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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박·절제 미학, 성인의 도 실천…‘처사’ 기풍 오롯이[이동구의 서원 산책]

    소박·절제 미학, 성인의 도 실천…‘처사’ 기풍 오롯이[이동구의 서원 산책]

    “한 그루 늙은 소나무 푸르게 길가에 서 있어(一老蒼髥任路塵)/ 괴로이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勞勞送往來賓)/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歲寒與汝同心事)/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느냐(經過人中見幾人)” 대구 달성군 현풍면 낙동강변을 따라 올라간 대니산의 한쪽 고갯마루인 다람재에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노방송(路傍松· 길가의 소나무) 시비가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서 있다.김굉필은 한국 유교의 성현으로 동방오현(東方五賢: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의 맏형 격이다. 흙먼지를 쓴 채 추운 겨울에도 변치 않고 길가에 서 있는 독야청청 한 그루 소나무를 묘사한 시이다. 물론 김굉필의 삶과 품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시로 알려져 가치를 더한다. 이 시비 왼편에 자치단체가 축조한 전망대에 올라 낙동강 쪽을 향해 시선을 두면 왼쪽 발아래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서원이 바로 김굉필의 정신세계를 추앙, 계승하고 있는 도동서원(道東書院)이다.●수현(首賢) 서원의 자긍심을 잇다 도동서원의 첫인상은 절제된 아름다움과 소박함이다. 다른 서원에서 볼 수 있는 하마비나 홍살문도 없다. 서원 건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강학 공간인 중정당(中正堂)에는 그 흔한 단청도 없다. 그저 수백 년 세월을 간직한 나무의 결과 순백의 한지만이 서원의 창학 이념과 정신세계를 웅변하고 있다. 절제의 미학을 실증이라도 하는 듯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강학당인 중정당의 전면 6개 기둥에 반전이 숨어 있었다. 백색의 한지 한 폭이 기둥 윗부분을 휘감고 있다. 100여m 떨어진 낙동강에서도 눈에 띌 만한 선명함이 있다. 바로 도동서원이 동방오현 중 수현을 모시고 있는 서원임을 표시하는 ‘상지’(上紙)이다. 현 도동서원의 운영과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김병판 유사는 “낙동강을 오가는 배들조차 서원의 상지가 보이면 돛을 접고 예를 갖추며 뱃길마저 공손히 재촉했다”고 했다. 후학들과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는 한훤당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일화다.●아름다움의 절정 보물 흙담장 김굉필을 제향하는 서원은 1568년(선조 1)에 현풍현 비슬산 기슭 쌍계동에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됐다. 정유재란으로 불타자 1604년 현풍현 서쪽 오설면 대니산 김굉필의 묘소 아래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보로동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중건됐다. 다시 1607년 선조 40년에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이건해 사액을 받았다.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적 공간 구성을 가장 우수하게 표현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가장 급경사지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위계적으로 분절된 서원 공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냈다. 수월루로 대표되는 유식 공간, 강당과 동서재로 구성된 강학 공간, 사당이 자리한 제향 공간이 전저후고(前底後高)의 지형 위에 18개의 석단으로 계층을 구분해 터를 잡았다. 도동서원의 첫 관문은 환주문(喚主門)이다. ‘마음의 주인을 부른다’는 의미로 다른 서원의 외삼문과 달리 강당 담 사이 공간을 튼 좁고 낮은 사모지붕의 문이다. 갓 쓴 선비가 고개를 숙여야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문이 낮고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좁게 지어진 작은 문이다. 선비의 겸손한 마음과 예를 갖춘 자세로 서원에 임하도록 설계된 문이다. 간결함과 엄숙정제의 예는 환주문을 비롯해 도동서원 건축물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서원 최상단에 위치한 사당 또한 담백함의 결정체이다. 여느 사당과 달리 벽면이나 기둥, 천장 등에 족자나 현판 하나 없다. 특이하게도 좌우 벽면에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그림 2점이 400여년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왼쪽 벽에는 달이 뜬 강변 풍경과 작은 배를 그리고 강심월일주(江心月一舟)라는 표기가 있다. 오른쪽 그림은 가지를 흐드러지게 펼친 큰 소나무와 보름달을 그리고 설로장송(雪露長松)이라 써 넣었다. 김굉필의 천인합일과 의리 정신을 나타낸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돈희 도동서원 운영위원은 “그림의 작가를 알 수는 없지만 400년 넘게 보관되고 있다”며 “국가 지정 보물 또는 국보로서의 가치를 따져 볼 만하다”고 말했다. 도동서원이 지닌 아름다움의 절정은 담장에 있다. 진흙에 다섯 단의 기와를 박은 담장은 하늘과 땅, 사람, 음양오행을 상징한다. 사당 왼쪽 담장에는 감(坎)이라는 구멍이 뚫려 있다. 세사에 쓴 제문을 태우는 시설로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다. 이런 독특한 담장은 중정당, 사당과 함께 1963년 보물 제350호로 지정됐다.●도학 정통 계승에 적극적인 지원 있어야 김굉필은 후대의 선비들에게 ‘조선시대 처사(處士)’의 전범을 보여 준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흔히 처사는 별 관직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통칭한다. 하지만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처사는 성인의 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함축한 가장 영예로운 명칭이었다고 한다. 김굉필은 평생 ‘소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소학동자’(小學童子)라 부르는 이유이다. ‘소학’은 일상생활 속에서 유교적 윤리도덕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 책이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죽음을 맞는 자리조차 ‘소학’의 가르침을 외고 임했다. 퇴계 이황은 김굉필을 ‘근세도학지종’이라 하여 조선 유학의 정통을 계승했다고 평가했다. 올 들어 문화재청, 대구시, 달성군 등은 도동서원과 김굉필 관련 각종 관광문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김굉필의 정신세계를 전승하고자 함이다. 서원 인근에 오현역사관, 문화체험 마을 조성 등이 추진되고 있다. 도동서원 측은 한훤당의 정신세계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향사체험도 구상 중이다. 6월부터는 매주 월~금요일 한국인성예절원과 함께 선비체험, 소학강좌, 서당체험, 다도 및 예절 교육 등을 펼치고 있다. 올 들어서만 700여명이 서원을 통해 전통 예절교육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중단된 일반인을 위한 ‘유교아카데미’도 곧 재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도동서원은 다른 서원들과 달리 지역의 주요 8개 문중에서 십시일반하는 재원으로 그동안 운영관리해 온 만큼 빈약한 재정에 힘겨워하고 있다. 자라나는 후세를 위한 인성교육이나 성인들의 전통 문화예절 교육을 위해서는 자치단체나 문화재청, 정부 지원 등이 조금 더 확대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수영 전임 유사는 “서원 운영비조차 향사 참석자들로부터 갹출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문화재청이나 자치단체의 각종 지원이 신속하고도 폭넓게 이뤄지길 바란다”면서 “현재 너무 더디게 진행되는 서원 수리 공사로 인해 학생들의 참여 프로그램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시섭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운영본부장은 “서원 문화재의 원형 보존을 위해 보수작업은 치밀하고 신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서 “서원 운영에 불편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 서울신문·(재)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 조선시대 제주도는 어떤 모습이었나?

    조선시대 제주도는 어떤 모습이었나?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이 박물관 역사자료총서 제6집 ‘남환박물(南宦博物)’ 완역본을 발간했다고 16일 밝혔다. ‘남환박물’은 조선시대 제주목사 이형상이 쓴 제주도 지방지(地方誌)로, 1700년대 제주의 자연·역사·풍속 등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어 ‘탐라순력도’와 함께 제주 역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병와 이형상(甁窩 李衡祥, 1653~1733)은 효령대군의 10대손으로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해서부터 15개월간 머물렀다. 제주 목사 재임 당시에는 제주 지역에 만연하던 미신을 타파하고 유학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완역본은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한 ‘남환박물’ 번역본과 원문을 같이 수록해 비교 연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이형상 종가 소장의 ‘남환박물’에는 없는 ‘황복원대가(荒服願戴歌)’가 박물관본에는 수록돼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번역은 김새미오, 이진영 선생이 공역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인 김익수 선생이 감수했다. ‘남환박물’은 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노정래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민속자연사박물관은 그동안 이형상 간찰 및 ‘탐라록’, ‘탐라장계초’ 등 이형상의 여러 저서를 꾸준히 번역·발간해왔다”며 “이번에 발간된 ‘남환박물’도 제주 역사연구의 사료로 많이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손목이 바스러지도록… 바스러진 종이에 숨은 ‘역사의 조각’ 맞추죠[공무원 어디까지 아니]

    손목이 바스러지도록… 바스러진 종이에 숨은 ‘역사의 조각’ 맞추죠[공무원 어디까지 아니]

    찢어지고 그을리고 물에 젖은 종이 기록물이라도 감쪽같이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내는 공무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라기록관이다. 국가기록원 소속기관인 나라기록관은 2007년 최첨단 기록물 보존 시설을 갖춰 경기 성남시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만난 나미선 복원관리과 학예연구관은 “전통 한지라는 세계 최고 재료와 오랜 연구개발로 한국의 종이 기록물 복원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문화재보존학을 전공하고 2005년 국가기록원에 들어와 17년째 ‘종이 기록물 복원’이라는 한길을 걷는 나 연구관을 인사혁신처의 도움을 받아 지난 13일 만났다. -훼손된 종이 기록물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하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기록물은 90%가량 종이 기록물이다. 훼손된 주요 기록물을 선별해 원래 형태로 되돌리는 게 우리 일이다. 없어진 부분은 메우고, 찢어진 부분은 붙이고, 약한 부분은 덧댄다. 훼손된 기록물은 환자, 복원실은 병원, 복원 작업은 외과 수술로 비유하곤 한다. 복원 작업은 훼손이 얼마나 됐는지 조사해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고 복원 처리 방법을 결정하는 게 첫 단계다. 기록물을 해체한 뒤 찢어지거나 없어진 부분을 한지로 보강해 건조한다. 복원을 마치면 사진촬영을 하고 처리 과정을 기록한 다음 중성 보존상자에 담아 서고에 보관한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종이 기록물도 적지 않을 텐데. “전통 한지로 돼 있는 조선시대 이전 기록물은 상태가 매우 좋은데, 일제강점기 이후 근현대 기록물은 훼손이 심각한 편이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건축도면은 말 그대로 종이가 갈기갈기 바스러져서 종잇조각을 하나하나 꿰맞춰야 한다. 안내 책자 없이 레고 블록 맞추는 것에 비유하는 분도 있는데, 사실 그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숙련된 전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종일 종잇조각을 들여다봐야 하는 일이다 보니 갑갑해서 일하다 작업도구를 집어던지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지금까지 복원한 종이 기록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조선총독부 건축도면이 아닐까 싶다. 10년 동안 작업해 2만 7831장을 복원했고 올해 모든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디지털화와 스캐닝 작업도 거의 마무리 단계다. 그중에는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축물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나 경복궁 등 중요한 건축 도면도 있다. 처음에는 펼쳐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고 정확한 수량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걸 생각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 -2년 전에는 한국전쟁 당시 작전지도와 명령서를 복원해 공개하기도 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주요 전투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401건을 복원했다. 5년 6개월이나 걸렸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춘천 전투 상황을 보여 주는 ‘국군 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32호’를 비롯해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백마고지 전투 상황을 담은 ‘국군 제9사단 작전명령 제85호~90호’ 등을 포함하고 있다. 복원 소식을 발표한 뒤 제9사단 소속 한 소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마고지 전시관 개관 행사에 작전지도와 명령서를 전시하고 싶다며 도와 달라고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해 주지 않으면 탱크를 몰고 오겠다’고 하더라. 결국 협박이 통했다. 복제품을 인계하는 날 소위가 탱크 대신 건빵 한 상자를 들고 왔다. 군용 건빵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봤다.”-조선시대 기록물 중에는 문화재도 적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대전에서 발굴한 나신걸과 부인 신창 맹씨 무덤에서 나온 한글 편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그냥 종이 뭉치처럼 보였는데 그 안에서 이빨 두 개와 한글 편지 두 통이 나왔다. 1500년대 초에 쓴 것들이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당시 나신걸이 함경도 경성 군관으로 부임하면서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얼굴도 못 보고 가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분(화장품)과 바늘을 보낸다는 애틋한 내용을 정갈한 존댓말로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복원실 곳곳에 아령이 있는 게 눈에 띈다. 손목 관절을 많이 쓰니까 틈틈이 운동하는 건가. “그렇게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사실은 운동이 아니라 종이를 눌러서 고정하는 데 쓴다. 현장에서 시작된 업무 혁신이라고 해야 할까. 종이 기록물을 고정하기 위해 납주머니를 많이 쓰는데 좀더 무거운 게 필요했다. 뭐가 좋을까 생각하며 이것저것 써 보다가 딱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령을 쓰게 됐다.”-복원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은데. “수술을 세 번 했다. 2018년에 복원 작업을 하는데 손목에서 ‘뚝’ 하며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일을 계속했는데 손이 움직이질 않아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검사를 해도 문제를 찾질 못해서 압박붕대를 하고 계속 일했다. 1년 뒤 다시 손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 보니 연골 파열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연골 수술을 앞두고서야 인대가 끊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끊어진 인대를 붙이는 수술을 한 뒤 연골을 봉합하고, 척골도 3㎜ 잘라 냈다.” -복원해야 할 기록물은 많고 사람은 적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국가기록원의 복원 전문 인력 정원이 14명에 불과하다. 나라기록관에는 연구관 1명, 연구사 3명, 공무직 5명이 정원인데 실제로는 육아휴직이 2명이다. 기록물 복원은 숙련도가 중요한데 일이 힘들어서 떠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1년에 복원하는 종이 기록물이 어느 정도 되나. “나라기록관에서 연간 복원하는 종이 기록물이 1만 2000장 정도인데 외부 요청자료와 디지털 복제, 복원을 빼면 순수 복원은 7000~8000장 정도 된다. 국가기록원 소장자료가 1억건이고, 그중에서 복원이 필요한 주요 자료를 추린 게 41만장이니까 현재 인력으로 소장자료를 모두 복원하려면 최소 60년이 걸린다. 거기다 태풍이나 화재로 훼손된 자료를 복원해 달라는 긴급 요청도 계속 들어온다. 여유 인력이 없다 보니 해외 협조 요청도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지난 4월 모로코를 방문해 기록물 복원 시범을 하고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했는데, 우리 담당자들은 새벽까지 실습용 한지와 물품을 점검한 뒤 집에 가서 짐만 챙기고 나와 출국해야 했다.”-외부 기관에서 복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기록물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국가기록원 소장 기록물뿐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민간에서 소장한 중요 기록물 보존도 대행한다. 2006년부터 시작한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서비스’를 통해 지금까지 55개 기관 6877장을 지원했다. 올해와 내년 지원 대상이 신청한 분량만 해도 37개 기관 2만 944장이나 된다. 내부 검토를 거쳐 우선순위에 따라 11개 기관 1228장을 선정했다. 신청받은 기록물 가운데 6%가 채 안 된다.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곳이 없고 시간이 갈수록 소중한 기록물을 복원하기가 더 힘들다는 것 때문에 최대한 서두르고 싶지만 현재 국가기록원에 있는 인력으론 솔직히 그 이상은 무리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들었다. “무엇보다도 한지라는 귀한 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전 세계 종이 기록물 복원용 종이로 일본에서 생산한 화지를 최고로 쳤는데 최근엔 한지를 찾는 외국 기관이 많이 늘었다. 한지에 쓴 500년 넘은 종이 기록물을 처음 본 외국인들은 종이 상태가 이렇게 좋은 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복원 기술도 한몫했다. 천연 재료와 전통 방법을 활용한 원형복원 기술과 함께 정교한 업무 체계와 기초연구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 [자치광장] 우이령길, 이제 국민 품으로 돌려주자/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자치광장] 우이령길, 이제 국민 품으로 돌려주자/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

    지난달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북악산 탐방로의 마지막 빗장도 함께 열렸다. 북악산은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인 1·21사태 이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가 2006년부터 차츰 민간에 개방됐다. 2020년에는 북측 탐방로가, 올해는 남측 탐방로에 더해 청와대에서 이어지는 등산로까지 개방됨으로써 북악산은 54년 만에야 국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게 됐다. 이처럼 오롯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탐방로가 강북구에도 존재한다. 바로 북한산 둘레길 21구간인 우이령길이다. 우이령길은 강북구 우이동과 양주시 교현리를 잇는 6.8㎞의 옛길로, 조선시대부터 수백년간 경기북부와 한양을 이어 주는 지름길이었다. 1968년 1·21사태 때 북한 무장공비들의 침투 경로로 사용돼 북악산과 같은 이유로 통행이 제한됐다가 41년 만인 2009년 7월 개방됐다. 하지만 우이령길은 북악산과 달리 국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이곳을 탐방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 최대 수용인원은 1190명으로, 우이동과 교현리에서 595명씩만 예약이 가능하다. 입산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제한된다. 현재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유일하게 탐방객 수와 이용시간을 제한받고 있다. 우이령길이 하루빨리 상시 개방되기를 바란다. 북악산과 비교해 우이령길만 탐방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고 당위성도 없다. 국립공원공단이 지난해 7월부터 예약인원을 확대하고 탐방시간을 일부 늘렸지만,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점은 탐방객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 준다. 우이령길을 완전 개방할 경우 무분별한 산행으로 자연이 훼손될 거란 우려도 일부 있지만, 오히려 탐방객들이 국립공원의 자연환경을 더욱 잘 보전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성숙한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을 믿기 때문이다. 우이령길이 완전히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건 비단 강북구민만이 아니다. 서울시, 경기 양주시, 각종 민간단체 등도 우이령길의 전면개방을 바라고 있다. 이곳이 상시 개방되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일대를 찾을 것이며, 수도권 경기북부 일대의 지역경제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이에 구는 ‘우이령길 상시개방 범구민 서명운동’을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달 31일까지 강북구민을 포함한 4만 9487명의 뜻을 모았다. 구는 시민들의 뜨거운 염원을 곧 환경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시민들이 우이령길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는 가을이다. 짙게 물든 단풍이 우이령길을 가득 채울 때다. 올가을이 오기 전에 우이령길이 완전 개방돼 누구나 부담없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즐기길 바란다.
  • “계파 세몰이” “순수한 모임” 골병든 정치[INTO]

    “계파 세몰이” “순수한 모임” 골병든 정치[INTO]

    12일 강원 고성에서 더불어민주당 내 의원 정책연구 모임 ‘더좋은미래’(더미래)가 워크숍을 열었다. 회원인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참석했다. 그런데 우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계파 갈등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결과적으로 오전엔 계파 갈등을 경고하고 오후엔 자신이 속한 계파 모임에 참석한 셈이다. 우 위원장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이기도 하다. 민주당에는 우 위원장처럼 여러 모임에 중복 가입된 의원이 꽤 있다.  민주당에 비해 모임 숫자는 적지만 국민의힘도 계파 성격의 모임이 횡행했다. 지난 주말 친윤(친윤석열) 모임 ‘민들레’ 출범을 두고 갈등을 겪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선진국민연대’ 소속이었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외곽조직으로 출범한 선진국민연대에서 권 원내대표는 선진국민강원연대 대표를, 장 의원은 교육문화위원장을 맡았다. 그때는 친이(친이명박)였고 지금은 친윤(친윤석열)인 두 의원이 갈등한 것은 그만큼 계파 모임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선진국민연대는 소속 인사들이 승승장구하고, 각종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자 결국 해체했다.  민주당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세균계 ‘광화문 포럼’이 “계파정치를 자발적으로 해체하자”며 가장 먼저 해산했다. 이낙연계 이병훈 의원도 “계파로 오해될 수 있는 의원 친목 모임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세균계 이원욱 의원은 지난 11일 ‘처럼회’ 해체를 주장하며 다른 계파를 저격했다. 그러자 처럼회 소속이자 친이재명(친명)계 김남국 의원은 “지금까지 계파정치로 천수를 누렸던 분들이 느닷없이 계파를 해체 선언하느냐”고 힐난했다. 친명계 입장에선 이들의 계파 해체 주장이 결국 이재명 의원의 당권 도전을 막기 위한 정략적 술수라고 보는 셈이다. 한국 계파정치의 시작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문화를 친이(친이명박)의 ‘함께 내일로‘, 친박(친박근혜)의 ‘국회선진사회연구포럼’, 친문(친문재인)의 ‘민주주의 4.0‘이 답습했다. ‘처럼회’도 대선 경선에서 대부분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이후 친명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민주당에서는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국회의원이 들어올 때마다 회원 영입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민평련과 더좋은미래는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중복으로 가입한 의원이 꽤 있다. 더미래는 20대 국회에서 우원식, 우상호 등 원내 지도부를 연달아 배출하며 관심을 모았다.  보수 정당의 계파는 정권 초기 위력을 떨치다가 정권 후반으로 가면 해체하는 수순을 밟았다. 친이계의 선진국민연대는 실세 단체라는 눈총을 받고 해체했지만 정권 말까지 위력을 떨쳤고, 또 다른 친이계 ‘함께 내일로’는 이재오 당시 특임장관이 재보궐 선거 지침을 전달하며 논란이 일자 해체했다. 친박계의 국회선진사회연구포럼도 탈계파와 정치쇄신 등 새로운 흐름에 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자진 해산했다.  정당 내 계파모임은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다 붙여도 민주주의 정당정치에 역행하는 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당 자체가 이념과 노선을 함께하는 정치조직인데, 그 안에서 다시 계파를 나누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같은 서구 정치선진국의 정당에서는 한국과 같은 계파 모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솔직히 말해 한국 정당에 있는 무슨무슨 모임들은 결국 총선 공천과 대권 등을 겨냥한 세몰이 정치의 산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며 “한국 경제는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정치는 아직 유치한 유아기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한국의 정당들에 모임이 난립하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관측도 있다. 일본 자민당만 하더라도 수많은 파벌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좀더 깊숙이 들어가서 조선시대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등으로 끝없이 분파한 DNA가 이어져 내려온 것 아니냐는 자조적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에서 민들레 출범을 추진한 쪽은 이것을 공부 모임이라고 강조했는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부를 할 거면 당의 모든 의원에게 문호를 개방해 연사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들레 모임이 처음부터 의원 전원에게 공문을 보냈다면 괜한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속셈이야 어떻든 민들레 사태를 계기로 여야 모두에서 ‘계파 해체’ 목소리가 나오는 점은 고무적이다. 차기 당권 주자로 간주되는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낙연계 모임, 정세균계 모임이 해산했다니 여타의 모임들도 그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아름다운 얘기다. 다만 남 얘기하듯 하기보다는 이 의원 스스로 더미래 등 자신이 속한 모임 정치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뒤 제언을 해야 더 진정성 있게 보일 것이다.
  • “계파 세몰이”, “순수한 모임” 골병든 정치[INTO]

    “계파 세몰이”, “순수한 모임” 골병든 정치[INTO]

    12일 강원 고성에서 더불어민주당 내 의원 정책연구 모임 ‘더좋은미래’(더미래)가 워크숍을 열었다. 회원인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참석했다. 그런데 우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계파 갈등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결과적으로 오전엔 계파 갈등을 경고하고 오후엔 자신이 속한 계파 모임에 참석한 셈이다. 우 위원장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이기도 하다. 민주당에는 우 위원장처럼 여러 모임에 중복 가입된 의원이 꽤 있다.  민주당에 비해 모임 숫자는 적지만 국민의힘도 계파 성격의 모임이 횡행했다. 지난 주말 친윤(친윤석열) 모임 ‘민들레’ 출범을 두고 갈등을 겪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선진국민연대’ 소속이었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외곽조직으로 출범한 선진국민연대에서 권 원내대표는 선진국민강원연대 대표를, 장 의원은 교육문화위원장을 맡았다. 그때는 친이(친이명박)였고 지금은 친윤(친윤석열)인 두 의원이 갈등한 것은 그만큼 계파 모임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선진국민연대는 소속 인사들이 승승장구하고, 각종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자 결국 해체했다.  민주당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정세균계 ‘광화문 포럼’이 “계파정치를 자발적으로 해체하자”며 가장 먼저 해산했다. 이낙연계 이병훈 의원도 “계파로 오해될 수 있는 의원 친목 모임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세균계 이원욱 의원은 지난 11일 ‘처럼회’ 해체를 주장하며 다른 계파를 저격했다. 그러자 처럼회 소속이자 친이재명(친명)계 김남국 의원은 “지금까지 계파정치로 천수를 누렸던 분들이 느닷없이 계파를 해체 선언하느냐”고 힐난했다. 친명계 입장에선 이들의 계파 해체 주장이 결국 이재명 의원의 당권 도전을 막기 위한 정략적 술수라고 보는 셈이다. 한국 계파정치의 시작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문화를 친이(친이명박)의 ‘함께 내일로‘, 친박(친박근혜)의 ‘국회선진사회연구포럼’, 친문(친문재인)의 ‘민주주의 4.0‘이 답습했다. ‘처럼회’도 대선 경선에서 대부분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이후 친명 조직으로 평가받는다. 민주당에서는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국회의원이 들어올 때마다 회원 영입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민평련과 더좋은미래는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중복으로 가입한 의원이 꽤 있다. 더미래는 20대 국회에서 우원식, 우상호 등 원내 지도부를 연달아 배출하며 관심을 모았다.  보수 정당의 계파는 정권 초기 위력을 떨치다가 정권 후반으로 가면 해체하는 수순을 밟았다. 친이계의 선진국민연대는 실세 단체라는 눈총을 받고 해체했지만 정권 말까지 위력을 떨쳤고, 또 다른 친이계 ‘함께 내일로’는 이재오 당시 특임장관이 재보궐 선거 지침을 전달하며 논란이 일자 해체했다. 친박계의 국회선진사회연구포럼도 탈계파와 정치쇄신 등 새로운 흐름에 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자진 해산했다.  정당 내 계파모임은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다 붙여도 민주주의 정당정치에 역행하는 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당 자체가 이념과 노선을 함께하는 정치조직인데, 그 안에서 다시 계파를 나누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같은 서구 정치선진국의 정당에서는 한국과 같은 계파 모임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솔직히 말해 한국 정당에 있는 무슨무슨 모임들은 결국 총선 공천과 대권 등을 겨냥한 세몰이 정치의 산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며 “한국 경제는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정치는 아직 유치한 유아기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한국의 정당들에 모임이 난립하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관측도 있다. 일본 자민당만 하더라도 수많은 파벌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좀더 깊숙이 들어가서 조선시대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 등으로 끝없이 분파한 DNA가 이어져 내려온 것 아니냐는 자조적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에서 민들레 출범을 추진한 쪽은 이것을 공부 모임이라고 강조했는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부를 할 거면 당의 모든 의원에게 문호를 개방해 연사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들레 모임이 처음부터 의원 전원에게 공문을 보냈다면 괜한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속셈이야 어떻든 민들레 사태를 계기로 여야 모두에서 ‘계파 해체’ 목소리가 나오는 점은 고무적이다. 차기 당권 주자로 간주되는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낙연계 모임, 정세균계 모임이 해산했다니 여타의 모임들도 그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아름다운 얘기다. 다만 남 얘기하듯 하기보다는 이 의원 스스로 더미래 등 자신이 속한 모임 정치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뒤 제언을 해야 더 진정성 있게 보일 것이다.
  • [서울광장] 김굉필의 뒤만 좇아도…/이동구 편집국 에디터

    [서울광장] 김굉필의 뒤만 좇아도…/이동구 편집국 에디터

    교수 사회를 지켜보기가 착잡하다. 어쩌다 교육부 장관직을 수행할 만한 인물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이 됐는가.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 재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후보자에 앞서 지명됐던 김인철 전 후보자는 배우자와 자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 특혜 의혹, 교비 횡령, 논문 표절 의혹 등으로 자진해서 사퇴했다. 만약 박 후보자마저 낙마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2명의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고도 임명에 실패하는 오점을 남기게 된다. 지난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교수 출신의 장관 후보들이 왜 이리 각종 의혹에 휩싸이는 것인지. 애초부터 후보자 선정이 잘못된 것인지, 교수 사회의 도덕성과 자질 문제가 도를 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박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들이 비록 20여년 전의 일이라고 하나 모른 채 넘길 사안은 아니다. 면허 취소 기준보다 무려 2.5배나 높은 수준의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데다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자청해 선고 유예를 받았다. 말 못할 사연이나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면 속 시원히 밝히고 이해를 구할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0~2007년 동일한 논문이나 보고서를 여러 학술대회나 학회지에 중복 게재하는 방식으로 연구 성과를 부풀리고, 논문을 표절한 의혹도 있다. 이런 의혹들은 하루라도 빨리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려 후보자가 소명하고 잘잘못을 가려야 할 일이지만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여야 힘겨루기로 이뤄지지 않아 의혹만 부풀려지고 있다. 교육계 수장은 학문적 업적과 함께 행정능력과 교육철학 등을 겸비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교육부 장관이 몇이나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각종 의혹이 불거진 장관 후보자들과 인맥으로 장관 자리에 이름 한번 올리고 적당히 떠나는 정치인들만 수두룩했다. 대학 교정에 아직 총장이나 교수에 대한 권위와 명예가 남아 있는지조차 궁금해진다. 유교 사회에서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추앙받는 인물 중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은 퇴계 이황이 “조선시대 처사의 전범을 보여 준 인물”이라며 존경했다. 이유는 성인의 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김굉필은 나이 30세가 되도록 오직 ‘소학’에만 몰두해 ‘소학동자’라 불린다. 소학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유교적 윤리도덕을 실천할 것을 강조한 책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학문적 깊이를 더해 가는 심오한 학문을 추구했다기보다 행실을 더 중요시한 삶이었던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우리 국민의 정서에는 여전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불행히도 최근 몇 년 새 드러난 대학 내 각종 비위와 교수들의 부적절한 행위들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떨어뜨리고 교육계에 대한 불신감을 깊게 했다. 특히 대학이 도덕 불감증에 만연돼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대학교수와 교직원 채용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사례를 비롯해 연구비 횡령, 제자 인건비 착복, 제자 성희롱과 인격 모독, 논문 표절 등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현재도 법정 다툼이 진행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부정 의혹을 둘러싼 정경심 교수의 행위 등에 국민들은 허탈해한다. 대학 교정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이 먼저 무너져 내린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 사회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인사 검증에 오른 인사들은 어찌 부적절한 삶의 흔적이 그리 많은 걸까. 그렇다고 세계적인 논문이나 학문적 성과를 내놓은 인물들도 아닌데…. 후보자 선정의 문제점도 있겠지만 교수·학생을 비롯해 대학 교정이 도덕성과 인성 교육에 소홀했던 탓이 더 큰 게 아닌가. 교수 사회를 비롯한 교육계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 성동, 옛 ‘두모포’서 600년 전 대마도 출정 재현

    성동, 옛 ‘두모포’서 600년 전 대마도 출정 재현

    조선시대 군사 출정식이 열렸던 서울 성동구 옥수역 한강공원에서 오는 18일 ‘두모포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2019년 두모포 출정 600주년을 기념해 첫 페스티벌이 열린 지 3년 만이다. 8일 성동구에 따르면 두모포라고 불리던 옥수역 한강공원은 세종 원년 대마도 정벌을 이끌었던 군사 출정식이 열렸던 곳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화합과 힐링을 향해 출정하라’라는 주제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뮤직 드라마 공연이 펼쳐진다. 각종 공예품을 판매하는 플리마켓도 운영된다. 활과 화포 쏘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아울러 600여년 전 군사 출정식을 재연한 ‘취타대 출정퍼레이드’도 볼거리다. 구는 사물놀이와 재담꾼의 아니리(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중간 가락을 붙이지 않고 얘기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를 통해 두모포 출정식을 재구성한다. 10일부터는 ‘여덟 장군’을 형상화한 풍선 아트를 전시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과거 상왕 태종과 세종의 굳건한 신념이 승리의 역사를 일궈 냈던 것처럼 이번 페스티벌이 코로나19 치유와 힐링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왕도 맘껏 못 먹던 ‘타락죽’… 궁의 맛이 열린다

    왕도 맘껏 못 먹던 ‘타락죽’… 궁의 맛이 열린다

    조선시대에 우유는 귀한 음식이었다. 우유와 쌀가루를 섞어 만든 보양식 ‘타락죽’은 임금도 자주 먹을 수 없었을 정도다. 중전마마를 위해 귀한 타락죽을 덥석 구해오겠다고 나선 수라간 상궁은 어쩔 줄 모르고, 대령숙수(남자 조리사)와 수라간 최고 책임자인 상선 영감은 이런 상궁을 둘러싸고 유쾌한 대화를 펼친다. ‘수라간 시식공감’의 한 풍경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하는 ‘수라간 시식공감’ 행사가 경복궁 소주방 권역에서 8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지난 3일 취재진과 일부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전행사에선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모습이 펼쳐졌다. 관람객들은 타락죽 등 궁중 음식이 나오는 ‘식도락×시식공감’과 궁중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밤의 생과방‘ 중 하나를 선택해 저녁을 즐기게 된다. 식도락×시식공감을 위해 자리에 앉으면 소박한 책상 위에 꽃이 달린 나뭇가지가 눈길을 끈다. 관람객들이 준비된 음식을 먹다 보면 느닷없이 한 궁녀가 뛰어들어오면서 타락죽 연극이 펼쳐지며 식사의 재미를 더한다. 식사가 끝나면 왕의 자리로 꾸며놓은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기념하게 된다.밤의 생과방에는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구선왕도고, 개성주악, 개성약과, 호두정과, 매작과, 사과정과와 6종류의 차가 준비돼 있다. 구선왕도고는 세종대왕이 즐겨 먹었던 건강 떡으로도 유명하다. 궁중 다과를 먹고 마시는 동안 관람객들은 수라간 최고상궁의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밤이 깊어가는 고궁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기게 된다. 내소주방에서는 ‘격구’, ‘궁중 다식 만들기’, ‘전통 보자기 매듭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입장할 때 받은 팸플릿에 행사에 참가할 때마다 도장을 찍게 돼 있다. 소주방 행랑채에서는 주방골목이 열려 연근부각, 도라지정과 등 궁궐 간식을 즐길 수 있는 한편 외소주방을 배경으로 무료 사진도 찍어준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행사에 제공되는 음식과 다과는 모두 문헌에 기록된 것이다”라며 “시민들이 전통 다과와 수라를 즐길 기회를 마련하는 게 행사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 “여성의 몸은 아름답다” 만삭 화보 이하늬가 깨뜨린 여배우의 금기 [김정화의 WWW]

    “여성의 몸은 아름답다” 만삭 화보 이하늬가 깨뜨린 여배우의 금기 [김정화의 WWW]

    “여성의 몸이 이토록 신비롭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산부도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스스로 섹시하다고 여길 수 있는 걸요.” 최근 공개된 잡지 보그코리아 6월호 표지를 장식한 배우 이하늬(39)의 말이다. 불러온 배를 훤히 드러내는 짧은 크롭 셔츠에 골반까지 내려오는 로우라이즈 팬츠, 짧은 치마를 입은 이하늬는 보그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역할에 대한 고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미국 보그 잡지 5월호에 담긴 가수 리한나의 만삭 누드 화보가 화제가 된 적 있지만, 국내에서 연예인이 임신한 모습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여전히 여배우나 여가수의 외모를 둘러싸고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가득한 탓이다. 그래서 이하늬의 화보는 단순히 노출로 인한 ‘파격’이 아니다. 통념과 금기를 깨뜨린, 한 여성의 선택이다.“20대 때 외모 지적…배우라도 겉모습만으로 평가돼야 하나”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되고, 미스유니버스 4위에 오른 뒤 연예계에 데뷔한 이하늬는 꾸준히 여성의 몸과 아름다움, 그리고 주체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다. 그 당당함의 시작은 어쩌면 데뷔 때부터다. 지난해 10월 웹 예능 ‘문명특급’에 출연한 그는 미스코리아 참가 당시 외모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차별을 털어놨다. 이하늬는 “나는 태닝과 운동을 해서 허벅지가 갈라져 있었는데, 당시 건강에 대해 얘기하면 유난스럽다는 시선이 있었다”며 “걷는 것도 너무 씩씩하게 하지 말고 조신하게 하라는 말도 들었다. 살기 척박하다는 생각을 20대 때 많이 했다”고 말했다.‘배우를 하기엔 키가 너무 크다’, ‘양쪽 보조개 중 한쪽은 막으라’…. 여성의 신체 구석구석 특정한 틀에 짜 맞추려는 연예계에서 “배우를 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차별적 인식에 대한 도전일까. 그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하늬는 다양한 역할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장르를 확장했다.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을 자랑하는 변호사 김나리(‘블랙머니’)부터 어딘가 2% 부족한 허당이지만 나쁜 놈 때려잡는 형사(‘극한직업’)까지 당당히 주연으로 극을 휘어잡았다. 최근 드라마 ‘원 더 우먼’에선 비리 검사와 재벌가 상속녀로 1인 2역을 펼치며 화려한 액션까지 선보여 호평받았다.2017년 드라마 ‘역적’에서는 숙용 장씨를 연기했는데, 당시 인터뷰에서 이하늬는 ‘여성 혁명가’로서 장녹수의 삶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는 “현대 여성들도 사회에서는 약자인데, 조선시대 관기 출신인 여자는 얼마나 갑갑했겠나. 예술가적 기질이 있고 진취적인 여성이 그런 시대를 사는 건 형벌 같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승무와 장구춤, 판소리까지 두루 선보이는 이하늬는 “배우라는 직업은 섹스어필을 하거나 매력적으로 보여야 할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겉모습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며 “배우로서 ‘내 감성, 안의 것은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장녹수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중학교 때부터 국악을 전공한 한명의 예인이자 여성으로서, 장녹수와의 접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 고민…빈곤층 여성 기부까지지난해 5월 패션 잡지 코스모폴리탄 커버 촬영 당시 그는 아름다움에 관한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하늬는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는 건 이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단순히 피부와 외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디올 뷰티 코리아의 앰배서더로서) 그 방향을 고민하고, 여성들 간의 아름다운 연대를 이어가는 디올의 행보에 깊이 동감한다”며 “나 역시 언제나 변화를 위한 도전을 선택하며 살았고, 그로 인한 결과가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에 보그코리아 화보를 통해 “배가 불러오고, 임신 선이 생기고, 골반이 벌어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도 이하늬가 보여주고 싶은 ‘진정한 아름다움’의 일환이다. “어떤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도보다는 비슷한 시기를 보내는 분들께 작은 격려가 되고 싶었다”는 말처럼, 그는 작품 속 역할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고 있다.2016년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코리아 홍보대사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매년 전세계 빈곤층 여성과 소녀를 돕기 위한 기부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전세계 빈곤층의 70%는 여성이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물 한잔을 얻기 위해 짧게는 10㎞, 길게는 100㎞를 걷는 여성들이 있다”며 “이런 기부 프로젝트를 통해 가난으로 꿈을 잃은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2018년에는 납치, 인신매매 등 위험에 노출된 로힝야족 여성과 어린이들의 밤길 안전을 위해 가로등 설치에 사용해달라며 1000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 흥선대원군 사랑채 ‘아재당’ 20년 만에 재건한다

    흥선대원군 사랑채 ‘아재당’ 20년 만에 재건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랑채로 알려진 운현궁 아재당(我在堂)이 해체한 지 20년 만에 재건된다. 문화재청 산하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은 27일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샌터에서 아재당 준공식을 열고 재건에 돌입한다. 한자 뜻 그대로 아재당은 ‘내가 있는 곳’이란 말로 대원군의 위세를 보여 준다. 본래는 조선시대 종실제군(宗室諸君) 관련 업무를 관장한 종친부에 있던 건물 명칭인데 이 건물은 1875년 이후 어느 시점에 사라졌고, 대원군이 쓴 아재당 현판은 운현궁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재당은 1969년 운현궁 권역이 축소될 때 개인에게 매각돼 종로구 부암동 129-29번지로 이전됐다. 당시 쓴 상량문에는 “원래 이 집은 조선 말엽의 개혁파 대원군이 건축한 운현궁 중의 아재당을 개축하였던 것을 다시 이 자리에 이축한 것”으로 기록됐다.이후 아재당은 2002년 해체됐고, 경기 화성시 자재창고에 부재를 보관하던 것을 2008년 문화재청에서 매입해 2018년 수리기술재단에서 파주 센터로 옮겨 보관했다. 재단은 재건 과정에서 아재당 목재를 조사해 1873년 이후 벌채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2002년 해체 당시 사진과 복원에 사용한 부재 등을 근거로 궁궐이나 국가기관 건물을 짓는 건축 기법이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아재당은 본채, 부속채, 사주문 등 3개 동으로 연면적은 168.95㎡다. 옛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부암동 이전 당시 사진기록과 현존하는 운현궁 내 건물들을 조사하여 재건 계획을 수립하고, 비파괴조사와 적극적인 보수·보강을 수행했다. 재단은 이번 운현궁 아재당 재건을 통해 옛 전통건축부재를 활용한 전통건축 수리기술의 연구와 전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풍부한 육즙, 부드러운 맛… 화려한 양고기 변주에 입안은 황홀[김새봄의 잇(eat) 템]

    풍부한 육즙, 부드러운 맛… 화려한 양고기 변주에 입안은 황홀[김새봄의 잇(eat) 템]

    근육이 촘촘하고 지방과 육즙이 많아 부드러운 맛이 아주 매력적인 양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마니아층이 주로 찾던 양고기는 이제 소, 닭, 돼지의 극렬한 발달사와 함께 더이상 발달하지 않을 수 없는, 자연스럽게 각광받는 식재료가 됐다. 양고기는 연령에 따라 생후 6~12개월을 램(lamb), 그 이상은 머튼(mutton)으로 구분한다. 특유의 향이 있어 민트와 후추, 고수, 커민 씨 등 향신료를 곁들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는 전문점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조합으로 시선을 끈다. 김새봄의 이번 주 잇템은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양고기다.또띠아 양고기 쌈 원조, 전골 필수 ①램랜드 그야말로 양들의 천국, 서울 마포 용강동의 램랜드는 한국식 양고기의 원조다. 양고기를 삼겹살처럼 불판에 구워 먹고, 전골에 끓여 먹고, 라면도 곁들여 먹는 그런 집이다. 삼각갈비를 주문하면 큼지막한 양파와 다량의 마늘을 불판에 함께 올려 준다. 참기름을 양껏 둘러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고기는 전적으로 ‘이모님’이 구워 준다. 바쁜 듯해 ‘내가 구워 볼까’ 집게를 집으려는 찰나를 어쩜 귀신 같이 읽어 내는지, 정확한 타이밍에 돌아온다. 양파도 예쁘게 자르고 갈비도 뼈에서 오롯이 떼어 내어 소금장에 찍어 먹는다. 램랜드의 가장 큰 특징은 또띠아에 양고기를 싸 먹는 것.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합이지만 램랜드 역사를 생각할 때 원조의 특별함은 따로 인정해 줘야 한다. 올리브와 콘샐러드, 램랜드만의 특별한 겨자 소스를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 가히 한국맛. 마무리로 얼큰한 양전골을 먹지 않는다면 이 집을 방문하지 않은 셈 쳐야 한다. 그야말로 한국식 기승전결의 끝판왕이다. 사각 냄비에 큼직한 고깃대와 대파, 깻잎, 넉넉한 들깨가루로 무장한 전골에 라면 사리는 옵션이 아닌 필수. 밥도 추가할 수 있다. 사리는 전골이 등장할 때부터 함께 끓이는데, 국물이 자작하게 잘 배어든 밥알과 라면은 속을 제대로 풀어 준다. 고문헌  바탕 ‘맡김차림’ 감탄 절로 ②양인환대 정인 한국에서 양고기를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양고기는 있었지만 주로 약용이었다. ‘우리 조상이 양고기를 먹었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양고기 다이닝, 용산 용리단길의 양인환대 정인. 이정현 헤드셰프는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10년 뒤, 100년 뒤에도 한식에서 양고기 역사는 없을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치밀하게 코스를 꾸렸다. 조선 세종 시절 의관 전순의가 쓴 ‘식료찬요’에는 ‘기가 허하고 비위가 약할 때 양고기와 생강을 함께 닳여 먹으면 좋다’고 쓰여 있다. 이에 기반해 양인환대는 생강 양념에 양고기를 잰 ‘새앙갈비’를 만들어 냈다. 이 밖에도 ‘동의보감’, ‘산가요록’ 등을 종합하는 등 음양 조화에 기반한 맡김차림은 요리 하나마다 찬사가 터져 나온다. 코스의 시작은 양고기 편육. 양고기 특유의 향미가 스치며 씹히는 살결도, 오독오독 씹히는 오돌뼈도 어김없이 상상하는 그 편육이 맞다. 양고기 뱃살을 다져 두부와 으깨 쪄 낸 양고기 두부선은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곁들인 잣을 하나씩 깨물어 먹으라고 조언한다. 깨와 호두의 고소함이 돋보이는 양깨죽은 속을 풀어 다음 요리를 기대하게 한다. 셰프가 갑자기 테이블에 둘러앉은 손님들에게 손을 달라고 하더니 손등에 참기름을 바른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토끼눈을 뜨자 보란 듯이 양고기 사시미를 올려 준다. 최고의 양고기, 최고의 참기름. 모든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결합한 메뉴다. 본격적으로 구이가 나오기 시작하면 직접 무친 제철나물과 구이마다 다른 반찬, 양념에 그저 입이 떡 벌어진다. 하이라이트는 양완자탕. 각각의 맛과 향, 그리고 재료에 어울리는 조리 방법을 고안했다. 주류의 페어링도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술이다. 요리마다 음양 조화를 고려하는 디테일에는 혀를 내두른다. 즉석에서 양고기를 찢고, 분리하고, 능수능란하게 설명하는 세프를 보고 있자니 이 코스를 위해 얼마나 공부하고 연구했을지 짧은 순간에 수많은 시간이 스친다. 쌈에 특제 ‘연태 하이볼’이면 신선 ③양파이 한남오거리 중에서도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핫플레이스 중심에 양파이가 자리하고 있다. 낮술 하러 오라고 속닥이며 꾀는 듯 널찍한 테라스에 유유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간다. 깨끗하게 잘라진 갈빗대와 정중앙의 파인애플, 방울토마토가 어디 하나 틈새 없이 명확하다. 양파이는 돼지고기를 멜젓에 찍어 먹듯, 양고기를 크림치즈에 찍어 먹는 구성이다. 잘 구워 낸 양고기 한 조각을 끓는 크림치즈에 푹, 삼각 또띠아에 올리고 파채를 두둑이 보탠다. 역시 우리는 쌈의 민족이다. 쌈을 싸 먹으니 이렇게 맛있는걸! 여기에 파인애플을 넣든, 자차이를 넣든 ‘쌈 이즈 뭔들’. 양고기 쌈을 즐기다 양파이만의 특제 ‘연태 하이볼’을 시원하게 꿀꺽 넘기고, 양고기 기름으로 압안이 느끼해질 때 쯤 오이 청양고추 무침으로 입가심한다. 테라스의 산들바람에 이보다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푸드칼럼니스트
  • “생활밀착형 수업으로 다가가니 마음도 열려”

    “생활밀착형 수업으로 다가가니 마음도 열려”

    “출석부를 펼쳤는데 낯선 이름이 빼곡했습니다. 정말 당황스럽고 막막했죠. 아이들 생활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다가가는 노력을 했더니 다문화 학생들의 마음도 열리더라고요.” 안산 관산중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신경아 교사는 지난해 발령을 받아 이 학교에 왔던 때를 이렇게 떠올렸다. 관산중은 정원 300명 중 다문화 학생이 90% 정도로 비중이 굉장히 높다. 외국인 밀집 지역인 안산 원곡동 다문화 마을과 선부동 땟골 고려인 마을 학생들이 주로 지원한다. 다문화 학생이 많은 곳으로 알려지며 경기도 지역에서 일부러 전학 오는 학생도 많다. 신 교사는 우선 출석부에 적힌 학생들의 이름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조선시대 민화 ‘문자도’처럼 글자와 그림으로 이름의 뜻을 풀어내고 소개하게 했다. 학생들이 쓰는 다양한 언어로 그림카드를 만들기도 했다. 학생들이 사전을 찾아 가며 서로를 헤아리자 개성이 담긴 ‘관산 말모이’(사전)가 채워졌다. ‘세계가 모인 우리 동네, 나만 아는 맛집을 소개합니다’ 수업은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학교 앞 다문화 음식 거리에 외국인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착안했다. 학생들에게 가족과 함께 자주 가는 식당의 메뉴를 그리고 소개하게 했다. 각양각색 결과물이 나오자 안산시청에서 전시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저 정해진 수업만 하기보다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것이 무얼까 고민하고 이를 미술과 접목하려 끊임없이 연구했다”는 신 교사는 그 1년의 경험을 수기로 담았다. 이 글은 지난해 교육부가 주최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다문화교육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다문화실천사례 최우수상을 받았다. 신 교사는 “다문화 학생을 돌보는 데 공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본 한 해였다. 다문화 학생 증가에 따라 교사들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나우뉴스]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보물!”...고물상서 淸시대 대포 발견돼

    [나우뉴스]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보물!”...고물상서 淸시대 대포 발견돼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이 조선군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홍이대포’(紅夷大砲)가 쓰레기장에서 무더기로 발견돼 화제다. 12만 병력의 청나라 대군이 강화도를 함락시키고 남한산성 성채를 공격했을 당시 사용했던 악명높은 바로 그 신형 대포다. 산둥성 지역 방송국인 ‘치루tv’는 최근 산둥성 르자오귀현(日照莒县) 옌좡촌의 한 쓰레기장에서 오래된 폐품인 줄만 알고 방치돼 있던 홍이대포 2포가 우연히 발견돼 화제가 됐다고 23일 보도했다. 이 지역 관할 서기인 정 모 씨가 순찰을 돌며 농촌 주민들의 폐품을 수거하던 중 마을 공동 폐품장에 버려져 있던 오래된 대포 두 구에서 ‘홍의대포청강희8년제’(红衣大炮清康熙八年制)라는 문구를 확인했던 것. 평소 고문화제 수집에 관심이 깊었던 촌장이자 이 지역 서기 정 씨는 이 문구를 확인한 순간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주조된 국가급 문화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고, 곧장 홍이대포 두 구를 수거해 이 지역 문화관광국에 신고했다. 홍이대포를 수거한 관할 문화관광국은 산둥성 르자오시 귀현귀국고성관리센터와 문화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품 감식을 벌인 결과, 16세기 유럽에서 들여온 당시로는 최신식 무기였던 ‘홍이대포’ 진품으로 확인됐다.이 대포는 청나라 강희제 8년(1669년) 당시 벨기에에서 초청한 유럽인이 설계해 만들어낸 중형 대포로,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의미로 일명 ‘신위장군’, ‘신공장군’ 등의 별칭으로 불렸던 것이다. 관한 문화관광국은 수거한 홍이대포 두 구를 쥐저우박물관에 이장해 향후 일반 대중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지연 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보물!”...고물상서 淸시대 대포 발견돼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보물!”...고물상서 淸시대 대포 발견돼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이 조선군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홍이대포’(紅夷大砲)가 쓰레기장에서 무더기로 발견돼 화제다. 12만 병력의 청나라 대군이 강화도를 함락시키고 남한산성 성채를 공격했을 당시 사용했던 악명높은 바로 그 신형 대포다.  산둥성 지역 방송국인 ‘치루tv’는 최근 산둥성 르자오귀현(日照莒县) 옌좡촌의 한 쓰레기장에서 오래된 폐품인 줄만 알고 방치돼 있던 홍이대포 2포가 우연히 발견돼 화제가 됐다고 23일 보도했다.  이 지역 관할 서기인 정 모 씨가 순찰을 돌며 농촌 주민들의 폐품을 수거하던 중 마을 공동 폐품장에 버려져 있던 오래된 대포 두 구에서 ‘홍의대포청강희8년제’(红衣大炮清康熙八年制)라는 문구를 확인했던 것. 평소 고문화제 수집에 관심이 깊었던 촌장이자 이 지역 서기 정 씨는 이 문구를 확인한 순간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주조된 국가급 문화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고, 곧장 홍이대포 두 구를 수거해 이 지역 문화관광국에 신고했다.  홍이대포를 수거한 관할 문화관광국은 산둥성 르자오시 귀현귀국고성관리센터와 문화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품 감식을 벌인 결과, 16세기 유럽에서 들여온 당시로는 최신식 무기였던 ‘홍이대포’ 진품으로 확인됐다. 이 대포는 청나라 강희제 8년(1669년) 당시 벨기에에서 초청한 유럽인이 설계해 만들어낸 중형 대포로,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의미로 일명 ‘신위장군’, ‘신공장군’ 등의 별칭으로 불렸던 것이다.  관한 문화관광국은 수거한 홍이대포 두 구를 쥐저우박물관에 이장해 향후 일반 대중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마리우폴에 있는 집 폭격 피해 한국행… 고려인 밥심은 나물 반찬”[나를 살리는 밥심]

    “마리우폴에 있는 집 폭격 피해 한국행… 고려인 밥심은 나물 반찬”[나를 살리는 밥심]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 사건팀이 밥심의 현장을 찾아 응원합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에 살던 고려인들이 전쟁의 포화를 피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김씨, 정씨, 황씨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의 한국 적응기를 들어 봤습니다. ●광주에 고려인 7000여명 모여 살아 “어디서 먹든 집에서 먹는 밥만 한 게 어딨어. 사 먹지 말고 여기서 먹어요.”지난 11일 하늘색으로 외벽을 칠한 3층짜리 건물의 광주 ‘고려인마을’ 사무실에 들어서자 신조야(67) 대표와 엄엘리사(72)씨는 밥 때에 맞춰 온 기자에게 같이 점심을 하자며 끌어당겼다. 식탁에는 찐빵, 호빵, 당근나물, 가지볶음, 오이양배추 무침, 백김치, 열무김치, 낙지볶음, 가자미식해, 생선회무침 등 10가지가 넘는 반찬이 차례로 올라왔다. 신 대표는 “이것들이 다 고려인이 먹는 반찬”이라며 “어릴 때 고기보다는 풀을 많이 먹고 자라서 풀 반찬이 많다”고 했다. 고려인 3세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살던 그는 2001년 한국에 처음 왔다. 어릴 적 부모한테서 한국어를 들으며 자랐지만 요즘 쓰는 한국어와 달라 한국에 온 뒤 한국어를 다시 배웠다고 한다. 신 대표는 “한국 와서 보니까 우리가 쓰던 말은 조선시대 말이더라”면서 “예를 들어 우리는 애기들 덮어 주는 거(담요) 그걸 ‘탄자’라고 불렀다”고 했다. 신 대표는 고향 타슈켄트에선 해마다 김장을 100포기씩 할 정도로 한국 식문화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고 한다. 그는 “당근 나물은 원래 고려인이 먹던 건데 이제는 러시아 전역에 퍼져 어느 민족이든 다 먹는 음식이 됐다”고 말했다. 신 대표에게 ‘밥심’이 뭐냐고 묻자 “풀!”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릴 때 어른들이 소가 먹을 수 있는 풀은 다 먹을 수 있다며 온갖 풀 종류를 캐 그걸로 해 먹을 수 있는 건 다 해 먹었다”며 “그래서인지 지금도 풀(반찬)이 가장 든든하다”고 부연했다.식사가 끝나 가자 신 대표는 탁구공만한 빨간무(래디시)를 식탁에 내놓으며 “아이 때부터 봄 되면 늘 먹던 거라 지금도 생각나서 사 먹는다”며 “이걸로 물김치도 해 먹고 샐러드도 해 먹었는데 한국에선 이런 채소값이 너무 비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후가 되자 최근 한국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들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고려인마을 사무실은 고려인들의 사랑방이자 민원 창구 같은 곳이다. 문화도 다르고 한국어가 서툰 고려인들이 한국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비자 문제부터 시작해 일자리, 주거, 의료, 돌봄, 교육 등을 상담하고 직접 지원한다.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난관을 스스로 극복해야 했던 신 대표는 2005년 외국인 노동자를 돕던 이천영 목사의 제안으로 고려인마을 공동체를 설립했다. 한국을 찾은 고려인들은 자연스레 이곳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해 현재 7000명가량이 인근에 살고 있다. 고려인마을은 어린이집과 지역아동센터, 진료소, 박물관, 라디오방송 등 21개 기관과 단체를 운영하며 자체적인 공동체로 컸다. ●우크라 피난 고려인 300명 넘어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고려인마을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 동포 돕기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에는 약 3만명의 고려인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작은 한국에 살고 있던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이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던 손녀 남아니타(10)양을 데려올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서였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고려인마을에서는 모금을 통해 항공권을 구입해 보냈고 지난 3월 22일 손녀와 할머니가 한국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후 고려인마을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들어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은 300명이 넘는다. 고려인마을은 항공권 구입 외에도 비자 발급과 임대료 지원, 적십자사 긴급 지원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류 작성 등을 돕는다. 러시아의 공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동부 마리우폴에서 어머니와 아내, 8살 딸과 3살 아들을 데리고 간신히 빠져나온 황 아르좀(35)씨는 “3주가량 지하실에 있으면서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를 못해 지금도 계속 배가 고프다고 한다”면서 “물이 없어서 빗물을 받아 마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3월 23일 마리우폴에서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한 달 반 만인 지난 5일 한국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고려인인 그는 2016년부터 한국을 오가며 일을 한 덕에 마리우폴에 집도 장만했지만 러시아의 폭격으로 무너졌다. 아르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에는 현관문과 창문, 집기가 부서져 나뒹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집을 나온 지 이틀 뒤 건물이 폭격을 맞았다. 어린이집도 폭격으로 부서졌다”며 “이렇게 빠져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처음 한국 땅을 밟은 아이들은 피난길에 겪은 스트레스와 물갈이 등으로 아직까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했지만 아이들의 밥심은 초코파이였다. 오랫동안 어른들의 손이 가지 않던 초코파이가 아이들이 오자 순식간에 동났다. 낯선 환경에 칭얼대던 둘째도 초코파이와 과자를 보자 울음을 그쳤다. 아르좀은 “전쟁이 끝나도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며 “어머니도 고려인 음식을 배워서 할 줄 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에서 터를 잡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기저귀 없어 두 살 아이 고생”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출신으로 시누이, 올케 사이인 김 알레브지나(36)와 김 타치아나(33)는 지난달 14일 각각 두 명, 다섯 명의 자녀를 데리고 조지아, 크림, 독일을 거쳐 같은 달 30일 한국에 도착했다. 타치아나는 한국까지 오는 여정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기저귀를 못 챙겨 나왔는데 달러 환전을 못 해 마트에서도 살 수가 없었다”며 “막내(2세)가 제일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레브지나는 “아이들과 함께 나와 다행이지만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부모님이 걱정된다”고 했다. 15살인 첫째부터 2살 막내까지 아이들은 앞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들과는 휴대전화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타치아나의 셋째 딸인 김 알비나(11)는 “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한국 라면은 맛이 없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이들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 일단 안도했지만 당장 비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대부분 3개월 체류가 가능한 단기 비자로 입국했는데 6개월 이상 체류하면서 일을 하려면 재외동포(F4) 비자나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인마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박빅토리야(36)씨는 “고려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조부모, 부모, 본인까지 3세대의 출생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대부분 전쟁 중에 급하게 나오느라 이런 서류를 못 챙겨 왔다”면서 “이런 문제가 좀 해결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적십자사와 고려인마을에서 2~3개월치 월세 보증금과 당장 생활에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지난달 28일 아내와 함께 입국한 정 비체슬라브(23)는 마리우폴에서 공습을 피해 두 달 가까이 지하에 숨어 있다가 러시아 로스토프와 모스크바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는 방문취업 비자를 받았지만 아내는 전쟁 중에 잠을 못 자 먹었던 약 때문에 재심사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최근에는 적십자사의 월세 보증금 지원도 많이 사라졌다고 들었다”면서 “한국의 월세가 비싸서 보증금 지원이 끝나기 전에 빨리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 尹대통령·김건희 여사가 떠나는 바이든에게 준 선물은?

    尹대통령·김건희 여사가 떠나는 바이든에게 준 선물은?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방한 일정을 종료하고 한국을 떠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나비국화당초 서안(書案)’과 감색 모란 경대, 마크 로스코 전시 도록을 선물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서안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책을 보거나 손님을 맞아 이야기를 나눌 때 사용한 일종의 좌식 책상이다.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답례 선물인 나비국화당초 서안은 김의용·조훈상 작가가 현대적 감각을 더해 제작한 것으로 자개에 나비와 국화, 당초 무늬를 새겨 번영·부귀영화·장수의 의미를 담았다. 양국 국기 색깔인 파랑과 빨강이 들어간 양면 보자기에 무궁화 장식을 활용해 작품을 포장했다. 대통령실은 “손님과 소통할 때 사용하는 서안을 선물함으로써 양 정상의 소통이 원활하고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를 기원했다”고 설명했다.김건희 여사는 이번 방한에 동행하지 못한 질 바이든 여사를 위해 느티나무로 만든 감색 모란 경대를 마련해 전달했다. 경대는 거울과 보관함이 합쳐진 전통 가구다. 대통령실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이웃 국가에 선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서깊은 가구이며 양국 간 돈독한 우정을 더욱 빛내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소개했다. 서안을 만든 작가들이 마찬가지로 제작한 경대에는 건강과 수복을 상징하는 모란 문양이 새겨졌다.거울을 세우면 그 아래에 화장품을 넣을 수 있는 서랍이 있다. 방한 답례 선물에는 김 여사가 기획해 2015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전시 도록이 포함됐다.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공식만찬 참석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자리에서 김 여사와 인사를 나누며 “김건희 여사가 전시 기획한 마크 로스코전은 미국 국립미술관이 한국에 대규모로 그림을 빌려준 첫 번째 사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2박 3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경기 평택시 오산 미군기지를 통해 다음 순방지인 일본으로 향했다.
  • 44도 폭염에 땀 뻘뻘… 350㎏ 부처님 맞은 인도 분황사

    44도 폭염에 땀 뻘뻘… 350㎏ 부처님 맞은 인도 분황사

    한낮 기온이 44도까지 치솟은 20일 인도 비하르주 부다가야에서 아침부터 스님들의 머리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 지은 한국식 전통사찰 ‘분황사’에 석가모니상을 앉히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이날 끙끙대며 옮긴 금동불상의 무게는 350㎏에 달했다. 21일 분황사 준공식을 앞두고 분황사에서 복장의식과 점안법회가 열렸다. 복장의식은 불상 내부에 사리, 보화, 경전 등의 복장을 넣는 행사로 사찰의 역사를 알리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최근에도 복장을 통해 사찰의 연대기가 새로 고쳐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복장의식을 마치고 조계종 스님들과 관계자들은 불상을 받침대인 연좌대 위에 맞추느라 힘을 모았다. 어떤 스님은 불상을, 다른 스님은 불상을 감싼 연보라색 천을 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참을 씨름한 후에야 불상과 연좌대의 합이 맞았고, 성형수술을 막 마친 사람처럼 천으로 둘둘 감긴 불상도 비로소 천을 풀었다. 땀을 뻘뻘 흘렸던 스님들도 힘겹게 짊어졌던 무게를 내려놓고 환히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이날 공개된 불상은 한국에서 제작돼 인도로 건너갔다. 높이는 195㎝ 정도다. 나무로 제작하려던 것을 현지 날씨를 고려해 청동으로 제작했다. 종단에서 조사 및 자문을 거쳤고, 제작 기간은 1년 정도 걸렸다. 요즘 시대에 제작된 만큼 분황사 불상은 머리 크기를 줄여 신체 밸런스를 맞췄다. 제작을 담당했던 여진불교 조각원 이재윤(46) 팀장은 “조선시대 머리가 크고 몸이 왜소한 걸 따라가기보다는 밸런스는 현대적인 풍을 따랐다”면서도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전통을 충분히 따랐다”고 설명했다. 청동불상에 최종적으로 금을 입혀 금동불상이 됐다.불상을 정돈하는 작업이 끝난 후 점안법회가 열렸다. 점안의식은 새롭게 조성된 불상에 일련의 의식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어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수막으로 불상을 가린 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해 현지 순례에 참석한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행사 도중 현수막이 걷혔고, 본존불과 양쪽으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다가야 분황사가 지어질 수 있도록 50억원을 기부한 설매·연취 보살은 발원문을 낭독하며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두 보살은 “만행의 길에서 만 가지 깨달음을 얻게 하시고 길에서 만난 이들이 무량한 자비의 은혜를 입게 하소서”라며 “언제나 자비광명 나투시어 중생의 영원한 귀의처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원했다. 점안의식까지 마친 조계종은 21일 준공식을 열고 정식 개소를 알린다. 분황사는 향후 불자들의 성지 순례를 돕는 기관인 동시에 전 세계에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리는 거점으로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 공예품 만들고 박물관·미술관 구경…주말 즐겨요

    공예품 만들고 박물관·미술관 구경…주말 즐겨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전국 박물관, 미술관이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2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체부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가 주최하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22 박물관·미술관 주간이 22일까지 전국 박물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올해 박물관·미술관 주간은 ICOM에서 선정한 공통 주제 ‘박물관의 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총 31개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난다. 이와 함께 놓치면 아쉬운 전시 프로그램도 함께 소개한다.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은 ‘뮤지엄 보이스’를 통해 소장 작품을 공유하고 관객이 직접 전시작을 선정할 기회를 제공한다. 미술관은 지난 3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소장 작품 100점을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모았는데, 김환기 작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기(1956∼59년)의 대표작인 ‘매화와 항아리’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 70여 명은 각자가 선택한 작품에 대해 이론적 분석이 아닌 자신의 삶을 투영해 느낀 바를 목소리로 기록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전시작 앞 안내판의 QR코드를 통해 제공돼 다른 관람객과 교감한다.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거리에서 통(通)하다: 증강현실(AR)로 연결되는 전통과 현실의 이상향‘ 전시는 전통 예술작품에 AR과 가상현실(VR), 3D 애니메이션 등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전시다. 전쟁, 질병 등으로 힘들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을 다양하게 표현한 박물관 소장품을 모티브로 했다. 서울 성동구 헬로우뮤지엄에서는 현대 미술작가 5명이 참여한 소리예술(사운드아트)·촉감 설치물을 볼 수 있는 ‘꿈적꿈적’을 선보인다. 경기 여주곤충박물관의 ‘곤충오락실 : 인섹트 게임(Insect Game)’은 추억의 오락실로 디자인된 전시장에서 미디어아트 기법을 도입한 게임을 통해 곤충을 살펴본다.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음악가, 무용가, 미디어 아티스트, 전자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백남준의 1963년 역사적 첫 전시인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을 보여준다.문체부는 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29일까지 2022 공예주간도 연다. 올해 5회째인 행사의 주제는 ‘우리 집으로 가자’다. 공예를 가깝고 친근하게 즐기게 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공예주간에는 전국의 공방과 화랑, 문화예술기관 등 648곳이 참여하며 공예품 전시와 체험, 판매, 강연 등 총 1397개의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요 행사는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를 중심으로 열린다. 공예기획전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전시 외에도 공예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참여한 3차원 인쇄 특별기획전시 ‘촉각의 순간들’도 진행된다.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의 협업 프로그램도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은 민속 유물과 현대 공예품의 협력 전시 ‘민속×공예 소소하게, 반반하게’를 진행하는데, 문화재 공예품들과 작가들의 소반, 반닫이, 나전칠기 등을 선보인다. 연남방앗간은 공예주간 특별 음료를 수공예품에 담아 제공하며 스테이폴리오는 쉼을 주제로 한 숙박 공간에서의 공예 전시를 진행한다.
  • 이순신 장군 상륙 추정 부산 가덕도 천성진성서 대형계단·지휘대 첫 확인

    이순신 장군 상륙 추정 부산 가덕도 천성진성서 대형계단·지휘대 첫 확인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상륙해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큰 부산 가덕도 천성진성에서 지휘대 흔적과 남해안 수군 진성(성곽) 최대 규모의 계단 등이 확인됐다.부산시립박물관은 가덕도 천성진성 5차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성벽 위쪽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오늘날 계단과 비슷한 형태로 만든 통로인 대형 계단지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그동안 남해안 일원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수군 진성의 계단지는 폭이 1.5∼2m로 좁았으나, 천성진성 계단지 폭은 5.5m로 최대 규모이다. 또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이나 지휘를 하는 장대(將臺) 기능을 한 포루(鋪樓·누각) 흔적도 확인했다.가덕도 서안에 있는 천성진성은 남해안 일원의 조선시대 수군진성 중에서도 유적 보존·잔존 상태가 우수해 해마다 이곳에 대한 학술조사가 진행된다. 1544년 최초 축성 당시 성곽이 매우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5차 발굴조사는 동쪽 성벽 일원과 성 내부 일부 구간을 대상으로 지난 2월부터 진행했다.이번 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 축성 방식인 계단식 내벽 구조와 성벽 축조 과정을 규명하고, 특히 남해안 수군진성에서 보기 드문 대형 계단지와 장대 기능을 했던 포루의 흔적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부산시립박물관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해전을 앞두고 상륙해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큰 ‘천성진성’의 실체를 더 자세히 밝혀내고 축성 당시 위용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 자문위원인 윤용출 부산대 명예교수는 “‘이충무공전서’에 여러 차례 천성진성이 언급된 것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천성진성에 직접 상륙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발굴조사를 통해 천성진성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사와 부산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부산시립박물관은 이날 오후 2시 천성진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유적조사 성과를 알리는 현장 설명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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