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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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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영화 볼까]

    ■ 시크릿(스릴러/18세 관람가) 감독 윤재구 줄거리 악명 높은 조직의 2인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에 출동한 성열(차승원)은 범인이 남긴 듯한 유리잔의 립스틱 자국과 떨어진 단추, 귀걸이 한쪽을 찾아내고 충격에 빠진다. 오늘 아침 외출 준비를 하던 아내(송윤아)의 입술 색깔, 아내의 옷에 달려있던 단추와 귀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본능적으로 증거물을 모두 없애는 성열. 그는 사건 당일 찾아온 여자를 봤다고 증언하는 결정적 목격자마저 협박해 빼돌린다. 감상 비밀도 반전도 많은 영화. ■ 비상(액션·드라마/18세 관람가) 감독 박정훈 줄거리 엑스트라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시범(김범)은 ‘인생 한방’을 기대하며 배우의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단짝 친구 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이런 그에게 인생을 걸고 싶은 사랑이 나타난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범에게 호수(배수빈)는 호스트바에서 일할 것을 권해오고 결국 시범은 화려한 밤의 배우인 호스트가 된다. 역시 첫사랑의 아픔을 품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호수는 그에게 든든한 배경이 돼 준다. 감상 여자의 환상을 사로잡는 호스트들의 순도 100% 사랑이야기. ■ 시간의 춤(다큐멘터리/전체 관람가) 감독 송일곤 줄거리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체 게바라의 나라 쿠바. 100여 전 그 쿠바에는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를 거쳐 바람처럼 흘러간 300여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4년 뒤면 부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억세게 살았다. 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가르치고 상해 임시정부 김구 선생께 독립자금을 보내며 체 게바라의 혁명에도 동참하면서.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감상 가슴 한 켠의 뭉클함! 감동을 받고 싶다면. ■ 카운테스(드라마·스릴러/18세 관람가) 감독 줄리 델피 줄거리 16세기 루마니아. 아름다운 외모와 막강한 부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백작부인 엘리자베스 바토리(줄리 델피). 다른 귀족들의 질투로 고립된 삶을 살던 어느 날, 그녀는 파티에서 만난 젊고 매력적인 귀족 청년 이스트반(다니엘 브륄)과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와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점점 늙고 추해지는 자신이 불안하기만 한데. 감상 사랑 때문에 잔인해지는 여인의 삶.
  • 송일곤 감독 “쿠바에서 찾은 사랑”

    송일곤 감독 “쿠바에서 찾은 사랑”

    멀고도 낯선 나라 쿠바에 한복을 차려입고 ‘꼬부랑 할머니’를 부르는 쿠바인들이 있다. 어설픈 한글 발음이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대한민국 애국가를 부르는 쿠바 어린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송일곤 감독이 있다. 송 감독은 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애국가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의 나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나라…100년 전 쿠바로 떠난 300명의 조선인들과 그들의 후예…송 감독은 쿠바에 살고 있는 조선인 후예들의 삶을 오는 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에 담았다. 시작은 쿠바를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였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던 중 조선인의 이주사실을 알게 된 송 감독은 멜로영화를 접고 다큐멘터리를 택했다. 그렇게 떠난 쿠바에서 주제가 다시 사랑이야기로 바뀌었다. 송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먼 곳으로 떠난 낭만적 유목민의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역사적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제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낭만적으로 살고 있었어요. 너무 먼 곳으로 떠났기 때문에 의지할 곳은 사랑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부모 연인 그리움 등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어요.” 송 감독은 그들의 낭만과 4주를 함께 했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60시간에 담았다. 그리고 지난 6개월간 60시간을 90분으로 줄였다. 수교를 맺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촬영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지만 송 감독은 “편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흐름 상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빼야했던 것부터 예술적 성취를 위해 진지하게 갈 것이냐 편안하게 누구나 따라갈 수 있게 편집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 했기 때문. “기승전결은 분명했지만 쿠바로 떠나온 사연, 인물 설명,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들의 낭만적인 삶을 설명하기 위해 쿠바 이야기도 해야 하는 등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어요. 뼈대를 잡고 위치를 바꿔가면서 누가 봐도 지루하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편집했죠.” 본인의 말처럼 송 감독은 조선인 후예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퍼즐 맞추듯 그들의 삶의 방식과 낭만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런 송 감독이 느끼는 쿠바는 “모든 게 느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가치를 아는 나라”다.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고 편지를 쓸 줄 알며 길거리에 나와 어울려 놀 줄 안다는 것. ‘시간의 춤’은 송 감독에게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작품인 동시에 그의 영화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작품이기도 하다. ‘시간의 춤’을 마친 송 감독은 “이제 상업영화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꽃섬’을 시작으로 ‘거미숲’ ‘깃’ ‘마법사들’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예술적 색채를 짙게 담아냈던 송 감독이 선보일 상업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윤종찬감독표 고통의 예술 속으로

    최영미의 시 ‘인생’은 ‘…바깥 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 하늘이라고 그러던가.’라는 읊조림으로 끝난다. ‘나는 행복합니다’ 주인공 만수가 약국을 나오며 바라본 곳에도 ‘여기저기 얽힌 전깃줄과 하늘’이 있다. 사는 데 지친 만수는 편히 잠도 자지 못하는 처지다. 하늘에 대고 세상살이를 한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떤 사람에게 하늘은 무심한 벽이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과대망상증 환자 만수와 정신병동의 수간호사 수경의 고통과 슬픔이 아로새겨진 이야기다. 시골길 옆에서 정비가게를 운영하던 만수에겐 가족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도박에 미친 형을 뒤치다꺼리하느라고 만수는 자기 삶을 챙길 겨를이 없다. 어머니의 실종, 형의 자살, 폭력배의 빚 독촉은 마침내 착한 남자의 정신을 빼앗는다. 직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돌보는 수경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얼마 전 연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끈인 아버지에게 미치도록 매달린다. 만수와 수경이 막막한 세상과 싸우는 방식은 다르다. 비록 허구 속이지만 백만장자의 삶을 빌린 그는 현실과 등질 수 있어 행복하다. 빈 종이를 이용해 수표를 발행하고, 주변인들의 고민을 해결할 때면 그의 얼굴에 미소가 넘친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않은 자의 행복이 과연 진실한 것일까. 반대로 수경은 무턱대고 붙잡고 늘어지기만을 계속한다. 주변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고, 돈이 모자라면 여기저기서 빌리면서 회복되지 못할 아버지의 병세를 애써 잊으려 한다. 그녀는 삶에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산다는 게 온통 고통으로 가득하기만 한 걸까. 윤종찬의 영화는 고통의 예술이다. ‘소름’은 사회의 밑바닥 삶을 유지하는 존재들의 본질을 고통에서 찾았고, ‘청연’은 식민지 시대를 사는 조선인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직시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현실과 부딪힌 결과는 줄곧 ‘죽음’이다. 모두가 윤택한 삶과 미래의 행복을 추종하는 시대에 그는 다독거려야 할 고통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영화를 본 다음엔 숨을 고르게 될 정도로 몸과 정신이 탈진에 이른다. ‘나는 행복합니다’도 여지없이 고통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번의 결말은 전작 두 편과 사뭇 다르다. 원작소설 ‘조만득씨’를 쓴 이청준은 “미쳐 버리거나 했으면 싶은 심사를 좋이 참으며 산 사람들이 많았던 지난 한 시절, 그 암울스런 현실 속에 ‘우리’의 모습을 대신 비춰줄 한 사내의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어쩌면 소설의 결말 -만득이 퇴원 후 어미와 동생을 목 졸라 죽인다-이 윤종찬의 영화에 더 어울릴 테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오되 삶을 택한다. 고민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가 돌아온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수가 돌아온 집엔 외등 하나만 켜 있을 뿐 주변은 온통 컴컴하다. 오토바이가 밤길을 달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오토바이의 머리등 앞으로 난 길을 보며 우리는 기도한다. 그의 앞길이 이제는 평안하기를. 그리고 희망한다. 우리가 삶의 방식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그 빛이 더 환해지고, 그 빛이 비추는 공간이 더 커질 것임을. 26일 개봉. <영화평론가>
  • [모닝 브리핑] 사할린서 日강제동원 묘지 580기 확인

    일제강점기 사할린 지역으로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의 묘지가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7년 7월부터 그동안 3차례의 현지조사를 통해 사할린 지역의 조선인 묘지 580기를 찾아내 이 가운데 125명의 유족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이번에 확인한 580기의 묘지는 주로 유즈노사할린스크와 브이코프 지역에서 찾아낸 것으로 이 일대에는 일제 강점기 때 탄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위원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해외 지역의 강제동원 피해 사망자나 유해에 대해 현지조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1.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남산과 그 주변에는 많은 일본계 사찰이 모여 있었다. 이중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로 일본인 및 친일파 위령제, 태평양전쟁 필승대회 등이 행해진 곳이다. 1932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이곳으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다. 박문사는 경복궁의 선원전과 그 부속건물까지 옮겨와 사찰 건물로 삼았고, 원구단 자리에 있던 석고전까지 해체해 종각으로 사용했다. 흥화문은 1973년 신라호텔에 인수돼 정문으로 활용되다 1988년 경희궁 복원 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2. 풍경궁은 1902년 고종이 평양에 건설한 대한제국의 이궁(離宮)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식민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으로 변모하면서 훼손되거나 철거됐다. 풍경궁의 정문인 황건문은 건축적 아름다움과 우수성으로 이름 높았는데 1925년 경성 조계사의 요청으로 수레 열한 대에 실려 230㎞를 이동해 산문으로 사용됐다. 황건문은 이후 동국대 정문으로 쓰이다 1971년 철거됐다. 남한에 남아 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다. #3. 경복궁의 도면인 ‘북궐도형’(1907년 제작 추정)에 나타난 경복궁 내 건물 수는 509동이다. 하지만 광복 후 남은 건물 수는 40동에 불과했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준비하던 1914년 근정전 전면에 있는 흥례문과 회랑 등을 제거했다. 이때 방매된 궁궐 전각 중 상다수가 남산동, 필동, 용산에 있는 일본계 사찰과 요정, 일본인 부호의 저택으로 팔려 나갔다. 경성부 서사헌정의 남산장은 건춘문 내의 비현각을, 남산정 화월별장은 수정전 남쪽의 한 전각을 이건한 것이었다. 조선 왕조와 대한 제국기의 주요 궁궐은 지난 100년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참히 붕괴되거나 훼손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서울의 주요 궁궐과 평양 풍경궁이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훼철(毁撤)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한 결과물이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등 8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했다.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에선 대한제국과 고종황제가 추진한 조선 변혁의 움직임을 궁궐 건축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력 속에서 고종황제는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기하고,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꾀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경복궁 중건 및 경운궁(덕수궁), 원구단 건설, 궁궐 의례의 변화로 이어졌다.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경복궁, 경희궁, 풍경궁의 굴욕과 더불어 창경궁이 벚나무가 심어진 종합 위락시설 ‘창경원’으로 전락한 과정을 추적한다.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경운궁, 창경궁, 경복궁 등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건설 배경과 건축양식, 쓰임에 대해 파악한다. 특히 경복궁이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인 박람회장으로 쓰이면서 맞이한 변화상을 건축양식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일제의 국력 과시 욕망과 조선인에 대한 상징 조작 행태를 들여다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929년 ‘광주학생운동 무죄’ 탄원서 발견

    전남대 김재기(정치외교학과 교수) 학생독립운동연구단장은 3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리는 ‘학생독립운동 8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앞서 2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된 조선인 학생들의 탄원서를 공개했다. 연구단은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에서 1929년부터 3년 간 만들어 극비로 분류한 ‘사상월보’에 실린 탄원서를 최근 국가기록원을 통해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탄원서는 1930~1931년 강달모 광주사범학교 3학년생, 이동선(광주사범학교 졸업생) 전남 담양군 봉안 보통학교 교사, 임주홍(광주 고등보통학교 졸업생) 일본 니혼대학 1학년생 등 3명이 대구 복심법원(현 고등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A4 용지 크기의 15쪽 분량이다. 강씨 등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반대하며 조직한 성진회 회원으로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일제는 ‘성진회가 일왕의 존재를 무시하는 사회주의단체’라며 이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일본 경찰이 악랄한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강달모는 “중학 2~3학년 정도의 사람이 결사를 조직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느냐.”고 호소하면서 고문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죽음에서 끄집어낸 삶의 기억들

    죽음에서 끄집어낸 삶의 기억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일상의 기억 곳곳에는 죽음의 흔적이 묻어 있다. 부모님, 친구, 연인, 아내 등은 일상 속에 머물렀다가 떠난다. 이들과 얽혀진 갈등과 원망, 그리움 등 모든 감정의 잔해들은 오롯이 남은 자의 몫이다. 새롭게 만들고픈 망자(亡者)와의 관계를 위한 화해와 소통의 첫걸음은 은폐와 외면이 아닌 기억의 또렷한 복원이다. “제의 형식이건, 조문 형식이건 죽음과 그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기억뿐 아니라 과거의 만남, 인연 등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조차 끄집어내는 것이 작가의 임무인 것 같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만난 소설가 조갑상(60)은 최근 펴낸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산지니 펴냄)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죽음의 의미, 먼저 가버린 사람들을 반추한다. 작가가 순탄하게 맺었던 평탄한 관계를 그리워할 리 없다. 조갑상은 애써 묻어두고 싶던 고통과 갈등의 기억을 떠올리며 의미를 되살리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 조갑상은 “과거의 죽음, 과거의 인물 등 현재의 나에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을 소설의 주제로 삼았다.”면서 “아름다운 기억이야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이지만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역시 되살려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집을 죽음에 대한 제문 형식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에 실린 8편 모두 한 가지로 주제를 꿰뚫는다. ‘아내를 두고’, ‘통문당’, ‘겨울 오어사(五魚寺)’ 등은 아내 또는 과거의 연인 등을 회상하며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도를 풀어낸다. 심지어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에서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집안에서 하녀 ‘조선인 오모니’로 일하다가 살해당한 혼령을 불러내 잔잔한 해원(解?)의 마당을 펼친다. 그는 흔치 않은 과작(寡作)의 작가다. 중앙대 문창과 졸업 이후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내놓은 소설집이 ‘다시 시작하는 끝’(1990년), ‘길에서 형님을 잃다’(1998년)에 이어 이제 겨우 세 번째다. 중간에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2003년)를 내놓긴 했지만 지독히도 과묵한 작가다. 교수(경성대 국문과)로 강단에 서면서도 절필이나 게으름은 없었다. 그저 부산에 눌러앉아 우직한 걸음을 떼왔을 뿐이다. 그는 “1년에 단편 두 작품 정도씩을 꾸준히 써왔으며 지금 쓰고 있는 장편도 연말쯤이면 출간될 것”이라며 ‘과작’이라는 평가에 손사래를 쳤다. 어쨌든 일상에서나 예술에서나 감동과의 거리를 따졌을 때 다변(多辯)보다 눌변(訥辯)이 좀더 가까웠던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대마도 방문 한국인에 폭언 日극우단체 동영상 논란

    일본 극우단체가 대마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에게 폭언을 하며 추방시위를 벌이는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최근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는 ‘대마도 한국 관광객에게 소리 지르는 일본인 인종차별주의자’란 제목의 3분54초짜리 동영상이 올라와 누리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동영상에는 일장기를 두른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이 한국 관광객을 향해 “조센진은 돌아가라.”, ”기무치(김치)는 돌아가라.”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찍혀 있다. 영상 중간에는 계속되는 야유에 한국인 관광객이 화를 내며 항의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이 동영상은 일본의 극우단체 ‘주권회복을 목표로 하는 모임’이 제작한 ‘쓰시마 원정 특집’의 일부다. 편집자는 ‘xegnojw’란 아이디의 일본 누리꾼이다. 동영상에는 한글로 “일본의 인종차별이 한국 관광객을 공격한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xegnojw’는 한국인들이 항의하는 대목에선 ‘여전히 폭력적인 조선인’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문제의 단체는 니시무라 슈헤이라는 우익 인사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평소 자신들의 집회 장면을 찍어 꾸준히 인터넷에 올려왔다.누리꾼들은 “불행한 것은 그들이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조센징은 돌아가라”…한국 관광객 추방 동영상 논란

    “조센징은 돌아가라”…한국 관광객 추방 동영상 논란

     ”기무치(김치·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는 돌아가라.”  일본 극우단체가 쓰시마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에게 폭언을 하며 추방시위를 벌이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의 동영상은 지난 18일 유튜브에 올려진 ‘대마도에 온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일본 인종차별주의자들(Japanese Racist hoot down Korean Tourists In Tsusima)’. 3분 54초짜리 동영상이다.  동영상에서 몸에 일장기를 두른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은 쓰시마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들을 향해 욕설을 섞어가며 “조선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라.” “조선인들은 두번 다시 오지마라.”는 구호를 외친다.일부 회원들은 일장기를 몸에 두르는 등 극우단체 소속임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인들의 폭언에 화가 난 한국 남성이 거세게 항의하자 일행이 말리는 장면도 있다.이런 모습에는 ‘여전히 폭력적인 조선인들’이라는 자막이 달렸다.  이 동영상을 유튜브에 편집·공개한 네티즌 ‘xegnojw’는 “일본 인종차별주의 단체인 재특회(在特會)와 신풍(新風)이 쓰시마에서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욕설을 하는 동영상”이라며 “이들은 마치 한국인 전원을 도둑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은 일본의 극우단체인 ‘주권 회복을 목표하는 모임’이 제작한 ‘쓰시마 원정 특집’ 중의 일부인 것으로 확인됐다.니시무라 슈헤이라는 우익 인사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이 단체는 평소 자신들의 집회 장면을 찍어 꾸준히 인터넷에 올려왔다.니시무라는 또 다른 극우단체인 ‘신풍’에서 제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기자 guns@seoul.co.kr
  • 재일 한인 등 외국인 지방참정권 오자와, 내년 1월 국회 제출 시사

    l 도쿄 박홍기특파원 l 일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은 19일 재일 한국인 등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와 관련, “당 안에서 찬반 양론이 있지만 내년도 정기국회까지는 당의 방침을 결정하겠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내년 1월 열리는 정기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계획임을 시사한 것이다. 오자와 간사장은 이날 오후 5시쯤 민주당 본부를 찾은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을 만나 “지방참정권 문제를 포함, 한·일 관계가 잘되도록 정부에 진언해 나가겠다.”고도 강조했다. 일본의 영주 외국인 87만여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3만명이 재일 한국인이다.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는 곧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 향상인 셈이다. 현재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 등 정부와 당의 핵심들이 지방참정권 부여에 적극적인 데 비해 일부 의원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최종 조율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반대하는 의원들은 “지방참정권은 국민의 고유권리인 만큼 헌법에 위반된다.”,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이중으로 참정권을 행사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과 이 의원은 30분간 진행된 면담에서 양국간의 의원 외교를 강화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면담에는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와 ‘영주외국인의 법적지위향상을 추진하는 의원연맹’(회장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의 사무국장인 가와카미 요시히로 참의원도 자리를 같이했다. 가와카미 의원도 지난 11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간부들과 만나 “꼭 내년의 통상국회에서 방침을 결정짓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참정권 의원연맹은 지난 2006년 한국 정부가 영주외국인들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자 “상호주의 관점에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지난해 1월 결성됐다. 민단 측도 “영주권을 가진 지역 주민의 기본적 권리”라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측은 “정치참여가 재일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소극적 입장이다. 조총련은 또 지방참정권에 앞서 일제 강점에 대한 과거사 청산을 우선시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참정권 부여 대상에서 제외시킨 상태다. 오자와 간사장은 이 의원에게 “한·일간에 형식적이 아닌 진정한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면서 “양국간 기본적인 문제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권교체에 대해 “내가 세운 큰 목표 가운데 한 걸음일 뿐이지만 정권교체를 이뤄 기쁘다.”고 덧붙였다.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재일동포 참정권/김종면 논설위원

    온갖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꿋꿋이 민족의 얼을 지켜온 재일동포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징용에서 비롯된다. 시모노세키 등을 통해 건너온 72만여명의 조선인은 탄광 등지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전쟁 막바지인 1944년에는 일본에 살던 조선인에게도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4000여명이 소집돼 전쟁터로 내몰렸다.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때는 수천명의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되기도 했다. 광복 후 130만명의 조선인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70만명은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차가운 이국 땅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일본에서는 정주외국인으로, 조국에서는 재외국민으로 어디에서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한 그들은 ‘동아시아의 떠돌이’로 오늘도 신산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수십년을 부초처럼 살아온 고난의 주인공. 이제는 그들에게 진정한 지역사회 주민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 실마리는 재일동포 사회의 숙원인 지방참정권 문제에서부터 풀어야 한다. 재일동포 조직인 대한민국민단(민단)은 지방참정권을 놓고 20년 넘게 일본 정부와 싸워 왔지만 보수층과 북한쪽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일본 민주당의 집권으로 향후 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선거공약으로 ‘영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조기 실현’을 명시했고, 민주당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내정자는 내년 초 정기국회에 지방참정권법안 제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의원 당선자의 63%가 외국인참정권 부여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은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인정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일본 방문 때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문제와 관련, “이때쯤 되면 그래도 최소한 지방참정권은 주는 게 안 좋겠느냐.”는 말로 일본의 결단을 촉구했다. 민단에서 강조하듯 이 문제는 “전후 처리 청산의 일환” 의미도 있다.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지방참정권을 인정해 주면 총선에서도 요구할 것”이라는 외무장관 당시의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 정치의 우이를 잡고 있는 ‘나가타초의 사무라이’들은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일본은 과연 민주대국인가. 한·일관계의 새 지평은 어떻게 가능한가.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日 민주당 대북정책 어찌할꼬…

    │도쿄 박홍기특파원│오는 16일 출범하는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연립정권의 한축인 사민당의 적극적인 대북 대화노선 요구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사민당이 지난 5일 연립정권을 구성하기 위한 정책책임자협의에서 ‘북·일 양국간 대화추진’ 방침을 연립합의문서에 명기토록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중의원선거에서 승리한 이래 사민당·국민신당과 연립정권을 위한 정책조정을 하고 있다.문제는 민주당이 섣불리 사민당의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선거공약을 통해 ‘북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명백한 위협이며,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납치문제와 관련, ‘국가의 책임 아래 해결에 전력을 다한다.’고 밝혔지만 대화와 압력 가운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실제 구체적인 대북 청사진도 내놓지 않았다. 더욱이 당의 대북 강경파와 압력 강화 쪽인 국내 여론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은 지난 4일 기자 회견에서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각국과 협력해 경제제재를 강하게 시행할 시기다.”라며 일단 압력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그동안 사민·국민신당과의 연립협의를 기초로 ‘국제 협조체제 아래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토록 하는 한편 납치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한다.’는 합의안을 작성, 제시했다.사민당은 이에 대해 자민당·공명당 정권의 압력 중시노선을 비판한 뒤 문제 해결에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양국간 대화를 추진한다.’며 역제안을 했다. 사민당은 선거공약에서 ‘북한과 끈기있게 교섭, 납치문제를 해결한다.’며 대화노선에 비중을 둬왔다. 민주당은 8일 연립협의에서 사민당의 요구에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한편 북한은 지난 7월 재일본조선총연합회(조총련)에 일본 민주당에게 대북제재의 완화를 겨냥, 접촉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고 산케이신문이 6일 보도했다. 대북관계에 정통한 일본 소식통을 인용, 북한 노동당의 ‘225대외연락부’가 조총련 중앙본부 및 지방지부에 승리가 예상되는 민주당에 대한 ‘공략지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지령에는 민주당의 지원조직인 노동조합에 영향력을 행사,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입항이 금지된 만경봉호에 대해 ‘왕래를 희망하는 재일조선인의 인권문제로’ 접근해 해제토록 노력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민주당의 집권이 북·일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hkpark@seoul.co.kr
  •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지난 2일은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탄생 130주년이었다. 다음달 26일은 의거 100주기다. 우리에게 ‘10·26’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사태’로 각인돼 있지만 10·26은 본래 100년 전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자랑스러운 ‘하얼빈 의거일’이었다.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중국과 조선인민의 진정한 연대는 안중근 의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 바로 그날이다.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 하얼빈의 명동 격인 중앙대로에 11일 동안 세웠던 안 의사의 동상을 국내에 들여왔다. 2006년 1월 저명한 중국인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든 동상은 공안당국의 지시에 의해 철거됐다. 이후 3년 동안 숨어 있다가 이번에 햇빛을 보았다. 동상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사유지에 세운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만, 공공장소에 세우기를 원한다. 서울시내 44개의 공공 동상은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통과한 것들이다. 전문가들이 작품성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한·중 합작’ 동상을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입지는 청계천이나 서울광장, 서울역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어느 시사주간지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조사했더니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이순신 장군, 3위는 백범 김구가 차지했다. 역사 속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광개토대왕, 도산 안창호, 다산 정약용이 10위 안에 들었다. 안 의사는 근근이 공동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히려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보훈 인물 중 백범에 이어 2위로 뽑혔다. ‘국민 속의 안중근’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를 저격한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강해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쯤으로 비치게 한 탓이다. 안 의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동양평화론’과 이토를 처단한 대의가 잊혀지고 있다. 동양평화론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공동군대를 편성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자는 선각자적인 정치사상이다. 국제주의적 민족주의 개념이다. 유럽통합 방식을 100년 전에 주창한 것이다. 안 의사는 학교를 두 개나 세운 육영사업가이며, 200여점의 붓글씨를 남긴 명필이다. 최초의 해외 독립군부대인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한 전쟁영웅이다. 나라 안팎에서 ‘안중근 재발견’이 활발하다. 왜 안중근인가. 뤼순 감옥에서 쓴 ‘안응칠 소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옳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해,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옮겨 엮은 열화당 이기웅 대표는 “위대한 스승 안 의사의 말씀은 그 시대 청년들에게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서운 죽비로 다가온다.”라고 평했다. 그렇다. 안 의사는 사표(師表)가 없는 이 시대의 스승될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다. 이 땅의 청년들은 안 의사의 당당함과 논리를 배워야 한다. 불멸의 민족혼을 본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안 의사의 원혼은 100년째 중국 뤼순감옥 사형수 무덤 주위를 떠돌고 있다. 독립된 고국에 묻어달라던 ‘백년원(百年寃)’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재발견은 유해찾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연안호 나포 일지

    ▲7월30일 ‘800연안호’ 강원도 고성군 동북쪽 36㎞ 상의 NLL북방 11.2㎞ 해상서 나포 ▲31일 북, 전통문으로 “연안호 조사결과 따라 처리” 통보 ▲8월1일 북 조선중앙통신, “조선인민군 해군 경비함이 7월30일 동해 우리(북한) 측 영해 깊이 불법 침입한 남측 선박 1척을 나포했다.” 보도 ▲7일 이명박 대통령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연안호 문제에 모든 역할 다하고 있다.” 발표 ▲10~17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방북 ▲13일 북, 유씨 추방형식으로 136일 만에 전격 석방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3일 북 특사조문단, 이 대통령 면담 및 귀환 ▲26~28일 남북 적십자 대표단, 이산가족 상봉 관련 회담 ▲28일 북, 군통신으로 “‘800연안호’ 29일 오후 5시 동해상에서 석방”통보
  • [테마 스토리 서울] (10) 관광특구 이태원

    [테마 스토리 서울] (10) 관광특구 이태원

    서울 최초의 국제적 관광특구이자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고 싶어하는 곳. 행인의 70%가 외국인인 데다 한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외국인 전용 바도 30여곳이나 되는 곳. 우리가 되레 이방인이 되는 이태원(梨泰院)은 슬프고도 다양한 역사를 지녔다. 이태원은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외국군의 주둔지 역할을 했다. 한양의 중심인 사대문 밖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 군대가 조선의 왕과 종묘사직을 압박하는데 좋은 ‘길목’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임오군란때 청나라 부대 주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하며 한양 전역에 대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았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귀화한 왜인들과 조선인 부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자 ‘태(배)가 다른 곳’이라는 이름의 ‘異胎院’으로 부르기도 했다. 1882년 조선의 구식 군대가 처우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킨 임오군란 때도 이를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가 주둔한 곳이 바로 여기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의 식민 지배를 시작하자 이곳에 일본군 조선사령부를 세웠고, 1945년 해방 후에는 미8군이 사령부를 설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미군 주둔지라는 배경 덕분에 오히려 반세기 넘게 우리에게 문화적 개방성을 불어 넣어 준 ‘개항지’ 역할을 해 왔다. 6·25전쟁 직후부터 2000여개가 넘는 외국인 관련 시설이 자리잡으면서 외국인에게 서울에 오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명소로 자리잡았다. 조용필, 신중현 등 한국 대중가요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이들 대부분이 이곳의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일한 덕분에 서양의 대중음악을 접목시킨 독창적 음악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배타적 정서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이슬람 사원이 이곳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곳만의 독특한 개방성을 잘 말해 준다. 지금 이태원은 반포 서래마을, 동부이촌동 등과 함께 ‘서울 속 외국인 거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연간 170만명의 외국인이 찾는 한국의 대표 관광코스이자, 최근에는 내국인들도 즐겨 찾는 맛집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500여곳 맛집거리 성업 특히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각국 레스토랑의 경연장’으로도 불리는 해밀턴호텔 뒷골목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00여개로 추정되는 이런 맛집들은 육군 중앙경리단 골목과 해방촌 쪽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100여개의 고가구 판매점이 즐비한 이태원 가구거리도 유럽식 가구를 사려는 이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가을마다 ‘지구촌축제’가 열리는 등 이태원은 서울 속 ‘코스모폴리탄’ 문화지대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옛 소련 정부 사할린동포 북송계획 문서 입수

    옛 소련 정부 사할린동포 북송계획 문서 입수

    옛 소련 정부가 일제 패망 후 사할린에 거주하던 조선인 2만 2000여명을 북한으로 단계적으로 이주시키려던 계획을 담은 문서가 입수됐다. 국가기록원은 14일 옛 소련 정부의 비밀문서 214건(1256장)과 사진 41장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들 문서는 국가기록원이 지난 2005년부터 러시아 연방기록청에 수차례에 걸쳐 비밀 해제를 요청,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로부터 받은 것이다. 입수한 문서 중에는 당시 소련 내무상 크루글로프가 지난 1947년 외무부상 말리크에게 보낸 서한이 포함돼 있으며, ‘사할린에 사는 조선인들을 한꺼번에 북송할 경우 사할린 지역사회에 경제적·사회적 타격이 올 수 있는 만큼 소련 국가계획위원회의 통제 아래 단계적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록원은 또 소련 극동군이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나홋카에 설치한 포로수용소에 관한 기록도 입수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1948년 12월 당시 나홋카의 포로수용소에는 총 6176명이 수용돼 있었고, 이 중 조선 국적의 포로는 2161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인 포로 중 장교는 없었고 모두 하사관 또는 사병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기록원은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소련 정부의 사할린 동포 북송 계획이 이번 문서 입수로 인해 사실로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할린 동포들이 실제로 북송됐는지 여부와, 북송됐다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기록원 관계자는 “이번에 입수한 문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추가 사실을 밝혀낼 것”이라며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는 아직도 비밀 해제되지 않은 4000여건의 한반도 관련 문서가 있어 계속 공개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3·1운동 민족대표 길선주선생 ‘독립장’ 서훈

    3·1운동 민족대표 길선주선생 ‘독립장’ 서훈

    국가보훈처는 12일 제64주년 광복절(15일)을 맞아 3·1운동 민족대표 33명 중 한 사람인 고(故) 길선주 선생 등 독립유공자 192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 포상 대상인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19명(독립장 2명, 애국장 57명, 애족장 60명), 건국포장 21명, 대통령 표창 52명이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된 길선주(1869~1935년) 선생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명 중 유일하게 무죄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동안 포상이 보류됐다. 올해 재심사를 통해 독립선언서 서명과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공적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민족대표 33인 중 친일행적 혹은 월북으로 포상에서 제외된 이는 김창준, 최린, 박희도, 정춘수 등 4명이다. 평양 출신인 길 선생은 1919년 3월 초 체포돼 1920년 10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1928년에는 민족 저항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했다가 29일 동안 구류됐다. 올해 포상자 192명 중 보훈처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발굴한 대상은 169명이다. 3·1운동 만세시위에서 두 아들을 잃은 윤석원(1861~사망 미상) 선생 등이 새롭게 발굴됐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된 윤 선생은 1919년 3월 평남 대동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해 일본인 헌병 1명과 조선인 헌병보조원 1명을 살해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삶을 바꾸려 했던 에너지… 사랑… 여전히 우리사회에 유효한 것들”

    “삶을 바꾸려 했던 에너지… 사랑… 여전히 우리사회에 유효한 것들”

    이토록 뜨거웠던 삶이 있었을까. 서른의 나이로 러시아혁명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했던, 또 한국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었던 여성혁명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1885~1918). 이미 90여년 전 떠난 그녀가 소설가이자 시인, 기자인 정철훈(50)의 손에 되살아 났다. 혁명가로서 그녀의 활약을 담은 ‘소설 김알렉산드라’(실천문학사 펴냄)를 내고 지난 6일 서울 종로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한마디로 그녀는 여성 김산(1905~1938·중국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이라고 말을 꺼냈다. 누구보다 그 영역에서 활약했지만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얘기였다. 알렉산드라와 작가의 인연은 오래 됐다. 그는 1990년 한·소련 수교를 기회로 북방에서 활약한 운동가들의 자료를 찾기 위해 3년 정도 러시아에 머물렀다. 거기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도 그때 알게 됐고, 그녀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공산당문서보관소, 중앙아시아 쪽에 있는 고문서보관소 등을 모두 뒤졌죠. 중앙아시아를 7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 같이 활동했던 지인들을 수소문해 만나서는 구술까지 받았다. 그렇게 나온 것이 ‘김알렉산드라 평전’(1996). 이번 소설도 그때 모은 것을 활용했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서는 현재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그는 “그녀가 보여줬던 자기 삶을 바꾸려는 진보적 에너지, 치열했던 사랑은 여전히 우리와 우리 사회에 유효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현재성을 위한 장치로 작품은 3부로 나눈 액자소설 형식을 취했다. 1·3부는 그녀의 아들이 등장해 어머니의 흔적을 좇으며 그 삶의 의의를 짚어본다. 본문 격인 2부에는 김알렉산드라가 직접 화자로 나와 처음 우랄 지방의 한 목재소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때부터의 생생한 활약상을 전한다. 1900년대, 1950년대가 작품배경이지만, 작가는 “이건 오늘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곁에서 함께 했던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나 억눌려 있었다.”면서 “그랬기에 격렬한 시위나 노동운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도 그런 비참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전한다.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했지만 의외로 문체는 서정적이다. 사건을 중심으로 한 2부는 짧게 끊어친 문장이 긴박감을 주지만, 픽션이 많은 1·3부에서 배경을 그리는 솜씨나 도입부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한편의 동화나 애틋한 편지를 읽는 것 같다. 일간지 문학전문기자 출신으로서의 자기 작품을 보면 어떨까. “2% 정도 모자란다고 할까요. 상업성의 눈치를 좀 안 본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팔리는 글도 있어야겠지만, 누군가는 써서 남겨야 할 글도 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는 조선의 독립 의지와 일본의 침략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거가 한·중·일 등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안중근 의거의 국제적 영향’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손염홍 건국대 교수가 미리 배포한 발표문 ‘안중근 의거와 중국의 반제 민주운동’에 따르면 안중근 의거 직후 중국 혁명파와 입헌파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러나 5·4운동이 끝나고 신민주주의 혁명기에 들어가면서 안중근 의거는 반일 애국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교과서로 활용돼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 혁명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박은식이 1914년에 발간한 ‘안중근’ 전기는 안중근 의거가 단순히 한국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한·중이 연대해 반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가 됐다고 손 교수는 분석했다. 안중근은 1907년 가을부터 1909년 10월까지 러시아 한인사회를 두차례 순방하며 동의회와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는 등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러시아에서의 안중근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재해석’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한인단체들이나 한민학교의 연설회, 연극 등의 행사에 단골 주제로 등장해 러시아 지역 한인들의 항일의식과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고 했다. 안중근 의거에 대해 일본 사회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규수 순천향대 교수는 “일본 언론계는 안중근에 대해 ‘미친 개’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고,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조선인의 저항에 대해서도 ‘괴물’ ‘마물’이라는 극단적인 멸시감을 유포했다.”면서 “이토 공을 죽인 한국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면서 더욱 확산되었고, 이후 한국 강점을 주장하는 논리로 발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서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을 빼놓을 수 없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자서전을 탈고한 뒤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했으나 끝맺지 못했다.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의 현대사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하는 윤경로 한성대 교수는 ▲뤼순의 개방 ▲한·중·일 3국 평화회의 구상 ▲공동은행 설립 ▲공동 군단 설립, 교육 ▲상공업 발전 ▲로마 교황으로부터 3국 독립보장 등을 동양평화론의 핵심으로 요약했다. 윤 교수는 “오늘의 유럽공동체(EU)와 같은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100년 전에 이미 구상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자 예지”라면서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위한 평화운동이며, 이 점이 안중근 의거의 현대사적 메시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 외에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기조연설하고, 장석흥 국민대 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국제성과 그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 방광석 고려대 교수, 윤선자 전남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주도로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모닝 브리핑] 北 “南선박 불법 침범”… 억류 장기화 가능성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1일 ‘800 연안호’ 나포 사실과 관련, “조선인민군 해군 경비함이 7월30일 동해 우리(북한) 측 영해 깊이 불법침입한 남측 선박 1척을 나포했다.”면서 “현재 해당 기관에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이 “(800 연안호가) 영해 깊이 불법침입했다.”고 강조, 연안호에 대한 조사와 선원 억류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인지 우려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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