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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산품 절대부족… 물물교환의 밀무역 성행(북한은 지금…:2)

    ◎자동차 “기름절약” 내리막길 시동끄고 운전/소유권 인정 텃밭엔 채소 무성 “아이러니” 북한경제는 물물교환에 의존하는 「원시사회」로 회귀하고 있는 듯했다.러시아와 중국 접경지역에서는 많은 북한주민들이 오징어 명태등 가공이 필요없는 1차산업 상품을 들고나와 양식 등으로 바꾸는 원시적 물물교환 형태의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었다. 공산품 생산도 원자재 및 전력난으로 공장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져 주민들의 최소한의 수요조차 댈수 없을 정도인데다 그나마 생산된 상품마저 유류난 등으로 차량의 운행이 중단되다시피해 물류가 왜곡되고 있었다. 북한경제는 「세계의 성장센터」로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많은 나라들과는 달리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북한은 여러가지 비효율적인 경제요소들이 뒤섞여 경제기틀을 갉아먹으며 아·태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지난 90년이후 내리 6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난은 무엇보다 경제원리를 무시한 정치 최우선주의,남북관계를 고려한 군수산업에 대한 편중투자,주요 교역대상국인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등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진단한다.서울신문과의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공장 하나를 지을 때도 경제성을 도외시한채 당방침에 따라 원자재·에너지·인력 등을 우선 투입하거나,남북관계를 고려해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지하에 짓는 것 등이 경제난 악화의 주요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경제성을 무시한 정치 최우선의 투자와 군수산업 일변도의 투자는 결과적으로 전력난과 원자재난,물자난,유류난 등을 부채질하고 있다.전력난의 악화는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아 원자재 및 물자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노천철광산지로 유명한 함북 무산의 철광산은 전력난과 채산성이 떨어져 생산을 중지하고 지금은 호주에서 철광석을 수입하고 있다』고 무산이 한눈에 보이는 중국 화룡시 노과향에서 만난 조선족 유모씨는 전한다.구리를 생산하는 양강도 혜산광산도 전력난으로 가동시간을 줄여 생산량이 10여년전의 절반수준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물자난의 심화는 종이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게 하고 있다.학생들이 논문용지가 없어 논문을 쓰지 못하고 공문서용 종이마저도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훈춘에서 만난 조선족 전모씨는 『최근 원산에 있는 이종사촌 동생이 논문 쓸 종이를 좀 부쳐달라고 해 5백장정도를 보내줬다』고 말한다. 옛 소련의 몰락으로 원유수입이 어려워지고 유류난도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두만강시·무산·남양·혜산·신의주 등 러시아와 중국에 인접한 북한도시 거리에서는 자동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이들 도시 교외의 논밭에도 소달구지만 가끔 보일 뿐이었다. 기름절약을 위해 자동차들이 내리막길에서 시동을 끄고 내려가는 「위험한 운전」도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북한에서 운전할 때 오르막길 초입에 들어서면 차가 내려오나,안오나부터 살핀다.북한 차들은 내리막길에서 시동을 끄고 내려오는 게 보통이어서 제동장치가 말을 잘듣지 않기 때문에 잘못 올라가다가는 충돌한다.돈없는 그들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도 없어 옆으로 피해 있다가 지나간 뒤에야 올라간다』고 12년째 중국에서 회령으로 밀가루를 싣고다니는 트럭운전사인 조선족 임모씨는 털어놓는다. 북한의 경제는 전반적으로는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있지만 「풍요로운 예외」가 있다.집주변의 텃밭만큼은 채소 등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등 풍요롭다.함북 종성군 신전리에는 집집마다 집주위에 맥주의 원료인 홉을 심어놓고 있었다.합동조사에 참여한 한석태경남대 교수는 『텃밭생산물은 자신의 몫이고 농민시장 등에 내다팔아 돈이나 양식을 살수 있기 때문에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것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텃밭은 실패한 사회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북한주민들은 자기몫인 텃밭은 정성을 다해 가꾸지만 공동소유인 다른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그것은 인간의 소유본능을 경시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보편적 현상이었다.그러한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개방·개혁정책을 거부하는한 북한의 경제난은 계속될 것 같다. ◎참여교수 시각/경제난 원인 및 실상/정치우선 놀리가 경제왜곡 시켜/함택영 경남대교수·국제정치학 오늘날 북한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남한당국(통일원,한국은행 등)의 추정에 따르면 북한 GNP는 1990년 이래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북한의 공식·비공식 소식통도 1989년을 정점으로 하여 그후 1인당 경상달러화 GNP의 감소를 보여주고 있으며,1993년에는 3차 7개년계획의 실패를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것은 농업부문의 침체일 것이다.그 정확한 진상을 알수 없으나,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북한당국은 전세계에 식량원조를 요청하고 있으며,식량획득을 위한 주민들의 자구노력을 강력히 통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북한경제가 농업부문뿐만 아니라 공업과 사회간접자본 부문에서도 극심한 침체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외채난 및 외화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은 충분한 에너지·공업원료 및 반제품·생산시설 및 기계류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으며,또 북한에 대규모 투자나 차관제공을 시작한 나라도 없다.필자가 북한의 여러 국경도시와 마을을 강넘어 관찰한 바로도 광공업설비가 거의 조업중단 상태였다.다만 가파른 산기슭에까지 강냉이를 심어놓은 「다락밭」만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이같은 총체적 경제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북한당국은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안보부담,그리고 근래에는 물난리를 강조하여 외인론,환경론을 펴는 반면 남한측은 안보부담뿐만 아니라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의 내재적 문제에 원인을 돌려 내인론을 강조하고 있다.필자의 견해로는 남한측 주장이 북한경제의 장기적 침체를,그리고 북한측 주장은 1990년대의 위기를 설명해주고 있다.남·북한이 모두 막중한 군비부담을 북한경제침체의 큰 원인으로 꼽고 있으나,보다 전반적인 자원배분의 왜곡이 가장 중요한 변수일 것이다.북한은 군비 이외에도 비생산적인 정부부문소비에 막대한 자원을 낭비해왔다.대내외 과시용의 수많은 기념비적 사업과 대규모 행사들은 주체사상을 선전함으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으나,그 결과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게 됐던 것이다.현상태로는 북한경제가 자생력을 지녔는가 의심스러우며,따라서 경제개혁·개방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 한·중 교섭/「사법처리 주체」싸고 논란 가능성

    ◎「선상반란」 어선 관련국과 외교접촉 전망/선적 온두라스에 선박인도 양해얻어/같은 피해국 인니와도 별문제 없을듯 남태평양에서 선상폭력사건으로 표류하다 일본 영해로 들어갔던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는 일단 다시 공해로 나와 우리측에 곧 인도될 예정이다.지난 25일 일본 영해에서 페스카마호가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해 발견된 이후 정부가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측에 선박·선원 인도교섭을 계속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해경이 페스카마호를 곧 예인해올 예정이지만 정부에게는 아직 이번 사건의 관련국인 온두라스·중국·인도네시아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해양사고에 관해서는 체계적이고 확립된 국제법이 없다.그러나 대체로 ▲선박의 국적국(온두라스)과 ▲가해국(중국) ▲피해국(한국·인도네시아)등을 관련국으로 인정하며,관련국은 누구나 사고에 대한 조사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합의가 이뤄져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페스카마호의 선적을 갖고 있는 온두라스와의 협의에 들어갔다.26일 유명환 외무부 미주국장을 통해 주한 온두라스대사관에 이번 사고와 관련한 정부입장을 설명하고 우리측이 페스카마호를 인도해오는데 대한 양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사고발생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우리 정부가 일본측과 인도교섭을 벌이는 중에도 일본측에 아무 입장전달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일단 페스카마호를 우리가 예인하는 한편 외교경로를 통해 중국과 인도네시아측에 이에 대한 양해를 요청할 방침이다.먼저 두 나라의 양해를 얻은 뒤 페스카마호를 인도할 경우에는 시일이 너무 많이 경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가운데 같은 피해국인 인도네시아와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섭에서는 누가 가해자를 사법처리하느냐는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피해자배상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해양사고의 경우 피해자배상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이며,가해자의 모국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선상반란자 사법처리는/한국선원 살해 중 조선족선원 6명 살인죄 적용 불가피/국내법에 따른 처벌 큰 걸림돌 없어/중국­인니인 살인은 처벌대상 제외
  • 원양어선 선원관리 무엇이 문제인가(심층취재)

    ◎외국인 초과 고용… 「반란」 무방비/업계 불황여파 저임선원 무더기 채용/임금 국내인의 30%선… 차별대우 “불만”/작년 선상폭력 125건… 외교교섭·수사권 갖춘 전담기구 설치 시급 지난 2일 한국인선원과 중국교포선원 등 11명의 목숨을 졸지에 앗아간 선상살인사건을 두고,무엇보다도 국내 선원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선원 고용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크게 일고 있다.한국인과 외국인 선원간의 차별대우와 열악한 작업환경 등으로 인해 선상반란 등 잦은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어획량의 급격한 감소와 저임금에 따른 국내 선원들의 승선기피현상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국내 원양업계의 상황도 큰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원양어선의 모든 문제점을 점검해 본다. ▷현황◁ 한때 수출전략산업으로 각광받았던 국내 원양어업은 90년대 들어 각국의 어로규제가 강화되고 어족 감소·어가 하락으로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도산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돼 지난한해에만 원양업체 31개사가 도산했으며 올 상반기에도 7개사가 문을 닫았다.이는 2백10개에 달하는 국내 원양업체의 18%에 달하는 숫자이다. 27일 해양수산부와 원양어업협회에 따르면 원양어업 총생산량은 지난 91년 87만3천t에서 92년 1백2만3천t으로 늘어나는듯 했으나 93년에는 74만1천t으로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94년에는 88만7천t,95년에는 89만7천t으로 소폭 상승했으나 올 상반기에는 41만7천t으로 평년의 어획량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양어선수도 91년 8백척에서,92년 7백59척,95년 6백37척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95년말 현재 국내 원양어선의 해역별 출어현황은 총어선 6백37척(1백85개 업체)가운데 태평양이 3백86척으로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서양(1백85척)과 인도양(66척)이 각각 29%와 11%를 점하고 있다. 미국 등 자원보유국들이 요구하는 입어료는 해마다 늘어나 93년에는 8천6백만달러,94년에는 1억3백만달러,95년에는 1억2천2백만달러를 지불해 영세 원양업체들의 경영난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내 원양업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등으로 승선하려는 내국인 선원을 찾기 힘든 현실이다.93년 1만9백여명에 달했던 원양어선 선원들은 94년에는 9천4백여명,95년에는 8천2백여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이들을 대신할 외국인선원은 계속 증가,93년 1백79명에 불과했던 외국인선원이 94년에는 9백47명,95년 2천1백96명에 이어 지난 6월말 현재 2천6백65명으로 불과 3년만에 14배가 늘었다. ▷문제점◁ 한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우리선원이 외국선원들에게 당한 폭행건수는 1백25건이며 이 가운데 9명이 사망하고 1백16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국내선사들이 굳이 외국인 선원고용을 선호하는 것은 우선 이들의 임금이 국내 선원의 3분의 1내지 4분의 1 수준인 월 20만∼30만원만 주면 되기때문이다. 국적별로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국 교포가 가장많고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방글라데시·미얀마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채산성 악화에 따른 원양업계의 불황으로 그나마 낮은 임금마저 제때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일 중견 원양업체인 한두수산(주)의 부도는 업계에 크나큰 충격을 주고 있다.원양어업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원양업이 더이상 메리트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하반기들어서도 어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한데다 명태와 오징어잡이가 부진해 연말쯤에는 부도업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입어료가 오르고 선원구인난 임금 상승 등의 악재가 겹쳐 원양업계의 경영상태의 호전기미는 전혀 없다』고 비관론을 폈다. 원양어업의 전망이 불투명하자 90년이후 선박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어 결국 어선의 노후화와 해난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원양노조는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전체 원양어선 6백40척 가운데 절반가량인 3백15척이 선령 21년 이상된 노후선박이며 16년이상된 선박은 67%인 4백26척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지난 86∼90년에 모두 1백53척의 신조선이 건조됐으나 91∼95년까지 5년동안 겨우 6척만이 새로 건조됐다. 전국원양수산노조는 상당수의 원양선사가 1∼3개월치의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두수산의 경우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 지난 4월부터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들 외국인 선원들은 회사의 부도사실이 알려지자 체불임금 지불 등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들어가 이 회사 소속 남해어 006·007·008·009호 등 4척은 조업을 거부하고 회항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승선기피현상으로 출어하지 못하는 원양어선까지 생기자 정부는 지난 91년 간부선원(해기사)을 제외한 하급선원의 3분의 1범위안에서 외국인 선원들을 태울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선원부족이 해결되지 않자 정부는 지난해 10월제한선을 하급선원의 2분의 1로 상향조정했다. 이처럼 외국인 혼승이 늘어나면서 하급 외국선원들은 언어와 풍습의 차이로 선원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데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고 한국인 선원들의 차별대우 내지 가혹행위가 심하다며 선상반란을 일삼고 있다. 또 수적으로 우세한 외국인 선원들이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손쉽게 선박을 장악토록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노출했다.원양어선은 50% 미만을 태우도록 한 승선규정을 어기고 70∼80%까지 외국선원들을 고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페스카마호의 경우 전체 선원 24명 가운데 무려 17명이 외국인 선원이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원양어업협회는 지난해 9월 중국 연변교류공사와 공동으로 「연변선원학교」를 설립,지금까지 4백3명의 조선족 선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1백81명인 45%만 국내선사에 취업하고 나머지는 취업대기중이다.우리 선사들이 기존 계약한 대리점을 통해 80달러 정도의 싼 값에 질낮은 선원들을 덤핑으로 공급받기 때문이다. 원양어업협회는 3개월 과정의 연변선원학교에 교관 2명을 파견하고 1천3백만원 상당의 기자재 등을 공급해 우수하고 질좋은 선원을 양성하려 하고 있지만 업계가 외면한 셈이다. 특히 외국인 선원을 공해 또는 현지 조업기지부근에서 덤핑으로 편법 승선시키는 「공해 인력시장」마저 생겨나고 있다.이들 외인선원들은 현지에서 열흘정도 즉석에서 교육받는 것이 전부다. 일부 원양선사가 현지 브로커까지 동원,정부가 정한 외국인고용지침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업체가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으면 정부당국은 외국 선원이 정확히 얼마나 승선하고 있는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이들은 조업이 끝난뒤 동남아인은 사모아·피지 등지의 항구에서,중국인들은 싱가포르에서 하선시켜 불법승선을 위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업해역 부근 항구 등에서 외국선원을 편법고용하는데는 현재의 혼승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도 한몫한다. 국내 원양선사가 한국 대리점을 통해 외국선원을 공급받는데는 평균 2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외국인선원을 태우려는 선사는 노조의 동의서를 받은뒤 해운항만청에 고용승인을 신청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법무부와 안기부로부터 해당 외국선원들의 신원조회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선사는 현지 대리점을 통해 우리 대사관으로 관련서류를 송부,입국비자를 발급받고 각 지역 해항청으로부터 국내 선원수첩을 발급받아 승선공인 신청철차를 거친다.신원조회만도 1개월이상걸린다. ▷대책◁ 업계는 연안국의 과도한 어업규제에 대해 민간차원에서 대응하고 있으나 이제는 정부가 외교교섭권을 통해 새로 개척된 어장에 시험조업선을 투입해 줄 것 등을 당부하고 있다. 원양업계는 또 입출항과 선원승선여부의 경우 해운항만청이,사고는 해경이 맡아 처리해오고 있으나 이는 형식적인 업무분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주)제양수산이 의무승선기준을 어긴채 조업했으나 부산해항청은 이를 전혀 몰랐고 부산해경은 선상소요 며칠이 지나도록 선상반란인지 합의에 의한 귀항인지 파악도 못했다. 특히 해경과 항만청은 사고를 자체적으로 파악 조사하기 보다는 해당업체와 원양노조 등의 설명을 듣고 사고현황을 파악하는 등 실질적인 처리가 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가 출범한 만큼 외국이나 공해에서 발생하는 원양어선 사고를 담당할 외교교섭권·수사권을 갖춘 전담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또 해외취업 선원을 보호하기 위해 선상반란 등 사고를 자주 일으킨 국가의 선원 송출업체에 대해서는 승선금지등 제도적 장치마련과 이들에대한 지도감독 및 안전교육도 강화해나가야 한다. 이와함께 페스카마호 선상반란사건 등 공해선상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인근국가와의 협조체제 마련도 시급하다. 해양수산부 신길웅 항무국장은 『우리 원양어선과 한국 선원이 타고있는 외국선박 등에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같은 해역에서 조업하는 우리선박과 비상통신망을 구축하고 인근 국가와 협조체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조선족 선원 6명 사전영장/선상반란 살인혐의

    ◎사고선박 오늘 공해서 예인/30일 오전 부산 입항… 국내법 적용 처벌키로 【부산=이기철 기자】 부산해양경찰서는 선상반란으로 한국인 선원을 포함해 11명이 숨진 페스카마 15호를 공해에서 일본측으로부터 인수받기 위해 경비정과 수사반을 급파했다고 27일 밝혔다. 해경은 페스카마호 중국 선원들에 대해 국내형법을 적용,처벌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사찬수 부산해양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부산해경에 설치했다. 해경은 『26일 하오 5시쯤 대형구난함인 3001함(3천t급·함장 김준태 경정)을 일본 하지지오섬 근해 공해상으로 급파,빠르면 28일 상오 7시쯤 페스카마호와 접촉하게 된다』며 『30일 상오쯤 부산항에 입항하여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페스카마 15호의 선상반란사건을 수사중인 부산해양경찰서는 이날 중국인 선원 박군남씨(28)등 6명에 대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선상반란」 어선 오늘 한국측 인도/2∼3일뒤 부산 도착

    ◎이인석씨 항해 필요로 참화 피해/“선장이 부른다” 11명 차례로 불러 살해 남태평양 해상에서 조업중 조선족 출신 중국인 선원들의 폭동으로 표류하다가 일본 영해로 들어갔던 페스카마15호가 26일 다시 오키나와 부근의 공해상으로 이동,곧 우리측에 의해 예인될 것으로 알려졌다. 페스카마15호의 현재 위치는 북위31도,동경140도인 도리시마(조조)서쪽 40해리 지점으로 한국인 생존자 이인석씨(27·1등항해사)와 인도네시아,조선족 선원 전원이 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에따라 선적국인 온두라스와의 협의를 거친뒤 우리 해경을 현지에 파견,페스카마15호와 선원 전원을 부산항으로 인도한다는 방침이다. 페스카마 호는 빠르면 27일 우리측에 인도,예인돼 2∼3일안으로 부산항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페스카마 호에는 3일정도 항해할 수 있는 연료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냉동창고 감금도 【부산=이기철 기자】 선상반란 살해사건과 관련,한국인 선원 등 11명을 살해한 중국선원들의 직접적인 동기는 귀국의사를 밝힌 자신들에 대한 한국선원들의 구타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생존자 이인석 1항사는 26일 주제양 부산사무소 손영익 소장과의 단파교신에서 지난 8월2일 상오 3시부터 다음날 10시사이 중국선원 6명이 한국선원 6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2명은 칼로 찌른뒤 바다에 던졌고 인도네시아선원 1명과 선상반란에 동조하지 않은 중국인 선원 최만봉씨(27)는 냉동창고에 감금,동사시켰다. 또 중간에 편승한 최동호씨는 중국인들의 협박을 받은 인도네시아인이 바다에 수장시켰다. 중국선원들은 한국선원들이 모두 잠자는 사이 『선장이 개별면담을 원한다』며 갑판으로 차례로 불러낸뒤 로프로 결박하고 칼로 살해했다. 항해사 이인석씨를 살해하지 않은 것은 항로결정에 필요했기 때문이며 살해순서는 선장,갑판장,기관장,조리장,조기장·기관사순이다.
  • 원양선 반란… 한국인 7명 피살

    ◎중 조선족이 흉기 난자… 인니인 등 4명도/조업거부로 회항중 집단폭동… 사체 수장 【부산=김정한·이기철 기자】 남태평양에서 조업중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온두라스국적의 원양참치연승어선 페스카마 15호(2백54t급·선장 최기택) 선원 25명중 한국인선원 7명을 비롯한 12명이 동승한 중국교포 선원등에 의한 선상반란으로 살해된 충격적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살해된 선원들은 현장에서 모두 수장됐다. 25일 부산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9일 남태평양 사모아 부근에서 조업중 통신이 두절됐던 온두라스 국적 페스카마 15호가 이날 하오 6시 30분쯤 일본 도쿄만 남방 2백50마일 해상에서 표류중인 것을 일본 해상보안청 경비정이 발견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전문에 따르면 페스카마호 선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편 결과 지난 2일 남태평양 해상(남위 2도,서경 1백63∼1백64도 지점)에서 조업중 조선족 출신인 중국교포 선원 6명이 선상생활이 힘들다며 조업을 거부하며 귀국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선장 최씨는 선박을 남태평양 서사모아로 향하던중 이들 중국교포 선원들이 최씨 등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4명,동료 중국교포선원 1명 등 모두 12명을 흉기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6명과 신원미상의 중국교포 선원 1명 등이 합세,선상난동을 제압한뒤 항로를 잃고 표류를 하다 이날 일본 해상보안청 경비정에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해경은 이에따라 정확한 피해자를 가리기 위해 선원 명단을 일본해상보안청에 넘겨줘 피살자의 명단파악에 나섰다. 해경은 이와함께 일본 해상보안청이 접선장소를 통보해 올 경우 즉시 경비정을 현지에 급파,사고선박을 부산항으로 강제 예인할 예정이다.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최기택(33·선장·부산시 금정구 구서1동 561의1 무지개타운 나의513) ▲강인호(33·냉동사·부산시 사하구 당리동 313의30) ▲김신일(43·기관장·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2가 31의1) ▲김창열(36·1기원·경기도 오산시 궐동 55의11 신홍연립 103) ▲박종승(32·전기사·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96) ▲서장주(45·조리수·서울 양천구 신원2동 457의4) ▲최동호(19·실기사·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 559) ◎일 해안보안청서 조사/일과 오늘 신병처리 논의/주일 한국대사관 【도쿄=강석진 특파원】 선상반란으로 한국인 등 11명이 살해 수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온두라스 선적의 페스카마호는 25일 일본 도쿄 남쪽 5백50㎞ 떨어진 도리시마(조조) 서북서 39㎞ 해상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의 조사를 받고 있다. 페스카마호의 생존자와 선상반란을 일으킨 중국인 조선족의 신병처리에 대해서는 조사가 끝나는대로 관련국과의 외교 협의를 거쳐 처리될 전망인데 이와 관련,주일한국대사관측은 빠르면 26일중 한·일 양국간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일에 선원·선박 인도 요청 정부는 25일 원양참치어선 페스카마 15호와 한국인 생존선원 및 인도네시아,중국인 선원 전원을 즉각 우리측에 인도해달라고 일본측에 요청했다. 주일 대사관의 영사부 관계자들은 이날 밤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과 만나 『페스카마 호가 온두라스 국적이지만,(주)대현수산이 부산항을 모항으로 삼아 페스카마 호를 운영하고 있고,사망자 가운데 한국인이 가장 많은 점을 감안해 선박과 선원을 우리나라에 인도해달라』고 말했다.
  • 한·중수교 4년/APEC 등 국제기구서도 긴밀 협력

    ◎양국관계 현주소를 점검해보면/김 대통령·강주석 교환방문… 기초 닦아/4자회답 등 항구 평화체제 구축 협력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4년이 지났다.92년 8월24일 북경에서 이상옥 외무부장관과 전기침외교부장이 수교공동성명에 서명한 이후 단 3일만에 양국 수도에 대사관이 개설되고,한달만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방문이 이뤄질 정도로 양국관계는 급진전됐다.새정부 들어서도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3월 중국을 공식방문했으며,이어서 이붕 국무원 총리,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강택민 국가주석 등 중국을 움직이는 세명의 최고지도자가 차례로 방한,양국관계는 단단한 기초를 닦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양자관계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회의(ASEM)와 같은 다자간 기구에서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한·중관계는 동북아지역 전체의 안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양국이 상호협력을 유지해가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앞으로도 그러한 양국관계의 기조가 유지돼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간의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각 분야에서 새로운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중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말하자면 중국이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가는가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수교이후 줄곧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정치는 북한,경제는 남한」이라는 공식에 맞춰 한반도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평가해왔다.그러나 중국이 이른바 「혈맹」관계인 평양 당국자들에게도 사전에 알리지 않고 한국과 수교를 한 것은 이미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손상을 감내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핵무기를 개발하고 한반도 정전체제를 와해하려는 무력도발을 계속함에 따라 중국은 최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는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중국은 지난달 북한과의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 35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한동안 중단했던 대규모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재개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회복에 진력하고 있다.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한·미가 공동제안한 남·북한,미,중 간의 4자회담에 대해서도 북한측의 답변을 기다린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입장은 나타내지 않는다. 경제협력 분야에서도 한·중 양국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김영삼대통령의 방중당시 합의된 자동차,항공기,전전자교환기(TDX),고화질TV 등 4개분야 협력사업 가운데 이미 항공기 공동개발 사업이 무산됐다.양국은 또 2백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획정과 어업협정 체결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양국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에는 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정부의 한반도 시각/남북 정경분리… 한반도안정 주력/한국의 자본·기술 힘입어 경제개발/북과 일정거리 두며 우호관계 유지 중국은 지난 92년 8월 한국과의 수교이래 4년동안 경제적으로는 한국자본을 끌어들여 개혁개방과 경제현대화에 적극 활용하는 한편,남북한 실체인정 등 등거리외교를 통해 한반도 안정확보에 주력해 왔다.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를 통해 동북아에서 대만의 맹방하나를 떼어냄으로써 대만에 대한 봉쇄외교를 완성시키고 미국·일본에 대한 견제 및 교섭력 강화라는 실익을 손에 넣었다.한국­미국­일본이라는 동북아 3각체제가 당분간 급작스레 와해되지는 않겠지만 중국은 한국에대한 영향력을 새로 얻었으며 그만큼 북한에대한 영향력을 잃은 측면도 없지 않다. 수교이후 중국은 한국과 경제적 축을 중심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오면서도 북한이라는 이념적 동맹자 겸 적대세력에 대한 완충지대의 보존에 노력해 왔다.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식량 및 유류지원 등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지난 7월 중국 북양함대의 북한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그러나 한·중수교이후 강택민·이붕 두 최고지도자가 방한했음에도 중·북간 수뇌의 상호방문이 뚝 끊어지고 있는 것은 상호간 신뢰에 금이가고는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한과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한국과 평등한 상호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중국의 기존입장은 이붕총리의 업무보고를 통해 계속 공개 천명되고 있다.한국과의 정경분리 외교 및 남북 등거리외교는 한국과 경제협력관계 심화에도 불구,변치않는 부분이라는데 한국의 대중국 외교의 딜레마가 있다.중국은 북한카드를 내세우며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비해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중국에 대한 적절한 카드제시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시각이다. 94년 북한 핵위기때 국제연합 등에서의 중국의 북한제재반대 등의 역할이나 지난4월 북한의 비무장지대안 무장군인활동 등 정전협정 위반사태에 대한 국제연합 안보리의 의장성명시도에 대한 중국의 반대는 정경분리,등거리외교원칙에 기초한 중국의 기존입장을 재확인하게 한다. 중국은 일부 적자에도 불구,한·중교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동북3성과 산동성,요녕성 등 환발해권의 개발참여에 기대를 걸고 있다.특히 최근엔 내륙개발을 위해 한국자본의 내륙진출을 크게 희망하고 있는 상황이다.그러나 경제무역부 관리의 평가대로 『중국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자본』이란 말에서처럼 한국을 보완적 자본투자자로 알고 있으며 경제협력이 커질수록 한국의 중국의존이 커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통계로 본 한·중 교류/교역 연평균 42% 증가/작년 1백65억불 기록/한국인 방중 3년새 26배 늘어 40만명/대중 투자액도 5배 많아져 8억 달러 통계청은 23일 중국과 수교 4주년을 맞아 「통계로 본 중국의 경제사회상 및 한·중교류 현황」 자료를 발표했다.다음은 주요내용이다. ▷무역◁ 우리나라의 중국과의 무역 규모는 95년 1백65억4천5백만달러로 무역총액의 6.4%를 차지,수교 첫해인 92년보다 금액 2.6배,비중 1.6배 증가했다.91∼95년 연평균 증가율 42.1%로 우리나라 무역총액 증가율 14.0%의 3배다.중국은 미국,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3위 교역상대국이 됐고,우리나라는 독일을 제치고 중국의 5위 교역상대국으로 부상했다.무역수지는 93년 처음으로 12억2천2백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17억4천2백만달러로 증가했다. ▷투자◁ 수교전인 91년에는 69건,4천2백5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수교 첫해에 1백71건,1억4천1백20만달러로 급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7백25건,8억1천4백40만달러였다.수교후 3년만에 투자건수는 4·2배,금액은 5·8배가 증가했다.우리나라 전체 해외투자중 중국 비중은 금액기준 91년 3.8%에서 92년 11.6%,95년 26.6%로 급증,최대 투자대상국이 됐다. 지난해말 현재 잔존실행기준 전체 중국투자 2천1백93건,18억8천6백30만달러중 제조업이 대부분이다.중국의 한국에 대한 투자도 89년 1건,2천8백달러로 시작된 이래 수교 첫해인 92년에는 6건,1백5만6천달러에 이어 95년말 현재 1백17건,2천8백47만2천달러.서비스업이 대부분이다. ▷인적교류◁ 한국인의 중국방문객수는 91년 1만5천2백61명에서 지난해 40만6천9백18명으로 26.7배 증가.중국인의 한국 방문객수는 91년 4만4천1백88명에서 95년 8만1천1백20명으로 1.8배 증가.조선족의 한국방문은 한약판매 목적의 대거입국으로 91.92년 3만명을 넘다가 최근에는 연간 2만명내외로 줄었다. ◇중국 경제·사회상 ▷인구◁ 5년 기준 12억1천1백21만명으로 세계인구의 21.2%.한국의 27배다.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과 82년부터 시행된 한자녀갖기 정책으로 10세 미만의 성비(여자 1백명당 남자수) 불균형이 심각,94년 기준 0∼4세 1백16.4명,5∼9세 1백10.1명이다.90년 인구센서스 결과 한족 등 57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으나 한족이 10억3천9백19만명으로 91.9%.조선족은 1백91만명으로 0.2%에 불과하다. ▷노동 및 임금◁ 지난 78년 12.1%에 불과했던 3차산업 취업자가 95년에는 24.8%로 늘어나 노동력이 3차산업으로 급격히 이동중이다.1인당 평균임금은 78년 6백15위안에서 지난해 5천5백위안(95년기준 1백달러=8백35·1위안)으로 연평균 13.8% 증가했다.
  • 중·러 접경서 본 이상기류 밀착 분석(북한은 지금…:1)

    ◎「실패한 사회주의」 고집… 사회전반에 무력증/무산 명물 노천철광산 작업중단… 마치 폐허/“군인들조차 배고파 국경넘어 식량 도둑질”/본사 동북아기회팀­경남대 극동문제연 첫 언­학협동취재 세계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북한.북한에 대한 정보는 극도로 폐쇄돼 있기 때문에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서울신문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언론사상 처음으로 언·학 협동으로 보다 정확한 북한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이번 공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오랜 역사와 권위를 국내외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는 북한 및 사회주의권문제 전문연구기관이다.북한의 실태조사 내용을 시리즈로 엮는다. 러시아와 중국국경에서 바라본 북한의 8월도 무더운 듯했다.작열하는 태양 아래 지친듯 활력도 생명력도 없어 보였다.그러나 모두가 정지한 듯한 북한의 무기력한 모습은 사실 무더위 때문이 아니다.「북한식 사회주의실험」의 참담한 실패의 결과다. 세계는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데도 북한은 「실패한 사회주의실험」을 고집하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최근에는 북한도 나진·선봉에서 「자본주의실험」을 시도하고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며 전체적인 북한의 시스템은 여전히 폐쇄적 사회주의다. 북한은 시계는 지금도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동유럽 사회주의국가가 역사의 흐름에 맞춰 선택한 개방정책을 거부하고 실패한 사회주의를 고집한 결과 계속되는 경제난에 허덕이며 가장 기본적인 식량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은 접경지역의 북한 모습에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공장 굴뚝에선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고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어선도 고기잡이를 잊은 듯 계속 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중국 연길에서 자동차로 2시간정도 달리면 만나는 용정시 노과향 맞은편의 북한땅 무산.이곳은 북한의 대표적인 노천철광산으로 유명했다.하지만 무산의 뒷산자락에 있는 노천철광은 생산이 중단돼 「폐허화된 전쟁터」처럼 보였다.이제 노천철광의 명성은 역사책에서나 찾아봐야 할 것같다. 무산교외의 논밭에도 농부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맞은편 중국 덕화진의 논밭에서 농부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의 논밭에 농부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의문이었다. 북한의 식량난은 최우선적으로 식량을 배급받는 군인조차 배고파 국경을 넘어온다는 접경지역 조선족의 이야기에서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함경북도 남양과 마주보는 도문시에서 만난 조선족 경모씨는 『북한군인이 국경을 넘어와 양식을 빼앗아간 사례가 최근에 10여차례나 된다』고 전한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탈북자도 늘어나고 있다.탈북자중에는 중국보다 돈벌이가 쉬운 러시아의 국경을 넘는 사람이 더 많다.이를 감지한 러시아는 탈북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최근 검문소를 새로 설치하거나 차량을 이용해 수시로 검문을 하는등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었다.핫산에서 5년째 막노동일을 하고 있는 북한 외화벌이꾼 김모씨는 『핫산지구에만도 탈북자와 외화벌이꾼 등 1천여명의 북한주민이 활동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이모씨는 『굶을 바에야 전쟁이라도 해서 결판을 내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고 말해 경제난으로 주민의 민심이 극단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북한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개연성이 있다고 일부 북한전문가는 말해왔다. 북한의 경제난이 악화되면서 김정일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표면화되는 징후도 있는 것같다.함북 온성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고 최근 돌아온 조선족 박모씨는 『김일성수령님과 김정일지도자동지께서 함께 영도하실 때는 좋았는데 수령님께서 세상을 뜨시니 지도자동지께서 힘에 겨우신 것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밝힌다.그는 『이같은 말은 김정일을 지지하면서도 그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을 동시에 나타내는 이중적 태도로 김일성과 같은 절대적 지지가 김정일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참여교수 시각/오늘의 북한,어떻게 볼 것인가/「시각의 양극화」 현상 극복부터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한 고려인에 따르면 8월초 모스크바의 모TV방송이 현재 북한에서는 하루에 20∼30여명씩의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어서 하바로프스크공업대학의 총장고문으로 있는 고려인 교수에게 이 보도내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철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내가 보고 확인하기전에는 무었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짧은 대답이었지만 맞는 말이다. 북한과 관련된 수많은 소문과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서 보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소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 국가들이 붕괴하고 독일이 재통일되었을 때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도 조만간 이들과 유사한 경로를 답습할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을 해 왔다.이같은 현상은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을 계기로 최고조에 달해서 「승계위기설」「김정일중병설」「남침설」「체제붕괴설」등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대략 세가지 요인을 지적할수 있다.첫째,북한이라는 인식대상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속성이 강하고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폐쇄적이며 독특성을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그만큼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둘째,북한을 보는 사람 자신이 갖는 상황인식의 이중성,즉 북한이 우리 민족의 일부인 동시에 위협 및 갈등,경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미묘한 상황이 북한이라는 인식대상을 좀처럼 객관화시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셋째,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강대국들이 그들의 정책적 필요성 때문에 종종 언론을 통해서 북한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유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요인들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맹목적인 반공주의나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척도로만 북한을 보거나 사회주의이념과 목표로만 북한을 보려고 하는 「시각의 양극화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우리는 오늘의 북한을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북한이 공존과 포용의 대상인가.갈등과 타도의 대상인가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상황에 따라서 두가지 입장을 시계추처럼 반복하는 한 국민들의 북한을 보는 눈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시각의 양극화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더불어 북한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일단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바탕위에서 쉼없는 자기점검을 통해서 재해석하고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보기도 전에 판단이나 평가를 한다면 북한의 참모습은 좀처럼 우리앞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외국대학 한국어강좌 개설 “붐”/정부,중점지원방안 검토

    ◎국제교류재단 조사/미·일·중 등 49국 2백79개대서 강의 정부는 한국학과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려는 외국대학이 점차로 늘어남에 따라 외국대학의 한국학 연구실태를 면밀히 파악한뒤 지원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가 이를 위해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정원)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외국대학 가운데 한국어과 또는 한국학 연구센터 등을 개설한 곳은 49개국 2백79개로 집계됐다. 정부는 2백79개의 한국어·한국학 강좌 가운데 교수,교재 확보 상태,학생의 구성,총 강좌 시간 등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한뒤 중점 지원 대상을 선별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관련 강좌를 개설한 국가는 미국이 하버드·예일·스탠퍼드등 70개 대학으로 가장 많고,일본이 도쿄대·게이오대 등 63개대로 두번째를 기록하고 있다.조선족이 많이 사는 중국에서는 29개 대학이 한국어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지역과 동유럽,옛 소련 지역에서 한국학 강좌 개설 바람이 불어 베트남과 태국 및 말레이시아가 4개대학,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2개 대학에 각각 한국학 강좌를 설치했고 러시아·카자흐스탄이 4개,우즈베키스탄과 헝가리 3개,체코와 옛 유고지역 2개,루마니아·불가리아가 1개대학에 각각 강좌를 개설했다.이같은 현상은 한국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현지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등 실질적인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 24명 승선 원양선 실종/사모아 근해

    ◎조선족 선원 작어거부로 귀항중 【부산=이기철 기자】 남태평양에서 조업하던 원양어선이 중국인 교포 선원들의 작업거부로 원양기지로 귀항하던 중 실종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9일 부산 해양경찰서에 따르면 남태평양 사모아 부근에서 조업하던 온두라스 국적의 원양참치연승어선 페스카마15호(2백54t·선장 최기택)가 지난 3일 사모아 어업기지와 마지막 교신을 한 뒤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된채 실종됐다고 선원송출회사인 (주)제양(대표 권오윤)이 이날 신고해 왔다. 이 배에는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중국인 교포선원 7명 등 모두 24명이 승선해 있다. 이 배는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선원 17명을 태우고 지난 6월7일 부산항을 출항해 같은달 15일 괌 튀니안항에서 중국인 교포선원 7명을 추가로 승선시킨 뒤 남태평양 사모아 인근에서 조업을 하다가 지난달말 중국인 교포선원들의 작업 거부로 지난 13일 선원교체를 위해 사모아 어업기지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해경은 페스카마호가 귀항도중 침몰했거나 기관고장 등으로 표류하고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인근해역에서 조업중인 원양어선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 김하기씨 구속/입북 고의성 수사/“술취해 홀린듯 했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인 연길시에서 지난달 30일 입북했다가 강제출국된 소설가 김하기씨(본명 김영·38)가 17일 하오 4시40분 북경발 대한항공 652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관계 당국은 이날 김포공항 도착 즉시 김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신병을 확보해 자세한 월북 경위,입북의 고의성여부,북한에서 조사받은 내용과 그 과정에서의 국익훼손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입북 당시 옷차림인 푸른색 양복차림으로 비교적 여유있는 표정의 김씨는 『너무 기쁘다.사무치는 마음으로 달려왔다』고 귀국 소감을 밝혔다. ­북한에는 왜 갔나. ▲평소 북한도 조국이라고 생각했다.술에 취해 정신이 홀린듯 북한에 들어간 것 같다. ­입북경로는.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은 뒤 말하겠다. ­북한에서의 대우는 어땠나. ▲처음 3일동안은 돌아가겠다고 말해 안기부 특무(공작원) 취급을 당했으나 북한에서 출판된 내 소설 표지의 사진을 통해 신분이 확인된 뒤에는 비교적 관대했다. ­북한에 남으라는 회유는 없었나. ▲회유가 있은 것은 사실이다.소설도 쓰고 새장가를 드는게 어떠냐고 했다.
  • 조직폭력 활개…연길은 “위험지대”/박병현씨 피살 계기로 본 실태

    ◎「돈많은 한국인」 범행 표적/작년 16명 사망… 신고사건만도 1백60작/북 국적자 1천여명 거주… 각종 사건 개입 중국 연길시에 있는 기아기술훈련원은 불안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박병현 원장이 피살된 훈련원 건물앞은 무거운 침묵속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훈련원 관계자들과 연길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증폭되고 있다. 박원장이 피살된 연길은 한국어가 통하고 조선족이 많아 한국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친근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국인을 상대로한 살인·납치·강도 등 각종 사건이 많이 일어나 「위험지대」가 되고 있다.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인구35만명·그중 40%가 조선족)의 상황을 알아본다. ▷사회현황◁ 연길은 마치 한국의 어느 도시같다.한글간판이 많고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각종 퇴폐업소가 성업중이다.한국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술집·가라오케·사우나·노래방 등 유흥업소가 난립하여 시내 중심가는 서울의 어느 거리같다.급증하는 유흥업소를 거점으로 폭력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어 치안의 사각지대화하고 있다.그러한 치안부재지역에 흥청거리는 한국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다. 최근 어느 한국인부부는 낮에 커피를 판다는 가라오케에 들어가 커피한잔씩을 마셨다가 2천3백위안(약23만원)이 적힌 계산서를 보고 문제를 제기하다 칼을 든 폭력배의 위협을 받고 돈을 모두 지불하기도 했다. 연길의 택시는 3천여대인데 대부분 조선족들이 운전을 한다.그러한 택시들은 야간 영업때는 안전을 위해 옆자리에 조수를 태우고 다닌다.그만큼 연길의 밤은 위험지대이다. ▷한국인 사고와 대책◁ 박원장이 피살되기 얼마전에도 소설가 김하기씨의 입북사건이 있었다.지난해 7월에는 안승운 목사의 납치사건도 있었다.지난 한햇동안 한국인 14명이 죽고 2명이 피살되는등 영사관에 신고된 사건사고만도 1백60건이나 된다.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은 중국관계당국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한국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영사업무를 위한 인원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에는 현재 1백90여만명의 조선족과 1만5천여명의 교민들이 살고있고 올해의 경우 70여만명의 한국인들이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체류하고 있으나 영사관은 북경·상해·청도 3곳밖에 없다. 상해와 청도를 제외한 중국 전역의 90%을 북경총영사관에서 관할하고 있으나 북경총영사관의 인원은 경찰 1명을 포함 모두 6명에 불과하다. ▷북한계 동향◁ 연길에 살고있는 북한국적의 조교는 1천여명이다.연길에는 금강원을 비롯,두만강·청진·평양·목란·대성관 등 6개의 북한계 식당이 있다.김하기씨도 금강원이라는 북한계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북한으로 갔으며 안승운 목사 납치사건도 북한 공작원과 조교들의 합작품이다.조교들은 술집이나 택시운전(연길 전체 택시중 약 30%)을 하고 있어 한국인들과 만나기가 쉽다.
  • 위험한 연변… 안전대책을

    중국 연길에서 한국기업체 임원이 괴한들에게 피습돼 목숨을 잃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괴이한 것은 범인들이 주로 북한 간첩의 휴대무기로 알려져 있는 독침으로 공격한 것 같다는 점이다.정부는 중국측이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범인과 그 배후를 밝혀내도록 최대의 외교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단 이번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연변은 한국인 방문자에게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지난해 7월의 안승운목사 납북사건,지난 1월 한국식당주인 김영진씨 피살사건 등 지난 한햇동안 주중한국대사관에 접수된 피살 실종 강도 강간 사기사건만도 2백여건에 달한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25만 주민 상당수는 일제의 억압을 피해 이주한 우리 동포들이다.또한 용정은 항일투쟁의 본거지였으며 자치정부 소재지 연길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5시간 거리인 길목에 위치해 한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같은 친근한 분위기에 이끌려 긴장을 푼 탓인지 상궤를 벗어난 언동으로 현지인의 지탄을 받거나 납북 또는 범죄의 표적이 되는 한국인 방문자들이 급속히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객기가 발동,유흥업소에서 달러를 뿌리며 돈자랑을 하거나 장난삼아 합작사업을 약속하는 사례까지 있다.정확한 경위가 밝혀지겠지만 17일 귀환한 소설가 김하기씨의 「취중 입북」 역시 긴장이 해이해진 상황에서 객기가 빚어낸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행동기나 배후가 분명치 않은 이번 기아 임원 피살사건에서 보듯 연변은 민족분단을 낭만적 시각으로만 파악하고 취중에 언행을 함부로 해도 될 곳이 아니다.수천명의 조교(조교·북한국적 조선족)와 10여개의 북한식당이 시사하듯 이곳은 북한의 오랜 뒤뜰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특히 연변지역 여행자들의 각별히 신중한 몸가짐을 당부한다.정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측이 소극적인 심양의 한국총영사관 개설문제를 반드시 관철시켜 한국인 체류자 및 여행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연길서 기아차간부 피살/박병현 「AS공장」 사장

    ◎괴한 2명에게 독침모양 흉기 찔려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기아자동차AS공장의 박병현 사장(54)이 16일 하오 괴한 2명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고 주중 한국대사관이 밝혔다.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박사장은 이날 하오 5시30분께 연길시 조양거리 204호 기아공장 건물 앞길에서 2명의 괴한에게 독침으로 보이는 볼펜 모양의 흉기에 옆구리를 찔린 후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 박사장은 한국에서 온 손님 2명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공장을 나오다가 공장건물에서 5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변을 당했다. 연길시 공안당국은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박씨 가족이 연길에 도착하는대로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박사장은 충청지역 영업본부장을 지내다 1년전 연길공장장으로 부임했으며 기아AS공장은 한국인 2명,중국인 8명 등 모두 10명의 직원이 자동차관련 기술훈련과 현지에 있는 기아자동차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 첫 물길 이도송화강(송화강 5천리:1)

    ◎이도백하 골짜기마다 선조 항일기상 서려/백두산 천지서 발원 장백폭포수 굽이 흐르고/수차례 주인바뀐 발해 보마성은 터만 남아/연변동포작가 유연산씨 현지 르포 서울신문은 우리 고대사의 무대 중국 동북지방을 관통하는 송화강유역에서 민족의 오늘과 어제를 돌아보는 「송화강 5천리」를 연재합니다.중국 연변 조선족작가 유연산씨가 현장에서 집필,주 1회씩 연재할 이 기획물은 도도한 장강이 안고있는 숱한 사연들을 엮어낼 것입니다.송화강 물길이 굽이쳐 지나는 길림성과 흑룡강성은 독립운동의 기상이 어린 유서깊은 대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광복 51주년을 맞이한 우리에게 보다 큰 감회를 안겨주리라 확신합니다.서울신문은 이 시리즈를 생동감넘치는 기획물로 꾸미기 위해 사진부 김명환 기자를 현지로 파견,작가와 동행취재토록 했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은 중국 동북지방인 길림성과 흑룡강성 넓은 땅을 누비고 장장 1천9백72㎞를 흘러 흑룡강성 동강시에서 흑룡강과 합류한다.그 유량은 연평균 7백77억㎥나 되었다.중국에서 여섯번째 큰 강으로 꼽히는 송화강의 만주어 원음은 송알라울라(송아리오람).천하라는 뜻인데,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강이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1,972㎞… 여섯번째 큰 강 백두산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천지의 물이 흘러나오는 수구를 달문으로 적어놓았다.달문의 유래는 천지설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그 까마득한 옛날 천지용궁의 용왕은 태자다섯을 두었다.다섯 태자는 용궁생활이 싫증나 천지 수면위로 놀러나갔다.용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네 태자는 용궁으로 귀환했으나 셋째 태자는 바깥세상이 황홀하여 그냥 머물렀다.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산 허리를 떠받아 천지의 물이 빠져나갈 수구를 냈다. 그 수구가 달문이라는 것이다.달문 출발한 천지의 물은 아주 빠른 속도로 1천2백50m를 흘러 내려오다 장백폭에서 곤두박질을 한다.달문에서 장백폭포 사이의 물살이 빠른 구간도 강이라 해서 승사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강 이름에서 사(차)는 뗏목을 이르는 말이다.당나라 시인 이상은은 뗏목을 타고 하늘을 오른다는 시를 썼다.「해객이 뗏목을 타고 하늘에 오르니/아름다운 성아 일손을 멈추고 반기네」라는 시다. 승사하 물살이 내리꽂히는 68m의 벼랑 장백폭포는 장관을 이루었다.물살이 곤두박질하느라 우레소리를 냈다.이백의 붓끝에서 유명해진 여산폭포 마냥 구천의 은하수가 내리드리우듯 아름다웠다.그리고 누누천년을 두고 쏟아진 폭포는 절벽 아래에 20여m 깊이의 소를 파놓았다.그 소에서 솟구친 물은 다시 흘러 내려갔다.바로 이도백하요,이도송화강 물길이 시작하는 것이다. 이도백하는 깎아지른 듯 바위가 가파른 단애의 계곡을 지나느라 세차게 암벽을 들이받았다.그래서 물소리가 좁은 계곡을 뒤흔들었다.이도백하를 울부짖는 강이라 한 사연을 알만했다.폭포에서 1천m 떨어진 소천지 돌다리에 올라서면 이도백하 물길은 오간데가 없다.백하수는 지하로 숨어든 것이다.천지가 형성되기 그 이전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때 생겨난 용암의 틈새를 2백만년을 두고 흐른 물줄기가 기어이 수로를 뚫었다.이 동굴의 수로 구간은 이도백하가 분명했지만 물이 숨어 흐른다고 해서 암하라 했다. 소천지 돌다리 옆 바위 허리에는 옥룡천해라고 새긴 글발이 있다.바위가 길을 막으면 꿰뚫고 나가는 물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한데,이도백하의 정신이자 이도백하 유역에 살아온 조선족들의 개척정신이기도 했다.또 어떻게 보면 이도백하가 지나가는 골짜기마다에서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의 기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백두산에서 57㎞ 떨어진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 서쪽으로 가면 보마촌이라는 마을이 있다.산자락에 기대어 송화강 지류인 보마하를 바라보는 마을이다.마을 넓은 언덕에는 발해의 보마성 흔적이 간신히 남아있다.성안에서는 지금도 기와장이 나왔다.발해와 당나라를 육로로 잇는 요충지의 하나로 역참도 이곳에 있었다. ○풍운의 세월 피난처로 역사의 풍운속에서 보마성의 주인은 여러번 바뀌었다.한때는 요와 금이 차지했다가 명나라가 시작하면서는 눌은부에 귀속되었다.이어 대륙을 장악한 청은 백두산을 자신들 조상의 발상지라 해서 봉금령을 내리는 바람에 보마성은 다른 동북지방과 마찬가지로 무인지경으로 변해 버렸다.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봉금령이 해제된 20세기 초엽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백두산 자연보호구로부터 이도백하진에 이르는 이도백하 유역에 여섯 마을이 들어섰다. 발재지,대골정자,쾌상봉,내두산,입산골(입산구) 이도백하 등이 그들 마을이다.지금은 내두산과 이도백하만이 남고 다른 마을은 사람들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내두산촌 최용철(70)노인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들이 골 깊고 산 높은 이도백하 유역을 찾아든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수다.이 산골을 가리키는 말이었디요.보이는건 백년산삼이요.발에 차이는 건 녹각이고….여섯 마을 중에 발재지라 한 까닭은 백두산에는 값나가는 자연토산물이 많다는 뜻이였습네다.그리고 요동벌판에 무쇠말이 뛰면 송풍라월이 피난처라는 얘기도 있었디요.전란이 빈번했던 시대라 여기와서 피난을 살았던거우다』 ○산높고 골깊은 청정지대 그 당시 여섯 마을에 조선족은 80%,한족은 20%에 불과했다.해마다 단오나 추석이 오면 내두산촌에 모여 운동회도 열었다.3·1독립만세 이후 대한정의군정사(총재 이규)가,30년대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내두산에 근거지를 마련했다.일제는 항일연군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심한 토벌로 몰아붙였다.그러자 항일연군은 근거지를 남만으로 옮겼다.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버려 종당에는 몇 집만이 남고 옛날처럼 다시 무인지경이 되었다. 지금 내두산촌에 살고있는 조선족들은 1946년 북한땅 양강도 갑산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서 강을 건넌 사람들인데,73가구 2백53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이들은 아직도 공해와는 무관한 목가적 삶을 꾸렸다.조무래기들은 이도백하 물가에 나가 가재를 잡았다.개구리 미끼를 넣은 바구니에 돌추를 달아 깊은 소에 담갔다 꺼낼 때마다 가재가 한 바가지씩 잡혔다. 어른들은 겨울이면 사냥을 했다.모든 동물은 보호대상이 되어 법으로는 사냥을 금지하고 있으나 산사람들의 사냥은 여전했다.지난 94년에는 노루덫으로 호랑이를 잡은 사람이 붙잡히기도 했으나,사냥을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노루 한 마리가 인민폐로 8백원씩에 거래되었다.겨울 한 철에는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노루생회를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남한공급 쌀 군부대 창고에 비축”/귀순 북주민 3인 일문일답

    ◎군량미 공급 원활… “군만 잘봐준다” 불평/일반주민 아사 속출… 총체적 불만 증폭/식량난으로 범죄 크게 늘자 형량 10배까지 강화 최근 잇따라 귀순한 박철호(41·김화군 식료수매종합상점 식료수매원)·고준(29·양덕지방자재공급소 자재인수원)·최승찬씨(29·개성 석비레벽돌공장 자재인수원) 등 3명은 12일 상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귀순동기와 북한의 실태 등을 밝혔다. ­귀순 동기는. ▲박철호=식량을 구하기 위해 기업소에서 돈을 빌려 함경남도로 시멘트를 사러 갔다가 국가 돈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공개 처형을 당하거나 굶어 죽을 처지에 놓여 한탄강을 넘어 귀순했다. ▲고준=어릴 때부터 출신성분이 나쁘다며 온갖 차별대우를 받았다.스물네살 때 간부집 딸하고 결혼했는데 식량난을 겪으면서 처를 양보하고 귀순하면 처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승찬=노임을 제대로 안줘 출근하지 않고 밀주 장사를 하다 적발돼 10일간 구류를 살고 재산을 몰수당했다.개나 돼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북한의 군량미는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박철호=군량미는 제대로 공급되고 있다.군인들의 사기는 매우 양호한 상태다.김정일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심을 갖고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귀순 경로는. ▲박철호=육지에는 1만V의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과 6천V의 전기 철조망이 설치돼 있어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이용,고무배낭에 바람을 넣고 비닐 간장통을 가슴에 매달아 철책선 밑으로 수영을 해 넘어왔다. ▲고준=5월21일쯤 비오는 날을 택해 두만강을 수영으로 건너 중국 연해주를 거쳐 북경으로 가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과 가라오케에서 1년2개월 동안 일을 하다 넘어왔다. ▲최승찬=7월쯤 예성강에서 수영을 해 넘어오다가 북한군의 감시를 피해 강둑에서 이틀 반나절 동안 숨어있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다시 수영으로 넘어왔다. ­북한에 시장이 많이 들어서 암거래가 활발하다고 하는데. ▲최승찬=원래 개성 한 곳에만 시장이 들어섰는데 최근 5곳으로 늘어났다.그러나 개성의 경우도 공장에 원자재와 연료가 공급되지 않아 가동 중단 상태에 있으며,주민 대다수가 가재도구와 심지어 이불까지 팔아 생활하고 있다.팔 물건이 없는 사람들은 풀을 뜯어 연명하고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장 마당의 실상은. ▲최승찬=모든 것이 다 있다.생활 필수품은 물론이고 가축 등도 많다.장사꾼이 많지만 군인이나 농민들도 늘어나고 있다.장사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에 번창할 수 밖에 없다.2∼3년 전만 해도 장사를 못하게 했으나 배급도 안주면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불만이 높아져 사실상 장마당이 허용됐다. ­체제불만 세력은 어느정도인가. ▲고준=식량,교육,의료 등 어느 곳 하나 불만이 없는 곳이 없다.그래도 제일 불만이 많은 것은 먹는 문제다.김정일이 집권한 뒤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식량난으로 범죄가 늘어나자 과거 1년 교화소에 갈 범죄가 이제는 10년 교화소에 갈 정도로 처벌 수위도 높아졌다. ­나진·선봉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은. ▲박철호=지도원들이 사상교육을 할때 나진·선봉이 개방되면 인민들이 먹고 살수 있다고 선전한다.하지만 인민들은 그동안 계속 속아왔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 ­북한의 국제사회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고준=자세히는 모르지만 개혁,개방이 돼야 잘 산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보위부 밀정(정보원)의 활동은. ▲고준=보위부 고위지도원의 경우 1인당 30여명의 정보원을 두고 있다.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뒤 보위부장의 공작비가 하루 50원에서 3백원으로 크게 높아졌다. ­특수부대의 실상은. ▲최승찬=특수부대에는 맹호·열쇠·이기자 부대 등 국군 주요 부대의 마크가 부착된 전투복을 1인당 1세트씩 갖추고 훈련을 하고 있다.말씨는 물론 심지어 국군이 기합받는 것까지 훈련을 한다.유사시 후방지역에 침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김정일이 최고 사령관이 된 뒤 특수부대원의 훈련이 강화됐다. ­원유 사정과 양덕군의 식량난을 말해달라. ▲박철호=과거에는 한해 3백㎏ 정도 공급됐는데 올해에는 김화군에 50㎏이 3번 공급되는 것을 봤다.트랙터는 원유가 없어 거의 이용되지않고 있다. ▲고준=식량 배급이 가장 잘되는 곳은 평양과 김일성,김정일 사적지 주둔 군부대일 뿐이다.남한에서 공급되는 쌀은 군부대 창고로 들어간다.양덕군에도 지하 10m 깊이의 군부대 쌀창고가 3개나 있으며 남한에서 온 쌀이 가득차 있다.주민들은 이 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고 있다.
  • 조선족 밀입국 알선 중국 선장에 실형/제주지법

    【제주=김영주 기자】 제주지법 형사1단독 송우철 판사는 8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중국선적 요장어운 9033호 선장 고경빈 피고인(33·중국 요령성 장하시)과 기관장 한세군피고인(30·˝대련시)에게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월을 선고했다. 송 판사는 판결문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밀입국을 계속 기도할 수 있다』며 『불법밀입국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실형을 선고한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5월25일 요령성 장하항에서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조선족 54명을 태우고 한국 선박과 접선장소인 북제주군 우도 동쪽 52마일 해상까지 왔다가 제주해양경찰 경비정에 붙잡혔다.
  • 꿈을 키우는 조선족(압록강 2천리:37·끝)

    ◎직업교육·장학사업으로 「한민족공동체」 가꿔/사랑나누기 운동전개… 빈곤한 동포 생계 돕고/「김우중」관련 강연회 통해 청년들에 야망심어 한국전쟁 와중에서 단동쪽에 요행히 남은 압록강철교를 따라가다 보면 강 복판쯤에서 빨간 글씨로 「단동」이라고 쓴 시멘트 푯말이 서 있다.반대편에는 「신의주」라고 표시되어 이내 발목이 잡혔다.바로 국경선인 것이다.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나에게는 고국이다.비록 이주민의 후손일지라도 중국공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 한 발자국은 비법출경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음이 착잡했다.한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공통된 생활방식과 문화관습을 지닌채 살아온 터라 귀소본능같은 것을 느꼈다.그러나 마음일 뿐 어디까지나 중국공민이었다.이는 다민족이 모여 사는 중국에서 조선족들이 겪은 갈등이기도 했거니와 오늘날까지도 이중적 삶이라는 기묘한 생활방식이 되고 있다.그러한 현상은 조선족들의 못자리판인 두만강유역 연변보다 잡거지구인 압록강유역 요령성 일대가 더욱 심각했다. 그래서 한족들과 더불어 살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에서 비롯한 산골 농촌의 조선족사회는 공동체기반 붕괴를 막기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고있다.그 구체적인 사례가 요령성 조선족 경제교류협회가 펼치는 「사랑 나누기」와 조선족실험직업학교 운영이다.이 협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공부시키는 이른바 「희망공정」이라는 장학사업에도 손을 댔다. 이같은 사업은 조선족의 이농을 막고 무작정 도시로 올라온 조선족들의 직업보도를 위한 것이다.조선족 1백여가구가 사는 요령성 철령시의 한 농촌마을에서는 올들어서 20여명의 젊은 아낙과 처녀들이 마을을 떠났다.땅을 버리고 도시로 간 사람들은 심양시 서탑거리 도문로 노무시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매일 평균 3백∼4백명,많이 모이는 날이면 5백여명이 들끓는다.행여 품을 사주지나 않을까 하는 눈초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이중적 생활에 갈등 농촌을 떠나온 조선족 남자들은 건축일과 집수리같은 토역에 고용되고 여자들은 대개 음식점등 서비스업체에서 데려갔다.서비스업체에 들어간 여자들은 돈벌이에 끌려 몸을 팔기도 한다.그러다 잘못 걸리면 감옥아닌 감옥신세를 졌다.심양시가 운영하는 이른바 여성자강학교가 그런 시설인데,주로 매음녀들을 수용했다.수용인원가운데 약 20%를 조선족 여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졸업생이라고 할까,여성자강학교를 거친 조선족 여인들의 숫자는 4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여성자강학교에 수용되어 있는 몇몇 여인들을 만나보았다.모두 연고지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사연들을 털어놓았다. 고씨네 딸 아무개라는 처녀는 얼굴이 아주 곱살했다.그래서 처음에는 식당 심부름 일을 하다가 아가씨 노릇을 하라는 달콤한 말에 유혹되어 손님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다음 달이면 여성자강학교에서 나올 판이지만 시골농촌으로는 죽어도 가기싫다면서 앞날을 걱정했다. 그리고 홍 아무개라는 여인은 일곱살짜리 아들까지 둔 농촌 유부녀였다.부부간에 금슬도 좋았던 이 여인은 살림이 하도 구차해서 돈을 벌러 심양으로 나왔다.일자리를 손쉽게 잡은데가 식당이다.한달을 뼈 빠지게 고생해도 아가씨 하룻밤 화대도 안되었다.결국 아가씨 대열에 끼여들었다.그러다 막다른 길 여성자강학교로 끌려온 여인은 딱한 처지가 되었다.착한 남편과 비록 나이가 어려 철은 없다 할지라도 아들을 어떻게 대하겠느냐며 후회했다. 이러한 현상을 버려둔 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뜻있는 조선족들은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모두가 가난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하면서 여러가지 구급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다.조선족경제교류협회의 「사랑 나누기」나 장학사업 「희망공정」등은 다 조선족사회가 가난에서 벗어나 삶의 기반을 다시 다지기위한 것이다.「희망공정」에는 요령성 심양시와 무순시 조선족학교 학생들이 결연을 맺었고 기업체들이 후원자로 나섰다. 지난해 여름 심양에서는 참으로 이색적인 강연회가 열렸다.요령조선문보사가 95년 7월20∼22일까지 장장 3일간에 걸쳐 열었던 강연회 주제는 「김우중과 나의 인생」이었다.한국의 대기업가 김우중회장의 저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의 내용을거울삼아 인생의 나갈 길을 나름대로 제시한 강연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그러니까 조선족들에게 진취적 야망을 심어준 대회라 할수 있다. 김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조선족사회에 많은 감명을 불러 일으켰다.특히 청장년층에서 감격했다.심양시 우홍구 대흥조선족향 김재만 향장(35)은 그의 저술을 읽고 소화한 청장년 간부의 한 사람이다.한마디로 인생 교과서라 했다. 『나는 김우중선생의 저술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디요.우리는 지금 경제체제개혁과 문화형태개선이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고 생각합네다.이러한 시기에 자아를 발견하고 어떻게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것인가를 스스로 성찰하는 일이 중요하디요.그래서리 김우중 선생의 저술에 관심이 가는 겁네다.우리 모두가 김우중 선생처럼 일해서 성공할 때 민족의 경제는 반드시 부흥된다고 확신하디요.역사는 꿈을 꾸는 자의 것이라는 선생의 말씀에 공감을 했습네다.저도 이제부터 연약,안일,절망과 담을 쌓고 조선족향을 잘 꾸려 민족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각오를 했수다』 그는 꿈을 꿀 만한 위치에 있다.그가 향장으로 있는 대흥조선족향은 심양에서 6㎞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중국 여러 지역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갔다.동북지역에서 가장 큰 철도화물운수참이 1㎞,심양 국제공항이 40분 거리다.요 근래에 기계제조,석유화학,유색금속가공,가죽과 모제품 등의 공장이 이 향에 들어섰다.합자기업 17개소 등 모두 4백59개 기업에서 48억원어치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김회장 저서는 교과서 조선족 4천3백85명이 거주하는 대흥조선족향의 향장과 부향장 등 주요간부들이 모두 조선족이다.각 기업의 골간도 역시 조선족으로 이루어졌다.향 문화잠은 전국 문화공작잠의 선진이거니와 유치원,소학교,중학교,성인중심학교 등의 교육시설 규모를 자랑했다.최근에는 빈곤한 조선족돕기운동을 벌여 9천여건의 물건과 9천6백원의 돈을 단박에 모았다.그리고 조선족 장학사업 「희망공정」에도 1만4천8백원을 선뜻 보냈다. 꿈을 키우는 조선족들이 존재하는 한 조선족사회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벗겨질 것이다.그 희망은 일부 조선족사회에 현실로 다가와 내일의 태양이 찬란하게 뜰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조선족 씀씀이(압록강 2천리:36)

    ◎국외서 목돈 벌어 집치장등에 낭비 예사/궂은 일은 한족에… 가까운 거리도 인력거 불러/한때 우쭐대며 생활하다 알거지신세 수두룩/「한국바람」에 돈날리고 농사로 성공한 사례도 압록강유역의 조선족촌은 조선족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조선족촌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긴 하나 한족들이 섞여 살고 있다.그래서 두 민족의 생활자세가 극명하게 대비될 때가 많다.조선족은 요즘에 와서 닥치는대로 살고 한족은 푼돈이라도 굴려서 재산을 불리는 재미로 살아가는 것이다. ○개방화 타고 큰돈 벌어 조선족들은 개혁·개방화바람을 타고 한국이나 일본,소련,리비아 등지에 가서 돈을 벌어왔다.그리고 벼농사를 짓는 재간이 대단해서 농업소득도 한족보다 높았다.그럭저럭 조선족들은 뭉칫돈을 만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조선족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돈에서 비롯되었다.반 푼을 들여 한 푼을 더 벌려는 노력보다는 헤픈 씀씀이로 거들먹거렸다. 집치장을 한다,가전제품을 사들인다 하는 쪽으로 돈을 써버리기 일쑤였다. 한족들의 돌담 높은 집에는 마소며 닭이 득시글거려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조선족 집안은 깨끗해 보이고 한산한 대신 실속이 없는지라 달걀 한 알을 사려해도 한족집으로 달려간다.한족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몇십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걷지만 조선족들은 빈 몸을 하고도 한족이 끄는 인력거를 자주 타고 있다.선조들이 맨 주먹으로 서간도를 일구어낸 고난의 역사를 깡그리 잊고 사는 것이다. 요령성 철령시 교외 조선족마을에는 봄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여기서는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초가지붕의 이엉을 새로 이는데 일꾼은 모두 한족들이었다.마을에서 20리나 떨어진 한족마을에서 일꾼들을 불러다 썼다.주인과 마을사람들은 구경꾼이 되어 뒷짐을 지고 어슬렁댔다.그리고 잔소리를 퍼붓는 꼴이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집 한채를 이엉으로 이는데 주는 품삯은 점심 한 끼를 대접하고 70원.아직 초가집 신세를 지는 주제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이나 현,향·진 소재지에는 인력거가 베틀에 실북 나들듯 연락부절이다.인력거꾼은 대개 한족이고 인력거에 앉아 호사를 누리는 쪽은 조선족들이다.심양시 한 조선족마을에서 버스정거장까지는 불과 100m인데 인력거를 타는 일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이 마을을 상대로한 한족 인력거꾼 30여명은 한 사람이 매일 30원 안팎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다.이들 한족 인력거꾼들은 머지않아 승용차를 굴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조선족들이 다 떵떵거리는 것은 아니다.백기환씨(54)는 외국에 나가 돈을 좀 벌어온 사람인데 일찍 깨달았다.지난 92년에 나가서 2년동안 국외노무를 해 10여만원을 벌었다.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돌아와 일손을 놓았다.놀면서 심심풀이로 한 마작에서 4천원을 날렸다.그리고 딸아이가 대학을 가는데 5천원을 쓰고,동생이 1만원을 빌려가고 나니까 벌어온 돈 절반이 달아났다.그 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외국에 나가 돈 벌어왔다고 우쭐대다 알거지 된 사람들의 처지가 남의 일같지 않았다.그래서 다시 시작한 일이 구두닦기이다.지난해 4월 신빈진백화점 앞에 자리를 잡고 지금은 매일 50원정도의 고정수입을 올린다고 했다.그는 자신의 체험을 말할때면 으레 꺼내는 서두가 있다.『우리 조선족은 벌이가 없어서 못사는 것 아니디요.올바로 쓸 줄을 몰라 못사는 거우다』라는 말은 그의 좌우명처럼 들렸다. ○근면한 생활로 모범 요령성 조선문보는 최근 백기환씨의 성실한 생활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자세」라는 지상토론내용을 실었다.조선족의 못된 생활자세를 호되게 비판한 요령성 조선문보는 지금부터라도 생활철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이와 함께 백기환씨 말고도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요령성 신민시 호대진 홍기보촌의 조태현씨(43)가 그중의 한사람.한국에 가서 벌어온 돈을 농사에 재투자하여 첫 해에 순수익 2만원을 올린데 이어 지난해는 자그마치 4만원을 벌었다.자금은 굴려야 불어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한국에 다시 가서 더 많은 돈을 벌 의향은 없느냐는 기자질문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왜 없습네까.그러나 수만원씩 수속비 내고는 못간다는 생각이디요.가면 단시일안에 목돈을 만지긴 하디만 모두가 비정상이야요.고국으로 가는 길 차차 넓어지면 모르디만….한국바람에 너무 들뜨지 말아야 합네다.언제나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심정에서 또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거디요』 요령성 철령시 효명진 단결촌의 최철씨(42)는 남들이 너도나도 출국바람에 들떠있을때 한눈을 팔지 않고 성공을 거둔 사업가다.한국오리엔탈 유한회사가 심양에 들어와서 전적으로 조화를 생산한다는 정보를 얻어냈다.지난 92년 집에서 실험생산에 들어갔고,한국오리엔탈에서도 제품을 인정했다.1993년 효명조화공장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지금은 한국오리엔탈산하 분공장으로 들어간 효명조화공장은 한국오리엔탈 분공장가운데 가장 높은 생산실적을 올렸다. 효명조화공장은 종업원 20명을 거느리며 연간 40만원어치의 조화를 만들고 있다.조화의 인기가 좋아 미국,독일,일본 등지로 수출되었다.허망한 꿈과는 아예 벽을 쌓고 분수에 맞는 일거리를 찾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조선족들의 마음에도 터를 잡기 시작했다. 한국을 향한 꿈이 산산히 깨지자 이를 남가일몽으로 돌리고 좌절에서 희망을 다시 찾은 성공사례도 있다.요령성 무순시 순성구 전전진 신북촌 김서호씨(60)는 늘그막에 한국에 가서 한 몫을 잡겠다는 욕심을 부렸다.욕심은 화근이라고 브로커에 2만원을 떼이고 94년 한 해 농사도 망쳐버렸다.해가 바뀌어 95년 농사철이 돌아오자 한국을 딱 단념하고 남의 땅까지 빌려 농사에 달라붙어 채소농사와 벼농사를 지었다.지금은 한 해에 2만원의 알수익을 거둬들이는 부농이 되었다. ○구두닦이로 다시 시작 요령성 조선문보에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성공사례가 실리자 동북지방 조선족들로부터 많은 편지가 날아들고 있다는 것이다.조선족들에게 많은 감명을 안겨주어 선조들의 개척정신이 되살아나는듯 했다.김병모라는 사람이 어른 구두닦이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편지를 보냈다. 「어떤 사람은 단돈 한푼을 못벌면서도 입에는 항상 고급담배를 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집에서는 된장과 짠지를 먹고 살면서도 술집에 가서는 고급요리를 잔뜩 남기고 돌아오는 허세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작은 돈은 눈에 차지 않아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큰 돈을 탐냅니다.우리 농촌에서보면 한족들은 탈곡기를 끌고 다니며 돈을 버는데 조선족들은 뒷짐 짓고 서서 다 벌어놓은 돈을 남의 주머니에 찔러줍니다.이런 판에 구두닦이로 나선 백기환씨는 참으로 돋보이기만 합니다.근로에 용감했던 선조들의 색바랜 미덕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2백만 조선족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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