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인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여성계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마을주민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과격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화학물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067
  • 북한,땅굴굴착 첫 시인/휴전선서 2차례 대남방송

    ◎“남침용아닌 장벽대응용” 강변/북측,정전위서 공동조사 제의 【판문점=김원홍기자】 정부는 14일 북한측이 지난 3일 발견된 제4땅굴을 판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상오 제455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판문점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측이 지난 9일 상오 8시20분부터 30분사이에 한국군 28사단 520GP전방의 북한인민군 5사단 503GP에서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제4땅굴은 자신들이 굴착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측은 지난 9일의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땅굴은 남침을 하기 위해 판 것이 아님을 남조선이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말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는 콘크리트 장벽부터 없애야 하며 우리의 제4땅굴은 절대로 남침을 위해 판 것이 아님을 재삼 강조한다」고 밝힘으로써 땅굴굴착사실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9일 하오 1시47분부터 2시10분 사이에 북한은 휴전선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방송을 통해 『제4땅굴은 남침용이 아니라 남북의 자유왕래를 가로막는 콘크리트 장벽의 대치용이며 평화적 통일을 위한 땅굴』이라고 강변하고 『땅굴의 길이는 2천5백m에 달하지만 콘크리트 장벽은 몇배 이상이나 되면서도 남조선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파놓은 땅굴을 비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상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서 공산측 요청으로 열린 제455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산측수석대표 최의웅소장은 『북침을 위한 공격훈련인 팀스피리트 90훈련을 즉각 중지하라』면서 『한국이 주장하는 제4땅굴은 북침을 위해 남한측이 판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최소장은 『제4땅굴을 확인하기 위해 본인과 북한측의 터널전문가및 기자 등 60여명으로 구성된 공동감시소조가 4대의 헬리콥터에 분승,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비무장지대에 가겠으니 북한측 조사단이 남쪽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안전담보확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 반김일성 투쟁 표면화… 조총련 “술렁”

    ◎「독재타도 대회」 준비위 구성 안팎/세습ㆍ공포정치에 첫 조직적 반기/자금지원등 끊겨 북한에 큰 타격 줄듯 북한의 권력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김일성독재를 타도하고 북한및 이에 맹종하는 조총련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재일 조총련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어 일본 각계의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소련ㆍ동구사회주의 국가의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과 때를 맞춰 재일동포 사이에서 처음으로 표면화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집중시킨다. 주축인사들은 도쿄(동경)도 주우(중앙)구에 사무소를 둔 조선통일연구사의 대표이며 전조총련중앙조직부부부장을 역임한 하수도씨 등 30여명이다. 이들은 오는 5월중 「김일성독재체제타도ㆍ조국통일촉진 재일 조선인궐기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하고 이 대회 성공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11일에는 도쿄 스이도바시(수도교)에서 제1회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수도 성진영 백찬옥 최장환 최용연씨 등 5명을 의장으로 선출한 뒤 최장환씨의 사회로 준비위원회를 진행했다. 보고에 나선 하수도씨는 소련ㆍ동구사회주의제국의 민주화의 본질,스탈린주의와 스탈린형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그 관련하에 김일성정권이 실시해온 정책을 스탈린형 사회주의의 「기계적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고 통렬히 비난했다. 하씨는 6ㆍ25동란에 대해서도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라고 단정하고 『해방후 40년간 김일성이 추구해온 것은 민족의 통일도,북한인민의 행복도 아니었다. 김일성은 일관해서 전조선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는 것을 추구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 종말은 세습체제옹립에 의한 「김일성왕조」의 확립이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공포정치,비밀경찰지배의 실시라고 규탄했다. 그는 『재일동포는 지금이야말로 김일성독재공포정치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궐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1차 준비위원회 참석자들은 하씨의 보고에 이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도쿄 뿐만 아니라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 시즈오카(정강)등 일본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대표들은 소련ㆍ동구에서의 민주화 진전후각지의 조총련조직은 이같은 민주화열기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상세히 보고했다. 이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북한과 조총련민주화투쟁에 앞장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준비위원회 제1차회의에서는 궐기대회 준비를 위한 간사12명을 선임했다. 간사는 대회성공을 위한 실무를 담당하게 되며 이들을 중심으로 곧 대중을 동원키로 확인했다. 이번 궐기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인사들은 모두 과거 조총련의 간부급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독재집단 북한에 맹종해 온 조총련조직에서 민주화요구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의 궐기대회 명칭자체를 「김일성독재체제타도」라고 못박은 것부터가 처음있는 일이며,그 결의를 엿보게하는 것이다. 민단 중앙본부 정달현선전국장도 14일 『조총련의 성격상 기대하지 못했던 큰 사건이며,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조총련 지도급인사들에 의한 민주화투쟁은 조총련내부를 크게 동요시킬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큰 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재일동포 67만 가운데 한때 45만명을 차지했던조총련계 한인숫자는 최근 급격히 감소,지금은 20만∼25만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같은 숫자는 이번 민주화요구 궐기대회 이후 더욱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민단측이나 관계당국이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성원하거나 간섭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민단으로 전향하는 조총련계 인사가 늘어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들 조총련계 사업가들은 지금까지 북한에 막대한 금액의 자금을 지원,경제난 타개에 도움을 주어왔다. 매년 김일성생일때는 50억∼1백억엔,김정일생일에도 30억엔 안팎의 자금을 지원해 왔다. 북한측에서 요청하는 공개되지 않은 자금지원도 상당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조총련 내부에서의 민주화 움직임은 이같은 북한에 대한 자금지원면에서도 큰 타격을 주게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연쇄적으로 북한재정에 더욱 악영향을 미쳐 북한주민의 생활을 궁핍하게 하고 김일성정권에 대한 불만요인으로 누적되어 「폭발원인」의 하나가 될 것으로 도쿄의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 북한,전투준비 명령/팀스피리트 비난

    【내외】 북한은 27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를 발표,전체 북한군 및 민병조직에 전투동원준비태세명령을 하달했다. 북한은 중앙방송으로 발표된 이 보도에서 팀스피리트훈련을 「북침 예비전쟁ㆍ핵시험전쟁」이라고 비난했다.
  •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신축지/“천하명당” 4백년전 표석 발견

    ◎공사중 우연히 드러나 「풍수설」 화제로/화강암 암벽에 「천하제일 복지」 음각/글씨크기 가로ㆍ세로 50cm… 해서체로/정도전도 “명당” 지목… 낙관자리 「연릉 오거」 규명이 열쇠 청와대 구내 대통령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뒷산 암벽에 천하 명당자리라는 표석이 최근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표석은 수직으로 된 화강암 암벽을 깍아 가로 2m50cmㆍ세로 1m20cm의 암벽면에 「천하제일복지」라고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50cm,획의 굵기는 9cm인데 해서체로 씌어있다. 낙관자리에는 가로 세로 12cm 크기로 「연능 오거」라고 새겨져 있어 이 표석의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획 굵기는 9cm 정도 청와대측은 지난 20일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인 청명 임창순옹을 초빙,1차 감정한 결과,글을 새긴 연대는 지금부터 3백∼4백년전인 조선조 중기쯤으로 추정되며 글씨체로 미뤄 중국 청대의 서체 영향을 받은 것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연능오거」의 인적사항이 규명되면 더 정확한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나조선조때 서예대가로 오거라는 인물이 없는것 같고 연능이 아호인지 아니면 연능에 사는 오거인지도 불확실하다. 오거가 명필이 아니라면 조선초기나 중기의 풍수지리에 밝은 역학가일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는 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선인들이 새긴 표석이 기초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은 무언가 길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석이 발견된 암벽은 현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백50m 떨어진 가파른 지역인데 암벽 전면이 나무로 가려져 있는데다 이 쪽에는 길이 없어 그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5월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관저로 사용해온 현 청와대 건물 대신에 대통령 집무실(현 본관의 서북쪽 1백50m)과 함께 관저를 이곳에 새로 착공하면서 최근 공사를 위한 배수로를 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북악의 언저리는 본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이태조가 서울로 천도할때부터 궁터로 점지되었던 곳이다. 한양천도 당시 무학대사는 지금의 인왕산 자락에 동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한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남향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주장,이태조가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지금처럼 북악산의 정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하게 된 것이다. 한양천도 당시 풍수지리에 따른 주산(터를 등지고 있는 산) 결정과 도읍의 좌향 논의는 차천로의 오산설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학이 한양의 세를 보며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북악)과 남산으로 좌우의 청룡ㆍ백호를 삼으라고 하니 정도전이 자고로 제왕은 남면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동향을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궁궐은 임(서북서)좌병(남쪽)향하여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용으로 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 터는 한양천도 이전인 이미 고려 숙종때 지기가 쇠해가는 송도의 왕업을 연장하기 위한 이궁터로 선택됐다. 지금부터 9백28년전인 숙종9년(1062)에 이궁을 지었으나 1백50년이 채 못된 고종19년(1210)에는 강화천도와 더불어 폐기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이 자리가 경복궁 후원으로 단장된 것은 세종8년(1426)이었으며 서현정ㆍ취로정ㆍ관전ㆍ충순당ㆍ융문당ㆍ융무당ㆍ경농제ㆍ연무장ㆍ과거장 등을 설치했다. 그후 국운의 흥망에 따라 성쇠를 함께해 임진왜란 이듬해(1593) 경복궁의 소실로 황폐화되었으며 고종8년(1868)에 경복궁이 재건되자 이곳 또한 과거ㆍ열무ㆍ근농의 행사 등이 치러지는 후원으로 옛 영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의 본격적인 조선왕실 유린으로 이곳도 훼손돼 융문당ㆍ융무당 할것 없이 차례로 철거되었다. 조선조때 건물도 남아있는 것은 약간 자리를 옮겨 일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별채와 같은 20평 남짓한 침유각과 2평 가량의 오운정이 옛날의 향취를 다소나마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일제 식민통치의 제7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남차랑)가 착공,중일전쟁으로 한차례 공사를 중단하는 곡절을 겪으며 착공 2년반만인 1939년 9월 준공을 했다. 당시 미나미는 남산의 왜성대,용산의 사택,현 적십자병원 자리의 임시사택 등을 옮겨가며 식민통치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택 신축 부지를 물색하던 중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복궁이 눈아래 보이는 이곳을 택했다. ○청대 서체 영향 받아 일제는 조선 주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그 전면에 총독부 청사(현 국립박물관ㆍ구 중앙청)를 지은데 이어 그 후면에 총독관저를 지어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에 있어 용맥을 끊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항설에 의하면 일제는 경성부 청사(현 서울시청)­총독부 청사­총독관저로 이어지는 남향축이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북악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왕궁을 건설한 풍수의 맥을 압살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에서 보면 경성부 청사건물이 「대」자형,총독부 청사가 「일」자형이고 총독관저 건물 구조가 「본」자형으로 돼있어 동대문쪽에서 서대문쪽을 바라보면서 이를 읽어보면 「대일본」으로 읽혀진다는 항담도 있다. 그러나 풍수에 밝은 술가들 사이에는 당시 일제의 총독관저 자리 물색에 징발되었던 조선인 풍수지관이 본래 「임좌병향」의 북악의 용맥과는 약간 비켜나 있는 현 위치를 잡아주어 그 건물에 기거하게 되는 총독들이 망하도록 했다는 구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이번에 발견된 표석이 북악의 혈(풍수에 있어 음양이 합해지고 산수의 정기가 응결된 곳)에 해당되는 곳이라면 그럴법도 하다. 청와대 당국이 현재의 이 본관건물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진시키고 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짓기로한 결정적인 동기도 이 건물이 지난 반민족적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독립한지 45년이 되고 전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식민통치의 채찍을 휘두르던 일제 총독의 사택을 집무실겸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자존을 국정의 제1 지표로 내건 6공화국 정부의 이념에는 물론 민족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 집무실의 건물은 영빈관쪽 출입문과 직선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본관 건물 서쪽 뒤편 구릉에 신축되고 있으며 한옥지붕 양식의 2층으로 총건평은 현재 본관 건물(1층 집무실ㆍ2층 대통령 살림집)의 9백평 보다 약간 적은 8백평 규모이다. 완공시기는 내년 상반기쯤으로 잡고 있어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1년반을 이곳에서 집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저는 명당표석이 발견된 곳으로 부터 남쪽 아래로 50여m 떨어진 곳에 동향인 본채와 남향인 별채로 나뉘어 지어지고 있는데 역시 한옥 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며 총건평은 8백평 가량 된다. 관저는 빠르면 금년 9월께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집무실과 관저가 모두 한국전통의 청기와 지붕형태로 건축되기 때문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영빈관 건물,그리고 오는 7월쯤 완공되는 보도관(프레스 센터)건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현 청와대 경내는 우리 고유의 전통건축미로 조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앞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완공되면 현재의 청와대 본관 건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윤보선ㆍ박정희ㆍ최규하ㆍ전두환 전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에 관한 자료를 보관,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길조로 받아들여” 대통령 관저의 신축장소가 명당표석이 발견된 지점과 일치된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청와대 주변지반은 대부분이 암반이어서 공사하기에 쉽게 좀 넒은 터를 찾아보니 이곳이 눈에 띄었을 뿐』이라며 『전적으로 우연이었다』고 설명했다.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긴 표석의 역사적인 고증은 앞으로 전문가들의 조사와 검토가 더 있어야 밝혀지겠지만 현 본관건물 2층에서 기거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풍수지리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새 관저 신축을 계기로 대통령의 임기가 평화롭게 끝나고 물러나서도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전직대통령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 “김일성 은퇴 선언 임박” 홍콩지

    ◎전국 군ㆍ정기관,김정일에 “충성궐기”/관영통신,아들에 「위대한 수령」 호칭 【홍콩 연합】 북한의 김일성이 16일로 만48세가 되는 아들 김정일에게 정부와 노동당의 일상적인 업무를 넘겨주고 상징적인 국가원수자리만 고수한다는 일선 은퇴선언을 곧 발표할 것 같다고 16일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보도했다. 리뷰지는 또 북한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김정일의 48회 생일을 맞아 북한전역에서 행정기관들이나 군부대들이 김정일에 충성을 보이고자 당 단위로 일제히 충성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이날 48회 생일을 맞은 김정일을 이제까지 김일성에게만 사용했던 「위대한 수령」이라는 칭호를 붙여 찬양했다. 도쿄서 수신된 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와 정무원의 기관지인 민주조선이 김정일의 생일축하 기사에서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호칭했다고 전했다. 민주조선은 정치기사에서 『김정일 동지를 위대한 지도자로 크게 존경하는 일이야말로 조선인민들뿐 아니라 20세기의 온 조선인민들에게 최고의 영예와 행복』이라고 강조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공산권 뉴스를 모니터하는 일본의 사설통신인 라디오 프레스는 김정일이 위대한지도자로 불려지기는 처음이라고 말하고 이제까지 그는 경애하는 지도자로 주로 호칭돼 왔다고 덧붙였다.
  • 외언내언

    『당신은 재일 한국ㆍ조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짓을 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같은 전철칸의 한인 여고생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빈자리에 앉는 여중생 허벅지를 우산대로 찌르고 「센징」(선인)은 앉지마라며 자신이 앉는다든가 거리의 한인 여학생을 놀리며 치마를 찢는 일 등이 일본 각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조총련계 한인등의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빠찡꼬」 헌금이 정치 문제화하고 있던 작년 11월28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사설의 서두다. ◆기회 있을 때마다 고개를 내미는 일본인들의 재일 한인들에 대한 차별ㆍ배척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일본 신문이 지적해준 예라 하겠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일인들의 한인차별ㆍ배척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며 사회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 한인들이 살아가며 보람을 찾고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본사회의 그러한 차별과 배척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재일 한인들은 예ㆍ체능의 자유ㆍ전문직을 택하거나 상업ㆍ서비스업 분야에서 오로지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길을 택한다.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에 의해 실력을 쌓기가 비교적 용이하고 차별이나 배척의 방해가 영향을 미치기가 비교적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 야구선수로 오른손의 장애를 극복하고 유일하게 3천85안타라는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운 장훈선수. 지금은 은퇴,야구 해설을 하고 있는 그가 24일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영예인 일본야구체육박물관 야구전당에의 헌액 표창을 받게 된 것도 그런 사실을 잘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5년 이상 경력의 일본야구 담당기자들,특히 일본인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이 영예를 그는 많은 일본인 후보들을 물리치고 차지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차별ㆍ배척 의식도 장훈씨의 실력과 업적 앞엔 무릎을 꿇은 것이다. ◆지난 31년 동안 이 영예를 차지한 일본프로야구의 영웅은 모두 33명. 일본야구체육박물관 야구전당에 그의 업적이 기록된 청동초상동판이 걸리는 것이다. 온갖 유혹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않아 재일한국 젊은이들의 대부라는 평까지 받고 있는 장훈씨의 영광에 박수를 보낸다.
  • 사할린 동포 첫 TV 상봉/국내 18가족,50년만에 한 풀어

    ◎KBS서 위성중계 일제때 징용에 끌려갔다가 현지에서 해방을 맞자 오히려 해방이 사슬이 되어 50년이 가깝도록 이국땅에서 억류생활을 해야했던 사할린동포. 그들이 90년대 벽두 전파영상매체를 통해 국내거주 가족들과 상봉,오랜 「이산의 한」을 풀었다. KBS­1TV는 2일 하오9시30분부터 2시간동안 소련 사할린방송국과 서울ㆍ대구 KBS스튜디오를 3각으로 연결,진행한 원단특집 위성 생방송 「사할린의 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36명의 이산가족(18쌍)을 화면으로 상봉케했다. 스튜디오출연(한국58명 사할린48명)과 사진ㆍ기자리포트 등으로 소개된 1백43가족중 화면을 통해 상봉한 36가족외에도 전화접수를 통해 20여가족이 확인을 요청해와 상봉 가족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할린 서울 대구순으로 TV화면을 통해 가족을 차례로 소개한 뒤 확인절차를 거쳐 직접 혈육을 상봉케한 이 특집방송은 찢겨진 혈육을 찾은 감격에 오열하는 상봉가족의 모습들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KBS는 전화로 접수된 사할린 가족찾기 신청사항에 대해사할린의 조선인 이산가족협회와 국내의 대한적십자사,중소이산가족회(대구) 등 관계기관에 자료를 넘겨 가족상봉을 지원할 계획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