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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이경윤의 「시주도」 노선비(한국인의 얼굴:105)

    ◎근엄하나 인저한 눈길에 도인의 풍모 조선시대 중기 그림에서 인물만을 앞세운 작품이 더러 있다.인물화 성격을 따 이경윤(1545∼1611년)의 「시주도」가 그것이다.그는 이와 비슷한 인물화로 「송별도」도 그렸다.초상화가 아닌데도 배경을 거의 무시한 「시주도」에는 세속에 물들어 보이지 않은 학덕 높은 선비 고사와 동자가 나온다.오늘날 역사소설의 삽화처럼 인물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이 그림은 화제부터가 사뭇 낭만적이다.사림세력의 성장에 따라 선비들의 정서가 한껏 푸근했던 시대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그렇듯 16세기의 선비정신이 짙게 깃들였다.그림의 매력을 다시 말하면,선비의 내면세계가 담긴 고매한 인품을 그려냈다는데 있다.화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립(1539∼1612년)은 그림 한쪽에 써넣은 글발에서 「그림속의 인물은 비범하고 속기가 없다」고 했다. 「시주도」는 선비가 돈이라는 깔찌에 걸터앉아 술단지를 받쳐들고 선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바탕천에 술을 칠한뒤 먹물을 입힌 이른바 선염법으로 둥그스럼하게그린 언덕 말고는 배경이 아무 것도 없다.그래서 인물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선비는 옷 둘레에 검은 천을 잇대어 꾸민 학창의를 입었다.몸뚱이는 희고 나래끝이 검은 두루미를 본떴다는 이 두루마기는 글줄이나 읽는 문사들이 즐겨 입은 옷이다. 주인공 선비는 근엄한 표정으로 술이 담긴 항아리를 내려다 보고있다.항아리를 받쳐 든 소년은 고개를 숙였지만 선비의 기색을 살피는 눈치다.눈을 치깔은 선비와 눈동자를 할긋 돌린 소년의 표정이 묘하게 대비되었다.그러나 선비의 얼굴은 근엄할 뿐 무섭지는 않다.심부름 하는 아이를 대하는 것이지만 마치 어린 손자를 내려다 보는 할아버지 눈매처럼 인자한 데가 있다.단지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술항아리를 들고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선비는 늘그막에 든 연고한 나이라서 머리숱이 아주 적다.그래도 함함하게 빗어 올리고 조그마한 치포관으로 상투만을 덮었다.그래서 도인같은 풍모도 우러났다.몇 가닥 남지않은 머리를 빗어올려 상투를 틀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높은 이마가 훤하게 드러났다.콧날이 젊을 때나 다름없이 여전히 우뚝한 선비는 그리 실하지 않은 수염을 점잖게 길렀다. 이경윤의 그림을 보고 「속기가 없다」고 한 최립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그림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으나 인물에는 자신의 모습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 조선중기 이숭효의 「어부도」(한국인의 얼굴:104)

    ◎낚시대와 물고기 꾸러미/허름한 행색에도 초연한 눈매 어부는 고기잡이를 일거리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그런데 옛날에는 격을 높여 어부라 썼다.이 보다 무게를 더 실어 어옹이라고도 불렀다.옛날의 어부라는 말속에는 고기를 낚아가며 고상한 삶을 살아가는 큰 그릇의 사람을 의미했던 것이다.그래서 시조나 가사에 곧잘 나온 것은 물론이고,때로는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 어부를 주제로 한 그림중에는 조선시대 중기를 짧게 살았던 화가 이숭효가 그린 「어부도」가 있다.가는 올의 모시 바탕에다 먹물로 그린 저본수묵화인 이 그림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했다.16세기 작품으로 중국 절파의 화풍이 배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이다.그의 작품은 매우 희귀하다.그래서 「어부도」는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일 수 밖에 없다. 이 그림에는 「어옹귀조도」라는 화제 하나가 더 붙어있다.화제에서도 여느 낚시꾼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그림을 보노라면,실제 그렇게 묘사되었다.낚시질에서 돌아오는 허름한 차림의 어부이기는 하나,범상치 않은 인물이다.그 늙은 어부가 대각선으로 가까이 이어진 길을 비치적비치적 걸어서 그림속으로 들어섰다.그림이 아니었더라면,금새 화폭을 빠져나올만한 자리를 걷고 있다. 어부는 낚시대를 오른손으로 잡아 어깨에 걸머메었다.그리고 왼손에 물고기 꾸러미를 들었다.낚시대는 대각선으로 화폭을 절반쯤 갈라놓았다.그런데 모질게 자란 대나무를 낚시대로 썼던 모양이다.곧은 데가 없이 멋대로 굽었다.그까짓 낚시대가 굽었다고 신경을 쓸리 만무한 노인은 초연한 자세로 길가 어딘가를 굽어보는 눈치다.온갖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얼굴 가장자리를 돌아갔지만,인상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늙은 어부는 대삿갓 보다는 차양이 넓은 모자를 썼다.그 아래로 드러난 눈매가 인자한 노인은 초연한 얼굴을 했다.입가 윗쪽의 수염 수가 아직은 거므스름하지만,살쩍에 난 터럭 빈과 구렛나루는 이미 희게 세어 버렸다.그러고 보면 설빈어옹이라 해도 좋을 흰수염의 늙은 어부인 것이다.갯가 등성이에는 갈대가 어부의 수염만큼이나 아무렇게 자랐다. 설빈어옹은 이현보(1467∼1555년)가 고려때 가사를 고쳐 쓴 「어부사」에 나온다.「설빈어옹」이 주포간,자언거수 승거산이라 하놋다」로 시작하는 가사가 그것이다.
  • 조선화가 김시의 「당나귀 끄는 소년」(한국인의 얼굴:103)

    ◎고삐당기는 얼굴에 구김하나 없어 조선의 16세기는 중국을 거쳐 들어오는 외래문물에 보다 밝게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다.권력핵심의 사대부,특히 공신이나 왕실과 인연을 맺은 척신들은 새로운 정보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그런 분위기는 실학이라는 이념을 받아들이는 바탕이 되었다.그림도 예외가 아니어서 조선 초기의 화풍을 계승한 가운데 중국 화풍을 조금씩 곁들인 작품세계를 개천했던 것이다. 그 16세기는 조선시대 전체를 전·후기로 나눌때 전기에 해당한다.또 초·중·후·말기로 구분하면 조선 중기(1550∼1700년)라 할 수 있다.그 시기의 대표적 화가는 김시(1524∼1593년)다.대표작으로는 지금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보물 783호 「동자견려도」가 꼽힌다.제목 그대로 소년이 당나귀를 끌어당기고 있는 그림이다.통나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다리를 건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당나귀와 기어이 끌고가려는 소년의 모습이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소년은 주인을 따라 한나절 산천바람을 쐬러 나온 모양이다.그런데 집에 돌아갈 채비를차린 주인 나리께 대령한 당나귀가 냇가에서 말썽을 부리고 있다.그러나 뻗대는 당나귀에 질세라 소년은 젖먹던 힘을 다해서 고삐를 팽팽이 거머쥐었다.소년과 당나귀의 대결이 해학적이거니와,박진감이 넘치고 있다.당나귀를 잡아끌고 있는 소년은 신분을 떠나 얼굴이 잘 생긴 홍안의 미소년이다. 소년은 힘을 쓰느라 제법 큰 머리통을 뒤로 젖혔다.당나귀가 말을 제대로 들어먹지 않는데도 얼굴에는 구김살하나가 없다.그래서 표정이 한껏 맑다.골상이 둥글둥글하나 미련스럽지 않은 까닭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기 때문일 것이다.오히려 총명한 인상이다.붓으로 그린 것처럼 확연한 눈썹 한참 아래로 눈매가 초롱초롱하고 복스러운 코에 제법 날이 섰다.도타운 입술에 작은 입을 했다.그래도 소년은 말수가 헤퍼보이지는 않았다. 이 그림은 산수속의 인물에 촛점을 맞추었다.이른바 대경산수인물화에 속하는 이 그림의 형색은 조선 초기의 회화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이는 중국 절강성을 비롯한 강남의 화원들이 15세기 후반부터 주도한 절파의 화풍을 수용한 것이다.그 절파의 흔적은 주산의 바위표면을 도끼로 팬 것처럼 명암을 뚜렷이 구분한 이른바 부벽준기법에서 나타났다. 그림을 그린 김시는 주로 명종과 선조때 활약한 선비화가다.양송당이라는 아호를 가진 그는 이 그림에도 아호를 낙관했다.그리고 김시계수라는 네모꼴 붉은 도장을 찍어놓았다.
  • 조선전기 그림속 당나귀탄 선비(한국인의 얼굴:102)

    ◎학창의에 치포관… 나들이길 여유로움 조선시대 전기의 화가 학포 이상좌(1465∼?)는 하마터면 막치의 그림을 그린 환장이로 일생을 살았을 인물이다.그림을 비록 잘 그렸다 할지라도 어느 선비의 사내종 노복이었으니까,애초에는 신분상승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그러나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이는 개인능력을 중시한 조선왕조의 합리주의적 통치이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인물화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다.아주 빠른 솜씨의 선묘로 인물의 특징을 그려냈다.그의 작품으로 보이는 「나한도첩(호암미술관 소장)」에서도 그의 인물화 솜씨가 잘 드러났다.1545년에는 임금 중종의 얼굴 어진까지 그렸다.그리고 이듬해 공신들 초상을 그려 원종공신 칭호를 받았다.그림을 가지고 벌떡 일어난 그는 자신의 입신출세 뿐 아니라 아들 둘과 손자 이정에게로 화업을 물려주었다. 이상좌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그림중에는 개인소장의 「기려도」가 있다.그림제목이 가르키는 대로 당나귀를 탄 인물을 그렸다.당나귀에 올라앉은 사람은 두루미 자태가 연상되는 두루마기 학창의를 입고,상투만을 가린 치포관을 쓴 선비다.나이가 들어보이는 선비의 인품은 한마디로 점잖다.수행하는 노자가 없고보면 선비는 단출한 나들이를 떠나는 모양이다. 선비네 집에서 기르는 삽살이가 주인 행차를 따라붙은 것일까.선비가 고개를 돌렸다.당나귀도 덩달아 머리를 슬쩍 돌려 흘끔 뒤를 쳐다보고 있다.그런데 선비는 워낙 점잖아서 경거망동한데가 없다.커다란 눈을 그저 물끄러미 내리깔았다.이마가 좀 튀어나와 됫박이마다.그 밑에 눈썹은 머리가 다 빠져 훤한 정수리께에 비하면 훨씬 짙었다.눈에 들어갈 빗물을 피할만한 눈썹이다. 머리칼은 치포관 사이로 몇가닥이 흘러 내려왔다.그 사이로 귀가 크게 드러났는데,반대쪽에서는 치포관의 끈이 바람에 나부꼈다.그러나 제법 자란 흰수염은 바람결을 피해 고개를 돌려서인지,잔잔하게 매달려 있다.『저 녀석이 어쩔려고 따라오나…』하는 눈치를 보이기는 했으나,쉬이 입을 열지는 않을 참이다.선비다운 풍모가 인물 여러군데에 그득그득 배어있다. 조선시대 산수인물화에는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당나귀가 곧잘 나온다.삼국시대의 역사이야기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당나귀는 행세깨나 하는 옛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조선후기의 「경도잡지」는 「유생들은 나귀 타기를 좋아한다」고 적었다.말보다는 덜 빨라 별로 위험하지 않고 먹이기도 쉬워서 당나귀를 많이들 탔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인물은 물론이고,당나귀의 동작마저도 사실적으로 그렸다.그래서 이상좌의 그림은 12세기말∼13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의 중국 산수인물화의 대가 마원의 화풍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조선전기 문신 장말손의 영정(한국인의 얼굴:101)

    ◎하관이 좁아 날카로운 인상/예리한 눈매에 선비의 꼿꼿함… 옛날에는 얼굴그림인 초상화를 다른 말로 불렀다.상이나 초,또는 진영이나 영정,화상따위가 바로 초상화를 의미했다.어떻든 초상이라는 인물화는 조선시대 들어서 더욱 발전했다.건국 초기부터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은데 그 원인이 있다.이를테면 유교에 바탕을 둔 보본사상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에 하나를 초상화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초상화하면,관복을 입고 근엄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이른바 정장관복의 전선교의좌상을 연상할 수 있다.15세기말에 그린 장말손(1431∼1486년)영정을 보면,그러한 구도의 초상화는 조선시대 전기에 이미 자리매김을 한 모양이다.세로 171㎝,가로 107㎝의 비단에 물감으로 그린 그의 초상화는 후손이 소장했다.작품성이 뛰어나 보물502호로 지정되었다. 얼굴은 왼쪽 볼과 귀를 드러낸채 오른쪽을 향했다.오른쪽 얼굴의 윤곽은 눈꼬리를 약간 비켜서면서 광대뼈를 지나갔다.그리고 얼굴 아래부분 하관이 빨라 날카로운 인상이 되었다.바로 뜬 눈과 날이 선 코가 역시 날카롭다.얼굴이 향한 쪽 정면에다 촛점을 맞춘 눈동자가 한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예리한 눈이다.젊어서는 꽤나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을 법한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눈썹은 아직 웃자라지 않아 가지런하나,위엄이 들어간 용미에 가깝다.양미간과 눈 아래에는 잔주름이 졌다.그리고 인중 가장자리 좌우로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삐쳐내려온 주름이 깊었다.꽉 다문 입 언저리에 그리 실하지는 않지만,수염도 알맞게 자랐다.턱수염은 거의 한 뼘은 자랐고 귀 앞 살쪽에 돋아나는 터럭 빈(윤)이 그런대로 터를 잡았다.유별나게 돋보이는 귀는 얼굴에다 한결 무게를 실었다. 검은색 사모 오사모를 쓰고 깃이 둥근 공복인 단령을 입었다.각이 진 단령은 얼굴 못지않게 날카롭다.단령속에 받쳐입은 벼슬아치의 평상복 창의는 귀밑까지 바짝 올라왔다.그리고 발받침에 올려놓은 두 발이 앞을 향했다.이는 15세기말 공신초상의 전형이거니와,공신도상이 조선 중기를 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초상화속의 인물 장말손은 세조와 선종때를 거친 문신이다.1467년 세조13년에 이시애의 난을 누르는 공을 세워 적개공신 2등의 품위를 받았다.그리고 나서 1482년 연복군으로 책봉되었다.
  • 냉방 시스템 석빙고 원리 실용화 가능

    ◎계명대 공성훈 교수 과학ㅇ의 달 학술대회서 밝혀/돌·흙·잔디·공기 활용… 온도 조절 거의 완벽/빙축열·지중 냉방 튜브시스템의 「원조」 주장 석빙고는 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겨울철 하천의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철에 사용한 얼음 저장 창고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같은 석빙고의 장기적인 얼음 저장 원리는 현재 유럽 등지서 새로운 냉방 시스템으로 연구가 활발한 「지중 냉방 튜브시스템」「빙축열 시스템」의 원조라는 주장이 나왔다. 계명대 공대 건축공학과 공성훈교수는 26일 대덕연구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과학의 달 기념 ’97한국전통과학기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논문 「경주 석빙고의 여름철 실내환경 조건에 관한 연구」를 통해 『석빙고는 구조와 기능,효과 면에서 우리 조상의 온·습도 조절기술이 완전 정착단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히고 『이 원리를 이용하면 아직 실용화가 안된 각종 천연 냉방시스템 개발에 새로운 전망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전국(남한 지역)에 남아있는 석빙고 6개의 내외부 구조를 조사하고 경주시 인왕동 반월성 안에 있는 보물 66호 석빙고에 대해서는 온도와 습도의 조건 및 분포,변화상태,온·습도 조건의 상관관계를 측정·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석빙고는 내벽은 열저장 능력(축열능력)이 가장 좋은 돌로 돼 있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으며 태양열로 인한 복사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에 잔디를 심은 구조로 돼 있다.겨울철 얼음은 차게 얼린 석실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얼음을 넣고 빼는 출입구는 작업자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구멍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봉분 형태로 덮었으며 출입구 상단부에는 바위로 턱을 두어 공기유입을 되도록 적게 함으로써 출입구를 통한 열손실을 최소화했다.또한 출입구 양옆에는 날개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겨울철 찬바람이 효과적으로 내부에 유입될 수 있도록 했고 천정에는 내부의 습기와 더운 공기를 배출하는 3개의 통풍구를 두고 있다.또한 바닥은 비탈지게 해 얼음 녹은 물이 밑으로 원활하게 빠지도록 했고 외부 바람에 의한 내부의 공기 유동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봉분 형태는 유선형으로 만들었다. 연구팀이 96년 8월말 실내 온·습도를 4일간 측정한 결과를 보면 실내 온도 조건의 분포 범위가 19.0℃∼20.3℃로 나타났다.이는 최고온도와 최저온도와의 차가 1.3℃에 불과한 것으로 실내 기온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통풍구 실내 온도의 교차범위도 2.7℃로 외기 온도의 교차범위 6.9℃보다 월등히 낮아 얼음의 장기 보관이 가능했음이 입증됐다. 공교수는 『석빙고 구조체의 축열성능과 잔디 식재에 의한 복사열의 효율적인 산란작용 등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히고 『현존하고 있는 6개의 석빙고가 동일한 구조인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일찌기 이 원리에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현재 외국에서는 겨울철의 냉기나 여름철의 온기를 6개월간 땅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하는 계절간 열저장시스템,지하에 열전도성이 좋고 내습성이 양호한 통기관을 매립해 여기에 공기를 통과시킨후 시원해진 공기를 여름철 실내 냉방에 사용하는 쿨링 튜브 시스템,값싼 심야전기를 이용해 얼음을 얼려 지하에 저장했다가 낮시간에 얼음을 통과한 찬공기를 이용하는 빙축열시스템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공교수는 『앞으로 공기유동 현상 해석등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석빙고의 원리를 규명,새로운 냉방 시스템의 실용화에 적용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 조선 「청화연적」 7억 6천만원/크리스티경매 낙찰

    15세기 조선시대의 「청화죽문 복숭아형 연적」이 24일 오후 미국 뉴욕시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5만1천달러(수수료 15%포함·약7억6천5백만원)에 팔렸다. 올들어 두번째로 실시된 한국미술품 경매에서 최고가로 경매된 이 연적은 코발트 색깔을 띤 높이 8.2㎝,지름 9.3㎝로 복숭아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경매 전 예상가는 40만∼50만달러였다. 그러나 이날 경매에서 뉴욕의 미술애호가들은 물론 경매인들로부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고려시대(14세기) 작자미상의 불화인 「제7 석가모니도」는 예상가(80만∼1백만달러)에 훨씬 못미치는 48만3천달러(약4억3천2백만원)까지 응찰됐으나 나중에 소유주가 경매를 원치않아 유찰됐다. 또 12세기 고려청자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74만7천5백달러(약6억7천2백만원)에,그리고 고려청자인 「청자철재추화삼엽문매병」은 46만달러(약4억1천만원)에 각각 팔렸다.
  • 청동기시대 유물 대량 발굴/대구 팔달동 아파트부지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단(단장 이백규)은 지난해 8월부터 대구 팔달동 145 신축 아파트 건립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청동기∼조선시대에 걸친 주거지 고분 등 유구 460기를 확인하고 토기 철기 장신구 등 82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이날 공개한 유구에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20여동과 무늬없는 토기옹관 120여기를 비롯해 원삼국시대 와질 토기옹관 12기와 목관·목곽묘 120여기,삼국시대 석곽묘 30여기가 포함돼 있다.
  • 도심 아파트 숲속 5일장/창원 상남시장 옛정취 물씬

    ◎장날이면 좌판·노점상 1천여명 북적/씨앗·농기류도 판매… 국밥집도 한몫/80년 시승격이후 17년째… 가격도 저렴 경남 창원 상남시장은 도심 한복판에서 옛 시골장의 정취를 물씬 느낄수 있는 이색적인 시장이다. 대부분 지방 5일장이 산업화와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차츰 모습을 감추거나 장세가 약해지고 있지만 상남시장은 아파트 숲속에서도 옛 장날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상남시장은 창원시 신월·중앙·용호동 등 3개동에 걸쳐 형성돼 있다. 지난 80년 창원이 시로 승격되면서 지정고시된 상업개발지구의 금싸라기 땅 8만여평 가운데 2만여평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일대는 주민들과의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상업지역으로의 개발이 아직 안돼 있는 지역이다. 시승격 이후 17년째 농촌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장이 서는 날 장터 정경은 전형적인 시골장 분위기 그대로이다. 장터주변 개발이 된 지역에는 대형상가와 아파트단지·금융기관 등 현대화된 시설들이 둘러싸고 있다. ○전형적 시골장 분위기 이같은 독특한 시장 분위기로창원뿐만 아니라 인근 마산·진해·김해지역 등 중부경남 도시민들에게까지 훈훈한 시골장터의 인심과 정서를 그대로 전해주는 곳으로 소문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장은 4,9일마다 열린다.장에 나오는 상품종류는 대도시의 웬만한 백화점 못지않게 다양하다.여기에다 농산물 등 재래시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갖가지 물건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주방용품에서 부터 각종 생활용품,의류,농수산물,한약재,건어물,닭·토끼·개 등 가축류,민물고기,채소씨앗,농기구류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있다. 국밥집,풀빵가게 등도 시장 분위기에 한몫을 거든다.도심 한가운데 현대시장과 재래시장이 잘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가격도 시중 다른 시장보다 20%정도 싼 편이다. 상남장은 다른 재래장보다는 좀 늦은 상오9시쯤부터 열려 하오7시쯤 끝이 난다.장터에는 1·2층에 독립점포 100여개가 있고 여기에다 장이 서는 날이면 좌판·노점상 등 1천여명의 상인들이 몰려든다. 장날이면 이곳을 찾아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5만여명에 이르고 장날이 공휴일과 겹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수천대의 차량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과채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순영씨(45·여)는 『하오4시쯤부터 장이 끝나기 직전까지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댄다』고 시장의 분위기를 말했다. 시장이 파하는 시간에는 물건을 싸게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거땐 단골 유세장 장이 서는 날이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기 때문에 각종 선거가 있을 때면 후보자들의 단골 유세장으로도 인기가 매우 높다. 장날이면 자주 찾아온다는 정덕희씨(35·창원시 대방동 대동아파트)는 『도시 한복판에서 시골장 정취를 흠뻑 맛볼수 있는 재래 5일장은 다른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마치 고향 시골장에 나온 것같은 기분을 느낀다』면서 『평상시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이곳에 오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구경까지 곁들일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자랑했다. 상남장의 형성 유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러나 정확하게 남아있는 기록이나 문헌은 없지만장터주변에 오래 살아온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상남장은 대략 80여년전 형성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일제시대 이곳에 역과 우체국,면사무소,주재소 등이 들어서자 「죽촌」이라는 성을 가진 일본사람이 창원군 3개면 가운데 가장 인구와 면세가 컸던 상남면 토월하천을 중심으로 해 장터를 개설했다는 것. 그리고 인근 웅남면 안암 5일장을 옮겨와 상남 5일장을 열었다는 것이다.그때부터 지금까지 5일장의 면모를 간직해오면서 꾸준히 장세를 키워온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이 처음 형성됐을때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인근 김해·함안·의령 등지의 농산물과 마산·충무·진해지역 등에서 나는 수산물이 주로 거래됐다고 한다. ○개발물결속 사라질판 특히 조선시대때부터 불모산아래 벌판에서 재배됐던 쌀은 나랏님의 진상품으로 올릴만큼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고 난 뒤 장날이면 전국에서 곡물상인들이 몰렸다고 한다. 도시민들에게 시골장의 넉넉함을 전하며 80년이 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상남장도 최근의 개발물결속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어 시민들과 상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창원시는 오는 99년 완공을 목표로 시장부지에다 지하1층 지상 2층 규모의 현대식 상가건물을 지어 기존 상인들을 입주시킬 계획으로 있다.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지금의 장터에서 5일마다 서는 상남장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시장 상인들은 현대식 상가가 완공되더라도 상가 주변을 중심으로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재래시장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중부경남 주민들과 함께 해온 상남장이 현대화 물결속에 헐리게 되지만 가능하면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재래시장 부지를 마련,옛 시장정취를 살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조선시대 탱화 6억에 낙찰/명종때 궁중화가 작품… 소더비경매서

    조선시대의 불화인 「사회탱」이 18일 낮(현지시간)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71만7천500달러(수수료 포함·6억3천1백40만원)에 팔렸다. 한국 고미술품 경매가 올들어 처음으로 실시된 이날 소더비경매장에서 최고가로 팔린 이 작품은 명종시대인 1562년 익명의 궁중화가가 당시 세도가였던 풍산정의 부인 이씨로부터 가족의 안녕과 복을 비는 뜻의 그림 부탁을 받고 그려준 탱화이다. 당초 강원도 상원사에 봉안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탱화는 가로 74㎝,세로 90.5㎝ 크기로 네 모서리에 각각 부처가 그려진 특이한 불화로 경매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다.이날 경매가는 예정가 20만∼25만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 공주 갑사 범종 승려상(한국인의 얼굴:97)

    ◎공덕 많이 쌓은 고승 인가/삭발 머리뒤로 은은한 후광 조선시대 범종무늬 가운데는 승상이 있다.그러나 승려의 자태를 그린 승상을 범종의 무늬로 끌어들인 경우는 흔치 않았다.조선의 범종에서는 전시대 고려의 범종까지 명맥을 유지해온 비천상 계통의 무늬가 사라졌다.보살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릴리프 형식의 비천상 대신 서거나 앉은 선각의 보살상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범종에는 유독 보살이 아닌 승려가 나타났다.모두 네 구의 승상이 들어있다.젖꼭지 모양의 유두를 가두어 둔 사다리꼴 유곽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승상을 끼워넣었다.높이 131㎝의 이 종은 어깨띠 견대와 윗띠인 상대를 맞물려 돌리고 중대는 생략했다.그리고 아랫띠 하대를 돌렸다.승상은 상대와 하대 사이 종 몸뚱이 한복판에 배치했다. 갑사 범종의 인물상은 삭발인지라 머리카락이 없다.모자를 말하는 관모도 쓰지 않았다.그래서 승려가 분명한데,머리 뒤에서는 불·보살상처럼 후광이 빛났다.깨달으면 다 부처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승려라고 후광이 비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수행을 게을리 하지않고,공덕을 꽤나 쌓은 대덕의 고승을 그린 모양이다.두 눈썹 사이에 백호도 들어있다.고리가 달린 긴 지팡이 석장을 들어 승려의 위엄도 갖추었다. 얼굴이 둥글다.선을 응용한 돋을새김이어서 윤곽이 뚜렷했다.눈과 눈썹,입은 제대로 표현되었다.다만 코가 어설프다.눈 언저리에서 시작한 두 줄의 선이 내려왔으나,코를 그려야 할 자리를 비켜났다.코를 그런 모양새로 그려놓을 리가 만무했다.그렇다고 팔자수염을 새길 자리는 더욱 아니었다.종을 만드는 일,즉 주성에 참여한 조각장의 실수쯤으로 덮어두는 것이 좋겠다. 승상은 자비로운 눈길로 대중을 굽어보고 있다.오른 손에 석장을 든 승려는 왼 손에다 둥근구슬 보주를 받쳐들었다.보주를 든 손이 섬세하다.그리고 옷주름이 곱게 흘러 내려 매무새가 유려한 승려는 지녀야 할 물건 지물을 다 가지고 있다. 이 승려상 범종은 16세기 후반에 주성되었다.범종에 나오는 새김글씨 명문에는 「만력12년7월」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선조12년인 1584년의 일이다.명문은 종을 주성하기 전해에 전국 절의 종을 다 거두어 들였다가 다시 주성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 동해안 어선의 중간 기착지 「임원항」/회도 먹고 낚시도 즐기고…

    ◎난·한류 교차지점,넙치·문어 등 “자연산 보고”/값싼 좌판시장 유명… 주말엔 낚시꾼들 몰려 강원도 최남단인 삼척 임원항 주변 어시장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횟감이 좋은 「알짜 시장」이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역이어서 어종이 다양하고 회맛 또한 쫀득거리면서도 감칠 맛이 나는 것으로 미식가들에게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 들어서면 좌판시장을 포함,횟집들이 즐비해 입맛에 따라 횟감을 두루 고르고 맛볼수 있다.아침 일찍 가면 위판장에서도 싼값에 구입이 가능하다. 어시장에 인접한 임원항은 조선시대때부터 일제때까지 부산포를 떠난 배들이 동해안을 따라 오르내리며 중간기착지로 이용해 온 곳으로,좌판은 일제때 소규모로 생겨나기 시작,오늘과 같은 어엿한 시장이 형성됐다. 임원어시장은 무엇보다도 어종이 풍부하고 전국 어느 어시장보다 다양한 횟감을 고를수 있는 이점이 있다.가자미·오징어·문어·방어·청어·임연수어(일명 이면수어)·새우·우럭·쥐치·소라 등. 가자미와 넙치(광어)·문어·대사(새우) 등 동해안 대표적인 어종을 포함한 동해바다의 자연산 활어가 다 나와 있다.간혹 청어·이면수어 등 먼 바다에서 들어 온 선어도 눈에 띄지만 양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이곳 임원 앞바다에서 나는 자연산 돌미역은 전국 최고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인근의 속칭 용굴해안이 강성돔의 산란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연중 바닷낚시를 즐기려는 꾼들이 이곳 어시장을 자주 찾는다.때문에 어시장의 주말은 횟감을 찾는 식도락가들과 낚시를 즐기려는 인파로 뒤섞여 항구전체가 항상 북새통이다. 이병철 원덕수산업협동조합 유통과장은 『임원항에 오르는 생선은 신선도가 오래가고 육질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횟감으로 인기가 높다』면서 『임원항은 동해안의 모든 어종을 맛볼수 있는 유일한 항구인 만큼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횟감을 고를수 있다』고 말했다. ▷좌판시장◁ 어항과 횟집센터 사이에 위치해 있다.여느 어시장처럼 아낙들이 좌판을 벌이고 있어 시골 항구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현지에서 회를 맛보지 않고도 횟감을사는 알뜰 아낙들에게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다. 추위가 남아있는 요즘에는 삼삼오오 모여 좌판이 소규모로 벌어지지만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인근 횟집보다 더 성황을 누리며 짭짭한 수익을 올리는 시장이 되기도 한다. 어민들도 새벽 직접 잡아온 생선을 위판장에 넘기다가 남은 것이나 규격에 미달하는 생선을 판매하는 또다른 시장으로 이용하고 있어 좌판시장은 이래저래 좋은 거래처로 이용된다. 이른아침 위판장에서 나오는 생선을 사지 못했을 경우 이곳을 잘만 이용하면 시중가격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훨씬 싼값에 싱싱한 활어 등을 구입할 수 있다. 판매방식도 시골좌판 분위기가 뭍어난다.상인들의 눈대중으로 무게가 가늠돼 가격이 매겨진다. 자연산의 경우 가자미가 2마리(중간크기)에 1만원,우럭(중간 크기) 1마리 2만원,소라(큰것) 4개에 1만원선에 거래된다.또 선어인 청어(큰것)는 2마리에 1만원,오징어(작은것) 4마리 1만원에 각각 판매된다. ▷횟집센터◁ 시장주변에 50여동의 횟집이 3곳으로 나뉘어 있다. 27동의 횟집이 들어서 있는 중간센터에는 좁은 시장골목을 사이에 놓고 건너편에 24동의 건어물판매점이 자리하고 있어 싱싱한 회와 무공해 미역·건어물을 사는 즐거움도 함께 맛볼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이곳에서 6년째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윤길란씨(65·여·금강산횟집)는 『이곳의 횟감이 맛깔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주말에는 단체 관광객들과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두루 찾는다』면서 『싱싱하고 값싼 횟감을 구하려면 위판이 시작되는 아침 6∼7시가 가장 적당하다』고 귀띔한다. ▷위판장 이용◁ 임원항 바로 옆에 있다.124평과 150평 규모로 2곳이 마련돼 있으나 지금은 물량이 많지않아 한곳만을 이용하고 있다. 경매되는 생선은 대부분 임원 앞바다에서 밤새 잡아올린 것들이다.경매는 상오6∼10시에 이뤄진다.경매는 중간 도매상인과 주변 횟집주인들이 참가하지만 일반인도 이 시간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 경매가격은 가자미가 ㎏당 8천원,넙치(광어)가 1만1천∼1만2천원,문어가 9천800∼1만1천원,새우(대하)가 2만4천원선이다. 선어는 청어가 ㎏당 1천100∼1천200원,이면수어가 2천700원선에 각각 거래되며 속초·주문진·삼척 등 주요 항구보다 약간 싸다. 삼척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으로 곧장 달려 장호·용화를 지나면 임원항에 이른다.승용차로는 40분거리. 부산 등 남부지역에서 찾으려면 역시 포항에서 7번 국도로 접어든 뒤 울진을 지나 강원도와 경북 도 경계에서 승용차로 15분이면 도착한다.
  • 조선초 항구 「제포」/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지난 설에 고향을 찾았다가 우연히 진해시 웅천동 제덕만 제포 연안에서 조선시대 왜구방어용 목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어 현장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경상남도가 제덕만 일대를 매립함으로써 마련되는 3만6천여평을 주택단지로 만들기 위해 지난 95년부터 공사를 진행해 오다 최근에 와서 매립토의 토압에 못이겨 갯벌 속에 박혀 있던 목책의 일부가 개펄과 함께 솟아오름으로써 노출되었다.말하자면 갯벌 속에 박혀 몰랐던 목책을 매립공사로 인하여 발견하게 된 셈이다. 조선 건국 초기 무질서하게 드나들던 왜구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남지방에 동래의 부산포,웅천의 내이포,울산의 염포,즉 삼포를 개항하여 그곳에 왜관을 설치하고 공식적으로 교역하도록 했다. 이번에 목책 시설이 발견된 위치가 바로 이 내이포로서 일명 제포라고도 부른다.그러니까 이들이 조선시대 최초로 왜의 무역선이 출입할 수 있도록 개항한 항구인 셈이다. 그런데 동래 부산포는 부산시의 확장으로 이미 그 혼적조차 없어졌고,울산의 염포 역시 자동차 공업단지가마련됨으로써 사라졌다.오로지 이 제포만이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채 묻혀오다가 그 실체가 일부나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제덕만을 매립하기 전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외심하지 않을수 없다.만일 알고 공사를 했다면 의도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없애려 한 행위라 하겠고 몰랐다면 무지가 문화유산을 망치는 행위가 되는 셈이다. 조선초기에 마련된 삼포중 유일하게 남은 이 제포가 보존되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설정한 참뜻이 될 것이다.
  • 백자연적 기우동자(한국인의 얼굴:95)

    ◎피리소리에 취한듯 지긋이 감은 눈 조선 백자에는 욕심이 없다.물욕과는 거리가 먼 청빈한 마음 같은 태깔.호사스럽거나 떠들썩하지 않은 절제가 배었다.그것이 백자의 아름다움이고 기품이다.백토를 앙금내어 수비로 걸러내기가 어디 한두번이었는가.애초 티끌 하나 끼어들지 못한 태토로 그릇을 빚었다.그리고 나서 백자로 번조하기까지는 정성어린 손길이 닿기 여러 차례였다. 백자는 조선조가 통치이념으로 삼던 유교윤리와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럴듯한 설득력을 갖는다.백자의 첫 등장은 고려말이다.그러나 조선시대 전기에 걸쳐 큰 자리를 차지한 분청사기와 청화백자에 덜미를 잡혔다.백자가 이들 도자기를 따돌리고 최고수준의 자기시대를 연 것은 18세기 전반이었다.그 시기는 조선의 르네상스시대가 막 시작한 영조 초기와 맞물려 있다. 세상사람이 으뜸으로 치는 조선의 공예품은 백자다.그러나 지금은 흔하게 돌아다니지는 않는다.더구나 백자인물상은 그릇에 비해 여간해서 만나기가 어렵다.오늘날 일본 국립도쿄박물관이 소장한 백자기우동자연적 정도가 명품이 아닌가 한다.문자 그대로 소를 탄 소년을 묘사했다.표현기법이 뛰어난 조각이자 걸출한 도자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조각품 백자연적의 높이는 14.1㎝여서 연적치고는 좀 컸다.실용성보다는 예술성에 중점을 두었던 모양이다.소는 엎드렸다.그 소잔등에 걸터 올라탄 소년은 다리 하나를 쭉 뻗고,오른 다리를 불러들여 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소는 그까짓 동자 하나쯤 무게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동자 역시 소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그리고 가로 대고 부는 피리 횡적을 불고 있다. 동자는 피리를 부느라 고개를 슬쩍 젖혔다.무슨 가락인지는 몰라도 피리소리에 저절로 도취되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그래도 긴 눈썹과 선을 같이 한 눈매가 시원스럽다.어린아이치고는 코가 큼직하고,피리를 들여댄 아랫입술이 도탑다.쌍머리를 뿔마냥 바싹 틀어올려서인지 이마가 훤칠했다.피리를 잡은 솜씨가 제법 능숙한 동자는 벌써부터 어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 걸작의 백자기우동자연적은 국립도쿄박물관 소장품이지만,본래는 오쿠라컬렉션(소수창수집품)이었다.일제때 대구를 근거지로 1천110점이나 되는 엄청난 유물을 거두어들인 오쿠라 다케노스케(소창무지조)의 수집품인 것이다.
  • 고려시대 「개성 첨성대」 복원

    ◎국립중앙과학관,고증 거쳐 실물크기로/신라 첨성대·조선 관천대도 나란히 설치 북한 땅에 있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천문 관측 시설인 「고려 첨성대」가 실물 크기로 복원됐다. 국립중앙과학관(관장 유희열)은 11일 전상운 문화재 위원,라일성 연세대 교수 등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개성에 있는 과학문화재인 「고려 첨성대」를 복원,대덕 국립중앙과학관의 옥외 전시장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고려 첨성대」는 경주 첨성대,조선 시대 관천대와 나란히 설치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천문관측 및 과학 원리를 한눈에 볼수 있게 됐다. 개성 만월대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고려 첨성대는 위에는 간의와 해시계를,밑에는 물시계를 각각 설치해 하늘의 변화를 늘 관측했던 천문대이다.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은 『고려시대 천문관측 기술은 서양에서 흑점을 발견한 갈릴레오보다 5백년이나 앞선 1151년,고려시대에 태양 흑점을 관찰하고 기록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며 『이번 첨성대 복원을 계기로 청소년 및 일반관람객들의 우리 과학문화재와 전통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태복감과 태사국이라는 천문기상 기구를 설치하고 천문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기록했으며 또 이를 토대로 중국에서 들여온 역서를 우리나라에 맞게 수정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보하기도 했다.고려시대 천문학자들은 특히 옥돌을 얇게 렌즈처럼 만들거나 오수정을 사용해 육안으로 흑점을 관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눈길끄는 영화·비디오… 설 연휴를 즐겁게

    ◎극장가/초록물고기­폭력조직 보스애인 사랑 끝내 파멸/에비나­마돈나·반데라스 주연 뮤지컬 영화/나이스 가이­성룡 몸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 볼만 설 연휴 첫날인 7일 한국영화 「초록 물고기」를 비롯,외화 「조강지처 클럽」「댓 씽 유 두」「에비타」 등 네편이 서울에서 선보인다.앞서 개봉한 영화들을 합쳐 이번 설에도 국내외 화제작 열대여섯편이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다. ▷한국영화◁ 「초록 물고기」는 한석규·심혜진·문성근 등 정상급 연기자 3명이 열연한 멜로물.군에서 갓 제대한 순진한 젊은이가 우연히 폭력조직 보스의 애인을 사랑하게 되고,그 때문에 암흑가에 뛰어들었다가 끝내 파멸한다는 줄거리이다.이야기 구조가 탄탄한데다 세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어우러져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시사회에서 영화관계자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불새」는 청춘스타 이정재가 제대후 첫 출연해 주목받은 작품.신분상승 욕구에 불타는 젊은이가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으며 목표에 접근하지만 막판에 사랑이라는 덫에 걸려 좌절한다는 내용.이정재가 전라 베드신을 마다하지 않는 열성을 보여 더욱 화제가 됐다. 「초록 물고기」「불새」가 성인용인데 견줘 「체인지」는 모처럼 나온 청소년영화이다.남녀 고교생이 우연한 사고로 서로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을 그렸다.10대의 감성과 사고,행동방식을 제대로 살렸다는 평을 들었다.이밖에 지난 연말 개봉,그동안 서울에서만 30만 관객을 끌어들인 멜로물 「고스트 맘마」가 극장을 바꿔 연장상영에 들어갔다. ▷외화◁ 여느때보다 애정영화가 많이 붙었다.「러브 앤 워」는,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소재로 삼은 체험을 직접 영상화한 작품.18살 젊은 헤밍웨이의 열정과,그에게 점차 빠져드는 8살 연상의 간호사 심리가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됐다.산드라 블록·크리스 오도넬의 연기와 매력도 뛰어나다. 톰 크루즈의 남성미가 돋보이는 「제리 맥과이어」와 ▲이혼당했거나 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힘을 합쳐 남편들을 혼내주는 코미디 「조강지처 클럽」 ▲톰 행크스의 감독 데뷔작인「댓 씽 유 두」 ▲마돈나·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뮤지컬 「에비타」등은 모두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다. 액션물로는 성룡 주연의 「나이스 가이」가 재미있다.성룡이 세계를 겨냥해 만든 두번째 작품으로,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가 그대로 살아 있는데다 스케일은 헐리우드영화 못지않게 커진 것이 장점. 호주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실화를 그린 음악영화 「샤인」,국내 최초로 극장에 붙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월레스 앤 그로밋」은 높은 작품성을 지닌 영화로 꼽힌다. ◎비디오/체인 리엑션­수소에너지 개발 둘러싼 액션물/스파이 하드­세계정복 노리는 악당 일망타진/귀천도­김민종·이경영 주연한 무협영화 설연휴는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가지는 기간이기도 하다.연휴 집에서 편하게 쉬고자 할 때 비디오감상이 제격이다.최근 볼만한 비디오들을 장르별로 몇편 소개한다. ▷체인 리액션◁ 「스피드」의 스타 키애누 리브스와 「쇼생크 탈출」의 흑인배우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액션물.자원이 무궁무진하고공해도 없는 수소에너지를 대학연구소가 개발하지만 그 순간부터 연구소가 폭파되고 연구자들이 피살·납치된다는 줄거리.정체모를 힘에 쫓겨 끝없이 도주하는 리브스의 액션,그리고 대폭발 장면 등 박진감 넘치는 화면이 볼 만하다.최근 개봉작. ▷스파이 하드◁ 인기영화들의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화해 엮은 액션 코미디.일급 첩보원이 세계정복을 노리는 악당들을 일망타진한다는 줄거리는 「007시리즈」의 구조 그대로.여기에 「스피드」에 나온 버스 점프장면을 비롯 「펄프 픽션」「마스크」「클리프 행어」 등에서 따온 장면이 많아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주인공 레슬리 닐슨은 「총알 탄 사나이」로 널리 알려진 배우다. ▷신 당산대형◁ 「철마류」 「황비홍」 등의 영화와 최근 종영한 TV시리즈 「신 정무문」에서 낯익은 견자단이 주연·감독했다.이소룡·이연걸을 뒤잇는 홍콩의 대표적인 무술스타답게 그는 감독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정통무술을 앞세운 화려한 액션과 스피디한 화면전개를 보여준다.이소룡 첫 주연영화인 「당산대형」에서 제목을따왔지만 스토리는 전혀 다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란의 세계적인 감독 아바스 카아로스타미의 대표작.시골 초등학교 2학년생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영화에 관한 지평을 넓혀줄만큼 독특하면서도 뛰어나다.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개봉돼 예술영화로서는 드물게 3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비디오로 출시된지는 꽤 됐지만 어른·아이가 같이 봐도 좋은 수작. ▷휴 그랜트의 사이렌스◁ 에로틱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유머넘치는 작품.요조숙녀의 전형처럼 보이는 성공회 신부의 아내가 누드화를 그리는 화가 집에 머물면서,섹스는 결코 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임을 깨닫는다는 내용.그림같은 풍광 속에서 파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되며,세계적인 모델 엘 맥퍼슨을 비롯한 여배우들의 매력이 상당하다. ▷컨택트·투 영 투 다이◁ 브래드 피트의 초기작 두편을 모았다.「투 영 투 다이」는 부모와 사회에게서 버림받은 15살 소녀가 살인을 저질러 사형당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발한 사회성 짙은 영화.피트는 소녀를 「등쳐먹는」악역으로 등장하며,「올리버 스톤의 킬러」의 스타 줄리엣 루이스가 주인공을 맡았다.「컨택트」는 걸프전에 참전한 미군이 낙오돼 이라크 병사와 조우하지만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상대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낀고 헤어진다는 내용의 단편영화. ▷제프리◁ 동성애와 에이즈를 소재로 했지만 「야한」장면이나 대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 코미디.인간미 넘치고 유쾌하지만 우리 정서에는 다소 어긋날 수도 있다.동성연애자인 제프리가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이상 섹스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 뒤 벌어지는 갖가지 소동을 그렸다. ▷귀천도◁ 김민종·이경형이 주연한 한국형 무협영화.이경형이 처음 감독을 맡고 제작에도 나선 작품이다.조선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스토리 전개,중국영화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검술 대결신이 산뜻한 느낌을 준다.김민종의 가요계 은퇴를 불러온 주제가 「귀천도애」가 10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 전통놀이로 가족화목 다지자/쌍륙놀이 등 설날 온가족이 오순도순

    ◎남녀노소 함께… 서먹한 분위기 말끔히 설을 맞아 평소 보기 힘든 일가붙이들이 한데 모였다.떨어져 산데다 집안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나이차가 크다보니 마주 앉아도 서먹서먹하기만 할뿐 서로 할 말이 없다.자연히 남자들은 술마시며 내기화투로 흐르고 여자들은 끼리끼리 둘러앉아 남편흉이나 보기 쉽다.모처럼 한 장소에 모인 친지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공통의 즐거움을 나눌 방법은 없을까. 우리 전통놀이 가운데는 이럴때 어른아이 할 것없이 온가족이 모여 즐길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놀이가 많다. 함께 즐길수 있는 전통 설놀이 몇가지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의 도움으로 소개한다. ◇쌍륙놀이=주사위를 던져 말을 전진시키는 게임.백제때 시작돼 조선시대 성인들 사이에 가장 유행했으나 일제때 화투에 밀려 사라졌다.이 놀이는 동방은 물론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고 현재 세계선수권까지 열리고 있다.두사람이 자기말 15개씩을 판위에 배열한 다음 주사위 두개씩을 던져 나온 숫자의 합만큼 말을 이동시킨다.자신의 모든 말을 먼저 판밖으로 내보내면 승리하는데 도중에 적의 말을 잡거나 막는 등 여러가지 견제수를 쓸수 있다. ◇투전(돈치기)=정초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하던 놀이.평평한 마당같은 곳에 금을 하나 긋고 5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동전 하나 들어갈 구멍을 뚫어놓는다.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제각기 동전을 던져 구멍에 들어간 사람을 첫째로 삼고 떨어진 곳이 구멍에 가까운 순서대로 차례를 정한다.금을 밟고 차례대로 돈을 던져 구멍에 든 것은 그냥 따먹고 나머지는 지정하는 것을 돌로 만든 목대로 맞혀 따먹는다.두사람 이상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길수 있는 간단한 실외놀이이다.
  • 백자철화 인형명기 부부상(한국인의 얼굴:94)

    ◎큰 충격에 망연자실한 남정네/아낙은 영문모른채 ‘휘둥그래’ 조선시대 도자공예에는 명기가 있다.여기서 명기는 도자기 인형을 말한다.죽은 이들의 내세를 위해 무덤에 넣어주는 껴묻거리인 것이다.어두운 무덤속으로 들어간 기물이었을지라도,밝은 내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그 역사는 제법 오래되어 신라에서는 흙인형 토우나 토기를 명기로 썼다.그리고 고려 사람들은 청자그릇을 무덤에 묻어 먼저 간 죽은 이들의 저 세상을 걱정해주었다. 조선시대에 도자로 구워낸 명기는 16∼17세기 무덤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이 시기는 백자철화가 유행했던 때여서 백자철화인형명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또 실제 전해오는 인형명기도 철화계통이 많다.철화백자는 산화철 무늬가 들어간 백자다.쉽게 말하면 무쇠의 녹으로 무늬를 그려넣은 백자인 것이다.그래서 무늬의 빛깔은 이른바 고동색이라는 적갈색을 띠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철화인형명기는 철화를 효과적으로 응용한 도자공예다.이 철화명기는 남녀 두 쌍에 홀로 선 문관상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이들 다섯 인형의 키는 6.6∼8.7㎝에 불과했다.그렇듯 키가 작은 인형들이지만,표정은 살아있다.더구나 가운데 끼인 인형 한 쌍의 얼굴에는 다른 인형들에 비해 감정이 폭넓게 드러났다.표정이 풍부하기로 말하면 만점인 것이다. 한 쌍의 인형은 부부인 듯하다.상투머리를 한 남정네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약간 굽혀 읍하는 자세로 서 있다.귀와 눈두덩,인중과 턱은 코와 함께 덧붙여 얼굴 윤곽이 질감있게 표현되었다.인중과 턱이 유별나게 긴 남정네는 입을 벌렸다.그냥 헤벌린 입이 아니고,큰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 상태다.눈은 동공만을 동그랗게 그렸다.그래서 놀라는 눈이 되었다. 아낙은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놀라워하는 남정네 기색에 그만 놀란 것일까.아낙은 남정네 얼굴을 살피고 있다.남정네가 그토록 놀라워하는 까닭을 아낙은 곧 알아차릴 것이다.어떤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그리고 북망산한 자락 땅속으로 들어갈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그렇게 명기는 죽은 이와 더불어 무덤으로 갔다. 이들 인형명기의 표정은 철화,또는 철채라는 색깔이 좌우했다.백자 바탕에서 고동색 철화무늬가 꽃피었던 16∼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시기다.
  • 조선시대 유명인사 200여명 인장모음집/「한국고인대관」편찬 착수

    ◎다산 실인 120과 등 2만여과 수록/이원기씨 20여년 수집… 사과가치 커 서울 인사동에서 고미술 수집가로 널리 알려진 이원기씨가 추사와 다산 등 조선시대 명인들의 인장을 집대성한 인보인 「한국고인대관」편찬작업에 착수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선 「한국회화대감」 「서화인명사서」 등 회화와 미술분야의 인명·작품사전들이 나와있으나 인장을 집대성한 이같은 도록을 낸 적은 없었다.특히 이씨는 이 인보편찬 말고도 인장박물관인 「한국고인사료관」을 만든다는 숙원을 갖고있는 만큼 이 인보편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여년간 인장을 수집해와 인사동에선 인장에 관한한 탁월한 전문가로 인식될만큼 이 분야에 정성을 쏟아온 인물.고서화 수집을 하던 지난 1971년부터 인장에 대한 애착을 가져 인장을 볼 때마다 주저없이 구입했다.특히 지난 85년 원주의 한 상인이 다산의 인장 2과에 대해 감정을 의뢰해 온 때부터 다산의 자취를 직접 추적,다산의 인장만 해도 120과를 모았다. 이씨는 그동안 벌여온 인장 수집작업을 일단 마무리짓고 그간 모아온 실인과 도장 인쇄본인 인존 2만종을 집대성해 도록으로 만들 계획이다.이를 위해 우선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도장과 인존에 대한 검증차원에서 문화재위원과 전문위원에게 감정을 받은뒤 본격적으로 편찬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일본의 경우 50여년전인 1943년 역대 유명인사들의 인장과 인존 1만5천방을 모아 인보를 냈을만큼 인보가 발달했으나 우리는 1968년 국회도서관에서 유명 서화작가의 인장 1천200종으로 펴낸 근역인수를 빼놓곤 한번도 정리된 것이 없다.이 근역인수도 실제 인장의 내용과 크게 다른게 많아 학계에선 인보 정리의 필요성이 적지않게 대두돼왔다.특히 인보는 고서화의 낙관과 비교해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지적돼왔다. 이씨가 소장하고 있는 인장은 다산 정약용의 실인 120과등 실제인장 600여과를 포함,실인·인존 등 모두 2만여과.다산의 자취를 따라 정읍 김제 청주 광주 등에서 모은 다산 인장말고도 추사 김정희,초이선사,허소치 등 조선시대명인 50명의 실인 등 200여명의 인장이 들어있다. 이씨는 『인장은 옛 선인들의 인격과 성품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될 뿐 아니라 도장을 장식하는 형태도 다양해 조형미술 차원에서도 연구할 가치가 많은 훌륭한 문화유산』이라면서 『소장 인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거쳐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 지진대책(외언내언)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구려 유리왕 21년.이후 조선조까지 1천800여회의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이를 시대별로 보면 삼국시대 102회,고려시대 169회,조선시대 1천560회.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목종때인 서기 1002년과 1007년 두차례에 걸쳐 제주도에 불기둥이 솟았고 불덩이가 민가를 뒤덮어 인축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그런가하면 중종실록에는 1518년 7월 서울에도 지진이 일어나 담과 집이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밖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땅에 현대식 지진측정기가 처음 설치된 것은 1905년.그래서 그 이전에 발생한 지진을 「역사지진」,그 이후를 「계기지진」이라고 한다.계기지진중 가장 피해가 큰 것은 1936년 지리산 쌍계사 지진과 78년 홍성지진.모두 진도 5.5의 강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지는 등 큰 소동을 빚었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지진안전지대로 인식되어 있다.그러나 지질학적으로는 환태평양범지진대에 속해 있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사실이나위험은 잠재해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경고다.기상청에 따르면 근년들어 지진발생빈도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올들어서도 지난 15일까지 5차례의 미진이 있었다는 것. 과학기술처는 이처럼 빈발하고 있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부터 2005년까지 총 4백50억원을 투입,지진관측 및 연구사업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이를 위해 243개의 가속도계기와 60개의 지구위치측정시스템을 설치해 이웃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났을때도 지표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화까지 추적할 방침이다.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가 지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때다.지진은 천재지변이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방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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