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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점심 폭탄주

    주역 연구가 초운 김승호는 “술을 마시면 머리 속의 신(神:생각)이 일어나 이것이 정(精:감정)으로 발한다”고 말했다.그는 술을 마셔도 생각과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몸에 좋다고 말했다.실제 이런 절제는 쉽지 않다.고려시대 유생들은 술을 즐겼지만 절도가 없어 술의 예의를 정한 ‘주례(酒禮)’가 등장했을 정도였다.조선시대 세종은 전국에 술을 삼가라는 경고를 내렸다.그 경고문 가운데 신라는 포석정,백제는 낙화암 등 각각 술자리 장소에서 망했다고 지적한 대목도 있다. 요즘은 한술 더 떠 술은 ‘자제를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이용된다.스트레스를 풀고 벽도 허물자는 것이다.이왕이면 ‘빨리 빨리’ 취하자고 폭탄주를 애용한다.가난한 미국 항구노동자들이 단시간내 취하려고 마신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국내에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도 100년전 혼돈주(混沌酒)라는 폭탄주가 있었다.혼돈주는 반사발의 막걸리에 소주한잔을 섞은 잡탕주로 ‘자중홍(自中紅)’으로도 불렸다. 사회 지도층부터 서민까지 즐기고 종류도다양한 점에서 한국은 가히 폭탄주의 원조(元祖)국으로 자처할 만하다.맥주잔에 따른 맥주에 ‘뇌관’에 해당하는 작은 양주잔을 넣은 정통폭탄주로 성이 차지 않아 소주잔을 넣어 천천히 가라앉히는 ‘타이타닉주’,맥주잔에 적포도주와 중국 백주를 넣은 ‘드라큘라주’등 종류가 다양해졌다.마시는 방법에 따라 ‘물레방아주’‘충성주’‘회오리주’ 등 30여가지는 된다. 주류협회가 폭탄주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육군 참모총장이 10여년전 폭탄주 추방을 벌였어도 폭탄주는 건재해왔다.오히려 점심식사 시간에까지 번지고그 유탄으로 ‘사상자’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전 대검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실을 터뜨려 풍파를 일으켰는가 하면 한 검사의 여기자 성희롱도 점심 폭탄주가 발단이었다.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은 지난 26일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에서 폭탄주를 마신후 여성 환경부장관과 여기자를 안주삼아 거론하다 또 구설수에 올랐다. 외국에는 점심시간이 별도로 없는 회사도 흔하고 직장인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때우는 현실에서 점심식사 폭탄주는 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폭탄주를마시고 일을 열심히 하기는 힘들테고 한낮에 퍼져 쉬는 근무 리듬일 것이 뻔하다.더욱이 밤의 접대문화가 대낮에도 성행한다는 증거로 일반 국민들에게도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학주(學酒:술의 진경을 배움)와 낙주(樂酒:술과 더불어 자적하면서 마심) 등의 주선(酒仙)은 못될지언정 대낮에 술마시고 주책부리다 패가망신하는 사태가 거듭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문화부, 간행물윤리위 위원 20명 위촉

    문화관광부는 25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신임위원 20명을 위촉했다. 이날 열린 임시이사회에서는 윤양중(尹亮重) 전 위원장이 새 위원장에 재선됐다.위촉 위원들은 2003년 7월까지 3년간 활동한다. 신임위원은 다음과 같다. △윤양중(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손봉호(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송두환(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윤병로(성균관대 학장)△김태련(이화여대부속중고교 교장)△이대훈(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전무이사)△김영배(중앙일보논설위원)△나춘호(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노영현(한국잡지협회 회장)△손혁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윤승운(만화가)△이행자(서울YWCA 회장)△이혜성(한국청소년상담원 원장)△이호철(예술원 회원)△은방희(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조선형(한국걸스카우트연맹 총재)△채수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최윤희(한국소비자연맹 편집위원)△최충옥(한국청소년개발원 원장)△한기호(한국전문신문협회 회장)
  • 문화스냅 2000-여름/ 스타킹 벗어던진 신세대

    2000년 여름,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름짓는 바로미터 하나.꼼지락거리는 맨발가락을 내놓고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으면 신세대,그게 아니면 우겨봤자 구세대다. 한국IBM에 다니는 주부 직장인 황해경씨(32).올 여름,핸드백안에 꼭꼭 챙겨다니는 소지품이 하나 더 늘었다.스타킹이다.유행이라면 누구보다 민감한 미시족이라 자신해왔지만,‘전천후 맨발’은 아무래도 신경쓰일 때가 많다.격식을 따져야 할 VIP고객이나 직장 상사와의 회식자리에 들어가기 직전.눈치껏 스타킹을 꺼내 신고나서야 마음이 놓인다.“갓 입사한 젊은 친구들은 원피스 아래로 맨다리를 통째 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인데…” 맨발에 관한,미시 아줌마의 유감섞인 한마디다. 한평생에 지구 세바퀴 반을 도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인류사를 통틀어 찬밥대접을 면치 못해온 신체기관.그러고 보면 ‘발’이 올 여름만큼이나 주목받은적이 없었다. 시선을 끌어내려보자.도심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건 여성들의 맨발이다(신세대 남성들도 맨발을 즐기긴 마찬가지).색색의 화려한 니퍼(뒤꿈치가 트인샌들)속에서 나일론스타킹을 훌렁 벗어던진 뽀얀 발가락들이 여유만만.‘생으로’ 세상에 맞서보기로 한듯 ‘날발’들의 발언이 어딜가나 시끌벅적하다. 날발 유행에는 해설들이 분분하다.무엇보다 경제논리.문화평론가 김지룡씨같은 이는 “사회적 부가 축적되면 신체의 주목대상이 몸통으로부터 머리카락,손발톱,발쪽으로 분산되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라면서 최근 발로 쏠리는 대중의 관심을 경제적 여유의 징표로 파악한다. 그러나 재미난 것은 ‘강요된 여성성’에서 벗어나려는 반동문화의 한 코드로 이를 이해하려는 페미니즘적 시각이다.여성신문 ‘아줌마’섹션 편집위원장인 이숙경씨는 “발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신발이 어떻게 모양을 바꾸고 있는지에 주목해보라”고 주문한다.하긴 적어도 올 여름 대한민국의 여자들은하이힐에 의지해 위태롭게 뒤뚱거릴 마음이 없는 것 같다.낮아진 굽에 얼기설기 발을 조이던 가죽끈마저 떼어 버린 신발들이 거리를 누빈다. 실제로,발이 대접받는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면 ‘날발’의 가치 전복이 실감된다.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맞은편 골목의 나비뷰티라인.대낮부터 발관리를 받으러 오는 이들은 남녀노소가 따로없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맨발을 내밀고 앉은 채 사람들은 지압,물방울 아로마 마사지,보습팩 서비스에 주저없이 지갑을 연다.1시간 풀서비스에 5만원,30분 단축코스에 3만원.“지난해까지만 해도 40∼50대 주부들이 주고객층이던 것이 최근엔 20대 초반 손님이 부쩍 늘었다.더러 남녀커플이 함께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윤미숙 사장은 귀띔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맨발은 억압된 에로티시즘의 상징이기도 했다.10여년간 발사진만 찍어온 한정식 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은 “조선시대 여성의 발은 순결의 상징으로 버선속에 꼭꼭 숨겨졌고,치마자락 밑에서 드러나는 버선코가 관능미로 묘사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발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신체 지점인 것만은 분명하다.프로이트는 여성의신발이 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는가 하면,신화연구가 이윤기씨는 발에서 신화적 모티프를 짚어내기도 한다. 올 여름,맨발의 샌들이 ‘딸딸딸’ 유난히 큰 굽소리를내며 계단을 타고다닌다.스쳐지나는 유행일 뿐일까.아니면 억압된 여성성이 풀려나는 작은 메시지일까.어느쪽이든,삶의 메타포 하나를 새로 발견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황수정기자 sjh@. *날발의 '신상발언'. ■‘날발’의 씩씩한 발언…“더이상 생긴 걸로 시비걸지 말기!”‘나’는 발이다.사람 몸 전체에는 206개의 뼈가 있는데,그중 4분의 1인 52개가 내게 쏠려있다.30㎝도 안되는 크기로 70∼80㎏의 거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각각 41개의 인대와 20여개의 근육을 가진 덕분.알고보면 우리는 대단히 민감한 ‘조각품’들인 셈이다. 최근의 맨발유행을 일과성 세태쯤으로 일축해버린다면,모처럼 해방된 우리로서는 억울하다.습하고 구리다는 편견으로,울퉁불퉁 못 생긴 생김새 때문에,시비걸리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얼만데….말이 난 김에 해보자.누가 언제 이중삼중으로 우릴 봉해놓으라 했나? 숨도 못쉬게 옥죄는 소가죽,양가죽으로 호사를 떨어달라고 주문했었나? 우리역사가 어땠는지는 소설책 한질로 써도 모자란다.가장 굴욕적인 역사는뭐니뭐니해도 전족(纏足)이다. 10세기 중국 송왕조 이후 귀족사회 미인의 필수조건에 맞춰주기 위해선 기형적으로 작고 뾰족해져야 했다. 그 지독한 악명의 역사덕분에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영화속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의 아내 오란은 자신은 큰발때문에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며,딸에게는 어떻게든 전족을 시켜 귀족의 조건을 갖춰주려 했다. 또 영화 ‘홍등’에서도 우리 얘기를 짭짤한 소재로 써먹었다. 세도가의 첩으로 팔려온 가난한 여주인공 공리는 남편을 기다리며 ‘발마사지’를 받는 게 일이었다.우리가 가진 에로티시즘적 속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루 한두번쯤 세수대야에 담기는 게 고작이던 우리가 요즘 온갖 대접을 다받는다. 발찌,발가락지,영양크림,붓기빼는 아이싱크림까지….가려지고 억압될 뿐,인간의 욕망은 소멸되지 않는 모양이다. 차제에,알아줬으면 하는 사항이 또 하나 있다.원래 우리에게도 지문 못잖게독특한 족문(足紋)이 있지만,신발에 치여 무의미해지고 있을 뿐이란 사실이다. 황수정기자.*발미용산업도 호황. 발 미용에 대한 관심과 함께 발 관리 전문점이 서울 강남거리를 중심으로 속속 생겨나고 있다.최근 3∼4년새 전국에 500여곳이 개업한 것으로 추산된다. ●발관리 전문점 성업 발 관리전문점은 각질제거와 발톱손질을 해주는 네일케어숍과 전문교육을 마친 발관리사가 발마사지를 해주는 곳 등 두종류다. 발 마사지는 경혈을 자극해 발바닥 노폐물을 제거해 줌으로써 몸을 가뿐하게 만든다.오랫동안 서있는 직장인들의 붓기를 없애는 데도 효과가 있다.비용은 5만∼10만원으로 비싼 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2층에서 ‘네일 갤러리’를 운영하는 윤정옥 원장은“요즘엔 남자 손님도 간혹 눈에 띈다”며 전문직 여성 회사원 외에도 대학생,주부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한다.보통 30∼40분이 소요되는데 비용은 2만∼5만원선. ●발 가락지까지 등장 발 전용화장품은 이제 더이상 호사스런 사치품이 아니다.각질제거제,보습제에서부터 피로를 풀어주고 냄새를 없애주는 스프레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다른 피부보다 두꺼운 발의 표면에 잘 흡수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최근엔 발목에 차는 발찌에 이어 발 가락지라는 신종액세서리까지 등장했다.은도금,큐빅 장식 등 화려한 디자인의 발가락지 가격은 1만원∼1만5,000원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집에서 하는 발관리 발 관리를 위해 꼭 전문점에 갈 필요는 없다.집에서세수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은 뒤 아로마 몇방울을 섞어 발을 담그면 소독도되고 각질을 불리는 효과가 있다.굳은살을 말끔히 제거한 뒤에는 로션을 발라 가볍게 마사지한다.손이나 지압봉으로 지압점을 찾아 꾹꾹 눌러주면 피로 회복과 혈액순환을 돕는다.로션의 흡수가 잘 되도록 석고팩을 하거나 랩으로 감싸주는 것도 좋다. 허윤주기자 rara@
  • 재미언론인 文明子씨, 金正日국방위원장 단독 인터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난지 보름쯤 지난 6월 30일 재미언론인 문명자씨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 이후 세계 최초로 단독인터뷰를 가졌다.장장 6시간 동안 북한 원산초대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 내외로부터 받은 느낌을 비롯해 남북공동선언에관한 평가,미일 관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시종일관 거침없고 당당한 태도로입장을 피력했다. 이번 인터뷰는 정상회담 당시 TV에서 드러났던 김 위원장의 모습을 좀더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씨는 인터뷰후 지난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신준영 대한매일 기자를 만나 회견기사와 관련사진을 본지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2000년 6월30일 오전 9시50분 원산초대소.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관 앞까지 나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역사적인 순간이었다.김 위원장과의 ‘세계최초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몇 년간 필자는 계속해서 북측에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답변은항상 “때가 되면”이었다.지난 5월27일 필자는 남북정상회담 취재를위해 방북했다.외신중 정상회담 취재를 허가받은 기자는 필자뿐이었다.정상회담이 끝난 후 필자는 회담 이후 북의 표정을 취재하기 위해 계속 평양에머물고 있었다.이번에야말로 역사적인 인터뷰가 성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적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의 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문제였기 때문이다.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인터뷰가 성사됐음을 통보받았을 때 필자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산초대소는 풍광좋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다.전날인 6월29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정주영 회장을 접견한 장소이기도 했다.김 위원장은 원산 인근의 해군기지 현지 지도차 원산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평양에서 원산비행장까지 30분,비행장에서 초대소까지 자동차로 20분이 걸렸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점퍼옷 차림이었다.그는 활짝 웃으며 활달하게 손을 내밀었다.함께 면담실로 들어갔다.CNN이 나오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은후 김위원장은 텔레비전을 껐다.인터뷰에는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이 배석했다. 김용순 위원장과 내 자리에는 ‘성천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있었는데 김 국방위원장 앞에는 물컵만 놓여 있었다.김 국방위원장은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그가 말했다. “이 성천담배는 지난 72년 북남회담때 김영주 조직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담배입니다.박 대통령이 즐겨 피웠다고 들었습니다”■외신중 유일하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허가해주시고 이처럼 단독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외신기자들은 모두 사절해도 문 선생은 부르라고 했습니다.우리 민족으로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력적인 기자활동을 하고 계신데 마땅히 초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감사합니다.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전 세계가 궁금해 하는 문제들에 대해한 가지씩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우선 6월 정상회담에 대해서입니다.말그대로 전 민족적 열광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이것은 우리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이고,나 자신으로선 수령님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가 되었습니다”■지난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비행장까지 나가서 맞이하셨는데 이는 외교의전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어떻게 해서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내 스스로 결심했습니다.그동안 통일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발언이나 통일운동가 구속,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지 않는 일 등이 보도되어 사실 김 대통령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김 대통령께서 통일을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해서 평양까지 오시는데 분위기가 그래서는 안되겠기에 예정에 없이 공항에 나갔습니다”■김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이번 수뇌급 회담에서 합의된 5대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대헌장이라 할정도의 의의를 가집니다.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실천돼야 합니다.나는 김 대통령께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나가려는 의지와 성의를 가진 분이라고 믿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람의 5대 복 중 하나가 처복이라는데 김 대통령은 처복이있는 분이다”라면서 이희호 여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체구도 크지않은 분이 여성계 지도자로서, 또 남편의 석방을 위해 그처럼 강인하게 투쟁했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6월14일 만찬석상에서 김 위원장께서 이희호 여사를 김 대통령 옆으로 부르셨지요? “그 날은 한국측 초청만찬이었기 때문에 자리배치를 남측에서 했습니다.제가 가보니 남자 여자를 갈라서 앉혔는데 이희호 여사도 여자들과 함께 멀리앉아 있었습니다.그래서 내가 말했지요.‘이거 통일을 하자는 뜻입니까? 안하자는 뜻입니까.가족을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놓아서야 되겠습니까?’”김 위원장은 다시 물었다. “김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신데 이희호 여사는 가톨릭입니까? 기독교 신자입니까?” 남편을 따라 개종을했는가라는 의미인 듯했다.나는 “이 여사는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그동안 역사를 보면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도 다시 대결구도로돌아간 일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현재도 일각에서는 그런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김 위원장님께서는 6·15공동선언의 실현 전망을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이번 5대 공동선언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합니다.최근 비전향 장기수 송환시기가 당초 합의보다 늦어지는 등 다소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데 앞으로는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우리는 5대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남쪽에서는 김 위원장님의 서울방문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언제쯤으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5대 공동선언의 실천 과정을 보면서 결정할 것입니다”■정상회담 직전에 중국을 방문하셨는데 중국식 개방에 대한 견해는? “경제성장에서 긍정적이었습니다.인민들을 잘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는 데 반해 조·미관계는 주춤한 느낌입니다.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국에서 페리가 특사로 왔으니까 우리가 볼을 던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곧 고위급에서 대표를 파견할 것입니다”■현재까지 서방에서 대미특사로 거론해온 급보다 더 고위급 인사를 보내신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설명해서 김 국방위원장께서 완전한 동의는아니나 일부 납득했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미군더러 나가라고 했지만 그들이 당장 나가겠습니까.우선 미국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그들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날 닉슨도 카터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는데,주한미군 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제10차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지난 5월로 예정됐다가 취소된 후 아직다음 회담 날짜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조·일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실 예정입니까? “일본을 흔히‘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는 일본과 ‘가깝고도가까운 나라’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이웃이 마치 지구 양극에 사는 것처럼 지내는 것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우선 납치니 뭐니 하는 얘기를 치우고 과거청산 등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성의와 진실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12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차림표에는 더운 음식에 ‘야자제비둥지상어날개탕’‘소고기 철판구이’‘감자만두 튀기’‘김치무우장’‘잣죽’,찬음식에 ‘게사니 향료 찜튀기’‘꽃게 살라드’‘록두묵’ 등이 적혀 있었다.‘야자제비둥지상어날개탕’은 반 자른 야자에 담긴 수프였는데 김대중 대통령 초청만찬 때도 대접했던 음식이라고 했다. ■94년 대홍수 이후 경제문제가 심각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지난 5년간 어려운 시기 속에서 2,000만의 운명에 대해 참으로 고민 많이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식량을 보내준 한국,미국,일본 등세계 여러 나라사람들의 인도주의에 깊이 감사합니다”■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입니까? “인민이 지지하지 않는 지도자는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수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민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그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인민과 지도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것이 관료주의인데 우리는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식사중에 전날 만난 정주영 회장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다.그간 정회장이 해낸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번에 현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금강산특구 등 원하는 것을 파격적으로 허용해 주었다”고 했다.남북경제협력의 미래를 확신하는 듯 “통일되면 우리나라는 잘 살게 될 것”이라고역설했다. 인터뷰 내내 ‘김대중 한국 대통령’‘한국’‘한국 국민’이란 용어를 일관되게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단,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여전했다.김 위원장은 “‘김영삼씨만 빼고 전직 대통령들 누구든 초청하겠다’고 김 대통령께 말했다”고 밝혔다.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었다. ■정상회담 후 남에서 ‘김정일 쇼크’‘김정일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는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동안 왜곡보도가 많아 인상이 매우 나빴는데 본인이 화면에 나타나니까뿔 달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오전 9시5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장장 6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의 눈으로 본 ‘지도자 김정일’은 강하면서도 소탈한 인물이었다.특히 그의 자세와 손짓은 지난 92년과 94년 필자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던 고김일성 주석을 연상시켰다. 국내외적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하는 것은 물론,식사중에는 가톨릭과기독교,고혈압과 유황온천,피자와 녹두빈대떡 등등 다종다양한 화제를 이끌어 갔다. 원산비행장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필자는 생각했다.전 세계가 지금 ‘김정일 쇼크’에 빠져 있다.그런데 과연 누가 변한 것인가.그가 이번에 새로운모습으로 변화한 것일까.그는 원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함으로 인해 그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분명한 것은 북의 지도자김정일을 제대로 읽기 위한 연구가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다. *문명자는 누구.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로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문씨는 73년 11월 당시 보도 금지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 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과 회견했다.그녀는 서방기자중 ‘최고의 북한 소식통’으로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 깊다.
  • ‘평등부부상’ 수상 이것이 비법

    여성신문이 최근 선정한 ‘제6회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유인종 서울시교육감(68)·이재우 중앙대 교육학교수(64)는 올해로 결혼 44년째를 맞았다. 세 자녀를 한국의 장모에게 맡기고 떠난 미국 유학시절,교육학 학위공부를나란히 시작한 이들 부부는 서로 논문자료를 챙겨주고 가사일을 분담하는 등내·외조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아침출근 때 부인이 넥타이나 양말을 챙겨주는 일은 결코 없다.아침은 토스트로 간단히 하고 저녁식사는 부부가 함께 준비한다. 유학생활중 얻은 막내아들 등 1녀3남을 의사와 컴퓨터전문가로 키운 이들 부부의 교육철학도 남다르다.우선 네 아이 모두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시켰다.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 형,언니 노릇을 하며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길러 지더라고.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쳤다.집안환경이 좋으면 유치원보다 백 배 배우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또 아이들끼리 싸움이 나면 절대 부모가 나서서 말리지 않았고 용돈은 부부가 의논해서 한 사람이 주었다. 좋은 부부는 저절로 생기지 않고 ‘인내의 지혜,인내의 용기’가 만든다는것이 44년 결혼생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유인종교육감 부부와 함께 ‘제6회평등부부상’을 수상한 부부 4쌍의 사는모습을 잠깐 들여다 보았다. ■김정길씨(65·혜민병원 이사장)-임숙재씨(61·혜민병원 원장)결혼생활 39년을 맞은 이들 부부는 사회복지법인 희망원,신혜정신요양원과의료법인 혜민병원을 설립 운영해 오면서 가정과 사회에 공동으로 봉사하고있다. ■오태일씨(37·부목사)-조선희씨(35·군산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군산에서 부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태일씨는 군산 여성의 전화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하는 부인이 각종 모임과 장기간의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 가사일과 자녀양육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특히 1년에 1차례 혼자만의휴가를 갖는 등 각자의 생활을 인정하고 배려해 준다. ■전건씨(54·노인대학 강사)-손복숙씨(51·노인대학 강사)결혼 25년차로 자녀양육은 물론 가사까지 여유있는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원칙이다.집안일은 항상 상의해 결정하는 이들 부부는 10여년전부터 정신요양원,노인대학,양로원 등을 매주 한차례씩 찾아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최병학씨(36·경신공업 총무국 인사팀장)-정금주씨(33·자민련 여성국차장)장모와 함께 살며 가사분담과 자녀양육을 생활화해오고 있다.모든 재산은 공동으로 소유하는 한편 직장에서 인사팀장을 맡고 있는 남편은 여성간부 채용,여직원 유니폼 착용 폐지 운동 전개 등 직장내 남녀 평등운동을 실천해왔다. 허윤주기자 *
  • “무대위 열연…주부 스트레스 날려요”

    결혼후 신혼의 단꿈도 잠깐 뿐,정신없이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지쳐만 가는 것이 보통 전업주부의 일상이다.커가는 아이들과 늘어나는 아파트 평수,살림살이에 흐뭇해 지다가도 가슴 한켠에 휑하게지나가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다. 일상의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만한 뭐 신나는 일이 없을까.주변을둘러보며 눈을 반짝이던 주부들이 모처럼 집안을 벗어나 무대에서 뭉쳤다. 주부극단 연합회가 지난 1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여성주간행사로 펼치고 있는 ‘주부연극제’.12개 참가 단체중 하나인 ‘강남모자이크 주부극단’도 그런 평범한 전업주부들의 모임이다.6일 오후3시 이들의 출전작품 ‘아름다운사인’이 공연된 서울 여의도 굿모닝300홀,무대 객석 할 것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오직 이날을 위해 지난 몇달간 구슬땀을 흘려온 단원들은 애써 외운 대사를 잊지 않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초반의 긴장감은 잠시.막판엔 애드립까지 자연스레 던질 정도로 연기에 물이 올랐다.남의일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관객들도 아낌없이웃고 울며 박수갈채를 던져 이들의 신명을 북돋웠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는 시끌벅쩍 연기점검이 한창이다.“언니,아까 그장면에서 너무 잘하더라” “인삼밭에서 농약먹고 죽는 그 대목에서 목소리가 너무 오버한 거 아니야”서로의 연기를 조목조목 지적해주며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강남모자이크 주부극단 10여명이 처음 만난 건 96년 강남구청이 구민들을 위해 마련한 ‘유인촌의 연기교실’에서였다.수업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열성분자들이 뜻을 합쳐 직접 극단을 만들었다. 여학생 시절부터 연극반을 하는 등 연극에 못다한 사랑을 키워온 이도 있었지만 ‘늦바람’난 초보도 꽤 있다.아이를 학교 보내고 집안일을 대충 정리한 뒤 매주 2∼3차례 어김없이 강남구민회관에서 만나 한나절씩 연기 연습을했다. 35살의 ‘막내’부터 올해로 환갑을 맞은 ‘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러나 무대를 향한 열정만은 한결같다. “너무 늙었다고 안 시켜줄까봐 처음에 걱정 했었지.요즘엔 설겆이 하고 빨래 하면서도 대사 외고 연기연습을 하는데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어”단원들에게 ‘언니’로 통하는 박찬열씨(60)는 연극을 하면서 10년쯤은 젊어진 것같단다. 집안일도 소홀해질 것 같지만 생활에 활력이 넘치다 보니 청소며,빨래며 오히려 더 신이 난다.초반엔 뜨악한 눈길을 던지던 남편들도 이제는 오히려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극단 대표를 맡고 있는 조선옥씨(47)는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하이라이트를 받으며,다른 인생을 살아본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연극 맛이란 게 안해보면 죽어도 몰라요.사는게 얼마나 재미있어 지는데….다른 주부들도 연극 배우러들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2살된 막내아이를데리고 다니며 연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벌써 6살이 됐다는 조혜선(35)씨의 당부다. 허윤주기자 rara@
  • 제6회 평등부부상 시상식

    여성신문사는 6일 서울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제6회 평등부부상 수상자로 본상 5쌍,장려상 2쌍을 확정하고 시상식을 가졌다.본상을 받은 사람은 김정길(65·혜민병원 이사장) 임숙재(61·혜민병원 원장) 부부,오태일(37·부목사) 조선희(35·군산여성의전화 상담원) 부부,유인종(69·서울시교육감)이재우(64·중앙대 교수) 부부,전건(54·노인대학 강사) 손복숙(51·〃) 부부,최병학(36·경신공업 인사팀장) 정금주(33·자민련 여성국 차장) 부부 등이다.
  • 리아, 日 신주쿠역 광장 무대 선다

    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조치에서 대중음악 부문의 개방폭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한국 대중음악을 일본시장에 소개하려는 움직임이 가속되고 있다.2,000석이상 공연장에 일본 가수들이 설 수 있게 됨에 따라 최초로 일본의 정상급듀오 ‘차게&아스카’가 오는 8월 26·27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단독무대를 갖게 된다. 때를 잘 맞추어서인지 얼마 안되는 국내 록 여가수의 선두주자를 자임하는리아가 오는 7일 오후5시부터 3시간동안 일본 도쿄의 신주쿠역 광장 무대에서 한국음악을 알리게 된다. 하루 유동인구가 70만명을 넘나드는 일본의 대표적인 번화가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연한다는 점에서 양국 대중문화 교류의 진일보한 측면을 드러내는 셈이다. NHK를 비롯,JFN·아시아 워크 등이 녹화할 예정으로 있는 등 현지 언론의 관심도 높다. 타악기 연주자로 일본에 건너가 현지에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최소리가 함께 하고 도쿄외국어대 조선어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서울우유’와 한국민단본부와 재일 유학생연합회 소속 사물놀이 두팀이 출연한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재일 대한민국 청년회가제작한 응원가를 부른 일본 가수 후쿠다나나도 나온다. 최근 ‘어제처럼’으로 방송3사 인기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해 각광을 받은 신인가수 J도 지누션,허니패밀리 등과 함께 8월 1일 도쿄 아카사카 블리츠(속칭 TBS블리츠)에서 열리는 ‘콘택 2000 인 도쿄’에 참여한다. 지난 3월의 서울공연과 5월 오사카 공연에 이은 세번째 문화교류인 셈.특히아카사카 블리츠는 일본 아티스트들에게도 쉽게 문을 열지 않는 공간으로 현지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엠플로와 경이적인 세일즈로 인디에서 메이저로 뛰어오른 딜라이티드 마인트,클럽에서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얻고 있는 테일러,주목받는 싱어 진 등. 한국측 기획을 맡고 있는 (주)코판아이는 네번째 콘택 공연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등 2002년 한일월드컵때까지 지속적으로 릴레이 콘서트를 벌일 계획이다. 박상준 코판아이 음악사업부 이사는 “일본 시장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우리 식대로 밀어붙이는 마케팅을고집해선 안된다”며 “2,000여개 라이브클럽에서 인정받아야만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일본의 특성을 파악,라이브 연주실력을 기르며 장기적인 계획하에 마케팅을 지속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5)잃어버린 먹거리

    *북서 먹어본 단고기 별미...겨자로 무쳐 새콤달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찌개가 생각난다.언젠가 전주에 갔다가 ‘오모가리’라는 민물고기로 끓인 일종의 고추장 찌개가 별나다고 생각했던 것과도 같았다. 북에서는 여러 초대소를 다녀 보았는데 그중에 오래 있던 곳이 서재골 초대소와 철봉리 초대소였다.서재골은 외국 사절들이 묵는 곳이어서인지 주방의조리 방식이 다분히 중국 요리나 서양식으로 뒤섞여서 나왔다.장기간 머무는이에게는 일종의 연회 음식이 이내 질리기 마련이다. 철봉리에서는 삼십대의 주방장과 연회가 있을 적에는 노인 한 분이 지원차오곤 했다.주방장의 이름은 잊었지만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라는데 나중에 그의 집도 방문했다.그의 어린 두 딸이 고사리 손을 조물거리면서 무용을 하고노래를 하던 모양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연회 음식 먹기가 지겨워서 나중에는 스스로 외환상점에 나가 일제 카레를 사오거나 라면을 사다가 점심을 직접 해먹기도 하였다. 이런 얘기가 밝혀져도 괜찮을까는 모르지만 북쪽 초대소의 남녀 접대원에서요리사와 운전수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호위총국 소속의 군인들이었다.나중에그들과 한 식구처럼 친해진 뒤에야 그들의 계급도 알 수가 있었다. 여성 접대원들은 대개는 소위 중위들이고 때로는 사격 훈련도 한다고 하였다.따라서우리 주방장이 소좌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님,토속으로 자시고 싶다 그거지요?그는 돼지고기 김치 찌개도 만들고 된장 뚝배기도 내왔다.북의 통조림으로나오던 볶은 고추장이 해외동포들에게 인기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된장이 더먹고 싶었다.그렇지만 가정식 장독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고장에서 맛깔스러운 된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역시 우리가 예전에 진짜 일본의 미소 된장하고는 다르면서도 왜된장이라고 부르던 공장에서 대량으로 속성되어나오는 된장이었다. 북한 문인들 말을 들어보면 전후 복구에 힘을 쏟던 ‘천리마 운동’ 기간에 가정음식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구역마다 밥 공장과반찬 공장을 두어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타다가 먹었다고 하는데, 경제복구가 끝나고도 직장이나 기업소마다 단체급식을 하는 생활은 남아있는 셈이었다.즉 손님 접대는 연회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주방장이 고심을 했던지 김치도 보다 맵게 담그고 간고등어도 굽고저 유명한 서해안 곤쟁이젓도 내왔는데 못보던 음식이 나왔다.구수하고 짭짤한 것이 입맛이 확 살아났다.이게 뭐냐고 했더니 ‘호박짠지 지지개’라고한다.열무와 호박이 섞여 있는데 애호박이 보통 호박찌개처럼 물컹하지 않고설익은 것처럼 설컹거렸다. 그는 평양에서 한 시간 반쯤 거리인 안악의 고향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역시북에서도 장이나 밑반찬 같은 먹거리는 고향 부모님들이 보내준다고 하였다. 이제 노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젊은 아낙들은 음식을 못해서 큰일이라고사내들마다 걱정인 것은 우리와 같다.그가 안악에 가서 가져온 것은 된장과바로 이 ‘호박짠지’였다. 열무나 배추로 짠지를 담글 적에 호박을 쑹덩쑹덩 썰어서 김치 담그듯이 한켜씩 소금을 뿌려가며 항아리에 담는다.소금에 충분히 절인 다음 풀물이나뜨물을 부어 사나흘이 지나면 대충 익게 된다.호박짠지를 꺼내어 물에 헹구고 된장과 까나리 또는 조개를 넣고 찌개를 끓여내는데 파와 마늘과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내가 이 음식을 기억하게 된 것은 실로 십 년 만의 일이었다.충청도 덕산으로 이사와서 한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안 일을 도와 주러 오게 되었는데,곁에서 며칠 동안 나의 식성을 지켜 보고나서 무슨 음식을 냄비에 담아 왔다. 좋아하실까 모르겄지만 한번 잡숴봐유. 그래서 뭐냐니까 충청도 ‘호박김치’란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호박짐치는 원래가 찌개 끓여 먹을라구 당그는기유. 어허,가만 있어 봐.어디선가 먹은 기억이 나는데.그제서야 이북에서 먹었던생각이 났다.충청도 호박김치는 늙은호박을 속을 긁어내고 쓰는데 무청이며배추를 섞어서 김치를 담그듯이 갖은 양념하여 새우젓까지 쓴다.그냥 먹기에는 호박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도는 것이 어쩐지 김치 맛이 나질 않고 찌개를끓여 먹으면 담백하고 구수하다.얼핏 제주도의 갈치 찌개 생각이 나서 이 호박김치에 잔 갈치를 토막 쳐서 넣고 끓였다.역시 호박김치 찌개의 훌륭한 완성이 아닌가. 같은 서해안에 지형과 풍토가 비슷해서 그런가 충청도와 황해도의 음식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여러 가지 기억이 나지만 그중에서도 ‘단고기’는아주 특별하다. 개장국은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르지만 특히 서울식은 사라져버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개장국은 지금 보다는 맑고 오히려 육개장 비슷했던것 같은데 남도식과 섞여 버렸다.들깨나 깻잎을 많이 쓰는 것이 그렇다. 남도 식은 오리탕도 그렇지만 들깨를 거의 죽처럼 갈아서 넣고 고구마순도 함께 넣는다. 북쪽의 개장국도 평안도쪽과 함경도 식이 서로 다른데 평안도 식이 서울의예전 개장국 비슷하다면 함경도 식은 요즈음 서울의 두루치기와 비슷하다. 하여튼 단고기를 먹은 중에서 대단히 맛이 있었던 것은 가장 부드러운 목둘레의 살을 얇게 저며서 해파리 냉채 무치듯 겨자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것이었다. 백두산 지방을 돌아다녔을 때 삼수에서 먹은 산천어 구이는 특별했다.두만강상류라고 하지만 폭이 오륙미터 밖에 안되는 개천인데 이쪽은 조선이고 저쪽은 중국이라 하였다.개천에 그물을 쳐두고 기다렸다가 건지면 팔뚝만한 산천어가 걸려서 퍼덕였다.산천어는 송어가 강을 따라서 올라왔다가 붙박이 고기가 된 것인데 백두산 천지에 방류하여 양식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안내인은여러번 해왔던지 부근의 반질거리는 반석 아래 장작불을 때어서 달군 다음에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 살아있는 산천어를 던졌다.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백두산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함께 굽는다.꼬리와 머리에 은박지를 감아쥐고 옥수수 먹듯이 산천어를 뜯으며 송이로 입가심을 한다.고기의 살이 솜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물비린내가 입맛을 돋구었다. 이런 식의 자연식은 이를테면 해금강에서 먹었던 대합 구이에 비길만 했다. 해금강은 군사분계선 구역이라 무인지경이었는데 주먹만한 자갈이 깔린 바닷속이 온통 대합의 밭이었다.삽시간에 군인들이 두 양동이나 건져 나왔다.해변 자갈 위에 늘어놓고 알콜 한 병을 들이붓고 불을 붙이니 파란 불이 좌악퍼져 나가면서 조개들이차례로 입을 벌렸다.사실은 익히려고 불을 놓는 게아니라 대합의 굳은 입을 벌리기 위해서란다.그대로 초장을 조개 안에 한숫갈 치고는 후루룩,하는데 입안이 가득찬다.그리곤 소주 한 잔 캬아! 하면서넘기고. 황석영
  • [여성 선언]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얼마 전 베이징에서 조선족 대학생 체육대회 및 친목회가 있었다.100명 남짓모였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북한에서 온 유학생,그리고 어학연수차 온 한국사람들도 섞여 있었다.분위기가 어떨까 하는 생각과는 달리,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인지 단박에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었다. 조선족 친구가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웃음의 도가니였다.“이 거는(이 분은) 한국에서 온 려행작가입네다” ‘아니,이거라니?’라고 언짢아 할 틈도 없이 학생들은 당장 나를 ‘려사님’(여사님)‘이라고 부르더니 곧 ‘동무’,‘동지’ 등의 공산주의 호칭(?)도 함께 쓰기 시작했다.같이있던 한국 학생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당장 “아니 여성을 어떻게 선생님이라고 합네까?”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중국에서는 남자들에게만 선생이라는 호칭을 쓴다고 한다. 잘 들어보니 같은 한국말이면서도 이렇게 우리와는 쓰임이 다른 말이 많았다.“세게 바쁘단 말입니다(아주 힘듭니다)”,“우리 나그네는 골이 아주 비상하기요(우리 남편은 머리가 아주 좋지요)”,“다음번에는 지각소멸해야 합니다(지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등. 각자 자기가 자란 곳의 언어를 섞어 쓰는 것도 큰 특징이었다.중앙아시아에서 온 까레이스키 즉,고려인은 말끝마다 ‘오친 하라쇼(아주 좋아요)’라는러시아말을 반복했고,연변에서 온 조선족들도 샹빤(출근)이나 빵주(도움) 등중국어를 많이 사용했다.그에 비해 북한학생은 ‘까부수자’,‘자폭하자’등 섬뜩한 단어도 쓰지만,아주 예쁘게 다듬어진 한국말도 쓰고 있었다.“려사님의 그 끌신(슬리퍼),물맞이 칸(샤워실)에서는 세게 소용되겠습니다” 그날 우리들 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놀랍게도 내가 섞어 쓰는 외국어였다.우리가 일상으로 쓰고 있는 스케줄,시스템,노하우 등 간단한 외래어에도 모두고개를 갸우뚱한다.실제로 이 학생들이 한국의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볼 때최대의 여러움이 바로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다르거나 모르는 단어도 있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없었다.오히려 그런 차이가 재미를 더했다.10대에서 40대까지 나이도다르고,태어나고 살았던 곳도 다르고,현재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도 다른우리는 각자의 말투와 생소한 단어들을 따라해 보면서 하루종일 정말 유쾌하게 보냈다.몇명은 내 숙소에서 저녁까지 해먹으며 뒤풀이를 했는데.그 때가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직후라 베이징 유학생 촌에서는 이미 ‘동서남북통일’이 다 되었다며 축배를 들었다.그날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이렇게 우리가 하루도 되지 않아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같이‘조선말’을 쓴다는 것이라고.그러니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한 민족이 틀림없다고.웃고 떠드는 뒤풀이 자리지만 ‘모국어를 통한 민족의 동질성회복’을 얘기할 때는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지난 7년간 세계 오지여행을 하며 오랫동안 말이 안 통하는 나라를다니면서 힘이 들 때나,문화적인 차이로 본의 아닌 오해를 살 때마다 지구저쪽에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7,000만명이나 있다는 생각만으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그러다가 한국말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저 우리말로 한바탕 수다를 푸는 것만으로도 몇달간의 여독과 외로움이 눈녹듯이사라지는 경험은 또 얼마나 여러번 했던가. 지난번 남북한 정상이 만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역사적인 합의를 끌어낼수 있었던 것도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 때문이리라.만약 통역이 필요해물리적으로 시간만 두 배로 늘렸다 해서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 같은 모국어를 쓴다는 것은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뚜렷한 증거임을,지난번 체육대회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다. 한비야 오지여행가
  • [외언내언] 춤바람

    춤은 희로애락을 말없이 표현하는 몸의 언어이다.격렬한 춤의 환희는 춤추는 사람만이 안다.춤도 가지가지이다.의식(儀式)적인 궁중춤과 함께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 승무가 있다.요즘의 힙합이나 ‘도리도리춤’(테크노댄스)은스스로 흥겨워 추는 춤인 반면 가혹한 현실을 잊으려는 중국 조선민족의 ‘아박춤’도 등장했다. 우리나라 양반들은 춤을 보는 것에 만족했지만 서민들은 일하면서 춤을 즐겼다.그나마 춤은 근대화 이후 서민생활에서 멀어져 갔다.영화에서 보듯 마을축제에서 스스럼없이 춤을 추고 즐기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춤은 밀실로퇴행했다. 제비족들이 카바레나 댄스홀에서 “사모님,한곡 땡길까요”라며장바구니 든 아낙네에게 접근,농락의 대상으로 삼을 때 춤을 활용했다.‘춤=탈선’이 연상될 정도이다.1955년 바람둥이 박인수가 70여명의 미혼여성을유혹한 것처럼 춤은 늘 ‘정신나간’ 소수의 오락이었다.관광버스에서 뛰며춤추거나 야외에서 한판 춤을 추는 주부나 할머니는 우선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되어왔다. 70년대 이후 탈춤과 판굿이등장,‘민중’들의 생활에서 일과 춤의 일치를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대학가 축제때 등장한 포크댄스는 그저 파트너를만나 즐기는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지난 87년 6·29때와 이한열군 장례식때서울대 이애주 교수가 춘 ‘시국춤’ 또는 ‘바람맞이춤’이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역시 ‘보는 춤’에 머물렀다.일부 평론가는 “과연 그것이 춤이냐”는 논란을 제기했다.운동권 대학생들이 서로 엉덩이를 부딪치는 ‘해방춤’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런 과거와 비교하면 요즘은 춤의 해방시대를 맞은 듯하다.대학에 사교춤강좌가 개설되고 아무리 노래 잘하는 가수들도 춤 못추면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이다.DDR(댄스댄스 레볼루션)란 오락기가 춤 열풍을 불러오더니 전지현 등 춤 광고로 일약 벼락같이 출세한 모델도 줄짓고 있다.일본영화 ‘쉘위 댄스’처럼 중년 남자들도 춤을 배우고 학교 교사들은 춤에 운동성격을가미한 스포츠댄스를 배워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래도 춤은 아직 한국인의 생활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대부분 홀로스트레스 풀거나 무대예술로 감상하는 수준일 뿐이다.어쩌다가 공적 모임에서 춤이 등장하면 최근 육군 장교 부부동반 모임처럼 성추행 시비까지 일어날 정도로 생활에서 춤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춤종류도 왈츠,퀵스텝,삼바에다 남미계통의 살사와 재즈 댄스로 다양화되고 있지만 외국바람만강하다.우리 고유의 탈춤과 민속춤은 보급과 개발에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뒷전에 밀리고 있다.현재 춤바람은 정말 방향이 빗나가는 것인지 모른다. 이상일 논설위원.
  • 차범석의 방북 인상기(상)

    대한매일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수행했던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인 극작가 차범석씨(76)의 방북기를 두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원로 예술가의 따뜻하면서도 정감있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14번 차를 타시라우.” 안내원의 표정은 무표정했다.가슴에 단 인공기 배지의 검붉은 색과 나의 가슴에 단 햐얀 태극기 배지와는 대조적이었다. ◆여기가 평양인가=평양의 순안 공항에 내린 것은 6월13일 오전 10시30분.따가운 햇살이 눈부시기는 했지만 500∼600명쯤 되어 보이는 환영인파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봐서 여성들이 태반이었음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저마다 손에 든 진홍색과 분홍색 꽃이 강렬한 햇살에 반사되면서 한층 더 붉게 보였다.나는 그것이 생화가 아닌 조화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것이 엷은 비닐제품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됐다. 여기가 평양인가 싶다.산세도 하늘도 들판도 그리고 꼭같이 생긴 사람들을가까이 보면서 새삼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이 고개를 쳐들었다.하나라도더 보고,더 얘기하고,더 가까이 가리라는 생각에 부풀었다. ◆남남북녀=우리가 탄 차는 외제 고급차,벤츠였다.14호 차에는 나와 이화여대 장상(張裳) 총장,그리고 안내인 김승현씨가 있었다.그녀의 용모는 30대로 밖에 안 보이는 젊음에다 미모와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어딘지 친근감을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대학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말에 그 곱다란 얼굴을 훔쳐보았다.남남북녀(南男北女)가 결코 헛소리는 아닌가 싶다. 출발하기 전에 소양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평양에서 만나게 될 안내원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정보요원인 만큼 말조심하라는 지시가 문득 생각났다.그리고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거나 그쪽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은 자제하는 게 현명하리라는 충고가 머리를 스쳐갔다. 그러나 김여인은 시종 미소와 부드러운 말씨로 우리를 대했다.말할 때마다‘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동지’로 시작되는 유창하고 명료하고 논리적인 화술은 웬만한 연극배우를 능가할 정도였다.뿐만 아니라 우리 동족끼리 힘을합하여 통일을 해야지 않겠는 가 라며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스스럼없이 말하니 나 역시 반대할 이유라곤 없었다.“그럼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닙니까?”◆물결치는 환영인파=연도에 도열한 평양시민의 대열은 강처럼 이어지고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남쪽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을 맞는다는 상투적인인사가 이니라 금방이라도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여인들의 표정이자못 감동적이었다.환호를 지르다가 급기야는 울음보를 터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옷차림은 우리가 보기엔 시대에 역행하는 낡은 패션이었다.치마 저고리 차림이며 그것도 위아래가 한 색깔이었다.남한에서 30여년전에 유행했던 한복이었다.치마 저고리의 동정도 좁고 길었다.그런데 고무신을 신은 여성은 없었다.가끔씩 양장을 입은 여인이 보였지만 소박한 부라우스에 스커트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뜨겁고 억새고 광적이었다.외치는 구호는 ‘김정일’의 연호였다.손에 든 조화를 흔들면서 목이 터져나갈 듯 김정일을 연호하는그 표정이 흡사 예배당에서 광신도가 외쳐대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우리 상식으로는 먼길을 찾아준 ‘김대중’을 연호하는 게 순리일진데 그들은 ‘김정일’을 외치고 있어 의아스럽게 여겨졌다. 위대한 지도자께서 뜻밖에도 이 자리에 납시었다는 현실 앞에서 흥분과 감사와 자긍심에서였을 것이다.그리고 이 역사적인 상봉은 애오라지 김정일 장군의 뜻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6월 12일의 출발 스케줄이 갑작스럽게 하루 연기되었을 때 우리들의 동요와 의혹과 억측이 문득 떠올랐다.수수께끼에쌓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 게 아닌가 라는 기우(杞憂)아닌 기우도 떠올랐다. ◆남북 두 지도자의 역정=그날 밤 일본 NHK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김정일의 정체를 분석하기 위해 각국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방영하고 있었다.그 가운데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분은 철저하게 보통사람이예요.소박하고 자상하고…그러면서 머리가 비상하고 순발력이 뛰어난…” 보통사람인 김정일이 저토록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숭배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고 교육받아왔던 ‘김정일론’은 한마디로 불가사의한 사람 아니면,특별하고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왔다.그 고정관념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란 매우 신중하고도 객관적인 판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 셈이다. 그런 일이 어디 북한뿐인가.지난 날 선거 때마다 색깔론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려가며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던 김대중 대통령의 파란많은 인생 역정도 따지고 보면 꼭 같은 경우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번에 손을 잡게 된 두 분 지도자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첫째 성씨가 김(金)씨에다,둘째 잘못된 인식과 평가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셋째 두 분 모두가 정치가로서는 드물게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깊다고 한다면 나의 독단일까. 인구 200만의 평양시민 가운데 60만명이 거리로 나와 우리에게 보내준 그정열.그것도 어린 학생들이 아닌 성인들이었고 설령 고위층의 지시로 동원된 환영 행사였을지라도 그 눈과 입과 손짓에서 발산하는 웃음과 눈물과 힘은진심이었을 것이다.그것마저도 의심한다면 우리는이미 화해와 통일을 의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믿어보자.우리의 믿음이 잘못되었을지언정 그것은 수치도 파렴치도 아니잖는가.지구상에서 가장 먼나라에 들어선 우리는 누구인가.무엇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가 하고 절절하게 읊었던 고은(高銀)시인의 말 그대로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약 40분동안 차창 밖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우측에 자리한 장상 총장은 우측을 향해서,좌측에 앉은 나는 좌측의 평양 시민들에게 그저 힘이 소진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것만이 나의 모든 정성이라고 믿었다. ◆주암산 초대소=우리 일행은 숙소로 안내를 받았다.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4시부터 있을 환영공연과 만찬회에 나가야 했다. 우리 특별수행원의 숙소는 ‘주암산 초대소’로 모란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거진 노송(老松)에 에워쌓인 곳에서 대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치는 천하에 자랑할 만 했다.화강석으로 구축된 2층 건물로 나의 객실은 1층 35호실로 응접실과 침실이 있는 스위트룸이었다.마루바닥은 융단이 아닌 왕골돗자리가 전면으로 깔려 있어 맨발의 촉감이 시원했다.그런데 그 공간이 어찌나 넓은지 혼자 지내기엔 약간 불안감을 줄 만큼 허전했다.냉장고 안에는과일과 음료수가,그리고 침실 화장대 옆 작은 원탁에는 차(茶)와 북한 특산의 세가지 술이 사이좋게 놓여있었다.마시고 싶으면 마음대로 마시라는 무언의 권유가 역력하니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소낙비 격이라고나 할까.호젓한 산사(山寺)에 들어선 나의 감회는 다시 한 번 술렁거렸다. “정말 내가 평양에 와있는가.이것으로 통일의 물꼬가 트인다고 믿어도 되는건가.55년 동안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지냈던 우리가 이렇게 쉽게손에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도 되는가.”◆신명나는 춤과 노래=오후 4시 우리는 모란봉 만수대예술극장으로 초대를받았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문화성’이 주최하는 예술공연이었다.북한의 음악이나 무용을 이미 여러차례 감상할 기회가 있었던 나로서는 그다지 기대가 가는 편은 아니었다.획일적이며 기계적이어서 한마디로 말해 판에박은 듯하다는 표현이 적당하리라. 그러나 이날 밤의 공연은 지금까지의 그것하고는 다른 모습으로 내 가슴을두들겼다.그 특징의 하나로 전통의 현대화이며 그것을 위한 창작성의 뛰어남이다.그것은 다음날 관람했던 학생소년예술소조 종합공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 있는 일관된 몸짓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만난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작위성이나 의도적인 역점은가시고 전통을 보다 친근하고 애착심을 가지게 했다.그 예가 민속음악의 재인식이다.아리랑,천안삼거리,옹헤야,노들강변,양산도,그리고 고향의 밤 등우리에게 친숙한 민요와 동요까지 재편곡한 연주는 자칫 잘못하면 치기로 전락될 수 있는 것을 성숙시킨 것이이다.전통악기의 개량도 성사시켰고 무용도 최승희의 기법에 바탕을 두되 서양발래나 중앙아시아의 민속무용의 기법을접목시켰다.그래서 그 기법은 체육에 가깝다는 폐단도 있고 춤 예술 이전에곡예적인 요인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예술이 누구를 위해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점에서 그것은 철두철미하게 관객을 위해 있고 관객과 혼연일체가되어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음악이나 춤이 관객에게 신명과 춤을안겨줘야 한다는 극히 상식적이고도 근원적 의미가 북한의 극장에는 뿌리내린지 오래다.정치적 이념도 그러하듯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것’을창작하는 일이다.서양의 그것에 물들거나 모방하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의 장점을 찾아내서 그것을 ‘우리 것’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체예술이 바로그들의 꿈이자 정체성일 게다. 나는 내가 지금껏 해왔던 작품세계와 나의 위상을 되돌아보면서 평양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그곳에도 별은 반짝이고 있었다.서울 하늘처럼 말이다. 車 凡 錫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극작가
  • 남북정상회담 D-3/ 퍼스트 레이디들 만날까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의 체류일정이 최종조율단계에 들어서면서 ‘퍼스트레이디’간의 만남 여부가 다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선 정상회담에 부부동반 행사가 없는게 통례.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부인인 김영숙씨는 지금까지 공식석상에 나타난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두 정상의 부인끼리 만날 가능성은 적은셈이다. 김씨 대신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부인의 영접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평. 오히려 관례로 볼때 북한여성계 대표들이 대통령부인의 체류기간동안 카운터파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여원구(呂鴛九·70세가량)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천연옥(千延玉·55)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등의 참석이 예상된다.국회부의장격인 여 부의장은 몽양 여운형(呂運亨)선생의 딸로 서울출신.범민련 북측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국악 태교음악을 아시나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태교에도 열심이다.똑똑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기를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그래서 임신사실을 알자마자 어떤 태교음악을 들을까고심한다. 태교음악하면 모차르트,비발디 등 서양 클래식음악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이런 통념을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예비엄마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공연이 마련된다. 15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리는 ‘국악 태교음악’ 무대. 서울시국악단이 기획한 이 공연은 국악이 태교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첫 시도다. 전통음악중 ‘정악’은 조선후기 선비들이 즐겼던 음악으로 빠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날 공연에선 ‘수룡음’‘수요남극’‘산천초목’등 대표적 정악을 소개한다.또 ‘러브스토리’등 친근한 팝송을 거문고 3중주로,세계적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유키 구라모토의 ‘메디테이션’을 가야금 2중주로 새롭게 편곡해 들려준다. 입장권은 1만원.임산부 관객에게는 20%씩 할인해준다.(02)399-1700. 허윤주기자
  • 남북정상회담 D-12/ 대표단에 여성 몇명이나

    정상회담 대표단 가운데 여성들은 얼마나 포함될까. 여성계 대표,청와대 여성 실무진 가운데 일부가 대표단 일원으로 평양땅을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많아야 10명 안팎으로 예상된다.민간수행원 선정과 관련,단체의 대표성으로 볼 때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대표 池殷姬)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 殷芳姬) 등 양대 여성단체 대표가 유력하다. 한국여성운동의 1세대격인 이효재(李效再)이우정(李愚貞)박영숙(朴英淑)씨도고려대상이다. 청와대 실무진 가운데는 박선숙(朴仙淑)공보비서관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대통령의 분장을 돕는 코디도 평양행 티켓을 얻은 여성중 한명이다. 관심을 모았던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의 방문 여부는 동행쪽으로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성인숙(成仁淑) 청와대 제2부속실장도 포함될 전망이다.50명의 취재기자단 가운데는 청와대를 출입하는 모 중앙일간지의 H기자가 유일하다. 각종 행사에 북측에선 려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천연옥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위원장 등의 참석이 예상된다.둘다 북한여성계를 대표한다.국회부의장격인 려 부위원장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딸로 서울 출신.91년 남북여성회담 대표였던 려연구의 동생이기도 하다.천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위원으로 북한 여성계의 실질적 리더격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여성특위, 비상임위원 7명 위촉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24일 비상임위원으로 은방희(殷芳姬)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조선형(趙璇衡)한국걸스카우트연맹 총재,윤원호(尹元昊)부산여성신문회장,장필화(張必和)이화여대 교수,정강자(鄭康子)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이상경(李相卿)인터넷 메트릭스 대표,조배숙(趙培淑)변호사 등 7명을 위촉했다.비상임위원의 임기는 2년이며 월2회씩 소회의를 열어 여성정책 종합조정 및 남녀차별사례 최종심의 의결을 담당한다.위촉장 전달식은 25일 오전 11시30분 조달청 건물 여성특위 회의실에서 열린다. 허윤주기자 rara@
  • 오늘의 북한 뉴스

    ●북한은 일본인 납치 의혹문제를 일본이 거론하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며 일본은 북·일회담에 올바른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2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논설을 인용,“일본인 납치문제는 근거없는 반(反)북한 날조품”이라고 일축하면서 이를 통해 과거사의 청산을 피해보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이어 “일본은 과거 600여만명의 한국인을 납치·연행하고 최소 20만명의 한국인 여성을 성노예로 농락하다 살해하거나 폐인으로 만들었다”면서 “납치문제에 대해선 북한이 일본에 따질 것이 많다”고 반박했다. ●북한은 국회가 지난 15일 국회의사당 본관 중앙홀에 이승만(李承晩)전 대통령의 동상을 제막한 데 대해 “4·19 용사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21일 논평에서 이 전대통령의 동상 건립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세워보려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북한의 ‘조선가톨릭교협회’(위원장 張在彦)는 22일 평양방송을 통해 김인서,함세환,김영태씨 등 출소 남파간첩 등 공안사범인 ‘비전향 장기수’의송환에 남측 가톨릭 교인들이 앞장서 줄 것을 호소했다.조선가톨릭교협회 관계자인 장남철씨는 평양방송에 출연, “비전향 장기수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 친척들과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남측 가톨릭 교인들도 자기의 책임과역할을 다해 줄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 남북정상회담 4차 준비접촉/ 北 “남한언론 너무 앞선다”

    북한이 남한의 언론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측은 정상회담을 위한 2차 준비접촉에서 80명 규모로 의견을 모았던 취재기자단 수를 지난 3일 열린 3차 준비접촉에서는 40명으로 대폭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북측 대표단은 “남한 언론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회의를 진행시킬 수 있느냐”고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전해졌다. 또 지난 4일자 평양방송은 논평을 통해 “남한 외교 관계자들이 해외에서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고 대화 상대방을 모독하는 자극적 발언을 하고 있다”면서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양방송은 또 “이들의 불순한 언동을 광고하는 남조선 언론들에 대해서도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남측 취재기자들이 평양에 많이 오는 것이 내심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또 북측은 남한 언론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남북간 접촉 때마다 남한 기자들이 약속된 사항을 지키지 않고 불시에 북한주민들을 만나 까다롭고예민한 질문을 하거나 일부 지역을 마음대로 찾아다녔다는 점에 대해 매우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남한 언론사의 특성상 취재 및 특종 경쟁을 벌여 자칫 예기치 못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워하는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70년대 방북한 남측기자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그 장면을 찍고 북한이 못산다는 대답이 나오도록 유도했다는 사건은 북한이 남측기자들의 방북 때마다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표적 교양사례였다. 또 지난 85년 9월 ‘남북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시 남한측기자가 “해수욕을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질문에 북한 여성이 “묘향산으로 간다”고 대답하자 북한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으로 기사화해 불만을 샀다. 이와 함께 북한은 3차 접촉에서 몇몇 언론사에 대해 거부감을 피력했다고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금까지 북한과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만을 보여준 해당언론에 대해 특히 경계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북한은 외신사에 대해서는 남한언론과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 북한은지금까지 열린 남북 정상회담 준비접촉에 외신사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으나 평양회담시에는 수용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기고] 과거 아픔 딛고 미래향한 협력을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TV연속극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학생들은 한국 탤런트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한국 젊은이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흉내내고,대학 한국학과는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다.젊은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제일 좋아하고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사회지도층은 한국제 TV로 우리 연속극을 보면서 농업사회가 어떻게 첨단공업사회로 변모해 가는지,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전통문화는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배운다. 한국 기업들은 30억달러 거액을 투자해 베트남의 공업화를 앞장서 지원하고있는데 모두가 베트남 근로자들의 우수성에 탄복한다. 여행용 가방 제조업체는 근로자들이 워낙 우수하고 성실해 불량품 발생률이 0.01% 이하(세계기록)다.베트남은 조선강국으로 성장할 잠재력도 매우 커 우리 업체가 지원하고있다. 우리는 수교이후 매년 12억달러 정도의 무역흑자를 내 개인소득이 350달러수준인 국가에서 기대이상으로 큰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면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엄청난 대가를 치뤘다고 고백하며,한반도에서는 절대로 전쟁을 피해 평화적으로통일해야 한다고 우정어린 조언을 해주고 있다. 베트남인과 한국인은 강대국에 시달리면서 험난한 길을 걸어온 역사적 공통점에 서로 친근감을 느낀다.그들은 이념대립이 첨예했던 때 남부월남을 지원했던 우리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지 못하므로,아픔은모두 덮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의와 협력을 다져나가자고 제의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과거 전쟁 상대국인 미국,프랑스,일본,중국,캄보디아에 대해서도 똑같은 입장이다.베트남인들의 전향적인 생각과 ‘도이머이(개혁)정책’덕분에 10년만에 국민 절반이 굶주리던 상황에서 베트남은 세계 제2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베트남이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고 굶주림과 빈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성심껏 돕고 있다.많은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투자하고 10만명근로자들을 국제수준으로 훈련시켜 베트남 수출산업을 일으켰다.한국 정부도EDCF(대외경제협력기금)자금 1억2,000만달러를 투입해 발전소,상수도,도로,백신공장 건설을 지원했다. 베트남 국민 80%는 농촌에 살고있고,그중 15%는 극빈층이다.그래서 베트남정부는 빈곤타파와 도시와 농촌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작년에 농촌개발모델 중 가장 성공적인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도입했다.우리 정부는 베트남의낙후된 공업고등학교 세곳에 1,000만달러어치의 첨단학습 기자재를 지원해컴퓨터,자동차,전기,에어컨 기술자를 양성하도록 도왔다.의료기기 제공,무의촌지역 병원건설같은 인도적 지원사업을 벌이면서,첨단과학기술 분야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중부의 퀴년,냐짱(나트랑)지역에서는 전문학교지원(250만달러),중학교 건립,소규모 병원건설,태권도 체육관 건립을 지원했다.현대가 조선소를 건립한 냐쨩지역은 중공업 중심지로 부상해 경제 붐을일으키고 있다.중부지역은 전쟁의 피해가 제일 컸고,가장 빈곤한 지역인데다홍수피해마저 잦은 지역이므로 교육,직업훈련,의료분야 지원을 계속한다는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징기스칸 시절 막강 몽골대군을 물리친유일한 민족인 베트남인들은 오늘도 놀라운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유달리 자존심과 긍지가 강하다.그들은 최근 우리 지도자와 정부,기업들이 베트남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지원해주는데 대해 감명을 받는다.우리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경제협력을 계속하고 기업도 투자활동을 하는데 대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 기업에서 베트남 근로자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도록 도와주고 직장에서는 한국인이나 베트남인 가리지 않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경조사 때는 모두가 기쁨과 슬픔을 나눠주는데 대해 고마워한다.공장 인근지역의불우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쳐주는 것을 보고나서 과거의 의심을 모두떨쳐버리고 한국인을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은 진정 한국과 베트남이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그들은 소득이 낮다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제발 보이지 말아달라고 청한다.요즘 서울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외국근로자돕기운동’은우리가 앞으로 국내외에서 계속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조원일 외교안보硏 연구위원 前베트남대사.
  • 金聖在수석 인터뷰 싸고 설전

    26일 청와대 김성재(金聖在)정책기획수석의 주간조선 인터뷰 내용을 놓고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과 김수석 사이에 설전(舌戰)이 오갔다. 김수석이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마이노리티(소수)의 단결은 정의적이고,머조리티(다수)의 단결은 불의적이라고 말한 대목이 발단이 됐다.이와 관련,한나라당 권대변인은 “소수(호남)의 단결은 정의지만 다수(영남)의 단결은불의”라고 해석하고 “지역감정을 치유하려는 국민 모두의 노력을 청와대핵심참모가 앞장서 짓밟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어 “궤변을 통한 교묘한 지역감정 조장 발언으로 마치 과거 독일 나치시대 히틀러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를 보는 듯 하다”고 꼬집었다.이에 대해 김수석은 “내가 여러가지 관점에서 얘기했는데 주간조선측이 거두절미 한 채 제목을 뽑고,기사도한 가지 사례만 소개해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같다”고 해명했다.그는 “역사의식으로 봐야 지역문제도 보인다”면서 “호남이 40년동안 차별받아온 것을 지키기 위해 뭉쳤던 것이며 호남 싹쓸이와 영남 싹쓸이를 동일선상에서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수석이 전한 인터뷰 내용.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호남의 단결과 영남의 단결을 같은 맥락에서 보고 양쪽에서 싹쓸이를 한다고 양비론으로 보고 있는 것은 문제다.예를 들어 흑인의단결과 백인의 단결은 다른 것이고,노동자와 기업주의 단결도 다른 것이다. 또한 여성의 단결과 남성의 단결도 다르다.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단결은법으로 보호하고,기업주의 단결은 법으로 제한한다.이런 역사적인 측면에서볼 때 마이노리티의 단결은 정의적이고,머조리티의 단결은 불의적인 것이라말할 수 있다”오풍연기자 poong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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