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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평양 리포트] 27세 ‘백두혈통 공주’ 김여정, 김정은 뒤 밀착마크

    [서울&평양 리포트] 27세 ‘백두혈통 공주’ 김여정, 김정은 뒤 밀착마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어도 변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 당국이 정변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며 발표한 보도문의 일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로열패밀리 장성택도 ‘백두혈통’ 김씨 집안의 벽 앞에서는 한 줌 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 예다. 북한은 장성택 숙청 1주년을 앞두고도 여전히 그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의 공주 김여정이 차관급인 노동당 부부장의 직함을 맡고 있음이 확인됐다. 김여정은 첫 공주였던 고모 김경희의 공백을 메우고 있어 단순히 공주가 아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한 핵심 실세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김여정의 전면 등장은 김정일 시대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이던 1976년 당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고 1987년부터 당 경공업부장을 맡았지만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부는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버지 김정일도 당 활동을 선전선동부에서 시작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5일 “김정은이 현지지도하는 데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선전선동부 간부급은 반드시 동행한다”며 “그만큼 현지지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행정구역 개편에도 영향… 혈통 신성시 올해 27세인 김여정은 지난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투표 행사 때 오빠 김정은의 수행원으로 나왔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때 김여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공개했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라는 점을 밝혔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 제1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김여정을 주목해 왔다. 김여정은 김 제1위원장과 함께 1990년대 후반 스위스에서 유학했고 평양으로 귀환한 이후에는 외국인 교사의 개별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은 특히 평양에서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당당한 공주로 통한다. 2012년 7월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행사에서 고위 관리들이 김정은·리설주 부부를 박수로 환영할 때 홀로 화단 위에 서서 이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고모 김경희도 줄을 맞춰 선 뒤 부동자세를 취했지만 김여정은 달랐다. 김 제1위원장이 간부들과 악수할 때 화단을 넘어 뜀박질하듯 아스팔트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또 김 제1위원장이 꽃다발을 받고 거수경례를 하자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경호의전상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누구도 이를 막지 못했다. 조선중앙TV는 2012년 11월 19일 김 제1위원장의 기마중대 훈련장 시찰 때 김여정이 고모 김경희와 함께 말을 탄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일성 가계에 김여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과거 김경희가 김정일을 챙겼듯, 김여정이 김 제1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챙기는 최고 실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행정구역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신성시된다. 북한은 2010년 평양시 남쪽 일부 지역을 황해북도로 편입시키는 평양시 축소 개편 조치를 단행했으나 서쪽 외곽의 만경대 구역이나 동쪽의 강동군 등 김정일 가계와 관련된 지역은 제외됐다. 강동군은 김정일의 조부 김형직의 혁명활동 사적지가,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이복형 김정남 등 김씨일가 ‘곁가지’엔 가혹 하지만 북한은 백두혈통의 ‘곁가지’들에 대해서는 가혹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50)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교환수 출신이자 후처인 계모 김성애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성애에게는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김평일과 김영일, 딸 김경진이 있었다. 그리고 외형상 김평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완벽하게 닮았고 학교 성적도 더 뛰어났다. 1969년까지만 해도 북한 고위 간부 사이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는 김평일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1970년 봄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 불화가 생긴 틈을 타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계모 김성애의 월권행위와 비리를 일일이 고발했다. 이를 계기로 김성애가 몰락하고 1974년 김정일로 후계구도가 공식화되자 김정일은 곁가지를 쳐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평일은 1979년 유고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쫓겨난 이래 헝가리 대사, 핀란드 대사 등을 전전하며 평양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김 제1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첫째 부인 성혜림 소생인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물러나면서 중국과 마카오를 거점으로 북한 관련 사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해외 언론과의 접촉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요주의 대상이 됐다. ●“이복누나 김설송은 그림자 실세” 주장도 하지만 김 제1위원장의 이복누나 김설송(40)은 베일에 가려진 ‘그림자 실세’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설송은 1974년 김정일과 그의 둘째 부인 김영숙 사이에 태어난 장녀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에 대한 경호와 일정 관리를 총괄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켄 고스 미 해군 분석연구소 연구국장은 지난 6월 “김설송이 북한 정권 내부의 모든 정보를 간직하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조직의 정점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 교수는 이에 대해 “김설송이 중요한 업무를 맡고 실권을 갖고 있다면 공식 매체에 등장하지 않을 리 없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를 통해 볼 때 김 제1위원장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김여정이다. 이복형인 김정남은 적대시하고 있고 유약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후계자 구도에서 탈락한 친형 김정철은 권력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데 비해 김여정은 자신의 자리를 넘보기 어려운 여성이라는 점에서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에서는 이미 김정은을 ‘1호 동지’, 김여정을 ‘2호 동지’로 부르고 있다”며 사실상 2인자 이상의 핵심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지난 5월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 시상식에서 김여정이 김정은 바로 뒤에서 메달을 들고 있는 사진은 그가 단순히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아닌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장을 맡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남매의 상호 의존·보좌 통한 정당성 강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백두혈통의 계모에 대한 대접도 김정일 시대와는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의 네 번째 부인이자 김 제1위원장의 계모인 김옥(50)의 역할이 주목된다. 김옥은 1980년대 초부터 2004년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의 기술서기로 활동했다. 안 소장은 “지난해 12월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이 베푼 연회에서 김옥이 행사를 진행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김옥이 숙청되지 않고 김정은의 배려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여정의 약진은 장성택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없는 현재의 북한이 백두혈통 남매의 상호 의존과 보좌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약한 내구력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 교수는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김경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김정은에게 어느 정도 정치적 경륜이 쌓이면 김여정도 경공업부장처럼 정치권력과는 거리가 있는 자리로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유승호 제대 “내가 눈물 쏟은 이유는 바로…” 바른생활 사나이의 소감

    유승호 제대 “내가 눈물 쏟은 이유는 바로…” 바른생활 사나이의 소감

    유승호 “내가 눈물 쏟은 이유는 바로…” 바른생활 사나이의 소감 배우 유승호(21)가 만기 제대한 가운데 자신의 팬카페에 소감을 밝혔다. 지난 4일 강원도 화천군 27사단 이기자부대 신병교육대대에서 유승호의 전역식이 진행됐다. 팬과 취재진이 운집한 가운데 유승호는 만감이 교차한 듯 눈물을 쏟았다. 유승호는 5일 팬카페에 ‘전역’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유승호는 해당 글을 통해 “입대하기 전 다른 연예인들이 전역을 할 때 ‘왜 울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게 생각납니다. 근데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았습니다. 아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 감정을 글로는 도저히 표현 못하겠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린 이유를 밝혔다. 또 “우리 10중대 조교들만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니 눈물이 그냥 쏟아 졌습니다”라면서 “그리고 팬분들, 수많은 카메라를 보니 2차로 터졌습니다. 기사 봤는데 온통 울고 있는 거 밖에 없네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여성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군대 이야기라는데 할 이야기가 이거 밖에 없어요. 그냥 친동생이 힘들었다고 징징거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셔요”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행복을 주는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다시 열심히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동안 기다려주신 팬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유승호는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등을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영화 ‘조선마술사’를 차기작으로 정했다. 위험한 사랑에 빠진 조선 최고의 마술사가 거대한 음모에 휩싸여 운명을 거스르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2015년 개봉 예정으로 여주인공은 고아라가 거론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유승호 제대, 대단하네”, “유승호 제대, 멋지다”, “유승호 제대, 나도 군생활 생각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민영 고혹적 겨울화보서 물오른 절정 여신 미모 과시

    이민영 고혹적 겨울화보서 물오른 절정 여신 미모 과시

    배우 이민영의 고혹적인 겨울 화보가 화제다. SBS 드라마 ‘나만의 당신’에서 지고 지순한 여성에서 복수의 화신까지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였던 이민영이 ‘여성조선’화보 촬영에 나섰다. 이민영은 ‘여성 조선’ 12월호 화보에서 여신과 같은 자태를 선보였다. 사진 속 이민영은 웨이브 헤어 스타일로 분위기 있는 무결점 미모로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눈길을 끌었으며 특히 깊이 있는 아련한 눈빛 연기와 감각적인 포즈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화보가 만들어 졌다. 촬영 당시 스태프들은 배우 이민영이 부드러운 무드의 표정과 포즈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선보여 찬사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당시 이민영은 화보 촬영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 비축을 하고 있었는데 즐겁게 화보 촬영을 마쳤다”며 “빠른 시간 안에 차기작 촬영을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답했다. 한편 이민영의 고혹적인 매력이 담겨 있는 화보는 ‘여성조선’12월호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화 상의원, ‘기술자들’과 맞대결…김우빈vs유연석 연말 스크린대결 승자는?

    영화 상의원, ‘기술자들’과 맞대결…김우빈vs유연석 연말 스크린대결 승자는?

    영화 ‘상의원’이 개봉 날짜를 12월 24일로 확정했다. 배급사 쇼박스 미디어 플렉스는 26일 “영화 ‘상의원’의 개봉일을 다음 달 24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영화 ‘상의원’은 앞서 크리스마스 이브 개봉을 확정 지은 배우 김우빈 주연의 영화 ‘기술자’들과 맞붙게 됐다. 배우 한석규, 고수, 박신혜, 유연석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는 영화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특히 상의원은 지난 11월 5일부터 13일까지 미국에서 개최된 영화마켓인 아메리칸필름 마켓(American Film Market, 이하 AFM)에서 최고 기대작으로 등극해 더욱 기대를 높였다. 이와 맞붙게 된 영화 ‘기술자들’은 대세남 김우빈을 비롯해 고창석, 이현우가 출연했으며, 인천세관에 숨겨진 1500억을 40분 안에 털어야만 하는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또 지난 2012년 ‘공모자들’로 제33회 청룡영화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김홍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완성도 높은 영화가 기대된다. 이번 연말 스크린 대결은 대세남 두 배우의 대결로도 관심받고 있다. 최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 출연하며 대세남으로 등극한 유연석. 그리고 드라마 ‘학교 2013’를 시작으로 드라마 ‘상속자들’, 영화 ‘친구2’ 등의 작품을 통해 색다른 마스크를 선보이며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우빈. 과연 어떤 배우가 따뜻한 연말을 보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상의원 개봉확정 소식에 영화 팬들은 “상의원, 기술자들 둘다 볼거야”, “상의원, 완전 기대중”, “상의원 기술자들, 둘다 보면 되지”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서울신문DB(상의원 기술자들) 김민지 인턴기자 mingk@seoul.co.kr
  • ‘하녀들’ 이채영 가희아 완벽 빙의, 조선 제일 기녀 실존 인물

    ‘하녀들’ 이채영 가희아 완벽 빙의, 조선 제일 기녀 실존 인물

    배우 이채영이 우아미, 도도미, 화려미 모두를 겸비한 조선 제일 기녀로 변신했다. JTBC 드라마 조선연애사극 ‘하녀들’측은 20일 이채영이 한양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기녀 가희아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공개했다. 이채영이 연기할 가희아는 태종실록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로 당대의 내로라하는 정승 판서들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공개적인 싸움판을 벌였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던 기녀. 하지만 반가의 여인 못지않은 고고한 기품과 드높은 콧대를 가진 VIP 전용 기루를 운영하는 여성이다. 실존 인물 가희아를 재연한 이채영은 화려한 무늬가 가득한 보랏빛 한복과 장신구가 가득 달린 가채머리를 제 옷처럼 소화, 비주얼만으로도 한양 최고의 기녀로 빙의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이채영의 미친 미모와 다채로운 매력을 만날 수 있는 JTBC 하녀들 ‘하녀들’은 신분과 계급 속 운명의 소용돌이에 맞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청춘남녀들의 격정 멜로 러브스토리로 오는 12월 12일(금) 밤 9시 45분 첫 방송 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조 한글 편지 16점 전문 첫 공개

    정조 한글 편지 16점 전문 첫 공개

    정조가 쓴 한글편지첩 전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정조의 한글 필체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9일 정조가 원손 시절부터 세손을 거쳐 재위 22년까지 직접 썼던 한글 편지 등을 모은 ‘정조어필 한글편지첩’에 실린 16점을 모두 공개했다. 그동안 한글편지첩 전체 16점 가운데 3점의 편지만 알려졌으며, 전체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점은 한글 편지 14점과 한문 편지 2점이다. 수신인에 따라 한문 편지는 남성, 한글 편지는 여성에게 쓰여졌다. 5세에서 8세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3점은 수신인은 명기돼 있지 않지만 큰외숙모 여흥 민씨(혜경궁 홍씨의 큰오빠 홍낙인의 처)에게 보낸 편지로 보인다. ‘문안 아뢰고 기후 무사하신지 문안을 알고자 합니다’로 시작되는 첫 편지의 글씨체는 삐뚤빼뚤하지만 내용은 의젓하다. 발신자 표기도 ‘질’(조카)에서 ‘원손’으로 바뀌고, 글씨체는 점점 모양새를 갖춰 간다. ‘섭섭’, ‘든든’처럼 음이 중첩되는 단어를 ‘~’ 기호로 흘려 쓴 것에는 어린이다운 기지가 엿보인다. 이후 1759년 2월 세손 책봉 이후인 9세에 쓴 문안 편지는 자신을 ‘세손’으로 적고 글씨체도 매우 반듯하다. 또 21세에 쓴 편지부터는 날짜와 수신인을 분명히 명기했다. 또한 자신만의 글씨체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 고은숙 학예연구사는 “연령대에 따른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후기 왕실 편지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어 18세기 국어사 연구에서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더불어 한글 필사본 자료로서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 김씨가 쓴 ‘곤전어필’(坤殿御筆), ‘김씨부인 한글상언’도 함께 공개됐다. ‘곤전어필’은 조카 김종선에게 ‘만석군전’ 등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다음 자신이 직접 한글로 옮겨 쓴 소설이다. 또 ‘김씨부인 한글상언’은 서포 김만중의 딸이자 신임옥사 때 죽은 이이명의 처 김씨 부인이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영조에게 올린 140자에 걸친 한글 탄원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글박물관, 정조 친필 한글편지 16점 최초 공개

    한글박물관, 정조 친필 한글편지 16점 최초 공개

    조선 정조가 어린아이였던 원손 시절부터 재위 22년까지 큰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정조어필(正祖御筆) 한글편지첩 전체 16점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정조어필 한글편지첩과 곤전어필(坤殿御筆), 김씨부인한글상언 등 18세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 3종을 현대어로 풀어쓴 ‘소장자료총서’를 오는 21일 발간한다고 19일 밝혔다. 정조어필 한글편지첩은 지금까지 16점 가운데 3점만 알려졌으나 이번에 전체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시대 한글 편지 가운데 어린이의 필체로 쓰인 편지가 드물 뿐 아니라 필자가 정조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건이다. 연령대에 따른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조선 후기 왕실 편지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어 국어사 연구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처음 일반에 소개되는 곤전어필은 정조의 비 효의왕후 김씨가 한문으로 쓰인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조카 김종선에게 우리말로 번역하게 하고 이를 옮겨 쓴 책이다. 조선 후기 왕비가 쓴 한글 필사본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김씨부인한글상언은 1722년 신임사화 때 죽음을 맞은 문신 이이명의 부인 김씨가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구하고자 영조에게 올린 한글 탄원서다. 김씨는 서포 김만중의 딸이기도 하다. 가로 160㎝, 세로 81.5㎝에 달하는 크기에 정자로 정성 들여 쓴 글에서는 정치적 격변기 집안의 위기를 맞은 사대부 여성의 절박함이 생생히 드러난다. 박물관은 총서 발간과 관련, 이달 21일과 28일 오후 2시 박물관 강의실에서 ‘조선 후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의 한글문화사적 해석’을 주제로 학술모임도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카페 사르트르(한국사르트르연구회 지음, 에크리 펴냄) 실존주의 철학자,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 및 극작가, 실천적 지식인, 여성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평생 동반자…. 화려한 수식어를 단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전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있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서구 지성의 대명사가 됐고, 실존주의 철학은 국내 학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사르트르 연구에 매진해 온 한국사르트르연구회 소속 학자들이 연구회 발족 20주년을 기념해 연구서를 펴냈다. 사르트르의 철학이 탄생한 주무대인 파리 생제르만데프레의 카페에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학자와 연구자들이 다채로운 시각으로 사르트르를 새롭게 읽어낸다. 580쪽. 3만 5000원. 트렌드 코리아 2015(김난도 등 지음, 미래의창 펴냄) ‘대한민국 청춘 멘토’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5년 예측 보고서. 연구소가 선정한 내년의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양의 해에 걸맞게 ‘카운트 쉽’(COUNT SHEEP)이다. 도처에 불안한 요소들이 남아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책은 ‘다크호스’를 키워드로 했던 2014년 한 해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리뷰한 뒤 본격적으로 명암이 공존하는 2015년의 모습을 경제, 나라 살림, 정책 방향, 기술 변화, 사회문화적 동향을 전망한다. 2014년의 소비는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다에 침몰했고 정치권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책은 2015년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과 모바일 앱 기술의 결합으로 소비자에게 끊김 없는 쇼핑 환경을 제공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면서 소비는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411쪽. 1만 6000원. 상실과 노스탤지어(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심희찬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일본의 종교 및 역사학자인 이소마에 준이치 국제일본문화센터 교수가 근대 일본인들의 내면을 분석했다. 저자는 한국의 탈식민주의 연구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재일 조선인, 소수자,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학문적 영향력을 넓혀 온 소장학자다. 그는 책에서 일본의 정체성을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게 끼인 ‘인 비트윈’(in between)으로 정의한다. 일본의 근대는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과감한 체제개혁을 단행한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되어 이후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미국의 점령을 받는 등 사회격동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근대 일본이 사로잡혀 있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질감 내지 상실감을 포착해 그 근원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성찰한다. 327쪽. 1만 6000원. 유라시아 고고기행(황규호 지음, 주류성 펴냄) 오랫동안 문화재·종교·학술 담당기자로 뛰며 전세계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를 답사하고 고고학 발굴현장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을 위한 고고학과 미술사 교양서. 저자가 프랑스 파리 고인류연구소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구석기 워크숍에 초청돼 이 분야의 지식을 나눈 경험에서 비롯된 책은 인류 구석기 메카로 통하는 발로네 동굴, 라자레 동굴 등 프랑스 주요 선사유적을 둘러 본 경험을 소상히 다룬다. 이밖에 파키스탄 정부 초청으로 방문했던 서남아시아의 인류문명과 불교미술 발상지, 시베리아 고고민족학연구소가 주최한 시베리아 100년의 파노라마 국제학술회의 참석 당시 방문한 시베리아와 알타이 문화도 조명한다. 책의 후반부는 약 35년 전 전기 구석기 유물로 만능 연장으로 사용된 아슐리안 주목도끼의 고장인 한반도 중부 한탄강변 전곡리 유적에 집중한다. 동서양의 시공간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투영해 우리의 고고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다. 258쪽. 1만 5000원.
  • [줌 인 서울] 중국동포 지원 사업 첫 발 내딛은 서울시

    [줌 인 서울] 중국동포 지원 사업 첫 발 내딛은 서울시

    “올해 아기를 출산했는데 한국에서의 자녀 교육이 제일 걱정되더라구요. 이런 모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에서 만난 중국동포 김흠(29·독산동)씨는 “중국동포들을 위한 이런 교육이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국에서 중국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대림동에 자리 잡은 연구원 강의실에선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는 중국동포 20여명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서울시와 함께 주최한 ‘중국동포 활동가 아카데미’의 주제는 ‘백년대계 : 중국동포 교육을 말하다’였다. 시가 올해 3월부터 전국 최초로 실시한 ‘중국동포 자립지원을 위한 역량강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시간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는 23만 5645명으로 시내 거주 외국인주민 41만 5000여명의 57%에 이른다. 영등포, 구로, 금천, 관악, 광진 등 5개 자치구에 13만여명이 거주한다. 특히 건설분야 등은 중국동포의 노동력이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중국동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지원은 시가 나서기 전까지 전무한 실정이었다. 다문화가정이나 결혼이주여성 등에 비해 같은 혈육인 중국동포는 철저히 소외됐다. 중국동포의 범죄 보도 등 탓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던 것도 한몫 거들었다. 이를 깨달은 중국동포들이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고 한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 원장은 “중국동포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김장 담그기, 독거노인 돌보기 등 각종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의 중국동포 지원사업은 숱한 장애물에 부딪치고 있어 순항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시 관계자는 “최근 지역 국회의원·시의원, 중국동포 단체, 관계 공무원 등과 공동으로 ‘중국동포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하고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 중이다. 관계부처와 관할 경찰서 등의 협조가 지지부진해 더 이상의 논의를 벌이지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사업에 반발하는 민원도 잇따른다. 한 민원인은 “왜 자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혈세를 외국인 정착용으로 낭비하느냐. 외국인 정착이 많아지면 각종 문제들만 양산된다”며 서울시에 정책 폐기를 요청했다. 또 다른 민원인도 “외국인근로자, 특히 조선족의 범죄 피해가 심각해 밤에 다니질 못하겠다”고 쏴붙였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위안부 강제연행 자료 발굴 日역사학자 하야시 교수

    위안부 강제연행 자료 발굴 日역사학자 하야시 교수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몇 번이고 “무섭다”고 했다. 20여년간 연구해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사실을 외면하고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선동을 받아들이는 지금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2007년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당시 검찰 신문조서, 2013년 일본 법무성 자료 등 위안부의 강제연행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다수 발굴한 전문가 하야시 히로후미(59) 간토학원대 교수를 29일 만났다. 그는 지난 3월 지식인 1600명의 서명을 모아 ‘고노 담화의 유지·발전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을 아마 전후 69년간 최악의 상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라면서 지난 8월 아사히신문 오보 사태 이후 일본 우익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증언(제주도에서 조선인 여성을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 세이지의 발언)을 취소했기 때문에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던 일이 됐다는 일부 우익 정치권의 주장은 타당한가. -요시다 증언이 나온 1983년 당시 아사히신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이 그의 증언을 다뤘다. 위안부 문제가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시작됐지만 요시다 증언은 신뢰할 수 없어 연구에 인용되지 않았다. 즉 요시다 증언이 허위이므로 강제연행이 없었다거나 위안부가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명백한 거짓말이라도 각 언론이 반복해서 보도하면 거기에 영향을 받는다. 심각한 문제다. 또 한 가지, 아사히신문이 단언한 것처럼 요시다 증언이 허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요시다 세이지는 부하 몇 명의 증언을 듣고 증언자가 특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소나 시간 등을 바꿨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자료로 쓸 수는 없지만 전부 허위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부분적으로는 실제 체험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익 정치권의 주장이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경제 쇠퇴기를 지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과거가 좋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의 의식과 한국·중국인 등에 대한 차별의식 등이 뒤섞여 사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현상이 생겼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도 있었다’든가, ‘위안부 중에서는 자원한 사람도 있었다’는 등 일본을 변호하려고 한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일본 전반적으로 ‘약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사회’가 됐다.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가 재일 조선인이 특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 정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고노 담화 검증은, 물론 한국 정부는 비판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균형을 갖췄다. 강제연행을 증명하는 문서가 없다는 우익의 시각을 반영하면서도 한편으론 비록 한국 정부와 교섭은 했지만 일본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거기에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사히신문 사태 이후 위안부 자체가 위조였다는 둥 국제사회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둥 분위기가 급변했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내 위안부 관련 여론이 악화되는 것은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지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지금의 비정상적인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나를 포함한 학자들도 이런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관련 아시아연대회의에서도 제안이 나왔지만, 기존의 아시아여성기금보다 한발 더 나아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피해자에게 사죄의 의지를 표명한다면 한국 정부나 한국의 운동단체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내 조부가 친일이면 일제강점기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는 이인호 KBS 이사장의 강변(强辯)을 듣고는 생각난 단어가 지조와 절개다. 조선으로 치면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든 논개의 지조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라고 외친 사육신 성삼문의 절개 말이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논개나 성삼문처럼 행동할 용기를 가졌던 지식인들이 그 얼마나 되었을까. 비단 일제강점기 때만이 아니라 건국 이후 근 반세기에 가까운 독재의 시기에도 진딧물의 단물을 빠는 개미처럼 처신한 이 땅의 지도층,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다. 옹호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시대가 만든 비극이기도 하고 그 비극적인 시대에 산 사람들이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지만 가려내고 단죄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시종일관적이었던 골수 친일파보다 육당이나 춘원처럼 중도에 변신한 민족지사들이 더 욕을 먹는 것도 지조와 절개를 버린 데 대한 분노심 때문일 게다. 그들은 광복 후에도 친일 경력을 깨끗이 세탁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귀의하는 ‘멋진’ 변신술을 보여 주었다. 변신은 현재 권력이나 사상과의 일종의 타협인데 지난 수십년간 권력 이동과 이념 투쟁의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태생적인 ‘확신범’도 있으나 전향이라는 이름으로 좌우와 여야를 넘나든 철새들 또한 드물지 않다. 가장 희극적인 전향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주사파가 이른바 뉴라이트의 한 축으로 변신한 것이다. 반미종북의 선봉에서 극단을 달리던 그들은 뉴라이트로 짐을 옮기고 나서도 시선만 정반대 방향을 바라볼 뿐 똑같이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들의 방향 전환은 주지하다시피 공산주의의 몰락에 따른 정신적 붕괴의 결과다. 좌파로서는 기회주의적 변절이요 배신이다. 원의 바깥 선을 아무리 돌려도 여전히 바깥에 있듯이 극단은 결국 극단으로밖에 변신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이사장도 변신과 전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세대 러시아사학자로서 이 이사장의 성향은 원래 중도 진보였다고 한다. 1987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당시 강만길, 김진균씨 등 대표적인 진보 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황모씨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는 자신 때문에 서양사학과를 택했다는 최영미 시인과 동참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역임한 핀란드 대사에 이어서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 최초의 러시아 대사를 지낸 것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진보처럼 보인 덕일 것이다. 그랬던 그가 돌연 뉴라이트의 선두에 서서 바뀐 정부의 공영방송 이사장직에 오르고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김구 선생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이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이런 변신은 조부의 친일이 공론화된 뒤부터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이 이사장이 자존심이 상해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할아버지 때문에 신념까지 바꾼, 어쩌면 그 자신이 현대사의 비극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신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정권과 시류에 영합하는 신념은 타인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한국에서 ‘돈’과 ‘높은 자리’로 매매되지 않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어느 교수의 말은 과격해도 팔순을 눈앞에 둔 이 이사장의 ‘노욕’(慾)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제 와서 “독재를 미화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다”는 것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6년 한 방송에 나와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담을 쌓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정부와 반대의 인식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들을 대거 중용하고 있는 것은 이해불가다. 대북 관계의 직위에 종북 학자들을 등용한 꼴과 다를 게 없다. 지조와 절개, 변절 여부는 둘째 문제다.
  • 세월호 女항해사, 검찰이 징역 30년 구형하자…

    세월호 女항해사, 검찰이 징역 30년 구형하자…

    세월호 이준석(68) 선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어린 학생 등 300여명의 승객을 놔두고 탈출한 이 선장 등 선원들의 행동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선박 재난 시 모든 지휘 역량을 발휘해 승객 구조에 나서야 하는 총체적 책임자로서 선장의 역할을 저버린 책임을 ‘살인 행위’로 규정했다. 무기징역이 구형된 강원식(42) 1등항해사 등 3명도 선원법 등 각종 법률에 규정된 승무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결국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결과를 빚었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이미 이 선장을 비롯해 강 1등항해사, 김영호(46) 2등항해사, 박기호(53) 기관장 등 4명을 살인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이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지라도 예비적 죄명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인 도주선박(도주선박의 선장 등에 대한 가중처벌법)과 유기치사상,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1970년 부산~제주를 운항하다 침몰해 326명의 사망자를 낸 남영호 사건에서도 당시 선장인 강모씨가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이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에게 예비적 도주선박죄 등을 적용했다. 이 법률의 최고 형량도 무기징역이다. 이에 따라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검찰은 그동안 29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 선장 등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변호인과 법정 공방을 벌여 왔지만 큰 쟁점은 없다는 판단이다. 동영상과 피고인, 피해자, 생존자 진술 등 3200여건의 증거 자료 및 서울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등 전문가 집단이 분석한 내용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 논고를 통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대각도 변침과 복원성 부족 등으로 규정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부실한 화물 고정, 과적, 평형수 감축, 조타수 실수 등이 겹쳐 배가 침몰했고 그럼에도 승객 구호 의무를 지닌 선장 등이 승객 대피 지시를 하지 않고 ‘나 홀로 탈출’을 감행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주요 선원들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인근을 지나던 둘라에이스호, 진도VTS, 제주VTS 등으로부터 수차례 승객 탈출 요청을 받고도 “구조선이 언제 오느냐”며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교신 내용을 증거로 대며 “승객을 갑판 등으로 유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자신들만 살아나기 위해 승객 탈출을 유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기관장 등은 부상한 여성 조리원을 발견하고도 방치해 둔 채 배를 빠져나오면서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이날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피고인석에 앉은이 선장은 얼굴이 붉게 변했고, 30년이 구형된 박모(25·여) 3등항해사는 눈물을 흘렸다. 일부 피해자 가족은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세월호 승무원 1심 구형] 檢, 승객 버리고 탈출 ‘살인 행위’ 규정… 유족 “사형돼야” 울분

    세월호 이준석(68) 선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어린 학생 등 300여명의 승객을 놔두고 탈출한 이 선장 등 선원들의 행동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선박 재난 시 모든 지휘 역량을 발휘해 승객 구조에 나서야 하는 총체적 책임자로서 선장의 역할을 저버린 책임을 ‘살인 행위’로 규정했다. 무기징역이 구형된 강원식(42) 1등항해사 등 3명도 선원법 등 각종 법률에 규정된 승무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결국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결과를 빚었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이미 이 선장을 비롯해 강 1등항해사, 김영호(46) 2등항해사, 박기호(53) 기관장 등 4명을 살인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이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지라도 예비적 죄명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인 도주선박(도주선박의 선장 등에 대한 가중처벌법)과 유기치사상,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1970년 부산~제주를 운항하다 침몰해 326명의 사망자를 낸 남영호 사건에서도 당시 선장인 강모씨가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이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에게 예비적 도주선박죄 등을 적용했다. 이 법률의 최고 형량도 무기징역이다. 이에 따라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검찰은 그동안 29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 선장 등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변호인과 법정 공방을 벌여 왔지만 큰 쟁점은 없다는 판단이다. 동영상과 피고인, 피해자, 생존자 진술 등 3200여건의 증거 자료 및 서울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등 전문가 집단이 분석한 내용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 논고를 통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대각도 변침과 복원성 부족 등으로 규정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부실한 화물 고정, 과적, 평형수 감축, 조타수 실수 등이 겹쳐 배가 침몰했고 그럼에도 승객 구호 의무를 지닌 선장 등이 승객 대피 지시를 하지 않고 ‘나 홀로 탈출’을 감행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주요 선원들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인근을 지나던 둘라에이스호, 진도VTS, 제주VTS 등으로부터 수차례 승객 탈출 요청을 받고도 “구조선이 언제 오느냐”며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교신 내용을 증거로 대며 “승객을 갑판 등으로 유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자신들만 살아나기 위해 승객 탈출을 유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기관장 등은 부상한 여성 조리원을 발견하고도 방치해 둔 채 배를 빠져나오면서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이날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피고인석에 앉은이 선장은 얼굴이 붉게 변했고, 30년이 구형된 박모(25·여) 3등항해사는 눈물을 흘렸다. 일부 피해자 가족은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新 국토기행] 고양시

    [新 국토기행] 고양시

    지난 8월 1일 경기 고양시는 시로 승격된 지 22년 만에 인구 100만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도시 중 10번째,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3번째로 100만 대도시가 됐다.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고봉현과 덕양현을 합해 ‘고양’이란 지명이 탄생했다. 이로부터 600여년 동안 고양의 지명은 변함없이 지속돼 왔다. 무려 600년이 넘도록 그 지명이 유지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서해에서 한강을 거쳐 내륙 곳곳으로 들어가고, 너른 들판에 농사짓기 좋고, 조망할 산들이 곳곳에 펼쳐져 고양 땅은 예로부터 수변 도시이자 관문 도시였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진 한강은 교하에서 임진강과 만난 뒤 황해도를 적셔 온 예성강과 합쳐져 강화 교동에서 서해로 흘러간다. 이러한 한강이 고양 땅에서 육상 도로와 연계됐다. 고양이란 지명은 지난해 600년을 맞았지만 이 이름도 부여되지 않았던 구석기 시대부터 고양 땅에선 농사짓는 사람들이 살았다. 일산신도시 개발 당시인 1991년 마두동과 주엽동 일대에 나온 구석기 유물과 대화동에서 출토된 5000여년 전 가와지 볍씨가 증거다. 가와지 볍씨는 50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 중심부인 고양 지역에서 처음 벼농사를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양시에서 발견된 가와지 볍씨는 한반도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단서로 문명사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의 위성도시들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공업화돼 갔다. 하지만 고양은 휴전선 인근 지대라는 특수성으로 대부분의 땅이 군사시설보호구역과 그린벨트로 지정돼 농업지대로 남게 됐다. 산업 기반이 조성되지 않은 고양의 지역 특성은 오히려 일산신도시 개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1990년대 초 한강 접경 지역인 JDS(장항·대화· 송포·송산동)지구를 제외한 일산 일대가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고양시는 동양 최대의 호수공원, 킨텍스, 한류월드, 방송영상산업단지 등을 갖춘 대한민국 대표 도시로 급성장했다. 지난 5월 나온 ‘2014년도 한국지방브랜드 경쟁력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고양시가 거주 분야 1위, 교육 분야 1위, 교통 분야 3위를 차지하며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선정됐다. 이제 고양시는 일산신도시 20년으로 대변되는 서울의 베드타운이 아닌 600년 역사와 5000년의 문화를 품은 100만 명품 자급자족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2012년 고양시는 각종 언론과 연구기관이 평가한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부문’에서 161개 지자체 중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 정책 우수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양시는 노인, 장애인, 경력 단절 여성 등 일자리 취약계층을 위해 이들을 의무적으로 채용하게 하고, 공공근로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 또한 ▲동주민센터 내 일자리 상담사 배치 ▲주부층 중심의 여성 재취업 프로그램 강화 ▲비정규직센터 운영 활성화 ▲사회적 기업 및 마을기업 지원 ▲고양시 발주 대형 사업에 고양시민 할당제 도입 등의 정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특히 1만 5000개 일자리 창출이 예상되는 친환경 자동차 클러스터 사업은 고양시 일자리 창출의 핵심이다. 덕양구 강매동 일대 40만㎡ 부지에 2957억원을 투입해 내년에 착공해 2017년 완공할 예정인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복합단지인 자동차 클러스터는 지금의 폐차장 개념의 시설이 아니다. 자원순환센터, 전시장, 자동차 정비·교육·튜닝단지 테마파크 등 자동차산업의 모든 것이 집약된 종합 문화 공간이다. 자동차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주변 상권 활성화 등 연간 1조원 규모의 생산 유발 효과가 발생하고 지역 주민을 우선 고용해 1만 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덕양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 관광객이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행신역과 강매역을 중심으로 한 상권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2009년 정부가 마이스(MICE·회의, 인센티브 관광, 국제회의, 전시회)산업을 17대 신성장동력산업의 하나로 지정한 뒤 자치단체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고양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창조성장개발국을 신설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른 산업보다 파급 효과가 큰 마이스산업과 신한류관광산업에 일찌감치 주목한 것이다. 고양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전시·컨벤션시설인 킨텍스가 있어 마이스산업 중 대규모 전시회 부문에서 다른 지자체들이 넘볼 수 없는 절대 우위를 확보했다. 킨텍스는 2005년 제1전시장, 2011년 제2전시장 준공으로 10만 8000㎡ 규모의 전시 면적을 갖춰 세계 50위권, 아시아 5위권 전시장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시장 2위인 코엑스보다 3배나 넓다. 연중 크고 작은 행사가 킨텍스에서 열리며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 한국기계산업대전, 경향하우징페어, 서울모터쇼 등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형 전시회는 킨텍스에서만 개최할 수 있다. 해외에서 2만 9000여명 등 총 5만 60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6년 로타리 국제대회는 킨텍스에서만 열 수 있다. 이들이 쓸 소비지출 효과는 800여억원, 생산 유발 효과는 1800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선진 마이스도시들은 숙박, 관광, 쇼핑 등 주변 인프라 시설의 집적화가 추진되는 추세다. 고양시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킨텍스를 중심으로 10분 거리 내에서 숙박, 쇼핑, 놀이, 한류 관광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경기 북부 지역의 첫 특급 숙박시설인 ▲엠블호텔 ▲스포츠 테마파크와 쇼핑몰이 결합한 놀이시설인 고양원마운트 ▲현대백화점과 쇼핑몰로 구성된 대형 복합쇼핑몰 레이킨스몰 ▲수조 용량 4300t으로 63빌딩 수족관의 5배 크기인 아쿠아리움 등이 킨텍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또한 세계적인 수준의 인공 생태공원으로 전국 산책 코스 1위로 선정된 일산호수공원, 젊음의 거리인 라페스타와 웨스턴돔 등의 주요 상권도 이웃해 있어 마이스 행사로 고양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양시에서 개최하는 모든 축제의 초점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있다. 고양시가 전국 161개 시·군·구 중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 1위 도시의 영예를 안은 것도 바로 이 관광산업과 문화예술 육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1997년 시작돼 대한민국 5대 축제로 자리 잡은 고양국제꽃박람회는 올해 국내외 관람객 43만명이 다녀간 가운데 역대 최고 화훼 수출 계약액 3440만 달러를 달성했다. 올해 꽃박람회로 인한 생산 유발 효과는 1079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424억원, 세수 유발 효과는 43억원으로 조사됐다. 총경제적 효과는 1546억원 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 대표 거리예술축제로 자리 잡은 고양호수예술축제와 신한류 글로벌 전통문화축제인 고양행주문화제는 해마다 수천억원의 경제 파급 효과와 3000여개의 문화예술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고양시 최대 현안으로는 서울로 출퇴근하기 불편한 교통 문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킨텍스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역까지 22분 만에 오갈 수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GTX 개통으로 환승역이 설치될 대곡역세권도 개발에 청신호가 켜져 일산과 덕양의 가교 역할은 물론 인천·김포공항, 경의선, KTX와 연계된 동북아 물류의 거점 도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신분당선 고양 연장을 추진해 교통망을 재정비하고 고양~강남~분당에 이르는 수도권 남북선을 구축할 계획이다. 고양시는 장기적 관점에서 시가 통일 한국의 실질적인 거점 도시가 될 수 있도록 ‘2020 고양평화통일특별시’를 구상하고 있다. 고양평화통일특별시 구상은 JDS지구 개발을 기반으로 한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자유로, 통일로, 경의선 등 남북 교류의 교통 인프라가 관통하는 JDS지구는 한강과 일산신도시 사이 장항동, 대화동, 송포동 일대 28.166㎢(약 852만평)에 걸쳐 있다. 일산신도시보다 1.8배 더 넓다. 2008년부터 시가화 예정 용지로 반영돼 경기 서북부 대단위 신도시 개발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경기 침체 및 수도권 과개발 등을 이유로 정부와 경기도는 개발을 장기 보류하고 있다. JDS지구는 개발 사업비만 약 40조원이 투입돼 사업 실현 시 생산 유발 효과 20조원, 고용 유발 효과 10만 5000명, 부가가치 유발 효과 7조 900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양시의 힘만으로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단계별 추진 계획을 마련하는 등 JDS지구 장기 발전 기본 구상안을 정부와 청와대, 경기도에 제시해 중앙정부 차원의 JDS지구 조성 사업 추진을 지속적으로 건의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세자의 짝은 연상녀? 우리가 몰랐던 조선

    세자의 짝은 연상녀? 우리가 몰랐던 조선

    조선과 만나는 법/신병주 지음/현암사/320쪽/1만 5000원 ‘간택’은 조선 왕실 혼례의 첫 관문이었다. 국가에서는 왕실 결혼에 앞서 금혼령을 내리고 팔도의 처녀들에게 ‘처녀단자’를 올리게 했다. 대개 1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대상이었는데 종실과 이씨 집안의 딸, 과부와 첩의 딸 등은 제외됐다. 왕실은 세자보다 2~3세 연상인 처자를 선호했다. 그런데 이 간택에 실제로 참여한 응모자는 25~30명에 불과했다. 형식상 절차였을 뿐 규수가 내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탓이다. 처녀단자 첫 줄에 처자의 생년월일, 둘째 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와 외조부를 적게 한 데서 드러나듯 간택의 고려 대상은 처녀의 나이와 집안 배경이었다. 처자의 집안은 간택의 기쁨을 잠시 누리더라도 이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간택에 참여하는 데 따른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았다. 최종 후보군에 오르더라도 규수의 집안이 스스로 의복이나 가마를 마련해야 했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 “우리 집이 극빈해 새롭게 의상을 해 입을 수 없었으니 부모님이 빚을 얻어 차리시느라 애쓰시던 일이 눈에 암암했다”고 적은 이유다. 500년에 걸친 조선 왕실의 간택 의례에서 가장 ‘쇼킹’한 사례는 정순왕후다. 불과 15세의 어린 나이에 66세의 영조에게 간택받은 그는 강단 있는 여성이었다. ‘가장 깊은 물건이 무엇인지’를 묻는 왕의 질문에 지체 없이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답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세기 순조 즉위 이후 수렴청정을 통해 폭풍 전야의 정국을 주도했던 배경이다. 30여년간 조선 역사를 공부해 온 신병주 건국대 국사학과 교수는 조선왕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간 써 온 다양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조선시대 ‘남초’ 혹은 ‘남령초’로 불렸던 담배를 관료부터 가마꾼까지 피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어 비흡연자가 100명 중 겨우 1명 있을까 말까 했다는 사실부터 북악산 뒷자락에 북한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무릉도원 같은 쉼터가 있었다는 문신 이항복의 기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심지어 갓을 부수고 옷을 찢으며 흙탕물에 구르게 하는 과거 급제자에 대한 ‘신참례’(신고식)가 횡행했다는 사실도 거론한다. 대학자였던 이이가 “고려 말 과거에 급제한 명문가 자제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벌인 신참례가 이제 사회문제가 됐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책은 또 조선왕조실록에 ‘천지 사이의 괴물’로 묘사된 허균이 여러 이견에도 불구하고 ‘홍길동전’의 저자가 확실하며 “부당한 대우와 사회 모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백성”인 호민(豪民)을 앞세운 그의 개혁 의지가 왕실의 미움을 산 근본 원인이라고 적시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정상회담 하자면서… 日 ‘위안부 부정’ 갈수록 노골화

    정상회담 하자면서… 日 ‘위안부 부정’ 갈수록 노골화

    한·일 간 최대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번에는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기자회견 발언까지 문제 삼고 나섰다. 지난 21일 참의원 내각위원회에 출석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993년 고노 당시 관방장관이 고노 담화 발표 당일 기자회견에서 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유무에 대한 질문에 ‘그런 사실이 있다’고 답한 것과 관련,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정부는) 그것(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며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명예와 신뢰가 회복되도록 확실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는 1993년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 인식으로 이어져 왔고 당시 일본의 과거사 정리 노력은 국제사회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정권은 지난 7월 ‘고노 담화를 계승하지만 검증은 필요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고노 담화를 검증한 뒤 “한국 정부와 문안을 조정해 작성했다”는 결과를 발표해 고노 담화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듯한 시도를 했다. 이어 지난 8월 아사히신문이 제주도에서 조선인 여성을 강제연행했다는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의 주장을 토대로 작성한 1980~1990년대 기사를 일부 취소하자 일본 정부와 일부 보수·우익세력은 이를 계기로 삼아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스가 장관은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전시 일본군 위안소 내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가해진 강제성에 대해 “그것은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발언을 자제하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일본 내의 이런 움직임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모양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과 만나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국장급 협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4차 협의가 끝난 지 1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5차 협의가 언제 열릴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아사히신문 오보 이후 일본 사회의 인식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협의를 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도 지금의 교착 국면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새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 일본 내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둘러싼 지금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한·일 관계가 장기 경색 국면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내년 종전 70주년을 맞아 고노 담화를 대체할 새로운 담화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총리를 만나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전하고 과거사 개선에 대한 언질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중고책과 도서정가제/문소영 논설위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이 쓴 ‘불평등의 재검토’를 사려고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절판이다. 이 책은 한울이 1999년과 2008년에 출판했는데 몇몇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팔고 있었다. 2008년 재출간 가격은 1만 7000원으로, 인터넷서점에서 신간을 사면 10% 할인해 1만 5300원이다. 그런데 중고서점에서 이 책은 2만 4000원에서 3만 4000원까지 제시되었다. 중고책은 항상 싸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했다. 특히 절판된 중고책은 발행 당시의 가격보다 더 비싼 몸값을 자랑하기도 한다. 현 유럽인의 유전자를 추적했더니 모계조상이 겨우 7명의 여성이라는 학설을 제시한 인류 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키스가 쓴 ‘이브의 일곱 딸들’(따님 펴냄)도 품절인데, 중고책 가격은 정가 1만 3000원보다 비싼 2만원대다. 2005년에 출판된 집단유전학자인 루이기 루카 카발리가 쓴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도 절판됐고, 중고서점에서 원래 가격인 1만 7000원 안팎에 팔리고 있다. 역사의 대중화에 주력하는 출판사 푸른역사에서 2008년에 김덕진 교수가 펴낸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를 지난해 중고서점에서 사려다가 정가의 2배가 넘는 4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뒤로 넘어갈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초판 양장본 같은 희귀서적도 아닌데 말이다. 대중성을 겸비했다지만 본질적으로 학술서에 가까운 책들의 최근 초판 발행부수는 1000~2000부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평생 책벌레로 살고 싶다는 ‘간서치’들이 행방불명되었고, 인터넷과 동영상, 전자책들이 빠르게 종이책의 영역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어지간한 학술전문 서적의 초판발행 부수가 3000부였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2000부 안팎으로 줄었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에 1000부로 뚝 떨어졌다. 그 이유는 책을 받아줄 동네서점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출판사들은 설명한다. 자본력을 갖춘 대형 인터넷 서점이 다양한 할인행사 등으로 책 구매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결과라고 한다. 다음달 21일 시행될 ‘도서정가제’에 앞서 올여름부터 대형 출판사들이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최대 80% 이상 할인행사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전집에 단행본들도 적지 않게 끼어 있다. 출판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도서정가제법이 시행되기 전 동네서점들이 고사할 지경이 아닌가 걱정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호갱님’이 되는 ‘출판계의 단통법’이라고 비판한다. 소비자는 책을 과거보다 비싸게 사고, 동네서점은 죽어가며, 재고처리 능력이 부족한 소형출판사들은 도산하게 생겼단다. 새 법으로도 출판 생태계가 복원되지 않는다니 그저 갑갑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교양프로그램조차 성평등적 내용 미흡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모두 성차별적 내용이 아직도 다수(64%)를 차지하고, 특히 종합편성채널은 성차별적 내용이 76%에 달하며, 성역할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나타내는 발언이 그대로 방송되는 등 성인지적 관점의 방송 제작 노력이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서울YWCA(양성평등 미디어모니터회)와 함께 지상파 3사 32편, 종합편성채널 4사 10편 등 교양프로그램 42편에 대해 120여차례에 걸쳐 9월 3주 동안 모니터링을 실시해 2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는 성평등적 내용이 20건, 성차별적 내용이 27건으로, 종합편성채널은 성평등적 내용이 6건, 성차별적 내용이 19건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선하고 다양한 소재의 교양프로그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궁금한 이야기 Y’(SBS)는 6일자 방송에서 8개월 된 딸의 출생신고를 위한 1인 시위를 하는 남성을 취재하면서 미혼부는 출생신고가 불가능한 현실을 자세하게 조명하였다. 결국 취득하는 과정을 자세히 다루어 법적제도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된 방송이었다.  요리장면은 여성의 몫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벗어난 ‘잘먹고 잘사는 법, 식사하셨어요’(SBS),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남성을 출현시킨‘언니가 돌아왔다’(MBC), 공동육아와 공동가사 활동모습을 부각시킨 ‘엄마의 탄생’(KBS1)과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SBS)도 참신한 방송으로 모니터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부부극장 콩깍지’(채널A)는 6일, 15일자 2회분 방송에서 가부장적인 사고와 성차별적 언어 및 자막 사용 등 무려 10번의 성차별적 내용을 쏟아내는 등 심각한 수준이어서 시정이 필요하다.  김행 양평원장은 “교양프로그램은 양성평등할 것이라는 일반인의 기대수준과 달리, 이번 모니터링 결과 교양프로그램 조차도 성차별적 내용이 다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된다“면서 ”특히 종합편성채널 종사자의 성평등의식 함양과 성인지 관점의 방송제작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모니터링은 9월 6일부터 21일까지 KBS, MBC, SBS, JTBC, 채널A, MBN, TV조선 등 7개 방송사의 교양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양평원과 서울YWCA(양성평등 미디어모니터회)는 2014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사업을 통해 TV, 인터넷, 광고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고, 미디어교육을 비롯한 다각적인 성평등 미디어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커버스토리]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

    [커버스토리]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

    남북한이 살포해 온 전단의 내용물은 시대적 상황 변화와 궤를 같이해 왔다. 전단 살포의 목적은 물리적인 전투를 직접 벌이지 않고 상대 집단의 가치체계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전단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해 왔다. ●남북 가치체계 혼란 야기 ‘조용한 전쟁’ 전쟁 중에는 항공기로 적지에 살포하는 전단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미 8군사령부와 극동사령부가 뿌린 대북 전단은 24억 6000만장이 넘는다. 우리 군이 뿌린 대북 전단까지 합하면 40억장이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에는 한 달간 1억 5000만장의 전단이 살포되기도 했다. 북한 측도 3억장을 살포하며 대응했다. 양측 모두 귀순을 유도하며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 주를 이뤘다. 국군이 전쟁 당시 북한군을 상대로 살포한 삐라에는 “중공군이 좋은 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쓸 무기만 북한군에 넘겨 주고 있다”며 북·중 혈맹 관계를 이간질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으로 연결되는 북·중 관계는 항일투쟁의 동지로 혈맹 이상으로 여겨졌다. 유엔군 총사령관 명의로 북한군에 살포한 삐라도 귀순을 유도하는 ‘안전보장증명서’가 대표적이다.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된 이 증서는 이 종이를 가지고 항복하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주민들을 살해하는 미군의 모습을 그린 삐라를 제작해 대응했다. 사기를 떨어뜨리고 미군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사랑하는 어머니께’(Dear Mom)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을 어머니가 읽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 군 장병 가운데 북한에 투항한 병사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내용도 많았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남북한의 삐라전쟁은 경제발전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특히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1950~1960년대는 대남 공세가 거셌고 혼란한 시대상을 틈타 실제 월북한 인사도 많을 정도로 남한 정부는 수세에 몰렸다. 북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장군님 제일이야’, ‘민중 위주의 나라’, ‘치료비·공해 없는 민중이 살기 좋은 세상’ 등의 내용이 적힌 삐라를 살포했다. 특히 1960년대까지 평양의 빌딩과 가정집을 전단에 담아 월북하면 아파트까지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남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12달러로 북한(194달러)을 앞지른 1969년 이후 상황이 바뀌게 된다. 1970~1980년대 체제 경쟁에서 점차 밀리게 된 북한에서 넘어온 삐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 등을 거론하며 모욕하는 내용이 많았다. 1980~1990년대에 와서는 의거월북하는 국군 장병들에게 대학 교육까지 무료로 시켜 주는 동시에 생활보장금으로 최고 3억원, 상금으로 100억원이 넘는 돈을 준다는 과장된 내용도 나왔다. 남한은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높던 삼일빌딩(31층)을 내세웠다. 1980년대에 와서는 국산 자동차의 세계 수출이나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등 경제 발전상을 과시했다. ●1970년대 말부터 ‘풍선 대북전단’ 요즘처럼 풍선에 싣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모습은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심리전을 기획하면서 타이완 국민당 정부가 풍선에 식료품을 실어 중국 본토에 보내는 사례를 본뜬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북한제 ‘천리마 라디오’와 같은 모양의 라디오를 만들어 대북 전단 풍선에 실어 보냈다. 대북 전단 풍선에 다는 타이머 역시 타이완 정부가 가르쳐 준 것으로 전한다. 정부는 당시 이에 대한 보답으로 타이완이 계절풍을 이용해 중국 둥성 쪽에 전단을 보낼 수 있도록 전북 부안에 임시 기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남한은 1980년대부터는 유명 연예인 사진을 전단에 넣고 월남을 유도하기도 했다. 또 선정적인 여자 모델 사진과 함께 귀순을 유도하고 월남할 때의 보상금과 혜택의 범위를 기재했다. 1990년대 중반 탈북한 정모씨에 따르면 당시 남한 정부는 삐라와 함께 옷 양말, 통조림, 1㎏짜리 봉지쌀, 여자 속옷, 시계 등을 비닐로 포장해 살포하기도 했다. ●北, 배용준·이승연 사진 넣어 대남전단 북한도 1990년대 이후부터 남측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한 삐라로 관심을 끌고자 했다. 당시 유명세를 탄 배용준이나 이승연의 사진에 ‘민족의 제일 자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문구를 넣어 이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처럼 디자인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 전단 공세는 김대중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실시하던 2000년대 초에도 지속됐지만 남북한이 2004년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주춤해졌다. 북한은 대신 인터넷을 통한 선전 선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우리 민족끼리’ 사이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조치로 심리전이 재개됐고, 북한은 지난해 연평도와 백령도 등 접경 지역에 한국군의 전투의지를 꺾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정부 대신 탈북자 출신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섰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치부를 겨냥한 삐라 살포는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됐다. 이들은 김씨 정권이 수입하는 프랑스 코냑, 종마, 명품 가방, 시계와 유아용품 등 사치품을 부각시켰다. 특히 김정일의 여성편력 등 문란한 사생활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이 ‘상호비방’ 중지를 요구하고 나선 계기로 평가된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의 대북 민간단체들이 지난 10일 경기 파주시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풍선에 매달아 띄운 전단에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영결식 사진과 함께 “우리 탈북자들은 북조선 인민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김정은 3대 세습을 끝내기 위한 자유민주통일의 전선으로 달려간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김정은 일가 가계도 실린 대북전단도 특히 최근 대북 민간단체들은 전단에 보통 1달러짜리 지폐나 USB 등도 같이 넣어 보낸다. 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전단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일가의 가계도가 실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 제1위원장의 생모 고영희의 부친은 제주도 출신의 재일교포로 조총련의 동포 귀국 사업에 따라 북한에 들어간 인물이다. 북한에서 재일교포들은 항일혁명과 6·25전쟁 후 재건을 이룩한 주류 사회와 달리 기회주의자로 평가된다. 북한 당국이 순수혈통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백두혈통’이 알고 보니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 후손이라는 내용은 김 제1위원장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이기영 ‘고향’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이기영 ‘고향’

    문학 작품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오로지 작품 그 자체인가, 아니면 작품이 탄생한 시대나 작가의 환경인가. 이런 물음에 농민소설의 대표작이자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표본이라고 평가받는 민촌(民村) 이기영의 ‘고향’은 오롯이 후자라 할 수 있다. 문학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연결지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생겨난 작품은 작가의 창작 의도가 동기, 체험 등에서 나온 것이므로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알아야 작품을 명확히 해석할 수 있다. ‘고향’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하면서 계급문학을 추구했던 이기영의 사상과 체험이 잘 응집된 소설이다. 갈수록 왜곡되는 현실에 어쩌지 못하고 체념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는 성장을 통해 변화의 바람이 불던 당시 농촌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사회주의적 해결책이긴 하지만) 뚜렷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고향’은 충청도 원터 마을을 배경으로 하루 살기에 바쁜 농민들과 이들을 갈취하는 새로운 지배계층 간의 대립을 축으로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이 마을에도 전등과 전화가 가설되고 실을 만드는 제사 공장이 들어선다. 빠르게 근대화가 이뤄졌지만 농민들이 살기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몰락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한숨만 쉴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돕는 사람이 김희준이란 인물이다. 그는 부모에 의해 14살에 조혼하지만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다. 대단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당연한데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작농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은 고향 사람들을 ‘진리의 경종으로 깨우치려’는 것이다. 여기서 김희준은 식민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함께 깨우쳐 나가는 데 필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 농민 스스로 어렵게 문제점을 깨닫거나 기독교적 사상을 가진 계몽자가 등장해 문제를 해결한 당시 농민 문학들과는 달리 이기영은 고향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농민들 스스로 문제를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방적인 계몽 문학을 벗어난 것이다. 실제 이기영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지만 ‘농촌 사람’, ‘평민’이라는 뜻을 가진 ‘민촌’을 자신의 호로 삼을 만큼 농촌 사회에 귀 기울이고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고향’이 발표된 1930년대는 ‘브나로드 운동’이 확산돼 지식인이라면 농촌계몽에 일조하고자 노력하던 시기였다.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같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계몽 소설이 잇따라 발표된 것도 이때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이기영의 작품과는 사상적 거리가 뚜렷하다.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이들의 작품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강조한 작품을 발표했던 이기영은 문학이 현실적 계급 문제를 등한시할 수는 없으며 더 나아가 계급적 투쟁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향’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배계층과 그 속에서 억눌려 지내던 피지배계층 간의 첨예한 갈등이 축을 이루고 이것을 무산 계급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희준의 진두지휘하에 계급투쟁이 이뤄지고 한 인물의 영웅적 헌신과 노력으로 승리를 이끌어 갔다면 아마도 그저 그런 프로 문학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스스로 계급의식을 깨쳐 가는 다른 등장인물의 노력과 문제의 해결점을 전통적 풍습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프로 문학의 관념성이나 도덕성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식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은 물론 김희준이었지만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다. 제사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신념을 갖게 되는 두 여성, 인숙과 갑숙이다. 이들은 봉건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진취적 인물로 성장하는데, 죽도록 일만 해도 남편과 자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시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다. 인숙의 오빠 인동 또한 오십이 넘은 그의 아버지 원칠의 삶을 이어받는다면 결국 열심히 땅을 일궈도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활로를 모색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원칠이나 김선달, 길동아버지 같은 기성세대도 함께 힘을 모은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점을 희준의 솔선수범을 통해 깨달아 간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민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두레’다. 희준은 오랫동안 내려온 두레에서 새로운 공동노동체의 가능성을 만들어 간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싸우던 여인들이, 아전인수에 골몰한 남성들이 두레를 통해 점차 공동의 힘을 느끼며 뿌듯해한다. 격이 다르다고만 느꼈던 희준을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농군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두레 안에서다. 식민지 자본 논리 때문에 풍년이 와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풍년 공황’의 자구책이 자기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공산(共産)에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고향’에 등장하는 지배계급은 철저히 자본을 맹신하는 사람들이다.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근대화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며 신분 상승을 꾀했고 돈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안승학과 권상철이 바로 그들이다. 이기영은 이들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 지주보다 더 지독한 마름으로, 딸의 앞날까지 돈으로 흥정하려는 안승학이나 돈을 꿔 주지 않아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든 말든 자기 부만 키우면 그만인 고리대금업자 권상철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낳은 신흥 자본가들의 모습 그 자체다. 결국 돈만 아는 그들은 그 욕심 때문에 자멸하고 마는데 자본가에 대한 저자의 불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권선징악적 통쾌함을 전해 준다. 마름집 딸 갑숙이나 부잣집 도련님인 경호가 의식을 전환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고 다소 작위적이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현실에 부딪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은 지금 봐도 매끄럽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곳곳에 드러난 농촌 현실의 예리한 관찰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이기영의 문학적 솜씨는 카프 문학의 대표자로 손꼽기에 모자람이 없다. 1946년 김일성의 권유로 월북 후 1984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북한 문학의 중심에 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이런 문학적 역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논으로 밭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희준이 인동과 갑숙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따라오다가’ ‘조금 높은 곳에서’ 발을 멈추고는 ‘먼동이 트는 새벽하늘’ 밑으로 흩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양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이자 구조다. 이기영은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린 고향이 동트는 새벽하늘처럼 새로운 미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 안에 모두 담아낸 것이다. 신언수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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