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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군함도… 日극우 또 역사 도발 시도

    이번엔 군함도… 日극우 또 역사 도발 시도

    日장관 “조선서 스스로 건너와” 조선인들이 강제로 동원돼 끔찍한 환경에서 혹사당했던 ‘군함도’(하시마)의 실체를 왜곡하기 위해 일본 극우세력이 또 하나의 역사 도발을 시도한다.  6일 일본 극우단체인 국제역사논전연구소에 따르면 이 단체는 다음달 2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회의실에서 ‘한반도에서 온 전시노동자에게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연다. 이 연구소는 홈페이지에서 “군함도가 강제징용자가 노역을 한 ‘지옥도(島)’라는 등 날조된 역사가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며 “이른바 ‘강제징용’과 군함도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과거 군함도에 살았다는 주민을 동원해 발언하도록 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할 계획이다. 연구소장인 야마시타 에이지 오사카시립대 명예교수는 산케이신문에 “전시 노동자들은 출신지의 구별 없이 결속이 강했다. 다양한 기록을 조사했는데 한국이 말하는 차별적인 사례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행사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민간 단체의 활동에 대해 하나하나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한반도 출신 노동자’의 유입 경로가 다양하다는 것을 적극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 중에서는 스스로 자유 의지에 의해 개별적으로 건너왔거나 (일제강점기)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모집 등에 따라 온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로서 이러한 것을 제대로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군함도에는 일제강점기 400~600명의 조선인이 끌려가 122명이 질병, 탄광사고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의 신청으로 2015년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한국당 “문 대통령의 김원봉 헌사, 귀를 의심”…김원봉 누구길래

    한국당 “문 대통령의 김원봉 헌사, 귀를 의심”…김원봉 누구길래

    자유한국당이 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원 추념사에 발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월원을 ‘살아있는 애국의 현장’이라고 지칭하며 “여기 묻힌 한 분 한 분은 그 자체로 역사이며 애국이란 계급이나 직업,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에게는 사람이나 생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며 대립하던 이념의 시대가 있었다”며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 임시정부가 좌우합작으로 창설한 광복군을 소개하고,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끈 조선의용대가 편입되면서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귀를 의심” “반국가적 망언” 현·전 의원들 비판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이런 광복군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설명한 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덧붙인 것을 문제삼았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에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추념사”라면서 “6·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이 정부에서 김원봉에게 서훈을 안기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보훈처를 넘어 방송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면서 “여기에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6·25 전사자들을 뒤에 모셔두고, 눈물로 세월을 견딘 가족들을 앞에 두고, 북의 전쟁 공로자에 헌사를 보낸 대통령이 최소한의 상식의 선 안에 있는지 묻고 싶다”며 “청와대와 집권세력이야말로 가장 극단에 치우친 세력이라 평가할 만하다”고도 했다.이만희 원내대변인 역시 논평을 통해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는 김원봉을 콕 집어 언급한 데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대통령의 언급이 김원봉 등 대한민국에 맞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까지 서훈하기 위한 이 정권의 분위기 조성용 발언은 아니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명진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 놈”이라며 “이보다 반(反)국가적, 반(反)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썼다. “내가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라며 “한국당은 뭐하나. 이게 탄핵 대상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투사…이념 떠난 평가 필요 김원봉 선생에 대한 정치적·역사적 판단이 엇갈리는 부분은 있다. 영화 ‘암살’, ‘밀정’ 등에서 항일단체 단장으로 그려졌던 그는 1919년 의열단을 꾸려 조선총독·일본군·친일파 등을 암살하고,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 기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일제는 김원봉 선생을 두고 “재외 반일 조선인의 거두”라고 표현하며 두려워했다.하지만 이런 업적에도 아직 그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데는 해방 뒤 월북한 행적 탓이 크다. 1947년 김원봉은 극우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자 남조선노동당 지도자 박헌영(1900~1955)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검찰총장)에 임명됐고 노동상(노동부 장관)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북한에서 최고위직으로 활동하다가 1958년 숙청됐다. 한국당은 김원봉 선생이 “6·25 남침의 공으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면서 그를 기리는 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은 김원봉 선생이 월북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당시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잡으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테러를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상황이 있었다고 전한다. 역사학계에서는 남북을 가른 이념이 아닌, 1945년 해방 전 행적을 기준으로 역사적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관련해 “좌우합작을 이룬 임시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좌우 이념의 갈등을 극복하고 애국에 뜻을 모으자는 취지”라면서 “애국을 위해 낡은 이념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의미인데 거꾸로 이를 문제삼아 다시 이념 공세에 나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문 대통령의 말은 역사적 사실이며 광복군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며 “약산 김원봉의 월북 이후 행적을 끌어들여 광복군 운동 자체를 색깔론으로 덧칠하는 일이야말로 역사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고의 독립투사조차 포용하지 못했던 뼈아픈 배척의 역사를 이제 뛰어넘을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 역시 논평을 내고 문 대통령이 ‘통합’을 강조한 데에 공감한다면서 “배는 좌현과 우현의 노가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룰 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현이 손을 놓고 있어 대한민국호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라며 “경제가 어렵다며 전국을 돌며 정부를 흔들고 있는 한국당은 본인들이 그 주범임을 깨우치고 이제라도 통합 대한민국으로 함께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학계 “독립운동 서훈, 이념 아닌 1945년 광복 기준으로 평가해야”
  • 현충원 내 친일파 11명… 이장과 친일 표기 사이

    현충원 내 친일파 11명… 이장과 친일 표기 사이

    간도특설대 창설 김백일 등 아직 안치 임정 계승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위배 ‘강제 이장’ 가족들 동의 안 해줘 불가능보훈처, 현충원 홈피에 친일 여부 표기 “묘 주변 조형물 세워 친일 행적 알려야”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친일파들이 여전히 국립묘지에 묻혀 있어 논란이 계속된다. 이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되기 전 국가유공자 등으로 인정받았는데 묘지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사회적 합의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5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대통령 산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 가운데 11명이 서울현충원(7명)과 대전현충원(4명)에 묻혔다. 같은 해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389명 중에는 63명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현충원 장군1묘역에 묻힌 간도특설대 출신 김백일이 대표적 사례다.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일제의 전략에 따라 만든 특수부대다. 정부의 친일규명보고서에 따르면 김백일은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1943년 9월 일제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장(훈5위경운장)을 받았다. 그는 해방 뒤 1946년 현재 국군의 모태인 국방경비대 창설을 주도했고, 1950년 6·25 전쟁에 참가했다.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 육군 중장으로 추서됐고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으면서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갖췄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강제로 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족들이 동의해 줄 가능성이 낮은데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도 없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를 검토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 전문위원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고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의 묘 주변에 조형물을 세워 친일 행적을 같이 표기해 알려야 한다는 대안도 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이런 내용의 국립묘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와 이를 탄압했던 친일인사의 묘지가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장되어 있는 것이 기막힌 우리의 역사”라면서 “조형물을 설치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3월부터 현충원 홈페이지의 안장자 정보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여부 등을 표기하고 있다.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친일파를 국립묘지에 두는 것은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면서 “보훈처가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현충시설에도 조형물을 세워 친일 행각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北김정은 3일 연속 활동공개…軍공연 군인가족과 기념촬영

    北김정은 3일 연속 활동공개…軍공연 군인가족과 기념촬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군 예술공연에 참여한 군인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사흘 연속으로 공개활동을 이어갔다. 조선중앙통신은 5일 “김정은 동지께서 6월 4일 인민무력성에서 조선인민군 제2기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서 당선된 군부대들의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일 고위 간부들과 함께 이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고결한 인생관과 높은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초소와 일터마다 혁명적인 문화를 창조하며 아름다운 삶을 수놓아가고 있는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에게 뜨거운 동지적 인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군인가족예술 소조원들이 앞으로도 군인들을 위한 사랑과 헌신으로 조국의 방선초소들을 금성철벽으로 다지고,당정책과 시대정신이 맥박치는 진군가로 온 사회에 혁명적인 투쟁기풍,약동하는 생활에 숨결을 더해준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속 빛내어 가리라”며 기대와 확신을 표명했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 이날 기념사진 촬영에는 김수길 군 총정치국장,리영길 군 총참모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등 군 지도부가 함께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씨줄날줄] 자이니치와 증오 발언/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자이니치와 증오 발언/황성기 논설위원

    불행히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 5월 28일 일본 가와사키시에서 2명 사망, 17명 중경상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직후 ‘재일(在日·자이니치) 코리안’의 범행으로 몰아가는 소문이 돌지 않을까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흉악 범죄만 일어나면 인터넷에선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자이니치의 소행이라는 페이크뉴스가 생산되고 확산됐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이 많이 사는 가와사키이니까 범인은 자이니치가 틀림없다.’ 예외없이 가와사키 사건 이후 인터넷과 SNS에서는 범인이 자이니치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커졌다. 오죽했으면 가와사키 시장이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를 부정했을까. 후쿠다 노리히코 시장은 “자이니치 코리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억측이 유표돼 넘치고 있다. 부적절하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도쿄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가와사키에는 1920년대 혹독한 식민지 정책과 공업화 발전에 따라 조선인들이 이주·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지금도 특정한 인종과 민족을 차별하는 헤이트스피치(혐오 표현) 집회가 자주 있는 곳이 가와사키다. 일본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일본의 흉악범죄 대부분은 자이니치’, ‘재일 조선인 범죄 데이터 베이스’ 등 경악을 금치 못하는 블로그나 사이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들 사이트에서는 2000년 도쿄 세타가야 일가 4명 살해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해댄다. 한때 일부 주간지에서 한국인 범인설을 보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23년 발생한 간토대지진 때 최대 6000명의 희생자를 낸 조선인 학살의 비극도 황당한 유언비어에서 시작됐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헛소문이 도쿄 등 간토 지방의 일본인을 자극했고, 고스란히 피해는 조선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찰 당국은 조선인 폭동을 우려하며 자경단 등의 학살 행위를 수수방관해 사태를 키웠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사회 대부분이 헤이트스피치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처벌 규정은 없지만 2016년 일본 국회가 헤이트스피치 규제법을 만들기는 했다. 가와사키시는 지난 3월 ‘차별이 없는 인권존중 마을 만들기 조례안’을 마련했다. 인종, 국적, 민족 등의 사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불평등하게 다루는 문제에 대해 일본 처음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실현된다면 일본에서 첫 조례가 된다. 흉악범죄 범인을 한국인으로 모는 ‘묻지마 자이니치’ 같은 불합리한 일들이 언제쯤 일본에서 사라질까. marry04@seoul.co.kr
  • 숙청됐다던 김영철 건재… 또 반복된 ‘北 악마’ 프레임 씌우기

    숙청됐다던 김영철 건재… 또 반복된 ‘北 악마’ 프레임 씌우기

    보수세력 이념 잣대로 오보 생산 되풀이 박지원 “김여정 근신설도 근거 없을 것”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노역형에 처해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온 지 사흘 만인 지난 2일 김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행보를 수행하며 건재를 드러낸 모습이 3일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과거에도 일부 언론이 북한 주요 인사의 처형설을 보도했다가 오보로 판명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의 잔혹한 이미지를 전파하기 위해 일부 보수세력이 ‘북한=악마’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전날 “조선인민군 제2기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서 당선된 군부대들의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관람했다”며 관람에는 부인 리설주 여사가 함께했고, 김 부위원장 등 당과 군 간부들이 동행했다고 보도했다. 김 부위원장은 당 부위원장 중에서는 관람에 불참한 박봉주·태종수·오수용 부위원장을 제외하고 9번째로 호명됐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13일 보도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2일 회의 기사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는데, 당시 당 부위원장 중에서는 12번째로 호명된 바 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4월 당 부위원장과 국무위 위원으로 선출된 이후 직책과 직위의 변동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지난달 31일 일부 언론은 김 부위원장이 해임된 후 자강도에서 강제 노역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의 노역설 보도가 나온 당시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신중론을 제기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보도 당일 “김영철은 당 부위원장과 장관급인 국무위원이 임명됐고 김정은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는데 혁명화까지 보냈을지 근거가 희박하다”고 했다. AP 등 외신은 김 부위원장 숙청 보도에 대해 과거 오보 사례를 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김 부위원장의 노역설과 함께 보도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근신설에 대해서도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자 백두혈통인 만큼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김혁철 국무위 대미특별대표 처형 보도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한미 정부의 발표를 믿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과거 현송월 당 부부장 겸 삼지연관현악단장도 2013년 음란물 영상을 봤다는 혐의로 처형됐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지만, 이듬해 조선중앙TV를 통해 현 부부장의 건재가 확인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리영길 총참모장이 처형됐다고 일부 언론에 흘렸으나 그가 석 달 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대규모 오보를 야기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관련 오보의 경우 북한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속성을 오히려 역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공포정치를 일삼는 김정은과는 대화와 협력해서는 안 되고 굴복시키고 붕괴시켜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특정 북한 인사들이 한동안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뢰하기 어려운 ‘대북 소식통’에 의존해 그들이 숙청 또는 처형되었다고 성급하게 단정 보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日서 전대미문의 소송...“연호는 헌법 위반” 결과는?

    [특파원 생생리포트]日서 전대미문의 소송...“연호는 헌법 위반” 결과는?

    일본에서는 지난 1일 나루히토 국왕이 즉위하면서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서기 2019년인 올해는 레이와 원년(1년)이 됐다. 내년 2020년은 레이와 2년이 된다. 일본 국민들은 새 시대를 맞아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저마다 환호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연호의 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무효를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소송이 31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구두변론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번 소송의 공동원고는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의 변호사 야마네 지로(82)와 전직 언론인 야자키 야스히사(86) 등 2명이다. 일왕의 대물림에 맞춰 이뤄지는 연호의 제정이 국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단절시키고,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두 사람이 소송을 낸 이유다. 이들은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에 따른 연호를 변경하도록 한 법령을 무효로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야마네 변호사는 1960년대 시즈오카에서 일어났던 재일조선인 김희로씨 사건과 도교대 야스다강당 투쟁으로 체포됐던 학생들의 변론을 맡았던 것으로 유명한 진보적 법조인이다. 그는 “나루히토 덴노(일왕)가 즉위한 5월 1일 0시는 카운트다운이 이뤄지는 축제와도 같았지만, 이를 통해 국민들은 군주에 지배되는 신민(臣民)으로 돌아가버렸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그는 200여년 만의 생전 대물림에 따라 이뤄진 이번 연호 교체는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에 따라 왕위 계승이 이뤄졌던 30년 전 ‘쇼와(昭和)→헤이세이’의 변경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야마네 변호사는 “연호는 국민주권을 원리로 하는 일본 헌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연호의 제정은 헌법이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는 개인의 존엄과 인격권을 침해한다”면서 “‘나는 나’라는 자기동일성 의식은 연속되는 시간 의식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연호의 변경은 이를 단절시켜 버린다”고 했다. 그는 특히 “연호를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의식속에 덴노의 존재를 느끼며 덴노의 치세를 살아간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야마네 변호사는 “정부가 연호법을 제정할 때 이를 국민에게 의무화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호적상 사망연도는 서기가 아닌 연호로 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호는 중국에서 황제가 시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에 기초해 기원전 140년 한나라 무제 때 시작된 ‘건원’(建元)에서 비롯됐다. 일본에서는 645년 ‘다이카’(大化) 이후 연호 변경이 247회 이어졌다. 에도 시대에는 왕위 계승 때만이 아니라 정치적 혼란이나 천재지변 등 다양한 이유에서도 연호 변경이 이뤄졌다. 왕의 재위시간과 일치하는 ‘일세일원’(一世一元)은 메이지 시대 왕실전범에 명기된 이후부터 적용됐다. 이때부터 왕이 즉위하면 새로운 연호를 제정하되 재위 중에는 바꾸지 않는 것으로 됐다. 그러나 연호제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는 전후 왕실전범이 폐지되면서 소멸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연호법의 제정을 추진했으나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연합국총사령부(GHQ)가 반대해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법적근거를 잃고서 하나의 ‘습관’으로 격하됐던 연호는 1979년 연호법 제정을 통해 공식 부활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주말 중국 선양에서 남북 민간교류 테이블, 경색 국면 물꼬 틀까

    주말 중국 선양에서 남북 민간교류 테이블, 경색 국면 물꼬 틀까

    남북 민간단체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중국 선양에서 만난다. 6·15 공동선언 남북 공동행사를 비롯한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 사업에 관한 논의가 있을 전망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지 주목된다. 22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에 따르면 남북 단체들은 23일부터 26일까지 북쪽 단체들과 순차적으로 만난다. 먼저 6·15 남측위와 6·15 북측위는 23~24일 실무협의를 갖고 6·15선언 공동행사 개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다. 정부는 단체 간 실무협의 결과에 따라 6·15선언 공동행사에 당국이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4~25일에는 재단법인 겨레하나가 북측 민화협과 실무협의를 갖는다. 그리고 26일에는 남측 민화협과 북측 민화협이 실무 협의를 개최한다. 민화협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조선인 유해 송환 문제도 북측과 협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강제 동원 피해 남북 공동토론회 개최도 북측에 제안할 계획이다. 민화협 관계자는 지난 20일 북쪽으로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해 의사 타진이 있었다고 밝혔다. 남북 단체들은 지난 2월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열어 노동, 여성,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이번 실무협의는 이런 논의의 연장선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남북 민간단체끼리의 접촉은 북쪽의 제안 없이 성사되기 어려워 이번 접촉 역시 북쪽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으로 보여 경색 국면을 해결할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민화협 관계자는 “당국 간 관계가 경색되긴 했지만, 북쪽은 이런 상황과 별개도 남북 민간 교류와 협력에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몽’ 김립-박에스더 이어 이태준까지 “독립운동가 본격 재조명”

    ‘이몽’ 김립-박에스더 이어 이태준까지 “독립운동가 본격 재조명”

    MBC ‘이몽’이 박에스더-김립에 이어 이태준까지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들을 브라운관으로 되살리며 안방극장에 뭉클함을 선사하고 있다. MBC 특별기획 ‘이몽’(연출 윤상호/ 극본 조규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 특히 ‘이몽’은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드라마로 매회 현존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언급되어지며 보는 이들의 심장을 뜨거워지게 만들고 있다. 우선 1-2화에서는 조선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를 모티브로 탄생한 에스더(윤지혜 분)가 등장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실제 박에스더는 헌신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매년 평균 5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일생을 조국에 받친 독립운동가. ‘이몽’에서 재탄생된 에스더는 조선인 여의사로 제암리 학살 사건을 일으킨 일본 육군 소장 나구모(임철형 분)에게 복수를 시도하지만 안타깝게 실패하며 이영진(이요원 분)에게 충격을 선사한바 있다. 강렬한 첫 회 엔딩을 장식했던 에스더의 죽음은 남녀노소 일제에 항거하며 목숨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절박함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독립운동가 ‘김립’을 언급해 이목을 끌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김립은 실제 러시아로부터 받은 독립운동 자금을 운반했던 인물이다. ‘이몽’은 김립의 사망과 독립운동 자금 행방불명 사건으로 시작된다. 극중 임시정부와 의열단이 대립하게 된 계기가 된 본 사건 이후 자금책으로 추정되는 유태준(김태우 분)을 찾기 위해 이영진과 김원봉(유지태 분)이 만주로 향하고 그곳에서 만주 대전투까지 이어지며 처절한 독립투쟁의 장엄한 서막을 열었다. 무엇보다 지난 18일 방송에서는 죽음 앞에서도 독립에 대한 열망을 굽히지 않았던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열사의 삶이 재조명 돼 시청자들을 울컥케 했다. 이태준 열사는 당시 몽골인들에게 근대적인 의술을 펼쳐 오늘날 한국-몽골 친선의 상징이 된 인물로, 코민테른 자금 운송에 깊숙이 관여하며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독립운동가. 이에 ‘이몽’은 이태준 열사를 유태준으로 등장시켜 관심을 높였다. 특히 극중 유태준은 코민테른 자금을 뺏으려는 관동군(만주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부대)이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댄 순간에도 독립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강렬하고 묵직한 전율을 선사한 바. 독립을 위해 장렬한 죽음을 택했던 이태준 열사의 실제 삶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처럼 ‘이몽’은 박에스더-김립-이태준 뿐만 아니라 김원봉, 김남옥(조복래 분)으로 등장한 김상옥, 지청천, 신채호, 지복영, 김구, 이동휘, 오광심(옥자연 분), 이상룡, 이준형(손병호 분) 등 목숨을 건 독립운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들을 극 속으로 되살리며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각종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찾아보게 된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 좋다”,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마지막에 독립크레딧 띄워주는 거 너무 좋아요”, “역사에 대해 다시 되새기게 되는 드라마. 볼 때마다 울컥하네요” 등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한편, 지난 9-12화에서는 유태준의 죽음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이영진과 김원봉(유지태 분)의 모습이 그려져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경성으로 돌아온 이영진은 김원봉의 아지트에 입성했고, 그 곳에 있던 김남옥-김승진(김주영 분)-차정임(박하나 분)-마자르의 만남이 그려져 독립을 위해 한 뜻으로 뭉친 이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MBC 특별기획 ‘이몽’은 이요원-유지태-임주환-남규리-허성태-조복래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진, ‘사임당 빛의 일기’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한 윤상호 감독, ‘아이리스’ 시리즈를 집필한 조규원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안방극장에 선보이자마자 높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매주 토요일 밤 9시 5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포토] 샤넬·아디다스… 대형쇼핑몰로 탈바꿈한 북한 백화점

    [포토] 샤넬·아디다스… 대형쇼핑몰로 탈바꿈한 북한 백화점

    지난 4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개장한 평양 대성백화점에서 아디다스와 나이키 등 브랜드를 판매 중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18일 공개한 사진. 2019.5.18 평양 조선신보=연합뉴스
  • ‘이몽’ 이요원, 김태우 죽음에 각성..‘이태준 열사’ 재조명 “전율”

    ‘이몽’ 이요원, 김태우 죽음에 각성..‘이태준 열사’ 재조명 “전율”

    MBC ‘이몽’ 이요원이 김태우의 죽음에 각성했다. 김태우의 복수를 위해 총을 든 이요원은 유지태에게 두 번째 정체가 ‘한인애국단’임을 밝힌 뒤 경성에서 본격적인 공조의 시작을 알려 관심을 높였다. 18일 방송된 MBC 특별기획 ‘이몽’(연출 윤상호, 극본 조규원) 9-12화에서는 유태준(김태우 분)의 죽음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이영진(이요원 분)과 김원봉(유지태 분)의 모습이 그려져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영진-김원봉은 각자의 속내를 감춘 채 코민테른 자금의 총책으로 알려진 유태준과 만주에서 접선했다. 이때 유태준은 이영진에게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거야. 내 딸이 부르는 노래가 언제까지나 조국의 언어이길. 내 딸이 자유롭게 살아갈 삶의 터전이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묻힌 조국의 땅이길 바래”라며 독립운동에 목숨을 건 이유를 밝혀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에 이영진은 상하이에서 김구(유하복 분)를 만나라 제안했고, 유태준 또한 상하이행을 결정해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유태준은 상하이로 향할 수 없었다. 앞서 김원봉의 총에 맞아 기차에서 떨어진 로쿠(유상재 분)를 구한 관동군(만주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부대) 대위 무라이(최광제 분)는 유태준이 가진 코민테른 자금의 금액을 듣고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이영진-김원봉-김남옥(조복래 분)과 민병대까지 모두가 코민테른 자금을 운반하던 폭탄제조 기술자 마자르(백승환 분)를 구하러 나간 사이 일은 벌어졌다. 유태준의 오두막터를 덮친 무라이는 숨겨둔 돈을 찾지 못하자 마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했다. 하지만 유태준은 “십 년이 지나도 백 년이 지나도 너희들이 저지를 죗값 반드시 치르게 될 거다”라며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울컥하게 했다. 이후 마자르를 구해 돌아온 이영진-김원봉은 처참한 현장의 모습에 분노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그렇게 이영진은 각성했다. 유태준의 복수를 위해 관동군 무라이 부대 주둔지로 향한 이영진-김원봉은 김남옥과 민병대가 전투를 벌이는 사이 지하 터널을 이용해 주둔지 안으로 진입했다. 이내 무라이와 마주한 두 사람. 싸늘한 눈빛으로 무라이를 바라보던 이영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방아쇠를 당겨 그를 처단했다. 그렇게 유태준의 복수에 성공하고 돌아온 이영진은 “난 판세를 바꿀 생각입니다”라며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김원봉에게 “저도 도울게요”라며 공조의 뜻을 드러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이영진은 경성으로 향하기 전 김원봉에게 ‘한인애국단’ 소속임을 밝히며 악수를 제안했고, 그를 끌어당겨 등을 토닥이는 김원봉의 모습이 그려져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여전히 임시정부의 밀정 ‘파랑새’라는 정체는 밝히지 않은 상황. 이에 이영진이 경성에서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궁금증이 모아진다. 이후 경성으로 돌아온 이영진-김원봉. 이영진은 그 동안 거부해왔던 총독부 병원 생활을 택했고, 김원봉은 아지트 겸 작업실로 양장점을 열고 고순도의 폭약을 만들기 위해 안동에서 독립운동가 이준형(손병호 분)을 만나는 등 본격적인 행동을 위한 발판을 다졌다. 더욱이 김원봉의 아지트에 입성한 이영진과 그 곳에 있던 김남옥-김승진(김주영 분)-차정임(박하나 분)-마자르의 만남이 그려져 독립을 위해 한 뜻으로 뭉친 이들의 활약에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이영진을 기다리던 후쿠다(임주환 분)는 그를 돕기 위해 법무국장 오다(전진기 분)에게 마쓰우라가 이끄는 특무1팀을 자신에게 맡겨 달라 제안했다. 하지만 말미 이영진-김원봉이 함께 양장점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눈을 떼지 못하는 후쿠다의 굳은 표정이 포착돼 이들이 얽히고 설키며 펼쳐질 이야기에도 궁금증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이몽’은 죽음 앞에서도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내비쳤던 이태준 열사(극중 이름 ‘유태준’)의 삶을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가슴에 먹먹한 울림을 선사했다. 더욱이 같은 목표를 향해가던 유태준의 처절한 죽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이영진-김원봉의 모습은 보는 이들까지 눈물짓게 했다. 이에 앞으로 또 어떤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해 안방극장에 묵직한 전율을 선사할지 기대감이 상승된다. ‘이몽’ 방송 직후 각종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영화 한 편 보는 것 같았다”, “끝에 독립운동가들 나올 때 가슴이 뭉클해져요”,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연기 구멍도 없고 내용도 좋고 심장도 쫄깃함”, “토요일은 ‘이몽’ 보는 낙으로 산다”,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다”, “경성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기대돼요” 등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한편, MBC 특별기획 ‘이몽’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 매주 토요일 밤 9시 5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몽’ 이태준 열사 본격 등장 “가장 슬프고 사실에 가까워”

    ‘이몽’ 이태준 열사 본격 등장 “가장 슬프고 사실에 가까워”

    MBC ‘이몽’에 ‘이태준 열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 열사의 강렬하고 뭉클한 독립운동이 그려질 것으로 기대감이 고조된다. MBC 특별기획 ‘이몽’(연출 윤상호/ 극본 조규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이요원 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유지태 분)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 재조명한 독립 투사들의 뜨거운 삶과 배우들의 진정성 깊은 열연으로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가운데 독립 투사 박에스더-김립에 이어 이태준 열사를 브라운관으로 되살릴 예정이라고 전해져 관심이 높아진다. 지난 5-8화 방송에서는 코민테른 자금의 큰 줄기로 지목된 독립 투사 유태준(김태우 분)이 등장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선총독부, 임시정부, 의열단 등 자신을 찾는 이들을 피해 만주에 몸을 숨긴 유태준. 그는 제대로 된 의료장비도 없는 간이병원에서 관동군에게 습격 당한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으로 첫 등장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에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은 유태준이 이영진-김원봉과 만주에서 어떤 이야기를 그려나갈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유태준은 실존 인물인 몽골에서 혁명운동에 참여했던 독립 투사 이태준 열사를 모티브로 탄생한 캐릭터이기에,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감이 모아진다. 극중에서처럼 코민테른 자금 운송에 깊숙이 관여했던 이태준 열사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미신적인 치료법 만을 알고 있던 몽골인들에게 근대적인 의술을 펼쳐 오늘날 한국-몽골 친선의 상징이 된 인물. 이에 2019년 ‘이몽’으로 재조명될 이태준 열사의 뜨거운 삶에 관심이 고조된다. MBC ‘이몽’ 제작진은 “이번 주 방송에는 항일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이태준 열사의 실제 업적과 인생을 바탕으로 구성한 유태준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극중 가장 슬프고, 사실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면서, “만주를 배경으로 유태준과 이영진-김원봉이 펼쳐나갈 독립운동기를 기대해달라”고 밝혀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MBC 특별기획 ‘이몽’은 이요원-유지태-임주환-남규리-허성태-조복래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진, ‘사임당 빛의 일기’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한 윤상호 감독, ‘아이리스’ 시리즈를 집필한 조규원 작가가 의기투합한 2019년 5월 최고의 기대작. 오는 18일 토요일 밤 9시 5분에 9-12화가 연속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글로벌 In&Out] 1946년 김일성의 소련 첫 방문/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1946년 김일성의 소련 첫 방문/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지난 4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러시아 매체는 김 위원장 재선 후 첫 방문 국가로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강조하면서 그의 방문을 높이 평가했다. 정상회담은 일대일 회담 2시간을 포함해 무려 3시간 30분 정도 진행됐다. 공식 문서 서명식은 없었지만 북러 지도부 간에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 초대 지도자 김일성의 첫 소련 방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일성의 첫 소련 방문은 1946년 6월 말~7월 초로 알려져 있다. 1945년 8월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북한에 주둔한 일본군을 격파했다. 북한 점령을 맡은 소련군 사령부는 북한 각지에 위수사령부를 설치했으며 평양시 위수사령관 부책임자로 김일성을 임명했다. 김일성은 북한에 도착하자 정치적 활동을 전개했으며 1945년 10월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책임비서로 선출됐다. 1946년 초 모스크바 결정에 대해 결사반대를 표시한 조만식이 인민위원회의 위원장에서 축출당한 후 김일성은 1946년 2월에 새로 조직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됐으며 사실상 북한의 지도자가 됐다. 1946년 6월 말 조선 대표단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 내각수상을 만났다. 소련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됐지만 이 회담 관련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그 회담이 실제했고 참가자 중에 김일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밝혀 주는 자료가 있다. 3년 후인 1949년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를 재방문해 스탈린을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스탈린: 지난번에 (북한서) 모스크바에 두 명이 왔는데 (박헌영을 향해) 당신이 그중 한 명인가? 박헌영: 그렇다. 스탈린: 김일성과 박헌영 둘 다 살쪄서 이제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확인된다. 하지만 1946년 스탈린과의 회담내용을 밝혀 주는 신뢰도가 높은 문서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많은 관계자가 사료 가치가 비교적 낮은 회고록과 인터뷰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주재 소련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파냐 샤브시나가 1992년에 쓴 ‘식민지 조선에서’라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1946년 7월 쉬띄꼬프가 남편을 갑자기 평양으로 호출했다. 그는 북한 지도자들과 함께 스딸린을 만나기 위해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왔다. (중략) 대담은 많은 것에 대해 진행되었다. 가까운 미래와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모든 공장들을 북한에 인민들의 재산으로 남겨두겠다고 공고한 것이 합목적적인가, 남한에서는 이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였다. 스딸린은 병합 전에 조선이 어떻게 불렸는가, 인민들은 또다시 그들에게 왕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가 하는 등등으로 물었다. 조선인들은 공화국은 원한다고 조선인 동지들이 대답했다. (중략) 스딸린에 의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공산당이 사회민주당이나 또는 노동당이라고 자신을 공개할 수는 없는가, 그리고 당 앞에 가까운 장래의 과제를 세울 수는 없는가. 그런 문제의 논의를 준비하지 않았던 듯싶은 북한 지도자들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것이 가능하긴 하나 인민들과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 스딸린은 이렇게 내뱉었다. “인민이 뭐야, 인민은 농사를 짓고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물론 예전의 소련과 오늘의 러시아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에 큰 차이가 있지만, 김정은의 방러에서 러시아가 북한 지도부에 여전히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점은 확인된 것 같다.
  • [포토] ‘화력타격훈련 지도’ 김정은, 만면에 미소

    [포토] ‘화력타격훈련 지도’ 김정은, 만면에 미소

    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 위원장이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 北, 서부전선 부대 ‘장거리타격수단’ 훈련, 미사일추정체 공개

    北, 서부전선 부대 ‘장거리타격수단’ 훈련, 미사일추정체 공개

    김정은 참관 “정세 맞게 전투임무수행 제고”자위권 확보 통상훈련으로 주장할 듯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장거리 타격수단을 동원한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동지께서 9일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지휘소에서 여러 장거리 타격수단들의 화력훈련계획을 요해(파악)하시고 화력타격훈련 개시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참관에서 “조성된 정세의 요구와 당의 전략적 의도에 맞게 전연과 서부전선 방어부대들의 전투임무수행능력을 더욱 제고하고 그 어떤 불의의 사태에도 주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나라의 진정한 평화와 안전은 자기의 자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고 강조했다. 합동참모본부가 전날 파악해 발표한 북한 발사체의 비행 거리·고도로 미뤄 북한이 언급한 ‘장거리 타격수단’은 통상 사거리 5000㎞ 이상 되는 ‘장거리 미사일’과는 다른 의미로 보인다. 합참은 북한이 9일 오후 4시 29분과 4시 49분쯤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불상 발사체 각각 1발씩 2발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합참은 추정 비행거리가 420여㎞, 270여㎞였고, 정점고도는 두 발사체 모두 50여㎞였다고 밝혔다. 이날 중앙통신이 공개한 훈련 사진에는 미사일로 보이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수직으로 치솟는 장면이 담겼다.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같은 무기로 보인다. 지대지 탄도미사일의 일종인 이스칸데르는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비행거리가 최대 300여㎞로 추정된다. 고체연료 용량에 따라 사거리는 더 늘어날 수 있어 군사분계선(MDL) 근처에서 쏠 경우 남한 중부권 이남까지 타격권에 들어간다. 북한은 이번 발사에 대해서도 자위권 확보 차원의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발사와 마찬가지로 한미군사연습에 대한 반발·대응과 함께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려는 압박 의도로 보인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타격훈련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며칠 전 동부전선 방어부대들도 화력타격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였는데 오늘 보니 서부전선방어부대들도 잘 준비되어있고 특히 전연부대들의 화력임무수행능력이 훌륭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조선인민군 전연 및 서부전선 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능력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방향적인 중요한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전했으나 구체적인 과업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신속방어능력을 판독 검열하기 위해 기동과 화력습격을 배합하여 진행된 이번 훈련은 전연과 서부전선 방어부대들의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며 성과적으로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관에는 김평해·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조용원 당 제1부부장 등 간부들이 동행했다. 현지에서 박정천 포병국장(육군대장) 등 군 지휘관들이 영접했으나, 미사일을 담당한 전략군의 김락겸 사령관은 참석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 앞서 지난 8일 외무성 대변인은 4일 발사에 대해 “정상적이며 자위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밝혔고, 장성급회담 북측 대표단 대변인도 남쪽에서 치러진 한미합동훈련에 대한 대응조치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섹션TV’ 임주환 고백 “유지태와 연기 위해 운동 열심히 했다”

    ‘섹션TV’ 임주환 고백 “유지태와 연기 위해 운동 열심히 했다”

    ‘섹션TV 연예통신’에 드라마 ‘이몽’의 주역들이 뜬다. 오늘(9일) 밤 방송되는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드라마 ‘이몽’의 주역 이요원, 유지태, 임주환, 남규리와의 인터뷰가 공개된다. MBC 특별기획 ‘이몽’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이요원 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유지태 분)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이요원은 ‘이몽’에 대해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같이 찍은 작품”이라 전하며 이번 드라마의 매력을 소개했다. 이어 유지태는 제목에 ‘이도일몽’이라는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하며 “‘이몽’의 김원봉은 또 다를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주환은 극 중 이요원과 남규리가 각각 연기한 ‘이영진’과 ‘미키’에 대해 “이영진은 고혹적이고 정돈된 느낌이 있다면, 미키는 화려하고 액티브하다”며 캐릭터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어 “성격은 정반대다. 이요원은 시끄럽고, 남규리는 조용하다”고 전하며 이요원을 발끈케 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배우들은 서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규리는 가수 활동 경험이 이번 역할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질문에 “예전이랑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어려웠다”고 밝혔고, 이에 이요원은 “프로는 프로더라. NG 하나 없이 끝내서 놀랐다”라며 남규리의 연기를 칭찬해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또한 이요원은 과거 유지태와 광고를 찍었다고 밝히며 “그대로시다. 20대의 열정을 가지고 임하셔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임주환도 유지태를 보고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좋은 본보기가 되었음을 밝혔다. 이에 유지태는 소고기를 사겠다고 말해 현장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임주환은 피지컬 좋은 유지태와의 연기를 위해 몸을 키웠다고 전하며 “단기간의 운동으로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살을 좀 찌웠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유지태의 어깨너비를 줄자로 직접 측정해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MBC ‘섹션TV 연예통신’은 9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북한 닷새만에 발사체 발사한 신오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

    “북한 닷새만에 발사체 발사한 신오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

    북한이 9일 발사체를 발사한 평안북도 신오리는 스커드와 노동미사일 기지가 운용되는 곳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두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이곳을 ‘미공개 미사일 기지’라고 발표해 미국 내 대북 협상 회의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CSIS의 ‘분단을 넘어’가 지난 1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오리 미사일 기지는 군사분계선에서 212㎞ 떨어져 있고, 연대 규모의 노동 1호 중거리 탄도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 이 기지는 북한이 보유한 20여곳의 미사일 운용 기지 중 가장 오래된 기지 중 하나이며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노동 미사일 여단 본부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SIS는 “신오리 기지는 2017년 2월 12일 첫 시험발사된 북극성 2호(KN15) 탄도미사일의 개발에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신오리 기지와 이 기지에 배치된 노동 미사일은 한반도 전역과 일본 열도 대부분에 대한 핵이나 재래식 탄두를 이용한 전술 선제 타격 능력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신오리 기지는 주변에 배치된 방공포대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고 CSIS는 설명했다. 반면 한국 정부와 다른 연구기관들은 신오리 기지가 오래전부터 알려진 곳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CSIS 보고서가 나오자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신오리 기지는 한미 공조하에 감시하고 있는 시설”이라고 했다. 미국 ‘디펜스 프라이오러티스’의 대니얼 드페트리스 연구원도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에 “워싱턴의 비확산 연구기관인 ‘핵 위협 이니셔티브’는 신오리 기지에 대해 2003년부터 알고 있었다”며 “실제로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시설을 확대한다는 사실은 새롭지도, 놀랍지도, 특별히 극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앞서 영국 군사정보업체 IHS 제인스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전역의 미사일 기지 17곳과 운용 무기들을 상세히 소개하며 신오리와 구성 등 6개 미사일 기지가 비무장지대(DMZ)에서 150㎞ 이상 떨어진 북부 지역에 위치한다고 공개한 바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
  • 대북지원 추진 와중에…北매체 ‘핵대결 재현’ 언급 왜

    대북지원 추진 와중에…北매체 ‘핵대결 재현’ 언급 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9일 비핵화 협상의 기회가 상실되면 ‘핵대결’ 국면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북한은 베트남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의 ‘하노이 노딜’ 이후 북러 정상회담과 북한의 ‘발사체’ 발사 등 일련의 북한의 군사 행보가 자위적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4일에 이어 5일 만인 이날 추가 발사체까지 쏘았다. 조선신보는 이날 ‘조선 언론이 전하는 군사 동향의 자위적 성격’ 제목의 기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 4일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지난달 16일 국방과학원 신형전술유도 무기 사격시험 지도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강력한 군력에 의해서만 평화가 보장된다는 철리, 조성된 정세 하에서 자위의 원칙을 견지하며 나라의 방위력을 다져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르는 행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미국에 시한을 준 만큼 당장 “조선이 그 누구를 겨냥한 도발에 시간을 허비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면서도 “조선이 제시한 시한 내에 미국 측이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지 못하고 제3차 수뇌회담이 열리지 않는 경우 상황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특히 “핵 협상의 기회가 상실되면 핵대결의 국면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북한이 2017년 이전처럼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 한반도 정세가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40여일만인 지난달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면서도 ‘대화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으며 미국이 고수하는 ‘일괄타결에 의한 빅딜’이 아닌 새 해법을 갖고 나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신문은 이어 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하노이 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후 조선반도와 지역 정세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선신보는 또 하노이 노딜 이후 “핵 협상이냐, 핵 대결이냐의 양자택일에 직면한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자기 입장을 정립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합의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대화 재개의 의향을 표시했으나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화적인 메시지가 계속 발신된다 한들 올해 말까지 조선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해결의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북한을 긍정적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며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해 심각한 도발이 아닌데 양 정상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양 정상은 북한이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조기에 협상을 재개하자는 방안도 논의했으며 대북식량지원이 거론됐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시의적절하고 긍정적 조치”라고 지지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다음날 대북 식량지원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9일 국회에서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으며 방식·시기 등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정리가 되는대로 통일부에서 밝힐 것”이라고 확인했다. 백악관 저드 디어 부대변인도 “두 정상이 북한의 최근 상황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FFVD) 달성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유화 제스처에 ‘우리 뜻대로 협상 안 되면 핵 대결’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한편 북한은 이날 또다시 추가 발사체를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오후 4시 30분쯤 평안북도 신오리 일대에서 불상의 발사체를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4일 오전 9시 6분부터 10시 55분까지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 상으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해 240㎜, 300㎜ 방사포 등 다수의 단거리 발사체를 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美국방부 “북한 내 미군 병사 유해 발굴·반환 작업 모두 중단”

    美국방부 “북한 내 미군 병사 유해 발굴·반환 작업 모두 중단”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중단했다고 미국 CNN과 영국 BBC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당국과의 의사소통 단절로 미군 유해 찾기 노력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척 프리처드 DPAA 대변인은 “북한 관계자들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DPAA와 소통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2019년 합동 유해 발굴 작업 재개 가능성에 대한 북조선인민군과의 교신 노력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미군 유해 반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첫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증거로 오랫동안 홍보해 온 사안이다.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 유해 55구를 미국에 반환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서 돌려준 유해 가운데 두 명의 미군 병사 신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전쟁 때 사망한 미군 병사는 3만 6000명으로 집계된다. DPAA에 따르면 아직도 7700명 이상 미군 병사들의 유해를 찾지 못했는데 이 가운데 5300명이 북한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결렬된 데 이어 최근 북한의 발사체 발사 등으로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유해 발굴 작업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지난 4일 로켓과 최소한 한 발의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했으며 정상적·자위적 군사훈련이었다고 8일 주장했다. 북한의 발사체 발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이 북한의 위대한 경제적 잠재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방해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며 “또한 내가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다. 협상은 진행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태평양전쟁 터지자… 일제는 모든 조선 영화사를 강제 통합했다

    태평양전쟁 터지자… 일제는 모든 조선 영화사를 강제 통합했다

    1940년 전후 조선영화는 일본영화계와 협업하고, 조선총독부 당국과 협상하며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제작 궤도에 오른 듯 보였지만 이것은 조선영화인들의 열망이 과도하게 앞선 탓에 그들에게 일종의 착시감을 준 것이었다. 조선영화계는 자본도 기술도 장비도 여전히 빈곤했고, 일제 당국은 더 강하게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반영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하고 최인규가 연출한 ‘수업료’(1940)와 ‘집없는 천사’(1941)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영화는 일본 시장에서의 흥행도, 일제의 영화로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시기 조선의 민간 영화사들은 당국의 국책영화 시스템 속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갔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은 이를 더욱 가속시켰고, 1942년 5월 사단법인 조선영화배급사와 9월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설립되며 조선영화는 본격적인 전시체제 국면으로 진입했다. 특히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는 일제가 조선의 모든 민간 영화사들을 강제로 통합해 만든 제작사였다. 이는 1944년 4월 조선영화배급사로 통합되어 사단법인 조선영화사가 되었고, 최인규는 이곳에서 국책선전영화 ‘태양의 아이들’(1944)과 ‘사랑과 맹세’(1945)를 연출하며 해방 직전까지 필모그래피를 이어갔다.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최인규의 영화들을 통해 ‘조선영화’의 본질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향린원 설립’ 방수원 목사 실화 ‘집없는 천사’ ‘집없는 천사’는 ‘수업료’에 이은 최인규의 세 번째 작품이자 고려영화협회의 세 번째 작품이다. 사실 고려영화협회(이하 ‘고영’)는 제작부터 배급까지 사업 범위로 삼았던 고려영화사의 산하 프로덕션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였던 이창용은 1930년대 후반 일제 당국과 적극적으로 교섭하며 조선영화의 생존을 모색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최인규는 ‘고영’의 창립작이었던 ‘복지만리’(1941)의 감독 전창근과 함께 제국주의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소재로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의 영화시장을 겨냥해 영화를 만들었다. ‘집없는 천사’는 경성의 부랑소년들을 모아 함께 생활한 향린원(香隣園)의 설립자 방수원 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창용은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 촉탁이었던 니시키 모토사다에게 시나리오를 맡겼고, 일본의 영화평론가 이지마 다다시로부터 감수를 받았다. 소학교 4학년 어린이의 작문을 원작으로 일본영화계의 중견 작가 야기 야스타로가 시나리오를 썼던 ‘수업료’의 작업 방식과 유사하게 진행하면서 더욱 만전을 기한 것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어 대사는 임화가 썼다. 음악 역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이토 센지가 ‘수업료’에 이어 다시 맡았고, 1940년부터 일본 쇼치쿠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김준영(일본 이름 아사히나 노보루)까지 합류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기본으로 한 테마 음악은 그의 선택으로 보인다. 세트 촬영 역시 ‘수업료’를 촬영한 ‘고영’의 남대문촬영소에서 진행했고, 촬영은 김학성, 녹음은 양주남이 맡았다. 영화의 도입부 카페 전체 공간을 훑는 장면이라든지 영화 전반의 쇼트를 연결시키는 감각에서 볼 수 있듯이 최인규의 연출력은 조선영화 발굴작 중 단연 뛰어나다. 영화는 부랑아집단에서 앵벌이 생활을 하는 명자(김신재)와 용길 남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부랑아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친 용길은 길거리 고아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방성빈(김일해) 목사를 만난다. 고아들을 위한 사업을 구상하던 그는 아내 마리아(문예봉)를 설득하고 그녀의 오빠인 의사 안인규(진훈)로부터 공간을 지원받아 고아들과 함께 향린원을 만들어간다. 긴 장마가 끝난 어느 날, 향린원에서 도망가려는 아이들을 말리다 물에 빠진 용길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방 목사는 급히 안 의사를 부른다. 이 사건으로 안 의사 밑에서 간호 일을 배우던 명자는 용길과 재회한다. 영화는 아역 배우들뿐만 아니라 실제 향린원 원아들이 직접 출연해 사실감을 더하고 있다. ●경성 시사회는 ‘북적’… 조선어 썼다고 8분 삭제 ‘수업료’와 마찬가지로 ‘집없는 천사’ 역시 조선에서의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정확한 흥행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경성다카라즈카극장에서의 유료 시사회부터 관객들의 행렬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공개는 결국 개봉하지 못한 ‘수업료’ 경우처럼 만만치 않았다. 일본의 배급사 도와상사는 조선군 보도부의 추천을 거쳐 조선영화 최초로 문부성의 추천까지 받아 개봉을 준비했지만 개봉 직전 내무성으로부터 재검열을 받고 문부성 추천 역시 취소되었다. 결국 218m(8분가량)가 잘린 개정판으로 개봉된다. 당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 속 조선어의 사용과 복장이 문제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복장 문제는 영화 속 부랑아집단의 우두머리로 등장한 윤봉춘이 일본의 전통적인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당시 경성 시내 부랑아들 숫자는 1000명 정도였다고 기록되는데, 이러한 현실을 드러낸 것 역시 일제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구제하는 주체가 기독교의 조선인 목사라는 점도, 그가 영화 내내 자립을 강조하는 것도 용인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는 도쿄의 쇼치쿠계에서 개봉했지만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고, 교토 등 다른 도시에서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수업료’와 ‘집없는 천사’는 제국 일본의 영화를 지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조선총독부·해군성 후원받은 ‘사랑과 맹세’ 일제 말기 최인규의 마지막 연출작인 ‘사랑과 맹세’는 일제의 국책영화사인 사단법인 조선영화사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크레디트를 보면 해군성과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해군보도부의 지도를 받았다. 고려영화협회의 기획으로 일본 도호영화가 제작했던 ‘망루의 결사대’(1943)에 이어 이 영화 역시 도호가 사실상 합작의 형태로 지원했다. ‘수업료’의 시나리오 작가 야기 야스타로뿐만 아니라 다카다 미노루 등 도호 출신의 배우들도 참가했다. 1989년 영상자료원이 일제 말기 국책선전영화인 ‘망루의 결사대’, ‘젊은 모습’, ‘사랑과 맹세’ 3편의 필름을 도호영화로부터 수집할 수 있었던 배경인 것이다. ‘사랑과 맹세’는 ‘망루의 결사대’를 연출한 이마이 다다시가 공동 연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랑과 맹세’는 조선에서 만들어진 국책영화 중 처음으로 일본 해군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다뤘다. 일본 해군의 후원과 지도를 받았다는 크레디트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영화는 조선인 고아 김에이류(영룡의 일본어 발음)가 일제의 해군 병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경성신보사 기자였던 무라이 소위(독은기)는 가미카제 출정 전 시라이 국장(다카다 미노루)을 찾아와 김에이류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원래 에이류는 종로의 부랑아였는데, 시라이가 입양해 보살피고 있다. 무라이는 미국의 항공모함에 돌진해 전사하고, 신문에는 그의 순직 기사가 실린다. 국장 부부는 무라이 소위의 고향 집을 방문해 그의 아버지인 교장(시무라 다카시)과 조선인 아내 에이코(김신재)를 만난다. 교장은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다른 무라이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에이코는 상하이에서 귀환할 때 남동생을 잃어버렸고 이름은 에이추(영중의 일본어 발음)였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남매 설정 등 ‘집없는 천사’의 인물 구도를 변주하는 대목이다. 특히 에이류 역의 김유호는 ‘집없는 천사’에서 용길이 물에 빠지는 사건을 일으킨 영팔을 연기하기도 했다.에이류는 소국민신보의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무라이 소위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특공대에 지원한 마을 청년이 입대하는 날, 역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고장 나 청년은 먼 길을 뛰어 가게 된다. 실은 에이코가 누나이길 기대한 에이류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전날 윤활유를 빼 놓은 탓이었다. 이를 안 에이코는 못난 동생은 싫다고 말하고, 결국 에이류는 동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에이류는 시라이 국장으로부터 좋은 기사를 썼다고 칭찬받고 견습기자를 제안받지만 그는 해군특별지원병령(1943년 7월 공포)을 기회로 무라이 소위 뒤를 이어 해군에 지원한다. 입대하는 에이류는 에이코 그리고 양모와 함께 진해 해군부대 앞의 벚꽃길을 걸으며 무라이 소위의 동생은 ‘반도’에 많다고 말한다. 바로 ‘사랑과 맹세’가 ‘집없는 천사’와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이다. 이제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이야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일제는 무라이 소위의 뒤를 이어 벚꽃처럼 산화할 병사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진해 해병단의 정문과 해군들의 행진 모습을 촬영한 선전 영상으로 끝맺는다.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요 등장인물 중 고아 청년 에이류와 무라이의 부인 에이코 그리고 무라이 고향의 입대 청년 소우케이메이(송경명의 일본어 발음)만 확실하게 조선인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조선인이지만 그 외 주요 배역의 남성들은 그 배우가 실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의 여부를 떠나 영화 속에서 일본인인지 조선인이지 확실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사실 독은기가 연기한 무라이 소위가 다닌 소학교는 극 중에서 조선인 아이들의 학교로 보이고, 시라이 국장도 이 학교 출신이라고 나온다. 일제가 궁지에 몰린 태평양전쟁 말기 국책선전영화에서 군인을 비롯한 남성들을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구분해 설정하는 것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일제의 국책영화사가 제작한 마지막 조선영화는 이렇게 조선 청년들을 일제의 병사로 만들기 위해 내몰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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