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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대북제재 위반’ 싱가포르 유조선 몰수했다

    美 ‘대북제재 위반’ 싱가포르 유조선 몰수했다

    해상서 ‘선박대 선박’ 방식 북한에 석유 공급 싱가포르 선주는 대북제재 및 자금세탁 혐의와이즈 어니스트호 몰수판결 이후 약 2년만미국 뉴욕남부연방법원이 30일(현지시간)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데 사용된 싱가포르 유조선 ‘커리저스’를 몰수하는 판결을 내렸다. 뉴욕남부연방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유조선 소유인은 싱가포르인 궈기셍이다. 그는 2018년 2월부터 지난해 3월 사이에 커리저스호에 석유를 싣고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옮겨 실은 것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9년 9월 커리저스호가 위치추적 장치를 무단으로 끄고 북한 선박 ‘새별’ 호에 최소 150만 달러(약 17억 3000만원)어치의 석유를 넘기는 장면이 위성에 포착됐다. 이외 같은 해 11월 커리저스호가 북한 남포항에 정박한 모습도 확인됐다. 궈씨는 여러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면서 2734t급 유조선인 커리저스호를 다른 선박인 것처럼 꾸며 국제선박 당국을 속였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그는 선박 및 유류 구매 비용 등에 대한 돈세탁 혐의도 받고 있다. 만일 대북제재 혐의와 돈세탁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각각 최대 20년씩의 실형을 받을 수 있다. 캄보디아 당국은 지난해 3월부터 미국의 요청에 따라 커리저스호를 억류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19년 10월에 북한 석탄 약 2만 5000t가량을 불법 운송한 혐의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를 몰수했고, 이후 법원의 승인을 거쳐 매각한 바 있다.
  • 北 김정은, 사상 첫 전군지휘관 강습회…핵무력 언급 無

    北 김정은, 사상 첫 전군지휘관 강습회…핵무력 언급 無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상 첫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회를 열고 시대에 맞는 군 건설 방침을 제시했다. 다만 핵무력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3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제1차 지휘관·정치일꾼(간부) 강습회가 지난 24~27일 평양에서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이 광신적이고 집요한 각종 침략전쟁연습을 강화하며 우리 국가를 선제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체계적으로 확대하고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현 상황은 긴장격화의 악순환을 근원적으로 끝장내려는 우리 군대의 결심과 투지를 더욱 격발시키고 있다”며 전투력 강화를 주문했다. 핵무력이나 핵억제력 등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김 위원장은 “인민군대는 당의 무장력인 것만큼 모든 군사정치활동은 마땅히 당의 의지와 힘을 표현하고 당의 목소리와 같아야 하며 당의 요구를 실천하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노동신문은 6개면에 걸쳐 군 강습회 소식과 김 위원장의 당부를 전했는데, 이는 철저히 당을 중심으로 군이 따라올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극심한 식량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은 지난달 전원회의에서 군 비축미 등을 풀어 민생 안정 조치를 취하도록 ‘특별명령서’를 내렸다. 그러나 군에서 이같은 조치가 즉각 이행되지 않자 열흘 만에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코로나19 방역 부문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며 업무 태만 책임을 물어 군 서열 1위 리병철을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해임했다.김 위원장은 시군 당 비서 강습회 등 여러 형태의 회의를 수시로 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극강의 봉쇄 정책 속에서 끊임없이 내부 결집을 도모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이날 강습회에는 조선인민군 각 군종, 군단, 사단, 여단, 연대 군사 지휘관과 정치위원들, 인민군당 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들과 군 총정치국, 총참모부, 국방성 간부들이 참가했다. 통신은 이번 강습의 개최 배경에 대해 “조선인민군의 군사정치적 위력과 혁명적 투쟁정신을 더욱 제고하고 당 중앙의 중대한 군사전략전술사상과 변화된 정세의 요구에 부합한 군건설방향과 방침들을 군정간부들에게 재침투, 체득시키기 위해 전군군정간부들의 대회합을 조직했다”고 설명했다.
  • [포토]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 중 환한 미소 짓는 김정은

    [포토]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 중 환한 미소 짓는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상 첫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을 주재하고 변화된 정세에 맞는 군건설 방침을 제시했지만 핵무력 등에 대한 언급은 내놓지 않았다 중앙통신은 30일 “김정은 동지의 지도 밑에 조선인민군 제1차 지휘관·정치일꾼(간부) 강습회가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2021.7.30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김정은, 북중 우의탑에 헌화…“양국 혈연유대 계승할 것”

    김정은, 북중 우의탑에 헌화…“양국 혈연유대 계승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맞아 북중 우의탑에 헌화하고 양국의 혈연적 유대를 계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2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 승리 68돌에 즈음하여 7월 28일 우의탑을 찾으셨다”며 “총비서 동지께서는 (…) 혈연적 유대로 맺어진 조중친선은 공동의 위업을 위한 한길에서 대를 이어 굳건히 계승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가장 혹독하고 힘든 고비를 겪을 때 우리 인민의 성스러운 역사적 투쟁을 피로써 지원한 중국 인민의 고귀한 넋과 공적은 번영하는 사회주의조선과 더불어 불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의탑에 보낸 화환에도 ‘전체 조선 인민의 이름으로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조선인민을 대표하여 김정은’이라는 글귀를 담았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우의탑 참배에 맞춰 군 명예위병대의 분열행진도 벌이는 등 예우를 갖췄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우의탑을 직접 참배해 헌화한 것은 지난해 10월 중국인민지원군 참전 70주년과 앞서 2019년 6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앞서 김 위원장은 북중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이달 초 시 주석과 친서를 교환하고, 허난(河南)성 등의 홍수 피해에 시 주석에게 위로의 뜻을 담은 구두 친서를 보내는 등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북중 혈맹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 [씨줄날줄] 재일동포 체육인/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재일동포 체육인/황성기 논설위원

    프로,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일본의 스포츠 역사는 재일동포 체육인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레슬링의 역도산부터 프로야구의 장훈, 격투기의 추성훈 그리고 축구의 정대세, 도쿄올림픽 남자 유도 73㎏급 동메달리스트인 안창림까지 재일동포 체육인은 차고 넘친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후에도 이어진 차별과 멸시라는 간난을 겪으면서도 재일동포가 일본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치열한 생명력의 결과다. 머리가 명석해도 일본 국적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공무원이나 의사 같은 국가 자격증을 따기 어려웠던 시절에 재일동포들이 눈을 돌린 곳이 체육계다.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의 역도산(1924~1963년)은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씨름인 스모에 도전하려 했다. 하지만 조선인은 결코 최상위 지위인 요코즈나까지 올라갈 수 없는 벽을 알아챘다. 얼른 레슬링으로 전환해 패전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일본인들의 국민적 사랑을 받는 전설이 됐다. 경남 창녕 출신의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 차별을 겪은 장훈이 조선인의 한계를 실감한 게 프로야구 입문 때였다. 1개 구단에 외국인 2명만 두게 한 규정에 걸린 구단은 그에게 귀화를 권유했지만 “귀화하려면 야구를 그만두라”는 어머니 반대에 부딪쳤다. 장훈 모자의 사정을 들은 구단 사장이 프로야구연맹의 외국인 선수 규정을 고치고 입단을 시켜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 첫 3000안타의 대기록을 세운다. 재일동포 3세로는 축구의 정대세가 꼽힌다. 한국 국적 아버지와 조선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국적을 지녔지만 조선총련 산하 조선학교를 다닌 영향으로 마음의 조국은 북한이다. 신무광이라는 재일동포 저널리스트는 그의 인생을 “역사가 낳은 모순”이라 했다.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싶어 국적을 바꾸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한국 국적인 채로 북한 여권을 취득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승인을 얻어 국제대회에 출장했다. 수원 삼성에서도 활약한 적이 있는 정대세는 지금은 일본 J2리그 마치다 젤비아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안창림도 3세다. 아버지 태범씨는 창림을 “1, 2세가 겪은 차별이나 따돌림을 모르지만 가르침을 잘 이어받았다. 재일동포라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있다”고 평가한다. 재능을 눈여겨본 일본 대학 유도부에서 귀화를 권유했으나 딱 잘라 거부하고 한국 유학을 결정한 안창림이다. 그가 태극마크를 달긴 했지만 안창림에겐 “재일동포 대표로 승리해 재일동포의 존재를 전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있었다. 안창림이 한일에서 ‘재일동포’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이란 사격 금메달리스트, 테러 단체 이력 논란

    이란 사격 금메달리스트, 테러 단체 이력 논란

    이란의 사격 금메달리스트 자바드 포루기(41)가 과거 민간인 학살 테러 조직에서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번 올림픽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포스트’는 25일 스포츠 인권단체 나비드 연합의 성명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성명서는 “포루기는 테러 조직인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오래된 회원이고 이 조직은 이란뿐만 아니라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전력이 있다”고 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미국은 2007년 이 부대를 테러 지원 단체로 분류한 단체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지난 1월 우리나라 유조선인 한국케미호를 나포하고 억류한 적도 있다. 포루기는 지난 5월 한 방송에서 “이란혁명수비대의 일원이었다”며 “시리아 내전에도 참여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그는 “전투병이 아니라 의무병이었을 뿐”이라며 “민간인 학살 등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나비드연합은 “올해 초 IOC에 서한을 보내 올림픽에 참가하는 이란 선수들 중 이란혁명수비대로 활동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IOC가 테러리스트에게 금메달을 수여 하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 대한 모욕이자 IOC의 명성을 더럽히는 일”이라면서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하고 결론이 나올 때까지 메달을 회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日 톱가수 미샤, 도쿄올림픽 개막식서 ‘기미가요’ 부른다

    日 톱가수 미샤, 도쿄올림픽 개막식서 ‘기미가요’ 부른다

    일본 톱가수 미샤(MISIA)가 23일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기미가요(君が代)를 부른다. 23일 닛칸스포츠와 스포츠호치 등 현지 매체는 가수 미샤가 올림픽 개막식에서 기미가요를 부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1999년 데뷔한 미샤는 일본에서 여성 솔로 가수로는 처음으로 5대 돔 투어에 성공한 톱가수다. 기미가요는 일왕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 국가로, 욱일승천기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공식 국가이지만 일왕 숭배의 의미가 강하다는 이유에서 일본 내에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미가요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지됐으나, 1999년 일본 정부가 국기·국가에 관한 법률을 통해 국가로 법제화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가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에게 기미가요를 강제로 부르게 했으며, 오늘날 일본에서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 주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광장] 배티성지와 나가사키 천주교 유산/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배티성지와 나가사키 천주교 유산/서동철 논설위원

    TV에서 본 진천 백곡저수지의 새뱅이 매운탕이 궁금해 안성에서 천안 입장으로 직진해 엽돈재를 넘었다. 이 지역에서는 민물새우를 새뱅이라고 부른다. 저수지가 가까워질 무렵 왼쪽으로 최양업 신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배티성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올해가 김대건(1821~1846)과 최양업(1821~1861) 동갑내기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라는 사실은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어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안성으로 넘어가는 이치(梨峙)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배티성지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파리외방선교회의 피에르 모방 신부는 1835년 1월 천주교 사제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교세를 넓히려면 조선인 사제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후보로 선발했다. 최양업의 외할아버지는 김대건의 할머니와 남매이니 두 신부는 6촌 간이다. 마카오에서 사제 교육을 받는 동안 최방제는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잘 알려진 대로 1845년 8월 17일 조선의 첫 번째 신부가 된 김대건은 선교사 입국 루트를 개척하려다 옹진반도 순위도에서 붙잡혀 1846년 9월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됐다. 1849년 4월 15일 두 번째 조선인 신부가 된 최양업은 12년 동안 조선 전역을 누비며 선교와 사목 활동에 힘쓰다가 1861년 선종했다고 한다. 성지가 가까워지니 산골에서는 보기 드문 크기의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과 ‘최양업 신부 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지형을 깎아 만든 마당과 주차장도 넓기만 하다. 필자 같은 비신자의 시각은 아무래도 다를 것이다. 순교자 묘역으로 오르는 길 중간의 조촐한 성지수도원과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 성당’에 더 마음이 간다. 대성당과 박물관 이전에 지었다. 배티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신자들이 숨어든 오지였다. 1837년 모방 신부가 공소를 설정하고, 1850년 다블뤼 신부가 조선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1853년부터 최양업 신부가 이곳을 중심으로 사역을 했다. 조금 올라가면 성당과 신학교를 겸했다는 삼간초가가 복원돼 있다. 이 소박한 흔적에 이르러서야 매우 잘 지어진 건축물임이 틀림없는 대성당이나 박물관에서는 없었던 성지다운 숙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성이 가진 힘일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됐다고 이전보다 더 중요한 문화재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고 더 훌륭한 문화재가 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국가 지정 문화재든, 세계유산이든 그 지정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진정성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경주 황룡사 터가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경주역사지구’라는 이름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았다면 주변은 이미 온갖 건축물로 가득찼을지도 모른다. 배티성지를 돌아보면서 2018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나가사키 지역의 은둔 기독교 유적’을 떠올렸다. 일본의 천주교는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포교를 시작한 이후 박해와 잠복, 부활의 역사를 거쳤다. 하비에르라면 최방제의 세례명이기도 하다. 오랜 금령은 1858년에야 풀렸는데, 파리외방전도회가 1863년 세운 오우라 천주당을 비롯해 나가사키 세계유산을 이루는 다수의 성당은 모두 그 이후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가사키 유적은 소박한 역사를 보존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세계유산에도 등재될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적지 않은 우리 천주교 성지가 특정 성인 중심으로 현양되고 있다면 나가사키는 박해와 잠복 시기 소규모 종교 공동체의 모습이 최대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티의 초라한 초가집 성당과 신학교가 화려한 성당과 박물관보다 더 마음을 잡아끄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일본 천주교가 세계유산을 배출했다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다만 전국 가톨릭 성지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상응하는 진정성 회복 작업을 벌이는 것은 괜찮겠다 싶다. 그러러면 과거의 흔적을 찾는 발굴 작업을 정성껏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흔적이야말로 성지로 받들어지는 이유가 아닌가. 그렇게 조금씩 진정성이 축적됐을 때 국가 지정 문화재도 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성당과 기념관은 이후 역사성 훼손이 없는 주변 장소를 골라 지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성지의 진정성이 응축될 때 믿음도 깊어지는 게 아닐까 주제넘은 생각을 해 본다.
  • 유네스코 “日, 조선인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왜곡”

    유네스코 “日, 조선인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왜곡”

    일제 강제징용의 상징 ‘군함도’를 2016년 세계문화유산에 억지로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을 어긴 일본을 유네스코(UNESCO)가 강하게 비판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태평양전쟁 중 군함도에 끌려온 한반도 출신 징용 피해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본의 세계유산 관리 방식에 유감을 표명하는 비판 결의문을 22일 채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WHC는 결의문에서 군함도를 다룬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공식 명칭이 ‘하시마’인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으로부터 남서쪽 18㎞ 해상에 있는 섬으로, 1943~1945년 500~800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다. 이 가운데 122명이 질병, 탄광사고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WHC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7∼9일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내용을 담은 실사 보고서를 지난 12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1940년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이 산업유산정보센터가 군함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전시가 없는 등 희생자 추모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비슷한 역사를 지닌 독일과 같은 국제 모범사례와 비교해 볼 때 조치가 미흡하고 한국 등 당사국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도 부족하다고 했다. 결의문은 일본이 2018년 6월 세계유산위에서 채택된 결정을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강력한 유감’을 표하고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당시 결정에는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이 이뤄진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 “日, 강제징용자 설명 부족”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 채택

    “日, 강제징용자 설명 부족”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 채택

    일본,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징용 등 전체 역사 알리겠다” 약속 후 위반탄광서 韓 동원 노무자 강제노역 잇단 확인 日정부 “약속 성실히 이행해왔다” 억지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수많은 역사적 증거자료에도 전쟁 중 강제 징용된 한반도 출신자에 관한 일본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다며 일본의 세계유산 관리 방식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결의문을 현지시간 22일 채택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의문에서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 관해 설명하는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일본 나가사키현에 있는 군함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해저 탄광이 있었으며 한반도에서 동원된 노무자들이 이곳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며 강제 노역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증언과 역사 전문가들의 연구로 거듭 확인됐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 다수 포함된 일련의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징용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하지만 군함도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도쿄에 설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없었던 것과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운영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는 인권 침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내용의 옛 군함도 주민 동영상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하는 등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 정부와 뜻있는 한일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징용 등 강제 노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도록 전시관을 개선할 것을 거듭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해 왔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 [서울광장] 김원웅 광복회장께/김상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원웅 광복회장께/김상연 논설위원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 미국은 일본 열도를, 소련은 만주를 각각 우선적으로 차지(점령)하고 싶어 했다. 한반도는 그다음 순위였다. 특히 미국은 소련이 일본 점령에 숟가락을 얹는 시나리오를 극도로 경계하며 대응 전략까지 수립했을 정도다. 반면 한반도에 대해서는 1943년 12월 카이로회담 이전에 이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합국 공동의 신탁통치를 구상했다.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한반도가 미국에 그다지 매력적인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미 전쟁성 민정국은 1945년 7월 6일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이익이 크지 않으므로 소수의 미군을 사용해 연합국에 의한 국제 신탁통치에 참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작성했다. 반면 부동항 확보 등 영토적 욕심이 컸던 소련은 한반도에 친(親)소련 정권을 세워 공산화한다는 계산 아래 치밀하게 움직였다. 1944년 당시 야코프 말리크 주일 소련대사가 “소련의 최대 목적은 만주와 조선, 대마도, 쿠릴열도를 지배하에 두고 태평양으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을 정도다. 이런 역사를 알고 보면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달 “소련은 스스로 해방군이라고 표방했고, 미군은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밝혔다”며 미국을 비판한 발언은 위험하다. 단편적 역사적 사실을 들어 전체적인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발언에서 점령군은 침략군의 뉘앙스를 풍긴다. 또 소련이 야욕을 감춘 채 겉으로 해방군이라고 밝혔다고 해서 호평하는 것은 나쁜 사람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과 같다. 소련의 참전은 한국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은 소련 붕괴 후 공개된 소련 정부 비밀문서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됐고, 학계에서도 논쟁이 끝난 사안이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이 한국인을 ‘개무시’했다고 한 광복회의 비판도 지나치다. 지금 눈높이로 보면 고압적이지만, 해방 직후의 상황은 간단치 않았다. 당시 미군은 일본과 필리핀에서의 전후 처리 때문에 종전 후 거의 한 달이 돼서야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 틈에 좌익세력이 이미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미군정으로서는 공산화를 경계해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김 회장은 역대 광복회장 중 가장 직설적으로 친일을 비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지나치다고 비판하는데, 그런 비판을 비판하고 싶다. 광복회장이 친일을 비판하지 않으면 누가 비판해야 하는가. 친일파의 후손들이 지금도 사회 곳곳의 힘있는 자리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상황에서 그 정도로 비판할 수 있는 건 보통의 용기로는 힘들다. 다만 반일 주장이 종북(從北)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친일 비판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이념 공세의 빌미를 준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해 논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지사의 발언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 틀린 게 없다. 다만 점령군이란 표현이 비판적 문장에 들어가면 침략군의 뉘앙스를 풍긴다. 따라서 그냥 ‘미군정’이라고 표현했다면 완벽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개무시’라는 말은 지나치지만 해방 전후 미국이 우리를 무시했던 것은 사실이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입국해 일본 총독부의 항복을 받은 존 하지 중장은 “조선인은 일본인과 똑같은 고양이”라고 폄훼했다. 미국이 그런 마인드였으니 한반도에 크게 애정이 없었고 편의상 38선을 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에 너무 집착해 미국을 탓하는 것은 일견 구차하다. 우리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한 책임을 면제하고 강대국에 기대려는 습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종전(해방) 후 일본에 머물던 맥아더는 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에 참석해 이런 연설을 한다. 읽다 보면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인위적인 장벽이 여러분의 국토를 양분하고 있다. 이 장벽은 반드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며, 반드시 제거될 것이다. 여러분이 자유로운 국가의 자유스러운 인간으로서 통일하는 것은 누구로부터도 저지돼서는 안 된다. 한국 국민은 명예를 존중한 조상의 혈통을 이어받은 만큼 분열을 일삼는 외래의 사상에 굴복해 그 신성한 대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 가장 깊었던 어둠…무대서 독립을 외치다

    가장 깊었던 어둠…무대서 독립을 외치다

    뮤지컬 ‘윤동주…’ 독백·대사가 된 詩강렬한 음악만큼 묵직한 뮤지컬 ‘박열’ 새달엔 예술의전당 발레 ‘안중근’ 선봬불꽃처럼 치열했던 항일 독립투사들의 삶이 한여름 무대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스크 쓴 막막한 나날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암울하고 혹독했던 시절의 청년들이 무대에서 간절히 외치는 자유와 굳은 의지가 단단하게 버티고 이겨 낼 힘을 전한다. 서울예술단은 지난 13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공연하고 있다. 2012년 초연한 뒤 여섯 번째로 선보이는 작품으로 참혹한 시대 총 대신 연필을 들고 서글픈 마음을 적어 내려간 시인 윤동주의 삶을 노래한다. 이름은 물론 말과 글을 빼앗긴 시절 부끄럽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시를 붙잡고 저항했던 그의 고뇌와 어린 시절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의 모습을 아름답고도 강렬하게 그린다. 1930~1940년대 경성과 도쿄를 배경으로 모던한 분위기를 꾸민 화려하고 밝은 무대는 오히려 시절의 아픔을 짙게 했고 시인의 마지막은 어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가슴 아픈 여운을 남긴다. ‘팔복’을 시작으로 ‘십자가’, ‘참회록’,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그가 남긴 시 여덟 편이 독백과 대사로 읊으며 깊은 울림을 준다. 전·현 서울예술단원 박영수·김용한이 윤동주로 열연한다.14일부터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흑도회, 흑우회 등 항일 사상단체를 이끌며 일본 왕실을 쓰러뜨리려 했던 박열 열사와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그린다. 도쿄재판소 검사국장 류지를 가상인물로 내세워 간토대지진 이후 6000여명 조선인을 학살하고도 이를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박열이 무대 위에서 처절하게 자유를 노래한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이선화 작가, 창작뮤지컬 ‘시데레우스’ 이유정 작곡가와 ‘어쩌면 해피엔딩’ 성종완 연출, ‘파리넬리’ 김은영 음악감독 등 탄탄한 창작진이 모여 밝고 경쾌한 음악과 강렬한 록 사운드가 오가며 어렵지 않게 극을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물론 박열 열사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먹먹하다. 예술의전당은 광복절을 맞아 다음달 13~1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을 선보인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M발레단이 초연한 작품을 새 단장했다. 국립발레단 전 부예술감독이자 상임안무가로 ‘왕자호동’, ‘오월바람’ 등 한국 발레의 모델을 제시해 온 문병남 안무가의 작품이다. 올해로 순국 111주년을 맞은 안중근 의사의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유언을 모티브로 삼았다. 안중근 의사 역에 발레리노 윤전일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탁,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역에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현 수석무용수 박예은을 비롯해 국내 정상 무용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20여명의 화려한 군무도 볼거리로 꼽힌다. 기존 공연보다 의병부대 전투장면과 하얼빈 의거 장면을 대폭 늘려 더욱 웅장하고 역동적인 안무를 선보이고 이야기 전개도 더욱 완성도를 높여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 면모와 가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을 재조명한다.
  • [사설] 한일 정상회담 무산, 양국 현안 차기 정권에 맡겨라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개막일인 오는 23일 도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첫 대면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어제 최종 결렬됐다고 밝혔다.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양측 간 협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돼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지만,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며, 그 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쿄올림픽) 불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개회식 참석은 평창올림픽에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참석한 것에 대한 답방 차원이며, 문 대통령은 “쉬운 길보다는 더 좋은 길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막판까지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에 각국 정상들이 속속 불참 의사를 밝히자 이웃 나라 문 대통령의 참석을 기대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어제자로 “한일이 23일 첫 대면 정상회담을 열기로 방침을 정했다”면서 회담이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예정돼 있다고 보도하는 등 막판까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예상했으나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다. 한일 정상회담 무산에는 일본 측의 책임이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 등 근대 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인정 및 공개 약속을 어겼다가 세계유산위윈회의 공개적 지적을 받았다. 또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처럼 표시했다. 방위성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방위백서를 지난 13일에 내놓는 등으로 분위기 조성을 방해했다. 여기에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문 대통령을 겨냥한 성적(性的) 발언 파문까지 더해져 방일 여건은 악화했다. 한일 관계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및 조건부 유예 등으로 지난 4년 내내 대립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개최해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에 브레이크를 걸고, 과거사 문제나 수출규제 해결 등의 협의가 가능하길 기대했다. 과거사 갈등을 넘어 정치, 경제, 군사 문제까지 실타래처럼 꼬인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대했던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된 만큼 우리 정부는 양국의 현안을 차기 정권에 맡길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확산에도 개막식에 참여하려던 문 대통령에게 ‘15분 정상회담’ 등을 운운한 일본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고려할 때 더는 연연할 필요가 없다.
  • [사설] ‘강제노역’ 은폐·왜곡한 ‘군함도’ 세계유산서 삭제해야

    일본이 군함도(하시마)의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왜곡했다는 유네스코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요건을 사실상 상실했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일본 대표는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면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군함도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배경에는 한국을 포함한 적지 않은 나라가 국제기구에서 공표한 일본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유산위원회가 현지 조사한 결과 일본은 이웃 나라들의 신뢰를 완벽하게 배신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유산위는 ‘일본의 해석이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6월 개관한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도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전시를 하지 않는 등 희생자 추모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세계유산위는 일본에 강력하게 유감을 표시하면서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그럼에도 세계유산위 안팎에선 “유산에 대한 해석을 문제 삼아 등재를 취소하는 것은 어렵다”는 분위기란다. 한국과 일본은 2021년 유네스코 분담금의 2.9%와 11.05%를 각각 내는 10위와 2위 국가다. 세계유산위의 소극적 자세가 돈 때문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럴수록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의 정당한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려면 합당한 기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불행한 역사를 담은 세계유산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나치의 집단학살수용소’도 있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선 안 된다는 반성과 경고가 담겼다. 반면 일본은 약속 불이행으로 ‘강제노역으로 이룬 번영’을 미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에서 ‘반성’이 사라져 나치 찬양 공간으로 탈바꿈했을 때 ‘유산 해석’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세계유산위에 반문하고 싶다.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는 원인 무효라는 사실에 대해 국제사회에 분명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 “조선의 비통한 소리 들어라”…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의 쉰들러’

    “조선의 비통한 소리 들어라”…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의 쉰들러’

    독립운동을 도운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순수 외국인은 70명이다. 중국인(쑨원, 장제스 등 33명), 미국인(헐버트와 알렌 등 21명), 영국인(베델 등 6명), 캐나다인(스코필드 등 5명) 순으로 많다. 일본인도 2명이 있다. 한 사람은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던 박열 의사의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애국장)로 2018년에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박 의사를 변호했던 후세 다쓰지로 2004년에 받았다. 당시 정부 일각에서는 일본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지만, 후세의 삶을 알고 나면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인 변호에 앞장섰던 그를 독일 나치 치하에서 죽어가던 유대인들을 도왔던 독일인 쉰들러에 비유해 ‘일본의 쉰들러’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두 번 투옥, 세 번 변호사 자격 박탈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 후세의 현창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후세는 조선인 지원 활동으로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사 두 번 투옥당하고 변호사 자격을 세 번이나 박탈당한 인권변호사, 민중변호사였다. 후세는 재판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조선 민중이 모두 이 재판을 주목합니다. 피고들의 향후 활동에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조선 민중의 비통한 양심의 소리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독립운동가들은 후세를 ‘우리의 변호사’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후세는 1880년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군에서 한 농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899년 고향을 떠나 도쿄 메이지법률학교에 입학한 후세는 조선인 등 유학생과 교류하며 조선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후세가 조선에 관심을 보인 것은 훨씬 전이었다. 청일전쟁에서 돌아온 일본군 출신 마을 주민에게서 조선인 민간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었다고 한다. 후세는 일본인에게는 잔인성을, 조선인에게는 연민을 느꼈다.1902년 학교를 졸업한 후세는 고시에 합격, 시보로 부임했다가 넉 달 만에 사직했다. 아이 3명과 동반자살을 기도한 엄마를 살인미수로 기소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후세는 검사의 직무를 ‘늑대와도 같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후세는 이후 변호사로서 핍박받는 조선인과 노동자·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로 들어섰다. 1911년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을 비난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발표해 검사국으로 불려가 호된 조사를 받았다. 그가 처음 변호한 조선인은 1919년 도쿄 2·8 독립선언으로 현장에서 검거된 최팔용, 백관수 등 9명이었다. “일본은 체코 독립을 위해 시베리아에까지 군대를 보냈는데 조선민족 독립을 탄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논리로 재판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조선인들은 무료로 변론한 후세를 크게 신뢰하게 됐다. 후세는 계속해서 조선인 사건 변호와 구원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음해 5월 후세는 ‘민중의 변호사’로 변신하겠다는 장문의 ‘자기혁명의 고백’을 선언했다. 입신출세를 거부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면서 조선인의 이익을 위해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후세는 계급투쟁이라는 시대적 사조에도 관심을 가졌다. 1923년 7월 조선을 처음 방문해 강연을 다닌 것은 총독 정치 비판뿐만 아니라 그런 사상적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조선 농민의 생활고에 눈물이 난다” 후세가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후세는 죽창을 든 자경단에 쫓기는 조선인 유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 숨겨 주고 차를 대접하고는 안심시켰다. 조선인 학살사건을 고발하기 위한 자유법조단의 선두에서 활약했다. ‘피살동포추모회’에서 후세는 이렇게 말했다. “천만 개의 추도의 말을 늘어놓더라도 무념에 가득 찬 그 사람들의 마지막을 추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뒤 조선을 방문했을 때는 만행을 사죄하는 글을 신문사에 보냈다. 1924년에는 의열단원으로 일본 왕궁 이중교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를 변론했다. 후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박열과의 만남이었다. 박열이 1923년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기소된 후 3년여간 그의 무죄를 변론했다. 일본의 국체(國體)를 전면 부정한 후세의 변론은 목숨을 건 법정투쟁이었다. 박열이 법정에서 사모관대를 입을 수 있었던 데도 후세의 노력이 컸다. 옥사한 박열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거두어 박열의 고향으로 운구한 것도 후세였다. 또 하나의 업적은 동양척식회사의 전남 나주 농민토지수탈 사건 규탄과 변호였다. 1926년 3월 두 번째로 조선을 방문한 후세는 나주 궁삼면 토지사건을 조사했다. 동양척식회사는 일본 헌병과 경찰의 힘을 빌려 유혈 참극을 벌이며 궁삼면 농민들의 땅을 빼앗았고 농민들은 물리적 저항과 법적 소송으로 맞붙고 있었다. 후세는 농민들의 열정에 감격하고 식민지 농촌 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후세는 “조선 무산계급 농민의 생활고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식민지정책의 피지배 계급에 대한 압박에 분개할 수밖에 없다”며 절절한 감회를 토로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체포된 권오설·강달영 등이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고소를 제기할 때 조선으로 건너와 법률 업무를 도와주고 최후변론을 맡았다. 이 밖에도 조선 수해이재민 구원운동, 미에현 조선인 살해사건 변호, 재일 조선인 노동산업 희생자 구원회 결성, 김한경 등의 치안유지법 위반 사건 변호 등의 활동을 했다. 후세는 일본과 조선을 오가면서 조선인들의 인권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종전 후 ‘운명의 승리자 박열’ 출간 일본은 그런 후세를 가만두지 않았다. 1932년 법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듬해에는 신문지법, 우편법 위반으로 금고 3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출옥 직후 일본 노농변호사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을 받았고 변호사 등록도 말소당했다. 와중에 후세의 셋째 아들 모리오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돼 교토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후세는 종전 후에도 한국인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횡포로부터 재일 한국인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투쟁에 힘을 쏟았다. 또 박열이 1945년 출옥한 후에도 관계를 이어 가며 ‘운명의 승리자 박열’을 출간하고 1947년에는 ‘관동대진재 백색테러의 진상’을 기고하는 등 한국인들과 연대 투쟁을 벌였다. 이어 후카가와 사건, 조련(朝連)·민청(民靑) 해산 사건, 도쿄 조선고등학교 사건, 다이토우회관 사건 등 일련의 재판에서 변호인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한국인도 연루된 메이데이 사건과 수이타 사건을 변호하며 죽을 때까지 한국인 관련 사건을 도맡다시피 했다. 후세는 1953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많은 한국인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부는 2004년 후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일본인으로는 최초였다. 일본에서도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후세를 기리고 있고 그의 고향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는 시민들이 기부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후세가 조선인 탄압과 학살에 항의하고 변호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후세는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인들과 함께 한국을 위해 일본에 저항했다. 후세가 한복을 입고 활동한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조선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진이다.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인 당신과 같습니다. 당신의 편입니다.”
  •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에 태영호 “대북전단 보내라”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에 태영호 “대북전단 보내라”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군 점령군’ 발언에 대해 탈북민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반격에 나섰다. 이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일 고향인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나”라며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나 예우를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충격적 역사관”, 황교안 전 총리는 “역대급 막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셀프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사 측은 캠프 대변인단을 통해 미군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표기했다며 ‘미 점령군’은 맞다고 했지만, 윤 전 총장에 대해서만은 이 지사가 직접 반박했다. 이 지사는 국정을 열심히 공부중이란 윤 전 총장에게 국정은 사법고시 공부와 달리 계속 공부해도 부족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해방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은 모두 점령군이 맞다면서, 6·25이후 주한 미군은 주둔군이라고 밝혔다. 일제에 부역하던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반민특위를 강제해산한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역사 논쟁에 대해 태 의원은 “김원웅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발언으로 남남갈등이 첨예하다”면서 “포고문에 적힌 문구 그대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볼 때 과연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등식이 성립할지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소련군이나 미군은 다 같이 해방군이자 점령군이었지만, 미군보다는 소련군이 더 점령군에 가까웠다고 태 의원은 강조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김일성 등 소련군 내 조선인들의 군복을 벗기고 사민복을 입혀 당과 군대 국가건설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소련군이 많은 나라들에 진주하였지만 북한처럼 소련군 내 장교들과 사병들을 제대시켜 정권의 핵심 인사로 임명하는 식으로 정권을 세운 나라는 없었다고 태 의원은 짚었다. 태 의원은 “남한에 사민 정권이 수립되도록 도와준 미군이 해방군인가? 아니면 북한에 소련군 출신들의 군사정권을 세운 소련군이 해방군인가?”라고 물으면서 대한민국 건국 초기 정부 내각에 미군 출신 인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특히 광복회장에게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차라리 대북전단이라도 북한에 보내 북한을 해방시킨 것은 김일성 부대가 아니라 소련군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국익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모셔올 중장기 로드맵 짭시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모셔올 중장기 로드맵 짭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이 중단됐지만, 유해 봉환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점검하고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격전지와 중국 등지로 강제동원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유해 봉송환 운동을 벌이는 황동준 전 행정안전부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장은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외에서 어렵사리 신원이 확인된 유해마저 코로나19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강제징용과 위안부 관련 판결이 사회적 이슈가 된 관심만큼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 봉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 전 과장은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어렵게 찾은 최병연씨의 경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유족을 찾아 지난해 국내로 유해를 봉환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출입국이 금지돼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국외로 강제동원된 연인원 125만여명 중 20만여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위패라도 돌아온 희생자는 1만 2000여명뿐이다. 그는 “2019년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에 있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을 찾았을 때 1000여구의 유골이 묻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를 계기로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 봉환은 저의 운명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당시 천인갱에서 ‘제가 반드시 모시고 가겠습니다’라고 눈물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황 전 과장은 “그동안 중국 하이난성, 태평양 격전지, 일본 조세이 탄광 등지에서 유해 조사 및 발굴 시도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며 “국외 사업 추진이 어려워도 국내에서 유해 발굴 및 봉환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까지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올 1월 시행된 사할린동포특별법과 관련, 그는 “사할린 동포 피해구제 및 유해 발굴·봉환 등 국가의 책무를 명시했지만 현지 500여명의 1세대와 3만여명 동포들의 간절한 염원에는 못 미치고 있다”며 “사할린뿐 아니라 태평양 등지로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천인갱 유골은 지역 개발을 핑계로 언제 파헤쳐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 사찰 등지에 흩어져 있는 수천 위의 유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의 원활한 유해 봉환을 위해 진행 중이던 한러 정부 간 협정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황 전 과장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유해는 훼손되지 않고 봉환돼야 한다”며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유해 봉환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기본 의무”라고 강조했다.
  • ‘밀착’ 北中… 양국 대사 공동좌담회 열어 친밀함 과시

    ‘밀착’ 北中… 양국 대사 공동좌담회 열어 친밀함 과시

    북미 간 ‘밀당’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중 간 밀착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북중 양국 대사들이 서로의 당 기관지에 기고문을 내고 협력을 강조하는가 하면 공동좌담회를 열어 친밀함을 과시했다. 23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는 지난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 3주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2주념을 기념하는 공동좌담회를 중국에서 개최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리룡남 주중 북한 대사는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에 대해 “두 당 수뇌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내외에 힘 있게 과시한 역사적 사변”이라고 강조하며 “조중 친선관계를 귀중히 여기며 그 위력으로 사회주의 위업을 활력 있게 전진시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쑹타오 중국공산당 중앙위 대외연락부장은 “두 나라 최고 영도자들은 쌍방의 공동이익과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데서 전략적 인도 역할을 하셨다”며 “(양국은) 공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발전에 적극 공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과 중국이 양국의 최고지도자 방문 주기를 기념하며 공동좌담회를 연 것은 이례적으로, 중국은 같은 날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시 주석 방북 2주년 사진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북한의 당 고위 간부들이 참석하면서 대면외교가 재개됐다. 앞서 양국 대사는 주재국 당 기관지에 기고문을 교차해 실었다. 이처럼 양국이 밀착 행보를 이어 가는 것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북미 간에도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는 정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전통적 우방국인 북한을 한껏 끌어당기고, 북한은 이에 적절히 호응하면서 자신들의 전략적 지위를 십분 활용하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당 전원회의에서 “전략적 지위와 능동적 역할”을 강조하며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양국 대사들이 실은 기고문을 언급하며 북한과 중국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신보는 “사회주의 공동전선에 입각한 조중 두 나라의 단결과 협력에는 적대 세력들이 광고하는 ‘동맹’과 ‘공조’를 능가하는 힘이 있다”고 썼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글로벌 In&Out] 당규약 개정으로 엿본 북한/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글로벌 In&Out] 당규약 개정으로 엿본 북한/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북한 정치에서 ‘조선로동당’은 중심 권력이다. 북한에서 국가는 일반적이고 단순한 국가가 아니다. 국가의 내각과 모든 국가기관이 당의 지도를 받는다. 북한 지도자는 여러 자리를 차지하지만, 김정은에게 가장 핵심적인 직위는 국가의 국무위원장이 아니라 바로 ‘조선로동당 총비서’ 직위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 부설된 주요 부서들은 경제, 군사, 외교 등 국가와 사회 모든 분야의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을 감독한다. 이 때문에 조선로동당 규약의 개정은 정책에 깔린 사상과 실제 정책 수립 등 여러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다. 즉 개인 통치인지, 집단 통치인지, 제도적 통치인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새 당규약에 나타난 중요 경향 가운데 하나는 개인보다 제도를 다시 강조한 것이다. 여러 부분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삭제됐고, 당원의 의무와 조선인민군 관련 부분에서 김정은에 대한 언급도 없어졌다. 그 자리는 당중앙과 당의 영도로 대체됐다. 김정은은 여전히 북한 지도자이지만, 이제 당으로부터 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정상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한다. 게다가 당의 최종 목표가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규정했다. 이것은 특수한 개인에 대한 숭배를 강조하는 대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지상낙원에 대한 보편적 이념 도식이 부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까지 김일성ㆍ김정일주의 같은 사상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체계적 이념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있는 동시에 개인 숭배도 여전하다. 중국 공산당의 시진핑 개인 숭배가 그렇듯이 공산국가에서 개인 숭배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전형적이다. 그런데 당규약이 개정된 올해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부친에게 부여했던 ‘영원한 총비서’ 자리를, ‘영원한’ 부분을 빼고 다시 차지했다. 동시에 8차 당대회 이후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 직위가 신설된 것이 이번 개정 당규약을 통해 확인됐다. 또한 제26조에서 “제1비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제1비서의 위치와 역할을 명확히 했다. 제28조에서는 “로동당 총비서의 위임에 따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은 정치국회의를 사회할 수 있다”고 하여 총비서의 위임 통치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두 개 정도가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김정은의 통치 방식과 관련 있다. 김정일보다 김정은은 공식적 제도를 강조하며, 실제 부하들에게 많은 권한과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경향에서 시작해 대리인에게 일부 권한을 이양하려 하는 것이거나 이미 나눈 권한의 제도화 시도일 수 있다. 제1비서가 권한대행을 할 수 있을뿐더러 집체적 지도체계도 발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큰 논란이 됐던 올해 4월 김정은의 장기 잠행과 공개활동 빈도 축소, NK뉴스에서 보도된 김정은의 가시적인 체중 감소 등을 감안하면 김정은 중태설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북한 지도부가 최소한 건강 문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신설했다고 할 수도 있다. 첫째 해석이 사실이라면 강한 지도자로서 믿음직한 부하가 많고, 권한을 부여해도 문제가 없거나 또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으며, 대리인까지 규정해도 권력에 위협이 안 되는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다. 둘째 해석은 아직 40살도 되지 않은 지도자가 벌써부터 사후 대책 준비까지 고려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 나이에 건강이 그렇게 안 좋다면 김정은 체제의 미래는 막막할 수밖에 없다. 첫째 해석이 유력하지만 둘째 해석도 배제하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
  • 조선신보 “北 조국통일 입장 확고, 군사력은 통일 수단 변함없다”

    조선신보 “北 조국통일 입장 확고, 군사력은 통일 수단 변함없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북한이 통일 의지를 접었다는 국내외의 해석이 잘못 됐다며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것이 북한 노동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신보는 7일 기사에서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규약 가운데 핵심으로 꼽힌 ‘국가제일주의’를 “‘민족 중시’와 상반되는 ‘국가 중시’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노선과 정책의 변화를 운운하는 논자들은 조선의 당과 정부와 인민의 의지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북남관계에 대한 입장과 민족 문제의 해결 방도는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을 통해 정립돼 있다”며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기치를 들고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노정은 결코 민족문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단히 증강되는 국가방위력도 분단과 전쟁의 원흉인 외세의 최후발악을 봉쇄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며 통일을 앞당기는 현실적인 힘”이라며 북한의 군사력 강화 역시 통일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당 규약 서문의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과업 부분에는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데 대해 명백히 밝혔다”며 “자체의 힘으로 평화를 보장하고 조국 통일을 앞당기려는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이 바로 여기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규약 서문에 해외 동포들의 민족 권리 등을 언급한 부분도 북한이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있다는 근거로 들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규약을 개정해 ‘우리민족끼리’란 표현을 삭제하고, ‘조국을 통일하고’란 표현을 더 장기적인 전망을 뜻하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로 바꿨다. 또 ‘민족의 공동번영’이란 표현을 추가해 남북의 공존을 암시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한다’는 표현을 규약에서 없앴다.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북한이 더는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있으며 ‘남조선 적화 전략‘도 포기했다고 분석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일 통일부 출입기자 화상 간담,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지난 4일 민주평통 창립 40주년 기념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이런 해석 경향을 드러냈다. 이 전 장관은 당 규약 개정의 요체를 “‘김정은 당’의 완성을 뜻한다”면서 ▲대남혁명노선 및 통일담론 쇠락 ▲선군정치의 소멸과 새 정치방식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 천명 ▲수령체제 안정성을 위한 제도적 조처로 제1 비서직 신설 ▲김정은 당의 완성과 노동당의 정통 마르크시즘 당으로의 부분 회귀 등을 중요한 변화로 손꼽았다. 남조선혁명론에서 일국(북한)혁명론으로의 전환, 우리(조선)민족제일주의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로의 전환 등이 돋보인다는 것이었다. 특히 서문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삭제는 단순한 문헌 상의 변화를 넘어 대남전략 변화 여부를 둘러싼 국내에서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준다고 봤다. 정 부의장 역시 “‘투 코리아’(Two Korea)를 법 제도적으로도 공식화한 것”이라면서 “북한이 통일에 대해 ‘잘못하면 남한에 흡수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해 말 남한 영상물의 시청 및 유포의 처벌을 강화하며 ‘반동 사상문화 배격법’을 제정한 것 등을 거론하며 “유난히 비사회주의와의 투쟁, 반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부의장은 “그렇게까지 나올진대 향후 북미대화가 열리고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열렸을 때 과거처럼 북한이 민간차원 지원이나 정부 차원의 교류 협력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토론에 참여한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국 정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어 당장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남북관계는 예상치 못했던 시점에 특정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풀려나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합의 이행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는 모습을 북한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혁명이라는 용어가 현 정세에 맞지 않고 북한 주도의 통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통일 과업에 대한 부담을 덜고자 표현을 유화적으로 바꾼 것일 수 있다”며 “통일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는데 조선신보의 주장은 홍 연구위원의 분석과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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