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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조상묘 못 옮깁니다”

    “조상묘는 옮길 수 없다.” 행정도시인 세종시 건설에 따른 분묘 이장을 앞두고 지역 명문가들이 조상묘 이전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유물과 유적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조상인 만큼 묘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며 정부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9일 행정도시건설청에 따르면 세종시 건설공사를 앞두고 행정중심타운 등이 들어설 곳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으면 묘가 지장물로 분류돼 오는 6월부터 1년 이내에 이장해야 한다. 행정중심타운이 들어설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 있는 조선시대 거유(巨儒) 초려 이유태(1607∼1684) 선생 문중도 예외가 아니다. 이유태는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과 더불어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경주 이씨 문중은 최근 청와대와 행정도시건설청 등에 탄원서를 냈다. 전국의 유림 1만 5000명이 서명해 문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초려선생필첩(충남도유형문화재 104호)’ 등 각종 유물이 문화재로 지정돼 그의 묘도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며 “일제도 옮기지 못한 묘의 이장을 정부가 강행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유태 문중은 호남선 철도 및 일제의 방목장 개설에 이어 1966년 조치원 판교선 철도계획 때에도 충청지역 유림까지 가세해 이장을 막았다. 2005년 말엔 그의 묘를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충남도에 요청했다. 연기군이 집성촌인 부안 임씨도 같은 해 중시조인 동면 합강리 임난수(1342∼1407) 장군 묘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요청했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 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제주도)를 정복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임 장군의 신도비가 있는 남면 나성리 독락정은 충남도 문화재자료 264호, 임 장군이 심은 남면 양화리 승모각 옆 650년 된 은행나무 두그루는 도 지정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사육신 박팽년(1417∼1456)의 할아버지 묘(전동면 송정리),‘택리지’의 저자 이중환(1690∼1752)의 할아버지 묘(남면 고정리)도 해당 문중에 의해 도 문화재 지정이 신청됐다. 행정도시건설청 문화복지팀 김교년 학예연구관은 “유물과 묘의 문화재 지정은 별개의 문제”라며 “오는 7월 실시설계 전에 보전상태, 당대의 묘제 반영 정도 등 학술적인 가치를 심사하겠다.”고 말했다.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석촌동 삼전도비 훼손

    서울 송파경찰서는 7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사적 제101호 삼전도비(三田渡碑)가 훼손됐다는 송파구청의 수사 의뢰서를 받아 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훼손된 삼전도비에는 붉은 페인트로 앞면에 ‘철 370’, 뒷면에 ‘거 병자’라고 씌어 있었으며 둔기 등을 때려 망가진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2일 밤 순찰 때 아무 이상이 없다가 5일 오전 9시30분쯤 페인트 칠이 발견됐다는 비 관리사무소측의 진술에 따라 훼손 행위가 지난 주말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목격자를 찾고 있다. 삼전도비는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나라에 당한 굴욕사를 담은 비석으로 서울시는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하기 위해 1983년 비 일대에 500평 규모의 소공원을 조성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일고 있는 반 중국 감정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는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한옥관광개발 ‘레드오션’ 되나

    한옥관광개발 ‘레드오션’ 되나

    “한옥관광개발은 블루오션인가, 아니면 레드오션인가.” 전국 자치단체들이 내용이 엇비슷한 한옥관광개발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해 차별화한 개발 전략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전북도와 전주시에 따르면 전통 한옥을 주제로 한 대형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자치단체는 서울을 비롯, 경기, 경북, 전남·북 등 8개 자치단체에 이른다. 이들 자치단체는 적게는 100억원, 많게는 1조 9000억원을 투입해 한옥마을·전통민속촌·한옥체험관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 사업 외에도 전국 자치단체별로 ‘고택 관광자원화’ 등 크고 작은 한옥관광개발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는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총사업비 1조 9000억원을 투입하는 ‘화성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기도 수원시 화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왕궁을 복원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성곽과 4대문 복원, 한옥마을과 전통거리, 행궁, 특화거리를 조성하는 이 사업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옥관광개발사업’이다. 경북 경주시는 1989년부터 1000억원을 투입한 ‘신라 밀레니엄 파크’ 조성사업을 오는 3월 마무리한다.5만 4000여평의 부지에 신라의 전성기였던 8세기 무렵 신라시대 민속촌과 공방촌을 조성하는 공사가 개장을 앞두고 있다. 경북에서는 또 안동시가 ‘전통 한옥 체험관광사업’, 영주시가 한옥집단지구와 숙박촌 테마파크를 내용으로 한 ‘선비촌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 부여시 역시 1994년부터 ‘백제 재현촌’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0년까지 3770억원을 들여 100만평의 부지에 잃어버린 왕국의 왕궁, 전통민속촌, 공방 등을 조성해 새로운 명소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서울시도 1993년부터 남산골과 북촌 한옥마을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전통 한옥군을 외국인을 대상으로 관광숙박촌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자치단체들이 추진하는 한옥관광개발사업은 대부분 차별성이 없어 자칫 세금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경기도는 조선, 충남은 백제, 경북은 신라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한옥마을, 전통거리, 민박촌, 공방 등 비슷한 사업이 많은 탓이다. 결국 각 지역별로 특화된 한옥관광개발사업이 되지 못하고 용인 민속촌 형태의 관광지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한옥 관광개발을 ‘한옥 건립’이라는 하드웨어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전통문화, 농어촌, 민예촌 등 선조들의 삶을 재현하고 체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주시 문두현 관광진흥계장은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한옥관광개발에 뛰어들고 있지만 상업적인 면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체성과 특색 없는 사업이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한옥관광개발사업은 막대한 사업비를 들여 새로운 한옥을 건립하기보다는 기존 한옥 보존과 함께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전통생활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6) 인왕산이 중인 터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6) 인왕산이 중인 터전

    위항(委巷)은 꼬불꼬불한 거리나 골목,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를 가리킨다. 양반들은 넓은 집에 살았으므로, 좁은 골목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인 이하였다. 한양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면 그 중간지대인 청계천 일대가 위항이었으며, 좁은 집들이 모여 있던 누상동(樓上洞) 누하동(樓下洞)을 중심으로 한 인왕산 일대도 위항이었다. 청계천 일대에는 역관이나 의원으로부터 상인에 이르기까지 재산이 넉넉한 중인들이 살았으며, 인왕산 언저리는 위항인 가운데 주로 서리나 아전들이 많이 살았다. ●왕기 서린 인왕산 서울의 물길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흐르는데, 도성 한가운데를 흐르는 이 물을 개천(開川)이라고 하였다. 백악의 남쪽, 인왕산의 동쪽 명당에 궁궐을 지었다. 조선시대 한양의 주민들은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종로를 경계로 하여 살았다. 왕족과 양반 관료들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는 직선 이북의 지역, 지금의 율곡로 양쪽 일대에 모여 살았다. 즉 계동·가회동·원서동·안국동 등의 북촌이 그들의 거주지역이었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白岳·北岳)이다. 백악의 좌청룡인 동쪽의 낙산은 밋밋하고 얕은 지세인데, 우백호인 서쪽의 인왕산은 높고도 우람하다. 인왕산의 주봉은 둥글넓적하면서도 남산같이 부드럽거나 단조롭지 않으며, 북악처럼 빼어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남성적이다. 그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할 무렵에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는 의논도 있었다. 이는 전설이 돼 민중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온 듯하다. 실제로 임진왜란을 겪고 나자 인왕산에 왕기가 있다는 소문이 다시 퍼져, 광해군 시대에 인왕산 기슭에다 경희궁(慶熙宮)을 세웠으며, 자수궁(慈壽宮)이나 인경궁(仁慶宮)도 세웠다. 실제로 이 부근에서 살았던 능양군(綾陽君)이 반정(反正)을 일으켜 광해군을 내몰고 왕위에 올라 인조(仁祖)가 되었으니, 인왕산 왕기설이 입증된 셈이다. ●장안의 명승지 인왕산 인왕산에는 왕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치도 좋았다. 서울의 명승지로는 반드시 인왕산이 꼽혔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의 국도팔영(國都八詠)에는 필운대(弼雲臺)·청풍계(淸風溪)·반송지(盤松池)·세검정(洗劍亭)을 포함했다. 인왕산 자락의 명승지가 서울 명승지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서울의 5대 명승지 가운데 인왕동과 백운동이 모두 인왕산에 있었다.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도심 가까이 있으니, 성안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명승지였다. 서울 시내에서 인왕산을 보면 앞 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습을 인왕산의 전부로 알고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이 부분에만 집과 관청이 들어섰고 사람이 살았으며, 역사가 이뤄졌다. 골짜기를 따라 여러 개의 마을이 생겼는데, 강희언(姜熙彦·1710∼1764)의 그림에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뒤 몇개씩 합해져서 지금의 법정동이 되었으며, 몇개의 법정동이 합해져서 다시 행정동이 되었다. 사직동부터 체부동을 거쳐 필운동·누상동·누하동·옥인동·효자동·신교동·창성동·통인동·통의동·청운동·부암동까지가 경복궁에서 볼 수 있는 인왕산의 동네들이다. 인왕산에는 약수터도 많아서 조선시대만이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서울 사람들이 자주 찾아갔다. 그러나 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군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며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러다가 입산통제 25년 만인 1993년 2월25일부터 출입이 자유로워져, 서울시민들에게 등산로가 다시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338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등산로가 14곳이나 되며,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인왕산의 네 구역 인왕산은 경치가 좋은 명승지면서 경복궁에서 가까운 주택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 건물이 모두 불타버려 폐허가 되기는 했지만, 양반과 중인들이 대대로 터를 물려가며 살았다. 그런데 명승지라는 이름에 비해, 이름난 정자들은 많지 않았다. 임금이 사는 경복궁이 너무 가까운 데다, 높은 곳에서 궁궐을 내려다보며 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이 일대에 건물을 지으려면 고도제한이 있다. 그래서 인왕산에 지어진 집들은 시대마다 그 구역이 달랐다. 경복궁이 정궁이었던 조선 초기에는 경복궁 옆동네에 관청만 있었고, 주택들은 많지 않았다.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가 인왕산에 있었지만,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지 않는 옆자락이었다. 그의 살림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는 뜻의 수성동(水聲洞) 기린교(麒麟橋) 부근에 따로 있었다. 수성동은 옥인아파트 자리라고 추정되는데,1960년대에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기린교를 없앴다고 김영상 선생이 증언하였다. 장동 김씨들이 모여 살았던 청풍계(지금의 청운동)나 위항시인들이 모여 활동했던 옥류동(지금의 옥인동)은 조선 후기에 와서야 활기를 띠었다. 임진왜란 중에 경복궁이 불타버려 오랫동안 폐허가 되자, 높은 곳에 집을 지어도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아전들이 관아와 거리가 가까운 인왕산 중턱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인왕산은 구역과 높이에 따라 고관들의 호화주택이나 별장, 위항인들의 초가집들이 섞이게 되었다. 6·25 전까지만 해도 누상동이나 누하동, 필운동 일대에는 초가집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다음 회에는 인왕산을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안평대군과 무계정사, 안동 김씨와 청풍계, 김수항의 청휘각과 송석원, 필운대와 육각현 순으로 살펴본다. ■ 역사기록이 전하는 인왕산 인왕산은 역사 기록에서만 보더라도 명산으로 꼽을 만하다. 조선시대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오산설림(五山說林)’에서 인왕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무학(無學)이 점을 쳐서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정하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하였다. 그러고는 백악과 남산을 좌청룡과 우백호로 삼자고 하였다. 그러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옛날부터 제왕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다스렸지, 동쪽을 향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무학이 “지금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200년 뒤에 가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고 답했다. 이는 후에 인조반정으로 현재화된다. 또한 성현(成俔·1439∼1504)은 ‘용재총화(齋叢話)’에서 인왕산의 경치를 자랑했다. 한성 도성 안에 경치 좋은 곳이 적은데, 그중 놀 만한 곳으로는 삼청동이 으뜸이고, 인왕동이 그 다음이며, 쌍계동·백운동·청학동이 또 그 다음이다.(줄임) 인왕동은 인왕산 아래인데, 깊은 골짜기가 비스듬히 길게 뻗어 있다고 말했다. 유본해가 서울의 명승지와 동네를 소개하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도 그 사실을 적시했다. 수성동은 인왕산 기슭에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다. 물 맑고 바위도 좋은 경치가 있어서, 더울 때 소풍하기에 가장 좋다. 이 동네는 옛날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이 살던 집터라고 한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이름을 기린교라고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그동안 한양 인왕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인들의 이야기를 몇차례 소개했다. 그 가운데는 관청의 아전들이 많았지만, 역관이나 의원들도 있었고, 서당 훈장도 있었으며,인쇄전문가도 있었다. 조선시대 신지식인 이라고 평가되는 중인은 과연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다. ●중인의 직업은 수십가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인문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지으면서, 서론이라고 볼 수 있는 사민총론(四民總論)에서 우리나라 백성을 네가지로 나누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부류를 신분으로 보지 않고 직업으로 보았다. 벼슬하지 못한 선비는 농·공·상(農工商) 가운데 한 직업을 택해 일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혹시 사대부라고 하여 농·공·상을 업신여기거나 농·공·상이 되었다고 하여 사대부를 부러워한다면, 이는 모두 그 근본을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직업은 네가지가 아니라 수십가지였다. 이 책의 총론에서 그 예를 들었다. “종실(宗室)과 사대부는 조정에서 벼슬하는 집안이 되고, 사대부보다 못한 계층은 시골의 품관(品官)·중정(中正)·공조(功曹) 따위가 되었다. 이보다 못한 계층은 사서(士庶) 및 장교·역관·산원(算員)·의관과 방외의 한산인(閑散人)이 되었다. 더 못한 계층은 아전·군호(軍戶)·양만 따위가 되었으며, 이보다 더 못한 계층은 공사천(公私賤) 노비가 되었다.” 이 가운데 “노비에서 지방 아전까지가 하인(下人) 한 계층이고, 서얼과 잡색(雜色)이 중인 한 계층이며, 품관과 사대부를 양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안의 흥망성쇠에 따라 “사대부가 혹 신분이 낮아져 평민이 되기도 하고, 평민이 오래 되면서 혹 신분이 높아져 차츰 사대부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인은 전문직업인 이중환이 말한 중인은 서얼과 장교·역관·산원·의관 등의 전문직업인이다. 서얼은 물론 양반이지만 진출에 제한받기 때문에 저절로 중인과 한 부류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위항문화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정조시대였는데, 정조(正祖)는 중인과 시정배(市井輩)를 이렇게 구분하였다. “중인에는 편교(校)·계사(計士)·의원·역관·일관(日官)·율관(律官)·창재(唱才)·상기(賞技)·사자관(寫字官)·화원(畵員)·녹사(錄事)의 칭호가 있다. 시정(市井)에는 액속(掖屬)·조리(曹吏)·전민(廛民)의 이름이 있다. 이것이 중인과 시정의 명분이다. 이들 밖에도 하천(下賤)의 복사역역자(服事力役者)들이 수만이나 되니, 군예(軍隸)·노복(奴僕)·공(工)·상(商)·용고(傭雇)같이 미천한 자들도 또한 낫고 못한 차이가 있다.” 정조가 말한 중인들의 직업을 요즘으로 치자면 장교, 공인회계사, 의사, 외교관 겸 동시통역사, 천문학자, 변호사와 법관, 서예가, 화가, 공무원 등이다. 정조는 중인 외에 시정(市井)과 하천(下賤)을 구분했는데, 이 세가지 계층을 아울러 당시에는 위항인(委巷人)이라고 했다. 사대부와 상민 사이의 중간계층인데, 넓은 의미의 중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임숙영이 지은 서문에 “유희경은 본래 위항인이다.”고 했는데, 본래는 천한 종이었다.‘화곡집’ 서문에는 “아깝게도 황군은 위항인이다.”라고 했는데, 황택후는 금위영 서리였다. 역관이나 의원 같은 중인만이 아니라, 훨씬 낮은 서리나 노예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위항인이다. 위항인은 글자 그대로 위항(委巷)에 사는 사람이다. 위(委)는 곡(曲)이고, 항(巷)은 ‘이중도(里中道)’이다. 즉 ‘마을 가운데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바로 위항이고, 작은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위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네에 사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조선 후기로 내려가면서 양반보다 부유한 중인들이 많아졌으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열가지 복을 누린 역관 조수삼 송석원시사 동인 조수삼(趙秀三·1762∼1849)의 호는 추재(秋齋)로 한양 조씨이다. 그의 후배 조희룡은 그의 전기를 지으면서 “그는 풍채가 아름다워 신선의 기골이 있었다. 문장력이 넓고도 깊었는데, 시에 가장 뛰어났다.”는 칭찬으로 시작했다. 사대부의 풍채와 문장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의 문집을 엮어준 손자 조중묵이 화원이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원래 직업적인 역관이 아니었는데,28세에 이상원의 길동무로 처음 중국에 따라갔다고 한다. “길에서 강남 사람을 만났는데, 같은 수레를 타고 가면서 중국말을 다 배웠다. 그 뒤론 북경 사람과 말할 때에도 필담(筆談)과 통역의 힘을 빌지 않았다.” 역관을 선택한 중인들은 사역원(司譯院)에서 몇년 동안 그 나라 말을 배웠는데, 그는 북경까지 가는 길에서 중국어를 다 배운 것이다. 여섯차례나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마도 그 뒤엔 역관의 신분으로 따라갔을 것이다. 19세기가 되면서 서울의 모습이 바뀌자, 전에는 듣고 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조수삼은 그러한 이야기를 71편 골라서 ‘기이(紀異)’라는 시를 쓰고 그 앞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군상의 소묘이면서도 사회변화를 보여준다. “내 나무(吾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라 말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말하였다. 심하게 바람 불거나 눈 내리는 추운 날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내 나무’라고) 외치다가, 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속에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바로 고본 경서였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추위에도 열두 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쪽 거리 북쪽 거리에서 ‘내 나무’라고 외치네. 어리석은 아낙네야 비웃겠지만 송나라판 경서가 가슴속에 가득 찼다오.” 고본 경서를 읽는 것으로 보아 나무 장사꾼은 양반계층에서 몰락한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는 존댓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아,“내 나무”라고 반말을 씀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웠던 듯하다. ●양반에 60년 뒤진 중인 그러나 송나라판 경서가 가슴속에 가득 찼어도 쓸 데가 없는 것이 당시 사회였고, 그런데도 끝까지 양반의 알량한 자존심과 경서를 내버리지 못하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그에 비하면 조수삼은 행복한 중인이었는데, 조희룡은 그의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 사람들은 추재가 지닌 복이 모두 열가지라고 하면서, 남들은 그 가운데 하나만 지녀도 평생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가지란 첫째 풍도(風度), 둘째 시문(詩文), 셋째 공령(功令), 넷째 의학, 다섯째 바둑, 여섯째 서예, 일곱째 기억력, 여덟째 담론, 아홉째 복택, 열째 장수이다.” 88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정말 장수하여 남의 부러움을 샀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공령문인데, 과거시험 때에 쓰는 시나 문장이다. 양반들은 대부분 과거시험을 보았으며, 답안지를 쓰기 위해 공령문을 배웠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면 더 이상 배울 필요도 없고, 쓸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문집에 공령시가 실리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그의 문집에는 공령시가 57편이나 실렸다. 그가 공령시를 잘 지었다고 소문났지만, 자기가 시험을 보기 위해 연습한 것이 아니라 양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연습한 것이다. 그는 61세에 경상도 관찰사 조인영의 서기로 따라갔는데, 실제로는 가정교사이다. 그는 83세에야 진사에 합격했는데, 영의정 조인영이 시를 짓게 하자 ‘사마창방일구호칠보시(司馬唱榜日口呼七步詩)´를 지었다. 뱃속에 든 시와 책이 몇백 짐이던가. 올해에야 가까스로 난삼을 걸쳤네. 구경꾼들아. 몇 살인가 묻지를 마소. 육십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합격자 명부인 방목에 그를 유학(幼學)이라고 표시했으니,83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양반들은 20대 초반에 이미 진사에 합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응시했는데, 그는 60년이나 뒤처졌다. 시의 제목은 “진사시 합격자를 발표한 날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입으로 읊은 시”이다. 조인영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그 기쁨을 시로 표현해 보라는 주문을 한 것인데,“가까스로” 합격해 난삼을 걸친 기쁨과, 몇백 짐의 책을 외우고도 60년 늦게 합격한 중인의 한을 함께 표현했다. 그나마 영의정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전문직업을 지녀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으면서도 신분적으로는 60년이나 양반에게 뒤진 것이 바로 중인의 한계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어린이책꽃이]

    ●이주헌 아저씨의 날아다니는 미술관 여행(이주헌 지음, 상상공방 펴냄) 미술관이라는 말은 미술박물관의 준말이다. 미술관은 박물관의 일종이다. 박물관을 의미하는 영어 뮤지엄은 그리스어 무세이온(museion)에서 온 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가지 학예의 여신(뮤즈)의 전당이라는 뜻이다. 동화 형식의 재치있는 글을 통해 그림 지식과 미술관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책. 반 고흐·고갱·세잔 등 후기인상파, 쇠라·시냐크 등 신인상파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9500원.●건축가 김수근 공간을 디자인하다(황두진 지음, 나무숲 펴냄) 서울의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가회동, 재동, 삼청동, 원서동 등을 아우르는 지역. 지금도 한옥이 많이 보존돼 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건축가 김수근은 이 북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나의 집은 서울의 북촌”이라고 할 정도로 북촌을 사랑한 그는 서울에서 사는 동안 여러번 이사를 하면서도 늘 북촌을 벗어나지 않았다. 올림픽체조경기장, 경동교회, 한계령휴게소, 청주박물관 등의 실물사진을 통해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1만 2000원.●수라간에 간 홍길동, 음식의 역사를 배우다(김선희 지음, 파란자전거 펴냄) 육당 최남선은 곰탕과 설렁탕이 고려시대 몽골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몽골의 ‘슐루’라는 음식과 이름·요리법 등 여러가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그러나 일반적으로 설렁탕은 조선의 ‘선농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임금과 정승판서가 음력 2월 동대문밖(현재 제기동) 선농단에서 1년동안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유래된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음식의 역사를 살핀 음식역사 동화.8700원.●흙속의 작은 우주(앨빈 실버스타인 등 지음, 김수영 옮김, 사계절 펴냄) 산이 낙엽으로 뒤덮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의 양을 토양동물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지렁이, 톡토기, 쥐며느리, 개미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낙엽을 먹은 지렁이는 배설을 통해 2㎜이하로, 톡토기는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로 분해한다. 동물의 배설물은 ‘자연 쓰레기’중 상당한 양을 차지한다. 똥풍뎅이류는 배설물만을 전문으로 처리한다. 어린이를 위한 토양동물 이야기.9800원.
  • 경북도지자체 ‘한옥 관광 프로젝트’

    ‘한옥으로 눈을 돌려라.’ 선비 문화의 숨결이 가득한 고택이 즐비한 경주·안동·영주 등 경북도 내 역사·문화도시들이 한옥을 활용한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옥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것이다. ●경주, 보조금 지급 확대 황남·황오·불국사 등 6개 지구 등에 2만여채의 한옥이 있는 경주시는 올해부터 전통 한옥 건축물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대폭 확대키로 했다. 한옥 보급 확대로 역사문화도시의 경관을 최대한 살려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기존 ㎡당 15만원씩 지급해 오던 한옥 단독주택의 신축 보조금을 25만원으로 인상하고, 그동안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았던 근린생활시설 용도의 한옥 신축에 ㎡당 10만원, 한옥 수리에도 5만원씩을 각각 지원할 계획이다. 또 보조금 지급대상도 종전 미관지구와 사적지 주변, 주요 관광도로변 등에서 경주 전역으로 확대했다. 시는 올해 이들 사업에 5억∼7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안동, 한옥 체험관광 추진 안동시도 오는 2015년까지 총 100억원을 들여 전통한옥 체험 관광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2004년부터 추진 중인 이 사업은 관광객들이 농암종택, 지례예술촌, 수애당, 봉정사, 하회마을내 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전통의 숨결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샤워장 및 수세식 화장실, 싱크대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택 15채에 대한 사업이 완료됐으며, 지난해말까지 3만 1000여명(외국인 4800여명)의 관광객이 한옥체험을 했다. 숙박은 4인 기준 5만원선. 현재 안동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종갓집 37곳, 고택 34곳, 사찰 부속건물 등 모두 312곳의 전통한옥(고택)이 있다. ●영주에는 선비촌 재현 이에 앞서 영주시는 지난 2004년 순흥면 청구리에 한옥촌인 선비촌을 개장했다. 이곳에는 기와집 5채를 비롯해 초가집 5채, 강학당, 정자, 대장간 등 28채의 전통가옥과 부대시설을 갖췄으며, 조선시대 선비와 서민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숙박체험 1박에 4인실 기준 5만원,2인실 기준 2만원(초가집)∼2만 5000원(기와집). 지난해 말까지 관광객 165만여명이 다녀가는 등 지역 관광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선비촌은 지난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 3000여명이 방문, 한(韓) 문화 체험관광지로 인기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말레이시아 페냉에서 열린 ‘2007 한국 관광박람회’때 선비촌 관광상품을 판매했다. 영주시 관계자는 “박람회에서 현지 여행업계로부터 선비촌이 가장 한국적인 관광지로 주목받았다.”면서 “올해 외국인 관광객 1만명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고궁으로 가는 뮤지컬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서울 고궁에서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왕의 생애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고궁에서 정기 공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조선시대 왕 가운데 한 명을 소재로 극화하기로 하고 지난해 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했다.시정연구원의 안이 나오는 대로 공모를 통해 전문 예술단체를 선정, 뮤지컬 제작을 의뢰할 예정이다. 유료로 주 2회 야간에 선보인다. 경희·덕수·창덕·창경·경복궁 등 서울에 있는 5개 고궁 가운데 한 곳을 고르는 중이며 광화문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경복궁은 제외될 전망이다. 하지만 문화재 훼손을 우려해 지금까지 고궁 공연은 일회적인 클래식 정도로 제한돼온 점을 감안하면 고궁 뮤지컬 상설화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주말 지진 ‘전국이 흔들’] “대륙간 판 경계 충돌…한반도까지 파장 일으켜”

    [주말 지진 ‘전국이 흔들’] “대륙간 판 경계 충돌…한반도까지 파장 일으켜”

    한반도에 새로운 지진대가 생겨난 걸까. 아니면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의 충돌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한반도 내에 지진이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다.‘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최근 들어 진도 5.0 이상의 지진도 잦아지고 있다. 크고 작은 지진이 삼국시대 이후 2500회나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판 스트레스? 관측기기 향상? 지진 전문가들도 지진이 잦아진 이유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판 스트레스’에 따른 잦은 지각 뒤틀림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유라시아판과 인도판간 충돌 에너지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상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륙간 판 경계의 충돌파가 판 내부에 속하는 한반도까지 파장을 일으켰다는 진단이다. 일각에서는 한반도 지역에 새로운 지진대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해석도 내놓고 있다. 또 일본 열도를 지나는 환태평양 조산대가 한반도 활성화단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견해도 제시하고 있다. 김기영 강원대 지구물리학과 교수는 “활발해진 대륙판 간의 충돌이 한반도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재복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우리나라 지진 역사를 보면 1600∼1700년대에 지진이 활발했는데 당시 중국과 일본은 이보다 더 활발했다.”면서 “지각 판들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이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지진 관측기기의 성능 향상을 빈번해진 지진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기상청 지진감시과 박종찬 사무관은 “지진 활동이 잦아진 것은 지진 관측망이 확충되고, 분석기술이 향상되면서 예전에 관측하지 못한 작은 지진들이 지금은 감지되기 때문”이라면서 “이로 인해 전체 지진발생 횟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에 지진이 2500회? 1905년 인천관측소에 근대적 지진계가 설치된 이후 진도 5.0 이상 지진은 모두 6차례 일어났다.1936년 7월4일 지리산 쌍계사 지진이 진도 5.2의 강진으로 기록돼 있다. 기상대가 첨단장비로 관측을 시작한 1978년부터 2006년까지 진도 4.0 이상 지진은 모두 35차례 발생했다.3.0 이상은 230여차례에 이른다.1978년 9월16일 충북 속리산 부근에서 진도 5.2의 강진이 일어났다.1980년 평북 삭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진도 5.3에 달한다. 이 지진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1978년 10월7일 충남 홍성과 2003년 3월30일 백령도 서남서쪽 80㎞ 해역에서는 각각 진도 5.0의 지진이 일어났고 전남 홍도 인근 해상에서는 1994년과 2003년에 진도 4.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만 진도 2.0∼3.5 사이의 지진이 50차례나 있었다. 한편 1900년대 초 일본학자들이 연구한 한반도 지진 사례에 따르면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에는 모두 2500여차례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779년 경북 경주 지방에서는 지진으로 100여명이 사망했고,1311년 11월에는 고려 왕궁이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여경 김경두 기자 kid@seoul.co.kr
  • 고궁으로 가는 뮤지컬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서울 고궁에서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왕의 생애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고궁에서 정기 공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조선시대 왕 가운데 한 명을 소재로 극화하기로 하고 지난해 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했다.시정연구원의 안이 나오는 대로 공모를 통해 전문 예술단체를 선정, 뮤지컬 제작을 의뢰할 예정이다. 유료로 주 2회 야간에 선보인다. 경희·덕수·창덕·창경·경복궁 등 서울에 있는 5개 고궁 가운데 한 곳을 고르는 중이며 광화문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경복궁은 제외될 전망이다. 하지만 문화재 훼손을 우려해 지금까지 고궁 공연은 일회적인 클래식 정도로 제한돼온 점을 감안하면 고궁 뮤지컬 상설화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아! 그곳] 순천만 갈대숲

    [아! 그곳] 순천만 갈대숲

    글 양동식 경희한의원 원장, 시인 사진 윤종근 사진작가 순천(順天)은 문자 그대로 순(順)한 하늘(天)이다. 순천은 기후도, 인심도, 산천도 순하여 모든 사물에게 평안과 생명력을 안겨준다. 가끔 강남으로 돌아가야 할 제비가 이곳의 따뜻한 날씨에 머뭇거리다가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한겨울에 월동하는 나비와도 마주친다. 그리고 순천만의 갈대숲은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순천만은 갈대의 군락지로서 람사협약에 가입된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그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한국관광공사에서 10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순천만의 갈대는 새싹이 돋아 꽃이 피고 질 때까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순천만에는 사시사철 이름 모를 새들이 들끓는다. 겨울철 갈대숲은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도요새, 청둥오리가 점령한다. 나는 지천으로 널린 갈대로 배를 만들어 순천만에 띄우고 싶은 꿈을 꾼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몇 해 전에 볼리비아 여행객에게 티티카카호에서 파는 갈대배의 사진과 모형갈대배를 사오도록 했다. 신문에 <순천만에 갈대배를 띄우자>라는 칼럼도 발표하고 그 취지를 순천시청의 인터넷 제안방으로 보내기도 했으나 아직 채택되지 못한 모양이다. 공해도 없고 철새가 놀라지도 않을 갈대배를 순천의 명물로 만들면 어떨까? 순천에 가면 갈대배를 탈 수 있다는 꿈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지금 순천은 갈대축제(10월 14일~22일)로 한창이다. 손바닥만큼 한 갈대배, 갈대빗자루를 만드는 체험도 즐기고 울타리 만들기, 갈대책갈피, 갈대액자도 볼 수 있으며 갈대숲의 미로(迷路)에서 유년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모를 심고 제일 먼저 햅쌀이 나오는 곳도 순천이다. 동물과 식물이 살아가기에 알맞으면 사람에게도 좋을 것임에 틀림없다. 순천은 교통의 중심지로 지방철도청이 들어섰던 도시다. 순천에서 기차를 타면 서울, 부산, 목포, 여수까지 못갈 데가 없다. 더구나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여수공항이 있어 순천으로 오가기에 더욱 편리하다. 순천에서는 놀랄 만한 장관이나 기기묘묘한 풍물 따위를 기대할 일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온화하며 순박한 인심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곳에 비하여 결코 손색이 없으면서도 인공적인 손길이 적은 낙안읍성과 음식축제, 승보종찰 송광사, 고색창연한 선암사, 작설차의 명산지 명도다원 이외에도 주암호, 고인돌공원, 승주골프장, 월등 복숭아단지 그리고 순천만의 생태체험관 등 헤아릴 수 없이 볼거리가 많다.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순천은 오묘한 데가 많은 도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선 순천시의 남쪽은 바다로 트여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며 그 풍광 또한 아름답다. 예컨대 와온 갯벌에서 나는 꼬막, 그것을 삶아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혀와 눈이 한껏 즐겁다. 어디 그뿐인가. 눈이 검어서 눈게미로 불리우는 새끼숭어를 회치거나 국을 끓여 먹으면 별미도 별미려니와 건강식품으로도 최고다. 그리고 별량에서 잡히는 짱뚱이에 갖은 양념을 해서 전골을 끓이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순천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들판에는 각종 농산물이 풍부하다. 쌀은 물론 무, 배추, 오이, 미나리, 토마토 등등…. 해룡면 월전 사거리의 순천농산물 도매시장이 그 실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가지의 변두리 야산에는 철따라 쑥이며 냉이, 고사리 등 각종 산나물이 넘쳐난다. 인접한 여수에서 잡히는 정어리와 순천의 고사리를 함께 끓여 밥상에 올리면 숟가락이 휘어지고, 볼따구니가 미어터진다. 이와 같이 순천은 바다와 야산과 들판이 어우러져 풍부하고 다양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데 어찌 인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자고로 순천에 가서는 인물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여인들의 미색이 뛰어나서 순천으로 장가들려는 총각들이 줄을 섰다. 어디 그뿐이랴. 한국 문학의 금자탑으로 평가하는 소설가 김승옥을 필두로 조정래, 서정인, 아동문학가 정채봉은 물론 시인 송수권, 서정춘, 허형만도 모두 순천의 토양이 길러낸 문인들이다. 심지어 미국에서 건너온 린튼가의 3세로서 선교와 의료로 헌신하는 인요한도 순천의 토박이가 되었다. 잠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마라톤 선수 남승룡, 《강남악부》를 펴낸 조현범이 모두 순천사람이다. 조선시대 이곳으로 유배를 왔던 조위는 옥천에 임청대를 쌓고 옥처럼 맑은 시냇물에서 건져 올린 피리탕에 탁주를 마시며 <만분가>를 지었다. 또한 제주도에 표류했던 화란 선원 하멜 일행이 서울에 억류되었다가 지방으로 내려온 곳도 순천, 강진 등이었다. 그들은 따뜻하고 인심 좋고 먹을거리 많은 순천에서 품을 팔며 잘 먹고 잘 살았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옥수 신창원이 몸을 숨긴 곳도 순천이었다. 이와 같이 순천의 하늘, 땅, 사람은 누구에게나 평안과 여유를 주는 곳이다. 그래서 제비도 나비도 철새도 하물며 사람까지도 순천에만 오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얼마 전의 신문 보도에 의하면 장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순천이 꼽혔다. 미물조차 오래 머무는 이곳, 천수를 누리려면 순천에 와서 사시라고 권하고 싶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새 1만원·1000원권 22일 발행

    새 1만원·1000원권 22일 발행

    작아지고 화사해진 새 돈 1만원권과 1000원권이 오는 22일 선보인다. 지난해 1월 나온 새 5000원권까지 포함하면 1983년 이후 24년만에 지폐가 다 바뀌게 된다. 새 돈은 앞면의 인물초상인 세종대왕(1만원권)과 퇴계 이황(1000원권)을 제외하고 크기·배경도안·색깔·위폐방지책 등 전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크기는 1만원권이 가로 15㎜ 세로 8㎜,1000원권이 가로 13㎜ 세로 8㎜ 줄었다. 그러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현금자동출금기(CD) 교체비율이 75%에 머물러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신권 발행을 앞두고 새 돈에 대한 궁금증 10가지를 풀어본다. (1) 인물초상화 신·구폐가 똑같나?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확실히 다르다. 새 1000원권의 이황은 광대뼈를 대폭 깎아내고 눈꼬리도 살짝 내리는 등 상당한 ‘성형수술’을 거쳐 ‘꼬장꼬장한 유학자’에서 순한 할아버지 스타일로 바뀌었다.1만원권의 세종대왕도 턱수염을 좀 넓히고 눈꼬리를 짧게 줄였다. 둘 다 시선은 정면응시로 처리해 기존의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적인 분위기를 바꿨다. 한국은행은 “원래 초상화를 기초로 작가가 새로 조각했기 때문에 조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 새 돈의 위조방지책은 몇가지? 22가지다. 몇가지 소개하면 우선 1만원권 초상화의 왼쪽에 있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홀로그램이다. 둘째, 왼쪽 옷자락 옆의 긴 무늬 안에 ‘WON’자가 숨어 있다. 셋째, 액면가 숫자는 빛에 따라 변한다. 넷째,1만원에는 완전히 숨은 은선이,1000원은 부분적으로 숨은 은선이 있다. 다섯째, 그림 없는 왼쪽을 빛에 비추면 숨어 있는 초상화와 액면가 숫자가 세로로 나타난다. (3) 새 돈으로 숨은 그림찾기를? 10배율 이상의 돋보기로 ‘숨은 그림 찾기’를 할 수 있다.1만원권의 세종대왕 흰색 옷깃에 한글창제 당시의 28자모가 미세문자로 조각돼 있다. 지폐의 앞뒷면에 ‘BANK OF KOREA’ 또는 액면가 숫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미세문자는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이 불가능하다. (4) 지폐는 종이로 만들었나? 중세의 지폐는 글자 그대로 종이로 만들었다. 근·현대에 와 면화가 섞이기 시작했다. 한은 화폐박물관에 따르면 1983년부터는 ‘순면 100%’를 원료로 사용했다. 따라서 엄밀하게 지폐는 ‘면폐’로 바꿔 불러야 한다. (5) 신권의 두 가지 과학 기구는 국보 몇호? 1만원권 뒷면에는 천체관측기구 ‘혼천의’가 들어간다. 국보 230호다. 뒷면 바탕은 고구려 때부터 전해온 천문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때 제작된 별자리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다. 국보 228호. 구권 1만원권에는 국보 229호인 물시계(자격루)가 들어 있었다. 국보 중에 과학과 관련된 것은 단 3개인데,3개 모두 화폐에 사용됐거나 사용된 것이다. (6) 시중 화제인 ‘10원,100원 동전 모으기’ 돈이 될까? 결론부터, 안 된다. 수집상에게 가치있는 동전은 ‘미사’라고 전혀 사용하지 않은 동전을 말한다. 지문도 없고, 산화조차 일어나지 않도록 보관한 것이어야 한다. 최근 한은 발권국에 하루에 100통씩 전화가 오기도 한다.“해당 동전을 가지고 있는데 얼마주고 사겠느냐.”는 질문이다. 한은은 “10원짜리 동전은 10원에 바꿔준다.”고 답한다. (7)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새 돈의 번호는? 101번부터다.1∼100번은 곧장 한은 화폐박물관에 전시된다.101∼10000번까지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경매를 하기 때문이다. 다만 10001번부터는 22일 오전 9시30분에 한은 본점 창구에서 액면가로 교환된다. 신권 발행일에는 사람들이 신권을 교환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 첫날 교환하는 장수는 1인당 액면가에 따라 각각 100장씩으로 제한된다.16개 지역본부도 신권을 교환한다. (8) 새 돈이 나오면 옛날 지폐를 모아야 할까? 동전은 발행연도 때문에 ‘미사’가 가치가 있다. 지폐는 발행연도가 없기 때문에 발행번호를 중심으로 수집한다. 우리나라는 단순히 앞번호를 선호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특별한 발행번호가 각광받는다. 자신의 생년월일이라든지,‘1234321’나 ‘888888’ 등과 같은 특이한 넘버들의 구성을 말한다. (9) 한은 총재나 조폐공사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지폐 번호를 고를 수 있나? 고를 수 없다. 만약 고른다면 ‘특권’을 행사한 대가로 옷벗고 사표써야 하기 때문이다. (10) 지폐에 들어 있는 그림 두 점은 누구 작품? 1만원권의 앞면 배경은 ‘일월오봉도’로 조선시대 임금의 상징물이다. 글자 그대로 해와 달,5개의 봉우리가 그려졌는데, 화가미상이다.1000원권의 뒷면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다.1000원의 앞면 기와집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내 ‘명륜당’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책꽂이]

    ●레닌그라드의 성모 마리아(데브라 딘 지음, 송정은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페트로 파블로프스키 요새가 바라다 보이는 네바강변에 줄지어 선 웅장한 에르미타주 미술관.1941년 나치의 침공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독일군이 진격하자 미술관 직원들은 그림과 조각 등을 나무상자에 포장해 우랄 지방으로 보냈다. 잇단 포격 속에서도 미술관 직원들은 900일 동안 미술관에서 생활하며 문화재를 지켰다. 배가 고파 액자를 붙이는 풀인 아마인유를 끓여 젤리를 만들어 먹으면서도 그들은 미술관을 떠나지 않았다.2000여명의 직원 가운데 40여명이 이곳에서 굶어 죽었다. 나치 치하 900일 동안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킨 한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1만원.●앙구스(오를란두 파에스 필료 지음, 송필환 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신의 사명을 받은 스코틀랜드 앙구스 맥라클란 가문의 전사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역사판타지.9세기 바이킹의 유럽 진출,11세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진행된 십자군 전쟁 등이 배경이다. 앙구스 가문의 시조 앙구스 1세의 탄생과 활약을 그린 1권 ‘위대한 신화의 출현’. 가문의 성검을 들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앙구스 후손들의 영웅담을 그린 2권 ‘타오르는 붉은 십자가’가 번역돼 나왔다.2009년까지 7권으로 완간될 예정. 각권 1만원.●북비(하용준 지음, 글누림 펴냄) 조선시대 사도세자를 호위하던 무관 이석문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역사소설.‘북비’(北扉)는 북쪽으로 난 여닫이 외문짝이라는 뜻. 경북 성주 한개마을에서 태어난 이석문의 생가는 ‘북비고택’으로 불린다. 영조의 정치적 비호 아래 있는 노론세력과 사도세자를 감싸고 있는 소론세력 등이 등장한다. 조선 전통의 심신수련법, 시골장터와 주막풍경, 말(馬)부리는 법, 군관들의 녹봉 수령과정, 궁녀 선발과정 등 시대상이 잘 반영돼 있다.15권 중 이번에 세권이 나왔다. 각권 9800원.●올리버 트위스트(찰스 디킨즈 지음, 윤혜준 옮김, 창비 펴냄)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장편소설. 영국 포츠머스에서 태어나 의회 출입기자를 거쳐 작가로 입문한 작가는 ‘피크윅 문서’ ‘니콜러스 니클비’ ‘막내 도릿’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 올리버는 고아원을 탈출해 무작정 런던으로 향한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어둡고 차가운 뒷골목. 소매치기 무리에 흘러들어간 올리버는 도둑으로 몰리지만 누명을 벗고, 우연히 알게 된 신사의 호의로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다시 소매치기 일당에게 납치를 당한다. 올리버의 모험과 역경, 뒷골목의 음모와 배신 이야기. 전2권 각권 8000원.●어느 멋진 순간(피터 메일 지음, 노지양 옮김, 꽃삽 펴냄) 와인을 소재로 한 본격 문학작품. 최고급 와인으로 꼽히는 ‘부티크 와인’ 시음회, 고전적 와인 양조법인 피자주 방식,9·10월 포도를 수확해 담근 방당주, 보르도산 적포도주 클라레, 와인저장고 캬브 등 흥미진진한 프랑스 와인의 세계가 펼쳐진다.1만원.
  • 흡연·폐암 연관성 7년공방 오늘 법정 결판

    흡연·폐암 연관성 7년공방 오늘 법정 결판

    국내 첫 담배 소송 판결이 18일 오후 2시에 내려진다.1999년 9월과 12월 폐암환자와 가족 등은 “담배를 피우다 폐암 등에 걸렸다.”며 담배인삼공사(현 KT&G)를 상대로 4억여원의 배상 소송을 냈다. 그동안 원고측 암환자 4명은 사망했다. 이번 소송 사건은 일반적으로 6개월을 넘기지 않는 민사 재판의 통례를 깨고 만 7년 이상 지루하게 전개돼 왔다. 선고를 앞두고 양측의 쟁점을 정리해 봤다. ●원고·피고 양측의 견해 소송의 쟁점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니코틴의 중독성 여부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고지 ▲제조물책임법(PL법) 적용 여부 등 4가지다. 우선 원고측은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10.8배 높다는 미국 정부의 보고서를 근거로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암은 수많은 요인에 의해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원고측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KT&G측은 주장한다. 니코틴의 중독성에 대해서 원고측은 대부분의 흡연자가 금연을 원하지만 좀체 끊지 못하는 현실을 강조했다.“흡연자의 70%가 담배를 끊고 싶어하지만 고작 2.5∼3%만이 성공한다.”는 미국의 니코틴 중독 전문가 닐 베노위츠 박사의 미국내 법정 증언을 논리의 근거로 든다. 반면 피고측은 니코틴의 내성(耐性)이 심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헤로인과 같은 약물은 투여량을 점차 늘려가야 효과를 보는 내성이 강하지만, 니코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원고측은 또 KT&G가 구체적인 유해성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상적으로 유해하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담배 속에 4000여종의 독성물질과 40종의 발암물질이 있다고는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측은 “흡연의 유해성은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조선시대부터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외국 판결은 어떻게 났나 원고측은 외국에서의 최근 판결 경향도 강조하고 있다.80년대 말까지는 흡연자의 책임을 강조해 모두 패소했지만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이 폭로되면서 90년대부터 양상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담배회사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대중을 속여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겹쳐 거액의 배상금이 선고된 사례가 있다.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40년간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다 폐암에 걸렸다며 담배회사 필립 모러스를 상대로 소송을 낸 리처드 보켄의 손을 들어주었다. 보켄은 최종적으로 5550만달러(약 520억원)를 배상받았다. 그러나 피고측은 이런 승소 사례가 아주 예외적인 것이라고 반박한다. 미국에서 현재까지 약 8000건의 흡연 관련 소송이 있었으나 2003년까지 배심 차원에서 원고가 승소한 것은 16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23건의 흡연 소송이 있었는데 모두 패소했다고 KT&G는 주장하고 있다.
  • [이건호의 뷰티풀 샷] 드라마 ‘황진이’를 보고

    [이건호의 뷰티풀 샷] 드라마 ‘황진이’를 보고

    최근 종영된 드라마 ‘황진이’는 패션피플들의 큰 찬사를 받을 만했다. 형형색색의 의상과 촬영세트, 아름다운 경관의 촬영장소는 드라마의 내용을 떠나서라도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사실 필자도 아름다운 볼거리 덕에 드라마를 찾아가며 시청했다. 가뜩이나 입맛이 까다로운 패션계 사람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는 건, 그것 하나만으로도 비주얼적으로 대성공인 셈이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국내 드라마의 높아진 수준에 흡족해하며 제작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특히나 의상과 머리스타일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전통적인 고증과 현대적인 감각이 적절히 어우러짐이 그야말로 완벽한 퓨전스타일이었다. 사실 패션화보에서는 이렇듯 스타일링이 가미되어 있는 다양한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전통한복이 주는 표현의 제약을 극복함과 동시에 모던한 비주얼 속에도 우리것의 아름다움을 가미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유명 한복디자이너들이 해외 유수의 컬렉션에서 한복을 모티브로 한 아름다운 의상으로 각광을 받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사진은 2006년 ‘W’지 3월호에 실린 한복 화보중 한컷이다. 의상의 역할도 컸지만 헤어스타일링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머리형태가 잘 표현된 컷을 골라 보았다. 조선시대의 여인의 머리는 영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하는데, 영조 이전에는 가채(가발로 모양을 내어 본머리 위에 얹는 머리)의 과도한 유행으로 여인들의 사치가 극대화되었다. 이 지경이 되자 영조임금이 특단의 조치로 가채금지령을 내리면서 이후 화려했던 머리모양은 어느정도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이를 모티브로 사진에서는 화려했던 조선시대의 얹은머리를 모던하게 변형시켜 보았다. 같은 무채색 계열의 의상과 머리꽂이 장식으로 세련됨을 극대화시켰고, 흰색의 치마끈이 포인트 역할을 해 주었다. 생기있는 피부질감의 표현과 어두운 부분의 무게감을 위해서 텅스텐 조명을 사용했고, 약간의 블러(이미지가 흔들리게 촬영하는 기법)를 주어 사진에서 느껴지는 관능미를 배가시켰다. 세련되고 화려한 비주얼이 완성되었고, 처음으로 해본 작업이었지만 섬세한 손놀림으로 견고하게 쌓여져 가는 머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자. 사진에서 섹시한 황진이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으시는지? 사진작가
  • 사찰옆 ‘골프연습장 증축’ 법정다툼

    사찰옆 ‘골프연습장 증축’ 법정다툼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와 군인공제회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골프연습장 증축 논란이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게 됐다. 용주사측은 인근에 골프연습장을 증축하면 사찰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수행 환경이 훼손된다며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군인공제회측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만큼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법원의 판결이 주목된다. 군인공제회는 2005년 11월부터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남수원골프장 내에 위치한 1층짜리 골프연습장을 증축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공제회측은 연습장건물을 지상 2층으로 증축하면서 기존 7타석을 48타석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37m 높이의 15개 철구조물을 45m 높이의 19개로 각각 늘리고 연습장 길이도 90m에서 182.2m로 확장할 계획이다. 용주사는 골프연습장 공사가 90%쯤 진행된 지난해 8월쯤 법당 뒤편에 세워진 골프연습장 철탑을 본 후에야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용주사측은 이에 반발해 스님과 신도들이 공사 현장을 찾아가 집회를 여는 등 공사중단을 요청했으며 문화재청과 국방부, 청와대 등에도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공사금지 가처분신청 이에 따라 용주사측은 최근 군인공제회, 국방부, 공군 모 부대 등을 상대로 “연습장 증축공사와 관련된 일체의 공사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며 수원지법에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문제의 골프연습장은 용주사와는 법당 왼쪽 뒤편에 있는 산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용주사는 가처분신청서에서 “골프연습장은 용주사가 위치한 문화재보호구역과 인접해 있는 데다 국보급 유물인 범종과는 250여m, 용주사내 사찰과는 1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등 용주사의 역사·문화·경관적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에는 골프연습장에서 공치는 소리가 들려 수행에 방해가되는가 하면 가끔씩 사찰 안으로 골프공이 날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주사 최상근(56) 종무실장은 “사찰만 문화재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숲도 문화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전통사찰 보호와 관련한 법을 위반하는 등 충분한 심사 없이 이뤄진 허가인 만큼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로 풀지 못해 안타까워” 이에 대해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법정으로까지 가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용주사는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긴 후 절을 다시 일으킨 사찰로 수원, 화성, 안양 등 경기남부 12개 시·군에 70여개의 말사를 두고 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세계 최대 도자벽화

    [거리 미술관 속으로] 세계 최대 도자벽화

    서울 청계천 도자(陶瓷)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광교부터 삼일교까지 벽면을 병풍처럼 휘감고 있다. 청계천 반차도는 높이 2.4m, 길이 186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벽화이다. 벽에 붙은 도자타일(30×30㎝)만 4960장이다. 반차도는 고증한 작품인 동시에 창작품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200년을 넘나들며 작품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원본은 정조가 1795년 2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환갑을 맞아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 화성과 현륭원(사도세자 무덤)을 다녀와서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 나왔다. 이 책에 단원 김홍도 등이 창덕궁에서 광통교를 지나 화성으로 가는 왕의 행차 모습을 흑백 목판화로 그렸다. 1994년 한영우 전 서울대 교수가 목판화에 채색을 입혔다. 세월 탓에 색이 바랜 채색 목판화와 뒷모습을 그린 두루마리 행렬도를 고증해 작품의 색깔을 하나하나 정했다. 가로 15m, 세로 18m의 반차도를 청계천 도자벽화로 확대 제작하면서 강석영 이화여대 교수가 채색의 명암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헌정 작가가 조선시대 백자를 재현해 타일 원판을 제작하고, 여기에 17가지 안료를 써서 인물 1779명과 말 779필을 그렸다. 도자를 빚어 굽고 채색하는 일은 모두 손으로 했다. 이로써 과거의 유물이 생명력을 지닌 현재의 미술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작품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정조는 왕의 가마 정가교(正駕轎)를 타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한 터라 어머니 혜경궁 홍씨 앞에 갈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혜경궁 홍씨의 자궁가교(慈宮駕轎)에 이어 정조가 탔다는 좌마(座馬)가 보이지만 정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일부러 그리지 않았다. 왕을 대충 작게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반차도는 한 폭의 풍속화이기도 하다. 나인의 웃는 표정, 찡그린 표정조차 생생히 살아있다. 작품을 제작, 기증해 도자벽화에 이름을 새긴 조흥은행도 이제 역사가 됐다. 신한은행과 합병하면서 그 이름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영우 교수는 “왕조의 위엄, 질서와 더불어 낙천적이고 자유분방한 인물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면서 “정조 반차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독일 나치군이나 북한 인민군과 확연히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사찰옆 ‘골프연습장 증축’ 법정다툼

    사찰옆 ‘골프연습장 증축’ 법정다툼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와 군인공제회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골프연습장 증축 논란이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게 됐다. 용주사측은 인근에 골프연습장을 증축하면 사찰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수행 환경이 훼손된다며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군인공제회측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만큼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법원의 판결이 주목된다. 군인공제회는 2005년 11월부터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남수원골프장 내에 위치한 1층짜리 골프연습장을 증축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공제회측은 연습장건물을 지상 2층으로 증축하면서 기존 7타석을 48타석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37m 높이의 15개 철구조물을 45m 높이의 19개로 각각 늘리고 연습장 길이도 90m에서 182.2m로 확장할 계획이다. 용주사는 골프연습장 공사가 90%쯤 진행된 지난해 8월쯤 법당 뒤편에 세워진 골프연습장 철탑을 본 후에야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용주사측은 이에 반발해 스님과 신도들이 공사 현장을 찾아가 집회를 여는 등 공사중단을 요청했으며 문화재청과 국방부, 청와대 등에도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공사금지 가처분신청 이에 따라 용주사측은 최근 군인공제회, 국방부, 공군 모 부대 등을 상대로 “연습장 증축공사와 관련된 일체의 공사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며 수원지법에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문제의 골프연습장은 용주사와는 법당 왼쪽 뒤편에 있는 산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용주사는 가처분신청서에서 “골프연습장은 용주사가 위치한 문화재보호구역과 인접해 있는 데다 국보급 유물인 범종과는 250여m, 용주사내 사찰과는 1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등 용주사의 역사·문화·경관적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에는 골프연습장에서 공치는 소리가 들려 수행에 방해가되는가 하면 가끔씩 사찰 안으로 골프공이 날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주사 최상근(56) 종무실장은 “사찰만 문화재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숲도 문화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전통사찰 보호와 관련한 법을 위반하는 등 충분한 심사 없이 이뤄진 허가인 만큼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로 풀지 못해 안타까워” 이에 대해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법정으로까지 가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용주사는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긴 후 절을 다시 일으킨 사찰로 수원, 화성, 안양 등 경기남부 12개 시·군에 70여개의 말사를 두고 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고종·순종실록 완역 인터넷으로 본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통치기록이 완역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렬)는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열람할 수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서비스에 고종·순종실록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국사편찬위는 2005년 12월부터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sillok.history.go.kr)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일제때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빠져 있었다. 왜곡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고종·순종실록은 국보뿐 아니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빠져 있다. 국사편찬위는 “두 실록은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규례에 맞게 편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의 왜곡이 심해 실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두 실록과 나머지 실록의 위상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황제의 실록이 조선왕조 마지막 순간의 통치자료인 만큼 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는 고종·순종실록은 한문 320만자에 달하는 분량이다.원문에는 없는 17종의 문장 기호를 추가했으며 기존 조선왕조실록과 동일한 문체로 수정한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향교에서 사물놀이를…

    서울에서 유일한 향교인 강서구 가양동 235의2 양천향교 앞마당에 판소리 등을 즐길 수 있는 ‘전통 문화마당’이 들어섰다. 강서구는 15일 “지난해 10월 착공한 양천향교 전통 문화마당을 오는 19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 문화마당의 조성비 9억원은 전액 시에서 지원했다. 전통 문화마당은 전통 양식의 정자와 대나무,200석 규모의 공연장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 속에서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각종 전통문화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구는 정기적으로 사물놀이, 마당극, 민속놀이 등 소규모 공연을 개최해 문화마당을 조상의 얼과 멋을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전통 예절교실과 한문교실 등도 상시 운영한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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