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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책 어때요 / 계축일기

    작자 미상 / 조재현 옮김 서해문집 펴냄 ‘계축일기’는 왕위를 지키고자 친형을 죽이고 여덟살 난 어린 이복동생까지 죽인 광해군과 그 치하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산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나인들의 이야기다.조선시대 3대 궁중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계축일기’는 광해군 대와 조선중기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또한 모두 언문으로 씌어져 있어 조선중기 언어를 연구하는 데도 유용하다.‘이야기문학’을 강의하는 역자는 이 기사문(記事文·사실을 보고 들은 그대로 적은 글)을 현대감각에 맞게 새로 썼다.8500원.
  • [열린세상] ‘가축의 복지’와 경제성

    우리집 마당 한편에 지금은 창고로 쓰이는 닭장이 하나 있다.작고하신 장인이 생전에 얼마동안 닭을 키웠던 곳이다.침실과 거실의 두칸으로 나누어,우선 침실은 어둡게 벽을 치고 횃대를 놓았다.한구석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닭이 안심하고 달걀을 낳고 사람은 바깥에서 손만 넣으면 꺼낼 수 있도록 작은 문을 달았고,난방용으로 전구를 연결하기까지 했다. 거실 부분은 닭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입구 쪽에 물과 모이를 먹을 수 있는 식사대가 있고,닭들이 모래목욕을 즐기도록 모래사장을 마련하였다.과연 닭을 위한 호화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패스트푸드 체인 치킨점에 공급되는 닭 사육공장에서 일어나는 산란·부화·사육·도축과정의 비정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이렇게 해서 만든 닭고기가 얼마나 맛이 있을까,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가 개탄한 적도 있다. 돼지콜레라가 만연하여 전국의 수천 마리의 돼지들이 병들어 집단으로 살육되고 때로는 생매장 당하고 있다. 축산농가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엄청난 환경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전염병 방역체계에 문제가 있어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하지만 좁은 축사에 과밀하게 수용된 돼지들을 짧은 기간 내에 살찌게 하기 위해 정량보다 많은 사료를 먹이고 서로 몸을 부대끼며 지내게 하니 어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으며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과도한 욕심에 의하여 가축의 생활을 학대하고 생명을 약탈하는 태도를 바꿔,우리가 사육하는 동물들의 생활환경이 어느 정도 동물다운 삶이 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인간 이외의 모든 생물을 인간의 욕망과 목적에 이용되는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탈피해야 한다.이제 우리도 인간과 동물을 차별화하지 않고 평등한 윤리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생태 중심적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심층생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축을 인간과 완전히 동일시해 잡아먹지도 말자는 말은 아니다.가축들도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동일한 생명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비록 그들의 삶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삶이라도 가능한 한 그들의 생육환경에 적합한 환경에서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나아가 도축과정도 죽음의 공포를 덜 느끼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최근 외국에는 가축의 자란 환경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여 값에 차이를 두어 판매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품종별 혹은 부위별 등급과 아울러 자란 환경별 등급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면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육환경을 개선해도 경제적 채산이 맞을 것이다.인간 이외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사상은 우리 고유의 유기체적 세계관에도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 화엄불교의 창시자 의상대사는 티끌 속에도 우주가 있다(一微盡中含十方)고 하여 우주만물이 모두 하나임을 밝혔고,조선중기의 기철학자 화담 서경덕은 사람과 그 외의 사물은 자연의 일부로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상생적 관계임을 강조했다. 동물을 학대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게 한다면 인간과 우리의 생활환경에 나쁜 영향을 가져온다.집단적으로 과밀하게 사육하는 목장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분뇨쓰레기는 우리의 강산과 하천을 오염시킨다.이런 환경에서항생제가 가득 들어간 사료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고 자란 후에 공포 속에서 도살당한,지방으로 가득 찬 육류는 우리 건강에도 해롭다.비록 인간과는 똑같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생육환경을 배려하여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우리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간복지만을 위한 경제 우위의 가치관을 버리고,모든 생명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 규 목
  • [우리고장이 원조] 홍길동/강원 강릉시,전남 장성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 같은 사람’‘동사무소·면사무소의 서류작성 견본과 이름표 샘플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는 인물 홍길동…’ 아마도 이땅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걸음마 시절부터 평생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되는 이름이 홍길동일 것이다.그만큼 우리네 삶 속에 홍길동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의 출신지는 그의 화려한 명성만큼이나 지방자치단체들간에 논란이 뜨겁다.강원도 강릉시측은 소설 홍길동의 작가 허균이 자기네 고장 출신이라 당연히 강릉이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입장이다.반면 전남 장성군은 실존 인물이 자기네 지역에 살았다고 강하게 주장한다.신출귀몰하는 홍길동의 원조 논쟁을 들여다본다. ◈강원 강릉시 홍길동이 등장하는 소설 ‘홍길동전’이 강릉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더욱이 홍길동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조선중기의 혼란했던 사회상과 계급제도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개혁소설이라는 것도 아는 이가 드물다. 이같이 홍길동이 소설 속에서 태어난 강릉시 초당동 울창한 소나무숲에는 작가 허균(許筠,1569∼1618)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허균이 태어난 외갓집 애일당 터도 강릉시 사천면에 남아 지금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강릉시가 홍길동의 원조를 주장하는 대목이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에서 태어났고 작가 허균이 자신의 강릉 집에서 집필했으니 당연히 강릉시가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논리다.홍길동전은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개혁적인 성품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 관심을 더한다. 쇠락의 징조를 보이던 선조와 광해군 시대 조선중기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침울한 계급의 속박 속에 백성들의 불만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이러한 어지러운 사회를 홍길동이라는 신출귀몰한 주인공을 내세워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구성돼 있다. 허균의 성향도 개혁적이다.불과 아홉살에 시를 짓고 문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26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역모를 꾀한 죄인으로 몰려 50세에 처형당하는 비운의 생을 마쳤다. 사회제도의 모순과 정치적부패상을 질타하고,개혁을 주창하는 등 실천적 삶을 살다 정치적인 음해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개혁적인 정치사상가,국방 이론가,진보적 종교가,문학가 등 허균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그만큼 다양하다. 강릉시는 해마다 9월이면 허균과 누이동생 허난설헌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 백일장과 그림그리기 대회,시 낭송회 등 다채롭고 전통적인 문학 축제로 열리고 있다. 강릉에서 태어난 허균과 홍길동을 널리 알려 시민들에게는 전통문학의 고향이라는 긍지를 심어주고,외지인에게는 전통의 도시를 알리겠다는 복안이기도 하다.소설 속의 홍길동이 문화제를 통해 강릉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이유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kdaily.com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교산(蛟山) 허균 선생은 혼란한 선조∼광해군 때의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작가다. 나라 안에는 임진왜란을 치른 뒤 봉건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려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고,당쟁은 더욱 굳어져 파당을 이루던 시절을 살던 사람이다.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유교와 문장을 숭상하던 사회에 반기를 들고 당시 언문으로 천대받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인물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선생은 또 성리학의 이론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심취하며,학문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등 획일화된 당시 사회에서 여러 사상을 포용하는 넓은 안목을 지니기도 했다. 이같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강릉시는 4년전부터 지역문화의 계승,지역인물의 선양,지역정신의 창조라는 목표 아래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해마다 9월 중순쯤 여는 문화제는 허균선생 추모제를 비롯해 홍길동 만화그리기,홍길동 창작 탈 만들기,(관노)탈춤추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강릉시를 대표하는 문학인과 작품 홍길동전을 위해 강릉시는 캐릭터를 만들어 활용하고 학자 중심으로 허균·허난설헌 선양회를 구성해 지역문화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이 지난 97년부터 뭇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성군은 그 해 강릉에서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의 고향임을 내세워 연고권을 선언하자 즉각 반격했다.마침 서울방송에서도 드라마 ‘홍길동’을 방영하면서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한다는 소식에 장성주민들이 방송국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2000년에는 연극인 윤모씨가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만화영화를 극장용으로 상영하면서 ‘홍길동’을 상표(15개)로 등록하자 취소 소송을 내는 등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치달았다.이제는 장성군이 홍길동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자로 인정받고 있다. 내친김에 장성군은 97년 연세대 국학원에 용역조사를 맡겨 홍길동에 대한 체계적인 고증작업을 마쳤다. 이 조사에서 홍길동은 1446년(세종)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이곳으로 낙향한 벼슬아치 홍상직과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길동은 세조 때 서자의 관리등용을 금지한 경국대전 반포를 기화로 집을 뛰쳐 나온다.이후 월출산(영암)을 근거지로 해 토호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주는 의적으로 통했다. 이후 연산군 때까지 영광 다경포(법성포)와 충남 공주무성산 등지에서 활동하다 1500년(연산 6년)에 의금부에 체포되고 이듬해 일본으로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적잖다.조선 중기에 요즘의 잡지책으로 보이는 ‘증보 해동이적(황윤석)’에는 ‘조선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 홍일동의 배다른 동생이다.홍일동은 장성 아차곡 사람이다.’고 적혀 있다. 장성군은 그동안 홍길동 캐릭터 160여종을 개발,지역 특산품 등에 사용하고 있다.기업체에 캐릭터 사용권을 팔아 1억 2600만원을 벌었다.해마다 5월5일에는 홍길동 축제를 열고 있고 올해가 다섯번째다. 또 390억원을 들여 99년부터 홍길동 생가터에다 홍길동 주제공원을 만들고 있다. 군 문화관광과 문화개발팀 박상균(50)씨는 “지난해 발굴 고증을 거쳐 홍길동 생가를 복원해 조선 초기 서민들의 생활도구를 진열하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kdaily.com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장성에는 예로부터 ‘홍길동이 장성 사람’이라는 전설이 서너개 있었다.내용인즉 황룡면 아치실에 가면 홍길동 생가터가 있고,그 아래쪽에 길동샘이 있다거나 장성에 사는 양반이 용꿈을 꾼 뒤 노비와 관계해 길동을 낳았다는 것 등이다. 86년 장성군 문화원이 펴낸 ‘문화원보’에 홍길동이 장성사람임을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글을 처음으로 기고해 관심을 모았다. 실존인물 홍길동이 연산군 때 화적이라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다섯 차례나 나온다.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이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썼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왜냐하면 소설속의 홍길동과 실존 인물의 행적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허균의 행적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연산군 때 전북 부안에서 세미 징수관을 했고,전북 함열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장성과 이웃하는 전남 담양 창평에서 살았다는 기록들이 있다. 개혁 사상가로 반골기질이던 허균이 홍길동의 전설을 소재로 해서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지 않았을까.
  • 문화재 안내판사업 85억 낭비

    정부가 85억원의 예산을 책정,지난 99년부터 시작한 ‘문화재 안내판 개선사업’이 겉치레식 작업으로 예산만 낭비할형편에 처했다. 30일 감사원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최근 경남을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가 보고한 안내판 개선문안 5,021건을 검수하면서 전문가 자문을 구하지 않고 일반직 공무원 1명에게 맡겨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상당수 지자체의 경우 용역과정에서 어문·국문학자를 배제한 채 고고·미술학 전문가 의견만을 물어 문장 순화는 고사하고 역사적 고찰만을 다시 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사업은 2003년까지 5년 동안 지방비·국비를 투입,전통문화재 안내판 5,710개를 정비하는 관광인프라 구축사업이다.다음은 감사원이 해당기관에 통보한 16건 중 주요 지적사례다. [문장 잘못으로 내용파악 안된다] 유형문화재인 충북 보은의 법주사 ‘자정국존비’ 안내판은 총체적인 잘못을 드러낸예다. ‘이 비는 …화강암 비신을 끼워 조성한 것으로 자정국존도 고승이지만,고려시대 만든 역사성과 비의 형태가 희귀한 문화재이다’는문장의 앞뒤 연결이 제대로 안돼 의미 파악이어렵다.‘…조성한 것으로 이같은 형태의 비는 희귀하고 자정국존은 고려시대의 고승이다’로 고치는 것이 알맞다. 보물로 지정된 충남 부여의 ‘능산리 사지’는 ‘강당터는길이가 37m나 되는 매우 큰 건물이며…’으로 표기,강당터가 어느새 건물로 둔갑해 버렸다.또 속리산 사실기비(유형문화재)는 ‘당시 지식인들이 숭명사대의 명분으로 불교의 억압을 의미하는 내용임을 알게 한다’는 사소한 것이지만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잘못돼 있다. [전문 용어가 많다] 전문 용어,어려운 한자어,오자,띄어쓰기의 잘못은 부지기수였다.유형문화재인 보은 원정리 ‘삼층석탑’의 ‘이 탑은 시라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는 ‘이 탑은 사리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로 바꿔야 한다.‘사리’를 ‘시라’로 잘못 써 마치 ‘시라 양식’이 있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기념물인 보은의 고봉정사 안내판의 ‘…위에 신원되고 여의 정에 추증되었다’는 ‘…뒤에 신원되고 우의정에추증되었다’의 잘못된 표기로,오자와 띄어쓰기가 큰 혼란을 주고있다.‘억울한 죄를 푼다’는 신원과 ‘죽은 뒤 직위를 높여 주는’ 추증(追贈)의 뜻은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없는 단어다. 문화재 자료인 부여의 ‘민입암집 판각’의 안내문은 ‘민조선중기 문신 입암 민제인의 문집.크기는 반각이 21.5㎝×17㎝이며…’으로 적시하고 있다.그러나 덤으로 들어간 ‘민’자와 조어인 ‘반곽’으로 인해 뜻의 파악이 무척 어렵다. 또 사적 및 명승지인 부여 ‘구두래’ 지명을 ‘구드래’로버젓이 적어놓아 공직자들의 무성의를 그대로 드러냈다. 보조설명을 붙여야만 이해할 수 있는 전문단어와 옛 단어도 많았다.문화재 자료인 부여박물관 석탑의 경우 ‘장주’ ‘우주’ ‘면석’ ‘풍탁’ ‘복발’ 등 한글로는 의미파악이 어려운 단어들이다.보물인 보광사 원명국사비의 ‘중창’‘보상화문’,사적인 부소산성 ‘장대’ ‘군창’ 등도 보충설명이 없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정기홍기자 hong@
  • 국보급 문화재 대규모 밀매

    사찰주지와 병원 간부,현직 경찰관 등이 포함된 사상 최대규모의 문화재 절도·밀매단이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은 이들로부터 국보급 문화재인 용비어천가 진본(조선중기 간행본) 등 문화재 1,000여점을 회수,출처와 유통경로를 캐고 있다. 서울지검 형사7부(부장 李翰成)는 24일 전국의 사찰 등지에서 해인사 중수발원문 등 희귀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훔치거나 훔친 문화재를 수집해온 문화재 밀매단 36명을 적발,문화재 전문절도범 추모씨(61)와 전 고미술협회장 공모씨(53) 등 24명을 문화재보호법 및 장물취득 등 혐의로 구속했다. 또 대구 K병원 의사 김모씨(51) 등 8명을 불구속기소하는한편,조모씨(60·전 부산 고미술협회장) 등 4명을 수배했다. 추씨 등 절도범들은 98년 7월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명부전에서 현직 경찰관인 손모씨(40·경사·구속)가 망을 보는가운데 보물급 문화재인 ‘능엄경언해활자본’ 7점을 훔치는 등 전국의 유명 사찰,사당,서원 등을 돌며 불상 안에 보관돼 있는 ‘복장(伏藏)유물’ 등 희귀 문화재 수백점을 훔친 혐의를 받고있다. 서울 인사동의 화랑 대표인 공씨는 지난해 8월 서모씨(39·구속기소) 등 전문절도범들이 충남 논산 익안대군(조선태조의 셋째아들) 사당에서 훔친 익안대군 영정을 4,500만원에 사들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전국 주요 도시의 화랑 및 골동품점 대표와 의사는물론 전북 완주 송광사 주지 한모씨(46·법명 지원·구속)등 일부 승려도 도난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로부터 회수한 문화재 가운데는 용비어천가 진본,익안대군 영정,능엄경언해본 외에 해인사 판당고 중수발원문,묘법연화경(천태종 근본경전),대반야바라밀경(보물급 불경),적계공신 장말손의 상훈교서(보물 604호)와 유품 패도(보물881호) 등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 밀매단은 훔친 문화재를 전시회 등의 명목으로 일본으로밀반출한 뒤 일본에서 정상구입한 것처럼 재반입하는 ‘문화재 세탁’ 수법까지 동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홍환 장택동기자 stinger@
  • 김동욱교수 내일 LA서 심포지엄

    천문현상은 주자로 대표되는 중국 송대 유학자들에게 중요한 학문적 대상이었다고 한다.물론 천체를 관측해서 순환의 법칙 등을 규명해보려고 그런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우주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의 본성을 키워나가야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가 관심사였다. 성리학에 절대적 가치를 두던 조선시대 선비들도 마찬가지였다.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1554∼1637)은 정치적 혼란기에 일생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지냈다.17세기 초 경상도 한외진 곳에 은거지를 얻었다.입암(立巖)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 곳이다. 여헌은 은거지를 정하고는 집터와 주변 산과 시내,골짜기 28곳에 이름을 지었다.입암 초입은 은거자를 부른다는 뜻으로초은(招隱),연못은 귀를 씻는다는 뜻으로 세이담(洗耳潭)하는 식이다. 그리곤 입암을 북극성에,주변 28곳은 28성좌에 견주었다.입암 옆 평평한 바위 계구대(戒懼臺)는 28성좌의 첫번째인 각수(角宿),입암 곁에 서 있는 일곱개의 돌 상두석(象斗石)은북두칠성으로 삼았다.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김동욱 경기대교수(한국건축사)가 의미를 찾는 작업을 했다.‘조선중기 은거선비의 집터와 별자리의 관계’라는 논문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하여 미국로스앤젤레스 카운티박물관에서 16∼18일 열리는 ‘한국미술사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김교수에 따르면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은거지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비유했다.그 과정에서 고유한 건축 및 자연관이싹텄다.여헌이 은거지를 별자리에 비유한 것도 이런 다양한해석의 하나라는 것이다. 28성좌(宿)는 고대 중국의 별자리 개념이다.별자리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여헌이 입암 주변 28곳을 28성좌에 견준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여헌은별자리에 대비시켜 이름을 짓고 의미를 찾았지만,관념적인숫자와 상대적인 위치관계에 머물렀고,실제 별자리 위치를자연 지형에 대비시킨 것은 아니었다.별자리 이름붙이기는초야에 묻혀사는 성리학자의 관념적 유희에 불과했을까. 김교수는 여헌의 작업을 자신의 거처를 우주의 중심으로 바라보는 존재에 대한 자신감의 산물로 보았다.나아가 황폐한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여 삶의 터전으로 가꾸는 긍정적인결과를 낳았다.조선 중기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학문적 자신감을 바탕으로,생활터전을 적극 경영한 성과였다는 것이다. 입암촌은 경북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에 있다.입암과 주변 경관은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여헌이 이름지은 28곳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마을은 교육열이 높아 이름난 학자나 문필가도 상당수 배출됐다고 한다.하늘의 별자리를 자신이 사는마을에 재현코자 했던 한 유학자의 꿈이 마을을 번영으로 이끈 힘으로 작용한 셈이다. 더불어 현실세계에서 종종 쓰잘 데 없는 것으로 치부되곤하는 성리학적 관념세계가,실천이 뒷받침될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여헌과 입암촌의 관계는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3월의 문화인물 성리학자 강항

    ‘3월의 문화인물’에 조선중기 문인으로 일본에 성리학을전한 수은 강항(睡隱 姜沆·1567∼1618)이 선정됐다.강항은정유재란때 왜군에 포로가 된 뒤 승려 후지하라 세이카(藤原惺窩)를 통하여 성리학을 전파,일본이 문예중흥기를 여는 단초를 제공했다.일본의 지리와 풍물,군사시설 등을 적은 장문의 보고서 ‘적중봉소(賊中封疎)’를 선조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는 전남 영광군 불갑면 유봉리에서 강극검(姜克儉)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놀라운 문재(文才)를 보였다. 27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31살때 분호조청(分戶曹廳)의 종사관으로 군량을 모으다 고향 앞바다 논잠포에서 왜 수군에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3년 동안의 억류생활 끝에 귀향한뒤에는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나머지생을 보냈다. 문화관광부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광문화원및 영광내산서원보존회와 함께 일본유적지 답사기행과 국제학술대회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 정절과 로맨스 그 경계선은

    여러 모로 대조적인 사랑 소설 두 권이 주목된다. 59년생의 남성 작가인 원재길의 ‘적들의 사랑이야기’(민음사)는 제목에 사랑이란 말을 버젓이 담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이야기,사랑 소설은 아니다.주인공이 각기 다른 5편의 남녀 사랑담을묶었는데 배경이 첫번째 이야기는 석기시대, 두번째는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이고 마지막 다섯번째는 조선중기에서 현대에 이른다.각편의주인공은 변하지 않는 반면 각 작품의 시간대는 몇세대,몇백년에 걸쳐 있다.짐작할 수 있듯 환상적 시공간을 가진 사랑에 관한 우화들이다.우리 나라의 역사,특히 수많은 외국침략 전쟁이 이야기의 자잘한매듭으로 꼼꼼이 언급되는데 작가는 주인공들의 사랑에서 파생된 갈등을 외부로 확장한 비유라고 설명한다.이야기가 되는 사랑인 만큼직선으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하나도 없고 모두 난관과 곡절투성이다.작가는 이 소설의 큰 테마가 ‘정절’이라고 하지만 이야기가 워낙 천방지축으로 진행되는 통에 그렇게 가닥잡기가 쉽지 않다. 우리 역사를 뜀틀삼아 사랑의 신화적 원형같은 것을 그려 보고자 했으나 가끔 만화적 수준으로 떨어지곤 한다. 한편 64년생의 여성 작가 송은일의 ‘불꽃섬’(문이당)은 그야말로인물들의 심리적 통로와 영역이 협소하고 빡빡한 사랑소설이다.너무인형놀이 같아서 작금의 찰나적 사랑과 대비되는 ‘진중한’ 사랑을그리고자 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다.그러나 아무리 흔해도 많은 독자들이 서둘러 찾는 사랑 소설로서의 통속적인 로맨스를 구축하고 있다. 김재영기자
  • “처가살이가 한민족 전통풍속이죠”

    만세삼창,삼신할미,삼세번 등등 우리민족은 왜 3이란 숫자에 집착할까.서양식 결혼식 뒤에도 예외없이 폐백을 드리는 풍경은 미풍양속일까 꼴불견일까. 평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정색하고 따져보면 궁금증을 자극하는 일들이다. EBS ‘김홍경이 말하는 동양의학’ 후속으로 29일부터 방송되는 ‘주강현의 우리문화’(오후10시50분)는 이러한 생활속 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겠다고 나선다. 강의를 맡은 주강현씨(45)는 인문학 스테디셀러인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외에도 ‘굿의 사회학’‘북한의 우리식 문화’‘조기에 관한명상’등 20여권의 책을 펴낸 역사·민속학자. “민속학은 그저 먼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해하고 사회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죠” 결코 고리타분한학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걸쭉하게 뱉어내는 그의 강의는 ‘개혁적’이기까지하다. 예를 들자면 처가살이에 대한 그의 지론이 그렇다.“시집살이가 수천년 이어진 우리 풍습인줄 잘못 알고 있는데 조선중기 이후 300년밖에안 됐어요.한민족의 결혼 전통은 본래 처가살이였습니다.”머리속 지식에만 그치지 않는다.사정상 처가살이를 하는 후배가 마음고생하는 것을 보고 그는 오히려 “미풍양속을 잘 이행하는 것”이라고 칭찬해 주었다고 한다. 때로는 파격적인 주장도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다.20여년동안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또는 역사문헌을 헤집어 모은 자료들을 어김없이 증거물로 내세운다. 이번 TV강의에서는 슬라이드를 적극 활용할 작정이다.시베리아 몽고오키나와까지 드나든 덕에 찍어놓은 슬라이드만 해도 15만장.보이는것만을 믿는 세태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귀중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녹화할 때였어요.조선시대 여인네들이 가슴은 훤히 드러내도 배꼽만은 가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방청객들이 믿지 않더군요.슬라이드를 보여줬더니 그제서 놀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라구요.”첫번째로 잡은 주제는 ‘열녀전 끼고 서방질한다?’.유교문화에서 비롯된 성문화의 내숭을 도마에 올렸다.‘성과 반란의 미학’‘배꼽문화와 혁명’도 차례로 다룬다. “서양사상으로는 절대 답이 나오지 않지만 우리사회에 내재한 민속적 뿌리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주씨의 공식직함은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이전 문화관광부 문화재 전문위원.요즘 그는 경기도 일산 정발산 자락에 우리민속문화연구소 완공을 앞두고 분주한나날을 보내고 있다. 허윤주기자 rara@
  • 美 한국학교수 마크 피터슨 ‘가을 펠로우십’ 참가차 내한

    “한국의 여성운동가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평등 법규나 사례 등을 열심히 연구하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300∼400년전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구 어느 나라보다 발전된 남녀평등국가가 있습니다”국정홍보처와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15∼26일 공동 개최한 ‘2000 가을 펠로우십’ 참가차 내한한 마크 피터슨(54) 미국 브리검영 대학한국학 교수는 한국에서 15년이나 산 ‘한국통’.우리말을 워낙 잘해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느낌의 그는 한문 실력도 수준급이다. 65년 모르몬교(공식명칭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 선교사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버드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지난 96년 펴낸 ‘유교사회의 창출-조선중기 입양제와상속제의 변화’는 해외의 우수한 한국학 연구서에 주어지는 연암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 널리 퍼진 남존여비,남아선호사상이 유교에 기인했다는 말은 틀립니다.유교가 지배적이던 조선초기만 해도 딸도 똑같이 유산을상속받고,아들들과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문헌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17세기무렵 토지 등 생산수단이 부족해지면서 재산분쟁이 사회문제화되었고, 결국 유교사상을 남자들의 편의에 맞게 ‘조작’해 장자에게유산을 몰아주고 딸은 출가외인으로 홀대하는 풍조가 생겨났다는 게그의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없던 수양자 제도가 일반화됐다는 것. 그는 지금 한국에서 성행하는 여아 낙태와 성비 파괴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5,000년 역사상 여권(女權)이 이렇게 땅에 떨어진 것이 300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또 아들만을 집안의 가장으로 못박는 한국의 호주제 역시 유림측이 주장하는 한민족의 미풍양속과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피터슨 교수는 그러나 얼마전 한국에서 출간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종류의 책에는 동의하지 않는단다. “제가 싫어하는 것은 뒤틀린 유교일뿐,인의와 효를 중시하는 참다운유교정신은 누구보다 좋아합니다”라며 초기의 자유로운 유교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간곡히 제안했다. 허윤주기자 rara@
  • 인사아트센터 ‘전병현 오색’展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넘나드는 색의 향연.’ 대한민국 미술대전 1회(1982) 대상과 2회 우수상을 연거푸 받으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서양화가 전병현(43)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 마련된 ‘전병현 오색(五色)’전에서는 깊고 아늑한 색채예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조선선비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백색을 주조로 하되,고려시대 불교미술품에 많이 쓰인 오방색(五方色)을 곁들여 조화를 꾀한다.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 등 다섯 방향을 나타내는 색깔로 청·백·적·흑·황이 그것이다.백색과 흑색,적색은 재앙과 악귀를 막는 주술적인 색이며,황색은 제왕 혹은 중앙을 상징하고 청색은 희망과 젊음의 상징으로 쓰이는 등 우리 민족의 풍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작가는 “잇꽃으로 물들인 어머니의 낡은 저고리에서 암시를 얻어 자신의 색을 찾아나서게 됐다”고 밝힌다. 전병현의 작업은 일반적인 서양화 기법과는 전혀 다르다.보통의 서양화가 캔버스에 색을 꾸준히 입혀가는 과정이라면,그의 기법은 거꾸로 색깔을 계속 벗겨냄으로써 그윽하고 빛 바랜 듯한 색을 찾아가는것이다.이번에 출품된 40여점의 ‘적(積)’시리즈는 이러한 작품경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하얀 돌가루를 사용해 조선백자 같은 은은한 빛의 효과를 냈다.조선시대에 흰색은 조선중기의 문인 박수량의 예에서 보듯 묘비를 백비(白碑)로 남길 만큼 숭상되던 색이다.조선 선비들은 백색을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았다.작가는 이러한 백색의 도저한 정신성을 작품에 담는 데 힘썼다.그런 만큼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8년동안 프랑스에 머물며 서양미술의 세례를 받은 작가가 주인공이란 점에서 이 전시는 한층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리움의 미학’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전병현의 작업은 한국화의 정신적 뿌리를 캐는 일과 통한다.전시는 10월 1일까지. 김종면기자
  • 이성무씨 ‘조선시대 당쟁사’

    박정희 전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시절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당쟁)을 두고 “세계에서도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그는 “말(言)로는 머리를 가고 행실은 끄트머리를 가면서,거기다가 시비와 패거리라면 창자를 움켜쥐고 달려들었던” 조선조 양반정치 세력의 타도를 ‘혁명’의 명분으로 내걸었다.즉조선조 양반정치-한민당-자유당-민주당 계열로 이어지는 봉건정치 세력을 애국적 엘리트로 물갈이한 것이 바로 5·16이라고 자찬한 것이다. 박정희의 당쟁에 대한 이같은 역사인식은 올바른 것일까.결론부터 말해 ‘당쟁망국론’‘양반망국론’등은 모두 일제 어용학자들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주장들로,박정희는 일제교육 탓에 역사인식이 왜곡돼 있던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63)이 출간한 ‘조선시대 당쟁사 1·2’(동방미디어 펴냄)는 조선중기 이후의 당쟁사를 통사식으로 엮은 것으로 그동안국사학계에서 이룩한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특히이 책은 일제시대 이래형성된 당쟁사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동시에 당쟁이 조선시대 정치형태의 하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다시말해 저자는 당쟁이 우리민족의 분열적·고질적인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식민시대 관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조선시대 문치주의에 입각한 사림(士林)정치의 한 형태가 당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또 “당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싸움을 위한 싸움’만은 아니었다”며 그동안 부정적인 측면에 가려왔던 당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거론하고 있다.조선시대의 당쟁은 문치주의에서 파생된 권력투쟁의 한 형태로서나름대로 의리와 원칙이 있었고,게임의 룰이 있었다는 것이다.특히 정치에서의 명분과 도덕성 강조 및 부정부패에 대한 상호견제 등은 오늘날 정당·정파간의 싸움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저자는 문치주의의 만연으로 인한 국방력 저하,장기간 지속된 파벌형성,소모적인 정쟁으로 인한 국력낭비와 비효율 등 당쟁의 부정적 요인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당쟁사가 이처럼 왜곡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 관학자들로부터다.일제의 해외 식민지 교육에 깊이 관여했던 시데하라 히로시는 1907년 출간한 ‘한국정쟁지’에서 당쟁의 원인을 “개인간의 감정대립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으며 조선경제사를 연구한 가와이 히로다미는 “경제생활의 곤란·사회제도의문란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가와이의 견해는 호소이 하지메에게 계승됐는데 호소이는 한국인의 선천적 ‘민족성’에서 당쟁의 원인을 찾았다. 당쟁이 한민족의 민족성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은 미지나 쇼에이·시카다 히로시에 이르러 한층 심화되었다.한국 고대사에 밝았던 미지나는 ‘지리적 결정론’에 근거를 둔 한국사의 반도적 성격론을 주장하였다.이는 민족성론에의거한 당파성론의 극치인 셈이다.시카다는 “파벌성이 조선민족의 특성”이라고 보았다. 한편 조선후기 당쟁에 대한 국내 실학자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관직수는 적은데 차지하려는 사람이 많은 탓”(이익),“문벌의 폐해와 주론자의여론조작 때문”(유수원),“서원(書院)때문”(박제형)등이다. 그러나 광복후에는 당쟁을 ‘중앙집권적 문치주의의 부산물’로 평가하기시작하면서 당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정착되고 있다.이태진은 ‘당쟁’이란 용어 대신 ‘붕당정치’로 고쳐써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당쟁의 긍정적인측면도 강조한 바 있다. 일반대중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조선시대 당쟁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사림·세도정치,탕평책 등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으로 답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4월의 문화인물 성리학자 서경덕

    ‘4월의 문화인물’은 조선중기 유학자로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선구자이자,황진이·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한 화담 서경덕(花潭徐敬德,1489∼1546)선생이다. 서화담은 자연 속에 보이는 많은 수학적 질서에 주목하여 우주의 생성과 변화가 모두 어떤 수학적 질서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어,그 이치를 알아내려고 힘쓴 자연철학자였다. 화담은 성리학이 이(理)와 기(氣)를 기본으로 삼았음에도 기(氣)야 말로 가장 중심됨을 강조하여 조선의 주기설(主氣說)을 창시했으며,그의 주기적(主氣的)태도는 이율곡(李栗谷)을 거쳐 홍대용(洪大容)과 최한기(崔漢綺)등 실학파에 의해 발전됐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자체는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지나지 않으며 새가 매일 조금씩 높이 날아오르는 이치도 기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문화관광부는 서화담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한국과학문화재단과 협조하여 기념책자를 발간하는 등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김탁환 장편 ‘허균, 최후의 19일’

    허균(許筠·1569∼1618)은 최초의 한글소설‘홍길동전’을 쓴 작가다.그 허균이 이번에는 거꾸로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그는 잘 알려진대로 시인·문장가이자 반항아로 팔도를 주름잡았으며,말년에는 정치권의 중심부까지 진출했으나 반역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붙잡힌지 아흐레만에 능지처참당했다. 김탁환(31)의 장편소설‘허균,최후의 19일’(푸른숲,전 2권)은 제목 그대로 허균의 ‘반역’에서 ‘능지처참’까지의 최후를 중심으로 한다. 김탁환은“한 인간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는가만 보면 그 앞의 생애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면서 “어떻게 사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허균의 최후는 당대 권력자인 이이첨과 야합하여 북인정권을 이끌다 불화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견해와 정권에 참여한 뒤에도 여전히 혁명을 꿈꾸다 거사계획이 발각되는 바람에 처형됐다는 견해로 갈리고 있다”면서“개인적으로 혁명가로서의 허균을 다루어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허균은 천재가 될 수 밖에 없는내력을 갖고 있었다”고 단언했다.아버지 허엽이 화담 서경덕의 제자이자 서산대사의 친구였던 만큼 허균은 화담의 주기론적 철학과 불교를 전수받았다.여기에 허균의 스승 서애 유성룡은이황의 제자였던 만큼 퇴계철학도 흡수할 수 있었다.한마디로 한 시대 가장높은 수준의 지적 축적이 가능했다.그러나 당대의 엘리트로 일찍부터 탄탄대로를 걸을 수도 있었는데도 30대를 방황과 기행으로 일관한 것은 20대에 겪은 임진왜란 때 아내와 아들을 잃고 당시의 ‘국가체제’를 회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김탁환은“허균의 사회개혁은 ‘임금만 바꾸면 나라가 달라질 수 있다’는인조반정의 정신이 아니라 ‘임금만 바꾸어서는 소용없다’는 근본적인 고민이었다”면서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요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오늘날 허균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허균,…’은 김탁환이 구상하고 있는 ‘조선중기 비극 3부작’의 제2편에해당한다.이순신을 다루었던 ‘불멸’이 제1편이라면,제3편은 임경업을 쓰기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김탁환은 “강하게 인생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소설을 쓰려고 한다”면서“한 인간이 자신의 조건 속에서 체제와 맞서 최선을 다해 싸우다 장렬하게패배하는 제대로 된 비극을 한번 쓰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서동철기자
  • 한영우 서울대교수 등 3인 ‘우리 옛지도와‘ 공저

    역사가 문화를 시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 지리와 지도는 그 문화를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특히 지도는 지형과 유형문화재를 총체적으로,그리고 회화기법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시각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런 의미에서 선조들의 지리관과 우주관,나아가 위정자의 통치철학이 깃들어 있는 옛지도를 접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역임한한영우 서울대교수 등 3명의 지도 전문가가 쓴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효형출판)은 우리의 옛지도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영우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된 옛지도의 자료를 통해 삼국시대에서부터 19세기 ‘대동여지도’와 대원군 때의 지도에 이르기까지 옛지도의 발달과정을 거시적으로 개관한다.지도의 변천과정과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 이에 투영된 선인들의 세계관과 사회적 동인(動因)을 알려준다. 특히 책은 올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정상기의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일명 조선전도)를 자세하게 다룬다.‘한국본여지도’편에서는 국보급 고도서(古圖書)인 ‘한국여지도’의 제작 경위와 지도의 특징 등을 설명한다. 서울대 안휘준 교수는 옛지도에서 나타난 회화적 특성에 주목한다.지도 제작에 참여한 화원(畵員)들의 시각과 기법을 소개하고,이것이 한국 회화사의흐름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그는 도면식 지도에 그려진 바다의 수파묘(水波描)는 18세기에 푸른색으로바뀌게 되고 색채의 화려함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밝힌다. 또 회화식 지도의 회화는 산수화의 시대적 변천과 맥을 같이 하며,조선중기의 절파계 화풍 및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풍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청운대 배우성교수는 옛지도에서 엿볼 수 있는 조상들의 국토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다.독특한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의 실체를 밝히면서이는 중화(中華)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한 교수는 “옛지도는 도형으로 된 현대 지도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색다른 묘미가 곳곳에서 스며 있다”면서 “우리 옛지도는 특히 다른 나라의것에 비해 예술적일뿐 아니라 제작기술의 우수성 또한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값 2만원. 한편 효형출판사는 규장각과 함께 옛지도를 소재로 한 2000년도 달력 ‘우리 옛지도의 아름다움’도 발행했다. 정기홍기자 hong@
  • 이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실체 찾기

    이정우씨 '인간의 얼굴'서 구체적 방법 제시70·80년대는 모든 것이 분명했다.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대체로 눈에 보이던 시대였다.삶은 고단했지만 우리 뇌에는 끊임없는 문제의식이 꿈틀댔고,그것은 역사적 보편성을 토대로한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90년대는 그 이전과 많이 달랐다.고도의 소비문화가 춤을 추기 시작했고 대중의 관심은 스포츠 연예에 쏠렸다.성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고 사이버 만능 풍조가 사회를 덮었다.‘인간복제’란 말까지 자연스럽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그러면서 한때 뜨거웠던 열정과 희망은 초라해졌고 진실을 찾고자 하던 꿈도 실종되어 갔다.그것은 시대적 단절이었다.그리고 그 단절과함께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사람들의 정체성은 해체되어 갔다. 이정우의 ‘인간의 얼굴’(민음사 1만5,000원)은 바로 ‘정체성 상실의 시대’에 새로운 정체성,새로운 주체를 찾기 위한 탐색작업이다.정체성 상실의 원인을 역사학적으로 진단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그리고 그 작업을 해 나가야 할,즉 이 시대에 요청되는 지식인의 실체를 밝힌다. 저자에게 우리시대는 뿌리 없는 해체와 복고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시대다.즉 전통적 가치를 송두리 째 폐기하고 뒤늦게 그것을 다시 그리워하며 동요하는,얽히고 설킨 시대다.그는 이 원인을 우리의 현대가 과거로부터 연속선 위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급격한 카타스트로피에 의해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본다.즉 조선중기 이후 자생적인 근대화 과정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일본과 서구를 통해 들이닥쳐 형성된 타생적 근대성만이 최고의 선으로 대접받아 왔다는 것이다.그런데 서구적 근대성의 한계가 드러난 지금 우리는 바로 ‘탈주’와 ‘회귀’의 혼돈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생적 근대성의 가능성을 보였던 다산 정약용의 근대사상이 단절된 것을 아쉬워한다.다산은 소작농 유민의 증가,서얼(庶孼)과 중인들의 권리 주장,지방유림과 관료의 정부와의 대립 등을 사상적으로 포착했으며 개념화했다.그리고 전통사회의 완전한 폐지나 서구적 근대성을 주창하기보다는 전통적 사유에 기반해 기존사회의 개혁을 꾀했다.다산은 이렇게 전통적 가치와 연계해 근대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유 패러다임을 위해 중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저자는 다산이 했던 것처럼 우리시대의 사유가 현재,즉 90년대의 수많은 변화된 풍경들을 개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이 작업은 80년대의 시대적 고뇌와 근대 이후의 세계사적 흐름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바로 우리 시대,그리고 다가올 시대를 사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할 우리의 지식인 상황은 좋지 못하다.적어도 저자의눈에는 그렇게 비친다.그들은 지금 무조건적인 탈주를 외치며 우리를 무정부주의적인 혼란으로 몰아가거나,단순한 복고만을 강조하여 시대착오적인 고풍취미로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지식인은 어떤 사람들인가.그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개인적 욕망을 자제하고 어떤 보편적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해주는난로이며,어두운 동물의 세계를 면하게 해주는 등불과 같은 사람이다.이러한 지식인은 우리 대학에 있는 ‘전문가’가 아니다.그는 말하는 지식인이란한 개인의 내면적 속성이 아닌,사회적 행위를 이루는 특정한 양태를 말한다. 환경미화원이나 파출부도 사회를 가로지르는 특정의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지식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자기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사람들이란 새로운 개념의 ‘신지식인’은 ‘새로운 정체성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한 단계 격을 높여야 할 것 같다. 임창용 기자
  • 思夫曲/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지난해 미국의 대표적 여성기업인 브랜더 바네스 펩시콜라 북미지역 사장은 22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면서 ‘일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다’고 사임이유를 밝혔다. 펩시콜라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기업에다 그의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경영인이었으나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더 늦기전에 가족에게 돌아간다’고 선언했다. 가정은 이처럼 소중하다.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서의 최상의 목표인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 가정은 어떤가.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인한 생활고로 가정내 폭력과 불화가 예사롭게 목격되는 요즘이다. 자식을 서로 맡지 않겠다는 부모들,나몰라라며 무작정 가출하는 실직 가장들,또 그런 남편을 상대로 이혼하자는 부인 등 사회복지 시설에는 고아아닌 고아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여성특별위원회가 조사한 ‘실직자 및 가족의 생활실태’에 따르면 남성실직자 5명 가운데 1명이 이혼·별거중이거나 이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초등학교 어린이가 ‘고아가 되기 싫어서’ 엄마의 시신옆에서 열흘 이상 지낸 이야기는 우리 가정의 정체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예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자식을 옆에 두고 죽어버리는 엄마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선지 조선중기의 한 여인이 남편이 요절하자 ‘가시는 길에 읽어보시라’며 관속에 넣었다는 ‘사부곡(思夫曲)’이 공개되어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병으로 죽게된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줄기를 엮어서 짚신을 삼아 천지신명께 빌고 ‘검은 머리가 희어지도록 함께 살지 못한 것’을 여인은 끝내 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가정은 전에는 남편이 병들면 아내가 남의 집 파출부로 일하면서 자식을 공부시키고 남편의 약값을 대고 시부모를 공양해왔다. 더구나 우리의 정서는 사회생활에서는 남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버림받는 일이 있어도 가족만은 굳건하게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자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들곁에 있어 주는 것이 부모이고 머리가 희어지도록 함께 가정을 이끌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부부다.인간의 삶의 진정한 행복은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400년전의 사부곡으로 가족의 결속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다짐해보자.
  • ‘나의 어머니,조선의 어머니’/박석무 편역·해설(서평)

    ◎위인을 만든 빛나는 모성애와 부덕 위인의 뒤에는 그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가 있게 마련이다.조선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에게는 높은 부덕을 지녔던 어머니 신사임당이 계셨고,불후의 고전소설 ‘구운몽’의 작자로 유명한 김만중에게는 어머니 해평 윤씨의 지극한 가르침이 있었다. 이처럼 세상을 빛낸 훌륭한 남성들 뒤에는 어김없이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으니,‘나의 어머니,조선의 어머니’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초기 김종직의 어머니에서부터 조선 말기 이건창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33인의 어머니를 골라 시대의 역순으로 배열,편집해놓았다.그야말로 전통적인 훌륭한 어머니들은 모두 수록해놓은 셈이다.그 속에는 율곡이나 김만중의 어머니는 물론,퇴계 이황의 어머니,실학자 안정복의 어머니,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인 갈암(葛菴) 이현일의 어머니 정일당(貞一堂) 장씨 등이 망라되어 있다. 편역자는 수많은 문헌을 뒤져 조선시대 훌륭한 어머니들에 대한 기록을 샅샅이 찾아내 유려하고도 알기 쉽게 번역해 놓았다.뿐만 아니라 매 인물마다 해설을 달아놓아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유려한 번역과 자상한 해설은 한학(漢學)에 깊은 조예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그 때문에 이 책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있다.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깊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오히려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깊은 감동을 받을 수있다.특히 자식을 둔 어머니들에게 일독(一讀)이 필요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끝으로 ‘나의 어머니,조선의 어머니’에 실려 있는 내용 가운데 한두 가지만 소개한다.다음은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부인은 마땅히 검소한 것으로 남편을 도와야 하고 세상의 화려하고 사치한 풍속은 삼가고 본받지 말아야 한다”.새겨들을만한 말이다. 한편 이조판서를 지낸 이명한의 어머니 안동 권씨는 병자호란 때 자식들이 모시고 피하려 하자 “우리 집안이 나라의 대족(大族)인데 먼저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마다하였다.숙연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대제학을 지낸 오도일의 어머니는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는데,다음과 같은 시를 지은 바 있다.‘곡식값이 급값처럼 비싸구나/불쌍한 백성들 누구에게 의지하리/벼슬하는 선비들 조정에 그득하나/시국 풀 재주는 왜 그리 부족한가/어리석은 아낙네 헤아림이 어긋나/백성을 편안히 할 계책 알지 못하네/깊은 밤에 이런 생각 하다 보면/탄식하다 괜스레 울음소리 삼킨다네’.세상을 근심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높은 뜻을 읽을 수 있다.어려움에 처한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 아닐 수없다.
  • ‘한국사 이야기’ 1차분 4권/한길사­이이화씨 기획

    ◎우리 민족의 뿌리는? 北國 발해는?/객관적 시각의 한국通史/매년 4권씩 총 24권 발간/2003년까지 완간 계획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낸 재야 사학자 이이화씨(61)가 5,000년 우리 역사를 24권의 책에 담는 방대한 통사 저술의 첫 결실로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1차분을 내놓았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삼국의 세력다툼과 중국과의 전쟁’‘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등 네 권. 모두 우리 역사의 시원과 틀이 형성되어 가는 고대사 부분에 해당한다. 지난 94년 한길사측과 이씨가 10년 프로그램으로 공동기획한 ‘한국사 이야기’는 우리 역사 전체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일반 독자 대상의 대중 역사서다. 앞으로 매년 네 권씩 펴내 2003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한국사 이야기’는 80년대 이후 우리 역사학계에서 보편화된 민중사 중심의 서술방식과 최근의 새로운 역사서술 기풍인 생활사·문화사 중심의 서술 방식을 택한다. 또 문화인류학이나 고고학의 성과 등 역사학 이외의 주변 학문 성과도 최대한 반영,종합적인 역사 시각을 갖도록 했다. 이를 위해 이씨는 프랑스 아날 학파의 연구 성과를 비롯 몽고메리의 ‘전쟁사’,푹스의 ‘풍속의 역사’등 많은 2차 자료들을 활용했다. 그동안 한국사 서술은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으로 이뤄진 측면이 없지 않았다. ‘900여회에 걸친 외침(外侵)을 물리쳤다’거나 ‘거대 중국인 수나라와 당나라를 멸망하게 했다’는 등 ‘우리’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해석해 온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우리 역사를 동아시아의 보편사라는 틀 속에서 객관적으로 살핀다. 이씨가 이 책들에서 특히 힘을 기울인 것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서술에서 가장 취약했던 발해 역사를 복원하고 한국 고대사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은 우리 역사 무대를 한반도 주변으로만 국한시키는 등 지정학적인 오류를 낳았다. ‘남국 신라와 북극 발해’라는 제목은 이러한 학문적 각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씨는 ‘통일신라’보다는 ‘후기 신라’나 ‘남국 신라’가 역사용어로더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나올 책들은 고려시대(5권∼8권),조선전기(9권∼12권),조선중기(13권∼16권),근대(17권∼20권),일제시기(21권∼24권) 등을 다룰 예정. 지난 4년간 사회활동을 모두 끊고 전라북도 장수의 연화분교와 김제 월명암 등지에서 ‘한국사 이야기’ 저술에만 몰두해온 이씨는 현재 고려시대사를 쓰고 있다.
  • 비아그라 열풍이 지구촌에 부는데(박갑천 칼럼)

    미국 주간지 ‘월드뉴스’가 얼마전 놀라운 화제거리 하나를 보도했다. 일본 나고야에 사는 올해 117세의 노인이 39세된 세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보았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1주일에 세번정도 부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지구촌 ‘고개숙인 남성’들의 기를 죽이는 노인 아닌가.우리의 경우도 조선중기의 문신 沈守慶은 81세에 아들을 낳고서 겸연쩍어하는 시를 남기고도 있지만 그런 것쯤 ‘애들장난’으로 여길듯하다.쌀을 생식하는 따위가 그 비결이라고는 하나 역시 하늘이 내린 특수체질이라 해야겠다. 성서(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때 이삭을 낳는다.그 아내 사라는 그때 나이 90세.하나님 뜻이었으니 ‘노인들의 망발’이라 웃을 일이 아니다.그나저나 90세 할머니의 출산기록은 달리 또 있는 것인지.아브라함은 더 놀라운 기록을 남긴다.사라가 죽고 새 아내를 맞이하여 6명의 자식을 또 낳는 것이 아니던가.그는 175세에 죽었으니 오늘날의 117세 일본노인쯤 저리가라의 ‘슈퍼정력’이었다고 하겠다. “늙은이가 아기를 낳으면 그림자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하다.이수광의 에 ‘옛사람들의 말’이라면서 쓰여 있다.그 까닭은 정기가 모자란데 있다고 한다.이수광은 그대목을 이렇게 써놓았다.“한(漢)나라 陳留人은 나이 90세에,양(粱)나라 張元始는 97세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다.또 송(宋)나라 曹泰는 85세에 젊은 아내를 맞아 아기를 낳았더니 한낮에는 그림자가 없었다.하지만 그 아들은 70세에 죽었으며 자손도 있었다니 이상한 일이다”.일본노인의 아들은 그림자가 있는 것인지 살펴봄직하다. 비아그라라는 것이 ‘사랑의 묘약’이라 하여 고개숙인 지구촌 남성들의 고개를 세워주는 양했다.한데 부작용으로 죽는 경우가 생기면서 한번 더 고개를 숙이게 하기도.그래도 “설마 나야…”하고 사람들은 그걸 찾는 모양이다.그럴수록 ‘존경스러워지는’ 것이 노령들의 정력절륜.역시 인류사회는 부(富)에서 명예에서 그리고 정력에서까지도 불평등하게 돼 있다는 것인가.외신은 그 비아그라보다 한수위 신약이 개발되었음을 전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그 관계약품의 개발과 판매열기가 대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구실 못하는 아픔과 괴로움과 설움을 아는가”.비아그라열풍은 쉬이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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