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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청동거울 변천사 한눈에

    ◎청주박물관,선사∼근대 동경 180점 전시 국립청주박물관이 우리나라 청동거울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한국의 동경」특별전을 20일까지 본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이 특별전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이 사용해 온 동경을 한자리에 모아 그 형태및 제작기법의 시대적 변천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동경에 대한 공예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전시되고있는 유물은 국보 제14 3호 화순 대곡리출토 청동기시대 동경과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출토 백제시대 동경등 1백28건 1백80점이다. 예로부터 거울은 사물을 비춰볼수 있는 도구로 고안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신령스런 의기로 의미가 확대되어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상징적인 무늬가 담겨지고 형태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동경은 뒷면에 기하학적인 집선문을 도안하고 꼭지를 두세개 다는 것이 특징이다.초기에는 삼각형 또는 별모양의 윤곽안에 거친 무늬가 채워지다(다뉴추문경)차츰 정교한 무늬로 발전(다뉴정문경)하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에서수입한 한경과 이를 모방한 거울(방제경)이 주류를 이룬다. 고려시대에는 거울의 수입과 국내제작이 모두 활발히 이루어져 다양한 종류가 나타난다.문양은 하나의 꼭지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신 어용 화조 인물 신선 시구등을 새기고 있고 형태도 사각형 직사각형 팔각형 꽃잎모양등으로 다채롭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동경의 크기는 커지나 무늬가 간략해져 제작기술이 단순화된다.
  • 백고좌법회 회양 전야법회 구룡사주지 정우스님(인터뷰)

    ◎“백일기도 법설 함께 나누는 자리될 것” 『가정은 인간공동체의 출발점이자 나아가 사회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집단입니다.그래서 가정의 따뜻함과 편안함 그리고 화목함은 인간사 최대의 목표가 아닌가 합니다.백고좌법회의 주제를 「부처님 품안­따뜻한 가정」으로 정했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지난 8월30일부터 시작,오는 12월7일 1백일간의 화엄경산림 백고좌법회 회양을 앞두고 6일 전야법회를 갖는 통도사서울포교당 구룡사의 정우주지스님.그는 이번 법회를 통해 백고좌는 이시대 불자들의 삶에 대한 목마름에 감로수로 받아들여졌음을 확신했다. 『올해는 화엄경 선재동자의 깨달음을 얻은 53명의 아이들 예를 빌어 53분의 큰스님을 모셨습니다.떠났던 선재나 마지막 남은 문수가 결국 하나였듯이 씨앗과 열매 역시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화엄경법회의 요체지요』 그는 매일 2천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큰스님들의 설법을 듣고 백팔 3배씩 1백일동안 3만배를 정진해온 만불보전의 열기를 전했다. 『이번에도 전야대법회를 마련했습니다.백일간 참회기도정진을 함께했던 스님과 불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뜨거운 법열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6일 올림픽공원내 체조경기장에서 하오1시부터 열리는 전야법회는 운문사 비구니스님 3백명이 펼치는 음악예불로 진행되는 회향식에 이어 전통문화예술인들이 꾸미는 공연 「만불이 미소하시네」와 법계도 탑돌이 순으로 진행된다.『불교라는 믿음과 우리전통문화라는 순수가 한데 어우러지는 믿음과 순수의 장』이라고 표현한 그는 『이번에 거둬지는 공양미는 청소미화원들에게 또 보시금은 불우노인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고좌법회는 신라 진흥왕12년(551년) 고구려에서 온 혜량법사가 사자좌 1백자리를 준비하여 당대의 고승 1백명을 초청,법회를 열었던데서 시작됐다.그러나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으로 맥이 끊겼던 것이 지난해 정우스님에 의해 최초로 재현됐었다.
  • 역사소설/사실전달 미흡하다/문학·역사비평지들 겨울호 특집서 지적

    ◎주인공 신분·인간성 서술에 많은 오류/「소설 동의보감」… 서자 출신 허준 천인으로 설정/국민문학으로 정착위해 정확성 필요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인물소설 가운데 역사적 사실을 잘못 서술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아 독자들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일고있다.본격소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등으로 그동안 문학비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역사소설.그러나 일반독자에 미칠 영향을 고려,최근 발간된 「역사비평」과 「창작과 비평」「시대와 철학」등 문학·역사 계간지들이 겨울호에 일제히 이 문제를 다룬 글들을 실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위인전을 제외하고는 「성인용 위인전」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소설 동의보감」(이은성지음)을 필두로 한 이들 역사인물소설붐이 일고있다.이러한 역사소설은 건전한 독서풍토 조성및 「국민문학」으로의 정착을 위해서도 시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것이 이들 계간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리화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은 「역사비평」겨울호에 실린「소설 동의보감은 역사를 옳게 봤는가」에서 일련의 역사인물소설 가운데 오류가 비교적 적다는 「소설 동의보감」을 들어 역사소재 관련내용중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따졌다.그는 우선 『소설의 주인공 허준의 신분이 서자이므로 천인이라고 규정한 것은 조선시대의 신분구조를 잘못 이해했기때문』이라고 지적했다.그리고 『조선시대 양반의 서자는 결코 천인이 아니며 허준을 천인으로 설정,어의가 되는 것을 면천으로 보고 소설을 전개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또 작품의 기본소재가 되는 동의 역시 저자가 동의의 우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 소설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은 거의 없어 상식과 현실을 뛰어넘어 환상의 지경에 이르게한 문제성도 들추어냈다.이밖에 허준과 라이벌 관계로 다뤄지는 양예수의 경우 극적 전개를 위해 「권위와 질투의 화신」으로 그려진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그는 허준의 고향,부친과 생모·적모의 이름등도 잘못 기술돼있음을 밝혀냈다. 한만수씨(문학평론가)도 「창작과 비평」겨울호에「소설 동의보감」과 「매월당 김시습」「소설 목민심서」에 대한 서평 「위인전과 위인전」을 기고했다.그는 『이 세 소설은 모두 지식인 주인공에만 의존한 나머지 당대의 총체적 재현에 실패하고 있고 지식인사회 내부에서나마 앤태거니스트가 없거나 힘이 너무 미약해 쉽사리 주인공에 압도당해버리는 것이 공통적인 약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시대와 철학」제5호에 「역사와 픽션의 차이」를 발표한 권인호씨(동국대 강사·철학)도 「소설 토정비결」은 주인공인 토정 이지함이 과거에 장원급제하나 파방당하는 것으로 그리는등 토정에 관해서조차 잘못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작가이며 최근 역사소설「한명회」를 펴낸 신봉승씨도 『역사소설이 창작이며 픽션임은 상식이나 현대소설과는 달리 사실을 소재로 한다』는 점을 중시했다.
  • 언론입국에 생애바친 선각자/서울신문 초대사장 위창 오세창선생

    ◎독립운동·저술 등서 뚜렷한 발자취/23세에 첫발… 필봉으로 민족혼 고취/팔순고령에도 본지서 해방조국 정론기개 불태워 『매일신보는 이제 혁신되어 이름조차 새로운 「서울신문」으로 냅떠 나서게 되었다.…우리는 일당일파에 기울이지 않고 언론보도에 공정하고 적확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총력의 집결통일과 독립완성의 시급한 요청에 맞추어 단호매진하는 동시에 국내를 비롯하여 연합우방의 동업기관과 더불어 민주주의적 질서수립을 위해 상응한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19 45년 11월22일 혁신사란 이름의 서울신문 창간사중 일부이다. 언론입국의 기치를 이같이 내걸고 새로 태동한 서울신문에 초대사장으로 추입,격랑의 그 어려운 시절을 이끌던 이는 바로 위창 오세창선생이었다. 큰 체구에 근엄한 표정,그리고 절고의 기품과 해박한 지성으로 명성 높은 원로 민족인사였다.위창은 33인(3·1운동)의 한사람이자 불굴의 독립투사로 더 이름이 높다.또 근대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탁월한 서예인이었다.그의 행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화사상 일찍 눈떠 개화운동및 개화사상가,언론인,종교인,전각가·저술가·고서화 수집가를 덧붙여야 할 만큼 다각적인 발자취를 남긴 민족근대화의 선각자였다.특히 개화사조의 계몽과 주권의식의 고취를 민족에 불어넣기 위해 벌였던 개화및 언론활동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식을 새롭게 할 만큼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창은 개화사상에 일찍이 눈을 뜬 부친 오경석과 은사 유대치의 감화를 받아 일찍부터 개화및 진보적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자신의 개화사상이 곧 민족의 근대화를 이루는 지름길로 여겨 개화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이 약관 23세이던 18 86년의 일이다.박문국의 주사로서 당시 관보였던 「한성주보」의 기자를 겸하면서 처음 언론을 대했다. 정치적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던 그무렵 위창은 지위를 높여 영화를 누릴 기회도 많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필봉의 길을 택했다.언론을 통해 민족에 개화의식을 심어 끝내는 국권회복의 길을 앞당기려는 깊은 뜻을 품었기 때문이었다.기자생활은 18 88년 7월 한성주보가 폐간될때까지 1년8개월간에 불과했다.그러나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을 일깨우는데 집념을 불태운 그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그뒤 31세이던 18 94년 국군기무처의 낭청(총재비서관)자리에 관직을 얻은 그는 당시 영의정이던 김홍집의 3차내각이 무너지기까지 의정부주사·농상공부 참사관·통신국장을 지내면서 줄곧 정부시책을 통해 또다른 민족근대화 작업을 집요하게 폈다. 위창의 민족개화운동은 도쿄 망명중 동학교주 손병희를 만나 입교하면서 그 날개를 더 달았다.19 06년에는 항일구국운동을 위한 신문 「만세보」를 손병희의 재정적 후원으로 창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당시 위창은 주필로 국초 이인직을 취임시켰다.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처음 발표된 것도 바로 「만세보」지면을 통해서였다. ○「만세보」 사장 취임 그러나 만세보는 경영난에 빠져 이듬해에 폐간되는 비운을 겪었다.위창은 권동진·장지연·김가진등과 「대한협회」를 조직,사회개혁과 항일운동을 계속했다.그러면서 이상재·김규식·안창호등과 「대한학회」발기인으로활동한 위창은 19 05년 5월 대한협회의 기관지 성격으로 「대한민보」를 창간,다시 사장으로서 항일언론을 지속하는등 민족을 위한 투쟁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대한민보는 창간 이듬해 한일합병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나 당시 매우 획기적이고 용기있는 신문편집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하다.창간호부터 1면에 청년화가 이도영이 붓으로 그린 비판적 시사만화를 연재한 것도 이때다.시사만화는 미련한 놈이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자루가 빠지는 바람에 도끼날이 제 발등에 떨어져 찍히는 내용이었다. 이 만화의 설명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미완용(이미완용)자부상피(자부상피)」라는 설명이 그것인데 당시 「매국대신 이완용이 자부와 상피붙었다」는 소문을 풍자한 내용이다.대한민보에는 이밖에도 일제통감의 침략행위와 일인들의 악행을 풍자한 만화도 등장했다.또 우리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뒤에도 군복을 입고있는 이완용내각의 군부대신 이병무의 모습을 그려놓고 「벌거벗고 군도차기」라고 꼬집은 만평이 게재되기도 했다. 이 모든 비판적 만평은 위창의 항일언론정신에 바탕한 것은 물론이다.당시 그같은 통렬한 설명도 위창이 직접 붙인것으로 알려져 있다.매우 엄격하고 불의에 타협않는 단호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위창은 과묵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말과 행동을 늘 은인자중하여 심중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기회를 얻으면 결코 방관하지 않는 기민성을 보이기도 했다. 생전에 술과 담배는 즐겼다.19 19년 3월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으로 왜경에 체포,실형을 받은뒤 술을 끊기까지 두주불사에 줄담배였다. 한국서화사연구의 혁혁한 공로자로서도 언론인 못지않게 이름이 높다.김석학의 대가이던 부친 적매 오경석의 아들답게 근대적 미술가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의 발기인이자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폭의 활동을 했다.위창이 서화사연구와 전서쓰기및 전각에 전념하기는 통한의 국망을 본 이후 천도교도사로 은거하면서였다. ○서화사연구에도 열성 그리고 고서화수집가로도 유명했다.한학과 김석학에 깊은 조예가 없이는 손대기 어려운 전서에 뛰어났다.전서로당대의 일인자였던 그는 예서를 씀에도 고격하여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전서의 높은 경지와 함께 전자를 돌도장에 새기는 전각에서도 근대이후 일인자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남긴 미술사적 공적은 「근역서화징」의 편저이다.「근역서화징」은 삼국시대이후 3백92인의 화가와 5백76인의 서가,그리고 시·화를 겸했던 1백49인의 기록을 시대순으로 정리한 책자를 말한다.필생의 대업적인 「근역서화징」은 오늘에도 그 방면의 유일하고 거의 완벽한 사전으로 학계와 사회의 길잡이가 돼있다. 육당 최남선은 이 책자가 출간되었을때 『암흑한 운중의 전광』이라는 표현으로 그 업적을 극찬할 정도였다.위창은 또하나의 편저업적인 「근역인수」를 남겼다.조선시대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화가 8백56인의 성명·아호·별호·자·이명의 도장 약3천8백종을 실제의 날인본으로 모은 것이다.한국전각예술의 역사적 흐름과 실제 사용의 행적을 보여주는 최대의 자료집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1천1백16점의 글씨와 그림을 묶은 「근묵」이며삼한의 와당을 모은것등 많은 문화재를 수집 정리했다.위창이 명현석유를 비롯한 옛서화가들의 필적을 이처럼 모아 정리한것은 단순한 취미에서가 아니었다.선인들의 문화유품이야말로 민족의 정신적 생명으로 인식,이를 아끼는 마음에서 였다.그것은 위창의 애국애족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이러한 정리작업은 광복을 맞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뒤 일제가 패망하고 국권을 찾으면서 위창은 팔순의 고령으로 서울신문 사장에 추대되었다.광복의 땅에서 우리말로 정론을 펴는 서울신문 초대사장에 취임한 그는 얼마 안되는 세월이었지만 노후의 기개를 불태웠다. 8·15 1주년을 맞아 지난날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 황제의 옥쇄를 민족을 대표하여 인수했던 위창­.그는 6·25로 가족과 함께 내려간 피란지 대구에서 1953년 4월 세상을 떠났다.그때의 나이 천수를 다한 90세였다.
  • 겨울철 온천욕/풀어지는 피로 살아나는 여유

    ◎전국 15곳 산재,38곳 새로 지정/대부분 관광지 소재… “일거양득”/40℃이하 수온 적절… 공복·음주후 입욕은 피해야 기온이 갑작스레 뚝 떨어지는 겨울 초입이다.동절기의 내습으로 주변은 살풍경해지고 마음마저 활발함을 잃고 움츠러만 든다.이럴 때 주위의 기온과는 아랑곳없이 뜨거운 지하수가 솟아나는 온천에 들면 으스스해졌던 심신이 기분좋게 풀어질 것 같다. 온천욕은 간단치 않은 병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고 따뜻하고 상쾌한 기분전환에의 기대가 큰만큼 그 여행 또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몇가지 효과적인 온천목욕법을 알고 떠나는 게 낫다.공복에 온천욕을 하면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음주후의 입욕도 피하도록 한다.온천성분의 효과를 충분하게 받으려면 너무 뜨겁지 않은 따뜻한 탕에서 장시간 목욕하는 것이 좋다.보통의 경우에는 40도 이하의 탕에 15∼20분간 느긋하게 머무르도록 한다. 의학적으로 40도 전후의 미온욕이 그이상의 고온욕보다 낫다고 권고된다.목욕횟수가 많다고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목욕후에는 찬물로 씻지말고 물방울만 간단히 닦아낸 뒤 30분이상 누워서 보온 휴식한다. 현재 전국에는 목욕및 레저시설을 갖춘 기존 온천지가 15개 지역이며 38개소가 새 온천지로 고시됐다.신 고시 지역도 몇곳에 부분적인 이용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기존지역을 위주로 유명온천를 간략 소개한다. ▲이천온천=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경기도내 유일의 온천으로 이천읍내에 있다.광천이 아닌 단순천으로 신경통 부인과 안질 외상성장해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설봉관광호텔에 이어 지난해말 미란다호텔이 완공돼 성업중이다. 도자기단지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과 신륵사 등이 가깝다. ▲온양온천=조선시대에 왕의 방까지 따로 두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천온이 50도내외로 비교적 높으며 빈혈증세가 있는 허약체질이나 임신부에게 좋은 철성분이 많이 녹아 있다.이용허가업소가 무려 1백40여곳에 달한다. 주변에 들러볼만한 곳으로 현충사 민속박물관 신정호수 아산방조제 등을 꼽을 수 있다. ▲도고온천=온양에서 10여㎞로 서쪽에 위치한다.온도는 높지 않으나 달걀삶은 냄새와 비슷한유화수소가 함유된 유황천으로 약수로 마시기도 한다.피부질환 안질 신경통 외에 무좀 당뇨 변비 등에 효능. 근처에 김대건신부 생가인 솔뫼성지와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이 있다. ▲덕산온천=온천수가 어머니 젖과 같이 유익하다하여 지구유로 불린다.2년전 40도이상의 온천이 새로 발견돼 뉴가야관광호텔이 세워졌다. 수덕사행 직행버스로 삽교천하차,군내버스이용.인근에 수덕사 윤봉길의사 사당 등을 찾을수 있다. ▲유성온천=피부미용에 효능이 있고 도시 안에 있어 이용객이 많다.현 이용허가업소가 18개이나 대전엑스포를 맞아 유성구청에서 추가로 공영개발중이다. ▲수안보온천=수온이 50도이상으로 높고 주변에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단순 유황라▦천으로 무색무취하며 매우 미끄러운 특징을 갖고 있다.위장병 충치예방에도 효능이 있다.이용허가업소 51개소. 월악산 충주호 문경새재 오로라밸리스키장 송계계곡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오색온천=양양 한계령을 넘으면서 북으로 설악산 대청봉,남으로 점봉산을 보는 주변경관을 즐기며 오색약수터와 함께 들른다.2개의 온천공 가운데 최근에 새로 굴착된 1개만 사용하나 이용업소는 10곳이다. ▲척산온천=설악산 울산바위가 바라보이는 속초시 노학동에 소재.불소 나트륨 라듐 등 10여종의 광물을 약간씩 함유한 알칼리성 단순천이다. ▲백암온천=유황성분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있으나 현재까지 가장 인기있는 유황온천이다.만성피부염 금속중독 동맥경화 기관지염 등에도 효능이 있다. 불영계곡 성류굴 월송정 백암산 등 관광지가 가깝다.
  • 성신여대 박물관서 조선시대 민화 도난

    지난 4일 하오 3시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신여대 교내 박물관 제3전시실에 전시돼 있던 조선시대작품 8폭 병풍의 민화가 예리한 칼로 도려진 채 없어진 사실이 13일 밝혀졌다. 박물관 직원 권근자씨(31·여)는 『4일 하오 3시쯤 제2전시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한뒤 제3전시관으로 가보니 꽃·책등이 그려진 가로 30㎝,세로 97㎝크기의 조선시대 민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 「사천왕사 왔소」 축제 성황/한국문화 일 전래과정 재현

    ◎어제 오사카서 재일동포 4천여명 참가/시대별 전통의상 입고 행진/황영조 등 올림픽 스타 참여 4천여명의 재일동포들이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일본 제일의 상업도시 오사카(대판) 중심가를 누볐다. 광개토대왕,담징등 고구려시대의 역사적인 인물로 분장한 재일동포들은 가마를 타고 그밖의 참가자들은 고구려시대의 군인·평민등의 의상을 입고 행진을 벌였다. 그 뒤를 이어 백제와 탐라,신라,발해,조선시대순으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한국문화의 일본전래과정을 재현하는 대규모 문화축제 「사천왕사 왔소」는 8일 하오 오사카에서 이처럼 장엄하게 펼쳐졌다. 연도에 늘어선 수만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경의와 환호를 보냈다. 올해로 3번째를 맞은 이 축제는 이날 하오 1시30분부터 오사카 중심가에 있는 이쿠다마(생혼)국민학교로부터 약 1.8㎞ 떨어진 사천왕사를 향해 대규모 행진이 시작되면서 막이 올라 3시간동안 계속됐다. 일본에 한자를 전한 왕인박사,일본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혜자스님·원효대사,일본과 공식무역을 시작한 세종대왕,이순신장군 등 역대 유명인물을 태운 70여대의 가마와 수레,15척의 고대 선박등이 시대별로 행진했다.행렬 중간 중간에 사물놀이패,취타대,궁중아악대 등이 전통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이번 축제에는 바르셀로나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선수등 24명의 올림픽대표선수들도 참가했다.
  • 불교중흥 보우대사 사상 재조명/봉은사 학술세미나

    ◎조선 억불정책속 명종때 꽃피워/주류유교의 지탄으로 「요승」 낙인 억불숭유책으로 불교가 배척됐던 조선시대에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하다 순교한 하응당 보우대사.그의 삶과 사상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7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발제는 ▲교단부흥의 역사성과 그 의의(김영태·동국대) ▲보우대사의 선사상(서종범·승가대) ▲보우대사의 유교관(송석구·동국대) ▲보우대사의 문학세계(황패강·단국대) ▲보우대사의 교관(이봉춘·동국대) ▲보우대사와 봉은사(김상영·승가대)등 6편.이들은 16세기 중반 멸절위기에까지 처했던 불교를 소생시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잇게해준 공로가 보우대사에게 있다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김영태교수는 불교가 조선 국초 11종에서 7종으로 축소되고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됐다가 중종때에 이르러 폐지됐음을 상기시키면서 중의 인증제도인 도첩제 마저 중지됨으로써 불교는 그 발흥이 원천적으로 봉쇄됐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보우대사가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하던 문정대비에 의해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것은 바로 이무렵이며 그후 17년간 많은 불교사적 업적으로 그를 조선불교부흥의 성사라고 평가했다. 이어 황패강교수는 그가 불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유교일변도 사류들의 극렬한 지탄으로 「요승」으로 낙인찍힌 역사사실을 들추어냈다.그럼에도 많은 저술과 높은 문학성을 들어 시문승 또는 학승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다.또 선종판사로서 그의 흥불업적으로 ▲국가공인 사찰로 지정해 3백여 사찰보호 ▲도첩제부활로 2년간 승려4백명 양성 ▲승과부활로 15년간 유능한 불교인물 배출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불사진흥이 전적으로 문정왕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성급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종교개혁가로서의 업적에 흠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석구교수는 보우의 불교중흥을 통해 임진왜란때 승군이 나올수 있는 기초가 닦여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그러면서 문정왕후는 12세에 등극한 어린 명종을 위해 불교에 심취될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본 송교수는 이때의 불교중흥은 문정왕후의 의지와 당시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이던 보우와의 자연스런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따라서 일본학자 고교정이 「하응당집해제」에서 보우의 불교중흥을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계략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김상영교수는 보우가 봉은사 주지로 부임한 15 48년부터 제주도로 유배돼 제주목사 변협에게 피살당하는 15 65년까지의 17년을 투쟁기(15 48∼51),안정기및 은퇴기(52∼61),몰락기(62∼65)로 나누어 시기별 활동상을 개괄했다.보우의 몰락과 죽음은 장성해진 명종이 대비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과 맹목적 호불행위를 금하라는 대신들의 끊임없는 요구에서 발단됐다는 김교수는 명종이 나중에는 태도를 바꾸게 됐고 마침내 65년 대비가 죽자 그의 운명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했다. 한편 봉은사는 이날 학술대회를 계기로 보우대사의 호를 딴 허응장학재단을 발족,보우사상의 체계적 연구를 위한 학자들에 대한 지원과 학술세미나등을 지속적으로 열기로 방침을 세웠다.
  • 진주박물관 「고대의 소리」 특별전

    ◎청동기∼조선시대 유물 4백여점 전시/선조의 무술적 정신세계 재조명 기회 국립진주박물관은 3일부터 12월3일까지 「고대의 소리」특별전을 연다. 이전시회는 주로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가운데 소리와 관련되는 4백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자리.주요 전시품으로는 청동제 각종악기와 방울,말장신구,통형동기,철제방울,흙으로 빚은 방물,방울달린잔 및 흙으로 빚은 주악인물상등이 있다.이밖에 통일신라시대이래 조선시대까지의 소리유물도 일부 선을 보인다. 이러한 소리관련유물들은 고대인들이 일상생활용품으로 사용됐을뿐아니라 주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샤머니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이처럼 각종 소리관련유물에 투영되어있는 우리조상의 의식세계및 샤머니즘적 정신세계를 재조명해 우리 문화재에 깃들어있는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조선왕실터 강화서 찾았다/서울대연구팀,1만8천평규모 유적 발견

    ◎17∼18세기 건립… 외침대비,행궁으로 축조/병인양요때 소실된 전각 등 왕실소재 확인 폐허속에 방치돼온 조선왕조의 행궁(행궁·임금의 별궁)등 왕실터가 최근 서울대 규장각 연구팀에 의해 확인됐다. 서울대 규장각(관장 한영우 국사학과교수)연구팀은 지난15일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일대를 답사하고 이지역에서 1만8천여평 규모의 조선시대 왕실터를 확인했다.규장각팀이 확인한 유적은 조선왕조가 잦은 왜란·호란으로 유사시 왕실로 사용하고 국가 주요기밀문서및 자료를 보관할 목적으로 17∼18세기에 걸쳐 건립했던 행궁과 외규장각(외규장각)등 궁전건물터 등으로 돼있다. 규장각팀의 이같은 왕실터 확인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돼온 외규장각등 왕실의 소재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냈을 뿐 아니라 당국의 무관심속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수확으로 평가됐다. 이지역은 조선조 고종3년인 1866년 병인양요때 건물 내부의 주요 도서가 프랑스 수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건물들이 불에 탄뒤 페허로 방치돼있다가 1977년정부의 강화도 전적지 성역화 사업때 극히 일부인 2천7백여평만이 「고려궁지」로 복원돼 사적133호로 지정됐다. 그당시 당국은 조선시대의 자료는 고려하지 않은데다 구체적 사료없이 구전에 의존하여 고려의 대몽항전을 기념하는 「고려궁지」를 건립하는 바람에 정작 조선왕조의 왕실과 전각들은 「고려궁지」의 울타리밖으로 밀려난 채 방치돼왔다. 현재 「고려궁지」에는 당시 이곳 지방관아건물 2채만이 복원돼있다. 규장각팀이 이번에 발견한 지역에는 조선왕조가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돌계단과 주춧돌,「왕자샘」으로 알려진 우물터가 잡초속에 파묻혀 있고 돌계단 바로 위에는 일제때 민족정기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기술학교건물이 모선교회의 간판을 내걸고 서있다. 한교수는 『강화도는 선사시대이래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로서 각 시대의 유물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조선시대에는 특히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로서 왕실차원에서 대역사를 벌여 왕궁과 전각을 짓는 등 제2의 수도역할을 했던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그러면서 『그당시 강화도수령이 거주하던 전각은 고려궁지내에 복원돼 있는데 정작 왕실터가 내버려져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규장각측은 가까운 시일내 이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발굴등 유적지 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강화도 문화원의 향토사연구위원인 홍재현씨(78)는 『현재의 고려궁지와 그 주변땅에는 왕실과 전각등 10여채의 건물이 조선왕조에 의해 건립됐으나 병인양요때 모두 불타버렸다』면서 『구체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한 이일대 조선왕실터의 조사나 복원작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이에대해 『77년 성역화사업때 고려궁지터에 초점을 맞춰 이곳을 사적지로 지정했다』면서 『현재의 고려궁지터 주변에 조선왕실터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만큼 학술적 검토를 거쳐 사적지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 대사경법회 6백년만에 재현

    ◎「우리는 선우」,철저한 고증거쳐/“사경 불자에 수행방편으로 널리 보급” 6일 구룡사서 불교중흥발원을 위한 대사경법회가 재가불자들의 참불교운동 모임인 「우리는 선우」(공동대표 남지심 박광서) 주최로 6일 하오2시 서울 양재동 구룡사 만불보전에서 개최된다.사경법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끊어졌던 역사의 맥을 6백년만에 재현,사경을 재가불자들의 수행방편으로 보급시킨다는 뜻에서 마련됐다. 이 법회를 주관하고 있는 「우리는 선우」의 박광서공동대표(서강대교수)는 『경전은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경을 하는것은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것과 같다』면서 『사경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되살리기 위해 이 법회를 마련했다』고 말한다.그는 이어 『사경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바로 수행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몸이 붓이 되어 부처님 가르침 남김없이 새기오리다」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이번 법회는 석주큰스님등 10명의 대덕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철저한 고증을거쳐 장엄한 의식으로 치러지게 된다.특히 이번 법회에서 사경한 「반야심경」은 미륵도량의 본산인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부처님 좌대안에 안치하게 된다. 붓으로 경의 한자한자를 베끼는 가운데 경의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 사경법회.고려시대까지는 외침,재해,한발등 국난의 극복을 위한 발원시에 행해졌었다.그후 조선시대 억불책으로 중단돼오다 최근 일부사찰에서 스님위주로 개인기도 차원에서 행해져왔다.그러나 고증을 바탕으로한 완벽한 사경법회의 재현은 이번이 최초로 있는 일이다.연락처 606­2325∼6
  • “인천 닭소리 산동까지” 인접성 강조(노 대통령 방중여로)

    ◎“북방외교 북경서 매듭짓게돼 보람”/양 주석,「손에 손잡고」 연주맞춰 손뼉 ▷단독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과 양상곤중국국가주석은 28일상오 단독·확대회담의 순서로 1시간45분간에 걸쳐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을 중심으로한 양국관계와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동북아정세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 이날 정상회담은 당초 상오 10시15분(한국시각 상오 11시15분)부터 10시45분까지 30분간 단독회담,10시45분부터 11시35분까지 50분간 확대회담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두 정상간의 단독회담이 10시20분부터 11시40분까지 80분간이나 진행되는 바람에 확대회담은 11시40분부터 12시5분까지 25분만에 종료. 이 때문에 단독회담에서 양국관계,확대회담에서 동북아정세와 국제정세를 논의키로 했던 당초 계획과 달리 두 정상이 단독회담에서 이 문제를 대부분 논의하고 확대회담에서는 논의결과를 정리하는 형태로 마무리. 인민대회당의 복건청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노대통령은 중국방문초청에 사의를 표명하고 『북경시민의 역동적인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피력했고 양주석은 『많은 북경시민들이 노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연도에 나왔다』고 소개하며 『이번 방문을 환영한다』고 언급. 노대통령은 『북방외교를 북경에서 매듭짓게 되어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두 나라간의 교류와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양국간에 분야별로 정기적 각료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의했고 양주석은 『바람직하다』며 찬성의 입장을 표시. ▷오찬연설◁ ○…노대통령은 28일 하오 숙소인 조어대 방▦원에서 한중경제인 1백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양국간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상기시키고 전통적 우호관계의 회복등 새로운 협력강화방안등에 대한 입장을 피력. 노대통령은 1시간30분간 계속된 이날 오찬에서 『산동지역에서 「이른 아침이면 한국의 인천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개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렇다면 한국의 서해안에서는 맑은 날이면 청도항의 공장굴뚝이 보일 것』이라고 두나라의 지리적 인접성을 강조한뒤 『이런 두나라 사이가 비행기로 1시간 남짓한 거리로 좁혀지는데 수십년이 걸렸다는 것은 역사의 모순』이라고 지적. ▷자금성 시찰◁ ○…노대통령은 28일 하오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청나라말까지 5백년간 역대 중국왕의 거처및 집무실이었던 자금성을 공식수행원들과 함께 간소복 차림으로 약1시간동안 시찰. 노대통령 내외는 고궁박물원장의 영접을 받으며 자금성 제2문인 태화문앞에 도착,『한중수교가 이뤄지자마자 한국의 국가원수를 손님으로 맞게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인사를 받고 『세계적으로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중국에서 제일 잘 보관된 건축물을 보게되어 감회가 깊다』고 방문소감을 피력. 노대통령은 자금성내 옛왕의 집무실,연회장,침실등을 구석구석 돌아보면서 곳곳에 얽힌 옛 얘기를 경청했는데 왕이 과거를 주재했다는 설명등을 듣고는 『우리 조선시대에도 똑같은 제도가 있었다』며 옛날의 인재등용방법에 깊은 관심을 표시. ▷만찬◁ ○…노대통령은 이날 저녁 8시30분(한국시각)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양주석 주최 공식만찬에 참석,양국 우의를다지는 것으로 방중 이틀째 일정을 마감. 노대통령과 부인 김옥숙여사는 이날 만찬장 입구에서 양주석및 진모화인민상무위원회부위원장(여)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뒤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 애국가와 중국국가의 연주에 이어 연단에선 양주석은 『본인은 노대통령 내외분의 중국방문을 환영하고 중한 양국 우호관계를 위해,노대통령 내외의 건강을 위해,이 자리에 참석한 숙녀신사 동지들과 함께 잔을 들 것을 제의합니다』며 건배. 이에대해 노대통령은 『양주석의 따뜻하고 성대한 환영에 감사하며 양국간 수교와 오늘 정상회담은 역사의 순리요 지도자를 위시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위대한 결단으로 생각한다』면서 『지금부터 양국의 번영과 동북아번영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자』고 강조.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결코 불행했던 역사를 되풀이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양주석의 건강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건배합시다』고 답사. 이날 공식만찬은 취재가 허용된 적이 없다는 중국외교부의 주장과 한국언론은 모든행사를 취재해야 한다는 우리측 입장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진 끝에 5분정도 취재가 허용됐고 만찬사도 중국측은 관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으나 우리측 요구로 간략한 건배사로 대체돼 진행. ○…만찬이 끝날 무렵에는 88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가 연주되자 양주석이 박수를 치기 시작,참석자 전원이 박수를 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며 하진량 중국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과 장백발 북경시 부시장은 노대통령에게 잔을 권하며 2000년 올림픽의 북경유치에 대한 지원을 은근히 요청. 한편 중국국가의 작곡자는 정율성이라는 한국인으로 밝혀져 화제. 이 곡은 항일전쟁당시 작곡돼 애창되다 건국후 중국국가로 정식 채택됐다.
  • 외언내언

    지중해란 문자그대로 육지에 둘러싸인 해양으로서 독립성을 결여한 바다를 통칭하는 이름이다.북극해가 있고 유럽지중해가 있으며 홍해·발트해·걸프만등이 해양학적으로 지중해에 속한다.그럼에도 지중해 하면 유럽지중해를 생각하게되는것은 그것이 워낙 유명한 대표적 지중해이기 때문일 것이다.◆유럽지중해에서 보듯 지중해는 연안국이 많아 해양에대한 이해대립이 심하고 지배권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장화하는 경우가 많다.승자는 해상교통과 연안의 패권을 장악,거대한 해양제국을 형성하기도 한다.유럽지중해의 고대로마와 그리스·이집트·터키·스페인등의 문화와 역사는 그것을 잘보여준다.◆우리의 동해도 따지고보면 조그마한 지중해의 하나라 할수있다.극동의 한반도와 러시아·사할린·일본열도등으로 둘러싸인 내해인 것이다.남북길이 1천7백㎞,동서최장폭 1천1백10㎞에 면적은 1백7만㎦로 한반도의 약5배에 해당한다.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에 「조선해」또는「창해」라 불렀으나 해방후부턴 동해라 통칭해왔다.◆역시 연안국인 일본엘가면 「일본해」란 생소한 이름에 접한다.태평양연안의 바다쯤으로 생각하다 그것이 동해의 일본이름인 것을알고는 어처구니 없어지는 것이 우리들이다.일본해란 이름을 처음쓴것은 러시아항해가 크루젠슈테른의 해도(1815년).식민지시대의 일제가 그것을 정착시킨 것이다.또하나의 일제청산이란 의미에서도 제이름을 찾아주어야 할것이다.◆유엔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문제를 제기한것은 여러가지로 참잘한 일이다.이후 동해의 옛이름이 한국해였음을 보여주는 고지도들이 연이어 발견되고있다.러시아의 극동과 중국의 동북지역개발러시에 한국의 대중·러교역증대.그냥 있을리 없는 경제대국 일본의 참여등 문자그대로의 「환동해시대」가 개막되려 하고있다.당연히 새로운 이름이 있어야할 것이다.일본해는 물론 한국해 혹은 동해도 좀이상하다.유난히 푸르고 큰바다란 고래의이름 창해(BLUE SEA)는 어떤가.
  • 대구 효성여대 한국전통문화연(지역문화를 가꾼다)

    ◎용비어천가 한문풀이 6년째/교수 15명이 매주 윤독… 독해작업/「완역 용비어천가」 상권 이미 출간 용비어천가는 세종27년(14 46년)조선조 창업을 찬양하기 위해 지어진 서사시로 이 가운데 국문가사 1백25수는 잘 알려져 있으나 한문주석은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미개척분야로 남아있다. 효성녀대 한국전통문화연구소(소장 홍경표)는 이처럼 연구의 불모지대로 남아있는 「용비어천가」의 한문주석 역해작업을 6년째 벌여오고 있는 단체로 이지역 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용비어천가」는 역사·국문학·민속학 등 모든 영역에서 조선시대의 사적을 담고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상대사의 사료를 다양하게 인용,당시의 한·중 양국사를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대학 연구소팀의 업적이 남다르게 평가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연구소가 지금과 같은 「용비어천가」의 역해작업을 벌이게 된 계기가 마련된 것은 지난 83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문과 박은용교수를 좌장으로 김동소·홍재휴교수(이상 국문과)와 최광식교수(사학과)등 몇몇 뜻있는 교수들이 한문본 「삼국유사」를 함께 읽고 토론을 벌이자는 발의로 시작된게 그 시초다. 모임의 이름을 「삼국유사연구회」로 가칭한 회원들은 그해 10월4일 첫 윤독회이후 85년7월말까지 80차례에 걸친 모임끝에 「삼국유사」를 완독한데 이어 이후 86년5월까지 「고려도경」을 완독해냈다. 이러한 학구적 분위기를 학교측으로부터 인정받아 지난 84년 현재의 「한국전통문화연구소」로 발족한 후 86년5월에 「용비어천가」를 읽기 시작했다. 초기의 「삼국유사」윤독때 역사·국문학·사학·철학·미술사학 관련교수들이 참여했던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어·중어중문학·경제사·한문학 교수들이 가세해 한줄도 빠짐없이 윤독에 참여했다. 지난 8일까지 무려 2백66차에 걸친 윤독끝에 총10권중 9권째를 완독했으며 올연말까지는 「용비어천가」윤독이 마무리될 계획이다. 구성원들은 모두 상당한 수준의 한문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매주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교수만 해도 15명 정도. 이들은 매회 윤독때마다 한문주석을 한자 한자 축자적으로 해석해가며 열띤 토론을 벌여 애매한 부분을 최대한 정확하게 풀어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연구소측은 지금까지 논문집 「한국전통문화연구」를 제8집까지 펴낸 것을 비롯,「용비어천가」윤독회의 결과를 정리한 「완역 용비어천가」상권을 출간했으며 올연말 「용비어천가」윤독이 끝나는 대로 중·하권을 연차적으로 펴낼 계획이다. 연구소측은 또 「한국유학의 철학사상」(성교진)「북행가연구」(홍재휴)를 한국전통문화 총서로 출간했으며 「중국한선방언어연구」(김동소·최의수)도 발간 준비중이다. 한편 연구소는 올연말 「용비어천가」윤독이 끝나는 대로 「동국여지승람」윤독을 시작할 예정인데 「동국여지승람」이 방대한 문헌인 점을 고려,앞으로 3∼4년에 걸쳐 8도지리지중 경상도편 지리지만 다룰 방침이다. 홍경표소장(국문과)은 이같은 연구소의 작업에 대해 『소박하지만 필요한 작업』이라고 전제한후 『다양한 한문역해작업에 지리학등 자연과학분야의 연구자를 모두 포함시켜나갈 방침이며 현재 각 대학이나 연구소간 학문적 연계가 잘 안되고 있지만상호정보교환 등의 협조를 통해 고전국역의 완벽한 바탕을 닦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조선초기 경질토기 구덩이 발굴(단신패트롤)

    ◎광주,백자·기와·주춧돌등 출토 ◇지금까지 초기 철기시대­고려시대에만 사용된 것으로 인식돼 왔던 경질토기가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대박물관은 3일 광주시 북구 문흥동 택지개발지구에서 1개월여동안 발굴작업을 벌인 결과 조선시대 초기의 집터,기와집의 건축자재및 그릇등을 폐기한 구덩이등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특히 건축자재·그릇등을 폐기한 구덩이에서 경질토기가 분청사기를 비롯해 백자·기와·전돌·주춧돌등과 함께 발굴됨으로써 지금까지 초기 철기시대­고려시대에만 사용된 것으로 인식돼온 경질토기가 조선시대에도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됐다. 또 함께 출토된 기와에는 1465∼1487년에 사용했던 「성화」라는 연호가 찍혀있어 분청사기가 사용됐던 연대와 함께 출토된 유물들의 제작연대를 보다 구체적으로알 수 있게 됐다. 이에앞서 국립광주박물관이 지난해 11월부터 한달간 실시한 광주시 북구 충효동 가마터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성화」라는 연호가 쓰인 분청사기 귀얄문 묘지(묘앞에놓는 도자기 판)가 출토됐었다.
  • 조선 청화백자가마터 발견/불창기둥 갖춘 상단구조 첫 확인/광주

    【광주=이동구기자】 경기도 광주군 우산리 272의2 밭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가마 상단구조를 갖춘 조선조 초기시대의 청화백자 가마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8일 이화여대 발굴조사단(단장 최숙경 박물관장)이 발견한 조선시대 중앙요지로 추정되는 백자 가마터는 5.1m 간격의 연실식 등요로 구성됐으며 봉통(일명 화통)길이 4m,전체 길이 24.5m에 가마폭 1.6∼1.7m 규모이다. 최초로 확인된 가마 상단에는 7개의 연기배출구와 불창기둥이 설치돼있고 연기와 열이 돌려나가도록 배출시설이 갖춰져 있어 공기의 역류현상을 막고 폐열을 이용해 초벌구이를 한 시설로 추정되고 있다. 가마터에서는 천·지·현·황이 새겨진 어용지기와 칠보문·운문·용문의 청화백자가 발견돼 조선초 15세기후반 또는 16세기초의 어용지기를 제작하던 관요임이 확인됐으며 봉통위에는 자기를 굽기전에 행해지는 고사를 지낸 흔적도 발견됐다. 발굴 조사단은 지난달 9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이 가마터에 대한 지하유구 여부 탐색과 학술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초조본 고려대장경 국보 지정(단신패트롤)

    ◎문화부/「도갑사 동자상」등 8건은 보물로 ◇문화부는 28일자로 초조본 고려대장경 1건을 국보로,영암 도갑사소장 동자상등 8건을 보물로 각각 지정했다. 국보 제273호로 새로 지정된 「초조본유가사지론 권제십오」는 고려 현종때 국난극복을 위해 만든 6천여권가운데 하나로 이들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때 거의 불타 없어졌다. 보물 제1134호로 지정된 「도갑사소장 동자상」은 코끼리와 사자의 등위에 걸터앉은 동자를 조각한 우수한 조선시대 동자상이다. 이밖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보물 제1135호 정사공신조온사여왕지 ▲〃제1136호 입학도설▲〃제1137호 〃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권제칠 ▲〃 제1138호 감지금니묘법련화경 권제칠 ▲〃 제1139호 백지묵서묘법련화경 권제칠 ▲〃 제1140호 묘법련화경 권제삼 ▲〃 제1141호 한천사출토 김동자물쇠외 일괄
  • 조선시대 조운선/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8)

    ◎세관등 지방물산 서울로 운반한 관선/배밑부분 편편해 최고 1천석까지 실어 조선이 건국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성으로 옮긴 이유중의 하나가 조운의 자연폐쇄에 있었다.개성을 굽이쳐 흐르던 예성강에 토사가 쌓여 선박들의 운항과 접안이 어렵게 되었다.이로 인해 지방의 세곡과 물산들이 적기에 도착되지 못하여 개성은 생필품 부족과 물가의 폭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조운이 편리한 한성을 수도로 정하게 되었다.수량이 많고 물맑은 한강은 조선을 부흥시킬 조운로로 이용되기에 제격이었다. 지금처럼 육로가 개발되지 못한 시절에 각 지방의 물산이 쉽게 유통될 수 있는 방편은 수로였다.작게는 나룻배로부터 크게는 병선이나 조운선이 동원되어 많은 물량을 적은 노동력과 저렴한 비용으로 먼 지방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특히 조운선은 국가에서 운영했던 관선으로서 각처에서 수납한 세곡과 중앙정부나 궁궐에서 소용되는 일용품이 거의 조운선으로 운반되었다.조운선은 쌀 천석·칠백석·육백석을 적재하는 세 종류가 있었는데,이를 운행하는 조졸은 겨우 22명·20명·18명 정도였으니 당시 조군의 항해술과 선적술은 대단한 것이었다.그 결과 조운선이 정박하는 나루와 포구에는 관련관리와 인부,그리고 상인들이 모이게 되고 이들의 식사와 침식을 위해 또 다른 주민들이 모여들게 되었다.처음에는 조그마한 마을로 시작된 나루와 포구는 얼마 되지않아 번창한 도시로 변하게 되었다.거기에는 다양한 해산물과 각처의 특산물이 쌓여 보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고 정겹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조운선이 정박하여 도시로 발전한 곳 중 대표적인 예는 서울의 용산과 마포,충청도의 충주,전라도의 덕성·법성·영산포,강원도의 원주·춘천,황해도의 금곡·조음,그리고 평안도의 안주·의주·삭주 등이 있다.조운선의 모양은 노와 범을 사용한 한선으로서 짐을 많이 싣기 위하여 선체의 밑부분이 편편하고 앞부분이 넓적한데 이는 모래와 뻘에도 쉽게 접안하기 위해 고안해낸 우리 선조들의 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 조선시대회화전/고서화감상전/고미술명품전 “풍성”

    ◎조선/정선·이등 등의 진품90점 공개/고서/퇴계·율곡서간문·민화등 다채/당대의 화풍·변천사 본격 조명기회 하한기 화랑가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높은 고미술명품전이 인사동의 두 화랑에서 마련된다. 대림화랑이 15∼25일에 펼치는 「조선시대회화전」과 학고재가 매년 여름에 꾸미는 특별기획 「고서화감상전」(23일∼8월31일)이 그것들로 고서화에 관한 한 오랜 경륜과 식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두 화랑대표가 자신있게 내놓는 전시회다. 이들 전시회는 양도소득세법 시행을 앞두고 고미술품들이 개인 수장고에 묻혀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마련된 명품전이어서 고미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같다. 대림화랑의 「조선시대회화전」은 화랑대표 임명석씨가 10년전부터 추진해 오다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조선시대 명서화가들의 미공개작품을 조선왕조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망라하는 것으로 90점이 공개된다. 이중 왕실출신의 화가 이징의 「수묵화조도」,은호 이함의 「쌍응도」,동국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되는 정선의 「해주허정도」,조희용의 「백매도」,장승업의 「영모절지도」,김규진의 「장생오우도」등 대부분이 미공개 진품들이다. 미술사가 안휘준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와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동양미술사)의 고증을 거친 이 기획전은 당대의 화풍과 변천사를 학문적 토대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대림화랑은 또 이 전시회와 함께 태조원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 화가들의 교유기,작품일지등을 다룬 70쪽분량의 연표와 전시작품의 해설과 원색도판을 실은 2백10쪽의 대형화집 2천부를 발간했다. 학고재의 고서화 감상전은 「여름미술관­품위있는 글씨,소담한 옛그림」이란 제목으로 마련되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특별히 겨냥해서 꾸며진다. 어른은 물론 학생들도 관심있게 고미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아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교훈적인 글씨와 재미있는 내용의 민화들을 주로 장만했다. 출품작은 여섯부류로 구성되어 조선중기에서 구한말,근대에 이르는 화가들의 그림과 조선후기 서예인들의 서예작품과 조선시대 명현 대신 문인들의 간찰,조선후기의 민화,무낙관그림,청나라의 서화등이 망라된다. 1백36점의 출품작중에는 퇴계와 율곡의 서간문에서부터 김옥균 박영효등의 작품,근대6대가인 청전,의재등의 작품,중국화가 장대천등의 작품들이 고루 있다. 옛정취 물씬 풍기는 품위어린 글씨와 소담한 그림속에서 모처럼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가야문화/영­정조전/한국문화재 해외전 전문화

    ◎가야문화전… 30일부터 일 4곳 순회/영·정조전… 새해 뉴욕·워싱턴·LA서/국립박물관,종합전시 형식 지양/한시대 집중소개… 외국인 이해도와 오는 30일부터 일본에서 「가야문화전」이 열리는데 이어 내년에는 미국에서 「조선시대 영·정조전」이 예정되어 있는등 한국문화재의 해외전시가 점차 전문성을 띠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문화재 해외기획전은 지난 76년 일본을 시작으로 79년부터 81년까지 미국,84년 영국과 서독에서 열린 「한국미술 5천년전」등 한국사를 망라하는 종합전시회가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만해도 한국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시각은 「중국과 일본문화의 아류」정도로 인식되어있던 상황이어서 무엇보다도 전시회를 통해 한국이 뿌리깊고도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국제사회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다 서울올림픽등을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대별전시회 혹은 테마전시회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92 한국문화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가야문화전」은 단순히 한국문화를 일본에 소개한다는 차원을 넘어 한 시대를 떼어내어 보여줌으로써 왜곡되어 왔던 역사를 바로잡아 준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전시회는 8월8일까지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데 이어 8월25일부터 9월20일까지는 교토국립박물관,10월2일부터 11월3일까지는 후쿠오카현립박물관에서 열리는등 4개월여동안 일본의 3개도시를 순회한다. 가야전에는 가야의 모체가 되는 기원전 1세기의 원삼국시대부터 서기 6세기까지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등 각종 장신구와 무구·마구·토기류등 3백3건,4백37점이 출품된다. 이 전시회에는 특히 일본에서도 출토되는 형태의 철제갑주등 40여점의 철제품에 비중을 두어 가야의 철제무기와 이의 제조기술·인력등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국가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도록 했다. 매년 가을부터 1년여동안 미국에서 열리는 「영·정조전」은 국립박물관이 마련한 해외전시의 특이한 사례로 기록될 것같다. 이 전시회는 미국의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계획하고 있는 한국페스티벌의 하나로 뉴욕과 워싱턴 로스앤젤레스의 3개도시를 순회한다.이 전시회는 지난달 중순 이단체서 로버트 옥스난회장과 마셜 버튼부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개회를 확정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당초 이 전시회도 「한국미술5천년전」같은 한국문화재의 정수로 꾸며줄 것을 국립중앙박물관측에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대해 한병삼박물관장은 『일반적인 한국문화가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소상히 소개되어온 만큼 한국미술 5천년전같은 전시회는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면서 『대신 한국이 근대사로 접어드는 징검다리에 해당하고 문화적으로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영·정조시대전을 열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 전시회의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왕실의 생활」 「양반의 생활」 「서민의 생활」등의 테마를 정해 당시의 생활양식과 당시인의 사고를 표현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형태의 전시회는 또국보급 문화재만으로 전시회를 가질 때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크게 줄인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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