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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차 분양 100%완료! 후속 분양 ‘마곡지구 헤리움Ⅱ’ 주목

    1차 분양 100%완료! 후속 분양 ‘마곡지구 헤리움Ⅱ’ 주목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마곡지구의 오피스텔 시장에도 훈풍이 불고있다. 사실 오피스텔 시장에서 마곡지구만큼 뜨거운 곳은 없다. 이는 이미 기존에 분양한 오피스텔의 분양 결과로 검증된 상태다. 마곡지구가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임대수요다. 지난달 에스오일(S-OIL)과 호서텔레콤 등 4개 기업이 추가로 입주계약을 체결해 지금까지 LG사이언스파크(LG전자•LG이노텍 등 LG그룹 11개사), 롯데, 대우조선해양, 이랜드를 비롯 31개 대기업과 24개 중소기업이 입주 계약 체결을 마친 상태이며 대형종합병원인 이화의료원과 이화여대의대도 2017년 들어올 예정이다. 결국 예정대로 입주가 진행된다면 마곡지구는 향후 상주인구 약 4만 명, 유동인구 약 40만 명에 이르는 서울 최대의 업무지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그렇다 보니 올해 첫 분양 스타트를 끊은대명21종합건설의 ‘마곡대명 투웨니퍼스트’는 분양을 시작 15일만에 100% 계약을 마친 상태. 여기에 지난 해 분양에 나섰던 마곡지구 오피스텔의 공급성적도 좋다. 지난 해 9월 분양에 나섰던 ‘마곡지구 헤리움Ⅰ’의 경우 오피스텔로는 드물게 견본주택 오픈 첫날 포함 주말 3일간 무려 7천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으며 단 기간에 100% 계약을 마쳤을 정도다. 11월 현대건설이 공급한 ‘마곡 힐스테이트 에코’ 역시 짧은 기간에 완판 됐다. ◆ 마곡지구 헤리움Ⅱ 4월 분양 나서 이런 분양열기를 이어갈 오피스텔로 4월 ‘마곡지구 헤리움Ⅱ’가 꼽히고 있다. 이미 1차가 마곡지구에서 분양을 성공한 만큼 인지도•입지•가격•상품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이다. ‘마곡지구 헤리움Ⅱ’는 마곡지구에서도 중심지역으로 꼽히는 업무용지 C1-4블록에서 나온다. 이곳은 공항철도와 서울지하철 9호선 환승역인 마곡나루역이 도보로 2분 거리에 위치했다. 오피스텔 인근으로 여의도 2배 면적으로 아시아 최대규모의 생태공원인 보타닉파크를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컨벤션센터, 마곡 R&D센터는 물론 이마트, 롯데마트, 이랜드 등 쇼핑센터가 인접했다. 오피스텔은 지하 5층~지상 14층, 총 312실, 1개동 규모다. 전용면적 기준으로 22㎡(276실)와 30㎡(36실) 2개다. 이중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초소형 22㎡가 전체 공급량의 88% 이상을 차지했다. 마곡지구가 대기업 R&D(연구개발) 센터 중심으로 개발되는 만큼 전문인력 종사자들의 LIFE Style을 반영 해 상품을 특화 했다. 먼저 오피스텔 내에 소규모 회의실, ATM기기, 무인우편함을 둬 오피스 사무공간을 특화 시켰다. 또 여성 전문직을 위한 무인택배 시스템은 물론 여성 전용주차장을 지하에 위치시켰다. ‘마곡지구 헤리움Ⅱ’견본주택은 강서구청 사거리 인근(강서구 등촌동 656-17)에 위치했으며, 입주는 2016년 5월 이다. 시행•시공을 맡은 (주)힘찬건설은 지난 해 10월 마곡지구 B3블록에서 ‘마곡지구 헤리움Ⅰ’를 분양 해 짧은 기간에 100% 분양을 마치는 등 오피스텔 시장에서 주거문화 뉴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회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만화 같은 내 작품… 소설 가장 중요한 덕목 재미”

    “만화 같은 내 작품… 소설 가장 중요한 덕목 재미”

    해방 직후 북녘 땅에선 일본 여성에 대한 구 소련군의 무차별적 성폭력이 자행됐다. 식당이나 과수원 등 재산을 정리하러 잠시 귀국을 늦춘 일본 남성들은 이 ‘비극’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때 ‘일본의 혼’이 회자됐다. “죽창이라도 만들어 아내와 딸을 지키라”는 충고는 아내와 딸이 몸을 더럽히기 전에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앗으라는 ‘잔인한 겁박’과 다름없었다. 중견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용희(51) 평택대 교수가 최근 펴낸 세 번째 장편소설 ‘해랑’(나남)은 해방 이후 기억을 상실한 ‘조선인 밀정’에 관한 이야기다. 해방 공간의 부조리와 잔인함이 가감 없이 담겼다. 작가는 이 비극적 감회를 되살리기 위해 전쟁의 광기 속에서 예술과 사랑을 지켜낸 한 사내를 내세운다. 첩자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해랑은 사실 자신이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소설은 한 인터넷 매체에 연재돼 매회 1만회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해방 정국에서 자기 균열을 경험한 지식인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함석헌옹께서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하셨는데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인 누구도 해방을 꿈꾸지 못할 만큼 극적으로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해방은 조선의 해방이 아니라 친일파의 해방이었더군요. 그들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해방을 맞았고 이후 암살, 살육, 보복이 이어졌죠.” 최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작가는 문학의 엄숙주의를 배척한다고 했다. “제 작품은 만화 같기도 하고 영상적인 측면에 기대는 부분이 커요. 소설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덕목도 재미와 감동이라고 생각하죠.” 소설의 삽화도 만화 같은 분위기의 작품 30여장으로 치장했다. 평택대 제자로 손발을 맞춰 온 변지은 화백의 작품이다. 소설은 수수께끼와 같은 추리를 날렵하고 가벼운 문체에 담아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작가는 1992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2009년에는 ‘작가세계’에 소설 ‘꽃을 던지다’를 발표하면서 겸업에 나섰다. 이후 장편소설 ‘란제리 소녀시대’ ‘화요일의 키스’ 등과 소설집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이 이어졌다. 더불어 작가는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한 것도 엄숙주의를 깨기 위한 실험 중 하나”라면서 “소설은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소박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기고] 중국문화적 시각서 본 ‘별그대’ 열풍/박영환 동국대 중문학과 교수

    [기고] 중국문화적 시각서 본 ‘별그대’ 열풍/박영환 동국대 중문학과 교수

    중국의 문호 루쉰은 중국인들의 종교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중국인들은 종종 승려나 비구니, 회교도나 예수교도들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도사는 싫어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 사람은 중국문화의 대부분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도교가 중국문화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도교는 중국인들이 무의식중에 갖는 가장 태생적인 관념이며, 불교와 함께 중국인들을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힘의 원천이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얼개가 중국의 도교적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기층문화의 근간인 초능력, 불로장생, 상상력과 환상, 다른 세계의 개체(신선과 귀신), 남가일몽의 사유 등은 바로 ‘별그대’의 키워드이자, 중국 자생의 도교적 요소들의 집합체이다. 400년 이상을 살아왔음에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도민준’의 형상은 도교에서 장수의 신으로 추앙하며, 800세까지 살았다는 신화 속 인물 ‘팽조’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404년 전 조선으로 온 외계인과 2014년 여성 ‘천송이’와의 사랑, 위험한 순간마다 초능력으로 구해준다는 설정도 도교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스토리유형이다. 다시 말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서사적 구조와 작가의 동양적인 우주관은 도불적인 요소를 내포한 중국 고전문학의 전형으로 중국인들의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스토리구조이다. 영화로 소개된 ‘천녀유혼’, ‘백사전’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전지현이 중화권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이다. 중국이나 타이완은 한국사회에 비해 여성들의 활동영역도 넓을 뿐 아니라, 비교적 자유롭다. ‘엽기적인 그녀’나 ‘별그대’에서 보인 전지현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유교관념이 강한 한국보다 친도교적인 중화권 정서에 거부감 없이 잘 부합된다. 게다가 키가 크고 학식을 겸비한 젊은 꽃미남 교수, 엄청난 재력, 위기 때마다 발휘되는 초능력, 400년간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순애보를 가진, ‘도민준’은 말 그대로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고전소설 속 완벽남의 형상이다. 가장 중요한 인기요소는 작가의 역량과 작품 기획에 있다. 중국문화의 내면을 이해한 토대 위에 광해군 때의 기록을 재료로 신화적 상상력과 탄탄한 스토리의 힘을 현실적인 소재(특히 관중들이 궁금해하는 한류스타의 생활)와 절묘하게 엮은 스토리텔링은 가히 최고수준이다. 다원화, 혼종화를 지향하는 현 시대에 세계화에 기반하는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작품 기획은 추후 한류의 지속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 [한반도 분단 70년-신뢰의 씨앗 뿌리자] 정서·언어·문화 이질감… 분단 증후군 극복에 ‘답’ 있다

    [한반도 분단 70년-신뢰의 씨앗 뿌리자] 정서·언어·문화 이질감… 분단 증후군 극복에 ‘답’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8일 드레드덴 구상을 통해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을 강조했지만 분단 이후 69년간 남북 간의 정서와 문화, 언어의 골은 ‘분단증후군’으로 불릴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민족 역사발전 단계의 질곡과 6·25 전쟁 이후 60여년간 증오의 악순환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한의 동질성을 회복하기에 앞서 교류와 접촉을 확대하면서 이분화된 문화와 정서를 좁히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남북한 사이의 문화적 이질성은 1990년 통일된 동·서독보다 큰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은 19세기까지 근대화 과정을 겪은 이후 1945년 전범국가로 강대국에 의해 분할됐다. 하지만 남북한은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문화의 잔재를 공유하면서도 1950년대부터 각기 다른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관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30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남북 상호 간 적대성을 키워 왔던 것이 독일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남북한의 정서적인 차이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잔재, 사회주의 정치이념, 획일화된 군사·병영 문화가 남한의 다원주의, 개인주의,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충돌하는 데서 드러난다. 남한 내 탈북자 여성들이 사회 활동에 대해 부정적이고 상명하복의 명령체계, 질서와 권위에 보다 민감하다는 점도 이를 반영한다. 북한 주민들의 강한 공동체 의식도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 체화된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점으로 꼽힌다. 2004년 탈북한 회사원 김석준(33·가명)씨는 “중국에서 3년을 지내고 동남아를 통해 남한에 들어왔기 때문에 중국생활이 일종의 완충 역할을 했지만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며 “남한으로 곧바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더욱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외래어 등 남북 간 언어의 차이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북한은 1949년 한자 사용을 폐지하고 한글 전용 정책을 실시하는 등 인위적으로 말을 규범화했다. 특히 한자어와 외래어는 대중화된 단어를 제외하고 한글 고유어로 대체하고 고유어가 없을 때는 풀이말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를 들면 소형차는 ‘발바리차’로, 모자이크는 ‘쪽무늬그림’ 등으로 부른다. 이 밖에 괜찮다는 ‘일없다’, 심심하다는 ‘슴슴하다’ 등으로 향후 언어 통합이 절실함을 일깨워 준다. 남북한 경제적 격차에 따른 영양 공급과 신체구조상의 차이도 향후 통일 과정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유엔인구기금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남한국민의 출생 시 기대 수명은 남자 78세, 여자 85세임에 반해 북한은 남자 66세, 여자 73세로 조사됐다. 기술표준원은 남한 주민의 평균 키를 남성 174㎝, 여성 160.5㎝로 집계했지만 통일부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북한은 1930년대 수준인 남성 165㎝, 여성 154㎝로 추정된다. 특히 북한군은 청소년들의 평균 키가 작아지자 1990년대 초반까지 150㎝이던 모병 기준 신장 하한선을 2012년 3월142㎝까지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군에 입대할 나이인 만 17세가 됐음에도 150㎝가 안 되는 청년들이 많다는 증거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 시점에서는 조급하게 남북 상호 간 동질성을 회복하려고 하기보다 교류와 접촉을 늘려 이질적인 사회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먼저 탐색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김종준 하나은행장, 19세 연하 여성과 결혼식 사진 공개 ‘첫 만남은?’

    ‘김종준 하나은행장 결혼’ 김종준 하나은행장(58)이 19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김 행장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19세 연하인 김모(39)씨와 결혼했다. 결혼식 사진은 김 행장이 25일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올리면서 공개했다. 이날 결혼식에는 양가 친인척과 하나금융지주 임원진 일부만 초대, 조용하게 치러졌다.김 행장과 김 씨는 지난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대신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당시 통역과 의전을 맡았다. 김 행장은 처음엔 김 씨를 다른 남성과 맺어주려 했지만, 김 씨가 김 행장에게 호감을 표시하면서 만남이 시작됐다고 한다. 김 행장은 3년 전 첫번째 아내와 사별했으며 둘 사이에 외아들(29)을 두고 있다. 한편, 지난 2012년부터 하나은행을 이끌어 온 김 행장은 지난 20일 하나은행 주주총회를 통해 1년 연임이 확정됐다. 사진 = 김종준 하나은행장 SNS (김종준 하나은행장)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종준 하나은행장. 19살 연하 미녀와 재혼…영화같은 러브스토리 화제

    김종준 하나은행장. 19살 연하 미녀와 재혼…영화같은 러브스토리 화제

    김종준(58) 하나은행장이 19살 어린 미모의 여성과 재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융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 행장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친척과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김모(39)씨와 결혼했다. 김 행장은 지난 25일 자신의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결혼식 사진 6장을 공개했다. 김 행장은 3년 전 부인과 사별했으며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다. 하나은행 측은 “김 행장의 재혼에 대해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해 김 행장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두 사람은 이후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김 행장이 부인 김씨와 열애를 하기 전 혼기가 찬 후배에게 소개시켜줬지만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은 본인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또 2년 임기의 김 행장이 최근 1년 연임에 성공한데 이어 혼사까지 치르면서 경사가 겹쳤다며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다고 한다. 김 행장의 부인 김씨는 캐나다에서 학교를 나와 주로 북미 지역에서 통역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軍위안부 강제동원’ 입증할 日사료 대거 발견

    ‘軍위안부 강제동원’ 입증할 日사료 대거 발견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한국여성들이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집단으로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음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가 중국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옛 만주국 당시 관동군사령부 등이 남긴 일제사료 10만권을 정리·연구하고 있는 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이하 기록보관소)는 최근 정리가 끝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 25건을 한국언론에 공개했다. 25건의 사료 가운데 6건은 한국인 군 위안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1941년 일본군 베이안(北安)지방검열부가 만든 ‘우정검열월보’(郵政檢閱月報)에서 한 군위안소 상황을 묘사한 편지도 포함돼 있다. 헤이룽장 헤이허(黑河)에 사는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현에 사는 지인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위안소 병력은 단지 20명 정도며 전부 선인(鮮人·조선인)으로 국가총동원법에 묶여 온 것”이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또 “방자(芳子), 화자(花子) 등에게 분홍색 배급권이 지급됐다”, “봉급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배급권도 직권남용으로…장교들 전용상태”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우정검열월보’ 제도는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운 일제가 군사기밀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 군·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광범위한 편지·전보 검열제도로, 각 지역 헌병부대는 검열결과를 정기적으로 관동군 헌병대에 보고했다. 기록보관소 자오위제(趙玉潔) 연구위원은 “‘병력’이라는 표현이 좀 생소하긴 하지만 문맥과 일본어식 여자이름이 나온 것을 종합하면 ‘군 위안부’를 지칭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군이 공금을 사용해 군 위안부를 계획적으로 모집했음을 보여주는 만주 중앙은행의 전화기록과 ‘위안부 수가 부족해 현지에서 위안부를 모집해야 한다’는 화중파견헌병대의 또 다른 상황보고서도 공개됐다. 전화기록에는 일본군이 군용공금과목을 할당해 위안부를 ‘구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통화내용을 수기로 풀어낸 이 사료는 일본군이 1944년 12월∼1945년 3월 네 번에 걸쳐 공용자금을 군 위안부 항목에 지출했고 그 액수가 53만 2000엔(당시 화폐단위)에 달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1938년 2월 화중파견헌병대가 관동군사령부에 보고한 ‘난징헌병대 관할구역 치안회복 상황보고서’에는 ‘통첩’(通牒·알림)이라는 문자가 찍혔고 난징, 샤관, 쥐룽, 전장, 진탄, 창저우, 단양, 우후, 량궈 등 8개 시현에 배치된 일본군 규모, 위안부 수, 위안부 1명당 군인 비율, 열흘간 위안소를 이용한 군인 수 등이 기록돼 있다. 특히 우후 지역의 군 위안부 109명 중에서는 ‘조선위안부’가 36명이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현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우익들은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대장금2’ 이영애 출연 긍정적… 제2 한류 꽃피나

    ‘대장금2’ 이영애 출연 긍정적… 제2 한류 꽃피나

    배우 이영애(43)가 2003년 방영돼 아시아 전역에 드라마 한류 시대를 열었던 MBC ‘대장금’ 후속편 출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최근 ‘별에서 온 그대’가 중화권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데 이어 ‘대장금2’가 한동안 주춤했던 드라마 한류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MBC에 따르면 연초 신년 대기획을 통해 ‘대장금2’의 제작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대장금’의 주인공이었던 이영애와 ‘대장금2’ 제작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MBC 관계자는 “최근 이영애가 시놉시스를 전달받고 출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대장금’을 집필했던 김영현 작가가 다시 참여하는 ‘대장금2’는 오는 10월 방송될 예정이다. 줄거리는 어머니가 된 장금이 스승이 돼 후학을 양성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금2’의 제작 소식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화제다. 중국 언론들은 ‘대장금’을 중국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한국 드라마로 꼽으며 ‘대장금2’의 제작과 이영애의 출연 여부에 관심을 보여왔다. 중국의 미디어 관련 기업과 방송사들도 ‘대장금2’의 투자 및 판권 구매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금’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총 56부작으로 방영됐다. 장금이라는 한 여성이 궁중 최고의 요리사를 거쳐 조선의 유일한 임금 주치의가 되기까지의 인생 역경을 감동적으로 그려, 방영 당시 평균 시청률 41.6%를 기록했다. 중국과 일본, 중동 등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돼 본격적인 ‘드라마 한류’ 시대를 열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함익병, 인터뷰 논란 때문에 ‘자기야’ 하차…무슨 말했길래 이러나

    함익병, 인터뷰 논란 때문에 ‘자기야’ 하차…무슨 말했길래 이러나

    최근 인터뷰 발언으로 논란이 된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이 고정출연하고 있단 SBS ‘백년손님-자기야’에서 하차한다. 20일 방송 관계자에 따르면 함익병은 최근 ‘자기야’ 녹화를 마치고 하차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20일 방송이 함익병의 마지막 방송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함익병은 최근 월간조선 3월호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은 의사라기 보단 의사면허 소지자”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의무 없이 권리만 누리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니냐”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개인의 의견을 담은 소신 발언이었지만 특정 인물에 대한 비하, 여성을 전반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특히 ‘자기야’에서 기존의 사위들과 다른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그이기에 후폭풍은 더욱 거셌다. 결국 시청자들은 함익병의 ‘자기야’ 하차를 요구하고 나섰다. 함익병의 마지막 방송은 20일 오후 11시 방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장금2’ 현실화? 이영애 측 “긍정 검토 중”…‘대장금 시즌2’ 내용 보니

    ‘대장금2’ 현실화? 이영애 측 “긍정 검토 중”…‘대장금 시즌2’ 내용 보니

    ‘대장금2 줄거리’ ‘대장금2 이영애’ ‘대장금2 내용’ ‘대장금’ 주인공 이영애가 ‘대장금2’ 출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매체 뉴스엔에 따르면 이영애 측 관계자는 “’대장금2’ 시놉시스를 받았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MBC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장금 시즌2’는 올해 10월 방송을 목표로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예정대로 제작이 진행되면 현재 방송 중인 월화극 ‘기황후’와 후속작인 ‘트라이앵글’, ‘야경꾼일지’ 등에 이어 전파를 탈 전망이다. ‘대장금2’ 역시 원조 ‘대장금’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가 공동 작가로 나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대장금2’ 제작은 MBC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지난해 초 김재철 MBC 전 사장이 ‘대장금2’ 제작을 언급한데 이어 김종국 사장이 올해 초 ‘대장금2’ 제작을 공식화 했다. 이처럼 ‘대장금’의 성공을 주도했던 김영현 작가와 주인공 이영애가 ‘대장금2’에 합류할 경우 그동안 출연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지진희 등 앞선 시즌의 다른 주요 배우들의 합류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대장금2’ 줄거리의 틀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MBC 관계자는 “새 시즌의 줄거리로 어머니가 된 대장금이 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 요리·의술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앞선 작품과 같이 한 여성이 불굴의 의지로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선시대 최초 의녀로 왕의 주치의가 된 ‘대장금’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대장금’은 2003년 9월 15일 첫 방송돼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았다. 마지막 회인 54회가 55.5%(2004년 3월 23일 방송/TNmS 수도권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평균 시청률은 42.3%(TNmS 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방송 후에는 전 세계 90여개국에 수출돼 한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하며 한류를 일으켰다. 수출 및 광고만으로도 약 38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2차 콘텐츠로 발전한 ‘대장금’의 생산유발효과도 무려 119억 원에 달한다. 이와 같은 파급력 때문인지 중국 내 여러 기업이 대장금 제작에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MBC 관계자는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보다 일단 우리의 역량으로 잘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서 방송된 대장금의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우수하다. 특히 이야기 구조가 앞선 측면이 있어서 원작에 충실하게 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다만 시대가 흐른 만큼 연출 등에 더욱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면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대장금에 글로벌한 요소를 넣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부분이 너무 중심이 되기보다는 우리의 것이 강조돼야 한다”며 “외국 시장을 너무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들면 본래의 색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장금 시즌2 줄거리 구체화? MBC “이영애 긍정적…올 10월 방송 목표”

    대장금 시즌2 줄거리 구체화? MBC “이영애 긍정적…올 10월 방송 목표”

    ‘대장금 시즌2’ ‘대장금2 줄거리’ 최근 ‘상속자들’과 ‘별에서 온 그대’로 한국 드라마의 중국내 인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한류를 촉발한 드라마 ‘대장금2’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다. ’한쥐’(韓劇·한국 드라마의 중국어 표현)의 인기를 가장 앞에서 이끈 대장금이 최근 재점화한 ‘드라마 한류’의 불길을 더욱 강하게 일으킬지 주목된다. 20일 MBC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장금 시즌2’는 올해 10월 방송을 목표로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예정대로 제작이 진행되면 현재 방송 중인 월화극 ‘기황후’와 후속작인 ‘트라이앵글’, ‘야경꾼일지’ 등에 이어 전파를 탈 전망이다. 특히 드라마 제작 성사 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주인공 이영애가 최근 ‘대장금 시즌2’의 출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애 측 관계자는 “이영애 씨가 ‘대장금 시즌2’의 시놉시스를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만약 이영애의 합류가 최종 결정된다면 그동안 출연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지진희 등 앞선 시즌의 다른 주요 배우들의 합류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원조’ 대장금 성공의 또다른 공신이었던 김영현 작가가 ‘대장금 시즌2’를 공동 집필하는 것으로 정해지면서 제작진과 드라마 이야기의 틀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김영현 작가는 당초 MBC의 다른 드라마인 ‘파천황’ 작가로 거론됐지만 ‘대장금’ 제작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파천황의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김 작가의 대장금 합류가 예상돼왔다. MBC 관계자는 “새 시즌의 줄거리로 어머니가 된 대장금이 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 요리·의술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앞선 작품과 같이 한 여성이 불굴의 의지로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선시대 최초 의녀로 왕의 주치의가 된 ‘대장금’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대장금’은 2003년 9월 15일 첫 방송돼 ‘국민 드라마’로 사랑받았다. 마지막 회인 54회가 55.5%(2004년 3월 23일 방송/TNmS 수도권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평균 시청률은 42.3%(TNmS 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방송 후에는 전 세계 90여개국에 수출돼 한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하며 한류를 일으켰다. 수출 및 광고만으로도 약 38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2차 콘텐츠로 발전한 ‘대장금’의 생산유발효과도 무려 119억 원에 달한다. 이와 같은 파급력 때문인지 중국 내 여러 기업이 대장금 제작에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MBC 관계자는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보다 일단 우리의 역량으로 잘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서 방송된 대장금의 콘텐츠 자체가 굉장히 우수하다. 특히 이야기 구조가 앞선 측면이 있어서 원작에 충실하게 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다만 시대가 흐른 만큼 연출 등에 더욱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면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대장금에 글로벌한 요소를 넣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그 부분이 너무 중심이 되기보다는 우리의 것이 강조돼야 한다”며 “외국 시장을 너무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들면 본래의 색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퍼스트 무버의 조건/문소영 논설위원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경제 발전의 핵심적 가치는 ‘캐치업(catch-up·선진국 따라잡기)’이었다. 1980년 때까지 주로 일본 따라잡기였다. 법률제정부터 기업의 조직과 철학, 인재양성까지 모두 베껴오다시피 했다. 이런 기업들을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발 빠른 추격자)’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과 포스코였다. 패스트 팔로워는 세계적인 선두기업이 시장에 내놓은 상품 중에서 대박이 난 상품들을 모방해서 더 싼 가격으로 승부를 본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패스트 팔로워는 고부가가치를 낳는 창조적인 제품보다 원가절감 등을 통한 저가의 상품으로 시장을 넓히는 박리다매에 힘쓰게 된다. 기술개발비가 천문학적인 상품을 내놓는다고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 것이 아니니, 따라잡기 전략은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등에 올라타기만 한다면 힘을 들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박리다매 방식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절대적 가치는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개발시대의 각종 규제를 타파해 창조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도 선도자였던 때가 있었다. 조선에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청나라 것으로 알려진 적도 있지만 세종이 만든 측우기 역시 서양보다 200년 앞서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세계 최초를 만들어놓고 더 많이 활용되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가 부족했다. 상상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충분하지 않았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창조적인 학습능력도 없었다. 연암 박지원이 지적했듯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못했다. 외부문물을 수용하는 포용력과 감수성도 부족했다. 또 백면서생이 관료가 돼 지시하면 현장을 잘 아는 농부와 장인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따라야 했다. 최근 영상물심의위원회의 영화 포스터 심의가 논란이다. 외국 여자 배우의 가슴골이나 남녀의 키스 장면이 포함된 포스터들을 ‘유해성 있음’으로 판단한 탓에 영화사에서 수정작업을 한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도 아니고, TV 연예프로에 ‘하의상실’ 여배우들이 즐비한 나라에서 하품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된 싸이의 ‘라잇나우’가 한때 여성부로부터 청소년유해물로 지정됐던 것을 기억하라. 문화분야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인간의 정신과 감각을 억압하는 1970년대 구닥다리식 엄숙주의 규제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티셔츠에 새겨진 숫자들… 어떤 역사일까요

    티셔츠에 새겨진 숫자들… 어떤 역사일까요

    “1931년은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도입한 첫해입니다. 아시아 곳곳으로 팔을 뻗친 일제는 무려 20만명의 여성에게 위안부란 이름으로 성폭력을 휘둘렀죠. 그래서 저는 ‘1950’ ‘1982’ 등 이후 83년간의 한 해 한 해를 뜻하는 숫자를 티셔츠에 새겨 입고 다닙니다. 일본 정부가 명백한 범죄를 인정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활약한 민영순(61) 어바인주립대 교수는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50년 넘게 미국에 살아 외형은 한국인이지만 이제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재외 여성 작가라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역설적이게도 위안부 문제와 이주자, 이민자 등 약자들의 ‘디아스포라’(이산)에 천착하면서 탈출구를 찾았다. 오는 5월 18일까지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2014 SeMA 골드 노바디(Nobody)’전에선 작가가 2006년부터 5년간 작업한 설치작품 ‘역사를 입다’를 만날 수 있다. 형형색색의 티셔츠 수십 장에는 연도를 뜻하는 다양한 숫자가 적혀 있다. “1992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만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 두 분은 무척 용감했어요. 여자로서 부끄러운 과거를 당당히 밝히고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2006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위안부 생존자인 롤라 버지니아 할머니도 만났죠.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릴 방법을 찾다가 티셔츠에 숫자를 새겨 입는 퍼포먼스를 시작했어요.” 이후 작가는 기회가 날 때마다 해외 원정 시위에 나선 위안부 할머니들 곁을 지켰다. 그럴 때면 늘 다른 조력자들과 함께 숫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이 같은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이번 전시에서 자기 자신, 이전 부모 세대로 확장됐다. 가변 설치작품인 ‘어머니의 보따리’는 가로, 세로 90㎝인 5개의 작은 보따리들을 오브제로 삼았다. 첫 번째 보따리(비닐봉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남긴 유품을 담았고, 두 번째 보따리에는 1992년 4월 미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당시의 사진들을 새겼다. 한인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되물은 것이다. 이어 세 번째 보따리에는 여성 속옷과 신발, 네 번째 보따리에는 군복, 다섯 번째 보따리에는 구한말 조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담아 정체성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 영상 복합물인 ‘움직이는 목표물’은 반대로 해외에서 국내로 온 이주자들의 문제를 건드린다. 바닥에 동그란 까만 공들을 놓고 벽면을 훑고 돌아가는 영상을 더했다. 공과 영상을 통해 이주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을 ‘타깃’이라고 느끼는 소외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이주민들의 ‘코리안 드림’으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코리아’란 상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상품은 보호되나 노동자는 보호되지 않는 현실을 고발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도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미군 군무원인 아버지가 먼저 미국으로 건너간 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어요. 서울 혜화동에 살았는데 1960년 4·19 의거 때 의대생들이 시위하던 모습이 생생해요.” 미 UC버클리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휘트니미술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작가는 민족주의 성향의 한인단체에 몸담으면서 점차 후기 식민주의와 복잡한 정체성 문제에 눈떴다. 다른 해외 거주 한인 작가들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노바디로서 예술가가 어떻게 세상과 또 자신과 대면해 왔는지에 대한 예술적 기록들을 남겼다. 작가는 추후 한류 드라마 속 여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세계를 다룬 영상 작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번 전시에는 역시 캐나다와 미국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윤진미(54)·조숙진(54) 작가도 참여했다. 윤 작가는 캐나다에 이민 온 이민자들이 캐나다를 상징하는 회화 앞에서 찍은 사진들로 구성한 ‘67그룹’ 등을 선보였고 조 작가는 200개의 버려진 액자를 모아 구성한 ‘액자’ 등을 내놓았다. 이들은 “노바디는 가장 중요한 생명과 삶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흔적이자 열쇠”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생황’ 대중화 앞장서는 연주가 김효영

    [김문이 만난사람] ‘생황’ 대중화 앞장서는 연주가 김효영

    봄은 생(生)이요, 동(動)이다. 지천에서 잔뜩 웅크리고 지내던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두꺼운 옷을 입었던 꽃망울들이 ‘까꿍’하며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그것을 시늉하며 코끝을 간질인다. 저절로 눈을 감으니 잠시 취해버린다. 몽환 속에서 김홍도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가 나타난다. 큰 소나무 아래에 한 사내가 ‘생황’(笙簧)을 처연하게 불고 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균관삼차배봉시 월당처절승룡음’筠管參差排鳳翅 月堂凄切勝龍吟)이라는 글자가 날렵하게 적혀 있다. 무슨 뜻일까. ‘길고 짧은 대나무통은 봉황의 날개인가, 월당의 생황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처절하네’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림 속의 생황 연주자는 주나라의 태자 진(晉)이란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산수에만 뜻이 있어 계곡에서 노닐다가 15세 때 한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우고 나더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버렸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김홍도의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에도 한 서생이 맨다리로 양 무릎을 세우고 파초를 깔고 앉아 ‘생황’을 불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신윤복의 ‘연당(蓮塘)의 여인’에서는 생황을 든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선유도’에서는 뱃머리에 걸터앉은 여인이 생황으로 풍월을 연주하며 뱃놀이의 흥을 돋우고 있다. 에구 어찌할거나, 염양춘(艶陽春)이다. 벌써 봄이 무르익어가는구나! 여기에 나오는 ‘생황’은 어떤 악기일까. 우선 그 역사를 잠시 되짚어본다. 아악(雅樂)에 쓰이는 관악기 중 하나로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천년 세월을 간직한 천상의 악기로 전해져 온다. 고구려, 백제 시대 때부터 널리 연주됐다는 기록이 ‘수서’와 ‘당서’ 등에 나타나 있으며 통일신라 때 제작된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 비천상에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세종 때 제조된 생황은 회례연에서, 성종 때에는 종묘제례악에서 향비파, 해금, 대금 등과 함께 연주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황엽장(簧葉匠)의 사망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생황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중국에서 구입해 연주했다는 내용이 ‘악장등록’과 ‘영조실록’에 전한다. 조선후기에 들어 생황이 널리 연주됐다는 사실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최근에 와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기생 매향이 생황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며 세종문화회관 정면 벽의 부조 ‘비천상’에서도 두 선녀가 생황과 피리를 불고 있다. 생황은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 중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화음악기로 음 빛깔이 밝고 아름다우며 합주에 자주 쓰인다. 특히 단소와 만드는 2중주는 ‘생소병주’(생황과 단소 합주)라고 할 정도로 조화를 잘 이룬다. 바가지 형태의 토대에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죽관(17, 24, 36관 등)을 꽂아 음정을 만들고 취구(吹口)를 통해 들숨 날숨으로 여러 화음을 내는 악기가 바로 ‘생황’이다. 전통적으로는 17죽관, 오늘날에는 24관의 생황이 주로 쓰이고 있으며 개량형태로 36관과 37관으로도 연주되고 있다. 생황은 생김새가 봉황이 날개를 접은 모양이라고 해서 봉생(鳳笙)이라고 하며 ‘하늘의 소리’ ‘천상의 소리’로 불리는 아름답고 신비한 악기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황이 다른 전통악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 때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그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고, 조선후기에 다시 살아났으나 주로 기생과 상류층의 취향이라는 점에서 자생력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생황이 요즘 들어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봄이 생동하듯 다시 연주되면서 예술인과 일반인들에게도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효영(40)씨가 1년에 100회 이상 무대에 설 만큼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생황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독주무대만 한 달에 5~6회 정도 갖는다. 그러기를 13년째. 생황을 들고 전국은 물론 해외무대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해금, 생황, 피아노 앙상블 사이의 사계이야기’ ‘김효영 생황음반 환생’ ‘김효영 생황음반 두 번째 환생, 향가’ 등의 음반을 내고 생황의 소리를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삼청각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일반인들을 위한 연주회를 갖는다. 어째서 생황이 봄을 부르는 악기라고 할까. “우선 생긴 모양을 보십시요. 여러 죽관들이 생명의 솟아오름을 나타내고 있지요. 두 번째는 수룡음(水龍吟)을 들 수 있습니다. 수룡음은 한국의 전통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생황의 깊고 부드러운 음색에다 그 위로 하늘거리듯 맑고 고운 가락이 잘 어우러지는 곡입니다. 소리 자체가 봄꽃이 피어오르듯 반짝반짝거립니다. 특히 ‘신수룡음’은 겨울이 지나 다시 환생하듯 샘솟는 봄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생황을 ‘마치 봄볕에 모든 생물이 돋아나는 형상을 상징하고 물건을 생(生)하게 한다’는 뜻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대표적인 생황곡으로 알려진 ‘염양춘’(무르익어가는 봄)은 전통가곡 중 계면조 ‘두거(頭擧)의 선율을 기악곡으로 만들어 차분하면서도 유려해 봄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황은 과거에 단소와 이중주를 많이 했으나 지금에는 해금, 피아노 등 전통과 서양악기 사이에서 다양한 협주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생황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빼어난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음색 또한 참으로 신비합니다. 현대음악과도 잘 어울려 국악의 대중화는 물론 우리 국악창작의 앞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2009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환생’을 통해 전통의 수룡음을 오늘날 분위기에 맞게 재해석한 ‘신수룡음’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또한 2011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향가와 생황의 만남’이라는 독주회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새로운 접목을 시도했다. ‘서동요’ ‘혜성가’ ‘제망매가’ ‘처용’ ‘찬기파랑가’ ‘헌화가’ 등 신라시대 향가 6곡을 생황의 선율과 화음에 맞게 창작곡으로 연주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그는 “천년 전, 향가와 생황은 함께 존재했으며 생황에 담긴 신비로움은 여러 변화를 겪으며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면서 “향가의 낯선 어투에 담긴 내용은 지금도 충분히 음악적으로 공감되며 당시를 상상하게 된다”고 말한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인간사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두려움, 슬픔, 관용, 용서, 고백 등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생황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뿐만 아니다. 그는 생황으로 동요, 클래식, 속주, 아르페지오 같은 새로운 주법을 선보이기도 하고, ‘방자전’ ‘왕자호동’ 등 영화와 발레음악, 그리고 컴퓨터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넬라판타지아’, 피아졸라의 ‘탱고’, 비발디의 ‘사계’ 등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생황으로 거침없이 연주하면서 생황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중국과 스페인, 오스트리아, 페루 등 외국 연주회를 통해 우리나라 전통 생황의 소리를 알리기도 했다. 오는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다양한 창작활동과 현지 연주자들과 교류를 가질 예정이다. 이때에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생황 연주회를 통해 한국 전통생황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이다. 어떻게 해서 생황과 인연을 맺었을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피아노를 곧잘 쳤다. 국악고등학교에서는 피리를 배웠다. 추계예술대를 나온 그는 여자 피리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국립국악원에 들어갔다. 1년 정도 지날 무렵 스승인 손범주 선생의 권유로 추계예술대학원에서 생황연주와 작곡 등을 공부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피리를 배울 때 음색에 반해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생황을 처음 본 순간 더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생황의 계보는 조선시대 마지막 장악원의 연주자 박덕인을 비롯 근대에 이르러 김계선, 김태섭, 정재국, 손범주 등으로 이어지며 최근에는 김씨를 필두로 여러 생황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는 “그동안 악기연주의 명맥을 어렵게 어이온 명인들의 노력과 최근 젊은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생겨나면서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국내외로 열심히 뛰면서 한국형 생황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김효영은 스승 권유로 대학원때 생황 전공… 속주·아르페지오 새 연주법 개발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국악고등학교에서 피리를 배웠다.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국악원에 들어갔다. 이때 스승 송범주의 권유로 생황을 배웠고 추계예술대 교육대학원에서 생황을 전공했다. 생황연주는 28세 때부터 시작해 13년째 생황의 레퍼토리를 넓혀오고 있다. 동요, 클래식, 탱고도 연주하고 속주, 아르페지오 같은 새로운 연주법도 개발했다. 발레, 영화음악, 컴퓨터 음악을 넘나들며 생황 연주를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양 국악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아트 프론티어’로 선정됐다. 2013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신진여성 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주요 독주회로는 ‘춤추는 생황’(2009, 서울 남산국악당), ‘천년의 사랑’(2010, 아람누리새라새극장), ‘환생’(2010, 국립부산국악원, 국립제주박물관), ‘전주세계소리축제초청 생황콘서트’(2011, 전주소리 문화의전당 연지홀), ‘국악열전 천년의 숨길, 마음에 귀 기울이다’(2012, 경기도 국악당), ‘컨플루언스앙상블 콘서트(2013,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김효영생황 단편영화 herstory’(2013, 대학로예술극장) 등이다. 음반으로는 ‘김효영 생황음반 환생’(2009)과 ‘해금, 생황, 피아노 앙상블 사이의 사계이야기’(2010), ‘김효영 생황음반 두 번째 환생, 향가’(2012) 등이 있다.
  • [겉도는 개방형직위] “전문지식과 경험 공직사회에 활력… 칸막이 걷어야 혁신 가능”

    [겉도는 개방형직위] “전문지식과 경험 공직사회에 활력… 칸막이 걷어야 혁신 가능”

    전문성이나 효율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한 직위에 공직 내외를 불문하고 직무수행 요건을 갖춘 인물을 공개모집해 선발하는 제도가 개방형직위제도다. 주로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자는 취지이지만 도리어 전·현직 공무원 사이에서 지원자가 늘고 있다. 개방형직위에 종사하는 이들이 직접 전하는 체험담과 효과, 문제점, 대안 등을 ‘희로애락’(喜哀)으로 구분해 들어봤다. [희] “올해 나이 64세인데 여생을 남에게 봉사하면서 의미 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마침 국립병원에서 민간인도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지원 신청서를 냈습니다.” 김흥곤 국립소록도병원 안이비인후과 과장은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20년 동안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원로 의사였다. 지금은 국립소록도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손과 발이 돼주고 있다. 그가 오랜 진료 경험을 공공 의료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게끔 만든 건 개방형직위 임용제도다. 개방형직위제를 통해 공익에 이바지하는 민간 전문가들은 이제 공직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존재다. 김영일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은 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장애인 학생들이 제때 필요한 점자책이나 청각자료를 구하지 못해 어려워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 자신이 1급 시각 장애인인 그는 2011년부터 장애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확충하고, 자료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시설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문 분야에서 쌓은 경험은 자칫 폐쇄적인 순혈주의에 빠질 수 있는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돕는 소송을 많이 다뤘던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해부터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으로서 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총괄한다. 그는 “한 분야를 오래 천착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경험을 나누는 것이 국민에게 더 잘 복무하는 정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운광 국립재난안전연구원장은 명지대에서 30년 넘게 토목 환경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대책을 연구한다. 그는 “공무원이 되면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방재 시스템을 구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서울시에서 일하는 김창보 보건정책관 역시 ‘건강세상네트워크’라는 의료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험과 보건학 박사로서 품어왔던 문제의식을 공공부문에 전파한다는 보람을 느낀다. [노] “스웨덴에서는 공공부문 관리자가 100% 개방형직위라고 보면 됩니다. 공무원이나 민간인 구분 없이 누구나 전문성과 지도력만 있으면 채용기회가 있습니다. 국적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황선준 경기도교육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스웨덴 감사원과 국립교육청에서 14년,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장으로 2년을 근무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 공직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먼저 “스웨덴 역시 1960년대까지는 호봉제와 위계질서로 움직였다고 들었다”면서 “지금은 9급이니 5급이니 하는 직급이 없고 행정고시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업무 분야는 있지만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고위직은 물론 학교 교장도 개방형이다. 역량만 인정받으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시스템에 익숙해진 황 위원이 보기에 한국 공직사회는 관료주의가 너무 심하고 위계질서가 너무 엄격하다. 그는 “직접 일할 직원은 얼마 없는데 계장, 과장, 부장, 국장 등 지시하는 사람은 넘쳐난다”고 꼬집었다. 그는 “장(長)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직책이라면 공무원이건 민간이건 상관없이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혁신적인 조직을 만드는 길”이라고 주문했다. 황 위원뿐만 아니라 개방형으로 공직에 들어간 이들은 너나없이 형식에 치우쳐 있고 칸막이 구조가 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우수한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된다. 김창보 국장은 “서울시 노인정책을 예로 들면, 치매와 노인의료는 보건정책관이, 노인요양보험은 복지정책관이 담당한다”면서 “칸막이가 견고한데다 책임자끼리 직접 토론해서 조율하는 걸 어색해한다”고 말했다. 개방형직위 취지와 달리 일부 정부부처가 소속 공무원을 임명하는 ‘제 식구 감싸기’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부처 개방형직위 관계자는 “가령 과장이 되기 쉽지 않다 싶으면 개방형직위로 우회하는 방식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결국 자기 역량만으로는 안 되는 사람을 구제해주는 건데, 이는 제도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 “과장·팀장들 모아놓고 보고를 받는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행정용어가 막 튀어나오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물어보면 혹시라도 얕잡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아듣는 척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다른 직원에게 넌지시 확인했습니다.” 견고한 위계질서와 촘촘한 인맥으로 이어진 집단에 비집고 들어가서 하나가 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김창보 국장은 변변한 사전교육이나 오리엔테이션은 물론이고 전임자한테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업무에 투입됐던 출근 첫날을 떠올리며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공무원 조직도 사람이 움직이는 곳입니다. 뭔가 일을 하려면 예산, 인사, 조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뚫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김 관장은 장애인 학습권을 보장하는 활동을 한다는 데 보람을 느끼면서도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2012년에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에서 도서관으로 바뀌었지만 인력은 10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난 게 전부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가장 답답한 건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적극성과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엔 점자도서관 자체가 부족한데 기존에 있는 점자도서관 인프라 개선작업만 전념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장애인 이용자들이 자료를 쉽게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하는데 아직은 변화가 미비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서울시가 정보공개정책과를 신설한 뒤 개방형직위로 임용된 조영삼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장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국회와 청와대 등에서 기록연구사로 일했다. 정규직 공무원 출신인 그조차도 개방형으로 공직에 돌아온 뒤 어려움을 느낀다. 그는 “개방형은 부하들에게 인사에 도움을 주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걸 각인시키기가 쉽지 않다. 조직 장악력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굴러온 돌이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게 만만치 않다. 그건 전문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하지만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면 전문성 발휘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락] “2012년 사표를 내고 공무원을 그만뒀습니다. 참여정부 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2008년부터 사실상 귀양살이를 한 걸 생각하면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다시 공무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조 과장은 시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서울기록원 건립과 행정정보공개서비스인 정보소통과장 구축을 진두지휘한다. 그는 “일반직이었다면 힘들었다고 본다. 개방형이니까 이만큼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조 과장처럼 공직에 있는 사람에게도 개방형직위는 장점이 많은 제도다. 최은정 여성가족부 국제협력담당관도 외교부에서 일하다 민간 금융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다시 공무원으로 돌아온 사례다. 그는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긍지를 느낀다. 정책을 만들고 한국을 대표해 국제무대에서 활동한다는 자부심도 크다”고 강조했다. 김창보 국장은 “임기 2년에 총 5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면서 “예전에는 2년 동안 보건정책관이 세 번은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개방형직위인 덕분에 꾸준히 장기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자평했다. “고문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피해자치유사업이나 ‘보호자 없는 병원’ 등 그간 추진한 사업을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시민단체나 학계에 있었다면 못했을 사업을 공공부문을 통해 이룬 것이고, 공공부문은 일반직 공무원만으론 벽에 부딪쳤을 사업을 민간전문가를 활용해 달성한 셈입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셈이죠.”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北 대의원 55% 교체… 본격 권력이동 예상

    北 대의원 55% 교체… 본격 권력이동 예상

    북한이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선거 이틀 만인 11일 발표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박봉주 내각총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기존 인사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일부를 제외한 장성택 인맥 상당수도 대의원에 포함돼 아주 급격한 세대교체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새롭게 이름을 올린 인물의 면면은 향후 북한 내 본격적인 ‘파워 시프트’가 있을 것임을 가늠하게 한다. 북한 중앙선거위원회는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결과에 대하여’라는 제목 아래 “전체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여했고 100% 찬성투표를 했다”며 당선자 687명을 공개했다. 376명이 새로 뽑혀 1998년 10기 선거에서 65%가 교체된 이후 가장 높은 55%의 교체율을 기록했다. 이번 선거의 신규 진입자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수행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 인사들이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과 김수길 군 총정치국 부국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대의원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장성택 숙청을 논의한 ‘백두산 대책회의 5인방’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황병서, 마원춘, 박태성 당 부부장은 명단에 포함됐지만 김병호, 홍영칠 당 부부장은 빠져 신진 세력의 약진에도 속도 차가 있음을 보여줬다. 기존 대남 라인 인사들이 이번 대의원 명단에 포함된 것은 최근 남북관계 기류가 큰 변화 없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장성택 인맥으로 분류돼 신변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던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은 최근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남북 간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원동연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신규 진입도 주목할 만하다. 원 부부장은 제336호 개성선거구 다음인 제337호 동현선거구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미뤄 개성공단 인근 지역에서 당선돼 향후 남북 관계에서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위층 2세의 이름이 10여명 보이는 점도 특징이다. 최재하 전 내각 건설상의 아들인 최휘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영구 전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아들인 리광근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 등이 새롭게 당선됐다. 재선에 성공한 최룡해는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최현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당선자 명단에서 확인되며 최 총정치국장이 감금됐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 셈이 됐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 제1위원장의 고모로 건강 이상설이 나도는 김경희 당 비서는 명단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제285호 선거구 당선자에 ‘김경희’가 있지만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백두혈통’인 김경희의 선거구는 12기 선거에서는 제3호로 앞 순위에 있었다. 지난 9일 투표일에 북한 매체에서 처음 호명된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 여정과 형 정철, 이복 누이 설송 등 김정은의 가계 인물들도 이번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탈락한 인물 중 장성택 인맥과 은퇴한 군 원로그룹이 눈에 띈다. 장성택과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문경덕 당 비서와 로성실 전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등의 이름이 없고 ‘김정일의 친위대’였던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박재경 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명국 전 작전국장 등 군 원로그룹도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리병삼 조선인민내무군 정치국장도 빠졌고 국방위원회 위원 가운데서는 백세봉 전 제2경제위원장이 유일하게 빠져 향후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해임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빈자리는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과 박정천 포병사령관 등 김정은 체제의 군 실세들이 대신 채웠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김정은 정권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김여정이 빠진 것은 (정치 무대에) 바로 등장하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北 김정은 동생, 결국 오빠가…

    北 김정은 동생, 결국 오빠가…

    북한이 11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68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 발표는 선거 종료 이틀만에 나온 것이다. 북한 중앙선거위원회는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결과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고 “전국적으로 선거자 명부에 등록된 전체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가해 해당 선거구에 등록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에게 100% 찬성 투표했다”며 68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실세로 뜨고 있는 장정남 인민무력부장과 김수길 군 총정치국 부국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마원춘 당 부부장 등이 새로 대의원이 됐다. 남편 장성택 처형에도 불구하고 김경희 당 비서가 대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관심을 모았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은 제외됐다. 지재룡 주중 대사와 자성남 유엔 대사, 남북간 고위급 접촉에서 수석대표를 맡았던 원동연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은 이번에 새로 대의원이 됐다. 문경덕 당비서와 로성실 전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등 장성택과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은 모두 탈락했으며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박재경 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명국 전 작전국장 등 은퇴한 군 원로그룹도 대의원 명단에서 빠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김정은, 와락 달려드는 女공군 팔짱 끼고

    北김정은, 와락 달려드는 女공군 팔짱 끼고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오중흡7연대칭호를 받은 항공 및 반항공군 제2620군부대의 비행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여기에는 최근 감금설이 나왔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윤동현 인민무력부 부부장, 리병철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 박정천 포병사령관,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황병서·홍영칠·마원춘 당 부부장이 수행했다. 김 제1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사회주의 조국의 신성한 영공을 금성철벽으로 지켜가는 미더운 비행사들이 있기에 조국의 하늘은 언제나 맑고 푸를 것”이라며 비행훈련 강화 방안을 알려줬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은 “훈련에 참가한 비행사들의 모두 여성들인데 불리한 기상조건 속에서도 전투동작들을 훌륭히 수행했다”며 병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여성 비행사의 노래’를 창작해 부르도록 했다. 이어 군부대 시찰에 나선 김 제1위원장은 비행사들의 침실, 식당, 부식물 창고 등을 돌아봤다. 김 제1위원장은 “비행사들을 비롯한 군인들이 생활을 잘 돌봐주는 것은 지휘관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부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사업의 하나”라며 “군부대를 군인들의 정든 집,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부 비행사들을 만나 “조국보위가 신성한 의무로, 최대의 애국으로 되는 우리나라에서만 부부 전투비행사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어공주가 사는 ‘봄의 왕국’

    인어공주가 사는 ‘봄의 왕국’

    여기는 태평양에 뜬 절해고도. TV 일기예보에서나 간간이 들었던 ‘남해 동부 먼바다’에 속한 섬이다. 바다 건너온 봄이 가장 먼저 온기를 풀어놓는 곳, 전남 여수의 거문도다. 섬 주변 절벽엔 벌써 수선화가 곱게 피었고, 섬집 돌담엔 유채꽃이 흐드러졌다. 피보다 붉은 동백도 여기저기서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중이다. 이처럼 섬은 때론 거칠게, 때론 보드랍게 꽃을 어루만지며 애면글면 봄을 틔워내고 있다. 여기에 39개 섬들이 웅장하게 늘어선 백도까지 묶어 돌아본다면 봄날의 여정은 더없이 풍성해질 터다.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114.7㎞쯤 떨어져 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 등 3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고도가 가장 번화하다. 여객선 선착장과 면사무소 등 주요 시설이 밀집돼 있다.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반면 동도는 서도선착장에서 도선으로 이동해야 한다. 동도와 서도를 잇는 연도교는 올 연말께 개통될 예정이다. 거문도는 종종 백도를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쯤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거문도관광여행사의 최민기 가이드는 “거문도 방문객의 90% 정도가 백도와 거문도 등대 정도만 ‘찍고’ 돌아간다”고 했다. 한데 이거 단단히 잘못됐다. 거문도에서 ‘기와집몰랑’(175m)과 녹산곶을 빼면 ‘팥소 빠진 찐빵’과 다름없다. 보통 배 시간에 맞추느라 두 곳 모두 건너뛰기 십상인데, 아침 잠을 줄여서라도 반드시 둘러보길 권한다. 거문도에서 가장 이름난 볼거리는 거문도 등대다. 거문항 선착장을 기준으로,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보로봉(170m)과 수월산(128m) 아래로 난 약 4㎞ 길이의 산책로, 혹은 덕촌마을에서 불탄봉(195m) 방향으로 올라 약 5㎞ 길이의 기와집몰랑길을 따라간다. 산책로는 왕복 두 시간, 기와집몰랑길은 세 시간쯤 걸린다. 두 길은 무넹이(목넘어)에서 합쳐진 뒤 거문도 등대까지 줄곧 함께 간다. 대개의 여행객들은 산책로를 선호한다. 걷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와집몰랑길은 거칠고 남성적이다. 야트막한 산을 올라야 하는 게 다소 힘들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기와집몰랑길을 외면하지는 말길. 능선 위에서 맞는 장쾌한 풍경을 놓친다면 이는 명백한 손해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사투리다. 풀자면 기와집 형태의 산마루란 뜻이다. 능선에서 보면 그저 해안절벽이지만, 바다에서는 장대한 기와집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불탄봉과 보로봉을 거쳐 가는 기와집몰랑길은 정비가 잘돼 있다. 박석 깔린 능선길을 걷다 보면 바다 위에 선 듯한 느낌도 든다. 길옆 ‘비렁’(벼랑의 사투리) 아래로는 바다가 쉼 없이 넘실댄다. 비렁과 몰랑이 반복되는 길, 이게 기와집몰랑의 본질이다. 능선 너머로는 웅장한 해안 절경이 펼쳐져 있다. 특히 거문도 등대가 서 있는 수월산 쪽 해안 풍광은 감탄사가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올 정도다. 기와집몰랑의 끝은 무넹이다. 보로봉과 수월산을 잇고 있는 낮은 갯바위지대다.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수월산(水越山) 이름도 무넹이에서 비롯됐다. 수월산 끝은 거문도 등대다. 1905년 남해안에선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등대 끝의 관백정(觀白亭)은 백도를 볼 수 있다는 뜻의 정자다. 정자 아래 단애에는 수선화와 유채꽃 등이 피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다. 거문도 남쪽에 수월산이 있다면 북쪽엔 녹산곶이 있다. 근육질의 수월산에 견줘 녹산곶은 한결 여성적이다. 바다를 향해 부드럽게 펼쳐진 능선이 일품이다. 여인의 삼단 머릿결 같은 잡초들은 바람 불 때마다 일어선다. 곶부리를 둘러싼 바다는 파랗다. 하늘빛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위에 녹산등대가 촛대처럼 서 있다. 이 같은 풍경에서 ‘신지끼’ 전설이 싹 튼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신지끼는 상체는 여인,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다. 섬사람들은 신지끼를 섬의 수호신으로 여겼다고 한다. 큰 풍랑이 일어나기 전날 어김없이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져 이를 알렸기 때문이다. 신지끼가 출몰했다는 신지끼여(수중바위)는 원래 녹산등대 맞은 편에 있다. 하지만 실제 신지끼 조각상이 세워진 곳은 녹산곶 아래의 야트막한 언덕이다. ‘인어해양공원’이라는 거창한 명칭 대신 ‘신지끼 언덕’이란 소박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신지끼 조각상은 서구형 미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 소라 귀걸이와 조개 머리핀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오른손엔 예의 돌을 든 채 초승달을 타고 앉았다. 영화 ‘인어공주’의 외모와 빼닮았다. 1885년(고종 22) ‘거문도 사건’을 일으킨 영국군이 섬에 주둔한 이후 생긴 전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배꼽 바로 아래부터 물고기 비늘이 시작되는데 지나치게 육감적이다. 이쯤 되면 성적 매력이 ‘메릴린 먼로급’이다. 거문도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백도(국가명승 7호) 유람이다. 거문도에서 28㎞ 떨어진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 등 39개 섬들로 이뤄진 무인군도다. 매바위, 병풍바위, 서방바위, 각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거문도엔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영국 함대가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봉쇄한다며 1885~1887년 사이 약 2년 동안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이다. 당시 거문도는 ‘해밀턴 항구’로 불렸다고 한다. 거문초등학교 옆 돌담길을 따라 우리나라 최초로 생겼다는 ‘해밀턴 테니스장’과 영국군 묘지 등이 잘 정비돼 있다. 글 사진 거문도(여수)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여수여객선터미널(663-0116)에서 하루 두 차례(오전 7시 40분, 오후 1시 40분) 거문도행 여객선이 출항한다.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 등을 들러 거문도 고도까지 간다. 2시간 20분 소요. 배삯은 편도 3만 6600원이다. 고흥 녹동항에서도 거문도까지 여객선이 운항한다. 녹산등대의 들머리인 장촌마을까지는 택시나 자전거를 이용해 가는 게 낫다. 거문항에서 6㎞쯤 떨어져 있어 걸어서 오가기는 다소 멀다. 택시는 고도에서 녹산곶까지 왕복하는 데 4만원이다. 승합차량이기 때문에 여럿이 돈을 추렴해 이용할 수도 있다. 자전거는 1시간에 4000원, 하루 2만원이다. 대여점은 고도에 있다. 거문도등대에서 녹산등대까지 거문도 종주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거리는 8㎞가 채 안 되지만 족히 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백도는 오가는 데 2시간 이상 소요된다. 배삯은 2만 9000원. 거문도관광여행사(www.geomundo.co.kr)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도 좋겠다. KTX 등 교통편과 숙식, 그리고 거문도 종주코스와 기와집몰랑코스, 백도관람 등이 포함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665-7788. →잘 곳 삼산면사무소(659-1257)가 있는 고도에 모텔과 민박 등이 몰려 있다. 거문도 등대(666-0906)에서도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 이용 신청은 희망일 2주 전 여수지방해양항만청(yeosu.mof.go.kr)에서 받는다. →맛집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감성돔, 참돔 등은 6만원, 삼치는 1㎏에 4만원 정도 받는다. 모둠해물은 5만원 선. 무엇보다 곁반찬이 ‘감동’이다. 개상어 회무침, 문어숙회, 돌낙지, 군소 숙회, 뿔소라 등 도회지에선 맛보기 힘든 음식들이 곁들여진다. 섬마을식당(666-8111), 충청도횟집(665-1986) 등이 알려졌다. 섬마을 식당은 아침에도 문을 연다. 각종 해산물과 나물이 곁들여진 아침상이 소박하고 맛있다.
  • 말로만 듣던 김인승을 만날 시간

    말로만 듣던 김인승을 만날 시간

    붉은색과 녹색의 저고리, 줄무늬 주름치마 차림의 여성 9명이 원형으로 둘러서거나 앉아 진지하게 연주를 감상한다. 오른쪽에는 악보를 보며 첼로를 켜는 남성이 있고 뒤편에선 두 남자가 이를 지켜본다. 화폭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모든 시선은 첼로를 켜는 연주자의 활에 쏠려 통일감과 극적 긴장감을 동시에 조성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천재’로 불리며 탁월한 인물화를 남긴 김인승(1911~2001)의 대작 ‘봄의 가락’(1942)이다. 실제 음악을 듣는 듯 부드러운 흥취가 느껴지는 작품은 불변의 숭고한 여성상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세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은 희귀작이다. 한국은행이 60여년간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기 위해 구입, 소장해 온 다수의 미술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02년 한은갤러리 개장 이후 본격적으로 소장 미술품을 공개했으나, 이런 작품들은 불과 몇 차례만 세상과 조우할 수 있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한국은행은 외부 대여 등을 잘 하지 않기에 일반 미술관 등에선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작품을 비롯해 한국은행이 비공개 소장해온 역사적인 작품들이 오는 5월 18일까지 한은갤러리에서 열리는 ‘근현대 유화 작품 30선’에서 선보인다. 김인승을 비롯해 심형구(1908~1962), 변종하(1926~2000), 박항섭(1923~1979) 등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28명의 유화작품 30점이다. 근현대 희귀 유화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김인승, 이인성과 함께 선전을 무대로 활동한 ‘선전 삼총사’ 심형구의 ‘수변’(1937년)은 인물이 주는 정감 어린 모습을 표현한 수작이다. 나무 그늘 아래 댕기를 드리운 소녀가 광주리를 든 채 등을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는 장면을 담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면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표현해 일본 학자들이 주장한 토속적 예술론을 저변에 깔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광복 이후 국내 화단에선 일본적 색채가 강하다며, 이 같은 사조가 비판받기도 했다. 사실 심형구는 경기 광주 군수의 아들로 태어나 친일 미술단체를 이끌며 수차례 총독상을 받은 친일파였다. ‘조선징병제 시행 기념 기록화’를 제작한 김인승과 함께 이화여대 미술과를 창설해 해방 이후 화단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밖에 전시에선 고갱풍의 원시성으로 충만한 ‘포도원의 하루’(1955년·박항섭)나 동양화의 선묘를 연상시키는 ‘사슴’(1954년·변종하) 등도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 측은 “미술사 개설서 등에 소개돼 국민에게 비교적 친숙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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