협회 광주시회장은 젊고 참신한 후보임을 내세우며 젊은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무소속 입후보가 예상되던 김홍명(金弘明)전조선대교수는 출마를 포기했다. ◆남구 민주당의 임복진(林福鎭)의원과 무소속 강운태(姜雲太)전내무부장관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을 벌이고 있다.호남에서 무소속 후보가당선된다면 이곳이 가장 유력한 지역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그러나 민주당 임의원의 뒷심도 만만치 않아 예측불허다. 임의원은 ‘광주·전남 시도민연대’의 낙선대상 명단에 포함된 데다 최근민주당 소속 구의회 의원들의 집단 탈당 등으로 몸살을 겪었다. 그럼에도임의원측은 그동안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집권당 후보를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확산,승기를 잡았다고 보고 있다.안보·통일문제 전문가로서 현정부의 안정적 개혁을 주도한다는 선거전략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붙들고 있다는 것이다. 강전내무부장관은 각종 여론 조사를 근거로 임의원을 앞서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선거 전략은 인물본위의 투표분위기 조성에 맞춰져 있다. 또 광주시장 등 전문행정관료 출신으로 주민들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있는것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386세대인 무소속 송갑석(宋甲錫)씨는 젊음과 참신성을 내세우며 젊은층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한나라당 진선수(陳善守)위원장은 여당 일색의 호남 물갈이론을 제기하고있으며 무소속 강도석(姜度錫)씨는 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표밭갈이에 나서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hchoi@
  • 오늘 이동녕선생 60주기…되돌아본 업적

    지난 96년 5월17일 15대 국회 개원을 며칠 앞두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한 역사적 인물의 흉상 제막식이 거행됐다.국회의사당 내에 특정인의 동상이 건립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흉상의 주인공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현 국회)의 초대 의장을 지낸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1869∼1940)선생.국회가 선생의 동상을 의사당 내에 건립한 것은 상해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초대 의장을 맡아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해방 때까지 선생은 임정의 ‘기둥’ 역할을 했다.임시정부 공식출범 직전인 1919년 4월10일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국호 ‘대한민국’과 임시헌법·관제(官制)를 제정,3일 후인 4월13일 이를 만천하에 공포하였다.선생은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을 비롯해 의정원 의장 3회,주석(主席) 4회 등 무려 일곱 차례나 임정의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이는 임정의 역사를 통틀어 유일한 기록이다. 1869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1897년 독립협회 활동으로 이준·이승만 등과 함께 7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동지들과 결사대를 조직,대한문 앞에서 항의 연좌데모를 벌이다 또 2개월의 옥고를 치렀다.1907년 양기탁·유동열·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한 선생은 1910년 국권 상실 후 만주로 망명,신흥무관학교를 창립하여 초대 교장에 취임,군사교육을 통한 독립정신 고취에 진력하였다. 국내는 물론 만주·노령(露領)·중국 등 국내외에서 해방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생은 일제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지조를 지켰다.또 임정 내 이념·계파간 갈등 속에서도 별다른 ‘잡음’없이 요직을 중임한 것은선생이 공명정대한 업무처리와 온후한 인품으로 동지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은 때문이다.백범 김구(金九)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선생은 재덕이출중하나 일생을 자기만 못한 동지를 도와서 선두에 내세우고,스스로는 남의 부족을 보충하고 고쳐 인도하는 일이 일생의 미덕이었다”고 평한 바 있다. 한편 선생의 여러 분야에 걸친 활동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언론계활동이다.1897년 ‘독립협회사건’으로 투옥,이듬해 출감한 선생은 당시 이종일(李鍾一)이 경영하던 ‘제국신문’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설을쓰기도 하였으며,1907년 신민회 조직 후에는 당시 구국항일지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을 지원하기도 했다. 정운현기자 jwh59@. *이동녕선생 60주기 추모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석오 이동녕(李東寧) 선생의 60주기 추모식이 13일 오후 2시 선생의 묘소가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열린다. 석오이동녕선생기념사업회(회장 姜英勳)가 주최하는 이 추모식은 상동교회이동학 목사의 추모기도를 시작으로 인하대 윤병석 명예교수의 약사 보고,추모·추념사,추모가 제창,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된다.추모식에는 최규학 국가보훈처장,고건 서울시장,윤경빈 광복회장,박유철 독립기념관장,유족대표 이석희 (주)대우 상담역을 비롯해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다. 정운현기자. *석오 이동녕선생 60주기에 즈음하여. 선열의 유지가 날로 퇴색되는 개탄스런 시기에 석오 이동녕 선생의 60주기를 맞음은 실로 감회가 새로울 뿐 아니라 나라와 겨레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20대 젊은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앞날이 보장되었음에도 모든 영화를 버리고 독립운동이라는 가시밭길로 뛰어든 것은 선생의 혁명적인 기질이 짙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선생의 독립투쟁은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눈보라치는 만주벌판,얼음땅 시베리아,연해주,그리고 황야의 중국대륙에 이르기까지 수륙(水陸) 수만리를 뛸 만큼 웅장하고 방대한 발자취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우리 민족운동사에서 선생의 높은 위상은 가난과 무지에서 방황하던 암울했던 구한 말 뛰어난 문필로 여성해방운동과 민권사상을 주창했던 선각자였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이같은 민족사상의 맥락은 이미 3·1의거 직전 만주땅길림성에서 이른바 ‘무오(戊午)독립선언’에 앞장섰던 기개에서도 찾을 수있다.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 초기 선생은 초대 의정원 의장으로서 역사적인 민주헌법 제정에 앞장섰는데 이는 선생의 투철한 민주사상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임시정부 주석 4차례,의정원 의장 3차례 등 총 7차례에 걸쳐 임시정부의 대임을 맡는 동안 선생은 항상 온화한 성품으로임시정부를 이끌었다. 독립운동의 열기가 한창이던 1910년대 선생은 국권회복을 위해 인재양성이시급함을 통감하고 남만주 해외망명기지에서 최초의 교육기관인 ‘서전서숙’에 손수 출자하여 동지들과 운영하였다.또 최초의 군사학교인 ‘신흥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에 부임해 후일 대한광복군의 초석을 다졌다.선생의 이같은 교육적인 열정은 멀리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군 사관학교를 세우려다 발각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선생은 평소 덕행과 예절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당시 친러파와 친일파 간의 사상적 갈등,각 지방 파벌 간의 혼란 속에서도 선생은 초연한 입장에서 민족진영의 단합체인 임시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수한 ‘터줏대감’이었다.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조선총독 사이토가 한국인 관리를 중국에 밀파,선생의 귀화를 적극 권유하였으나 일제의 유혹을 끝내 물리쳐 선생을두고 ‘불멸의 민족혼’으로 칭송하고 있다. 선생은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는 자리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이를 중재하고 수습하였는데 이는 겸손과 높은 식견을 갖춘 선생의 영도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고 동지들이 증언하고 있다.선생을 두고 ‘민족운동의 선구자’이자‘임시정부의 총수’라고 일컬었던 것은 강직한 성품과 철두철미한 민족주의사상,그리고 애국철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겠다.선생은 항상 남을 존중하고 남을 앞세우며 자신은 뒷전에서 도와주는 미덕의 소유자였다. 임시정부 시절 선생은 해외로 망명하기 전 서울 상동(尙洞)교회에서 기독교에 입교해 전덕기 목사를 알게 된 것을 늘 행복해 했다.또 그 시절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최초의 항일조직인 신민회를 창건한 사실을 몹시 그리워했다고전해오고 있다.1940년 선생은 조국광복을 불과 5년 앞두고 이역만리에서 향년 72세로 서거하였다.독립운동의 와중에서 참아왔던 지병인 급성폐렴이 악화된 탓이었다.선생은 유언으로 ‘민족진영의 대동단결과 정당의 통합’을남겼다.선생의 장례는임시정부 수립 후 첫 국장으로 예우하였으며 해방 후백범 김구선생의 지시로 유해가 봉환됐다.오늘 선생의 60주기를 맞아 선생의 영전에 향을 사르며 그 큰뜻을 되새긴다. 김석영 이동녕선생 기념사업회 상근부회장
  • 조선족 여성화가 박춘자 ‘공필화’전

    중국 화단의 유망주인 조선족 여성화가 박춘자(38)가 서울 관훈동 종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14일까지 열리는 이 초대전에는 ‘신부’‘궁녀’등 공필화(工筆^^) 24점이 나와 있다.한국에서의 개인전은 지난 95년에 이어 두번째다. 공필화는 당대(唐代)에 시작된 중국회화의 한 장르로 사실적 묘사와 채색,섬세한 붓놀림 등이 특징.정밀한 묘사가 필요한 화조화나 영모화 등에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다. 박씨는 수천년 역사의 중국 공필화 전통을 이어받되 독특한 기법을 살려 공필담채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명주나 화지 대신 옥양목이나 광목 같은것을 바탕재로 쓰고 그 위에 은근한 선과 색을 구사하는 것.그가 그리는 것은 주로 조선족 생활풍속이나 조선여인의 표정이다.그 분위기는 다분히 정적이고 몽환적이다.이와 관련,판지에즈 중국당대공필화협회장은 “박춘자의 그림은 인물의 의태(意態)를 낚은 다음 묘사에 무게를 싣는 것이 특징”이라며”당나라 화가 장쉬안(張萱)의 ‘도련도(搗練圖)’나 조우팡(周昉)의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에 나오는 일하는 여인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말한다. 소수민족의 애환도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그림 소재.전시중인 ‘아이니족소녀’‘이족 여인들’같은 작품엔 소수민족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그대로녹아 있다. 중국의 정예 교육기관인 베이징중앙미술학원에서 공필화를 전공한 박씨는 현재 국비 유학생으로 홍익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공부하고 있다.청와대에서도 ‘태족소녀’라는 그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그는 한국과 인연이깊다.(02)737-0326.
  • 남북한 여성지도자들 16일 베이징서 교류 협의

    남북한 여성 지도자들이 오는 1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여성교류문제를 협의한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여성위원회 관계자 7명은 16일 베이징에서 북한 ‘아시아 평화와 여성연대를 위한 조선여성협회’의 홍선옥 회장 등과 만나기위해 접촉승인을 신청해,검토후 허가해줄 계획이라고 통일부 당국자가 8일 밝혔다. 북한 주민접촉 승인을 신청한 사람은 김길자 경인여대 학장,최영희 내일신문사장,박정자 대한약사회 여성위원장,강교자 대한 YWCA연합 사무총장,박숙현 새마을부녀회 중앙연합회장,정현백 성균관대 교수,송경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남북협력사업부장 등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여성관계자 6명은 지난해 9월 북한을 방문,남북여성교류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4·13 정치신인 열전] (하) 충청·호남·영남권

    호남,충청권과 영남권에도 신인 바람이 불고 있다.이들 지역의 정치 신인은다른 지역에 비해 당선 가능성이 높다. 각각 민주당,자민련,한나라당의 텃밭이어서 공천이 당선으로 연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충청권] 민주당의 경우 대전에서는 전직 기자들이 눈에 띈다.중앙일보 출신의 박병석(朴炳錫)전서울시정무부시장과 김창수(金昌洙)전 조선일보기자는서갑과 대덕에 각각 뛰어들었다. 충북 충주에는 이원성(李源性)전대검차장이 있다.이근규(李根圭)전고려대총학생회장과 노영민(盧英敏)청주환경운동연합 이사 역시 제천·단양과 청주흥덕에 각각 도전하는 젊은 신예다. 충남에서는 전용학(田溶鶴)전SBS앵커가 자민련에서 옮겨가 천안갑에 출진한다.서산·태안의 문석호(文錫鎬),부여의 정용환(鄭用煥)씨 등 변호사 출신도있다. 자민련의 경우 최환(崔桓) 전부산고검장이 대전 대덕에서 공천을 받았다.이창섭(李昌燮) 전SBS앵커는 유성에서 등원(登院)을 시도하고 있다.충북 7곳중에는 충북도의회 의장,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낸 조성훈(趙誠勳)씨가 유일하다.충남 역시 11곳 중 아산의 원철희(元喆熙) 전농협중앙회장과 공주·연기의 정진석(鄭鎭碩)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등 2명만이 신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전에서는 인창원(印昌元·중구)대덕대 교수가 유일하다. 그러나 충북에서는 청원을 빼고는 6곳 모두 신인들로 채웠다.이충범(李忠範·진천 괴산 음성)전청와대사정비서관,한창희(韓昌熙·충주)충북도지부 사무처장 등이 나섰다.충남에서는 배유현(裵有鉉)전중앙일보 경제부 차장이 논산·금산,최승우(崔昇佑)전육본인사참모부장이 예산에 뛰어들었다. 한국신당도 전만수(田萬洙·청양 홍성)전국회정책연구위원,이성구(李聖九·공주)홍익대교수,윤석조(尹錫祚·청주상당)대한해운공사대표 등을 출진시켰다. [호남·제주] 광주와 전·남북은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먼저 민주당은 광주 6개 선거구 가운데 3인의 신인을 앞세웠다.동구의 김경천(金敬天)광주 YWCA사무총장,북을의 김태홍(金泰弘)전 광주시정무부시장,전갑길(全甲吉)전 시의원 등이 그들이다.김경천씨는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과 여성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대변인 출신인 이영일(李榮一)의원을 밀어냈다.이의원의 무소속 출마선언으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김태홍씨는 전광주 북구청장 등을 지냈고 전갑길씨는 광주시의회 부의장을 지낸 신예다.자민련에서는 동구의 구봉우(具鳳祐)전 축산신문부사장,한나라당에서는 조봉훈(趙俸勳·동)전 시의원,심안섭(沈安燮·서)일진건설부사장,강경구(姜景求·북을)삼익주택이사 등 신인을 내세웠으나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전남에서는 13개 선거구 중 담양·곡성·장성의 김효석(金孝錫)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함평·영광의 이낙연(李洛淵)전 동아일보 국제부장 등 3명의 신인이 공천을 받았다.이와 함께 자민련의 정동조(鄭東朝·해남·진도)진도영농대표,한나라당의 최응국(崔應國·해남·진도)씨 등이 신인으로 꼽힌다. 전북의 경우 민주당은 10개 선거구 중 9곳에 현역을 공천하는 등 정치신인을 배출하지 못했다. 호남에서는 그러나 광주 광산의 시민운동가 출신 나병식(羅炳湜)씨,전남 보성·화순의 박주선(朴柱宣)전 청와대법무비서관,광양·구례의신홍섭(辛泓燮)전 도의원,전북 남원·순창의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무소속신인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민주당의 장정언(張正彦)전 도의원 정도가 눈에 띄는 신인이다.건설업을 하는 사업가로 지역사회에서 신망이 높다. [영남권] 민주당과 자민련은 ‘전략적 거점’확보를 위해 일부 지역에서 거물급 신인들을 출전시켰다.한나라당은 ‘공천개혁’을 내세워 신인들을 등장시켰다.민국당도 각 당 공천에서 탈락한 경쟁력 있는 신인들이 대거 몰려 공천경쟁이 치열하다. 대구에서는 민주당에서 최경순(崔敬順·북을)영남여성포럼대표 등을 출전시켰고 자민련은 우태주(禹泰周)정책위위원을 달성지역구 후보로 냈다. 한나라당에서는 지명도가 높은 현승일(玄勝一·남)전 국민대총장,김만제(金滿堤·수성갑)전 경제부총리를 정치 무대에 처음으로 올렸다.민국당은 이수성(李壽成·중구)전총리를 비롯,양종석(梁鍾錫·북을)전 소청심사위원장,이진무(李鎭茂·수성을)전대구부시장,신동철(申東喆)국회부의장 비서관 등 관료출신들을 대거 포진시켜 한나라당과의 한판대결을 예고했다. 경북지역에서 민주당은 김동태(金東泰·고령 성주)전농림부차관 등을 앞세워 ‘깃발꽂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자민련에서는 TV날씨 예보로 유명한김동완(金東完·김천)씨 등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국당 김윤환(金潤煥)의원에게 도전장을 낸 김성조(金晟祚)경북도의원,이인기(李仁基·칠곡)변호사가 뛰고 있다.민국당에서는 김현동(金顯東·청송 영덕)전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이 출마의사를 밝혔다. 부산에서 민주당은 김정길(金正吉)전 정무수석 노무현(盧武鉉) 김운환 의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정치 새내기들을 내세웠다.정종엽(鄭鍾燁·중 동) 전 대한약사회장 등이 눈에 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 지역이 공천 파동의 진원지가 되면서 당초 서구에 공천됐던 이상렬(李相烈)씨가 도중하차하는 등 정치신인들은 공천 문턱넘기부터어려웠다.도종이(都鍾伊·부산진을)전 부산시의원,권태망(權泰望·연제)전부산시의원,엄호성(嚴虎聲·사하갑)변호사가 치열한 경쟁 끝에 공천받았다.하지만 낙천에 반발,민국당으로 자리를 옮긴 최광(崔洸·사하갑)전보건복지부장관이 엄변호사에게 도전장을 내 신인끼리의 대결이 볼 만하게 됐다.유흥수의원 지역인 수영에 신종관(辛宗官)전 수영구청장이,영도에는 김용원(金龍元)변호사가 출마채비를 갖추고 현역의원을 긴장시키고 있다. 한나라당은 울산에서 법조비리파동으로 퇴진한 최병국(崔炳國)전 중수부장을 남구에 투입했다. 경남에서 한나라당은 이주영(李柱榮·창원을)변호사 김학송(金鶴松·진해)전 경남도의원 등을 출전시켰고 자민련은 정해주 전 국무조정실장을 유망주로 꼽고 있다. 민국당에서는 이청수(李淸洙·통영·고성)전KBS해설위원실장,유진하(柳晋河·창녕·밀양)전 국회의장비서관 등이 출마채비를 갖췄다. 강동형 박대출 최광숙기자 yunbin@
  • [4·13 정치신인 열전] (중)경기·인천·강원지역

    경기·인천·강원지역의 신인 바람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정치 초년생의면면에서 여야 각당이 신인 발굴에 기울인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이지역에서 16대 총선 공천자로 확정된 신인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이다.서울이 참신성과 전문성에 역점을 뒀다면,경기도를 비롯한 인천·강원은 지역에서의 신망에 무게를 둔 결과로 보인다.신인들의 출전현황을지역별로 살펴본다. ◆경기.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제1당 경쟁이 치열하다.자민련은 틈새 공략에치중하고 있다.정치신인들의 면면은 각 당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먼저 민주당은 경기 41개 선거구 가운데 연천·포천을 제외한 40곳에 공천자를 냈다.이 가운데 절반 가량인 19곳에 정치신인을 포진시켰다. 현역의원 지역구(15곳)를 감안하면 대부분의 지역구에 정치신인들을 내세운셈이다.15대 총선에서 낙선한 인사를 재공천한 경우는 5곳에 불과했다. 신인선발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386세대’가 선봉에 섰다. 윤호중(尹昊重·구리) 전 청와대국장,이종걸(李鍾杰·안양 만안)·정성호(鄭成湖·동두천·양주) 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윤전국장은 서울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국민회의 부대변인을 역임했다.친근하고 소탈한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평가다.이변호사는 여성인권문제 전문가다.여성평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총무를 맡았다.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을 승소로 이끈 변호사로 직장내 성희롱관련 법안 초안자이기도 하다.정변호사는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경기 북부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있다. 열세지역에서는 지명도를 앞세워 공략하고 있다. 아파트 밀집지역인 성남 분당이 대표적인 곳이다. 강봉균(康奉均·분당갑)전 재경부장관과 정보전문가인 이상철(李相哲·분당을) 전 한통프리텔 사장을 내세웠다. 정치 무관심층이 많은 수원 3개 선거구 가운데 장안에는 김훈동(金勳東) 전농협경기 본부장, 팔달에는 전수신(全秀信) 전 삼성라이온스 대표 등 2명의정치신인을 공천했다.지명도를 앞세워 정치 무관심의 벽을 무너뜨린다는 전략이다. 이와함께 고양덕양갑에 출사표를 낸 곽치영(郭治榮) 전 데이콤 사장,일산갑의 정범구(鄭範九) 시사평론가,오산·화성의 강성구(姜成求) 전 MBC 사장,시흥의 박병윤(朴炳潤) 전 한국일보 사장,용인을의 남궁석(南宮晳) 전 정통부장관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신인으로 꼽히고 있다. 과천·의왕의 이철(李哲) 전 수원지검 차장검사,이천의 이희규(李熙圭) 전도의원,안성의 심규섭(沈奎燮) 전 평택공대 이사장,용인을의 김윤식(金允式)신동에너콤대표 등도 눈여겨볼 만한 신인들이다. 자민련도 15명 안팎의 신진인사들을 공천했다.이들 가운데 파주에 출마하는김윤수(金允秀)부대변인이 돋보인다. 김부대변인은 조선일보기자 출신으로호텔·신문사 경영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부천 오정의 이재옥(李載玉)세무사,안산을의 이명호(李明鎬)법무사 등의 선전도 기대된다.고양 일산을에는 신동준(申東埈) 전 외대강사를 공천했다. 한나라당 역시 많은 정치신인(16명)을 출진시켰다.이들 가운데는 경쟁력 있는 신인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성남 분당갑의 고흥길(高興吉)총재특보,분당을의 임태희(任太熙) 전 재경부 서기관은 각각 민주당이 엄선한 강봉균·이상철 공천자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고양 덕양의 김용수(金龍洙)부대변인,용인을의 김본수(金本洙) 분당 본병원원장,김포의 구본태(具本泰)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도 선전이 기대되는 신인들이다.광주의 박혁규(朴赫圭) 전 도의원,가평·양평의 정병국(鄭柄國)지구당위원장도 마찬가지다.연천·포천에 자민련 이한동(李漢東)총재의 상대로나선 고조흥(高照興) 전 부장검사의 선전 여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인천. 수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경쟁력 있는 정치신인들이 현역의원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민주당은 남갑에 유필우(柳弼祐) 전 인천 정무부시장,남동갑에 김용모(金容模) 전 남동구청장 등 행정관료 출신을 투톱으로 내세웠다.이와함께 부평을의 최용규(崔龍圭)변호사,서·강화을의 박용호(朴容琥) 전 KBS 아나운서실장의 선전이 기대된다.‘386세대’의 리더인 계양의 송영길(宋永吉)변호사는보궐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지만 정치신인에 가깝다.박용호전실장과 한나라당 이경재(李敬在)의원,송변호사와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의원간의 불꽃 대결이 예상된다. 자민련도 중·동·옹진에 이세영(李世英) 전 중동구청장,서·강화갑에 권중광(權重光) 전 서구청장을 내세워 교두보 확보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중·동·옹진에 서상섭(徐相燮)위원장,남갑에 민봉기(閔鳳基)전 남구청장 등 2명의 신인을 내세웠다.한나라당은 11개 선거구 중 6곳에 현역의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강원. 여야 3당의 각축전이 치열하다.민주당은 9개 선거구 가운데 4명의정치신인을 내세웠다.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상룡(李相龍) 전 노동부장관을 신인에 포함하면 5명이나 된다.재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원주의 이창복(李昌馥)고문,태백·정선의 김택기(金宅起) 전 동부그룹 사장의선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홍천·횡성에 나서는 유재규(柳在珪) 전 홍천군수,영월·평창의 염동렬(廉東烈) 전 JC회장의 선전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평가다 자민련은 이참수(李站洙·속초·고성·양양·인제) 전 강릉대총장이,한나라당은 박세환(朴世煥·철원 화천 양구)변호사가 눈에 띄는 신인이다.한나라당은 영월·평창의 김용학(金龍學)변호사의 선전도 기대하고 있다. 강동형기자
  •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의 소설같은 삶

    한길사의 ‘위대한 한국인’ 시리즈 10번째 작품으로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인간으로 살고 싶다’가 발간됐다. 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여성작가 여성해방론자로 일컬어지는 나혜석(1896∼1948)의 생애는 많이 이야기되어져 왔다.그러나 528쪽 분량에 100여 컷의 사진이 수록된 이 평전은 한국 여성으로 드물게 역사적 의미와 ‘소설같은’ 흥미를 제공하는 삶을 산 인물을 매우 양감있게 그려내고 있다.저자 이상경 교수(한국과학기술원)는 한국문학사에 ‘풍문만 요란한 채 실제 작품은 거의없는’ 여성작가로 기록돼 온 나혜석을 80년대 말 재발견,1차자료 모으기에나섰다.그리고 그의 작품과 인물에 깊숙이 빠져들었다.10년 가까이 나혜석을과거와 풍문으로부터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온 저자는 이 신여성의 삶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의 자의식이라고 말한다.근대사회로 넘어오는 시절 나혜석은 언제나 ‘자신이 내딛는 한걸음의 진보가 조선여성의 진보가 될 것이라는 자의식’을 뚜렷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재영기자
  • [金大中대통령 취임2주년] (하)남은 3년 청사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 철학의 바탕은 국가경쟁력 강화에 있다.이를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삼았고,4대 개혁을강도높게 추진하고 있으며,각종 개혁입법의 제·개정작업도 꾸준히 진행중이다.또 한반도 냉전구조 종식을 위해 국제 외교무대를 누비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김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향후 3년 국정 청사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문(愚問)일지 모른다.김 대통령의 업적은 뭐라 표현하든 국가경쟁력 강화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을 지식과 정보로 보고 있다.지식 및 인터넷혁명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고,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나아가문화창조력과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우리 국민에게 지금이 도약을 위한 가장 적합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위치 또한 유리하다는 판단이다.동아시아지역의 물류·금융·무역·투자 등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임기 중 국제적인 비즈니스단지를 조성,세계 유수의 기업과 금융기관을 유치하겠다는 구상도 이에따른 것이다. 구체적 비전을 살펴보면 먼저 정보화시대에 맞는 전자민주주의의 실현을 우선 들 수 있다.김 대통령은 “인권과 민주주의에서 앞서가는 민주선진국가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취임 2주년을 계기로 개통된 ‘인터넷 신문고’와 각종 개혁입법의 제·개정,검·경(檢·警)의 중립,건전한 여야관계 구축,지역주의 타파와 국민 통합 등이 세부 목표다. 여성의 권익보호와 지위 향상도 주요 목표의 하나다. 4대 개혁의 완성을 통한 탄탄한 경제체제 구축도 마찬가지다.특히 금융 부문이 전문성과 건전성을 갖추도록 개혁한다는 복안이다.다시는 ‘외환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또 2%대의 물가안정 기조 속에 임기 말엔 1인당 국민소득을 1만3,000달러로 올리고 세계 7대 순채권국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무엇보다 생산적 복지를 통한 중산층 중심의 사회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이들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는 복지국가의 구현인 것이다. 냉전체제 종식과 더불어 남북한 평화를 정착시켜 남북간에 자유로운 교류와왕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한반도의 평화안정도 청사진의 하나다. 이러한 비전은 결국 정보 강국화와 연결되고 있다.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와 교육의 일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차세대의 주역인 젊은이들을 위해 2002년 목표인 ‘교육정보화 종합계획’을 올해 안에 완결짓고 2005년까지초고속통신망을 구축하려는 노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정 청사진은 4월 총선결과와 이에 따른 공동정권 유지 여부 등 향후 정국 추이가 가장 큰 변수이고,이는 김 대통령이 직면하게 될 첫도전이기도 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中언론 인터뷰기사 보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회복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끈 뛰어난 지도자라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23일 ‘발전과 재도약을 미리 준비한다’는 제목으로김 대통령 회견기사를 국제면 머릿기사로 다뤘다. 김 대통령은 회견에서 외환위기 극복은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 등을전개하고,정부는 금융·기업·공공·노사 분야 등 4대영역에 대한 구조조정 실시 및 부정부패를 일소 등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인 공동 노력의 결과라고 밝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 발발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데다 금강산 관광과 병행해 남북간 문화·체육 교류가 크게 늘어나는 등 두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도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대북(對北)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21세기를 정보화 시대로 진단한 김 대통령은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첫발을 잘못 내디디면 주변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 2010년까지로 예정했던 초고속 정보통신망 건설계획을 2005년으로 5년 앞당기기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의 유력한 격주간 인물평론지 중화영재(中華英才)의 2000년 4호는김대통령을 표지인물로 다루면서 7개면에 걸쳐 ‘넘어뜨릴 수 없는 강력한인물’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이 잡지는 김 대통령이 금융위기를 극복함으로써 탁월한 능력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김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데 힘입어 97년 말대통령선거에서는 40%대의 득표로 당선됐으나 지난해 말 지지도는 82%로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김규환기자 khkim@. *金대통령 최근 어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전직 대통령에서부터 환경미화원,소년·소녀가장,무의탁 노인 등 소외 계층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하다.지난 2년 동안 무려 1,881회(하루 3.8회)의 크고 작은 행사를 가졌다. 김 대통령이 이들을 만나 ‘말씀자료’(청와대에서 부르는 대통령 당부사항)’를 얘기하는 시간은 20∼30분 정도씩 잡혀 있다.하지만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씀자료’의 생명력은 전적으로 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업그레이드(단계를 높임) 하기 때문이다.저명 인사 접견이나독서 등을 통해 새로운 버전이 생기면 삭제와 추가를 반복한다. 정보화를 강조하면서 등장한 단골 메뉴는 ‘해동불교’와 ‘조선유학’이다.우리 민족의 높은 교육열과 문화창조력을 강조하기 위해서다.중국으로부터불교와 유학을 받아들였지만 동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최근 추가된 대목은 80년대 초 옥중에서 읽었다는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과 우리 민족의 ‘신명’이다.민주주의와 정보화는 수레의 양바퀴라고 설명한다.또 국민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문한다. 미국 시스코사의 챔버스 사장과 GE사의 잭 웰치 회장,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의 어록도 자주 인용한다. “산업혁명은 200년이 지나서 바뀌었지만 인터넷 세상은 30년이면 바뀐다”(챔버스 사장) “한국 사람의 핏속에는 모험정신이 흐르고 지적인 게 있다”(잭 웰치 회장),“인터넷 발전을 위해 교육과 개혁을 해나간다면 선진국에 몇년씩 뒤처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따라갈 수 있다”(손정의 사장). 양승현기자
  • “동아시아 전체 틀속에서 朝鮮 접근”

    “역사와 삶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사료를 함부로 뛰어넘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것에 얽매여서도 안되지요.역사 저술에는 언제나 생활현장이 중시돼야 합니다”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씨(62)의 학문 세계에는 언제나 ‘도전과 집념’이란단어가 따라 다닌다.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이론과 접목시켜 나가는 것도 그의 이같은 독특한 역사의식에서 나온다. 그는 최근 지난 95년부터 집필하고 있는 ‘한국사 이야기’의 세번째 산물인 ‘조선 전기편’(전 4권)을 출간했다.2003년까지 한길사가 계속 펴낼 시리즈는 총 24권 분량.우리 역사를 모두 되짚어 보는 방대한 작업이다.개인이 사건사와 정치사,문화사,경제사를 현장 답사를 통해 통사형식으로 쓰는 것은 해방 이후 처음이다. 이씨는 지난 98년 6월 ‘고대편’ 4권을 첫 출간한 뒤 지난해 1월 ‘고려시대편’(전 4권)을 써내 한국 중세사 연구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에 대해 “해방이후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생활사와 문화사적측면에서 풀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작업에 나선 95년 7월부터 전북 장수와 김제,경기도 구리 등으로 집필실을 옮기면서 매년 200자 원고지 5,000여장을 쓰고 있다.이같은 강행군으로 무리가 따랐는지 요즘 손의 마비증상과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자주 찾는다. 조선시대편은 조선의 건국부터 청일전쟁(병자호란)까지를 아우른다.우선 조선시대사를 명·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따라서 그는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으로,병자호란은 조청전쟁으로 용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조선의 유교적 통치이념이 민중과 생활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심층해부한다.음식 주거 의복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조선 여성들의 억압적삶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예를 들어 담배의 유입 과정을 다루면서 광해군이 담배 냄새를 싫어해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예절이 생겼다고 유래를 밝힌다. 이씨는 “조선시대의 역사는 많은 연구 결과물을 갖고 있어 고대와 고려시대보다 집필하기에 편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역사 관점은 주역사상의 대가이면서 야인 기질을 가졌던 부친 이달선생의 생활방식과 사상,학문의 방향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대구에서 태어나 16세때 가출,고아원 생활 등을 거치면서 광주고와 서라벌 예대를 중퇴하기도 했다.어린시절과 청년기는 방황과 새로운 세계의 경험,그리고 빈한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60년대 중반이후에는 민족문화추진위원회와 규장각에서 고전과 민족사를 연구했고,86년부터는 소장학자를 중심으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답사기행을 주도해 학계에 새로운 기풍을 조성하는 결실을 거두었다. 저서로는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이야기 인물한국사,역사와 민중,한국의 파벌,허균 등 30여종이 있다.그는 요즘 ‘역사의 현장성과 생활화’란 일념으로 한달에 한번 꼴로 답사길에 오른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는 “주위의 학문적 편의와 혜택을 터럭만큼도 받지 않고 오로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뜻으로 40여년을 역사 탐구에 몰두해 온 것이그의 삶”이라면서 “‘한국사 이야기’도 이같은 의지의 결산물”이라고 말한다. 정기홍기자 hong@
  • 올 곧은 元老 12人의 인생과 학문

    흔히 우리사회에는 원로가 없다고 한다.왜 없을까마는 배우고 닮을만한 표상이 많지 않다는 뜻일게다.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학문적 업적은 물론 왜곡된 현실모순 속에서도 올곧은 삶을 살아온 원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다만 이들은 남앞에 나서기를 자처하지 않았고 더러는 질곡의역사속에서 폄하돼 가려져 왔던 탓이 크다. 역사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지 ‘역사비평’은 우리사회에서 학문적 성과와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고 있는 원로 12명의 인터뷰기사를 묶어‘학문의 길 인생의 길’(역사문제연구소 엮음)을 출간하였다.주요 면면을보면,한국사 전공자로 이우성(민족문회추진회 회장)·임창순(전 태동고전연구소 소장)·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서양사 전공자로 민석홍(서울대 명예교수)·차하순(서강대 명예교수),경제사 전공자로최호진(한국경제학회 명예 회장)·주종환(동국대 명예교수),언론학 전공자로송건호(전 한겨레 신문 회장)·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이상희(전 서울대교수협의회장),그리고 여성학(사회학)전공자로 이효재(정대협 명예공동대표)등.이들 가운데 임창순 선생은 지난해 작고하였고,송건호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현재 투병중이다.나머지 인사들도 대개 일선에서는 은퇴하였으나 연구·사회활동의 열정은 아직도 여전하다.정년퇴임 이후 더 바쁘고 노후가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2인은 해방후 척박한 우리 사회·학계를 특별한 관심과열정으로 주도하고 개척해온 선구자들로 우리 ‘지성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특히 개인사적 기록을 넘어 학자로서의 삶,온몸으로 맞서싸운 시대상황과 그 이면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도 담고 있어 우리 ‘동시대사의 생생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선비로 불리는 이우성은 식민사학 극복과 민족사학 성립에 기여한 역사학자로,최호진은 1942년 ‘근대조선경제사’출간을 계기로 한국경제학 연구에 이정표를 남긴 한국경제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다. 또 민석홍은 프랑스혁명 연구와 한국민주주의 연구에 큰 성과를 남겼으며,임창순은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쳤고 4·19 당시 교수단데모를 주동하였다.사재를 모두 재단에 기부하였으며 ‘화장유언’을 남기기도 했다.학자보다는 언론인으로 유명한 송건호는 일생을 반독재 언론투쟁에바쳤으며 한겨레신문 창간의 주역이기도 하다.강만길은 식민사관 극복과 민족해방운동사·분단문제에 천착해온 실천적 지식인으로 ‘분단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주도적으로 창립한이효재는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타파에 앞장서는등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적 활동을 해왔다.언론인 출신이자 언론학자인 리영희는 분단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등사회비평서를 통해 시대를 앞에서 이끌었으며 수 차례 대학에서 쫓겨나 감옥생활을 했다.차하순은 한국의 서양사학을 반석 위에 올린 공로자이며,주종환은 농업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이상희는 비판적 언론학의 선구자로 언론개혁을 처음 주장했다.끝으로 조동걸은 한국독립운동사와 현대사학사 개척자로,특히 의병연구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은 “주로 진보적 학문 분위기를 지닌 인물로현실의 모순에 타협하지 않고 뚜렷한 자기 주견을 내세우며 치열한 삶을 산
  • 조선무희는 경기·향기로 구성…국가행사땐 진찬소 통합 운영

    ‘용의 눈물’이나 ‘왕과 비’같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TV사극을 보면종종 왕과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희(呈才女伶)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나온다.그런데 적어도 공식적인 궁중연회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고예술사학자들은 지적한다. 궁중의 연회는 크게 임금과 신하를 위한 외연과 왕대비와 왕비·내외명부를위한 내연으로 나누어진다.그런데 외연의 정재(춤)는 모두 남성출연진(舞童),내연의 정재는 모두 여성(女妓)들에 의해 공연됐다는 것이다. 궁중연회에 출연한 예술가들은 요즘말로 하면 국립예술단의 단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그렇다면 국립예술단의 여성단원,특히 무용수들은 누구이고,어떻게 충당했을까. 송방송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전 국립국악원장)의 ‘조선후기선상기(選上妓)의 사회제도사적 접근’이라는 논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이 글은 송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음악사논총’(민속원)에 실렸다. 논문은 순조가 마흔살 되던 기축년(1829년) 한해 동안 궁중에서 열린 각종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進饌儀軌)’를 바탕으로 한다.의궤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경과나 경비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자세히 적은 책이다. 송교수에 따르면 무희들은 경기(京妓)와 향기(鄕妓)로 구성됐다.경기는 내의원과 혜민서의 의녀(醫女)와 상의원의 침선비(針線婢) 가운데서 뽑았고,지방관아 소속의 향기는 각 도에서 선발했다.각 도에 배정된 향기의 숫자는 지방수령들이 자의적으로 선발하여 채워졌다.그러나 처용무 등 특수한 레퍼토리에 출연할 기생은 궁중잔치를 위한 임시관청인 진찬소(進饌所)가 직접지명하여 관찰사에게 지시했다고 한다.이들이 바로 선상기다.글자 그대로 ‘골라서 뽑아 올린’ 기생이다.이런 전통은 영조(1725∼1775) 때 생긴 뒤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평상시에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각각 소규모의 예술단을 유지하다,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는 통합하여 운영하는 제도인 셈이다. 국가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서는,지금 그대로 받아들여도 손색이 없는훌륭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궁중정재에출연한 여령들은 또 임금으로 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경기에 한했다고는 하지만 천인에서 해방되기도 했고,포목이나 비단을 받기도 했다.면천(免賤)의 혜택은 음악을 맡은 중앙행정기관인 장악원(掌樂院)의 악공과 악사들에게도 주어졌다.면천의 혜택이 비록 드물게 베풀어졌다고는 해도 조선이 완고한 신분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에 소속된 예술가들에 대한 대접도 요즘 보다 오히려 좋았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동철기자 dcsuh@
  • [미리보는 4·13총선] (6) 性의 벽을 넘는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여성 바람’이 드세다.비례대표 30%할당제 추진과 함께 지역구를 노리는 여성 인사 숫자도 여야 모두 과거보다훨씬 많다. 여성계는 “깨끗하고 참신한 여성정치인을 원하는 게 시대의 흐름”이라고주장한다.시민단체의 공천부적격자 명단에 여성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도그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프랑스에서 하원의원 선거시 남녀를 같은 비율로 지역구에 공천하도록 규정한 선거법이 확정된 것에 고무돼있다.이같은 ‘쾌거’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며 민주당과 한나라당 여성 출마희망자들은 7일 각각 기자회견과 간담회를 갖고 당지도부에 ‘지역구 공천시 여성후보를 최우선 배려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지역구 출마를 희망하는 여성 인사가 가장 많은 당은 새천년민주당이다.간판급인 장영신(張英信)지도위원은 서울 구로을 출마가 확실시된다.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전주 완산,소설가 유시춘(柳時春)씨는 경기 고양 덕양,조배숙(趙培淑)변호사는 전북 익산 조직책을 희망하고 있다. 김희선(金希宣)당무위원은 서울 동대문갑,김방림(金芳林)연수원부원장은 서대문을,유승희(兪承希)여성국장은 경기 광명갑을 타진하고 있다.이영성(李英成)경기도의회 부의장은 경기 성남분당,안상현(安相賢)강원도의원은 강원 원주,오정례(吳正禮)전주시의원은 전주 덕진에 도전중이다.한명숙(韓明淑)당무위원은 비례대표에 배려될 전망이다. 현역의원의 재도전도 만만치 않다.추미애(秋美愛)의원은 서울 광진을에서지역구 재선을 노리고 있다.전국구 신낙균(申樂均)의원은 경기 남양주에서,한영애(韓英愛)의원은 전남 보성 화순에서,곧 입당할 예정인 이미경(李美卿)의원은 경기 부천 오정에서 각각 표밭을 다지고 있다. 자민련에서는 황산성(黃山城)전환경부장관,김모임(金慕妊)전복지부장관,이미영(李美瑛)부대변인이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된다.순천향대 교수 출신인 신은숙(申銀淑)부총재는 서울 서초갑,탤런트 김을동(金乙東)씨는 서울 종로 출마를 준비중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朴槿惠·대구 달성)부총재가 탄탄한 지역기반으로재선이 무난하다는 평이다.역시 재선 도전장을 낸 임진출(林鎭出·경주을)의원은 선거구 통합으로 김일윤(金一潤·경주갑)의원과 공천싸움부터 먼저 통과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양경자(梁慶子·서울 도봉갑)전의원도 원내재입성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새 얼굴’로는 동대문 갑에 공천 신청을 한 미스코리아 출신 한승민(韓承珉)씨와 강남 갑을 희망하는 한의사 정지행(鄭智行)씨가 눈에 띈다.평범한전업주부 오춘자(吳春子)씨는 경북 의성,홍사임(洪思妊)국책자문위원은 서울동대문갑에 도전장을 냈다. 전국구 김영선(金映宣)의원은 서울 양천갑에,오양순(吳陽順)의원은 고양 일산에 출사표를 냈다.김정숙(金貞淑)의원은 전국구 3선을 노리고 있고 정무차관 출신인 김영순(金榮順)부대변인도 비례대표 공천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최광숙기자 bori@ *역대선거 여성진출 현황 최초의 여성의원은 중앙대의 전신인 중앙여대를 설립한 고(故) 임영신(任永信)씨였다.초대 상공부장관을 지낸 임씨는 1949년 경북 안동을 보궐선거에서 조선여자국민당 후보로 당선,제헌의회 홍일점으로 등장했다.여성의 정치참여가 어려웠던 시절인데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될 만큼 성의 장벽을 뛰어넘은 선두주자로 회자된다. 고(故) 박순천(朴順天)씨는 5선의 관록으로 60년대 야당 대표까지 맡았던대표적 여성 정치인이다. 8대 때 공화당 전국구의원을 지낸 여류시인 고(故)모윤숙(毛允淑)씨도 눈에 띈다. 9대 국회는 최다 여성의원을 배출했다.평균 서너명 남짓이던 관례를 깨고 12명이 원내에 진출했다.전국구 10석이 대한매일의 전신인 서울신문 출신 김옥자(金玉子)씨 등 여성에게 배려됐다. 자민련 부총재인 김모임(金慕姙)전 복지부장관과 황산성(黃山城) 전 환경부장관은 11대 때 민정당과 민한당 전국구 의원으로 나란히 정계에 입문했다. 11대 전국구의원과 12대 지역구 의원을 지낸 김정례(金正禮) 전의원과 14대 전국구의원 출신인 주양자(朱良子)전 의원은 모두 복지부(보사부)장관을 지냈다.14대 때 국민당 전국구를 지낸 탤런트 강부자(姜富子)씨도 이채롭다.민주당 권정달(權正達)의원의 부인 도영심(都英心)씨는 13대 전국구의원을 지냈고 자민련 박철언(朴哲彦)부총재의 부인 현경자(玄慶子)씨는 14대 때 남편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었다. 주현진기자 jhj@ *[집중조명] 서울 구로을 여성 출마자 가운데 ‘거물급’ 정치신인을 꼽자면 민주당 장영신(張英信)지도위원을 빼놓을 수 없다.애경그룹회장으로서 여성경제인협회 회장까지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9월 ‘여권 신당창당준비위 공동위원장’을 맡아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7일 당지도부에 ‘우선 공천’를 촉구하는 지역구 여성출마 희망자들의 기자회견도 주도했다.장씨는 한때 비례대표에 뜻을 두며 지역구 출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날 기자회견으로 지역구 출마가 기정사실화됐다. 지역구는 한광옥(韓光玉)청와대 비서실장이 맡았던 서울 구로을을 물려받을예정이다. 지역구 공천을 받을 경우 당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예상되므로 조직정비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게다가 구로을 지역은 공단이 위치,기업인 출신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장씨측은 “기업 경영을 하듯 지역구 경영을 하겠다”고 강한 의욕을 보이며 표밭갈이에 착수했다. 한나라당은 이신행(李信行)전의원의 부인 조은희(趙恩姬)씨가 지역구를 맡았다가 올해 초 법학박사인 이승철(李承哲·37)노무사로 조직책을 바꿨다.젊은 근로자들이 많은 지역 정서에 발맞춰 젊고 참신한 ‘386’세대를 내세워장씨와 맞대결시킨다는 방침이다. 공단지역의 표심(票心)이 기업가 출신의 ‘거물’을 택할지,아니면 노무사출신 ‘신예’를 택할지 주목된다. 이곳에선 김병오(金炳午)전의원도 사면복권 후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를 강력 희망하고 있다.자민련에서는 이홍배(李洪培)전의원이 출마채비를 갖추고있다. 최광숙기자
  • [새 세기를 새롭게 비전 ‘한국21’](6)전문·특성화된 대학

    ◆ 대학을 지식산업의 '허브'로 새천년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대학의 개혁이다.개혁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특성화·전문화에 매진해야 한다.지원자가 주는데다 꼭 대학에 가야한다는인식도 엷어지고 있다. 더욱이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 발전과 고급두뇌 양성의 동력이다.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이 교육개혁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질적 경쟁 보다는 양적 팽창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양적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대학이 191개,전문대가 159개나 된다.대학생은 인구 1만명당 495명으로 미국의 540명 다음으로 많다. 그러나 질적 측면은 언급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국제적인 학문·연구 수준을 가늠하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 게재 논문수(97년 기준)는 국내 최고의대학인 서울대가 1,395편으로 126위이다.1위인 하버드대학의 6분의 1,2위인동경대학의 4분의 1 수준이다.대만대의 1,529편 보다도 적다.세계 700위권안에 드는 국내 대학은 서울대를 포함,8개 대학이다. 국내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백화점식’ 학과 운영에 있다.없는 학과가없다.대부분의 대학이 그렇다.서울대에는 88개 학과가 있다.학과만 신설하면 학생들이 절로 들어온다. 하지만 2003년부터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2년제 이상의 대학의 정원이 71만5,000여명인 반면 지원자는 60만8,000명선이다.10만여명이나 부족하다.미달 대학이 속출할 수 밖에 없다. 대학도 ‘튀어야’ 살아남는다.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두뇌한국(BK)21’도 정부 주도의 대학 특성화인 셈이다.BK21에 선정된 대학은 학부의 통폐합과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李鉉淸)사무총장은 “이제 필요없는 학제나 학과는과감히 없애고 시장 수요에 맞는 학과를 개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립대는 시장경제에 신축성 있게 적응하는 교육,국립대는 기초 학문이나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등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필요하면 대학간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맞교환도 해야 한다.지방대는 지역 산업적 특성에 맞춰 학사과정을 바꿔 산학협동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충남 호서대는 벤처기술·벤처경영으로 특성화에 성공한 사례다.일찌감치학부제를 바꾸는 등의 구조조정을 통해 벤처분야를 특성화해 BK21의 특화분야에 선정됐다.교수진도 벤처분야에만 17명이나 된다.국내 대학의 학과당 평균 교수는 5∼7명에 불과하다.대구대는 장애교육,경상대는 농업생명,건국대는 농축산,숭실대는 중소기업 등을 주력 학과로 내세우고 있다. 교육부는 2002년부터 교수 계약임용제를 전면 실시할 계획이다.교수의 업적평가 및 연봉제도 시행된다.교수의 경쟁력은 학과와 대학의 위상을 좌우한다. 업적평가제가 도입되면 교수들의 연구업적·연구비수주액·학자배출능력·특허 등을 종합 평가해 월급에 반영한다.65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 ‘철밥통’이라는 말이 사라질 날도 멀지않았다. 김덕중(金德中)아주대 총장은 “21세기 대학은 지식산업과 국가경쟁력의 중추”라면서 “정부는 대학간 공정 경쟁의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권한만 갖고 대학의 변화를 유도하는 한편 대학은 스스로 거듭나기 위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명진에어테크-한양대 산학협동 모델로 명진에어테크(서울 성동구 성수2가 3동·사장 林潤徹)는 환기장치를 전문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이 회사와 한양대 기계공학부 이재헌(李在憲)교수의 만남은 산학협동의 모델케이스로 꼽힌다.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은 명진에어테크에 전수돼 성공적으로 상품화되고,대학에서는 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석·박사까지 배출하고 있다.기술력이 점차 쌓여가면서 독창적인 제품들을 속속 개발,제품화를 앞두고 있다. “많은 시간과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해 제품을 개발했지만 아무리 해도 일본제품의 성능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습니다.선진국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일은 우리같은 중소기업으로선 넘기 힘든 장벽이었습니다.” 임사장은 전국의 도서관을 다 뒤지며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지만 해답을 찾지 못했다.한양대 공대 교수들이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결성한 대학기술지원단(UNITEF)의 문을 두드렸다.이곳을 통해 한양대 공기조화냉동·전산유체(HVAC/CFD)연구팀의 이교수를 소개받아 제품성능 향상을위한 본격적인 협동연구를 시작했다. 명진에어테크가 이교수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제품은 지하주차장 환기용 ‘제트팬 방식의 환기시스템’.유체공학,소음공학,정밀금형기술이 동원된 이제품은 공인시험기관의 성능 테스트결과 일본제품보다 환기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에는 4개의 제트팬을 부착한 공기순환장치 ‘멀티팬’을 만들어 창원사이클경기장에 납품도 했다.이 장치는 실내공기를 도넛형태로 순환시켜 공간상층부와 하층부의 온도 편차를 줄여준다.체육관이나 대형 공장에 적용하면에너지를 크게 절약하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 임사장은 “자체적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대학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해결,성능을 개폭 개선했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제품개발에 성공하는 등추가적인 기술성과까지 올리고 있다”며 흡족해 한다. 명진에어테크와 이교수팀은 국내 기술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기류분포 시험기준을 제시했으며 환기효율을 높일 수 있는 적정배치 설계용 소프트웨어도 함께 개발했다.그동안 개발한기술을 중심으로 20여건의 특허 및 실용신안 특허를 출원했다.현재는 냉난방이 불가능한 대형공장에 작업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부분 냉난방이 가능하도록 하는 팬코일 유니트와 조선소 작업자들을 위한 용접흄(유해공기)제거장치를 공동개발 중이다. 이교수는 “연구결과가 신속하게 제품에 반영되면서 유기적인 협조체제가형성돼 제품개발은 물론 학문적인 성과까지 거두고 있다”며 “첨단분야이기때문에 학문적인 가치가 인정돼 석사논문 2편이 완성됐고 곧 박사 1명이 배출된다”고 전했다. 함혜리기자 lotus@ *외국 대학은 어떻게 미국과 일본 등 교육 선진국의 대학들은 몇몇 주력학과를 집중 육성,세계적인 명문으로 만들었다.많은 학과를 거느리며 ‘백화점식 운영’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흔히 미국의 명문대학으로 하버드대나 프린스턴대,예일대,메사추세츠공대(MIT) 등을 꼽지만 특정 분야로 국한시키면 생소한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인문과학은 리드대,호텔 경영학과는 코넬대,소방학과는 우스턴대,지적재산권은 프랭클린 피어스 법대,마케팅 공학은 노스웨스턴대,기업가 정신분야는벱슨 칼리지를 세계 최고로 쳐준다. 자연과학분야도 마찬가지다.세라믹(요업)공학은 앨프리드대,임학은 워싱턴대,해양학은 UC 샌디에이고,지질 광산학은 콜로라도 스쿨 오브 마인드가 일류대학에 속한다. 이 가운데 뉴 햄프셔주 콩토드에 있는 프랭클린 피어스 법대는 학생수 150명의 초미니 법대지만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US News &World Reports)지가 선정한 대학평가에서 97년부터 3년연속 지적재산권 분야 1위를차지했다.이 분야 전공 교수가 많은데다 관련자료만 20만건을 소장하고 있다. 뉴욕주의 앨프리드대는 미우주항공국(NASA)과 미국과학재단(NSF),코닝 등일류 기업으로부터 졸업생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진다.우주왕복선 표면과 반도체 부문에 응용되는 세라믹 분야에 관한한 이 학교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치(上智)대와 도시샤(同志社)대도 국제화 추세에 발맞춰 대학 특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조치대는 전체 교수 500여명의 20%인 100명을 외국국적 교수로 채용했다.외국인 유학생도 500명이 넘는다.도시샤대도 외국인학생들을 위해 1년 유학생 과정을 따로 설치,운영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 *특성화 성공 대학 경기도 이천에 있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컴퓨터그래픽학과 2학년 김석희(金石熙·27)씨는 겨울방학이지만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그는 교내 인터넷 창업보육센터의 10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상용화를 앞둔 3차원 가상현실 쇼핑몰을 연구하고 있다.지난해 여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학과 친구 2명과 전공을 살려 시작했으나 올해에 창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 96년 설립된 이 학교는 12개 학과 가운데 애니메이션,컴퓨터게임 등 8개 학과가 다른 대학에 없을 정도로 특화가 됐다.지난해 취업률은 87.4%였으며 특히 애니매이션학과는 사람이 없어서 못 보낼 정도로 업계의 요청이 쇄도했다.교수들의 평균 나이도 34세로 젊다. 청강문화산업대와 ㈜한겨레정보통신이 함께 운영하는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는 산학협동의 대표적인 예다.업체 사장이 교수를 겸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현장실습을시키면서 취업까지 알선하고 있다.올해도 이미 재학생 7명이졸업 후 취직을 보장받았다. 숭실대는 창업형 중소기업학부로 특화에 성공한 대학으로 꼽힌다.지난해에는 ‘두뇌 한국(BK21)21’ 대학으로 선정됐다.사업성 분석,여성창업,전자 상거래 등 종래의 경영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30∼40여개의 특화된 과목은 중소기업학부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컨설팅회사나 중소기업 대표들도 강의를 맡아 산학협동은 물론 취업도 큰 도움을 준다. 청주과학대는 김치식품학과로 특성화에 성공한 대학으로 평가받는다. 제주관광대학도 지역특성을 살려 전공 학과를 국제회의산업과,카지노경영과,관광정보처리과,관광레저스포츠과 등으로 세분화 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군필자 가산점제’ 보도 분석

    “근시안적 대책으로 ‘평등권 실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의 군필자 가산점제 위헌판결과 올해초 정부가 이를‘국가 봉사경력’으로 인정,유지하기로 한 것에 대한 각 신문의 보도태도를 놓고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사장 성유보)이 내린 결론이다.대부분의 언론이 가산점제도의 문제와 찬반여론 내용을 심층 분석하기 보다는 남녀 성대결을 부추기고,PC통신 여론을 인용한 흥미성 보도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 것이다. 민언련은 헌재 판결 이후 경향,문화,조선일보 등의 사설에서 “헌재의 판결은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전체 논지상으로는 애매하고 편파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반면 한겨레(12월 29일자)는 ‘본질 벗어난 군필자 가산 공방’이란 사설에서 “이번 논란이 소수 약자를 공격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군복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면서여러 대안을 제시,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민언련은 경향,중앙,한국일보 등은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그룹에 대한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않는 등 편파적 보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특히 1월초 정부여당이 내놓은 보완책에 대해 동아,조선일보 등은 이를 정치적 논리로만 해석,문제해결을 위한 거시적 안목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미경기자
  • 불꽃처럼 살다간 나혜석의 예술세계

    “여성도 인간이외다” 1920년대,한 여성의 외침은 봉건 질곡에 빠진 조선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줬다.그것은 당대 유교적 지배질서와 가부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요,자유주의적 여성운동에 대한 대담한 선언이었다.근대 여성운동의 선구자 나혜석(1896∼1948).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소설가이자 시인,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낡은 인습에 온몸으로 저항한 시대의 선각자였다.그러나 그의 도전과 시련은 한국의 근대화와 시기를 같이 하며 왜곡되고 가려져왔다.‘최초의 여성’이란 멍에를 걸머지고 시대를 앞서 살다간 여인,나혜석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된다. 15일부터 2월 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는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이 그것이다.예술의전당과 나혜석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나혜석의 유작과 사진자료 등 80여점이 선보인다.현재 그의 것으로 전해지는 작품은 모두 20여점.그중 ‘자화상’‘스페인 국경’‘파리 풍경’ 등 10점의 유작을 이번에 볼 수 있다. 나혜석은 문학이나 사상 방면이 오히려 미술 쪽보다 훨씬 ‘선진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소설·시·희곡·신문사설·논설·감상문·기행문·대담기 등을 통해 쏟아낸 나혜석의 여성의식과 자유의지는 한 세기쯤은 앞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1918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경희’는 한국 현대문학상 최초의 페미니즘 텍스트로 평가받는다.또 여성계몽적인 시 ‘노라’는 1910년대 계몽주의 문학의 중요작품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그러나 나혜석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그림이다.좌절을 겪을 때마다 그를 지탱해준것은 바로 미술에 대한 집념이었다. 나혜석은 90년대 후반부터 페미니스트 화가로 재조명되기 시작했지만 그의그림에 관해선 지금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석사학위 논문 3편 정도가 있을 뿐이다.나혜석의 미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이번 전시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관료의 딸로 태어난 나혜석은 진명여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학과에서 공부했다.그의 공식적인 화업은 1921년 국내 처음으로 열린 서양화가 개인전인 ‘내청각 개인전’에서 출발,1935년 진고개 조선관 전시로 막을 내린다.특히 주목되는 것은 사회·문학활동에서 활발하게 나타나는여성의식이 유독 화풍에서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혜석의 작가로서의 발전과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유학기인 제1기(1913∼1919)에는 당시의 조류에 따라 계몽적 페미니즘 의식을 반영한 목판화작업에 심취했다. 결혼안정기인 제2기(1920∼1930)는 화가로서의 최고 전성기.일본과 프랑스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풍경화와 인물화 등을 주로 그렸다.이혼기인 제3기(1931∼1938)에는 퇴폐적 자유주의 성향을 보이다가 나중엔 프랑스 후기 인상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유미주의적인 작품활동을 펼쳤다. 사회적 모멸 속에 스러진지 50여년만에 다시 조명받는 나혜석.‘2월의 문화인물’로도 선정돼 관심을 모으는 그의 진보적 사상과 예술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도 전혀 낯설지 않다.이 시대 나혜석의 의미는 무엇인가,왜 다시 나혜석인가.‘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에 그 해답이 있다.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금·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료는 어른 3,000원,초중고생 2,000원.(02)580-1300. 김종면기자 jmkim@
  • [여성선언] 그래도 통일은 돼야 한다

    얼마 전 미국 조지아대학 글로벌연구소 주최로 북·미관계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양국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모색해야 할 과제,문제점 등을토론하는 자리였다.북한측에서는 아태평화위원회 김형우 부위원장을 포함한다섯명의 연구원들이 참석하였고,미국측에서는 전 주한미국대사였던 제임스레이니 에모리대학 명예총장 및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토니 홀 의원의 보좌관,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실무책임자 등이 초청되었다.정부 정책 관계자들의 공식 회담이 아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열리는 학술심포지엄 형태였기에 유연하고 실질적인 토론이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과 개인적으로는 89년의방북 이후 처음으로 북한 사람들을 만나 통일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참석하였다. 하지만 토론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기도 했지만 북한측 토론자로 나선 이가 자신들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찬양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었다.전직 주한미국대사들에게는 과거 남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었고,미 의회에 북한 입장을 전달하거나 대북정책의 기반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좋은 기회를 왜 잘활용하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내내 들었다. 행사장 밖에서 만난 그들은 10년 만에 만나는‘통일의 꽃’이라며 매우 기뻐했지만 막상 통일문제로 이야기가 넘어가자 분위기가 굳어졌다.그들은 햇볕정책과 포용이라는 말만 나와도 질색을 했다.‘햇볕정책은 뜨거운 볕을 내리쬐어 자신들의 옷을 모두 벗기려는 것인데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하는 입장이었고,금강산 관광은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남조선 인민의 염원에 부응하는 시혜 차원으로 평가하였다. 이에 대해 나는 ‘햇볕정책이 옷을 벗기려는 정책이라면 같이 벗으면 될 것이고,금강산 관광에 나서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관광객이 대부분이며 오히려 북한은 이로 인해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정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견을 제시하자 그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였다.여러차례 논쟁과 의견 대립이 오고간 후에도 내려진 결론은 그래도 통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위대한 지도자’ 타령을 계속하는 그들을 두고 무슨 통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그러나 세밑에 열렸던 남북통일농구대회처럼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당장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통일 이후 예상되는 부작용을 서서히 좁혀 나가야 하며 이것은 통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나는 미국 속의 한국인의 위상을 느끼고 경험한다.쉽게 말해 우리 스스로는 일본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국 속에서의 일본과 한국은 정말 다른 위치를 갖는다.만약 우리가 통일이 되어 좀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에 거주하는 해외동포 역시 입지가 크게 넓어질 수 있다.아무리 인종과 소수민족 차별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외국인에 대해 국력으로 재단하는 편견은 있게 마련이다. ‘통일’이라는 말의 사용마저도 금기시되던 시절에는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감성적 호소로 통일문제에 접근했다.그러나지금의 통일은 결코 우리 민족만의 문제는 아니다.지구상에 유일한 냉전지대로 남은 불행한 이 땅,통일로 가는 길은 우리의 힘을 크게 기를 뿐만 아니라세계평화로 가는 길이다. 많은 이들이 새 천년과 21세기를 말한다.하도 많이 듣다보니 벌써 진부하게도 느껴진다.그러나 21세기는 아직 채 열리지도 않았고 그것은 다가오는 미래이다.우리는 21세기에 통일을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북한의 문제점을 인식하지만 비난하지 않으며,그들을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임수경 美코넬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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