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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 숭배 오로촌·에벤키족(흑룡강 7천리:3)

    ◎모든 신상에 태양 그려 정성숭배/“황구가 해 삼켜 개기일식” 우리설화와 흡사 흑룡강성 막하현 막하향 북극촌에는 1988년에 세운 중국과학원 지구물리연구소 산하의 막하지자대가 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밀밭 한 가운데 자리한 막하지자대에는 태양 에너지 전지판으로 작동하는 지자감측기가 설치되었다.2층 건물아래 지하에 설치한 지자감측기는 지구 자기마당(자장)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기록하는 기능을 지녔다.이 기록은 유도탄이나 인공위성 발사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개기일식 ‘장관’ 그런데 올해 천체관측을 하는 바람에 막하지자대는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지난 3월9일 개기일식을 바로 이 지자대에서 관측했던 것이다.그리고 중국국영 텔레비전인 CCTV ‘막하의 천상기관’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생중계하여 1억2천만명이 동시에 시청했다.여간해서 만나기 어려운 우주쇼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중국은 물론 한국,미국,일본,독일,이탈리아 등지의 천문학자들이 막하로 몰려들었다. 올해 개기일식은 20세기에 나타난 6차례 개기일식중 마지막 일전식이라서 관심이 대단했다.더구나 막하지역은 개기일식을 가장 잘 볼수 있는 최적의 관측지라는 소문이 나 막하는 관광특수까지 누렸던 것이다.이에 따라 하얼빈철도 국제여행사는 관광객을 위해 3편의 전세열차를 운영했다.막하지자대가 위치한 북극촌은 일반인 통제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한 막하시는 시내에 임시관측소까지 세울 정도였다. 그 기개일식은 3월9일 상오8시44분 러시아 비스크 남쪽과 중국 신강성 일타이 북쪽에서 시작되었다.그리고 몽골을 지나 상오 9시8분 막하 상공에 들어선 개기일식은 동시베리아를 거쳐 북빙양에서 끝났다.300∼400㎞에 걸친 일식띠가 지나는 지역은 대부분 산이 아니면 황막한 들판이나 사막이었다.그래서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을 어느정도 갖춘 막하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개기일식은 중국 CCTV가 막하현 북극촌에서 생방송으로 내보냈다.해가 몽땅 자취를 감추어 북극촌 일대에 어둠이 깔린 시간은 정확히 상오9시7분40초대였다.그 순간이 지나자 태양 왼쪽 변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몇개의 점이 나타났다.빛나는 보석을 방불케 한 이들 점은 천문학에서 말하는 벨리구슬이다.몇초가 지나자 벨리구슬이 사라지고 달 그림자에 가린 태양에서 빛안개가 쏟아졌다. ○국영 CCTV서 생중계 중국의 TV와 신문들은 개기일식이 오기 1개월전부터 보도에 열을 올렸다.이는 계몽차원의 보도였는데,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그만큼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 것이다.흑룡강유역의 원주민의 하나인 오로촌족(Orochon·악륜춘족)은 이번 개기일식때도 한 차례 소동을 벌였다.이들은 예부터 일식은 누렁개 황구가 해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태양을 숭배하는 오로촌족은 대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흑룡강성 치치할시 민족사범학교 교원이자 오로촌족인 황대영씨(39)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민족에게 태양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그래서 신상에는 모두 태양을 그려 넣었습니다.두 사람이 싸움을 하다가도 해를 향해 시시비비를 가려달라 할 정도니까요….지난 3월9일 일식이 있던 날에는 머리에 소래기를 뒤집어 쓰고나수로 두들기고 다녔습니다.태양신을 더럽히지 말고 어서 해를 토하라는 뜻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태양숭배는 에벤키족(Evenki·악온극족)도 마찬가지다.태양이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설화를 지닌 에벤키족 노인들은 지금도 시간을 태양과 별에 의존하고 있다.날이 밝는 시점부터 새벽,아침,점심,저녁으로 낮을 네 등분하는 관습을 지켰다.또 밤은 삼성이 나타날 때를 기준으로 초저녁,밤중,새벽으로 구분했다.동·서·남·북의 방위 역시 해를 따라 결정한 에벤키족들은 해가 머문 방향을 보고 사냥감을 찾았다.해가 정남에 있을 때는 노루를,해가 솟을 무렵에는 말사슴을 잡는 시간으로 여겼다. 달을 기억하는 방법은 달이 졌다가 조각달로 나타나 다시 만월로 커지는 달모양에 두었다.우리 민족처럼 월력을 따른 이들은 지금도 월력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흑룡강유역의 사람들에게서 우리 민족과 흡사한 심성을 읽었다.조선족 역시 일식은 개가 해를 삼킨다는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혜성을 재성으로 보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월력문화권의 전통도 다 버리지는 않았다.그러고 보면 오로촌족과 에벤키족은 우리 민족이 차츰 잃어가는 상고의 심성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다.
  • 연변 떠도는 북한탈출 ‘난민’(김정일의 북한:7)

    ◎탈북자 2천여명 추정… ‘한국행 밀항 꿈’/배고픔에 강도짓… 여성은 식당일·매춘도/북한서 파견 체포조·조교감시 피해 은신 중국땅을 밟은 탈북자들의 생활은 참으로 고달프다.목숨을 걸고 ‘먹을 거리가 많은’중국으로 건너왔지만,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은 없고 차가운 감시의 눈초리만 기다리고 있다.생존을 위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북한 특무(탈북 체포조)나 조교(북한국적의 조선족),중국 공안원의 감시 눈초리를 피해 다니느라 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개산둔에서 만난 조선족 박모씨(28)는 “중국으로 건너온 탈북자들이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편안하고 안전한 일자리와 잠자리를 구하는 일”이라며 “여름철에는 공원이나 역대합실 등에서 노숙이라도 할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날씨가 추워 이마저도 어렵다”고 말한다. ○역대합실 등서 노숙 현재 중국땅을 전전하는 탈북자들은 적게는 500∼600명선,많게는 2천명선으로 추정된다.탈북자들은 한국과 가까운 중국 대련 등에서 한국행 밀항을 시도하거나,‘북한의 감시권’인 연변을 떠나 중국내륙의 농촌이나 북경·심양 등 대도시에서 날품팔이를 하며 한국에 갈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밀항도,날품팔이 자리도 구하지 못한 탈북자들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 강도짓을 한다고 한다.낮에 산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마을로 내려와 양식을 털어가는 ‘탈북자 산적’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장백에서 만난 조선족 한모씨(56)는 “탈북자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쌀과 옥수수를 훔쳐간 것이 올들어서만도 10여차례나 된다”며 “중국 공안당국이 몇차례 토벌작전을 벌였으나 번번이 허탕쳤다”고 전한다. ○쌀·옥수수 등 식량 훔쳐 탈북여성들은 식당 및 유흥가로 숨어들어가거나 중국 총각들과 결혼해 은신하고 있다.북한과 가까운 중국 동북3성에서는 식당 보조일을 하거나 가라오케 등에서 ‘술시중’을 드는 탈북여성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심양에서 만난 탈북자 강모씨(25·여)는 “지난 95년 탈북한 뒤 북경·대련의 술집·가라오케 등 7∼8곳을 거쳐 심양까지 오게 됐다”며 “배불리 먹을수 있어괜찮은 편이지만 쫓기고 있는 몸이어서 3∼4개월마다 일자리를 옮긴다”고 말한다. ○농촌총각과 결혼도 탈북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중국의 총각들과 결혼하는 탈북처녀들도 늘어나고 있다.급속한 경제개발 붐을 타고 있는 중국 농촌 역시 처녀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가 버리고 조선족 처녀들도 한국 농촌총각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처녀들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단동에서 만난 조선족 류모씨(42·여)는 “중국 농촌총각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먹도록 돌봐주면 되고,탈북여성들은 배불리 먹을수 있는 데다 은신하기도 편해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며 “하지만 조교들의 신고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북한에 송환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탈북여성들은 ‘최후의 무기’인 몸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쉽게 돈을 벌수 있다’는 조선족 사기꾼들의 유혹에 넘어가 절망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연길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26)는 “연길 시내에만도 ‘탈북처녀 매춘조직’이 2∼3개나 된다”며 “100∼200원(약 1만∼2만원)만 주면 하루밤을 같이 지낸다”고 귀띔한다. 탈북자들이 중국 땅에서 겪는 또다른 어려움은 북한 특무와 조교,중국 공안원들의 감시 눈초리를 피하는 일이다.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중국 전역에 깔려 있는 조교.5천5백명으로 추정되는 조교는 북한 영사관이 있는 중국 심양 총본부를 중심으로 정보망이 거미줄처럼 짜여져 있다.일반 조선족과 구별할 수 없어 자칫 말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곧바로 붙잡혀 북한에 송환된다.임강에서 만난 탈북자 이모씨(36)는 “언제,어디서 잡힐지 몰라 한곳에 정착할 수 없다”며 “연변에서는 도와주는 조선족이 많은 대신 조교들도 많은 탓에 조교들이 적고 안전한 내몽고 등 중국 내륙지방으로 떠나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털어놓는다.그는 ‘고달픈 이국생활이지만 북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처벌도 처벌이지만,배고픔만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의 탈북미수자 수용소/오지 계곡 막아 토굴형태…도마다 5∼6곳씩/1명씩 격리수용… 하루 강냉이죽 한끼로 연명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북한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주민들의 국경탈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북한 주민들의 공포심을 불러 일으켜 탈북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탈북자 수용소.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체포한 탈북자들을 넘겨받아 수용하는 이 탈북자 수용소는 산간오지의 산골짜기를 막아 반토굴 형태로 만들어졌다.수용소의 관리는 도·시 보위부가 맡고 있다. 탈북자 수용소는 1명씩 격리 수용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수용소 내부는 한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크기로 돼 있다.식사 등을 집어넣을 작은 문 외에는 창문 등의 일체 다른 시설물이 없다.있으나마나한 전등도 자살을 우려,접근이 어렵도록 벽속에 넣어두고 있다.잠을 잘때 담요는 가슴까지만 덮고 반듯하게 누워서 자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살할 의도가 있다고 보고 처벌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용된 탈북자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식사는 강냉이등을 섞은 죽이 전부다.그나마도 하루에 한끼 먹기가 쉽지 않으며,용변도 하루 한번씩 5∼10분만 허용되고 있을 정도다. 탈북자 수용소는 현재 1개도에 5∼6개씩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함경북도 금덕,원산시 덕원,양강도 혜산·백암,강원도 용담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특히 원산시 덕원에는 일반 정치범을 포함해 4천∼5천명이 수용돼 있으며,평안남도 중산 수용소는 여성들만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길에서 만난 탈북자 이모씨(27)는 “탈북했다가 잡히면 종신형을 선고받고 정치범으로 분류돼 수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가족들의 면회는 꿈도 못꾼다”고 말한다. “탈북자 수용소에는 탈북자 이외에도 간첩혐의자·정치범 등도 같이 수용돼 있다”며 “탈북자 수용소에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고 그는 덧붙인다.
  • 조선족 어린이에 민족긍지 심기 8년/화랑청소년연 이사장 권윤홍옹

    ◎한­중 수교 5주년 남다른 감회/열악한 교육여건 보고 헌신적 지원/건물 보수·책­걸상 교체·컴퓨터 전달/‘중국 손자·손녀’ 감사편지에 큰보람 “설봉 할아버지,언제 또 오시나요.다음에 오시면 제가 아리랑을 불러드릴께요” 경남 마산의 교육봉사단체인 화랑청소년연합회 이사장 권윤홍씨(76)는 중국의 ‘손자·손녀’들로부터 날아오는 감사의 편지를 읽으면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설봉은 권씨의 호. 중국 조선족의 교육현장을 뛰어다닌지 만8년.‘어머니의 땅’을 그들이 느끼도록 하는데 작은 보탬이 됐다고 믿기에 한·중 수교 5주년을 맞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중국 길림·흑룡강·요녕성 등 ‘동북 3성’에 연간 7∼8차례씩 선물꾸러미를 안고 가 어린이들을 찾아다녔다.그 거리만도 지구 둘레의 3분의 2인 2만5천㎞에 이른다. 그의 교육사업은 올해로 23년째.와당문에 정통한 동양화가로 중·고교에서 미술과 윤리를 가르치다 75년 화랑청소년연합회를 설립,중·고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사회사업을시작했다. 권씨가 중국내 조선족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68살인 89년부터였다. 권씨 본인이 어릴 적에 연변에서 살은데다 사학자였던 선친의 영향으로 중국 고전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는 그였지만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그해 가을 흑룡강성 기풍소학교의 한 교사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의령에 왔다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 그를 병원에 데려가 정성껏 치료해준 인연으로 그해 말 권씨는 기풍소학교를 방문했다.하지만 열악한 교육현실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낡은 교실,턱없이 부족한 책·걸상을 보고 배움에 대한 동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재를 턴 권씨의 도움으로 기풍소학교는 번듯한 새 건물을 가질수 있게 됐다.또 하얼빈의 조선족 제2중학에는 32대의 컴퓨터와 수백개의 책·걸상이 놓여졌고 흑룡강성 조선어 방송국을 통해 매년 어린이 작문대회가 열렸다. 동북 3성의 대부분 조선인 학교에는 민족의 뿌리와 긍지를 찾을수 있도록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급했다. 이렇게 해서 혜택을 받은 학생이 1만여명.하지만 한때 박물관을 차릴 정도였던 그의 그림·서예작품·골동품 등은 자금을 마련하느라 이제 바닥이 나 버렸다.지금은 그림을 그려 팔거나 각종 강연을 통해 비용을 충당한다. 그는 “중국의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한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줘 훌륭한 인재로 자랄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국 속에 한국을 심는 주춧돌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1만3천여명 중국 배우기/한국유학생 실태

    ◎북경학원로 상가는 사랑방 역할 북경 서북쪽 해정구의 학원로.북경어언문화대학(어언학원),북경대,청화대,화공대,지질대 등 중국의 주요대학이 반경10㎞내에 집결해 있는 대학가촌이다. 넓다란 도로엔 20대초반의 남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흥겹게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이들 가운데 적잖은 수는 한국학생들이고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주중대사관이 집계하고 있는 유학생만도 8천5백여명.단기 언어연수 4천4백여명,박사과정 3백명,석사5백명 등,일본유학생을 밀어내고 중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낸 나라가 됐다. 학원로 주위의 ‘우따오코우’(오도구)로 불리는 지역은 한국학생들을 위한 식당,카페,노래방 등으로 한국유학생의 거리가 됐다.5백여곳의 점포의 대부분이 한국학생들을 주고객으로 한다.간판도 한국어로 돼 있다.발랄한 학생들이 몰리다 보니 북경시내에 찌든 상사원이나 대사관 직원 등 기성세대까지 원정으로 합세,갈수록 물이 오르고 있다.먹는 장사뿐 아니라 안경점,편의점,비디오방,복덕방,미용실 등도 70여곳이나 된다. 식당에 들어가면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제작하는 소식지를 얻어볼수 있고 학생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카페에 들어서면 이곳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수입 포도주 한병에 5만∼7만원을 받기도 하니 가격이 헐한 편도 아니다.밤이면 비디오방과 노래방은 늘 한국유학생들로 초만원이다. 이같은 유학생들의 급증은 한·중 교류의 심화와 쌓여가는 연륜을 상징한다.유학생중 절반가량은 북경지역에 몰려있고 길림성에 7백50여명,천진에 7백30여명등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그러나 유학생의 증가는 부작용과 부정적인 측면도 따라 온다.북경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유학생들은 성실하지 못하다는 정평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외문출판사에 근무하는 조선족 김광렬씨는 “한국유학생들은 중국사람들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지 못하다”며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술마시고 노는데 정신팔려 있는 학생들이 적잖다고 꼬집는다.그러나 북경대의 양통방한국학연구센터 주임은 “유학생문제를 한·중 교류 확대과정에 거쳐야할 하나의 과정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한국유학생 사회도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북경의 학원로와 오도구는 한·중 수교의 연륜이 싸여감에 따라 그 규모도 커가고 화려해질 것이고,한국유학생들도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 국호도 모르는 국회의원(사설)

    국민회의 소속 이석현 의원(안양 동안을)이 해외에서 자신을 ‘남조선’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한 명함을 돌렸다고 한다.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망발이다.우리 국호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국회의원이 모를 리가 없었을테니 비록 괄호안에 표시했다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한 불순행위라고 규탄하지 않을수 없다. ‘남조선’은 북한에서 우리쪽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북한은 자신을 ‘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어 ‘남조선’이라는 용어에는 ‘조선의 일부’라는 개념이 들어있다.북한이외의 지역에서 ‘남조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려족’이나 ‘조선족’ 말고는 반한·친북인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색깔있는 용어를 국회의원 명함에 보란듯이 박고 다녔다면 일단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그의 사상이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친북성향을 내보이려는 속셈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의원이 명함을 돌린 장소가 미국 LA교민의 북한관련 책자 출판기념회였다는 사실도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의원의 해명에 따르면 문제의 ‘남조선’ 표기는 중국인을 위해 삽입된 것이라고 한다.중국이 우리와 수교하기 이전인 90년 북경아시안게임 때부터 이미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호칭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이런 변화를 유독 이의원만 몰랐단 말인가. 이의원은 또 이 명함이 한자 일어 영자 러시아어 아랍어 등으로 표기된 점을 들어 국제화시대에 맞춰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세계화시대 국제화시대일수록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국가의 존엄성을 훼손한데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마땅하다.국회와 국민회의도 이 사건을 해프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엄정하게 조치해야 한다.유권자들 역시 오래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 “한·중 전방위 협력시대 진입”/정종욱 주중대사 수교5돌 진단

    ◎정상회담 6차례… 관계 비약 발전/통신·에너지분야 진출 전망 밝아 “한국과 중국은 경제,정치,사회,문화는 물론 군사분야까지 전 방위에 걸쳐 전면적인 동반자 관계에 들어섰습니다”. 오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 5주년을 맞는다.정종욱 중국주재 대사는20일 “무역량과 인적교류의 양적 확대는 물론 6차례의 국가원수간 정상회담,22개에 이르는 두나라 정부 부처 간의 정기적인 대화채널 확보 등 급속한 관계발전은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중 수교 5년을 평가했다. 정대사는 우리 기업의 활동도 중소기업 중심에서 대기업 중심,고부가가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고 지역적으로도 산동성 등에서 21세기 중국경제의 새로운 발전축인 상해 및 배후지인 강소·절강성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중 양국경제의 협력방향은. ▲원자력 분야를 비롯,석유화학 등 에너지 분야,정보통신 등 21세기형 산업쪽에 적극적인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정보통신과 에너지분야는 한·중 산업을 이끌 축이 될 것이다.자동차,정보통신 분야는 이미 선진국들이 선점하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분야다. ­올해초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은 한·중 관계에 어려움을 주진 않았나. ▲‘황사건’이 원만하게 끝날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이 문제로 두나라 관계가 한층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한다.(한반도문제에 대해)한중 양국간 공동인식을 넓혀 나갈수 있었다.다만 안승운 목사 납치사건,심양 총영사관 개설 등과 관련,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이는 한·중 관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대처해 나갈 것이다. ­4자회담과 관련,협조는 잘되고 있는가. ▲긴밀한 협의를 진행중이다.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란 점에서나 4자회담의 근본취지와 목적 등에 관해서 두나라의 입장은 접근해 있다.이점은 한·중이 안보·정치면에서 결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중국은 한반도가 안보상 가장 취약한 지대라고 판단하는듯 하다.한반도문제에 구체적인 접근방법이나 입장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인식의 틀은 같다.이 점에서 한·중은 한반도 문제와관련,실용주의적인 협력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안보분야의 협력을 평가한다면. ▲경제에 비해 느리지만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올 하반기로 예정된 우리나라 국방차관의 방중이나 98년으로 추진중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의 방중도 같은 맥락이다.인적교류에 한계는 있지만 전략적 사고가 같기 때문에 진척될 것이다. 정대사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때문에 한·중 군사협력의 진전에도 불구,북한·중국관계의 특수성은 상당기간동안 지속될 것이란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조선족 문제에 대해선 “조선족 사기문제 등은 한·중관계에 큰 부담을 주었다”면서 “조선족이 중국인으로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현안 떠오른 탈북자문제(김정일의 북한:6)

    ◎탈북사태 남북문제 넘어 국제쟁점으로/2년새 탈출 급증… 식량난 심각성 반증/대량 난민발생 가능성에 중·서방 주시/통일과 연계한 장기적 대책 마련 필요 90년대 들어 북한문제와 관련해 가장 중대한 쟁점의 하나로 대두한 것이 바로 탈북자 문제다.탈북자 문제는 한국 정부당국에 획기적인 정책수립을 요구하는 과제이자,한국 일반대중의 정서를 건드리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탈북자 문제는 한반도 두나라에 한정된 민족내부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차원도 있다.당장 탈북자들의 주요 경로가 되고 있는 중국에 정책적 현안이 되는 문제이며,탈북자들의 수용,인권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서방국가들과 민간단체들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기도 하다. ○경제사정이 탈출 동기 70년대와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귀순한 사람들은 그 동기와 원인이 주로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다.즉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북한체제가 밀어내는 요인으로,한국의 자유가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그때만 하더라도 탈북자의문제가 그 수나 남한사회내 미치는 파장이라는 측면에서 미미했기 때문에 그렇게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북한의 경제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탈북의 동기가 변했다.정치적인 동기로 탈북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궁핍을 못이겨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특히 근년에는 익히 알려진바 대로 식량난이 탈북의 주원인이 됐다.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땅을 떠나야 하는 것이 오늘날 탈북의 주된 양상이 된 것이다. 탈북자 문제가 중대한 사안인 것은 그 숫자가 전에 비교할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중국 접경지역에서 조사한 바로는 지난 2년사이에 배고파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지금과 같은 감시체제 아래서 북한을 탈출,중국까지 올수 있는 사람들은 선택된 소수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미 평양의 권력 심장부까지 파급되고 있다는 식량난은 사실 북한체제를 동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향후 대량 탈북자 발생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식량난은 구조적 문제 농업의 피폐,예견되는 자연재해,김정일체제의 무능력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의 식량난은 당분간 지속되거나 한층 악화될 것이 명백하다.북한의 식량난은 이미 구조적인 성격을 갖춰 버린듯 하다.이런 구조적 문제는 인위적인 노력이 아무리 진지하더라도 해결하기가 무척 어렵다.북한의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탈북자는 발생할 것이고,향후 식량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한다면 탈북자 문제도 한층 막대한 과제로 우리들에게 해결을 요청할 것임에 틀림없다. 현재 탈북자들은 일종의 난민으로 볼수 있다.극소수만 남한으로 들어오고 대다수는 중국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거나 접경지역에서 몇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이런 악순환을 그리면서 탈북자 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해야할 중대한 과제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우선 탈북자 문제는 식량난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따라서 두가지 문제를 분리해 다뤄서는 안된다.식량난이 극도로 악화돼 대규모 탈북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로서,현재 우리로서는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다. ○중·국제기구는 방관자 그래서 식량난의 악화를 막는 정책을 현명하게 구사하는 것이 대량 탈북에 의해 초래될 일대 혼란을 막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앞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지금 북한의 여러 여건들을 감안할 때,식량난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내키지 않더라도 우리가 적극 개입하는 수밖에 달리 묘책이 없다. 둘째 탈북자 문제를 중국이나 국제기구에 맡기는 안이한 사고를 해서도 안된다.중국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 단호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북한과 접하고 있는 중국 길림성의 경우,탈북자는 일단 보호한 뒤 북한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정책을 중국내 조선족에게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중국은 이 골치아픈 문제를 떠맡지 않겠다는 것이다.다른 국가나 국제기구도 제한적인 역할밖에 담당할 수 없다.탈북자 문제를 결국 우리의 문제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탈북자 문제는 우리의 궁극적인 과제인 통일과도 무관하지 않다.우리 정부 통일정책의 근본은 평화통일이다.이 정책에는 아마도 변함이 없을 것이며,또 변해서도 안된다.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할 때 “땅의 통일”에 주된 관심을 두는듯 하다.하지만 진정한 통일은 “땅의 통일”과 더불어 “사람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의 통일’ 이뤄야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의 통일”이 매우 어렵다.전쟁이나 분쟁을 통해 통일한 베트남과 예맨의 사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평화적 통합을 이뤘다는 독일의 경우에도 극심한 “사람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사람의 통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며,“사람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사회적 통합이 깨지게 마련이고 사실적 통합이 결여된 상태에서 건전하고 역동적인 국가가 생길수 없다. 지금 우리가 부러워하고 있는 통일국가들은 비록 “땅의 통일”에는 성공했지만 한결같이 “사람의 분단”때문에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그런 사회문제들은 높은 사회적 비용을 요구해해당 국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이다.우리의 경우 탈북자 문제를 미봉책으로 해결하고자 하지 말고 통일과 연관지워 생각하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죄는 평양의 세습권력과 국가를 망친 엘리트들에게 있지,초근목피로도 생명부지가 힘들어 사활을 걸고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 중국서 접촉인사 조사

    지난 15일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오익제씨(전 천도교 교령)는 요령성 심양이나 천진 등에서 국제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일 주중대사관 관계자 등은 오씨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온뒤 북한측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북경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기차를 타고 입북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확인작업중이라고 밝혔다.또 이 과정에서 중국내 친북 조선족 인사들과의 접촉과 북한 관계자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추적중이다.
  • 통일 한국과 세계/로버트 오닐 영 옥스퍼드대 교수(지구촌 칼럼)

    ◎미·중·일과 새 공존의 틀 모색 필요 최근 한국에 머물렀을때 한국사람들이 남북통일이라는 당면과제에 대해 철저한 목적의식과 헌신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감명을 받았다.모든 사람들이 통일에 대한 부담 비용이 클 것이란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고 오래 동안 이를 짊어질 각오도 돼 있는 것같았다.따라서 지금이 통일된 한국이 세계의 다른국가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본다. 통일한국에는 새로운 가능성들과 기회들이 주어질 것이다.우선 통일이 되면 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대치 상태로 인해 불필요하게 낭비됐던 수많은 인적 및 물적 자원을 보다 생산적인데로 돌릴수 있게 된다.이는 가공할 만한 수준으로 외부세계로 분출될 것이며 한국국민들에게는 새로운 민족적 동질성과 성취욕으로 충만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갈수록 확대 재생산이 되리라고 믿는다.지금의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새 안보협약 불가피 그러나 새 잠재력의 분출은 새로운 도전을 부르기 마련이다.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부터 그렇다.지금보다는 훨씬 독자적이고 강력한 국가로서의 위치와 역할을 갖겠지만 쉬운 일 만은 아니다.미국과도 새로운 형태의 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북한에 대한 한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의 방위가 필요했던 시대는 지나간 만큼 미국에 있어서도 과거의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미국은 종전처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긴급한 정책을 추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더이상 한국 안보가 미국 국가안보위원회와 국무성및 국방성에게 최우선의 책임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정부에 보다 중요한 국가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민간차원의 접촉을 활성화하고 성숙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수준높은 차원에서 무역과 경제관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물론 오래동안 이어져왔던 미국의 지도자들이나 그들의 참모들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워싱턴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는지,그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계속 알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양국관계는 매우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우선 공동의 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양국간의 목적도 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과 밀접한 공동안보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1950년 이후 지속돼온 한·미 혈맹관계나 중국·러시아와 안보관계를 구축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일본과의 안보관계가 이미 양국의 국가이익과 국내정책이 허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준에 달해 한국이 보다 절실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미국은 한국에 대해 보다 공고한 안보협력과 합동훈련 그리고 안보시설 설치 등을 포함한 새로운 차원의 안보협약체결에 관심을 기울일게 확실하다.그러나 새로운 한미 관계는 양국 국내정책간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상충 희석을 북한이 붕괴된 이후 중국과의 관계 또한 새로운 과제다.중국은 자국과의 국경에 한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데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중국에 사는 조선족들,특히 만주의 조선족들의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 양국간에 문제가 될 것이다.한국기업들의 사업지역이나 그 성격도 거대한 땅의 균형발전을 원하는 중국정부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따라서 중국은 만주지역에 한국경제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들 것이다.특히 중국은 주변국가들이 좋게던 나쁘게던 상관없이 카운터파트가 되려하는 시도를 중국내부 문제와 연결시켜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어서 한국과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많다. 이는 정치적 상이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한국은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는 반면 중국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여론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계속 국가를 이끌어가려는 할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양국 관계는 주로 기업 학술교류 등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질 것 같다.한국은 중국과 긴장관계를 야기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중국정부는 그들의 국토 규모와 증가하는 국력을 고려,자신들이 우위에 선 입장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할 뿐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노련하고 경험많은 국가로 평가받고싶어할 것이 확실해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한중관계를 이끌어야 한다. ○경제분야 마찰 클듯 일본과의 관계는 동해를 사이에 둔 새로운 공존관계를 모색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고 본다.통일한국은 먼저 동북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구축하면서 1905년부터 1950년 사이에 일본이나 일본의 이름으로 행해진 만행에 대한 그들의 시인을 받아내는 한편 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게 되리라고 믿는다.일본은 과거의 만행을 끝없이 사죄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중국,러시아,미국처럼 일본도 한국이 동북아지역에서 지금보단 훨씬 강력하고도 중요한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특히 경제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설사 한국이 통일 후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해도 일본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이며 이로 인한 마찰의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통일을 향한 진행과정은 상당기간이 걸릴 전망이다.그러나 과거 독일에서의 사건들은 어느날 예고없이 통일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보여주고 있다.따라서 한국도 갑자기 외교정책의 새로운 틀이 필요한 시기가 올게 틀림없다.따라서 지금이 통일로 가는 대전환의 계획을 준비할 시점이라고 본다.이를 준비하는 것은 청와대와 외무부 국회뿐 아니라 대학에서 한국외교정책에 대해 여론을 주도하는 교수들,관련 연구기관과 언론 모두의 몫이다.이러한 전략적 계획의 수립은 한국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새로운 기회들과 과제는 한국에게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것들보다 흥미로운 임무다.
  • 줄잇는 탈북행렬(김정일의 북한:5)

    ◎굶주림에 ‘지상낙원’ 버리고 중으로/중 장백진은 탈북루트의 중간기착지/탈출처녀들 연길 유홍가서 매춘까지 “남편과 이혼한뒤 고향인 양강도 풍산을 떠나 회령·혜산 등 북한·중국 접경지역의 장마당에서 남새(채소)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했습니다.그러나 겨우 끼니를 때울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중국에서 온 조선족 장사꾼들로부터 중국이 잘산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그때 ‘이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북조선을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목숨을 걸고 탈북하게 됐습니다” 최근 북한 양강도 대홍단에서 5백리 길을 걸어 중국 길림성 장백진으로 탈북한 북한 주민 양모씨(34·여)가 털어놓는 말이다. ○접경지역 장마당 성행 장백진은 중국 연길에서 자동차로 백두산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10여시간 이상 달려가야 하는 산간 벽지.양강도 도청소재지 혜산시와 마주보고 있어 북한을 탈출할때 이용하는 탈북루트의 대표적인 중간 기착지중 하나이다.여름철에는 강물이 대부분 말라붙어 강폭이30∼40m 정도로 좁아지는 데다 겨울철에는 영하 20∼30도를 오르내려 강물이 얼어붙어,마음만 먹으면 탈북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은 곳이다. ○조선족 노총각에 팔아 올들어 식량난이 더욱 악화되면서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는 탈북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같다.굶주림을 더이상 견딜수 없어 중국으로 탈출해오는 북한 주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95년과 96년의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데다 올해에는 대가뭄까지 들어 식량사정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욱 악화될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양씨는 “날씨가 좋아도 비료가 없어 농사를 못지을 판인데 가뭄까지 겹치자 ‘죽더라도 중국으로 건너가 실컷 먹어보자’는 막다른 심정으로 탈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극심한 식량난은 북한 처녀들마저 탈북의 길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배고픔을 참지 못해 탈북한 북한 처녀들중 일부만 중국의 농장·공장 등에서 일거리를 찾지만 대부분은 중국의 한족 및 조선족 노총각들에게 팔리거나 가라오케 등 유흥가에 넘겨지고 있는 것이다.특히일부 탈북 처녀들은 ‘돈을 쉽게 벌수 있다’는 조선족 사기꾼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매춘까지 강요받고 있다.연길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7)는 “조선족들중 일부 사기꾼들은 한달에도 몇번씩 북한에 드나들면서 북한 처녀들을 사와 중국의 한족과 조선족 노총각들에게 팔거나 유흥가로 넘긴다”며 “탈북 처녀들의 매매가격이 올초만 해도 3천원(약 30만원) 정도였으나,지금은 5천∼1만원선으로 2배 가까이 올랐다”고 귀띔한다. ○군인도 뇌물받고 묵인 탈북자가 크게 늘어나자 당황한 북한당국은 경비초소 간격을 좁히는등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있는 것같다.숭선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3)는 “북한 당국이 올해부터 북·중 접경지대를 지키는 북한 국경경비대의 경비초소 간격을 50m로 좁히고 곳곳에 매복초소를 설치하는 등 국경경비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술·담배·과자 등을 주려고 북한땅으로 다가가면 몰래 숨어있던 국경경비 군인들이 나타나 잽싸게 빼앗아간다”고 전한다. ○절망의 공화국 전락 탈북을 방관하던 중국 정부도 올들어 탈북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엄벌하는 새로운 형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삼합에서 만난 중국인 임모씨(43)는 “중국정부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으로 소원해진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오는 10월부터 탈북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국경관리 방해죄’라는 새로운 법을 적용,엄벌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탈북자들을 막으려는 북한당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지상낙원’탈출하려는 굶주린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처절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배고픔에 지친 국경경비 군인들도 술·담배 등의 약간의 뇌물을 받고 탈북을 묵인해주고 있다.평양 지도자들이 선전해오던 ‘지상 낙원’ 북한은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마저 채워줄수 없는 ‘절망의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 꽃제비·희망새·멍멍이/북 사회 식량난 빚댄 은어 유행

    ◎꽃제비­먹을것 찾아 떠돌아 다니는 어린이/희망새­가족위해 양식 구하러 떠나는 여성/멍멍이­공장 가동안돼 집안에만 있는 가장 꽃제비·희망새·행복조·멍멍이….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은어들이다.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먹을 거리를 찾아 정처없이 유랑하는 삶의 몸부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같아 듣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꽃제비는 ‘소년 소매치기’를 지칭하는 은어.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유랑하는 어린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적게는 3∼5명,많게는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게 보통이다.그러나 배를 제대로 채울수 없는 꽃제비들은 장마당에서 한푼두푼 모으는 여인들의 좌판을 강탈하거나 국경해관 등에서 조선족 무역일꾼들의 트럭에 실린 약재·고철··밀가루 등을 훔치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단동에서 만난 조선족 무역일꾼 김모씨(48)는 “통행시간을 넘겨 중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북한 국경해관에서 잘때는 트럭에 실린 약재·고철 등을 훔쳐가져가지못하도록 밤새 지켜야 한다”며 “밤새 지키고 있어도 깜박 조는 틈을 이용해 물건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마을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교환하거나 상설화된 장마당에 참여하는 이른바 행복조는 쌀과 옥수수,물고기 등을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물건과 맞바꿔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2∼3명이 짝을 이뤄 장마당에서 조그마한 좌판을 벌여놓고 살 사람을 기다리는게 대부분.거래하는 물건은 쌀·옥수수,물고기 등으로 개인 경작하거나 잡은 것들이.중국 접경지대에서는 고철·구리 등 광석을 거래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희망새는 집안식구들을 위해 양식을 구하러 다니는 여성을 가리키는 은어.최근 북한 무산의 친적집을 다녀온 조선족 이모씨(42·여)는 “새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갈수 있기 때문에 북한사회에서는 자기가 가고 싶은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양식을 구하러 다니는 여성을 두고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공장·기업소가 가동되지 않은 탓에 집안에 있는 가장들을 일컬어 ‘멍멍이’라고 한다.북한의 여성들은 한톨의 쌀을 얻기 위해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지만 가장들은 대부분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 극광이 뜨는 북극촌(흑룡강 7천리:2)

    ◎중 최북단 북위55도 막하현엔 백야가…/짧은여름 긴겨울… 새벽3시면 해가 뜨고/조선족 250여명 거주 임업·광산업 종사 흑룡강 상류인 흑룡강성 막하현의 북쪽 끝은 중국대륙 전국토의 북단이기도 했다.신강성 북쪽 끝자락인 우의산보다 위도상으로 훨씬 더 북쪽에 있다.북위 55도 가까이 다가간 흑룡강성 막하현 막하향 북극촌이 바로 중국의 맨 북쪽 마을이다.말 그대로 중국 북쪽의 극지인 것이다.북극촌은 내몽골 어연구나하시 언연하다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북으로 굽어든 지점에 자리했다. 북극촌은 발원지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다.그러나 강을 따라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90㎞를 우회했다.오던 길을 되돌아 남쪽으로 나와 다른 가지길을 찾아 북쪽으로 올라갔다.얼마쯤을 달리다가 이내 초병의 제지를 받았다.북극촌 주민들 말고는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국경경비대 대대본부를 찾아 조선족 장교의 소개장을 보여주고 대대장을 면담한 끝에 겨우 통행이 허용되어 어렵사리 북극촌에 도착했다. 이 국경마을의 여름은 늦게 찾아 왔다가 총총히 사라진다.5월 하순에야 봄 기운이 돈다니 여름은 짧을수 밖에 없다.여름에는 밤이 있으나마나 해서 9시에 해가 떨어지고 새벽 3시면 해가 떠올랐다.밤이라야 새벽녘처럼 희끄무레할뿐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아니었다.이를 ‘막하의 백야’라 했다.이 지역에서는 극광인 오로라도 더러 볼 수 있다.오로라지대는 아니지만 그만큼 북극이 가까웠다. 그런 신비스러운 북변에도 조선족이 살았다. 북극촌의 유일한 조선족 최태건씨(32)는 그런대로 북극촌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다.‘조선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7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개장국과 냉면,붕어찜이 전문인 식당 단골손님은 물론 한족이 주류다.마을 사람들도 더러 찾아오고 국경경비대 군인들 가운데도 단골이 많다.생선을 주로 튀겨서 먹는 한족들에게 붕어찜은 별미라는 것이다. ○오로라 현상도 간간이 그만하면 조선음식도 국제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늘날 중국사회에서 한국의 위치가 높아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조선음식 인기가 올라가는지도 모른다.어떻든 변방에 들어와서 조선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그보다도 젊은 사람이 혈혈단신 변방에서 터를 잡게된 동기가 퍽 궁금했다.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순진하기 짝이 없는 그는 장가를 든 사연부터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래 태어난 곳은 요령성이우다.군대에 들어와서리 북극촌에서 복무한 것이 인연이 되어 주저 앉았디요.부모곁으로 돌아갔댔자 농사나 질거이고해서리 객지에서 살길을 찾았다 이겁네다.내 안사람은 본래 북극촌 사람이디요.군복무때 사귀어서리 결혼도 여기서 했디요.한족처녀였습네다” 그는 군복무 당시 한족처녀인 지금의 아내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는 것이다.처음에는 처가에서 반대도 했으나,아기가 먼저 들어서는 바람에 결국 처가에서 혼례를 올려주었다고 한다.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국경지대에 사는 그는 아들 둘을 일찍 두어 모두 소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족 아내의 소원은 남편이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와서 하얼빈과 같은 대도시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그래서 동행한 서울신문 기자에게 별별 말을 다물어보았다.한국 바람은 흑룡강유역 변방까지도 예외없이 불었다. 흑룡강성 막하현에 터를 잡은 조선족은 그리 흔치않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내에 사는 조선족은 모두 250여명으로 집계되었다.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조선족은 한 사람도 없다.대부분이 공공기관에 근무하거나 임업·광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모두가 조선족집거구로 갈 요량을 대고 막하를 임시 거처지로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본래 상지 태생의 조선족인 막하현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1)도 그런 사람의 하나다. “막하에 온디 그럭저럭 27년이 다 됐수다.조선족집거지로 가는 발판을 삼기위해 막하로 온 것이디요.나가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수다.여기 들어올때 을씨년스러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네다.봄인데도 어찌나 추웠는지….아이들 만큼은 여기서 못살게 할 작정이디요.기래서리 목단강시에서 위생학교 졸업하고 실습중인 딸아이에게는 절대 막하로 들어올 생각을 말라고 했수다” ○12월엔 영하 40∼50도 그의 말대로 흑룡강 상류의 기후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너무 가혹했다.그가 27년전 4월1일 발령을 받고 떠날때 하얼빈의 기온은 영상 2도였는데,막하의 낮기온은 영하 28도로 떨어져 있더라는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9월 중순부터 시작한 겨울은 이듬해 5월 중순에야 끝나기 때문이다.4월이라야 한 겨울일 수 밖에 없다.여름이 총총걸음으로 떠나고 나서 8월이 저물면 벌써 가을의 냉기가 돈다.그리고 10월1일을 앞뒤로 해서 큰 눈이 내린다.동지 무렵의 기온은 영하 40도에서 54도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여름이라 해가 길지만 겨울해는 쥐꼬리보다 짧았다.아침 10시에 해가 떠서 하오4시면 저버린다.그 짧은 해에 기온마저 50도로 떨어지면 대낮에도 5m 이상을 볼수가 없다.그래서 차량은 밤이 아닌데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닌다.여기 사람들은 그런 겨울을 일러 ‘모백연’의 계절이라 했다.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라는 뜻이다.사람들은 그 길고 긴 겨울을 거의 집안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렇듯 혹독한 추위를 견디다 보면 극한지지의 겨울을 살아남을수 있는 면역도 생겼다.추운 바깥 기온에 쉽사리 노출되는 손과 얼굴은늘 동상이 걸리게 마련이다.그러나 동상에 걸리고 또 낫기를 거듭하는 동안 피부가 두꺼워져 피부 자체가 보호막이 되었다.북극촌 ‘조선식당’주인 최태건씨는 일부러 손을 내밀어 보여주었다.소댕 같은 손이 무척 거칠었다.북극촌을 떠나고 싶다는 그는 이유를 대강 이렇게 설명했다. “북극촌 경기가 예전만 못하디요.본래 막하지역 경기는 목재가 좌지우지했다 말입네다.그런데 지금은 임업국이 베어내는 목재가 다 거덜나서리 벌채할 나무가 별로 없디요.나무에 매달리는 막하 경제가 좋을 턱이 있겠습네까.기리고 강상류에 금을 캔답시고 몰려든 채금꾼들이 마구 땅을 파헤쳐 강물까지 버려놓았디요.기러니 물고기도 전에 만큼 안잡힙네다.떠날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디요”
  • 식량난 해결방안 있나(김정일의 북한:4)

    ◎북 경제 10년전 성장한계… 자생력 상실/구조적 모순·군비 부담·동구권 해체로 악화/과감한 원조로 신뢰쌓아 개혁·개방 부축을 □집필=함택영 경남대 교수 경제불황이라고 해도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잘먹고 잘살고 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북녘의 형제자매들은 단군이래 지금처럼 굶주려본 적이 없을 것이다.이번 현지조사단이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서 직간접으로 들은 바로도 북한의 식량난·경제난은 실로 심각했다. 과거에도 식량수입국이었던 북한은 최근 2년간의 홍수피해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각종 자료로 미뤄볼 때 95∼96년 북한의 곡물생산은 평년보다 40% 이상 감소돼,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조선족의 민간차원 지원을 포함한 중국 원조와 간헐적인 한국·일본 및 기타 국가들의 식량원조는 상당한 것이지만,기껏해야 북한의 평년작 수준에 필요한 수입물량 정도에 그치고 있다.북한은 식량을 수입할 현금은 커녕 신용도 없는 데다 수백만t의 막대한 식량원조를 제공할 나라도 없다. ○올 생산 수요절반 못미쳐 북한주민들이 배불리 먹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70년대 중반부터 북한 신세대들의 발육성장이 늦어 해가 갈수록 키까지 작아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86년을 마지막으로 북한이 곡물생산량의 과장된 수치마저 발표하지 않았음을 볼때,이때부터 식량사정이 북쪽 말대로 더욱 ‘바쁘게(어렵다는 뜻)’됐을 것이다.즉 북한식 사회주의 생산양식,특히 협동농장 체제는 개인이나 농가의 생산의욕을 감퇴시켜 당시 이미 성장한계에 이르렀다고 봐야 하겠다. 문제는 오늘날 북한 주민의 대다수가 굶주리고 있으며,앞으로 기아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식량난은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이미 자생력을 잃은 북한경제의 한 단면일 뿐이다.한국측의 추정이나 북한의 선전자료를 보더라도,북한경제는 90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 왔다.특히 북한은 구조적 원인으로 앞으로도 홍수와 흉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장기적으로 볼때 개발위주의 국토관리와 증산을 위한 근시안적 ‘다락밭’개간사업은 이미 가뭄과 홍수를 예고했다.단기적으로는 북한이 90년대들어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에너지난·외채난에 빠져 비료·농약·비닐 박막 및 기타 생산설비의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농업을 뒷받침해줄 북한의 공업과 무역은 더욱 심각한 상태다.군수산업 위주의 ‘제2경제위원회’를 제외하면 생산이 거의 중단된 실정이다.공산품의 급격한 수출저하로 외화가 절대 부족한 가운데,일부 기업소에서는 생산설비마저 고철로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중국측 변경무역 담당자들은 목재를 주로 수출하는 중강진,혜산지역을 제외하고는 최근 변경무역이 급감했다고 말했다.해산물 생산도 줄어 북한측이 중국에 팔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설상가상으로 남벌과 주민들의 ‘뙈기밭’만들기로 북녘 산하는 더욱 황폐해지고 있다. 북한은 경제난에 대해 자연재해나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환경론 및 외인론을 펴왔고,과중한 군비부담도 거론했다.한국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이 군사비의 일부만 줄이면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북한이 앞으로 매년 쌀·밀·옥수수 3백만t의 곡물수입을 필요로 한다고 가정할 때 국제시세로 약 6억달러,비료·농약 및 농업시설 개선을 위해 최소한 4억달러 등 연간 10억달러가 필요하다.이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외자이다.성장을 위한 산업투자에는 막대한 추가재원이 요구된다.한국도 50년대 연간 4억∼5억달러(현재 20억∼25억달러로 추산됨)의 미 경제·군사원조로 연명한 시절이 있었다.이 규모의 외자는 결코 북한이 군비축소로 조달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은 국가 및 체제의 안보를 위해 민생을 희생시키고 있다.중앙정부는 양정을 도당국에 떠넘겼다.결국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일부 주민에 대한 식량배급이 사실상 중단됐다.배급을 통한 주민통제 체제가 약화되자 북한 지배층은 보다 강제력에 의존하게 됐다.80년대말부터 후방의 군병력이 증가한 것이나,김정일이 ‘최고사령관’으로서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증거이다.그러나 북한의 군사비는 한국정부가 평가하는 것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되는 데다 중요한 점은 이 군사비라는 것이 외화로 전환돼도 대외구매력을 가질수 없다는 사실이다.미 군축처(ACDA)보고서에 따르면 옛소련의 군사차관이 절정에 달했던 87∼89년 북한의 무기도입액은 20.2억달러였으나 92∼94년에는 0.7억달러(한국의 경우 30억달러)로 격감했다.1백만대군과 노동1호 미사일에도 불구,현대화·정보화되지 못한 북한군은 남침을 감행할 능력이 없다. 불행한 것은 북한이 계산된 도발 및 공멸 위협을 대미·대남협상의 유일한 카드로 보고 있으며,이런 인식이 다분히 현실적이라는 점이다.정치·경제면에서 매력도 능력도 없는 북한이 군사적 억지력마저 없다면,솔직히 말해 한국이 가만이 있겠으며,미·일이 큰 관심을 갖겠는가.그러나 ‘벼랑끝 외교’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보려는 정책은 미봉책일 뿐이다.위기의 장기적·구조적 원인은 북한식 사회주의가 성장의 한계에 이르렀다는데 있다.북한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간의 신뢰,불가침 및 내정불간섭 합의를 바탕으로 과감한 구조적 개혁과 경제개방을 해야 한다. ○도발위협 유일한 카드 한국도 신뢰구축이 이뤄지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경제지원이야말로 북한동포들을 말살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공약이며,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상호 신뢰구축 방안이다.우리는 정치 및 경제논리를 조화시킨 과감한 대북투자와 원조로 통일기반을 닦아야 한다.북한이 원조식량을 군량미로 비축한다는 우려도 일리는 있으나 옳은 말은 아니다.원조식량이 군량미로 전용된다고 하더라도,결국 그 만큼의 자체생산 식량은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함택영 경남대교수·정치학〉
  • 연변의 한인들/이승복 홍익대 교수·시인(굄돌)

    무사안착 후감 한가지.도착해서 만난 사람들중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며 유들유들 해진 사람과 그럴 수는 없다며 격정어린 대립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어디선가 본 듯한,틀림없이 그런 것 같은 산천 그리고 그속의 사람들,그래서 이들을 조선족 한인이라고 한다.하지만 한인이란 말만 가지고 한국과 똑같은 문화척도를 강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한인이란 단지 동족의 범주를 지칭할 뿐이다.똑같은 모범만으로 대표될 수는 없다.그러니 서울에 비해서 30년쯤 과거 속에 있다는 표현은 적지 않이 무모한 서울말씨에 불과하다.연변도 틀림없이 1997년 여름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찌는듯한 여름 더위속에서 연변사람도 연변문화를 축으로 부지런히 살고 있다.나름대로 호흡하고 생각하고 있음이 아름답다.서울사람이 서울서 살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고 해서 공간이나 문화의 이질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게 분명하다.함부로 판단하고 말할 일이 아니다.물론 같은 공간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내가 어릴 때 자장면을 좋아했다고 해서 아들도 그렇지 않은 것을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서로 다른 문화축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같이 살기 위해서라면,진정 자연처럼 살고자 한다면 그래야 한다.한 집에 살거나 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문화의 범주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축을 인정해야 한다.노사가 그렇고 사제가 그러하며 부자관계가 그렇다.어쩌면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의 논리를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기로 하자.일부러 시간을 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만 한나절 생활하고 생각해 봄이 어떨지.
  • 식량난 실태(김정일의 북한:3)

    ◎국경세관·시장마다 식량구걸 행렬/직장마다 한끼 해결 급급… 생산활동 마비/풀죽·벼뿌리 빵 연명에 배앓이 환자 많아 중국 도문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북한 함경북도 남양의 국경해관(세관) 옆.7월의 뙤약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상오 9시쯤부터 남양해관 옆의 나무 그늘 아래로 북한 주민들이 1∼2명씩 몰려들기 시작했다.주민들의 수는 순식간에 200여명으로 불어나며 나무 그늘을 꽉채워 움직일 틈조차 없었다.모여든 주민들은 옆사람에게 기대거나 드러눕는등 배고픔에 지친 모습임을 쉽게 알수 있었다.이들 주민은 바로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적은 편지나 쪽지를 보고 중국의 친척들이 양식을 갖고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 친척 도움 학수고대 도문 전망대에서 만난 중국인 동모씨(43·여)는 “남양해관 옆에는 중국 친척들이 양식을 갖다 준다는 확실한 약속도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 정도의 사람이 몰려들어 기약없이 기다리고 있다”며 “저곳에 온 주민들 가운데 중국 친척들로부터 실제로 양식을 얻은 사람들은 3분의 1쯤 될까 말까 한다”고 전한다.3∼4일만에 중국 친척들로부터 양식을 전해받아 웃으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대부분은 1주일 이상 기다리다 지쳐 친척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간다고 한다. ○가뭄으로 식량난 가중 중국 국경지대에서 본 북한의 식량난은 국가의 생산활동 자체를 무너뜨리는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사망 3주기 추도대회를 갖든 말든,김정일이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해 주석직에 공식으로 취임하는 것에는 아랑곳 없이 오직 먹는 것만 찾아 유랑하고 있다.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직장에 나가지 않고 양식을 구하기 쉬운 장마당이나 국경해관에 몰려나와 먹을 거리를 구하고 다니는 바람에 국가 생산활동이 거의 중단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최근 탈북한 한모씨(38)는 “건설 노동자로 기업소에 소속돼 있지만,월급을 주지 않아 출근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식량배급 체계가 2∼3년전부터 와해된 상태여서 일부 주민들은 풀을 캐 죽을 쑤어 먹다가 독풀을 잘못 먹는 바람에 풀독이 올라 온몸이 퉁퉁 부어 고생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 벼뿌리캐기 바빠 지난 95∼96년 2년에 걸친 유례없는 대홍수로 농토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북한이 올봄부터는 큰가뭄의 대재앙에 시달리고 있어 주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북한 주민들은 지난 2년동안의 대홍수로 물난리만 걱정했지,이렇게 큰가뭄이 올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며 “어렵게 심어놓은 작물이 말라가는 것을 맥(힘)없이 바라보고 그냥 한숨만 쉬고 있어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북한 평안남도 평성의 친척집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45)는 전한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북한에서는 지난해부터 벼뿌리와 밀가루·강냉이(옥수수)가루 등을 섞어 만든 빵이나 떡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북한 당국은 추수가 끝난 지난 겨울 학생 한사람당 50㎏의 벼뿌리를 캐오도록 하는 운동을 벌였다는 것이다.지난달초 탈북한 최모씨(24·여)는 “북한 당국은 지난해부터 영양이 많은 벼뿌리빵을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며 “이같은 선전으로 북한 주민들은 벼뿌리를 캐 깨끗이 씻어 강냉이(옥수수)·밀가루 등을 섞어 빵이나 떡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털어 놓는다.벼뿌리빵을 먹고 나면 소화가 안돼 배는 아프지만 배고품은 달랠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은 교육환경마저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같다.식량난이 악화되면서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식량배급이 어려워 작년부터 하루 배급량을 100g으로 대폭 줄였다.특히 식량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시험조차 치르기 어렵게 됐다.대학시험을 치를때 자신이 먹을 1년치(약 300∼400㎏)의 양식을 의무적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북한 청진의 친척집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문모씨(38)는 “이렇게 많은 식량을 내며 대학에 갈수 있는 사람들이 몇명이나 되겠느냐”며 “하루하루 끼니 걱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로서는 대학이 사치일지도 모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식량 선납못해 대학포기 현지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함택영 교수는 “북한의 식량난은 단지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자생력을 잃은 북한경제의 한단면일 뿐”이라며 “북한이 이같은 난국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남북한간의 신뢰와 불가침 및 내정불간섭 원칙을 바탕으로 과감한 구조적 개혁과 경제개방에 착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 북·중 국경무역 활기 되찾아

    ◎길림성 올 교역액 2,581만불… 33% 늘어/북 원목·고철­중 밀가루·휘발유가 주종 한때 주춤하던 북한과 중국간 국경무역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두만강및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북·중 국경무역이 올들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장춘에서 발행되는 한글신문인 길림신문에 따르면 지난 1∼4월중 중국 길림성의 도문·훈춘·집안·장백·임강 등 5개 통상구의 북·중 국경무역 수출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3%가 늘어난 2천5백81만달러를 기록했다.이중 북한에 대한 중국의 수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9%가 증가한 1천5백79만달러이며,수입액은 67.8%가 늘어난 1천2만달러이다.특히 중국의 5개 통상구의 국경무역 수출입액은 지난 1월 2백85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월 5백39만달러,3월 7백86만달러,4월 9백71만달러 등으로 매달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통상구별 국경무역 수출입액의 증가율은 지난 1∼4월중 수출입액이 3백92만달러를 기록,무려 277%나 폭증한 훈춘통상구가 가장 높았다.다음은 임강통상구(증가율 207%·수출입액 2백92만달러),장백통상구(149%·5백77만달러),집안통상구(70%·5백18만달러)의 순이다.이에 비해 국경무역 수출입액이 가장 많은 6백2만달러를 기록한 도문통상구는 오히려 33%가 하락했다. 북·중 국경무역의 이같은 증가추세는 극심한 식량난과 물자난에 허덕이는 북한이 식량 등 생활필수품을 수입,물자부족을 해결하려고 하고 중국은 생필품의 수출을 통해 ‘짭짤한’경제적 이득을 챙길수 있어 두나라 모두에 유리한데 따른 것.도문통상구에서 만난 조선족 무역일꾼 하모씨(47)는 “북한측의 경우 악화된 식량 및 물자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중국측은 경제적 이익을 챙길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격이라 북·중 국경무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무역에서 북한측은 식량 및 물자부족을 메우기 위해 밀가루·비료·담배·휘발유·경유·석탄·식용유·사탕 등을 주로 들여가며,중국측은 비교적 이윤이 많이 남는 것으로 알려진 원목·강철원료및 반제품·고철·해산물·약재 등을 들여온다.이들 상품중 가장 많이 거래되는 품목은 원목.원목의 수출입액은 지난 1∼4월중 1천39만달러를 기록,전체의 65.4%를 차지했다.2년 연속 대홍수로 식량난이 극심해지자 북한측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 중국의 쌀·밀가루 등 양식을 원목과 맞바꾸고 있다.
  • “조선족 등 1만여명 밀입국 준비”/이달∼새달중

    ◎중 새형법 발효 앞서 한국행 혈안/정부,북 공작원 등 위장침투 우려… 단속 강화 조선족을 비롯한 중국인 1만여명이 8월∼9월 사이에 대거 밀입국 할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돼 정부가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북한 공작원이 밀입국자로 위장,우회 침투할 가능성도 있어 검찰 등 공안 기관에 비상이 걸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0월1일부터 시행되는 중국의 새로운 형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중국 대련항 등에서 1만여명이 밀입국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고 밝혔다. 중국 사법 당국은 10월1일부터 밀항을 알선하다 적발되면 무기징역으로 엄하게 처벌할 것으로 알려졌다.현재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따라 검찰 안기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으로 구성된 ‘유관기관 합동수사반’을 편성,오는 9월말까지 출입국 관련사범을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서울지검과 광주지검 목포지청 등 8개 지검과 7개 지청에 설치된 합동수사반은 밀입국과 국내취업 알선사범,여권 위·변조 사범과 배후조직,집단 해상 밀입국사범,북한 공작원과 연계된 밀입국 사범을 중점 단속한다. 그러나 섬이 많은 서해안의 특성상 검문 검색이 쉽지 않은데다 해안경계와 검문검색 체제가 해군과 경찰·해양경찰로 이원화되어 있어 효율적인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 발원지 낙고하촌(흑룡강 7천리:1)

    ◎중·러 국경따라 2,900㎞ 장강 굽이굽이…/“사랑에 눈먼 흑룡이 천지용왕의 애첩 용녀 탐내어 싸움하다 지쳐 누워버린 형상이…” 중국 동북대륙 북쪽 끝자락의 흑룡강,우리 한민족 상고정신이 아직 아련한 장강입니다.그 강유역에서 한족과 더불어,또 다른 소수민족과 함께 근·현대사를 살아온 조선족 삶의 이야기 ‘흑룡강 7천리’를 연재합니다.중국 연변의 조선족 작가 유연산씨가 집필하는 이 시리즈의 사진물은 서울신문 사진부 김윤찬 기자가 동행취재했습니다.하얼빈에서 대흥안령을 돌아 흑룡강 발원지에 도착한 작가와 기자는 장장 2천900㎞의 강유역을 돌고 있습니다.이 시리즈는 조선족의 어제와 오늘은 물론 중국변방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소개할 것입니다.아울러 강 건너 러시아의 속사정도 간간이 들여다 볼 예정입니다. 흑룡강은 사랑에 눈이 먼 흑룡이 변해 강이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있다.백두산 천지에 사는 용왕의 애첩 용녀를 탐내어 칼을 휘두르며 싸움을 걸었던 흑룡이 먼저 지쳐 누워버린 형상이 흑룡강이라는 것이다.그런 전설속의 거룡처럼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길게 누운 흑룡강은 동북변방의 계하를 이루었다.그러니까 중·러 국경의 장강인 것이다. ○흑룡강이름 36가지나 그 발원지인 흑룡강성 막하현 흥안진 낙고하촌에서 하류 무원까지 길이는 2천900㎞.러시아 경내로 이어진 우수리강까지 합하면 4천478㎞나 되었다.중국경내로 흐르는 길이만 따져도 한국의 이수로 7천리에 꼬리가 좀 붙는다.중국 제1의 강 황하다음인 흑룡강은 만족어로 사하렌우라다.내내 검은 강이라는 뜻이다.옛 문헌을 들여다 보면 흑룡강은 자그마치 36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강의 발원지 막하현 흥안진 낙고하촌으로 가는 길은 아주 멀었다.하얼빈에서 대륙 동북의 마지막 정거장 막하역까지 기차만 꼬박 28시간을 탔다.그러나 여러군데 역을 징검다리 삼아 열차를 바꾸어 타는 바람에 실제는 하얼빈을 떠난지 닷새만에 막하역에 도착했다.하오 9시였는데,바깥은 아직 낮처럼 밝았다.극지에서 가까운 북반구의 여름은 그렇게 느지감치 저물었다.변방의 북지를 실감하면서 역구내를 빠져나왔다. ○밤10시후엔등잔불 신세 이번 흑룡강답사에는 첫날부터 행운이 따라주었는지도 모른다.막하행 열차안에서 만난 조선족출신의 국경경비대 장교가 발원지 답사의 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발원지 일대는 모든 민간인이 얼씬도 못하는 국경지대 군사보호구역으로 되어있다.그래서 조선족출신 장교는 군초소를 통과하는데 필요한 소개장을 써주었다.그의 도움으로 발원지는 물론 또다른 민간인 통제구역인 북극촌까지 답사하는 특전을 누렸다. 종착역 막하에서 낙고하촌까지 거리는 100㎞가 실했다.그리고 낙고하촌에서 흑룡강 발원지까지는 20㎞거리였는데,2개부대의 국경경비대를 거쳤다.흑룡강 발원지는 사실상 흑룡강성이 아니라,내몽골 자치구 어얼구나하시 언얼하다진이었다.어얼구나 하라는 이 물줄기는 러시아에서 흘러내려온 스러카하(석늑객하)와 곧바로 합류했다. 그러나 ‘흑룡강 원두제일비’라고 새긴 돌비석은 발원지를 비켜 나 흑룡강성 경내에 자리잡았다.그래서 발원지를 막하현 흥안진 낙고하로 잡는 계기가 되었다.흑룡강성 경내의 첫 국경비이기도 한 이 비석을 지키기 위해 1개중대의 국경경비대 병력이 주둔해있다. 그렇듯 국경경비대 병력들뿐인 발원지를 벗어나 흑룡강성 맨 윗동네인 낙고하촌으로 내려왔다.18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이 마을은 문명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80년대만 해도 광솔이나 석유로 불을 밝힐 정도였다.지금은 디젤발전기로 초저녁까지는 전깃불을 밝히고 있으나 밤10시 이후는 등잔불 신세를 지고 있다.이 마을 역사는 아주 짧다.60년대 초까지만해도 인가가 없는 무안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동성 유방사람인 류학심이 식솔을 거느리고 들어와 처음 터를 잡았다.채금꾼들이 임시로 들었던 토굴에 짐을 풀었던 그는 이제 예순세살의 노인이 되었다.산동인 특유의 끈질긴 삶을 산 덕분에 마을에서 첫손을 꼽는 부자로 살고있다.15㏊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상점과 여관을 경영하는 그는 자동차와 트랙터까지 소유했다. 처음 세 식구가 들어왔지만 지금은 아들 셋,딸 셋에 손자들이 태어나 식솔도 스물세명으로 불어났다. 낙고하촌 사람들 가운데 70%가 산동인이다.그것도 유방 사람들인데,모두 류학심이 불러들였다.땅이 비좁은 산동에서 복작대고 사느니 보다는 북지라 할지라도 넓은 땅을 찾아온 사람들인 것이다.이들은 본래 낙별하였던 마을 이름도 뜻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낙고하로 고쳤다.이 마을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마을 이름도 바꾸었는지 모른다.더러는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지금은 마음을 고쳐 먹고 눌러 앉기로 했다는 것이다.요즘 고향을 들렀던 마을 사람들은 일전 한푼을 따지고 사는 오늘의 산동이 싫다고 했다. ○조선족 40대 1명 거주 낙고하촌에서는 조선족이 딱 한 사람 살고있다.그것도 눌러 사는 것이 아니라 철새처럼 낙고하촌을 들락거렸다.길림성 유하현에서 왔다는 김경호씨(46)는 홀몸으로 와서 봄과 여름 두철을 낙고하촌에서 살았다.고기잡이가 생업인 그는 겨울이면 처자가 있는 유하현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내 여기를 오기 시작한지는 몇 해가 안되지비.집에는 처와 아들 딸,세 식구가 있는 가장 아이겠수.여기 돈벌이가 짭짤해서 혼자 와서 살지비.붕어 한 근이 30원,잉어는 한 근에 60원이우.하짓날은 값이 배로 뛰어 여름 고기잡이 아주 괜찮수다” 그에게서 연민의 정같은 것을 느꼈다.낙고하촌의 한족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조선족 고기잡이는 부평초 신세 바로 그것이었다.
  • 함북 무산읍 외곽마을(김정일의 북한:2)

    ◎농약 절대부족… 농작물 ‘해충털기 운동’/옥수수 다락밭엔 ‘속도전 앞으로’ 푯말만/공장 가동중단 붉은빛 녹슨기계 그대로 북한과 접경한 중국쪽 숭선진 고성리마을은 북한의 무산시 외곽 삼장리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지호지간에 위치하고 있다.지난 10일 하오 1시쯤 고성리 강변엔 일군의 조선족이 모여앉아 물맑은 장백산백 원류에서 잡아왔다는 산천어로 어죽을 끓여 회식을 하고 있었다.불원천리하고 찾아온 길이라 우리 일행은 술과 밥을 대접을 받으며 북한쪽 사정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들을수 있었다. ○성공한 개혁­실패한 수구 북한주민들의 살림살이는 목불인견이라며 얼마나 견딜수 있을지 동족으로서 걱정이 태산이란다.강변에 놓여진 한켤레 운동화는 북한제로 밤새 탈북한 북한주민이 버리고 간 것이 분명하다고 일러준다.이켠의 강가엔 조선족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느라고 여념이 없는데,저켠 북한쪽에선 유랑민인듯 행색이 초라한 일가가 미루나무 그늘에서 포식을 하고 있는 이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성공한 개혁·개방과 실패한수구·쇄국정책의 극명한 대비를 실감케하는 접경지의 진면목이다. 고성리를 떠나올때 동행을 간청한 세사람의 조선족이 있었다.모녀와 그 어머니의 친정 조카딸이다.이모와 조카딸은 숭선을 떠나 모스크바에 돈벌러 가기 위함이고 11살짜리 딸아이는 외할머니댁에 맡기기 위한 출행이란다.딸아이의 아버지는 북한 무산읍에 나가 접경무역에 종사하고 있어 이 무남독녀를 돌보아줄 틈이 없다는 것이다. 외가마을에 먼저 내린 딸아이는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어머니는 아이가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이역만리 모스크바에서 한밑천 잡아 한국행 수속비를 만들기 위한 고행의 출발임을 어머니는 전해준다.겨울이면 강이 얼어붙어 남편과 지면이 있는 북한주민이 자기집에 와 식량이며 옷가지를 얻어간다기에 그만큼 살만한데,왜 모스크바까지 고생하러 가느냐고 묻자 사람이 먹고만 사느냐고 잘라 말한다.개방의 물결은 이곳 접경 벽지마을까지 깊이 침투하고 있다는 증좌다.의식주 다음엔 아이들 교육이고,그리고 문화생활이던가.중국의 조선족은 분명 개발도상기의 가치관을 듬뿍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연변대학 동북아정치연구소의 조선족연구원이 밝히는 북한실상은 가히 충격적이다.물자부족의 실례로 농작물의 모종을 배양하기 위해 비닐을 덮어씌어야 하는데,비닐이 절대부족해 하루하루 고랑을 바꿔가면서 모종을 덮어주는가 하면,해충이 극성을 부리나 방제할 농약이 없어 농민들이 일일이 농작물의 해충털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한다는 것이다.더욱이 수년간의 자연재해로 흉작에다 다락밭 조성으로 산림의 황폐화와 지력소모가 극심하여 금년에는 홍수나 가뭄이 아니더라도 소출은 기대하기 어렵고,산업활동이 마비상태인지라 적절한 비료공급조차 되지 않아 흉작은 정해진 이치란다. 이같은 절박한 사정을 국제기구나 민간단체에 긴급히 호소하고 북한실상을 직접 객관적으로 조사케 하여 인도적 차원의 위기상황 타개책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한여름이면 초근목피도 독이 오르고 질겨서 식용할 수 없게 되니 그 기아의 고통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료 공급안돼 흉작 반복 중국 연길시에서 중국과 합작회사 사장으로 있는 온성군 군수출신의 한 북한인사는 중앙정부의 식량배급에 지친 나머지 온성이 화급히 필요한 200t정도의 곡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나는 중국인들마다 ‘200t,200t’하고 애걸하며 동분서주한다는 일화를 소개해준다.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북한의 살길은 중국의 선례처럼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외에 대안은 없다고 말하면서,그런데도 북한 지도층과 당국은 북한의 경제난이 미 제국주의자와 남조선의 경제봉쇄에 기인한다고 선전하며 주민을 통제하는 구태의연한 수법을 행사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일침을 놓는다.그는 또 한국정부가 중국의 대북한 개방권유를 지원하고 그같은 분위기의 조성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중국과 북한 사이를 이간시켜 한국측이 득볼게 없다는 사실이다.한·중 수교후 중국과 북한간의 미묘한 냉각기류를 한국측이 계속 조성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오히려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복원시키는데 일조하여,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의 물결이 북한쪽으로 유입케 하는 것이 현명한 외교정책이라는 조언도 제시한다. 중국 용정시에서 대외경제합작국의 책임자인 조선족 이모국장은 수년전만해도 경제합작사업 관계로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측 파트너인 고급관리들이 양담배를 수두룩하게 내놓으며 과시하고 음식대접도 융숭하게 했는데,작년과 금년 두차례에 걸쳐 방문해보니 양담배는 고사하고 조악한 북한산 담배조차도 옆구리가 터져 침을 발라가면서 피우는 지경이며,중국에서 자신들이 먹을 음식이며 술,그리고 안주감으로 소세지까지 휴대하고 들어갔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개방물결 북 유입 돼야” 북한의 혜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중국의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지난 8일 상오내내 혜산 주민들의 동태를 조망할 수 있었다.이날은 바로 김일성주석의 3주기일이다.강폭이라야 좁은데는 20m도 채 되지 않은 곳이니 육안으로도 혜산을 속속들이 볼수 있는 입지이다. 상오 10시,추모행사를 마친 수만명의 인파가 대오도 정연히 ‘배움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된다.배는 곯아도 가슴 가득 숭배의 염을 안고가는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정 금하기 어렵다.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의 한단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 잡힌다. ○“북의 빈궁은 자업자득” 주택들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공장들은 지붕조차 없이 내부가 하늘과 맞닿았고,기계들은 녹슬어 붉은 빛이 완연하다.해발 200∼300m의 산정상까지 옥수수를 심은 다락밭이 펼쳐진 가운데 대문자의 ‘속도전 앞으로’라는 푯말이 우뚝 서 있다.무엇을 위한 속도전인가.다락밭 조성을 위한 속도전이라면 기아상태로 돌입하기 위한 속도전일 것이며,해방전쟁 승리를 위한 속도전이라면 남한에까지 기아를 수출하기 위한 속도전일 것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상당수 조선족의 후예들은 북한의 빈궁이 결국은 자업자득이라는 비판과 함께 동쪽에 대한 연민을 함께 가지는 애증의 갈등현상을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는 듯했다.
  • 북 “입하나 덜자” 영아유기 일쑤

    ◎주민들 식량난 악화에 김정일 공공연히 비판 김일성 사망 3주기 및 탈상을 맞은 북한은 아직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긴 터널 속을 헤매고 있다.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먹을 거리를 얻기 위해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집을 뛰쳐나와 양식을 구하기 쉬운 ‘장마당’이나 중국 접경의 국경해관(세관) 근처를 서성대고 있다.북한 주민들에게는 먹을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사치일 뿐이다. 한달에 한번꼴로 중국 친척집을 방문,양식을 구해가는 북한 주민 이모씨(38)는 “식량배급이 이미 끊어진 상태여서 먹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다”며 “거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풀뿌리를 캐거나 장마당에 나가 먹을 거리가 없나 하고 기웃거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경제부문에서 극히 제한적이나마 개방의 폭을 넓히고 있다.최근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에서는 개인 직영상점의 개설이 허용되고 원정리에 중국과 공동시장을 개설한 게 그 사례이다.나진·선봉에서 북한과 합작사업을 벌이는 조선족 김모씨(58)는 “지난달 중순 이후 나진·선봉에 100여개의 개인상점이 생겼다”며 “북한 관리에게 짧은 기간내 이렇게 많은 개인상점이 생길수 있느냐고 묻자 ‘개방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김일성 사망 3주기를 맞아 북한 실상을 보다 깊이 있고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에 대한 2차 현지조사를 실시,확인한 내용이다.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은 가정마저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 어린이들을 거리로 내보내거나,영아들을 남의 집 앞에 버리고 있어 가정이 해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최근 북한 회령을 다녀온 조선족 오모씨(32)는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는 북한 여성들은 갓나은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사정을 적어 잘사는 사람 집 앞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거리로 뛰쳐나온 어린이들은 무리를 지어 장마당에서 강도질을 하거나 중국접경 국경해관의 세관원들이 먹다버린 곽밥(도시락)을 주워 먹기도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식량난에 지친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공개적으로 김정일에 대한 욕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북한 주민들이 공공연히 ‘내가 없는 조선식 사회주의를 해서 뭘해.굶어죽는 주제에 뭐 부러움 없는 나라라구,헛소리하지 말라구’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고 최근 북한 혜산의 친척집에 양식을 갖다 주고온 조선족 박모씨(44)가 말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실시된 언론사상 최초의 언·학 합동취재인 2차 현지조사는 서울신문 동북아기획취재팀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북한 전문가들이 공동 참여,김정일의 북한을 전문가적 시각과 저널리즘의 공동접근을 통해 조명했다.따라서 북·중 접경지대 현지조사로는 가장 정확한 결과로 꼽히고 있다. 이번 조사에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심지연(정치학)·이수훈(사회학)·장맹렬(경제학)·최완규(정치학)·한석태(〃)·함택영(〃) 교수가 참여했다. 한석태 교수는 “북한당국은 미국과 한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물자가 부족하고 경제난이 가중된다고 선전하며 주민들을 통제하는 수법은 여전하다“면서 “그러나 북한이 살 길은 중국의 선례처럼 개혁·개방정책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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