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족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미얀마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전담팀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선정성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이상형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47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 (16)삼국통일후의 판도

    663년 백왜연합군은 나당연합군과 마지막 대해전을 벌이고 역사에서 사라졌다.고구려 또한 671년 안시성과 함께 운명을 다했다.신라는 676년 설인귀가이끄는 당군의 기벌포 상륙작전을 분쇄하면서 축출에 성공했다.이렇게 해서80여년에 걸친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은 막을 내렸다. 사비성을 함락하면서 당은 백제 의자왕과 1만3,000여명의 백제유민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고구려에서는 3만8,000여호를 끌고가 양자강 유역 등 여러곳에 이주시켰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저력과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국제교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특히 일본무역은 거의 독점했다.일본 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의 물품을 매입하는 신청서(買新羅物解)와 소장품은 당시 대규모로 교역했음을 알려준다.신라의 상인들이 당에 건너오고,승려나 학자들도 당으로 유학했다.몰래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도 많았다.삼국사기와 구당서에는 816년 굶주림을못견뎌 170여명이 절강지방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모여들면서 출신국가는 달라도 민족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들이다.이때는 이미 동아시아는당(唐) 중심의 세계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역사에서 소외당한 좌절감과 절박한 현실 속에서 유일한 생존방법은 경제권의 장악이었다.다행히 당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다른 종족을 포섭하는 세계화된 국가였다.그리고 각 지역간에 교역이 성행했다.특히 실크로드를 이용한 동서교역,바다를 이용한 남북무역이 활발했다. 그런데 서역의 대상들은 물품을 장안까지만 운반했다.페르시아상인들이 장악한 해양실크로드는 종착점이 광주나 영파,혹은 양주였다.때문에 남방의 물품을 북으로,서방의 물품을 남으로 보내는 물류망이 필요했다.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재당 신라인들은 절강에서 북경을 잇는 대운하의 주변에 정착해 운하경제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국제무역을 하는 대상인으로 변신했다. 마침 당을 중심으로 한 교역망은 황해로 인하여 한쪽이 뚫려 있었다.단절된신라와 일본을 국제물류망 속에 편입시키는 일은 재당 신라인들의 몫이었다. 신라인들은 운하주변과 해변가에 신라방 신라소 신라촌 등 정착촌을 건설하였다.수륙교통의 요지이며,신라나 일본으로 출발하는 석도(石島:赤山),문등(乳山浦),연운(宿城村),초주,양자강유역의 양주,소주,절강성의 영파,황암(黃岩)등 항구도시에 이른바 산동에서 광동까지 이어지는 해안경제벨트가 형성되었다. 영파 앞에 있는 주산군도에는 신라상인들의 배가 얹혔었다는 ‘신라초(新羅礁)’란 바위가 지금도 있고,그때 배에 실었던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불긍거관음전(不肯居觀音殿)이 중국 4대 성지의 하나인 관음신앙의 본산지가 되어있다. 재당신라인들은 대운하에서 내륙의 물류체계와 관련산업을 관장하고,절강성에서 산동,산동성에서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절강에서 동중국해를 횡단해 신라나 일본으로 삼각중계무역을 했다.동아지중해의 물류체계를 장악하고,황해연안을 자연스러운 영토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재당신라인들은 어떻게 동아지중해의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먼저 항로와 항해술이다.당과 신라,일본열도 사이를 항해할수 있는 항로는 2개뿐이다. 당시의 항해술과 조선술로서는 안전을 위해 연근해 항로를 이용해야한다. 산동반도에서 150여㎞ 남짓 횡단하면 나머지는 모두 연근해 항해 구역이다. 일본항로 역시 한반도 남쪽에서 대마도를 경유하거나,제주도를 거치면 안전하다.그래서 사신선이나 교역선,여객선,해적선 등이 이 항로를 즐겨 사용했다.일본의 견당선들은 신라정부의 위협 때문에 소위 남도로(南島路)와 남로(南路)를 이용한 적이 있으나 피해가 많았다. 하지만 이 황해중부 횡단항로는 횡단거리는 짧은 대신 물길이 매우 복잡하다.바다에서는 물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신라방은 적산포 유산포 영파와 같이 대체로 황해 서안의 중요한 물목이나 항구에 있었으므로 남북종단 연근해항로에 익숙하고,건너는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반면 횡단한 다음에 거쳐야할 옹진반도,경기만,영산강 하구와 해남 등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의 물길은 신라인들의 소관이었다. 물론 그들과 연결된 해운조직은 당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당 신라인들 뿐이었다.때문에 이 항로를 이용하는한 동아지중해의 상권은 범신라인들의 독점물이었다.모험심이 왕성하고,능력있는 그들은 항법상 어려운 동중국해 횡단항로도 개발했다.장우신(張友信)같은 신라인들은 절강성 주산군도를 출발,동중국해를 횡단해 제주도를 경유하면서 신라로 들어가거나,직접 일본의 규슈지역으로 항해하였다. 재당 신라인들의 활약은 항로상의 이점 외에 우수한 신라배들 때문에 가능하였다.그리고 황해는 원래 수천년 전부터 동이족이 개척한 바다였다.선천적으로 해양능력이 뛰어났던 그들에게 바다는 암울한 현실속에서 경제력으로자존심을 되찾는 유일한 장이었다.재당신라인들은 8∼9세기 동아지중해와 세계를 잇는 교류의 장을 열었고,또 본국인 신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 위대한 해상영웅들을 우리의 역사는 또 저버렸다.그들의 실체를 알려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해상강국이 된 일본의 승려인 옌닌(圓仁)이었다.100여년 동안 폐쇄회로였던 바다가 개방되면서 교류의 장,또는 경제전쟁의 주무대가 된 것이다.21세를 맞는 지금 다시금 재당 신라인들의 존재가 요구되고 있다.천년 전처럼 유민으로 정착한 조선족들이 곳곳에 ‘신라방’을건설하고 있다.그들과 역사가 바다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다시 또 동아지중해의 주인이 될수 있을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中·러시아 거주 동포 재외동포법 혜택받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31일 최근 공포된 재외동포법과 관련해 “중국과구소련 동포들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실질적으로 같은 혜택을 받도록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보완대책을 수립·시행할 것을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관련 국가들과의 문제 때문에 중국과 구소련 거주 동포들이 제외된 것은 안타깝지만 이들이 비극적 역사 속에서 많은 고통을 당한 우리의 동포임이 분명하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재중 동포들의 한국국적 취득을 쉽게 하고 ▲국내에 불법체류중인 동포들의 생활안정과 귀국보장,민간지원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하며 ▲국내체류 조선족을 우리 동포로 간주할 것 등을 유념해 이행토록 하라고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 ‘조선족 문학’ 자료연구 어디까지 왔나/중 옌벤대학서 심포지엄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문학은 한국문학사의 한 지류로 분류할 수 있다.그러나 국내 작품활동이 사실상 봉쇄된 1940년대 전반으로 국한하면,한글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이 지역을 문학사의 주류에 편입시켜도 지나치지않다는 것이 최근의 평가다. 지난 8월8일 중국 옌벤대학에서는 ‘동아시아 문학에서의 만주 체험’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이 자리에서 권철 옌벤대교수의 ‘중국 조선민족 문학자료 수집,정리 현황’이 발표됐다.언급된 자료는 아직 미진한 이 시기 문학연구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권교수에 따르면 조선문학연구는 1958년 중국정부가 ‘중국소수민족문학사’ 편찬을 결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문학자료 수집조’는 19세기말엽부터 광복에 이르는 각종 문학작품을 수집했고,‘문학사 편찬조’는 이를바탕으로 ‘중국 조선민족문학 개황 제강’과 ‘연변문학사’를 펴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문화대혁명’으로 조선민족문학 연구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모두 ‘반동학술권위’나 ‘잡귀신’으로몰리어 잔혹한 박해를받았고,그동안 모은 자료들도 모두 ‘독초’로 취급되어 휴지통에 들어갔다. 연구가 다시 활성화된 것은 중국정부가 ‘개혁개방’을 표방한 70년대말 ‘소수민족문학사’ 편찬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한민족이 만주로 이주한 시기부터 20년대 사이에 널리 애창된 창가,독립군가요,혁명가요,시·소설작품과30년대 초반부터 광복 사이에 나온 출판물과 주요 작품,동북 항일유격구(대)와 조선의용군,광복군,독립군의 항일가요,연극대본 등 많은 자료가 확인됐다. 이는 ‘중국 조선민족문학선집’(전 10권)과 ‘광복전 중국조선민족문학작품선’(출판중),‘김택영전집’(전 10권,출판중),‘신규식시문집’‘신채호문학유고집’‘류린석전집’ 등으로 나타났고,또 ‘중국조선족문학사’ 등 20여편의 저술로 발전했다. 한중수교 이후에는 ‘민성보’와 ‘만선일보’‘만몽일보’의 일부가 연세대에서 발견되는 등 새로운 발굴이 잇따르고 있다.그럼에도 1930년 안팎에발표된 박계주의 소설과 시,1930년대 후반에 ‘만선일보’에 발표된 염상섭의 장편소설 ‘개동’,현경준의 ‘선구시대’ 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권교수는 한국문학의 수집·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중국과 한국의 연구소 및 유관단체는 물론 한국과 북한의 교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으로 결론을 삼았다. 한편 이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은 계간 ‘한국 문학평론’에 실렸다. 서동철기자
  • [韓·中수교 7주년] 明과 暗 진단

    한국과 중국은 24일로 수교 7주년을 맞는다.그동안 두나라는 정치·경제 등여러 분야에 걸쳐 실질적인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반세기동안의 단절을 빠르게 메워가면서 급속한 관계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다.수교 7년의 명(明)과암(暗)을 짚어본다. ■명(明) 수교초기 경제 위주로 교류를 확대해온 두 나라는 최근들어 외교·안보분야의 협력에까지 폭넓게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지난해 11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합의된 ‘협력동반자 관계’도 한 예다.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두 나라는 대화의 격을 높여나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안정유지’란 점에서 한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같다.이점에서 두나라의 외교·안보 협력의 앞날도 밝다.국방장관으로선 처음인 23일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의 중국방문은 본격적인 안보대화를 기대하게 한다. ‘황장엽(黃長燁) 망명사건’이나 ‘타이완(臺灣)핵폐기물의 북한이전’등에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이룩한 두 나라는 ‘4자회담’,APEC회담 등 국제무대에서도 협력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정상을 비롯,정치지도자간의 빈번한 교류도 관계의 폭을 두텁게 했다.반면 한중수교후 북한과 중국은 단 한차례의정상 회담도 없었다. 그동안 두 나라 관계를 주도해온 경제교류의 성과는 두드러진다.수교이후두 나라는 서로 3번째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했고 중국은 미국에 이은 한국의두번째 투자대상국이 됐다. 미국,일본 무역에선 적자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시장에선 몇년동안 계속적인 흑자로 한국경제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한계에 부딪친 한국경제의 활로로서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상호보완적인 경제구조로 두나라 경제분야의 발전 전망도 밝다. 경제교류 확대에 따라 서로 ‘한국열풍’과 ‘중국붐’이 두 나라에 일면서 심리적 장벽을 헐어낼 수 있었다.한국 여행객과 유학생들이 중국으로 몰려갔고 중국 여행객의 숫자도 한국은 두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암(暗) 수교이후 양적 팽창 이면엔 진정한 ‘질적변화’를 저해하는 요소들도 적지않다.21세기 동반자 관계구축을 위해 반드시 고쳐져야 할 ‘부작용’인 셈이다. 중국인과 중국문화를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적 열매’에만 치중한결과라 하겠다.중국민들에게 ‘경제적 동물’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로 각인될 경우 중국시장 공략이 그만큼 어려워 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기적 대중(對中) 접근이 가장 큰 문제다.12억명의 산술적 시장규모에 근거해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경영전략은 곳곳에서 반발을 사고있다.중국내외국인 회사에서의 ‘스트라이크’ 절반 이상이 한국인 기업에서 발생될 정도다.전형적인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하겠다. 날로 심화되는 대한 무역적자도 비슷한 맥락이다.98년 우리의 대중수출은 119억달러.반면 수입은 65억달러로 54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당장은 무역마찰로까지 비화되고 있지 않지만 중장기적인 대책마련은 필요하다. 조선족문제는 피할 수없는 외교현안이다.수교후 기회의 땅으로 비춰졌던 한국은 이제 분노와 허탈의 대상이 됐다.취업 조선족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수많은 가정을 파산으로 몰았던 취업사기가 증폭된 결과란 지적이다.최근 연변을 다녀 온 한 중국전문가는 “재외동포 특례법에서 중국교포들이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조선족문제에 대해 김수환(金壽煥)추기경도 “중국 동포들의 문제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000만 북한 동포를 설득할 것이냐”고 개탄했다.정부의 능동적 대처가 절실하다. 이석우 오일만기자 swlee@
  • 조선족동포 3명 헌법소원“재외동포법 평등권 침해”

    문현순(45·여)씨 등 조선족 동포3명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23일 헌법 소원을 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외동포법이 일제시대에 강제 징용 또는 이주를 강요당하거나 만주와 연해주를배경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독립투사 후손들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마땅히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외동포들에게 출입국과 체류 등 내국인과 거의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이 법은 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이주한 220만명의 중국동포와 50만명의 옛 소련동포,15만명의 무국적 재일동포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
  • 통계로 본 98년 인구동태

    통계청이 발표한 ‘98년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남녀 모두 결혼 시기가늦어졌고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들의 이혼비중이 13.2%로 10년 전에비해 2.8배나 높아졌다. ■출생아 수는 줄고 성비는 확대 98년 연간 출생아 수는 64만6,000명으로 97년의 68만명보다 3만4,000명이 줄었다.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13.8명. 출산 연령의 여성인구가 줄고 범띠해에 여자아이의 출산을 기피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여아 100명당 남아 수인 출생성비도 110.2로 다소 높아졌고 대구가 116.5로 가장 높았다. 학업·직장생활 등으로 혼인연령이 높아지며 30대 산모의 출산율이 10년전보다 거의 배 가까이 높아졌다.30∼34세는 89년에 1,000명당 44명이 출산했으나 98년에는 72.9명으로 늘었다.반면 20∼24세는 89년 88.9명에서 98년 48명으로,25∼29세는 89년 163.8명에서 98년 153.9명으로 줄었다.여성의 평균출산나이도 89년 26.8세에서 98년 28.5세로 높아졌다. ■40대 후반 남자사망률 여자의 3배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 5.3명으로 3년째 같은 수준.98년에 사망한 사람은 25만명으로 97년보다 1만4,000명이 늘었다.연령별 사망률 성비는 10대 후반부터 남자 사망률이 여자의 2배를 넘기 시작해 40∼50대는 약 3배에 이른다. ■동갑내기 결혼이 늘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는 7.8건으로 97년보다 0.2건 줄었고 89년의 9.3건보다는 1.5건이나 줄었다.평균 초혼나이는 남자 29.0세,여자 26.2세로 89년에 비해 남자 1.2세,여자는 1.4세 많아졌다.평균 재혼나이는 남자 42.2세,여자 37.4세였다.93년 이후 증가세에 있던 남자 초혼,여자 재혼은 약간 줄었다. 남자가 외국 여자와 결혼한 비중은 2.1%이며 이중 중국 여자와 결혼한 비중이 1.4%로 가장 많았다.조선족 여자와 결혼한 농촌총각이 많기 때문이다. ■40대 이후 이혼 급증 인구 1,000명당 혼인·이혼건수인 조혼인율과 조이혼율 대비 결과,89년에는 9.3쌍이 결혼할 때 1쌍이 이혼했지만 98년에는 3쌍이결혼할 때 1쌍이 이혼, 이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이혼율은 남자는 40대전반·30대 후반, 여자는 30대 후반과 전반이 가장 높았다.평균 이혼연령은남자 40.1세,여자는 36.5세.남녀 모두 50세 이후 이혼율이 크게 늘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滿洲 항일영웅 허극은 한국인”

    1930년대 만주지역 항일단체인 동북항일연군(聯軍)에서 ‘이희산’또는‘이삼룡’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만주 항일운동의 영웅’허극(許克·1909∼1942)은 구한 말 의병장 왕산(旺山) 허위(許蔿·1855∼1908)선생의 친조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학술발표회 참석차 중국 옌지(延吉)를 다녀온 신상성(申相星·56·소설가) 용인대 교수가 조선족 역사연구가 유순호(劉順浩·39)씨의 연구성과를 본사에 제보해옴으로써 밝혀졌다. 유씨의 논문에 따르면,허극은 허위 선생의 막내동생인 허필(許苾)의 아들로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920년대 초 부친을 따라 만주로 이주, 요령성에 개원현에 살다가 1929년 하얼빈으로 이사하였다.허극은 1930년 5월1일 ‘5·1절시위행진’을 계기로 한인청년 40여명을 규합,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을 습격한 사건을 계기로 항일운동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 사건으로 ‘치안교란혐의’로 체포돼 봉천(奉天·현 瀋陽)감옥에 수감중이던 그는 여기서 북만(北滿)지역 항일연군의 수령격인 조상지(趙尙志)와중국 공산당 소속항일운동가 김책(金策·전 북한 부수상 역임)을 만나면서동북항일연군과 인연을 맺게 됐다.김책의 소개로 1935년 1월 동북항일연군제3군 산하 제2연대장에 부임한 그는 이듬해 부대 재편성으로 제3사(師)를지휘하면서 일약 조상지 다음가는 군사지도자로 부각되었다. 1936년 가을 일본군이 삼강성 일대의 항일세력 토벌에 나서자 그는 선발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일본군 80여명을 사살하고 말 30여필을 노획하는전과를 올렸다. 1937년 2월 북만지방의 항일연군회의가 열렸을 때 그는 북만항일연군 총사령부 및 제3군의 전권대표로 이 회의에 참가했으며 이듬해 4월제3·6·9·11군을 통합, 제3로군(路軍)이 조직되자 총참모장 겸 제3군 군장에 임명됐다.1940년에는 일본군 군사거점인 풍락진을 습격, 경찰국장을 사살하고 하얼빈 일대를 점령, 관동군을 놀라게 하였는데 당시 일본군은 그를 조상지,양정우(楊靖宇) 다음가는 거물로 취급했다. 그가 지휘한 제3로군은 용남·용북지방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300여회의 전투를 벌여 이 일대 27개 도시를 점령하였다.자료에 의하면 제3로군은기차역 5개,일본의용대훈련소 5개,비행장 1개를 습격,만주군과 경찰 1,557명을 사살했으며 기관총 7정,박격포 4문,기타 총기류 1,500여점을 노획한 것으로 나와있다. 1940년대 들어 동북항일연군의 지도자 조상지와 양정우가 사망하자 대부분의 대원들은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소련 영내로 도피했으나 허극은 만주에남아 이 일대에서 반일구국회 조직에 주력했다.그러던 중 그는 예하부대의소분대사업을 검사하러 나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고 격전 끝에 1942년 8월3일 33세로 전사했다. 그동안 허극은 가명 때문에 중국인으로 알려져 왔다.만주지역 항일운동사연구자인 신주백(辛珠柏·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박사는 “허극은 허형식(許亨植)이라는 가명으로 더 유명했는데 구체적인 행적이나 얼굴사진 공개 등은 처음인 것같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외언내언]‘8월의 친일인물’

    친일파 청산문제를 줄기차게 추진해오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박봉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8월의 친일인물’로 선정,발표했다.연구소 쪽은 인터넷홈페이지에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에 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는데,박 전대통령이 42년 당시 일본의 괴뢰국이던 만주국 신경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를 거쳐 45년 8·15광복을 맞을 때까지 만군 중위로 복무한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70년 여름 필자는 인도네시아에 취재를 갔다가 가루다항공 국내선에서 인도네시아 육군 소령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수하르토의 쿠데타로 축출돼 보고르궁(宮)에서 유폐생활을 하고 있던 수카르노가 얼마전에 사망했던지라,수카르노의 정치적 공과(功過)가 화제에 올랐다.소령은 수카르노가 친공(親共)노선에 기울었고 국제정치적 명성을 얻는 데 집중한 나머지 인도네시아를 가난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그러면서도 그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수카르노의 독립투쟁 관련 업적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소령은 지나가는 말처럼 필자에게 물었다.“그런데,박대통령은 ‘패트리엇 헌터’였다면서요?” ‘패트리엇 헌터’라니?‘애국자 사냥꾼’이라면 ‘독립군 토벌대’란 뜻이 아닌가?나는 그가 항일 독립투쟁 시기 박대통령의 관동군 경력을 말하는 것을 깨닫고,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그때 나는 ‘한국의 신문사 기자’이자 ‘예비역 공군중위’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96년 여름에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가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옌지(延吉)로 향하던 관광버스 안에서의 일이다.버스가 지린성(吉林省)안투(安圖)를 지나던 때 조선족 관광안내원이 말했다.“이곳이 바로 일본 관동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관동군 장교로 조선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합니다” 필자를 비롯해서 한국인 관광객들은 대꾸할 말을 잃고 서로 얼굴을 돌아볼 뿐이었다. 8월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국치일(國恥日)과 국권을 회복한 광복절이 함께 들어있는 달이다.친일파 청산문제는 역사의 이름으로 엄정하게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그것은 역사의 기둥을 올곧게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우리는 오늘날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군국주의’경향에 대해서도 경계와 대책을 게을리해서는 결코 안된다./장윤환 논설고문
  • 운동권 출신 임종석씨의 ‘베를린 리포트’

    80년대 운동권의 상징,임종석(3기 전대협의장)씨가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베를린 리포트’를 보내왔다. 임씨는 MBC­TV가 오는 15일 밤10시35분에 방영하는 ‘21세기 한민족 네트워크’에 리포터로 출연한다.그는 열흘간의 취재 경험을 “약하기만 한 한민족의 연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정부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550만 교민들을 내팽개치다시피 했고 한인2·3세들에게 우리 문화를 교육시킬 프로그램 하나 변변이 만들어 놓지 못했다.더욱이 분단장벽은 베를린 교민사회에도 영향을 미쳐 ‘동서분열’이라는 아픔을 안겨줬다. 지난 89년 임수경씨를 입북시켜 3년을 복역한 그에게 통일이후 독일의 차분한 일체화 과정과 허약한 한민족의 네트워크는 극명한 대조로 다가왔다.프랑스에서 유태인이나 화교사회의 결연한 공동체를 눈으로 확인한 작업도 분명심통나는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족과 통일이란 화두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위기의식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무엇보다 친한이냐 반한이냐로 갈라선교민사회의 갈등이 차츰 봉합돼 간다.독일 통일 드라마가 교민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다. 임씨는 다음 세기 한민족의 통일과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550만 교민들이 하나로 뭉쳐 네트워크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반체제인사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송두율 교수와의 긴 대화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송교수는 “국경이 무너지는 세계화시대에도 민족은 영원한 과제”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3시간동안 진행될 이 특집은 임씨 말고도 곽재구 시인,최준식 교수(이화여대한국학과)가 젊은 대학생들과 짝을 이뤄 LA코리아타운과 멕시코의 홍씨 집성촌,일본 교민사회와 중국 장백산의 조선족 자치마을을 찾아 그네들의 뿌리찾기 의식과 2·3세들의 조국애를 조명,네트워크 구축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임병선기자 bsnim@
  • 뉴스피플 8월12일자…경품의 허와 실 집중취재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8월12일자,8월3일 발매)는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경품실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경품의 신풍속도,그리고 허와 실 등을 집중취재했다. 정치기사로는 ‘세풍’자금 은닉의혹사건이 정국을 경색시키고 있는 분위기와 특검제 도입,중대선거구 문제 등을 다뤘다.경제기사로는 ‘삼성이 대우차를 인수한다’,‘현대가 삼성차를 인수한다’ 등 항간에 떠도는 루머를 추적,밀착 취재했다. 또 ‘임자’만난 한미행정협정과 봇물터진 ‘우리땅 찾기 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봤으며,8·15광복절을 맞아 중국 흑룡강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 위안부들을 단독으로 취재했다. 이밖에 영화 마케팅 전략의 주요 아이템으로 떠오르는 ‘영화제목 짓기’의 이모조모와 세기말 마지막 여름을 떠돌고 있는 유령을 한자리에 모아봤다.2000년의 백악관 주인을 가리기 위한 미국의 대선 레이스에서 1위를 달리고있는 조지 W.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 沿海州의 카레이스키(상)-한민족이 다시 모인다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프리모르스키’는 우리말로 ‘바다에 접해있는 땅’,곧 연해주(沿海州)이다.이곳은 카레이스키(고려인)의 고향이며,그들의 한(恨)과 정(情)이 배어있는 땅이다. 비극과 고난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한신대와 청강문화산업대의 학생 48명과 교수 3명은 지난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 동안 이곳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폈다.고려인촌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우리와 한 핏줄인 그들의 삶과 애환,정서를 이해하자는 취지였다. 동행취재기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19일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재래시장.사람이 붐빌 만큼 제법 활기에 차 있었다.지난해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 침체된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고려인 동행자가 귀띔했다.수백여개의 점포가 밀집한 시장 골목에는 우리와 비슷한 얼굴들이 꽤 많았다.우리 말을 건네니 금방 알아듣는다.고려인 아니면 조선족이다. 같은 날 오후 ‘르노크’라 불리는 ‘알촘’의 한 시장.시장의 러시아 상인들이 낯선 복장의 기자를 경계하는 듯 싶더니 이내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시장의 장(長)인 김 에릭씨(48)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때문이다.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김씨는 90년 초반에 이곳에 와 10년이 채 안돼 성공을 했다.김씨는 요즘 중앙아시아에 있는 고려인 300여가구를 이곳으로 이주시키는 일을기획하고 있다. 1937년 소련정부가 고려인 18만여명을 집단으로 쫓아낸 것과는 비교할 수없는 숫자이지만 이 일이 성사되면 최초의 집단 재이주가 된다.강제 이주 이전 우수리스크와 알촘 등에는 고려인이 많이 모여 살았다.그 뒤로 반세기 가까이 이곳에서는 고려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아니다.귀환자 대부분은 다시 빈손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19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되돌아온 4만여명 고려인의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극도의 빈곤을 겪어내야 한다.김 에릭씨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상당수는 현지의 경제난에다 재산처분마저 어려워 연해주로 올 차비도 없다”고 전했다. 몇해 전부터 연해주에는 고려인 뿐 아니라 하얼빈·연변 등지의 조선족과한국기업들도 찾아들고 있다.이따금 탄광과 벌목지,농장 등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도 눈에 띈다.사할린 교포들도 적지 않게 살고 있다. 조선족들에게 연해주는 매력있는 장사터이다.우스리스크 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장사를 하고 있는 최용일(崔龍日·19·중국 심양)군은 “러시아의 경제 파탄으로 물자가 부족해진 뒤 중국의 값싼 제품을 가져다 팔면 큰 이익이 난다는 소문이 퍼져 조선족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한국의 기업들은 연해주의 광활한 농토를 차세기 식량자원의 공급원으로 보고,이를 확보하기위해 애쓰고 있다. 동북아지역 여러 국가의 국적을 가진 한민족이 모인 고난의 땅이 바로 연해주인 것이다. 연해주 이지운기자 jj@ *연해주 한민족 이주사 연해주 이주사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과정부에 불만을 가진 양반 등이 1811년 홍경래의 난 이후 연해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공식적으로는 1863년에 한인 13가구가 두만강에 가까운‘포시예트’에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1869년부터 함경도 지방에 3년 내리 흉년이 닥치면서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됐다.1937년 강제 이주 이전까지 대략 18만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 뿌리를 내렸다.옛 소련정부는 그해 9∼12월거의 모든 고려인을 전격적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 국민회의 사면건의 주요내용

    국민회의가 28일 확정,정부에 건의한 8·15특별사면,복권 대상자 1,777명은 공안사범과 경제사범이 주류다.선거사범 일반 형사사범은 제외됐다.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형 미확정자가 186명이나 포함됐다는 점이다.형 미확정자에대한 사면복권은 유례가 없던 일로 국민회의는 검찰이 공소를 취하하는 형식을 제안했다.법무부측은 난색이다.따라서 실현가능성은 미지수다. 국민회의는 공안사범 기결수 90여명 전원에 대해 사면복권을 건의했다.이가운데는 7년 이상 복역한 미전향 장기수 7명이 포함됐다.손성모,신광수씨(남파간첩사건)와 최호경,조덕원씨(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 등이다.안재구 전 숙대교수와 유학진씨 등 구국전위사건 관련자,이화춘씨 등 일본 유학사건관련자,96년 연대사태로 구속된 한총련 소속 학생들도 포함됐다.단병호 전금속노련 의장 등 노동계 인사도 상당수 이번 사면복권 대상에 들어갔다.서울지하철 파업사태 관련자에 대한 수배해제 조치도 건의됐다. 일반 선거사범 113명에 대한 사면복권과 지난 96년 페스카마호 선상반란때선원 살해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선족 10명에 대한 특별감형도 요청했다. 김현철(金賢哲)씨를 특사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한 만큼 당 차원에서는 공식 건의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사범 중에는 경제위기에 따라 흑자부도를 낸 기업인과 생계형 사범 등을 중점 배려했다.국민회의 유선호(柳宣浩)인권위원장은“가급적 조속히 혜택을 주자는 게 당의 입장이며 법무부도 선별 분류기간을 고려,성탄절 특사때는 이번에 제외된 경제사범의 특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추승호기자 chu@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8회)

    주간 기획 시리즈 ‘굿 모닝 새 천년’은 이번 8회부터 중간 타이틀을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바꾸자’에서 ‘기초부터 다지자’로 바꿔 13회까지 6차례 게재할 예정입니다.앞으로도 ‘이것을 이어 가자’는 등의 다양한 중간타이틀 아래 다가오는 2천년대를 준비하는 특집을 연말까지 이어 가게 됩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100년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한국과 일본 사이의 격차를 경제력의 차이만 두고 계산해서는 안된다.한국 사람들이 안으로 정말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밖으로는 당당히 세계를 주도해 나갈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도덕과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64)씨는 지난해 12월 펴낸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이란 책에서 ‘정말로 맞아 죽을 정도로’신랄하고 적나라하게 무도덕,무질서,탈법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자화상을 그려냈다. 아파트에서 아래층까지 들리도록 뛰어노는 어린이들,식당이든 지하철이든심지어 비행기 안에서까지 그칠 새 없이 이어지는 휴대폰 소리,난폭운전 등다반사로 벌어지는 우리의 일상이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입증한다는 이케하라씨의 주장은 우리 모두를 일깨우는 ‘고언(苦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이처럼 “남이 보지 않는다고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고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걱정돼 쓰레기매립장 건립을 무조건 반대하며 금품을 살포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는 의식과 행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이른바 이기적 천민주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민주적 시민의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족주의”라고 진단했다.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 또는 혈연·지연·학연에근거한 ‘우리’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배경좋고,출신좋고,연줄좋고,줄서기 잘하고,잘 갖다 바치면 어떤 경쟁에서도 이기는,이른바경쟁규칙의 위반이라는 부조리가 만연하면서 양보와 협동이라는 민주적 시민의식,공동체의식이 내동댕이 쳐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사회의 존립요건인 질서 유지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다.사회구성원 모두가 타인의 이익과 욕구를 나만의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사회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실마리는 거창한 ‘구호’의 절규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나부터’ 기초적인 공중도덕을 하나라도 실천하는데서 찾아진다.‘사람다운 사회’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선인(善人)’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일상의 생활에서 이웃이나 타인에게 피해나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줄서기 등과 같은 최소한의 기초질서를 준수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모두가 도에 지나친 욕구나 행동거지를자율적으로 규제하며 혹시라도 불편해 할 이웃을 한번쯤 생각하며 살면 된다. 나아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천민적 이기주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공정경쟁의 규칙 앞에서는어떤 특권도,차별도 인정하지 않는 원칙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아울러 이른바 사회지도층인사들이 평소에 누리는 위세와 특권에 대한 보답으로 사회에 더 많은 것을 환원하는 ‘귀족의 의무(NOBLESSE OBLIGE)’를 실천함으로써 최소의 수혜자들까지도 살만한 사회가 될 때 진정 인간다운 공동체로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실천하도록 하려면태교에서부터 임종까지 인간교육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이 가운데 공동체 의식을 터득케하는 최초의 교육기관인 가정의 중요성은 더없이 강조해도지나치지 않다.자녀들에게 질서와 규칙의 중요성,협동과 봉사의 가치,사랑하고 보살피고 베푸는 삶의 보람을 처음으로 가르치는 어머니의 역할에 새 천년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김인철기자 ickim@ * [밀레니엄 탐방]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물신주의와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파괴,경쟁과 위화감이 심화되고 ‘나홀로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우리 삶의 정신적 토양이황폐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새시대에 맞는 공동체적 정신문화와 민주공동체 의식을 일궈내는시민단체가 있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808호에 자리잡은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공선련·상임공동대표 徐英勳)은 생명질서 존중,인간성 회복,공동체윤리 재건,공동선(共同善) 실천 등을 주창한다.지난 94년 10월 박한상 패륜사건,지존파·온보현 사건 등으로 상징되는 인간성 상실위기속에서 창립된뒤 깨끗하고 건강한 도덕사회와 활력있고 정의로운 민주시민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현재 회원이 1,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생명질서와 인간 존엄성을 회복해 새사회 공동체 윤리를 만들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공동선을 찾아,실천하기 위해 공선련이 펼치는 활동은 다양하다. 우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선련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교육이다.지난 4년동안 전국을 돌며 시민윤리 강좌 및 학부모 강좌를 개최했고,시민학교 운영은 물론 200여차례 전국 순회 강연회를 가졌다.이밖에 매년 100여명의 엘리트를 선발,미래사회에 대비해 공동체의식과 건전하고 올바른 윤리관,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길러주는 지도자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공선련은 ▲공공질서지키기,환경보호,바른 여가선용 등의 새생활 실천▲가족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이웃과 사회를 향해 열린 가족공동체를 확산시킴으로써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 ▲세기말 절망의 벼랑끝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땅끝정신 등 공동선 운동이념에 맞는 생활문화사업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서영훈 상임대표는 “인류의 양심과 지혜가 올바로 발휘되지 못한다면 물질적 혜택은 불행일 뿐”이라면서 “잘못된다면 우리나라가 무너지고,인류사회도 파멸하게 된다”고 경고했다.공선련은 지난해부터 ‘새로운 인간,다시 서는 한국’이란 구호아래 ‘비전 2005’운동에 주력하고 있다.다가오는 2005년 맞이할 광복 60주년을 민족 도약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으려는 뜻.새천년에 맞는 가치 규범을 공동체의 질서에 맞도록 체계있게 세워,우리 사회가 세계화돼 선진사회로 만들기 위한 뜻을 담고 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밀레니엄 인터뷰] 두레공동체운동본부 대표 金鎭洪목사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 각자가 속한 국가에 충실한 국민으로남아 있으되 문화로,경제로,가슴으로 하나가 되자는 것이 한민족공동체입니다” 두레공동체운동본부 대표 김진홍(金鎭洪·58)목사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교회·성직자의 역할이란 생각에 줄곧 공동체운동에 나서고 있다.‘두레’란 옛 조상들이 쓰던 ‘함께 사는 공동체’란 뜻이다.그는 전통 두레의 정신에다 신앙을 접목시켰다. 김목사는 지난 79년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산리에서 농업을 주축으로 하는 공동체인 두레마을을 시작했다.초창기에는 실패해 지난 86년 다시 시작하기도 했고,매월 3,000여만원의 적자를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만큼의 흑자로 돌아섰다.무공해 농산물 생산유통회사인 두레유통,사회복지법인 청십자두레마을,두레선교회,두레연구원,120여명을 해외에 유학시키고 있는 두레장학재단,두레자연고등학교 등도 잇따라 설립했다.두레마을에는 현재 180여명이살고 있다. “10여년전부터 중국과 러시아,북한은 농산물의 원료 생산기지가 되고,한국은 가공과 경영의 중심지가 돼 일본·미국을 유통기지로 만든다는 뜻을 갖고있었습니다” 김목사는 두레마을의 성공을 기반으로 삼아 한민족공동체를 하나하나씩 구체화시켜 가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에 500만평에 이르는 농지를 확보,러시아에 사는 동포인 고려인들과 서울에서 파견된 두레일꾼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중국의 경우 옌볜(延邊)에 150만평의 농지를 확보했다.이곳은 조선족 40여 세대와 두레일꾼 10가정이 함께 개척해가고 있다. 미국에는 서부지역인 베이커스필드에 두레마을 농장이 있고,동부지역인 뉴저지에는 20만평의 농장을 갓 시작했다.캐나다 서부 밴쿠버 인근도 두레마을이 시작되고 있다.일본에는 오사카와 도쿄에 두레모임이 결성돼 있다. 김목사는 “이제 국경은 낮아지고 이념과 체제는 무너져 가고 있는 반면 경제와 문화,창조적인 생각이 중요해지는 시대”라면서 “세계에 흩어진 우리민족들이 하나의 문화권,하나의 경제권으로 결속돼 안으로 민족의 질을 높이고,밖으로 평화세계 건설에 힘쓰자는 뜻”이라고 역설했다. 김영중기자
  • 중국 유일의 北京한국어학교 2만달러 없어 폐교위기

    중국내 유일한 한국어 교육기관인 한국어 학교가 심각한 재정난으로 폐교의위기에 놓였다. 지난 89년 중국 교포 3∼4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베이징(北京) 한국어학교’가 올해로 개교 10주년을 맞았지만 학교 운영비 등미화 2만달러(한화 4,200만원)가 없어 당장 2학기 개강이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어 학교는 지난 89년 황유복(黃有福·56·중앙민족대학교수) 교장이 미국 하버드 대학 교환교수 시절 받은 연구비 1만달러를 절약하여 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내에 소학교(초등학교) 정규과정 등을 설립한 뒤 자신의 강연료와베이징 거주교포의 성금으로 10년동안 어렵게 운영해왔다. 학생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지 않으며 83명의 자원봉사 교사들에겐 월 3만∼4만원의 수고비가 지급되고 있다. 그동안 베이징 본교와 지방 분교 10곳에서 2,000여명이 졸업했으며 이들 가운데 100여명이 미국과 일본,한국 등에서 유학한 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13일 한국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황 교장은 “답답한 마음에 교육부 국제교육협력과와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재단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관계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면서 “정부에서조금만 신경을 써 준다면 220만명에 달하는 중국내 조선족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며 아쉬워했다. 황 교장은 “솔직히 한국 정부가 미국 등에 있는 해외 거주자나 교포에 대해서는 상당액의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중국 거주 조선족에 대한 지원은없다”고 말했다. 황 교장은 “조선족 3∼4대의 75%가량이 한국어를 모르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내 한국어 교육기관이 폐쇄되면 민족성 상실 등 심각한 우려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중국공무원들 한국배우기 구슬땀

    “문화든 경제든 체육이든 교류협력하여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겠습니다” 한국지방자치단체 국제화재단(이사장 文昌洙) 초청으로 28일부터 6개월 동안의 지방자치단체 연수에 들어간 9명의 중국 지방공무원들은 의욕에 넘쳤다. 이들은 지방정부에서 여권발급과 비자신청 등을 맡는 외사판공실(外事辦公室) 소속으로 모두 우리말이 능통하다.특히 조성주(趙成姝·46·여) 항저우(杭州)시 자매도시처(姉妹都市處)부처장 등 3명은 조선족.조씨는 “한국을 몇 차례 방문했으나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이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한국을깊이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상하이(上海)음악학원 출신으로 전남 여수시에 배치된 그는 특히 “전남은 판소리가 유명한 곳 아니냐”면서 “여수 시민과 항저우 시민들에게 서로의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북중(北中) 교환학생으로 북한의 계응상대학을 다닌 양홍펭(楊鴻鵬·32) 헤이룽장(黑龍江)성 아주처(亞洲處) 부과장은 “자매결연한 충청북도가 올해도 하얼빈(哈爾濱)에서 연 경제무역박람회에 참여했다”면서 “연수를 할 고양시와도 어떤 면에서 교류가 가능할지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공무원 생활 1년째라는 장쑤(江蘇)성 옌청(鹽城)시의 안리나(安麗那·24·여)씨는 “할일이 많다는 사명감이 있지만,능력이 뒤따라줄지 걱정”이라고겸손함을 앞세웠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 영사처 소속인 장진(張靜·28·여)씨는 “업무상 많은 한국사람을 만나지만 문화나 관습의 차이가 컸다”면서 “어떻게일을 처리하면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될지를 확실히 배우겠다”고 이번 연수를 행정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을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수에 앞서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서울의 재단본부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 사전교육을 받았으며,오는 12월20일까지 연수를 받은 뒤중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을 초청한 문이사장은 “중국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지역간교류의 중심역할을 맡을 지한인사(知韓人士)를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면서 “내년에는 중국과 함께 베트남 지방공무원을 초청하는 등 대상국가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SBS ‘출발모닝와이드’ 백두산 조선족 농촌생활 엿보기

    백두산 하늘 아래 첫동네인 중국 길림성 이도현 내두촌.해발 1,100m에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조선족 60가구 180명이 살고 있다.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100여년 전 간도 대이주때 둥지를 틀고 집단부락을 형성했다.워낙 오지인 탓에 연길이나 도문에 사는 조선족들도 잘 모를 정도이다. SBS ‘출발모닝와이드’(매일 오전 6시)는 21일부터 13부작으로 이 곳 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준다.부제는 ‘윤동혁PD의 백두산 조선족 탐방기’. 연길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의 내두촌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가장 가까운 읍내로 나가려면 3일에 한번씩 오가는 마을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로 산길 22㎞를 달려야 한다.제작진은 마을 촌장집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순박하기 이를데 없는 주민들의 일상을 엿보았다.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두부 찌꺼기로 돼지를 먹이는가 하면 어느새 남편과 술을 빚는 홍미엄마는 영락없는 우리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다.고사리를 캐는 할머니를 따라 집을 나선 제작진은 운좋게 백두산 원시림을 촬영,화면으로 내보낸다.영화세트장 같은 내두촌의모습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곳에도 코리안드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딸을 대구로 시집보낸 집도 있고,아들을 서울대학교에 유학보낸 이도 있다.제작진은 또 서른명 남짓되는 조선어린이들이 조선말로 공부하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2학년과 5학년은 한 명도 없고,중학교는 50리 떨어진 읍내로 나가야 한다. 이 프로는 내두촌에 이어 중국내 조선족 20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모여살고 있는 연변지역을 탐방했다.HOT의 노래가 유행하는 이 곳은 취업사기와 탈북자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악화돼있다. 윤PD는 “한국대표팀과 중국대표팀이 경기를 벌이면 연변 조선족 열이면 열 모두 중국팀을 응원하는 데 깜짝 놀랐다”면서 “우리가 조선족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고 취재과정에서 느낀 점을 털어놓았다. 이순녀기자 coral@
  • 돌아온 풍악호 관광객이 전한 北표정

    서해의 초긴장 상태와는 달리 금강산은 평온했다. 3박4일 일정의 금강산 관광을 마치고 16일 오전 6시25분 동해항으로 무사히 돌아온 현대풍악호 관광객 585명은 남북한 함정이 포격전을 벌인 15일 오전의 긴박한 시간에도 평상시처럼 관광을 즐겼다고 밝혔다.관광객들에 따르면15일 오후에야 일부 관광객들이 버스 안에서 우리측 라디오방송을 통해 교전 사실을 알았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북측 안내원들은 신변을 걱정하는관광객들에게 금강산 관광의 신변보장을 재확인해주기도 했다. 한 관광객은 “15일 오후 조선족 버스기사로부터 서해안사태를 전해 듣고혹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으나 북측 사람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서해 대치’ 7일째인 지난 13일 금강산으로 떠나면서 풍악호선상에서 우리측 안내원들로부터 “서해사태로 북한측이 종전보다 까다롭게군다”는 주의를 받은 터였다.14일 오전 장전항 북한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할 때 다소 지체되기는 했지만 북한 직원은 “서해안 등 이념문제는 이야기하지 말자”면서 오히려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관광지에서 만난 북한 안내원들도 서해사태를 모르는 듯 친절하게 안내를했다.한 여자 안내원은 ‘통일의 날 금강산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쪽지를 건네기도 했다. 김명승기자 mskim@
  • 「남북한 西海 교전」北체류자 어떻게 되나

    북한의 서해 선제 공격 이후 북측에 체류중인 우리 국민들의 신변에 관심이 모아진다.통일부는 15일 현재 북측에 머무르고 있는 국민의 총수를 1,970명으로 집계했다.통일부측은 이날 현재 이들의 신변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며각기 체류 목적 대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측이 추진중인 금강산관광객들(총 1,201명)이 체류인원의 가장 큰 몫을 차지.풍악호와 금강호 승객이 각각 585명,616명으로 확인됐다.이들 유람선에 승선하고 있는 내국인 승무원들은 총 237명이었다. 금강산과 장전항 일대에 상주하는 현대 인력은 모두 256명.현대 관계자와공사 근로자를 포함해서다.조선족 고용인력 129명을 제외한 수치다. 특히 대북 경수로 공사가 진행중인 함남 신포에도 203명이 파견돼 있다.건설 근로자 및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계자가 그들이다. 남포,원산,해주 등 북한 항구에도 우리측 인사 50명이 들어가 있다.이들은대북 비료지원 인도요원들. 이외에도 남북경협 종사자 23명도 북한땅에 머무르고 있다.여기엔 15일 평양에 들어간 윤종용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방북단 16명과 금강산 샘물개발을추진중인 태창 관계자 6명이 포함된다. 구본영기자 kby7@
  • [외언내언] 백두산 가는길

    동해항로를 이용하는 새로운 백두산관광길이 빠르면 8월 중 열릴 것 같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강원도 속초항에서 출항,러시아 포시에트항에 도착한 후중국 훈춘(琿春)까지 연결하는 해륙교통로 개설에 관한 3국간 협의가 완료됨에 따라 새로운 백두산관광길이 개설된다고 밝혔다.동해 백두산항로는 속초항을 출발,포시에트항에 닿은 뒤 러시아쪽에서 통과비자를 받아 43㎞ 떨어진 훈춘에 도착해 이곳에서 백두산까지 339㎞를 버스 등 육상교통을 이용하게된다‘동해 백두산항로’가 8월 개설되면 백두산관광이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새로운 동해 백두산항로는 중국 단둥(丹東)이나 다롄(大連)항을 거쳐 우회육로를 이용했던 기존의 한·중 해상운송로를 1,000㎞ 정도 단축시킬 수 있다.속초에서 25시간이면 백두산에 도착할 수 있어 기존의 인천항∼단둥∼백두산코스(48시간)에 비해 시간을 절반 가량 줄일 수 있다.여행경비도 140달러(한화 16만8천원)로 기존 서울∼베이징(北京)∼옌지(延吉)간 항공요금 420달러(50만원선)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특히 동해 백두산항로가 개설되면 중국 동북지역과의 교역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현재 우리나라와 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 동북지역과의 교역이 4억5,000만달러규모에서 10억달러 규모로 크게 활성화될 수 있다. 두만강개발계획(TRADP)에 따라 북한 나진·선봉과 훈춘·포시에트를 꼭지점으로 설정된 1,000㎢ 규모의 두만강 경제삼각지대 개발도 활기를 띨 것으로예상된다.이번에 새로 개설되는 동해 백두산항로는 그동안 러시아가 여러가지 이유로 지연시켜오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 직후 동의함으로써 양국 관계 증진의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백두산 가는 길이 점자 넓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한 성과를 기대할 수있다.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관광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북한 내륙을 통한 백두산관광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적잖이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리고 백두산관광이 활성화되면 옌볜(延邊)지역의 우리조선족 동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우리 국민들의 백두산관광이 격감됨에 따라 옌볜지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한다.지난해 2백여개 소의 노래방 가운데 올들어 40여개 소가 문을 닫았을 정도다.새로운 동해 백두산항로 개설이 북녘땅의 문호를 개방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도록 기대해 본다.
  • 중국경제 기행(하) 대륙속의 한국기업

    베이징 박은호기자 “중국 인구에게 자전거 타이어 하나씩만 팔 수 있다면….하다못해 컵라면 한개씩만 공급한다고 생각해 보라”.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인들이 전하는 중국투자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12억 인구’로 대변되는 어마어마한 ‘구매력’이다.우리나라 기업이 이를 좇아 대륙의 빗장을 처음 푼 것은 한·중 수교 훨씬 이전인 88년.텐트제조업체인 (주)진웅의 진출 이래 봇물 터지듯 투자가 이어져 왔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대(對) 중국투자는 모두 40여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여건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중국의 수입제한 강화조치 등이 현지 합작법인들에게 불똥을 튀기고 있는 탓이다.철강과 에너지,비료 등 주요 원자재의 수입을 제한하는 수입쿼터제가 최대 현안이다.한국산 철강재의 경우는 98년 1,240만t에서 올해 700만t으로 대폭 축소됐다. ‘수입중요공업품’이라는 인증을 못받으면 통관이 안되는 사실상의 비관세장벽도 실시되고 있다. 국내산 재료의 수입제한조치에 따라 “품질이 낮은 중국산 제품을웃돈을주고 사 쓰는 경우도 생긴다”(포항제철 베이징 사무소 權錫哲 과장)고 한다. 중국기업과 마지못해 가격담합을 하는 경우도 있다.한 기업인은 “최저 가격을 설정,그 이하로 팔지 말자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털어 놓는다. 시장경제 원칙인 자유경쟁을 포기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중국기업과의 마찰을 피하고,자칫 덤핑판매로 몰릴 위험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부동산 값 폭락은 또다른 어려움이다.상하이(上海)푸동(浦東)지구에 오는 9월 들어설 포철의 34층짜리 첨단 비지니스 빌딩은현재 “사업착수전 예상 임대단가의 25% 수준에서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전언이다. 인근의 39층짜리 한라그룹의 빌딩도 사정은 비슷하다.그러나 상하이 포철부동산공사의 고순욱(高淳昱)상무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예상되는 올 연말부터는 부동산 경기가 한결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과 한국기업의 이미지는 현지인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여기에서도 ‘음식은 중국,아내는 일본’이라는 말이 쓰인다.그런데 요즘 와서 ‘친구는 한국’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남편을 둔 시안(西安)의 조선족 가이드는 마냥 유쾌한 듯 이렇게 전한다. “중국인들이 지난해 한국국민의 ‘금모으기’ 운동에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는 말도 뒤따랐다. 물론 한국의 이미지가 중국에서 이렇게 보편화돼 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그렇지만 적어도 한국기업에 대한 눈길이 경쟁국 일본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상하이 진출 7년째인 모 회사 직원의 설명.“일본 상사원들은 대부분 같은아파트 단지에 모여 사는데 이게 폐쇄성으로 비쳐지고 있다.거래처 사람들을 업무위주로만 상대하는 일본인의 몸에 밴 관행도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우리는 그들과 왁자지껄하게 술도 마시고 굳이 일 때문이 아니라도 자주 만나 교분을 쌓는다”. 두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상처받은 현대사를 갖고 있는 점도 일종의 동류의식 형성에 한몫하지 않았을까.아니면 과거 수천년동안 이어온 인접국끼리의원천적인 정서적 친밀감 때문이거나…. 어떻든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는 일단 한발짝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는 그의 말은 기분좋게 귓전에 울렸다. unopar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