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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동강 개발 청사진 ‘자연+역사’

    낙동강 개발 계획인 ‘낙동강 프로젝트’의 본격 가동을 위한 경북도내 각 시·군들의 프로그램 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경북 상주시는 26일 조선시대 낙동나루와 퇴강나루 등 9곳의 나루터와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남아 있는 낙동강 유역인 낙동면 낙동리 일대 7만여평을 낙동강 역사문화 생태체험 특구로 개발키로 했다. 2007년부터 연차적으로 총 45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이 일대 1만 3000여평에 ‘낙동강 역사문화생태종합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이곳에는 낙동강 자생어종을 볼 수 있는 수족관과 낙동강 역사관, 낙동강 생태교육센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또 2700여평에 들어설 ‘생태체험단지’에는 생태습지체험원과 낙동강 워터파크를 조성하고,2곳의 나루터 체험시설 등을 마련키로 했다.5만 4000여평 규모의 ‘전통레저스포츠타운’을 만들어 청소년수련원과 나룻배 민속타운, 테마음식 체험마을, 나룻배 민속체험마당 등도 조성할 계획이다. 칠곡군도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당해 ‘호국의 다리’로 불리는 낙동강 왜관 인도교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의 개발 계획을 마련 중이다. 여기에는 낙동강변 호국경관 조성을 비롯해 호국의 다리, 낙동강 분수 시설, 평화교육장 건립과 나루터 및 뱃길(왜관 제2교∼호국의 다리∼구미) 복원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시·군에서는 “역사문화가 살아 숨쉬고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영남문화의 모태인 낙동강변을 환경친화적으로 개발할 경우 관광 시너지 효과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낙동강 프로젝트는 경북도가 민선 4기를 맞이해 추진하는 7대 전략사업의 핵심으로, 낙동강변을 3대권역(북·중·남부)으로 나눠 개발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권역별로는 ▲북부(안동·봉화)는 원시 자연의 체험과 생태 탐방 ▲중부(상주·예천) 문화 체험 ▲남부(김천·고령) 현대 역사 및 하천 복원, 습지 체험 등이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세 종’ 행정도시 명칭 확정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들어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이 세종(世宗·Sejong)으로 확정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21일 열린 행정도시건설추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행정도시명칭제정위원회가 제시한 금강, 세종, 한울 등 3개 명칭 중 세종을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세종은 조선시대 명군 세종대왕을 기리는 동시에 한자를 풀이하면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워싱턴·뉴욕·벤쿠버 등과 같이 인물이 도시명칭에 사용되는 첫 도시가 탄생하게 됐다. 건설청 관계자는 “국민선호도 및 명칭에 대한 지리·지명·국어 등 전문가들의 평가를 참고해 명칭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세종’은 내년 입법예정인 ‘행정도시의 명칭·지위 및 행정구역 등에 관한 법률’에서 공식명이자 국내외 홍보 및 공식문서 등에 활용하게 된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홍어의 고향’ 영산포아리랑

    ‘홍어의 고향’ 영산포아리랑

    뱃길마저 끊긴 저문 강은 또 얼마나 쓸쓸한가. 여린 물의 속살을 날선 갯바람이 할퀴는 겨울, 무량했던 옛날의 풍요는 간 곳 없고 오로지 쇠락의 적막에 몸을 떠는 강. 그래서 사는 일 숨가쁜 사람들이 찾아와 남몰래 마음을 풀어놓는 묵시의 강. 사람들은 그 강을 영산강이라고 추억했고, 근대를 지나면서 그 강에 기대어 살집을 늘려온 나주의 정체를 보고는 ‘전라도 다운 것의 상실’이라며 아쉬워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전라도’라는 권역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릿글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때 지금의 도청 격인 나주목이 설치돼 있었던 그 나주와 영산강은 따로 떼어 말하기 어렵다. 곡창의 기능을 말하지 않더라도 나주가 나주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영산강에 기대어 터를 잡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주를 속속들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 침묵의 강 홍어가 깨우다 영산강 하구언이 건설되면서 강의 물줄기를 막아 동양 최대의 담수호인 영산호를 만들면서 그 옛날 조운선이 드나들었던 ‘전라도의 대표 포구’ 영산포는 지금 거룻배조차 사라진 침묵의 강으로 변했고, 남도의 물산이 모여 흥청거리던 물길은 강바닥을 드러낸 채 ‘개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 병증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영산강에 젖줄을 대고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옘병할 하구언 땜시 못살겄다.”며 영산강 뱃길 복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까. 지금 나주와 영산강의 옛 영화를 간직한 것은 오로지 ‘홍어’뿐이다. 이제는 전국구 음식이 되어버린 홍어. 나주와 영산강을 거치지 않고는 그 홍어 식도락의 대표격인 홍탁삼합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바다 대신 강과 짝을 이룬 ‘영산포 홍어문화’를 의아해 한다. 거기에는 내력이 있다.1363년(고려 공민왕 12년) 당시 조정은 왜구가 극성을 부리자 흑산도에 사는 어민들을 영산강 하류의 남포, 즉 지금의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을 폈는데, 그 이주민들이 홍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영산포 홍어’의 전통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신현만 나주시청 관광기획팀장은 “당시 공도정책으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살았던 섬이 흑산도 인근 영산도여서 그들의 집단 거주지를 영산포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의해 홍어문화가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후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뱃길로 호남 물산의 집산지인 나주 영산포에 닿는 5∼6일 동안 자연스레 숙성돼 지금처럼 ‘썩혀 먹는’ 홍어문화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 영산포구에 홍어음식점 30~40개 그 홍어가 나주의 오랜 잠을 깨우고 있다. 나주시 영산동 옛 영산포 포구에 조성된 ‘홍어의 거리’에는 줄잡아 30∼40개 홍어 음식점이 늘어서 나주와 영산포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초행길의 나그네라도 이 거리에 들어서면 영산포와 홍어문화의 상관성을 알아채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옛적의 번화와 번성의 기억이 고스란히 홍어문화에 배어나는 곳이다. 영산포 홍어문화를 일군 양치권(영산강홍어 대표) 전 선창번영회장은 “홍어가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으면서 하구언으로 물길이 막혀 쇠락의 길을 걸었던 나주와 영산포 홍어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다.”며 “지금이야 목포나 흑산도는 물론 전국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지만 만약 원조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 영산포와 ‘영산포 홍어’는 항상 기억되고 또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장한 영산강의 물길 위로 미칠 듯 붉은 노을이 사위고 있었다.‘가장 전라도답다.’는 강, 그 강에 검붉은 노을이 비끼고, 끝없이 피어나는 물안개 속으로 임방울의 절창 ‘함평천지’가 나즈막히 깔리고 있었다. # 여행정보 시가지 곳곳에서 커다란 걸개그림으로 만나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과 소서노 캐릭터가 이곳이 인기 사극 ‘주몽’의 촬영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나주배는 여전하며, 목사고을답게 나주목 객사였던 금성관, 목사내아와 정수루, 벽류정, 나주읍성의 동점문과 남고문이 남아 옛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광주와 화순, 영암, 함평, 무안과 인접한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로 해마다 천연염색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영산강 물길을 따라 국내 유일의 강 등대인 영산포 등대와 삼한지 테마파크, 나주호관광단지 등이 있다. 골드레이크CC와 나주CC가 있어 여가문화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항공편은 광주공항을 이용하면 되며,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나주역까지 2시간55분이 소요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하행선 무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곧장 왼쪽으로 꺾은 뒤 국도를 따라 20여㎞를 가면 나주시가지와 영산포에 다다르게 된다.
  • 드라마속 기생 한복 만드는 디자이너 김혜숙

    드라마속 기생 한복 만드는 디자이너 김혜숙

    “조선시대의 패션 리더가 바로 ‘기생’이에요.” 방송 드라마 ‘황진이’가 몰고 온 새로운 문화코드가 바로 기생이다. 술과 춤을 떠올리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던 기생이 춤에 대한 열정과 순고한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화배우 하지원의 흡인력 있는 연기, 현란한 춤과 배우들의 표정을 담아내는 감각적인 영상, 탄탄하고 밀도 있는 이야기 전개 등이 맞물려 황진이가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드라마 황진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한복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우리 천의 색상, 날아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고리의 고운 선, 연꽃을 연상케 하는 치마의 화려함, 가슴에서 분리된 치마와 저고리에서 주는 섹시함과 도도함, 가녀린 상체에 풍만한 가슴을 단단히 죈 천…. 아름다움에 금세 취하고 만다. 매회 장면마다 바뀌는 황진이의 곱고 아름다운 한복. 누구나 한번쯤은 ‘저거 누가 만들었을까.’ 생각이 든다. ●전생이 기생이었던 디자이너 그 아름다운 황진이의 옷을 만든 이는 한복 디자이너 김혜숙(50)씨. 그녀는 “원래 저는 기생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너무 예쁘잖아요.”라며 “그녀들은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패션 리더들이었어요. 하루 종일 방에 앉아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어떻게 하면 좀 예뻐 보일까, 이렇게 옷을 올리면 더 섹시할까.’ 고민하며 화장을 바꾸고 옷도 고쳐 입지 않았을까요.”라고 웃는다. 아마 자신도 전생에 기생이 아니었나 싶다고 한다. 지금까지 드라마 속의 한복을 무려 500벌이나 만들었단다. 앞으로 100벌을 더 만들어 줄 예정이다.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 제작진은 200벌 정도를 원했지만 기생에 빠져 있는 김씨가 거의 밤을 새며 만들다 보니 어느 새 500벌이 넘었다. “저는 요즘 작두를 타는 신들린 기분이에요. 그냥 밤을 새우며 만들고 그 한복이 화면에 나올 때마다 힘이 불끈 솟아요.” 그녀는 정말 황진이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보다. ●밤 새우며 만든 기녀복만 500여벌 한복을 몇백 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도대체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 시나리오를 봐야 느낌을 살린 옷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드라마 제작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몇 시간 전에 대본이 나오는 것은 예사다. 김씨는 ‘아마 다음에는 이런 장면이 나올 거야. 그럼 이런 느낌으로 옷을 만들어야지.’하고 옷을 밤새 만들어 보내면 드라마 진행에 딱 맞는 한복이 된단다. “저고리와 치마도 예쁘지만 우리네 여인들의 속옷이 얼마나 화려하고 멋진지 아세요.”라고 반문한다. 아니, 할머니의 ‘몸뻬’바지만 보았던 기자에게는 충격이다. “옛날 기방에서 기생들이 춤을 추며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면 돈을 던져주는 퇴폐적인 문화가 성행했어요. 그래서 기생들의 속옷은 화려할 수밖에 없고 몇 개씩 겹쳐 입었어요.”라고 설명한다. 다리속곳, 속속곳, 속곳, 단속곳 등 거의 5개 이상을 입었다. 그래야 치마의 풍성함이 살아나 뒷모습이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곧 드라마에서 이런 속옷들을 볼 수 있을 거란다. ●3년간 전국 돌며 저고리 자료 모아 그는 지난해 ‘아름답고도 슬픈 이름 기생’이란 기녀복 전시회를 가질 정도로 기생에 관심이 많다.“기녀복에 대한 자료가 전무한 상태예요. 자료가 있다면 그저 김홍도, 신윤복의 민화에 나오는 정도가 다예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자료에 목이 말랐겠어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저고리의 변천사를 모은 ‘우리의 아름다운 저고리’란 책을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그녀는 정말 ‘우리 옷’과 ‘기생’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옷에 자신의 마음을 덧입혀야 진정 자신의 옷이 됩니다. 황진이가 되어야 황진이 옷이 빛이 난다.”고 하지원에게 얘기했다는 그녀는 기생을 사랑하는 흔치 않은 한복 디자이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학술플러스] 한중일 청소년 역사체험 발표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2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 청소년들의 역사이해를 돕기 위한 ‘한·중·일 청소년 역사체험 발표대회’를 연다.청소년들의 상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동북아 평화실현에 기여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행사다. 1부(한·중·일 청소년 공동 역사인식 비전포럼)에는 서울의 양재고와 중앙고, 대구 학남고(한국), 상하이 중학교(중국), 지바여고(일본)가 참여한다. 2부는 ‘동북아 역사갈등 문제해결, 우리 힘으로’라는 주제로 전국의 초·중·고교 학생들이 발표대회를 갖는다.예선을 거쳐 초·중등학교 6팀, 고교 8팀이 발표자로 선정됐다.주제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동북아 3개국간 역사갈등 해소를 위한 신선한 방안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실제 구미 경북외고의 강해령양 등은 ‘동북아 역사갈등과 평화실현 방안’을 발표하고, 부산 장평중 박승진군 등은 조선시대 한·일교류의 대명사였던 조선통신사의 활동 상황 등을 동영상으로 발표한다.
  • “난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소셜 디자이너”

    “난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소셜 디자이너”

    ‘시민운동의 대부’(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나눔과 공익의 전도사’(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3월27일 민간 싱크탱크를 자임하며 만든 ‘희망제작소’는 박 변호사가 시민과 맺은 세번째 사랑이다. 시민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와 열정을 발굴해 정책과 공공의 이익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벌인 일이다.‘정책’과 ‘비전’을 중시해온 평소 지론의 연장이다. 그는 한 사석에서 “진보진영은 콘텐츠의 위기를 맞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콘텐츠가 이미 다 수용돼 좋은 사회를 만들었는가. 언제까지 명분만 외치며 불우이웃돕기 차원의 캠페인만 벌일 것인가.”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애정을 가져온 진보진영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음을 역설한 말이다. 정치권도 다를 바 없다. 정책이 아닌 정쟁 중심의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정당도 정책보다는 감정 중심의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의 열린정책연구원과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등 정당 부설연구소에 1년에 수십억원이 지원되고 있지만 민생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어느 정도 쓰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쓴소리가 덧붙여졌다. ‘준비된 콘텐츠’를 강조하는 그에게 정치권은 고비마다 짝사랑을 던졌다.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앞다퉈 ‘박원순 대안론’을 흘리고 있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도 ‘경쟁력있는 참신한 외부선장’이라는 수식어를 보태고 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단호하다. 아예 ‘1시간 단위의 살인적인’ 일정표를 보여주며 “여기 정치권 관계자와 만나는 일정이 한 군데라도 있냐.”며 수첩을 꺼내 펼쳐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그는 “내가 하는 일이 이미 정치 아니냐.”며 완곡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 절대 안한다.”(참여연대 물러날 당시)▶정치하겠다고 하면 말려달라(출입기자간담회)▶대선후보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해보겠다(신진보연대 인터뷰)등 출마입장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며 기대를 걸었던(?) 기자에게 예상 답변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런 일에 열중해왔는데 모든 걸 다 바쳐 해보려고 했던 일”이라면서 “내가 만약 정치할 생각 있었다면 희망제작소 차리고 일을 이렇게까지 벌여 놨겠냐.”고 거듭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고민은 같다. 조선시대에도 관리가 있으면 초야에 있으면서 상소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사람이 사는 데는 여러 길이 있게 마련인데 사회적 명성만 있으면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보수진영의 한 교수가 “최근 박 변호사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탈색’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권 진출의사가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정치라는 게 분명한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하는 건데 하려고 든다면 굳이 탈색해야 할 필요가 있나.”라고까지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만났던 희망제작소 관계자는 끊임없는 박원순 영입설에 대해 “박원순 후보론은 거론 자체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제성호 교수가 ‘박원순 후보론’을 거론한 뒤 본격화됐다는 것인데 “신종 운동권 세력들이 진보진영의 후보감이라고 생각해서 초장부터 흔들어놓기 위해 제기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치권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정책과 콘텐츠 부재가 그의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대목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새출발 이전에 치열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뒤늦은 얘기지만 그는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옮기기 전의 일화를 들려줬다. 이회창 전 총재에게 “당사를 팔고 천막당사로 옮기더라도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더니 이 전 총재가 “팔려고 그래도 건물이 비싸서 살 사람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고생할 생각이 있었다면 전세를 놓더라도 나갈 수 있었다.”며 제대로 반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통합신당과 당 사수를 놓고 격론중인 여당도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자성하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그는 충고했다. 박 변호사와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책상 위에는 희망제작소가 진행중인 지역사회 공무원 교육을 위한 교재로 가득차 있었다. 정치 얘기할 때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보이던 그가 희망제작소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는 외국자료며 교재까지 찾아가며 너무나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하긴 그의 꿈은 ‘과로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국민 모두가 정책입안자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모르겠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개혁을 만드는 길이라면 창의적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며 4번째,5번째 ‘세상과의’ 사랑을 놓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지금 강릉에선] 첨단기업 속속 유치… 과학산업단지 가속

    [지금 강릉에선] 첨단기업 속속 유치… 과학산업단지 가속

    강원도 강릉시가 ‘제일(第一) 강릉’의 명예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과학산업단지에 기업들의 입주가 속속 가시화되고 침체의 길을 걷는 경포대를 살리는 계획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관광휴양 자원과 해양도시의 이점을 십분 살린 첨단 산업단지의 본격 가동이 강릉의 옛 명성을 되찾게 해 줄 핵심 인프라이다. 특히 대전동·사천면 일대 51만 3000여평에 조성중인 과학산업단지에 첨단기업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활기가 넘친다. 1991년 시작된 후 지지부진하던 사업이 내년 말까지 부지조성을 모두 끝내고 본격 가동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세라믹 신소재와 해양생물분야 업체 5곳은 이미 입주를 끝냈고 25개 업체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입주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과학산업단지 입주 속속 과학산업단지내 입주 업체는 수도권과의 거리 때문에 물류비용에 구애받지 않는 부가가치가 큰 첨단업종 위주로 정해 놓고 있다. 신소재, 해양생물 외에 약초와 감식초 등을 소재로 한 천연물생산업체와 영상산업을 주축으로 한 정보문화산업 관련 업체가 주요 유치대상이다. 입주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도 다양하다. 기업이전자금 전액과 컨설팅 비용 지원은 기본이고 이전 기업체 직원들의 자녀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조례가 제정돼 있다. 주택구입 임대비용도 직원 10명에 한 해 50%까지 시예산에서 지원토록 했다. 입주업체 지원을 위해 행정기구도 현재의 기업유치계를 기업육성과로 승격시켜 기업관련 업무를 원스톱 처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관련 조례가 이번 회기 중 시의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해양심층수 활용에 기대 최근에는 한국수자원공사와 해양 심층수를 개발하고 관련 연구소도 건립한다는 데 합의했다. 올 연말까지 해양심층수 개발 타당성 조사를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다. 해양심층수 타당성 조사에서 취수 거리와 해저 지질, 지형, 배후 부지 등을 검토해 경제성이 드러나면 300여억원을 투자해 하루 5000t 규모의 해양심층수를 생산할 계획이다. 연구소도 건립해 심층수를 음료·수산·관광 등 각 분야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한다. 수산분야의 증·양식사업은 물론 음료, 해수탕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심층수는 강릉지역이 휴양·웰빙의 본고장으로 자리잡는 데 한몫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과학산업단지가 들어오면 지역에서만 최소한 5000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해마다 줄어드는 인구도 첨단기업유치로 다시 증가세로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부활하는 경포대 ‘오고 싶고, 걷고 싶은 경포’를 테마로 낙후됐던 경포지역이 새해부터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새로 단장된다. 도립공원으로 묶여 개발행위가 엄격히 제한됐던 경포대 일대를 문화와 관광이 살아 숨쉬는 명소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도립공원 규제완화 움직임이 활발하게 추진되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당장 새해부터 해변에 난립한 건물 57개동이 철거돼 해안선이 깔끔하게 정비된다. 예산에 철거비 30억원도 책정해 놓았다. 지저분한 진안·호수·해변 상가의 간판을 정비하고 해변도로는 차 없는 관광도로로 바꾼다. 경포호수∼주문진을 잇는 도로도 국비 등 5억 2000만원을 들여 해안생태 자전거전용 도로로 꾸민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해변에는 아예 차량 접근을 막아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대신 경포호수 주변과 상가 등 외곽지대에 대규모 주차공간을 새로 조성한다. 선교장·해운정·경포대·금란정·호해정·방해정·허균생가 등 경포호수를 둘러싸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누각(樓閣)과 문화재를 연계한 문화재 탐방 순환로도 새로 개설한다. 옛 문인들의 향취가 묻어나는 정자와 누각을 살려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문화 탐방 순환로 곳곳에는 그늘집과 벤치, 체험공간을 설치하고 문화해설사와 문화 자원봉사자를 배치해 관광객들에게 강릉의 역사를 들려준다. 특히 둘레가 4.3㎞에 이르는 경포호수 주변을 사람 중심의 휴식지로 만든다. 야생화를 심어 야생화공원으로 꾸미고 호수 안에는 부들과 갈대, 연꽃 등을 심어 수생식물 관찰포를 조성할 계획이다. 호수내 홍장암 인근과 자동차극장, 교산교 입구에는 호수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20∼30m의 철새 탐방대와 망원경 등을 설치하고 2700평 규모의 호수내 습지도 조성해 생태학습장으로 만든다. ●규제와 백사장 유실이 걸림돌 걸림돌도 적지 않다. 도립공원지역에 대한 건축물 규제 완화와 맞물려 대대적인 정비사업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정부에서 경포지역만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또 최근 몇 년간 주기적으로 너울성 파도로 해변 백사장이 크게 파여 나가고 있어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강문·안목·남항진·영진 등 횟집들이 몰려 있는 지역마다 백사장이 사라지고 도로가 침하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릉시 김남대 기획계장은 “수도권과의 거리와 각종 규제 등으로 체계적인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강릉이 간직하고 있는 자원을 살려 기업을 유치하고 문화 인프라를 잘 연계해 관광객을 끌어들여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최명희 강릉시장 “첨단·문화가 어우러진 고품격 웰빙도시 건설” “첨단산업과 문화재가 어우러진 품격 높은 휴양·웰빙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최명희(52) 강릉시장은 풍부한 자원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생기를 잃어가던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과학산업단지가 새해에 완공돼 첨단업체들이 가동되기 시작하고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잘 살리면 ‘제일 강릉’의 옛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발 더 나가 ‘환동해 중심도시’로의 업그레이드도 꿈꾸고 있다. 취임한 지 5개월 남짓됐지만 그동안의 방만하게 운영되던 시행정을 추스르고 일일이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산업단지 입주를 타진 하는 등 하루가 짧다. 특히 과학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업유치와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일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것만이 침체된 도시를 살리는 길이라는 소신에서다. 최 시장은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친환경 첨단기업 위주의 기업체를 많이 유치하면 승산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그는 기업유치를 위해 전담팀까지 두고 수시로 기업체를 찾아 세일에 나선다. 벌써 30개에 이르는 업체가 유치됐거나 유치를 희망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내년 공단조성이 모두 끝나면 지역경제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자가진단하고 있다. 산업 육성을 위해 인근 강릉대, 관동대 등과 함께 산·학·연·관의 협력체제를 강화해 기술혁신 네트워크 구축도 꾀하고 있다. 최 시장은 “강릉은 우리나라 IT산업의 심장뿐 아니라 환동해 중심도시로 우뚝 설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화재를 이용한 관광객 유치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옛 선비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곳의 문화재를 잘 활용하면 관광상품으로 충분하다는 계산에서다. 보고 스쳐가는 관광이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강릉의 역사와 선비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임영관(고려시대 이후 손님을 맞이하던 숙소) 객사문(임영관의 정문) 복원이 마무리됐고 선교장(조선시대 전통가옥)도 옛 모습을 살려 부속건물 증축을 끝냈다. 최근에는 문화재를 배경으로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활기를 띠면서 간접홍보 효과까지 얻고 있다. 행정고시 21회 출신으로 건교부 사무관과 양구군수, 행정자치부 소방과장, 강릉부시장,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최 시장은 “고향을 위해 머슴을 자처한 만큼 전국제일의 휴양도시와 기업도시를 반드시 일궈 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姑息之計 고식지계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인 예기(禮記) 단궁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사람을 사랑할 때는 덕으로 하고, 소인배가 사람을 사랑할 때는 고식으로 한다(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소인이 사랑하는 것은 고식, 즉 일시적인 방편으로 하는 것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 근본적인 대책없이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미봉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잡가(雜家)에 속하는 시자(尸子)에 나오는 “은나라 주왕은 노련한 사람의 말은 버리고 아녀자와 어린애들의 말만 썼다(紂棄老之言而用姑息之語).”라는 대목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정부가 공무원의 연금액을 순차적으로 줄이되 이에 맞춰 현재 54∼62세인 공무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연금개혁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정년을 늘려 보상해주겠다니, 그 발상의 수준이라는 게 그야말로 고식지계(姑息之計) 아닌가. 행정자치부의 한 고위관리는 정년연장 검토의 배경으로 “정년 연령과 연금을 타는 연령 사이에 생기는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요즘 민간기업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이 52세이지만,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과 같이 65세가 돼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공직자의 현실인식이 이처럼 ‘자폐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것이다. “제 한 몸만을 위한 꾀(一身之謀)를 내지 말고, 천하의 사람을 위한 뜻(天下之志)을 세우라.” 조선시대 영의정 귤산(橘山) 이유원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때다. jmkim@seoul.co.kr
  • 유교 우리행정에 끼친 영향 크다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 관료들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였다. ‘행정가는 모름지기 언제나 백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교훈을 관료들은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는 15∼16일 성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유교와 행정’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이처럼 유교가 지난 수백년 동안 우리 행정에 미친 영향을 논의한다. 이대희 광운대 교수가 ‘조선시대 관료의 감성적 지성에 관한 연구’, 채원호 가톨릭대 교수가 ‘유교문화 행정이론의 한국화’, 국민대 김영수 교수가 ‘유교윤리와 정치의 대립’을 주제로 발표한다. 중국에서 넘어온 유교문화 행정이론이 토착화 과정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도 검토한다. 이어 16일에는 국내외 유교연구 평가를 위한 심포지엄도 열린다. 최영진 유교연구평가위원회 위원장이 기조연설을 맡고 ‘유교연구 평가의 필요성과 의미’,‘유교연구 평가의 방법과 기준’ 등의 논문이 발표된다. 성대 유교문화연구소는 국내외 유교연구 평가를 위해 지난 6월 ‘유교연구평가위원회’를 구성, 국내외 학술지 등에 발표된 유교 관련 논문 등을 분석해 왔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올바른 리더가 조직의 성공을 일궈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최고경영인(CEO)의 자질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한다. 마을이나 지역의 발전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을을 구성하는 주민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개인의 발전을 지역의 발전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는 한 사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의좋은 마을’ 이복현씨 예로부터 시골에서 양조장이나 정미소, 제재소를 갖고 있으면 ‘3대 부자’로 통했다. 그 자제들은 아쉬울 것도, 남부러울 것도 없어 보였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상중리 ‘의좋은 마을’ 이복현(53)씨도 인근 광시중학교의 어엿한 교감 선생님이지만, 동네에서는 양조장집 둘째 아들로 더 잘 불린다. 이씨는 ‘있는 집안’의 거드름 피우는 아들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양조장집 둘째아들’ 별명은 ‘회장님’ 추수가 끝난 가을 밤, 형제가 서로의 빠듯한 살림을 걱정해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는 중간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일화는 1956∼200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부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담으로 여겨졌던 이 이야기가 고려 말 실화라는 사실은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대흥현 보존회’ 주도로 고증을 거쳐 밝혀졌다. 이씨는 보존회 회장이다. 그는 “형님이 일 때문에 타지로 이사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마을에 보존돼 있던 비석에서 관련 내용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마을의 역사 복원에 관심을 갖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흥현은 대흥면의 조선시대 명칭이다.1914년 대흥군이 예산군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군소재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때문에 면 단위 지역으로는 드물게 초·중·고교가 지금도 위치해 있다. 하지만 1964년 마을 앞에 예당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당저수지는 330만평으로 전국 최대 규모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농지가 물에 잠겨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씨는 “저수지가 들어선 이후 마을 규모가 10분의 1정도로 줄어들 만큼 상전벽해를 실감한 곳”이라면서 “생산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을을 되살릴 길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 보존회는 매년 11월 ‘의좋은 형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마을 인근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유적지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나팔형 동기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이다. 이씨는 현재 대흥동헌과 대흥향교 등을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창건된 대흥동헌은 2002년 지방문화재로 등록됐다. 마을 뒷산에 위치한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임존성 복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노력을 인정해 주셨는지, 지금은 주민 모두가 보존회 회원으로 가입한 상황”이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웃음지었다. 이어 “하나 뿐인 아들이 ‘고향 지킴이’가 되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예산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문산·동곡마을’ 주형로씨 요즘같은 세상에 자식에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라고 권하는 부모가 있다면 지청구를 듣기 십상이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문산·동곡마을 주형로(48)씨는 예외다. 아들 이름을 농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바람인 ‘하늬’로 할 만큼 농촌 사랑이 자식 사랑 못지 않다. 주씨는 “농촌이 발전하려면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다. 대를 이어 꿈을 일궈나가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촉망받던 배구선수에서 싹수있는 농사꾼으로 주씨는 풀무농고(현 풀무학교) 재학 당시인 1977년 문당리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오리농법을 시도했다. 지금은 문당리 일대 250만평의 농지에서 친환경 농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일반쌀 80㎏ 한가마당 16만원 정도지만, 이곳 쌀은 26만원선에 거래가 이뤄진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도 연간 2만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주씨는 모든 공을 스승인 홍순명 전 풀무농고 교장에게 넘긴다. 주씨는 “중학교 때까지 배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성장이 멈춰 운동을 지속할 수 없어 풀무농고에 진학했다.”면서 “6개국어가 가능했던 홍 전 교장 선생님이 농사와 관련된 각종 외국서적을 끊임없이 번역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특히 주씨는 2000년에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21세기 문당리 발전 100년 계획’을 세웠다. 문당리는 지금도 모든 일을 계획서대로 진행하고 있다. 계획 수립과 함께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업공동체운동을 시작했다.‘홍성 환경농업마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정미소·황토방·농촌생활유물관 등을 공동 운영해 이윤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은 물론, 지역교육사업과 친환경농업 보급 등 비영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마을 공동기금만 15억원에 이른다. 주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마을 단위 발전계획이 전무하다시피하고, 공동체운동이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농촌도 잘 살 수 있다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활 나온 여대생, 문당리 총각에 빠지다 최근 10년간 문당리를 떠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오히려 같은 기간 10여가구가 이주해 왔다. 농촌 총각들의 결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곳 총각들은 농활 나온 여대생들과 결혼한 커플만 지금까지 10여쌍에 이른다. 주씨는 현재 노령층과 젊은층이 공존할 수 있는 농촌형 주거공간인 ‘희망나눔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친환경농업과 자연순환을 통해 자립하는 농촌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면서 “꿈을 이루려면 지도자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시스템도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지금은 3대가 살고 있지만, 대학생 아들이 돌아오면 4대가 함께 살 것”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홍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풀꽃이랑마을’ 외지출신 주민 3총사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다 나을 수 있다.’ 마을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토박이만이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뜨내기로 간주되는 이주민들이 변화를 몰고 오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고성리 풀꽃이랑마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풀꽃이랑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주민이래봐야 70가구 150명이 고작이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정안 밤’의 산지이지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밤 이외에 소득기반도 신통한 게 없다. 국유림과 고성저수지 등에 대한 환경훼손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됐기 때문이다. 마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주민이 하나둘씩 늘어난 90년대 말부터다. 인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서명석(65)씨는 1999년 퇴직 후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기도 일산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던 최인규(63)씨와 화가인 임성복(64)씨 등도 2000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서씨는 “지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동네라, 모든 게 악조건으로 간주됐다.”면서 “하지만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는 장점을 살려보고자 힘을 모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우선 마을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지난 9월 마을 명칭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팜스테이와 산촌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주민 모두가 팜스테이 운영회원으로 가입할 만큼 원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최씨는 “시골에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변화를 몰고 올 지도자가 없다는 의미”라면서 “악조건, 호조건을 논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공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서적 수집 25년 외길 박대헌 영월책박물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서적 수집 25년 외길 박대헌 영월책박물관장

    고서(古書)가 헌책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기록이요, 그 진실의 두께를 켜켜이 담아낸 정의로운 보물이다. 또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냈던 선조들의 온갖 지혜가 녹녹하게 발라져 있어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고서 속에는 만가지 봉록(俸祿)이 다 들어있다. 다만 그것은 아는 자만의 것이다.’라고. 이밖에도 금과옥조 같은 여러가지 표현으로 고서의 소중한 가치를 깊이 새기게 한다. 박대헌(54) 영월책박물관장.‘백수’로 지내던 20대의 젊은 나이 때부터 25년 가까이 고서적만을 옹골지게 수집해온 특별한 삶의 밭을 일구고 있다. 흙속의 진주 캐기라고나 할까. ●영월의 폐교에 책박물관 열다 1998년, 그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강원도 산골의 한 폐교에 ‘책박물관’을 떡 하니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사람, 자연, 책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런 ‘그림 같은 문화마을’에 대한 평소의 동경과 신념이 작용했다. 이와 함께 1983년부터 서울에서 운영해 오던 고서점 ‘호산방’ 또한 아예 두메산골로 옮겼다. 그는 여기에서 300∼400년 전의 조선시대 희귀본 등 수백권의 고서를 찾아내 빛을 보게 했고 박물관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문화적으로 여러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영월지역을 다녀온 이들은 한결같이 “정말, 대단한 분이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영월에 있던 ‘호산방’을 서울 도심 한복판인 태평로1가의 한국프레스센터 지하로 옮겼다. 고서점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다소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주 ‘호산방’에서 박 관장을 만났다. 입구에는 ‘호산방은 30년 후를 생각합니다.’는 글귀가 인상깊게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200년 전의 ‘의방활투’를 비롯,‘추사문집’ 초판본, 조선후기의 ‘우병치방법’ 등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희귀 고서 500여권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우병치방법’은 소가 병들었을 때 치료하는 요령이 상세히 담겨 있어 당시 우리 선조들이 소를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프레스센터 지하에 고서점 열어 특히 한쪽에 진열된 1960∼1970년대의 국민학교 교과서들은 당시의 추억 어린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아울러 월북 시인 임화의 ‘현해탄’, 박두진의 ‘해’, 그리고 소월의 스승 안서 김억의 육필원고 등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박씨가 10년 전 펴낸 필생의 역작 ‘서양인이 본 조선’도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17∼20세기에 걸쳐 조선에 다녀간 서양인들이 조선에 관해 쓴 책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 새롭게 정리했다. 이를 위해 그가 모은 원본만 모두 287권. 세계 각국의 고서점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닌 발품의 결과물이기에 학계에서도 소중한 사료가치로 인정한다. 그가 ‘서지(書誌)학자’로 불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시내 중심가에 둥지를 새롭게 마련한 지 두달 됐다는 그는 “영월에 있는 책박물관 운영이 어려워져 이곳에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하기야 산골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터. “영월의 책박물관도 살리고 또 수도 서울 한복판에 고서문화의 한 중심축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지금은 약간 어렵겠지만 내년에는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희망합니다.” ●고서,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30년 후를 생각합니다.’라는 글귀의 뜻을 물었더니 “고서를 통해 이전과 현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를 연결시키는 공간을 의미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30년 후를 생각해 보면 주위에 남을 만한 책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도 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대형마트에서 팔지 않는 물건,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그게 바로 고서의 가치”라고 거듭 강조한다. 웬만한 강원도 여행객치고 박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책사랑은 소문이 나 있다. 그가 서울에서 영월로 향했을 때만 해도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에 서점과 음악·연극 공연장, 문화 예술인의 작업실, 화랑, 카페가 있는 마을을 구상했다. 그래서 ‘영월 책축제’만 7회나 여는 등 나름대로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책과 문화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의 시각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박물관을 잠시 폐관했다가 얼마전 다시 재개관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긴 책마을은 영국의 ‘헤이 온 와이’입니다. 웨일스의 작은 마을이지요. 폐광 등으로 1960년 초만 해도 쇠락해가는 마을이었는데 어느날 리처드 부스라는 한 젊은이의 노력으로 지금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책마을로 변모했습니다.” 평소 박씨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월책박물관은 옛 학교터(여촌분교)와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학교는 1962년 개교해 1998년 문 닫기까지 36회에 걸쳐 400여명이 졸업했다. 현재 박물관에는 3만∼4만여점이 소장돼 있다. 박씨의 책사랑은 고교 때부터 시작됐다. 어느날 은사에게 옛 책의 소중함을 듣고 용돈을 아껴 시간날 때마다 청계천 등지에서 한두 권씩 책을 사모았다. 원래의 꿈은 도예가. 그래서 홍익공업고등전문학교에서 요업을 전공했다. 고교과정 3년과 대학 2년과정을 합친 5년제 학교였다. 군 제대후에는 도예학원을 운영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이룰 수가 없었다. 백수생활로 접어들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서울의 여러 고서점을 들르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많은 유물을 눈감고도 줄줄 꿸 정도였다. 덕분에 도자기뿐만 아니라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다. 고서적도 마찬가지. 결국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서울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열었다. 이때가 1983년 서른 살의 나이였다. 호산방이라고 한 것은 조선 말기 서화가 우봉 조희룡의 호 호산(壺山)에서 비롯됐다. 고서점을 연 후에는 주로 필사본과 간찰, 또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때의 역사와 문학 관련 양장본들에 관심을 쏟았다. ●수집에 미쳐 가족엔 ‘미안한 아빠´ 1992년 장안평 고서점을 광화문 인근으로 옮겼다. 이때 인사동의 한 고서점 주인은 “인사동에서도 안 되는 고서점이 광화문에서 되겠어? 1년도 못버틸 걸.” 하고 말렸다. 하지만 꽤 유명세를 탔고 번창해 나갔다. 그 사이 방송통신대학을 9년만에 졸업했고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에서 출판잡지를 전공,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이때가 1998년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박씨네 가족이 현재 거주하는 곳은 책박물관 한쪽에 있는 허름한 관사. 말이 관사이지 한겨울에 연탄난로를 두 개씩 피워도 거실의 물이 얼고 수도관이 터지기 일쑤. 그러다 보니 박씨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했다.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이던 두 아들은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에서도 학원 한번 보내지 못하고 시골에 데려왔지만 큰아들은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4학년에 재학중이고, 둘째는 내년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누가 그러더군요.‘고서수집을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그동안 산골마을에서 외롭게 문화독립운동을 해온 박씨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그는 고서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고서는 열번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한번 잘못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내년 초 그동안의 고서수집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담은 ‘서창야화-어느 고서점 주인의 잠꼬대(가제)’라는 책을 발간한다. km@seoul.co.kr
  • 강빈/박정애 지음

    “성품이 흉험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다. 이재를 추구해 많은 재물을 모았고 그 재물로 사람을 잘 유인했다. 세자가 없을 때는 시강원의 장계를 가져다가 임의로 써넣기도 하고 삭제하기도 했으니 부인의 도리와 분수를 지키지 않았다.…세자가 병이 있는 데도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음란했고, 임금의 처소 가까이에서 큰 소리로 발악할 정도로 불순하고 거셌다.” 조선시대 인조와 효종대의 실록이 전하는 소현세자빈 강씨, 즉 강빈의 모습이다. 그러나 소설가 박정애(36·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는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의 얼굴은 네모졌다가도 둥그레지는 법”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강빈을 여필종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선구자적인 여인으로 끌어올린다. 최근 펴낸 역사소설 ‘강빈’(도서출판 예담)에는 작가의 이런 ‘여성주의적’ 역사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강빈(1611∼1646)은 열다섯 살에 ‘한번 들면 영결’이라는 구중궁궐의 왕실 여인이 된다. 하지만 병자호란의 패배로 남편 소현세자, 시동생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심양에서 9년 동안 인질생활을 한다. 그러나 강빈은 힘든 볼모생활에 굴하지 않고 소현세자를 도와 서양 문물을 도입하고, 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대규모 영농과 국제무역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대가는 가혹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청과 짜고 자신을 몰아내려 한다는 인조의 의심으로 귀국 두달만에 독살 당하고,1년뒤 강빈도 조씨 저주사건 주모자이자 임금의 음식에 독을 넣었다는 죄목으로 서른여섯의 나이에 사사당하고 만다. 왕실 여인들은 흔히 지아비의 사랑을 얻기 위해 질투와 음모를 일삼거나, 당쟁에 휘둘리는 희생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록이 전하는 강빈의 모습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중세적이고 남성적인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작가가 그리는 강빈은 꿈과 사랑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불사른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이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청송에 ‘객주 문학테마타운’ 조성

    소설가 김주영씨의 대표작 ‘객주’가 자신의 고향인 경북 청송에 그대로 재현된다. 청송군은 객주를 주제로 한 ‘객주문학테마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내년초 전문기관에 타당성 조사를 맡기기로 했다. 관련예산 3000만원도 최근 편성했다. 만해문학관, 신동엽문학관, 이문구문학관 등 유명작가의 고향에 문학관 형태의 기념관이 세워진 경우는 많지만 특정소설가, 특정작품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사례는 처음이다. 청송군은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이르면 내년 안에 테마타운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5일 현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소설 객주의 문학사적 가치와 의미’(김주연 숙명여대 명예교수) ‘김주영 문학의 문화산업화 방안´(박덕규 소설가·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지역 문학촌과 예술촌의 의미와 운영방향’(조재현 영주소백예술촌장) 등이 논의됐다. 김씨는 1939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태어났으며 63년 안동 엽연초생산조합에 들어가 일하면서 틈틈이 습작을 하다 71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조선시대 말 민중의 생활상을 그린 대하 역사소설(전 9권) 객주의 무대는 김씨가 성장하면서 익히 봐왔던 청송 일대 장터거리이다. 객주는 81년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150만부나 팔린 김씨의 대표작이다. 청송군은 “장터거리와 김 작가의 생가를 연계한 객주 테마타운이 생기면 문학적인 콘텐츠뿐아니라 관광지로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산이좋아 산으로] 경기 남양주 천마산

    [산이좋아 산으로] 경기 남양주 천마산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과 오남면에 걸쳐 있는 천마산(812.4m)은 1983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교통이 편리하고 그다지 높거나 험하지 않아 하루 산행으로 부족함이 없다. 최근 마석 주변이 개발되며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예전과 같은 호젓함은 다소 덜하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전나무 숲 삼림욕장과 운동시설 등도 갖춰져 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인근 스타힐 리조트에서 스키를 즐기기에도 좋다. 천마산(天摩山)이라는 이름에는 태조 이성계의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말 이성계가 마석에 사냥을 왔다가 지나가는 노인에게 산 이름을 물었는데, 그는 “소인은 무식해서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성계는 혼잣말로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笏·조선시대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임금을 만날 때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이 꽂힌 것 같아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때부터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의 천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 말처럼 남양주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165번 버스 기점인 호평동 라인아파트 앞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올라가면 수진사 앞에 닿는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이 앞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포장도로가 쇠사슬로 막혀 있는 지점부터 산책로를 겸한 산길이 시작된다. 매표소에서 약 5분을 올라가면 좌측으로 상명여대 생활관이 있고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계곡을 만나는 곳부터 산길이 시작된다. 계곡으로 나있는 오솔길은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계곡을 두번 건너면 전나무 숲이 우거진 삼림욕장이 나온다. 운동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 주변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계속 계곡을 따라 오르면 천마의 집이 나오고 다시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를 따라 100m 올라가면 길이 끝나고 오른쪽으로 능선을 따르는 완만한 산길이 시작된다. 산행 기점에서 이곳까지는 약 40분이 걸린다. 등산로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안내판 시설이 되어있다. 임도에서 약 300여m 구간은 전나무가 우거진 침엽수림이다. 정상까지는 갈림길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꺽정바위부터는 간간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하지만 굵은 로프로 안전 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한번에 디디기 힘든 바위에는 철판으로 만든 발디딤도 되어 있다. 꺽정바위를 지나 5분을 가면 넓은 공터와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도 조망이 트여 남쪽 발아래로 스키장이 내려다 보인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는 500여m 거리다. 헬기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능선 하늘금은 쉼터 방면 하산로와 갈라지는 곳이다. 이 길로 내려가면 천마산 심신수련장과 관리사무소, 마치터널 쪽으로 하산할 수 있다. 천마산 정상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약 150m 더 능선을 타고 간 곳으로, 이 구간도 암릉지대로 되어 있다. 작은 안부를 지나 천마산 정상에 서면 태극기와 정상 표지석, 안내지도가 서있다. 천마산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철마산(709.5m)과 주금산(813.6m)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천마지맥이 조망되고, 맑은 날은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인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천마산과 철마산을 잇는 능선종주도 가능하지만 겨울철은 서둘러야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호평동과 청소년심신수련장 관리사무소 방면을 들머리로 하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이다. 남양주 시민은 신분증을 제시하면 무료입장할 수 있다. # 여행 정보 1982년 한국최초로 사계절 전천후 스키장으로 개장해 최근 이름을 바꾼 스타힐리조트(www.starhillresort.com)는 서울에서 가까워 1시간이면 접근이 가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20만평 규모에 슬로프 5개와 리프트 7기가 운행한다. 특히 플라스틱 인조 슬로프 2곳이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스키장 외에 부대시설로 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힐 리조텔과 식당 등을 운영하며, 여름철에는 수영장도 문을 연다. 글 이영준(월간 MOUNTAIN 기자)
  •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 전남·북 3곳 주민활동 탐방

    [살기좋은 지역 만들기] 전남·북 3곳 주민활동 탐방

    전통은 흔히 낡고 불편한 ‘구닥다리’로 여겨진다. 전통의 보전적 가치만을 고려한 선입견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은 조상들이 수백, 수천년을 쌓아온 삶의 지혜가 응축돼 값진 자산이다. 전통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창조할 때 미래가 열릴 수 있다. 전통에 대한 해석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자, 새롭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 전주 한옥마을 솟을대문과 대청을 지나 방지문을 넘어서면 천장형 에어컨과 벽걸이 TV가 걸려있고, 수세식 화장실이 딸린 온돌방이 있다면 한옥일까 양옥일까. 관광객들의 눈요기를 위해 ‘껍데기’만 복원한 민속촌이 아니라, 현대인의 구미에 맞도록 전통을 재창조한 주거지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교동 일대 전통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이 슬럼가에서 최고의 주거지로 거듭나는 데는 꼬박 30년이 걸렸다. 1977년 전주시는 이곳을 한옥보존미관지구로 지정,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에 주민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마을은 차츰 슬럼화됐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전주시는 1999년 이곳을 전통문화특구로 재지정, 본격적인 정비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낡은 한옥을 사들여 한옥생활체험관, 공예품전시관, 전통문화센터 등 각종 문화시설로 바꿨다. 겉모양은 전통 양식을 따랐으나, 내부는 현대식으로 설계됐다.2002년에는 한옥보전지원조례를 제정, 주민들이 한옥으로 건물을 지을 경우 최고 5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땅도 매입해 공동주차장이나 공원으로 조성했다. 그 결과, 마을을 찾는 방문객 수가 매년 80만명을 넘고 있다. 평당 50만원 안팎이던 땅값은 최고 500만원까지 치솟았다. 전주시내 주거지역 땅값 가운데 단연 최고다. 고언기 전주시 전통문화진흥과장은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려 했다면 지금의 한옥마을은 없었을 것이며, 전통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면 불편한 게 아니다.”면서 “주민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 가장 뛰어난 관광지라는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옥마을의 발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체 건물 780채 중 15%가량은 정비가 필요한 양옥 등이다. 김성수 전주시 행정혁신과장은 “공급과 수요가 제한적인 탓에 전통가옥의 평당 건축비는 700만원 안팎으로 양옥의 2∼3배”라면서 “한옥마을에 ‘장인학교’를 설립해 공급을 늘려 건축비를 낮출 경우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곳에서 70년째 한약방을 운영하는 한광수씨는 “주거기능을 유지하려면 민박이나 상점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하며, 상업시설 총량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관광시설은 마을 공동소유로 전환해 주민들을 위한 소득기반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완주 한지마을 “한 우물을 판 조상들의 말없는 가르침을 이제 알겠습니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주산지로, ‘전주 한지’가 명성을 얻게 된 근원지인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대승마을 주민들은 이처럼 입을 모은다. 김한섭 이장은 “조선시대 당시 이곳에서 생산된 한지는 궁중진상품이자 중국에 보내는 조공품에 속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면서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한지 생산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며 안타까워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한지를 모방한 고려지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속칭 ‘짝퉁 한지’가 생길 정도였던 한지가 마을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이다. 오·폐수 처리시설을 갖추려는 노력 대신 한지공장의 문을 닫는, 보다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1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결정은 주민들의 소득 감소와 이주로 이어졌다. 정부 주도의 지역개발사업이 추진된 것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마을이 일순간에 기반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재 완주군은 전국 한지 공장의 80%가 몰려 있고, 한지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량 기계로 생산되는 한지는 조상들의 솜씨를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홍씨는 “한지가 명성을 쌓은 비결은 바로 도침방아”라면서 “수작업이 필요한 도침방아는 종이를 질기고 얇고 광택이 나도록 하며,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쓰였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도침방아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 훼손됐지만, 대승마을에는 도침방아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한지 생산전문가 10여명도 여전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마을 주민들은 올해 초 작목반을 구성, 화선지 30만장 정도를 만들 수 있는 닥나무 3만주가량을 심었다.10만주까지 늘려 연간 5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예원예술대 한지문화연구소와도 손을 잡았다. 주민들은 닥나무를 재배하고, 장인들은 한지를 제작하고, 전문기관은 판매를 지원하는 ‘3위 일체’를 이뤄 나가겠다는 취지다. 문윤결 한지문화연구소장은 “비단은 500년, 한지는 1000년을 간다는 명품성을 되살리려면 수제 방식을 재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지 소비가 증가 추세에 있는 만큼 기능성을 추가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순창 고추장마을 고추장 등 장류를 못 담그는 지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반면 각종 노하우가 대대손손 대물림으로 이어져 왔지만, 장류 담그기를 산업화한 지역은 전북 순창군이 거의 유일하다. 순창이 고추장과 된장, 간장, 청국장 등 각종 장류 식품을 팔아 한 해 23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장류 담그기에서 ‘원조’ 논란이 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순창이 장류산업의 본거지가 된 중심에는 순창읍 백산리 전통고추장마을이 있다. 한금수 순창군 장류연구소장은 “과거에는 장류 생산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뿔뿔이 흩어져 이뤄지면서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면서 “이같은 단점을 극복해야 산업화할 수 있다고 판단해 1997년 2만 5000평의 부지에 전통고추장마을을 조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허 벌판에 새롭게 들어선 일종의 ‘계획 마을’인 전통고추장마을에는 현재 전통고추장 제조기능인을 중심으로 34가구 28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연간 24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릴 만큼 웬만한 기업보다 낫다. 장류의 원료가 되는 고추와 콩 등을 계약재배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마을은 전통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모두 한옥으로 지어졌다. 장류연구소와 장류박물관, 장류체험관 등 갖가지 시설도 갖춰져 있어 장류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 마을을 찾은 방문객만 3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오는 2010년까지 10만평 부지에 장류식품의 규격화를 주도할 발효미생물종합활용센터 등도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은 마을이라기보다는 ‘공장’에 가까운 만큼 보완해야 할 점도 남아 있다. 여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용실이나 목욕탕 등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4㎞가량 떨어진 읍내로 나가야 한다. 전통고추장 제조기능인만 선별해 입주시켰기 때문에 이웃은 곧 경쟁자이다. 주민 김승우씨는 “주민끼리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때문에 주민간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 중재자 역할을 할 사람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젊은 세대의 문화적 욕구 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반시설도 부족해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도 확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글 사진 순창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책꽂이]

    ●조선통신사 일본과 통하다(손승철 지음, 동아시아 펴냄)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과 일본은 외교문제를 해결하고 물자와 문화를 교류했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통신사의 규모는 400명선. 평균 30년에 한번씩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행렬은 일본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취급했다. 이 책은 왜구의 약탈이 시작되는 1350년부터 부산왜관이 무력으로 점령되는 1872년까지 조선시대 520년간의 한·일 관계사를 통시적으로 다룬다.1만 2000원.●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조너선 스펜스 지음, 양휘웅 옮김, 이산 펴냄) 아편전쟁과 함께 근대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중국은 무기력하게 영국에 패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 외부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부 갈등이 폭발한다. 태평천국의 난 혹은 태평천국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전란이었다. 학자들은 이 사건으로 무려 2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한다. 이 책은 이 엄청난 사건의 전말과 그 핵심인물의 삶을 다룬다. 저자는 미국의 중국사 학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2만 9000원.●국가의 품격(후지와라 마사히코 지음, 오상현 옮김, 북스타 펴냄) 무사도는 원래 가마쿠라 막부시대 ‘전투의 규칙’으로, 전쟁터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260년간의 평화로운 에도시대에 무사도는 모노가타리(이야기), 조루리(낭송 대사곡), 가부키(전통 무대극), 고당(講談, 야담) 등의 예술양식을 통해 상인계층인 초닌(町人)과 농민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무사계급의 행동규범인 무사도가 일본인 전체의 행동규범으로 변모해간 것이다. 저자(오차노미즈여대 교수)는 ‘명품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이같은 무사도정신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만 1000원.●심심한 두뇌를 위한 불량지식의 창고(멘탈 플로스 편집부 엮음, 강미경 옮김, 세종서적 펴냄) 단 것을 즐긴 인물로는 단연 히틀러가 꼽힌다. 그는 채식주의자인데다 과음을 삼갔지만 사탕과 과자라면 사족을 못 썼다. 차를 마실 때마다 설탕을 일곱 티스푼씩 집어넣었고, 포도주를 마실 때도 너무 쓰다는 이유로 설탕을 탔으며, 손님들에게도 아이스크림과 사탕을 대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성서의 일곱가지 죄악에 속하는 자만·탐욕·욕망·질투·식탐·분노·나태 등의 항목으로 나눠 ‘음지의 지식’을 다룬다.1만 3500원.●이것이 영지주의다(스티븐 횔러 지음, 이재길 옮김, 샨티 펴냄) 정통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박해받아 3,4세기 이후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간주된 영지주의. 그러나 그 가르침과 의식은 서양 문화 곳곳에 배어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이란 예수와 같은 ‘빛의 사자’에 의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창세기’를 교훈이 담긴 역사로 읽지 않고 의미를 지닌 신화로 읽는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 시대 영지주의자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탄생하고 지지를 받았으며 ‘이단’으로 내몰렸는가를 초기 기독교의 정전화(正典化) 과정을 통해 살핀다.1만 3000원.
  • [Book Review] “예언서, 평민엔 대안 이데올로기”

    14년째 정감록 등 예언서에 천착한 역사학자가 전혀 다른 형식으로 예언서를 정리한 두 권의 서적을 한꺼번에 냈다. 한 권은 정통 역사서적이고, 다른 한 권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기법을 활용했다. 역사학자 백승종 전 서강대 교수의 신작 ‘한국의 예언문화사’와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푸른역사 펴냄)이 그것이다. ‘정감록’에서는 저자의 풍부한 역사적 상상력을 실감할 수 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정조시대에 역모사건이 빈발했던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영조 9년(1733년)의 ‘김원팔 일가 남사고비결 역모사건’ ▲정조 6년(1782)의 ‘문인방 정감록 역모사건’ ▲정조 9년(1785)의 ‘문양해 정감록 사건’ 등 대표적인 3건의 역모사건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사건에는 모두 예언서가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저자는 역모사건을 ‘거인’(성리학)과 ‘난쟁이’(예언서)의 대결로 봤고, 당시 난쟁이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고 해석했다. 왕조의 시각에서 서술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역적은 능지처참해 마땅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역적의 시각은 다르다. 영조와 정조는 패륜왕이고, 조선은 뒤엎어야 할 왕조일 뿐이다. 책에서 저자는 1인칭 시점으로 돌아가 역적이 되기도 하고, 다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빠져나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충실히 묘사하기도 한다. 형사들의 추리기법을 빌렸지만 누가 범인인지, 왜 역모를 저질렀는지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의 이면을 속속들이 검토해 역모사건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의 마음을 담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서술방식은 ‘역사가의 상상게임’이라고 부를 만하다. 저자는 “역사는 술이부작(述以不作·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닌 술이작(述以作·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쓰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뜻에 충실한 역사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역적의 입장에 서보기도 하고, 때로 왕도 흉내냈다.”(본문 14쪽)고 말했다. 다른 신간 ‘한국의 예언문화사’는 체계적·실증적이다. 사료를 꼼꼼하게 분석해 정감록의 뿌리를 찾는 한편 18세기 후반 정감록의 출현과 보급, 당시 정치적 예언서들의 내용 등을 차분하게 정리해갔다. 저자에 따르면 정감록을 비롯한 예언서들은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일종의 대안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이런 예언문화를 주도한 이들은 조선 후기에 성장한 평민 지식인들이었다. ‘한번 상놈은 영원한 상놈’인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서들은 마땅히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저자는 예언문화가 결국 동학농민운동 등 신종교 운동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분석했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으로서 예언문화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모두 7편의 글이 실려 있는 ‘한국의 예언문화사’에는 한국 최초의 예언서인 ‘고구려비기’를 당나라측이 위조했다든가, 고려시대에는 국가가 예언을 관리·통제했다는 등의 색다른 주장도 펼쳐져 있다. 예언서들이 민중의 입맛에 따라 가공·윤색됐다는 연구결과도 흥미롭다. 예언서의 밑바탕에 ‘미륵신앙’이 숨겨 있고, 예언서를 축으로 한 비밀결사가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정감록’의 모티브가 된 3건의 역모사건을 이 책에서는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있다.‘정감록…´은 1만 4500원, ‘한국의…´는 1만 65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49) 賻儀(부의)

    儒林(735)에는 ‘賻儀’(부의 부/예법 의)가 나오는데,‘상가(喪家)에 扶助(부조)로 보내는 돈이나 물품’을 말한다.弔意金(조의금)을 전하는 봉투의 전면에 흔히 謹弔(근조),賻儀(부의),弔儀(조의)와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謹弔는 ‘죽음에 대하여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뜻이요,賻儀는 ‘초상난 집에 부조로 돈이나 물건을 보낸다.’는 의미다.弔儀는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뜻이다.奠儀(전의),香奠(향전),菲儀(비의),哲人其萎(철인기위),千秋永訣(천추영결)의 문구를 쓰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빈 봉투에 弔意金만을 넣고 單子(단자)를 생략하는 게 일반화된 느낌이다.禮(예)는 時俗(시속)을 따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왠지 迫切(박절)하다는 느낌이다. 單子는 ‘부조나 선물 따위의 내용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조선시대 문서 작성의 길라잡이라는 儒胥必知(유서필지)에 의하면,單子에는 弔辭(조사),物目(물목),日字(일자), 보내는 사람의 성명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말미에 護喪所(호상소:초상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맡아보는 곳) 入納(입납)이라고 적는다. 봉투 전면의 우측에는 弔辭, 좌측에는 ‘○○宅 護喪所 入納’(○○댁 호상소 입납), 후면에는 ‘○○○ 謹上’(○○○ 근상)이라고 쓰면 된다. ‘賻’는 ‘貝’(조개 패)가 意符(의부)로 쓰인 形聲字(형성자).‘貝’는 고대 중국에서 화폐로 사용하던 ‘조개’의 상형이다.‘甫’(보)는 ‘밭’과 ‘풀 한포기’의 상형이 합쳐진 글자로 ‘밭’을 의미한다.‘薄賻(박부:가벼운 부의),賻助(부조:부의를 보내 장사를 도움),賻贈(부증:장례를 돕기 위해 초상집에 부조하는 물건)’ 등에 쓰인다.‘儀’의 본디 글자는 ‘義’이다. 깃털로 만든 장식을 나타내는 ‘羊’과 무기류의 일종인 ‘我’를 합쳐 ‘깃털로 장식한 儀仗用(의장용) 武器(무기)’의 뜻을 나타냈다. 후대로 오면서 본뜻과 달리 ‘마땅하다’ ‘옳다’의 뜻으로 널리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글자가 ‘儀’이다.用例로 ‘容儀(용의:몸을 가지는 태도),儀軌(의궤:본보기),祝儀(축의:축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내는 돈이나 물건)’등이 있다. 조선 중기의 정희등(鄭希登)은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선비였다. 그를 사위로 맞으려는 김안로(金安老)의 의중을 간파하고,“평생을 홀아비로 살지언정 醜門(추문)에 들지 않겠다.”고 거부하였다.實權(실권)을 장악한 윤원형(尹元衡)이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고 出仕(출사)를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윤원형과 손잡고 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화답하니 윤원형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결국 그는 혹독한 拷問(고문)의 후유증으로 別世(별세)하고 말았다. 殮襲(염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구차한 살림살이는 가족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덕은 외롭지 않다는 말을 實證(실증)하듯, 한밤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비들이 300여尺(척)의 베를 가지고 와 염습을 하고 사라졌다.額數(액수)의 寡多(과다)로 성의를 가늠하는 風潮(풍조). 우리의 慶弔文化(경조문화)를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 했던 淸末(청말)의 사상가 강유위(康有爲)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동해안 도루묵·양미리 축제

    동해안 도루묵·양미리 축제

    생선을 등급별로 나눈다면 아마도 꼴등은 도맡아 차지할 게다. 양미리와 도루묵 얘기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개도 물고 다닐 만큼 흔한’ 생선이라선지, 맛과 영양 등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볼품없이 생긴 외모도 그런 혹평에 일조를 하리라. 오징어나 명태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물고기는 아니지만, 연근해 어자원이 하루가 다르게 고갈되어 가는 요즘, 그나마 어부들에게 ‘한철농사’로 제법 짭짤한 소득을 안겨 주는 녀석들이다. 강원도 북부의 7번국도변 동해안 항포구에는 요즘 제철만난 양미리와 도루묵들이 넘쳐난다. 주민들은 물론, 제철생선을 맛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주말에는 파시를 이루기도 한다. 속초시 일대에서 ‘제 1회 양미리 축제’가 열리고 있다.1만원이면 양미리와 도루묵이 한 접시다. 어디 그뿐이랴. 바람에 실려오는 갯 냄새와 나지막히 부르는 속초 아낙네의 호객소리도 정겹다.♪자∼떠나자. 동해바다로.3등완행열차를 타고∼. 글 사진 속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지난 23일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설악산 미시령. 울산바위 주변을 흰색으로 덧칠해 놓은 겨울이 하산을 서두르고 있다. 아직 단풍을 벗지 않은 산아래 나무들도 한바탕 삭풍으로 후려치면 금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낼 듯하다. 계절은 벌써 초겨울. 하지만 동해바다는 펄떡이는 도루묵과 양미리로 가득차 오히려 따스하게 느껴진다. # 부드럽고 고소한 도루묵 ‘말짱 도루묵’이란 말이 있다.‘애써 일을 끝내놨더니 망조가 들어 그르친 상황’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전쟁통에 피란을 가던 임금이 먹고는 은어(銀魚)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먹어 보니 옛날 그 맛이 아니어서 “도루 물리라.”고 해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이리저리 차이고 비하되는 물고기지만, 무·쑥갓·파·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어 끓여 낸 도루묵찌개 맛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도루묵은 수심 200∼400m정도의 모래섞인 펄 바닥에 서식한다. 휴가철이 끝나는 9∼10월에 떼지어 나타나,11∼12월이면 본격적인 산란기로 접어든다. 알이 막 들어차기 시작하는 10월부터 겨울을 지나는 이맘때쯤 가장 제맛을 낸다. 노란 배에 터질 듯 알이 가득하고, 살 또한 부드럽기 그지없다. 비린내가 거의 없는데다 뒷맛이 고소하고 깔끔하다. 요즘 잡히는 도루묵은 암컷이나 수컷 모두 기름져, 석쇠에 얹어 구우면 투명할 만큼 맑은 기름이 배어난다. 애주가라면 도루묵 허리쯤 뚝 자른 다음, 능히 소주 두어잔은 들이킬 법하다. 도루묵은 산란기가 되면 딱딱해진 알을 해초에 잔뜩 산란해 놓는다. 이맘때면 파도에 밀려온 도루묵알이 거품처럼 해변을 뒤덮기도 한다. 알을 주워다 팔기도 하고,‘창경바리’라 해서 유리상자로 물 속을 들여다 보며 해초에 붙은 알을 채취하기도 한다. 고성에서 속초, 양양, 강릉 등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북부가 도루묵의 고향. 그 아래쪽에서도 잡히기는 하지만, 양이 적을 뿐 아니라, 맛도 덜하다. 도루묵 조리법은 의외로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역시 찌개.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무을 깔고 갓 걷어 올린 도루묵을 얹은 다음, 파·마늘 등 갖은 양념에 굵은 소금으로 맛을 낸 도루묵찌개는 한 시인의 표현처럼 ‘삶의 국물 맛’이다. 비리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 살짝 말린 다음 볶아 먹어도 맛있다.‘세꼬시’로 먹는 도루묵회도 별미.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별미 중의 별미는 역시 소금구이.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석쇠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은 다음,‘톡톡’ 알터지는 소리를 곁들여 먹는 소금구이야말로 힘들여 동해안을 찾은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 너무 흔해 대접 못받는 양미리 도루묵과 함께 겨울철 별미 대표어종으로 꼽히는 양미리도 제 대접을 못받기는 마찬가지다. 이유는 단 하나,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양미리는 10∼12월에 어장이 형성돼, 고성에서부터 강릉에 이르기까지 동해안 전역에서 세력을 떨친다. 대표적인 산지는 속초항과 주문진항, 그리고 강릉의 사천항. 속초시 동명항에는 수복기념탑 옆에 ‘양미리 부두’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양미리가 가득 걸린 그물을 실은 어선이 돌아오면 항구에는 생기가 돈다. 이때 쯤이면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어내는 진풍경이 부두 전체에서 펼쳐진다. 도루묵과 마찬가지로 11∼12월 중순까지가 제철. 그 이후 시장에 나오는 것은 말린 냉동 양미리다. 흔하다고 해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닐 터. 소금구이나 조림, 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회를 제외한 다른 음식을 만들 때는 뼈째 조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다음 볶거나 구워 먹으며, 날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도 한다.‘바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에 걸맞게 곱게 갈아서 추어탕처럼 먹기도 한다. 식해도 만들어 먹는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별미는 통통하게 알을 밴 놈을 골라 굵은 소금을 뿌린 다음, 숯불에 구워먹는 소금구이. 밥반찬은 물론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양미리는 모래속에 묻혀 사는 까나리과의 1년생 물고기다. 주로 12월에 많이 잡히며, 이 시기에 산란하고 일생을 마친다. 육고기에 들어있는 성분이 대부분 있을 뿐 아니라, 단백질도 쇠고기에 뒤지지 않을 정도여서 겨울철 건강식으로 각광받는다. 등 푸른 생선답게 불포화 지방산과 숙취 해소를 돕는 아스파라긴 등의 필수 아미노산, 그리고 DHA와 노화방지 핵산 등이 풍부하다. # 여행정보 ‘양미리 축제’가 열리고 있는 속초시 동명항에서는 건조 양미리 40마리를 3000원, 생물 60마리를 5000원에 팔고 있다. 도루묵은 20마리 1만 5000∼2만 5000원. 이 축제는 다음달 20일까지 열린다.(033)639-2735.
  • 우리 선조들의 생활건강비결

    우리 조상들은 약재보다는 자연 치유력을 더 믿었다. 또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하는 방법도 중요시했다.하지만 지금 이런 방법들이 모두 비과학적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꼭 비과학적이랄 것도 없다.어찌보면 수백, 수천년 동안 임상시험을 거쳐 온 동양의 이런 사고방식은 서구의학보다 더 과학적일 수 있다. 역사 전문 채널 히스토리채널이 이를 들춰본 자체제작 다큐 ‘역사탐험, 한민족 생활건강사’ 4부작을 준비했다. 1부 ‘자연의 원리를 찾다’는 민간의학을 다뤘다. 독일에서는 민간의학을 최첨단 의학과 접목하려 들지만, 우리의 경우 이런 데 대한 저항감이 아직 강하다. 우리 조상들은 주변에 흔히 널린 물·흙·풀·나무를 어떻게 다뤘을까. 제2부 ‘자연을 생활 속으로’는 집과 옷을 다룬다.‘우리 옷’과 ‘우리 집’의 재료와 구조, 그리고 역사를 되돌아본다. 아토피나 환경호르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 우리 옷과 집은 어떤 해답을 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조선 중기 양반 가문의 전형적 주택양식인 ‘구례 운조루’를 살펴보고,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의 설명에 따라 천연 염색과 옷감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본다. 제3부 ‘몸과 마음을 우주로 열다’는 심신수련법을 다룬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몸과 마음을 다스렸을까.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보급시킨 선비들의 심신수련법인 ‘활인심방’, 강철 같은 몸을 만들어 몸의 모든 기맥을 뚫으면 내면세계까지 열린다는 민족 고유의 산중무예 ‘기천문’, 자연과 소통하는 고궁의 매력을 만난다. 또 시대에 따른 심신수련법의 변천과정도 따라가본다. 제4부 ‘음식이 보약이다’는 ‘밥상이 곧 약상’이라는 우리 전통식단의 건강법에 대해 알아본다. 최근 들어 급속하게 고평가되고 있는 우리 음식은 수천년 역사가 낳은 지혜의 산물이자 미래의 건강법임을 보여준다. 김치와 각종 장류는 물론, 나물의 조리법을 과학의 눈으로 접근한다. 또 늘 먹는 밥을 영양학적으로 분석했다. 이 프로그램은 30일까지 오전 8시, 오후 4시 두 차례씩 방송된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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