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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시각] 88서울과 08베이징/임병선 체육부 차장

    [데스크시각] 88서울과 08베이징/임병선 체육부 차장

    베이징 평원에서 쏘아올려진 불꽃들이 28개의 거대한 발자국을 밤하늘에 찍으며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으로 향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기자는 20년 전 서울로 돌아가고 있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꾸민 것이란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 장면에 압도됐던 게 사실이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안팎에 웅변하기 위해 ‘기획된’ 서울올림픽과 인권 탄압, 압축성장의 후유증인 양극화, 티베트·신장(新疆) 등 소수민족 문제, 수단 다르푸르 참극의 방관 등을 가리고 화려하게 개회한 베이징올림픽은 여러 모로 닮아 보인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엇비슷한 국가주도 스포츠의 공과(功過)에 생각이 미쳤다. 20여년 전 서울올림픽 유치를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이고 금메달 획득을 독전(督戰)한 것처럼 중국 역시 안마당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걸기’에 나섰다. 체조 등에서 중국과 종합 1위를 다투는 미국 언론이 이런 메달 드라이브에 삐딱한 시선을 들이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 역시 ‘국가’ 대신 프로 계약과 상업광고 출연 등 자본의 지원이 들어섰을 따름이란 점에서 이런 비판이 온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국 선수단이 12일 오후 9시10분까지 금메달 5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개로 204개 참가국 가운데 3위를 차지한 것도 중국의 메달 드라이브와 그리 멀어 보이진 않는다. 그런 의심을 부추긴 것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20여년 전 올림픽 유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컴백’이다. 수장의 공백이 길어져 ‘10(금메달)-10(종합순위)’ 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불식시킨 것이 선수나 지도자의 노력 덕인지, 드라이브 덕인지는 좀더 차분하고 깊이있게 분석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서울올림픽 이후 부쩍 높아진 민도(民度) 때문에 우리가 민주화의 심도를 깊이한 것처럼 중국도 올림픽 이후 개방과 민주주의의 내실을 다질 것인지를 둘러싸고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이 올림픽 이후 안팎으로부터 숱한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올림픽을 준비해온 지난 7년보다 훨씬 강렬하고 외면할 수 없는 압력 말이다. 다만 20년이란 간단치 않은 세월은 서울올림픽의 문제점을 단순히 베이징에 옮겨 놓지만은 않았다.56개 소수민족을 아우르려는 다짐이 개회식 문화공연에 녹아든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때때옷 한복을 차려입은 조선족 여인들이 부채춤을 추는 장면을 지켜본 서구인들이 우리 부채춤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오해할까 지레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성화 점화자로 체조 영웅 리닝을 낙점한 배경에 중국 스포츠 정책의 향후 비전이 담겨있다는 분석을 접하고는 솔직히 부럽고 놀라웠다. 뚱뚱한 리닝이 궈자티위창 관중석 상단에 펼쳐진 두루마리 위를 한바퀴 돌아 성화를 댕긴 장면은 처음엔 솔직히 ‘의욕 과잉’으로 보였다. 하지만 리닝의 이름을 내건 스포츠용품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각인시킨다는 중국 지도부의 야심이 작용했다는 지적을 전해 듣고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20년 전 정권 정당성을 인정받는 장으로만 쓰고 올림픽을 국가전략으로 활용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이 ‘10-10’ 목표를 초과 달성하더라도 이번 대회를 통해 건져냈어야 할 국가 전체의 목표가 무엇이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 체육계, 정부가 무엇을 해냈어야 했는가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단지 메달 순위 1위를 차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임병선 체육부 차장 bsnim@seoul.co.kr
  • [Beijing 2008] ‘찬란한 문명’ 화려한 군무·디지털로 재현

    세계적인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베이징올림픽 개회식 문화행사는 황허(黃河)문명으로 시작돼 5000년을 이어온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화려한 영상과 수천명의 군무, 첨단기법으로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오후 7시52분(이하 현지시간)에 시작해 9시7분까지 75분간 이어진 문화공연은 환희와 감동에서 출발해 전 인류의 희망으로 막을 내렸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의상과 형형색색의 폭죽은 중국의 웅장한 역사를 담은 대서사시를 더욱 빛나게 했다. 다양한 색채를 띤 빛의 향연과 사람의 몸짓과 함께 어우러진 대서사시는 관객들과 지구촌 TV시청자들의 눈을 시종일관 사로잡았다. 2008명의 고수들이 베이징의 올림픽 주경기장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에 등장해 중국 전통 타악기인 ‘부(缶)’를 두드리며 힘찬 시작을 알렸다. 흰색, 파란색 빛을 뿜어내는 북소리와 함께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8시 정각이 되자 메인스타디움을 메운 9만 1000여명의 관중은 100년을 참아온 뜨거운 함성을 내질렀고, 수만 발의 불꽃이 베이징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악대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인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를 힘껏 외치며 세계를 향해 환영의 뜻을 드러냈다. 베이징 시내 29곳에서 솟아오른 폭죽은 발걸음을 옮기듯 메인스타디움으로 계속 다가오며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이어 궈자티위창 내에서는 올림픽 오륜기가 입체적으로 세워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224명의 어린이 합창단이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들고 나와 단합의 이미지를 과시했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합창했다. ‘아름다운 올림픽’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문화 공연의 1부는 ‘찬란한 문명’이 테마였다. 제지술을 처음으로 발명한 중화 민족의 우수성을 잔잔하게 전하면서 두루마리로 말리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됐다. 곧이어 폭 147m에 달하는 거대한 두루마리가 실제 주경기장 한가운데 펼쳐지기 시작했다. 두루마리가 펴지자 그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인간 붓 역할을 하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두루마리를 스칠 때마다 중국 고유의 수묵화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중국의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활자인쇄술을 담아낸 공연이 이어졌다. 세계 유일의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중국의 한자를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 수많은 활자판 속에 사람이 들어가 역동적이고 규칙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며 중국의 자랑거리인 한자의 변천 과정을 그려냈다. 특히 ‘화(和)’자의 변천 과정을 통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제창한 ‘허셰(和諧·화합)’ 의지를 드러냈다. 공자의 3000제자로 분장한 공연단이 중국 고대의 책인 ‘죽간(竹簡)’을 들고 나와 ‘공자의 제자는 모두가 하나의 형제’라는 구절을 외치는 퍼포먼스로 올림픽은 세계인이 펼치는 화합의 축제임을 강조했다. 활자판들은 중국의 자랑거리인 만리장성으로 변모하며 갈채를 받았다. 이 공연이 끝나자 13개월 동안 구슬땀을 흘렸던 사람들이 활자판 밖으로 나와 해맑은 웃음을 드러내며 관중과 함께 호흡하기도 했다. 드넓은 바다와 대륙으로 가로지르는 비단길과 중국 전통 명화들이 두루마리 영상에서 펼쳐졌고, 중국 전통 음악인 ‘예악’이 관객들의 귀를 자극했다. 이어진 경극에서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진시황릉에서 1㎞가량 떨어진 유적지인 병마용을 표현해냈다. ‘영광스러운 시대’로 명명된 2부는 중국이 배출한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과 5살 어린이 피아니스트 라무쭈의 협연으로 시작됐다. 정치·종교·인종적 갈등과 차별이 전혀 없는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순서였다. 조선족·장족·위구르족 등 소수민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화합을 강조했다. 베이징의 옛 이름인 ‘연경’을 뜻하는 제비의 모습을 담아내는 군무가 함께 펼쳐졌다. 제비의 모습은 어느새 궈자티위창의 모습으로 바뀌며 탄성을 자아냈다. 이어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권 공연도 잔잔하게 이어졌다.2008명에 달하는 허난성 무술학교 학생들이 등장해 역동성을 불어넣기도 했다. 우주인이 베이징 밤하늘을 유영하며 등장한 뒤 궈자티위창의 바닥이 열리며 무게 16t, 높이 24m에 달하는 거대한 지구 모형이 떠올랐고, 와이어를 이용해 지구를 도는 지구인의 모습을 통해 역대 최장의 성화 봉송 과정을 재현하는 한편, 정치·종교·인종적 갈등과 차별이 전혀 없는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베이징 올림픽특별취재단 jenuesse@seoul.co.kr
  • [씨줄날줄] 백두산 공정/구본영 논설위원

    한·중 수교 직후인 1990년대 중반 백두산에 올랐던 적이 있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옌지 공항에서 출발해 장백폭포를 거쳐 올라가는 코스였다. 산정에서 천지를 내려다 봤을 때 가슴 한쪽이 벅차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최근 백두산을 다녀온 지인의 답사기를 듣고 씁쓸했다. 가슴 속에 묻어 둔 풍경과는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백두산 경내의 한글 표지판이나 안내문부터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오로지 장백산(창바이산)이란 중국 이름만 통용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2005년 백두산 관할권을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 지린성으로 바꾼 뒤 이뤄진 변화다. 이른바 동북공정의 일환인 ‘백두산 공정’의 산물인 셈이다. 엊그제 기자는 또다시 놀랐다.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백두산을 통째로 중국령으로 분류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다. 독도를 한국령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고쳐 파문을 일으킨 BGN이 백두산 천지도 중국 호수로 분류해 왔다니…. 우리가 일본의 독도 침탈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중국이 소리없이 백두산 공정을 진행해 온 결과가 아닐까. BGN의 분류로 인해 당장 백두산이 우리와 중국의 공동소유라는 국제법적 지위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게다. 그러나 중국이 백두산 공정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지만, 우리는 속수무책이란 점이 문제다. 특히 북한이 경제난으로 극히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천지의 주차장 건설 과정서 북측이 식량을 얻으려고 영토를 내주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니 말문이 막힌다. 땅부자인 러시아마저 우리 땅을 넘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두만강 하상(河床) 중간을 경계로 삼는 북한과 러시아가 국경 재획정에 착수했다고 한다. 두만강 수로 변화 탓이라지만 북한 쪽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문득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 믿지 마라, 일본놈 일어난다, 조선놈 조심하라.”라는 해방공간의 유행어가 생각난다. 한반도 주변 4강 중 그래도 미국은 우리 영토에 야심이 없어 그나마 다행일까. 금수강산을 지키려면 온 국민이 나서야겠지만, 외교부부터 인력·예산 타령하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베이징올림픽 가는 길] 친척집 머물 때도 24시간내 거주신고해야

    [베이징올림픽 가는 길] 친척집 머물 때도 24시간내 거주신고해야

    베이징에 갔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구금되면, 교통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설마’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막상 닥치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재중국 한인회가 마련한 ‘올림픽 안전 가이드북-2008 베이징으로 가는 길’은 훌륭한 지침서다. 기본 필수 회화와 지도는 물론 응급상황 처리 방법과 비상 연락망까지 각종 정보를 살펴보고 떠나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최근 출장차 중국 베이징에 왔던 박모씨는 묵고 있던 민박 집에서 공안의 불심검문을 받고 숙박 미등기로 파출소로 임의동행돼 장시간 조사를 받고 벌금 500위안(약 7만 5000원)을 납부한 뒤 풀려났다. 중국 출입국관리법은 외국인에게 중국 입국 후 반드시 거주신고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호텔 등 허가된 숙박업소에 묵을 때는 비치된 ‘임시숙박 등기표’만 작성하면 된다. 그러나 친척·친구 집이나 민박을 할 때는 ▲집 주인의 신분증 ▲집 주인의 임대차 계약서 ▲본인의 여권 등을 소지하고 관할파출소에 가서 임시 숙박 등록을 해야 한다. 도시는 24시간, 농촌은 72시간의 시간 기한이 있다. ●여권 분실하면 파출소 신고뒤 대사관 방문 특히 숙박 등기를 하지 않고 여권을 분실하면 더욱 곤경에 처할 수 있다.“숙박 등기를 하지 않으면 관할 공안당국으로부터 여권분실 증명서를 제때 발급받지 못하기 십상이고, 이로 인해 장시간 한국으로 귀국하지 못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한인회측의 설명이다. 여권을 분실하면 먼저 관할 파출소에 신고해 분실 증명서를 발급받고 대사관·총영사관을 방문해 신고해야 한다. 외국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지역을 여행할 때도 그 지역 공안기관에 여행증을 신청해야 한다. 가이드북은 “중국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세계 1위로, 도로 환경 및 교통 시스템, 운전자들의 운전의식이 비교적 덜 성숙돼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며 특별히 ‘교통사고 조심’을 당부했다. 사고가 발생하는 즉시 122 혹은 110으로 신고하고 대사관·총영사관에도 신고해 지원을 받는 게 좋다. 그러나 사고 관련 보상비 교섭이나 병원과 의료비 교섭 등의 업무는 영사관이 지원할 수 없는 범위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해외 여행시 필수 유의사항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공항에서 모르는 사람의 짐을 자신의 명의로 부쳐주거나 입국 통관 때 남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일 등은 절대 삼가야 한다. 반입금지 물품을 맡기는 경우가 있어 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사람이 공항에 영접을 나온 때도 경계해야 한다. 단체여행의 경우 가이드의 안내에 따르는 게 안전하다. 중국은 형법상 처벌 강도가 대단히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명심하고 스스로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가이드북은 또 관광지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중국 사람을 보고 한국 말로 흉보는 행동은 삼갈 것을 주문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 교포를 포함해 한국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조선족을 북한 사람, 또는 한국 국민으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언행도 적절치 않다. 조선족 교포는 피를 나눈 동포라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분명히 중국 국민임을 명심하라고 가이드북은 조언하고 있다. 지나치게 동정하거나 혹은 차별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공안에 구금되면 사법당국에 영사와 면담 요청 중국의 법 체계는 한국과 많이 달라서 한국에서의 상식으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예컨대 멈춰 선 자동차에 자전거가 와서 부딪쳐도 자동차 운전자에 일정한 책임이 부과되곤 한다. 가이드북은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금됐을 때 일단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현지 사법당국의 절차에 따르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모르는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문서에는 함부로 서명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우리 공관에 구금사실을 알리기 위해 현지 사법당국에 영사와의 면담을 요청해야 한다. 현지 언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사법 당국에 통역지원이 가능한지를 먼저 문의해야 한다. 체포구금 당시 부당한 대우, 가혹행위, 반인권적인 사항이 있었다면 영사와의 면담 때 이 사실을 알려 관계당국에 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 변호사비, 보석 소송비를 지불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정부가 운용중인 ‘신속 해외 송금지원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jj@seoul.co.kr
  • “북 진위는?” 비상걸린 현대아산

    현대아산은 3일 북한측이 금강산 지역의 불필요한 남측 인원에 대해 추방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하자 금강산 관광 중단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5주기를 맞아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대했으나 북 군부가 오히려 5주기를 하루 앞두고 강경 입장을 표명하자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비상대책위원장인 이강연 부사장을 비롯, 휴일에도 출근한 임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아산은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금강산 관광 중단이 개성 관광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촉각도 세우고 있다. 이강연 부사장은 “담화문 발표를 전후해 북측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전달받은 게 없다.”면서 “불필요한 남측 인원을 북측이 추방한다는 내용은 남측과의 기본 합의에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현대아산은 금강산 현지 비상인력 운영계획을 이미 지난달 사고 직후 수립해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금강산 현지 인력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태 진행에 따라 금강산 관광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의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현지 인력은 지난달 11일 금강산 피격 사망 사고 이후 3일까지 515명이 철수했다. 남측 인원 479명, 외국인 36명이다. 또 조선족 등 외국인들은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철수시킬 예정이다. 현대아산 직원 47명을 포함한 262명의 남측 인원은 현재 금강산에 남아 시설 유지 또는 관광 재개시 필요한 사전 준비를 점검하고 있다. 이날 남측의 개성 관광객은 256명으로 평소의 3분의2 수준에 그쳤다. ●윤만준 사장 오늘 금강산 재방문 한편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4일 임직원 30여명과 함께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금강산을 방문하기로 해 교착상태를 보여온 금강산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정부의 입장을 북측에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대아산 관계자는 “윤 사장이 정 회장 추모를 위해 방문하며 그 외에 다른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며 북측 인사와의 만남은 현재로선 정해진 게 없다고 부인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사설] 재외국민 참정권, 부작용 최소화해야

    장기 거주하는 해외 영주권자나 유학생, 상사 주재원 등 5만 9000여명이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투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입법예고됐다.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지난해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이다. 우리는 이 입법예고가 9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직선거법 및 국민투표법 개정의 전초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진정한 참정권이란 300만명에 이르는 재외국민 모두에게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깨끗한 한 표’를 행사하도록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재외국민은 미국시민권을 획득한 한국계 미국인이나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 내 조선족을 포함하는 ‘재외동포’와는 다른 개념이다. 법적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자이다. 재외국민의 주거지를 일일이 확인해 선거인 명부를 확정짓거나, 투표소 설치·인터넷 투표 적용 등 투표 방법에 따른 어려움이 눈 앞의 난제다.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에서 벌어지는 탈·불법선거운동에 대한 단속은 또 어찌할 것인가. 하지만 폐쇄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당리당략을 앞세워선 안 될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가 중에서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우리 나라를 비롯해 4개국에 불과하다. 완전한 참정권을 허용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철저한 사전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돼야 한다.
  • 동북공정 중심에 조선족 전시관 ‘활짝’

    동북공정 중심에 조선족 전시관 ‘활짝’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박물관(이하 옌볜박물관)에 조선족민속실이 31일 문을 연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7월 옌볜박물관과 문화교류협정을 맺은 뒤 그동안 조선족민속실의 기획 및 설계에 참여하고 비용을 지원했다. 옌볜박물관은 중국 정부가 선정한 100개 중점박물관의 하나로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문화와 역사를 다루는 핵심 박물관의 지위를 갖고 있다. ●6개 테마로 이주와 개척의 역사 조명 로비와 제1민속실, 제2민속실로 이루어진 1286㎡넓이의 조선족민속실에는 조선족의 삶을 보여주는 500점 남짓한 문화유산이 전시된다. 민속박물관은 조선족민속실의 개관을 앞두고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이 자신들의 문화 정체성과 역사를 확인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속학계는 조선족민속실의 설치가 국가기관끼리의 사업인 만큼 언급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 정체성을 민속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조선족민속실은 조선족 이주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기획의도 아래 모두 6개 주제로 이루어졌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에선 역경을 딛고 새로운 땅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이주와 개척의 역사를 사진을 중심으로 담았다.‘삶을 일구다’에선 쌀농사에 성공하여 벼의 북방한계선을 새롭게 그은 조선족의 모습을 각종 농기구 등으로 살펴본다.1930년대 번영을 구가했던 용정시장에서 사고팔린 다양한 물품으로 활력이 넘쳤던 조선족 사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삶을 즐기다’에선 새로운 터전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생활의 여유를 잃지 않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서화와 공예, 다양한 악기와 놀이도구로 보여준다.‘삶을 담다’에선 특히 8칸짜리 기와집을 재현하는데, 구석구석에 전시된 생활용구에서 조선족의 삶의 체취가 고스란히 풍겨온다. ‘삶을 살다’에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나는 다양한 의례를 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조상에 대한 기억, 후손에 대한 자애와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어 조선족이 역동적인 삶을 일구어 내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해 준다. 마지막 코너인 ‘지속 가능한 삶’은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선족 사회의 모습으로 건설적인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꾸몄다. ●“조선족 민족적 자긍심 고취에 도움될 것” 신광섭 민속박물관장은 “조선족은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민속문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면서 “옌볜박물관의 조선족민속실이 조선족들에게 차츰 희미해져 가는 고향의 풍습을 되살리는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김종대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으로 우리 문화를 흡수동화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반면 옌볜을 떠나는 조선족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조선족민속실은 조선족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기자 dcsuh@seoul.co.kr
  • 국내 거주 외국인 89만명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수가 89만 1341명으로, 전체 인구의 2%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1일 현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과 90일을 초과한 장기체류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외국인 주민은 지난해보다 23% 증가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국내 전체 등록인구(4935만 5153명)의 1.8%에 해당하며 지난해보다 17만명이 증가한 수치다. 서울·경기와 인천·충남 등 4개 시·도는 전체 인구 평균을 상회해 각각 2.5%,1.8%의 외국인이 거주했다. 특히 서울 영등포구(3만 9793명)는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수 비율이 9.8%를 기록했다.10명 가운데 1명 꼴이 외국인인 셈. 서울에서는 금천구가 7.8%, 구로 6.8%, 종로 5.5%, 용산 5.3% 순으로 외국인 주민 비율이 높았다. 부산 강서 7.2%와 경기 김포 6.4%, 화성 6.1%, 포천 5.9%도 외국인 주민이 많았다. 외국인 주민들은 주로 기업이 밀집한 수도권에 3분의2 이상 집중됐다. 경기(31.2%), 서울(29.2%), 인천(5.5%) 순이다. 국제결혼 이주자도 경기·서울·인천 등 수도권에 절반이 넘게 몰렸다. 외국인 가운데는 근로자가 43만 7727명(49.1%)으로 가장 많은 절반을 차지했다. 국제결혼이주자는 14만 4385명(16.2%), 유학생 5만 6279명(6.3%), 상사 주재원 등 기타 17만 1104명(19.2%) 순으로 나타났다. 혼인 등으로 한국 국적을 얻은 외국인은 7.4%인 6만 5511명으로 파악됐다. 근로자 가운데는 남성이 69%로 많았지만 결혼이민자는 여성이 대부분(88%)이었다. 국적별로는 조선족이 작년보다 44% 늘어난 37만 8345명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 22.2%, 미국 3%, 일본 2.7%, 몽골 2.4% 등이 뒤를 이었다.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멕시코 피랍자 3명은 조선족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멕시코 레이노사에서 납치됐다 풀려난 한국인 등 5명 가운데 3명이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따라 멕시코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이 몸값을 노린 납치가 아니라 밀입국 시도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24일 멕시코 수사당국에 따르면 피랍자들 가운데 유모씨와 이모씨, 방모(여)씨는 23일(현지시간) 조사과정에서 조선족임을 시인했다. 현지 수사당국은 나머지 한국인 2명은 밀입국 브로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kmkim@seoul.co.kr
  • 이주노동자 등 ‘국가 안 이방인’의 현상 통찰

    주디스 버틀러(버클리대 수사학 교수)의 세계철학자대회 초청 시점에 맞춰 그의 책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산책자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컬럼비아대 영문과 교수)과의 대담을 묶어낸 책이다. 버틀러는 지구화 시대 민족국가에서 배제된 이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분석한다. 그는 ‘state’란 단어가 가진 이중적 의미에 주목한다.‘state’는 ‘국가’라는 의미와 ‘상태’라는 뜻을 동시에 갖는다.버틀러는 거시적인 `국가´와 개인의 미시적인 `상태´가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개인의 감정과 욕망 및 정체성은 국가의 정치·경제·사법 상황과 동전의 양면처럼 감응한다. 때문에 ‘stateless’, 즉 민족국가 밖으로 내쫓긴 ‘국가 없는’ 사람들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민족 안의 소수민족’이며 ‘국가 안의 이방인들’이다. 버틀러와 스피박의 대화는 민족국가의 외부로 배제된 사람들이 배제된 상태에서도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현상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란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도 법의 가장 가혹한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 대표적 예다.‘배달민족’의 일원이라고 믿으며 한국을 찾았지만 최하층 노동밖에 선택할 수 없는 조선족들은 ‘이민족’의 지위를 영영 벗어나지 못한다.‘그들’을 배제함으로써 ‘우리’를 공고히 하는 작업은 버틀러를 세계적 학자 반열에 올린 그의 대표작 ‘젠터 트러블’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이성애에 유일한 정상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스피박은 ‘국가 없는 사람들’의 범위를 좀더 확장한다.민족국가로부터의 배제는 난민이나 이주노동자의 범위를 넘어 남반구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문제로 파악한다.자본의 전 지구적 세계화로 국가의 재분배 기능이 약화되면서 한 국가 안에서도 여러 층위의 국가 없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비판적 지역주의’다.세계시민주의를 표방하나 실상은 유럽중심주의인 유럽연합식 지역주의와는 다르다. 스피박은 국가의 재분배와 복지 기능이 살아 있는 지역공동체를 주장한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美 밀입국 시도… 알선조직에 당한 듯”

    “美 밀입국 시도… 알선조직에 당한 듯”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지난 14일 멕시코 북부 국경 도시인 레이노사에서 납치됐던 한국인 4명과 중국인 1명이 억류 9일 만인 22일 밤(현지시간)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이들의 납치 경위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납치됐던 5명은 모두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 조사 결과 이 중 1명은 중국인으로 확인됐다. 외교통상부 이정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23일 “멕시코에서 납치됐던 5명이 한국시간 오늘 오전 9시 전원 무사히 석방됐다.”며 “범인들이 인질을 레이노사 중심부 호텔 앞에 내려놓고 도주한 후 경찰에 전화로 소재를 알렸고 이에 따라 오전 9시쯤 경찰이 인질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경찰 합동작전으로 범인들이 압박감을 느껴 도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건 해결과정에서 몸값 지불은 없었다.”고 말했다. 풀려난 한국인은 박모(39), 이모(35), 이모(41), 방모(33·여)씨 등 4명이며 중국인은 유모(33)씨 1명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5명 모두 한국말을 구사해 1명은 조선족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레이노사에 급파된 최성규 영사는 이날 밤 10시18분쯤(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인질 5명은 납치과정에서 조금씩 부상을 입었지만 모두 건강하다.”고 밝혔다. 그는 “인질들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이들에게 하루에 한끼밖에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납치범들은 2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최 영사는 현지 경찰 조사가 끝나는 대로 이들의 신병을 인계받아 이르면 23일 오후 비행기편으로 멕시코시티로 이동, 주 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 보호하다 이들을 귀국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멕시코 한국대사관 김용호 홍보관은 이날 밤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인 조모 변호사가 가족들을 대신해 납치범들과 협상을 하는 동안 현지에 급파된 최 영사가 현지 경찰과 함께 억류 장소로 추정되는 지역을 순찰하며 합동작전을 펼쳤다.”고 밝혔다. 대사관에 따르면 납치된 한국인들 중 레이노사 지형에 익숙한 박씨가 최 영사와의 통화에서 억류장소 주변을 설명했고 이 같은 사실을 현지 경찰에 알려 민간차량을 이용, 억류추정 지역을 순찰하며 압박을 가했다. 현지 경찰은 또 납치범과 변호인 등과의 통화를 추적, 이들이 인신매매·밀입국 알선조직인 것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이날 저녁 7시쯤 인질들을 레이노사시 중심가에 있는 플라자호텔 앞에 풀어줬다는 납치범들의 연락을 받고 출동, 인질들의 신병을 확보했다. 인질들은 레이노사에서 몬테레이 쪽으로 차량으로 10분쯤 떨어진 일반주택에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레이노사가 속한 타마울리파스주 호세 에레라 검찰총장은 이날 한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멕시코에 일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왔다가 현지 불법 밀입국 알선조직에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범인들이 요구한 몸값이 불과 3만달러로 너무 적고 5명 중 중국인이 포함된 것 등으로 미뤄 볼 때 이들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했으나 일이 어그러지면서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납치로 확대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멕시코 연방검찰청(PGR)은 이번 사건이 미국과 멕시코 동부 접경지를 거점으로 한 핵심적 마약밀거래단 ‘걸프 카르텔’과 연계된 밀입국 조직 소속원들의 소행인지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멕시코 유력 일간지 엘 우니베르살 인터넷판이 23일 보도했다. kmkim@seoul.co.kr
  • 동북아 현대사의 블랙박스 만주

    흔히 동북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을 가리키는 중국의 ‘만주’.17세기말 청나라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지역은 일제하 항일운동의 본산이자 중국 조선족의 본향이다. 최근엔 한국판 웨스턴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무대로도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한석정 등 지음, 소명출판 펴냄)은 지난 수십년간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만주를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한다.1998년 창립된 만주학회 회원들이 필자로 나섰다.‘거란과 여진’등 북방민족의 요람으로써의 만주 역사부터 오늘날 탈북자들의 은거지가 된 만주의 현대적 의미까지, 만주의 실체를 살핀 18편의 논문이 실렸다. ‘중국 조선족의 현황’(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만주 이해에 도움을 줄 만한 논문. 개혁·개방 이후 동북3성 조선족의 인구변동, 한국인과 결혼인구 등을 꼼꼼하게 짚어 조선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산업화로 인한 이농현상과 출산율 저하로 1980년대 전체의 40%선을 넘었던 옌볜 조선족 인구는 2000년대 초반 37%으로 떨어졌다.1990년대 ‘한국 바람’으로 한국내 불법 체류자가 6만명선을 넘어서며 조선족 사회는 심각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만주국과 오키나와의 비교사적 고찰’(임성모 연대 사학과 교수)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의 중심이었던 괴뢰국 만주국과 2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패권 장악에 필요했던 일본 오키나와가 ‘공식 식민지’가 아니라 ‘간접 지배지’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주장을 편다.‘간도문제의 시대적 변화상,17∼21세기’(박선영 포항공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모호한 영토개념 이래 20세기의 간도를 둘러싼 국경문제를 살핀다. 편저자인 한석정(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제하 항일 민족운동의 본산이라는 우리 민족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만주가 ‘전설의 땅’으로 치부돼 왔다.”며 “항일운동 역사뿐 아니라 가려져 있는 만주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서술의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한족 중심의 중국 민족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만주가 아닌, 베일 속에 가려진 만주의 본모습을 끄집어냈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휴민트(HUMINT) /김인철 논설위원

    1996년 3월 타이완의 첫 총통 민주선거를 앞두고 타이완 해협에 전운이 감돌았다. 선거에 나선 리덩후이 당시 총통이 ‘타이완독립’을 선언하자 중국은 타이완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리덩후이는 미국에 항공모함의 파견을 요청하는 등 강경 대응했고,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리덩후이가 강수로 맞선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중국이 쏜 미사일이 ‘공포탄’에 불과하다는 비밀정보였다. 당시 타이완 정보원이 중국군 장성 등 2명을 매수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중국이 말로만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1998년 5월 인도가 비밀리에 핵실험을 단행하자, 미 중앙정보국(CIA)에는 수억달러를 들여 첩보위성 등을 운영하면서 뭘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휴민트(HUMINT·대인정보)의 부족이 문제였다.”는 내부 결론에 따라 해외공작원과 첩보원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기 시작했다. 인간(HUMan)과 정보(INTelligence)의 합성어인 ‘휴민트´는 매춘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전문직업이라는 스파이를 활용하는, 원초적인 정보수집 활동이다. 지난 20여년간 정찰위성과 도청장비 등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각종 정보를 포착하는 시진트(SIGINT·SIGnal I NTelligence)에 밀렸다가 최근 다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는 것.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휴민트의 전형이다. “지붕은 볼 수 있으나 지붕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시사하듯 휴민트는 사실뿐 아니라 적의 의도까지 파악해 알려주는,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정보다. 문제는 신뢰할 만한 ‘스파이·정보원·첩보원’을 찾고, 길러내고, 유지관리하는 일. 최근 대북 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과연 극도로 폐쇄된 사회인 북한을 상대로 실효성있는 휴민트 수집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내 입국 탈북자나 중국 국경지대의 북한인, 조선족 등을 통해서 고급 정보가 구해질지도 미지수다. 우리 정부의 정보활동 강화 움직임에 중국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남북간 최상의 휴민트는 당국이 신뢰를 회복해 공식 대화를 갖고 나누는 정보가 아닐까.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21세기 유랑민의 질곡 외면할 수 없었죠”

    “21세기 유랑민의 질곡 외면할 수 없었죠”

    지금 이 땅에 정착한 새터민이나 중국 또는 제3국을 유랑하는 탈북자들이나 모두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배고픔을 못견뎌, 또 어떤 이는 가족의 약을 구하려고, 또 다른 이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고, 지금도 강가에서 탈북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탈북 이후는 또 어떤가. 중국 공안(경찰)과의 숨바꼭질, 몽골 등 제3국에서의 기약없는 유랑,‘기획입국’ 브로커들의 농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 도착해도 정착은 지난한 길이다. 그들을 온전한 ‘시민’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따름이다. 이제는 한국의 시민이 되리라 기대했던 그들에게 주민번호 뒷자리가 125(남),225(여)로 시작되는 동일코드를 붙여 “이 사람은 탈북자입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단편 7개 연작으로 새터민의 삶을 좇다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생각한다면 21세기 유랑민들인 이들에게 삶의 온전성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 탈북자인권은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선 안 됩니다.‘가짜 인권놀음’을 멈춰야 합니다.” 탈북 여성의 고달픈 여정을 그린 연작소설 ‘찔레꽃’(창비 펴냄)을 출간한 소설가 정도상(48)씨는 17일 “모어(母語)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 분단체제 작가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면서 “작가는 모어공동체가 갈등, 긴장, 유랑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번영하는 것을 지향해야 하고, 이번 작품도 그런 의도에서 구상했다.”고 말했다. ‘겨울, 압록강’‘함흥·2001·안개’‘늪지’‘풍풍우우’‘소소, 눈사람 되다’‘얼룩말’‘찔레꽃’ 등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신매매단에 속아 중국으로 넘어간 북한 여성 ‘충심’이 신분을 속인 채 중국 땅을 헤매다 몽골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는 궤적을 담고 있다. 인신매매단에 속아 조선족 남성과 강제결혼하고, 지옥같은 삶에서 탈출해 안마사로 일하다 기획입국 브로커인 선교사를 만나 수백만원을 주고 몽골을 거쳐 한국 땅을 밟지만 충심은 또 다시 ‘주변’에 머물 뿐이다.2차까지 나가야 하는 노래방 도우미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먼 길을 돌고 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최종목적지는 결국 가족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니 왈칵 울음이 터져나오려 했다.”(132쪽,‘풍풍우우’ 가운데) 작가는 5년전 탈북 소년의 유랑과 죽음을 담은 ‘꽃제비’라는 제목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작품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얼룩말’이라는 제목은 아들이 지어줬다. ●하나의 삶에 짜깁기한 네 여성의 ‘크로싱´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상임이사로 남북 실무교류를 책임지고 있는 처지여서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탈북자 문제가 이슈가 됐는데도 작가들이 작품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고, 오랫동안 자신의 어깨를 짓눌러온 ‘의식의 덩어리’도 이번 기회에 내려놓고 싶었다. 작가는 “남과 북의 독자들이나 작가들이 진정성을 갖고 읽어 우리 민족의 고달픈 유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비록 남루할지언정 가족과 집은 그 자체가 삶의 온전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중국 선양에서 만난 북한출신 안마사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6년 봄 ‘소소, 눈사람 되다’를 발표한 이후 연작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인공 ‘충심’은 한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만난 함흥, 신의주, 무산, 남양 출신 탈북여성 4명의 사연을 복합적으로 녹여 만들어냈다. 작가는 “앞으로 청소년 성장소설이나 노동자들을 계급적 존재가 아닌 욕망의 근원으로 해부한 작품을 쓰고 싶다.”면서 “민중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80년대식 리얼리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실험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多문화가 경쟁력이다] 파경 빈발 국제결혼 근본 대책은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多문화가 경쟁력이다] 파경 빈발 국제결혼 근본 대책은

    캄보디아 여성 예미(28·가명)씨는 최근 충북이주여성센터에 들어와 머물고 있다. 지난해 1월 결혼한 한국인 남편 노모(53·노동)씨의 폭력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노씨는 예미씨를 툭하면 때리고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백일이 갓 지난 아들을 데리고 가출했지만 한국에서 마땅히 갈 데는 없었다. 22세의 한 베트남 여성도 남편 폭력을 견디지 못해 이곳으로 들어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 이 여성은 수속이 끝나는 대로 베트남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문화차이 극복 못해 이혼 급증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이 이혼한 건수는 2004년 1611건에서 해마다 급증해 지난해에는 5794명에 이르고 있다. 조선족 여성이 많지만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 여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부인들이 한국생활에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문화차이(23.2%)와 언어문제(21.9%)였다. 이는 충남도가 지난해 12월 말 도내 3048명의 이주 외국 여성을 상대로 실시한 실태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외로움이 16.8%로 3번째였다. 지난해 7월 충남 천안에서 한국인 남편 장모(46)씨에게 맞아 늑골이 부러진 채 숨진 베트남 부인(20)은 남편에게 남긴 편지에서 “한국에 와서 대화할 사람은 당신뿐이었는데 왜 한국말을 못 배우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당시 대전고법 김상준 부장판사는 “문명국의 허울 속에 타국 여성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미숙함과 야만성이 비정한 파국을 초래했다.”고 질책했다. ●2세도 따돌림… 체제부정 세력화 위험 자녀 양육도 큰 문제다. 충남 금산 제원초교 나종석 교사는 “엄마들이 한글에 서툴러 아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한다.”고 귀띔했다. 인근 남이초교에는 1학년 4명 중 3명,2학년 5명 가운데 4명,5학년생은 8명 중 2명을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차지했다.2005년 보건복지부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첫 실태조사에서 17.6%의 자녀가 ‘엄마가 외국인’이란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이주여성센터 한국염 대표는 “이를 방치하면 프랑스 인종 폭동처럼 이주여성 2세들이 기득권의 벽을 뛰어넘지 못해 체제부정 세력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주여성 가정 53%가 빈곤층 빈곤도 문제다.30% 이상이 ‘잘사는 나라에 살고 싶어 한국에 시집을 왔다.’고 했지만 2005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서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52.9%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상태였다. 강원 강릉시로 8년전 시집온 필리핀 여성 글렌 에이 구티에레즈(36)씨는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대소변을 받아내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병원까지 1시간반을 걷기도 해 경제부문에서 어려움이 많음을 보여준다. 결혼중개업체 등을 통해 시집을 오다 보니 한국인 남편의 재산과 직업에 대해 속는 일이 비일비재하다.15% 이상은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부인들이 어렵게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고 있지만 ‘노동시간이 길고’ ‘자녀 양육부담이 늘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어’ 힘들어한다. ●농촌·도시 양극화 해소 긴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이선 연구위원은 “국제결혼이 상업화되고 있지만 결혼이 사적 영역이어서 정부에서 강제 조치를 취하면 시민권제한 논란이 발생한다.”며 “적잖은 여성이 취업을 목적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만큼 노동 위주의 이주정책을 확대해야 억지춘향식 국제결혼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염 대표는 “타이완처럼 일정 재산이 있어야 국제결혼을 허용하는 등 근본적 대책을 고민할 때”라면서 “농촌을 활성화하고 도시빈민을 해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양극화도 줄여야만 다문화가정이 토종 한국인 가정에 밀리지 않고 2세들도 대를 이어 빈곤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 多문화가 경쟁력이다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 多문화가 경쟁력이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 저녁 어스름, 네온사인에 하나둘 불이 켜지자 역앞의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모여들어 강남의 중심가 못지않게 활기찼다. 대부분 인근 반월·시화공단에서 고단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행렬은 500여m 떨어진 원곡본동 사무소까지 이어졌다. 왕중왕관점(王中王串店), 산동제일가(山東第一家) 등의 한자식 간판은 중국이나 동남아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100여곳의 외국 음식점이 영업 중이며 200여곳의 외국 상점이 밀집해 있다. 각국 음식의 백화점인 셈이다. ●3명 중 2명은 외국인 ‘국경없는 마을’로 불리는 이곳만큼은 한국인이 외국인이다. 안산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지난 4월말 현재 59개국 3만 2940명이며 원곡동에 밀집해 있다.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6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원곡동에는 내국인이 2만 250명에 불과해 전체 주민의 60%가 외국인이다. 외국인 가운데 조선족 등 중국계가 67%를 차지한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몽골 등이 뒤를 잇는다. 원곡동이 국내 최대의 외국인 밀집지역이 된 것은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된 1993년부터. 반월·시화공단과 가깝고 집값이 싼 이곳에 이들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밀집촌이 형성됐다. 초기에는 내·외국인간 갈등도 적지 않았으나 이제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전문가와 주민들의 판단이다.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가 최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국인이 거주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56%가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44%의 주민이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말해 이질감은 남아있다. 지난해 초 이곳에서 중국인에 의한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해 주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원곡동은 다문화가 공존하는 곳 그렇지만 많은 주민은 이방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외국인들이 살면서 쓰는 돈이 지역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원곡동에 사는 성인 외국인 3만여명이 1명당 월 30만원을 생활비로 쓴다고 가정했을 때 매월 100억원가량의 돈이 지역에 풀린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이영자(47·여)씨는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다. 일요일에는 전국 각지의 외국인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매상이 크게 오른다.”고 말했다. 원곡본동 임승원 동장도 “과거에는 주민들이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꺼리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외국인들이 지역경제를 위해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서 같은 주민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가 공존하는 원곡동에는 이곳만의 풍경이 존재한다. 식재료 등 물가가 전국에서 가장 싼 동네로 알려졌다. 상인들이 수입의 70∼80%를 고국에 송금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형편을 고려해 가급적 비싼 물건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금치 한 묶음 1500원, 무 1개 1000원, 파 한묶음 1000원, 쇠고기와 생 삼겹살, 돼지갈비는 1근에 4000원씩 판매한다. 다른 지역보다 40∼50% 싼 가격이라고 상인들은 말했다. 이곳에 은행이 4개나 있는 것도 특이하다. 고국에 송금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토·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노래방 업소 기계에는 7개 나라의 노래가 입력돼 있는 것도 이곳만의 풍속이다. 이들도 한국인처럼 2차 후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물가 가장 싼 휴대전화 천국 PC방도 이들의 해방구이다. 시간당 500∼1000원을 받는 PC방에는 주말과 휴일,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렇다고 게임을 목적으로 찾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하는 절차 때문에 외국인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이곳에서 고국의 가족과 친구들을 화상 채팅이나 이메일을 통해 만난다.PC방 업주 김모(56)씨는 “가게 단골은 인도네시아인이다. 휴일에는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사랑방처럼 모여 향수를 달래고 있다.”고 말했다. W미용실 주인 최소정(35·여)씨는 “머리를 깎을 때 국가 성향이 고스란히 나온다.”고 전했다. 태국 출신 사람들은 대충 손질해도 무난히 넘어가지만 무슬림 국가 사람들은 자기 맘에 쏙 들지 않으면 심하게 화를 내는 등 까다롭다. 원곡동은 또 휴대전화 천국이다. 한집 건너 하나씩 휴대전화 가게가 있다. 원곡동 주변에만 100여곳에 휴대전화 판매점이 성업 중이다. 한 휴대전화 판매점의 점원은 “외국인들은 첫 월급을 타면 맨 먼저 하는 게 휴대전화 사는 것”이라며 “구직 등 새로운 정보를 얻고 친구와 연락하기 위해선 휴대전화가 필수”라고 말했다. 매년 4월 이곳에서 열리는 ‘국경없는 마을배 안산월드컵’ 축구대회도 볼만하다. 올해는 12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로 구성된 팀들이 참여, 수준높은 경기를 보여줬다. ●집값 상승·구직난에 시름 원곡동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조선족 동포에 대한 비자 발급이 완화된 이후 이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구직난과 집값 상승 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M부동산 이모(67)씨는 “외국인들이 세들어 사는 원룸은 월세가 올해 초만 해도 20만∼25만원이었는데 최근 30만원선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방글라데시인은 “두달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놀고 있는데 방세 낼 돈이 없고 물가도 올라 친구집에 얹혀 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안산시 관계자는 “얼마 전부터 원곡동 거주 외국인들이 인근 선부동으로 집을 옮기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선부동이 깨끗하고 주거 환경이 좋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외국인들이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원곡동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산시에는 결혼 이민자 수가 3353명(4월말 현재)에 이른다. 이들은 1018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이 중 424명은 안산시내 학교에 다니고 있다. 토착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주민통역지원센터 서민우(34) 상담팀장은 “이제 우리 사회는 다문화공동체로 가고 있고 외국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권과 자유를 가진 우리 사회의 일부”라고 단정했다. 안산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건국 60주년] “10년내 통일 구체화… 그후엔 중립국 길 걸어야”

    [건국 60주년] “10년내 통일 구체화… 그후엔 중립국 길 걸어야”

    |도쿄 박홍기특파원|“앞으로 10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조금씩 통일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통일 코리아’가 되면 기본적으로 중립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중국 등 특정국과의 동맹 관계가 아닌 중립화다. 통일 코리아는 중소국의 대표국이자 중립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향후 60년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 같다.” 강상중(58) 도쿄대 교수를 최근 도쿄대 정보학환(情報學環·언론정보학과에 해당) 교수실에서 만났다. 강 교수는 건국 60주년의 진단과 함께 현재와 미래인 향후 60년을 전망했다. 그러면서 특히 통일된 한국의 청사진으로 ‘중립국론’을 피력했다. ▶건국 60년을 어떻게 보는지. -한국은 지금 세계 제11위의 무역대국이 됐다. 아마도 6·25 직후 한국은 아프리카와 비슷할 만큼 대단히 가난하고 힘들었다. 한국처럼 짧은 시간에 이처럼 경제대국이 된 국가는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또한 격렬한 변화를 경험한 곳도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은 새롭게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건국 60년은 격동의 시대를 이해한다는 의미도 있다. 또 정치적, 경제적·문화적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의 성취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아직 통일 코리아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실제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는 남북 관계가 여전히 분단되어 있다는 것, 또 하나는 한국사회 내부에서 이념 갈등·격차 등의 대립이 아직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을 위한 준비, 통일의 밑그림을 그린다면. -다시 말해 한국사회 속에서 지금은 중국 사람으로 취급받는 조선족이나 북한인에 대한 차별 의식, 이런 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갈 것인가는 남과 북이 어떻게 통일해 나갈 것인가와 같다. 그 정도로 큰 의미가 있다. 혹시 북한이 통일을 후회한다거나 한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완전 흡수하는 형태가 될 경우, 통일 한국에 있어서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닐 것 같다. 만약 국가연합이나 연방정부를 통해 점진적으로 시간을 들여가면서 통일 한국이 된다면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과 어깨를 견주며 세계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동아시아 속에서 일본·중국·러시아·미국을 이어주는, 그야말로 커다란 ‘중간자’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본다. 지금부터 10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10년 안에 조금씩 통일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통일 방법, 국민들의 마음 준비, 경제적 발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재구축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능한 한 한국 속에서의 대립이나 분단, 격차, 이런 것들이 없는 사회를 역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남북 통일에 대한 밝은 전망을 기대할 수 있다.2010년은 한·일합병 100년,6·25전쟁 60주년이 된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이 한반도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평화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해외 동포들 역시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낙관론을 갖고 있다. ▶한국에 대한 바람과 기대는. -한국인들은 60주년을 되돌아보면서 자신들이 지나온 60년 동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조금은 자기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60년 가까이 일본에서 살아왔다. 대부분 건국 역사와 겹쳐진다. 나 역시 많은 것을 얻고 동시에 잃은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재일 동포 1세 때보다 시대는 훨씬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 동시에 갖가지 고난이 재일 동포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60년, 틀림없이 남북이 통일 한국, 어떤 형태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향후 60년을 생각하면 통일이 10∼20년 안에 중요한 테마로 떠오를 것이다. 분단된 남북이 어디까지 화해할 지, 어디까지 진전해 나갈지, 이것이 한국인들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재일 동포의 과거와 현재는. -재일 동포들의 고통이란 역시 차별이다. 차별이 “어디서 오는가.”, 원인은 두 가지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떠안고 있는 문제이다. 첫째는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해방이 되었어도 연합국의 지위로서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해방의 역사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대로 잔존, 재일 동포에게는 여전히 전쟁 전 식민지라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둘째는 가장 중요한 ‘분단’이다. 재일동포, 조선사람, 한국인, 어느 쪽이라도 관계없다. 호칭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왜 분단되었는가. 왜 자신의 조국, 동포들이 둘로 나뉘어 항상 대립하고 있는가. 대단히 큰 고난이다. 이 영향으로 재일 동포 1세와 2세·3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1세는 가장 고생했다.2세 이후는 1세의 덕으로 여유를 찾았다. 원래 한국인들의 전통, 즉 언어·문화·풍습을 그대로 간직한 1세는 존경을 받아야 할 입장임에도 불구, 일본 사회에서 가장 박해를 받았다. 그런 1세의 후광 속에서 2세가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재일 동포들의 정체성도 변화가 있을텐데. -한국은 세계 유수의 산업국가로서 다시 태어났다. 남북 분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남북은 대화를, 교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고난의 원인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는 증거다.1세와 2세의 관계에서 1세는 이제 재일동포 전체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역사적인 역할을 다하고 떠나고 있다. 생각해보면 역사란 무정한 면도 있지만 확실히 고난을 치유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나 싶다. 재일 동포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어려워지고 있다. 강한 차별이나 강한 고난이 있어 극복해야 할 과제를 가진 시대라면 괴롭지만 정체성, 아이덴티티는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차별이나 어려움을 별로 겪지 못한 3세,4세,5세,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재일 동포들의 정체성은 상당히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절대로 동화된다는 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국적을 취득, 한국인 겸 일본인이 된 사람들 중에도 절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민족적으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조선 국적, 조선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이 아닌 해외로 나가려 하는 젊은이도 있다. 내 생각으로는 마이너리티이지만 마이너리티가 될 만큼 다양성이 성공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재일 동포의 정체성은 단순한 민족주의의 고정적인 관념으로는 결론내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분명한 점은 동화되어가는 방향이 아니다. 재일 동포들의 정체성이 어떤 형태로 자리잡을지, 젊은 세대에 대해 저는 절대로 비관하지 않는다. ▶앞으로 재일 동포의 역할은. -정체성을 생각하면 재일 동포의 역할은 크다. 결국 재일 동포는 어떤 존재인가. 한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그리고 남북,3가지의 관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재일 동포의 역할은 한국과 일본, 한국과 북한의 사이에서 같은 동포로서 관계될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한국과 북한 모두에 연결된 사람들이 많다. 그런 존재가 재일 동포들이다. 때문에 재일 동포의 과제는 절대로 단일화된, 고정된 정체성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3가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재일 동포는 역사적인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재일 동포로서 이 사회 속에서 획득한 삶을 살았다. 앞으로 재일 동포들이 한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남북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재일 동포라는 마이너리티로서 작은 역할이 오히려 커지지 않을까 여긴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운동이나 만남의 장을 만들 수도 있다. 일본에서 북한이나 한국으로 진출 가능한 인재들을 키울 수도 있다. hkpark@seoul.co.kr ■ 강상중 교수는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다. 한국 국적자로서는 최초로 1998년 도쿄대 정교수로 임용된 정치사상 전문가다. 현재 일본 사회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과학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탈제국주의의 세계적 이론가로 동북아 평화공동체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와세다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1972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 후 “나는 해방됐다.”고 밝힐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 일본 이름이 아닌 본명을 썼다. 특히 정치사회학 연구서인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내셔널리즘, 글로벌화의 원근법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최근 저서 ‘고민하는 힘’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안병만내정자 논문 자기표절·업무비 전용 논란

    안병만내정자 논문 자기표절·업무비 전용 논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내정자가 한국외대 총장으로 재임할 때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썼다가 이 문제가 불거지자 퇴임하면서 학교발전기금을 내는 형식으로 학교 쪽에 이 돈을 뒤늦게 되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안 내정자는 같은 시기에 한국외대 동문이나 서울대 법대 동문 국회의원들에게 업무추진비로 정치후원금을 냈다가 올 1월 검찰에서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8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외대에 따르면 안 내정자가 두 번째로 이 대학 총장을 맡았던 2005년 총학생회 간부들이 총장의 업무추진비 내용에 비리가 있다며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교수협의회가 자체 진상조사를 벌여 3900만원이 업무와 관계없이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가 된 항목은 정치후원금을 비롯, 골프장 비용, 양복구입 비용, 용처를 알 수 없는 돈 등이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소병국(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는 “용처가 불분명한 돈이 모두 1억원이 넘었는데, 소명기회를 다시 주고 끝까지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돈이 3900만원이었으며 이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면서 “당시 안 총장이 모든 사실을 인정했고, 퇴임하면서 ‘발전기금으로 5000만원을 내놓고 가겠다.’고 해서 일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중 정치후원금은 연간 600만원 규모였던 것으로 확인됐다.2003년 기준 10여명의 국회의원들에게 한 사람당 50만원씩 모두 600만원의 정치후원금이 전달됐다. 이 돈은 대부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전달됐다. 대학 쪽은 “당시 업무추진비에서 정치자금을 낼 수 없도록 법이 바뀐 것을 몰라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수협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 검찰에 진정서를 냈고 안 내정자는 올 1월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한편 안 내정자가 1995년과 1996년 발표한 연변조선족 자치주와 한국촌락 비교에 관한 두 개의 논문이 서두와 제목 등이 거의 동일해 자기표절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안 내정자는 이에 대해 “1996년 논문은 1995년 연구를 확대, 발전시켜 쓴 것이기 때문에 연구목적 등은 같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고 분량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해명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씨줄날줄] 배기(背棄)/ 김인철 논설위원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마오쩌둥은 6·25전쟁 당시 북한 김일성의 파병 요청에 일주일 동안 수염도 깎지 않고 고민한 끝에 이 한마디로 북·중 관계의 중요성를 정리한 뒤 파병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중국의 ‘이’를 보호하기 위해 60만∼70만명의 병력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개인적으로는 장남 마오안잉이 참전중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28세의 나이로 숨지는 참척을 당했다. 순망치한이라 불리는 북·중 혈맹관계의 역사는 중국 국공내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1945∼49년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북한은 중국 공산당의 후방 역할을 했으며, 중국 공산군 출신 조선족부대는 이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는 상호작용이 이뤄졌다. 순망치한의 북·중 관계는 1992년 한·중수교로 급랭했다. 당시 북한은 “제국주의에 굴복한 배신자”라는 극한 표현을 써가며 중국을 성토했다. 북한이 탈북자들에게 대해 퍼붓는 최악의 저주가 “배신자여 갈 테면 가라.”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정도의 수사임을 감안할 때 당시 중국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취임 후 첫 해외방문 국가로 북한을 선택하고 어제부터 2박3일간의 방북 일정에 들어갔다.5년 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뒤를 이을 시진핑의 방북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선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83년 6월 첫 중국 방문을 연상케 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후야오팡 총서기와 덩샤오핑 주석 등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다. 미래 중국 최고지도자와 북한 지도부간 상견례가 될 이번 방북은 최근 극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북·중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나는 중국을 절대로 배기(背棄)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약속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한때 배신자라고 비난하던 중국에 대해 “절대로 배신하고 버리지 않겠다.”고 충성 서약을 한 것 같아서 말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시진핑의 방북 계획을 보도하면서 지난 2월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났을 때 나왔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굳이 소개했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사설] 독립지사 국적회복 만시지탄이다

    국적도 없이 구천을 떠돌던 독립지사들의 국적이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비로소 회복될 것 같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 중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룡, 여천 홍범도, 부재 이상설, 노은 김규식 선생 등 200여명의 애국독립지사들이 꿈에서도 그리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만시지탄이다.‘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은 3대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우스갯말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환갑을 맞고서야 바로잡히게 될 셈인가. 순국선열들이 왜 무국적자가 됐는지 따져보면 그 말뜻을 알 수 있다. 일제가 호적제를 개편하자 지사들은 당연히 등재를 거부했다. 광복후 이승만정권은 일본호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호적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무국적 독립지사의 후손들을 재산상속은 물론 직업 선택, 교육 혜택도 못 받는 ‘법적 사생아’로 만든 것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국적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미 법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우리 국민으로 여겨왔으며 사망자에게 소급해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국적법 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법조계의 주장을 뛰어넘지 못한 탓이다. 조선족, 고려족 등의 국적문제로 비화될 소지에 대한 정부의 우려도 있었다. 다 좋다. 하지만 왜곡된 역사진실을 바로 세우지 않고 민족의 미래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첫 단추는 순국 독립애국지사에 대한 국적 회복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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