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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가 소빙하기 기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 알고 보니…

    정조가 소빙하기 기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 알고 보니…

    “부덕의 소치로 신이 미움을 사 심한 흉년이 든 것이 지금 4년째다. 살아남은 백성들마저 혹독한 질병에 걸렸다. 봄부터 겨울까지 상황은 계속 악화하여 병들지 않은 마을이 없으니 지금은 병이 옮겨갈 지역도 없다. 죽은 시체가 서로 베고 누웠다. 이렇게 전 지역에 걸친 참혹한 재앙은 옛날에도 드문 일이었다.” 숙종 21년에 시작돼 5년 가까이 이어진 ‘을병대기근’ 기간 중이었던 숙종 24년 10월 21일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의 기록이다. 을병대기근 이전 현종 시절이었던 1670~1671년에는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 식구들의 시체까지 삶아 먹었다는 조선 최악의 ‘경신대기근’이 발생하기도 했다. 17세기 후반 조선을 뒤흔든 두 번의 대기근은 왜 발생했을까. 교양 과학 계간지 ‘한국 스켑틱’ 여름호(38호)는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의 ‘조선 후기의 대기근과 정조의 영민함’이란 글을 통해 기후의 눈으로 한국사를 재구성했다. 1200년경 이후 북반구의 기온은 지속해 떨어져 대략 17세기 말까지 이어지면서, 전 세계로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고, 고위도와 고지대에서는 빙하가 확장되는 소빙하기 추위가 나타났다. 1350년부터 1850년까지 소빙하기가 도래한 것은 태양 흑점 수의 변화와 화산 폭발로 인한 일사량 감소 때문이었다. 태양 표면의 흑점 수가 늘어나면, 태양 활동도 활발해져 지구 온도도 올라간다. 태양 흑점이 적어지는 극소기에는 혹독한 추위가 발생한다. 또, 화산이 폭발하면 다량의 이산화황 기체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수증기와 결합해 황산 에어로졸 막을 형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막은 태양 빛을 반사해 지표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 기온을 떨어뜨린다. 박 교수에 따르면 경신대기근은 태양 활동의 약화로 생겼지만, 을병대기근은 화산 폭발이 원인이었다. 기근의 원인은 달랐지만, 이 두 요인은 조선 후기 기후 변화를 주기적으로 추동했고, 그때마다 사회에는 혼란이 야기됐다. 급속한 기온 변화가 일어나면 기상 이변이 잦아지고, 기상 이변은 곧 흉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신대기근을 겪은 현종은 진휼청을 완전히 정착시켜, 기근 발생시 의정부에 준하는 기관으로 격상돼 작동토록 했다. 숙종은 을병대기근 이후 구휼 시스템을 더욱 강화했다. 1782년부터 1788년까지 일본은 덴메이 대기근으로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지만, 정조가 통치하던 조선은 큰 위기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누렸다. 정조가 개혁 군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선대 왕들이 구축한 구휼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앞서 두 기근을 반면교사로 미리 대비했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인간사의 많은 부분을 기후가 결정했으며, 이는 한국사도 다르지 않다”라며 “그렇지만, 정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재난 예방과 기후 변화 적응에 힘쓰는 정부와 사회 지도층의 노력도 중요함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치가 부패하지 않고 복지가 튼실하다면 기후 변화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너네 나라 올림픽”…한국 응원하는 파비앙에 ‘악플테러’

    “너네 나라 올림픽”…한국 응원하는 파비앙에 ‘악플테러’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37)이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발생한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의 실수로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파비앙은 2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림픽 D1! 12년만에 수영 메달! Feat 댓글 테러’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전에 출전한 김우민을 응원하기 위해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를 찾은 파비앙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개막식에서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며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했을 때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했더라”고 언급했다. 당시 파비앙은 SBS에서 개막식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파비앙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방송이 다 끝나서야 알게 됐다”며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번 사태로 프랑스 출신인 파비앙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그는 “아무래도 제 나라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더욱 더 화가 나고 실망스럽다”며 “집에 가보니까 인스타그램과 이메일, 댓글 테러를 당하고 있더라”고 했다. 이어 “사실 어떻게 보면 저한테 익숙한 일”이라며 “카타르 아시안컵 때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 사태 때도 댓글 테러를 당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제 나라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라 제가 욕 한 바가지 먹고 있다”고 했다. 또 “이번에는 제 고향에 있기 때문에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은 못 달고 계시더라. 다행이다”며 웃었다.조직위 측은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을 북한으로 소개하는 등 국제대회에 걸맞지 않은 미숙한 진행으로 비판을 받았다. 26일 열린 개막식 당시 장내 아나운서는 한국 선수단을 태운 배가 입장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소개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전했고, IOC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한국 선수단장에게 공식 사과 서한을 전달했다. 실수는 또 있었다. 파리올림픽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상욱(Oh Sanguk)의 이름을 ‘오상구(Oh Sangku)’로 잘못 적은 것이다. 이후 국내 네티즌들이 항의 댓글을 달면서 이름은 수정됐다. 파비앙은 지난 3월에도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아시안컵 도중 벌어진 이강인의 ‘하극상 논란’ 당시 자신에게 쏟아진 ‘악플 세례’에 대해 입을 열었다. 파비앙은 “이강인 선수와 손흥민 선수의 다툼 기사가 나오고 나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같은 부정적이고 말도 안 되는 댓글이 많았다”며 “웃겼다. 내가 이강인 선수도 아니고 나는 그냥 이강인 선수와 파리 생제르맹을 응원하는 사람인데 왜 나한테 욕을 하고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는지 놀랐다”고 말했다. 파비앙은 “많은 분들이 상처받지 말라고 응원해 줬는데 저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라며 “응원해 줘서 고맙다. 든든한 사람들이 내 옆에 있구나를 깨닫게 돼 너무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 조선시대에도 바다는 피서지로 인기였을까

    조선시대에도 바다는 피서지로 인기였을까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는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다.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국내외 여름철 여행지는 대부분 바닷가 지역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생각만 해도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여름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바다나 보러 갈까’라는 충동이 일기도 한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에게도 바다는 그렇게 낭만적이고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서양의 경우, 근대에 들어 선박 기술이 발달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는 ‘푸른색’이 아닌 ‘검은색’처럼 어두운색으로 묘사됐다. 또, 거대한 문어같이 생긴 괴물들이 사람과 배를 심해로 끌고 들어가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됐다. 이는 우리 조상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8세기 한·중 관계사를 연구하는 이명제 전남대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발행한 웹진 ‘담談’ 7월호에 ‘목숨을 걸고 배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선조들이 바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광해군 13년(1621년)에는 훗날 청나라로 불리는 후금이 만주 지역 패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조선 개국 이후 처음으로 바닷길을 통해 명나라로 가는 사행이 있었다. 사신단으로 이 사행에 참여한 안경(1564~1640)이 쓴 ‘가해조천록’에 따르면 바다에 대한 우리 조상의 인식은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멀지 않은 바닷길이었지만 바다는 항상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광해군이 사신단에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한배에 타지 말라. 혹시 어떤 배가 불행을 겪더라도 다른 배는 도착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내린 명령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요즘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과 부기장에게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같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조치라 하겠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신단은 평안도 안주에서 출발해 연안 해역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됐음에도 여름 풍랑을 맞아 많은 배들이 좌초되고, 살아서 육지로 올라온 이들은 비적 떼들에게 방물과 문서, 행장 등의 짐들을 빼앗겼다. 어렵사리 명나라 황제가 사는 북경까지 갔으나 관원들의 뇌물 요구에 조선 사신단은 몸살을 앓았다. 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는 길도 바닷길을 이용했으나 또다시 거센 풍랑을 맞아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표류하기에 이르렀다. 식량도 떨어져 해초로 연명하던 사람들은 겨우 평안도 철산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고생 때문에 안경은 자손들이 자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자손들은 영원히 문관 벼슬을 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교수는 “요즘 바다는 아름답게, 또는 풍요롭고 신비로운 곳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바다는 ‘죽음과 공포’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 붓글씨로 새긴 독립운동가 김가진 재조명

    붓글씨로 새긴 독립운동가 김가진 재조명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로서의 명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예가 김가진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자리입니다.” 동농 김가진(1846~1922) 서예전 추진위원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리는 ‘백운서경’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고 어른인 ‘국노’(國老)로 모셨던 인물이자 조선의 대신 중에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인물이다.이번 전시에는 동농의 시와 서, 그가 전국에 남긴 현판의 탁본, 인장과 위창 오세창, 백범 김구 등 그와 교류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 등 200여점이 나왔다. 전시명인 ‘백운서경’은 그의 서예 경지를 의미한다. 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자신을 ‘백운동 주인’이라고 한 일을 기렸다. 지금도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는 그가 쓴 거대한 백운동천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한 글자당 크기가 가로 1.2m, 세로 1m 정도에 달한다. 동농의 글씨는 입고출신(入古出新·고전에 깊이 들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의 자세를 견지했다. 유 전 청장은 “세상이 혼미한데 어떻게 멋들어진 글씨를 쓸 수 있었겠느냐”며 “동농은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며 정통에서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이 동농의 것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유 전 청장은 필법 등으로 볼 때 동농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예전 추진위원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동농과 이완용의 대자 편액 글씨 조형 비교연구, 추가 물증 발굴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넌 물놀이만 하니?… “서핑하고 고래 보러, 울산으로 떠나자”

    넌 물놀이만 하니?… “서핑하고 고래 보러, 울산으로 떠나자”

    진하해수욕장서 해양 레포츠비치발리볼·서핑·요트대회 열려바람·파도 좋아 사계절 서핑 명소파라솔·구명조끼·튜브 무료 지원10월까지 고래바다여행선 운항수백 마리 참돌고래떼 유영 장관다양한 선상 공연·야간 경관 매력고래박물관·생태체험관도 인기 울산 지역 해수욕장들이 휴가철을 맞아 피서객을 유혹한다. 시원한 물놀이와 다양한 체험 행사로 피서객 몰이에 나섰다. 국내 유일의 고래바다여행선도 동해 고래 탐사에 한창이다. ●‘해양 레포츠의 요람’ 진하해수욕장 울주군 진하해수욕장은 수상스키, 제트스키, 윈드서핑, 카이트서핑 등 해양 레포츠 요람으로 불린다. 울산 대표 해수욕장답게 개장 기간도 다음달 31일까지 넉넉하다. 진하해수욕장은 길이 1㎞, 폭 300m의 넓은 백사장과 얕은 수심에 맑은 바닷물이 매력적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비치발리볼, 윈드서핑대회, 요트대회 등이 열린다. 신나는 물놀이를 하다가 지치면 해양 레포츠 대회를 감상하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무엇보다 진하해수욕장은 바람과 파도가 좋아 사계절 내내 서핑객이 찾는 서핑 명소다. 초보자를 위한 해양 레포츠 강습도 진행된다. 울주군은 올해도 샤워장, 파라솔, 구명조끼, 튜브 등 편의용품을 무료로 지원한다. 해수욕장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임시 주차장을 확충하고 극성수기인 지난 13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공영 주차장에서 해수욕장을 오가는 무료 순환버스도 운행한다. 이 기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무료 물놀이장도 개장했다. 다음달에는 울주해양레포츠대축전과 서머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도 개최된다. 진하해수욕장 끝에는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는 명선도가 자리잡고 있다. 무인도인 명선도는 신비로운 야간 경관 조명이 백미다. 피서객들이 야간 경관 조명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명선도 옆에는 국내 최대 보행자 전용 다리인 명선교도 있다. 울주군은 본격적인 피서철을 맞아 야간 불법 폭죽놀이를 근절하고 해수욕장에서의 장기간 알박기 텐트를 단속하고 있다. 또 관광객이 해수욕장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매주 해수욕장 방사능 검사를 할 계획이다.●푸른 동해의 물살을 가르는 고래 탐사 울산 앞바다에서는 푸른 물살을 가르는 고래떼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울산 남구는 550t급 크루즈선을 개조해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주 12회씩 고래바다여행선을 운항한다. 올해에는 지난 3월 31일 첫 운항을 시작했다. 고래 탐사는 3시간 걸리며 주 6회, 연안 투어는 1시간 30분 소요되며 주 6회 있다. 고래바다여행선은 매년 7~8월 최고로 인기다.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울산 앞바다를 누비는 고래 탐사는 무더위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준다. 고래 탐사는 고래가 많이 다니는 제1항로와 제3항로를 운항한다. 연안 투어는 울산 장생포 앞바다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산업항의 야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고래바다여행선에서는 다양한 선상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여행선은 뷔페식당, 공연장, 회의실, 휴게실, 수유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췄다. 이외 기업과 단체 워크숍, 선상 결혼식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올해에는 지난 6월 두 차례 고래를 발견했다. 지난 6월 8일 오후 3시 25분쯤 장생포 남동쪽 18.5㎞ 해상에서 참돌고래 떼 1000여 마리가 올해 처음으로 발견됐다. 승선객 152명은 참돌고래 떼의 유영을 20분간 관찰했다. 같은 달 19일 낮 12시 5분쯤에도 장생포 남동쪽 21㎞ 해상에서 참돌고래 떼 200여 마리를 발견했다. 고래 발견율은 수온이 올라가는 6월부터 8월까지 최고로 높다. 기온 상승으로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고래바다여행선 항로를 따라 돌고래가 좋아하는 먹이 떼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고래바다여행선 선착장에서 걸어서 1~3분 거리에는 ‘장생포고래박물관’과 박물관의 부속 시설인 ‘고래생태체험관’이 있다. 살아 있는 큰돌고래 가족을 볼 수 있다. 장생포고래박물관에서는 고래 골격 등 이색 전시물이 방문객을 기다린다. 울산 앞바다에서 살아 있는 고래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 준다.●‘명품 백사장’ 일산해수욕장 동구 일산해수욕장은 반달형 백사장에 질 좋은 모래와 낮은 수심으로 이뤄져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다. 요트와 수상스키, 패들보드 등 해양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일산해수욕장 백사장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맨발 걷기 명소다. 하루 수백 명이 모래를 밟으며 맨발 걷기를 체험하고 있다. ‘젖은 모래 위를 걸을 때 맨발 걷기의 효과가 좋다’고 알려지면서 일산해수욕장 백사장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해수욕철을 맞아 주말과 휴일에는 수천 명이 이곳을 찾아 물놀이를 즐긴다. 물놀이에 지치면 지난 3월 문을 연 ‘청년스테이지ON’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청년 버스커들과 문화예술 활동가들의 공연이 일산해수욕장 중앙광장과 버스킹 무대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일산해수욕장에서는 다음달까지 다양한 축제와 공연이 열린다. 지난 19일부터 사흘간 열린 ‘울산조선해양축제’에는 19만명이 다녀갔다. ‘기발한 배 콘테스트’와 ‘나이트런 일산’ 등 킬러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다음달에는 ‘썸머 나이트 위크’와 ‘일산비치 갓 탤런트’ 등 문화 공연도 이어진다. 동구는 관광 투어와 해양레포츠 체험 같은 다채로운 체험·참여·전시·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일산 썸머빌리지’와 같은 해변 휴식 공간도 마련돼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일산해수욕장과 접한 대왕암공원은 동구 최고의 관광 명소다. 대왕암공원은 해송숲, 기암괴석, 대왕암 등으로 이뤄졌다.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해안가 기암괴석은 바닷가를 따라 펼쳐져 있다. 여름에는 수국과 맥문동, 가을에는 해국과 황화코스모스 등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대왕암공원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울기등대(1905년 건립)와 대왕암이 있다.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비의 수중릉이라는 말도 전해져 온다. 2021년 7월 15일 개통한 대왕암공원 출렁다리에는 3년 만에 367만 1605명이 다녀갔다.
  • 조선서 노조 만들다 9년간 옥고… 귀국 뒤 日책임 촉구한 일본인[대한외국인]

    조선서 노조 만들다 9년간 옥고… 귀국 뒤 日책임 촉구한 일본인[대한외국인]

    화학 공장서 조선인 노동자와 협력 日 1년 반 고문… 9년간 최장 수감 패전 후엔 자국민 본국 귀환 도와“반세기의 한민족 박해 반성해야” “패전 후 대다수 일본인은 자신들이 겪었던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의 결과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일본의 조선 민족에 대한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던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하고 있을까.”(이소가야 스에지 저서 ‘우리 청춘의 조선’) 1945년 일제 패망 후 일본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잘못을 끊임없이 지적했던 일본인들이 있었다. 조선인과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9년 넘게 옥살이하며 버텼던 일본인 노동자 이소가야 스에지도 그런 특별한 일본인 중 한 명이다. 1907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난 이소가야는 소학교만 졸업하고 여러 돈벌이를 전전하며 자랐다. 1928년 징집돼 함경남도 나남에 주둔한 19사단에서 군복무를 하며 처음 조선 땅을 밟은 그는 어느 조선인 가족이 건넨 따뜻한 물 한잔에 호의를 느껴 조선인들과 함께 과수원을 꾸리겠다고 다짐했다. 과수원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제대 후 흥남조선질소비료공장에 취직한 이소가야는 식민지 시대의 엄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흥남공장은 당시 재벌이었던 노구치 시타가우가 설립한 아시아 최대 황산암모늄 비료 및 화약(다이너마이트) 생산 공장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온갖 화학물질을 뒤집어쓰며 주야 3교대 노동에 시달렸다.그러나 조선 독립과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인 동료들과 어울리며 이소가야는 그들의 기개에 감동해 힘을 보태기로 한다. 그는 일본 인부 책임자로 기관지 ‘노동자신문’을 찍었고 조선인들과 더불어 노동조합 건설을 추진했다. 1932년 4월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됐다.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이라는 뜻의 ‘불령선인’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1년 반이나 흥남경찰서에서 모진 고문과 취조에 시달렸다. 일제는 ‘조선의 60만 내지인 중 유일한 비(非)국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듬해 함흥형무소를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그는 10개월 감형을 받고도 약 9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5~1942년 조선 내에서 치안유지법, 내란죄, 소요죄 등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일본인은 모두 18명인데 이 가운데 최장 수감 기록이다. 갖은 전향 설득 작업에도 끝까지 버티다 만기 출소한 그는 일본인 중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였다. 이소가야는 일제 패망 후 일본 요청에 따라 자국민의 본국 귀환을 돕다가 1947년 1월 일본으로 돌아갔다.그는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꾸준히 했고 ‘식민지의 감옥’, ‘우리 청춘의 조선’ 등 6권의 저서와 5편의 글을 통해 ‘가해자’ 일본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소가야는 농사와 미군 비행장 건설 아르바이트, 경비원 등의 일을 전전하다 1998년 91세로 삶을 마쳤다. 그의 삶을 연구해 온 변은진 전주대 교수는 28일 “많은 연구자가 그의 글을 통해 식민지와 해방 전후의 시대상을 재구성했다”며 “그의 삶의 궤적은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관점에서도 새롭게 조명해 볼 만한 가치가 크다”고 했다. 재조일본인 연구의 권위자로 말년의 이소가야와 교류했던 미즈노 나오키 전 교토대 명예교수도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노동자로 사회 변혁을 생각하고 보편주의적 가치에 입각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행동하고자 한 일본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1991년 딱 한 번 다시 한국 땅을 밟은 이소가야는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며 “일본은 한민족에 대한 속죄를 ‘죽은 자’에게도 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선인 자료 전시” 진전됐지만… ‘강제 동원’ 단어 피한 사도광산

    “조선인 자료 전시” 진전됐지만… ‘강제 동원’ 단어 피한 사도광산

    ‘조선인 동원 안내판’ 전시장 내 설치노동자 이름 적힌 연초 대장 등 공개전시공간 제목 ‘강제 동원’ 표현 빠져日언론 “韓과 합의”… 외교부는 부인기시다 총리도 ‘강제’ 언급 없이 자축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이 지난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강제 동원에 대해 알리겠다는 일본의 약속이 있었고 이에 한국이 찬성으로 입장을 정리하며 일본 정부가 숙원을 이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부정해 온 사도광산의 강제 동원 사실에 대해 안내판을 설치하고 매년 7~8월 추도식을 여는 것으로 한국 정부와 합의해 세계유산 등재를 이끌어 냈다. 사도광산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 D전시실에는 28일부터 한국인 강제 동원에 대한 별도 전시가 시작됐다. “전시에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및 기타 관련 조치들이 한반도에서 시행됐다”며 조선인들이 동원됐다는 내용을 일본어와 영어로 설명했다. 실제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증거인 연초 배급 대장 등도 전시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심사 전 이런 조치를 했다는 점에서 2015년 군함도(하시마)를 포함한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때보다 진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함도를 세계유산 목록에 올릴 당시 일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는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20년 6월에야 실천했다. 군함도가 있는 나가사키현에 새로 시설을 만든 게 아니라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 안에 조성하는 것으로 대체했다.이번엔 비교적 선제적인 조치를 한 데 요미우리신문은 “내년 국교정상화 60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어 양 정부로서는 새로운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사전에 한국 정부에 타진했다고 전했지만 외교부는 부인했다. 한국 정부는 군함도 사례를 들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제사회 평판에 금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등재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들을 만나 “일본이 미리 사도광산 현장에 설치한 전시물은 물론 추도식 등 관련 조치 이행에 있어 우리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조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전시 공간 제목을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고 해 ‘강제 동원’이란 단어 사용을 피했다. 전시 공간을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사도광산 관광센터인 ‘키라리움 사도’가 아닌 향토박물관에 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등재까지 14년이 걸렸다”며 강제 동원 언급 없이 자축했다.
  • “제2군함도 되지 않도록 계속 주시… 동원된 조선인 명부 공개 이끌어야”

    “제2군함도 되지 않도록 계속 주시… 동원된 조선인 명부 공개 이끌어야”

    말 바꾸거나 약속 흐지부지될 우려‘강제동원 부정’ 안내판 수정 살펴야 지난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에 대해 일본 내 역사 전문가들은 제2의 군함도(하시마)가 되지 않도록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설명하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낸 만큼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게끔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 전문가들을 대면과 전화로 만나 사도광산의 향후 과제에 대한 제언을 들었다. 다케우치 야스토(67) 역사가는 2015년 군함도 등재 문제를 꺼내며 “안내판 설명 시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설명이 적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에서의 강제 동원에 대해 ‘일하게 했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강제’는 아니라고 애매하게 말을 바꾼 전력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과 관련한 약속 이행의 증거라고 제시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내 전시물에는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역사를 소개해 놨지만 ‘강제 동원’이라는 언급은 끝까지 피했다.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나카타 미쓰노부(70) 사무국장은 “향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올리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일반 희생자 추모가 될 수도 있다”면서 “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포함돼 있다는 걸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도광산 내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과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동원된 조선인들의 실제 명부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니가타현은 지역 역사서를 편찬할 때 조선반도 노무자 명부를 촬영한 마이크로 필름을 보관하고 있지만 원본이 아니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 대표를 맡은 요시자와 후미토시(55)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도 “실제 노동자들의 명부를 당시 운영사인 골든사도가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집은 전문가들이 30여년간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지난달 발간했다. 요시자와 교수는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 동원 관련 설명이 추후 수정되지 않도록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발목 꺾여도 연속 6점… 오상욱, 파리를 찢었다

    발목 꺾여도 연속 6점… 오상욱, 파리를 찢었다

    결승전 특유의 런지 공격으로 승기신·구 어펜저스 위한 완벽 복수전도오 “16강, 원우영 코치 덕 멘털 잡아단체전서도 金 따고 편히 쉬겠다” 프랑스 관중의 터질 듯한 함성 속에서 심판의 “알레”(시작) 소리와 동시에 한국 펜싱 국가대표 오상욱(28)이 칼을 뻗어 상대 가슴을 정확히 찔렀다. ‘어펜저스’(펜싱+어벤저스) 동료들의 복수극을 완성한 오상욱은 펜싱 종주국의 심장부인 파리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간)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꺾고 우승했다. 이날 오상욱은 대표팀 동료들을 꺾은 선수들을 상대로 한 수 위 기량을 선보였다. 16강전에서는 3년 전 열린 도쿄올림픽 준결승에서 전 국가대표 김정환을 꺾었던 파레스 아르파(캐나다)를 15-13으로 제압하며 첫 번째 복수에 성공했다. 아르파는 올림픽 개인전 3회 연속 우승 기록을 가진 실라지 아론(헝가리)을 제압하고 올라온 다크호스였다. 오상욱은 “그 선수가 올라올 거라고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며 “안 좋은 생각도 들었는데 (원우영) 코치가 뒤에서 많이 잡아 주셨다. ‘널 이길 사람이 없다’, ‘네 할 것만 하면 널 이길 사람이 없다’고 많이 해 주셨다”고 말했다.결승전에서 만난 페르자니 역시 32강전에서 한국 펜싱 대표팀 맏형 구본길(35)을 꺾고 결승에 선착한 선수였다. 경기 도중 발목을 접질리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오히려 공격을 휘몰아쳐 5-4부터 연속 6점을 올려 승기를 잡았다. 특유의 런지를 활용한 공격이 빛을 발하면서 주도권을 잡은 오상욱이 14-5까지 앞서며 손쉽게 승리를 거두는 듯했지만 막판 한 점을 남기고 3점 차까지 쫓기기도 했다. 체조선수를 연상시키는 다리찢기로 유연성을 과시한 오상욱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은 뒤 경기를 매조졌다. 오상욱은 2019년 세계선수권, 2019년과 올해 아시아선수권,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 올림픽까지 금메달을 휩쓸며 한국 펜싱 선수로는 처음 주요 국제대회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첫 올림픽 무대였던 도쿄 대회 개인전 8강 탈락의 아쉬움, 이번 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손목 부상으로 한동안 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어 흔들렸던 기간까지도 모두 이겨내 기쁨을 더했다. 오상욱은 “어느 때보다 큰 의미가 있는 우승이다. 한국 첫 금메달이고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은퇴한) 김정환·김준호 선수가 가장 생각난다”며 “조금 더 신중하게 경기를 운영한 게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오상욱의 금메달로 한국 펜싱은 5회 연속 올림픽 개인전 입상자를 냈다. 특히 이번 금메달은 펜싱 종주국을 자처하는 프랑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얻은 거라 의미가 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펜싱 경기가 열린 그랑팔레를 찾을 정도로 엄청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상욱의 스승인 원우영 코치는 선수 시절이던 2010년 11월 이곳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프랑스 관중들은 여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 자국 선수인 오리안 말로가 등장하자 휴대전화 플래시를 밝혔고 우레와 같은 환호로 힘을 불어넣기도 했다. 오상욱도 “프랑스 선수와 붙었으면 홈 어드밴티지에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전에서 홀가분한 결과를 얻은 오상욱은 구본길, 도경동(25), 박상원(24)과 함께 오는 31일 남자 사브르 단체전 올림픽 3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오상욱과 구본길은 도쿄 대회에서 이미 한 차례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오상욱이 단체전까지 석권하면 역시 한국 펜싱 최초의 올림픽 2관왕이 된다. 오상욱은 “엄청 기쁘지만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단체전까지 금메달을 따고 편히 쉬겠다”고 말했다.
  • 경콘진, ‘경기 스토리작가 창작소’ 파주 6기 온라인 비즈 미팅 개최

    경콘진, ‘경기 스토리작가 창작소’ 파주 6기 온라인 비즈 미팅 개최

    경기콘텐츠진흥원(원장 탁용석, 이하 경콘진)은 작가와 제작사를 이어주는 ‘경기 스토리작가 창작소 파주 6기’ 온라인 비즈니스 미팅을 24~25일 열어 125건 이상의 미팅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이번 비즈니스 미팅은 지난 3월부터 5개월 동안 파주 지지향에서 경콘진의 지원으로 집필 활동을 해온 스토리 작가 8명이 영상 산업 관계자들에게 자기 작품을 소개하고 영화·드라마 제작 등 비즈니스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이번 행사에는 34개의 국내 주요 영화·영상 제작사 및 투자사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소개된 작품들은 액션, 범죄, 시대극, 로맨스, SF,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었다. 드라마 대본은 ▲김나영 작가의 ‘보호관찰관 사강진’ ▲김수현 작가의 ‘경성변호사’ ▲박민희 작가의 ‘현재는 아름다워!’ ▲서은영 작가의 ‘교감’ ▲허민희 작가의 ‘조선 스페셜리스트’가/ 영화 시나리오는 ▲강동훈 작가의 ‘그라운드 제로’ ▲손상준 작가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 ▲최정안 작가의 ‘릴리스(Lilith)가 소개됐다. ‘경기 스토리작가 창작소’는 영상 콘텐츠의 원형이 되는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해 경기도 시나리오·대본 작가의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돕는 사업이다. 선정된 작가에게는 개인 집필 공간과 5백만 원의 창작지원금, 멘토링과 전문가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021년 개소 이래 총 108명의 작가를 배출했으며, 올해는 경콘진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 공동으로 고양시와 파주시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8월부터는 ‘경기 스토리작가 창작소 파주 7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서예가로서 재조명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던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서예가로서 재조명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로서의 명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예가 김가진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자리입니다.” 동농 김가진(1846~1922) 서예전 추진위원장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리는 ‘백운서경’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최고 어른인 ‘국노’(國老)로 모셨던 인물이자 조선의 대신 중에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합류했던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동농의 시와 서, 그가 전국에 남긴 현판의 탁본, 인장과 위창 오세창, 백범 김구 등 그와 교류한 독립운동가들의 글씨 등 200여점이 나왔다. 전시명인 ‘백운서경’은 그의 서예 경지를 의미한다. 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이라는 집을 짓고 자신을 ‘백운동 주인’이라고 한 일을 기렸다. 지금도 백운동 골짜기 암벽에는 그가 쓴 거대한 백운동천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으며 한 글자당 크기가 가로 1.2m, 세로 1m 정도에 달한다. 전시에서는 탁본 형태로 만날 수 있다.동농의 글씨는 입고출신(入古出新·고전에 깊이 들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의 자세를 견지했다. 근대기 유행과 시시각각 변하는 취향을 따라가기보다는 오랜 기간 고법의 정수를 체득하는 데 천착했다. 50대 후반에야 비로소 새롭게 해석한 자신만의 행서·초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유 전 청장은 “세상이 혼미한데 어떻게 멋들어진 글씨를 쓸 수 있었겠느냐”며 “동농은 ‘글씨까지 혼미해선 안 된다’며 정통에서 흔들림 없는 글씨를 쓰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동농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특히 그가 가족, 지인을 위해 남긴 글씨, 편지 등이 전시된 2섹션 지단정장(종이는 짧고 정은 길어)에서는 따뜻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해당 섹션에서는 아들 김의한의 한글 교육을 위해 직접 쓴 한글 교재와 첫돌을 기념해 쓴 천자문 등을 만날 수 있다. 독립문의 한자·한글 편액이 동농의 것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독립문 글씨를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설도 있지만 유 전 청장은 필법 등으로 볼 때 동농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예전 추진위원인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동농과 이완용의 대자 편액 글씨 조형 비교연구, 추가 물증 발굴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식민 지배 정당화…사도광산 언제라도 제2군함도 될 수 있다”

    “식민 지배 정당화…사도광산 언제라도 제2군함도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끝내 등록된 데 관해 일본 내 전문가들은 사도광산이 언제든지 제2의 하시마(군함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내 조선인 노동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며 2015년 군함도 등재 때와는 진전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언제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한 전문가 3인을 지난 19~27일 현지에서 대면 및 전화 등으로 인터뷰했다.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온 다케우치 야스토(67) 역사가는 27일 서울신문과 인터뷰하며 “일본 정부는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 국가총동원법이나 징용에 의해 노동을 하도록 한 사실은 인정했다”며 “안내판 설명 시 강제 노동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설명이 적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 정부가 군함도에서의 강제동원에 대해 ‘일하게 했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강제노동’은 아니라며 애매하게 말을 바꾼 전력이 있다는 게 다케우치 역사가의 설명이다. 그는 “사도광산에서도 일본 정부가 같은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걸어서 30분 거리인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한 강제동원 안내 시설물을 보면 “전시에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 및 기타 관련 조치들이 한반도에서도 시행됐다”며 “1944년 9월부터는 ‘징용’이 시행돼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작업이 부여되며 위반자는 수감되거나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인정하는 의미로도 해석되며 자칫 이러한 강제동원이 식민 지배 시기에는 정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사도광산에서의 강제동원 역시 그렇게 해석되도록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다케우치 역사가는 지난 6월 발간된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에 참여했다. 이 자료집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의 담배 배급 대장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이 자료를 사도섬에 있던 하야시 미치오 스님(올해 77세로 작고) 등이 입수했고 관련 사본 등을 확인하며 강제동원이 이뤄진 게 사실임이 드러났다. 이 자료집에는 조선인 노동자 7명과 유족 4명, 담배를 배급하던 곳의 관계자 등의 증언 등이 담겨 있다. 이처럼 30여년에 걸쳐 조사된 내용이 자료집으로 나왔을 정도이지만 일본 정부와 니가타현은 이러한 사실을 부정한 채 사도광산의 과거를 감췄고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게 됐다. 다케우치 역사가에 따르면 조선인 노동자가 1940~42년 1000명, 1944~45년 500명 이상 동원됐다는 기록이 있고 이처럼 강제동원된 노동자 수만 1500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채굴 기술,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노동, 국제 관계라는 3가지 측면에서 봐야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노동 문제를 배제한 사도광산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사도광산이 진정한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강제동원 역사를 포함한 광산 전체 역사를 빠짐없이 알려야 하며 그렇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케우치 역사가는 일본 정부가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스스로 과거에 좋았던 점만 골라 자랑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계속되는 한 사도광산이 결국 제2의 군함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근본적 이유는 식민지배가 옳다고 판단한 데서 기초하며 이에 대해 비판하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며 “조선인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나카타 미쓰노부(70) 사무국장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향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희생자의 추모가 되지 않도록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일부 안내판 설치 등으로 강제동원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으로 정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카타 사무국장은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잘못된 과거의 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나도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시민단체는 2021년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부터 현재까지 수차례 성명서를 발표하며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를 요구해왔지만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도광산 내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과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동원된 조선인들의 명부도 공개돼야 한다. 사도광산이 위치한 니가타현은 지역 역사서를 편찬하면서 촬영한 조선반도 노무자 명부 마이크로 필름을 보관 중이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원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나카타 사무국장은 “명부 공개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 일한 조선인이 누구인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식으로 일했는지 등 사도광산이 태평양전쟁 중에 어떤 식으로 활용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이를 적극 공개해야 하며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에 명부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번에 발간한 자료집으로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된 증거가 정리됐지만 강제동원 조선인 명부 공개와 함께 앞으로 계속 강제동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세상에 보여주는 게 향후 과제로 꼽힌다.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 대표를 맡은 요시자와 후미토시(55)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실제 노동자들에 대한 명부를 당시 운영사인 골든사도가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시자와 교수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무시하고 에도시대에만 한정해서 보여주는 게 지역민을 무시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사도광산의 역사는 곧 니가타현 지역 그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광산에서 채굴했을 당시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역사도 당연히 있는데 이를 애써 감추고 부정하며 밟은 부분만 부각하는 게 지역민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요시자와 교수는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강제동원은 당시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생각”이라며 “도의적 책임은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정리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적 기술이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설명 시 포함되거나 추후 수정되지 않도록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하계 올림픽 복귀 북한… “특색있는 개막식” 단신으로 보도

    하계 올림픽 복귀 북한… “특색있는 개막식” 단신으로 보도

    8년 만의 하계올림픽 복귀7개 종목에 모두 16명 출전 북한이 지난 27일(한국시간) 파리 올림픽이 개막했다는 소식을 개막식 다음날 주민들에게 알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8일 ‘제33차 올림픽경기대회 개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쌘느(센)강에서 특색있는 개막식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신문은 “김일국 체육상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올림픽위원회 대표단도 참가했다”고 했으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은 레슬링(5명), 수영 다이빙(3명), 탁구(3명), 복싱(2명)과 체조·육상·유도(이상 각 1명) 등 7개 종목에 남자 4명과 여자 12명, 총 16명을 출전 선수로 등록했다. 이번에는 체조, 역도, 다이빙 등에서 메달을 노린다. 가장 메달권에 가까운 선수는 여자 기계체조 안창옥(21)으로,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도마, 이단평행봉)에 오른 북한 체조 간판 스타다. 북한의 하계 올림픽 참가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8년 만이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 불참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2022년까지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자격이 정지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북한이 역대 올림픽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대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었다. 당시 북한은 체조 배길수, 복싱 최철수, 레슬링 김일, 리학선 등 금메달 4개를 수확해 일본(17위)을 제치고 종합 16위를 차지했다.
  • 사도광산 강제동원 언급 없는 기시다 총리…자축 분위기 일본

    사도광산 강제동원 언급 없는 기시다 총리…자축 분위기 일본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크게 환영하고 있다. 28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전날 사도광산 관광센터인 ‘키라리움 사도’에는 관계자와 시민 등 약 200명이 모여 심사 결과를 기다렸고 등재가 결정되자 크게 환호했다. 30년 가까이 활동한 시민단체인 ‘사도를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모임’의 나가노 고우 회장은 “한국도 최종적으로는 인정해줬다”며 “얼마나 사이좋게 지내느냐가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하며 (한국이 요구한) 조건이 있다면 민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협력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사도시는 이번에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전년보다 1.2배 늘어난 50만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1991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었다”며 “시와 관광업계의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은 달라진 한일 관계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에 대해 “내년 국교정상화 60년을 앞두고 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어 양 정부 관계자로서는 새로운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한일 정부 간 막후 교섭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 시설에서 상설 전시를 하고 전시 중 한반도 출신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과 노동 환경의 가혹함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 수용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도 “(강제동원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피하면서도 어려운 노동 환경에 있던 기록을 자세히 전시함으로써 합의점을 찾았다”며 “최근 전례가 없던 좋은 관계도 합의를 뒷받침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총리 주변에서는 ‘한일 관계의 신시대다’라며 흥분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전시는 불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로 양국 정부의 합의 내용을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세계유산 등재 그 자체만 놓고 자축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7일 엑스(X·옛 트위터)에 “전통 수공업의 수준을 높여 구미의 기계화에 견줄 만한 일본의 독자적 기술의 정수였던 사도광산”이라며 “등재까지 14년이 걸렸다”고 강조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27일 성명을 내고 “세계유산위원회 전 위원국 합의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분이 사도를 찾아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널리 세계에 알려지고 평가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총리와 외무상 모두 강제동원과 한국의 합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與 “한일관계 선순환” 野 “외교참사”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與 “한일관계 선순환” 野 “외교참사”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 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여야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인 우리 정부가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을 설치한 데 따라 등재에 동의해 등재가 가능했다는 지점에서 평가가 엇갈렸다. 국민의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사도광산에 강제동원의 전체 역사를 담은 실질적 조치가 이뤄졌음을 평가한다”며 “강제노역 역사를 반성하고 기억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는 그간 일본이 사도광산에 강제노역을 비롯한 전체 역사를 반영하도록 협상을 추진해왔다”며 “향후 방문객들이 강제노역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실질적 조치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대승적인 한일관계 개선 노력이, 일본이 우리 요구를 수용하게 한 것”이라며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일 관계의 선순환을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외교 노력을 폄훼하고 반일 선동을 시도하는 일각의 행태는 결코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사도광산 등재는 윤석열 정부가 역사를 망각한 정부이고 민족 정체성마저 상실한 정부 임을 똑똑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정부의 손을 잡고 등재를 용인해 표결도 없이 전원 동의로 등재가 결정됐다”며 “하지만 오늘 주 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조선인 강제 동원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조들의 피눈물이 서린 강제 동원 현장이 일본의 역사 지우기에 이용당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을 칠 노릇”이라며 “일본을 위해 선조들이 흘린 눈물과 아픈 역사를 지워준 이유가 무엇이냐.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정부를 겨냥 “일본이 원하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어줄 기세로, 최소한 등재 공범 이상”이라며 “국익에 반하고 국민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외교 참사”라고 비난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외교 실패”

    민족문제연구소, 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외교 실패”

    민족문제연구소는 27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데 대해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대표가 한국 강제 징용자들에 대해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며 “2018년 10월 강제 동원 대법원판결 이후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제성’을 부정하고 강제 동원의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메이지 산업 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2015년 당시의 일본 정부 발언과 비교해도 대폭 후퇴한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가 역사 부정론을 관철한 결과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광산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 등과 관련한 전시물을 이미 설치했다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서는 “전시에서도 ‘강제 동원’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됐다”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정부가 아무리 역사를 숨기려고 해도 한국인 강제 동원의 역사는 결코 숨길 수 없는 진실”이라고 덧붙였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이날 일본이 신청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전원 동의 방식으로 결정했다.
  • 제2군함도 될까…강제동원 ‘사도광산’ 세계유산 끝내 등재

    제2군함도 될까…강제동원 ‘사도광산’ 세계유산 끝내 등재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던 사도광산이 한국 정부의 합의 끝에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 정부가 관련 역사를 반영하는 조치를 약속했고 한국 정부가 이에 찬성하면서 세계유산 등재가 이뤄졌다. 제26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7일 사도광산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고 세계유산 등재로 결론을 내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1개 위원국의 전원 동의로 결정된다. 21개 위원국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포함돼 있다.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모든 관련 세계유산위원회 결정과 이와 관련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하며, 특히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을 포함한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도광산에 대한 한일 간 의견 차이를 원만히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본은 이미 모든 노동자들과 그들의 고된 작업 조건 및 고난을 설명하는 새로운 전시 자료와 해설 및 전시 시설을 현장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관건이었던 일제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역사 기술을 사도광산 현지에서 안내하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극적으로 등재가 이뤄졌다. 관건은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약속 이행 여부였다. 채택된 유네스코 결정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받거나 벌칙이 주어지지 않는다. 실제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시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된 역사를 알리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강제노동의 의미 등 ‘표현의 문제’를 다투기보다 일본 측의 실질적인 조치와 이행 여부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는 데 협상을 집중해 왔다.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한 데도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측 입장을 반영해 전시 시설을 마련했기 때문이란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사도광산 노동자들의 가혹한 역사 자료가 설치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 D전시실은 28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전시실에는 당시 한국인 노동자들이 어떤 과정으로 오게 되었고, 노동자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이들의 생활과 노동 환경이 얼마나 가혹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자료와 이를 설명한 패널 등이 일본어와 영어로 전시됐다. 다만 사도섬에서 치르기로 한 추도식에 어느 급의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할지는 미정이다. 일본 정부에선 추도식에 대한 자국 내 여론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될지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일은 올해 추도식 개최 일자와 장소를 일본 내에서 조율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후 사도광산 유족들에게도 협상 내용 등을 설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은 일본 정부와 비밀리에 진행돼 관련 내용이 유족들에게 우선 전달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유족들이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기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유구의) 핵심이었다”며 “그분들의 요구사항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17세기 세계 최대 금 산출량을 자랑하며 금의 채취에서 정련까지가 수작업으로 진행된 유례없는 광산이라고 강조한 뒤 세계유산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이 광산이 태평양전쟁 때 전쟁물자 확보처로 활용했고 전쟁 기간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고자 조선인을 대거 동원하며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부정적 과거를 피하고자 에도 시대에 한정해 추천하는 ‘꼼수’를 썼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 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지난달 6일 사도광산에 대해 보완 조치를 요구하며 보류를 권고하며 일본의 꼼수에 제동을 걸었다. 이코모스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추천할 때 시대적 배경을 에도 시대(1603~1867년)로 한정했기 때문에 그 이후 시기 관련 가치나 자산은 추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며 상업 채굴 재개 금지 등을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광업·채굴이 이뤄진 모든 시기를 통한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이력과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설명·전시 전략과 시설·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코모스의 판단은 세계유산위원회 심사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와 니가타현은 에도시대 이후 유산이 많이 모인 ‘기타자와 지구’ 등을 세계유산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다만 이곳은 사도광산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이 모여 있어 알맹이 빠진 유산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광산 관리업체인 골든사도는 상업적 채굴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또 다른 권고인 전체 역사를 알리는 방안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끝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며 버텼지만 결국 안내판 설치와 추도식 개최로 합의를 보면서 결국 한국 정부가 찬성으로 입장을 정하며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약속을 끝까지 지킬지 관심을 갖고 주시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당시 또 다른 강제동원 현장인 하시마(군함도) 관련 역사를 알리겠다고 일본 정부가 약속했지만 사실상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함도 현장에 강제동원 사실을 알리는 시설물도 없었을뿐더러 겨우 만들어진 도쿄 신주쿠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고 왜곡하는 전시물로만 꾸몄다. 사도광산·조선인강제노동 자료집 편찬 대표를 맡은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학 교수는 서울신문에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향토박물관뿐만 아니라 조선인 숙소가 있던 곳까지 안내판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응이 필요하다”며 “향후 역사 수정주의적 기술로 수정하지 않도록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선인 강제노역’ 日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조선인 강제노역’ 日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7일 일본이 신청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결정했다. 일본은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 등과 관련한 전시물을 이미 설치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일 간 큰 위기 현안을 밖으로 드러나는 충돌 없이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 해결한 것이 중요하다”면서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단 사실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WHC 발언문에서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할 것”이라며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 권고를 이행함에 있어 일본 정부는 그동안 WHC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명심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한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계속 개선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카노 대사는 약속 이행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설치했다고 강조했다. 향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도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추도식은 매년 7~8월 열릴 예정이며, 올해 추도식 개최 일자와 장소는 한국과 협의 중이다.
  • 한화오션, 조선업 호황에 적자 폭 줄었다…주가 6% 상승

    한화오션, 조선업 호황에 적자 폭 줄었다…주가 6% 상승

    HD현대가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2분기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낸 데 이어 한화오션은 적자 폭을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오션은 연결 기준 2분기 영업손실이 9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590억원) 대비 적자 폭이 줄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매출은 2조 536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9.3% 증가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조 8197억원, 433억원이다. 생산 일정 조정과 외주비 증가로 2분기 소폭 적자를 기록했지만 상반기만 놓고 보면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흑자로 돌아섰다. 한화오션은 ‘헤비테일’ 계약(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 방식에 따라 하반기에는 이전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매출 비중이 더 늘어나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봤다. 이날 한화오션 주가는 직전 거래일 대비 6.72% 오른 3만 950원에 마감했다. 한화오션은 현재 3년 치의 수주잔고(남은 건조량)를 확보하고 있다. 상반기 수주 실적은 LNG 운반선 16척, 원유 운반선 7척, 암모니아 운반선 2척, 가스 운반선 1척, 해양설비 1기 등 총 27척이다. 총금액은 53억 3000만 달러(약 7조 3800억원)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안정적인 인력 수급과 생산 효율을 위한 투자가 확대돼 생산 시스템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는 이날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 여천NCC 등 3개 계열사 대표이사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신임 대표에는 남정운 여천NCC 대표이사가 내정됐다. 남 내정자는 한화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사업부장 등을 역임하며 화학 사업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 신임 대표에는 홍정권 전략실장이 내정됐다. 홍 내정자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화그룹에서 제조, 연구개발(R&D)을 비롯해 사업기획, 전략, 인수합병(M&A) 등의 직무 경험을 쌓았다. 여천NCC 신임 대표에는 김명헌 한화임팩트 PTA 사업부장이 내정됐다. 한화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예년 대비 1개월 이상 빨라졌다”며 “선제적으로 내년도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사업계획을 실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일개 석주는 아무 힘 없어…성공은 하늘에 맡긴다” 폭탄 의거 독립운동가 나석주 편지 7점 첫 전시

    “일개 석주는 아무 힘 없어…성공은 하늘에 맡긴다” 폭탄 의거 독립운동가 나석주 편지 7점 첫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제79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나석주(1892~1926)의 편지 7점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다. 박물관은 26일 상설전시관 대한제국실에서 여는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전시에서 나석주가 김구(1876~1949)에게 쓴 편지 2점, 의열단 동지인 이승춘(이화익·1900~1978)에게 쓴 편지 4점, 황해관(황익수·1887~?)에게 쓴 편지 1점을 선보인다. 박물관 소장품인 편지들은 기존 연구 논문에서 내용이 소개된 적은 있으나 실물이 일반에 공개된 사례는 없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석주 의사의 의거 준비 과정과 ‘서른네 살을 일평생으로 마치길 작정’한 그의 결연한 각오를 확인할 수 있다. 나석주는 1921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에서 김구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의열단 투쟁에 가담했다. 1926년 12월 28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에 항거하는 뜻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 의거였다. 1925년 7월 28일 작성한 ‘폭탄 투척 의거 계획을 김구에게 알리는 편지’는 나석주가 서울에서의 폭탄 투척 의거 계획을 김구에게 알리고 의거에 대한 지지와 비밀 유지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황해도 출신인 나석주는 십 대 시절 황해도 지역에서 교육 활동을 펼치던 김구와 처음 만나 일생 인연을 이어갔다. 8월 4일 ‘폭탄 투척 대상을 정해 이승춘에게 알리는 편지’에선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 두 곳을 알린 뒤 “일개 석주는 아무 힘이 없으니까 정성껏 하기로 결심하고 성공, 성공하는 것은 하늘에 맡깁니다”고 적었다. 이어 8월 25일 편지에선 ‘중국에서 동분서주하다가 무심하게 죽기보다는 차라리 본국에 가서 몸값이나 하고 죽겠다’며 결연한 각오를 드러냈다. 이 외에도 그의 편지에는 폭탄과 권총을 구했다는 보고, 귀국 배편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 귀국 자금 부족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편지 7점의 전체 원문 사진과 풀어쓴 내용은 전시실에 비치된 태블릿 PC로 확인할 수 있다. 김재홍 관장은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바친 한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보물)도 대한제국실에 다시 한번 전시된다. 고종이 외교 고문이었던 미국인 오언 데니(1838~1900)에게 하사한 태극기이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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