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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악산 神林 ‘서낭’

    땅거미가 내려오는 저녁,마을 어귀를 지키고 선 당나무가 무서워 쩔쩔매던 어릴 적 기억이 한 움큼씩 남아있을 것이다. 개발의 발자국에 짓밟혀 그 자취를 찾기조차 힘들게 된 성황당(城隍堂)과 당나무,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안겨줬던 서낭집,여러 나무들을만조백관처럼 거느려 자신의 영험한 기운을 내뿜던 서낭숲. 조선조 오악 가운데 동악으로 대접받던 치악을 왼쪽으로 흘려보내며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를 지나 내쳐 달리면 신림(神林).그 이름에상서로운 기운이 그득하다.그 길을 여러 차례 지나다닌 이들도 이 땅이름이 성황,혹은 서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무릎을 친다. 신림나들목에서 직진,주천과 영월로 향하는 지방도로를 버리고 까치의 보은전설로 유명한 상원사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다.성남교를 지나쳐 오른쪽에 번듯산 숲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키 큰 소나무로 에둘러싸인 그 숲은 원형이 잘 보전된 몇 안되는 서낭숲.마을사람들은 당숲이란 명칭에 더 애정을 나타낸다. 철책을 둘러치고 그 위에 나무넝쿨이 우거져 숲은 햇빛 한자락깃들일 여지없이 습하고 어둡다.언뜻 보아 3,000여평,넓게는 4,000평이될 법한 숲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 솔이끼밭이 펼쳐져 있다. 널찍한 큰 길이 나있다.어인 일일까.몇년전만 해도 산판차량과 버스등이 지나다녀 숲이 훼손됐었단다.원래 이곳은 윗서낭.성남교 500m아래쪽에는 아랫서낭이 있지만 훼손돼 서낭숲의 본래 기능을 상실했다. 윗서낭쪽은 그런대로 서낭숲의 원형이 보전돼 있다. “사람들이 몰려와 개잡아먹고 난리를 피웠지.사람도 몇 죽고,주민들이 막아달라고 청원해서 우리도 마음대로 출입을 못해.”논에서 피를 뽑던 촌로는 혀를 끌끌 찬다.출입을 막은 덕인지 숲은우거질 대로 우거져있다.숲에 들어서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거나 김경진 할아버지(033-763-5421)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신.매년 4월초파일과 9월9일 마을사람들이 추렴해 당제를 올린다.제사를 준비하는 집을 도가라 칭하며 금줄을 쳐 잡스런 것들의 접근을 금하고 부부관계도 멀리해 신을 만날 마음을 다스렸다.정성이 각별한 것. 서낭이란 말은 고대 중국 성읍의 수호신인 성지신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고려때 전해져 조선시대 육조때부터 성황이라 부르게 됐다.그러나 자생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가꾸어온 서낭은 관제 성황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당국이 천연기념물 93호로 이곳을 지정한 이유도 다른 곳에서 찾기힘든,온대성 활엽수림의 가치 때문.물봉선과 산괴불주머니 부처풀 등 아름다운 우리 들꽃을 쉬 찾아볼 수 있다. 낭집 오른쪽으로 30m 높이의,상채기 하나 없이 꼿꼿한 전나무가 하늘을 감싸안을 듯 가지를 벌리고 서 있다.보통 서낭숲의 주인은 소나무가 맡는데 이곳은 치악에서 흘러내린 주포천 두갈래가 숲을 휘감아습지에 강한 전나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윗서낭이 남편이고 아랫서낭이 아내요,반대편 음나무 역시 전나무의 아내노릇을 하고 있다니 음양이치의 적용이 ‘장난’아니다. 숲을 나와 500여m를 올라 상원사 가는 길을 버리고 왼편으로 꺾어돌면 한창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현장이 나온다.아슬아슬한 고개를 넘으면 절골. 비포장도로를 5분동안 참을성 있게오르면 고추밭 옆 비탈길에 소나무 숲이 보이고 가지 사이로 당집 지붕이 보인다.고추밭에서 김매던할머니는 “올 2월에 당집을 새로 단장하고 길도 냈지라”하고 자랑한다. 맑고 찬 개울을 건너면 절골서낭.성황림에 비해 출입이 자유로운 이곳이 어쩌면 서낭숲의 본모습을 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이곳 역시 절골 바로 위에 있는 3단폭포에서 쏟아져나온 계류가 숲을 휘감고 돌아 습지식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성황림 입구에는 주민들의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다.한 아낙은 “철책을 두른 뒤부터 나무들이 이유없이 죽어나간다”고 탄식한다.그는 덧붙여 “숲이 사람의 온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서낭숲 출입을 금지한 당국의 조처에 반대해 주민들은 최근 아랫서낭의 바리케이트를 해체하기도 했다. 무조건 사람들의 발길만 차단해 놓았지,숲을 제대로 가꾸려는 노력마저 봉쇄했다는 것이다.생태계가 차단된 것도 마찬가지. 지금도 이곳에는 목발을 짚고 나무의 영험한 기운을 빌어 병을 고치겠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한다.그들이 철책 사이로 당나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주민들은 안타까움조차 느낀다고전한다. 당나무는 우주수(cosmos tree)로도 불린다.우주의 호흡을 전했던 이곳 서낭숲이 그 문을 온전히 열어제쳐 우주와 구차한 이곳 세상을 연결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보았다. ◆가는 길과 숙박=열차나 고속버스로 원주까지 오면 신림행 시내버스가 1시간마다 다니고 신림에서 상원사입구까지 마을버스가 운행한다. 성황림 근처의 산수민박(033-763-3833)과 한오백년(033-762-8074),절골에 치악산장(033-763-7111)이 깨끗한 편이다. 글·사진 신림 임병선기자 bsnim@
  • 경찰학 기본교재 15권 발간

    경찰청은 국립경찰대학 등의 교수진이 집필한 경찰학 기본교재 15권을 발간했다. 지난 98월 9월에 나온 경찰학개론,경찰윤리론,경찰경무론,경찰방범론,경찰수사론,경찰교통론,경찰경비론,경찰정보론,경찰보안론,경찰외사론 등의 2차 개정판 10권과 경찰행정법,한국경찰사,지역사회개발론,범죄학,비교경찰론 등 새로 발간된 5권 등이다. 경찰행정법에는 경찰관직무집행법,행정절차법 등 관련 법률과 판례를 수록했다.한국경찰사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해방후 경찰까지 시대별 특징과 그 역할 등을 담았다.지역사회개발론은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경찰상을 소개하고 세계 각국의 예를 실었다.범죄학은 범죄유형 분석과 예방책과 최근 관심을 모으는 피해자학 등을 소개했다.비교경찰론은 경찰개혁론과 외국의 경찰제도를 실었다. 이들 교재는 3개 경찰학교와 전국 32개 대학 경찰행정학과의 교과서,경찰관 채용시험이나 승진시험을 대비한 수험서,일선 경찰관의 실무 지침서로 쓰일 전망이다. 서울 중구 신당동 경찰공제회에서만 일반에게 판매하며 각권 1만∼2만원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김삼웅 칼럼] 역사에서 본 한반도중심론

    송도(개성)를 지날때 황진이 무덤에 술을 따라 올리고 추모시를 읊는 것이 발령받은 임지에 닿기도 전에 조정에 알려져 이른바 ‘기녀성묘(妓女省墓)사건’으로 파면된 조선전기의 문인 임제(林悌)는 당대인들이 ‘법도(法度)외의 인물’로 치부할만큼 호방하고 재기넘치는 인물이었다. 그가 죽을때는 자식들에게 “사해제국(四海諸國:일설에는 四夷八蠻)이 다 황제라 일컫는데 우리만이 그러지 못했다. 이런 미천한 나라에태어나 어찌 죽음을 애석해 하겠느냐”며 곡을 하지말라고 유언했다.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며 사대의식과 주자학에 찌든 조선시대에 어떻게 그와 같은 문인이 태어났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고려 인종때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는‘칭제건원(稱帝建元)’운동이 김부식을 중심으로 하는 수구세력에의해 멸문지화를 당한지 실로 450여년 만에 이땅에서 비록 유언일망정 ‘칭제’의 소리가 나왔다. 그로부터 다시 310년 후인 1897년 조선조 고종이 우리나라가 청나라의 제후국과 같은 위치에서 벗어나자주독립국임을 내외에 선포하면서 이제껏 쓰던 청나라의 연호를 버리고 독자적으로 광무(光武)라는연호를 사용하고 임금의 칭호도 대왕에서 황제로 격상하는 이른바 ‘건원칭제(建元稱帝)’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져서 ‘황제’의 권위나 힘을 갖지 못하는 허세에 그치고 말았다. 어쨌거나 황제의 칭호를 하게 되었으니 지하의 임제나 묘청·정지상 등이 기뻐했는지, 슬퍼했는지는 알길이 없다. 김대중대통령은 8 ·15경축사에서 “우리나라는 해양에서 대륙으로진출하는 거점이 되고,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가 될것이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주변국가가 이제 당당히 세계의 한 중심국가가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한반도시대가 온다”고 선언했다. 사람에 따라 실현가능성의 비전으로도, 허황한 꿈으로도 비쳐질 ‘한반도 중심론’은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이래 주변국으로 전락해온한민족이 다시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적어도 그러한 꿈과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DJ는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며, 한강의 기적·외환위기의극복에 이어 다시한번 세 번째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일어설 것을 호소했다. 개인이나 국가나 기회가 온다. 다만 그 기회를 선용하느냐 못하느냐는 자신과 국민의 몫이다. 묘청과 정지상등 개혁·자주세력이 칭제건원과 서경천도를 통해 국정을 쇄신하고 국력을 결집하여 고토를 회복하자는 운동은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수구세력에 의해 토벌당하고 30여년 후 무신정변과 몽고침략의 국난으로 이어졌다. 후일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난이 “낭가(郎家)사상·불가(佛家)사상과 문벌귀족들의 사대적 유가사상의 대결이며, 묘청이 김부식에게 패함으로 해서 한국사가 사대주의로 기울고 민족이 쇠하는 근본적 계기가 되었다” 라면서 이를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평가했다. 고종이 황제권을 강화하고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은다소 시기가 늦기는 했지만 마지막 기회로서 국정 쇄신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내적으로 독립협회와 황국협회가 충돌을 빚고, 친일파와친로파가 투쟁을 벌이고, 개화파와 수구파가 사사건건 대립하여 나라꼴이 심히 어지러웠다. 이런 가운데 러·일 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고 나라는 망국의 길로 빠져들었다. “기회를 선용하지 않으면 역사가 보복한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2,000년대는 한민족에 행운이 따르는 것같다. 첫해부터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이산가족상봉·남북직항로개설·경의선복원·개성을 통한육항로 개설등이 이루어지고 남북이 손을 잡으면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태평양으로 활동영역이 확대될 것이다.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한민족 일천년래의 기상이 현실화 된다. 문제는 정치권은 물론 우리 내부의 총체적 수용능력과 화합이다. 과연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선용할 자격이 있는가. ‘서경천도’와‘광무개혁’의 실패한 역사, 좌절의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 김삼웅 주필 kimsu@
  • 전통行刑 한눈에 본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죄인들에게 어떤 벌을 주고 옥살이는 어떻게 했을까. 조선시대 행형(行刑)장면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색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15일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전통행형 풍속화 특별전’이 그것.내년 8월14일까지 1년동안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후기 김윤보·김준근 선생 등 대가들이 남긴 희귀한 행형 풍속화 7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사형집행 모습은 물론,유형(流刑)과 곤장형(棍杖刑) 집행 장면,죄인 체포 및 호송 장면,옥사 면회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또 형을 가하는 관원과 죄수의 표정까지 생생히 표현돼 있어 보는 이들의 흥미를 더한다.이와 함께 죄인이 체포돼 형을 집행할 때까지 순서대로 상세한 해설과 함께 작품을 배열,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서대문구(구청장 李政奎)가 조선시대 행형의 역사를살펴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이미 전시돼 있던 일제시대 행형제도와 비교함으로써 후손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기획했다. 전시작품은 형사정책연구원에 근무하는 임재표 사무관(45)이 20여년간 개인적으로 틈틈히 수집한 것들. 임 사무관은 “사진이 없던 시대의 전통 교정 풍속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며 “특히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민본주의정신이 깃든 우리 행형제도를 알리고 싶어 소장품을 선뜻 내놓았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한강에 철갑상어 살았다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캐비어(철갑상어 알젓)’라는 세익스피어의 대사가 있다.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최고급 음식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그래서 흔히 ‘돼지목의 진주’라고 번역하곤 한다.서양 귀족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이 바로 카스피해 연안에서 주로 난다는 캐비어다.이런 물고기를 옛날 마포 뱃사공들이 먹을 수 있었을까. 오는 10월23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한민족의 젖줄,한강’기획전에 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철갑상어는 과거 한강하구에살며 산란기가 되면 상류가 거슬러올라가 알을 낳았다는 사실을 어류학자 최기철이 소장하고 있다는 이 물고기의 박제를 통하여 확인할수 있기 때문이다.‘한강’전은 지난 9일 막을 열었다. 흔히 독일의 경제부흥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하듯,한국의 경제발전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한강은 강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때문인지 전시회를 둘러보다보면 내용은 한강주변의 역사에 한정되어 있음에도,그것이 곧 우리 역사의 축소판일 수 밖에 없음을자각하게 된다.한편으론 너무 가까이 있어 무관심했던 한강에 대한 무지를 깨우쳐주는 계기도 될 것 같다. 이번 전시회는 그 의미에 못지않게 볼거리도 풍성하다.야외전시장에는 마포새우젓으로 유명하던 마포나루의 객주가가 재현됐다.이제는찾아볼 수 없는 나룻배와 함께 주점·객방·창고가 실물크기로 관람객을 맞는다. 기획전시실은 ▲한민족과 함께 한 한강 ▲삶의 터전,한강 ▲문화와생태 환경의 심장부,한강이라는 3개의 주제로 구성됐다.전시장 중심의 13m 길이로 재현된 장사거룻배가 구경거리.40여년 동안 한선(韓船) 제작에만 매달려온 손낙기옹이 소금장사를 하던 동네분들과 옛날처럼 황포돛대로 내달리고픈 소원을 담았다고 한다.정선의 뗏꾼 신경우옹이 만든 뗏목도 한강하구에서 강원도 오지에 이르는 ‘교통로로서한강’의 역할을 보여준다. ‘삼국의 격전지,한강’에는 서울 구의동의 고구려화살촉과 이성산성의 신라 화살촉,미사동의 백제 청동거울 등을 나란히 전시하여 한강을 사이에 둔 삼국의 각축을 무언으로 웅변한다.‘교역의 장으로의한강’에서는 구한말 객주풍경 등을 담은 사진과 함께 창고에 물건을보관할 때 받은 영수증인 임치증(任置證)과 소작료로 보이는 곡식을실었다는 확인서인 선복기(船卜記), 물건을 배에 실어보냈다는 증명서인 선도록(船都錄) 등 체계화됐던 조선시대 상업활동의 기록들이눈길을 끈다.1994년 무너졌던 성수대교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아마도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아야하지 않겠느냐는뜻으로 읽혀졌다. 어른이건 어린이건 발걸음을 쉽게 떼지못하는 곳은 두개의 한강에 사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두개의 대형어항앞.쉬리·몰개·참종개등이 지천으로 찾아지는 등 이 강이 다시 살아났을 때 제2의 한강의기적도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는 것이 민속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송수권 ‘태산풍류와 섬진강’ 風流는 남도를 흐르고…

    남도가락 구성진 순수 서정시들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송수권 시인(60·순천대 객원교수).그의 남도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데가 있다.‘지리산 뻐꾹새’나 ‘남도의 밤 식탁’같은 시에 나타난남도의 언어와 정서는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그러나 시인의 사랑 남도는 더이상 그 시절 쪽빛 세상이 아니다.세월에 풍화된 남도의모습은 시인을 우울하게 한다. 진달래철이 와도 몽탄강 복바위엔 황복이 오르지 않고,고사리철이 돼도 칠산바위엔 더이상 참조기가 따르지 않는다.하지만 남도의 풍류정신만은 유구해 우리 삶의 자양이 되고 있다. 송수권 시인이 남도풍류의 정신사를 한 권의 기행문집에 담아냈다. 태산풍류와 섬진강(도서출판 토우)이란 책이다.저자는 남도풍류의 일번지로 신라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만년에 태수를 지낸 섬진강 북단태산(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을 꼽는다.한 시대를 우울과 방황 속에서보낸 고운은 산자수명한 이곳에 유상대(流觴臺)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유상대는 술잔이 흘러내려 자기 앞에 오면 시를 한 수씩 읊었다는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현장.고운은 풍류를 현묘지도(玄妙之道)라 하여 유·불·도 3교를 아우르는 우리 본래의 사상으로 보았다.유상대에서 청유(淸遊)했던 인물로는 고운 외에 ‘태인향약’을 만든정극인,선운사를 짓고 제염법을 전파했다는 검단선사 등이 있다.경주의 포석정 같은 곳이 칠보의 고운천(반곡천)에도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 지리서 ‘팔역지’에서는 한수(漢水) 이북은 수석(水石)이요,이남은 난초라 했다.저자는 여기에 남도의 대를 하나 덧붙인다.전라도를 관통하고 있는 섬진강 수계는 낙동강 수계와는 달리 어디를가나 난향유곡(蘭香幽曲)과 대숲 마을이 장관을 이룬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 대나무의 올곧은 정신은 벽골제·눌제·황등제 등 남도벌판의 못자리로 상징되는 ‘물둑’정신,갯벌을 개척해온 ‘갯땅쇠’정신과 함께 남도풍류의 맥을 이룬다.저자는 이 갯땅쇠 정신은 일종의 뉴 프런티어 정신으로 5·18민중항쟁 정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저자에 따르면 남도의 지세,남도의 역사,남도적인 삶은 그자체가 바로 산바람,강바람이며 나아가 신바람, 선(仙)바람이다. 이선바람 속에서 그가 떠올린 말이 풍류황권(風流黃卷).즉 화랑들의 호적부다.그들은 명패를 차고 한반도 5악중 최남단인 지리산 천왕봉 주벽과 섬진강 모래밭,심지어 남해섬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저자는 화랑의 자취에서 남도 특유의 검약과 절제의 선풍(仙風)을 발견한다. 저자의 남도풍류정신에 대한 탐구는 이 책으로 끝나지 않는다.앞으로 ‘계산풍류(원효문풍)와 영산강’‘천관풍류와 탐진강’등 두 권의 책을 더 펴낼 계획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경기 문예회관 ‘청소년을 위한 무대’

    경기도립예술단은 여름방학을 맞아 13일부터 18일까지 ‘청소년을 위한 여름 예술여행’무대를 펼친다. 무용단과 국악단,연극단,팝스오케스트라로 구성된 경기도립예술단은 연극,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 청소년들이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도립극단은 13·15일 오후 4시와 14일 오후 7시30분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3차례에 걸쳐 연극 ‘영원한 제국’을 공연한다.이인화씨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원한 제국은 조선시대 정조가 시해되기 직전 주인공이 겪는하루동안의 꿈같은 사건을 극적으로 꾸민 작품으로 빠르게 변하는 무대장치와 현대적 감각의 음악이 특징이다. 경기도립무용단이 16일 오후 7시30분 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하는 ‘청소년을 위한 우리춤 여행’도 다채로운 작품으로 관심을 끈다.무용단은 이번공연에서 조선시대 궁중의상의 화려함과 우아한 자태를 맛볼 수 있는 ‘태평무’와 우리 악기 장고에 안무를 곁들인 장고춤,한국무용의 대표춤인 부채춤,승무에다 창작 현대무용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또 도립팝스오케스트라는 18일 오후 7시30분 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영화음악 공연을 펼친다.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여주인공인이소정씨 등 인기가수와 성악가 등이 나와 ‘알라딘’ ‘플래툰’ ‘황태자의 첫사랑’ ‘물망초’ 등 유명 영화음악을 들려준다. 이밖에 도립국악단은 17일 오후 7시30분 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청소년을위한 우리음악 여행’ 무대를 마련할 예정이다.(031)230-3242.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이용원칼럼] 독도는 외롭다

    나는 독도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하는 노래,‘독도는 우리 땅’의 주인공인 바로 그 독도다.내 이름이 비록 ‘홀로 있는 섬(獨島)’이고 개그맨 정광태도 나를 ‘외로운 섬’이라 노래했지만,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언제나한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나의 주인,한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요즘 나는 외롭고도 두렵다. 옛날 한때 내 이름은 자산도(子山島)였다.어머니인 울릉도의 아들이란 뜻이다.나는 신라 지증왕 13년(서기512)한민족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어머니 땅에 있던 우산국(于山國)이 이사부 장군에게 정벌당한 뒤 우리 모자는 한국인들과 운명을 같이했다.내 존재는 일찍이 ‘고려사’에도 언급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더욱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17세기 말 어머니 울릉도의 영유권을 놓고 일본과 처음 분쟁이 일어났다.당시 동래 사람 안용복이 함부로 내 해역에 들어온 일본 어선을 끝까지 쫓아가일본관리에게서 처벌을 약속받은 일은,지금 생각해도 마냥 통쾌하기만하다. 일본인들이 1905년 2월 내 이름을 멋대로 ‘다케시마(竹島)’로 바꿔 저희호적에 올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이어 내 주인이 나라를 잃고 창씨개명을강요당해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일본인들은 조만간 패망할 것이요,그리 되면 나는 빼앗긴 이름을 되찾고 옛주인을 반갑게 맞으리라’고 자신했기때문이다. 해방이 되고도 일본인들이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어리석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라며 혼자 웃었다. 그런 망언이 나올때마다 다같이 분노하고 규탄하는 내 주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그러나 상황은 어느 때부터인가 바뀌었다.‘국민가요’로 사랑받던 ‘독도는 우리 땅’이 지난 84년부터 한동안 방송에서 사라지자 “일본의 항의에정부가 굴복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돌았다. 96년에는 이 노래가 가을 학기부터 초등학교 4학년 ‘사회과 탐구’ 교과서에 실리기로 했다가 취소됐다.모두의 사랑을 받는 ‘국민가요’가 이처럼 구박 받는 걸 보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제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정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실망을 준다.‘한·일어업 협정’에서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만도 억울한데,국회답변에 나선 당국자는 나를“‘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지지 않는 암석”쯤으로 여기는 발언마저 했다. 정부 정책은,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대외적으로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는 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그러나 싸움에는 상대방이 있는 법.일본이 저처럼 악착같이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이쪽은 피하려고만 하면남들은 점차 저들이 옳다고 여길 것이다.96년 홍콩의 경제주간지가 아시아기업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나를 한국땅으로 본 이는 절반 가량이었다고 한다.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나에게 바깥소식을 전해주는 바람은 “요즘 너와 관련한 괴담이 들끓고 있어”라고 귀띔한다.‘석유 매장설’‘일본의 침략 시나리오’‘정부 약점설’ 등 듣느니 모두 민망한 내용뿐이다.오죽하면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독도가 한국땅이 아닌 13가지 이유’식의 글이올라 국민을 분노케 하겠느냐고바람은 걱정했다. 며칠 뒤면 광복절이다.그날 한나라당 국회의원 21명이 나를 찾아온다고 한다.국회의원이니 장관,그밖에 사회 저명인사들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만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지난 3년여 내 등에서 진행된 공식행사는 하나도 없었다.나를 사랑하는 보통사람들은 허가를 받지 못해,지도층 인사는 관심이 없어안 찾는 모양이다.나는 아직도 한국땅인가? 요즘 나는 외롭고도 두렵다. 이용원 논설위원ywyi@
  • 북한 古가구 구경도 하고 값싸게 장만하세요

    ‘북한 고(古)가구는 어떻게 생겼을까?’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북한 관련 행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북한 고가구를 전시판매하는 희귀행사가 열려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역업체인 시노코리아엔터프라이즈는 시노아트갤러리와 공동으로 9일까지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조선시대 평안도 황해도 지방의 고가구를 중국에서들여와 전시하고 있다. ‘반다지 3대양식’의 발원지중 한곳으로 꼽히는 평안도 박천지방의 ‘박천 숭숭이 반다지’(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해서 붙은 이름),피나무로 만든 화사한 문양의 ‘평양 백동 반다지’,화려한 나비무늬가 특징인 ‘해주 이층농’ 등을 볼 수 있다.가격은 60만원에서 600만원대.북한 물산치고는 최고가품이다. 반다지란 장롱보다는 작고 문갑보다는 큰 중간 크기의 가구로,조선시대 여인들이 주로 버선 등을 넣어두었다. 6일에는 특별경매 행사도 열린다.숭숭이반다지와 백동반다지가 최저 40만원,괴옥반다지가 100만원부터 입찰에 부쳐진다. 안미현기자
  • 문화예술의 향기 넘치는 지하철 7호선

    실험적 설치미술의 집합체가 달린다.갤러리는 지하철 객차 8량.그곳엔 우리의 일상과 이미 지나간 역사의 이미지들,그리고 생명과 숲,예술이 어우러진 실험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이름하여 ‘달리는 도시철도 문화예술관’.서울도시철도공사가 1일 지하철7호선 완전개통을 기념해 준비한 문화이벤트중 하일라이트다.적어도 이 열차에 관한 한 지하철은 어쩔수 없이 이용해야하는 힘겨운 공간이 아니다. 2일부터 9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운행할 이 문화예술 열차는 미술평론가 임창섭씨의 기획으로 16명의 작가가 참여해 ‘역사야 노올자’‘춤은 언제나 즐거워’ 등 객차마다 주제를 달리해 8량을 꾸몄다. 7호선 개통과 함께 달리게 될 도시철도문화예술관은 평일과 토요일은 4회,공휴일과 일요일은 6회 운행한다. 7호선 완전개통과 함께 공사가 마련한 또 하나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메트로 아티스트’ 운영. 일정한 수준의 기량을 갖춘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인을 선발,일정기간 도시철도 역사내에서 순회공연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음악 12,무용 2,패션쇼 1,인형극 1 등 17팀이 정해졌다.이들은 이달부터 세부 공연일정이 잡히는데로 5·6·7·8호선 전 역사를 돌며 연중 공연을 펼칠 계획.지금까지 아마추어 예술인들이 할 수 없었던 지하철 공연의 ‘고급화’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도시철도공사는 이밖에도 8월 한달동안 7호선 32개 역에서 음악회·전시회등 크고 작은 41개 종류의 축하행사를 펼친다. 공사 관계자는 “이번 문화이벤트와 각종 상설 공연 프로그램 운영으로 지하철이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로 다시 태어날 수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쇼핑·레저생활 이젠 마음껏 즐기세요”. 서울지하철 7호선 신풍역∼건대입구역간 15개역 구간이 1일 오후 6시 운행을 시작했다.장암∼온수 구간 42개 역 45㎞에 달하는 7호선 구간이 완전 개통됨에 따라 서울 북동부와 강남,남서부가 직접 연결돼 이 지역을 오가는 시민들의 출퇴근과 나들이길이 한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또 새로 들어선 역사 주변엔 가볼만한 곳이 그득해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는데도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 교통개선 경기도 의정부 및 노원·중랑구 등 수도권 및 서울 북동부 주민들의 강남 진출입이 훨씬 쉬워졌다.지금까지는 4호선이나 1호선을 이용해 다시 2·3호선으로 갈아탔으나 7호선 이용으로 30분 이상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또 구로·영등포 등 남서부 지역,인천시,경기도 광명시 등 수도권 서부지역과 강남간 이동 시간도 최고 40분까지 단축된다.7호선은 또 온수·대림·건대입구역 등에서 2호선이나 경인전철로 갈아탈 수 있어 승객 분산 효과도 클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10만여명이 밀집한 주택가인데도 버스노선이 부족해 민원이 끊이지않던 총신대∼숭실대 일대 주민들도 7호선 혜택을 톡톡히 볼 수 있게 됐다. ■ 가볼만한 곳 새로 개설된 역 주변에는 쇼핑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그득하다. ■가구거리 강남구청∼학동∼논현역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따라 국내 브랜드는 물론 고가의 수입가구 매장이 들어서 있다.또 고가구를 사고 싶으면 이수역에 내려 사당동 가구거리를 찾으면 된다. ■고속터미널역 이미롯데 강남점 등 백화점과 지하쇼핑센터가 자리잡고 있으며,다음달엔 초대형 유통레저센터인 센트럴시티가 개장할 예정.센트럴시티엔 호텔과 대형서점,영화관,상가 등이 들어선다.3호선을 갈아탈 수 있어 강남의 새로운 유통 중심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보라매역 3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5분 거리에 보라매공원이 있다.12만만평의 대규모 가족공원으로 동물원과 인공호수,수영장 등이 있다.청소년 및 체육시설도 많이 갖추고 있어 7호선 이용객 발길이 잦을 것으로 보인다. ■뚝섬유원지역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로 수영장과 각종 체육시설,한강유람선을 탈 수 있는 선착장 등이 있다. ■장승배기역 도보로 1분 거리에 이 지역 지명의 유래가 된 장승이 서 있다. 조선시대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 묘로 성묘하러 수원에 가는 길에 액운을막기 위해 이곳에 장승을 세우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밖에 새 구간중 가족단위로 조용히 쉴만한 곳으로는 도산 안창호선생의묘소와 도산기념관이 있는 도산공원(강남구청역) 및 학동공원(학동역),청담공원(청담역) 등이 있다. 임창용기자
  • [외언내언] 2진아웃제

    어린 소녀에게 정서적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갖는 현상을 ‘롤리타 신드롬’이라고 한다.‘롤리타’는 본래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제목으로,이 소설은 12세 소녀 롤리타와 중년남자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롤리타 신드롬’과 유사한 뜻을 가진 심리학 용어로 ‘소아 기호증(小兒嗜好症)’이 있다.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들과의 성적 접촉을 선호하거나 어린이들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만 성적으로 흥분이 되는 증상이다. 심리학에서말하는 ‘유치증’은 소아기호증과 매우 비슷하나 그 대상이 더 어리다는 것이 다르다. ‘롤리타 신드롬’‘소아기호증’‘유치증’은 모두 어린이를 성노리개의 대상으로 삼는 성도착증이란 관점에서 병리학적이다. 조선 정조시대의 형조 판례집인 추관지(秋官志)에는 “12세 이하의 어린 소녀를 간음한 자는 사형에 처했다”는 대목이 있다.또 “의성에 사는 최광률이란 사람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어린 소녀의 손을 잡았다가 즉시 참수형(斬首刑)에 처해졌다”는 기록도 나온다. 오늘날 인권과 민주주의종주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도 아동 성범죄만큼은 조선시대 못지 않은 엄격함으로 다스린다.뉴저지주는 지난 94년 ‘매건법’을 만들어 기소된 적이 있는 어린이 강간범과 성도착증 환자에게 10년간주소지를 당국에 등록하고 성범죄 사실을 이웃에 공표하도록 했다.심지어 지난 96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두차례 이상 아동을 성폭행한 범죄자들에게 약물을 투입해 성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서인지 미국 하원은 지난 25일 아동 성범죄 행위 두번이면 무조건 무기징역을 부과하는 이른바 ‘2진 아웃제’를 가결했다.영국노동당 정부도 13세 이하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쪽으로 성관련 법안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가장 비윤리적이고 가장 추악한 범죄를 영원히 추방하겠다는 뜻일 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폭행 상담건의 30%가 13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범죄란 보고서가 있다.만 7세 이하도 무려 11%나 된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런데도지난 1일 발효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아동 성폭력은 가중처벌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처벌 조항은 찾아 볼 수 없다.아직도 우리 사회는 어린이 성폭력에 대해서만큼은 이례적으로 ‘관대’한 것 같다.우리는 언제까지 저 성도착증 어른들에게 짓밟힌 힘없는 새싹들의 ‘아우성’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 [외언내언] 점심 폭탄주

    주역 연구가 초운 김승호는 “술을 마시면 머리 속의 신(神:생각)이 일어나 이것이 정(精:감정)으로 발한다”고 말했다.그는 술을 마셔도 생각과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몸에 좋다고 말했다.실제 이런 절제는 쉽지 않다.고려시대 유생들은 술을 즐겼지만 절도가 없어 술의 예의를 정한 ‘주례(酒禮)’가 등장했을 정도였다.조선시대 세종은 전국에 술을 삼가라는 경고를 내렸다.그 경고문 가운데 신라는 포석정,백제는 낙화암 등 각각 술자리 장소에서 망했다고 지적한 대목도 있다. 요즘은 한술 더 떠 술은 ‘자제를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이용된다.스트레스를 풀고 벽도 허물자는 것이다.이왕이면 ‘빨리 빨리’ 취하자고 폭탄주를 애용한다.가난한 미국 항구노동자들이 단시간내 취하려고 마신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국내에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도 100년전 혼돈주(混沌酒)라는 폭탄주가 있었다.혼돈주는 반사발의 막걸리에 소주한잔을 섞은 잡탕주로 ‘자중홍(自中紅)’으로도 불렸다. 사회 지도층부터 서민까지 즐기고 종류도다양한 점에서 한국은 가히 폭탄주의 원조(元祖)국으로 자처할 만하다.맥주잔에 따른 맥주에 ‘뇌관’에 해당하는 작은 양주잔을 넣은 정통폭탄주로 성이 차지 않아 소주잔을 넣어 천천히 가라앉히는 ‘타이타닉주’,맥주잔에 적포도주와 중국 백주를 넣은 ‘드라큘라주’등 종류가 다양해졌다.마시는 방법에 따라 ‘물레방아주’‘충성주’‘회오리주’ 등 30여가지는 된다. 주류협회가 폭탄주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육군 참모총장이 10여년전 폭탄주 추방을 벌였어도 폭탄주는 건재해왔다.오히려 점심식사 시간에까지 번지고그 유탄으로 ‘사상자’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전 대검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실을 터뜨려 풍파를 일으켰는가 하면 한 검사의 여기자 성희롱도 점심 폭탄주가 발단이었다.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은 지난 26일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에서 폭탄주를 마신후 여성 환경부장관과 여기자를 안주삼아 거론하다 또 구설수에 올랐다. 외국에는 점심시간이 별도로 없는 회사도 흔하고 직장인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때우는 현실에서 점심식사 폭탄주는 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폭탄주를마시고 일을 열심히 하기는 힘들테고 한낮에 퍼져 쉬는 근무 리듬일 것이 뻔하다.더욱이 밤의 접대문화가 대낮에도 성행한다는 증거로 일반 국민들에게도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학주(學酒:술의 진경을 배움)와 낙주(樂酒:술과 더불어 자적하면서 마심) 등의 주선(酒仙)은 못될지언정 대낮에 술마시고 주책부리다 패가망신하는 사태가 거듭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암사유적지·풍납·몽촌토성 ‘방치’…6년간 유물 817점 도굴

    서울 수서경찰서는 26일 양모씨(51·건물 경비원·서울 강남구 개포동)를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양씨는 지난 91년부터 6년 동안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비롯해몽촌토성,풍납토성,천호동 일대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817점을 도굴,자기 집에 보관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유물 가운데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원시맷돌 상석,그물추 등 기원 3,000∼5,0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신석기시대 유물과 숭석문토기,타날문토기 등 백제시대 유물들이 포함돼있다. 어릴 때부터 암사동에서 자라 옛 유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양씨는 “문화재관리구역에서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일요일마다 유물들을 수집했다”고 털어놓았다.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사적 267호,몽촌토성은 사적 297호,풍납토성은 사적 11호로 지정돼 있다. 전영우기자 ywchun@
  • 하얀 백사장·거대한 모래산…태안반도 피서지 3選

    스러져가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우리는 서해 일몰에서 그 운치를 읽거니와 백제 사람들의 한숨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몽실몽실 살아있는 충남 태안과 서산 땅에서 그 절정을 맛본다. 태안군의 해안선 길이를 합하면 530㎞.들쭉날쭉 길다란 해안선 만큼이나 다채로운 볼거리와 감동을 준비하지만 산과 들,바다가 숨바꼭질하듯 비경을 연출하는 이곳을 지나칠라치면 왠지 모를 서글픔 같은 것이 밀려온다. 바람 찬 삽교호를 건너 한참을 달리자 안면도.이곳의 가장 큰 해수욕장인 ‘꽃지’는 2002년 꽃박람회를 열기 위한 준비와 인파들로 북적대는 바람에 태안읍으로 다시 나와 603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을 향했다. 안면도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결코 빠지지 않고 동해 어느 바다 못지않게 청정한 수질이 길손을 반긴다. [학암포 해수욕장] 태안여상앞에서 40분 정도 여유있게 북행길을 밟으면 원북면 방갈리 2구.학처럼 생긴 바위가 양쪽에 버티고 있다 해서 학암포란 이름을 얻었다. 선창을 중심으로 1.6㎞ 백사장과 1㎞쯤 되는 백사장이 나란히 있는 쌍둥이해수욕장이다.조선시대부터 질그릇을 중국 상인들에게 많이 수출하던 곳이어서 분점포라고 불렸다. 군부대가 있던 선창 뒷동산에 오르면 학암포와 만리포,선갑도,울도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멀리 덕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창에 서면 50m정도 떨어진 곳의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한 수질을 자랑한다. 조영광씨(37)의 어머니는 제주 비바리 출신.칠순을 넘긴 어머니는 요즘도 물질을 나가 하루 8∼9만원은 벌어온다.“어쩌겄시유.안 나가면 몸이 아프고…”선창의 배들은 이날 잡아올린 광어와 우럭,놀래미 회치는 칼질로 바쁘다. 조씨는 “지난해 좀 뜸하더니 요즘은 5㎏이 넘는 광어를 잡아올리는 모습도심심찮게 본다”며 바다를 쳐다본다.평생 보아왔을 그곳을. 봄이면 해당화가 해수욕장을 뒤덮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차량들이 마구 훼손하고 있었고 태안해안 국립공원도 아니어서 무분별한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신두리 모래사막] 학암포 아래,원북읍 삼거리(반계)에서 왼쪽으로 치달으면신두리. 인천시 옹진군의 대청도와 함께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해안 사구(沙丘). 물경 5㎞.마침 해무가 낀 25일 도대체 이 드넓은 백사장의 끝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물이 빠지면 폭 300m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밭이 드러나고 비포장 해안도로너머에는 사막같은 풍경이 몸을 감추고 있다. 모래산 위를 어지러이수놓은 발자욱과 차바퀴 자국들. 하지만 몇년전까지 ‘사방 십리가 온통 모래땅’이라던 이곳 풍경은 최근 많이 변하고 있다.들풀의 씨앗들이 어디에선가 날아와 초지로 변하고 있는 것. 여기저기 한가로이 우공들이 거닐고 있다.한 방송사 다큐팀이 이곳의 생태계 변화에 담긴 뜻을 풀기 위해 넉달째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광활하다는 표현이 딱떨어지는 백사장을 지프로 달려보자. 갈매기는 차창밖으로 길동무하고 끝없이 이어진 모래언덕 사이로 가끔씩 타조떼가 푸드덕댄다.두군데 타조 사육장이 있다.백사장을 달릴 때 유의할 점은 하얀 모래위에는 올라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해수욕장 끝쪽엔 미국식 별장이 초지위에 버티고 서 있는데 초지와 사막,백사장을 한데 안은 오만한 자태가 도드라진다. 남쪽 끝은 굴양식장.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경운기 등을 몰고 나가는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리한 굴맛을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이 마을 번영회 총무 최평화씨(49)는 “굴이 나는 넉달동안 줄잡아 3억원 정도는 벌어들이쥬”라며 “물이 빠지면 낙지나 게가 지천이고 20㎝가 넘는 맛도 쉽게 캐낼 수 있시유”라고 말한다. [독살] 태안에서 40번 국도를 타고 20분쯤 남하한 뒤 소목골로 들어서면 원형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원시어구(漁具)인 독살(石防簾)이 눈에 들어온다.몽산포에서 2㎞ 위쪽.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황해도 강령만과 해주만,충청도 천수만에집중 분포된 어구였으나 지금은 이곳김의배씨의 독살만이 본래 기능을 다하고 있다. 150m 길이에 지름 30∼70 돌멩이로 V자 모양으로 쌓았다.밀물을 따라 들어온물고기들이 모일 만큼 구멍을 내고 그 앞에 대발을 쳐놓고 뜰채로 건져내면그만이다. 우럭,놀래미,전어는 물론 고등어,멸치,낙지까지 잡힌다니 그 재미가 솔찮다고 김씨는 말한다. [가는 길] 완공을 서두르고 있긴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개통되지 않는 등 가는 길이 불편한 편.포승I.C에서 38,34,32번 국도를 차례로 탄 뒤 태안에서 40번 국도와 649번 지방도를 이용해 태안에 이른다.천안에서 예산,덕산,갈산을 거친 뒤 서산방조제를 지나 태안으로 들어오는 길도 있으나 서울에서 갈 경우 전자가 수월하다.그러나 학암포에서 밤 9시30분에 출발할 경우12시면 서울에 도착할 정도로 사정은 나아지고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선 학암포까지 직행버스가 여름 성수기만 7차례 운행된다.요금 1만2,600원. [들를 곳] 백제인의 황홀한 미소를 담은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을 비교감상하는 것은 필수.개심사와 아픈 역사를 지닌 해미읍성을 들러보는 건 선택. 원산도,삽시도,장고도 등과 연결되는 영목항에서 어리굴젓,까나리액젓 등을구입한다.배편 문의 영목슈퍼 673-7151안면도 휴양림 673-5017학암포에는 조영광씨 민박집(041-674-7103) 등. 학암포(충남 태안) 임병선기자 bsnim@
  • [문화도시 문화거리](2)’新신명’을 여는 전주

    대사습놀이가 펼쳐지는 5월의 전주를 찾는 사람은 인상적인 경험을 한다.대사습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을 배출해온 ‘광대’들의 경연대회.시김새 좋은소리꾼이 무대에 오르면 구경꾼들도 덩달아 추임새로 흥을 돋운다.추임새는여간한 공력을 쌓지않으면 장단을 타기가 쉽지 않은 일.그러나 소리판이 벌어진 곳이 전주이고,더구나 대사습놀이라면 청중이 수천명이라도 ‘좋지’‘얼씨구’‘잘한다’는 추임새에 흐트러짐이 없다.소리의 내력을 분별할 수있을 정도의 ‘귀명창’들이 소리판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장원이 누구이고차상이 누구인지는 객석에 흐르는 분위기만 읽으면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주는 그런 곳이다.시내에 들어설 때부터 고풍스런 ‘호남제일문’이 손님을 맞고,전주부성의 남대문인 ‘풍남문’과 ‘전주객사’,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 등 조선시대 건축물들이 당당하다.교동과 풍남동의 한옥지구를 둘러보노라면 전통을 존중하는 이곳 사람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주가 대표적 전통문화도시로 각인된 것은 이렇게 옛 건물들이 아취를 불러일으키는데다,대사습이나 부채에 담긴 풍류에서 나타나듯 가슴으로 이어온생활문화예술이 더해졌기 때문이겠지.예향(藝鄕)으로 불리고 싶어하는 도시는 적지않지만 이처럼 문화적 전통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기는 쉽지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며 콩나물과 미나리·청포묵 등 ‘전주팔미(全州八味)’가 들어간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에 과하주나 모주 한잔을 곁들이면 어느덧 전주는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어있다. 그러나 문화적 전통이란 옛모습을 고집스럽게 잇는 것 만으로는 결코 확대재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주사람들은 깨닫고 있는 듯 하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한 데 이어 내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앞서 오는 10월 ‘프레 페스티벌’를 여는 등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문화예술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판소리나 산조의 명창·명인들이 선배로 부터 물려받은 더늠을 가다듬는 노력을거듭하여 대표적 공연예술로 자리잡게 한 것 처럼 물려받은 전통을 시대적상황에 맞게 새롭게 재창조하여 새로운 문화전통을 만들어보겠다는 뜻이 읽혀진다. ‘영화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전주의 노력은 결코 허장성세가 아니다.전주에서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모두 15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피아골’은 1950년대의 화제작이었고,‘선화공주’는 한국 최초의 컬러영화였다.고인이 된 명배우 최무룡과 허장강도 전주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했을만큼 한국영화의 중심지였다.호남평야에서 비롯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시인·묵객·명인·명창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지역유지들이 해방에서 전쟁으로 이어진 혼돈 속에서도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장르에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노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영화도시 전주’가 아직까지는 다소 생경하게 들린다면,‘소리축제’는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다.그러나 친숙한 만큼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소리’와 ‘전주’의 이미지를 이 축제를 통해 확실하게 바꾸어놓겠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생각인 듯 하다. 여기서 ‘소리’는 그동안 처럼 ‘한국적’이라는 경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소리의 세계화’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결코 우리 것의 우수성만을강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쌍방통행식이다.올 가을 예비행사의 프로그램은 ▲한국음악의 변천을 담은 ‘소리역사를 찾아서’ ▲한중일 전통음악의 명인 ▲정명훈이 지휘하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초청공연 등이다.소리축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최근 전주시는 교동의‘전통문화지역’에 세울 쌈지박물관 4곳의 설계안을 공모했다.쌈지박물관은 부채와 한지·자수·전통술을 각각 주제로 한 전문박물관.그런데 응모작 가운데 ‘무늬만 전통적’인 한옥지붕은 모두 탈락시켰다.한때는 공중전화박스에도 한옥지붕을 씌웠던 전주.이제는 전통문화도시로 가꾸려면 어떻게해야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기에 앞날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전주 서동철기자. [이렇게 가꿉시다] “문화사업 연계 지역 정체성 표출 긴요”. 전주에 가면 칠규(七竅)가 만족스럽다.맛갈스런 음식이 입을,소리예술이 귀를 즐겁게 해준다.사계절 축제와 볼거리가 즐비해 눈을 감동시키고,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코마저 즐거움을 느낀다.아마도 전주는 얼굴위의 일곱구멍을 모두 감동시키는 ‘칠규감동 문화전략’을 펼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개발연대 내내 한켠에 밀려나 있었던 전주는 사실상 ‘박제된 문화도시’였다.이제 문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화를 지역발전의 견인차로 삼아 ‘생동하는 문화도시’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한옥과 음식이 대표하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현대의 창조적 문화예술이 함께꿈틀댄다.지역이 지닌 다양한 컨텐츠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영화나 게임같은 문화산업에도 관심을갖고있다.대사습놀이 현장에서 볼 수 있듯이,시민이라면 누구나 한자락씩 흥얼거리는 이지역 특유의 ‘소리’는 지역선도 예술(leading art)의 역할을한다.컨벤션 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여 여론주도층에 대한 지역이미지 확산을 꾀하는 것도 색다른 접근이다.다시말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편안하고 쾌적한 도시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자전거타기의 보급이 상징적으로 이를 잘 나타내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이다.우선 단기간 내에 펼쳐놓았던 문화예술 사업들을 일맥상통하게 연결시켜 전주의 개성과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문화산업도 이제까지의 관심차원에서 벗어나 지역 실질소득 창출과 경제활성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 세부전략이 준비되어야 한다.연중 볼거리를 제공하는 외부지향적인 행사가 산만하지 않은지 챙겨보고,지역문화 정체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전개시켜야 한다. 자치시대의 부산물이랄 수 있는 행정권 단위의 문화사업 전개로 인한 인근지역과의 사회심리적 격차를 좁혀,전라문화권 차원의 문화를 이끄는 맡형 역할을 잘 해내고 자치단체간 문화협동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소리를 산업화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컨벤션산업을 예술과 접목시켜 자연관광지컨벤션산업과 차별화시키는 문화중심적 컨벤션산업 전략을 구상해봄직 하다. 추진주체인 시장과 도지사의 리더십과 문화마인드는 타 지역의 모범이 되지만,지속적 추진을 위해 조례화를 소홀히하지 말아야 한다.재정출연을 통해문화재단을 만들어야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아울러 지역문화의주체인 시민들이 참여하고,문화단체와의 문화협동 폭을 넓히는 참여적 문화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참된 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시민들이생활가까이에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해야 할 일은 이제부터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흥재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연구실장
  • 문화스냅 2000-여름/ 스타킹 벗어던진 신세대

    2000년 여름,신세대와 구세대를 가름짓는 바로미터 하나.꼼지락거리는 맨발가락을 내놓고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으면 신세대,그게 아니면 우겨봤자 구세대다. 한국IBM에 다니는 주부 직장인 황해경씨(32).올 여름,핸드백안에 꼭꼭 챙겨다니는 소지품이 하나 더 늘었다.스타킹이다.유행이라면 누구보다 민감한 미시족이라 자신해왔지만,‘전천후 맨발’은 아무래도 신경쓰일 때가 많다.격식을 따져야 할 VIP고객이나 직장 상사와의 회식자리에 들어가기 직전.눈치껏 스타킹을 꺼내 신고나서야 마음이 놓인다.“갓 입사한 젊은 친구들은 원피스 아래로 맨다리를 통째 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인데…” 맨발에 관한,미시 아줌마의 유감섞인 한마디다. 한평생에 지구 세바퀴 반을 도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인류사를 통틀어 찬밥대접을 면치 못해온 신체기관.그러고 보면 ‘발’이 올 여름만큼이나 주목받은적이 없었다. 시선을 끌어내려보자.도심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건 여성들의 맨발이다(신세대 남성들도 맨발을 즐기긴 마찬가지).색색의 화려한 니퍼(뒤꿈치가 트인샌들)속에서 나일론스타킹을 훌렁 벗어던진 뽀얀 발가락들이 여유만만.‘생으로’ 세상에 맞서보기로 한듯 ‘날발’들의 발언이 어딜가나 시끌벅적하다. 날발 유행에는 해설들이 분분하다.무엇보다 경제논리.문화평론가 김지룡씨같은 이는 “사회적 부가 축적되면 신체의 주목대상이 몸통으로부터 머리카락,손발톱,발쪽으로 분산되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라면서 최근 발로 쏠리는 대중의 관심을 경제적 여유의 징표로 파악한다. 그러나 재미난 것은 ‘강요된 여성성’에서 벗어나려는 반동문화의 한 코드로 이를 이해하려는 페미니즘적 시각이다.여성신문 ‘아줌마’섹션 편집위원장인 이숙경씨는 “발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신발이 어떻게 모양을 바꾸고 있는지에 주목해보라”고 주문한다.하긴 적어도 올 여름 대한민국의 여자들은하이힐에 의지해 위태롭게 뒤뚱거릴 마음이 없는 것 같다.낮아진 굽에 얼기설기 발을 조이던 가죽끈마저 떼어 버린 신발들이 거리를 누빈다. 실제로,발이 대접받는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면 ‘날발’의 가치 전복이 실감된다.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맞은편 골목의 나비뷰티라인.대낮부터 발관리를 받으러 오는 이들은 남녀노소가 따로없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맨발을 내밀고 앉은 채 사람들은 지압,물방울 아로마 마사지,보습팩 서비스에 주저없이 지갑을 연다.1시간 풀서비스에 5만원,30분 단축코스에 3만원.“지난해까지만 해도 40∼50대 주부들이 주고객층이던 것이 최근엔 20대 초반 손님이 부쩍 늘었다.더러 남녀커플이 함께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윤미숙 사장은 귀띔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맨발은 억압된 에로티시즘의 상징이기도 했다.10여년간 발사진만 찍어온 한정식 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은 “조선시대 여성의 발은 순결의 상징으로 버선속에 꼭꼭 숨겨졌고,치마자락 밑에서 드러나는 버선코가 관능미로 묘사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발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신체 지점인 것만은 분명하다.프로이트는 여성의신발이 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는가 하면,신화연구가 이윤기씨는 발에서 신화적 모티프를 짚어내기도 한다. 올 여름,맨발의 샌들이 ‘딸딸딸’ 유난히 큰 굽소리를내며 계단을 타고다닌다.스쳐지나는 유행일 뿐일까.아니면 억압된 여성성이 풀려나는 작은 메시지일까.어느쪽이든,삶의 메타포 하나를 새로 발견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황수정기자 sjh@. *날발의 '신상발언'. ■‘날발’의 씩씩한 발언…“더이상 생긴 걸로 시비걸지 말기!”‘나’는 발이다.사람 몸 전체에는 206개의 뼈가 있는데,그중 4분의 1인 52개가 내게 쏠려있다.30㎝도 안되는 크기로 70∼80㎏의 거구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각각 41개의 인대와 20여개의 근육을 가진 덕분.알고보면 우리는 대단히 민감한 ‘조각품’들인 셈이다. 최근의 맨발유행을 일과성 세태쯤으로 일축해버린다면,모처럼 해방된 우리로서는 억울하다.습하고 구리다는 편견으로,울퉁불퉁 못 생긴 생김새 때문에,시비걸리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얼만데….말이 난 김에 해보자.누가 언제 이중삼중으로 우릴 봉해놓으라 했나? 숨도 못쉬게 옥죄는 소가죽,양가죽으로 호사를 떨어달라고 주문했었나? 우리역사가 어땠는지는 소설책 한질로 써도 모자란다.가장 굴욕적인 역사는뭐니뭐니해도 전족(纏足)이다. 10세기 중국 송왕조 이후 귀족사회 미인의 필수조건에 맞춰주기 위해선 기형적으로 작고 뾰족해져야 했다. 그 지독한 악명의 역사덕분에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영화속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의 아내 오란은 자신은 큰발때문에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며,딸에게는 어떻게든 전족을 시켜 귀족의 조건을 갖춰주려 했다. 또 영화 ‘홍등’에서도 우리 얘기를 짭짤한 소재로 써먹었다. 세도가의 첩으로 팔려온 가난한 여주인공 공리는 남편을 기다리며 ‘발마사지’를 받는 게 일이었다.우리가 가진 에로티시즘적 속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루 한두번쯤 세수대야에 담기는 게 고작이던 우리가 요즘 온갖 대접을 다받는다. 발찌,발가락지,영양크림,붓기빼는 아이싱크림까지….가려지고 억압될 뿐,인간의 욕망은 소멸되지 않는 모양이다. 차제에,알아줬으면 하는 사항이 또 하나 있다.원래 우리에게도 지문 못잖게독특한 족문(足紋)이 있지만,신발에 치여 무의미해지고 있을 뿐이란 사실이다. 황수정기자.*발미용산업도 호황. 발 미용에 대한 관심과 함께 발 관리 전문점이 서울 강남거리를 중심으로 속속 생겨나고 있다.최근 3∼4년새 전국에 500여곳이 개업한 것으로 추산된다. ●발관리 전문점 성업 발 관리전문점은 각질제거와 발톱손질을 해주는 네일케어숍과 전문교육을 마친 발관리사가 발마사지를 해주는 곳 등 두종류다. 발 마사지는 경혈을 자극해 발바닥 노폐물을 제거해 줌으로써 몸을 가뿐하게 만든다.오랫동안 서있는 직장인들의 붓기를 없애는 데도 효과가 있다.비용은 5만∼10만원으로 비싼 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2층에서 ‘네일 갤러리’를 운영하는 윤정옥 원장은“요즘엔 남자 손님도 간혹 눈에 띈다”며 전문직 여성 회사원 외에도 대학생,주부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한다.보통 30∼40분이 소요되는데 비용은 2만∼5만원선. ●발 가락지까지 등장 발 전용화장품은 이제 더이상 호사스런 사치품이 아니다.각질제거제,보습제에서부터 피로를 풀어주고 냄새를 없애주는 스프레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다른 피부보다 두꺼운 발의 표면에 잘 흡수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최근엔 발목에 차는 발찌에 이어 발 가락지라는 신종액세서리까지 등장했다.은도금,큐빅 장식 등 화려한 디자인의 발가락지 가격은 1만원∼1만5,000원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집에서 하는 발관리 발 관리를 위해 꼭 전문점에 갈 필요는 없다.집에서세수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은 뒤 아로마 몇방울을 섞어 발을 담그면 소독도되고 각질을 불리는 효과가 있다.굳은살을 말끔히 제거한 뒤에는 로션을 발라 가볍게 마사지한다.손이나 지압봉으로 지압점을 찾아 꾹꾹 눌러주면 피로 회복과 혈액순환을 돕는다.로션의 흡수가 잘 되도록 석고팩을 하거나 랩으로 감싸주는 것도 좋다. 허윤주기자 rara@
  • [외언내언] 連坐制의 어제 오늘

    북한이 보내온 8·15 이산가족 방문단 신청자 200명이 찾고 있는 친족들은대부분 월북자 가족으로 드러났다.그들은 냉전시대 남한에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유형무형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연좌제(連坐制) 피해자들이다.지난 반세기 동안 연좌제라는 족쇄에 묶여 우리 사회에서 남모르게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계층이다.연좌제는 한 사람의 죄에 대하여 특정범위의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 제도로서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한 연좌형이 존재했었다.그러다가 1894년 형사책임개별화원칙이선언되면서 폐지되었고, 1905년(광무 9년) 제정·공포된 형법대전(刑法大典)에도 연좌제는 규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과 6·25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에서 사상범,부역자,월북인사 친족에게 사실상 불이익처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예컨대 ‘인민군' 얼굴 한번 못본 친척들까지 해외여행이나 공무원임용에서의 불이익은 물론,사회 진출에서 결정적 제약을 받은 것이다.197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연좌제에 의해 피해를 본 국민의 숫자가 무려 전체 국민의 5%나 됐던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짐작할 수있다. 연좌제 피해 당사자들은 국가가 교육·납세·국방의 의무는 강요하면서 연좌를 빌미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형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반한다면서 연좌제 폐지를 강하게 요구했다.만약 정부가 연좌제를 지속할 경우그 피해자들을 모두 대한민국 국민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주장까지 하며 인권유린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이러한 문제점이 인식되어 1980년 개정헌법은 제12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연좌제 폐지를 명문으로 규정했다. 물론 그 후에도 월북자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했으며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또 이같은 사회적 연좌의식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해서 이번에 가족상봉 신청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그런 면에서 북측이 보내 온 월북자들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명단이 남한내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오랜 멍에를 푸는 계기가 되기를바란다.또 남북정상회담의 첫 가시적 성과가 사회적 연좌제를 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된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기본권이 국가권력에 침해당하는 굴절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되겠다. △ 張淸洙 논설위원 csj@
  • 고려대 조선後期史연구팀 6박7일 답사

    ‘사행’은 ‘사신행차’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조선 후기 청나라의 수도인연경(북경)으로 가는 사행을 특히 연행이라고 부른다.정조 때 학자 서호수가쓴 ‘연행기’에 따르면 1780년 연행은 5월27일 서울을 출발하여 7월15일에야 북경에 닿았다.10월22일에야 귀환했다니,한차례 연행에 반년 가까이나 걸렸던 셈이다. 고려대 ‘BK(두뇌한국)21 사업단’의 조선후기사연구팀(팀장 조광 한국사학과교수) 답사단이 6월27일부터 지난 3일까지 압록강에서 북경에 이르는 사행길을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밟았다.병자호란 직후 청이 심양에 도읍할 당시 사행로를 찾아보고,북경으로 천도한 이후의 연행길도 둘러보았다. 조선시대 중국으로의 사행은 서울을 출발하여 고양·파주·임진강·장단·송도·곡산·평양·정주를 거쳐 의주로 이어졌다.압록강을 건넌 다음엔 책문·봉황성·구련성을 거쳐 천도 전에는 심양으로,이후엔 봉황성에서 금주산성·송산보·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들어갔다. 답사단은 그러나 빠듯한 일정 때문에 압록강에서 심양에 이르는 호란 당시사행길은 역순으로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서울에서 항공편으로 처음닿은 곳이 심양이었기 때문이다. 책문은 지금의 단동지역이다.책문후시(後市)라고 불리울 만큼 밀무역이 성행한 곳이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다만 ‘연행록’에 ‘책문에는 버드나무가많다’고 기록한 대로 강변에 버드나무가 밀집해있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변경에 있는 외국과의 통로를 뜻하는 ‘변문(邊門)’이라는 지명도 이 곳을 책문으로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구련성은 조선 사신이 중국 땅에서 처음 밤을 보내는 숙소였다.그러나 ‘구련성지(址)’라는 비석만 남아있을 뿐 성벽으로 추정되는 곳은 밭이 되어있었다.봉황성지는 사신들이 청나라 관료들과 처음으로 접촉하는 곳이다.역시‘봉황성지’라는 비석만 남아있을 뿐 중국의 군사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심양에는 조선관이 있었다.병자호란 당시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머물던 곳이다.그러나 조선관 터는 지금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 세워져있다.포로가 된 조선사람들을 사고팔던 노예시장과 조선인들을 목베던 삼학사 형장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금주산성에는 지금도 조선사람의 후예들이 조선의 풍습을 지니고 살고 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면서 차출된 조선사람들이 눌러앉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들은 “금주산성에서 조선이 중국을 크게 물리쳤다”는 내용의구전설화를 들려주었으나,금주산성을 고구려시대의 안시성과 혼동하고 있는듯 했다는 것이다. 북경의 옥하관은 조선 사신이 머물던 숙소이다.현재 옥하관의 흔적은 찾을수 없다. 일대는 현재도 외교관 거리가 되어 있다고 한다.청나라 시대의 외교거리가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옥하관 자리는 현재 북한대사관이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팀은 사행을 통한 한중교섭의 윤곽을 처음으로 살펴보았다는 것을 이번답사의 가장 큰 성과로 보고,곧 한중관계사 연구를 위한 공동연구팀을 발족시키는 한편 사행길의 보다 정밀한 답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답사에 참여한 이욱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사행길을 돌아보며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에 가면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면서 “최근의 국제관계에 걸맞는 역사연구를 하려면 교류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마음은 북녘 고향에](8)평북 영변군 출신 李京淑씨

    “나이가 들수록 약산(藥山)의 진달래꽃을 따먹던 추억이 더욱 눈앞에 아른거려요”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잘 알려진 평북 영변의 약산은 이경숙(李京淑·64·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씨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곳이다.신성안 마을 출신인 이씨는 거의 날마다 마을 바로 뒤편의 약산을 오르내렸다.매년 3∼4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한아름씩 따먹어 두손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관서 8경’의 하나로 꼽히는 약산은 조선시대 때 지은 동대(東臺)와 영변을 한바퀴 빙 둘러싼 산성(山城)으로 유명했다.약산에 오르면 서쪽으로 구룡강 물줄기가 넘실대고 동쪽으로 묘향산 등성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약산은 ‘경제의 터전’이기도 했다.마른 소나무 가지 등을 시장에 팔거나집에서 쓸 땔감을 장만하기 위해 집집마다 어른,어린이 가릴 것 없이 저녁늦도록 골짜기를 헤맸다.뽕잎을 따다 신작로를 지나 읍내 직제공장에 내다팔곤 하던 일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씨는 1·4후퇴 때 둘째 언니 인숙(仁淑·73)씨와 형부,갓난 조카와 함께월남했다.“집안을 정리한 뒤 나중에 따라 내려가겠다”던 부모님과 첫째 언니 성숙(成淑·79),세째 언니 영숙(永淑·68)씨는 전선이 고착되면서 소식이끊기고 말았다. 이씨는 지난 5일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내기 위해 이북5도청을 찾았지만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진땀만 흘리다 그냥 발길을 돌렸다.이씨는 “꿈에서도 그리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지만 나에게도 차례가 올지 모르겠다”면서 “둘째 언니가 고령인데다 건강마저 좋지 않아 걱정이 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송한수기자 onekor@
  • [기고] 디지털 혁명과 윤리규범

    0과 1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디지털혁명의 가장 큰 공헌은 인터넷을 탄생시킨 것이다.이런 인터넷은 거리의 개념을 바꿔놨다.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인터넷을 통하면 항상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과거에는 외국에 있는 연구논문을 구하기 위해 복사신청을 한 후 몇 달을기다려야 했다.그래서 정작 논문이 도착했을 때는 왜 그것을 신청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했다.그런데 이제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곳의 정보도 순식간에 얻을 수 있다.출장가서 사온 제품을 모방해 만들어 시장에 내면 이미 세계시장은 바뀌어 있다.이제 미국 뉴욕에 있는 사람이나 한국에 있는 사람이나 정보력에는 별 차이가 없어졌다. 인터넷을 디지털 혁명이 한국인에게 선사한 축복이라고 할만하다.지구촌의변두리라는 한반도의 숙명적인 약점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또 하나의 기여는 민주화에 있다.인터넷을 이용하면 어느 누구든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전에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자료도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됐다.이렇게 정보가공유되면 특수계층의 힘이 약화되어,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바뀌게 된다.과거 유럽의 중세시대에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게 하고,조선시대에 한글을 억압하던 이유를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지난 몇 년간 서울시가 이뤄낸 행정개혁 중에서 가장 큰 성공작으로 민원처리 전산화시스템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났듯이,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일반인의 의사표현 기회도 많아진다. 디지털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IMT-2000 사업이 본격화되면 또하나의 ‘도약’이 이뤄질 것이다.‘듣기만 하는 통신에서 보는 통신’으로바뀌면 우리 생활은 엄청나게 변한다. 초고속통신망이 완성되면 우리 사회는 진정한 멀티미디어 세상이 된다.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전자상거래,원격회의,원격진료,원격교육 등이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그렇게 되는 날에는 길거리에서 일반 차량을 보기가 힘들어질것이다.오직 길에는 택배회사의 배달차량들만 달릴 것이다.예외가 있다면 즐기고 운동을 하기 위해 나가는 사람뿐일 것이다. 그렇다고디지털 혁명이 순기능만 가지고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가장 염려스러운 것이 사생활 침해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지적했던 빅브러더의 출현을 어떻게 막느냐가과제다.인공위성과 개인휴대단말기를 이용하면 개인의 위치추적은 물론 모든 행동이 감시될 수 있다.이제 몰래 애인을 만날 수도 없고 룸살롱에 갈 수도 없어진다.그야말로 ‘밤에는 쥐가 보고,낮에는 새가 보는 시대’가 가능해진다. 인간의 사는 방식을 정하는 것이 윤리규범이다.혁명을 거치면 사는 모습도바뀌어 규범도 바뀐다.산업혁명 후 공산주의의 출현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오늘의 민주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이제 우리 인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디지털 윤리규범의 확립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것이 정립된 후에야 역사가들은 디지털 혁명의 공과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李 光 炯 KAIST 미래산업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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