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 여성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개정안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산업구조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근무지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 보통사람
    2026-01-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16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논란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논란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했다? 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했다? 대체 왜..

    31일 일본 우파 언론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대체 왜?

    31일 일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일 산케이 신문이 박 대통령을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31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며 기사 삭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31일 일본 우파 언론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대체 무슨 상황?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대체 무슨 상황?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논란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논란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만에 암살” 정부 입장보니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만에 암살” 정부 입장보니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 신문이 박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하는 칼럼을 내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일본 우파 언론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일 산케이 신문이 박 대통령을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31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며 기사 삭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서울신문DB(일 산케이 박대통령)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

    일 산케이 박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

    31일 일본 우파 언론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정부 “기사삭제 요구할 것”

    일 산케이 박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정부 “기사삭제 요구할 것”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정부 “기사삭제 요구할 것”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본 산케이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하는 칼럼을 내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일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 산케이 신문이 박 대통령을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31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며 기사 삭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역사왜곡과 역사수정주의의 DNA를 갖고 과거사에 대해 후안무치한 주장을 일삼는 일본 내 특정인사와 이와 관계된 언론사의 성의 없는 기사는 정부 차원에서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언론사에 기사 삭제와 재발방지를 요구할 예정”이라며 정부 대응 방침을 밝혔다. 네티즌들은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 비유, 어이가 없네”, “일 산케이 박대통령,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암살된 황후에 비유하다니 예의가 없다”, “일 산케이 박대통령 비유, 사과하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서울신문DB(일 산케이 박대통령) 뉴스팀 seoulen@seoul.co.kr
  • 日산케이 “朴대통령, 암살된 명성황후 연상된다” 망언

    일본 우익 성향 매체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비판하면서 일본 낭인들에게 암살된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산케이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정치부 전문위원은 31일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이 중국에 사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명성황후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조선은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사대의 대상을 차례로 바꿨다”며 “지금의 한국도 조선의 DNA를 계승해 사대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썼다. ‘사대적 모습’의 예로 그는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들었다. 노구치는 “조선에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며 명성황후를 거론했다. 그는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부르며 “(청일전쟁 후)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파는 쇠퇴했다”며 “민씨파는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했지만 민비는 3개월 뒤 암살됐다”고 썼다. 그는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암살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와 여야는 일제히 규탄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과거사에 대해 후안무치한 주장을 일삼은 일본 내 특정 인사와 이와 관계된 언론사의 터무니없는 기사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일본 극우주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침략해 죄 없는 사람들을 살상하고 많은 여성을 강제로 유린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일본의 군국주의, 그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일본 언론의 몰역사관을 무슨 말로 비유해야 할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도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동북아 평화와 안보를 위한 조치로 타당한 것”이라며 “산케이가 이를 사대주의라고 문제 삼는 것은 도리어 일본의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발상을 확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논란 “3개월 뒤 암살” 무슨 내용?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논란 “3개월 뒤 암살” 무슨 내용?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논란 “3개월 뒤 암살” 무슨 내용?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조선시대 명성황후에 비유

    일 산케이 박대통령, 조선시대 명성황후에 비유

    31일 일본 우파 언론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논란 “민비 3개월 뒤 암살”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논란 “민비 3개월 뒤 암살”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中·日 역사왜곡 꼬집다

    中·日 역사왜곡 꼬집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개정판 (전22권)/이이화 지음/한길사/총 6664쪽/각 권 1만 4500원 원로 역사학자 이이화(78)씨의 역작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한길사)의 개정판이 11년 만에 나왔다. 전 22권으로, 개인이 쓴 한국 통사로는 가장 방대하다. 1994년 집필을 시작해 10년 만인 2004년에 완간됐다. 선사시대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철저한 현장 조사와 문헌 고증을 바탕으로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 정치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각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아우르고 생활사와 문화사를 중심으로 서술해 호평을 받았다. 이씨는 “시리즈 집필을 시작할 때와 달리 일본의 근현대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 움직임이 국제 문제로 다뤄질 정도로 심각해졌다”면서 “역사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인 만큼 현재 강조가 필요한 부분을 보충했다”고 말했다. 고대사에선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동아시아 역사 왜곡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단군조선과 요하문명론을 연구하는 중국뿐 아니라 평양 중심의 대동강 중심설을 내세우는 북한, 반(反)중국을 기치로 한국 중심의 확대 해석을 펼치는 한국 재야 사학계의 시각을 비판하고 앞으로의 대처 방식을 제시했다. 조선 후기에선 정조 시기의 탕평정책과 문체반정, 동학농민전쟁을 빌미로 시작된 청일전쟁으로 조선이 일본에 편입되는 과정 등을 자세하게 기술했다. 일제강점기에선 일제의 국가범죄인 가미가제, 일본군 위안부와 여성근로정신대 동원 실상과 명칭 문제 등을 대폭 보완했다. 금속활자·판소리 등 문화사, 놀이·풍속·노비 해방의 사회사, 유교사상의 희생양 ‘열녀’에 얽힌 여성사, 3·1운동에 참가한 기생과 어부, 공장 노동자 등 기존 역사책에서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도 빠짐없이 다뤘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北 “南 백기투항” 8·25 합의 왜곡

    북한이 지난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공동합의문’을 발표한 직후 내부 강연을 열어 “남한이 심각한 교훈을 얻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당의 지시 아래 각 도는 물론 각급 기층 당 조직인 당 초급단체, 청년동맹, 여성동맹, 근로단체동맹 등 산하 조직들마다 긴급 강연회, 토론회를 열어 남한이 ‘백기투항’한 것처럼 내부 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단호한 결단력에 남한이 굴복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문 두 번째 조항인 북측의 ‘유감’ 표명에 대해서도 상대방의 불행에 대해 ‘안됐다’ 정도의 ‘위로’ 의미로 축소해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동안 이번 긴장 격화의 책임이 남측의 있지도 않은 ‘북한 지뢰 도발’ 주장에서 비롯됐다며 지뢰 도발을 남측의 ‘자작극’ ‘모략극’으로 몰아갔다.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25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남측이)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라는 말로 남측의 모략극이라는 기존 주장에 변함이 없음을 주민들에게 주입시켰다. 황 총정치국장의 브리핑에 대해 김정은 체제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주민 여론을 의식한 조치와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간 긴박한 상황이 풀리게 된 과정을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 셈인데 과거엔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행위다. 한편 정부는 향후 회담에서 북한이 5·24 대북 제재 조치를 거론할 경우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시민과 만나는 ‘덕혜옹주 유품’

    시민과 만나는 ‘덕혜옹주 유품’

    지난 6월 고국에 돌아온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 복식 7점이 25일 일반에 공개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의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를 통해서다. 특별 공개에선 덕혜옹주가 입었던 어린이용 당의(唐衣·조선 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예복), 스란치마, 돌띠 저고리, 풍차바지, 속바지(단속곳), 어른용 반회장저고리(깃, 고름, 소매 끝에 다른 색 천을 대어 지은 저고리), 치마 등 7점이 전시됐다. 이들 복식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4일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박물관 측은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복식들은 소 다케유키가 1955년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이듬해 영친왕 부부가 문화학원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의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았다. 덕혜옹주는 1962년 귀국했지만 복식은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서 소장해 왔다.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 낳은 고명딸이다. 어머니는 궁녀 출신인 복녕당 양귀인이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까닭에 공주 대신 옹주라는 호칭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 20세에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 했다. 특별 공개는 다음달 6일까지 박물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13일간만 진행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배비장과 애랑, 타이베이 애간장 녹이다

    배비장과 애랑, 타이베이 애간장 녹이다

    지난 22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에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 도저히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리고 사람들을 운집하게 만든 공연이 있다. 오후 5시 타이베이시립대학 중정당에서 열린 정동극장 기획공연 ‘배비장전’이다. 한국 문화 관광 홍보를 위해 마련된 공연으로, 대만에서의 전막공연은 처음이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극장 측은 공연장 입장을 예정보다 30분 앞당겼다. 배비장전 대형 포스터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관객들로 시끌벅적했다. 20~30대 여성 관객들이 압도적이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노년층도 눈에 많이 띄었다. 1·2층 1000석 규모의 공연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북, 장구, 꽹과리를 중심으로 한 풍물패가 막을 열었다. 관객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신기한 듯 바라봤다. 형형색색의 고운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전통 춤이 이어졌다.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역동적인 힘이 뿜어져 나왔다.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배비장전은 배비장을 내세워 조선시대 양반의 위선을 벗겨 내는 작품이다. 풍자와 해학이 백미다. 이런 요소는 대만 관객들에게도 통했다. 양반이 지나가는 여인을 희롱하려다 박색인 걸 보고 봉사인 척 연기하는 장면, 제주 기생 애랑의 미모에 빠진 양반이 애랑과 헤어질 때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 주는 장면, 애랑의 미모에 반한 말들의 군무(말춤), 여덟 겹 치마를 입은 애랑이 하나씩 치마를 풀어 헤치며 배비장의 애간장을 태우는 장면 등에서 폭소가 터졌다. 풍물패와 여성 무용수들의 북춤이 대미를 장식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배우들과 하나가 됐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박수갈채 속에서 70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학생 딸과 함께 온 낸시 링(53)은 “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자막이 없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작품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외국 관객 맞춤용으로 잘 만든 것 같다. 한국의 전통 춤과 의상,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당장 한국에 가고 싶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다이위쉬안(戴郁璇·24·여)은 “페이스북에서 공연 소식을 접했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공연이었다. 케이팝을 좋아해 평소 한국 음악은 꾸준히 들었는데 판소리는 처음 들었다. 심금을 울리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 무척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이달 말 한국을 찾을 예정인 천원허(陳韻合·22·여)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전통도 되새겨 보게 하는 공연이었다”며 “두 나라의 전통이 소통하게 되면 앞으로 더 많은 관광 교류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규운 안무감독은 “감독 취임 이후 서울에서 처음으로 배비장전을 올릴 때처럼 설레고 떨렸다”며 “배우들을 통해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에너지를 뽑아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는데 대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아 기쁘다”고 밝혔다. 배비장 역의 이혁과 애랑 역의 조하늘은 “관객들이 우리 전통 공연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아 공연하는 내내 힘이 났다. 배비장전이 우리 전통과 소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타이베이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8] 혜원 신윤복이 묘사한 동성애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8] 혜원 신윤복이 묘사한 동성애

    조선시대 대표적 풍속화가의 한 사람인 혜원 신윤복은 개방적 성 모럴이라는 전에 없던 문화현상을 작품의 주제로 채택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위였지만,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을 뛰어난 필력에 실려 표현한 결과 ‘19금(禁)’ 딱지 따위는 붙지 않았다.  혜원은 태어나고 죽은 연대가 분명치 않다. 그저 18세기 중엽에서 태어나 19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인물로 알려진다. 전통적 신분질서가 흔들리고, 경제력이 사회적 행세의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한 시기다. 성 모럴도 전 시대와는 크게 달라졌다. 에로티시즘이 넘쳐나는 그의 풍속화는 당시 ‘그림시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은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30점의 풍속화로 포착하고 있다. 이 화첩에 묶인 각각의 그림에는 제목이 적혀있지 않다. 오늘날 전하는 제목들은 감상자들이 정황을 추정해 지어 부른 것이다. ‘이승영기’(尼僧迎妓)라는 그림도 그렇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여승이 기생을 맞이한다.’ 쯤이 되겠지만, 비구(남승)인지, 비구니(여승)인지, 기생인지 여염집 아낙인지 조차 논란거리이고, 해석도 제각각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이 그림의 제목을 ‘봄 나들이’라고 붙이고, ‘여인들의 아랫도리 흰 속곳을 훔쳐보고 있는 승려’하고 해석했다. 타락한 승려와 유부녀 혹은 기생의 부도덕한 관계를 암시한다는 일반적인 시긱하다.  장옷을 입은 여인을 기생이라 한 것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장옷이 조선 초기 서민이나 기생의 복식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 양반계층에서도 일반화된 것은 물론 왕실의 유물에서도 나타난다. 다만 오른쪽 시중드는 여인의 성격은 학계의 의견이 일치하는데, 양반집 여인들만 했다는 오른쪽 치마여밈을 하고 있는 만큼 몰락한 양반 출신이라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궂은 일을 하고는 있지만, 뿌리깊은 습관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왼쪽 인물을 비구라고 보면 새로운 시대의 풍속도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 공공연히 음행을 저지르고 절개를 잃는 것’을 한탄하는 목소리는 벌써 태종실록과 같은 조선 초기 기록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여승이 기생을 맞이한다.’는 제목에 힌트가 있다. 실제로 승려의 얼굴은 장옷을 쓴 여인보다 오히려 곱다. 체구가 아담하고 자태 또한 매우 여성적이다. 승려의 얼굴에서 비치는 묘한 기대감 역시 단순히 절의 불사에 공헌한 공덕주에 대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혜원은 동성애를 암시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동성애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유교적 질서가 긴장감있게 유지되는 시대에는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염집 처자가 성매매에 나설 정도로 세상이 바뀐 조선 후기에 이르면 양상은 달랐다. ‘이승영기’는 드러내지 못할 비밀을 가진 여인들의 은밀한 만남을 그린 것으로 해석해야 의문이 모두 풀린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