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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베이징 중앙민족大 자오아이핑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교에서 경제법을 전공하고 있는 자오아이핑(趙愛萍·23)은 올해 7월 졸업예정자이다.하지만 그녀는 중국에서 곧바로 취업하기보다 한국 유학의 길을 찾고 있다. 유학 이후 더 나은 취업 조건도 매력이지만 장기적으로 한·중 합작 대기업에 들어가 전공 분야를 최대한 살리면서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다부진 꿈을 갖고 있다. 한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이유는. -삼성이나 LG 등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다.한국 기업들이 최근 현지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어 중국의 국유기업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믿는다.한국 기업들도 중국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관리계층을 중국인에게 맡길 것이다. 현재 중국의 경제법은 한국의 상법을 상당부분 원용하고 있다.기회가 되면 중국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한국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유학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민족대학에는 조선족 친구들이 많이 있어 지난 1년간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한국에서 경제법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최근 경제·법률 용어를 배우고 있다. 일단 올 9월 한국의 대학교 산하에 있는 단기 어학연수를 시작하고 내년 정식으로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 유학의 장점은 무엇인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학비와 생활비가 3분의 1 수준이다. 한국에 유학간 친구들은 중국어 교습 아르바이트로 그럭저럭 생활비를 벌고 있다.한국 대학 학비는 1년간 대략 5만위안(750만원)선으로 미국과 일본보다는 아주 싼 편이다. oilma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베이징 중앙민족大 자오아이핑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베이징의 중앙민족대학교에서 경제법을 전공하고 있는 자오아이핑(趙愛萍·23)은 올해 7월 졸업예정자이다.하지만 그녀는 중국에서 곧바로 취업하기보다 한국 유학의 길을 찾고 있다. 유학 이후 더 나은 취업 조건도 매력이지만 장기적으로 한·중 합작 대기업에 들어가 전공 분야를 최대한 살리면서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다부진 꿈을 갖고 있다. 한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이유는. -삼성이나 LG 등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다.한국 기업들이 최근 현지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어 중국의 국유기업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믿는다.한국 기업들도 중국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선 관리계층을 중국인에게 맡길 것이다. 현재 중국의 경제법은 한국의 상법을 상당부분 원용하고 있다.기회가 되면 중국에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한국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유학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민족대학에는 조선족 친구들이 많이 있어 지난 1년간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한국에서 경제법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최근 경제·법률 용어를 배우고 있다. 일단 올 9월 한국의 대학교 산하에 있는 단기 어학연수를 시작하고 내년 정식으로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 유학의 장점은 무엇인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학비와 생활비가 3분의 1 수준이다. 한국에 유학간 친구들은 중국어 교습 아르바이트로 그럭저럭 생활비를 벌고 있다.한국 대학 학비는 1년간 대략 5만위안(750만원)선으로 미국과 일본보다는 아주 싼 편이다. oilman@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왕꽃선녀님(오후 8시20분) 초원은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가지만,두통 때문에 집에 가고 싶어한다.춤을 추며 나이트클럽 안을 둘러보다가 초원은 스피커 위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목격한다.초원은 충격으로 실신하고 연락을 받고 달려온 시애와 시몽은 공부하느라 힘들어 헛것을 본 것이라고 다독인다. ●세계 세계인(오전 10시40분)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 공연장을 찾아간다.남아공 국민들은 흑백 차별 정책을 펴온 백인 정권에 투쟁해온 남아공 역사와 비슷한 이 공연에 애착을 갖고 있다.남아공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연인 만큼 오페라 단원들은 독일어로 된 어려운 작품이지만 연습에 혼신을 다한다. ●일과 사람들(오후 8시20분) ‘생생 직업속으로’에서는 전국의 각 관광 명소에서 관광객들의 우리 문화 이해를 도와주는 ‘관광 안내원’의 세계를 살펴본다.‘신바람 도전기’에서는 올해로 16년째를 맞는 2004 춘천마임축제를 위해 1년을 준비해 온 축제기획자 권순석씨를 축제 현장에서 만나본다. ●실제상황(오후 10시50분) 조선족들은 뿌리는 한국이지만 국적은 중국이다.다급하게 부평 경찰서를 찾은 조선족 여성.자신의 남편이 ‘해결사’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신고를 하는데….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피해자가 반신불수가 되고 형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부평서 형사들의 ‘조선족 해결사’소탕작전은 성공할 것인가. ●외국인 대설전(오후 7시5분) 세계 각국에서 온 35명의 외국인이 총 출동한다.취할 때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35명의 외국인이 털어놓는 한국인들과의 술자리 고백.러시아의 보드카,프랑스의 와인 등 각국의 술 문화와 더불어 외국인들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의 음주문화에 대해 토론한다. ●인간극장(오후 8시50분) 남해에서 남편은 결혼식 앨범을 찾아온다.남편이 들고 온 결혼식 앨범을 보며 아내는 울다 웃기를 반복한다.병원 생활은 다시금 시작되고 아이들 챙기랴,아내 돌보랴 남편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고심 끝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지만 한수는 불안해하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현장르포 제3지대(밤 12시) 부산 외국어대학교 동양어대 학생 150여명은 지난 5월28일부터 31일까지 대마도의 가미아가타란 마을에서 대대적인 쓰레기 청소에 나섰다.대부분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쓰레기를 치우기가 어려운 곳이었다.국경을 넘나드는 이들의 활동을 밀착 취재한다. ˝
  • ‘한인 러시아 이주’ 기념관 짓는다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에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관련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동북아평화연대와 연해주물결운동,고려학술문화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일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준)’를 발족,본격적인 건립비용 모금활동에 돌입했다. 동북아 평화를 열어갈 한·러간 우호증진과 잃어버린 구한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고려인들의 민족 문화를 기리기 위해서다. ●한·러 각계인사 대거 참여 추진위에 따르면 기념관은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市)에 위치한 건평 2000평 규모로 정보화교육센터와 한글교육센터,외래병원,문화극장,이주역사관 등의 시설을 갖춘 문화교육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기념관은 연해주에 거주하는 4만여명의 고려인들의 상징물이 될 전망이다. 건물은 우수리스크 시로부터 49년 무상임대로 마련하며,올해 10월부터 리모델링(개보수작업)을 거쳐 내년 10월중 개관할 예정이다.40억원에 이르는 건립비용은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모금을 통해 마련된다. 추진위에는 한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추진위에는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와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부영 전 국회의원,장치혁 전 고합사장,이화영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조규향 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장 류보미르 러시아 연방의원과 김니콜라이 우수리스크 민족문화 자치회 회장,김영웅 전 러시아연방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고려인의 독립정신 기린다” 발족식에서는 러시아 이주 140년 역사를 되새기는 심포지엄이 열려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광규 재외동포이사장은 ‘고려인 이주 140주년,그 역사의 의미’와 ‘고려인 이주 140주년 한국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특히 고려학술문화재단은 1870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연해주 군무지사와 지방관들이 한인 이주 및 정착 대책을 협의한 공문과 편지를 공개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철종 13년) 10월 함경도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한 것이 최초다. 이후 한인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러시아 정부도 1879년 4월 이전에 한인들에게 거주증을 발급하고 식량까지 지원하는 등 한인 정착에 적극 개입했다. 재단측은 또 고려학술재단이 지난 97∼99년 국립역사문서 보관소에서 입수,‘극동문서 자료집’을 번역 발간했다. 여기에는 구한말 한인 의병관련 자료를 비롯해 독립운동,한국어 교육,한러·외교 등 러시아 지역의 한인 민족운동사 관련 자료가 담겨져 있다. 이광규 재외동포이사장은 “기념관은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는 고려인이 당당한 러시아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조선족,남북한이 화합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레저+α]

    ●백두산 야생화 트레킹 상품 판매 세일여행사는 한국의 최고봉인 백두산 야생화 트레킹 상품(4박5일)을 판매한다.중국 연길을 거쳐 서백두 야생화 군락지를 돌아본후 청석봉,백운봉,소천지,북백두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다.백두산 자연사박물관,두만강 발원지,용정,양강도도 돌아본다. 조선족인 유연산 작가와 장백산보호국 생태팀의 야생화전문가가 가이드로 나선다.백두산에는 6월 중순부터 3개월간 노란만병초,백두산 철쭉,금매화,큰원추리 등 야생화들이 꽃밭을 이룬다.23,30일,7월7일,14일 4차례 출발하며,차수당 인원은 30명.선착순 마감한다.참가비는 89만원.(02)737-3031. ●630여개 초·중고 동아리 한마당 과천 서울랜드는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27일부터 5일동안 ‘2004 봄 서울학생 동아리 한마당 축제’를 연다.서울시내 630여개 초·중·고 동아리가 서울랜드내 6개 공연무대와 전시관에서 공연 및 놀이마당,연극마당을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관람객들을 위해 풍물놀이 및 민속놀이,은점토공예,천연염색 등 15가지 체험마당도 마련했다.(02)504-0011. ●아인스 월드 새달부터 요금할인 세계 유명 건축물 테마파크인 부천 아인스월드는 6월부터 야간 및 주중 요금을 대폭 할인한다.6시 이후 입장자는 기존의 1만 4500원에서 8500원으로,주중요금은 1만 2500원으로 각각 요금을 내린다.6월 한 달간 매주 일요일엔 어린이들이 직접 제작한 악기로 연주하는 동요 합주 및 율동을,인천 YWCA 어린이 요들단이 감미로운 요들송을 들려준다. ●홋카이도 골프 패키지 운영 ㈜다락레져센타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남서쪽에 위치한 루스츠리조트에서 골프를 즐기는 3박4일 패키지를 운영한다.루스츠리조트엔 72홀 규모의 골프장과 호텔,온천대욕탕,실내외 파도풀장 등이 갖춰져 있다.삼복더위에도 섭씨 20도 정도로 날씨가 서늘하고 장마와 태풍도 거의 없어 골프를 즐기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항공료와 호텔 숙박,54홀 라운딩,식사,전동카트비를 포함해 109만원.7월 이후 성수기엔 30% 요금이 오른다.(02)7575-075.˝
  • 이명랑·심윤경 장편 나란히 출간

    문단의 촉망받는 젊은 여성작가 이명랑(31)과 심윤경(32)이 나란히 장편 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실천문학사)과 ‘달의 제단’(문이당)을 냈다.소재와 작품 속 시공간은 다르지만 성숙한 시선으로 삶의 본질을 캐려는 눈길은 닮았다.둘다 자기만의 독특한 문체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보여준다. ●‘나의 이복형제들’ 2년 전 ‘삼오식당’에서 영등포시장 상인들의 일상생활을 능청스러운 해학과 기지로 그리면서 삶의 난장을 빼어나게 묘사했던 이명랑.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시장 안에서 더 밑으로 내려갔다.시장 상인들은 배경음악 정도로 뒷전에 처리하고 떠돌이 일용직 등 더 버림받고 주변부에 놓인 인물들의 삶을 돋을새김한다. 소설은 따로 읽어도 자연스러운 여섯편의 에피소드로 이뤄졌다.신내림의 운명을 포기하고 집을 나와 떠도는 열일곱살 소녀 영원을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녀의 눈에 비친 신산한 삶을 정밀묘사한다. 서울상회 ‘협동합시다’ 아저씨의 배려로 과일가게에서 일하는 영원에게 ‘깜뎅이’ 인도인 노동자,근육수축병에 걸린 불구의 춘미 언니,조선족 다방 여종업원,난쟁이 왕눈이 등은 모두 애증이 교차하는 ‘이복 동생’이다. 영원은 그들 모두가 징그럽고 눈에 거슬리는 존재라 처음에는 뜨악하게 반응하지만 갈수록 그들의 상처에 공감한다.나아가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친구·동생·누이처럼 상처를 달래주고 생의 의지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한다.겉으로 보기엔 비루한 삶 속에서 생의 열정과 의지를 발견하는 작가의 노력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달의 제단’ 2002년 성장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심윤경의 상상력이 이번엔 고색창연한 세계로 뻗었다.종손으로 문중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할아버지와 서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손자의 갈등을 축으로 상식을 넘어서서 명분에 집착하는 빗나간 열정의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의 두 이야기를 넘나들며 진행된다.바람둥이 생모,자살한 아버지 등의 태생적 상처를 지닌 종손 상룡과 문중의 전통에 대한 맹목적 애정을 지닌 할아버지의 갈등이 한 축이고 다른 하나는 상룡의 10대 조모인 안동김씨가 친정 할머니와 주고받은 언찰(諺札)이다. 상룡이 해독한 편지는 가문의 계통이 의심스러운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맹목적 열정과 그것이 부른 희생을 증언한다.문중의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할아버지의 강요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혼하고 재혼한 뒤에 자살한 상룡의 아버지와 편지 속 안동김씨 할머니가 아들과 서방을 건사하지 못한 이유로 시아버지에게 자진하라는 명을 받는 것은 맥이 통한다. 언문 형식의 편지를 끈질기게 해석한 작가의 노력에 힘입어 세대를 달리한 신구 가치의 대립이라는 본질은 현재형으로 다가온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한민족글마당 대상 송원희씨

    국내외 한민족 문인들에게 시상하는 제2회 한민족글마당 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소설가 송원희(77)씨가 선정됐다.해외문학상 수상자로는 중국작가협회 회원인 조선족 평론가 김성호(48·옌볜작가협회평론가위원회 주임)씨가 선정됐다.한민족글마당에는 시인 정공채,소설가 유재용 유금호 임병애 강준용씨 등이 참여하고 있다.˝
  • 현존 最古 장군총사진 공개

    최소한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 최고(最古)의 장군총 사진이 공개됐다. 우리가 장군총으로 알고 있는 이 무덤이 고구려 장수왕릉으로 확인된 만큼 중국과 일제가 우리 역사를 의도적으로 폄하해 부여한 ‘장군총’이라는 능명 대신 왕릉임을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경대 서길수(고구려연구회 회장) 교수는 25일 최근 자신이 중국 조선족 동포 허창흘(66)씨를 통해 입수한 장군총 사진을 공개하고 “이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허씨의 조부가 일제에 의해 3·1운동 직후 독립운동 혐의로 붙잡혀 3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출옥한 뒤 행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최소한 1919년 이전에 찍은 현존 최고의 장군총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당시의 사진은 이후 일본 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찍어 일제시대에 책으로 소개했던 것”이라며 “이 사진은 우리 민족이 장군총을 배경으로 찍은 최초의 사진으로,이는 이 왕릉이 당시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소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사진은 장군총을 배경 삼아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과 한복을 입은 주민 157명이 함께 찍은 것으로,일부 훼손된 장군총의 계단형 석축과 머리 부분의 우거진 나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 교수는 “사진을 제보한 허씨가 이 무덤을 아직까지 ‘황제무덤’으로 지칭하고 있었으며,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도 ‘황제묘(皇帝墓)’로 적혀 있다.”고 소개하고 “최근 중국측 연구에 의해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능임이 확인된 마당에 이를 장군총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
  • 한국인 中서 사형 대기

    2001년 9월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 신모(당시 41세)씨가 사형당한 데 이어 오는 28일 또 다른 한국인 S(64)씨가 중국 현지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S씨가 중국에서 조선족 자매 2명을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뒤 사형이 최종 확정돼 28일 집행될 예정이라는 통보를 최근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S씨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에서 내연관계에 있던 조선족 자매를 흉기로 살해한 뒤 2002년 11월 체포돼 지난해 7월과 12월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이 선고됐다.또 중국측은 최근 최종단계인 최고인민법원의 사형 비준까지 마쳤다. 정부 관계자는 “주중대사관 등 외교 통로를 통해 S씨의 감형,형 집행유예 등 대책을 다각도로 모색했으나 죄질이 중한 데다 중국의 사형집행 의지가 완고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
  • [탄핵기각] 해외 각국 반응

    |워싱턴 백문일·도쿄 이춘규·베이징 오일만·파리 함혜리 특파원|해외 언론들은 14일 CNN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기각을 결정하는 과정을 생중계하는 것을 비롯,헌재 결정 및 노무현 대통령의 업무 복귀를 일제히 긴급뉴스로 타전했다.일부 외신은 헌재의 노 대통령 선거법 위반 인정은 정치적으로 ‘가벼운 꾸지람’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각국 정부도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헌재의 기각결정은 잠정적으로 한국의 국가신인도 등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미 국무부는 13일 짤막하게 발표한 성명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며 “앞으로도 양국간 협력을 심화시키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성명은 특히 “이라크의 안정과 발전에 두 나라가 공유한 이익과 6자회담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계속 긴밀히 협력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이날 아시아재단의 회장인 리처드 홀브룩의 말을 인용,“노 정권의 첫번째 이슈는 이라크 파병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이라크에 파병 대신 자금을 지원하자고 거론한 것을 상기시키며, 노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라크 문제로 대통령이 곤란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총선에서의 승리로 노 대통령은 그의 정책을 실현할 전례없는 권한을 갖게 됐지만 “주요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멀리하지 않으면서도 젊은층이 지지하는 대북 관계개선을 조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북핵 해법에 노 정권과 부시 행정부는 뚜렷한 이견을 보이는 와중에 열린우리당이 이라크에 3600명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재검토하라고 압박중이라고 전했다.특히 미국내 다수 한 반도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한국에 ‘차분한 정치’를 주문했다.피터 벡 한국기업연구소(KEI) 연구원은 “노대통령은 이번 탄핵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라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 대중과 투자자들의 (정치불안에 대한)우려가 사라져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고무적인 신호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 14일 중국 중앙TV방송인 CCTV(中央電視臺)가 헌법재판소가 노 대통령의 국회 탄핵안을 기각 판결하는 장면을 생중계했다. CCTV4는 사회과학원의 조선족 연구원인 박건일(朴建一) 박사와 왕린창(王林昌) 인민일보 전 서울 특파원간의 대담 프로에서 탄핵안의 국회 가결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분노와 여당의 총선승리 등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기각은 여론상 대세였다.”고 진단했다. ●일본 노 대통령의 복권으로 인해 급작스러운 대내·외 정책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면서도,일본과 밀접하게 관계된 이라크 추가 파병이나 남북관계의 급진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교도통신은 “이번 결정은 탄핵에 반대하는 민의를 반영한 것”이라면서 “노 대통령이 남은 4년의 임기에서 개혁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을 확립했다.”고 평했다.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이라크 파병 결정이 뒤집어질 수도 있고,남북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도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BBC 방송은 14일 노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음으로써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인정됐지만 파면을 시킬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 못돼 탄핵안이 기각됐다고 설명하고, 노 대통령은 오는 2008년까지 임기인 대통령직에 즉각 복귀하게 됐다고 전했다. 방송은 정치분석가들의 의견을 인용,복권된 노 대통령은 대북관계를 포함한 대미 관계에서 보다 독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ip@˝
  • 칭다오 총영사관 진입 탈북자4명 中경비가 공안에 넘겨

    탈북자로 보이는 남녀 4명이 19일 중국 주재 한국 칭다오 총영사관에 진입했으나 현지(중국인) 경비들에 의해 중국 공안에 넘겨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9시 좀 지나 탈북자 4명이 칭다오 총영사관 민원실 문 뒤에 숨어 있다 경비들에 의해 중국측 관할 파출소에 이송됐다.”면서 “민원실 창구 쪽에 한국인 영사들이 없어 탈북자임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국자는 “현지 경비원들이 문을 열었을 때 이들이 안으로 뛰어들어 왔으며 신분을 물었으나 밝히지 않고 웅성거리기만 해 공안에 넘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그는 영사들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중국측에 신분 확인 및 본인들이 희망한다면 서울 송환을 허용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탈북자 최진숙(48)씨의 남편으로 서울에 먼저 정착한 김은종(51)씨는 “영사관내 한족과 조선족 직원들이 탈북자임을 알고서도 중국 공안에 넘겼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공안에 넘겨진 탈북자는 처 진숙씨와 현역 북한 군인인 아들 영민(26)씨,딸 영화(21)씨,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국행을 시도한 처녀 1명(19)이라고 소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브로커 농간에 中탈북자 사살”

    탈북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 관계자는 14일 “지난 2일 중국에서 탈북자들이 몽골로 집단 탈출을 시도하다 1명이 국경수비대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20여명이 체포·행방불명된 사건은 현지 브로커가 약속을 어기고 무모한 탈출을 시도하다 빚어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한국계 외국인(45)인 이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북부 국경도시인 만저우리(滿洲里)를 방문하고 이날 밤 귀국,“체포된 탈북자 17명은 중국 국경변방대대(국경수비대)에 수감돼 추위와 강제 북송 등에 대한 불안 등으로 떨고 있고,4∼5명은 단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체포된 탈북자 중에는 각각 14세와 17세 된 자신의 북한 양아들 2명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전도사는 이와 관련,“당초 중국 국경변방대대 차량으로 탈북자들을 몽골로 탈출시키기로 하고 브로커들에게 25만위안(한화 3700여만원)을 건넸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조선족 브로커 전모(32) 씨가 국경변방대대 차량이 아닌 일반차량 1대와 운전기사 4명만 보내고 자신은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하루835쌍 결혼·458쌍 이혼 ‘절반의 실패’

    마(魔)의 11년차? 우리나라가 지난해에도 ‘이혼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이어갔다.인구 1000명당 3.5쌍이 갈라섰다.전년 대비 이혼 증가율로 따지면 외환위기 여파로 이혼 몸살을 앓았던 1998년 이후 최고치다.이웃 일본(2.3쌍)과 비교해도 1.5배나 된다.결혼후 이혼에 이르는 평균 기간은 11.4년이었다.특히 ‘생계형 이혼’이 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결혼 건수는 1000명당 6.3쌍으로 10년째 줄어드는 추세다.결혼시기도 갈수록 늦어져 남자의 평균 초혼연령이 처음으로 서른살을 넘어섰다.총각과 이혼녀의 결합,중국인과의 국제결혼도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03년 혼인·이혼 통계결과’에 비친 우리나라 부부의 자화상이다. ●결혼 줄고 이혼 늘어 하루 평균 835쌍이 결혼하고 458쌍이 헤어졌다.시간당 34.8쌍이 웨딩마치를 울리고,19.1쌍이 이혼도장을 찍은 셈이다.전체 혼인부부는 30만 4900쌍으로 전년보다 0.6%(1700쌍) 감소했다.독신 선호 등 결혼관이 바뀐 탓도 있지만,출산율 감소로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인구가 전년보다 11만 8000명이나 줄어든 탓이 크다.혼인 인구 감소는 또다시 출산율 저하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성장 동력인구 감소’라는 경제·사회 문제를 초래한다. 전체 이혼부부(16만 7100쌍)는 전년 대비 15%(2만 1800쌍) 증가했다. 1000명당 이혼부부(3.5쌍)는 10년 전보다(1.3쌍) 세배 가까이 늘었다.결혼관습 등이 달라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러시아(5.3쌍 2001년 기준) 미국(3.8쌍 2003년 잠정치) 등을 제외하면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이혼율이다. 혼인이 가능한 15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1000명당 이혼부부는 4.3쌍으로 불어난다.‘이혼전 상담절차 의무화’라는 정부 대책이 효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돈 때문에 이혼’,환란 초기의 3.9배 돈 때문에 헤어진 부부도 2만 7400쌍이나 됐다.전년(1만 9700쌍)보다 39% 증가했다.이혼사유 순위에서도 ‘경제문제’(16.4%)가 고부 갈등 등을 포함한 ‘가족간 불화’(13.0%)를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1위는 여전히 ‘성격차이’(45.3%).경제문제로 인한 이혼비중은 외환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1997년(4.2%)에 비해 3.9배나 불었다.경기침체로 생계형 이혼이 다시 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황혼이혼’과 ‘총각-이혼녀 결합’도 꾸준히 늘고 있다.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가 이혼하는 비율이 전체 이혼부부 가운데 17.8%를 차지해 전년보다 2.1%포인트 증가했다.이혼 또는 사별한 여자와 총각 남자의 결혼은 전체 결혼부부 가운데 5.8%를 차지해,‘재혼남-초혼녀’ 비중(3.9%)을 6년째 앞질렀다.줄어드는 초혼과 달리 재혼이 계속 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결혼부부 열쌍중 한쌍은 신랑·신부 모두 재혼이었다. 인천광역시는 하루 31.5쌍이 이혼해 전국 시·도를 통틀어 수년째 이혼율 1위 자리를 지켰다.20∼30대의 젊은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탓으로 풀이된다. ●중국인과의 국제결혼 급증 외국인과 국제결혼한 부부는 2만 5658쌍으로 전년보다 61.2%(9745쌍)나 늘었다.특히 중국인과의 국제결혼(7313쌍→1만 4572쌍)이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초기에는 농촌총각과 조선족 여성의 결혼이 대부분이었으나 지난해에는 한국 여자와 중국 남자의 결혼(927쌍)이 1년 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통계청은 1996년 체결된 한·중 양해각서가 지난해 7월부터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면서 중국인과의 국제결혼 절차가 대폭 간소해진 여파라고 분석했다. 안미현기자 hyun@ ˝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8) 중국 베이징

    한달 보름간 무더운 동남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아직 혹독한 추위가 남아 있는 중국으로 날아왔다.방콕에서 티베트로 바로 갈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한창 발전의 중심에 있는 베이징(北京)에는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계획을 수정했다.하지만 막상와서 보니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고 교통수단이며,숙소며,외국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하다. 중국에는 요즘 대학가를 중심으로 영어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아직도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단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헬로나 생큐,심지어 OK도 안 통한다.국제 언어인 보디 랭기지도 별 효력이 없다.길을 물으면 차렷 자세로 손가락이나 고개로 방향도 가리키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중국어로 얘기한다.잘 모르겠다고 영어와 몸짓으로 다시 물어봐도 또다시 중국어만 돌아올 뿐이다.중국말 멈추는 데에만 30초가량 걸릴 정도니 애초 영어로 조금이라도 의사소통을 할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국에서 중국어 말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 배운 한문실력을 총동원해서 나누는 필담뿐이다.동남아에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남편이 중국에서만큼은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화를 나눈다.옛날에 한자깨나 써 보았는지 자기 없으면 길이나 찾을 수 있겠느냐며 큰소리다. 중국에는 간판이나 유명 외국상품 이름에서도 외래어나 영어 알파벳을 찾아보기 어렵다.모든 상표나 단어가 다 한자화되어 뜻글자로 옮겨지고 그 글자를 중국말로 발음하기 때문에 KFC나 베스킨라빈스 같은 외국 브랜드도 중국에서는 그렇게 발음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KFC는 ‘컨더지’라고 하고 간판에는 켄터키 할아버지 옆에 ‘肯德基’라고 쓰여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다.세계의 대도시는 대부분 강을 끼고 있는데 베이징에는 강이 없다.그만큼 옛날부터 물이 부족하고 귀한 곳이다.그런 연유에서인지 정말로 잘 안씻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말쑥한 양복 겉옷을 걸친 사람도 ‘머리를 적어도 며칠은 안 감았다.’는 표시가 확 날 정도이다. 내가 묵는 숙소 지하에는 머리안마를 해주는 곳이 있다.의자에 앉은 채로 샴푸와 물을 조금씩 묻혀가며 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머리를 기가 막히게 감겨주는데,이 역시 물이 귀한 환경에서 생겨난 기술인 듯싶다. 안마 얘기가 나와서 얘기지만,베이징에 온 뒤로 거의 하루 걸러 안마를 받았다.안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안마가 거의 생활화되어 있다.종류도 다양해서 전신마사지,얼굴마사지,발마사지,등,허리,손,귀,목 등으로 다양하고 값도 저렴하다.한 동네 안에 종류별로 여러 개의 가게가 있는데 매일 사람들이 기다릴 정도로 늘 붐빈다.이곳 마사지는 혈을 짚어주는 마사지라서 처음 받고 나면 온몸이 조금 뻐근하지만 한번 받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생활속에 깊이 들어있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공원문화이다. 아침저녁으로 크고 작은 공원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사교댄스,에어로빅,태극권을 각각의 음악에 맞춰 연마하고 따라하는데,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이 수십명씩 줄을 맞추어 태극권을 연마하는 모습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맨손으로 하는 종류와 장검을 들고 하는 것,그리고 부채를 들고 하는 종류가 있는데 가끔 멋있는 무술 동작을 보면 여기가 소림사인지 동네 공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중국에서는 스님들이 비질하는 것만 보아도 무술하는 것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앞으로 15년 안에 세계 3대 강국이 된다고 하는 중국,그 중에서도 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수도 베이징.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이 나라의 10년후,20년 후가 궁금해진다. ■ 조선족 신여성 린원위씨 주중 한국기업 ‘IT-SANHA’에서 경리(우리나라의 과장급)로 일하고 있는 조선족 신여성 린원위(林文玉·38)씨를 만난 날은 마침 ‘부녀절’(3월8일)이었다.중국에는 직업을 갖고 일하는 여성이 워낙 많아 사회적으로 이날을 크게 기념한다.직장여성들이 회사에서는 사장이나 남자 동료들에게 선물도 받고 집에서도 이날만큼은 특별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다는데,육아는 어떻게 하나요. -아기를 보통 생후 4개월 때부터 학교나 일하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에 맡기고,집안일도 남편과 나눠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여성의 95% 이상이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 시스템이 여자들에게 편리하게 되어 있죠.학교 교육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엄마 아빠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해요.점심도 급식으로 대부분 학교에서 해결해주고,기숙사 시설도 초등학교부터 잘 갖추어져 있어서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중국사람들은 자녀를 한 명만 갖는데. -현재 자녀가 두 명 이상이면 벌금을 무는 산아제한 정책이 있는데 다음달부터는 베이징에서 ‘한자녀 갖기 정책’이 완화된다고 해요.조선족처럼 소수민족은 두명까지 허용되었는데 그것도 결혼신고하면 한 명 낳을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고,첫째 아이가 만 4살이 된 후에 둘째를 가질 수 있는 허가증을 다시 받아야 하지요.그런데 요즘 도시에서는 워낙 자녀를 한 명만 두다 보니 아이들이 귀하게 자라서 버릇이 없는 것 같아요. 베이징에서 소수민족으로 직장생활하는 것이 어떤지.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중국내에서 사회생활하는데 차별받거나 특별히 어려운 건 없어요.하지만 중국회사보다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보수도 더 많고,전공과 언어면에서 능력을 두배로 발휘할 수 있어서 선호자지요.˝
  • 동북공정 핵심주역은 리톄잉·왕뤄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동북공정의 고문은 리톄잉(李鐵映·67)과 샹화이청(項懷誠·64)이다.리톄잉 고문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출신으로 체코슬로바키아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했고 올 1월까지 장관급인 중국사회과학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샹화이청은 장쑤(江蘇)성 우장(吳江) 출신으로 산둥(山東)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98년 15기 중앙위원으로 재정부장까지 오르는 등 주로 재정·경제분야에서 활약했다. 동북공정 영도소조 조장(총책임자)으로 임명된 왕뤄린(王洛林·65)은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으로 베이징(北京)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93년 중국사회과학부원장으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거쳤다.고문과 조장 등 동북공정 핵심 3인 모두가 학술분야와 동떨어진 이공계와 경제분야의 인물로 동북공정 자체의 강한 ‘정치색채’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부조장은 헤이룽장(黑龍江)성 양광훙(楊光洪) 당부서기이며 유일한 조선족인 지린(吉林)성 전철수(全哲洙) 부성장도 부조장을 맡고 있다.
  • [이런 책 어때요] 재중동포 조선족 이야기/설용수 지음

    조선족은 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중국의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한족(韓族)혈통의 중국 국적 주민을 말한다.중국의 조선족 동포는 200여만명.1억 600여만명에 이르는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가 열한 번째로 많다.그들은 “한국은 고국(故國)이 아니라 고국(苦國)”이라고 말한다.그만큼 고통스러운 나라라는 뜻이다.이 책은 조선족의 내력과 실상을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밝힌다.세계일보 고문인 저자는 조선족들을 한민족으로 바라보고 조선족이 아니라 ‘재중동포’라는 올바른 호칭을 찾아주는 게 상호화해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한다.1만원.
  • [기고] 백범·유관순 열사를 화폐 모델로/홍원식 (사)백범정신실천연합 사무처장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적 출발 시점을 1919년 ‘3·1민족저항권행사일’로,법적 태동 시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탄생일(1919년 4월13일)로 하고 있다.헌법의 ‘국가태동일’ 명시는 단순한 상징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 법적 의미를 내포한다.일제하는 물론 광복 후 ‘미·소 군정’하에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통일한국’에서의 보상기준 시점으로 검토 가능할 것이다. 또 1948년 남·북한 정부수립 이후 발생한 토지몰수 등 민족 성원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 시점으로 유력시될 수 있다.당장에 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족을 비롯한 재외동포의 국적 부여 시점으로도 선택할 여지가 있다.3·1절은 역사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매년 돌아오는 3·1절을 맞으면 33인보다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유관순이다.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생으로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한 처녀 독립운동가.‘3·1항거’로 이화학당이 휴교하자 유관순은 충남 천안으로 귀향,예배당을 중심으로 서울의 독립시위 상황을 설명하면서 마을유지들을 규합했다. 그 결과 같은해 음력 3월1일 아우내(병천)장터에 수천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이때 부모를 비롯해 많은 인사가 피살되었으며,유관순은 주모자로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독립만세를 부르며 옥중항쟁을 벌이다 옥사하였다. 이 ‘순백의 독립열사’가 뜻있는 이들의 마음에 ‘영원한 누나’로 자리잡고 있다면,민족의 영원한 사표로 자리잡은 사람도 있다.보·혁을 막론하고 제반언론의 여론 조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민족지도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 그 자체라 할 백범 김구 선생이 그 분이다. ‘3·1민족저항운동’을 기폭제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27년 역사는 파란만장하다.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신탁통치를 간청하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져 ‘자의적 직무집행’을 이유로 탄핵·파면되면서 임시정부의 고난은 예견됐다.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임시정부를 떠나거나 배반의 길로 돌아섰다.그러한 와중에서 시종(始終)을 임시정부와 함께하였을 뿐만 아니라,세계인의 관심 대상에 들지 못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통해 전세계에 알리는 쾌거를 이룬 백범. 민족의 광야에 남긴 백범의 거대한 발자국은 광복 직후 ‘미·소 점령군’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그를 경계하는 요인이 됐다.그런데도 백범은 “그 어떠한 이념도 민족의 하나됨보다 우선할 수 없다.민족의 분열을 막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독립운동”이라고 가슴에 호소하며 48년 남북연석회의를 주도하는 등 전국을 순회했다.그는 비명에 우리 곁을 떠났으나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한국인’으로 겨레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다. 33인도 아니면서 3·1절이면 사무치는 정으로 생각나는 백범과 유관순 두 분.기왕에 새 화폐를 만들 계획이라면 이 두 분을 그 주인공으로 삼으면 어떨까.동서남북으로 갈라진 것에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소위 보수니 진보니 하며 세를 지어 ‘내전’에 휩싸여 있는 지금,새 화폐를 볼 때마다 두 분의 얼굴을 만난다면 민족대통합을 위한 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남녀 평등주의에도 부합할 듯해서 하는 제안이다. 홍원식 (사)백범정신실천연합 사무처장˝
  • 中, 탈북자 강제북송요건 완화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CNKR·본부장 김상철)측은 3일 중국 정부가 자국내 탈북자 중 범죄혐의가 없고 비교적 안정된 정착생활을 영위하는 탈북자에 대해 체포와 강제 북송을 중지하는 내부지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임영선 CNKR 사무국장은 “중국은 최근 탈북자라면 무조건 체포,송환했던 종전 방침을 일부 완화해 중국인이나 조선족 등과 결혼·동거하고 있는 탈북 여성,생계유지를 위해 일손이 부족한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탈북자 등은 체포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관련 기관들에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공안이 체포 및 강제북송하는 탈북자의 범위는 절도·살인·폭력 등 범죄자,월경 기도자,외국공관 진입 시도자 등으로 제한됐다.”며 “중국 공안 관계자들은 이같은 사실을 오히려 국내 탈북자 관련 단체들에 흘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중국의 우리역사 왜곡 일본보다 심해”

    “중국이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세상 살다보면 욕심을 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쳐요.” 1일 고구려 연구재단이 공식출범하기에 앞서 지난 주말 서울 고려대 법학관 1층 교수실에서 만난 김정배(64·고려대 사학과 교수·임기 4년)재단 초대이사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중국측이 느닷없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들고 나와 고구려사를 자신의 지방사로 만들려는 데 대한 분노가 역력했다.교수실은 얘기를 나눈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노학자가 내뿜는 열기로 뜨겁게 달궈졌다. 김 교수는 조목조목 중국 주장의 부당성을 꼬집었다.“그들의 주장대로 우리 반만년의 역사에서 고구려 부분을 빼면 200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민족이 됩니다.또 단지 역사적인 측면을 넘어 향후 국경이라는 문제까지 비화될 수 있어요.” 중국 주장 대로라면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했으므로,현재의 북한 역시 중국 땅이 된다.한국은 고작 남한 땅으로 좁혀진다.노학자의 차분하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톤이 높아졌다.“세계적으로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한 예가 없습니다.일본도 이보다 심하지 않았어요.일본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여기 비하면 양반입니다.”(임나일본부설이란 왜가 4세기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 ●고구려 중국사되면 우리땅은 남한 뿐 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동안 책상위를 뒤져 자료 하나를 보여줬다.“이 사람이 실제 동북공정의 지휘를 맡고 있는 마대정(馬大正)인데,신강쪽에서 변방문제를 주로 연구하던 사람입니다.이런 점을 봐도 이들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중국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나라인데 21세기에 이런 패권주의로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북공정에는 조선족 문제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진단했다.“국내의 불법체류 조선족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통치기반을 흔드는 중대사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사실 감정적인 측면을 벗어나 법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중국인입니다.중국으로서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김 교수는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중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포석의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다.“한국이 경제력이나 정치적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 교수는 향후 재단의 활동을 연구와 현실참여 두가지 모두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를 위해 시민단체들을 지원할 방침이다.“시민단체들은 아무래도 행동을 중시해,이 문제를 널리 알리고 공론화하는데 맞으리라고 봅니다.외교문제가 걸린다면 상황에 따라 정책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도록 할 예정이에요.” 물론 시민단체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정·관계의 의견에도 귀를 귀울일 계획입니다.또 북한 학자들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해 통일·외교부 등과 연계해 합동조사나 세미나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중국과 맞부딪히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우리 작업이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비쳐져서는 안 됩니다.마치 영토분쟁의 문제로 발전하는 것은 양국에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영토분쟁으로 이어져선 안돼 그는 역사지키기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연구여건과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국내에서 고구려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겨우 14명 정도입니다.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고대사 연구를 하는 후학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겁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단숨에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없는 만큼 착실히 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예컨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만 보더라도 고구려라는 문헌과 말갈족이라는 것이 공존하는데,중국은 말갈족이라는 문헌만 택합니다.발해가 말갈족의 지방정권이라고 중국이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지요.하지만 고대사는 단지 사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당시 유물을 보면 고구려의 것이 대거 발견됩니다.그리고 어떻게 한 나라가 갑자기 세워질 수 있습니까.상식으로 말해야지요.” 비록 중국이 자국에 민감한 사료의 경우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든지 접근을 불허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는 부지기수라는 것이다.중국 러시아 몽골 등을 모두 뒤져 고구려 관련 자료를 모아 실증적으로 고구려가 한국사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김교수는 이번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외홍보라고 강조했다.“역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알리는 부분도 중요합니다.외국 연구기관 대학 등에 연구결과를 정기적으로 보내,고구려사에 대한 세계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입니다.” 아울러 고구려 역사를 지키는데 특히 북한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북한은 고구려를 뿌리로 삼고 있어요.심지어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역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고구려에서 고려로 정통성이 이어졌다고 봅니다.그런데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들의 지방사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중국과 담을 쌓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조만간 중국과 대화하기로 돼 있습니다.앞으로 학술회의나 대담 토론회 등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 등과도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국민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동북공정이란? ‘동북관련 지역이 역사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역임을 확인’하려는 이 작업은 지난 96년 중국의 국가기관인 사회과학원의 핵심연구과제로 추진되기 시작했다.‘학술은 대중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등의 원칙 아래 고구려사를 연구중이다. ●김정배 교수는 누구 한국사를 전공했다.단군학회를 첫 결성,단군을 신화에서 역사로 연구하는 단초를 쌓았다.고대 총장 시절 김일성대와 교류를 추진,두해째 평양을 오가며 고대사를 연구중이다.그는 한국사를 전공했음에도 몽골 등에 관한 저서를 여러권 냈다.이에 대해 “젊을 때 이것 저것하니까 주변에서 ‘왜 힘들게 그러느냐.’고 말렸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눈이 넓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점에서 그는 늘 프론티어 정신을 중시한다. 그는 “황야를 달리며 황무지를 일군 정신은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건 국제화시대에 통하는 정신”이라면서 “학생도 학자도 외국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박재범 사회교육부장 jaebum@˝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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