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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도시부지에 문화재 118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백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 발견되는 등 문화재 118점이 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행정도시건설추진위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행정도시 예정지역의 문화재 사전조사를 벌인 결과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산성 5개와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정자 등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산성은 연기군 남면 나성리의 ‘나성’(토성)과 남면 진의리 ‘원수산성’, 금남면 장재리 ‘괴화산성’, 금남면 대박리 ‘보루형산성’, 동면 합강리 ‘황우산성’ 등 5개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책꽂이]

    ●나타샤댄스-러시아문화사(파이지스 지음, 채계병 지음) 러시아 근대화를 시작한 표트르 대제가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18세기 초부터 소비에트의 브레즈네프 시대인 1970년대까지 300년간의 러시아 문화사를 담았다. 나타샤댄스는 아름다운 백작녀 나타샤가 춤을 추는 ‘전쟁과 평화’의 한 장면에서 따온 말이다.4만 3000원.●골방에서 만난 천국(박인하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만화속 삶과 등장인물 등을 통해 일상의 역사를 살펴본 만화풍속사.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연재만화였던 ‘멍텅구리 헛물켜기’, 한국전쟁기의 딱지만화, 로봇만화와 명랑만화, 순정만화 등 시대별 만화 자료를 통해 100여년간의 한국 사회상을 밝힌다.1만 2000원.●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최준호 탈초·해제, 한얼미디어 펴냄)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원교 이광사와 창암 이삼만의 글씨를 담은 ‘원교창암유묵’ 해설서. 두 사람은 모두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당쟁과 가난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이같은 시대적 절망을 붓끝으로 표현했다.1만 2000원.●야생의 순례자 시튼(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작은우주 옮김, 달팽이 펴냄) ‘동물기’의 작가 시튼의 자서전. 평생의 역작인 ‘동물기’가 나오기까지 지은이가 갖은 고초를 겪으며 동물들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과정, 동물에 대한 사랑과 환경보호론자로서의 치열한 삶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1만 2000원.
  • [영화속 수능잡기] 스모크

    맛있는 음식도 자꾸 상에 오르면 물리기 마련이고, 즐겁던 농담도 자꾸 하면 재미없다.10년 전에 유행하던 ‘최불암 시리즈’나 ‘영구시리즈’의 개그를 재탕 삼탕 우려먹는 개그맨은 한마디로 날 샌 개그맨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성과 의외성에 웃음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판에 박은 듯한 사고방식은 하품을 만들어내기에 제격이다. 무언가 새로운 게 없을까, 무언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삶이 즐거운 생동감으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이다. 아들은 매일 학교에 가서 판에 박은 수업을 해야 하고, 아버지는 같은 노선 버스를 타고 매일 같은 직장으로 출근해서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고, 어머니는 집안 청소에 빨래에 찬거리 준비에 그렇고 그런 일을 반복해야 한다. 학생이 공부를 하고 가장이 출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이 때로는 힘겹고 버겁게 느껴진다. 어떻게 일상의 단조로운 리듬을 깰 수 없을까. 일상을 만들어내는 규칙, 가령 일찍 일어나라, 열심히 일해라, 복장을 단정히 해라, 아껴 써라 등과 같은 규칙들을 뒤집어 단 며칠만이라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을까. 그런 궁리 끝에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축제다. 축제는 모든 것을 뒤집는다. 조선시대의 탈놀음을 보라. 천한 백정이 양반을 나무라고 조롱한다. 축제가 아니면 어림도 없다. 학교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껄껄 웃으신다. 축제가 아니라면 학생부에서 단단히 본때를 보여주었을 텐데 말이다. 일상적인 것을 뒤집는 축제는 단조롭기만 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일상은 단조롭고 따분하기만 한 것일까. 늦게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라. 언제나 평범 그 자체다. 스타의 화려함도 없다. 매일 수수한 차림이다. 밥을 해주고, 교복을 세탁해주는 어머니의 노동은 표가 나지도 않는다. 시계추처럼 일터를 오가시는 아버지의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의 위대함은 단조로움울 인내하는 마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부의 위대함이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는 그 단조로운 노동 속에 있듯이. 영화 ‘스모크’에서 담배가게 주인 오기랜은 매일 의미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일을 취미로 삼는 인물이다. 오전 8시 브루클린 거리. 그는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무려 12년 동안 같은 프레임 속에 담아냈다.‘다 똑같은 사진이잖아.’라고 퉁명스레 말하던 주인공 폴은 그 사진들 속에서 총기사고로 죽은, 살아있을 때의 자신의 부인을 발견한다. 그리고 오열한다. 일상의 시간을 벗어난 비일상의 시간, 즉 축제의 시간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을 무가치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지혜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웨인 왕 감독, 하비 케이틀·윌리엄 허트 주연,1995년작.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정감록’엔 ‘도선비결’(道詵 訣)이 포함돼 있다. 한국 풍수지리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신라말의 선승(禪僧) 도선의 저작이란 이야기인데, 도선(827∼898)의 스승이라는 중국 당나라의 고승 일행(一行)이 한국의 미래를 예언하는 형식이다. “임진년에 섬 오랑캐가 나라를 좀 먹으면 송백(松栢)에 의지하라. 병자년에 북쪽 오랑캐가 나라 안에 들끓으면 산도 불리하고 물도 불리하다. 궁궁(弓弓)이 이롭도다.” ‘정감록’ 곳곳에 나오는 주장이 ‘도선비결’에도 그대로 나온다. 정씨가 세 이웃의 도움을 받아 세 아들과 함께 계룡산(鷄龍山)에 도읍한다는 내용도 ‘도선비결’에서 발견된다. 요컨대 고승 도선이 이미 9세기에 조선왕조의 멸망과 정씨의 계룡산 도읍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따르면 도선은 고려왕조의 등장을 정확히 예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감록에 실린 ‘도선비결’에는 고려에 관한 예언이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조선왕조와 정씨왕조의 계승만 언급되어 있다. 과연 ‘도선비결’을 도선이 직접 저술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선은 누구기에 사후 1000 년이 지난 다음에도 정감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예언서의 저자로 논의되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예언가 도선의 정체를 알아 보고, 그가 보급한 풍수지리설이 국운의 예언에 관여하게 된 역사적 과정을 조사해 보자. ●신라 말 풍수지리설은 예언의 중심으로 떠올라 도선은 출생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채집된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도선은 하늘이 점지한 아이였다. 이야기는 영암에 사는 최씨의 밭에 열린 오이에서 시작된다. 문제의 오이는 길이가 한 자를 넘어 보는 사람마다 신기하게 여겼다는데 하루는 최씨의 딸이 그 오이를 몰래 따먹었다. 그러자 저절로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게 되었다. 최씨는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았다며 딸을 꾸짖고 아이를 대숲에 버려 두었다. 여러 날 뒤 딸이 대숲에 가서 살펴 보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감싸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고 딸은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아이는 장성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는데 이름을 도선(道詵)이라 하였다고 한다(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나주목 영암군). 아이를 비둘기가 날개로 감싸주었다는 대목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설화를 연상하게 한다. 물론 주몽과 다른 점도 있다. 이를 테면 주몽이 하늘의 손자라면 도선은 땅의 손자다. 오이는 땅의 기운이 열매 맺힌 것이라 땅의 아들로 봐야 하며, 그것도 매우 큰 오이라 하였으므로, 보통 아들은 아닌 것이다. 이를 테면 땅 임금의 손자나 다름없는 도선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가는 지관(地官)이 되게끔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 설화라는 것은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만큼 도선이 지관으로서 명성이 유별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역사상 도선이 예언가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그가 쉰 살쯤 되던 서기 876년께였다. 당시 신라는 내란기였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도선은 하늘의 명을 받아 송악군으로 갔는데 마침 왕건의 아버지 융건이 집을 짓고 있었다. 도선은 집을 다시 고쳐 지으라며 왕건의 출생을 예언했다. 그리고는 한 권의 책을 건네주면서 훗날 왕건이 장성하면 이 책을 꼭 전하라고 부탁하였다. 때가 되어 왕건은 그 책을 펼쳐보았고 자신이 천명을 받아 왕이 될 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고려 전기에 최유청이 쓴 도선의 비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先覺國師 證聖慧燈 塔碑). 정리하면, 도선은 왕건의 출생과 고려 건국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도선의 예언은 한국 고대의 예언과는 색다른 방식에 근거했다. 고대의 예언은 해, 달, 별 등 천체의 움직임이나 동물, 식물의 변화를 통해 앞일을 내다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선은 그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 가지 새로운 요소를 부각시켰다. 바로 풍수지리설이었다. 왕건의 아버지에게 집을 고쳐 지으라 했을 때 그가 한 말이 흥미롭다.“이곳은 지맥이 임방(壬方)인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수모(水母)의 나무를 줄기로 삼다가 말머리 명당에서 그칩니다. 그러므로 그대 또한 물의 운명이군요.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에 따라서 집을 지어야 합니다.36구라야 천지의 대수에 부응하겠고, 그러면 내년에 반드시 성자(聖子)를 낳게 됩니다. 부디 아이의 이름을 왕건이라 하십시오.” 도선의 이 말은 ‘고려사’ 세계(世系)에 실려 있다. 단 몇 줄밖에 안 되는 간단한 내용이지만 거기서 우리는 도선의 사상적 근원을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는 풍수지리설에 음양오행설을 단단히 결합시켰던 것이다. 집터의 성격을 물(水)로 읽었고, 주인의 운명도 그와 똑같은 것으로 본 것이 그 증거다. 더욱이 주인이 살 건물까지도 물이 되어야 한다면서 36칸 집으로 고쳐짓기를 요구했다. 오행설에서는 물을 1 또는 6으로 본다. 그 가운데 1은 작은 물,6은 큰물이다. 따라서 큰물의 조합은 6에 6을 곱한 36이 되므로 ‘36구’설을 폈던 것이다. 도선은 그 명당 기운을 살리려면 집도 터의 성격에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성자’ 즉, 미래의 임금을 아들로 얻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도선은 왕건 집안이 살던 송악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종(禪宗)의 일파인 지리산 동리산의 혜철(慧澈) 스님의 제자로 전남 광양의 옥룡사(玉龍寺)에 오랫동안 주석했다. 줄곧 거기 머물다가 후백제가 건국된 지 7년 만인 898년에 입적하였다. 궁예의 태봉이 건국되기 3년 전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세력 판도를 기준으로 보면 도선은 견훤의 세력권 내에 있었다. 그는 평생 견훤과 어떠한 마찰도 없었다. 그런 도선이 정말 왕건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였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도선은 왕건가문보다 견훤과 밀접한 관계 도선의 행적에 관한 ‘고려사’의 기록은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말이다. 또 다른 예로 ‘고려사’는 도선이 중국에 유학해 일행에게 풍수지리를 배웠다고 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류다. 도선은 중국에 유학한 적이 없었다. 참고로, 도선의 스승 혜철과 제자 경보(慶甫,868∼948) 두 사람은 유학했다. 왕건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것은 다름 아닌 경보였다. 그는 후백제가 망하기 직전에 고려태조와 접촉하였다. 그럼 그 때까지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도선이든 그 제자인 경보든 후백제를 위해 봉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지관이었던 그들을 후백제의 왕 견훤이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다. 만일 경보가 오래 전부터 왕건을 추종했다면 후백제 영토 안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던 무렵부터 도선의 제자들이 고려왕조에 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는 차츰 윤색되기 시작했다. 도선 일파가 지관으로서 워낙 이름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밖에도 통일신라 말기 또는 후삼국 시기에는 이름난 지관들이 상당수 있었다. 역사책에 이름이 기록된 신라의 감간(監干) 팔원(八元)은 좋은 예다. 팔원은 왕건의 조상 강충을 찾아가 “군(郡)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산에 소나무를 심어서 바위가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이가 그대의 집안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려사, 세계). 이것은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새 왕조의 출현을 예측한 최초의 사례였다. 본래 민둥산이었던 부소산에 소나무를 심어 땅의 기운을 북돋웠다든가 그래서 지명이 송악이 되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도선에 앞서 유명한 지관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풍수지리설을 통해 복잡한 사회현실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도선의 제자들, 고려의 예언계를 평정하다 도선이 죽은 지 150년가량 되던 11세기 중반, 그가 남겼다는 비기(記)가 느닷없이 등장했다.‘도선송악명당기’(道詵松嶽明堂記)라는 비결이었다. 비결 가운데 “서강(예성강) 가에 군자가 말을 몰고 있는 모양을 한 명당이 있다. 태조가 통일한 병신년(936)으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에 이곳에 건물(이궁)을 창건하라. 그러면 왕업이 연장될 것이다.”(西江邊 有君子御馬明堂之地.自太祖統一丙申之歲 至百二十年 就此創構.國業延長)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근거해 조정에서는 부랴부랴 임시 궁궐을 짓는다(‘고려사절요’, 권 4). 어느덧 도선은 고려왕실의 지속적 번영을 위해 동원되는 인물이 되었다. 이것은 물론 도선의 후예를 자처하는 고려의 술관(術官)들이 나서서 하는 일이었다. 그 무렵의 가장 대표적인 술관은 김위제였다. 그만하더라도 도선과의 학맥을 무척 강조하는 편이었다.‘고려사’에는 “신라말에 도선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당 나라에 들어가서 일행(一行)에게 지리의 법을 배웠다. 돌아와서는 비기를 지었다. 그것이 김위제에게 전해져 김위제는 그 술법을 배웠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김위제는 도선이 지었다는 ‘도선기’(道詵記)라는 예언서를 인용해 가며 당시의 남경(南京) 즉,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하였다. “고려에는 세 개의 서울이 있게 되리라. 송악은 중경, 목멱양은 남경, 평양은 서경이 되리라.11,12,1,2월은 중경에 머무르고 3,4,5,6월은 남경에 머무르며,7,8,9,10월은 서경에 머물러라. 그러면 36국이 고려의 천자에게 조공을 바칠 것이다.” 도선의 예언서에 나오는 구절이었다.“개국 후 160여년에는 木覓壤(한양)에 도읍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김위제는 한양으로 천도까지 할 필요는 없고 삼경을 돌아가며 머물면 나라의 운수가 장구할 거라고 주장했다.(‘고려사’ 권 122) ●한강 북쪽에 도읍 정하면 나라 부흥 그밖에도 김위제는 도선이 남긴 또 다른 예언서라면서 ‘도선답산가’(道詵沓山歌)를 인용하였다. 그에 따르면, 한강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길이 영원하며 천하의 온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치게 되고 왕족이 창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한강을 건너 남쪽에 서울을 두게 되면 나라가 분열되어 나라가 한강을 경계로 이분된다고 말했다.(‘고려사’ 권 122) 또한 김위제는 도선이 지었다는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를 인용하면서 삼각산 아래 왕궁을 지으면 신하들 사이에 다툼이 없어지고, 왕실재정이 저절로 풍부해지며, 사방의 인재들이 조정에 가득 차게 된다고 했다. 한 마디로 국정의 운영이 순조롭게 되며 온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러 온다고 극찬했다. 요약하면, 한양 즉, 오늘날의 서울은 최고의 명당이라는 것이고, 오늘날 서울의 강북 지역이야말로 나라의 중심이어야 된다고 했다. 만일 강남 또는 한강 이남이 수도로 지정될 경우 나라가 망하고 만다는 식의 이야기다. 이를 현실에 적용한다면, 최근 진행 중인 신행정 수도 같은 것은 전혀 불필요하며, 부동산 개발로 문제가 돼 있는 강남이고 판교고 개발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서두에서 소개한 이른바 ‘도선비결’의 내용과 잠시 비교해 보자. 다시 말하면 ‘도선비결’은 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내용이었다.‘도선답산가’,‘도선기’ 등과는 아무런 유사성도 찾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예언서다. 좀더 꼼꼼히 살펴 보면 고려시대에 등장한 도선의 예언서들도 내용상 상호 모순 관계에 있다.‘도선송악명당기’는 고려의 수도는 어디까지나 개경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인데 ‘도선기’는 3경설을 편다. 이에 비해 ‘도선답산가’와 ‘삼각산명당기’는 한양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예언서들이다. 이 모두를 고승 도선이 지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도선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지은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김위제를 비롯한 고려의 술관들은 도선이 남긴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설의 전통 위에서 국가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풀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도선의 권위를 빌렸다. 도선의 예언이라고 내세우면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능력은 과대평가되었다. 도선은 기껏해야 고려왕조의 출현에 관심을 가졌을 텐데, 그의 제자인 후대의 술관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빙자해 국가의 모든 현안에 개입하였다. 고려 후기까지 줄곧 그런 전통이 이어졌다. 예컨대 원나라 생활에 익숙한 충열왕이 중국을 본떠 높은 건물을 지으려 하자 술관들은 그에 반대했다. 반대의 이유는 물론 도선의 예언이었다. 술관들은 ‘도선밀기’(道詵密記)를 들먹였다.“산이 드물면 높은 집을 지어라. 산이 많거든 낮은 집을 지어라. 산이 많으면 양이다. 산이 드물면 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만일 높은 집을 짓는다면 반드시 손해를 가져온다.” 만일 이말 대로라면 63빌딩 같은 것은 당장이라도 허물어야 할 판이다. 도선의 제자들은 고려 태조 때부터 높은 건물을 금지해온 것이 고려의 국법이며 이는 바로 자기네 스승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만일 “도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태조의 명령을 좇지 않는 것이 되고, 그 결과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고려사, 권 28) 과연 도선이 고층건물을 반대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술관들의 이런 견해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국가의 비용이 절약되는데다가 백성들의 노역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도선의 제자들은 대대로 고려의 술관으로 위세를 떨쳤기 때문에 도선의 명성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이른바 도선의 예언서는 어느 것이나 일단 위작(僞作)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고려시대에는 예언서를 포함한 음양서(陰陽書) 일반이 조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주역은 전문가인 술관과 스님들이었고, 문장에 능한 문사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떠맡았다. 그러나 고려시대만 해도 이런 책들을 생산, 소비하는 계층은 수도 개경의 특수층에 국한되었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도선의 명성 조선 건국 직후에도 도선의 예언서는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태종은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 때도 도선이 이용되었다. 당시 천도 문제를 실질적으로 담당한 이는 술관 이양달(李陽達)과 정승 하륜(河崙) 등이었다. 하륜은 ‘도선비기’를 존중해 “한수가 명당으로 들어온다는 말”(漢水入明堂之語)에 주목했다. 한편 이양달은 ‘도선비기’에 “서쪽에 공암 있고 붉은 색깔로 글씨 쓴 돌 벽이 있다.”는 구절에 암시를 받아 인왕산에서 붉은 글씨를 찾았고, 결국 경복궁터를 정하게 되었다.(‘필원잡기’, 권 2) 고려의 건국을 예언했다는 도선이 이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일어선 조선왕조의 안정과 발전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히자 도선의 예언서는 폐기처분되었다. 세조는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을 금지시켰던 것이다(실록, 세조 3년5월26일 무자). 이미 한 두 차례 강조했듯이 고대로부터 국가는 예언을 독점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예언이 ‘불순분자’들의 수중에 들어가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더욱이 성리학을 국시(國是)로 삼은 조선왕조의 경우, 예언은 점차 악덕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15세기 후반 이래 국가의 공식 기록에서 도선에 관한 언급은 사라졌다. 그러나 일반 민중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게 도선은 영원한 스승으로 남았다.‘정감록’에 ‘도선비결’이 실리고, 도선의 출생에 대한 신비한 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그 증거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도선은 “신(神)이 통한 밝고 지혜로운 스님이었다.”(성종 16년1월8일 신묘). 도선은 새 세상이 동터 옴을 알릴 만한 참된 예언가였던 것인데, 이런 기대는 그가 이 땅에 풍수지리설을 최초로 집대성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 도선의 제자들은 풍수지리설을 국가운명을 예언하는 도구로 정착시켰으며, 이것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이 되었다.(푸른역사연구소장)
  • [공연포커스] 오페라로 환생한 황진이

    조선시대의 기생 황진이가 오페라로 환생했다. 서울 캄머 21오페라단은 1일부터 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동방의 가인 황진이’를 초연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초연된 창작 오페라의 경우 이순신, 광개토왕, 유관순, 김구 등 이른바 나라를 구한 인물에 치우쳤지만 이번에는 당대를 휘어잡은 미모의 기생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눈길을 끈다. 제작비 4억여원을 투입, 모두 100여명이 출연하는 등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볼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 오페라 ‘원술랑’으로 작품성과 음악성을 인정 받은 여성작곡가 오숙자씨가 5년간의 기간을 통해 황진이의 인간적인 면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황진이가 남긴 시조를 우리 언어로 아름답게 곡을 입혔다. 뮤지컬 ‘명성왕후’역으로 명성을 얻은 소프라노 김원정과 소프라노 김인혜 서울대교수가 황진이 역을 맡았고,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출신의 바리톤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사종 역을 맡아 열연한다.(02)588-9630.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한방메카 ‘서울약령시’ 뜬다

    서울약령시가 한방산업의 중심으로 육성된다. 서울 동대문구는 경동시장을 포함한 ‘서울 약령시’가 한방특구로 지정됨에 따라 개발의 꿈에 부풀어 있다. 동대문구는 29일 정부가 이 일대 8만 4908평에 대해 한방산업 특구로 승인,2008년까지 296억 6500여만원을 들여 관련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대문구 한방산업 특구는 대구 약령시에 이어 두번째다. 동대문 서울약령시는 중앙선 등 철도를 비롯, 교통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물류 동선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구 지정에 따라 일반 주거지역에는 설치할 수 없었던 아치형 등 공동 광고물 설치가 가능하게 됐다. 도로교통법 특례가 적용돼 각종 행사 때 차량통행 금지 등 경찰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업소 10개를 한명의 약사가 관리하는 공동약사제를 실시할 수 있어 보다 나은 인력을 유치하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등 효율을 꾀하게 된다. 동대문구는 각종 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약령시를 A∼F구역 등 모두 6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할 예정이다. 구는 우선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내년까지 65억원을 투입, 한의약 전시·문화관을 건립한다.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국·시비 44억원을 지원받는 등 모두 54억을 들여 특구내 환경 개선사업을 벌인다. 또 23억원을 들여 조선시대 구휼기관인 보제원 터에 쉼터를 겸한 공원을 만든다. 이밖에 공중화장실을 설치하고, 약령시 축제를 연례화하는 등 각종 사업에 11억여원을 투입한다. 명실상부한 특구 조성을 위해 국내·외 소비자들의 신뢰가 절실하다고 판단, 한약재 품질검사도 강화한다. 한약재 관리표준 기준 부적격률을 1% 미만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품질 인증제도 도입한다. 경희대와 산·학·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 건강기능식품 연구·개발 및 상품화에도 힘을 기울인다. 이를 위해 3억원을 책정했다. 이밖에 서울약령시 브랜드와 로고, 캐릭터 등도 개발한다. 이번에 특구로 지정된 지역은 1960년대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한약재시장이 형성돼 현재 1050여개의 한의학 관련 업종이 몰려 있다. 전국 한약재 거래량의 70%를 차지한다. 홍사립 동대문구청장은 “전국 최대의 한약재 유통시장인 서울약령시를 한방산업의 메카로 육성해 국민건강 증진과 전통 한방 계승 발전을 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창덕궁등 궁궐내 미지정문화재 조사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비롯한 조선궁궐과 왕릉 안에 소재한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한다고 23일 밝혔다.내년 12월까지 관계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 최근 일제조사를 통해 지정 검토대상으로 선정한 창덕궁 소재 뽕나무 등 33건에 대한 현지조사를 벌여 가치가 인정될 경우 심의 절차를 거쳐 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우선 23일에는 창덕궁 소재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의 벽면에 그려진 대형 그림 6점에 대해 문화재위원장인 안휘준 서울대 교수와 김윤수 문화재위원 등 회화 분야 전문가 5명이 나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이어 순차적으로 조선왕릉 내의 문·무인석과 혼유석 등 석조물과 정자각, 재실 등 목조건축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게 된다. 실제로 창덕궁 등 조선시대 궁궐과 능원에는 궁궐 등에 포함돼 포괄적으로 문화재로 인식되면서도 문화재 지정은 물론 일반인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그림, 석조물 등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인간시대] 향토사학자 박희씨

    “지구가 남아 있는 한 ‘핏줄’은 인간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이명박 시장은 역대 2005대 서울 수장” 최근 이명박 시장이 역대 ‘서울 수장(首長)’으로는 꼭 2005대여서 올 연도와 똑같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던 향토사학자 박희(52)씨는 22일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서울 강동구 길1동 396의10 강동우체국 건너편 한 건물 지하 1층에서 만난 그는 다짜고짜 출입구 쪽에 놓인 캐비닛을 열어 보여줬다. 지난 2003년 10월 당시에 쓰던 공간이 비좁아 새로 마련했다는 35평짜리 연구실은 자료로 가득했다. 사방을 빙 둘러싼 사람 키높이의 책꽂이로도 모자라 의자, 소파 등 발디딜 틈만 빼고는 죄다 논문·잡지 등이 수북이 쌓여 먼지가 펄펄 날릴 듯했다. “석보상절(釋譜詳節·조선 세종 때 수양대군이 왕명으로 편찬한 석가모니의 일대기) 영인본입니다.50권 한정본으로 찍은 것이어서 희귀하지요.” 박씨는 이어 조선시대 규장각본과 해인사 대장경 영인본 등 오래돼 노랗게 탈색한 서적들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 대대로 내려온 서적들 가운데 오·탈자가 하나도 없는 것을 꼽으라면 이 두가지입니다. ●선조들이 해인사 대장경 엮을 때처럼 정성껏 박씨는 해인사 대장경의 경우 선조들이 ‘1자 3배’(목판에 한 글자 쓰거나, 새긴 뒤 세번 절하는 것)로 믿기 힘든 정성을 쏟았으니 호국정신이 얼마나 강했는지 엿보입니다. 그러니 오·탈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한글학회가 발간한 자료집에 이르자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명사전 18권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6·25때 일입니다. 패잔병들이 흩어졌다가 작전지도로 보아 율곡리라는 마을에서 합류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군인들은 율곡리를 찾았지만 마을사람들이 ‘율곡이 아니라 밤실(율곡리의 우리말 지명)’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발길을 돌렸고, 결국 전사자로 처리된 사례가 많았답니다.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이죠. 보다 못한 유엔사령부가 지명사전 발간에 착수했어요.” 박씨가 소장한 서적 중에는 1953년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으로 전국의 한문 작가들이 써 올렸다는 글을 엮어낸 ‘헌수송’(獻壽頌)이라는 책도 있다. ●세태 변해도 문중에 대한 관심은 대단 그는 요즈음 서울의 역대 수장들이 남긴 문학 발자취를 더듬어 자료로 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헌에 나오는 얘기들을 다듬고, 그들의 문중을 찾아가 후손들과 만나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세태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집안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600여년간 1417명인 서울 수장에 얽힌 신문기사가 나가자 전국에서 온갖 성씨(姓氏)들이 ‘우리 조상님도 그 벼슬을 지냈는데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는 설명이다. 상고를 나와 회사원으로 일하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친 그는 보기 드물게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의 문학세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땄다. 한문소설 종옥전(鍾玉傳) 번역판과 수학·과학 학술용어사전, 고사성어 사전 ‘동양의 향기’ 등의 저서를 펴냈다. 한문학 전문가로 수학·과학 용어사전을 낸 이유를 묻자 “과학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가 한자의 간단한 원리만 알면 깨우치기 쉬운데 학생이나 모두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워서….”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儒林(37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7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훗날 대문장가였던 안축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퇴계가 요청하여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이름을 사액받는다. 이곳이 전국에 서원이 설립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사학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원래 숙수사란 절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주세붕이 절을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중 불상들을 모두 바위 아래 못 속에 던져버리자 한이 맺힌 불상들이 밤이면 첨벙거리며 뛰어올라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한다. 이를 전해들은 주세붕은 못 위의 바위에 ‘경(敬)’자를 음각하였더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은 바로 주자가 주장하였던 ‘거경궁리’의 철학. 공경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로써 불상들의 한이 위로받았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풍기에 이르자 백운동서원이야말로 앞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향임을 깨달았다. 주세붕의 뒤를 이어 자신도 고향에 서원을 지을 것을 결심한 후 그런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특히 한시라도 경건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자가 새겨진 바위는 퇴계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만 1년 동안 풍기의 군수로 있었던 퇴계는 경상도 감사에게 병을 이유로 사직원을 낸다. 그러나 이 사직원은 경상감사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3개월에 걸쳐 세 번이나 사장을 올려도 회답이 없자 퇴계는 더 이상 회보를 기다리지 않고 그해 12월, 해를 넘기기 전에 고향으로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퇴계의 행동으로 보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단호한 태도였다. 다음해 정월 허락 없이 임지를 떠났다고 해서 감사로부터 2계급 강등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토계( 溪)라고 불리던 골짜기에 봉진암(奉眞庵)이란 작은 암자를 짓고 ‘토( )’자를 ‘퇴(退)’자로 고친 후 그곳을 퇴계라 부르고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은 ‘퇴거계상(退居溪上)’의 뜻을 관철하려는 확고한 결심 때문인 것이다. 이후 퇴계는 임종하는 70세 되던 해까지 선조에게 마지막으로 최후 사장을 올린다.20여년에 걸쳐 무려 53회에 걸쳐 사퇴원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최후 사장의 이름은 ‘걸치사장(乞致辭狀)’, 풀어 말하면 ‘물러가기를 구걸하는’ 애절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원래 ‘걸치사’란 말은 ‘걸해골(乞骸骨)’에서 나온 말로,‘해골을 빈다.’는 말의 뜻은 ‘신하란 본디 온몸을 모두 임금에게 바친 것이니 사퇴를 원하고 나올 때에는 오직 썩어버린 해골만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돌려달라는’ 하소연인 것이다. 이 말은 항우의 충신이었던 범증(范增)이 항우가 유방의 모함에 빠져 자신을 믿지 못하자 ‘이미 천하의 대세는 정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전하가 알아서 하십시오. 신은 내리시는 해골을 받아 옛날처럼 이름 없는 병졸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퇴계의 최후 사장이었던 ‘걸치사’는 이처럼 늙은 신하가 ‘해골을 비는’ 간절한 호소로,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죽령고개를 넘을 때 퇴계는 임금에게는 이미 ‘썩어버린 해골’만 남아 있는 병든 신하였으나 학문으로는 소향무전(所向無前)의 대용사였던 것이다.
  • 어린이 성교육, 애니에 맡겨요

    어린이 성교육, 애니에 맡겨요

    애니메이션에서 다큐멘터리, 드라마까지. EBS가 공사 창립 5주년(22일)을 맞아 그동안 꼼꼼하게 준비해온 특별 프로그램 보따리를 시청자들에게 풀어 놓는다. 3부작 성교육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사는 성’이 22일부터 3일 동안 매일 오후 5시35분 안방을 찾는다. 기존의 생물학적 학습 방법에서 벗어나 어린이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기획됐다.1년 5개월 여 동안의 제작과정을 거치며 유치원ㆍ초등학교 교사, 아동심리학자 등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 1부 ‘나’에서는 남녀 신체구조의 차이와 생명 탄생을 주제로 난자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정자들의 모험을 담았다.2부 ‘답게? 답게!’에서는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사회적으로 억압되는 성의식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다. 캐나다 작가 질 티보이 동화를 원작으로 한 3부 ‘네 잘못이 아니야’는 성폭력 피해 아동이 가족의 도움으로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22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자연다큐멘터리 ‘흙’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촬영 기법을 통해 흙, 흙과 더불어 사는 작은 생명들의 모습을 정밀하게 담아냈다. 식물의 뿌리가 흙 속으로 자라나는 장면 등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국민 배우 최불암이 내레이션을 맡아 흙의 소중함을 전달한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한 역사물도 빼놓을 수 없다. 4부작 어린이 역사 드라마 ‘독도장군 안용복’(20∼23일 오후 7시25분)에서는 조선시대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낸 어부 안용복의 삶을, 시간 여행으로 과거로 날아간 현대 어린이들이 만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구한말 의병장으로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했던 왕산 허위를 조명하며, 세계 각지로 흩어져 타국인으로 살아가는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2부작 기획 다큐 ‘왕산가 사람들’(22∼23일 오후 10시)도 마련됐다. 이외에도 22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EBS FM을 통해 라디오 다큐멘터리 ‘역사학자 100인이 말하는 우리 역사의 희·로·애·락’을 내보낸다. 역사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최고의 순간으로는 8·15해방이, 슬펐던 순간은 경술국치, 가장 분노한 시기는 광주의 봄이 선정됐다. 같은 날 오전 10시 TV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창의적 부모는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보는 ‘생방송 60분-부모’가 전파를 탄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옛 노래 속의 낭만 연인/ 이민홍 편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간의 사랑만큼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것이 있을까?그래서 서구에선 고대로부터 신화와 문학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사랑이었다. 이미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신은 풍요의 신인 아버지와 빈곤의 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도 또 만나고 싶은 것은 어머니의 빈곤의식을 닮았고, 만남의 장소를 화려하고 근사한 곳으로 택하고자 하는 속성은 아버지의 풍요로움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신화적 해석이 그럴 듯하다. 하지만 유가이념이 지배한 동아시아에서 상류층 사람들은 내심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도 이를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는데 인색했다. 도덕군자로 알려진 저명한 선인들 대부분이 열렬한 애정행각을 벌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건만, 이들이 남긴 ‘사랑의 시’는 가뭄에 콩나듯 희귀하다. 삼국시대의 향가나 고려조의 몇몇 가곡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랑노래는 아니다. 대부분은 남녀간의 애정에 의탁해 왕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이다.“내 님이 그리워 우는 것은 산 두견새와 비슷하다.”는 피맺힌 노랫말을 남긴 ‘정과정’,“이 몸 생기실 때 님을 쫓아 생겼으니, 천생연분이 하늘 모를 일이런가.”의 ‘사미인곡’을 애절한 사랑노래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이같은 이치에 있다. 그러나 작자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만횡청류(漫橫淸流), 이른 바 사설시조엔 애정과 애욕이 넘쳐 흐른다. 조선시대 풍류와 사랑의 ‘진정한 주인’이랄 수 있는 명기들의 사랑노래는 애틋하고 진솔해 지금 읽어도 그 절절함이 가슴을 적신다. 또 일부 지식인들도 솟구쳐 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시로 남겼다.‘낭만연인·浪漫戀人’(이민홍 편역, 국일미디어 펴냄)은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남녀간 애정을 꾸밈없이 읊은 한시 108수를 뽑아 해설을 붙인 것이다. 편역자의 표현대로라면 ‘조선시대의 3년간 나눌 애정을 3일 동안에 탕진할 수 있는 요즘, 애틋한 중세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한 수 한 수 뽑아 해설을 붙인 책이다. 책은 사랑이 싹트기 전부터 시작해 이별과 죽음 이후의 감정까지, 마치 사랑의 일대기를 그리듯 9개의 테마속에시를 담았다. 이성에 대한 설렘, 불꽃 같은 사랑, 이별, 그리움, 외로움, 꿈속의 사랑과 기다림, 체념, 다음 생의 사랑 등등. “열 다섯 아리따운 아가씨(十五越溪女)/부끄러워 이별의 말도 못하고(羞人無語別)/중문까지 닫아걸고 들어가서는(歸來掩重門)/배꽃 사이 달 보며 눈물 흘리네.(泣向梨花月)” 이성에 대한 설렘과 부끄러움이 잘 드러난 이 시는 임제(1549∼1587)의 ‘규원’(閨怨)이라는 한시. 열 다섯이면 요즘 중학교 2학년. 시대가 바뀌어 사내아이보다 더 기운이 넘쳐 악을 쓰며 뛰어다니기도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고 말도 잘 못하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편자는 기대를 가져 본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 남곤(1471∼1527)의 첩이었던 조운. 첩이었던 것이 못내 한스러웠는지 그녀는 “…초가집 한 칸이면 당신과 누울 수 있으니/가을바람 밝은 달과 오래도록 삽시다.”라며 사랑의 도피를 애원한다. 조선 영조 때 평양의 명기로 소문났던 계월은 누구를 그리 떠나보내기 괴로웠는지 “대동강 강가에서 정든 님 보내는데/천가지 버들로도 잡아매지 못하네….”(送人)라고 으며 애를 끓이고 있다. 파격의 지식인답게 다산 정약용도 ‘꿈속의 아내에게’(如夢令寄內)란 사랑시를 남겼다.“…언제나 침실에서 아름다운 인연 맺을까나/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서글피 꿈속에서 본 그 얼굴을.”시국사건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오랜 귀양살이를 하던 그는 언제나 보고 싶은 아내랑 한 방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괴로워하고, 결국은 “그리워하지 말자.”며 체념을 드러낸다. 근엄과 격식의 사회에서도 ‘꿀과 설탕’같은 사랑이 흘렀고, 많지 않은 한시를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98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 박영수 지음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동종의 꼭대기를 보면 용(龍)모양의 고리가 달려 있다. 고리의 이름은 ‘용뉴’(龍 )로, 용의 아홉 종류 새끼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래의 공격을 받을 때 가장 큰 소리로 우는 습관이 있다고 해 좋은 소리를 내야 하는 종의 고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신선로의 손잡이는 왜 박쥐 모양일까? 조선시대 밥사발에도 박쥐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이는 박쥐가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해 장수하려는 욕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속 유물들을 보면 이처럼 다양한 동물 모양이 새겨져 있거나 그려져 있는 것이 많다. 각 동물들은 모두 역사적 문화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갖게 마련.‘유물 속의 동물 상징 이야기’(박영수 지음, 내일아침 펴냄)는 이처럼 우리 역사의 흔적인 수많은 유물에 등장하는 동물 무늬와 소재를 통해 색다른 역사문화를 탐험한다. 상상속의 동물인 용과 봉황에서부터 호랑이, 거북, 해태, 불가사리, 기린, 말, 사슴, 코끼리 등 짐승, 그리고 두루미, 꿩, 오리, 원앙 등 조류까지. 유물속 동물 그림이 새겨진 까닭과 배경, 역사를 살피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숨어 있는 우리 역사와 문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효리 댄스·마술·요가 배워볼까

    효리 댄스·마술·요가 배워볼까

    “미래의 소비 주체인 어린이들을 잡아라.” 백화점과 할인점들이 오는 7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초등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여름방학 단기특강을 마련,‘어린이 손님’ 유치에 총력을 펼치고 있다. 여름방학 단기특강은 대부분 7월20일 앞뒤로 시작해 8월말에 끝난다. 횟수는 주 1회(총 4회)이고, 수강료는 2만∼4만원이 주류이다. 권영규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 부장은 “어린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여름방학을 알차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특강을 마련했다.”며 “대부분의 백화점들이 어린이들의 두뇌향상과 취미, 건강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의력·취미·건강 등에 초점 이들 업체가 마련한 여름방학 단기특강은 크게 ▲사고력·창의력 향상 강좌 ▲취미 강좌 ▲체험 강좌 ▲건강 강좌 등으로 나눠진다. 사고력·창의력 향상 강좌는 롯데백화점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사고력 향상 로봇 교실’, 신세계백화점 ‘키즈 별자리 & 창의력 캠프’, 갤러리아백화점의 ‘로봇 만들기’·‘과학탐구 보고서’ 등이 대표적이다. 오는 7월25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진행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쫀득쫀득한 흙 등을 이용해 다양한 색감과 세밀한 표정이 살아 있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 창의력을 높여준다. 매주 목요일, 수강료는 3만원. 일산점이 7월19일부터 시작하는 ‘사고력 향상 로봇교실’은 로봇의 개념과 종류, 동작원리 학습으로 창의력·논리성을 길러준다. 매주 일요일,3만원이다. ●로봇교실·별자리캠프등 다양 8월16∼18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마련한 ‘키즈 별자리 & 창의력 캠프’는 경기도 용인 양지 파인 리조트에서 진행된다. 여름밤 첨단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항성·행성·별자리 찾기 등을 통해 창의력을 키워준다. 수강료는 14만원.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이 진행하는 ‘로봇이야기(8월11,18일·재료비 3만원)’는 교재를 보고 로봇 모형을 만들고,‘과학탐구 보고서(8월27일,1회)’는 과학실험을 통해 과학원리를 알아본다. 취미 강좌에는 롯데백화점의 ‘어린이 요리교실’, 애경백화점의 ‘내가 만드는 주얼리’, 그랜드백화점·롯데마트·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해리포터 마술교실’ 등이 있다. 7월19일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개설하는 ‘어린이 요리교실’은 어린이 요리활동을 미술·음악과 접목시킨 프로그램으로 사물인지 능력과 색채감각을 길러준다. 매주 화요일,2만 5000원이다. ●목걸이·팔찌 만들기도 애경백화점이 진행하는 ‘내가 만드는 주얼리(29일∼7월21일·4회)’는 원석을 이용해 목걸이·팔찌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수강료는 3만원. 그랜드백화점이 실시하는 ‘해리포터 마술교실(7월30일∼8월20일·4회)’은 해리포터의 마술 캐릭터를 따라 해보고 마술을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수강료는 2만원. 롯데마트 구로점이 마련한 ‘해리포터 마술교실(7월25일∼8월22일·5회)’은 매주 월요일에 실시되며 수강료는 2만 5000원. 홈플러스 동대문점이 준비한 ‘해리포터 마술교실(7월25일∼8월22일·4회)’은 수강료가 2만원이다. 체험강좌는 롯데백화점의 ‘해병대 전략캠프’와 신세계백화점의 ‘가족과 함께 하는 특별기행 고궁답사’, 현대백화점의 ‘나랏일을 하는 기관들-청와대·국회’ 등이 있다. ●해병대 훈련 체험 기회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영등포점이 마련한 ‘해병대 전략캠프(8월4∼6일)’는 경기도 안산 대부도 훈련장에서 실시되며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길러준다. 참가비 17만원.8월11일 진행되는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의 ‘가족과 함께 하는 특별기행 고궁답사(1만 5000원)’는 창경궁을 통해 조선시대 왕실 생활을 알아본다. 현대백화점이 마련한 ‘나랏일을 하는 기관들-청와대·국회(8월19일·4만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하루를 살펴보고 국회, 헌정기념관 등도 둘러본다. 건강 강좌로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자세교정 키즈요가’(7월28일∼8월18일·4회·3만원),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의 ‘가족요가 강좌’(8월7∼28일·4회·1인 4만원), 그랜드백화점의 ‘재즈 힙합 & 방송 백댄스’(7월16일∼8월20일·6회·3만원), 롯데마트 구로점의 ‘인기가요 댄스교실’(7월30일∼8월20일·4회·2만 5000원), 홈플러스 간석점의 ‘자세교정 어린이 요가’(7월24일∼8월28일·6회·3만원) 등이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인기가수 춤 따라잡기에 꼬마 수강생 초대합니다” 여름방학 단기특강의 화두는 ‘인기 가수의 춤 배우기’이다. 신세계백화점이 ‘애니모션 크럼핑 댄스 따라잡기’강좌, 그랜드백화점이 ‘최신 유행춤’강좌, 애경백화점이 ‘4주완성! 인기스타 댄스 따라하기’강좌를 각각 열고 어린이 손님 모시기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준비한 ‘애니모션 크럼핑 댄스 따라잡기’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삼성전자 애니콜 CF 속의 에릭·이효리의 춤을 완벽하게 배워보는 강좌이다. 어린이들에게 재미를 유도하기 위해 개설된 이 강좌는 CF 속의 에릭과 이효리가 ‘애니모션’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동작을 익힌다.7월24일부터 8월18일까지 매주 목요일에 진행된다.4회, 수강료는 3만원이다. 그랜드백화점 일산점과 수원 영통점, 그랜드마트 인천 계양점에서 준비한 ‘최신 유행춤’은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춤을 노래에 맞춰 안무를 실시하는 강좌. 보아·이효리·채연의 춤을 배우는데, 보아춤은 ‘넘버원’이라는 노래의 안무를 응용한 춤이다. 이효리춤은 ‘애니모션’에서 나온 춤을 따라하며, 채연춤은 ‘둘이서’라는 노래의 안무를 응용한 춤이다.7월19일∼8월23일,6회, 수강료는 3만원이다. 애경백화점이 실시하는 ‘4주 완성! 인기스타 댄스 따라하기’는 인기 댄스그룹 주얼리의 곡을 안무에 따라 연습한다. 리듬 감각과 유연한 몸놀림을 배울 수 있다.7월27일∼8월17일,4회, 수강료는 2만 5000원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한·일관계 ‘溫故知新’

    조선시대 한·일문화교류의 첨병 역할을 한 조선통신사의 활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조선통신사학회가 공식 출범한다. 조선통신사학회 창립준비위(위원장 강대민 경성대 교수)는 국내외 학자 100여명과 일본총영사, 부산시 관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17일 부산시청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16일 밝혔다. 이 학회는 최근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됐다. 이 학회는 그동안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통신사의 복원작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교류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하게 된다. 창립총회에 이어 열리는 학술심포지엄에서는 미국 일리노이대 로널드 토비 교수와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주제발표 및 토론회가 있을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아이들의 꽃동산 여주 해여림 식물원

    아이들의 꽃동산 여주 해여림 식물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동심의 세계를 담은 아늑한 식물원이 문을 열었다. 경기 여주군 산북면 방축골 산자락에 5월 개관한 해여림 식물원. 지난 33년간 아동출판에 힘을 쏟아 온 예림당 나춘호 회장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며 사재를 털어 가꾼 곳이다. 식물원의 연못과 산책로 등은 아이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대부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꾸몄다. 이 곳은 일찍이 세종대왕릉 후보지에도 올랐던 명당. 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 4000여종의 수목, 야생 꽃과 식물들이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다. 관람면적만 5만여평에 이른다. 주말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담아 만든 해여림식물원 산책에 나서도 좋을 듯싶다. 여주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동심을 담은 시원한 초록세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마음이 설렌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인터체인지(IC)에서 나와 98번 국도를 타고 20여분쯤 달리자 시원한 초록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식물원을 감싼 울창한 나무숲에서 뿜어내는 청정 산소가 머리를 맑게 한다.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달렸을 뿐인데 이렇게 공기가 다를까.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매표소를 지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언덕길을 올라가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반긴다. 해여림 식물원은 ‘온종일 해가 머무르는 여주의 아름다운 숲’이란 의미.‘웰빙’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식물원이다. 경기도 여주, 양평, 광주 등 3개 시·군의 경계인 해발 666m의 앵자봉 줄기가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타원형 골자기에 위치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여림은 여느 식물원과 달리 아이들을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산중턱에 자리를 잡아 경사진 곳이 많지만 경사도를 낮추기 위해 길을 지그재그식으로 만들었다.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기에도 충분하다. 또 산책로는 난간이 없고,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꽃을 보며 꽃내음을 맡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먼저 ‘꿈의 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3개의 아름다운 연못이 반긴다. 지혜연, 사랑연, 천연지 등으로 명명된 이곳은 갑갑한 도시의 삶을 가장 먼저 위로해 주는 곳이다. ‘하늘에서 내린 연못’이란 뜻을 담고 있는 천연지는 연못 위로 목재구조의 구름다리를 놓아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탐스럽게 꽃을 피운 70여종의 수련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연못의 습지는 나무데크로 연결해 놓아 생태의 균형을 유지하는 습지의 생생한 모습을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 다리 위에 쪼그려 앉아 연꽃과 청개구리, 소금쟁이 등을 보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천연지 뒤편의 여림정원에서는 초록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골든타임과 그린타임, 단풍제라늄, 류치아로즈마리, 빅토리오 라벤더 등 110여가지의 허브가 탐스럽게 심어져 있는데 걸음을 멈추고 허브 잎을 살짝 흔들자 쉴새없이 코를 자극한다. “노란색 꽃 이름이 뭐예요.” 길가에 핀 꽃이름을 묻는 아이의 질문에 함께 온 부모가 우물쭈물 연신 이마에 땀을 닦는다. 아이가 물어온 꽃은 ‘개느삼’. 강원도 이북 지방에 피는 꽃이라 어른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꽃이다. 담홍색의 ‘금낭화’도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5살짜리 조카와 10개월된 딸을 데리고 온 이은경(35·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만든 식물원이라서 그런지 아이들과 꽃을 보며 산책하기에 최고”라고 말했다. 식물원의 관람로는 10㎞에 이르는데 그냥 둘러보더라도 2∼3시간은 소요된다. 약용·원예·습지식물 1800여종과 희귀종 1300여종, 구근류 800여종 등 모두 4000여종의 식물을 생태 특성이나 주제별로 나눠 심어 아이들의 생태학습에도 좋다. ●우리말로 꾸며진 어린이 꽃동산 식물원은 꿈의 동산을 비롯해 희망·미래·행복·보람동산 등 5개의 테마공원으로 이뤄졌다. 공원과 연못에는 아이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모두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희망의 동산’은 측백나무 아래 미로숲. 수생식물 80여종이 자생하는 수정호와 돌단풍, 잔디 패랭이, 카펫 패랭이 등 100여종의 식물과 암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실내 식물원인 엔젤하우스 뒤로 언덕을 오르면 튤립과 히아신스 등이 화려한 자태를 뽑내고 있는 미래의 동산과 만난다. 이 곳에는 250여종의 무궁화가 태극모양의 정원을 가득 메운 나라꽃 정원이 있다. 나라꽃 정원 아래 비탈길 바위 밑에는 이른바 ‘소원 비는 나무’인 학자나무(회화나무)를 심어 입장객이 다가와 직접 소원을 비는 다소 이색적인 공간이다. 북쪽 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면 건강을 테마로 한 ‘행복의 동산’이 나타난다. 만병초와 지황 등 1000여종의 약용식물을 심어놓은 동의보감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약용식물을 한데 모아 한방의 우수성을 한눈에 확인하도록 가꾸었다. 식물원 가장 위쪽에 있는 ‘보람의 동산’에는 수생식물의 산란과 서식 공간인 습지대가 넓게 자리잡고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 장소를 제공한다. 식물원에서는 봄에는 산수유축제, 여름에는 연꽃축제와 무궁화축전, 가을에 국화축제, 겨울에 눈꽃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나춘호(64)회장은 “식물도감에 나오는 식물원을 직접 만들어 어린이들이 직접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앞으로 청소년교육원과 천체관측소, 민속박물관, 눈썰매장 등을 갖춘 30만평 규모의 종합레저타운으로 확대,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가세요 가는 길은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를 나와 곤지암사거리(오른쪽) 방향으로 달리면 98번 국도와 마주친다.98번 국도를 타고 산북면 삼거리 방면으로 20분쯤 달리면 오른쪽에 해여림 식물원 표지판이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 강변역(1113-1), 잠실역(500-1), 양재역(500-2)에서 각각 좌석버스가 곤지암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한다. 터미널에서 양평방면 시내·직행버스로 갈아타면 해여림 식물원이 있는 상품리에 도착한다. 식물원은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4시까지만 문을 연다. 입장료는 어른의 경우 8000원(주말 9000원), 어린이는 3000원(주말 4000원)이며,30명이상 단체 관람시에는 할인이 적용된다. 단체 관람은 5일전 사전예약이 필수며 가이드가 동행한다. 자세한 문의는 (031)882-1700,www.yearimland.com 여주에 오시면 보너스로 여주는 쌀과 도자기의 고향. 남한강 주변의 비옥한 흙에서 나온 쌀과 도자기는 임금님 진상품으로 유명하다. 신륵사와 세종대왕릉, 목아박물관, 명성황후 생가 등이 위치해 있으며, 오는 19일까지 신륵사 인근 세계생활도자관에서는 여주도자기 박람회(031-884-8715)가 열린다. 남한강변에 자리잡은 신륵사(885-6916)는 대표적인 관광지.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사당과 다층석탑, 다층전탑, 보제존자석종 등 보물 7점을 소장한 유서깊은 절이다. 남한강에는 황포돛배가 떠 있는데 조포나루에 가면 배를 직접 탈 수 있다. 세종대왕릉(885-3123)인 영릉(英陵) 은 사적 195호로 면적만 60만평에 이르는 등 국내 수많은 왕릉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 자격루와 측우기 등 세종대왕시절에 발명한 작품들의 모형도 전시돼 있다. 세종릉 뒷산에는 조선 17대 효종임금의 무덤인 영릉(寧陵)이 있다. 신륵사 인근 목아박물관은 국내 최대규모의 불교박물관. 무형문화재 108호인 목아 박찬수선생이 수집한 7000여 점의 불교관련 자료가 보관돼 있다. 녹색농촌 체험관이 있는 강천면 가야1리의 오감마을은 도토리묵, 칼국수, 디딜방아 찧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곳곳에 유명한 매운탕집과 막국수 집이 즐비하다. 천서리막국수(883-9799).
  • 이영훈교수 “박정희시대 뒤집어 보면 분배 잘돼”

    이영훈교수 “박정희시대 뒤집어 보면 분배 잘돼”

    최근 학계의 논쟁 가운데 선 인물이 있다. 바로 서울대 이영훈 교수다. 우리의 근대 경제성장이 식민지 때 시작됐다는 주장에 이어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에서 저임금 등의 꼬리표를 떼내자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런 주장도 주장이지만 그의 특별함은 여기에 실증적 통계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비판에 홀로 맞서고 있는 이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악역을 자처한 까닭은. -나는 실증주의자다. 온갖 오해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자신과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 주장은 식민지·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이 사실과 다르며,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자는 것이다. ●70년대 생산성 향상과 임금증가율 비슷 ▶박정희시대 논란은 어떤가. -흔히 저임금과 농어촌·중소기업 배제를 거론한다. 그러나 이는 60년대 데이터를 봤을 때나 맞는 말이다.6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 지난 40여년간 고착화됐다. 상황 변화는 70년대의 고미가 정책과 대기업-중소기업간 산업연계정책인데, 고도성장은 이런 정책으로 가능했다. 저임금 부분도 노동을 한 단위 더 투입하는데 따른 생산성 향상과 임금 증가율이 비슷하게 갔다는 게 중요하다. ▶전태일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전태일로 70년대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70년대의 임금이 생계비의 절반이었다는데 이는 단정하기 어렵다. 정말 그랬다면 빈곤의 세습과 광범위한 슬럼화가 누적되는 이른바 ‘사회적 침전’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뒤집어 보면 분배가 잘됐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통계로 평가할 수 있나.. -통계로 모든 역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법이어서 수많은 신화와 도덕적 허구를 깰 수는 있다. 그게 통계의 힘이다.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통계 수치만 보고 한·일 민족간 차별은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그 지적을 높이 평가한다. 허 교수 자료는 식민시기 생활수준이 최소한 수평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는 수탈론 부정이다. 식민시기 경제성장을 30년대 후반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원리주의는 중세적 사고 ▶경제사 연구에 ‘민족’을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허 교수와 다른 관점인 것 같은데…. -우리는 민족근본주의에 빠져 있다. 모든 기준이 민족이다. 그러나 근본주의, 원리주의는 중세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박정희 시대를 민주와 인권으로 평가하면 어떤가. -그것도 다시 봐야 한다.10·26 뒤 사면복권된 사람이 800명도 안된다.4000만 인구 중 일부다. 보통사람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했다. 암울했다기보다 외려 자기실현 과정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안 그렇다면 당시 10%대의 고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800여명을 비용으로 중화학·자동차공업, 철강산업을 일으킨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 도덕적 관점은 무의미하다는 뜻인가. -도덕적 잣대로 국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비판자들이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나라 만들기’는 장기적 과정이다. 미국 흑인들은 1950년대에야 공민권을 얻었고 조선도 반석에 오르는 데 70년이 걸렸다. 각 시대는 각각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두번째는 헌법이념과 대의민주주의를 이해하고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나설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국민이 있느냐다. 조선시대 소농 중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근과거 집권세력은 상대적으로 청렴 ▶과거사 문제와 관련, 클린턴처럼 먼저 사과할 수는 없을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했다. 그리고 부패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 집권세력은 상대적으로 청렴했다고 본다. ▶결국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보는 관점인 것 같은데. -어떤 사물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성숙한 자세다.20세기 우리 역사도 그렇다. 식민지에, 분단에, 전쟁에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 많았나. 비판할 일이 있으면 해야겠지만 기본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이영훈교수가 주장하는 수량경제사란 이영훈 교수의 접근법은 수량경제사적 관점으로, 이는 서구에서 20세기 초부터 지속되어온 방법이다. 물가, 이윤, 임금 등 장기적인 경제지표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자는 입장이 그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서구의 경우 90년대 들어 거의 폐기됐다는 반론도 있다. 통계로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각종 거시경제지표가 건전하다고 발표하지만 서민들은 와닿지 않는다고 아우성이고, 언론은 정부가 실체를 제대로 모른다고 비판하기 일쑤인 점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60년대 이후 일본에서 활발히 다뤄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중반 안병직 교수가 주도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수량경제사가 한국의 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린 것은 90년대 중반.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신력있는 자료와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서구 제국과 달리 근대적 의미의 통계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였으니 그 이전 자료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에 따라 낙성대팀은 양반가와 촌락의 각종 고문서에서 의미있는 통계치들을 추출해 냈다. 지금의 ‘가계부’ 개념과 비슷한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 출간되자마자 논란을 불러일으킨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등의 연구물도 이들 고문서에서 추출한 자료를 기초로 했다. 즉, 경북 예천의 박씨가 문헌, 전남 영암의 문씨가 계(契)문서 등을 통해 농촌경제를 분석하고, 족보를 분석해 인구사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물론 비판도 많다. 일본 학계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또 다른 식민주의 폐해라거나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만큼 해석 역시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반론 등이 그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호국보훈의 달’ 뜻깊은 나들이

    ‘호국보훈의 달’ 뜻깊은 나들이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강북구 우이동·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묘역 등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들과 함께 이들 명소를 산책하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건강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함께 가면 큰 교육 효과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 4·19묘지는 1960년 4월19일 자유당 부패정권과 3·15 부정선거를 맞서 민주화 꽃을 피운 애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난 63년 9월 건립된 묘지에는 당시 사망한 274명의 영령이 모셔져 있으며 정부의 성역화 사업으로 93년 10월 1만 3000평을 4만 1000평으로 넓혔다. ●4·19묘지 ‘2개 코스’ 각각 90분 걸려 4·19묘지를 중심으로 두 가지 코스를 만들어볼 수 있다. 모두 1시간30분 안팎으로 산책할 수 있다. 4·19묘지에서 백련사를 올라가는 길에 현제명(조선음악가협회 창설)→신숙(천도교 상하이에 전파·한국독립군 참모장)→김도연(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서상일(대동청년단 조직)→김창숙(매국 5적 상소로 옥고,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양일동(상하이 임시정부 가담으로 옥고) 선생의 묘지가 있다. 또는 4·19묘지에서 이준 열사(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고종밀사로 참석했으나 일본 반대로 자결)→신익희(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김병로(항일 변호사단체 창설·독립투사 무료 변론)→광복군 합동묘역→이시영(만주 신흥무관학교 창설·임시정부 법무총장·초대 부통령)→유림(한·중 항일군 조직·부흥회 조직) 선생의 묘역을 돌 수도 있다. ●3·1운동 지도자 길러낸 봉황각 우이동 유원지에서 도선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봉황각(鳳凰閣)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1912년 천도교 교역자들에게 종교적 수련을 통해 일제시대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지도자를 훈련시키던 장소다. 이 곳에서 양성된 교역자들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1919년 3·1운동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0m 떨어진 곳에는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건물 평면이 ‘궁을’(弓乙)자형으로 천도교의 핵심사상인 우주만물의 순환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궁을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한식 목조건물로 건축사적인 의미도 뛰어나 서울시 유형문화재 2호로 지정됐다. 도선사는 신라경문왕 때(862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시대 말기인 1904년 국가기원본찰로 지정됐다. 도선사 마애석불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34호로 지정됐다. 석불 앞 대리석 바닥은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김석진 선생 순국한 창녕위궁재사 번동 드림랜드 입구에 있는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齊舍)는 조선시대 제23대 순조의 둘째딸인 복온공주와 부마 김병주 선생의 재사(齊舍)다. 인조 때 영의정까지 지낸 신경진의 별장이었으며 복온공주의 후손인 김석진 선생이 한일합병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순국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맹물 화가’ 석철주 4년만에 개인전

    ‘맹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진 석철주 화백이 4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꿈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인사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오는 15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그가 청전 이상범으로부터 한국화를 배운 지 올해가 꼭 40년째가 되는 해이다. 그런 그에게는 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변용을 모색을 해 온 작가라는 평이 따른다. 그는 70년대 전통적인 산수화,90년대 질박한 장독을 표현한 ‘옹기’시리즈를,95년부터 조각보와 골무 등을 그린 ‘규방’시리즈를,97년부터는 맹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화법은 바로 맹물 그림. “캔버스에 밑칠을 6∼7번 한 뒤 원하는 기본색을 칠합니다. 노란색 형태를 원하면 노란색을 2번 칠한 뒤 그것이 마른 다음 다시 검은색을 칠하지요. 그런 뒤 마르기 전에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맹물로 그립니다. 그위에 넓은 붓으로 지워 나가면 맹물로 그려진 것이 없어지면서 그 밑의 노란색이 스며 나옵니다.” 그는 이처럼 한국화의 ‘스밈과 번짐’효과를 서양화 재료로 표현, 한국 전통의 미감을 현대적 시각으로 담아내는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시장 1층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마음속 풍경으로 재창조한 ‘신몽유도원도’시리즈로 꾸며졌다.20대 시절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을 누비고 다니며 마음속에 그린 산들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구름처럼 몽환적이고 아득한 산세는 서양화와 한국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2층에는 식물의 이미지를 실루엣으로 표현한 ‘신장개업’‘흔들림’‘비 갠 오후’ 등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달항아리의 모양을 그대로 따 그 안에 특유의 아득한 산수를 펼쳐 놓은 ‘달항아리’는 마치 청화백자 모습을 보는 듯 담백한 기품이 느껴진다.(02)739-4937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사설] 이정우 위원장 항변 설득력 없다

    행담도 의혹사건으로 청와대 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이 도마에 오르자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쏟아지는 비난이 상궤를 벗어난 광풍(狂風)에 가깝다면서 위원회야말로 나라의 희망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자신들을 조선시대 훈구파에 맞선 사림파에 비유하는가 하면,‘아마추어 정부론’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일수록 구태와 시류에 덜 물들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논리로 옹호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나무라는 지금의 분위기는 뭔가 잘못됐다.”는 이 위원장의 말처럼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하는 당사자들로서는 최근의 비난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직언할 수 있어야 위원회 활성화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해찬 국무총리는 ‘분수를 안 지키고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합리성이 없는 일을 했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여권 내부에서조차 청와대가 일을 배우는 자리가 돼선 안된다며 청와대 인적 쇄신 필요성을 제기한다면 항변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개선책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이 위원장은 위원회의 대표적인 성과로 ‘10·29 부동산대책’, 지역혁신과 균형발전 등을 꼽았다. 하지만 투기 억제 및 지역개발 정책은 전국을 투기장화하는 등 의도와는 정반대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땅부자, 집부자들의 배만 불림으로써 다음 정권에까지 엄청난 부담을 주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고도 위원회가 효능이 비용을 압도하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식민지배 잘못’엔 공감 강제병합 여부엔 이견

    ‘식민지배 잘못’엔 공감 강제병합 여부엔 이견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성과는 양측의 뻔한 기존 주장 재확인에 그쳤다. 위원회 탄생 자체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양국간 정치적 흥정의 결과물이었고,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시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임나일본부설 고대사를 다룬 1분과의 주요 쟁점은 왜군이 한반도 남부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이었다. 한국측은 4∼6세기 왜군은 백제나 가야의 원군 수준에 그쳤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측은 왜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활동을 했고 동시에 이 지역에 대한 지배의사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양측 모두 치열한 사료전쟁을 벌였지만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일본서기’에 기초한 임나일본부설은 부인됐다고 공동위원회는 밝혔다. 그러나 연구기간이 짧아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못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조선시대 한·일외교와 임진왜란 중·근세사를 다룬 2분과의 쟁점은 임진왜란을 포함한 조선시대 한·일 관계였다. 한국측은 조선전기에는 왜구에 대한 징벌이 있었고 후기에는 ‘통신사’를 통해 어느 정도 물꼬를 터주었다고 주장했다.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양국간 인식 차이가 있는 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경계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측은 조선전기에 이미 동아시아 교역권이 존재했고 후기에는 ‘통신사’가 있었는데 일본은 이를 조공사절로 이해했다고 반론을 폈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대한 정벌욕구와 조선에 불리하게 돌아간 정보의 실태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 ●식민시기 전후사 한국과 일본 연구자 모두 식민지배가 잘못됐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다. 한국측은 자주국 조선이 강제적으로 일본에 병합당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일본측은 조선은 청나라의 조공국에 불과했고 청일전쟁의 승리로 동아시아에 근대적 질서가 도입됐다고 주장했다. 또 병합 과정의 각종 조약 역시 합법적인 데다 국제적으로 승인도 받았다고 밝혔다. 연장선상에서 일본측은 식민지배에 따라 조선에 근대적인 측면들이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측은 근대적 측면이 일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탈이 뼈대를 이룬다고 반격했다. 따라서 한국측은 독립운동을 강조하지만 일본측은 한국의 저항은 미미했다고 봤다. ●65년 국교정상화와 북·일 관계 현대사 분야의 쟁점은 국교정상화와 북·일관계였다. 국교정상화에 대해 일본은 배상·보상 문제가 마무리됐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반면 한국측은 위안부 문제 등이 빠진 채 논의됐기 때문에 배상·보상의 책임은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북·일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측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했고 한국측은 일본의 우경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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