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선시대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자위권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종합대책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예술가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대학병원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80
  • 나뭇잎 접어부는 ‘풀피리’ 박찬범씨 무형문화재로

    풀피리가 처음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최근 풀잎이나 나뭇잎 가장자리를 살짝 접어서 부는 풀피리를 '초적(草笛)'이라는 이름의 서울시 무형무화재로 지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초적의 달인 박찬범(52·광진구 노유동 4의 20)씨는 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박씨는 동백·유자·귤잎은 물론 상춧잎으로 '시나위' 한 곡조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져졌다. 서울시는 이번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 “풀피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음악서인 악학궤범에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성이 있고 박씨의 재능은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무속인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풀피리를 배운 박씨는 특정인에게서전수받지 않았고 국악을 전공하지도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그동안 지정이 보류돼 왔다. 박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일을 돕다가 10대 후반부터 목수로 전국을 누비며 공사장 인부들에게 풀피리 소리를 들려주면서 재주를 갈고 닦았다.박씨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97년부터 본격적인 연주활동에 나섰으며,98년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을 갖는 등 국악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박씨는 “그동안 풀피리가 전통악기로 인정받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며 “풀피리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후학 양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개성서 남북공동 釋奠大祭

    공자를 모시는 문묘의 전통 유교 의례인 석전대제(釋奠大祭)가 북한 개성의성균관에서 오는 9월 초 남북한 공동 주관으로 치러진다. 최창규(崔昌圭) 성균관장은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장재언(長在彦) 북한적십자사 총재와 양측 종교인평화회의 회장 모임을 갖고 오랜 기간 우리 문화를 지배해온 유교생활 문화의 만남을 통해 남북한간 동질성 회복을 앞당기기위해 이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를 위해 성균관 유생과 전통아악 연주자,각 종교 지도자 등 100여명이 북한을 방문,추계 석전대제(9월6일)를 집전한다.북한측도 관람 수준을 넘어 공동 진행한다. 최관장은 남한에는 서울의 조선시대 성균관과 360개 향교가,북한에는 개성의 고려시대 성균관과 120여개 향교가 각각 잘 보존돼 있으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에서만 치러지는 석전대제와 같은 의례문화는 북한에서는 사라져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조선시대 宗親府건물 제자리 찾을 가능성 높다

    지난 81년 국군기무사령부 뒷마당에서 해체된 뒤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세워진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건물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국방부가 경복궁 동쪽의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기무사 건물을 새로 짓는 계획을 재검토키로 함에 따라 그 자리에 종친부 건물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친부는 조선시대에 왕실 일가친척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궁궐안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경복궁 건춘문 바로 앞에 자리했다.고려시대제왕자부(諸王子府) 이후 명맥을 이어오던 종친부는 1907년 폐지됐다. 1913년에는 일제가 그 자리에 경성의대 부속건물을 세웠고,해방 이후 수도육군병원으로 활용되다 1971년 기무사가 홍릉에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종친부 건물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대로 서 있었다.81년 해체될 당시에 이미 서울시 지방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상태였다. 종친부 건물은 1894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63.45평 짜리 주건물(中堂·중당)과 건물에서 바라보아 왼쪽의 32.84평 짜리 부속건물(左翼廊·좌익랑)이 아직도 위세가 당당하다.다만 오른쪽에 왼쪽과 같은 규모로 서 있었을부속건물(右翼廊·우익랑)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기무사는 8,000여평에 이르는 부지 안쪽에 대형건물을 신축하되 삼청동길에면해 있는 옛 경성의대 부속건물 자리 700여평에 미술관을 짓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예술인들로 이루어진 사간동 문화거리추진위원회가 지난 96년부터 종합문화센터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기무사 이전 및 문화공간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공감대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이제 국방부가 기무사령부를 이전키로 결론내릴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곳을 문화공간화하는 방안은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 기무사 부지에 세워져있던 건물까지 남아있는 만큼 문화공간을새로 조성하기에 앞서 역사성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목소리도 높다. 일부에서는 소격동 일대가 종친부를 비롯하여 왕실의 도서관인 규장각과 왕의 사위인 부마들을 위한 관청인 의빈부(儀賓府) 등 왕실 관련기관이 밀집한지역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무사 부지 안쪽의 제자리에 종친부 건물을 먼저 복원하고 주변을 사적공원으로 조성한 뒤 여유공간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해야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나아가 덕수궁 안에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은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그 자리에 조선왕조역사박물관으로 확대되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경복궁을 완전복원하려면 기존 박물관 건물은 언젠가는 철거할 수 밖에 없다.결국 조선왕조박물관의 역사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위치는 종친부 주변이 아니겠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동철기자
  • 40년 탐색한 ‘만다라의 신비’

    지난 40년동안 만다라의 세계를 탐색해온 전성우 화백(66)이 15일 문을 여는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개관기념전 작가로 초대됐다.국내에서 개인전을 갖는 것은 6년만이다. 만다라는 밀교적 수행법에 필요한 단(壇) 또는 부처 보살상이 그려진 회화를 일컫는 산스크리트어로,우주 삼라만상이 수레바퀴 모양으로 둥글게 완결되는 융화적 질서를 의미한다. 작가가 만다라의 신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친인 간송미술관 설립자 전형필 선생이 이룩한 컬렉션(현재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부터 받은 영향이크다.젊은 시절 만다라 연구로 유명한 미국 밀즈 대학에 유학한 것도 그의작품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에서는 만다라를 화두삼아 동양적 정신세계를 예술로 승화시켜온 그가 90년대 들어 추구해온 청화만다라(靑華曼茶羅)의 조형세계를 집중적으로 선보인다.출품작은 청화만다라 평면작품30여점과 부조 15점, 오브제 7점 등 모두 50여점.특히 이번 전시의 핵인 청화만다라 연작은 조선시대 청화백자의 청화무늬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우리옛 미술품에 대한 작가의 심층적인 교감을 엿보게 한다. 청화만다라 연작은 흰색 바탕의 캔버스 위에 청화백자 이미지의 푸른 색상들이 갖가지 형태로 어우러져 있다.마치 고대의 반달모양 장식유물인 곡옥(曲玉)같다.이전의 광배(光背)만다라에서의 완벽한 좌우대칭과 달리 황갈색조의 정방형 또는 정삼각형 등을 끌어들여 독특한 균제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남청색 안료의 무늬와 그림은 청화백자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의미를현대회화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심정적 불교신자라고 소개한 작가는 “나의 만다라 작품을 불교적인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자유롭게 감상해달라”고 주문한다. 서울대 미대 재학중 미국유학길에 오른 그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와 밀즈대 대학원을 거쳐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1965년 귀국한 이래지금까지 12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서울대 교수,국전 심사위원,보성고교 교장을 지낸 그는 현재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한편 이번에 개관하는 인사아트센터는 서울 평창동가나아트센터에서 지은것으로 순수미술작품과 공예품,디자인,아트상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인사동 최대의 복합문화공간이다.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이 건물은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로 문화예술공연장(지하1층),아트디자인샵(1·2층),전시장(3층),고급미술매장(4층과 5층),미술업무시설(6층) 등으로 구성돼 있다.전시는 15일부터 6월 4일까지.(02)734-1333. 김종면기자 jmkim@
  • 팔당호주변 개발 몸살/ “환경보다 개발수익이 우선”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2,000여만명의 식수원인 팔당호 주변의 개발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경기도 양평·가평군 등 팔당호를 끼고있는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개발을 억제하는 각종 법 상의 규제와 정부 정책이 시행되는 시점을 교묘하게 피해 허가를 남발하고 있다.이대로 가다가는팔당호로 흘러드는 한강수계 남·북한강 및 경안천 양안(兩岸) 500∼1,000m내의 땅을 매입해 개발이 불가능한 수변구역으로 지정한다는 환경부의 방침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팔당 상수원 보호를 위한 특별대책이발효된 지난해 8월9일 전에 주택·여관·음식점 등 건축허가를 받은 사람들이 땅을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수변구역 내 토지는 소유주가 정부에 매입을 요청할 경우에만 살 수 있다. 강에서 불과 100여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산48번지 B카페 뒷편 경사면에는 현재 전원주택 38채를 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축대를 쌓고 땅을 고르는 등 기초공사는 끝난 상태다.이 곳은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가평군 쪽으로 난 강변도로와 맞닿아 있어 북한강이한 눈에 들어 온다. 이 전원주택 단지의 면적은 모두 1만2,000평(3만5,029㎡).양평군은 95년 2월부터 99년 5월까지 1개 구역씩 3차례에 걸쳐 6건의 산림 형질을 변경했다. 모두 한강법이 효력을 발생하기 전,그리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분양을 목적으로 한 형질 변경을 금지하기 전에 이루어졌다.2개 구역은 산림 형질을주택 신축이 가능한 토지로 직접 변경했고,1개 구역은 과거 토사채취장이었다는 점을 내세웠다.토사채취장을 그대로 두면 경관이 좋지 않으므로 집을짓고 조경공사를 하는 방법으로 복구한다는 구실 아래 건축허가를 내준 것이다. 양평군은 이 지역이 산림법 상 준보전임지,국토이용관리법 상 준농림지역,환경정책기본법 상 상수원보호구역이 아닌 특별대책지역이므로 형질 변경에법적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팔당호 수질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한 데도 단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고만 말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양평군에 인접한 가평군도 마찬가지다.가평군은97년 10월부터 99년 10월까지 청평댐 옆 외서면 대성리·삼회리,설악면 가일리·천안리일대의 7건 1만6,323㎡의 산림 형질 변경을 허가했다.이 가운데 사업목적에분양이라고 명시된 곳은 5개의 택지 개발을 신청한 대성리 산 122번지 한 곳뿐이다.나머지 6곳은 거주를 목적으로 형질 변경을 신청했으나,1명이 2개이상의 택지 개발을 신청한 점으로 미루어 분양을 목적으로 한 것임이 뻔하다.분양 목적을 명시한 대성리 산 122번지도 분양을 목적으로 한 택지 개발이 금지되기 바로 전인 99년 10월20일 형질 변경이 허가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같은 사례는 비단 양평·가평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북한강을 끼고 있는 남양주시와 경안천 유역의 광주군,남한강 유역의 이천·여주시 등도 예외가 아니다.환경부 관계자는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개발을 허가하는 이유로 세수(稅收) 증대를 앞세우고 있으나,지방자치단체장의묵인 또는 토지 소유주와 공무원들과의 결탁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말했다. 문호영기자 alibaba@. *편법개발·허가 어떻게. 상수원 주변의 지방자치단체와 토지 소유주들은 상수원 보호에 역행한다는비난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카페·러브호텔·주택 등을 짓는다. 준(準)보전임지 또는 준농림지를 건축이 가능한 대지로 직접 형질을 변경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축사·버섯 재배사·토사채취장 등으로 허가를받은 뒤 복구하는 과정에서 건물을 짓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한 필지에 여러 채의 집을 짓기 위해 필지를 분할하고,외지인이 현지 주민의 명의를 차용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경기도에 따르면 98년 1월부터 99년 10월까지 양평군은 83건,가평군은 54건의 러브호텔 신축을 허가했다. ●필지 분할 현행 법 상 동일한 필지에는 건물을 하나만 지을 수 있다.따라서 많은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필지를 가능한 여럿으로 쪼개 많은 건물을지으려고 한다.한 필지에 주택은 800㎡ 이내,여관·음식점 등은 400㎡ 이내에서 건축이 가능하다.팔당호 주변의 택지 개발 허가가 난 땅들은 대부분 한필지의 면적이 1,000㎡ 안팎이다. 환경부는 필지 분할에 따른 건축을 규제하기 위해 97년 10월1일 이후 분할된 필지에 대해서는 마을회관 등 공공복리시설 또는 지역 주민의 단독주택에대해서만 건축 허가를 내주도록 하고 있다.또 지역 주민이라도 분양을 목적으로 한 택지 개발은 금지하고있다.그러나 현지 주민이 집을 짓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외지인이 현지 주민의 명의를 빌려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는편법을 낳고 있다. ●토사채취장 복구 지방자치단체는 공공 공사에 필요한 토사를 채취하기 위해 토지 소유주의 양해를 얻어 산을 깎는다.표면적으로는 토지 소유주의 양해를 얻는 것이지만,실제로는 토지 소유주에게 건축을 허가하기 위한 구실을주기 위한 성격이 짙다. ●버섯 재배사 등의 용도 변경 축사나 버섯 재배사로 허가를 받은 뒤 판로확보 등의 어려움을 내세워 문을 닫는다.그러나 얼마 뒤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건물을 짓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건축 허가를 신청한다.토지 형질이축사·버섯 재배사를 설치할 수 있도록 이미 변경된 곳이기 때문에 허가가쉽게 난다.조선시대 유학자 이항로 선생 생가가 있는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노문리 일대 노문계곡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문을 닫은 버섯 재배사가 있다.그러나 지난해부터 주변의 산을 깍는 공사자 진행되고 있다.현지 주민에따르면 버섯 재배사를 철거하고 건물을 짓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창고로 둔갑한 축사 환경부에 따르면 하남시의 경우 지금까지 1,766건,306만5,050㎡의 토지 형질을 변경해 축사 허가를 내주었으며,축사는 90% 가량이창고로 개조됐다.하지만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철거된 뒤 축사가 다시 들어서기란 쉽지 않다.서울과 맞닿은 곳이기 때문에 건축등 각종 개발 압력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환경부는 시 전체 면적의 95%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하남시가 개발을 위해 편법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문호영기자. *”보전할 수변구역 한평도 안남을판”. “팔당호로 흘러드는 남·북한강 및 경안천 주변의 목 좋은 곳은 택지 조성이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됩니다” 한강환경감시대 김주희 기동반장은 “이대로 가면 정부가 수변구역 지정을위해 매입할 수 있는 땅이 한 평도남지 않을 것”이라며 좀처럼 수그러들지않는 팔당호 주변의 분별없는 개발을 걱정했다.김 반장은 “먹고 살 만해진뒤 경치 좋은 곳에서 쾌적하게 살려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지만 너무심한 감이 없지 않다”면서 “어느 날 갑자기 산이 통째로 깎여 나간 곳을본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반장은 “특히 러브호텔과 음식점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면서“음식점보다는 여관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러브호텔은 건축비는 많이 들지만 일단 지어 놓으면 음식점에 비해 인건비가 덜 들어 수익성이 높기 때문.손님들이 신분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신용카드가 아닌 현찰을 내고 에누리를 요구하지도 않아 세원(稅源)도 드러나지 않는다.김 반장은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북한강 변에서 러브호텔을 임대해 운영하던 사람이 몇 년 만에 근처에 러브호텔을 지을 만큼 장사가 잘 된다”고 귀띔했다. 김 반장은 “환경 정책은 잘 해야 본전(현상 유지) 밖에 찾지 못할 뿐 아니라,자칫 주민들의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호영기자. *상수원 보호 왜 겉도나. 법이나 정부의 대책만으로는 식수원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지방자치단체장,국회의원,지역 주민,현지에 땅을 갖고 있는 외지인 등의 의식이 바뀌기 전에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최근 4·13 총선 전에는 남·북한강 및 경안천 유역 출신 여당 의원들이 한강유역환경관리청에 “표가 떨어지니 단속을 하지 말라”는 전화를 하기도했다.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마찬가지다.지난해 P군수는 환경부 장관에게“한강환경감시대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며 대장과 지도단속계장을 교체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하남시는 지난해 지역 언론을 부추겨 한강환경감시대가 없어져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토지 소유주들은 상수원 보호를 위해서는 건물이 들어서면 안된다는 사실을인정하면서도,법만 위반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예외규정을 최대한 활용한다.97년 10월1일 이후 분할된 필지에는공공복리시설 또는 지역 주민의 단독주택만 지을 수 있도록 해 외지인들의건축이 불가능해지자 외지인들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지역주민들은 또 자기 명의로 단독주택을 지을 때 나중에 음식점 등으로 쉽게 개조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한다.현행 식품위생법은 주택을 음식점 등으로 용도를 변경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판단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하지만 토박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대부분 허가를 내줄수 밖에 없다. 이해가 부족하기는 규제개혁위원들도 예외가 아니다.규제개혁위는 지역 주민들에 한해 주거목적으로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예외 규정이 외지인에대한 차별이라는 점을 들어 규정 철폐를 환경부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팔당호 주변의 건물과 토지 대부분이 외지인 소유이기 때문에 외지인에 의한개발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도,형평성만 고려해 외지인과 지역 주민을동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호영기자
  • 권력투쟁 점철된 한국정치

    한국정치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해석한 고전 ‘소용돌이의 한국정치’(한울아카데미 펴냄)가 원저인 ‘Korea,The politics of the Vortex’가 나온지 30여년만에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지난 88년 사고로 숨진 그레고리 헨더슨(한국명 한대선)이 쓴 이 책은 한국에 관한 해외서적이 전무하다시피한 6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펴낸 것이다. 헨더슨은 책에서 조선시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한국 정치문화의 특성은 ‘소용돌이’라고 단언한다.그에 따르면 한국인은 영토 인종 종교 언어 정치 등 국가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동질성이 오래유지된 탓에 다른 나라처럼 그런 부분의 분열은 겪지 않았으나,대신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과 가족,파벌 들이 중앙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강력한권력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정치는 태풍의 눈인 중앙권력을 향해 어지럽게 돌아가는 소용돌이양상을 띠고 있다며 자신의 ‘소용돌이이론’을 전개한다.한국은 ‘권력을향한 소용돌이’가 거센 탓에 이슈보다는 권력장악,타협보다는투쟁,반대파에 대한 강한 적개심 등이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냐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헨더슨은 한국사회를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의 다원화와 합리성을 추구함으로써 권력의 분산을 이뤄내야 한다고 제시한다. 해제를 쓴 김달중 세종연구소장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의 새로운 측면을 도발적으로 부각시킨 중요한 저술”이라고 평가했다.값 2만8,000원. 박재범기자
  • 부처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오는 5월 11일은 불기 2544년 부처님 오신 날.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부처님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봉축 법요식을 비롯한 연등축제 전통등전시회,예술제,불우이웃 돕기 등 각종 행사를 펼치기로 했다. 종단협의회는 이에 따라 올해 석탄일행사의 표어를 ‘부처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로 정하고 ▲자비정신의 확대와 ▲등(燈)문화향상 ▲연등축제의 전통문화축제화를 행사의 큰 방향으로 설정했다. 봉축행사를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계기로 삼고 옛부터 전해오는 석탄일의 상징인 등문화와 등축제를 고려시대 연등회,조선시대 관등놀이와 같은역동적인 전통문화축제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가장 큰 행사인 봉축 법요식은 5월11일 오전 10시 조계사와 전국 사암에서일제히 거행된다.이에 앞서 5월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시청 앞에서 점등식이열리며 6일부터 11일까지 조계사에서 전통등전시회도 마련된다.또 7일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종로일대에서는 연등축제가 마련된다. 연등축제는 낮12시부터 조계사앞 우정국로에서 거리행사를 여는 데 이어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동대문운동장에서 연등법회,오후7시부터 9시까지 우정국로∼동대문∼우정국로에 이르는 제등행진,그리고 오후9시부터 10시까지 우정국로에서 회향한마당을 갖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석탄일에는 불우이웃과 함께하는 행사들이 많다.30일 불교방송법당에서 수화찬불가발표회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5월4일 원주 구룡사에서장애인세상나들이,5월4일 연등회,8일 영산대제와 탑돌이가 탑골공원에서 차례로 이어진다. 또 5월4일 종각 앞에선 제2회 불교인권문화제가 열리며 5월1일부터 11일까지각 병원에 마련된 법당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연꽃 등을 선물한다.이밖에 각 사찰도 석탄일까지 법요식과 연등축제,거리포교,시가행진,음악회,바자회 등을 다채롭게 마련할 예정이다. 또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무원들은 종로구에 사는 소년소녀가장과 혼자사는노인,장애인이 있는 가정 10가구를 대상으로 매월 생활보조비를 지급하고 방문행사를 가질 예정이다.아울러 최근 산불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자비의쌀 보내기 운동’도 전개한다. 김성호기자
  • 리뷰/ 한국茶器문화상품 특별전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예인 14대 심수관(沈壽官)이 지난90년대 초 경기도 이천의 한 가마를 찾았을 때다.주인은 조선시대 찻주발(茶碗·다완)을 재현해놓고 이 세계적인 도예가의 말문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심수관이 던진 말은 그러나 그릇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다. “이렇게 그릇이 얇으면 뜨거워서 차를 어떻게 마시지?”심수관은 ‘찻주발은 차를 마시기 위한 그릇’이라는 당연한 전제를 얘기했을 뿐이지만,도공들은 쓰임새를 도외시한 채,그렇다고 ‘예술품’도 아닌 것을 만들면서 도예가연하는 자신들에 대한 뼈아픈 일침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없었다. 지금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이천의 도공들을 만날 수 있다.민속박물관과 이천도자기사업협동조합이 지난 20일부터 ‘한국다기(茶器)문화상품특별전’을 열고 있다.(5월1일까지)특별전은 그 때 인상지워진 이천 도자기를 다시보게 만든다.이천을 중심으로전국 도공이 참여한 ‘다기명품 100인전’을 둘러보고 나서는 “심수관이무슨 소리를 할지 한번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100인전’에 출품된 찻그릇은 대부분은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茶罐·다관)와 물을 식히는 주발(熟盂·숙우),그리고 찻잔과 찻잔받침이 한벌을 이룬것들이었다. 그런만큼 ‘전통적 방법으로 차마시기’에 머문 한계는 있어 보였다. 특별전이 내건 목표가 ‘차 문화 및 도자기 문화의 대중화’라면,차 마시기를 도(道)닦기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찻그릇이라는 ‘하드 웨어’의 다양화로 차문화라는 ‘소프트 웨어’의 활성화를 노리는모습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00인전’은 한벌의 다기가 청자와 분청사기·백자에서부터 현대적인 기법에 이르기까지 100가지 양상으로 한자리에 펼쳐졌다는 것만으로장관이었다.무엇보다 관람객 대부분이 “이것은 한벌 갖고 싶은데…”라며어느 전시회보다도 관심있게 진열품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이제 우리 도자기가 장식성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실증이 아닐 수 없었다. 민속박물관 마당에서 다기 및 소품판매전이 함께 열리는 것도 이런 변화와일맥상통한다.이천과 광주의 가마에서 다양한 상품들이 나와 있다.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반드시 ‘…100인전’을 보기 전에 사라는 것이다.처음엔 좋아보인 물건도 ‘…100인전’을 보고 나면 눈에 찰 리 없다. 물레를 돌리며 관람객들이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보는 도예교실은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깊이 심어주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28일에는 윤용이 원광대교수와 박종한 아인다기연구소장이 ‘다기학술발표회’를 갖고 29일에는 들차시연회,30일에는 전통다례시연회도 열린다.시각은오후2시.(02)734-1346. 서동철기자
  • 온양문화제 내일 개막

    충남 아산은 이순신장군의 얼이 어린 충절의 고장이다.또 조선시대 왕실온천이 있던 온양과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도고말고도 새로 개발된 아산온천이 있는 온천의 고장이다. 그런 아산이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난다.27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제39회 온양문화제는 그 노력이 첫번째 결실을 거두는 자리가 될 듯하다.온양만이 갖는 역사적 이벤트들이 시민과 관광객 참여 속에 재연된다. 문화제 중심은 28일 오전11시 이순신장군 탄신 455주년을 맞아 현충사에서열리는 다례행제.전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격을 높였지만 삼엄한 분위기 탓에시민들은 오히려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는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민축제로 탈바꿈한다. 문화제는 27일 저녁7시 전야제로 막을 연다.시청앞 주행사장에서 펼치는 ‘임금님 암행’은,조선시대 온양온천을 찾은 왕이 은밀히 지역민심을 돌아본역사적 사실을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풀었다.이어 열리는 ‘임금님 납시오’는 나라와 지역의 번영을 기원하는 가장행렬이다. 28일 열리는 무과전시의(武科殿試儀)는 왕이 온양에 머물며 지역민심을 다독이고자 시행한 별시(別試)과거시험.내년부터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제 과거시험을 치르는 등 온양 뿐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가꾸어 나갈 계획이다. 이어 29일 저녁에는 충무공이 어린 시절 즐긴 놀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돌싸움(石戰)이 전개된다.1,000명이 벌이는 초대형 돌싸움과 성 무너뜨리기,함성 아우르기로 장관을 연출한다. 이밖에 초롱불행렬과 강강수월래·씨름대회·궁도대회·용마름틀기·전통무술시연·국악공연·연날리기·불꽃놀이·축하공연·테크노페스티벌·DDR경연대회와 각종 전시회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준비했다.(0418)540-2404서동철기자
  • 한국고전의 발견

    순한문 한국고전을 쉽게 풀어 설명한 ‘한국고전의 발견’(한길사 펴냄)의증보판이 최근 나왔다.저자는 한문학자인 이우성 민족문화추진회장. 이 책은 글쓴이의 생애와 학풍,시대적 배경 등 작품 해설을 덧붙여 참고서로도 활용할 수 있다.저자는 “좋은 고전들이 많음에도 한문으로 쓰여져 읽지 못하는 탓에 사람들이 ‘셰익스피어’ 같은 책이 없다고 개탄하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책을 냈다”고 말한다. 책은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과 고려말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서부터 성균관대 설립자이자 독립투사인 김창숙의 ‘심산유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 40종을 싣고 있다. 대부분이 문집이며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남긴 고전이 압도적으로 많다.이황문집인 ‘퇴계전서’를 비롯해 김육의 ‘잠곡전집’,조선시대 최대 명필인허목의 ‘미수기언’,이익의 ‘성호전서’,안정복의 ‘순암전집’과 ‘동사강목’,박지원의 ‘열하일기’,정약용의 ‘여유당전서’,최한기의 ‘명남루전집’ 등이 망라돼 있다. 정기홍기자
  • 한국화가 서수영 개인전, 새로운 채색화의 열정

    채색화는 한국회화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매김돼 왔다.고분벽화에서 고려시대 불화,조선시대의 민화에 이르기까지 채색화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온다. 한국화가 서수영(28)은 채색화의 기법과 정신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단순히 고답적인 전통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것을 새롭게 해석해 내고자 하는 데 그의 작업의 미덕이 있다.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수영 개인전’(27일까지)에서는 작가의 창조적인 열정을 읽을 수 있다.서수영은 장지에 진채 위주의 그림을 그린다.일본화의 주요 안료인 분채와 석채도 종종 쓴다.그렇지만 일본회화처럼기교적이고 장식적으로 흐르지 않는다.그의 그림에는 이미지와 형상을 담아내려는 독특한 표현주의 미학이 담겼다.그는 향비파·장고 같은 전통악기나전통 춤사위 등을 즐겨 그린다.(02)737-7650. 김종면기자 jmkim@
  • 경주 남산 계곡마다 절터 바위마다 부처 얼굴

    경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관광지중 하나다.흔히 한두번의 수학여행으로 경주전체를 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불국사와 석굴암,신라고분군이 유적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들 한다.남산자락에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능과 신라비극을 상징하는 포석정을 비롯,신라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많은 문화재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경주 일원에서 남산이 중요한 세권역중 하나로 올라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남산에는 세계문화유산 심사가 본격화되면서 해외 인사들의 발길이 잦아지고있다.더불어 국내 여행자들 사이에도 답사여행 프로그램이 늘어나는등 남산을 다시 보자는 경향이 뚜렷하다.남산은 해발 468m의 금오산과 494m의 고위산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180여 개의 봉우리로 이뤄졌으며 유난히 돌이 많다.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만도 130여 곳,석불과 마애불이 100여체,석탑이 71기에 이른다. 남산연구소 김구석실장은 “신라인들은 이곳에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이나 부처님이 있다고 믿었고 그 표시로 절을 짓고 바위에 부처를 새겨 유난히 유적들이 많다”고 말했다. 어디로 올라가든 많은 유적들을 만날 수 있지만 삼릉에서 용장골 코스는 신라부터 고려초기까지 석불을 모두 만날수 있어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다. 삼릉코스는 배리삼존불에서 시작된다.배리삼존불은 각각 다른 곳에서 발견된부처님 세 분을 한자리에 모셔놓은 것이어서 조각기법에서 차이가 난다.대나무와 솔숲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불상은 냉골 석조여래좌상.머리와 손발이 없다.골짜기에 굴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이곳에 모셔놓은 것이다.이정표를 따라 왼쪽 산등성이를 쳐다보면 빨간입술에 미소를 머금고있는 마애관음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154㎝의 자그마한 키에 귀여운 모습을 한 보살상으로 친근감이 간다.100m쯤 올라가면 언덕위 절벽바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선각육존불은 조각이라기 보다는 붓으로 그린 한폭의 그림같다.벽면을 향해 오른쪽은 석가여래로 현세의 부처님,왼쪽은 아미타여래로 극락세계의 부처님이다.한공간에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고 있어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동남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얼굴은 망가져 눈과 이마부분만 남아 있고 망가진 부분에 일본인들이 시멘트를 발라 본래의 모습을 망쳐놓았지만 온화한 미소를 연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상선암에서 목을 축이고 봉우리를 향해 오르다보면 상선암 마애대좌불을 만날 수 있다.남산에서발견된 좌불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바위 속에서 현신하는 순간을 새긴 듯했다. 이처럼 남산에서 만난 불상과 마애불상은 하층기단이 생략되거나 머리부터아래로 내려올수록 선이 희미해져 발부분에서는 윤곽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많았다. “혹자는 미완성작품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바위 산속에서 솟아오르는모습을 상징한다”며 김실장은 “불상과 탑,마애불들이 남산과 별개의 것이아니라는 신라인들의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서 부처가 출현하는 극적인 순간들을 형상화한 것으로영화 ‘터미네이터’의 몰딩기법과 같다는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기서 발길을 돌려 금오산 정상으로 향하면 오른쪽에는 상사바위,왼쪽에는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하늘에서 봉황이 내려와 춤을 췄다는 바둑바위가 있다. 바둑바위에서 내려다 본 경주시는 시골의 한적함과 도시의 편리함을 고루갖추고 있었다. 여기까지 설명듣고 불상을 살피다 보면 3시간쯤 걸린다.바로 내려오면 출발점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욕심을 내 금오산 정상으로 발길을 돌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인 용장사 삼층석탑과 조선시대 김시습이 머물면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용장사터를 거쳐 용장골로 내려오면 3시간이 더 걸린다.“문화유산을 보는 안목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좋은방법은 좋은 선생님과 함께 보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답사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본 남산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글 = 경주 강선임기자■가는길 = ●버스 경주시내에서 내남행 버스를 타고 삼불사 앞에서 내린다.돌아올 때는 용장리까지 갔을 경우에는 용장리에서 시내행 버스를 탄다.(30분)●승용차 경주시내에서 오릉을 지나 35번 국도를 따라 500m정도 가면 포석정팻말이 보인다.계속해서 300m를 더 가면 왼쪽에 삼불사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차는 삼불사 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휴일에는 등산객들로 붐벼 주차하기어렵다(주차비 무료).용장리로 하산하면 시내행버스를 타고 삼불사입구에서내리면 된다(3분). ■먹거리 = 쌈밥집이 유명하다.천마총 주변에 전라도 출신 이풍녀씨가 운영하는 ‘구로쌈밥집’(0561-747-0900)을 비롯 10여채가 줄지어 있다.내남면의 왕대나무밥집은 대나무에 쌀이나 닭,장어 등을 넣어서 푹고아 대나무 향이 배어 맛있다. 최씨 종가에서 만든 경주특주인 교동법주(0561-772-5994)는 찹쌀과 밀로 만든 누룩,최씨 종가 뜨락 샘물로 만든다.알콜도수는 15도.시중판매는 안됨. ■숙박 = 특급호텔부터 콘도,청소년시설,장급여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보문단지내숙박촌이 따로 있다. ■남산답사코스 = ①부처골∼칠불암(5시간):신라부터 통일신라 전성기까지 불교 미술을 만날수 있는 코스.②포석정∼금오정(4시간):포석정주차장에서 시작,남산 순환도로를 따라가면서 불상과 절터,석탑을 거쳐 금오정에 이르는 순환 코스. ■남산사랑모임 = 남산연구소 김구석실장이 현재 회장으로 있다.지난 84년에 창립,회원이 150여명으로 남산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매월 음력보름전후 토요일 남산달빛기행 모임을 갖는다.남산답사를 원할 경우 남산연구소(www.kjnamsan.com)나 내남면(www.webtown.org//naenam)사이트를 방문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고승 25人 파란만장한 삶의 자취

    한국 불교를 빛낸 고승 25명의 일대기를 그들이 머물던 사찰과 함께 소개하는 ‘고궁과 명찰’(책이있는마을 펴냄)이 발간됐다.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인 황원갑씨가 산사(山寺)를 답사한 뒤 쓴 이 책은고승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자취를 통해 한국 불교의 흐름을 되짚는다. 삼국시대의 원효대사와 경주 분황사,민중불교의 새벽을 연 진표율사와 금산사,고려시대의 대각국사 의천과 조계산 선암사,보조국사 지눌과 송광사,조선시대 말기 선교를 중흥시킨 경허선사와 동학사,일제 강점기에 수행의 모범을보인 경봉스님과 통도사 등에 관한 얘기를 싣고 있다.값 2만5,000원.
  • ‘한국사 2000년’ 디지털화 결실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사의 대표적인 기록물을 모두 CD-ROM으로 제작,학계에 보급해온 한 업체가 ‘사상계’의 CD-ROM 출시로 ‘2천년한국사의 디지털화’의 마무리 작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이 업체는 해적판과 복사판이 기승을 부려 수익성이 거의 없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사의 소중한 기록들을 지속적으로 CD-ROM으로 제작,보급해 학계의 연구활동과 자료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방미디어(회장 이웅근)는 이달 중순 고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시사 월간지 ‘사상계’(총205권)를 6장의 CD-ROM에 담아 출시할 계획이다.1953년 4월창간된 ‘사상계’는 50,60년대 지식인과 학생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당대의 대표적 시사잡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저항적·비판적 논조를 펴오던 ‘사상계’는 70년 5월호에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을 게재한 것이문제가 돼 폐간처분의 비운을 겪었다. 이번에 제작된 CD-ROM은 ‘사상계’ 원본을 영인본 형태의 이미지 데이터로구성한 것이다.모두 1만240편의 글에 필자는 3,361명,총 페이지는 6만8,297쪽 규모다.제작진은 “‘사상계’ 원본수집과 낙장 보완을 위해 1년여 동안전국을 뒤졌으며 소유권을 놓고 갈등중이던 유족으로부터 어렵게 양해를 받아내 제작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이웅근 회장은 “‘사상계’는 해방후 한국의 정치·사회·사상사를 집약한한국지성사의 결정판으로 해방후 한국문학사를 집대성한 ‘창작과 비평’과함께 2000년 한국사의 마무리편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67년 사상계사의 신인논문상 입상을 계기로 폐간직전 잠시 이곳에 근무한 적이 있는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은 “‘사상계’는 민족주의자 장준하 선생의 혼과 사상이 담긴 결정체”라며 “‘사상계’와 같은 정론지가 필요한 시점에 선배지식인들의 글을 모아 CD-ROM으로 출간한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라고말했다. 한편 동방미디어는 95년 조선 태조∼철종까지의 ‘조선왕조실록’을 1장의CD-ROM에 담아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고종순종실록’(98),‘삼국사기’(99),‘창작과 비평’(99·창간호~통권100호)‘고려사’(2000) 등 한국사의 대표적인 공(公)기록물들을 CD-ROM으로 제작해왔다.최근에는 대상을 넓혀 ‘한국식물도감’‘신동의약보감’ 등을 비롯해 조선시대 생원·진사시험 합격자들의 신상명세를 담은 ‘사마방목(司馬榜目)’을 출시한 바 있으며 조선시대법전인 ‘경국대전’과 ‘한국조류도감’‘한국수목도감’‘갯벌생물도감’등 한국학 전반을 CD-ROM에 담을 계획이다.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은 “방대한 실록을 그동안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읽느라 숱한 세월을 허비했는데 ‘진작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한국학 관련 고문헌 자료의 CD-ROM출간을 반겼다. 정운현기자 jwh59@
  • 세계문화 걸작품 한눈에 본다

    ‘인도의 타지마할’,‘이탈리아 피사의 두오모광장’,‘영국 스톤헤지와에이브베리의 거석 유적’,‘페루의 마추픽추’,‘경주 불국사 석굴암’,‘해인사 대장경과 장경판전’,‘창덕궁’,‘종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모두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유네스코는 지난 72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마련한 이후 전세계의 문화와 자연유산 가운데 ‘걸작’인 630점(118개국)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이 작업을 계속 진행중이다.유네스코는 해당국에서 요청이 오면 직접 전문가를 보내 실사한 다음 유산으로 지정한다.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들 세계문화유산은 인류문명의 결정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중앙M&B는 최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108개국 507점의유산(97년말 기준)을 전집에 담았다.세계에서 네번째로 출간된 이 전집은 모두 12권 분량.각 권마다 400여장 가량의 컬러사진을 실었고 전문가의 해설을붙여 세계 각국의 자연 및 문화유산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세계문화답사기’인셈이다.지금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전집이 나온 곳은 독일과 스페인(93년),일본(97년)등 세 곳이다. 세계유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 ‘문화유산’과 지구의 역사를잘 나타내는 ‘자연유산’,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성격을 합한 ‘복합유산’으로 나뉜다.문화유산의 경우 인간의 창조성과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나타내는탁월한 작품을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다. 자연유산은 생명의 기록,진화 과정,자연미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현재 전세계적으로 문화유산 480점,자연유산 128점,복합유산 22점 등이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인 ‘종묘’등 5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비무장지대와 경주 역사지구,고창고인돌 유적군 등 3곳은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중이다. 중앙M&B측은 “일본의 것을 텍스트로 삼았으나 이후에 지정된 유산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전집은 아시아 오세아니아편,아메리카 아프리카편,유럽편 등 3개의 세트로이뤄졌으며 각 세트에는 4권씩 들어있다.세트 전체는 57만원이며 1개 세트(19만원)만 떼어 살수 있다. 박재범기자 jaebum@
  • 도봉 ‘역사인물 알기운동’ 펼친다

    서울 도봉구가 도봉에서 살았거나 도봉과 직접 관계가 있는 역사인물을 찾아 그들의 사상과 철학,역사적 행적을 되짚는 ‘역사인물 바로 알기운동’을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임익근(林翼根) 구청장은 최근 “자치구 공무원은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바로 알 필요가 있으며,이를 통해 공복(公僕)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함은물론 현실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며 이 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세우고 ‘도봉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며 이들의 역사적 공과(功過)를 따져 올바른 평가근거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다. 도봉구는 이에 따라 개별 인물에 정통한 사학계 인사를 초빙,공무원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월례화하기로 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 학계 원로 또는 저명인사의 추천을 의뢰했다. 3월에는 국사편찬위 이영춘(李迎春) 편사연구관을 초빙해 우암 송시열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와 함께 관내 연고지나 공원 또는 공한지 등 적지를 찾아 학계의 평가와고증을 거친 인물의 상(像)을 세우는 등 20여곳에 쌈지형 역사테마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다. 연말에는 전문가의 강의내용과 공무원들의 역사인물 토론회 자료를 묶은 ‘도봉의 역사인물’ 책자를 발간,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주민과 학생들에게도실비로 제공하기로 했다. 도봉구는 앞서 지난해 12월부터 구 소식지에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와 도선국사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안맹담,연산군,조광조,남언경,유희경,송시열 등과 최근 인물인 김병로,홍명희,송진우,정인보,함석헌,계훈제씨와 노동운동가 전태일씨 등의 일대기를 게재했다. 임 구청장은 “도봉은 옛부터 수많은 시인묵객과 영웅호걸의 자취가 어린 곳”이라며 “역사인물을 통해 공직자는 물론 많은 주민들이 마음의 자양분을얻을 수 있도록 충실하게 강좌를 이끌어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
  • 이성무씨 ‘조선시대 당쟁사’

    박정희 전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시절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당쟁)을 두고 “세계에서도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그는 “말(言)로는 머리를 가고 행실은 끄트머리를 가면서,거기다가 시비와 패거리라면 창자를 움켜쥐고 달려들었던” 조선조 양반정치 세력의 타도를 ‘혁명’의 명분으로 내걸었다.즉조선조 양반정치-한민당-자유당-민주당 계열로 이어지는 봉건정치 세력을 애국적 엘리트로 물갈이한 것이 바로 5·16이라고 자찬한 것이다. 박정희의 당쟁에 대한 이같은 역사인식은 올바른 것일까.결론부터 말해 ‘당쟁망국론’‘양반망국론’등은 모두 일제 어용학자들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주장들로,박정희는 일제교육 탓에 역사인식이 왜곡돼 있던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63)이 출간한 ‘조선시대 당쟁사 1·2’(동방미디어 펴냄)는 조선중기 이후의 당쟁사를 통사식으로 엮은 것으로 그동안국사학계에서 이룩한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특히이 책은 일제시대 이래형성된 당쟁사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동시에 당쟁이 조선시대 정치형태의 하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다시말해 저자는 당쟁이 우리민족의 분열적·고질적인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식민시대 관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조선시대 문치주의에 입각한 사림(士林)정치의 한 형태가 당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또 “당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싸움을 위한 싸움’만은 아니었다”며 그동안 부정적인 측면에 가려왔던 당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거론하고 있다.조선시대의 당쟁은 문치주의에서 파생된 권력투쟁의 한 형태로서나름대로 의리와 원칙이 있었고,게임의 룰이 있었다는 것이다.특히 정치에서의 명분과 도덕성 강조 및 부정부패에 대한 상호견제 등은 오늘날 정당·정파간의 싸움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저자는 문치주의의 만연으로 인한 국방력 저하,장기간 지속된 파벌형성,소모적인 정쟁으로 인한 국력낭비와 비효율 등 당쟁의 부정적 요인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당쟁사가 이처럼 왜곡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 관학자들로부터다.일제의 해외 식민지 교육에 깊이 관여했던 시데하라 히로시는 1907년 출간한 ‘한국정쟁지’에서 당쟁의 원인을 “개인간의 감정대립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으며 조선경제사를 연구한 가와이 히로다미는 “경제생활의 곤란·사회제도의문란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가와이의 견해는 호소이 하지메에게 계승됐는데 호소이는 한국인의 선천적 ‘민족성’에서 당쟁의 원인을 찾았다. 당쟁이 한민족의 민족성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은 미지나 쇼에이·시카다 히로시에 이르러 한층 심화되었다.한국 고대사에 밝았던 미지나는 ‘지리적 결정론’에 근거를 둔 한국사의 반도적 성격론을 주장하였다.이는 민족성론에의거한 당파성론의 극치인 셈이다.시카다는 “파벌성이 조선민족의 특성”이라고 보았다. 한편 조선후기 당쟁에 대한 국내 실학자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관직수는 적은데 차지하려는 사람이 많은 탓”(이익),“문벌의 폐해와 주론자의여론조작 때문”(유수원),“서원(書院)때문”(박제형)등이다. 그러나 광복후에는 당쟁을 ‘중앙집권적 문치주의의 부산물’로 평가하기시작하면서 당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정착되고 있다.이태진은 ‘당쟁’이란 용어 대신 ‘붕당정치’로 고쳐써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당쟁의 긍정적인측면도 강조한 바 있다. 일반대중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조선시대 당쟁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사림·세도정치,탕평책 등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으로 답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서체로 찾는 한국문화의 뿌리

    지금까지 단순히 건축물의 일부로 인식되어온 편액과 주련을 모은 책이 처음 나왔다.대한불교진흥원이 전국의 주요 사찰에 걸려있는 편액과 주련의 뜻과 연대,글쓴이,평을 곁들여 펴낸 ‘한국사찰의 편액(扁額)과 주련(柱聯)’이 바로 그것이다.편액과 주련은 흔히 사찰에서 볼수 있는 현판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예로부터 궁궐과 사원,서원,향교 뿐만 아니라 일반 양반가옥에서도 널리 사용돼 왔다. 상·하권 1,100쪽에 200여 사찰의 편액 2,000개와 주련 300개를 수록했다. 상권은 서울과 인천·경기,강원,대전·충청,충북,광주·전남지역,하권은 전북,대구·경북,부산·경남지역의 사찰중 대표적인 것들을 망라했다. 편액의 종류는 산문입구 일주문에 걸려있는 ‘산문사액’과 ‘일반사액’,사찰의 성격을 나타내는 ‘사격편액’,건물명칭을 뜻하는 ‘당우편액’등으로 구분된다.형식도 변죽없이 납작한 것,변죽을 사방에 단 것,통판에 변죽을새겨넣은 것,나무를 켠 그대로 만든 것 등 다양하다. 대표적인 사찰 편액으로는 양산 통도사의 대웅전에 흥선대원군,구하(九河)스님이 각각 쓴 것과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로 알려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들고 있다.고려시대 공민왕이 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이순신장군의 여수 흥국사 ‘공북루(拱北樓)’,추사 김정희의영천 은해사 ‘대웅전’,조선 정조의 해남 대흥사 ‘표충사(表忠祠)’등도유명하다. 주련은 편액에 비해서 역사가 오래되지 않으며 원형이나 배흘림 기둥에 걸기에 적합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많지가 않다.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과 고승의 어록,게송,자작시 등이 주된 내용.양식은 평판과,기둥에 걸 수 있도록뒤를 파내 둥글게 한 것으로 구분한다.검은 판목에 흰 글씨만 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판목 위·아래에 연꽃과 잎새무늬를 장식한 것들도 있다.현재 쓴사람(書者)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주련은 경기 남양주시 흥국사 만월보전의 주련과 경남 합천 해인사의 수다라장 입구 협문 주련이다. 지금까지 지정된 문화재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3호인 봉은사 판전(板殿)편액이 유일하다.대한불교진흥원 관계자는 “편액과 주련은 사찰형태의 고증과 조선시대의 사상사 이해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의 고유성을 서예사 측면에서 찾을 수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시론] 흥부가 기가 막혀

    19세기말의 국제역학은 일찍이 국민국가를 형성한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를 식민지화한 역사였고,실제로 우리나라는 국민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탓으로 먼저 국민국가를 이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국민국가’란 국민 각자가 권리에 버금가는 의무로 뭉쳐 가문과 지역,종교… 등의 벽을 초월해 국가와 직결하는 체계이며,참정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의 대가로 납세와 병역의무를 지닌다.최근 국제화가 진행되면서도 애국적 국민국가임을 강하게 의식하는 제3의 길이 제시되고 있다. 미국 우주선이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의 일이다.이 영광스러운 위업을 해낸 우주비행사들은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고 대통령은 축하의 말과함께 “무엇인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해 보라”고 했다.그중 한 비행사는 “달까지 오느라고 납세신고를 하지 못했는데 신고날짜를 연기해 주세요”라고 했다.물론 농담이었지만 이처럼 납세는 달까지 간사람에게도 관심사가 될 만큼 국민 누구나 예외가 없는 의무이다.미국사회에서는 납세의무를 어긴 사람은 공인으로서 결정적인 손상을 입는다. 최근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1/4이 세금을 거의 납부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또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국세청에서 무려 200억원 이상의 돈을 가로챈 범인을 사법기관에 넘기지 않으려고 국회를 방탄용으로 삼았다.국민국가의 선량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한편 최근 병역 기피자의 소환 문제가 정치적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취해진 것인데 마침 선거철이므로 야당탄압이라 해서 일부 정치인들의 자제는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병역의무는 납세와 더불어 정치적 협상의 대상일수 없고 정치논리에 의해서 처리될 문제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벨상급의 과학업적으로 충분히 병역 면제의 대상이되었던 과학자들이 귀족의 책무를 자각해서 자진 출전하여 전사해 영국의 과학수준을 약화시켰다는 말까지 있었다.영국의 지도층은 귀족(지도자)으로서의 책무를 노벨상보다 귀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국민국가의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것은 지식수준이나 기능보다는 책무의식(Noblesse Oblige)이다.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대군과 싸워 이겨 런던에 돌아온 웰링턴 장군은 영국국민에게 “오늘 대영제국의 영광을 가져온 것은 영국 귀족의 책무의식이었다”고말했다.그들은 전쟁의 일선에서 싸우는 것을 의무가 아닌 권리라고 한다.영국군의 장교는 귀족인데 만일 귀족에게 이러한 마음이 없어서 비겁한 행위를한다면 그 밑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무엇보다도 일반사람이 귀족의 존재 의의를 의심할 것이다.영국을 지킨 것이 바로 오블리제(Oblige)임은 돌라프칼 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이 갑판에서 쓰러지면서 했던 “나는 의무를 다했다”는 말로도 상징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의 양반들(지도층)은 오히려 병역을 면제받으며,으레고통스러운 일들은 모두 하인에게나 맡기고 호강만을 원했다.권력을, 돈을모으고 명예를 얻고,그 중 어느 하나라도 놓치는 날에는 모두를 잃는 것으로생각하여 보수를 내세우는 것이다.그리하여 돈,권력,명예를 삼위일체 식으로 손아귀에 넣는 것이다.조선시대 권력자는 국민이나국가는 자신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겼으며,가난하고 힘없는 흥부의 자식들은 돈과 힘이있는 권세가 대신 매를 맞고 군에 입대해야 했다.실제로 병역기피를 가능케한 것은 돈과 권력이었을 것이다. 국력은 각자가 예외없이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할 때 강해진다.선진국이 국민국가를 건설한 것은 각자 맡은 바를 제대로 수행했기 때문이다.어느 특권계급이 좋은 것 모두를 갖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외면한다면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없다.정치 수준이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나타낸다는데 안타깝게도우리 정치에 반영된 한국민의 수준은 조선시대와 다름없는 것이다.힘없이흥부의 자식들은 예나 다름없이 ‘어허,기가 막혀’의 한숨만 쉬어야 하는가. 金 容 雲 한양대 명예교수·수학
  • 권력 등지고 책에 묻혀 생활 李相熙 前내무

    “고위 공직자들은 임기 중에 한 건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기초만 닦는다고 생각하고 일해야 하죠.일반 공무원들도 내가 맡은 일이 국민에바로 영향을 주는 만큼 일에서 보람을 찾고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상희(李相熙·68)전 내무장관이 들려주는 공직관이다.이 전 장관은 5·6공 시절 진주시장,산림청장,대구시장,경북지사,내무장관,한국수자원공사 및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 등을 거쳐 91년 건설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대구대 재단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요즘 1주일에 하루 정도 대구에 내려가효성기가톨릭대에서 특강을 하는 등 여전히 활기차게 지내고 있다. 30년에 걸친 그의 공직생활은 ‘아름다운 도시,훌륭한 도시 건설’을 위한기간이나 다름없었다.그리고 그의 손길을 거친 곳은 도시경영의 혜안자가 기초를 마련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경북지사 시절 경주의 서라벌대로를 15m에서 50m로 과감히 넓힌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당시 서라벌로 폭을 넓히려다 예산 낭비라며 많은 반대에 부딪혔죠.그러나 경주는 경주시민만의 경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주며 세계의 경주인 만큼 질적으로 높아야 한다고 설득했죠.”.이 전 장관이 들려주는 말이다. 대구시민들의 기질을 순화시키려고 수성로 조경사업을 하면서 수종 선택에고심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구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기질이 억센 편이죠.이 성격은 분지기후와 관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질을 부드럽고 상냥하게 바꾸려고 생각했죠.자연의 섭리 자체는 거스르지 못하니 감각·시각적으로 봄·가을을 길게하기 위해 봄에 일찍 피는 꽃을 심고 가을에도 늦게까지 꽃을 피우는 나무를 심자고 했죠.백일홍,낙산홍,돌담나무,파란카스 등을 심었습니다.그래서 지금도 대구에 가면 특색이 있습니다.광나무,가시나무 등은 원래 남해 일대에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대구에 더 많습니다”. 이같은 그의 열정은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라는 3권짜리 저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꽃에 관련된 동서고금의 문헌과 국내·외 자료,자신의 경험을 토대로이 책을 펴냈다.자료 수집에만 꼬박 10년,글쓰는 데도 3년이 걸렸다.조선왕조실록,고려사 등 역사책은 물론 양화소록(養花小錄),화암수록(花菴隨錄)등어지간한 고전은 안 뒤져본 것이 없을 정도다.환갑을 넘은 나이에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과 중국 항저우 등을 다니며 자료를 모으는 열정도 과시했다. 이 전 장관은 퇴직 이후 관가에 기웃거리는 사람들과 달리 국회의원이나 시·도지사 선거에 나오라는 권력의 유혹을 멀리하고 책에 묻혀 지내고 있다. 98년 7회 올해의 애서가상 수상에서 드러나듯 그의 마포구 성산동 단독주택 지하실 서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 등 5만여권의 각종 서적으로가득하다.고서점을 뒤져 사들인 52년 발간 지방행정 창간호 등 지방행정 관련 서적은 물론 조선시대 관리들의 명부,구한말 박영효 내무대신이 전국 지방관리들에게 당부하는 지시문 등 고문서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부인 송명자(宋明子·65)씨에게는 15년째 살고 있는 이 단독주택이부담스럽다.추운 데다 돌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이 전 장관은 “아내가아파트로 이사를 갔으면 하는 눈치이지만 책 때문에 이사를 못간다”며 “학술적으로 이 책들을 활용할 만한 곳이 있으면 기증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현갑기자 eagleduo@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