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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족 초청사기 “82%가 연수”/대책위 실태조사

    ◎지난 9월이후 피해액 330억 규모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상임대표 서영훈)과 재중국 동포문제 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진홍 목사)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의 조선족 상대 초청 사기 사건의 실상을 공개했다. 조사단이 지난 9월23일부터 11월8일까지 중국 동북 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을 대상으로 현지 조사를 실시한 결과,피해자는 모두 1만400가구로 피해금액만 3백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수 명목의 초청 사기가 82%,친·인척 초청 사기가 14.8%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한국 원양어선에서의 중국교포 선원들에 대한 가혹행위도 포함됐다.
  • 목선타고 밀입국 조선족 22명 적발/해경 부안앞바다서

    16일 하오 6시40분쯤 전북 부안군 위도면 남서방 3마일 해상에서 중국교포 22명을 태우고 밀입국하던 중국선적 4.5t 목선을 해경이 적발,군산항으로 예인했다. 제9복성호 선장 이명호씨(39)는 『이날 조업을 하던 중 한국어선과 형태가 다른 낡은 목선위에 허름한 옷차림의 남녀 3∼4명이 수근거리고 있어,이를 수상하게 생각해 해경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발견당시 이 목선에는 남자 15명과 여자 7명 등 모두 22명이 타고 있었으나 출항지 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해경은 이들을 상대로 밀입국 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 조선족 상대 「취업사기」 대대적 수사/관계기관 합동회의

    ◎피해자 10만… 반한감정 촉발 우려/여권위조범·브로커 등 처벌 강화/위장결혼 막게 제도도 개선키로 대검찰청은 16일 중국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들을 상대로 한 국내 취업 브로커들의 사기 행각이 국익을 해칠 정도에 이르러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을 비롯,안기부·외무부·법무부 등은 15일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관계 기관과 합동으로 이들 사범을 집중 수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같은 조치는 국내의 여권·주민등록증 위조단 등 취업 브로커들이 중국 연변 동포 1명으로부터 적게는 수십만원에서부터 많게는 5백만∼8백만원까지 챙기는 사기 사건이 1만여건에 이르고 피해자만도 10만명이나 되는데 따른 것이다.이 때문에 연변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동포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반한 감정마저 거세지고 있다. 검찰은 특히 중국 연변에서 동포들을 상대로 실태 조사 및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피난처」 이호택 간사가 돌아오는 대로 고소장 등을 토대로 대대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또 동포들의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취업 사기 및 여권 위조사범에 대한 처벌을 일반 형사범보다 강화하고 ▲수사 및 사례 조사를 위해 현지 영사관에서 피해자 진술 조서를 받도록 하며 ▲위장 결혼을 막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여권 사진을 위조하지 못하도록 여권 발급 방식을 개선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여권 및 주민등록증 위조 등에 대한 수사는 외무부 등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서울지검 외사과에서 전담하고 필요한 때에는 수사관을 직접 연변으로 보내기로 했다. 아울러 노동부와 중소기업청에 의뢰,업주 또는 사용자들이 위조여권을 지니고 국내에서 불법 취업한 교포들의 월급을 가로채는 등의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계도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최근 국내 취업을 미끼로 중국교포들로부터 3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김본기씨(54·서울 강남구 역삼동)와 유태성씨(33·대구 남구 이천동) 등 2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29건을 적발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연변에서 조선족 교포 이강섭씨(45·길림성 연길시 거주) 등 선원 연수생 500명을 모집한 뒤 출국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1인당 1백30만∼1백60만원씩을 받아 3억2천만원을 가로챘다.
  • 조선족 상대 취업사기/100여명에 3억 가로채/30대 선장 구속

    경남경찰청은 15일 우리나라 선원으로 취직시켜 겠다며 중국교포들로 부터 한사람당 80만∼6백만여원씩 모두 2억7천여만원을 받고 이들을 밀입국 시킨 김두수씨(37·선장·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강사리 561)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온두라스 선적 냉동운반선 스키프 1호(298t급) 선장인 김씨는 부산시 중국 중앙동에 대두해원이라는 유령회사를 차리고 중국 대련시 중산구 백운가에도 대련영업소를 낸뒤 지난 95년 7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중국에서 교포 장명광씨(27) 등 100여명을 한국선원으로 취직시켜 주겠다며 이들로 부터 모두 2억7천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 남파간첩 깐수 전향한다/변호인 “오늘중 전향서 재판부에 제출”

    ◎“공산주의 망신 벗고 자유롭게 학문연구 하고파” 「무하마드 깐수」 교수로 위장,12년동안 국내에서 암약하다 지난 7월 검거,기소된 고정간첩 정수일(62·전 단국대 교수)이 전향한다.. 정의 변호인인 김한수 변호사는 12일 『정수일이 최종적으로 전향을 결심했으며,오는 14일 열리는 공판에서 공식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정이 전향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학문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현재 정과 구체적인 전향 절차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변호사는 『정이 전향을 망설여온 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해서라기 보다는 수십년간 따라온 이념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정이 그동안 준비해온 저서 「고대동서교류사」 등을 완성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 검거된 직후 『끝까지 노동당에 충성하겠다』며 전향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달 8일 김변호사가 『최근 정이 북한에 대해 맹목적인 신앙을 버린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전향여부에 대해 기대를 모았었다. 이에대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23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남파 간첩에 포섭된 국내간첩이 전향한 전례는 있지만 북에서 정식으로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 재판 과정에서 전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수일이 전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 양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 지난 34년 중국 길림성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나 모로코 주재 중국외교관(2등 서기관) 생활을 하다 63년 입북,74년부터 5년동안 간첩 교육을 받았다.그뒤 아랍인과 외모가 흡사하다는 점을 이용,2차례 국적 세탁 과정을 거쳐 84년부터 12년동안 국내에서 암약해 왔다. 정은 북한에 처자를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지난 80년대 말 한국에서 결혼한 윤모씨(45·간호사)가 김변호사와 함께 정의 전향을 설득해 왔다.
  • 경남대 참여교수 좌담(북한은 지금:10·끝)

    ◎“북한 경제사정 예상보다 심각ㄴ/변방무역 허용 등 조금씩 체제변화 조짐/북 최대딜레마 “개혁·개방땐 정권붕괴” □취재 의의 ­북 인접 러·중 국경 2천700리 이동 실사 ­언론·학계 시각 접목 북 실상 이해폭 넓혀 □체제변화 전망 ­주민통제·사상교육 철저 ­민중봉기 중심세력 없어 ­단기간내 체제붕괴 가능성은 희박 □대북정책 제안 ­북한실상 체계적·객관적 분석 ­사회역량·경제력 바탕 대북정책 수립해야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북한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린 수수께끼의 나라다.그러한 북한의 실상을 보다 정확하고 현실감있게 알아보기 위해,서울신문은 언론사상 처음으로 국내외에서 북한 및 사회주의권 연구에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인정받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북한의 접경지역에 대한 언·학 합동 현지조사를 실시한 후 「북한은 지금」 시리즈를 연재했다.연재를 마치며 합동조사에 참여했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심지연·최완규·한석태·함택영 경남대 교수들로부터 ▲현지 합동조사의 의의와성과 ▲향후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 등을 듣는 좌담을 가졌다. ▲최완규 교수=이번 합동조사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저널리스트적 시각과 전문가적 시각을 접목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언론 따로,학자 따로 현지조사를 실시하다보니 언론은 「한건주의」 등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고 학자들은 전문가적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습니다.서로의 단점을 보완한 이번 현지조사는 일반인들이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심지연 교수=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를 몇차례 현지조사를 해봤지만 이번처럼 북한과 인접한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2천7백리를 이동하며 실사다운 실사를 해본 것은 처음입니다.특히 책과 자료를 통해 알고 있던 여러가지 사실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고 싶습니다. 예컨대 다락밭이 산등성이에 띄엄띄엄 몇뙈기 있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까지 산 전체를 다락밭으로 개간했다든가,북한과 중국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어 지력이 비슷할텐데도 북한땅 옥수수가 중국의 절반밖에 크지 못했다든가,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건의 대부분이 지난 50년대에나 환영받았을 조잡한 제품이라는 점,기름부족으로 어선·작업선등이 제할일을 못하는 데다 그나마 사용하지 않아 녹슬었다는 점 등을 실제로 목격했습니다. ▲함택영 교수=새로운 사실도 확인했습니다.용정시에서 북한땅 청진시로 가는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북한군 2개사단이 삽과 곡괭이를 이용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닦고 있었으며 북한방문 조선족과 조선족관리들의 북한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다르다는 점등입니다.관리들은 「대체로 어렵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주민들은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하지만 관리들도 술자리에서는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는 것은 물론 혐오감까지 나타내 북한의 경제사정이 예상보다 심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최 교수=아쉬운 점도 있습니다.빠듯한 일정으로 많은 지역을 이동하다보니 심층적인 조사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 교수=동감입니다.북한의 소식을 접할수 있는 주요 지역에 오래 머무를수 없어 도착 즉시 조사를 하다보니 북한주민들이나 중국 조선족들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 말을 끌어내는데 애를 먹었습니다.한 지역에서 적어도 3∼4일동안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과 친해져야 보다 정확한 북한실상을 알수 있었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함 교수=중국 관리들이나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들은 한결같이 북한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사설시장·변방무역 등이 허용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교수=북한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조건은 절제된 이성과 민족애입니다.북한을 우리의 반쪽이 아닌 「한반도의 르완다」로 치부하고 상대적으로 잘산다는 점에 만족감을 느끼는 한 통일한국의 장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우리는 ▲북한이 왜 변화돼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돼야 하며 ▲통일이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민족이익」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최 교수=북한의 변화는 체제변화와 정책변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체제변화는 그 사회의 근본적 변화이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는 아주 낮은 수준의 정책변화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함 교수=북한의 변화는 경제부문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사설시장의 허용 등 비공식 경제부문의 변화가 그것입니다.이런 변화가 쌓이면 사회주의 체제에 도전하게 되지만,체제변화로까지 발전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중국처럼 국영기업의 개혁 등 공식 경제부문의 변화가 있어야만 진정한 정책의 변화로 볼수 있습니다. ▲최 교수=북한이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개혁·개방을 해야 하지만 개혁·개방이 정권의 안정을 흔든다는데 딜레마가 있습니다.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에는 두가지의 길을 상정할수 있습니다.하나는 옛 소련식 개혁·개방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식입니다.옛 소련의 개혁·개방은 강력한 당­국가체제의 틀을 깰만한 중추기관이 없어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반면 지방의 자율성이 보장된 지방분권적인 중국의 개혁·개방은 성공적으로 평가받습니다.북한사회는 옛 소련에 가깝다고 볼수 있습니다.북한이 △현 체제를 고집할지 △소련식 개혁·개방노선을 따를지 △중국식을 추구할지 아직 속단하기 힘듭니다. ▲한 교수=사상교육을 통한 주민들의 단결의식 고취,주민의 내핍생활 체질화,주민통제,북한지도부의 위기관리능력을 감안하면 단기간내 북한체제의 붕괴를 점치기는 어렵습니다.지금으로서는 체제변화의 경착륙(하드랜딩)이나 연착륙(소프트랜딩)보다 현상유지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입니다.한반도 주변 4강이 북한의 경착륙을 원치 않는 점을 고려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합니다. ▲함 교수=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중 가장 관료화된 사회입니다.농업부문이 대표적입니다.당서기·수리조합장 등 지역 농업부문에 「놀고 먹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봉건사회의 지주들보다 더 심합니다.이들이 현재 권력 핵심부에 속해 있는만큼 개혁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하기 때문에 개혁의 입지가 좁아질수 밖에 없습니다. ▲한 교수=북한의 정책기조는 대미·대일협상을 통해 더많은 돈을 받아내 경제난을 해결,현상을 유지하자는 쪽입니다.북한의 기본적인 정책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체제의 변화도 올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심 교수=체제변화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봉기가 있어야 합니다.하지만 북한에는 시민봉기세력이 없습니다.특히 김정일정권은 한국 전체를 제압할 능력은 미지수지만 수도권을 장악할 정도의 위협능력을 갖고 있는 점도 체제변화의 폭을 좁게 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대북정책에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함 교수=대북정책의 가장 큰 병폐는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입니다.자유국가의 무기는 외교기술이 아니라 사회역량과 경제력입니다.틈나는 대로 일과성 정책을 제의한다고 해서 기선을 제압할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심 교수=정치권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대북정책을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물론 정부의 대북정책도 의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국민의 합의에 기초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최 교수=대북정책은 우리체제를 강하게 만든 다음 북한이 우리에게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귀순 북한동포 허창걸씨 일문일답

    ◎“북 주민 몇달째 식량공급 못받아”/조선족 통해 한국 자유 누리는 것 알았다 28일 귀순한 북한동포 허창걸씨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초보적인 조건마저 충족되지 않아 북한을 탈출하게 됐다』며 극심한 식량난이 직접적인 북한 탈출동기였음을 털어놨다. ­왜 하필 남쪽(한국)을 택했나. ▲중국 조선족들을 통해 한국이 민주화된 국가로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알고 제3국보다 한국을 택했다. ­북한에 남은 가족은. ▲부인(이화순·41)과 아들(15) 그리고 막내딸(12)이 있다. ­왜 큰 딸만 데리고 왔나. ▲모두 다 데리고 나오기란 힘들었다.그래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큰딸만 데리고 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다.북의 가족들은 탈출 사실을 모르고 있다.남은 가족들은 헤어졌다기 보다 고향에 그냥 두고 온 기분이다. ­군의장이 무슨 직책인가. ▲정규군대가 아닌 예비군대의 약제사에 해당한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어렵다는데. ▲군부 사회안전부 국가보위부 등 당기관을 제외한 일반 주민은 몇달째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주병철 기자〉
  • 리비아/한국선원 23명 6개월째 억류

    ◎“불법어로” 강제예인… 법원서 무죄판결 【부산=이기철 기자】 불법어로행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한국인 선원 23명이 리비아 벵가지항에 6개월째 억류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25일 한국원양어로장협회(회장 김용수)에 따르면 라스팔마스 인피트고사 소속 파스쿠아호(299t·선장 박기일)·수마Ⅱ호(297t·선장 박종수)·수마 튜나호(298t·선장 공갑성)·샐비아 L호(254t·선장 박태규) 등 4척의 참치연승어선이 지난 5월 리비아 전관수역내에서 조업중 리비아 해군 경비정에 의해 벵가지항으로 강제예인된 뒤 지금까지 현지에 억류되고 있다. 억류어선에는 한국인 선원 23명과 중국 조선족선원 91명 등 모두 141명이다. 억류선원들은 강제예인된 뒤 입어허가취득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리비아당국이 고발했으나 벵가지 지방·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 리비아 관리들간의 알력 때문에 아직 강제 억류되고 있다.
  • “배고파 못 살겠다” 민심이반 가속(북한은 지금…:9)

    ◎당권위 실추… 사상통제 어려워/뇌물수수·생필품 암거래 성행/“차라리 전쟁이라도…” 자포자기 현상확산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대에서 본 북한은 「민심이반」의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듯했다.지난 80년대 후반부터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이념보다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일부주민의 밀무역·암거래·뇌물수수가 횡행하는등 조직이완현상마저 보이고 있었다. 연길에서 자동차로 비포장도로를 2시간여 달리면 다다르는 화룡시 숭선.북한땅 양강도 대홍단군 삼장리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30m쯤 떨어져 있는 데다 북한과 통하는 변방검사참(간이세관)이 있어 북한의 소식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중의 하나다. 이곳에서 만난 조선족 임모씨는 『지난 여름 양강도 대홍단에 있는 친척집에 갔을 때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하니까 그곳 주민이 한국이라고 바로 잡아줄 정도로 김정일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털어놓았다』고 전한다. 북한은 개인이 아닌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다.조직생활은 노동당의 지도로 모든 주민을하나로 묶어 체제를 유지하는 버팀목이다.그러나 노동당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쌀밥」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시킴으로써 권위가 떨어지고 조직생활에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석태 교수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하는 과정에서도 북한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대표적 요인이 사상통제가 쉬운 조직생활』이라고 분석한다.그는 『그러나 북한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사상통제가 어려워지고 조직생활이 느슨해져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인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만난 중국 조선족 양모씨도 『이곳에 있는 탈북자나 북한 외화벌이꾼을 만나보면 예전에는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고 「미 제국주의자의 음모」라고 주장했지만 요즘은 「일제때보다 더 어렵다」,「배고파 못살겠다」는 등 불만을 표시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식량부족 등 경제난과 조직이완현상으로 양식을 구하고 장사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자연히 남의 일에는 무관심해지고 있다고 한다.도문에서 만난 조선족 이모씨는 『북한당국이 속도전이나 사상교육을 아무리 강조해도 경제사정이 절박하니까 이념이 뭐고 없이 장사할 궁리만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인식이 북한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난의 악화는 민심도 황폐화시키고 있는 듯했다.굶을 바에야 차라리 전쟁이라도 붙었으면 하는 절망감에 빠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연길에서 만난 북한전문가는 『북한주민은 경제난이 「미 제국주의」의 봉쇄와 통일이 안된 탓으로 돌리면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삶을 벗어나는 탈출구로 전쟁을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장기간 남북긴장상태가 계속돼 북한주민 사이에 「전쟁이나 터졌으면」하는 분위기가 싹트는 게 사실』이라고 장사를 위해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용정시 개산둔에서 만난 조선족 박모씨도 전한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당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지자 북한당국은 유화적인 몸짓을 보이고 있다.내부 적대세력을 양산해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탈북자에 대한 처벌강도가 약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화룡시 노과향에서 만난 중국인 동모씨는 『전에는 탈북자를 잡으면 「시범케이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형벌을 줬지만 배고픔을 참지 못한 탈북자가 늘어나는 요즘은 구류처분에 그친다』고 전한다. 북한의 민심이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같다.북한이 처한 구조적 위기의 현실을 감안할때 지금과 같은 소극적인 개혁·개방정책으로는 경제난을 해결할 길이 없어 민심의 이반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심지연교수는 『앞으로 경제문제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김정일은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세력의 정권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참여교수 시각/체제변화 가능성/신종대/「제한적 개방」 성공에도 유일체제 붕괴 불가피 지금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은 자못 심각하다.식량난 등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들의 타 지역 또는 국경지대로의 이동이 급증하고 있으며 탈북자도 상당수에 이른다.암시장 등 비공식적 경제부문이 성행하고 있고 각종 사회적 일탈현상도 표출되고 있다.과연 이러한 현상들이 전반적인 주민 동요,나아가 체제변동 및 붕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북한은 만성적 경제침체와 이로 인한 일탈 현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권의 안정성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정권의 안정성이 곧 사회적 불만이나 위기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실제 이번 합동조사를 통해서도 체제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갖가지 불만이나 비판을 직·간접적으로 접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현상들을 곧 주민 전체로 확산된 「체제일탈 증후군」으로 보기는 어렵다.북한은 여전히 「수령·당·인민대중」의 단결을 강조하는 집단주의와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다.경제난도 체제 외적요인으로 선전되고 있다.이것이 대다수 주민들에게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치적으로 안정된 체제라도 물질적 토대의 재생산없이 무한정 체제의 안정을 재생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따라서 경제회생이야말로 향후 정권의 명운을 가늠할 최대 관건이다.그런데 경제회생을 위한 외부로부터의 자본과 기술의 수혈과정이 정권이나 체제의 침식과정이 될 수 있다는데 북한의 딜레마가 있다.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체제 유지 내지 강화를 골간으로 하는 「방충망식 개방」이 본래 의도에 합치되는 방향으로만 전개될지도 의문이다. 앞으로 북한체제가 어떻게 변모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경제난 해결 등 정책성과의 여하에 따라 김정일 정권이 상당기간 안정국면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멀지않아 체제경쟁상 열위에 처한 현 유일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그 변화가 우리 민족에게 또다른 고통을 잉태하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됨은 물론이다.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변화의 내용과 방식,그리고 속도를 어떻게 「민족이익」에 부합시키느냐이다.
  • 고부갈등 때문에…/70대 할머니,아들 이혼 비관 자살

    【부산=이기철 기자】 21일 상오 9시쯤 부산시 동구 수정3동 남성맨션 305호 박홍순씨(78)집 안방에 부인 김금옥씨(74)가 목매 숨져 있는 것을 박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박씨는 『오전에 등산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어 보니 아내가 경첩에 나일론 끈으로 목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들 장원씨(33)가 선원생활을 하다 지난 93년 결혼한 중국 조선족 출신며느리와 김씨가 평소 자주 다퉜고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이 지난달 이혼을 한 것을 비관해 왔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비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 “북­중 국경지대 「밀무역루트」 10곳 있다”

    ◎양국세관·초소 묵인하에 생필품 등 거래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의 밀무역규모가 커지면서 두만강과 압록강변에 10개의 밀무역경로가 생겼으며 이 밀무역로는 「교역통상구」로 불려지고 있다. 통일원 남북회담사무국,법무부,관세청 등이 지난 5월 공동실시한 「중국·북한간 통상구 실태조사 출장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 국경지역에 설치된 교역통상구는 두만강변에 6곳,압록강변에 4곳 등 모두 10곳이며 압록강변의 일부 교역통상구를 제외하고는 양국 세관이나 초소에서 묵인하고 있는 무역경로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통일외무위 소속 양성철의원(국민회의)은 이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교역통상구는 중국 조선족의 주도로 생기기 시작했고 한 통상구에 북한∼중국의 강변도시가 쌍을 이뤄 각각 하나씩의 사무소를 개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두만강변의 경우 ▲온성 샛별군(북한)∼사타자(중국) ▲남양시∼도문시 ▲종성∼개산둔 ▲회령시∼삼합 ▲노덕리∼남평 ▲무산시∼승선이 각각 교역통상구를 이루고 있으며 이중 4곳은교량으로,2곳은 소형화물선으로 주민과 물자가 오가고 있다.특히 남양시∼도문시간은 철도가 있어 대량수송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록강변의 경우 ▲혜산시(북한)∼장백현(중국) ▲중강진∼임강시 ▲만포∼집안시 ▲신의주∼단동에 각각 교역통상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밀무역루트를 통해 오가는 물자의 경우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철강·목재·아연·동·규사·실리콘·주방용 천연가스·명태·갈치·조기·신덕샘물·골동품등을 주로 반입하는 반면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옥수수·밀·쌀·식용유·석탄·석유·운동화·세숫비누·재봉틀·냉장고·흑백TV 등을 사들이는 것으로 나타나 북한내 식량과 생필품 부족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 중 조선족 조직폭력배/한국유학생 폭행 치사/북경 술집서 시비끝

    【북경=이석우 특파원】 북경에 유학중인 30대의 한국유학생이 조선족 깡패들의 집단폭행으로 살해됐다. 18일 상오1시쯤 북경시 조양구 북경전람중심 부근의 조선족이 운영하는 북두성가라오케에서 북경 중의약대학 한의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오익주씨(36)가 조선족 깡패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두개골이 파열되는 등의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 이날 오씨는 중의약대학 후배 선모씨(27)와 이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시다가 조선족 4명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는 것이다. 북경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북두성가라오케 주인 및 종업원들이 중국 공안에서 이들 범인들이 평소 가라오케에 들러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공짜술을 먹고가는 조선족들로 이루어진 조직 폭력배들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 동3성의 노인들(송화강 5천리:9)

    ◎「노인문고」 발간… 민족수난사 정리/“대륙이주 1세대 역사 기록” 1994년 창간/몇몇 주머니돈으로 명맥… 최근 성금답지 “활기”/산동·몽골·하북·북경까지 독자 늘어/중국조선족 노인협회 기관지로 성장 오늘의 길림성 소재지 장춘시에는 관성자라는 대명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관성자는 부여의 옛 성터가 19세기 전반만 해도 엄청난 규모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명나라때 관성자에는 몽골민을 다스리는 누얼간도사가 들어섰다.그 이후 대륙을 넘겨받은 청나라는 관성자에 장춘부를 설치했다. 길상과 영존을 상징하는 뜻깊은 이름의 장춘.그러나 만주사변이후 일본이 허수아비 정부로 세운 만주국의 수도가 되었다.그 시절의 장춘은 신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만주국 마지막 황제 부의가 살던 오늘의 장춘시 광복북로3호의 황궁은 괴뢰황궁진열관으로 되어있다.일본 관동군사령부가 있던 스탈린가 47호는 중공 길림성위원회 청사로,라라툰가의 박정희 대통령의 모교 만주육군군관학교는 인민해방군 장갑기술병학교로 변했다. ○노인들걸어온 길 담아 어디 그뿐이랴.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상징하는 건물들은 수 없이 그대로 남았지만,이름과 주인은 모두 바뀌었다. 동양척식회사는 길림일보사가,만선척식회사에는 길림대학의 한 기관이,건국대학에는 장춘대학이 새 간판을 걸고 들어앉았다.그 많았던 일제 어용기관들이 자리잡기 이전까지 장춘시의 인구는 20만명에 불과했다.일본 침략자들이 장춘을 만주국 수도로 만들면서 20년내에 인구 50만을 수용한다는 계획은 일찍 빗나가 해방이 되던 해에 벌써 70만을 넘어섰다. 지금 장춘시 인구는 자그마치 2백만명이나 되었다.이 가운데 조선족은 3만명이다.조선족의 비율은 작았지만,내로라 하는 간부들은 꽤 많았다.연변 조선족자치주가 길림성내에 있는 연고로 성정부 소재지 장춘으로 올라온 연변출신 조선족 간부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연변의 당과 군의 제1임자에서 길림성 당과 군의 제1임자를 거쳐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장을 지냈던 조남기상장이 대표적 인물이다.그리고 현 국가통전부 이덕수 부부장,부성장 전철수 동지,전 성군구 정위옥종환 소장이 있다. 장춘시 조선족노인협회를 찾아가서 기라성 같은 노인 여러분을 만났다.그들이 살아온 발자취에서 오늘의 중국 현대사를 읽었다.전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문정일 노인은 해방후 중국 건국에 크게 공헌했을뿐 아니라 항일투사이기도 했다.전 길림성교육청 기관 당서기인 함경북도 경원 출신의 채규억 노인(69)도 노인협회에서 만났는데,그는 「노인문고」주필 직책을 맡고 있었다.노인은 문고를 꾸려나가는 사연을 진지하게 들려주었다. ○올부터 격월간으로 발행 『중국 전역에는 천개가 넘는 조선족 노인협회가 있고,노인 숫자는 20만명이나 되지비.이 땅을 개척한 사람들이고,항일투쟁과 국가건설에 직접 참여한 일꾼들이라.그들 나름대로 인생사는 민족의 개척사요,수난사이자 현사 아니겠슴둥.그래서 노인들이 걸어온 길을 정리해서 후대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한다는 뜻을 가지고 노인문고를 시작했지비』 「노인문고」는 1994년에 창간되었다.8호까지는 계간으로 발행하다 올해부터는 격월간으로 내놓고 있다.「노인문고」는 사무실도없기 때문에 조선족 문예지 「장백산」편집실 더부살이로 편집일을 꾸려왔다.그렇다고 자금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주필과 부주필 변철호 노인(68)의 순수한 주머니돈으로 연명했다.그리고 편집은 「장백산」에서 일하고 있는 김수영 선생(58)이 도와주었다.그는 「노인문고」의 딱한 사정을 이렇게 말했다. 『주필과 부주필 두 노친네들이 그간에 들인 돈은 무척 많디요.먹을 것 입을 것 아껴서 모아둔 돈을 벌써 1만원 이상이나 털었지 뭡네까.몇 십원에 지나지 않는 문고 발송용 포장비를 벌려고 역전가에서 일까지 하시디요.그 사정을 너무들 뻔히 알아서리 원고를 쓰고도 고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겁네다.인생황혼에서 자신들을 버린 노인들을 보면 눈물 겨운데가 많디요.그렇다고 내래 도와줄 처지도 못되고…』 「노인문고」편집은 김수영선생이 혼자서 맡아 해주었다.「장백산」편집일도 바쁘기 짝이 없지만,노인들의 일이라 돈을 받지않고 도와주었다.그리고 흑룡강성 가목시 조선족 노인협회에서는 종이를 싼값에 보냈다.가목시 노인협회는 종이장사를 하는 터라 이윤 한푼 남기지 않고 종이를 공급하고 있다.장춘시 이도하자 노인협회는 자체회관을 짓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1천원의 성금을 전해오기도 했다.최근에는 몽도미상용품유한회사 이성일 사장이 2만원이라는 거금을 보내와 「노인문고」가 제법 활기차게 돌아갔다. 얼마전에 「노인문고」는 하얼빈,심양,연변노인협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동3성조선노인협회 사업경험교협회의를 창립했다.이 회의에서는 각 지구에 「노인문고」고문과 편집위원을 두고 기금을 내놓는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이때부터 「노인문고」는 사실상 전국 조선족노인협회 기관지가 되었다.「노인문고」는 소식지 구실도 해냈다.헤어졌던 옛 동지들을 문고에 실린 소식을 통해 서로 알고 극적인 해후가 종종 이루어졌다.어떤 지역에서는 「노인문고」를 교과서로 학습을 하는 사례도 있다. 독자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화룡시 노과진 노인협회에서는 130리나 떨어진 화룡시에 나가 문고를 사가지고 와서 노인들이 돌려 읽는다는 것이다.그리고 동3성 밖인 산동,몽골,하북,북경에 사는 조선족 고정독자가 생겼다.미국의 동포기업가는 「노인문고」를 보고 축하의 편지와 함께 구독신청을 해왔다.창간때 2천부를 겨우 웃돌았으나 지금은 4천부를 발행하고 있다. ○옛둥지 극적 해후도 많아 지난해 11월9일 「노인문고」는 「96노인문고컵 조선족바둑대회」를 주최했다.장춘시 조선족예술회관에서 열린 바둑대회에는 동3성 9개 도시에서 참가했다.올해는 해가 가기전에 「백의소년 서예대전」을 열 계획이다.그리고 남북한과 세계에 흩어진 동포노인단체들과 교류를 갖기로 하고,한국과는 이미 접촉을 해둔 상태다.한국과의 다리는 한국의 북한연구소가 발행하는 「북한」편집부 고태우 부장이 놓아주었다.
  • 100달러 위폐 34장 발견/섬유업체,중국 거래처서 받아

    16일 하오 2시쯤 서울 중구 예관동 70의 27 기업은행 퇴계로지점에서 Y물산경리이사 정모씨가 미화 1백달러짜리 94장을 입금하는 과정에서 외환계 직원 이성민씨가 위폐를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이씨에 따르면 정씨가 입금하려던 94장의 지폐중 지질이 이상하고 인쇄상태가 흐릿한 것이 다수 발견돼 외환은행 본점 외환부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34장이 위폐로 판명됐다. 경찰은 이 돈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내 원단판매업자 김모씨(38)가 중국 산동성 위해시에 사는 조선족 이모씨(47)에게 원단을 납품하고 1백달러짜리 1백장 등을 받아 거래처인 Y물산에 원단가공비로 지불한 것으로 밝혀냈다.
  • 「우리식 사회주의」로 체재유지 안간힘(북한은 지금…:8)

    ◎나진 등 무역특구지정… 경제활로찾기 부심/「핵」카드로 대미관계 개선·대외협력 길 모색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대에서 바라본 북한은 생존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듯 했다.북한은 악화된 경제난 타개를 위해 「정신적 보루」인 「우리식 사회주의」의 큰틀은 견지하면서도 나진·선봉지역에 자유경제무역지대(경제특구)를 설치하는 등 「자본주의 실험」에 나서는가 하면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밀무역을 하거나 탈북을 하고 있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 토대 위에 제한된 지역에서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는 등 대외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핵무기개발 협상을 이용,미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국제사회에 재등장하는 것이 북한당국의 주요 생존전략이라고 관측한다.『제3차 7개년 경제계획(87∼93년)을 완수하지 못할 것을 예상한 북한은 우선 지난 91년 나진·선봉을 자유무역지대로,청진항을 자유무역항으로 각각 지정하는 등 경제난 해결을 위한 활로를 모색하는데 고심하고 있다』고 서울신문과의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최완규 경남대교수는 분석한다.그는 『북한은 자유무역지대의 설치가 남한 등 여러 자본주의국가들이 성공을 거둔 데다 사회주의권인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만큼 이 방식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방법중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판단,극히 제한적으로 「자본주의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의 대외정치협상도 생존전략의 핵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북한전문가들은 진단한다.대외정치협력은 북한이 제네바 북·미 회담에서 핵문제 타결을 이뤄내 대미관계를 극적으로 개선시킴으로써 대외생존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연길에서 만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서방 자본주의국가들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말한다.『북한의 핵카드로 「철천지 원쑤」 미국이 북한의 국제사회로의 재진입을 지원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보면 어느 정도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그는 덧붙인다. 북한전문가들은 고려연방제 통일방안도 생존전략의 일환이라고 지적한다.고려연방제 통일안은 「1국가 2정부」의 연방국가를 수립한 뒤 통일국가의 체제는 나중에 가서 천천히 결정하자는게 목표.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한 지금의 상황에서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우세한 남한과 통일국가의 제도를 결정하면 남한에 흡수통일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생존전략은 그러나 배불리 먹고싶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식량난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일부 주민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유역 등 국경지대에서 오징어나 명태 2∼3마리로 쌀을 바꾸는 밀무역을 하거나 목숨을 걸고 중국과 러시아로 탈북하고 있는 것도 모두 양식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삼합에서 만난 조선족 박모씨는 『지난 8월초 함북 회령에 있는 외삼촌댁을 방문했을때 갓 팬 새파란 벼의 이삭을 훑어 물과 섞어 죽을 끓여먹는 것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고 전한다. 경제난 해결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북한은 앞으로도외교적인 노력과 제한적인 자본주의 실험을 계속 추구할 것 같다.그러나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경제특구 방식이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 방식이 세계적으로 모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합동조사에 참가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설치된 200여개의 경제특구중 성공한 것은 30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성공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외국자본의 유치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시설을 내자나 차관을 통해 사전에 정비한 다음 외국의 민간자본을 끌여들였다는 점을 감안할때 이런 능력이 없는 북한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고 말한다.〈연길·삼합(중국)=김규환·최병규 특파원〉 ◎참여교수 시각/북한의 생존전략/함택영 경남대교수·국제정치학/농업개혁·대외협력이 체제유지 필수조건 한때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의 수명이 몇시간에서 길어야 3년이라는 전문가들(?)들의 예측이 있었다.그러나 「대김」사후 오늘날 「소김」체제는 경제난·식량난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있다.경제위기와 체제이완현상의 징후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정권이나 체제붕괴를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북한의 생존」은 첫째 사회주의경제,둘째 김정일 정권,셋째 사회주의 체제,넷째 국가의 생존으로 분류하여 보아야 한다. 사회주의통제·배급경제는 식량위기로 인해 급속히 약화되고 있으며,외화본위의 「궁정경제」와 「지하경제」가 확대되고 있다.그러나 인민의 최저 식생활이 보장된다면 경제체제는 시장을 도입하는 부분개혁을 통해 유지될 수 있다.북한의 곡물부족분은 1백50만∼2백50만t으로 본다면 연간 6억∼10억달러(t당 400달러)의 원조가 필요하며,여기에 현상유지에 필요한 재투자가 연간 10억달러가 소요된다.따라서 북한경제의 현상유지에만 적어도 16억∼20억달러(군비부담 등을 절감하여 그 반을 충당한다해도 8억∼10억달러)의 해외원조가 필요하며,성장을 위하여는 추가재원이 마련되어야만 한다.전후 남한도 연간 5억달러(현재가격으로 25억달러이상)가 넘는 미국의 경제군사원조로 지탱되었다. 경제논리상 김정일정권은 개혁과엘리트교체가 필요하다.그러나 쿠데타에 의한 김정일정권의 붕괴는 「남한식 발상」일 뿐이다.대미협상에 성공할 경우 김정일정권의 안보위기에서 해방되어 개혁·개방에 착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보다 구조적·장기적인 체제변화나 붕괴는 엘리트의 분열,국가기구의 무력화,인민봉기가 결합할때 나타날 것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북한의 생존은 대내개혁과 대외적인 안보위협감소와 경제협력에 달려있다.막대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남베트남이 패망하였듯이 그 핵심은 개혁이다.특히 중국의 성공사례나 북한의 현실을 볼때 농업개혁이 생존의 「핵심고리」라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그러나 개혁을 담보하는 대외경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북한의 장래는 춥고 어두우며,그 결과는 우리 민족 전체의 또다른 불행이 될 것이다.
  • 40여년 「떠돌이 생활」 홍승복 할머니/가족들과 “조국서 새삶”

    ◎북한 탈출 중국 유랑… 94년 남편묻힌 한국에/아들 내도 지난달 영주귀국·취업… 한 풀어 40년남짓 중국에서 살다 지난 2월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등록(서울신문 96년 3월 6일자 보도)된 홍승복 할머니(68)가 중국에 있던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살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홍할머니의 장남 현광섭씨(45)와 며느리 이경희씨(45),손자 영산군(15)을 지난달 영주귀국시키는 한편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도 마련해줬다.홍할머니의 남은 소망이 모두 이뤄진 것이다. 홍할머니는 남편 현만호씨가 6·25전쟁 때 인민군 징집을 거부하고 국군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뒤 북한에서 불순분자 가족으로 몰려 중국으로 이주,40여년 어렵게 살아오다 한국에서 유공자등록을 하려 했으나 국적이 북한이어서 번번이 거부당했었다. 보훈처는 장남 광섭씨가 중국에서 월 1천5백위안(한화 15만원)을 받고 철도기관사로 23년간 근무한 경력을 감안,철도청과 협조해 14일 기관사로 취업시켰으며 부인 이씨는 서울 이촌동 아산재단 금강병원 조리사로 취직시켜줬다.손자 영산군의경우 지난 7월 심양시 조선족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어 오는 11월 전형을 거쳐 내년 국내 대학에 특례입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홍할머니는 『중국에 남아있던 가족들까지 정부의 도움으로 함께 살게 돼 맺힌 한을 풀었다』며 『반세기가 다 지난 지금까지 남편의 공로를 잊지 않고 환대하며 보살펴준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지방보훈청은 15일 상오 10시30분 이들 가족을 초청,격려하고 「홍여사 가족취업증서 전수 및 성품·성금 전달식」을 가졌다.〈황성기 기자〉
  • 한·중 결혼개선책 마련/양국대사관 서류 확인

    정부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한·중 양국민간 국제결혼중 상당수가 조선족 중국인의 국내 취업을 목적으로 한 위장결혼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결혼 절차 개선책을 마련,오는 11월8일부터 실시키로 했다. 정부가 중국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마련한 개선책은 먼저 한·중 양국간 혼인관계서류에 대한 영사확인 창구를 주중한국대사관과 주한중국대사관으로 일원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 길림성 장춘시 음마하 집체농장(송화강 5천리:8)

    ◎조선족­한족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일궈/48년전 황량한 습ㅈ디에 노동자 이주/조선족 60가구 한족도움으로 삶터닦아/두레농사로 기반구축… 32개 한족촌도 귀속/한족에 논농사 가르치며 함께 사는 지혜 터득 오늘의 길림성 장춘시 관할구역은 옛 부여국의 고토다.장춘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농안에는 아직도 부여성 성터가 남아있다.이른바 황룡부 고성이라는 성이 본래 부여성이다.그러니까 황룡부 고성은 부여의 첫 도읍지였다. 장춘시가 지금 관할하는 지역의 인구는 모두 4백57만명에 이르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은 4.06%인 4만8천42명에 지나지 않았다.쌀에 뉘처럼 섞여 사는 것이다.그런데 장춘시 구대현 음마하진은 사정이 좀 달라 전체인구 2만2천500명 가운데 2만1천명이 조선족이다.특히 음마하진 홍광촌은 316가구 1천675명이 조선족이고,한족은 겨우 10가구 55명에 불과했다. 음마하진은 길림시에서 장춘시로 가는 철길가에 자리잡았다.청나라때 광희아니면 건륭황제로 여겨지는 황제가 동북지역을 돌아보는 동순길에 쉬어서 말에게 물을 먹였대서 음마하가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그 이면에는 아첨을 일삼는 관리가 음마하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황제의 발길이 지나갔다는 음마하는 1948년까지만 해도 황량한 습지였다니,벽해상전이 실감났다. 1947년 토지개혁 당시만 해도 음마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그러다가 길림성 정부 농업청이 음마하로 노동자들을 이주시키는 천민정책을 펴기 시작했다.해방 이후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음마하로 보냈던 것이다.당시 길림성 노동청장 서원천은 천민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선족은 1949년 3월1일 우선 44가구가 음마하로 들어왔다.이영조와 임춘국 등 다섯 사람이 주동이 되어 기반가의 조선족 144가구 가운데 우선 44가구가 들어온데 이어 반석현의 조선족 16가구가 뒤따라 와서 자리를 잡았다.모두 60가구가 들어왔기 때문에 이른바 「음마하 60호」라는 조선족마을이 생겼다.오늘의 홍광촌 뿌리는 바로 「음마하 60호」인 것이다. ○장춘시는 부여국의고토 1954년에는 부평초마냥 도처를 유랑하던 조선족 20가구가 음마하로 들어와 합세했다.이들 20가구는 역사의 비극이기도 한 만보산사건의 희생자들이었다.1931년 관개용수로를 두고 조선족과 한족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은 물싸움으로 시작되었다.처음부터 일제침략자들이 조종한 만보산사건은 한반도로까지 번져 당시 조선에 살던 화교들까지 박해를 받았다.이 사건은 8·18사변으로도 불리는 만주사변의 서막이기도 했다. 만보산사건의 피해자는 물론 한족들이었다.일본은 조선인을 대륙침략에 이용하기 위해 조선족을 보호하는 체 술수를 썼다.이 때문에 조선족은 해방이 되면서 만보산촌에 살기가 어려웠다.그런 판국에 1947년 2월 만보산사건에 관련된 한족 학영덕과 조선족 변상인 등이 장춘지방법원 법정에 섰다.이 사건은 이듬해 11월4일 원동국제군사법정으로 올라갔다.그런데 공산당군이 장춘에 주둔한 군민당군을 포위공격했다.이 무렵 조선족은 모두 만보산촌을 떠나고 말았다. 만보산촌은 장춘시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졌다.오늘의 장춘시 덕해현 삼승향 황가촌육사에 해당한다.벽돌기와집과 토벽돌기와집이 반반씩 들어선 서쪽 넓은 들판으로 이통하가 흘렀다.이통하 둑 안으로는 옥수수와 콩이 자라고 있었다.문제가 되었던 그 물길가 둑에 만보산사건 옛터 「만보산사건구지」라는 시멘트 팻말이 서있다.마을에는 65가구 353명의 한족이 살고있는데,만보산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마만림(80)이라는 노인 한분뿐이었다. 『나는 당시 사건을 보고 겪은 사람입니다』그때에 광휘,삼성포,변계둔,시간유방은 조선족 마을이었습니다.70여호 500여명의 조선족이 살았지요.조선족은 논농사를 짓고 우리는 밭농사를 하면서 살았어요.해방이 날때까지 조선족은 숫자도 늘고,논도 불어났습니다.그러다 해방 이후 모두 빠져나가 지금은 조선족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든 음마하진 홍광촌은 기반가와 반석현의 조선족,유랑하던 조선족 등 세 그룹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이주 초기에는 집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었다.그러니 씨앗은 물론 부릴 마소가 있을리 만무했다.이웃 마을의 한족은 조선족의 딱한 사정을보고 방앗간이나 가축 외양간을 고쳐 와서 살도록 배려했다.길림정부에서도 당시 동북화폐로 5억원을 마을에 대부해 주었다. 그 돈으로 집을 짓고 논을 개간했다.뭉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신념으로 처음부터 두레농사를 지었다.말하자면 집체소유였는데,중국 정부가 구소련의 집체농장제도 콜호스를 공식 수용하기 3년전의 일이었다.그래서 1953년 성정부는 홍광촌 농업기반을 주축으로 음마하 전체를 집체농장으로 묶어 비준했다. ○만보산사건후 20가구 이주 이와 더불어 부근의 한족촌 32개를 음마하집체농장에 귀속시켰다. 음마하집체농장은 논농사 전담 수전대와 밭농사 전담 한전대로 구분한 22개 생산대를 두었다.한족은 논농사를 지을줄 몰라서 조선족 4∼5명씩을 보내어 기술지도에 나섰다.당시 음마하집체농장은 길림성 3대농장의 하나였다.그래서 1957년 2월22일 노동모범대표대회에 나가 모택동,주은래,유소기,등소평의 접견을 받기도 했다.그해에 불가리아 주석이 다녀갔고 소련에서는 이름있는 명마 「돈강의 말」 2필을 농장에 보내왔다. 이제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했다.농업뿐이 아니라 산업체에서도 두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중국에서 첫 손을 꼽는 장춘자동차공장의 경우 수만명 일꾼 가운데 1천명 이상이 조선족이다.퇴직한 노동자와 간부도 300여명이나 되어 공장에서 20만원을 들여 이들을 위한 조선족 노인회관을 지어주었다.
  • “통일만이 살길”… 주민들 통일지상주의(북한은 지금…:7)

    ◎“방법은 고려연방제로”…철저히 사상무장/“보안법 철폐·주한미군철수” 억지 되풀이/“「남북연합」은 북 흡수통일하려는 불순한 의도” 비난 북한은 지금도 김일성시대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통일정책의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학자나 주민은 한결같이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적 입장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사업을 위해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용정시 개산둔진에서 만난 조선족 안모씨는 『북한주민은 만날 때마다 남조선의 「남북연합」 통일방안이 우세한 경제력으로 북조선을 흡수통일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난하며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북한전문가는 북한당국의 최종목표가 적화통일에 있지만,겉으로는 지난 60년대부터 연방제통일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통일정책의 기조로 삼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고 관측한다.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함택영 교수는 『지난 60년 김일성의 8·15경축사에서 처음으로 제의한 연방제통일방안은 73년 「고려연방제」,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등으로 조금씩 변용,수정돼왔다』고 분석한다.『지난 91년 신년사에서 또다시 수정제의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핵심은 정치·외교·군사문제를 총괄하는 연방상설회의를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에 지역정부를 두는 「1민족­1국­2체제­2정부」를 구성,남한의 흡수통일을 막아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북한전문가는 그러나 연방제통일방안이 자가당착이라고 진단한다.북한이 고려연방제 통일을 위해 제시한 선결조건과 구성원칙이 서로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선결조건은 인민민주정권으로의 정권교체와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철폐,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 및 주한미군철수 등이다.남한에 용공정권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구성원칙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원칙에 따라 「남북한의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는 기초」 위에 남북이동등하게 참가,통일정부를 구성하고 그 밑에 남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는 지역자치를 실시하는 것이다.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구성원칙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고 정작 중요한 선결조건에서는 용공정권으로 바꾸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은 대남정책의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북한전문가는 보고 있다.남조선혁명을 위해 통일전선을 구축하려는 대남위장평화공세라는 것이다.연길에서 만난 북한전문가는 『연방제통일방안은 주로 남한의 정치정세가 혼미하던 때 제의됐음을 상기할 때 고도의 심리전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은 남한보다 유리할 때는 공세적인 통일방안을,불리할 때는 수세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는등 강온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아직도 남조선혁명론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주민은 통일에 대해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은 탓인지 고려연방제 통일만 되풀이했다.북한당국이 미국과의 평화협상체결을 통해 김정일체제의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반면,그 속내를 모르는 북한주민은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중국 화룡시 노과향에서 만난 북한군 초병은 『통일이 되지 않고는 잘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남조선인민의 통일열기가 식어가는 게 안타깝다』고 연길에서 만난 북한접대원도 덧붙인다. 북한의 통일정책은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같다.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김일성 생전의 소원인 적화통일의 혁명위업을 완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뤄져,김일성의 통일정책이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사회가 일련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이념논쟁·한총련사태 등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북한당국에 자신들의 통일론에 대한 동조세력이 있는 것으로 오판하게 하고 있다.〈연길(중국)=김규환·최병규 특파원〉 ◎참여교수 시각/북한의 통일정책/최완규 경남대 교수·북한정치/정교한 통일논리 개발/체제유지 정당화 북한은 분단이후 오랫동안 남한보다 통일의 당위론을 강조해오면서 통일을 국내 정치게임에 이용해왔다.사실상 그들은 통일의 당위성을 생존과 결부시켰다.따라서 실현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통일을 고집할 수밖에 없고 분단현실을 인정하는 것 차제를 금기시했다. 북한에서 통일은 체제의 정통성 확보와 인민의 동원 및 일체감 조성,경제적 궁핍을 감내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기제로 작용해왔다.북한을 방문한 많은 사람에 따르면 북한의 관료나 학자는 물론 일반인도 입만 열면 민족·양심·주체·통일·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을 강조한다는 것이다.이것은 일종의 통일의 당위론을 위한 양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지배집단은 통일을 체제의 존재근거로 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교한 통일논리를 개발해왔다.그 핵심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투쟁론」과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이다.그들은 이같은 통일논리를 바탕으로 정권수립이후 지금까지 통일협상회의,외세배격과 주한미군철수,남조선혁명역량강화,연방제 등의 통일방안과 대남제의를 계속해왔다. 북한의 입장은 김일성 사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김정일이 권력을 승계받을 수 있었던 정당성의 원천은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데 있다.따라서 대내외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김정일은 당분간 공식적으로는 김일성의 통일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경제적 어려움과 불리한 국제정세에도 기존의 통일논리와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남인식과 관련이 있다.북한은 남한내에 혁명주의적 요소가 잠재해 있고 그들의 통일논리에 동조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대남인식변화를 유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남한에서 모범적인 민주복지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남한내의 혁명주의적인 요소는 자연히 없어지고 북한의 통일논리와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이산가족 찾기 활동 조선족/북한,간첩혐의 두달간 억류

    북한이 지난 7월 남한의 이산가족찾기 민간단체와 연계해 북한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김모씨(중국 단동시 거주)를 간첩혐의로 체포했다가 두달만에 중국 공안당국에 인계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한겨레상봉회」(회장 김학준)가 8일 밝힌데 따르면 이 단체가 위임한 편지 30여통과 미화 수백달러를 북한의 이산가족에 전달하기 위해 지난 7월9일 입북했던 김모씨가 같은 달 28일 신의주에서 북한 사회안전부원에게 체포된뒤 「남한의 첩자」라는 자술서를 쓰고서야 지난달 23일 중국당국에 인계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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