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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일 수교까진 “험난한 길”/평양 1차 본회담의 여운

    ◎핵사찰­전후보상 싸고 정면대립/“접점찾기”보다 쌍방입장 확인만 일본과 북한 사이의 역사적 정부차원의 첫 협상테이블이었던 국교정상화를 위한 제1차 본회담은 쌍방의 입장차이만 극명하게 드러낸채 막을 내렸다. 처음부터 예상됐던 바이기는 하나 양측은 역사인식·핵사찰·전후 보상문제에서 정면으로 대립,현상태에서 「호상의 접점」은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은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의 길이 험난하며,상당한 시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북한측은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30일 상하오 2차례,31일 상오 1차례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개최됐던 회담에서 그들의 속셈을 숨김없이 드러냈으며,한국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은 서슴지 않음으로써 남북회담 자체에도 먹구름을 끼게 했다. 본회담에 앞서 일본측 대표단을 만난 북한의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은 『세계의 대다수가 선의를 갖고 일·조 국교정상화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비뚤어진 마음으로 보고 있는 세력도 있다』며 한국을 신랄히 비난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측에의해 새롭게 논점으로 부상한 것은 일본측 사죄의 「문서화」 문제이다. 사죄문제에 대해 일본측은 다케시다 노보루(죽하등) 전 총재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국회에서 전전의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했으며 나카히라 노보루(중평립) 일본측 수석대표도 모두연설에서 『양국이 과거의 한때 불행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유감』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북한의 전인철 수석대표(외교부 부부장)는 이 문제에 대해 『양국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서는 일본국,나아가 정부 최고책임자의 사죄가 있어야 한다. 가이후총리가 김일성주석에게 전달한 친서에 과거 조선인민에 끼친 손실과 피해에 대해 사죄한 이상,1910년의 한일 합병조약을 비롯,일본이 구조선과 조인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불법이며 무효라고 선언해야 한다. 이 사죄의 내용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공식서류에 명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보상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측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보상」이 국교수립의 전제조건이라고 들고 나왔다. 보상방식도 전전·전시중의 식민지 통치시대에 대해서는 교전국간에 적용되는 「배상」과 「재산청구권」의 양면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대의 난관은 역시 핵사찰 문제였다. 일본측 나카히라 수석대표는 『국제사회의 핵의혹을 일소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핵병기불확산조약(NPT) 가입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한다』고 공박했으나 북한측은 『이 문제는 일·조교섭의 대상이 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더구나 북한측은 『미국이 핵병기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법적보장을 받을 수 있다면 국제원자력기관(IAET)의 사찰을 받겠다』며 미국의 핵불공격 보장조치가 조건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또 주한미군의 존재에도 언급,『주한미군이 소유하는 핵병기도 동시에 문제로 삼아야 한다』며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은 물론,미·소 등 관계 각국이 그 향방을 주시하고 있으며 일본도 한·미 양국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 터여서 쉽사리 물러설 수는 없는 입장이다. 어쨌든 이번 제1차 본회담은쌍방의 입장차이가 크다는 사실만 확인한채 끝났다. 오는 3월 도쿄(동경)에서 개최될 제2차 본회담에서는 이 간격을 어느 정도 좁혀 회담을 진행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이곳 외교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 지문날인제도 폐지/전외국인 확대 적용/사토 일 법상

    【도쿄=강수웅특파원】 사토메구무(좌등혜)일본 법상은 4일 지문날인제도의 폐지에 대해 재일한국인·조선인·대만 출신자 등 역사적 배경과 정주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미인 등을 포함한 전재일 외국인을 대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토법상은 이날 법무성안에 설치된 「외국인등록제도 검토촉진위원회」의 첫 회합에서 인사말을 통해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는 한일 양국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고 『일본에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한 행정 및 처우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 검토를 요하는 폭넓은 의미를 갖는 문제』라고 지적,전폐의 방침을 표명했다. 이에따라 법무성은 재일한국인·조선인·대만인 등에 대해서는 오는 93년을 목표로 「가족등록제」로 대체할 방침이지만 기타 외국인에 대해서는 사진과 서명으로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대체수단을 개발키로 했다.
  • 정전위 수석 한국장성으로 교체되면…(해설)

    ◎군사문제 남북 직접대화 길 열려/한국 방위의 한국화에 또 한걸음/휴전협정상 북한 반대 여지 없어 오는 91년 1월부터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키로 한 것은 한국의 휴전문제를 남북한 군사당국자들끼리 직접대화를 통해 해결토록 하자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같은 결정은 지난 11월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양국 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한 바 있으며 북한측도 기회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군사문제를 미국이나 중국 등 외세의 간섭없이 직접 대화하자고 선전해왔었다. 그러나 공산측이 군정위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하는 것을 반대해온 이유는 한국이 유엔군과 북한군,중국 인민군간에 체결된 휴전협정의 조인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휴전협정 제2조 20항에 『군사정전위원회는 10명의 고급장교로 구성하되 그 중 5명은 유엔군 총사령관이 이를 임명하며 그 중 5명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이 공동으로 임명한다』고 되어 있어 수석대표의 임명은 유엔군 사령관의 고유업무로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임의로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1953년 7월 휴전 당시 한국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휴전회담 대표가 회담장에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북한·중국군 사이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군정위 수석대표가 한국군으로 교체될 경우 현재 한미연합사령부 참모 중 한국군 소장급 장성이 맡고 있는 인사·작전·군수참모 중에서 임명될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도 정전위 대표로 나가 있는 작전참모인 육군 소장이 발탁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하는 것은 92년말까지 한미연합사 지상군구성군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으로 보임하는 것과 함께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한 걸음 앞당길 수 있는 조치로 기대된다.
  • 일·북한 수교 본회담 1월 평양서/북경 접촉서 합의

    ◎보상·핵사찰 의제에 포함 【도쿄=강수웅 특파원】 일본과 북한은 내년 1월 하순 평양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제1차 본회담을 개최키로 17일 합의했다. 일정을 하루 연기,17일 상오 북경의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일·북한 국교정상화를 위한 제3차 예비회담 3일째 협의에서 쌍방은 본회담 개최를 정식 합의하고 합의문서를 발표했다.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일본 외무성 아시아 국장이 발표한 합의문에 따르면 1차 본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고 제2차 본회담은 도쿄(동경)에서,제3차 이후는 북경에서 개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예비회담에서 의견차이를 보였던 의제는 ▲일·북한 국교정상화에 관한 기본문제 ▲정상화에 따른 경제적 제문제 ▲정상화에 관한 국제문제 ▲기타 쌍방이 관심을 갖는 제문제(재일 조선인의 법적지위문제·일본인처문제)의 4개 항목으로 합의했다. 본회담의 교섭수준은 차관급으로 하되 일본측은 대사,북한측은 외무차관이 맡도록 했다. 그 동안의 예비회담에서 의견차이를 보였던 의제는 ▲일·북한 국교정상화에 관한 기본문제 ▲정상화에 따른 경제적 제문제 ▲정상화에 관한 국제문제 ▲기타 쌍방이 관심을 갖는 제문제(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문제·일본인처 문제)의 4개 항목으로 합의했다. 본회담의 교섭수준은 차관급 하되 일본측은 대사,북한측은 외무차관이 맡도록 했다. 그 동안 예비회담에서 입장의 차이를 보였던 전후 45년간의 「보상」문제와 북한의 원자력시설 사찰문제는 의제 가운데 「경제적 제문제」와 「국제문제」에 추상적으로 포함시켜 본회담에서 본격적으로 협의키로 했다. 이번 예비회담은 당초 15,16일 이틀 동안 열릴 예정이었으나 의제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북한측이 일정 연장을 요청,17일의 회담에서 합의를 보았다.
  • 북한 인삼 재배·한국 제약 가공/소 기업,합작사업 추진

    ◎조선계 바렌친 최 사장 밝혀 【도쿄 연합】 소련의 대규모 기업이 처음으로 남북한 업체와 합작사업을 추진,주목을 모으고 있다. 24일 교도(공동)통신 보도에 의하면 소련 하바로프스크에 본사를 둔 대형식품회사 「엑스퍼사」의 바렌친 최 사장은 북한과 합작으로 조선인삼을 재배하여 한국과 합작으로 이를 약으로 가공,판매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최 사장은 지난해초 북한과 합작회사를 설립,재배인삼 일부를 이미 상품으로 냈으며 오는 95년까지 인삼밭을 5백㏊까지 확장할 것이라면서 장차는 완전히 자란 인삼을 그대로 팔지 않고 약품으로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제약기술이 발달했고 외국에 판매할 경우에도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국과 합작회사 설립을 절충중이나 회사이름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엑스퍼사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이후 식품 및 제약을 중심으로 은행·무역·관광사업에 뛰어든 소련판 재벌기업으로 약 7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최 사장은조선계 러시아인으로 올해 실시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현재는 러시아공화국 대의원직을 맡고 있다.
  • 일 고교체육연맹/한인교 가입 거부

    【도쿄=강수웅 특파원】 일본의 전국고교체육연맹은 16일 도쿄(동경) 세이료가이칸(성등회관)에서 전국이사회를 열고 재일 조선인계 중·고교가 요구하고 있는 체육연맹 가맹문제를 협의,『규약을 개정하지 않고 종래대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사실상 가맹거부를 결정했다.
  • 가난 못이긴 북한인,중국망명 급증/방북 중국인들의 체험담

    ◎평양 여성,금반지 팔아 미 달러화 구입/어부들은 고기 잡아 국경넘어 밀매도 김일성의 「지상낙원」이 불만으로 가득차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들은 가난으로 북한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의 접경지인 단동에 사는 중국인들은 『북한 상점에는 팔 물건이 거의 없으며 여자들은 귀중한 미국달러를 사기 위해 금반지를 팔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어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밀수꾼으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지상천국』이냐고 물으면 북한인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왜 그들이 중국으로 망명하겠느냐』고 대답한다. 단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지난 9월 북한을 1개월간 방문한바 있는 중국거주 한 조선인은 『북한에 사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돌아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하나의 감옥이다. 감옥이 아니라면 그곳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2년간 매년 2번씩 북한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올해 기상이변으로 식량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농촌에군비확보를 위한 충분한 식량조달을 명령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대다수 농민들은 현재 한달에 20㎏으로 되어 있는 식량을 제대로 배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도시와의 물물교환형태로 조달하던 고기는 구하기 힘들어 졌다. 단동시의 한 관리는 지난 3년간 헤엄을 치거나 보트를 이용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해 오는 북한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이들 북한 망명자들을 대하는 것은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모든 망명자들을 북한으로 재송환하기로 협정을 맺고 있지만 북한 망명자들이 다시 본국으로 송환된다는 소리를 듣고 겁에 질리는 것을 보면 차마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북한인들이 중국으로 망명해 오는 것은 정상적인 임금,풍부한 식품,서구식 개인기업 등 북한엔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국적인 삶을 동경해서라고 이 관리는 덧붙였다. 북한 어부들 가운데 일부는 밀수꾼으로 변하고 있다. 이들은 야음을 이용,그들이 잡은 전복이나 해삼을 중국인들에게 팔기도 하고 때론 중국 암시장을통해 미 달러화를 구하려는 북한 여성들을 위해 금반지등 귀금속을 파는 중개인 역을 맡기도 한다. 달러화는 북한 당국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더러운 돈」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북한의 일반주민들에겐 외화만 받는 고급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10년전 홍콩에 사는 중국인들이 중국의 가난한 친척들을 위해 식량과 옷가지 등을 싸들고 중국을 향했던 것처럼 이젠 중국인들이 북한내의 가난한 친척들을 위해 쌀이나 헌옷 등을 싸들고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 6ㆍ25참전 40돌 맞아/중국 대표단,평양에

    【북경 AP 연합】 중국은 25일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중국과 북한과의 우호는 『순치』와 같이 긴밀히 지속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한ㆍ중 국교개설을 바라는 한국측 희망에 대해 거부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날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사설을 전면에 싣고 『우리는 중국인과 조선인들간의 뿌리깊은 우호와 양국간의 우호적이며 협력적인 관계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은 중국군 파병 40주년을 맞아 평양에 수십명의 관리들과 한국정쟁 참전용사들을 파견했다. 정치국원 겸 국가교육위원회 주임 이철영은 3개의 중국 대표단 가운데 한 대표단을 인솔하고 있는데 북한은 약 60명의 중국인들에게 메달을 수요했다.
  • “김일성 항일행적 사실과 다르다”/K­TV 「여성의 그날」 토론회

    ◎박정희도 광복군에 합류 안해/역사 왜곡없도록 신중 기해야 TV드라마속의 박정희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주석의 해방전 행적묘사에 대해 열띤 찬반논쟁이 벌어져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방송위원회(위원장 강원룡)는 최근 KBS­TV가 방영중인 대하드라마 「여명의 그날」(일 하오9시40분)에서 이들 두 인물의 해방전전력을 묘사하는 내용중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사회각층의 여론에 따라 23일 프레스센터 위원회 회의실에서 광복군관계자 및 학자ㆍ작가ㆍ제작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에 대한 토론회를 마련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요 논점으로 등장한 부분은 첫째 일본군 박정희중위가 「여명의 그날」이 묘사한 것처럼 광복전에 만주의 철석부대를 이끌고 광복군과 합류했는지 여부,그리고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했는지 여부였다. 해방전 일본 만주군에서 하사로 근무했던 박창암씨(67ㆍ월간 「자유」대표)는 토론에서 『당시 박정희는 철석부대(정식명칭은 「특설부대」)에 속해 있지 않았으며 광복군과 내왕한 일도 없다』고 말하고 『이 부대의 홍청파소위가 중공의 팔로군과 합류한 사실은 있다』고 증언,일본군 박정희중위의 광복군합류를 부정했다. 광복군의 일원이었던 박영준씨(75ㆍ광복군 동지회장)는 당시 북경에서 근무했던 광복군간부의 증언을 빌려 『박정희중위 등 4명의 조선인 일본군이 광복군에 귀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방직후인 8월말에는 9월초 사이의 일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작가 김교식씨(56)는 『해방전 광복군의 공작교섭대상에 박정희중위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 광복군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김일성의 행적도 지나치게 미화되었다는 의견에 대해 작가 김씨는 『미화할 의도는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국내외에서 나온 30∼40권의 김일성관계 서적을 참고해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현재 학계에서 김일성의 해방전 행적을 보는 시각이 세가지로 나누어진다는 것. 첫째는 김성주가 항일운동가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설,둘째는 항일운동가 김일성이 바로 지금의 김일성이지만 소련공산당의 예속부대였다는 의견,셋째는 독립된 조직으로 항일했다는 학설. 이중에서 김씨는 두번째 학설을 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창순씨(70ㆍ북한연구소 이사장)는 『김은 소련공산당 밑에서 그들의 앞잡이로 항일운동을 한것이지 결코 항일의 주체는 아니었음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허동찬씨(58ㆍ대륙연구소 연구위원)는 『이 극에 나오는 88여단의 행적이나 김의 활동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이 많으며 김은 공산당에 입당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로서의 정통성도 없음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김일성­도이ㆍ오자와 연쇄회담 내용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10일 상오 10시52분부터 11시15분까지 평양의 금수산의사당에서 일본 집권 자민당의 오자와 이치로(소니일랑)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 대표단과 회담을 갖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강한 의욕을 표시했다. 김주석은 이 회담이 끝난후 오자와 간사장 등을 위한 오찬을 베풀고 계속 환담을 나눔으로써 대일수교에의 열의를 나타냈다. 이보다 앞서 9일에는 일본사회당의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위원장과도 만나 남북통일문제등을 둘러싼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북한ㆍ일 관계정상화에 장애 없다”/“이제 문 열렸으니 친선ㆍ우호관계로 발전” 김일성/“한 테이블서 정부차원의 정상화 노력을” 오자와 ▷김일성­오자와 회담◁ ▲김일성=나는 귀하가 우리의 초청을 받고 조선을 방문해 준데 대해 감사한다. 특히 가네마루(금환) 전부총리가 방문한 이후 자민당이 우리 로동당의 45주년 기념식에 초청을 받아들여 간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맞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열렬히 환영한다. 선생들의 북한방문으로 창당기념일이 빛나게되었으며,더욱 기쁜 것은 조선 로동당과 자민당이 관계를 수립한 사실이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오자와 간사장=초대를 받아 감사한다. 가네마루회장이 방문 했을 때 신세를 져 고맙다. 당을 대표해 평양을 방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양당ㆍ양국간의 교류가 깊어져 친선ㆍ발전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김=간사장을 비롯,자민당을 대표하는 여러분이 방문해 줄 줄은 몰랐다. 열렬히 환영한다. 크게 감동하고 있다. ▲오자와=새로운 역사의 또다른 한 폐이지다. 가네마루회장을 비롯한 양국 대표단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것을 계기로 양국간의 우호를 장래에 걸쳐 한층 더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가이후(해부)총리에게도 잘 전해 달라. 먼길 외유를 마치고 귀국한 인사를 드려달라. 가네마루 선생에게도 안부 전해달라. 가네마루 회장은 『바람구멍을 열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문을 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깝고도 밀접한 관계가 되어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자와=국회에서는 일상 사회당과 상당한간격이 있지만 이번 일에 관해서는 일치 협력,무겁고도 무거운 문이지만 여는 것이 가능했다. 앞으로도 이 무거운 문을 다시 열어 보다 훌륭한 관계를 구축했으면 한다. ▲김=문은 열렸기 때문에 드디어 정상화의 관계에 들어간다. 3당합의에 대해서도 장애물은 없다. 이제부터는 결정해 들어가야 한다. ▲오자와=나도 동감이다. 가능한 한 정부사이에 같은 테이블에서 정상화를 위한 한층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김=매스게임은 어제 예정을 오늘로 변경했다. 술(와인 글라스)은 4잔밖에 마시지 않는다. 담배는 60살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75살 생일날 의사들이 말려 관두었다. 가네마루씨는 『내년은 조선ㆍ일본 관계개선을 위해 진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오자와씨에 달려있다. 가이후총재에게도 그렇게 전해달라. ▲오자와=꼭 그렇게 하겠다. ▲김=아시아대회에서 중국대표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면 분규가 일지 않겠는가』라고 걱정했는데, 대회에서 하나가 되어 성원하는 장면을 보고 놀랍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축구팀이 민족애라고 말할까.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있었다. 나는 TV로 보았다. ◎“분단 50년 되기전에 고려연방제로 통일” 김일성/“남ㆍ북한,자주적 평화통일 조기성취 염원”도이 ▷김일성­도이 회담◁ ▲김=통일에 대해서는 조선인민의 바람은 매우 깊다. 전 조선인민이 분열되어 50주년이 되기 전에 통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군이 2000년에도 남에 주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분열 50주년까지는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민심은 하늘을 이긴다』고 한다. 민심이 하나로 뭉치면 그것을 꺾을 수는 없다. 우리는 통일은 다른 하나가 또다른 하나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2개의 제도,2개의 자치정부로 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연방공화제라는 것이다. 2개의 제도를 남겨 두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나는 사회주의제도,하나는 자본주의제도인데 하나의 세력이 한쪽을 통합하려고 하면 또 싸움이 된다. 연방공화제로 통일하는 것이 인민의 소원이다. 남북총리회담을 위해 16일에 남쪽 총리가 평양에 온다. 이쪽 총리가 남쪽에 가서 노태우대통령과 만났을 때,대통령은 『김일성주석이 말하고 있는 자주ㆍ평화ㆍ대단결을 지지하는 뜻을 꼭 주석에게 전해달라』고 발언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3개 원칙을 대통령도 지지하고 승인까지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연방공화제에 찬성한다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쪽 총리가 서울에 갔을 때 통일에 대해 3가지를 제안했다. 총리회담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팀스피리트를 중지하든가,적어도 2년간은 연기해야 한다. 칼을 갖고 평화의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노대통령은 7ㆍ7선언에서 북한도 동료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방문해서 붙잡힌 문목사ㆍ임학생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우리총리가 노대통령이 꼭 결단을 내려 두사람을 석방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직접 남쪽 총리에게 어떤 결단을 노대통령이 내렸는지 들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유엔 단독가입은 중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도록 했다. 단독가맹은 2개의 조선이 되어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제기한 3가지 점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회답이 없다. 16일에 남쪽 총리가 오는데 3가지중 일부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도이=하루라도 빠리 자주적ㆍ평화적인 통일을 마음으로부터 염원한다. ▲김=3당 공동선언에는 조선은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써 넣었다. 조선은 반드시 하나가 된다. 3당이 바라고 있으며,또 하나의 당이 이 3당처럼 된다면 통일은 빨리 이루어진다. 또 하나의 당이란 남한의 민자당이다.
  • 북한,유엔 정책 2중성 노출/단일의석 되풀이 주장 속사정

    ◎“어떤 방안도 협상” 박길연 발언 번복/한국 단독가입 저지 “시간벌기” 전략 북한은 5일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 가입문제 협의를 위한 제2차 남북실무대표 접촉에서 유엔 가입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였던 안보리 제출서한과는 달리 「두개의 조선반대」 및 「단일의석 공동가입방안」을 되풀이 주장함으로써 북한의 유엔 가입정책이 대외적인 태도와 대남입장간에 2중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북한측은 이날 단일의석 공동가입방안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지 않으며 어떠한 유엔 가입방안에 관한 협상에도 유연한 자세를 보일 용의가 있음을 밝힌 박길연 주유엔 대표부 대사의 안보리 제출서한에 대해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유엔 가입에 대한 북의 입장에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 안보리 서한에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안보리 제출서한은 우리의 연내 유엔 단독가입을 저지하려는 시간끌기 전략차원에서 나온 것일 뿐 아니라 남북간에 유엔 가입문제를 놓고 협의중임을 알리기 위한 국제사회의 선전용이라는 게 남북 문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남한의 유엔 가입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성숙하자 대외적으로 외형적 변화를 과시하기 위한 제스처로 안보리 서한이라는 「비상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같은 북측의 태도를 연내 우리의 단독가입을 저지하려는 명백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오는 16일 평양 2차 고위급회담에서 북의 입장이 변화하지 않으면 더이상 북측 태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유엔 가입신청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이번 45차 유엔 총회야말로 중국의 거부권 불행사 가능성을 비롯,우리의 유엔 가입분위기가 성숙해 있을 뿐 아니라 북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번 연기하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등 실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2개의 조선반대」 정책 논리를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북한은 지금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두개의 조선반대」라는 명분론을 펴야하고 일본과의 수교를 위해서는 「두개의 조선인정」이라는 현실론으로 돌아서야 하는 갈림길에서 강·온 양파의 대립 등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오는 16일 남북고위급회담의 2차 평양회담에서도 「두개의 조선반대」 명분으로 우리의 유엔 단독가입을 계속 저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박정현 기자〉
  • 「전후 45년」 대북 배상/「북한­일 공동선언」의 파문

    ◎새로운 외교분쟁의 불씨로/「배상의미」 싸고 일 정계 논란/“한국과 균형 상실”… 대책 고심/중국·대만·필리핀과도 마찰 불가피 「가네마루 대표단」이 북한측에 약속하고 돌아온 「전후 45년의 손실보상」이 일본 국내외에 새로운 외교적 분쟁의 불씨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가 김일성 주석 앞으로 보낸 「자민당 총재 명의」의 사죄서한도 형식상 명의만 당 총재 명의였을 뿐,그 내용은 「내각총리 대신으로서」 사죄한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다. 28일 북한의 조선 로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3당간에 조인된 공동선언 제1항은 이같은 사실을 명기했다. 『3당은 과거에 일본이 36년간 조선인민에 끼친 불행과 재난,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받은 손실에 대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해 충분히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자민당 가이후 총재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한 친서에서 일찍이 조선에 대해 일본이 끼친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던 것에 언급,「그같은 불행한 과거에 대해서는 다케시타(죽하) 전 총리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깊은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있는데,나도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그와 전적으로 동감이다」라는 것을 명백히 해 일·조 양국간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희망을 표명했다』 일본이 36년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동선언에 나타난 「전후 45년의 손실」은 무엇을 뜻하는가,일본정부는 이의 해석과 대응방법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민당 간부들과 야당 인사들도 『전후의 보상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의혹의 빛을 감추지 않는다. 공동선언에는 그 의미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측의 종래의 주장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의 한국일변도,적시정책이 북한과는 45년간의 소원한 공백상태를 빚었으며,그 결과 손해를 입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초 28일 상오중에 발표될 예정이었던 이 공동선언이 이날 하오 늦게 나온 경위도 바로 「전후 45년간」이란 대목 때문이었다. 공동선언문 작성은 27일 심야부터 시작돼 잠시 동안의 아침 휴식시간을제외하고 28일 하오 3시쯤까지 장장 16시간에 걸친 난항을 겪었다. 북한측의 논리는 전후 일본의 대북한정책이 적시정책이었으며,사죄와 보상은 식민지 통치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그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사회당측은 동조했으나 자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난항을 겪자 28일 상오 김용순 로동당 서기를 비롯한 3당대표자회담에서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가 『내 책임으로 넣겠다』고 결단을 내려 사실상 해결을 보았다. 지난 26일 하오 사회당측 단장인 다나베 마코도(전변성) 부위원장과 함께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마치고 나온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동행의원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측의 제안에도 충분히 이해해주었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다나베 사회당 부위원장도 『김 주석의 발언에 따라 북한·일본 관계는 새로운 밝음을 맞았다』며 27일의 답례연에서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 문제를 인도적 견지에서 해결하고 45년간 닫혀있던 양국관계에 「바람구멍을 뚫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가네마루·다나베 양단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직접 선원석방의 언질을 받아내고 새로운 우호관계 수립을 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북한방문단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판단했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국교정상화교섭 제의를 하게 한 「국제적 빅 뉴스」(자민대표단)까지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합격점을 받았다』고 대표단이 자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이들을 맞은 북한측의 「계산」에는 미쳐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 스타디움에서의 10만 관객과 5만 군중에 의한 매스게임은 「김환 선생 환영」을 카드섹션으로 연출,일행을 감격시켰다.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위해 묘향산으로 가는 열차는 특별히 꾸며진 침대열차였다. 이러한 환대의 뒤에 「전후 45년간의 손실보상」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이 「전후 45년」 문제는 일본정부 자체에는 물론 여야 각 정당에도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민당의 파벌회장인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회장은 『45년간 일본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 논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이번 북한방문단의 성과는 전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쪽에서도 반론은 심하다. 스카모토 사부로(총본삼랑) 전 민사당 위원장은 『전후 45년간도 사죄와 보상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외교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양국이 민주적으로 선린관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외무성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북한과의 정부간 교섭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일본정부의 입장을 주장할 때 식민지통치시대의 보상은 당연하지만 전후 45년간의 보상에는 응할 수 없다는 취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이유를 외무성 당국자는 이렇게 들고 있다. 『북한은 일본이 적친정책을 취했다는 것을 보상의 근거로 보는 모양이지만 그런 근거는 없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북한도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 적친정책을 취해오지 않았는가라고 반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무엇보다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대한국 관계이다. 한국에는 36년 만을 대상으로 보상했기 때문에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대만·필리핀 등 아시아주변 제국에 대해서도 선례가 되며 외교적 분쟁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북한측이 「45년간의 손실」을 정신적 손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피해국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방문단」은 정당차원의 관계개선을 급진시켜 정부를 곤혹하게 하고 있으며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에 남긴 「가네마루 수표」는 일본정부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다는 것이 도쿄의 시각이다.〈도쿄=강수웅 특파원〉
  • 북한·일,수교협상 11월부터/8개항 공동선언 발표

    ◎억류선원 석방각서 교환/일,한국에 자민당특사 파견키로 【도쿄=강수웅 특파원】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은 28일 하오 북한과 일본 양국간 국교수립의 실현과 현안인 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간 교섭이 오는 11월중에 개시될 수 있도록 정부에 강력히 작용하는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전문 및 합의사항 8개 조문으로 구성된 공동선언을 조인,이날 하오 발표했다. 이 공동선언은 『노동당 및 자민·사회 3당이 자주·평화·친선의 이념에 따라 북한·일본 양국관계를 정상화,발전시키는 것이 양국국민의 이익에 합치하며 새로운 아시아 및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고 전제하고 일본측의 사죄와 보상 문제,국교수립,통신위성의 이용과 직행항로 개설,재일 조선인의 권리 및 법적 지위 존중,일본 여권상의 북한제한 조항삭제 문제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3·4·5면〉 또 『조선은 하나이며,북과 남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합치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공동선언」은 당초 「공동성명」으로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의 대일접근 자세를 한층 강조하기 위해 「선언」으로 바뀌었다. 제18 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의 선장 등 2명을 오는 10월중 석방한다는 각서도 공동성명의 부속문서로서 교환됐다. 이들은 오는 10월10일 조선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석방될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선언은 당초 이날 상오중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쌍방의 의견이 엇갈려 하오 5시 넘어 발표됐다. 보상에 관해 공동선언은 일제 36년간의 불행과 재난에 대해서는 물론,「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받은 손해」에 대해서도 국교수립시 보상해야 된다고 선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날 선언에 연락사무소의 설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로써 전후 45년간 외교적 공백을 거쳤던 북한과 일본은 일거에 접근,한국은 물론 한반도에 영향력을 갖는 미·소·중국 등 주변 제국에 새로운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같은 상황속에 일본의 집권 자민당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도 오는 11월의 국교정상화 교섭에 앞서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키 위해 북한을 방문키로 이날 결정했다. 또 일본정부와 자민당은 국교정상화를 둘러싼 북한·일본간의 움직임에 강한 경계감을 갖고 있는 한국에 자민당의 가토 무쓰키(가등육월) 정부조사회장(안배파)을 특사로 파견키로 했다. 지난 24일부터 북한을 방문한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은 김일성 주석을 비롯,조선 노동당 간부들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새로운 우호관계 수립에 인식의 일치를 보아 거의 모든 현안을 일거에 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은 이날 하오 8시25분 일항(JAL)특별기편으로 평양을 출발,하오 10시40분 하네다(우전)공항에 도착,일본에 돌아왔다.
  • 북한ㆍ일 공동선언 전문

    ◎빠른 시일내 양국관계 정상화/국교 수립할때 식민지배 배상/재일 조선인의 법적지위 존중/통신위성 공용ㆍ직항공로 개설/핵위협 제거ㆍ아주평화 공동노력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단이 24일부터 28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총서기 김일성주석은 가네마루 신(금환신) 일본 중위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자민당 대표단과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중위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사회당 대표단과 회견했다. 회견석상에서 가네마루단장과 다나베단장은 조선 노동당중앙위원회총서기 김일성주석에게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자민당총재와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중앙집행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방문기간중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과 조선노동당 사이에 몇차례에 걸쳐 3당 공동회담이 이뤄졌다. 3당은 자주ㆍ평화ㆍ친선의 이념에 입각,북한과 일본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양국국민의 이익에 합치되며 새로운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함을 인식,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①3당은 과거에일본이 36년간 조선인민에 끼친 불행과 재난 및 전후 45년간 조선인민이 입은 손실과 관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가이후 자민당총재는 김일성주석에게 전한 친서에서 조선에 대해 일본이 끼친 불행한 과거가 존재함에 대해 언급,『그같은 불행한 과거에 대해 다케시타(죽하) 전 총리가 지난해 3월 국회에서 심심한 반성과 유감의 뜻을 표명한 바 있는데 총리로서 나자신도 그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분명히 해 일본과 북한 양국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표명했다. 자민당 대표단장인 가네마루의원도 조선인민에 대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3당 대표단은 일본정부가 국교관계를 수립하는 것과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 끼친 손해에 대해 충분히 배상할 것을 인정한다. ②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간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해소하고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국교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③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를 발전시키며 우선 통신위성의 이용과 양국간에 직행항로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④3당은 재일 조선인이 차별받지 않고 그 인권과 민족적 제권리 및 법적지위가 존중돼야 하며 일본정부는 이를 법적으로 보증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3당은 또 일본당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일본여권에 기재한 사항을 삭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⑤3당은 조선은 하나이며 북과 남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조선인민의 민족적 이익에 합치됨을 인정한다. ⑥3당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노력하며 앞으로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핵의 위협을 없애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⑦3당은 일본과 북한 양국간의 국교수립을 실현하고 현안인 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간 교섭이 올해 11월중에 개시되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⑧3당은 양국 국민의 염원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이익을 위해 자민당과 조선노동당,사회당과 조선노동당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상호협력을 한층 더 발전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 북한국적 교포3세/일,영주권 부여 검토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대 북한 관계개선책의 일환으로 한국적이아닌 재일 조선인들에게도 3세 영주권을 인정하는등 재일 한국인과 같은 법적지위를 부여키로 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4일 밝혔다. 이 신문은 자민ㆍ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방문과 때를 맞춰 법무성이 연내 관계법을 고친다는 방침 아래 곧 구체적인 검토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면서 개정법은 지난 4월 한국측과 합의한 재일 한국인 법적지위 개선방안을 토대로 협정 3세 이하에 대해 영주권보장,지문날인 폐지,중대사범에 한한 강제퇴거조치 등을 상당부분 적용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 「주체사상의 꿈」 깨지 못했다(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2)

    ◎“폐쇄의 화석” 비난 모면하려 표피적 개방 추구 지난 5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선거와 그에 따른 권력구조의 개편을 끝내고 일련의 정세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만물지중 오직 홀로 고정불변을 유지하는 존재는 없다고 한 유물론은 누구보다도 혁명적 변화의 인위적 추구에 일생을 바쳐온 김일성이 더 확신하는 진리일 것이다. 스스로의 「주체사상」이란 이념적 환상을 버리지 않은 채 개방압력에 대역함이 없이 가능한 변화를 보이려는 것이다. 남이 보기에 김일성은 맹목적 옹고집이 아니라 봄이 오면 봄옷을 챙길 줄도 아는 위인이며 어쩌면 그 솜씨가 비범하다는 평가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과욕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지난번 서울에서의 남북한 총리회담만 하더라도 북한은 총한방 쏘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내기를 원했다. 마치 적진에 뛰어들어 한바탕 혁명투쟁이라도 벌이자는 태세로 무례하게도 거친 주장을 마구 펴놓고 상대방의 신문방송으로 하여금 이것을 전파케 하는 이익이라도 얻으려는 듯이 작태하고 있었다. 물론 반세기의 오랜 분단사에서 총리회담은 처음있는 일이니 만큼 누군들 그 의의를 평가하는데 인색했겠는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한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단적으로 옥중의 「동지」들을 만나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버티지 않았는가. 이것은 스스로의 본질과 원리를 조금도 버리지 않은 데서 나오는 행동이다. 소위 주체사상의 제1의 특징으로 꼽는 일관성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북한은 지금 가능한 변화의 자세를 취하면서 그것으로 본질의 불변성을 지키려고 한다. 필요하다면 왕당파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전통적 수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그 악수를 악마와의 향연이라고 속으로는 다짐하면서도 적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 공산당이다. 내달 16일부터 19일까지 평양에서 두번째 총리회담이 열리기로 일정까지 잡혀있다. 이 대좌가 악마와의 정치적 향연이 아니라 민족적 융합을 위한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은 주체사상의 낡은 환상부터 그들의 생활에서 떼내버려야 한다. 북한은 평양총리회담을 통해 자기네는 결코 폐쇄의 화석이 아니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또는 서울보다는 평양이 더 평화의 세력이라는 점수를 따기 위해 어떤 대담한 민족적 용의라도 가지고 있는 듯이 행동할는지 모른다. 예컨대 미소는 다같이 한반도 분열의 책임이 있으니 이를 함께 배격하고 남북 융합으로 통일하자는 배미배소의 선언과 민족통일전선을 촉구할는지 모른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곧 범민족의 통일전선을 유도함으로써 「역시 김일성이다」는 민족적 성가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주체사상의 일관성을 가지고 변화창출이 묘를 얻자는 것인지 모른다. 북한은 이미 김영남비망록을 통해 대소도전을 시작했다. 비망록 내용에는 『한소 수교는 전체 조선인민들,특히는 남조선 인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 것으로 된다.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그것은 통일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으로 된다』고 했다. 이것은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다」를 의식하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주장의 논리는 남한인민들의 통일열망을 위해 북한은 배소투쟁을 불사하겠으니 모든 민족적 세력은 배미투쟁으로 협동하여 새로운 범민족 통일전선을 결성하자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변했는가. 굳이 변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주체사상의 일관성」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라고 할 것이다. 북한은 60년대 초 모택동의 반 흐루시초프체제 투쟁에 가담하여 『소련은 일부 직장을 복구건설해준 대가로 국제시장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설비와 강판을 비롯한 자재를 우리에게 주고 그 대신 우리에게서 수천t의 금덩어리와 다량의 고귀한 금속과 원료를 국제시장가격보다 훨씬 헐값으로 가져갔다』고 신랄히 대들었다(64년 9월7 「로동신문」). 시기적으로 보아 이 도전은 61년 9월 김일성 일인독재체제를 등장시키고 김일성에 의한 민족통일을 노골적으로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과 때를 같이하는 모험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나 김일성 일인체제 확립을 위해 소련파를 제거하고 반소노선을 택했던 60년대초의 사정과 오늘날 일련의 외압에 의한 김일성 체제의 붕괴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배소노선도 불사한다는 사정은 어쩐지 유사성이 있을 것도 같다. 만일 북한이 「범민족」의 배소노선으로 「역시 김일성이다」는 식의 들뜬 민족적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 기세를 밀고 나아가겠다는 것이 범민족적 통일전선에 의한 통일투쟁이다. 북한의 최대 약점은 이름은 비록 인민공화국이지만 실제로는 전제적 군주국가라는 데 있다. 북한을 개방하라는 객관적 요청의 압력은 김일성을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일성 스스로도 폐쇄의 한계를 느끼고 인민에게 가능한 양보를 보이면서 통치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사회문화 전반을 세심히 주목하는 사람들은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조국을 배반하지 말라」는 투의 경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체제수호의 정치사상교양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광경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전개될 일련의 객관적 정세가 자기네에게 불리할 것을 내다보고 취하는 대책이다. 71년 11월 자유중국이 유엔회원국에서 추방되고 그 자리를 중공이 차지하게 될 것을 내다본 장개석총통은 「처변불경,장경자강」을 국민앞에 호소했다. 어떤 경우에도 놀라지 말고 남의 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든든해지라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점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남북 스포츠교류와 대화를 거듭하면서 민족융합의 길이 트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 아니라 북한이 대일ㆍ대미 접근으로 고립을 풀고 정상적인 국제생활에 나서는 것을 환영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폐쇄와 고립으로 몰아넣는 「주체사상」의 이념적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 “한­소 수교는 한반도통일 역행”/대소 항의 「김영남비망록」 내용

    ◎“북한­소 동맹조약 유명무실화” 경고/“소련제 무기 수입 중단” 거센 반발도 북한은 지난 2일 김영남­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회담때 한­소 수교가 「두개 한국」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통일역행 행위이며 지난 61년 7월 체결된 북­소 동맹조약을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게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정무원 기관지 민주조선 19일 자가 보도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 신문은 김영남­셰바르드나제간 회담에서 한­소 수교문제와 관련해 논의된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 자리에서 김영남은 한­소 수교가 ▲한반도 분단현실을 인정하며 ▲소련이 북한과 첫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이고 한반도 분열에 책임있는 나라로서 한반도에 「두개 한국」이 존재함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한국의 북방정책을 실현시켜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소련과 한­미간의 「3각 결탁관계」를 형성하며 ▲북­소 동맹조약을 유명무실화 할 뿐 아니라 ▲한국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전했다. 김영남은 특히 한­소 수교시 소­북한간 동맹조약에 의거해 소련의 지원을 받아온 무기를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소련으로부터의 무기수입 중단을 경고한 것으로 이 신문은 덧붙였다. 북한은 김영남의 이같은 항의내용을 비망록으로 작성,회담이 끝난 후에 소련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조선지는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아 최근호(12일자)가 한소 수교는 『한소 양국 뿐 아니라 북한에도 이로운 일이며 소련은 자주국가 이므로 북한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데 언급,이는 『소련이 두개 조선 조작책동에 말려드는 것』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다른 지역 동맹국의 이익마저 침입하면서 일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김영남이 셰바르드나제에게 전달한 6개 항목의 비망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조선의 분열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상태와 북남사이의 불신과 오해의 근원은분열상태 그 자체에 있다. 따라서 조선의 분열을 조장시키는 것은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되는 평화와 긴장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결과 긴장격화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가지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분열시킨데 책임있는 나라이다. 또한 소련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창건되었을때 맨 처음으로 우리 공화국을 조선 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그러한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분열주의,명실공히 통일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된다. 셋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북방정책을 실현시켜주는 것으로 된다. 북방정책의 본질은 남조선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대로 「교차승인」을 실현하여 조선을 영원히 두개 조선으론 분열시키려는 것이다. 소련이 이것을 모를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데로까지 나가는 것은 공공연히 통일에 역행하는 것으로 된다. 넷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 뒤집어 엎으려는 미국과 남조선의 공동음모에 가담하여 「3각 결탁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된다. 이렇게 되면 남조선 당국자들은 소련이 저들의 편에 가담한 것을 코에 걸고 더욱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우리를 독일식으로 흡수ㆍ통합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을 위한 북남대화를 파탄에로 이끌고 남북대결을 가일층 격화시킬 것이다. 다섯째로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으면 조­소 동맹조약은 스스로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동맹관계에 의거했던 일부 무기들도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반도에서 군비경쟁을 격화시키게 되고 조선반도 정세를 극도로 첨예화시키게 한다. 더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반적인 정세를 첨예화시키게 될 것이다. 여섯째로 전체 조선인민들,특히는 남조선 인민들의 통일의지를 막는 것으로 된다.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면 그것은 통일에 대한 조성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으로 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강행한다면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의 견지에서 보다 조­소 두나라 인민의 이익의 견지에서 보나 그 누구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 「남북 정상대좌」 예고의 청신호/이경형 정치부차장(남북초점)

    ◎연총리 청와대 예방은 체제인정의 징표 1990년 9월6일. 이날은 한반도분단 45년사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기록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인 노태우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연형묵정무원총리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갖춘 예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방의 감격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가운데 수백만의 피를 몰고온 동족상잔의 처절한 참극 그리고 그 이후의 백만무력의 대결…. 서로가 서로를 쓰러뜨리지 않고는 생존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는 두 체제가 이날 비로소 상대방의 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행동을 실증해 보인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대한민국의 국가원수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대통령문장기가 나란히 꽂혀 놓여있는 청와대 본관 소접견실에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연총리는 노대통령에게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고 노대통령은 손을 내밀며 연총리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강총리」대신 한사코 「강수석 대표선생」이라고 호칭을 하던 연총리는 이자리에서 「대통령께서」를 연발했다. 그는 김일성주석의 노대통령에 대한 안부를 전한 뒤 『대통령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대표단 전원을 접견,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그는 「대통령께서」라는 존칭을 한반도 빠뜨리지 않았고 자리를 일어설 때는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주석님께 그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연총리의 공개적인 노대통령 예방은 바로 대한민국 체제의 인정을 행동으로 보였다는 그 상징성 때문에 앞으로의 남북 관계개선의 대장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18년전인 지난 72년 「7ㆍ4 공동성명」 직후인 같은해 12월 북한의 박성철부수상(공동위원장대리)이 박정희대통령을 예방했지만 당시는 비공식,비공개예방이었기 때문에 이번 공식예방과는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날 소접견실에서 강총리와 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이 배석한 가운데 북측의 연총리를 약 20분가량 접견,북한 김일성주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구술했다.북측의 기록원자격으로 개별면담에 수행한 최봉춘 총리보좌원 겸 연락관은 노대통령의 솔직하고도 허심탄회한 메시지를 기침소리하나 빼놓지 않고 기록해나갔다. 서로가 서로를 거부했던 남북 정상간의 「시간차 필담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오는 10월16일부터 3박4일간 열릴 평양 2차회담에서 강총리가 김일성주석을 예방,이날 연총리의 청와대 예방과 같은 절차로 면담하게 되면 노대통령과 김주석간의 남북 정상대화는 가속력을 더해갈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두 정상이 직접대화를 갖는 날도 그리 멀지 않는 시기에 현실화될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어 대접견실로 자리를 옮겨 연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회담대표 7명과 노재봉비서실장,이현우경호실장,이수정 공보수석비서관이 배석한 가운데 북한회담대표 7명과 림춘길총리책임보좌관,최봉춘총리보좌원,이헌(기록원) 등 10명을 접견한 뒤 남북 관계개선과 평화통일에 대한 소신과 포부를 피력했다. 노대통령의 나직하면서도 자신에 찬 목소리는 대접견실을 압도해 나갔다. 『이번 회담이 분단 45년을 종식시키고 통일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수천년 한핏줄을 이어온 겨레가 더이상 갈라설 수는 없다』 『동서독의 통일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고 미소가 냉전체제를 붕괴시키는 등 세계가 화해의 질서로 가는 마당에 우리 선조가 살아왔고 우리가 살고 있으며 후손들이 세세손손 살아갈 이 한반도만을 분단으로 놓아둘 수는 결코 없다』 통일을 향한 간절한 소망과 뜨거운 동포애가 물씬물씬 풍겨나오는 노대통령의 말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대표들은 자세를 가다듬고 경청했다. 이번 서울회담에서 남북한은 뚜렷한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지만 이날의 「청와대예방」으로 분단의 두꺼운 얼음이 이미 깨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7천만 동포에게 분명히 전달하고 있었다.
  • 외언내언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에는 호칭이상의 의미가 있다.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며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칭을 둘러싸고 때로는 싸움도 벌어진다. ◆가령 「배비장전」에서의 애랑과 정비장을 보자. 이별하는 마당에서 갖은 아양으로 정비장을 우려먹는 애랑. 이빨까지 빼어 바칠 정도 아니던가. 처음에는 그 호칭이 「나으리」이다. 그 다음에는 「여보 나으리」. 그 다음에는 「여보 당신」이 된다. 「수호전」속의 요부 반금련도 그렇다. 호랑이 때려잡은 시동생 무송을 유혹하려면서 술자리를 마련,처음에는 법도대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여보 당신」해버린다. 호칭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우리와 중국의 경우를 보자. 지금의 중국이라는 표현은 몇해전까지의 중공을 가르킨다. 우리가 중공이라고 불렀을 때는 상당부분 적의와 격하가 있었다. 그랬기에 가까워지면서 중국이라 부른다. 상대적으로 자유중국은 격하되어 버렸고. 대만정부라고들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얼마전의 일본 신문을 보자니까일부 층에서 중국을 「지나」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강영선이란 화교가 멸칭이라며 울화를 터뜨리고 있었다. ◆이제 「강수석대표선생」과 「연총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강총리는 꼬박꼬박 연총리라 부르는데 「연수석대표선생」은 꼬박꼬박 강수석대표 혹은 강선생이라 부른다. 「두개의 조선」이 아니니까 「두개의 총리」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인 듯하다. 말하자면 이쪽의 정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호칭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속의 어떤 단체를 이끄는 「수석대표선생」을 대한다는 의도적 정치색을 짙게 풍긴다. 대단히 불쾌하게 하는 대목이다. ◆「연수석대표선생」의 기조연설을 들으면서 「남조선인민」들이 처음에는 갸우뚱했다가 나중에 웃어버린 일­. 「반괄호」 「쌍괄호」 「삼각」따위 문장부호까지 읽는 것 때문이었다. 융통성 없고 틀에 박힌 남행길이었음은 그것 하나로도 드러난다. 다음에 만나서도 또 「강수석대표선생」이라 부를 것인지.
  • 「북한법령집」 첫 완간/대륙연

    ◎분단이후 만들어진 법규1천건 수록/8백쪽짜리 5권… 영ㆍ일어판도 계획 법령을 통해 해방이후 40여년동안의 북한의 통치와 행정을 상세히 알아볼 수 있는 북한법령집이 4일 재단법인 대륙연구소(회장 장덕진)에서 출간됐다. 2백자 원고지 3만장의 방대한 분량인 이 북한법령집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들어선 1945년 8월이후 제정되거나 보충되어온 법령 1천1백95건과 자료 2천7백2종류가 실려있으며 4×6배판 8백쪽짜리 5권으로 출간됐다. 지난2년 남짓동안 북한문제를 다루는 각급 정부기관,대학,공ㆍ사립 북한연구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북한발행의 신문ㆍ연감ㆍ교과서ㆍ공보 및 북한방송 청취기록 등의 자료와 일본의 친북한 교포단체인 조총련과 북한이 세워 운영하고 있는 「조선대학」 또는 일본 각 대학 연구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북한간행물 등을 수집해 법령부분만 모았다. 자료수집을 위해서는 북경대 모스크바대 연변대 일본 등지에 연구팀을 파견하기도 했다. 편찬위원은 지난69년 「북한법령연혁집 제1집」에 이어 「북한법령집 1∼4권」을낸 정경모씨를 비롯,최달곤교수(고려대 법대),김남식씨(평화연구소 연구원),이병석씨(대륙연구소 연구이사),허경교수(연세대 법대),신영호교수(단국대 법대),박승기씨(전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이다. 이 법령집출간에는 모두 1억여원이 들었으며 그동안 정책적인 이유때문에 보류되었던 각종 법령까지 모두 수록돼 있어 앞으로 북한연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일본 가제출판사에서는 이미 영어와 일어판으로 출판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대륙연구소 장회장은 『북한과는 언젠가 통일이 될 것이고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고 전제,『이제 북한에도 어떤 규정과 근거를 가지고 어떻게 지금까지 통치가 이뤄졌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발간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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