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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반하장 日 “한국 불참 유감”

    적반하장 日 “한국 불참 유감”

    관방장관 “정무관 참석 문제없다”주일 대사 등 한국측 별도 추도식 일본 정부가 ‘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을 강행한 뒤 한국의 불참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번 사태가 일본의 무성의와 우리 정부의 안일함이 불러온 ‘외교참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런 ‘적반하장식’ 일본의 태도가 한일 관계의 새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을 중심으로 수습에 나섰다. 전날 일본이 주최한 사도광산 추도식을 ‘보이콧’한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에 남아 있는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외교부 주최로 별도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에는 한국인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포함한 한국 정부 관계자 약 30명이 참석했다. 추도식은 10분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돌가루를 많이 마셔 고통받았던 아버지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부모님을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도식 후에는 사도광산 갱도와 전시 시설을 둘러봤다. 반쪽 추도식에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와 정중한 의사소통을 해 왔는데 안타깝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보도로 논란이 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 정무관의 추도식 참석에 대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우리 외교부는 이날 오후 9시가 돼서야 관방장관의 발언에 대해 “자체 추도 행사를 개최한 것은 과거사에 대해서는 일본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 표현”이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현재 외교부에서는 강 2차관이 일정을 취소하고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소통·협의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5∼26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만나 해당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교도통신은 2022년 8월 15일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기사에 대해 “경내에 들어갔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며 이날 정정 보도문을 올렸다. 이어 “당일 참배한 복수의 자민당 의원들도 ‘이쿠이나씨는 없었다’고 말한다”며 “애초 보고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다카하시 나오토 편집국장은 “이쿠이나 정무관을 비롯해 니가타현과 사도시, 추도식 실행위원회에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일본 대표 통신사가 보도한 지 2년 3개월 만에 정정보도를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추도식 불참은 제반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를 오인해 약속을 뒤집었다는 일본 측의 프레임을 경계하는 반응으로 보인다.
  • 日정부 “유감”이라더니... 교도통신 “日대표 야스쿠니 참배 오보 사죄”

    日정부 “유감”이라더니... 교도통신 “日대표 야스쿠니 참배 오보 사죄”

    일본 정부가 ‘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을 강행한 뒤 한국의 불참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번 사태가 일본의 무성의와 우리 정부의 안일함이 불러온 ‘외교참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런 ‘적반하장식’ 일본의 태도가 한일 관계의 새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을 중심으로 수습에 나섰다. 전날 일본이 주최한 사도광산 추도식을 ‘보이콧’한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일본 니카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에 남아 있는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외교부 주최로 별도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에는 한국인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포함한 한국 정부 관계자 약 30명이 참석했다. 추도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도사, 묵념, 헌화 등의 순서로 약 10분간 이어졌다.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돌가루를 많이 마셔 고통받았던 아버지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부모님을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도식 후에는 약 1시간 동안 사도광산 갱도와 전시 시설을 둘러봤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80여년 전의 아픈 역사가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진심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와 정중한 의사소통을 해 왔는데 안타깝다”며 한국 측의 추도식 불참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하야시 관방장관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보도로 논란이 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 정무관의 추도식 참석에 대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출장 중이어서 2차관이 일정을 취소하고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소통·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이 25∼26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만날 가능성도 있다. 회동이 성사되면 사도광산과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교도통신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기사에 대한 정정 보도문을 올리고 “경내에 들어갔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고 사죄했다. 이에 외교부는 “추도식 불참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적절성 문제뿐만 아니라) 제반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본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기 위해 매년 열기로 한 행사다. 그러나 한일은 첫 추도식부터 명칭과 내용, 참석자를 놓고 갈등을 빚었고 일본의 불성실한 태도에 막판 불참을 결정했다. 일본 측은 사과나 강제동원 언급 없이 추도식을 사실상 유네스코 등재 자축 행사로 변질시켰다.
  • [속보] 교도통신 “사도광산 추도식 日대표 야스쿠니 참배는 오보…깊이 사과”

    [속보] 교도통신 “사도광산 추도식 日대표 야스쿠니 참배는 오보…깊이 사과”

    일본 교도통신이 최근 논란이 된 ‘사도광산 추도식’ 일본 측 정부 대표의 2022년 8월 야스쿠니신사 참배 관련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25일 “이쿠이나 참배 보도는 실수…교도통신 ‘깊이 사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통신은 전날 추도식에 일본 정부를 대표해 참여한 외무성 정무관 이쿠이나 아키코 참의원 의원이 2022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당시 보도했지만 이는 잘못된 보도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쿠이나씨가 야스쿠니 참배 사실을 부정해 당시 취재 과정을 조사했다”며 “당시 이쿠이나 씨가 경내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기사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통신은 “당일 참배한 복수의 자민당 의원들도 ‘이쿠이나씨는 없었다’고 말한다”며 “당초 보고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됐다”고 덧붙였다. 다카하시 나오토 편집국장은 “이쿠이나 의원을 비롯해 니가타현과 사도시, 추도식 실행위원회 등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전격 행사 불참을 결정했다. 추도식에 일본 대표로 참석하는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추도사 등을 둘러싼 이견도 좁혀지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따라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전날 사도섬에서 연 추도식에는 한국 정부 측 인사와 유족은 참여하지 않았고 일본 측 인사만 참여한 사실상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한국 정부는 이 행사에 참가하지 않고 이날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와 유족 9명 등 약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별도의 추도식을 열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이 불참한 데 대해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쿠이나 정무관의 2022년 8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보도와 관련해서는 “취임 이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 측에는 관련 보도를 접하고 사실관계를 설명했다”고 전했다.
  • 반쪽짜리 사도 추도식 강행해놓고 日 정부, 한국 불참에 ‘유감’

    반쪽짜리 사도 추도식 강행해놓고 日 정부, 한국 불참에 ‘유감’

    한국 정부, 유족과 별도 추도식 일본 정부가 ‘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을 강행한 뒤 한국의 불참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번 사태가 일본의 무성의와 한국 정부의 안일함이 불러온 ‘외교참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정부의 이런 ‘적반하장식’ 태도가 한일 관계에 새 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날 일본이 주최한 사도광산 추도식을 ‘보이콧’한 한국 정부는 이날 오전 9시 일본 니카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에 남아있는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외교부 주최의 별도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에는 한국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포함한 한국 정부 관계자 약 30명이 참석했다. 야외에 천막을 치고 마련한 장소에는 약과와 과일 등을 올린 추모상이 차려졌다. 천막에는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라고 쓴 검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추도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도사, 묵념, 헌화 등의 순서대로 약 10분간 이어졌다.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돌가루를 많이 마셔 고통받았던 아버지의 현장을 잘 볼수 있었다”, “이제 부모님을 모실 수 있게 됐습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는 약 1시간 동안 조선인 노동자들이 피땀흘려 일한 사도광산 갱도와 전시 시설을 둘러봤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80여년 전의 아픈 역사가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진심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와 정중한 의사소통을 해왔는데 안타깝다”며 한국 측의 추도식 불참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하야시 관방장관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보도로 논란이 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 정무관(차관급)의 추도식 참석에 대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쿠이나 정무관은) 참의원이 된 이후 참배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사실관계를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한국 정부의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이후 관련 사안에 대해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기 위해 매년 열기로 한 행사다. 그러나 한일은 첫 추도식부터 명칭과 내용, 참석자를 놓고 갈등을 빚었고 일본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에 막판 불참을 결정했다. 일본 측은 사과나 강제 동원 언급은 물론 인사말로 명명한 추도사로 한국 측 인사가 불참한 추도식을 사실상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자축 행사로 변질시켰다.
  • 日정부, 韓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에 “유감”…韓, 별도 추도식 개최

    日정부, 韓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에 “유감”…韓, 별도 추도식 개최

    일본 정부가 25일 ‘사도광산 추도식’이 한국 불참으로 ‘반쪽짜리 행사’로 치러진 데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한국은 이날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추도하는 별도 행사를 개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이 불참한 데 대한 일본 정부 견해에 관해 “한국 측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국 측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각료가 한국 정부의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결정 이후 기자회견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하야시 장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는 한국 측이 자체 추도식을 연 것과 관련해 “한국 측이 (일본) 현지 관계자가 정중하게 준비해 개최한 행사에 참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열기로 한 경위에 비춰볼 때 행사 대응이나 그 내용에 대해 신중한 검토와 대응을 요구하는 취지로 한국 측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한국 동의를 얻기 위해 모든 노동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매년 열기로 했다. 하지만 양국은 명칭 등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고, 전날 일본 측이 연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 유가족과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추도식 하루 전날인 지난 23일 추도식 불참 사실을 알리면서 그 배경으로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이날 오전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별도의 추도 행사를 열었다. 추도식에는 한국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비롯한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도사 낭독과 묵념, 헌화 등이 진행됐다.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80여년 전 사도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스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영령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영영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한국인 노동자의 한스러운 마음, 귀국 후 사고 후유증과 진폐증으로 힘든 삶을 이어간 분들에게는 어떤 말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사도광산의 역사 뒤에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포토] ‘사도광산 갱도’ 찾은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

    [포토] ‘사도광산 갱도’ 찾은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

    일본 주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한 한국 정부가 25일 사도섬에서 별도 추도 행사를 열었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노역했던 장소로 이날 추도식은 한국 유족 9명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는 강제 노역한 조선인을 추모하는 추도사 낭독, 묵념, 헌화 등으로 구성됐다. 애초 한국 유족과 정부 대표는 전날 일본 주최로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개최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행사 전날인 23일 전격 불참을 일본에 통보했다. 추도식 일본 중앙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 문제와 추도사 내용 등이 조선인 노동자 애도라는 행사 취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이쿠이나 정무관은 전날 일본 인사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도식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강제동원’ 등 강제성과 관련된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본이 지난 7월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한국의 등재 동의를 얻기 위해 매년 현지에서 열기로 약속한 첫 노동자 추도식은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전날 사도섬에 온 한국 유족 9명은 일본 추도식 보이콧 결정에 따라 추도식 참석 대신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공간이 있는 사도광산 옆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시찰했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구리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 무렵 1천5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했다.
  • [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 日 무성의, 韓 무기력 ‘합작품’

    [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 日 무성의, 韓 무기력 ‘합작품’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서 어제 우리 측이 불참한 채 ‘반쪽짜리’ 추도식이 열렸다. 지난 7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일본 정부는 한국의 등재 동의를 얻기 위해 해마다 추도 행사를 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깜깜이’로 진행되다 일본 정부의 대표 참석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행사 하루 전 우리 정부가 부랴부랴 불참을 선언했다. 일본 측은 행사 이틀 전 차관급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참석을 발표했으나 그의 자격이 도마에 올랐다. 202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사도광산 추모식 참석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도식 관련 브리핑 취소 등을 거듭한 우리 외교부는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고위급 참석을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한 것”이라며 그의 참석을 사실상 수용했다. 그래도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계속되자 추도식 하루 전 정부는 “양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전격 불참을 결정한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이 정도로 허술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전시물에 ‘강제’ 표현 기재를 요구했다가 거부된 것도 논란이 크지 않았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증언을 담는 제안도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 핵심 요구들이 묵살됐어도 등재에 찬성한 결과여서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국민이 주시한 첫 추도식에서 결국 외교력 부재를 또 드러냈다. 두 나라가 과거를 딛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하다. 하지만 한쪽이 계속 양보해야 하는 관계에 건강한 미래는 공염불일 뿐이다. 일본은 이번 일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이런 들러리 외교를 계속할 것인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 추모 대신 세계유산 자축… 강제동원 언급 없이 30분 만에 끝났다

    추모 대신 세계유산 자축… 강제동원 언급 없이 30분 만에 끝났다

    “가혹한 환경서 힘든 노동” 애도만韓 반대한 ‘감사·기쁨’ 표현도 등장‘신사 참배’ 논란 이쿠이나 정무관취재진 질문에 뒷문으로 급히 나가日시의원 “유산 등재 기여 모임인 줄” 24일 오후 1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은 한국 측 유족의 자리를 비워 둔 채 30여분 만에 종료됐다. 인사말로 명명한 추도사에서는 세계유산 등재라는 성과만 강조됐고 강제노역 사실이나 희생자에 대한 사죄 표현은 한 차례도 없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논란이 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추도식이 끝난 뒤 한국 취재진의 질문을 피해 뒷문으로 급히 모습을 감췄다. 이날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한국인 유족들이 불참한 가운데 추도식을 강행했다. 일본 측에서는 이쿠이나 정무관을 비롯해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 와타나베 류고 사도시 시장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 측 유족을 위한 40여개 좌석은 텅 빈 채였다. 식장에는 희생자라는 표현이 빠진 ‘사도광산 추도식’이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고 백합을 올린 헌화대가 설치됐다. 추도식은 묵념, 추도사 낭독, 헌화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 측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정무관은 “광산 노동자 중에서는 1940년대 전시 노동자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온 많은 노동자가 포함돼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 아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광산 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노동에 종사했다”며 “돌아가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 부분을 조선인 노동자 언급에 할애했으나 ‘강제동원’을 명확히 언급하거나 사죄의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80년대 아이돌 그룹 출신인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불거지는 등 추도식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논란이 계속된 인물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이날 추도식이 끝난 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있냐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서둘러 차를 타고 식장을 떠났다. 한국 정부가 반대해 온 ‘감사’, ‘기쁨’ 등의 표현도 등장했다. 나카노 고 집행위원회장은 “사도광산이 세계의 보배로 인정받았음을 보고드릴 수 있게 된 것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우리의 큰 기쁨”이라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했다. 하나즈미 지사는 “광산 채굴, 발전에 공헌한 모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한다”고 했고, 와나타베 시장도 “사도광산 발전에 관련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추도식에 참석한 아라이 마리 사도시의원은 “한국 노동자와 유족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표시가 핵심이 됐어야 한다”며 “(추도식이 아니라) 세계유산 등재에 기여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혹평했다.
  • 사도광산 ‘반쪽 추도식’… 日, 진정성도 사과도 없었다

    사도광산 ‘반쪽 추도식’… 日, 진정성도 사과도 없었다

    ‘야스쿠니 참배’ 인사에 우리측 불참유가족 등 오늘 현지서 별도 추도식외교부 “과거사 타협 없다는 의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한일 정부가 합의한 추도식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까지 계속 한 발씩 양보하며 일본의 진정성과 성의를 기대했지만 일본이 부응하지 않으면서 ‘외교 실패’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근 훈풍이 불던 한일 관계가 다시 삐걱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했다. 한국 정부 대표와 피해자 유가족들은 불참했다. 외교부는 전날 오후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을 결정했다. 전날 사도섬으로 떠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9명은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박철희 주일대사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별도 추도 행사를 갖는다. 유족들은 70대 안팎의 고령으로 당초 11명이 참석하려다 건강상의 이유로 2명은 출국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자체 추도 행사 개최는 과거사에 대해 일본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협의 과정 내내 매끄럽지 않았던 추도식을 ‘보이콧’하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는 추도식 이틀 전 일본 정부 대표로 발표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탓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극우 주장도 펼친 바 있다. 외교부의 부실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측에 일관되게 중앙정부의 고위 인사 참석을 요구했고,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참석하기로 하자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다 정무관 3명 중 아시아태평양 담당인 이쿠이나 정무관의 신사 참배 이력을 뒤늦게 확인하고 추도사 내용 등을 우려해 불참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추도식 등을 일본과 합의했다. 2015년 하시마(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이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뒤통수’를 맞은 전례가 있어 이번에는 그나마 선방을 한 협상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7~8월쯤으로 약속한 추도식은 계속 미뤄졌고 겨우 확정된 ‘사도광산 추도식’ 명칭에서는 추모 객체도 불분명했다. 형식만 주최 측 초청이지 유가족 참석 경비도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안에 설치는 됐지만 약속했던 ‘강제’라는 표현이 없어 논란이 됐다. 한일 관계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외교 성과로 꼽혔다.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더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란 기대가 큰 상황에 이번 추도식 파문은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날 MBN에 출연해 “단일성인 어떤 문제가 전반적인 양국 관계 흐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측 조치가 실망스럽고 아직도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도 “한국 정부 등도 일본의 진정성을 얻어내기 위해 충분히 설명하고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 日 무성의, 韓 무기력 ‘합작품’

    [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 日 무성의, 韓 무기력 ‘합작품’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서 어제 우리 측이 불참한 채 ‘반쪽짜리’ 추도식이 열렸다. 지난 7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일본 정부는 한국의 등재 동의를 얻기 위해 해마다 추도 행사를 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깜깜이’로 진행되다 일본 정부의 대표 참석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행사 하루 전 우리 정부가 부랴부랴 불참을 선언했다. 일본 측은 행사 이틀 전 차관급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참석을 발표했으나 그의 자격이 도마에 올랐다. 2022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사도광산 추모식 참석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도식 관련 브리핑 취소 등을 거듭한 우리 외교부는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고위급 참석을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한 것”이라며 그의 참석을 사실상 수용했다. 그래도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계속되자 추도식 하루 전 정부는 “양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전격 불참을 결정한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이 정도로 허술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전시물에 ‘강제’ 표현 기재를 요구했다가 거부된 것도 논란이 크지 않았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증언을 담는 제안도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 핵심 요구들이 묵살됐어도 등재에 찬성한 결과여서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국민이 주시한 첫 추도식에서 결국 외교력 부재를 또 드러냈다. 두 나라가 과거를 딛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하다. 하지만 한쪽이 계속 양보해야 하는 관계에 건강한 미래는 공염불일 뿐이다. 일본은 이번 일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이런 들러리 외교를 계속할 것인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 사도광산 추도식 ‘강제동원’ 언급없이 30분 만에 끝나

    사도광산 추도식 ‘강제동원’ 언급없이 30분 만에 끝나

    24일 오후 1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은 한국 측 유족의 자리를 비워 둔 채 30여분 만에 종료됐다. 인사말로 명명한 추도사는 세계유산 등재라는 성과만 강조됐고 강제노역 사실이나, 희생자에 대한 사죄 표현은 한 차례도 없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논란이 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추도식이 끝난 뒤 한국 취재진의 질문을 피해 뒷문으로 급히 모습을 감췄다. 이날 일본 사도광산추도식 실행위원회는 한국인 유족들이 불참한 가운데 추도식을 강행했다. 일본 측에서는 이쿠이나 정무관을 비롯해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지사, 와타나베 류고 사도시 시장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 측 유족을 위한 40여개 좌석은 텅 빈채였다. 식장에는 희생자라는 표현이 빠진 ‘사도광산 추도식’이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고, 백합을 올린 헌화대를 설치했다. 추도식은 묵념, 추도사 낭독, 헌화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 측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정무관은 “광산 노동자 중에서는 1940년대 전시 노동자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온 많은 노동자가 포함돼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 아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광산 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노동에 종사했다”며 “돌아가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그는 상당 부분을 조선인 노동자에 대해 언급했으나 ‘강제동원’을 명확히 언급하거나 사죄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 80년대 아이돌 그룹 출신인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불거지는 등 추도식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논란이 계속된 인물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이날 추도식이 끝난 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있냐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서둘러 차를 타고 식장을 떠났다. 한국 정부가 반대해 온 ‘감사’, ‘기쁨’ 등의 표현도 등장했다. 나카노 고 집행위원회장은 “사도 광산이 세계의 보배로 인정받았음을 보고드릴 수 있게 된 것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온 우리의 큰 기쁨”이라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활약 덕분”이라고 했다. 하나즈미 지사는 “광산 채굴, 발전에 공헌한 모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한다”고 했고, 와나타베 시장도 “사도 광산 발전에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돌아가신 분들에게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추도식에 참석한 아라이 마리 사도시의원은 “한국 노동자와 유족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표시가 핵심이 됐어야 했다”며 “(추도식이 아니라)세계 유산 등재에 기여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혹평했다. 한편 추도식에 불참한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의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터에서 별도의 독립적인 추도 행사를 진행한다. 이날 오후 니가타에서 입도한 한국 유족 9명은 강제노역 관련 전시물이 설치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등을 둘러봤다.
  • “우크라 스톰섀도 공격으로 북한군 500명 전사”…고위장성도 부상(영상)

    “우크라 스톰섀도 공격으로 북한군 500명 전사”…고위장성도 부상(영상)

    우크라이나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지원받은 스톰섀도 순항미사일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해 북한군 5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 RBC 우크라이나는 24일 군사 전문 매체인 ‘글로벌 디펜스 코퍼레이션’을 인용해 “당시 공격에서 북한 군인 500명이 전사했으며, 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부상자는 장교 2명과 여성 1명으로, 이 여성은 의무병으로 알려졌으나 통역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RBC는 설명했다. 당시 공격으로 러시아군에서도 18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20일 스톰섀도로 러시아 본토를 처음으로 공격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러시아 군사 블로거를 인용해 이날 북한군이 파병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의 마리노 마을에서 스톰섀도 파편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다른 영국 언론들도 자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스톰섀도가 우크라전 개전 이래 처음으로 러시아 본토로 사용된 사실을 전하며, 이 미사일의 행선지가 파병 북한군이 배치된 쿠르스크였다고 지목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최근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공습으로 북한군 고위 장성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21일 보도했다. 이번에 부상한 것으로 전해진 북한군 고위 장교는 지난 20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스톰섀도를 발사한 공격에서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북한군 장교 최소 500여명이 파병 군인들을 이끌고 러시아에 입국했으며, 고위급 장성으로는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과 리창호 정찰총국장, 신금철 인민군 소장 등 3명이 여기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스톰섀도(프랑스명 스칼프)는 전투기에서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공대지 순항 미사일로 작전반경은 250㎞에 달한다. 스톰섀도는 적진의 벙커나 탄약 저장고를 뚫는 데 강력한 무기로 평가된다.
  • ‘야스쿠니 참배’ 日대표에 韓 불참… 사도광산 추도식 ‘반쪽’ 개최

    ‘야스쿠니 참배’ 日대표에 韓 불참… 사도광산 추도식 ‘반쪽’ 개최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노역했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서 24일 한국과 일본의 불협화음 속에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주최로 사실상 ‘반쪽짜리’ 추도식이 열렸다. 애초 한국 유족 등 한일 정부 관계자 등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본 측 대표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 보도 등이 문제가 되면서 한국 정부가 행사 하루 전 전격 불참 결정을 내리면서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이날 오후 1시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자국 인사만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추도식을 진행했다. 일본 중앙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비롯해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 와타나베 류고 사도시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행사는 묵념, 추도사, 헌화 순으로 구성됐으며 추도사는 한국 측 불참으로 이쿠이나 정무관만 낭독하게 됐다. 우리 정부의 추도식 불참은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의원(상원) 초선 의원인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8월 15일 일본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있다고 교토통신은 보도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일본 정부 대표를 맡은 것은 한국 유족들을 모욕하는 부적절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아울러 추도사에 조선인 강제징용을 어떤 식으로 언급할지, 조선인을 위로하는 내용이 담길지가 불투명했고 한국 유가족의 추도식 참석 경비를 한국 외교부가 부담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매년 열기로 한국에 약속한 조치로 이번이 첫 행사였다. 앞서 이날 일본 외무성은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해 배포한 입장에서 “일본 정부는 주최자인 현지 관계자와 협력하면서 일한 정부 간에서도 정중한 의사 소통을 실시해 왔다”며 “이런 가운데 이번에 한국 측이 불참한다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일본 측은 “이쿠이나 정무관은 참의원 취임 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일본,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 추도식까지 ‘뒤통수’ 쳤다

    일본,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 추도식까지 ‘뒤통수’ 쳤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열리는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극우 성향 정치인을 앞세워 논란이 일고 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노동 피해자를 추모하는 자리에 일본 정부 대표로 오는 건 한국인 유족에겐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1200∼1500명의 조선인이 동원돼 강제노역했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를 외면하고자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가 중심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다. 뿐만 아니라 추도식에는 한국인 유족이 초청됐지만 숙소·항공편 등 소요 예산을 전부 한국 외교부가 부담하는 형태인 데다, 정식 명칭도 누구를 추도하는지조차 모를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고,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자를 위로하는 내용이 담길지도 행사 직전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태도에 진정성이 결여됐다고 판단,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전격적으로 불참을 결정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그런 문제(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포함해서 여러 가지 외교 당국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합의에 이르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불참의 이유를 밝혔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5년 군함도 등재 때에 이어 연이어 일본 측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모양새가 되면서 외교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군함도 당시 일본은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센터를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설치하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도 다수 전시하는 등 아직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하기로 결정”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하기로 결정”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 등을 추모하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를 대표로 보내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부가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추도식 전격 불참을 결정했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는 추도식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해 24일 예정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불참 결정을 내린 배경으로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전날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24일 열리는 ‘사도광산 추모식’에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 참석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그간 요청해왔던 차관급 정무관이 참석하는 것이었지만,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일본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일제 강제노역으로 고통받은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일본 정부 대표로 오는 건 현장에 참석할 한국인 유족들을 모욕하는 부적절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 이토록 명랑하게 분석한 ‘한국인은 누구인가’ [세책길]

    이토록 명랑하게 분석한 ‘한국인은 누구인가’ [세책길]

    무슨 일만 있으면 버릇처럼 너도 나도 하는 말이 ‘나라꼴이 어찌 되려고’다. ‘헬조선’이라느니 ‘백척간두’니 하는 말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자주 들어서 한국인을 표현하는 클리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을 거쳐 현재 정부까지, 그리고 십중팔구 다음 정부에서도 우리는 나라꼴이 엉망이라며 비분강개할 듯 하다.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집중, 지역소멸, 남북관계를 비롯한 각종 논란까지. 나라가 절딴나는 듯 보이는 위기신호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위기가 아닌 적 없는 대한민국은 어쨌든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국제적 위상 역시 계속 올라가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연구해온 캔자스주립대 사회학과 교수 김창환과 2022년 인터뷰할 때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이 어떻게 왜 성공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학자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앞날을 암담하게 예측하는 연구는 셀 수 없이 많은데 다 틀렸어요. 한국은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헬조선이다 하는 말을 수십년 동안 했는데 정작 경제상황은 계속 좋아지고 있고 불평등 문제도 개선되고 있거든요.” 확실히, 제대로 된 처방을 하려면 진단이 틀리면 안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를 제대로 모른 채 살아온 건 아닐까 싶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통일한 실체라 해도 자신이 자리잡은 처지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보일 수밖에 없다. 한때 교과서에 실렸던 ‘한국의 미’라는 글이 있는데, 한국 고고학계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김원용은 이 글에서 너무 험하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은 완만하고 원만한 산줄기, 물 맑고 공기 맑아 살기 좋은 사계절을 가진 자연을 예찬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뚜렷한 사계절은 극단적인 날씨를 뜻하고, 끝없이 이어진 산줄기란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농사지을 땅 역시 토질 자체가 농사에 썩 적당하지 않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라는 이웃을 끼고 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좋은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어쨌든 한반도에 터잡은 인구집단, 우리가 흔히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이 족속은 악으로 깡으로 꿋꿋이 버텨왔고 독립된 실체로서 존속하고 있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가 아닐까. 한국인의 원형 창조자, 단군 현종 정도전작가 홍대선이 쓴 <한국인의 탄생>은 여러모로 독특한 한국인론이다. ‘딴지일보’에 연재되어 장안의 화제가 됐던 ‘테무진 to the 칸’에서 보여줬던 재기 넘치는 분석과 입담을 한국이라는 특이한 집단에 적용했다. 저자는 단군, 고려 현종, 정도전을 한국인의 원형을 만든 주인공을 지목하는데, ‘단군’이 한반도라는 자연조건을 결정지었고, 현종이 거란에 맞서 싸우며 민족의 탄생을 이끌었고, 정도전이 한민족의 민족성을 탄생시킨 상징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단군을 통해 분석하는 한민족의 기본조건은 ‘단군이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는 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너무 추운 건 기본이고, 산은 너무 많다. 생존투쟁이 몸에 밸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밥상의 유전자가 탄생했고, ‘먹고 살고’ ‘죽지 못해 사는’ 비관적이면서도 음주가무를 사랑하는 민족이 형성됐다. 인구만으로도 압도적인 위협인 중국에 맞서기 위해 산성(山城)을 이용한 전투방식이 자리잡았고 이 또한 민족의 원형질에 각인됐다. 그 원형질에서 활의 민족이 나왔다. 화력중독 포방부가 괜히 하늘에서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다. 얼굴마담조차 못 되는 허수아비 왕으로 시작했지만 동아시아 초대 패권국이었던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전쟁을 이끌어 나라를 지키며 “하늘이 내린 성군”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성을 남긴 고려 현종은 저자가 보기에 한민족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손자이자 신라 왕가의 혈통을 외가로 두었고, 충남 천안 지역 호족에 장가들면서 명실상부하게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아우르는 존재가 된 현종이 이끈 고려수호전쟁이야말로 한민족을 하나로 모은 진정한 통일의 과정이었다. “현종은 거란과의 모든 전쟁이 끝난 후 아직 살아있을 때부터 하늘이 내린 성군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는 심지어 조선왕조에서도 한반도 역사가 낳은 특출난 성군으로 우대받았고, 조선왕조는 그에게 제사를 올렸다…단군이 신화적이고 상징적인 시조라면, 현종은 실존했던 진짜 단군인 셈이다(204쪽).” 그렇게 형성된 집단에 특정한 특질을 부여한 건 정도전이다. 저자는 “조선은 임금이 나라를 사유화한 게 아니라, 사대부가 임금을 국유화한 나라다… 조선의 주권자는 임금이었고, 혁명 주체는 사대부였으며, 혁명의 목적은 백성의 삶이었다(222~223쪽)”고 지적하면서 이를 “임금의, 사대부에 의한, 백성을 위한(223쪽)” 통치 체제로 규정했다. 500년을 이어온 그 체제야말로 21세기까지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민족적 특성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성에 각인된 조선 체제, ‘임금의, 사대부에 의한, 백성을 위한 나라’‘임금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조선이 왕정국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임금이라고 해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선에서 임금은 ‘사대부에 의한 나라’에 갇힌 “존귀한 포로”였다. 임금을 포로로 잡은 사대부 역시 자신들에게 스스로 부여한 도덕률의 포로가 되어야 했다. 저자가 보기에 사대부란 “공부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이 아닌 다수의 타인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264쪽)”이었다. 저자는 선비의 나라 조선의 멸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대부에게 예법은 언제든 필요하면 사명을 다하기 위한 오랜 준비운동이었다. 그런 사대부가 쓰임 받지 못하는 세상이 오자 조선은 멸망했다(274쪽).” 조선은 백성의 삶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국가이념을 표방하며 탄생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점이 적지 않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은 충분히 됐다. 조선에서 “임금과 사대부는 백성의 욕망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통제했다(277쪽).” 저자는 외국인 여행객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던 ‘밥 많이 먹는 조선 사람’ 사례를 길게 언급하면서, 최소한 백성들이 맘껏 먹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국가를 재조명한다.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듯이 국가도 그렇다. 조선 역시 생로병사를 거치며 망했다. 재수 참 없게도 하필 죽을 때쯤 산업화를 배우고 제국주의도 배운 일본이 조선을 노리고 침략해 들어왔다. 그렇게 조선은 500년의 성취보다는 망한 나라 혹은 망해야 할 나라라는 이미지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이제는 식민지 트라우마를 벗어나서 조선을 곰곰이 재평가할 때도 됐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조선은 죽었다. 대한민국은 조선의 무덤 위에 세워진 집이다… 조선은 한국인에게 혁명적 기질과 못된 성깔을 물려주었다. 조선인의 시신에서, 마침내 한국인이 태어났다(335~336쪽).” 솔직히 말해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저자가 보여준 통찰력이 단순한 입담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탄생’은 참신하고도 통찰력 있는 한국인 분석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이해하고 해석하는 한국인 분석이 보편적 공감을 받으려면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한반도 북쪽에 들어선 조선의 또다른 후예 국가, 우리가 흔히 북한이라는 근본없는 이름으로 부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이 ‘두 국가’를 거론했다곤 하지만 오랫동안 민족주의와 통일, 항일무장투쟁을 국가정통성의 근본으로 삼아온 게 조선이었다. 또한 이 나라는 저자가 공들여 분석한 단군, 현종, 조선의 직계후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나라가 보여주는 모습, 이 나라가 거쳐온 경로는 왜 이토록 한국과 다른가. 국가와 민족의 불일치라는 모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책 역시 ‘남과 북의 유사성’을 책 곳곳에 전제로 깔고 있으면서도 제목부터 주요 내용은 줄곧 ‘한국인’으로 쓰고 다룬다. 예전같으면 ‘한민족의 탄생’이라고 쓸 법도 하지만 분단 80년을 바라보는 지금 시점에선 그마저도 어색해져 버렸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는 단절된 적이 없다. 단절된 곳이 있다면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351쪽)”라고 하여 한국=한민족인 듯 표현하지만 실제 다루는 분석은 거의 전부 남한이라는 점에서 불일치가 도드라진다. 이래저래 진정한 한국인의 탄생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뱀다리[蛇足]이 책은 2023년 11월 초판이 나왔다. 2024년 10월 개정증보판이 나왔는데, 귀주대첩을 분석한 짧은 글을 추가했다는 것 말고 가장 눈길을 끈 건 책 표지디자인이다. 초판에는 기와집 처마가 날렵하게 하늘을 향하는 사진을 썼는데, 개정증보판에는 큼지막한 통마늘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늘이라는 존재 혹은 상징은 책에서 내세우는 주장과 꽤 잘 어울리는 물건이다.
  • 푸틴 “적이 대응못하는 초음속미사일 쐈다”…“북한 장군 부상”

    푸틴 “적이 대응못하는 초음속미사일 쐈다”…“북한 장군 부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텔레비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 ‘오레슈니크’라고 부르는 비핵 초음속 기술을 탑재한 탄도 미사일을 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바로잡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현대의 방공 시스템으로는 마하 10(초당 약 2.5~3㎞)의 속도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오레슈니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면서 “이 무기에 대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인도적 우려에 따라 이러한 유형의 미사일을 사용하기 전에 통보하겠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레슈니크 미사일을 쏜 것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브랸스크와 쿠르스크 지역을 향해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공급받은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와 스톰 섀도를 발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이 특수 군사 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목표는 달성될 것”이라며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겨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미사일 스톰 섀도 공격으로 북한군 장교가 인명 피해를 입었다고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단독으로 보도했다. WSJ은 익명의 서방 당국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고위 군 장교 사상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고위 북한 장교가 어떻게 부상을 입었는지 또는 그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WSJ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을 이끄는 장성 중 한 명이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라고 전했다. 김 부총참모장은 지난달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과 동행한 고위급 장교 세 명 중 한 명이다. 북한 특수부대 ‘폭풍군단’을 지휘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 부총참모장은 지난 6월 북한과 러시아가 유사시 군사원조를 약속하는 조약 체결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가까이서 수행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됐다. 20일 발사된 미사일 스톰 섀도 12발은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지역의 마리노의 한 마을에 있는 한 부지를 공격했다. 이 곳은 전선에서 약 30㎞ 떨어진 지점으로 여기 지휘소에는 북한 군인이 있었다고 러시아 블로거가 주장했다.
  • “정보 부족” 김정은이 믿는 김영복, 대체 누구…알려진 게 없는 남자

    “정보 부족” 김정은이 믿는 김영복, 대체 누구…알려진 게 없는 남자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을 이끄는 장성 중 한 명인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측근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그간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그의 정체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우크라이나와의 전투에서 군대를 이끌기 위해 ‘수수께끼의 남자’(미스터리 맨)를 보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부총참모장이 그간 대중에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김 부총참모장은 지난달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과 동행한 고위급 장교 세 명 중 한 명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한 성명을 통해 러시아에 입국한 500여명의 북한군 장교 가운데 김 부총참모장과 리창호 정찰총국장, 신금철 인민군 소장 등이 포함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부총참모장은 이번에 러시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리인’ 자격으로 군대를 지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만큼 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에서 보통 엘리트 장교들이 자주 언론에 등장하며 ‘스타’ 대접을 받는 것과 달리, 김 부총참모장은 지금까지 언론에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WSJ에 따르면 김 부총참모장은 한국 정부가 확보한 북한 관리 680여명에 대한 데이터에도 이름과 직위 정도만 기록되어 있을 만큼 정보가 부족한 인물이다. 최근 북한의 러시아 파병 전후 언론 노출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나이나 출신지 등 신원 관련 사항은 공개된 바 없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김 부총참모장이 이처럼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은 그가 그간 전쟁 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북한 특수부대를 지휘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김 부총참모장이 김 위원장의 신임을 쌓은 끝에 러시아 파병 북한군을 이끄는 요직까지 맡게 된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북한 내에서 김 부총참모장의 입지는 한층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 2017년 4월 진행된 열병식에서 ‘특수작전군사령관’으로 등장한 김 부총참모장은 올해 초 북한군 내 서열 3위로 꼽히는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이 올해 6월 체결된 이후로는 김 국무위원장 가까이에서 그를 수행하는 모습이 더욱 자주 관측되기도 했다. 전 연구위원은 북한 언론이 올해 들어 김 부총참모장을 부각한 것은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할 군사를 이끌 장성이 신임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러시아에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그를 숨겨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면서 “커튼 뒤에서 그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입증했다”고 말했다. WSJ는 복수의 북한 전문가를 인용해 김 부총참모장이 현재 북한군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며 “이번 러시아 파병 임무에 성공한다면 더욱 높은 지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사도광산 추도식 24일 열리지만…참석자도 추도사도 ‘아직도 협의 중’

    사도광산 추도식 24일 열리지만…참석자도 추도사도 ‘아직도 협의 중’

    일본이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에서 노동자를 추도하는 행사를 24일 연다. 다만 추도식이 나흘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주요 사항에 대해선 협의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을 기리는 의미가 진정성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일본 측이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는 아직 의문이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사도광산 추도식’을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 위치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개최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추도식에는 일본에서는 실행위원회 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민간단체 및 중앙정부 관계자가 참석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정부 대표단과 함께 사도광산에서 강제노역 피해자 유가족 11명이 동행한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한일 간 합의에 따른 것으로 원래는 매년 7~8월쯤 개최하기로 했다. 추도식은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추모의 뜻을 표하는 데 의의가 있다. 약속했던 시기를 넘겨 11월 말이 가까워져서야 추도식 개최가 결정됐지만 아직 정부 대표로 누가 참석할지도 확정이 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 측에 중앙정부의 정무관급(차관급) 이상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일본 측에서도 중앙정부 당국자가 참석하기로는 했지만 아직 누가 참석할지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 측 정부 대표가 정해지면 그에 맞춰 정부 대표를 보낼 방침이다. 행사 장소는 100명 안팎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알려졌다. 추도식에서 낭독될 추도사 내용에 대한 협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본 측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는 표현이 어느 정도 수위로 담길지에 따라 일본 측의 ‘성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추도식에는 사도광산에서 강제노역한 한국인의 유족 11명도 참석한다. 행정안전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확보하고 있는 강제동원 유족 가운데 사도광산에서 노역한 것으로 확인되고, 외교부로부터 사도광산 추도식 관련 연락을 받기를 동의한 유족 20여명 가운데 4가족, 11명이 사도광산에 직접 가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외교부는 유가족들을 모시고 설명회를 개최하기로도 계획했지만 개최 일자가 임박하게 결정되며 일일이 방문하거나 전화 연락 등을 통해 사도광산 추도식의 의미를 알리고 동행 의사를 물었다. 다만 추도식에서 유족들을 위한 별도의 식순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도 아직 협의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이 되도록 계속 요청해왔다”며 “추도식에서 유족 분들께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도록 행사 내용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협의가 이뤄진 내용 중에도 아쉬운 대목들이 지적된다. 추도식 공식 명칭인 ‘사도광산 추도식’에는 ‘노동자’라는 표현마저 빠져 누구를 위한 추도식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일본이 약속하고 주관하는 추도식이지만 유족들의 참석과 관련 숙소·항공편 등 소요 예산은 모두 한국 외교부가 부담한다. 주최 측에서 초청한 인사들만 추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식은 초청이지만 비용 부담이나 참석 대상자에 대한 연락 등 실질적인 초청 과정은 외교부에서 모두 진행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한일 간 합의에 따라 매년 개최되는 추도식에 희망하는 유가족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日사도광산 박물관 갔더니…“둔하고 재능 낮다” 조선인 비하 표현

    日사도광산 박물관 갔더니…“둔하고 재능 낮다” 조선인 비하 표현

    조선인 1500명이 강제 노역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운데 사도광산 인근 박물관의 조선인 전시에 ‘강제 노동’ 표현이 빠져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난 주말 사도광산 근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답사했는데 조선인 관련한 전시 내용에 오류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조선인의 가혹한 노동은 기술되어 있지만 ‘강제성’ 표현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일본은 한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전시한다고 유네스코에서 밝혔지만 ‘강제노동’ 등의 단어는 절대 찾아 볼 수 없었다”며 “또한 전시 판넬에 ‘반도인’이라는 표현이 다수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조선인’으로 명확히 바꿔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서 교수는 “‘반도인(조선인)은 원래 둔하고 기능적 재능이 극히 낮다’, ‘반도인 특유의 불결한 악습은 바뀌지 않아’ 등 조선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전시하고 있었다”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도광산은 조선인 약 1500명이 동원돼 강제노역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한국 정부는 그간 사도광산의 등재에 반대해왔으나,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관련 전시물 설치, 추도식 개최 등을 약속하면서 등재 결정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르면 9월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추도식은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채 지연됐다. 지난달 29일 교도통신, 니카타일보 등은 민간단체 등의 실행위원회 주최로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시민문화회관인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11월 24일 추도식을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한국 외교부는 “일자, 장소 등 구체사항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11월 24일’을 5일 앞둔 현재도 일정은 여전히 미확정이다. 지난 15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일은 추도식 일정과 참석자, 명칭 등을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추도식 관련해 계속 협의하고 있으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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