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족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위스키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췌장암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생방송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장교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54
  • [새음반]

    ●YB vs RRM 윤도현밴드(YB)가 실험적인 미니 앨범을 냈다. 일렉트로닉그룹 RRM과 함께하며 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화를 추구한 프로젝트다. 음악적 시도는 돋보이지만 신곡 ‘스니커즈’, ‘거짓’보다는 리메이크곡들인 8집의 ‘스테이 얼라이브’, 7집의 ‘나는 나비’를 영어 버전으로 옮긴 ‘어 플라잉 버터플라이’, 4집의 ‘혈액형’ 등이 더 흥미롭다. 원곡과 비교하는 맛이 있기 때문. 조선족 출신의 전설적인 러시아 로커 빅토르 최의 ‘그루빠 끄로비’가 원작인 ‘혈액형’이 특히 백미다. 러닝타임 8분30초에 달하는 야심적인 편곡에 사이키델릭 느낌이 짙다. 윤도현이 러시아어로 불렀다. 다음기획. ●타임 파일스… 1994~2009 동생 리암 갤러거(보컬)와 형 노엘 갤러거(기타)의 불화는 언제나 시한폭탄이었다. 노엘이 탈퇴하며 오아시스가 해체된 지 약 1년이 됐다. 국내 팬들로서는 지난해 단독 공연과 록페스티벌 참가로 두 차례나 한국을 찾았던 이들의 해체가 더욱 아쉬웠을 것. 15년간의 브릿팝 황제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DVD가 나왔다. 38편에 달하는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실황 컬렉션이 갤러거 형제의 음성 해설과 함께 담겼다. 연대기순, 또는 노엘이 선정한 리스트별로 골라서 감상할 수 있다. 소니뮤직. ●심포니시티즈 그룹 폴리스 출신 팝 스타 스팅이 자신의 명곡들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퓨전 앨범을 발표했다. 팝과 클래식을 잘 조화시키는 것으로 이름난 롭 매디스가 편곡 및 프로듀서를 맡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인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런던 플레이어스, 뉴욕 챔버 콘서트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참여했다. ‘넥스트 투 유’ ‘잉글리시맨 인 뉴욕’ ‘에브리 리틀 싱 쉬 더즈 이즈 매직’ 등 12곡이 담겼다. 유니버설뮤직.
  • [길섶에서] 공중 화장실/노주석 논설위원

    주말 동네 뒷산 공원 산책 길에 화장실을 찾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굿’이었다. 다소 꺼림칙한 기분으로 들어간 공중 화장실을 상쾌한 발걸음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문을 여는 순간 조명이 켜졌고,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납세자 대접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다. 공중 화장실에 대해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10년 전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베이징시내 극장에 갔는데 칸막이만 있을 뿐 앞문이 달려 있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사는 동북3성 쪽 사정은 더 열악했다. 수세식 화장실을 찾기가 어려웠다. 호텔이 아니면 볼일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군대시절 야외훈련을 나가면 임시 화장실을 설치했다. 땅을 파고, 널빤지를 두 개 놓고, 천막을 둘러치면 끝이었다. 공중 화장실에 휴지가 기본으로 비치되면서 화장실에서 겪던 촌극과 일화가 사라졌다. 화장실이나 야외에서 휴지가 없을 때, ‘응급 처치법’ 정도는 알아둬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공중 화장실의 기분 좋은 진화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中 이 정도일 줄…” 화들짝…동북공정 본격대응 나선다

    “中 이 정도일 줄…” 화들짝…동북공정 본격대응 나선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9월 초 정기국회 개회와 함께 중국의 자의적 역사 재해석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본격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을 비롯, 이달 초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김을동 의원)’가 마련한 항일 역사탐방에 참여했던 29명의 여야 의원들은 26일 ‘중국 동북 3성 현지답사 활성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정기국회 중에 범당파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 관련예산 15% 깎아 한나라당 안효대 의원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인식을 재조명하기 위해 더 많은 학생들이 동북 3성 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지역구인 제주도 학생과 중국 조선족 학생들이 교류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더욱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이 한반도 현안에 깊숙이 개입하는 지금의 동북아 정세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을 세워야 하는 중요한 계기로 인식하고 있다. 한 의원은 “강대국과 국익이 맞서는 현장에서 우리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어렵기는 한·일 강제병합이 있었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원단 공식방문 한번도 안해 이에 앞서 이들 여야 의원 29명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으로 항일 역사 탐방에 나섰다. 당시 발해의 5개 수도(京) 가운데 하나였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현의 상경용천부 왕궁터에서 현판을 읽어 내려가던 의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해는 중국의 일개 변방지방이었다. 주(周)·은(殷)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중원 문화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시선이 그림판으로 옮겨진 뒤에는 “허, 참…”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대조영을 비롯한 역대 발해 왕들이 모두 중국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정기국회서 본격 논의키로 헤이룽장성을 비롯, 지린(吉林)·랴오닝(遼寧) 등 동북 3성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을 찾으며 의원들은 시종 무력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불거진 것은 2004년. 만 6년이 돼서야 찾은 의원들은 정쟁에 매몰돼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동북아 역사재단’의 예산도 설립 이듬해인 2007년의 196억원에서 올해 185억원으로 3년 만에 15% 가까이 깎았던 국회였다. 한나라당 김성수 의원은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고 자탄했다. 같은 당 이경재·이해봉 의원 등은 한참 동안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것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동행한 역사학자들에게 자문했다. 의원들은 기념관에 전시된 기와, 벽돌 등이 한민족 고유 형식의 유물들임을 확인하면서 “중국이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역사를 왜곡했는지 몰랐다.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고 자책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지금껏 공식적인 의원단의 이름으로 중국 동북지방을 방문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얼빈·닝안·다롄·하이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영화단신]

    ●홍상수 감독의 11번째 장편으로 신작인 ‘옥희의 영화’가 제6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소개하는 오리종티(Orizzonti) 섹션의 폐막작으로 선정돼 9월11일 현지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다.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었던 홍 감독이 베니스영화제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영화과 학생 옥희가 영화를 만들며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정유미, 이선균 등이 출연했고, 스태프 4명만으로 촬영해 화제를 모았다.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수놓은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다. 1980년대 등장한 2세대 트로이카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한국영상자료원은 1, 2세대 트로이카 여배우 6명의 출연작 12편을 컴퓨터로 내려받아 볼 수 있는 기획전을 준비했다. 다음달 19일까지다. 합법적인 다운로드 문화를 조성하고, 고전영화를 폭넓게 소개하려는 취지다. 1000원.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두만강’이 얼마 전 막을 내린 파리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상 등을 받았다. 국적은 중국, 민족은 조선족, 언어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하는 장 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반영한 작품을 연출해 왔다. ‘두만강’은 여섯 번째 작품으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강을 건넌 탈북자와, 그를 친구로 맞이하는 소년 등 두만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 ‘인민루니’ 정대세 그는 누구인가

    ‘인민루니’ 정대세 그는 누구인가

    지난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 흘린 눈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인민 루니’ 정대세. 그를 파헤쳐 보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국적을 보유하고 있으나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축구대표선수로 뛴 ‘자이니치(在日)’ 정대세를 밀착취재한 “나는 ‘조선’의 스트라이커입니다.”편을 24일 오후 11시10분 방영한다. 월드컵 당시 정대세는 내내 화젯거리였다. 독특한 이력에다 영국의 루니에 비견되는 폭발적인 돌파력, 브라질과의 경기를 앞두고 북한국가를 부르다 울던 모습 같은 것들 때문이다. 월드컵 뒤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보쿰팀으로 이적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그런 정대세를 두고 국내에서는 색깔논쟁까지 벌어졌다. 핵심은 그가 왜 북한 대표를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일본에서 만난 정대세는 스물여섯, 평범한 청년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한국음악을 좋아하고, 만화를 즐겨봐서 독일로 갈 때 꼭 만화책을 챙겨갈거라는 청년이다. 다만, 북한팀에서 뛰는 것은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을 뿐이다. 경북 의성이 고향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국적을 취득했으나, 학교는 조선족 출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총련계 ‘조선학교’를 다녔다. 때문에 북한 대표팀 선수는 어릴 적부터 이어온 자연스러운 꿈이었다. 실제 뛰어보니 북한팀의 열악한 환경에 실망도 했지만, 순수한 마음과 단단한 팀워크로 묶인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치른 것은 큰 기쁨이었다고 밝힌다. 하지만 정대세는 자신을 남한도, 북한도 아닌 코리아 대표선수라 생각한다. 한국, 북한, 일본도 아닌 제 3의 지대에 있는 자이니치라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생각한 그의 국적은 분단 이전의 조선이다. 남한도 북한도 아니요, 일본인도 되지 못한 회색지대에 살아온 재일조선인의 슬픈 삶과 통일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또 베일 속에 가려진 북한 대표팀의 일상을 스케치한 영상도 공개된다. 숙소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 모습, 침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인민 초콜릿’이라 불린 미끈한 복근으로 관심을 모았던 지윤남 선수가 자신의 별명에 보이는 반응 등이 담겨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중국펀드 2~3년은 기대마세요”

    “중국펀드 2~3년은 기대마세요”

    국내 시장에 중국 경제의 동향을 시시각각 알리는 ‘메신저’들이 있다. 동부증권 가오징(30·산둥성 출신), 한화증권 피아오메이화(29·지린성), 한국투자증권 슈훼이(29·장쑤성) 등 중국인 여성 애널리스트 3인방이다. 모두 자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한국으로 건너와 공부하고 자리를 잡았다. 가오와 피아오는 각각 서울대 국제대학원과 경영학과를 나왔다. 슈는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사 출신. 조선족인 피아오를 포함해 다들 한국어 실력이 완벽에 가깝다. 이들에게 중국 증시의 현재 동향과 전망, 주목해야 할 중국 경제의 현안, 투자처로서 한국과 중국의 장단점 등을 물었다. 이들은 한국이 아닌 중국시장을 전담하고 있다. ●4분기 車·IT 보조금 효과 기대해볼만 현재 중국 증시는 바닥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10월 6124포인트까지 도달했던 상하이종합지수는 현재 2400대에 갇혀 있다. 이들은 앞으로 한동안 ‘바닥 다지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상하이종합증시의 흐름은 부동산주의 움직임과 유사합니다. 부동산 정책의 효과가 거의 없고 하반기에 부동산 보유세도 부과될 것으로 보여 주가가 당분간 오르기 힘들 듯합니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인 에너지주도 자원세 개편으로 세금을 더 많이 물게 돼 전망이 밝다고 할 수 없습니다.”(가오징) 그러나 이들은 중국 증시가 우리 증시처럼 3분기에 조정을 받다가 4분기 들면서 기지개를 켤 것으로 관측했다. 중국은 원래 국경절(10월1일)이 있는 4분기에 소비가 가장 좋은 데다 중고자동차, 가전제품을 새 제품으로 바꾸면 보조금을 주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이 먹혀 들면 반등을 기대해 봐도 좋다는 것이다. “지금은 역사적인 저평가 국면이지만 중국정부가 미래성장 산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장기 성장세는 좋습니다.”(피아오) 중국에 투자한 한국인들이 앞으로 2~3년 내에 수익을 얻기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의 1980년대 중반처럼 중국은 지금 임금 인상 국면에 들어갔고 기업들이 막 초기 단계의 투자를 늘리는 상황이라 가까운 장래에 큰 폭의 상승은 어렵다고 봅니다.”(가오징)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는 중공업이 이끌었지만 앞으로 10년을 책임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데는 중국 정부나 기업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새 모멘텀을 찾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기 둔화는 한동안 불가피한 성장통이죠.”(슈훼이) ●여성 배려 부족한 한국 기업문화 흠 우리나라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미칠 중국 경제의 현안은 무엇일까. “4분기 중국의 소비가 나아지면 중국 비중이 25%에 이르는 한국의 수출 관련주, 특히 전기전자나 자동차가 수혜를 입을 거예요. 중국정부의 위안화 절상도 수입물가를 낮춰 구매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겁니다.”(가오징) 중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요즘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절대적인 규모는 작지만 중국 인민은행이 한국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등 국가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선호도와 투자 비중이 확실히 늘고 있어요.”(가오징) 국내 증시에 상장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적이 좋은 기업들인데도 중국 기업에 대한 한국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다.”면서 자칫하면 ‘대어’를 놓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자국 증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인 애널리스트들은 하나둘 한국을 떠나는 추세다. 그런 만큼 이들의 아쉬움도 적지 않다. “국내 증권사에서는 주요 기업 담당 애널리스트가 ‘주류’이고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에서도 글로벌 시장 리서치는 포함돼 있지 않아요. 마음은 편하지만 실력을 평가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안타깝죠.”(슈훼이)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얘기했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는 주요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나 영업, 투자은행(IB) 쪽에 여성 인력이 없다시피 하고 눈치를 보고 휴가를 내야 하거나 출산·육아휴직 등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업문화가 아직도 의아하다고 했다. 시장 상황을 빨리 반영하면서도 깊은 분석이 포함된 리포트를 내는 것도 부담인데, 외국어인 한글로 쓰는 게 난감할 때도 많다. 그러나 늦은 오후 인터뷰를 마치고서도 “한국 투자자들에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중국 업종 정보까지 전하고 싶다.”면서 다시 회사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열린세상] ‘옌볜’이 아니라 ‘연변’이었다/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열린세상] ‘옌볜’이 아니라 ‘연변’이었다/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얼마 전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연길, 용정, 도문, 왕청 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의 동북부는 예전 우리 조상이 누비던 땅이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우리 민족이 여전히 살고 있기에 호기심도 많았습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먹고 살기 위해, 또는 이주를 강요당해 살기 시작한 땅이었지만 그곳은 독립운동을 하던 본거지였고, 수많은 애국지사를 길러 낸 땅이었기에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퍽이나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쓰는 말과 글을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연변자치주에 달린 영업용 간판, 교통 이정표, 각종 안내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표기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간판에 글을 두 줄로 쓸 때에는 위에 한글을 적고 아랫줄에 한자로 적습니다. 그리고 한 줄로 적을 때에는 왼쪽에 한글을 적고 그 다음에 한자어를 적습니다. 그러니까 각종 표시물을 적을 때에는 단연 한글이 우선입니다. 제가 묵었던 호텔의 큰 돌에도 ‘국제호텔+國際飯店’이라고 적혔고 아래에 영어 이름이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호텔이 이름을 표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경이롭지 않습니까? 한자에 대응하여 한글을 쓸 때에도 중국어 발음과 상관없이 여지없이 우리 소리로 명쾌히 적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한글로 ‘연변대학 구강병원’이라고 적고 있지 ‘옌볜대학 구강병원’이라고 적지 않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모택동이라 할 것인지 마오쩌둥이라 적을 것인지 오락가락하고 있다 해도 연변에서는 태도가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한자로 된 이름이나 지명은 우리글로 적을 때에는 우리가 읽는 소리로 적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쨌건 현지 조선족이 ‘연변’이라고 쓰고 있는데도 우리가 ‘옌볜’이라고 쓰는 것은 곤란하겠습니다. 현지에서 우리 글로 쓰인 책을 몇 권 샀습니다. 우리 글로 쓰인 책이어서 별 불편 없이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글을 쓰는 민족의 장점이겠지요. 그런데 책들에서는 몇 가지 우리와 다른 점도 보입니다.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소리에 ㄴ, ㄹ이 나올 때 ㅇ, ㄴ으로 바꿔 적는 것인데 우리는 ‘여자, 이해, 내일, 임시정부’라 적지만 연변에서는 ‘녀자, 리해, 래일, 림시정부’등과 같이 적더군요. 두음법칙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상당히 어색합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뜻을 생각하면 원래 정해진 소리로 적는 게 더 적절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소리가 글자 처음에 나오더라도 소리를 내는 데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류’씨와 같이 일부 성씨에서 원래 소리를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서 영 어색한 것도 아닙니다. 표기의 혼선을 피하려면 원래 소리를 지키는 게 옳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책에서 보면 띄어쓰기는 우리와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곳 책에서는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격살한것’은 ‘력사적사건’이었다.”와 같이 붙여 쓰더군요. 이외에도 ‘폭발한후, 알아볼수, 책을 사는데’와 같이 붙여 씁니다. 연변자치주에서 쓰는 국문법을 따로 확인하지 않아 제대로 쓴 것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띄어쓰기 기준이 우리와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어미변화나 사이시옷 사용법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의 땅에 살면서도 우리말과 글을 우선하고 우리식 소리로 적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의 거리 모습이며 신문, 방송들을 생각하니 낯이 뜨겁습니다. 한글의 표준은 어느 세계에서든 널리 통하도록 하나로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말과 글의 표준을 정할 때에는 연변의 몇 가지를 참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좌진 장군은 동족 손에 죽고, 구한말 권력자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기는커녕 자기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바람에 백성은 만주 벌판에 내몰렸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독립운동도, 선진화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깁니다.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삶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 “재외공관서 일할 대장금 오세요”

    외교통상부의 해외 공관엔 외교관만 나가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을 맡는 ‘단순 노무직’도 있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보직이 요리사라고 한다. 대사관에서는 현지 외국 귀빈(VIP)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주요 업무’에 속하기 때문이다. 대사관 오·만찬은 또 한국 요리를 과시할 기회이기도 하다. ●중·노년 여성요리사 드물어 외교부 관계자는 14일 “대사가 부임하면서 제일 신경쓰는 일 중 하나가 좋은 요리사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사는 알음알음 소개를 받거나 채용 공고를 낸다. 과거엔 요리사로 나가려는 중·노년 층 여성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우리 국민의 경제수준이 올라가면서 깊은 손맛을 지닌 이런 요리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월급에 비해 현지생활이 너무 힘든 까닭이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해외공관 요리사의 월급은 평균 200만~250만원이다. 그런데 외국어를 못하는 중·노년층에겐 친구 한 명 없는 외국 생활이 감옥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돈을 좀 적게 받더라도 국내에서 다른 일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세태가 이렇게 변하자 최근엔 대학 조리과 출신 젊은이들을 요리사로 채용하는 경우가 생겼다. 외국 경험을 쌓고 싶은 요리 전공자들이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젊은이들은 외국어가 가능하고 혈기가 왕성한 게 오히려 문제다. 현지인과 친분을 맺으면서 부지불식간에 대사관 기밀 등을 누설할 우려가 있다. 심지어는 현지인과 결혼해 도중에 그만둔 사례도 있다. ●젊은층은 기밀누설 우려 이런 점 때문에 얼마 전 아시아의 A국 대사관은 한국에 있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 아줌마’를 요리사로 데려갔다. A국에서 특별히 비자를 내줬다. 하지만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나라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케이스다. 일부 대사관은 고육지책으로 아예 현지 외국인을 채용해 한국 요리법을 전수해 주는 식으로 아예 요리사를 양성하는 곳도 있다. 이 경우엔 대사 부인이 일일이 ‘교육’을 시켜야 한다. 어쨌든 이런 추세라면 본의 아니게(?) ‘외국인 장금(長今)이’들이 줄줄이 배출될 수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숫자로 본 외국인 근로자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숫자로 본 외국인 근로자

    우리나라는 노동력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뀐 지 오래됐다. 근로현장의 다문화는 1993년 시작된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로 본격화됐다. 특히 최근에는 출산율이 낮아지고, 3D업종을 기피하는 풍조 때문에 구인난을 겪는 업종이 근로자를 외국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들이 우리 경제의 작지만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를 2004년 도입했다. 이들의 다양한 얼굴을 숫자를 통해 알아봤다. 법무부가 밝힌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 수는 5월 말 현재 55만 6039명이다.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2007년에는 47만 6179명이었지만 이듬해 54만 8553명으로 7만명 이상 늘었고, 이후로도 소폭 증가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모국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고 있지만, 이제는 우리도 이들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대학 재학이상 고학력자 70% 외국인 근로자의 국적은 한국계 중국인, 즉 조선족이 가장 많다. 30만 1597명으로 전체의 54.2%를 차지한다. 베트남인이 5만 1704명으로 다음이고, 필리핀(3만 216명)·인도네시아(2만 5093명) 등의 순이다. 조선족은 같은 핏줄이고 한국말에 능통한 것이 큰 매력이다. 한국계가 아닌 중국인들은 조선족의 10분의1도 안 되는 1만 9813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고학력자가 많다.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지만, 학계 연구가 어느 정도 증명하고 있다. 국제지식컨설팅연구원의 유승균 책임연구원이 동국대 무역학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서울과 경기에서 일하는 중국·필리핀·몽골·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 출신 외국인 401명의 학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283명(70.5%)이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대졸은 61명(전체의 15.2%)이었고, 대학원 이상도 25명(6.2%)이나 됐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경제적 여건 등으로 학업을 계속하기 어렵자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불법체류 근로자 5만 3664명 불법체류 근로자 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최근 다시 늘었다. 2007년 불법 근로자 수가 6만 4907명에 달했지만, 2008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5만 4518명과 4만 8029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올해 5월 현재는 5만 3644명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원인은 고용허가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경기 침체로 실직하거나, 직장을 제때 찾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단속과 강제 추방만으로는 불법체류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합법적으로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저임금 노동력 착취 수단으로 악용하던 ‘산업연수생 제도’는 2007년 폐지됐지만, 국내에는 아직 4003명(해외투자기업 제외)의 산업연수생이 남아 있다. 이들은 연수기간이 만료됐지만, 귀국하지 않거나 고용허가를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조선족이 949명으로 가장 많고, 필리핀(389명)·베트남(253명)·인도네시아(237명)인 등도 상당수 남아 있다. 이들은 종종 생존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작년 농촌총각 41% 외국인 신부맞아… 국적 베트남·中 順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작년 농촌총각 41% 외국인 신부맞아… 국적 베트남·中 順

    지난해 결혼한 국내 농촌 총각 8596명 가운데 41%(3525명)가 외국인을 신부로 맞았다. 국적은 베트남(2394명)이 가장 많았고 이어 중국(718명), 필리핀(170명) 등의 순이었다. 한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캄보디아는 눈에 띄게 줄었다. 여성가족부가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지난해 전국 다문화가족 7만 3669가구의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결혼이주자의 현황을 숫자로 풀어본다. ●2000년 이후 81.1% 결혼이주자는 지난해 5월 현재 12만 5673명이다. 혼인귀화자 4만 1417명까지 더하면 한국인과 결혼한 다문화인은 16만 7090명이다. 나라별로는 조선족(30.4%)을 포함한 중국인이 절반을 넘었다. 베트남(19.5%), 필리핀(6.6%), 일본(4.1%), 캄보디아(2%)가 뒤를 이었다. 입국 시기는 2000년 이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최근 다문화가족이 급속도로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균나이차 10세 여자는 한국인 남편보다 평균 열 살 어렸다. 특히 캄보디아는 17.5세, 베트남은 17세나 차이났다. 20대 외국인 여자와 40대 한국인 남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문화차이뿐만 아니라 세대차이가 다문화가족이 극복할 과제라고 전문가가 제언하는 이유다. 이들은 주로 지인의 소개(46.4%)나 결혼중개업체(25.1%)를 통해 배우자를 만났고, 그래서 입국목적도 79.2%가 ‘결혼’이라고 밝혔다. ●이혼 3.2% 이혼·사별한 결혼이주자는 4%였다. 평균 4.7년 만에 배우자와 헤어졌다. 그만큼 결혼이주자의 결혼기간이 길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혼 사유는 배우자의 ▲성격차이(29.4%) ▲경제적 무능력(19.0%) ▲외도(13.2%) ▲학대와 폭력(12.9%) 등으로 조사됐다. 중국과 북미·서유럽은 성격 차이를, 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는 학대·폭력을 주로 지적했다. 어릴수록 외도를, 나이들수록 성격차이를 이유로 꼽았다.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하더라도 법률을 제대로 몰라서 결혼이주자가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자녀교육 어렵다” 73.5% 다문화가족의 평균 자녀수는 0.9명. 연령은 6세 미만이 66.5%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 취학연령(23.9%), 중학교(4.6%), 고등학교(1.4%)가 뒤따랐다. 종교적 이유로 1990년대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가정의 자녀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반면 농촌 총각과 결혼한 1세대 결혼이주자의 자녀는 이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73.5%가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학원비 마련(27.4%) ▲예·복습지도(23.2%) ▲숙제지도(19.8%) 때문이었다. 저학력층은 학습지도를, 고학력층은 학원비 마련을 문제로 지적했다. ●빈곤 경험 30% 월평균 소득은 대체로 낮았다. 평균 100만~200만원이 38.4%, 100만원 이하가 21.3%나 됐다. 한국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인 332만 2000원과 사뭇 비교된다. 빈곤을 경험한 다문화가족도 30%. ▲전기·수도세나 사회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생활비가 없어서 돈을 빌리고 ▲돈이 없어서 병원치료를 중단하기도 했다. ‘가난한’ 한국 남자와 ‘가난한’ 외국 여자가 만나 결혼하니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그만큼 힘든 것이다. 결혼이주자가 악착같이 공장에서 돈을 버는 이유도 여기 있다. ●취업률 40% 결혼이주자 40%가 취업을 했다. 남자(74%)가 여자(37%)보다 2배나 높았다. 주당 평균 43.21시간을 일하고, 월 108.92만원을 받았다. 결혼이주자 72.8%가 취업을 위해 직업훈련을 받고 싶다고 밝혔고, 분야별로는 ▲어학 ▲컴퓨터 ▲음식조리를 꼽았다. 가사도우미나 간병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했다. 결혼이주자는 정부의 교육프로그램이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한다. 한 사람이 취업할 때까지 꾸준히 지원하지 않고, 교육을 이수한 사람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는 이유에서다. ●차별경험 34.8%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연령과 학력이 높을수록 “한국생활에서 외국인이라며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 결혼이주자를 향한 차별이 존재하지만, 일부 다문화인만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머지는 ‘차별’인지도 모르고 가정폭력까지 삶의 일부로 감내한다. 다행인 것은 동남아 여자가 겪은 차별 경험이 많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2006년에 비해 필리핀은 19.9%, 베트남은 15% 차별 경험자가 줄었다. ●외로움 9.9% 한국생활이 힘든 이유로 여자는 언어문제(22.5%), 경제문제(21.1%), 자녀문제(14.2%)를 꼽았다. 나이가 많고 거주기간이 길수록 언어문제는 감소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양육의 어려움은 커졌다. 언어는 자신의 노력으로 익히면 되지만, 경제적 삶은 체류기간이 길어져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외로움’(9.9%)은 2006년(23.3%)보다 눈에 띄게 감소했다. 최근 같은 나라 출신의 인적네트워크가 강화된 영향으로 전문가는 풀이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韓商 1200명 ‘中선양 상륙작전’

    중국을 비롯,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기업가 1200여명이 중국 랴오닝성 성도 선양(瀋陽)시에 모였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시장을 겨냥한 ‘선양 상륙작전’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열리는 첫번째 한상대회인 ‘2010 중국 글로벌 한상대회’가 5일 선양시 정부가 마련한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오는 8일까지 계속될 한상대회에는 한국인 기업가 1200여명과 조선족 기업가, 중국인 기업가들이 대거 참석해 1대1 투자상담 형식으로 진행된다. 선양시 정부와 주선양 한국총영사관, 중국한국상회 등 3개 기관이 공동주최했다. 주최 측은 세계 각국에서 뛰는 한상들 간의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시장정보를 교환,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중 비즈니스 교류회, 한·중 100강 기업가 교류회, 한·중 상품전시회 등이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중국기업들의 한국 증권시장 상장이나 한국투자 유치를 위해 한국투자설명회, 기업공개(IPO)설명회 등의 일정도 잡혀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월드이슈] “북조선의 이념·자주성 지키며 살고파”

    [월드이슈] “북조선의 이념·자주성 지키며 살고파”

    김수정(53)씨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 국적으로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실상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는 조선족에게 현실적인 제약은 은행 대출과 해외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사카에서 부동산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큰 규모의 사업이 아니라 은행에 대출받을 일이 없다. 얼마전 일본인과 함께 서울을 가기 위해 오사카 한국영사관에 임시 여권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진 감내하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김씨 가족들은 최근 한국 국적으로 바꿀 것을 심각하게 논의했다. 둘째 아들이 공주대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며칠간 치열한 논의끝에 부인과 둘째 아들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렇다고 김씨가 한국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내내 “우리 한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한국이 민주화를 달성하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 누구보다 감격스럽다는 점을 전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조선적을 유지하는 게 이념과 자주성을 지키기는 일이라 생각해 한국 국적 취득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북조선은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자주독립’, ‘자주성’을 내세우는 걸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런 신념을 지키는 데는 차별받고 가난했던 성장배경도 한몫했다. 제주 출신인 조부모는 오사카에 이주해 와 9남매를 낳아 어려운 생계를 꾸려갔다. 김씨의 부친은 17세때 나이를 속여 군대에 입대할 정도였다. 군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 명이라도 입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한 이유 때문이었다. 김씨는 히가시 오사카 중학교에 다닐 때 반의 학생위원장 선거에서 당당히 1위로 선출됐다. 하지만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위원장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학생주임이 찾아와 재선거를 할 것을 종용해 일본 학생이 추천을 받아 위원장이 됐다. 간사이대학에 진학해서는 조선역사연구회에 가입해 우리나라 역사의 우수성과 한민족으로서 자긍심을 깨달았다. 김씨는 이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조선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아들 둘도 민족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 학교를 보내지 않고 조선학교에 진학시켰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과 북한팀을 똑같이 응원했다는 김씨는 “남과 북이 빨리 통일이 돼 동포들의 국적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결혼이민여성 정착 돕고 일자리도 창출

    결혼이민여성 정착 돕고 일자리도 창출

    전북 전주시 우아동에 사는 중국 출신 결혼이민여성 리유쿤(29). 그는 지난달 말부터 고향에 사는 가족들이 보고 싶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화상통화를 한다. 한 달 전만 해도 컴맹이었으나 전주시의 ‘다문화가정 희망 e배움 방문사업’의 수혜자로 선정돼 인터넷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정보화 자격증 소지자와 통역을 담당하는 결혼이민여성이 결혼이민자 가정을 방문, 컴퓨터 교육은 물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즉 한국인과 결혼이민여성이 2인 1조가 돼서 1명의 결혼이민여성을 돕는다. 지리·경제적으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이 어려운 결혼이민여성이 교육 대상이다. 사회생활이나 가족관계 등에서 문제점이 발견되고 상담이 필요할 경우 교육 강사를 통해 전문가와 연결되기도 한다. 전주시는 이를 위해 정보화 자격증 소지자 5명, 결혼이민여성 5명을 희망근로 요원으로 뽑았다. 지난 3∼4월에 16개 가정, 5∼6월에도 16개 가정을 지원했다. 통역 강사로 활동 중인 조선족 출신 결혼이민여성 주춘매(24)씨는 “아이가 어릴 경우 컴퓨터는 물론 한국어도 외부에 나가서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며 “내가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컴퓨터 강사가, 컴퓨터 강사가 컴퓨터를 가르칠 때는 내가 아이를 돌봐주면서 편하게 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전했다. 몇몇 교육생들은 격일로 방문하는 통역 강사들에게 물어볼 한국말을 빼곡히 적어놓고 기다리기도 한다. 교육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화상통화 시스템이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한국의 가족들이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방문교육 신청자가 늘고 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 결혼이주여성은 22개국 출신 1451명이다. 중국 출신이 618명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출신 306명, 조선족 출신 243명, 필리핀 출신 119명, 일본 55명, 캄보디아 38명 등이다. 다양한 국적 출신이 살고 있으나 아직 예산 부족으로 이주여성이 많은 중국, 베트남, 일본 출신 여성들만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소통의 공간 광진 차이나타운 노래자랑 등 다문화가족 축제

    소통의 공간 광진 차이나타운 노래자랑 등 다문화가족 축제

    서울 광진구가 다문화가족을 위한 아름다운 소통의 장을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23일 구에 따르면 25일부터 27일까지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과 건대입구역 중국동포타운 거리에서 다문화가족 한마음 축제를 연다. 자양4동을 중심으로 들어선 차이나타운에는 8400명의 중국동포가 살고 있다. 성수동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싼 월세방을 찾아 모여 들면서 형성된 이 거리는 최근 건국대, 한양대로 유학 온 중국 학생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각지의 중국인과 중국 동포들도 옮겨오는 추세다. 더욱이 구로구 가리봉동 등에 모여 살던 중국인들이 속속 이사 오면서 거리는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현재 1만 2700여명의 외국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생활기반을 잡고 있다. 이번 축제는 바로 이들과 주민들이 소통하는 장으로 25일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예술단 공연을 필두로 화려한 축제가 펼쳐진다. 다문화 가족 10개팀이 참가하는 노래자랑대회를 비롯해 음식거리축제, 글짓기 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줄을잇는다. 특히 ‘양꼬치 거리’로 이름난 건대입구역 차이나타운에서 3일간 열리는 음식문화축제는 벌써부터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건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한강 방면으로 50m가량 직진한 우측 골목에 양꼬치 등 70여개의 다국적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이곳 음식점들은 축제기간 대표음식을 시식할 수 있는 코너를 통해 맛을 한껏 뽐낸다. ‘松花羊肉(송화양육관)’, ‘延吉面(연길냉면)’등 중국·몽골 전통 음식점들은 향신료를 거의 안 써 우리 입맛에도 맞다. 대표적인 메뉴이자 조선족들이 향수를 달래며 먹었다는 양꼬치는 1인분(꼬치 8~10개)에 8000~1만원 수준이다. 양고기 외에도 고수감자튀김, 매운소힘줄, 매운오돌뼈, 삼겹살 양장피, 지삼선 등 특선요리들을 선보인다. 이번 축제기간에는 다문화가족 청소년 글짓기 대회에 대한 시상식도 있다. 다문화가족으로 어려웠던 점, 미래의 꿈과 희망, 학교 친구와 우정 등을 주제로 원고를 받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후원으로 26일과 27일, 7월3일 다문화가족 300명을 대상으로 암검사 등 무료 종합건강검진도 진행한다. 민정기 가정복지과장은 “올해 최소 1만 5000여명이 맛의 명소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번 축제를 계기로 다문화가족의 문화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현장 행정]다문화 가정 한국 정착 돕는다

    상경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서울 땅에 왔다는 느낌을 심는 데 “정차할 곳은 영등포역입니다.”라는 열차 안내방송만한 게 없다. 전국을 오갈 수 있어서인지 우연찮게도 영등포구는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3만 6000여명이나 된다. 특히 중국 출신이 조선족 3만 3000여명을 포함해 3만 4200명에 이른다. 이런 영등포구가 관내 거주 외국인, 결혼이민자 등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데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지하철 대림역 인근에 자리한 영등포다문화빌리지센터가 중심 무대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뒤 갖가지 무료강좌를 통해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도록 돕고 있다. 전담 팀장과 공익근무요원을 포함해 직원 5명을 파견했다. 센터는 247㎡(75평) 넓이다. 5층 건물의 2층 일부를 전세로 얻어 국적취득반과 한국어 입문, 컴퓨터 초·중·고급 과정 등을 무료로 강의한다. 초·중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부모들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도록 중국어도 가르친다. 자동차 운전면허 필기시험 강좌도 눈길을 붙잡는다.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3700여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마치고 어엿한 한국인으로 생활에 적응력을 키우고 있다. 다문화빌리지센터는 오는 8월 강좌에 참가할 수강생을 오는 30일까지 접수한다. 현재 570여명이 신청했을 정도로 인기 ‘짱’이다. 프로그램이 알차다는 이야기도 된다. 한국문화의 이해, 기초영어 등 5개 과목에 반별 25명(컴퓨터 교실은 10명)을 뽑는다. 특히 한국어교실은 기초반, 초·중·고급반 등 총 7개반으로 나누어 수준별 맞춤 강의를 제공한다. 이번 학기부터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을 위해 베트남반도 따로 만들었다. 모집 대상은 결혼이민자 또는 관내에 주소를 둔 외국인으로, 거주지역 제한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센터를 방문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교육 기간은 한국어교실 6개월, 컴퓨터교실은 3개월이며 운전면허·기초영어·한국문화이해반 등은 1년 과정으로 90분씩 주 2회 강의한다. 대사관이 많은 성북구에도 외국인을 위한 다문화빌리지센터가 있다. 영등포다문화빌리지센터 이인제 팀장은 “경제적인 사정 등으로 어렵게 지내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시설로는 유일하다.”면서 “갈수록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시대를 맞아 이들이 제대로 정착해야 사회도 성숙하는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도시와 길] 환영광림·구육관…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도시와 길] 환영광림·구육관…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만든 제품을/화려한 백화점으로,/물 건너 코 큰 나라로 보내고 난/허기지고 지친/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 두며/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이리 기웃 저리 기웃/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발길을 돌린다’ 시인 박노해가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에 담은 ‘가리봉시장’이라는 시의 마지막 대목이다. 시인은 구로공단의 불빛이 꺼지지 않았던 1970~80년대 가리봉시장의 밤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랬다. 가리봉시장 일대는 가난하고 지친 노동자들이 허기를 달래던 곳이었고, 골목마다 벌집처럼 웅크린 쪽방들이 우리네 누이와 형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 이곳도 구로공단이 첨단화되고, 제조업체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누이와 형들 대신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를 나서면 ‘達來面(진달래냉면)’ ‘狗肉館(구육관)’ ‘歡迎光臨(환영광림·’어서 오세요‘라는 뜻)’ ‘복래반점’ ‘중경노래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그렇듯 가리봉동은 간판부터 다르다. 진달래식당, 진달래구육점 등 ‘진달래’라는 이름의 간판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식당 메뉴도 한글이되 한글이 아니다. ‘밴세’, ‘썩장’ 등 낯선 글자가 즐비하다. 밴세는 만두, 썩장은 청국장을 일컫는다. 삼거리로 내려오는 길에는 개고기 샤부샤부, 소배필(소삼겹살) 같은 조선족 음식을 파는 가게가 이어져 있다. 삼거리 왼쪽에는 중국동포타운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삼거리를 지나 직진하면 ‘연변거리’로 불리는 가리봉동 골목이 나온다. 골목을 따라 50여 점포가 모여 있다. 시장에는 두께가 1㎜인 간두부와 우리가 아는 갓김치와는 다른 영채김치, 오리알, 식용잿물(소다) 등도 구경할 수 있다. 조선족이 많이 먹는 옥수수국수와 주먹 두 개 크기의 만두도 있다. 시장을 지나 언덕을 오른 후 골목을 돌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쪽방촌을 만날 수 있다. 집 한 채를 쪼개 여러 명이 생활하다 보니 벌집과 비슷하다고 해서 벌집촌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구로공단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묵던 곳이었다. 공단이 사라진 후에는 조선족 이주민들의 거처로 바뀌었다. 가리봉동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였다. 0.43㎢ 면적에 7638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조선족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가리봉동 쪽방촌(벌집촌)과 가리봉시장 일대 크고 작은 중국음식점들도 조만간 볼 수 없게 된다. 이곳은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돼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2015년까지 재개발될 운명이다. 가리봉시장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최영학(63)씨는 “한·중 수교(1992년) 이후 가리봉동은 조선족들이 몰려들면서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다.”며 “하지만 가리봉동이 재개발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조선족들도 다른 곳으로 뿔뿔이 떠나 지금은 동네 전체가 가라앉은 상태”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도시와 길] 또다른 서울 속 외국인거리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살기를 원한다. 가정이 꾸려지고, 마을이 형성되고, 나라가 세워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비단 제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나가서 살더라도 제 나라 사람끼리 마을을 이루는 게 다반사다. 그래야 낯선 하늘 낯선 땅이라도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이후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시내 곳곳에 외국인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서울 거주 외국인 수가 다소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3월 말 현재 25만 5501명의 외국인이 서울에 산다. 서울 전체 인구가 1046만 4171명이니까 100명당 2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인 마을로는 용산구 이촌1동과 한남동, 이태원동 등 3곳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이촌1동은 1970년대 한강외인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 지금은 이 일대 아파트단지에 사는 일본인이 1만명에 육박한다. 1960년대부터 주한 외국공관들이 속속 들어선 한남동은 주한 외교관 가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용산 미8군기지에 근무하는 군인과 군속 등이 많은 이태원동에는 최근 주말이면 이곳 이슬람사원을 찾는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의 노동자들이 부쩍 몰리면서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코리안 드림’을 품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새롭게 만든 외국인 마을도 눈에 띈다. 구로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공단 근로자들의 거주지였던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 쪽방 형태의 속칭 ‘벌집촌’은 조선족 등 한국계 중국인들로 채워졌다. 이곳에 둥지를 튼 외국인들은 줄잡아 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보따리상들이 동대문 일대 의류시장을 찾기 시작하면서 중구 광희동 일대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촌으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몽골인들이 늘면서 ‘몽골 타워’라 불리는 몽골 식품과 신문 등을 구할 수 있는 건물도 들어섰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학술대회

    국제한인문학회(회장 김종회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9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 청운관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연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가 공동 개최하는 이 대회에는 이명재 중앙대 교수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지형도와 접근 과제’를 주제로 기조 발제를 맡았다. 이 밖에도 중앙아시아 고려인, 재중·재일 조선족, 재미 한인들의 문학에 관해 8명의 연구자가 발표를 진행한다. (02)961-2167.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절대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마오쩌둥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동이 틀 때까지 줄담배를 피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듯 중국과 한국 지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갈수록 중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타이완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미군과 정면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이번 전쟁의 승패가 가져올 정치적 여파를 꼼꼼히 계산했다. 미군이 참패를 맛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공내전을 치르느라 쇠약해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미국의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속속들이 파헤친 ‘콜디스트 윈터’에서 묘사한 중국 참전결정의 전야(前夜)이다. 중국 주력부대의 압록강 도하 시간은 1950년 10월19일 오후 5시30분이었으니 18일 밤 상황인지도 모른다. 진위를 떠나 핼버스탬은 마오쩌둥의 번민을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중국군 개입은 한반도 내전을 순식간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었다. ●마오 결정은 중국을 위한 선택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마오쩌둥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숱한 해석과 이론이 난무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한국전쟁 참전의 대의명분은 ‘미국에 대항해서 북한을 돕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제7함대를 파견해 타이완해협을 봉쇄하고,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6월27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에 정면대항하는 이른바 ‘미·중 전쟁’의 선전포고였다. 중국을 목표로 한반도, 타이완, 베트남 등 3개 루트를 통해 침투하려는 미국의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전략에 맞서려는 의도였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이들 3개 지역을 차지하고 나서 궁극적으로는 중국본토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참전 배경과 결정과정은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설득에 따라 공산진영을 지키려는 마오쩌둥의 고독하고 영명한 결정이라는 정도밖에. 그러나 최근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 측 비밀자료를 보면 마오쩌둥은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신의 운명을 건 주사위를 한국전쟁을 향해 내던졌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은 마오쩌둥의 독단적 선택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국은 이 같은 사실을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과 결과만 얘기했다.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의 실마리는 ‘조선인 사단’의 귀환 동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개전 초 김일성이 파죽지세로 낙동강 전선까지 공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해방군에서 귀환한 3만 5000명 규모의 조선인 장병의 공이 컸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동북 3성 거주 조선족으로 구성된 2개 사단(2만명)을 통째로 북한에 넘겼다. 이들은 인민군 5, 6사단으로 편성됐다. 1950년에는 나머지 부대원 1만 5000명을 또 귀환시켰다. 이들은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쌓은 백전노장들, 인민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마오쩌둥,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쓴 화동 사범대 선즈화 교수는 “북한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정과 지지를 보여준 조치”라고 분석했다. ●조선인 해방군 3만여명 北에 넘겨 본격적인 참전준비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7월부터 치밀하게 이뤄졌음이 중국 측 자료에 의해 새롭게 드러났다. 참전이 최종 결정된 10월19일까지 넉 달 가까이 피 말리는 내부투쟁이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벌어졌다. 7월7일 ‘미국의 조선 무장침략 후의 정세분석과 중국의 국방 증강대책’이라는 국방군사 회의가 열렸다. 13일에는 한국에 투입될 30만명 규모의 동북변방군 창설이 결정됐다. 가상 적국은 미국이었다. 8월4일 당 중앙 정치국회의에서 마오쩌둥은 “미국은 한반도와 타이완, 베트남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교전할 작정이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전투규모가 크든 작든 혹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든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결사항전의 비장한 선언을 했다. 동북변방군은 출동할 때 ‘의용군’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조선인민군 복장을 착용하며, 인민군의 깃발을 내걸고, 주요 간부의 이름도 조선인 이름으로 바꿨다. 해방군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이 주축이 된 의용군은 ‘준비된 군대’였다. 참전 초기 연합군을 무서운 속도로 밀어내며 연전연승한 것은 연합군의 실책도, 운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매복, 위장 등 한반도 북부 산악지형에 맞는 전술을 훈련을 통해 몸에 익혔기 때문이었다. 30만 의용군이 오로지 인해전술로 북진 중이던 13만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건 냉전시대 교육의 산물이다. 9월 참전 구상이 세워졌지만 시기는 계속 연기됐다. 마오쩌둥도 저우언라이 총리와 린뱌오 등 지도부의 거센 반대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중국의 문서보관소인 당안관(?案館)자료와 내부적으로 발간된 ‘건국 이후 마오쩌둥의 문고(文矯)’ 등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혼란을 겪었다. 린뱌오는 “중국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지도 모르고, 승리 가능성이 작다.”라는 이유로 출병을 반대했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일본 도요가쿠엔대학 지안롱 교수는 저서 ‘모택동의 한국전쟁’에서 10월4일과 5일 정치국 회의 참가자 중 찬성과 반대의 세력분포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찬성자는 마오쩌둥 혼자뿐이었고, 불명확한 사람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펑더화이 사령관 두 명이었으며, 나머지 7명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中 독자출병 소식에 스탈린 눈물 그러나 마오쩌둥은 10월5일 정치국 회의에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기 전에 출병해야 한다.”라고 밀어붙였다. 펑더화이를 의용군 총사령관에 추천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세 번이나 번복된 참전이 최종 결정됐다. 이후 냉전체제가 해체돼 한국전쟁의 주역인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 사이에 오간 극비문서들이 공개되기 전까지 중공군 참전과정의 진실은 서고 속에 묻혀 있었다. 김일성에게 베이징의 개입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크렘린은 계속 베이징 지도자에게 미루고 있었다. 중국의 참전소식은 나흘 뒤인 10월8일에야 평양에 전해졌다. 초대 평양 대리대사를 지낸 차이청원은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것 잘됐다, 잘됐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마오 주석과 당 중앙에 나와 조선 당, 인민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해 달라.”라고 기뻐했다고 적고 있다. ’ 앞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으로 패주하면서 중국 망명정부 수립을 준비 중이던 김일성은 10월1일 ‘경애하는 마오쩌둥 동지’ 앞으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위험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출동해 지원해 달라.”라고 애걸복걸하는 편지를 보낸 상태였다. 중공군의 참전결정이 차일피일 늦어진 것은 소련군의 공군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보병은 중국, 공군은 소련이 맡는다는 것이 애초 양측의 합의사항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 총리를 모스크바에 보내 공군지원을 요청했으나 ‘준비 불충분’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중국 측 연구자들은 이를 ‘스탈린의 배신’이며 추후 중·소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 또 소련공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의 독자출병소식을 들은 스탈린은 눈물을 흘렸다고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몇 년 뒤 마오쩌둥은 “스탈린은 나를 (자국이익만 생각하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로 의심했지만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된 1950년 겨울부터 이 의심은 사라졌다.”라고 회고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러시아어 통역장교로 자원입대한 장남 마오안잉(28)을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잃었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남 회령군 ‘지원군 열사능원’에 있다. 36만명에 이르는 중국군 전사자들과 함께 묻혀 있다. 마오쩌둥은 만류하는 측근들에게 “내 아들이 가지 않는다면 인민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쟁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과 북한 양국의 우의는 혁명열사들의 선혈로 맺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中, 3년간 500만명 병력 투입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의용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79개 보병사단과 12개 공군사단, 16개 포병사단, 10개 공병사단, 10개 전차연대 등 모두 합치면 200만~300만명에 이른다. 최고조에 이른 1953년 4월부터 7월까지는 일시에 130만명의 병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3년 동안 연인원 500만명이 동원됐다는 서방 측 자료도 있다. 중공군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36만 6000명이지만 비전투 사상자를 더하면 사실상 60만~90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군 전사자 3만 3000명과는 비교 불가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이 됐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북한 편들기를 비판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은 60년 전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타이완-한국전선에 대항하고 완충지대를 갖기 위해서는 설령 사고뭉치라고 하더라도 북한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김일성의 우상은 스탈린에서 마오쩌둥으로 바뀌었다. 결정적인 순간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전쟁 전 소련 위주의 북한정책이 전쟁 후 중국위주로 전환됐다. 지안롱은 “정전협정 뒤 중국과 북한 수뇌는 언제라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특수한 관계가 계속됐다.”라고 설명했다.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던 마오쩌둥에게 한국전쟁은 터닝 포인트였다.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소련과의 동맹을 공고히 했고, 북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이 함부로 못하는 위협적 존재가 됐다. 인도차이나반도 문제 등에 대한 국제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1971년 타이완을 내쫓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는 발판이 됐다. 비록 ‘비기는 전쟁’으로 끝났지만 마오쩌둥의 도전과 모험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오쩌둥은 1953년 스탈린 사후 자신이 사망한 1976년까지 중국과 공산진영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했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 기자 joo@seoul.co.kr
  • 강릉단오제 12일 개막

    강릉단오제 12일 개막

    천년의 축제 ‘강릉 단오제’가 아시아의 단오문화 한마당으로 12일부터 막이 오른다. 강릉단오제위원회는 8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강릉단오제를 중국·일본·타이완·베트남 등 단오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아시아권 8개 국가들과 함께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일까지 1주일동안 단오문화관, 강릉문화예술관, 주문진 수산시장, 대학로 등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이미 지난달 18일부터 본 단오제의 앞선 행사로 신주빚기, 대관령산신제, 국사성황제, 구산서낭제 등의 문화재행사가 이뤄졌다.오는 14일 영신제와 영신행차에 이어 15~19일 본격 단오굿과 관노가면극, 송신제가 열린다. 특히 올 단오제에는 아시아 한마당 행사로 중국(쓰촨·훈춘·베이징)과 일본(도쿠시마·오이타·돗토리),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참가자들이 공연과 전시활동 등을 펼친다. 중국 조선족 농악무공연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단오절 민속공연이 관심을 끌 전망이다. 단오제기간중 동아시아인형극제도 열린다.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 9개 전문인형극단이 참여해 전통인형극을 공연한다. 단오제의 기본행사인 씨름, 그네, 줄다리기 등 전통 민속행사와 창포머리감기, 수리취떡만들기, 단오부채그리기, 관노탈그리기 등 단오 체험행사도 열린다. 이밖에 공영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전기자동차가 처음 운행되고 남대천변의 떨어지는 물줄기를 이용해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워터비젼이 설치,운영된다. 최종설 강릉단오제위원장은 “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릉단오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며 “누구나 찾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축제인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