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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등 10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등 10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천문시계인 ‘혼개통헌의’, 조선 후기 이인문의 역작 ‘강산무진도’ 등 10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실학자 유금(1741∼1788)이 1787년 제작한 과학기구인 혼개통헌의를 포함해 모두 10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혼개통헌의는 별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는 원반형 모체판과 별을 관측하는 지점을 가르쳐주는 ‘T’자 모양 성좌판으로 구성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작 사례가 알려진 유물로,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가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산무진도는 조선시대 궁중화원 이인문(1745∼1821)이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주제로 그린 8.5m 길이의 두루마리 형식 그림이다. 불교 문화재로는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김천 직지사 괘불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이 보물이 됐다.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화가들이 천상·지상·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보살을 그린 그림, 직지사 괘불도는 승려화가 13명이 1803년 함께 완성한 12m 높이 그림이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불상은 여말선초 시기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이외에도 ‘도은선생시집 권1∼2’,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31∼39’,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이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지정은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위원가 결정한다. 격월 회의가 원칙이지만, 최근 신청이 많아 매월 회의를 열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100년 거슬러 ‘대한독립만세’ 소리 들리는 듯

    [미래유산 톡톡] 100년 거슬러 ‘대한독립만세’ 소리 들리는 듯

    매년 3월 1일을 맞이하면서 1919년 그날을 떠올리게 되지만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도 100주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답사의 주제는 ‘3·1운동 푯돌을 찾아서’다. 거사의 논의는 주로 북촌이라 불리는 안국역 주변과 재동 근처에서 이뤄졌다. 2·8독립선언의 주역 송계백이 학교선배인 현상윤을 찾아가 만난 곳이 현재의 중앙고등학교다. 3·1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손병희, 최린, 한용운, 김성수의 집도 모두 북촌 일대에 있었다. 그곳에서 운동의 계획이 이뤄졌다. 그 남쪽 지역인 경운동 일대와 인사동, 탑골공원, 종각 일대는 실제로 3·1운동이 일어난 역사적인 현장이 많다. 왜 그럴까. 바로 서울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보신각도 그중의 하나다. 보신각을 바라보고 왼쪽에 서 있는 3·1운동 푯돌에는 ‘4·23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는 보통 상하이의 임시정부만 안다. 하지만 서울에는 한성정부라는 임시정부가 잠시 존재했고 조선시대부터 사대문의 중심인 보신각 앞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모인 사람은 미미했지만 미국의 UP통신에 의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3·1운동의 주역인 민족대표들은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태화빌딩과 하나로빌딩 사이 주차장)에서 독립선언을 했다. 하나로빌딩 1층에는 미래유산인 ‘서울중심점 표지석’이 있다. 1896년 고종은 한양의 중심 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이곳에 서울중심점을 세웠다. 결국 민족 대표들은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을 만날 수 있다. 1926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곳이 신한청년단을 조직하고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한 여운형이 운영한 조선중앙일보다.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하자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보도했고 강제로 폐간을 당하게 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서울의 한복판 어디에서나 100년 전 우리의 선배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이수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경북, 찬란한 세계문화유산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다

    경북, 찬란한 세계문화유산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다

    경북, 광역단체 중 세계유산 최다 보유 소수서원, 임금이 현판 하사한 사액서원 병산서원은 교육기관 넘어 사림 공론장 하회마을 年 100만명 이상 관광객 찾아 울릉도와 가야고분군도 세계유산 추진경북이 보유한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잇따라 등재되면서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로 육성되고 있다. 경북은 25일 현재 세계유산이 4건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여기에 조선 시대 교육기관인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해 모두 5건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경북도의 문화유산 브랜드 가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자 도는 관광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북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고”라며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경북의 문화재들을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민선 7기 핵심 공약인 관광산업을 육성시키는 도약대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서원 9곳 가운데 경북에는 조선시대 첫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4곳이 모여 있어 경북이 ‘선비의 고장’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나머지 5곳은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이다.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지난달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했고 오는 30일 아제르바이잔에서 개막되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정될 전망이라고 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는 이변이 없는 한 바뀌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경북의 세계유산은 모두 5건이 된다. 전남이 4건으로 늘어나 뒤를 이으며 충남은 서울과 같은 3건이 된다. 경북은 현재 ▲경주 석굴암·불국사(세계문화유산 지정 연도 1995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한국의 역사마을(안동 하회마을 및 경주 양동마을·2010년)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2018년) 등 4건을 보유했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1495~1554)이 세운 서원으로, ‘사액서원’으로 유명하다. 사액서원은 조선 시대 임금이 현판과 토지 등을 하사한 서원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서원 교육, 제향과 관련한 운영 규정을 처음으로 만들어 이후 세워진 서원 교육 규정에 영향을 미쳤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74년 지어졌으며 자연 친화적 경관 입지를 보여 주는 한국 서원의 전형으로 학문과 학파, 학술, 정치,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상징성이 크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서원으로, 만대루에서 보는 낙동강의 풍광은 수려하기로 이름이 높다. 교육기관을 넘어 만인소 등 사림 공론장으로 확대됐으며 만대루는 한국 서원 누마루 건축의 탁월성을 보여 준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은 누마루 건축물을 처음으로 서원에 도입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한 서원으로도 알려졌다.앞서 지난해 통도사(경남 양산),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선암사(전남 순천), 대흥사(전남 해남)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경북의 부석사와 봉정사는 이코모스로부터 1000년 한국 불교 전통을 계승해 온 종합 승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부석 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625~702)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화엄종찰이다. 국내 최고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5점과 보물 4점 등이 있다.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유산이다.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 스님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피해를 보지 않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 불상, 불화가 잘 보존됐다.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찾아 더 유명해졌다.특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간 이듬해인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안동 하회마을은 지난해까지 5년째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세계적인 명사들도 즐겨 찾을 정도가 됐다. 각국 주한 대사는 물론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가 2005년과 2009년 연이어 찾아 한국의 전통문화를 즐겼다. 2017년 10월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추석 연휴에 하회마을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가야고분군과 울릉도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돼 앞으로 경북도의 세계문화유산 보유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군은 2021년까지 가야고분군인 지산동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며, 경북도는 최근 울릉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올리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지산동고분군은 이미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울릉도는 지형지질학적 가치, 다양한 생물종 및 희귀·멸종식물에 대한 보존가치 등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13건 가운데 자연유산은 2007년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일하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성동, ‘2019 두모포 뮤지컬 페스티벌’ 개최

    서울 성동구는 오는 22일 오후 7시 옥수역 인근 한강공원에서 ‘2019 두모포 뮤지컬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성동구는 “올해 600주년을 맞는 두모포 출정 역사를 동시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했다”고 했다. 옥수역 한강공원은 조선시대 ‘두모포’라고 불리는 나루터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1년쯤, 계속된 왜인 약탈과 노략질에 참을 수 없었던 세종과 상왕 태종은 대마도를 선제 공격하기 위해 두모포에서 출병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은 두모포 출정 역사에 얽힌 옛이야기와 현대 청년들의 주체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스토리가 있는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펼쳐진다.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씨가 감독을, 뮤지컬 배우 이건명씨가 사회를 맡는다.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더 엠씨’가 음악을 연주한다. 뮤지컬 배우 배해선·박강현·양지원·이수빈씨 등이 출연, 멋진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정원오 구청장은 “‘신념’이라는 키워드로 볼거리 풍성한 뮤지컬 갈라 콘서트를 준비했다”며 “여름밤 한강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페스티벌에 많은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금요칼럼] 경주의 ‘나이트 라이프’와 첨성대의 역할/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경주의 ‘나이트 라이프’와 첨성대의 역할/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첨성대는 고려시대에도 경주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과거의 유산이었다. 신라가 망하고 월성 일대는 허허벌판과 다름없었으니, 무덤의 봉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신라의 인공물이 첨성대였다. 이런 분위기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남산 용장사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짓고, 경주 일대를 누빈 기행시집 ‘유금오록’(遊金鰲錄)을 남긴 매월당 김시습은 첨성대에서 두 편의 시를 지었다. 특히 ‘높은 대가 드높아서 하늘까지 닿았으니/역력한 천문 현상을 한눈에 살피겠네’라 했으니,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것은 당시에도 주지의 사실이었다. 지난주 경주에서 첨성대 학술대회가 열렸다. ‘첨성대 창으로 본 하늘 위 역사문화 콘텐츠’라는 주제처럼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초점이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단과 경주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행사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천문연구원이 적극 참여했다. 첨성대 같은 과학 문화재의 활용을 위해서는 정부의 문화 정책 기능과 과학 정책 기능이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비가 내려 장소를 실내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월성 별자리 관측 행사 역시 한국천문연구원의 고천문연구센터가 주도했다. 이날 밤 ‘월성에서 바라본 밤하늘 이야기’라는 별자리 관측 행사에 신청자가 몰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는 ‘밤의 문화유산’이자 여전히 살아 있는 교육 콘텐츠로 기능하는 첨성대의 본질을 망각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됐다. 월성에서 천문학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별자리를 관측하는 모임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아이들을 핑계로 부모가 먼저 가고 싶을 것 같다. 이날 행사는 첨성대가 경주의 참신하고 교육적인 ‘나이트 라이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관광도시라는 경주에 과연 어떤 밤문화가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필자를 포함해 중고교 시절 수학여행을 경주로 다녀온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밤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면 솔직히 ‘교육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아이들과 함께 경주를 찾는 사람들도 해가 진 뒤 가족 단위로 함께할 수 있는 ‘나이트 라이프’의 부재(不在)에 시달리는 것은 다르지 않다. 숙소 앞 치킨집을 찾는 것 말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건전한 밤문화가 하나라도 있는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객들이 먹고 마시고 숙박하면서 돈을 뿌리고 가는 관광도시’를 강조하지만, 막상 어린이와 청소년이 꼭 이 도시에서 밤을 보내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우리는 선사시대 고인돌에 그려진 별자리 암각화에서 시작해 단군조선과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천문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유구한 역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본격적인 천문역사 박물관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박물관과 함께 역사에 기록된 과거의 별자리와 오늘의 별자리를 비교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도 반드시 필요하다. 천문역사박물관과 쌍을 이루는 교육용 천문대를 세운다면 입지는 첨성대가 있는 경주가 아니면 어디가 또 있을까 싶다. 교육용 천문대는 높은 산이 아니라 오히려 접근성이 좋은 첨성대 주변 옛 시가지가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한때 경주시가 천문대 건립을 추진했지만 좌절된 적이 있다. 예산 확보가 어려웠고, 지었다고 해도 전문성이 없으니 운영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천문연구원이 협력해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첨성대와 천문박물관, 천문대는 경주의 밤문화를 세계 어떤 역사도시의 그것보다 수준 높게 이끌어 갈 것이라 장담한다.
  • ‘조선생존기’ 이재윤, 계곡 바위서 셀프 삭발 포착 “독기 충만”

    ‘조선생존기’ 이재윤, 계곡 바위서 셀프 삭발 포착 “독기 충만”

    “저를 데리고 가세요, 제가 모든 것을 바꿔놓겠습니다”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조선생존기’ 이재윤이 파격 ‘셀프 삭발’을 감행하며 ‘악마의 전개’에 불을 붙인다. 이재윤은 TV CHOSUN ‘조선생존기’(연출 장용우, 극본 박민우, 제작 화이브라더스코리아, 롯데컬처웍스, 하이그라운드)에서 젠틀한 국제변호사이자 여주인공 이혜진(경수진)의 약혼남 정가익 역을 맡았다. 특히 ‘조선생존기’ 첫 주 방송을 통해 정가익(이재윤)의 진짜 정체가 ‘연쇄살인마’라는 반전이 드러나며 충격을 안기는가 하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조선시대로 떨어진 정가익이 스님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제하며 극적으로 재등장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2019년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스님의 말에 절망과 분노를 드러냈던 정가익이 계곡에서 직접 머리를 깎으며 ‘셀프 삭발’에 나서는 장면이 포착돼 시선을 강탈한다. 허망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던 정가익은 곧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고, 커다란 면도칼을 이용해 삭발을 마무리하며 잔뜩 각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탄탄한 상반신을 노출한 채 살기를 뿜어내는 눈빛이 절정의 포스를 자아내며 보는 이들을 움찔하게 한다. 해당 촬영에서 이재윤은 역할을 위해 꼭 필요했던 삭발 요청에 흔쾌히 임하며, 현장에서 맨 몸으로 리얼한 삭발을 감행해 스태프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장면 특성상 NG가 없어야 되는 촬영에서 이재윤은 스태프들과 꼼꼼한 논의 끝에 스스로 가위를 들어 머리를 자르고, 전통 도구로 머리카락을 긁어내는 등 절정의 프로 정신을 드러냈다. 삭발을 마친 이재윤이 눈에 힘을 주고 고함을 지르자, 현장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는 반응과 함께 찬사를 쏟아냈다는 후문이다. ‘조선생존기’ 제작사 화이브라더스코리아 측은 “이재윤은 삭발을 진행하고 나서부터 이전 촬영과는 급이 다른 ‘악의 아우라’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등, 정가익 역에 절정으로 몰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역대급 악역 캐릭터를 소화 중인 이재윤이 조선시대에서 새롭게 펼쳐낼 상상 이상의 행보를 기대해도 좋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조선생존기’ 3, 4회에서는 청석골 도적패에게 잡혀간 한정록(강지환)과 이혜진이 왕치 아내 곱단이(심소영)를 극적으로 살려내며 포로에서 영웅으로 신분이 격상, 극적인 조선 적응기를 그러냈다. 나아가 한정록과 가까스로 재회한 동생 한슬기(박세완)가 한밤 중 보쌈을 당하며 기생으로 팔려가게 돼, 본격적인 ‘동생 찾기 서사’의 시작을 예고하며 흥미를 더하고 있다. ‘조선생존기’ 5회는 22일 토요일 밤 10시 50분 TV CHOSUN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부산대 박물관,태극기 순회 특별전시회 개최.

    부산대 박물관은 오는 25일부터 9월 7일까지 ‘태극기가 ????에(바람에)’ 순회 전시전을 연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순회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오랜 기간 미국에서 태극기 자료를 수집해 온 재미교포 이병근 씨의 주요 소장품을 중심으로 500여 점이 선보인다. 부산대 박물관은 1883년 태극기를 정식 국기로 채택한 조선시대 이래, 대한제국·일제강점기·해방직후·미군정기·한국전쟁기·한국전쟁이후 근·현대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 온 태극기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또 태극기의 의미와 작도법 안내, 임시정부요원과 함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관람객 포토존, 태극기 도안에 글귀를 남길 수 있는 참여존 등 ‘태극기’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전시 행사를 마련할 예정이다. 전시회는 부산대 박물관이 충북 청주의 한국교원대학 교육박물관과 공동기획했다. 김두철 부산대 박물관장은 “이번 특별순회전은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만큼 새로운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열망했던 우리 조상들의 염원을 다시 되새기고 역사의 주인공들을 기리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신세경 차은우, 서로 비교될 것 같은 비주얼

    신세경 차은우, 서로 비교될 것 같은 비주얼

    당당한 싱글들을 위한 즐거운 패션매거진 ‘싱글즈’가 7월 17일 방영 예정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으로 안방극장을 설렘으로 물들일 배우 신세경과 차은우의 자체 발광 비주얼 동반 화보를 공개했다. 특히 이번 화보는 싱글즈 7월호의 커버를 장식했다. ‘신입사관 구해령’ 두 비주얼의 찰떡 호흡 조선의 첫 여사와 모태솔로 왕자의 로맨스를 다룬 ‘신입사관 구해령’을 통해 처음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이번 화보 촬영에서도 어색함 없이 각자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압도적인 비주얼로 동반 화보를 완성 시켰다는 후문이다. 신세경은 특히 긍정적이고 밝은 차은우와의 작업 덕분에 좋은 시너지가 생긴다며 새 드라마에 대한 현장 분위기와 기대감을 동시에 전했다. 사극 복귀 신세경,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에 끌려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의 굵직굵직한 사극에서 주연을 맡아 호연을 펼쳤던 신세경은 이번 작품에서 어린 시절을 청나라에서 보낸 유학파 여사 해령 역을 맡아 극을 이끌 예정이다. 그녀는 ‘신입사관 구해령’ 작품에 대해 “대본 자체가 굉장히 산뜻하고 깔끔했어요. 캐릭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밸런스나 이야기 자체도 유려하고 재미있어요. 캐릭터 각각의 매력이 빛나는 작품이라 그들이 모였을 때 빚어내는 앙상블 또한 기대되는 작품이에요”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열정과 개혁이라는 단어로 수식되는 구해령은 조선시대의 첫 여성 사관이다. ‘흑기사’의 정해라, ‘하백의 신부 2017’의 소아처럼 최근 신세경이 연기한 인물은 모두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을 강요 받지 않는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결이 이어진다. 그녀는 “샤를리즈 테론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영화 ‘몬스터’를 좋아하는데 그 작품에서 여배우가 빛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요.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에 끌리는 게 사실이에요”며 ‘신입사관 구해령’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소신 있게 전했다. 생애 첫 사극 차은우, 모든면에서 서툰 이림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져. ‘신입사관 구해령’을 통해 생애 첫 사극에 도전한 차은우는 이번 작품을 위해 2kg을 감량할 만큼 이림 역할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에서 차은우가 스스로에게 준 가장 큰 과제는 대중에게 이림의 매력을 설득시키는 일이다. “단절된 삶을 사는 이림은 모든 면에서 서툴러요. 구해령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제일 잘 보여주고 싶어요. 귀엽고 순수한 이림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동생의 모습이나 우리 팀의 막내 산하의 행동을 생각해봤어요. 현장에 가면 생각했던 것과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감독님과 스태프들에게 많이 물어요. 내관역으로 나오는 성지루 선배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세요.”라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크고 작은 현장을 경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수록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집 안 곳곳에 붙여놓은 명언 중 좌우명이 된 두 문장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와 ‘너 자신을 알라’이 더 마음 깊이 와닿는다고 밝힌 그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요.”라며 앞으로의 활동을 향한 포부를 드러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가수와 배우의 영역을 오가며 쉴 틈 없이 살고 있지만 일을 통해 경험하고 성장하며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이며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조현 의상논란, 베리굿 팬들 지지 “지금이 조선시대?”[전문]

    조현 의상논란, 베리굿 팬들 지지 “지금이 조선시대?”[전문]

    걸그룹 베리굿 조현이 의상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팬들이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18일 온라인 팬 커뮤니티 ‘베리굿 갤러리’ 측은 ‘조현에 대한 지지 성명 발표한다’는 제목으로 지지 성명문을 게재했다. 베리굿 팬들은 “지금이 조선 시대냐. 도대체 해당 의상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일부 편향된 시선에 조현이 상처를 받길 바라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당당히 자기 몫을 소화하는 조현이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조현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구미호 캐릭터 ‘아리’를 귀가 달린 머리띠와 보라색 꼬리로 표현했다. 현장에서는 조현의 섹시한 몸매가 코스프레와 어울리면서 ‘실사판 아리’가 튀어나왔다는 호평이 이어졌다”고 현장의 반응도 전했다. 앞서 조현은 17일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진행된 ‘게임돌림픽 2019: 골든카드’에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LOL·롤)’의 구미호 캐릭터 ‘아리’ 의상을 입고 참석했다. 하지만 선정성 등의 이유로 의상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소속사 제이티지엔터테인먼트는 “프로그램을 위해 주최 측과 협의 후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준비해 준 의상을 착용했다”면서 “조현이 평소 게임을 좋아하기에 팬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프로그램을 통해 팬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입장을 전했다. <다음은 조현 의상 논란 관련 베리굿 갤러리 지지 성명문 전문> 지지 성명문 아이돌 그룹 베리굿을 아끼고 사랑한 팬 커뮤니티 베리굿 갤러리는 2014년 베리굿이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견고한 팬덤입니다. 17일 조현이 한 예능프로그램 레드카펫 행사에서 착용한 의상이 현재까지도 뜨거운 감자로 이슈화되고 있어, 너무나도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기에 공식적으로 지지 성명문을 발표합니다. 지금이 조선 시대입니까? 도대체 해당 의상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시대는 점점 남녀평등 사회로 발전하고 있고, 여성의 외모도 사회의 경쟁력 중 하나인 철저한 자기 관리에서 비롯된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현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구미호 캐릭터 ‘아리’를 귀가 달린 머리띠와 보라색 꼬리로 표현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조현의 섹시한 몸매가 코스프레와 어울리면서 ‘실사판 아리’가 튀어나왔다는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를 선정성 논란으로 문제를 삼는 건, 오히려 게임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리굿 소속사 제이티지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밝혔듯, 프로그램을 위해 주최 측과 협의 후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준비해 준 의상을 착용한 것입니다. 평소 게임을 좋아하는 조현이 정말 즐겁게 표현하는 모습에 많은 팬들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베리굿 갤러리 일동은 일부 편향된 시선에 조현이 상처를 받길 바라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당당히 자기 몫을 소화하는 조현이 되길 간절히 희망하는 바입니다. 2019년 6월 18일 베리굿 갤러리 일동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군주와 곤룡포 속의 도끼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군주와 곤룡포 속의 도끼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이라 한다. 중국엔 2대로 단명한 왕조들도 있다. 조선 왕조 500여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래를 통찰하고 결단한 2대 태종과 함께 세종이란 걸출한 군주 덕분이다. 명장 김종서가 세종에게 양녕의 불찰을 자주 말했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형 양녕이 양보하지 않았으면 왕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었다’며 무마했다. 백성들도 형제가 잘못하면 덮어 주고, 감옥에 가기라도 하면 뇌물을 써서라도 석방시키려고 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임금이 백성만도 못하게 형 하나를 감싸 줄 수 없겠냐며 오히려 다른 신하들에게도 알려 양녕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했다.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정치가 아닌 가정사로 국한해 양녕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 이것이 아버지 태종과 아들 세조와 다른 점이다. 세종 23년(1441) 12월 3일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덕수궁 뒤쪽의 흥천사 사리탑이 기울어 수리한 후 잔치를 베풀려고 하자 대소 신료는 물론 유생들까지도 수십 일간 상소를 올리며 반대했다. 하도 반대가 심하자 세종은 “예전에도 불탑이 기울어 위태로우면 수리하고 잔치를 베풀었으며,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로 나라가 망하고 임금을 폐할 일이 아닌데도 하나같이 통곡할 만하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통곡할 만한 일이냐”며 개탄했다. 이어 “신하가 세 번 간해 임금이 듣지 아니하면 벼슬을 버리고 간다고 하는데, 경들은 어찌 물러나지 않냐”며 빗발치는 반대를 물리치고 잔치를 베풀었다. 또 자기 부모들이 집에서는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내버려 두면서 조정의 자그마한 불사를 탓하는 것은 소인배의 짓이라며 신하들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한 남자로서 세종은 어떠했을까. 황제는 후궁을 3000명까지, 왕은 60명까지 둘 수 있었다. 임금은 구중궁궐에서 미색에 빠져 크게는 나라를 망치고 적게는 몸을 망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세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어린 궁녀가 잠자리에서 작은 청탁을 했다. 세종은 자신이 총애를 해 그렇다며 아직 어린데도 이런데 더 크면 나라를 망칠 것이라며 다음날로 내보냈다. 세종은 공과 사를 엄격히 했다. 세종은 항상 글을 읽으면 반드시 100번을 채웠다. 특히 ‘춘추좌전’과 ‘초사’는 어렵고 난해해 200번을 읽었다고 한다. 하도 글을 많이 읽어 몸이 쇠약해지자 태종은 세자 방에 있던 모든 책을 치워 버렸다. 마침 송나라의 구양수와 소식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어 만든 ‘구소수간’이란 책 한 권이 병풍 뒤에 있었다. 과연 세종은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무려 1100번이나 읽었다 한다. 진짜일까 하는 의문은 바로 풀렸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당연히 중국에 부고를 보냈지만, 왕비의 규정이 없어 사정에 따라 보내기도 하고, 안 보내기도 했다. 세종은 왕비가 죽자 신하들과 긴 논의 끝에 명나라에 부고를 보냈다. 국상 중 책을 읽다 왕비의 경우는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부고를 중지시키고, 황희·맹사성·김종서·황보인 등 명재상들을 불러 “제발 책 좀 읽어라, 이게 무슨 나라 망신이냐”고 질책했다. 세종 때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종은 선대의 업적을 알아야 좋은 정치를 편다며 황희에게 아버지의 ‘태종실록’을 보자 했다. 황희는 만일 전하께서 실록을 보면 전례가 돼 후대 왕도 보게 될 것이고, 임금의 입맛에 맞게 쓰여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에 끝내 세종은 실록을 보지 않았다. 세종의 이런 면면은 군주는 모름지기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 준다. 세종은 옳은 일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의 권위가 손상될지라도 솔직하게 의사를 밝혀 관철시켰다. 이것이 소위 세종의 공론정치다. 군주는 엄격한 공과 사의 구분, 통치철학 및 역사관,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임금의 곤룡포에 그린 도끼는 바로 군주의 결단력을 상징한다.
  • [자치광장] 600년 전 두모포 출정의 신념처럼/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자치광장] 600년 전 두모포 출정의 신념처럼/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서울을 관통하고 있는 한강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익숙한 장소지만 우리의 삶과 함께해 온 물결 곳곳에는 한반도의 역사가 녹아 있다. 예부터 두모포라 불리던 성동구 옥수역 한강공원은 진취적인 기상으로 승리를 이끌어 낸 조선시대 대마도 정벌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원년인 1419년 두모포에서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이종무 등 8명의 장수들에게 출정 명령을 내리고 이들을 환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왜구들의 약탈이 계속되자 세종은 대마도를 선제 공격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전쟁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하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고 한다. 이에 성동구는 두모포 출정 600주년을 맞아 오는 22일 ‘두모포 출정 기념 축제’를 연다. 굳은 신념으로 승리를 이끌어 낸 과거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축제를 앞두고 역사 속 여덟 장군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청년 아티스트 각자의 예술적 신념을 담은 대형 벌룬 아트 조형물을 옥수동 한강공원에서 전시하고 있다. 축제 당일에는 ‘Do More For Your Belief’(너의 신념대로 살아라)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초여름 강변에서 뮤지컬 공연이 연이어 펼쳐진다. 청년 러닝크루들은 두모포 출정의 힘찬 기개를 살린 달리기 퍼포먼스로 그날의 느낌을 재현한다. 요즘 청년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 경쟁 구도와 취업난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때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견주며 좌절하고,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세상의 정답과 맞는지 방황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타인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내 기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신념이 필요하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신념을 갖고 있는 한 명의 힘은 관심만 가지고 있는 사람 아흔아홉 명의 힘과 같다”고 했다. 600년 전, 왕의 신념이 여덟 장수의 신념으로 그리고 여러 병사들의 신념으로 확산된 두모포 정신이 우리 청년들의 가슴에도 깊은 울림으로 퍼져 새로운 미래를 향한 담대한 도전을 주체적으로 그려 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음식엔 시대상이 다 담겨있죠...소통 없는 먹방은 ‘푸드 포르노’”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음식엔 시대상이 다 담겨있죠...소통 없는 먹방은 ‘푸드 포르노’”

    ‘먹방 시대’ 평론가 윤덕노씨가 말하는 ‘음식 문화’“먼 옛날에는 주방장, 즉 요리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의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의미하는 재상(宰相)이라는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요. 한자 재(宰)를 보면 ‘집 면(?)’ 아래에 ‘매울 신(辛)’ 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상(相)자는 서로라는 뜻보다는 보좌하고 시중든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재상은 중국 주나라 때, 천관총재(天官? 宰)라는 벼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천관총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 음식을 참석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역할을 했지요.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 현실적인 역할이었습니다.” 먹방, 쿡방이 공중파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 음식문화 평론가는 무엇을 하며, 이를 어떻게 볼까. 25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했던 윤덕노씨는 푸드 칼럼니스트나 음식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음식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음식에 얽힌 문화와 역사, 경제, 생활 등을 캐어 글을 쓰고 강연을 하니 음식문화 평론가로 불러달라고 했다. 최근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라는 책을 낸 그를 지난 8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인터뷰 도중 음식 품평, 맛집 소개, 조리법 등에 대해 묻자 그는 아예 손을 내저었다. “中역사엔 요리사 출신 유명 재상 다수제사후 음식 골고루 나눠… 내치의 기본다른 씨족 장로들 초청 연회·우의… 외교나라 다스리는 것, 작은 생선 요리 비유”- 재상이 요리사였다고? 역사적 인물이 있나. “한고조 유방을 도운 개국공신 진평은 고향에서 제사를 주관하였습니다. 제사가 끝난 다음 음식을 나누었는데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는 겁니다. 진평은 ‘내가 천하를 다스리면 고기를 다루는 것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고, 나중엔 좌승상이 되었지요. 기원전 7세기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은 요리사 출신 역아를 재상으로 등용했습니다. 맹자는 ‘천하가 모두 역아의 맛을 따른다(天下期於易牙)’고 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요리사였지요. 역아는 악정을 펼쳤고, 환공은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상나라의 명재상 이윤도 요리사였다고 합니다. 귀족 집안의 하인이었던 이윤은 그 귀족의 딸이 탕왕에게 시집갈 때 가마솥과 도마를 메고 따라갔다고 전합니다. 탕왕에게 식사 시중을 들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왕도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는 말도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 요리사의 역할과 정치 관계는. “요리사 역할은 씨족사회였던 고대를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 가장 큰 행사는 하늘 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고, 다음은 그 음식으로 참석자들에게 골고루 배불리 먹게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아니라 참석자 개인 사정에 맞게 공평하게 나눠줘야 불만이 없겠죠? 이게 내치(內治)의 기본입니다. 한편으론 다른 씨족 장로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우의를 다지는 것은 외치일 것입니다. 요리사가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하면 내분, 연회가 흡족하지 못하면 전쟁의 빌미가 됐으리라 봅니다. 모든 사람이 불만이 없도록 골고루 먹을 것을 나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재상이자 요리사의 역할이었던 겁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데이비드 이스턴 시카고대 교수가 말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국가 혹은 정부가 역할과 필요에 따라 가치를 균형 있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주은래-키신저 베이징 오리구이…수교 가속등소평, 레이건에 불도장… 외자유치 안간힘세계사 바꾼 후추, 명나라 쇠퇴 길로 유도”- 역사를 바꾼 음식은 어떤 게 있나. “1971년 7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특사인 헨리 키신저(96)가 중국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했습니다. 그를 맞은 이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였죠. 닉슨 대통령의 방중 형식을 놓고 두 사람의 대화는 이틀 연속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습니다. 협상이 깨질 위기까지 내몰렸습니다.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의 대화가 점심으로 나온 베이징 오리구이로 대화 주제가 바뀌면서 부드러워졌습니다. 식사자리에서 저우언라이 총리가 키신저에게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주면서 먹는 법과 유래 등에 대해 설명해줬지요. 총리가 직접 식사 시중을 들어줬다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적대관계 청산에 교감했던 거죠. 닉슨과 마오쩌둥 간의 역사적 정상회담에 수교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설계자인 덩샤오핑 역시 불도장(佛跳墻) 외교 만만찮습니다. 미중수교 이후 1984년 중국을 방문한 첫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에게 불도장으로 접대했습니다. 불도장이 레이건 대통령과의 만찬에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요. ‘스님이 깜짝 놀라 담장을 뛰어넘는다’는 불도장은 청나라 황제가 즐겼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황제들은 구경도 못한 음식입니다. 이 음식이 탄생한 역사도 짧고, 자금성에서 멀리 떨어진 푸젠성(福建省) 금융기관 책임자가 상급 관청 감독관을 구워삶으려고 만든 지방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스님도 놀라는 스태미너 음식이라거나 황제도 먹었다는 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마케팅 스토리입니다. 구워삶으려고 만든 불도장으로 중국이 미국을 극진히 대접한 것은 외자유치의 필요성 때문이겠지요.”- 세계사를 바꾼 음식으로 후추를 많이 꼽는다. “후추가 서양에선 대항해시대를 열고, 세계사를 바꿨지만 중국 역시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차·고구마·돼지고기 등도 있지만 후추는 명나라 흥망과 깊은 연관이 있지요. 14세기 말 중국의 후추는 100근당 은 20냥이었습니다만 15세기 중반에는 은 5냥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합니다. 유명한 정화함대는 비단과 도자기를 갖고 나가 후추와 같은 향신료와 상아 등을 들여왔습니다. 그때 들어온 후추가 명나라 초기의 국가재정을 튼튼하게 했습니다만 나중엔 정화함대 파견을 끝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논란은 많지만 무역이권을 놓고 관료와 환관 세력의 대립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당시 명나라는 관원과 군인들에게 화폐 대신에 후추로 봉급을 지급했습니다만, 후추 가격이 폭락하면서 관료의 봉급이 앉은 자리에서 4분의 3이 증발한 겁니다. 후추로 인해 명나라가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부자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한 향신료를 일반 백성도 맛볼 수 있게 됐지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4년 매일경제신문에 기자로 들어갔다. 베이징 특파원과 사회부장·국제부장·중소기업부장 등을 거쳐 언론사에서 25년가량 있었다. 이후 ‘음식이 상식이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등과 같은 책을 냈다. 그는 “재미있어서 시작한 음식문화 연구는 흥미를 잃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재미로 취미로 수집한 동서양 음식 스토리서시대상 발견…황제부터 거지까지 인간사 담겨”- 음식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음식에 얽힌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취미 삼아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자료를 모으다 보니 음식 스토리에 황제부터 거지까지 사람들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문헌을 더 찾아보고 연구를 하다 보니 음식을 통해 기존에 배웠던 것만으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경제사와 정치사, 문화사, 생활사를 알 수 있게 되면서 음식문화 탐구에 더 빠져들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동양과 서양의 고전에 나오는 음식 관련 이야기나 에피소드가 당시 시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까지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의식주 가운데 식재료인 농림수산업과 먹는 것과 관련된 산업이 의류·패션이나 주택·토목건설보다 더 컸습니다. 농기구나 도자기 제조도 음식산업의 연장입니다. 이러니 음식 이야기를 보면 당시 시대상이 고스란히 다 보이는 겁니다.” - 음식 하나에 당시 생활사가 모두 담겼다고?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요즘 먹는 배추김치 한 포기, 조선시대엔 얼마나 했을까요? 조선 초기엔 배추김치가 없었습니다만, 지금과 같은 재료로 배추김치를 담근다면 한 포기에 200만~300만원쯤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의 문헌을 보면 배추는 거의 약으로 쓰이는 것이지 그냥 먹는 음식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종자는 중국에서 수입했고…. 정조 때 정약용의 경세유포를 보면 한양에 배추밭을 넓혀나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배추의 부가가치가 그만큼 높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젓갈에 필수적인 소금 한 가마와 쌀 한 가마를 맞바꿨다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소금은 천일염이 아닌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물을 조려 만드는 자염이었습니다. 천일염은 조선후기에나 등장한 제조법입니다. 젓갈 특히 멸치젓은 서남해안에서 생산된 멸치를 서울까지 이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서울이나 경기 이북 지역에선 주로 새우젓을 썼지요. 생강 역시 재배의 북방한계선이 전주였습니다. 지금은 지구온난화 등으로 좀 더 올라왔겠지만…. 배추김치는 최고의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최고급 재료가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발달하고 진화한 음식입니다. 대중화된 게 일러야 18세기쯤일 겁니다. 이렇듯 우리의 김치 발달사에도 당시의 경제사, 생활사가 녹아있습니다.” “소통·감정 배제된 먹는 행위·맛만 강조 ‘먹방’‘푸드 포르노’ 비판… 사랑없는 성욕과 마찬가지감각적 ‘대리 만족’… 제작자 최소한 주의 필요”- 요즘 ‘먹방’ ‘쿡방’이 넘쳐난다. “음식 먹는 것을 보거나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24시간 먹방 쿡방이 나와서 식상하지만 그것은 시청자가 선택할 문제이지요. 다만, 일부 먹방의 경우 지나치게 먹는 행위, 감각적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존이나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강조하고, 화면에 비쳐지는 것을 부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부분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한데 성(sex)이 사랑의 감정 없이 오직 행위와 감각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저질 포르노가 되는 것처럼, 먹는다는 행위 역시 소통과 감정이 배제된 채 오직 먹는 행위와 맛만 강조한다면 포르노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푸드 포르노’라는 말도 나온 것이겠지요. 포르노가 인간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듯, 식욕을 자극하는 먹방 역시 본능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 프로그램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작자나 출연자들이 최소한의 주의는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니면 비공개로 하던가.” “외식 조건?… 맛보다 분위기가 선택 조건시간·경제 여유…소통 가능 공간이면 충분”- 외식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제 개인 생각으로 외식의 선택 조건에서 형편없지 않다면 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을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허용되는 범위에서 선택하면 됩니다. 외식에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누구와 어떤 분위기에서 먹느냐를 따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외식은 비즈니스가 됐건 혹은 가족, 친지와의 즐거움을 위해서 먹건 먹는 음식 자체보다는 분위기, 근본적으로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음식과 맛 자체보다는 때와 장소, 분위기를 따져서 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1인당 500달러짜리 전복 스테이크 요리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만 어려운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과 만나 어려운 이야기를 했으니, 지금 그 맛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시장통에서 아내와 같이 3000원짜리 칼국수를 먹으면서 낄낄거리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것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 집에서도 음식을 자주 하나. “가족이 먹는 음식은 만들 줄 알고 몇 가지 그럴듯한 요리도 만들 수 있지만 자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기자생활을 할 때는 바빠서 음식 만들 시간이 없었고, 이후에는 재미로 음식은 만들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아내가 음식 만들기를 싫어하지 않는데다, 더 편하게 잘하기 때문에 굳이 제가 음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음식 만드는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연구하고 글 쓰는데 더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이 저와 아내의 생각입니다. 나중에 완전히 은퇴하면 그 때 가서 하고 싶으면 음식을 만들고….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혼자일 때 몰랐던 너희들 ‘하나’ 되니 일품이구나

    혼자일 때 몰랐던 너희들 ‘하나’ 되니 일품이구나

    비빔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이다. 조화롭게 비비고 함께 나누어 먹는 한민족의 전통 먹거리로 천년의 혼이 담겨 있다. 비빔밥에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식재료가 듬뿍 들어 있어 진한 향토 내음과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나물과 해초, 육류, 해물, 양념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안겨주면서도 재료 고유의 맛을 잃지 않는 독특한 식감이 일품이다. 이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민족과 결을 함께한다. 한식의 결정체로 불리는 이유다. 눈, 코, 입을 모두 즐겁게 하는 비빔밥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한류를 선도하고 있다. 비빔밥을 경험한 외국인들은 첫 숟갈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최근 들어서는 전통음식의 틀을 벗어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고유 음식을 지향하면서도 현대인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각종 식재료를 한 그릇에 넣고 ‘쓰~윽 쓱’ 비벼본 향수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극도로 시장기를 느낄 때,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을 때,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식사를 제공해야 할 때 비빔밥은 ‘궁극의 고민 해결사’로 등장한다. 한 그릇으로 한 끼 식사가 되는 비빔밥은 편리성과 다양성이 뛰어나 간편하고 빠른 것을 선호하는 우리의 정서와도 맞다. 재료와 양념은 물론 밥의 양까지 취향에 맞게 조절이 가능해 지위고하, 남녀노소,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식물성과 동물성 식재료가 골고루 들어가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잡힌 식단이다. 비빔밥의 역사는 고려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민족의 밥상이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시기가 그 즈음이어서 함께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빔밥은 1890년대 양반가 음식책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등장한다. 이 문헌에는 한자로 골동반(骨董飯)이라 쓰고 한글로 ‘부빔밥’이라고 적었다. 골동반은 이미 지어 놓은 밥에다 여러 가지 찬을 섞어서 비빈 것을 의미한다. 비빔밥의 유래는 학자마다 설이 매우 다양하다. 제사나 차례를 마치고 상에 오른 삼색나물을 가족끼리 모여 비벼 먹은 것에서 비롯됐다는 ‘음복설’, 바쁜 농번기에 많은 밥과 반찬, 채소를 큰 그릇에 넣고 비벼 나누어 먹던 풍습에서 나왔다는 ‘농번기 음식설’, 조선시대 임금이 점심때나 종친이 입궐하였을 때 먹는 식사였다는 ‘궁중음식설’ 등이다. 하지만 모두 근거가 확실하지 않아 ‘통설’이나 ‘다수설’이 없는 실정이다. 비빔밥은 지역에 따라, 넣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많다. 전주, 안동, 진주 등 지명이 붙은 비빔밥은 각 지역의 특색과 맛을 자랑한다. 산채비빔밥, 육회비빔밥, 야채비빔밥 등은 제철 농수축산물을 다양하게 이용한 차림으로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전주, 15가지 오방색 나물에 담은 호남 인심 대한민국 비빔밥의 대표 선수는 ‘전주비빔밥’이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에 색스럽게 올려진 오방색 나물,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붉은 육회와 계란 노른자, 이를 단아하게 품은 정갈한 유기그릇은 ‘맛의 고장 전주’의 상징이다. 호남평야 너른 들에서 생산된 풍성한 식자재를 아낌없이 한 그릇에 담아내 넉넉한 전라도 인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밥은 소 양지머리 고기를 푹 곤 물로 짓는다. 구수하면서 차지고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아 비벼도 식감이 살아 있다. 제철 나물은 애호박, 당근, 오이, 버섯,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무, 숙주, 미나리, 쑥갓 등 15가지 이상이 들어간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게 가늘게 썬 노란 황포묵이다. 황포묵은 녹두묵에 노란 치자물을 들인 것이다. 나물이 많은 전주비빔밥은 수저 대신 젓가락으로 비벼야 엉겨붙지 않는다. 볶음고추장, 조선간장, 참기름, 깨소금 등이 갖은 나물과 어우러져 알싸하면서 고소한 맛을 낸다. 키가 작고 아삭아삭한 맑은 콩나물국을 곁들여 먹는 게 특징이다. 전주에는 성미당, 가족회관, 고궁담, 한국관 등 내로라하는 비빔밥 집이 즐비하다. 주말이면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아야 하는 답사코스로 장사진을 이룬다.●진주, 일곱 가지 꽃처럼 다채로운 고명 얹어 경남 진주비빔밥은 비빔밥의 다양한 고명 모양이 일곱 가지 색깔의 꽃처럼 화려하다고 하여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 부른다. 나물을 무칠 때 손가락에서 뽀얀 물이 나올 때까지 오래 무치고 선지로 끓인 보탕국을 함께 올린다.●안동, 제사 음식과 깨소금 한데 섞여 고소해 안동비빔밥은 헛제삿밥으로 불린다. 영남지역 유생들이 주로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사를 지내고 나온 나물, 전, 탕 등을 한데 섞어서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다. 제사음식을 만들 때처럼 파, 마늘,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무친다. 고추장 대신 간장, 깨소금,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 말린 해삼, 문어, 다시마, 무 등을 잘게 썰어 넣고 맑게 끓인 장국을 곁들여 먹는다.●통영, 미역·톳 등 해조류 내음에 입맛 솔솔 통영비빔밥은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인 만큼 바다의 향을 담았다. 밥 위에 생미역과 톳나물, 방풍나물 등 10여 가지를 얹어 비빈다. 조갯살을 넣어 만든 두부탕국이 입맛을 돋운다. 이 밖에도 거제멍게젓갈비빔밥, 밥 위에 나물과 조개 볶은 것을 얹어 겨자와 참기름으로 비벼 먹는 제주 지름밥, 함경도 닭비빔밥, 해주비빔밥 등이 전해 내려온다. 비빔밥은 세계화의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변신과 진화를 하고 있다. 전주시 지원을 받는 비빔밥세계화사업단은 샌드위치나 햄버거처럼 간편하게 들고 다니며 즐길 수 있는 테이크 아웃형 비빔밥을 개발했다. 나아가 기능성 비빔밥, 퓨전형 비빔밥, 맞춤형 비빔밥, 해외 현지용 비빔밥 등을 선보였다. 노인들을 위한 백세비빔밥, 비빔밥을 만두피로 감싼 오곡만두비빔밥, 빵 속에 비빔밥을 넣은 바게트 비빔밥, 성장에 도움을 주는 어린이용 비빔밥 등도 눈길을 끈다. 사회적기업이 비빔밥을 응용해 만든 ‘전주비빔빵’은 갈수록 인지도와 매출이 높아지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길, 골목골목 낭만을 거닐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길, 골목골목 낭만을 거닐다

    부침의 세월 겪은 전주성 풍남문 위용 형형색색 이국적 향기 품은 전동성당 비밀처럼 뻗어 있는 경기전 대나무숲 한복 맵시 부린 관광객 노니는 태조로 오독대 누각 아래 시원한 휴식은 덤전북 전주는 한 해 11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는 국내 최고의 여행지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서 안 가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도시지만, 방문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좋은 우리 옛것의 전통 위에 전주 토박이 문화가 세월따라 하나둘 쌓이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새것이 어우러지면서 지금의 전주를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구도심의 한옥마을부터 새 옷을 입은 팔복예술공장까지 전주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간을 천천히 걸었다. 전주 여행의 시작점은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보물 제308호)이다. 이곳에서 오목대까지 이어지는 550m가량의 큰길을 중심으로 한옥마을이 뻗어 있다. 전주는 전라도 전체뿐 아니라 제주도까지 관장하던 전라감영 소재지였다.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한 옛 전주를 둘러싼 성곽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출입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풍남문만 남아 옛 위상을 알려주듯 우뚝 서 있다. 풍남은 풍패의 남쪽이라는 뜻이다. 풍패는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으로 조선왕조도 자신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곳에 빗대 풍패지향으로 부르기도 했다. 국내의 많은 문화재들이 그렇듯 풍남문도 세월의 부침을 겪었다.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모두 파괴됐다가 영조 때 다시 지어졌다. 1767년 큰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재건했고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그때 붙었다. 세월이 지나며 다시 크게 훼손됐다가 40년 전 보수공사를 통해 제 모습을 찾았다. 서울의 숭례문처럼 주변을 에워싼 도로 가운데 섬처럼 덩그러니 남았지만 위용을 잃지 않은 모습에서 옛 전주성의 풍채를 상상해 본다.풍남문을 지나 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전주한옥마을만의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전동성당이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10년 뒤 신유박해 때도 전라도 천주교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숱하게 처형됐다. 윤지충·권상연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 프랑스 선교사 보두네 신부가 이곳에 교회 터를 마련했고 공사를 시작한 지 23년 만인 1931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완공됐다. 둥근 지붕 아래 오랜 세월이 묻은 회색 벽돌과 붉은 벽돌이 조화를 이루면서 한옥마을에서 가장 이색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소박한 내부에는 화려하기보단 단아한 느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빛이 은은하게 퍼진다.미사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전동성당은 금요일 밤이면 색다른 모습으로 치장한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한 미디어파사드 공연 ‘빛의 성당’이 오는 21일까지 7주간 열리고 있다. 천지창조, 순교자들의 숭고함, 평화의 메시지를 주제로 한 신비로운 빛의 마술이 성당 위에 흩뿌려진다. 전동성당 맞은편 경기전은 한옥마을의 중심 문화재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 경기전이다. 주변으로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아 2010년 지어진 어진박물관 등이 함께 있다. 경기전 한편의 작은 대나무숲은 놓치지 말아야 할 포토존이다. 잔바람에도 귓속말을 속삭이듯 바스스 떠는 대나무가 비밀처럼 난 문 위로 머리를 맞대고 뻗어 있다. 경기전을 빠져나와 한복을 차려 입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태조로를 따라 걷는다. 갖가지 길거리 음식이 즐비한 골목마다 한복을 차려 입은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서양 왕실의 드레스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마와 그 위에 금실, 레이스 등 화려한 장식을 덧댄 한복이 가장 많이 보인다.진짜 옛 멋을 잃고 상업화된 거리, 우리의 전통 한복과는 거리가 먼 국적 불명의 옷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전주한옥마을에서의 한때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것 그대로 소중한 추억이 된다. 1920년대 모던걸, 모던보이 스타일의 의상이나 1970년대 교복도 인기다. 어우동 차림으로 멋을 낸 중년의 친구들이 매순간을 사진에 담고, 어린 남학생들이 한복 치마를 입고 살포시 화장까지 한 얼굴로 유쾌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가장 한국적인 공간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전통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기보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 저마다의 소소한 축제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색을 입힌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섬세한 감수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볼 수 있는 최명희문학관을 둘러본다. 전통한지원과 부채박물관에서 전통문화를 살펴보고 작은 갤러리들에 하나씩 발걸음을 멈춘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오목대 가는 길에 이른다. 오독대는 평지인 한옥마을 동쪽 나지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누각이다.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마주한다. 오목대까지 오르면 더 멋진 경치가 나올 것 같지만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없는 것이 아쉽다. 다만 신발을 벗고 누각 위에 앉아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을 마주할 수 있어 좋다. 글 사진 전주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

    13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 등이 모내기하고 있다. 창덕궁관리소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개최한 이 행사는 조선시대 임금이 그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궁궐 안에 경작지를 조성해 농사를 실천한 친경례 의식의 의미를 되살린 것이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

    13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 등이 모내기하고 있다. 창덕궁관리소와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개최한 이 행사는 조선시대 임금이 그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궁궐 안에 경작지를 조성해 농사를 실천한 친경례 의식의 의미를 되살린 것이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조선시대 사신 방중 경로 따라… 한중 대학생 30여명 함께 걸어

    한국과 중국의 대학생들이 중국에서 조선시대 중국에 파견된 사신 일행인 사행단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는 답사에 나섰다. 한중 대학생 30여명 등은 10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 선양사범대에서 발대식을 갖고 3박 4일간의 ‘2019 연행로 길을 다시 걷다’ 답사 여정을 시작했다. 과거 조선과 중국 명나라·청나라 사신들은 약 6개월에 걸쳐 서울과 중국 베이징 사이 왕복 약 3000㎞를 오갔다. 이 행사는 양국 대학생 교류를 위한 것으로 2년 전에는 북중 접경 지역인 단둥에서 선양까지, 지난해에는 선양에서 산하이관까지 답사했다. 올해는 선양에서 베이징을 거쳐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유명한 허베이성 청더까지 버스로 이동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한중 문인 간 학술 교류의 장이었던 베이징 책방거리 유리창과 청더의 박지원기념지 등을 둘러본다. 또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장제(張傑) 랴오닝대 역사학과 교수가 ‘연행로의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의 한중 관계에 갖는 의미’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임병진 주선양 총영사는 “고된 여정에도 한중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지속적인 왕래를 이어 왔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출연작 ‘나랏말싸미’ 예고편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출연작 ‘나랏말싸미’ 예고편

    영화 ‘나랏말싸미’ 한글의 시작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가장 높은 곳의 왕 세종(송강호)과 조선시대 억불 정책으로 가장 낮은 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신미스님(박해일)의 한글 창제 시작이 담겼다. 왕인 세종에게 “굳이 왜 문자를 만들려 하십니까”라는 신미스님 물음과 “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내세우는 세종의 담대한 표정이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 이면을 궁금케 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스님이 어떻게 가장 높은 곳의 왕을 만나 한글 창제 과정에 기여할 수 있었는지, 또 역사에도 기록되지 못한 숨은 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예고한다. 세종과 신미로 분해 신분과 종교를 뛰어넘어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뜻을 함께한 두 사람의 협업과 우정을 연기한 송강호와 박해일의 호흡이 눈길을 모은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7월 24일 개봉 예정이다.영상부 seoultv@seoul.co.kr
  • ‘조선생존기’ 본격 타임슬립..송원석X박세완, 기이한 첫 만남

    ‘조선생존기’ 본격 타임슬립..송원석X박세완, 기이한 첫 만남

    “어느 고을 처자시오?” vs “…무슨 영화 찍는 거예요?”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조선생존기’의 ‘꽃돌이 임꺽정’ 송원석과 ‘2019년 천재 소녀’ 박세완의 기이한 첫 만남 현장이 포착됐다. 송원석과 박세완은 TV CHOSUN ‘조선생존기’(연출 장용우, 극본 박민우, 제작 화이브라더스코리아, 롯데컬처웍스, 하이그라운드)에서 각각 천출 신분이지만 ‘꽃미모’와 영특함을 감출 수 없는 임꺽정과 한 번 본 것을 사진처럼 또렷이 기억하는 천재 소녀 한슬기 역을 맡았다. 특히 지난 8일 첫 방송한 ‘조선생존기’에서 한슬기(박세완)는 고등학생과 시비가 붙은 택배기사 오빠 한정록(강지환)의 보호자로 등판, 예의 없는 고등학생에게 거친 뺨 세례와 ‘공중 양발 킥’을 날리는 모습으로 첫 회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9일(오늘) 방송되는 ‘조선생존기’ 2회에서는 송원석-박세완이 시대를 초월한 첫 만남을 가지며 본격적인 ‘타임슬립 전개’의 서막을 알린다. 조선시대 풀숲으로 착륙한 한슬기가 눈을 뜨자마자 거대한 덩치의 임꺽정(송원석)과 마주하게 되는 것. 낯선 복장의 한슬기를 보자마자 ‘심쿵’한 임꺽정은 “어느 고을 처자시오?”라며 한슬기에게 반가움을 표현하지만, 상황 파악이 덜 된 한슬기는 “무슨 영화 찍는 거예요?”라고 되물어 임꺽정을 혼란하게 한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리 없는 두 사람은 소득 없는 대화 끝에 “실성한 광녀”와 “연예인이면 다야?” 등의 설전을 벌이는 터. 그러나 직후 임꺽정이 근처 도적패의 움직임을 감지한 후, 한슬기의 입을 틀어막은 채 함께 둔덕 아래로 숨게 되면서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한슬기와 얼굴을 밀착해 ‘꽃미모’를 발산하는 임꺽정과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한슬기의 모습이 마치 영화 ‘늑대의 유혹’ 속 명장면을 연상시키며, 흥미진진한 ‘슬꺽 커플’ 서사의 시작을 알린다. ‘조선생존기’ 제작사 화이브라더스코리아 측은 “시작부터 강렬한 스킨십으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된 임꺽정과 한슬기는 서로에게 이끌리는 호감으로 인해 500년이라는 시대 장벽을 손쉽게 허물며 좌충우돌 로맨스를 이끌어나가게 된다”며 “’조선생존기’의 든든한 한 축을 담당할 ‘슬꺽 커플’의 풋풋한 첫사랑 케미스트리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을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8일 방송한 ‘조선생존기’ 첫 회에서는 2012년 국가대표 양궁 에이스로 활약하던 한정록이 런던올림픽 결승전 직전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후, 마지막 기회를 허망하게 날리게 되며 순식간에 추락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나아가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이혜진(경수진)과 헤어진 뒤, 택배기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한정록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하는 극적 전개를 예고하며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조선생존기’ 2회는 9일(오늘) 밤 10시 50분 TV CHOSUN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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