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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균관대 한문학과 뿌리찾기 운동

    ◎“조선 성균관이 모체” 자료토대 증거수집 작업/“학점평가 방법도 성균관 식으로” 이색 주장도 「우리 대학의 뿌리는 조선시대 성균관」 뿌리를 찾아 머나먼 역사탐방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가 바로 그곳. 성균관이 1398년 조선시대 때 세워진 국립대학성격의 인재양성기관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성균관대는 모교의 전통을 멀리 조선시대에서 찾으려 한다. 이 일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한문학과 이민홍(45)교수. 이교수는 기존의 자료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를 토대로 확실한 증거를 찾는 데 열중이다. 그는 성균관대의 뿌리가 조선시대 성균관이라고 확신한다.둘간의 「연계성」이 가장 큰 이유.조선시대 성균관은 한·일합방때 「경학원」으로 강등됐고 이후 명륜학원·명륜전문대학 등을 거쳐 46년에 지금의 성균관대가 됐다는 것이다.당시 전국유림대회에서 「성균관전통계승」의 기치 아래 설립됐다고 한다. 따라서 성균관대의 초기 입학생은 각 지방 향교출신으로 제한했다.옛 성균관은각 도 관찰사의 추천을 통해서만 입학시켰기 때문.더구나 비천당·대승전·명륜당 등 옛 성균관건물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다. 이교수와 학생들은 「전통찾기운동」도 펼치고 있다. 제일 특징적인 게 학점평가다.대학은 일률적으로 A·B·C 등으로 학점을 매기고 있다.그러나 이교수는 성균관에서 사용하던 방식을 채택할 것을 주장한다.통·약·조·불로 하자는 것. 이교수는 『우리 것이 이렇게 좋은데 왜 굳이 남의 것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말했다.〈박준석 기자〉
  • 중견배우들 「관객몰이」 나섰다

    ◎무르익은 관록연기로 침체 연극계에 활력/모두가 “내로라” 하는 엄청난 잠재력/팬들 기대 한껏 고조/전무송­「굿닥터」서 인간 내면심리 노련하게 소화/장두이­광기어린 프로근성… 「고래사냥」서 왕초역/김갑수­9월공연 「님의침묵」 한용운역 삭발 열연 역시 관록있는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은 즐겁다.엄청난 잠재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르익은 연기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물론 관객들을 향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 연극가에서는 내로라하는 중견배우들이 잇따라 작품에 출연,「관객몰이」에 나서고 있어 침체된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미 공연을 마친 「어머니」「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현재 공연중인 「굿닥터」외에도 다음달 28일부터 공연에 들어갈 뮤지컬 「고래사냥」,9월10일부터 선보일 「님의 침묵」등이 그 작품들. 지난 5일부터 대학로 연강홀에서 공연에 들어간 「굿닥터」는 중후한 느낌과 친근한 매력으로 30여년간 연극무대를 지켜온 전무송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무대.TV에도 가끔 출연하지만 진가는 역시 연극무대에서 빛난다는게 연극계의 중론.표정연기를 통한 인간내면의 심리표현에 남다른 그는 실존인물인 안톤 체호프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극중 화자인 체호프의 배역을 노련하게 끌어간다. 오는 8월24일부터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일 「고래사냥」(최인호 원작,이윤택 연출)의 출연진은 화려한 면모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중에서도 파리의 피터부룩극단에서의 배우활동,세계적인 연출가 그로토우스키가 이끄는 극단에서의 주연배우 생활,뉴욕에서의 무용그룹 「올댄스디어터」 창단 등 국내 연극인으로는 드문 경력의 소유자인 장두이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16년간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국내에 정착한 이후 자신있게 나서는 이번 배역은 걸쭉한 개성의 왕초역.프로적 근성과 열정으로 광기가 느껴질만큼 강한 힘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그가 국내에서 재주를 인정받아온 남경주 송채환등과 흥있는 호흡을 맞추게 된다. 9월10일부터 공연될 뮤지컬 「님의 침묵」역시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기는 마찬가지.진용은 최근 영화 「지독한 사랑」과 TV드라마 「찬란한 여명」등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갑수와 중견연기자 최주봉·김기섭 등.특히 이 무대에서 오랜만에 본 고장인 연극판에 돌아와 역사적 주역인 만해 한용운으로 분할 김갑수의 등장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드라마 「찬란한 여명」에서 조선시대 개화파의 주역인 승려 이동인역을 맡아 삭발을 감행했던 그가 다시한번 삭발 열연을 다짐하는 야심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미 막을 내린 연극 「어머니」에서 지난해 KBS연기대상 수상자인 탤런트 나문희가 출연,한국적 어머니상을 잘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은데다 연기파 최종원이 「옥수동에…」에서 세련된 몸짓으로 역량을 과시한데 이어 줄이은 연기파들의 출연 예고는 연극팬들의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김재순 기자〉
  • 경남 충무시 문화동 돌벅수(한국인의 얼굴:74)

    ◎괜스레 인상 쓰고 머쓱한 웃음을… 경상남도 충무시는 아름답기로 이름난 항구도시다.한려해상국립공원 동쪽 관문에 자리했다.이 미항에 들어서면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건물 세병관(보물293호)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세병관이 눌러앉은 동네는 문화동이다.그 문화동에는 세병관 말고도 충무의 명물인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7호 돌장승 1기가 지킴으로 서 있다. 돌장승에 새긴 글씨를 읽어보면 본래 이름은 토지대장군이다.또 뒤쪽에는 「광무십년 병오팔월 동락동립」이라는 글을 새겼다.그러니까 1906년8월에 동락동에서 세웠다는 내용이다.동락동은 오늘날 충무시 문화동의 옛 지명인지라,장승은 아직도 더러 동락동벅수로 호칭되었다. 이 돌벅수는 돌장승시대를 사실상 마감한 마지막 조형물일 것이다.장승을 세우고 나서 곧바로 시작한 일제 강점기의 식민통치시대는 이 땅의 모든 기층문화를 미신으로 몰아 붙였다.그래서 더이상 태어나지 않았고,또 돌장승을 만들 민중의 여력도 없었다.그런 의미에서 문화동 돌벅수는 채 가시지 않은 근대사의 잔영을 배경에 깔고 전환기에 태어난 마지막 민간신앙 대상물이다. 돌벅수는 탕건같기도 한 벙거지를 썼다.훤하게 드러낸 이마 아래쪽에 골 깊은 주름을 잡았다.괜스레 인상을 쓰느라 주름을 잡았지만,벅수 스스로가 먼저 놀란 눈을 했다.눈알(안구)과 눈꺼풀(안검)을 너무 뚜렷이 구분한 나머지 눈꺼풀이 마치 가락지 처럼 둥글게 도드라졌다.놀란 눈을 했기 때문에 눈이 좀 튀어나왔다.그러나 다른 돌장승들에 비해 그리 큰 눈은 아니다. 돌벅수의 코는 사람 코와 흡사했다.코가 크게 과장되었을 뿐 콧방울은 사람 코를 빼닮아 사실적으로 처리되었다.반쯤 열어보인 입 역시 크다.입이 하도 커서 초생달꼴의 입술이 위로 한참은 올라갔는데,그 대신 팔자꼴(팔자형)로 불쑥 튀어나온 송곳니는 휘어 내려왔다.수염은 세 갈래로 내려오면서 오른쪽으로 쏠렸다.귀는 부처의 귀만큼 크고 실했다.그 표정을 말하면 무섭다기 보다는 싱겁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러니 돌벅수의 본심인들 사악할 리 없다.그저 만들어 세운 이들의 뜻을 쫓아 허하게 비어있는 쪽을 몸으로 막아주고 있다.그야말로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이는 지세가 약한 곳은 흙으로 돋우고 흉한 곳은 인위적으로 조형물을 세워 길한 땅을 만들고자 한 풍수신앙에 유래한 것이다.따라서 문화동 돌벅수는 비보장승이라 할 수 있다. 이 돌벅수는 국가로부터 중요민속자료 지정을 받고나서 팔자에도 없는 진한 화장을 했다.1970년의 일인데,동네에서 돌벅수를 온통 페인트로 칠해버렸다.중요성을 더 부각시킨다는 소박한 마음이었으나 말썽이 되었다.그 뒤에 벗겨내기는 했지만 눈알과 눈꺼풀,눈썹,귀,수염에는 아직도 화장기가 남아있다.〈황규호 기자〉
  • 한국화의 묵향을 느껴보세요/이진호 포항공대 정보통신연 전임연구원

    ◎김홍도 풍속화에 민화까지… 원하는 그림 복사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것은 지난 1988년 올림픽 때 유행하던 말이었다.한국적인 웹 서비스로 오늘은 묵향이 그윽한 한국화의 세계로 여러분을 인도하고자 한다.이 웹 서비스는 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제공하고 있다. 우선 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로 연결하려면,http://firefox.postech.ac.kr/로 연결하면 된다.그러나 이곳에는 영문으로 된 소개와 메뉴들이 있어,다소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다.오늘은 한국화 감상을 위한 시간이므로,한국화만을 보기 위해서는 한국화 홈 페이지(http://firefox.postech.ac.kr/photos/paint/)로 연결하면 된다.왼쪽의 조그마한 창에는 화가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오른쪽에는 조그맣게 그림들을 보여준다.이제 원하는 작가와 원하는 그림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우선 민화를 구경하자.우리 민족의 상징인 호랑이라는 주제로 그림들이 모여 있다.길조를 상징하는 까치와 호랑이의 주제는 조선 이후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여기 그 한 작품을 내 컴퓨터로 다운로드 받아 보았다.디지털 데이터의 특성은 아무리 복사를 하여도 그 품질에 있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웹 브라우저로 넷 스케이프 2.02이상을 사용한다면,오른쪽 마우스 단추만으로 보고 있는 그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우선 보고 있는 그림 위로 마우스 커서를 옮긴 뒤에,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르면 여러가지 메뉴가 등장하는데,여기에서 그림 저장(Save Image)를 선택하면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 화가인 김홍도의 작품은 거의 수집되어 서비스되고 있다.몇달전,중앙박물관에서 김홍도 풍속도 전을 열었었는데 필자는 아깝지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하지만 김홍도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다만,진품 감상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아쉬울 뿐이다.
  • 독도와 대마도/한일관계사연구회 지음(화제의 책)

    ◎한일 영토인식의 편차 재검토 한·일 양국간 영토인식의 편차를 역사적으로 재검토한 책.「세종실록지리지」「숙종실록」등 한국측 사료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태정관 지령」등 일본측 사료를 두루 검토,당시 우산도·송도 등으로 불리던 독도가 조선과 일본 양국 모두에 의해 조선 영토로 인정되었음을 밝힌다.또 일본은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눈독을 들여 「외국영해수산조합법」(1902년)을 제정,울릉도를 강제점령했으며 1905년에는 「시마네현고시」를 공포해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도 펼친다. 대마도 문제와 관련,이 책은 대마도는 고려 중엽부터 진봉관계에 의해 우리나라에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조선측에서 대마도인들에게 관직을 제수했던 수직인제도도 양국관계를 규명하는 생생한 사례로 제시된다.이러한 종속관계는 대마도의 외교권이 메이지 정부에 의해 박탈될 때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견해.이밖에 조선시대에는 대마고토의식,대마번병의식,대마속주의식 등이 팽배했을 정도로 「대마도는 조선땅」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는 점도 밝힌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 주장은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강변하는 데 비하면 역사적으로 훨씬 연원이 깊고 입증자료도 풍부하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지성의 샘,1만원.
  • 양반/미야지마 히로시 지음(화제의 책)

    ◎일 학자가 본 조선조 양반제도 조선시대 양반제도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고찰한 교양서.일본의 대표적인 한국사 연구자 가운데 한명인 지은이(도쿄대 교수)는 「양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해 양반계층의 형성과정과 경제적 기반,일상생활 등을 차근차근 짚어간다.안동 권씨 권벌가문의 가계보,분재기(재산상속 문서)등 옛 양반가 고문서와 「쇄미록」「미암일기」등 사대부계급의 일기를 기본사료로 활용,실증적 가치를 더해준다. 그동안 통념상 양반은 생산활동과는 완전 유리된 기생적인 존재로 간주돼 왔다.그러나 이러한 양반상은 조선후기에 성립된 것으로,조선전기의 재지양반층은 노비를 지휘 감독하며 직영지를 경영하던 농업 경영자였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이 사회 전체에 스며든 것이 18세기 이후라고 밝히고 있는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전통과 근대의 관계에 특히 주목한다.19세기 후반 이후 근대를 놓고 볼때 유교적 전통은 소멸의 길을 걷긴 했지만 강화된 측면도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보인다.일제 강점기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연구에서도 드러나듯 근대적 토지소유권이 확립되었을 때 문중재산의 구별 또한 한층 명확해졌음을 지은이는 그 한 예로 들고 있다.도서출판 강,노영구 옮김,7천원.
  • 경주 경마장 예정 부지/문화재 무더기 출토

    ◎일부만 발굴… 추가조사 시급 【경주=이동구 기자】 경주 경마장부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비롯한 각종 유구가 무더기로 발굴되는 등 다량의 문화재가 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주영)는 22일 경주시 손곡동과 물천리일대 경마장건설 예정부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 ▲삼국시대 가마터 41기 ▲석곽묘 18기 ▲석실묘 5기 ▲토광묘 23기 ▲건물지 14기 ▲고려시대 토광묘 1기 ▲조선시대 주거지와 민묘 등 각종 유구 1백6기가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번의 유구는 문화재연구소측이 지난해 8월16일부터 지금까지 경마장건설 예정부지 29만평 가운데 1만6천3백96평의 부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잔존유구의 정확한 성격과 분포범위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건설예정부지 전역에 대한 2차시굴조사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경마장건설 예정부지에 대한 2차시굴조사가 끝나려면 최소한 2∼3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마사회가 1천2백억원을 들여 98년까지 완공키로 한 경주경마장건설사업은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예상돼 향후 사업추진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거북선 도추」도 가짜/94년 인양된 24점… 금속성분 달라

    ◎금속연구가 주장 【순천=남기창 기자】 94년 전남 여천시 상암동 신덕앞바다에서 인양돼 관심을 모았던 거북선 상판의 도추 24점도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2일 금속연구가인 김종원 박사(광주 숭신공고 교사)에 따르면 도추 2점을 광양제철 기술연구소에 성분분석을 의뢰한 결과,티탄 성분이 다량 함유된 철강석으로 조선시대 금속에 비해 강도가 3분의 1수준이고 철 제련에 쓰이던 조개껍질 대신 코크스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임진란 당시 거북선을 건조하던 여천의 선소 등지에서 발굴된 쇠부스러기등을 분석하면 전부 사철인 점과 비교하면 차이가 난다고 주장했다.
  • 홍삼전매 해제(외언내언)

    코리아를 상징하는 것들은 많다.태극무늬일 수도 있고 무궁화일 수도 있다.김치도 훌륭한 우리의 상징일 것이다.그러나 역사의 깊이로 따진다면 고려인삼을 따를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인삼은 일찍부터 한반도에서보다는 해외에서 그 진가가 잘 알려져 왔다.백제 무령왕때(서기 513년)는 국가통제하에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의 하나였다.근여인형의 기록이 본초강목에도 남아있다.오늘날도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일대에서는 고려인삼의 성가가 쟁쟁하다. 그 고려인삼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홍삼이다.밭에서 막 캐낸 수삼을 쪄서 말린 붉은 색의 인삼이다.인삼은 사람이 키울 수 있는 한계가 대략 6년인데 홍삼은 이 6년짜리 수삼으로 만든다.홍삼이 일반적인 백삼과 다른 것은 가공과정에서 화학변화를 일으켜 항암효과가 높은 것으로 증명된 사포닌,말톨등의 성분이 생성되거나 증가된다는 점이다.그래서 백삼은 사람에 따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나 홍삼은 그렇지 않다. 홍삼은 값이 워낙 비싸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다.홍삼의 최상품인 천삼은 3백g에 50만원정도다.1년동안 6백억원어치가 수출된다.홍삼의 국제시장격인 홍콩에서는 다른 나라 홍삼값이 우리의 10분의1 내지 20분의1에 불과하다.우리 홍삼의 이름값이 그만큼 비싼 것이다. 7월1일부터는 이 홍삼의 전매제도가 해제된다.담배인삼공사뿐아니라 민간인도 허가를 받으면 홍삼을 만들어 팔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명종 11년에 왕실재정을 위해 홍삼을 전매제도화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4백40여년만에 홍삼전매제도가 풀리는 셈이다.그 긴 역사를 가진 홍삼전매가 경쟁의 울타리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한국을 상징해온 상품의 하나가 점멸되어 가는 착각이 든다.6년근뿐아니라 앞으로는 3∼4년근짜리로도 홍삼제조가 가능할테니 우선은 질적인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또한 값비싼 상품이다보니 너도나도 홍삼제조에 나서고 경쟁원리를 살리기 보다는 그 틈에 저질홍삼,가짜홍삼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양해영 논설위원〉
  • 품앗이 문화/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굄돌)

    조선시대 우리 민족은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 서로의 일을 도와가며 살았다.「품앗이」라 하여 품삯을 받는 대신에 이웃이 자기집에서 일한 만큼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었다.그러나 요즘에 품앗이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오히려 서양의 개인주의문화를 더 쉽게 접하게 된다.내것을 확실하게 챙기고 다른 사람의 일은 거의 무관심한 듯한 생활문화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서양의 문화는 합리적인 데 반해 동양의 문화는 그렇지 못하다고들 한다.그러나 우리가 고유로 지켜 내려온 품앗이는 돈이 개입되지 않은 인간미가 흠뻑 배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이웃이 하루의 품을 팔면 자신도 이웃에게 하루의 품을 판다는 것은 자로 잰 듯한 서양의 합리성을 갖지는 못한다.그러나 이웃이 자신을 도와준 만큼 언젠가는 자신도 이웃을 돕는다는 것을 이웃의 일을 돕고 반드시 돈으로 계산받는 서양의 문화와 비교해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오히려 마을사람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음은 물론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고 돈이 개입되지 않음으로써 물질만능주의에 물들 염려도 없거니와 사람이 순수함을 간직하기에 더욱 좋다. 품앗이는 비단 농사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마을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적용되어 기쁨과 슬픔을 마을사람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생활문화를 정착시킨 일등공신이었다.그러나 요즘엔 품앗이가 서양의 더치페이로 바뀌었고 생활의 중심은 공동체가 아닌 개인과 그 가정으로 국한되면서 자연스레 끈끈한 인간적인 유대나 훈훈한 정은 사라지고 「나 하나쯤이야」 하는 배타적 이기주의가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다.얼마 전에 보도된 한탄강의 물고기 떼죽음사건도 우리의 이기주의적 발상의 산물일 것이다. 무질서한 우리의 자동차문화 역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친 품앗이문화를 되새겨봄으로써 막힌 길에서 양보하며 서로 도와주는 성숙함을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 목은 이색/생애·업적 대대적 재조명

    ◎20일 세종문화회관서 6백주기 기념 학술발표대회/성리학의 기초마련… 실천윤리 강조/이성계 부름 마다한 불사이군의 충신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문호·충신으로 이름높은 목은 이색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하는 「목은선생 서세(세상을 떠남) 6백주년 기념학술발표대회」가 20일 상오 9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고병익 전 서울대총장이 대회장을 맡은 이 학술대회에는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역사·국문학·유학등 각분야 원로·중진교수 26명이 분야별 주제발표와 토론에 나서 목은의 우뚝한 삶을 종합평가한다. 윤사순 고려대교수는 미리 배포한 논문 「목은의 사상사적 위상」에서 『불교계의 폐단을 지적,비판함으로써 고려를 불교사회에서 성리학사회로 전환시키는 데 공헌하였으며,본격적인 성리학시대를 여는 데 이바지한 당대의 유종』이라고 규정했다. 윤교수는 비록 목은이 불교신앙의 우수성을 함께 인정해 조선시대 일부선비로부터 배척받았지만 목은의 사상은 옛것을 이어받아 새로움을 연 것이라면서 목은을 당대의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또 금장태 서울대교수는 「목은 유학」의 특징을 ▲무신정권이래 유행한 문장해석중심의 사장학에서 벗어나 실천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성리학 관점에서 사서오경을 일관되게 해석해 한국성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따라서 목은이야말로 『고려말 성리학의 사회적 전파와 이론적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성리학파의 종장』으로서 『그의 유학사상은 한국성리학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신천식 명지대교수는 목은이 ▲공민왕 16년 성균관이 신축된 뒤 대사성을 맡아 성리학을 크게 일으켰고 ▲과거에서 시험관을 6차례 맡아 권근·이숭인·맹사성등 고려말. 조선초의 명신·학자 1백32명을 배출하는등 교육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강조했다. 목은의 역사적 위상을 종합한 이문원 중앙대교수는 『목은은 학자와 정치가·교육자로서 큰 자취를 남겼으며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왕조교체기에 끝까지 고려에 대해 불사이군하는 충절을 지킨 충신』이라고 추앙했다. 이교수는 특히 『고려를 통틀어 산문으로는 익재 이제현, 시인으로는 목은을 꼽는다』고 소개하고 그가 남긴 시 6천31수는 질적으로도 고려 최고라고 평가했다. 목은은 본관이 한산으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 3은으로 불리며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중국 원나라의 과거에서 장원을 차지해 문명을 날렸다. 귀국해 성균관 대사성,국무총리격인 문하시중등 고위직을 두루 거쳤으나 조선 개국후 이성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초야에 묻혔다. 시호는 문정공.청주 신항서원등에서 제향하고 있다. 한편 그의 후손은 그가 남긴 시조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를 새긴 시비를 올해 안에 그가 숨진 여주땅에 세울 예정이다.이 시조는 러시아 최고의 여류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번역한 「한국고전시」에도 수록돼 있다.
  • 조선시대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재현

    ◎서울시 어제 덕수궁서… 역사도시 이미지 제고/11월까지 매주 토·일요일 정례 행사 서울에서도 영국 버킹엄궁의 근위병 교대식과 같은 행사가 15일 펼쳐졌다.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처음 열린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바로 그것.조선시대 궁성문 개폐의식과 궁성 시위의식,행순(순라의식)을 재현한 것이다.서울시는 역사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했다. 국방부 전통의장대원들이 출연한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수문군의 일원인 참하가 열쇠함을 들고 문앞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이어 첫 북이 울리고 승정원 주서로부터 부신(암호)을 전달받은 수문장이 교대군을 이끌고 궁성문 앞으로 들어왔다.두번 북이 울리자 수문장과 수문병이 대기군과 서로 군례를 행하고 약시함(열쇠함)을 교대하는 수문장에게 전달했다.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주말을 맞아 고궁을 찾은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이 행사는 오는 11월30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하오 2시부터 3시30분까지 열린다.한여름인 7월과 8월에는 하오 4시 시작으로 2시간 늦춰진다.서울시는 이 행사를 위해 임동권 교수(중앙대)등 전문가 8명으로부터 면밀한 고증을 거쳤다.또 전통 의례를 연구하는 예문관 간부들로부터 자문을 구했다.〈문호영 기자〉
  • 민속학자 주강현씨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출간

    ◎주눅든 우리문화를 위한 향변/금줄의 의미·여성 배꼽노출 기피 이유 등 다뤄/“서구우월주의적 편견·자기비하 버리자” 일침 금줄 없이 병원에서 태어난 세대가 금줄문화가 무엇인지 알까.배꼽티를 입는 세대가 조선시대 여인네가 가슴은 훤하게 드러내도 배꼽만은 가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서구문화의 홍수속에 우리 문화,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이 날로 흐려져가고 있는 요즘,숨겨진 우리 문화의 원형을 더듬는 전통문화독본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속학자 주강현씨(42)가 민족문화의 현장을 골골샅샅 누비며 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한겨레신문사 출판부 펴냄). 「씌어지지 않은 문화」의 진실을 통해 우리 문화의 전체상을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 문화가 지난 한세기동안 지나치게 서풍에 주눅들어왔음을 고백한다.한 예로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세계 음식문화사적 견지에서 보면 결코 흠잡힐 일이 아닌데도 괜히 자격지심을 갖는다는 것.원숭이 골,송아지 태반,말고기 내장,심지어 곤충을 즐겨 먹는 민족도 많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매미를 즐겨 먹었다는 일화까지 일러주고 있는 저자는 서구우월주의의 관점에서 재단한 「문명과 야만」이란 한갓 부질없는 편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저자는 「문화의 신토불이론」을 내세운다.하지만 「우리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식의 눈먼 쇼비니즘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21세기 새로운 문화파동의 바람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문화의 테러리스트」가 되어야 한다.우리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자존심 세우기도,불필요한 자기비하도 모두 테러의 대상이다.있는 그대로 자기 것을 갈고 지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속에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문화현상 15가지를 엄선,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아기가 태어났음을 뭇사람에게 알리는 첫신호로,혹은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 징표로 사용된 금줄.벼농사지역에서는 새끼줄,짚이 귀한 섬에서는 칡덩굴,유목문화권에서는 말총 등 그 재질은 다양했지만 왼쪽으로 꼬는 것만은 철칙이었다.왜 하필 비일상적인 왼새끼여야만 할까.『왼새끼속에는 부정을 막아주는 금기와 신성성이 깃들여 있다.잡신이 혹 침범해도 왼새끼의 「도발적 시위」에 혼비백산한다.이로써 제의공간은 순결성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배꼽문화의 역설」을 다룬 글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구한말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저고리와 치마말기 사이로 가슴을 드러낸 서민여성의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배꼽노출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상하기 힘들었다.배꼽이 드러나는 유일한 놀이인 양주별산대 애사당놀이에서도 여성역할은 정작 남성이 대신했다.새 생명의 상징 혹은 「혁세사상의 그릇」으로서의 배꼽이 다분히 신성불가침이었던 데 비해 「다산의 상징」으로서의 젖가슴노출은 차라리 예사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밖에 우리민족의 흰옷선호사상과 관련,『고려가 몽골족에 망하면서 조의를 표하기 위해 흰옷을 입기 시작했다』(도리야마 기이치)거나 『흰옷은 조선민족이 겪은 고통이 한으로 맺혀진 것이다』(야나기 무네요시)는 식의 일제 식민주의자의 가당찮은 주장을 비교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반박하고 있는 저자의 역사감각도 주목할 만하다.〈김종면 기자〉
  • 전국 사찰 범종소리 모음집 출반

    ◎제작연대·모양·음의 빛깔 설명 책자도 전국 각 사찰에 소장된 범종소리를 녹음한 음반집 「한국의 범종」(신나라레코드)이 나왔다. 지난 66년 숙명여대 교수로 있던 고 조규동선생이 유명사찰을 돌며 범종소리 77가지를 녹음해 EP음반으로 낸 것을 이번에 CD와 카세트테이프로 새로 낸 것. 종의 생명인 소리 말고도 신라·고려·조선시대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종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책자와 함께 담아냈다.현존 신라종으로 가장 오래된 상원사종에서 덕수궁 미술관내 고려 제3호 작은 종까지 연대와 모양,음의 빛깔,음폭이 다양한 종의 소리를 총체적으로 맛볼 수 있다. 「태산이 무너지듯 장웅한 음의 파도,굵고 낮은 매듭 속에 헤치고 나오는 높은 음의 긴 여운….그 여운이 그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소리,「해탈자의 음성과 같은 우아하고 유연한」 갑사의 종소리 등 담겨진 종소리가 실로 감상자로 하여금 구도의 자세로 몰입하게 하는 음반이다.문화적·학술적으로도 의미깊다는 평을 듣는다.〈김수정 기자〉
  • 서남해 유물(외언내언)

    1970년 무렵부터 서해 신안앞바다에서는 어부들의 그물에 청자 조각들이 걸려나오기 시작했다.신안군 지도주민들은 쓸모가 없는 사기그릇들을 「재수없다」고 깨뜨려 버렸다.이렇게 천대받던 사기그릇이 어느날 갑자기 6백여년전 송·원대의 귀한 청자로 밝혀지면서 신안 앞바다에서는 대대적 유물인양작업이 9년동안이나 계속됐다.건져올린 도자기가 2만6백여점,동전이 28t이나 된다.도자기를 가득 싣고 가던 무역선의 선체도 인양하는데 성공,해양고고학의 기틀을 잡게 된다. 신안 해저유물 발굴이후 서해안 여러곳에서 고려청자가 인양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본격적으로 고려청자가 인양되고 있는 곳은 무안군 도리포앞바다·완도군 어두리 앞바다·보령 죽도앞바다.이밖에도 1백80여곳 해역에서 청자 인양신고가 있었다.이렇듯 서남해역에서 많은 고려청자가 인양되는 것은 고려시대 청자가마가 전남지역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전남 강진·해남·함평·영광과 전북 부안·고창은 청자가마로 유명했던 곳.자기는 깨지기가 쉬워 육로보다는 해상교통을 이용한다.조선시대 왕실의 그릇을 공급했던 광주 분원의 자기도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해 운반했었다. 목선으로 운반하다보니 자주 풍랑을 만나 배가 가라앉았을 것이다.배와 함께 수장된 도자기는 바다밑 진흙펄 속에서 몇 백년,몇 천년을 고스란히 잘 보관된다.육지에서 전해지기보다 바다밑은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개성으로 운반중 풍랑으로 침몰하는 경우외에 고려말·조선초 빈번했던 왜구의 약탈로 수장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중발굴은 특수한 장비와 기술이 필요하다.서해안 해저는 시계가 거의 제로상태라 작업은 더욱 어렵다.그러나 신안 앞바다에서는 잠수부를 동원해 몰래 인양하는 도굴꾼이 있었다.풍랑이 심해 발굴단의 작업이 중단되는 틈을 이용한 도굴이다.혀를 내두를 기술이었다.남서해안 청자인양해역에 대한 도굴감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반영환 논설고문〉
  • 남제주군 대정읍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2)

    ◎또렷한 눈동자·오똑한 콧날 “너무나 인간적”/매서운 해풍 견디려는듯 목도리까지 둘러 오늘날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인성·안성·보성리는 조선시대 대정현청이 있던 고을 자리다.여기 와서 『돌하루방이 어디 있느냐?』고 토박이들에게 물었다면 『작간대 이수다』라는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곁에 있다」는 제주도 사투리다.대정현 당시 쌓은 읍성의 성돌도 현무암이요,그 성벽 지척에 돌하루방 역시 회흑색 돌인지라 하루방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대정의 돌하루방은 대정읍성 동문과 서문, 남문에 각각 1기씩 성문 밖에 3기가 우선 몰려있다. 그리고 보성초등학교에 3기,추사관과 마을회관앞에 각각 2기,토끼동산에 1기가 자리잡았다.대정의 돌하루방은 유별나게 키가 작았다. 평균 키가 1백36㎝에 지나지 않아 제주시 돌하루방 키와는 비교가 안되고,표선읍 성읍리 돌하루방 보다도 더 작은 키를 했다. 머쓱하지 않고 올차보이는 이유가 작은 키에 들어있다. 대정의 돌하루방은 거의가 둥글넓적하고 펑퍼짐한 벙거지를 썼다. 머리통크기가 키의 절반쯤은 차지했는데,얼굴에서는 후덕한 인상이 우러났다.그 까닭은 볼에 살이 실하게 붙어서일 것이다.대정 돌하루방의 또 다른 특징은 눈이다. 석수장이 타지역과 차별화를 시도했는지는 모르나 대정 돌하루방 눈에는 동자를 새겨넣었다. 이들 대정 돌하루방은 눈동자가 분명했으니까 읍성을 지키는데 어설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정 돌하루방의 코는 제주시의 돌하루방과 사뭇 다르고 코만을 비교한다면 표선면 성읍리 돌하루방을 좀 닮았다.그래서 제주시 돌하루방의 주먹코와는 달리 콧마루가 비교적 오뚝하고 길다.입은 작게 오목새김 했다.더러는 작은 입을 다물었고 또 어떤 돌하루방은 약간 느슨하게 입을 열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인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한 것이 대정의 돌하루방이라는 것이다.겨울 해풍이 매서워 목도리를 두른 돌하루방이 몇몇 있고 보면 사람이 하는 짓도 따라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뭍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섬에서 스스로 태어난 것일까,아니면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없으나추정은 두 갈래로 나와 있다.남태평양의 석상문화와 몽골족.돌궐풍의 북방문화 유입설이다. 남태평양설은 제주도가 지리적으로 해양문화권일 수 있다는 점이고 북방설은 몽골이 제주도를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 고유의 향토적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는 돌하루방 신원을 들춰낼 수 없다.분노하는 바다와 싸우고 거친 땅을 일구면서 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제주도 사람들의 자화상이 돌하루방인 것이다. 어깨가 넓어 보이고 더러 가슴이 튀어나온 돌하루방을 대하노라면 한 꺼풀을 훌쩍 벗어던졌다.그리고 숨겨둔 강인성을 드러내 보였다. 이들 돌하루방과 더불어 대정땅을 지킨 읍성은 제주도기념물 12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있다. 그리고 대정은 추사 김정희가 9년동안 유배된 적거의 땅이거니와 그의 유명한 문인화 「세한도」의 산실이기도 하다.
  • 인천미술대전 서예부문 2년째 엉터리작품 선정

    ◎오자작 대상 수상… 뒤늦게 취소 【인천=김학준 기자】 한국미술협회 인천시지회가 2년째 인천시미술대전 서예부문 출품작중 엉터리 작품을 우수작으로 선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6일 인천시지회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열린 제15회 인천시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조선시대 중기 학자인 신흠의 고시조를 한학자 권상로 박사가 한역한 한시 시구를 예서체로 출품한 윤인구씨(35·교사)의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권박사가 한역한 원문의 「처」를 「허」로 잘못 표기하는 등 대상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말썽이 나자 시지회는 13일 대상 선정을 취소했다. 시지회는 지난해에도 원문과 두 글자나 틀린 이모씨의 두보작 춘야희우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가 취소했었다.
  • “하멜 후손을 찾습니다”/제주,네덜란드와 관광교류 강화 일환

    ◎대사관에 수소문… 찾는대로 초청키로 제주도가 조선시대 제주에 표류해 왔던 네덜란드의 하멜과 벨테브레의 후손찾기에 나섰다. 오는 2000년 한국에서 개최될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앞두고 세계 8대 해외여행국인 네덜란드와 동반자관계를 강화해 유럽과의 관광교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하멜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선원으로 효종 4년(1653년) 일행 38명과 함께 제주에 표류,14년간 억류됐다가 귀국해 「하멜표류기」를 저술,조선을 유럽에 널리 알렸다. 얀 벨테브레는 인조5년(1627년) 역시 제주에 표류했다가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해 훈련도감에서 대포까지 만들며 유럽식 전술을 전수해 주었다. 제주도는 13일 하멜이나 벨테브레의 후손을 찾는대로 제주에 초청하고 이들이 거주하는 자치단체와 자매결연을 추진키로 했다. 암스테르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멜」후손을 찾기 위해 한국의 네덜란드 대사관과 네덜란드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수소문하고 있다.특히 박연의 후손은 지난 91년 제주도를 방문한 일이 쉽게 찾을 수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도는 이와함께 관계 공무원을 네델란드에 보내 본격적으로 하멜 등의 후손 찾기에 나서는 한편 남제주군 안덕면 용머리의 「하멜」 표류기념비 일대를 개발해 관광명소로 가꾸어 나가기로 했다.〈제주=김영주 기자〉
  • 항암 된장(외언내언)

    된장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향수와도 같은 그리움의 상징이다.된장맛에서 풍겨나는 소재는 어머니·고향·토속성·순박함 등이다.그래서 한국인들은 누구나 된장국·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는지.몇십년전만해도 추운 겨울밤 화롯불위에 된장 뚝배기를 올려놓고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낙네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전경이었다.사그러져가는 화롯불을 다독거리는 여인의 정성속에서 된장찌개는 보글보글 끓는다. 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된장은 한국이 단연 종주국이다.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에 『고구려사람은 장을 잘 담근다』라 했고 신당서에는 『발해의 서울 메주는 유명하다』고 기록했다.조선시대에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시골사는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하여도 좋은 장이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증보산림경제)고 했다.그러기에 장독대는 신성한 장소였고 장 담글때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고려의 막장(말장)은 1천2백년전 일본에 전해져 「미소」라고 불리워지는데 「미소」는 말장의 일본식 발음이다.된장이나 청국장은 맛을 낼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장의 재료인 콩에는 단백질 38%,지방 18%가 함유돼 있다.「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을 원료로 하여 실박테리아로 발효시켜 만든 된장은 신비한 항암효과가 있다는게 정설이었다. 그 항암억제효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밝혀졌다.식품개발연구원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된장 추출물은 간암세포 실험에서 93.3%의 억제율을 보였고 청국장추출물은 위암세포 실험에서 95.7%의 억제효과를 보였다는 것,또한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막는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제. 우리식탁의 기초식품이 이렇게 강력하고 신비한 항암효과를 가졌다니 반가운 일이다.고구려시대부터 장을 담가 먹는 선조들의 실용적 예지가 놀랍다.그런 된장도 이제는 신세대주부들에 의해 외면당해 장 담그는 일이 사라지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지난번 간장파동이후 그래도 메주찾는 주부들이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반영환 논설고문〉
  • 제주시 이도1동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0)

    ◎왕방울 눈·굳게 다문 입에 정감이…/훤칠한 키·비껴쓴 벙거지에 멋도 잔뜩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육지로 말하면 돌장승이다.옛날 기록에는 돌하루방을 일러 옹중석이라했다.돌하루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사투리다.어린 아이들이 돌하루방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버렸다.어딘가에 정감이 어린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돌하루방에서는 온화스럽고 푸근한 체취가 우러난다. 제주도에 돌하루방이 처름 등장한 시기를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다만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보고 어렴풋 짐작할 뿐이다.영조30년(1754년) 김몽규가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는 당시 제주 방어사로 전해인 영조29년에 관덕정(보물 322호)을 중창한 인물이기도 하다.그러나 전에도 있었는 데 다시 세운 것인지,또 처음 새로 세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든 「탐라기년」을 18세기 중엽 제주에 돌하루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제주도내에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돌하루방은 현재 45기에 이른다.모두 제주도 민속자료2호로 지정 받았다.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을 행정구역으로 한 조선시대 제주 삼현소재지에 집중 분포되었다.그래서 제주시내에 21기,대정면 인성·안성·보성리와 표선면 성읍리에 각각 12기씩이 남아있는 것이다. 옛 제주성 성문밖이 본래 제자리였던 제주시 돌하루방은 시내 여러 군데로 뿔뿔히 흩어졌다.제주시의 돌하루방은 대정면이나 표선면 성읍리 것들에 비해 우선 키가 크다.평균치가 1백80㎝를 넘는 훤칠한 키를 했다.그리고 대정면 돌하루방과는 달리 기단을 밟고 서 있다.제주도 돌하루방 하면 얼핏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지역 단위로 특성을 지닌터라 지역별로 비교하면 조금씩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제주시 이도1동을 지키고 있는 돌하루방은 아주 멋이 든 돌할아버지다.제주시 이도1동은 제주목의 제주성 옛 터전인지라 이 돌하루방이야 말로 적자격의 돌하루방이라 할 수 있다.제주도 섬 전체의 돌하루방이 그렇듯 벙거지를 썼으나 멋을 부려 비스듬이 머리에 걸쳤다.닷새장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손자 주전부리를 사들고 오는 흐뭇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퉁방울눈은 이를데 없이컸다.눈이 하도 커서 눈을 만드느라 오목새김한 가장자리 선각이 자루병처럼 생긴 코와 아주 닿아버렸다.병자루 같이 생긴 코허리는 물론 코방울에까지 눈 가장자리가 맞물렸으니 크기는 큰 눈이다.역시 선각으로 표시한 큰 입을 굳게 다물었다.위엄을 갖춘 얼굴은 분명한데 무섭기 보다는 온화한 쪽에 비중을 더 실었다.그러니까 아주 인간화한 섬의 돌장승이 돌하루방일 것이다. 돌하루방을 성문밖에 세웠다는 기록과 본래의 자리 성문 앞길이 방어상 유리한 S자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육지의 장승들처럼 돌하루방 또한 수호신 기능이 부여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황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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