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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일지매’ 출연진 “명품 사극, 자신있다”

    ‘돌아온 일지매’ 출연진 “명품 사극, 자신있다”

    고우영 화백의 만화 ‘일지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가 오는 21일 첫전파를 탄다. 사전제작 시스템을 시도한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는 현재 75% 촬영을 마마친 상태. 비교적 여유로운 제작시간을 바탕으로 장면마다 공들여 찍고 있다고 제작진은 설명했다. 드라마의 연출을 맡은 황인뢰PD는 7일 가진 제작발표회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방송을 앞두고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황PD는 “처음 일지매 연출의뢰를 받았을 때에는 사극도 안해봤을 뿐더러 액션활극 성격의 드라마도 안해봐서 시큰둥했다. 하지만 원작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30년전에 연재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안들었다.”며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역사공부도 했다. 처음 연출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열심히 했고, 남은 촬영부분도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또 지난해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일지매’와의 차별성을 묻는 질문에 황인뢰PD는 “지난해 SBS에서 방송된 ‘일지매’를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없다. 개인적으로 밉지만 도움이 된 작품이다. 더 공들여서 찍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지매 역을 맡게 된 정일우는 ‘일지매 선배’ 이준기와 비교하는 질문에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정일우는 “이준기 선배님이 굉장히 연기를 잘했다. 굉장히 재밌게 봤다. 하지만 우리 ‘돌아온 일지매’는 또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물론 방송 후 각오는 하고 있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브라운관 신고식을 치르는 배우 윤진서 역시 “영화와 많이 달라 힘든 부분도 있지만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전적으로 황인뢰 감독님을 믿고 출연결심을 했다.”며 황PD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내비쳤다.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이번 ‘돌아온 일지매’는 황인뢰PD 특유의 도전정신과 새로운 시도가 접목됐다. 사극 최초로 한국, 대만, 일본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시도했고 극중에서는 드라마 해설자와 같은 내레이션 ‘책녀’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넘나들며 숨겨진 이야기까지 전한다. 격변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평민들을 구하고 나라의 운명을 수호하는 의적 일지매의 영웅담을 총 24부로 그려낼 MBC 새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는 ‘종합병원2’ 후속으로 오는 21일 첫방송된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kr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정혜영 ‘초미니 아슬아슬’

    [NOW포토] 정혜영 ‘초미니 아슬아슬’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연출 황인뢰, 김수영ㆍ극본 김광식, 도영명)의 제작발표회가 7일 오후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제작발표회 현장에는 배우 정일우, 윤진서, 김민종, 정혜영, 이계인, 박철민이 참석해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온 일지매’는 격변의 조선시대, 태어나자 마자 매화가지 아래 버려졌던 갓난 아이가 평민들을 구하는 의적에서 나라의 운명을 수호하는 전설적인 영웅 일지매를 그린 드라마. ‘종합병원 2’ 후속으로 1월 중순 방영된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선시대 묘 석인상 구경하세요”

    노원구는 5일 ‘조선시대 묘(墓) 석인상 전시공원’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월계동 비석골근린공원에 들어선 이 소공원에는 8000㎡ 규모로 문관상(文官像) 13기, 동자상(童子像) 6기, 망주석(望柱石) 8기, 비석(碑石) 2기, 상석(床石) 2기 등 모두 31기의 석인상이 배치됐다. 월계동 염광학원과 공릉동 경춘선 철로변, 수락산, 불암산, 상계동 도선사 입구 등에 방치돼있던 석인상들을 한 곳에 모은 것이다. 이곳에 전시된 석인상은 외부 침입으로부터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관복 차림에 두 손을 모아 홀(笏·제사 절차를 기록한 문서)을 잡고 있는 문관상, 주요 인물을 수행하는 시자(侍者)로서의 의미가 강한 동자상, 2m 높이의 기둥으로 묘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고 영혼이 자신의 묘를 알아볼 수 있게 안내 역할을 하는 망주석, 죽은 이의 일대기와 업적을 기록해 세운 비석 등이 있다. 소공원에는 또 높이 85~190㎝, 폭 38㎝에 이르는, 조선 초기부터 1900년대까지의 석물들이 전시돼 석공예 조각품의 시대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른바 석물 변천연구의 교육 공원으로 꾸며진 셈이다. 산책로와 의자, 조명 등의 편의시설도 마련됐다. 이팝나무 외 7종 21그루, 1060본의 나무와 꽃을 심어 주민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석인상 전시공원과 인접한 초안산 조선시대의 분묘군을 합쳐 국내 최초의 석인상 야외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대작의 귀환’ 봉준호·박찬욱·최동훈 스타감독 빅3

    ‘대작의 귀환’ 봉준호·박찬욱·최동훈 스타감독 빅3

    올해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까.충무로의 기상도는 과연 ‘맑음’을 보일 수 있을까.극장가에 눈과 귀가 쏠려 있는 가운데 2009년의 관전포인트를 짚어 봤다. 박찬욱 감독은 제작비 60억원 규모의 ‘박쥐’를 들고 온다.‘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3년 만의 연출.신망 높은 신부 상현(송강호)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뒤,친구 강우(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신부 역을 맡은 송강호는 드물게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낯설고도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박 감독은 “사제로서의 갈등도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의 사랑에 비중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4월 개봉 예정. ‘살인의 추억’,‘괴물’의 봉준호 감독은 ‘마더’를 찍고 있다.상반기 개봉 예정.살인 사건에 휘말린 아들(원빈)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자 고군분투하는 어머니(김혜자)를 다룬다.봉 감독이 “김혜자 선생과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김혜자가 연기하는 모성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다.제대한 뒤 복귀하는 원빈의 모습에 반색할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충무로의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이 ‘타짜’,‘범죄의 재구성’에 이어 선보일 작품은 순제작비만 110억원이 넘는 대작 ‘전우치’다.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 모티브를 딴 판타지 액션물.누명을 쓰고 그림족자에 갇힌 조선시대 도사 전우치가 500년 뒤 봉인에서 풀려나 요괴들과 싸워 나간다는 내용이다.강동원이 전우치,임수정이 과거 전우치가 사랑한 여인을 빼닮은 현대 여성 인경을 맡았다.8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지난해 ‘밤과 낮’으로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던 홍상수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찾아온다.고현정,엄지원,하정우,김태우,공형진,정유미의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영화감독인 경남(김태우)이 두 차례 여행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 현희(엄지원)와 선배의 아내 순이(고현정)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시’도 기대작.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전도연)을 받은 ‘밀양’(2007년) 이후 행보라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아 내고 있다.나홍진 감독이 연타석 홈런을 날릴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지난해 데뷔작 ‘추격자’로 각종 국내 영화상을 휩쓴 그는 ‘살인자’를 준비하고 있다. 갖가지 이유로 시선을 끄는 작품들도 있다.권상우·이보영 주연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3월 개봉)는 원태연 시인의 감독 데뷔작이란 점에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제) 역시 유명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밖에도 엄정화·김래원 주연의 스릴러영화 ‘인사동 스캔들´,명성황후(수애)와 호위무사(조승우)의 사랑을 그린 야설록 무협원작의 ‘불꽃처럼 나비처럼’(감독 김용균),‘강마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배우 김명민이 나오는 ‘내 사랑 내 곁에’(감독 박진표)도 기대를 모은다. 영화계 내부의 2009년 전망은 그다지 밝진 않다.MK픽쳐스 심재명 대표는 “이월 영화가 많았던 지난해보다 올해는 개봉편수가 더 줄고,한국영화 점유율과 수익률 등도 비슷하게 저조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산업적으로는 힘들어도 작품 면에서는 의미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영화에 대한 투자 의지가 보이지 않고 부가가치 시장도 죽어 버려 계속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봉준호·박찬욱·최동훈 등 기성 감독들의 실력이 어떤 반응을 얻느냐에 따라 반전을 기대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감독 사진:연합뉴스 제공)
  • 고우영 신문 연재만화 ‘한눈에’

    만화가 고우영의 거침없는 펜(pen)선이 살아있는 성인 만화 ‘바니주생전’,‘놀부전’,‘흑두건’ 등이 ‘신(新)고전열전 10권’(애니북스 펴냄)으로 복간됐다.2005년 작고한 고우영이 1976년부터 1988년까지 12년 동안 스포츠 신문에 연재한 것이다. ‘흑두건1·2권’이나 ‘통감투1·2권’은 당쟁으로 민생을 도외시한 암담한 조선시대 최고위 권력층의 부패와 권력투쟁 이야기를 담아,당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보면 눈엣가시 같은 내용이었을 성싶다.이처럼 고우영은 단행본 만화와 달리,정부의 사전 검열을 받지 않는 신문 연재물이라는 특성을 한껏 활용해 삼엄한 1970~80년대 독재정부 시절에도 만화가로서의 창조적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는 한편 정권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기능마저 수행했다.만화 특유의 해악과 비틀기로 답답한 독자들의 막힌 가슴을 확 뚫어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들은 인쇄 상태 등이 다소 눈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원본인 만화원고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출판사에서는 당시 연재를 했던 신문의 마이크로 필름을 복사했고,일부는 과거에 나온 단행본에서 발췌했기 때문이다. 10권의 구성은 이렇다.이기적인 놀부와 착한 흥부라는 고전적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 ‘놀부전(1988년)’,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숙부 수양대군의 권력투쟁을 담은 ‘통감투 2권(1987년)’,중국을 배경으로 어여쁜 배도를 두고 도둑 바니와 시인 주생이 벌이는 치정극을 담은 ‘바니 주생전(1988년)’,아버지의 유언을 실현하기 위해 물·불·바람을 다스리는 삼형제가 벌이는 판타지 모험극 ‘거북바위’ 2권(미상),당파의 앞잡이로 활동하는 칼잡이의 비애를 담은 ‘흑두건 2권(1986년)’,고구려 건국 이전 부족 사이의 세력다툼을 담은 ‘아라노와 오가녀 2권(1976년)’ 등이다.각 권 8000원(세트 8만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연말연시 절주잔 눈에 띄네

    연말연시 절주잔 눈에 띄네

    연말연시를 맞아 잦은 술자리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절주잔’이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 연제구보건소는 연말연시 건강한 음주 문화 조성을 위해 기존 소주잔보다 훨씬 작은 ‘절주잔’ 2000개를 만들어 공무원,시민 등에게 보급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높이 5㎝,지름 3.6㎝의 절주잔 용량은 기존 소주잔(50㏄)의 40% 수준인 20cc이다. 360㎖(355㏄) 소주 1병을 이 잔에 가득 따르면 18잔이 나온다. 절주잔은 과음을 경계하려고 중국 고대에 만들어져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소개된 ‘계영배(戒盈杯)’를 본떠 만들어졌다. 계영배는 술이 잔에 70% 넘게 차면 술잔 밑으로 술이 모두 새어나가게 돼 있어 과음과 지나침을 경계하도록 만들어진 술잔이다. 공보과 여직원인 김유나씨는 “술을 잘 못해 평소 회식자리가 고통스러웠는데 절주잔 덕분에 부담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흡족해했다. 절주잔은 지난해 강원도 원주시가 처음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부산에서 제작·보급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제구 보건소 최병무 소장은 “연말연시를 맞아 과음을 방지하고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절주잔을 만들었다.”며 “송년회 등 모임을 앞둔 단체 등에서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서울 역사 알려드리는 보람에 살죠”

    “서울 역사 알려드리는 보람에 살죠”

    29일 낮 12시30분.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순자(75)씨가 택시에 탄다.행선지는 자택인 서울 염창동의 한 아파트.이씨가 타자마자 운전석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손님,염창동이 왜 염창동인지 아십니까.조선시대엔 사대문 안에 사람이 많이 살았지요.세종 재위 10년인 1428년 사대문 안 인구조사를 했더니 10만 3328명이 살았답니다.그런데 음식에 꼭 필요한 소금을 보관할 데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그 장소가 지금의 염창동입니다.소금창고 동네란 뜻이지요.” 이씨는 박수를 치며 깔깔깔 웃는다.“아유,우리 기사님 아니면 누가 이렇게 재밌는 얘기를 해줘.시간 가는줄 모르겠네.” 택시기사 표성환(61)씨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다.그는 서울 시내 역사를 훑으며 달리는 장애인 콜택시 기사다. ●손님에게 숭례문 유래듣고 공부시작 표씨는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가 출범한 2003년 1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속옷 공장,넥타이 공장 등에서 일하다 호프집을 차렸으나 어려워져 장애인 콜택시 운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역사공부엔 관심조차 없었다.그러다 2003년 한 손님을 만났다.과거 문교부 차관을 지냈다던 그분은 숭례문과 망우리의 유래를 들려줬다.받들 숭(崇),예절 예(禮)자를 쓰는 숭례문은 사대문 안에 사는 양반들이 그 앞을 지날 때 ‘궁궐이 있으니 여기서는 예를 갖춰 행동하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는 설명이었다.표씨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귀가 번쩍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그분 설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다른 동네는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 됐지요.그래서 혼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2년간 25개 구청 돌며 자료 구해 표씨는 집이 있는 서대문구청 등 서울시내 25개 구청을 2년간 돌아다니며 동네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구했다.구청 주변에서 손님을 모실 때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청에 들렀다.그 자료를 노트에 옮겨 적은 후 달달 외웠다.3~4번 손님에게 얘기하면 자연스레 입에 붙게 됐다.“저 혼자 알고 싶어 시작했지만 손님들한테 들려주면 좋아하시니 저도 보람있어요.그저 친절하기만 한 서비스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란 생각에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표씨의 차를 포함해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는 220대가 운행 중이다.“앞으로도 계속해서 장애인의 손발이 돼주고 싶다.”며 웃는 표씨의 266번 택시는 오늘도 신나게 달린다.“어서오십시오.손님,혹시 서울과 관련된 숫자에 대해서 아십니까? 서울엔 구청이 25개,대학이 43개,전문대가 171개,고등학교가 284개 있답니다.서울의 성곽길이는 총 18.2㎞고요.”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Metro] 동두천 소요산에 드라마 세트장

    경기 동두천시는 최근 드라마 제작사인 씨씨엔터테인먼트㈜와 소요산 인근에 드라마세트장을 건립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뒤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나섰다고 29일 밝혔다.이에 따라 씨씨엔터테인먼트는 2010년까지 120억원을 들여 소요산 일대 8만㎡에 드라마세트장을 건설한다.동두천시는 인허가 등 각종 행정 지원을 한다.드라마세트장은 조선시대 천재화가 김홍도의 일본 활약상과 정조대왕의 개혁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 ‘일성록(가제)’ 촬영을 위한 것.세트장의 60%에는 수목원을 조성,촬영이 끝난 뒤에도 관광지로 활용하게 된다.세트장은 조선시대 저잣거리와 화원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김홍도가 일본에서 활약했다는 가설을 근거로 일본의 궁궐 등을 재연하게 된다.시 관계자는 “일회성 효과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세트장에 수목원을 갖추도록 했다.”며 “관광수입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시를 홍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1·끝) 풍속화를 읽어보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51·끝) 풍속화를 읽어보자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어떤 방향의 선분이냐에 따라 그 점의 의미도 달라지는 법이다.즉 보는 시각에 따라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예컨대 갑과 을의 재산이 각각 5억이라 해도,갑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어서 지금 5억이 되었고,을은 무일푼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노력을 재산을 계속 불려 지금 5억이 되었다면,그 5억의 의미는 판연히 다를 것이다.즉 외면적으로 동일하게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그 현상을 어떤 컨텍스트에 놓고 읽느냐에 따라 그 현상의 의미는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선분을 긋느냐에 따라,즉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으레 전문적인 회화사 연구자들이 하는 것처럼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그림의 구성과 색채,테크닉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이제까지 알려진 정통적인 감상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풍속화 감상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그림을 읽는 선분은 여럿이라고 했다.곧,풍속화는 풍속을 그린 그림이니만큼 ‘풍속’이란 선분 위에 그림을 놓고 그 의미를 읽어내고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 ‘입맞춤´에 나오는 사내의 정체는? 현재가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리면,과거가 된다.과거는 다시 복원할 수 없다.요즘이야 사진과 영화,TV 등의 이미지 자료가 흘러넘치지만 지난 세기만 해도 우리는 20세기 전반기의 한국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하물며 조선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아무리 좋은 문헌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해도 결국은 한 장의 그림만 못한 법이다.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조선후기 결혼식에 대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말을 타고 처가로 가는 신랑의 행렬을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그림 1, 신행·新行)를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풍속화를 읽는 데는 특별히 좋은 방법이란 없다.말을 달리며 산을 보는 것처럼 그냥 대충 훑어 지나가지 말고 그림 속 인물과 사물,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예컨대 신윤복의 ‘입맞춤’(그림 2)을 보자.이 그림은 어떤 사내가 젊은 여자를 바싹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물론 입이 닿지 않았으니 입맞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아무래도 곧 입을 맞닿으려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한밤중에 여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는 사내의 정체다.어떤 연구자는 이 사내를 양반이라 하지만 딱히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이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내가 들고 있는 고리가 달린 막대기다.이것은 포도청의 포교가 휴대하는 쇠도리깨다.따라서 이 사내가 포도청 포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포도청 포교가 어떤 여인을 만나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그런데 포도청 포교는 기방을 지배하는 기부(妓夫)가 될 수 있었으니,그림 위쪽에 서 있는 장옷을 걸친 여성이 기생이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물론 이 다음부터의 그림 해석은 각각 달라질 수 있고,개인의 상상력에 매인 것이지만,그 해석과 상상력이 출발하는 지점이 포교와 기방,기부,기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풍속화 읽기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범상히 지나치지 말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부터 궁금증을 갖고 차근차근 연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참고삼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보자. “예를 들면 ‘사기’의 자객열전(刺客列傳)을 읽다가 ‘조도제(祖道祭)를 지낸 뒤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는 부분을 만나면 ‘조(祖)란 어떤 것인지요?’하고 물어보아라.선생이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라고 하면,다시 ‘하필 조(祖)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하고 물어보고 선생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집에 돌아와 사전을 꺼내 ‘조’ 자의 본뜻을 살펴보고,그것을 토대로 삼아 다른 책에서 널리 ‘조’ 자의 풀이를 조사해서,그 근본을 캐고 지엽적인 사실까지 모두 알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뒤 ‘통전’,‘통지’,‘통고’ 등의 책에서 조도제를 지내는 예(禮)까지 조사해 모아서 책으로 엮으면 영원히 전해질 책이 될 것이다.이렇게 하면 전에 한 가지 일도 모르던 네가 그때부터 조도제의 내력을 환히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어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큰 학자라 해도 조도제에 관한 한 가지 일만은 너와 다툴 수가 없을 것이니,어찌 크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약용이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사소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궁금증이 나면,자신이 완벽하게 이해가 될 때까지 조사해 보라는 것이다.그렇게 하여 흡족할 정도의 조사와 연구가 끝나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는 풍속화 그림도 마찬가지다.사소하고 시시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같은 부류를 모아보고,다른 것과 비교해 보고,그 유래를 따져보고,또 관련되는 문헌을 찾아보면 어느덧 자신 나름의 주장을 세울 수 있게 된다.또 뜻밖의 수확도 있다.예컨대 나는 한때 조선시대에 개를 그린 그림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대개 개는 그림의 부차적인 제재로 등장하고 있었다.등장하는 개가 어떤 종인지를 따져보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김준근의 개장수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쇠사슬을 잡고 버티는 개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환호작약하였다.문헌을 통해서 나는 ‘개장수’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그 실제 모습을 본 것은 바로 김준근의 그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전해지는 옛그림에 등장하는 물고기만 모아서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그것을 조사하면 한국인이 좋아했던,혹은 즐겨 먹었던 물고기의 종류를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옷차림이다.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모두 모아서 그들의 옷차림과 장신구,모자,머리 모양을 비교해 보면,당시의 복색과 유행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것은 물론 복식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하지만 더 개척할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누구나 도전해 보면 된다.이처럼 풍속화는 시작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식견 쌓아 주체적 감상자 될 수 있어 ‘전문가주의’라는 말이 있다.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전문가는 물론 한 분야에서 오랜 수련을 쌓아 보통 사람보다 깊은 지식과 식견을 쌓은 사람이다.하지만 전문가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또 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뜻밖에도 전문가는 자신의 영역에 갇힌 나머지 시야가 좁아져서 쉬운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멀쩡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전문가라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정보가 흘러넘치는 세상이다.그림이라 해서 어찌 꼭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식견을 쌓아 스스로 주체적인 감상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 ‘조선사람들,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란 책을 쓴 이래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글을 한 번 써 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 왔다.우연하게도 서울신문과 인연이 닿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다.처음에는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보다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하지만 한 회의 원고 매수가 정해져 있고,그림을 반드시 2장을 넣어야 하는 탓에 구애가 적지 않았다.또 풍속화 자체가 한정이 있어,전에 했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이리저리 보완하고자 했지만,능력이 모자라 흡족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연재하는 동안 옛 그림을 보면서 늘 즐거웠다.나의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들에게까지 전해졌으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이겠다. 1년 동안 즐겨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돌아온 일지매’ 정일우 링거투혼…4일만에 촬영장 복귀

    ‘돌아온 일지매’ 정일우 링거투혼…4일만에 촬영장 복귀

    고우영 화백의 ‘일지매’를 최초로 드라마화하는 MBC 새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정일우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4일만에 촬영장에 복귀했다. 일지매 역의 정일우는 지난 23일 ‘돌아온 일지매’의 촬영 도중 탈진해 촬영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정일우는 지난 27일 토요일 오전, 용인 MBC 드라마 오픈 세트에서 촬영을 재개했다. 정일우가 남몰래 링거를 맞으며 버텨왔던 탓에 그의 탈진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제작진은 정일우의 이른 복귀를 만류했다. 70%이상 사전제작을 목표로 하는 ‘돌아온 일지매’는 지난 여름 촬영을 시작해 이미 14회까지 촬영을 완료했다.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돌아온 일지매’는 현재 15회를 촬영 중이기 때문에 정일우의 촬영중단이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일우는 휴가를 자진 반납하고 4일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시종일관 활기차고 밝은 표정으로 촬영에 임했다. 한편 정일우는 촬영장에 복귀하기 전날인 26일 밤에 자신의 팬까페인 ‘일우 스토리 (http://cafe.daum.net/ilwoostory)’에 팬들에게 직접 사과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렸다. 자신의 탈진 소식이 알려진 후 많은 팬들의 걱정과 우려가 이어지자 정일우는 “이제 방송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가 몸 관리를 잘 못했나 봐요... 여러분께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몸 관리 잘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영웅 일지매로 거듭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MBC 새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는 격변의 조선시대을 배경으로 평민들을 구하는 의적에서 나라의 운명을 수호하는 일지매의 영웅담을 그려낼 예정이다. ‘종합병원2’ 후속으로 방영될 ‘돌아온 일지매’는 2009년 1월 중 전파를 탈 예정이다. (사진제공 = 비단)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겨울방학 어린이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봇물

    겨울방학 어린이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봇물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큰다.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놀이는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전두엽을 숙성시킨다는 과학적 증거도 있다.전두엽은 충동을 억제하고 타인과의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전두엽이 잘 자라 있어야 공부도 잘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자라는 것이다.아이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지적 자극은 뇌를 괴롭힐 뿐이고,두뇌 발달에 용하다고 선전하는 게임기는 손가락 운동만 시킬 뿐이다.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논다.’는 말에 불안감을 느낀다.아이들을 놀리는 것을 방치로 생각한다.하지만 걱정 마시라.방학을 맞아 아이도 부모도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실컷 놀고 배우는 두뇌 자극 체험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예술 감성 쑥쑥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이 직접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나도 큐레이터’ 행사는 전시 기획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보존과학자,박물관교육전문가 등의 직업 체험을 통해 박물관의 기능,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짜여졌다.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 행사는 내년 1월5~7일,19~21일 두 차례 진행된다.무료로 인터넷접수(www.museum.go.kr/child)만 받는다.(02)2077-9334. 크라운·해태제과는 최근 서울 남영동 본사 사옥 지하 1층에 ‘생각 쑥쑥 감성 쑥쑥 예술놀이터’를 열였다.첫 전시로 지난 4일부터 ‘피카소의 큐비즘,세모나라 네모세상’이 열리고 있다.전문 강사들의 쉬운 설명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등 피카소의 대표작 14점(모작)을 감상하며,5개로 꾸며진 전시실에서 스펀지 놀이,자석 붙이기,거울 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큐비즘을 만지고,보고,들을 수 있다.입장료는 무료이며,워크숍에 참가하려면 재료비 8000원을 준비하면 된다.체험워크숍은 인터넷 홈페이지(www.crown.co.kr)에서 사전 예약신청을 해야 한다.(02)709-7403. 헬로우뮤지움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시를 풀어나가는 ‘동물그림과 함께하는 스토리텔링전’을 진행 중이다.김점선,윤석남,루이스 부르주아,매기 테일러 등 6명의 화가 작품 20점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작품 해설을 들으며 활동지 순서에 맞춰 동화책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만 3~10세 어린이 대상.참가비는 2만 2000원(동반부모는 2000원).내년 2월28일까지.(02)562-4420. ●과학원리 쏙쏙 2009년은 찰스 다윈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이자 대표 저작인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이를 기념해 최근 개관한 국립과천과학관에서는 ‘다윈전’이 열리고 있다. 책에서 접하던 딱딱한 진화 이론을 다윈의 삶을 따라가는 전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다윈처럼 관찰해볼 수 있는 ‘다윈의 놀이터’,다윈이 남아메리카,갈라파고스 등의 섬을 항해할 때 탔던 ‘비글호 승선 체험’,‘만져보는 흔적기관’,‘네발로 기며 향기 맡기’ 등 다채로운 체험은 진화론을 어린이들에게 한결 만만하게 해준다.7000~9000원.내년 5월10일까지.1588-7890. 국립서울과학관의 ‘빛의 신비전’은 빛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는 전시.그림자 놀이,소리 내는 그림자,레이저,홀로그램 등 굴절과 반사 등 빛의 현상이 이뤄내는 여러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대부분의 작품들은 서랍을 열거나 버튼을 누르거나 혹은 작품 안에 들어가야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는 체험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야광목걸이,태양빛을 이용한 자동차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8000~1만원.내년 3월1일까지.1544-8732. 자동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린이를 겨냥한 ‘키즈 모터쇼’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장보고홀에서 열리고 있다.자동차의 외형부터 시작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장치와 구조에 관한 원리를 실험을 통해 꼼꼼하게 알려준다.1만 5000원.내년 3월1일까지.1544-1555.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증기기관차 ‘토마스’도 체험전 형식으로 아이들 곁에 왔다.고양시 일산킨텍스에서 열리는 ‘토마스와 친구들’에서는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체험,증기기관차 모형 만들기도 할 수 있다.1만 3000~1만 5000원.내년 1월11일까지.1688-7938. ●옛날 옛적에 솔깃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효녀 심청을 주제로 전시 공간을 꾸미고 어린이 관람객들을 맞는다.‘심청 이야기속으로’ 전시에선 아이들이 조선시대 주거문화,생활방식,가치관 등을 체험할 수 있다.물레와 씨앗을 돌리고 인두와 다듬이질,맷돌과 절구질을 해보는 등 생경한 풍속을 직접 경험한다.옛 문화뿐 아니라 심청이 인당수에서 바닷속으로 떨어지기까지의 프로그램을 통해 역경을 딛고 커가는 법을 깨닫고 심봉사가 되어 시각장애체험을 하며 장애인에 관한 이해를 높인다.이우경 작가의 ‘효녀 심청’ 그림도 전시장 곳곳에서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02)3704-3133.국립중앙박물관의 ‘고대로의 여행을 떠나요-고구려 고분벽화를 찾아서’도 빼놓지 말자.고구려의 장인이 되어 벽화를 제작해 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내년 1월9·23일 두 차례 예정돼 있다.아파트에 밀려 잊혀진 온돌을 기억하는 ‘조상들의 지혜-온돌문화’는 어른들도 솔깃할 행사다.온돌의 원리,역사,친환경적인 가치를 배우고 다양한 모양의 전통 구들까지 제작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재료비 8000원만 받는다.27~31일(29일 제외). ●경제 관념 새록새록 삼성어린이박물관은 내년 1월2일~2월28일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경제 개념과 현상을 이해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경제 교육프로그램을 개최한다.돈을 벌고,쓰고,불리고,나누는 4단계 경제활동을 경험해 보는 ‘고깔마을 부자 프로젝트’가 매일 4차례 열린다.1월2일부터 9일까지 세계의 화폐를 통해 화폐 문화를 엿보는 ‘신나는 화폐여행’,13일부터 23일까지 절약하는 방법을 게임을 통해 알아보는 ‘알뜰왕!절약왕!’,28~30일 보다 많은 물건을 팔 수 있는 방법과 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들에 대해 팀별로 활동해 보는 ‘미니 마켓놀이’ 등 경제 관련 프로그램이 즐비하다.참가비는 5000~6000원.(02)2143-360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파주 교하일대 한국 최대 구석기 유적지 신도시에 묻힐 판

    파주 교하일대 한국 최대 구석기 유적지 신도시에 묻힐 판

    교하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는 경기 파주시 교하읍 일대가 경기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을 뛰어넘는 한국 최대의 구석기 유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유적 보존 계획이 세워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유물 보관 및 전시를 위한 기초적인 규모의 전시관조차 계획돼 있지 않아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교하신도시 예정지역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지난 22일 파주시 교하읍 야당2리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고 조사지역 5만 6143㎡에서 찾아낸 전형적인 구석기시대 유물인 주먹도끼를 비롯해 밀개,긁개,홈날,망치,뚜르개,몸돌 등 610점의 구석기를 공개했다. 그동안 파주 운정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교하신도시는 운정1~3지구로 나뉘어 연차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현재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운정1지구이다. 운정1지구는 연세대박물관이 2002년 지표조사를 벌인 결과 무려 47개 지점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다.사실상 신도시 예정지역 거의 대부분이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따라 2004년 말 이후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거나,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구석기 전문 발굴기관인 선사문화연구원은 그동안 운정1지구의 3~7지점과 34~36지점에서 발굴조사를 벌여 모두 2700점 남짓한 구석기를 찾아냈다.연구원 측은 다른 조사기관에서 발굴한 것을 포함하면 이곳에서 모두 4000점이 훨씬 넘는 구석기가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융조(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선사문화연구원장은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10년 동안 발굴된 구석기가 3000점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운정1지구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의 구석기 유적”이라면서 “운정1지구만 이 정도인데 운정3지구까지 발굴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나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희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곳에서 나온 주먹도끼 등은 한마디로 구석기유물의 교과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보존 논의라도 시작하고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지어 유물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日,어영청 건물에 연초공장 지었다

    일제가 어영청(御營廳) 등 조선시대 관공서 건물 위에 연초제조공장을 세웠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서울 종로구 인의동 112-2 세운상가 이주 건물을 세우려는 터에서 확인됐다. 한울문화재연구원은 22일 발굴 조사 과정에서 “종묘 동남쪽에서 어영청 및 그 부속 건물 터와 그 이전 조선 전기에 속하는 건물터 2곳이 확인됐다.”면서 “1900년대초 어영청 자리에 지은 동아연초회사 제조공장 흔적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어영청은 조선 인조 때인 1623년 개성유수 이귀가 화포부대로 창설한 것으로 임금을 호위하는 정예부대였다. 문화재위원회는 앞서 어영청 관련 유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지하층을 만들지 않고 2층 이하의 건물을 짓는다는 조건으로 건축을 허가했다. 또 문화재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굴되면 공사를 중단한다는 조건도 추가한 만큼 세운상가 이주건물은 신축이 어렵게 됐다. 조사단은 “적벽돌 건물인 일제시대 연초 제조공장 신축과 1970년대 이후 새로 지은 건물 등으로 조선시대 유적이 상당 부분 훼손되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곳이 없다시피 하지만 15세기 이후 19세기까지,일제시대로 각각 건축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건물터 여러 곳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편 건물터에서는 고려청자와 15세기 상감백자 등 도자기 조각들도 출토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몇 해 전 우연히 TV 사극을 보는데,이상한 장면이 나왔다.사극의 배경은 임진왜란 훨씬 이전,곧 조선 전기였다.광통교 부근에 기방이 있었고,그 기방에 고관대작 몇이 모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쓴 웃음을 지었다.과문한 탓인지 나는 조선 전기의 서울 시정에 기방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앞에서 누차 언급했듯 기방은 기생이 손님에게 가무(歌舞)와 술,그리고 성(性)을 판매하는 공간이다.그리고 기방과 기생은 기부(妓夫)가 지배한다.이런 형태의 기방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 서울 시정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물론 기방의 성립 과정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이런 이유로 해서 임진왜란 이전 시대에 고관대작들이 기방에 드나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박정희 시대 때의 요정 정치를 조선시대 속에서 애써 찾다 보니,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기방은 역관·의관·서리 등 중간층이 주로 찾아 조선 후기에 기방이 시정에 출현한 뒤에도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하지 않는다.기방은 주로 역관이나 의관 등의 중인,각 관청의 하급관리인 서리,시전상인,군교(軍校),별감,승정원 사령,의금부 나장 등 중간층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게다가 전에 소개했듯 기방에는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어서 어길 경우,시비가 벌어지고 때로는 주먹질이 난무하였다.이런 까닭에 양반들은 기방 출입을 꺼렸고,만약 기방 출입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뒷날 벼슬을 하는데 적지 않은 흠이 되었던 것이다.한데 양반 중 문반만 그렇다는 것이고,무반은 꼭 그렇지도 않다.무과에 합격하여 무반관직을 지내려면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기에 한량으로 무예를 익힐 때부터 기방에 드나드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이다.이런 무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꼭 기방에 들어가려면 어느 집 ‘청지기’라고 말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양반이 기생과 즐기고 싶다면,기생을 불러와야만 하였다.관청에서 부르는 경우도 있고,때로는 개인이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개인이 부를 경우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이제 그 광경을 신윤복의 ‘연못가의 가야금’(그림 1)에서 확인해 보자.이 그림의 화제(畵題)를 보자.“자리에는 늘 손님이 가득하고,술단지는 비어본 적이 없으니,나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座上客常滿, 尊中酒不空, 吾無憂矣).이 그림에는 술단지가 보이지 않지만,벗이 있고 음악이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으니 흥겹지 않겠는가. 그림에는 남자 셋,기생 셋이 등장한다.기생 셋을 부른 것이다.남자들은 모두 지체 높은 양반들이다.두 사람은 갓을 쓴,말하자면 의관을 제대로 갖춘 정장 차림이고 맨 왼쪽의 양반은 갓이 없다.이 남자는 원래 갓을 썼던 것이 아니고 정자관을 쓰고 있다가 옆에 벗어 놓고 있다.서 있는 남자와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도포의 빛깔이 다른데 중국에서 수입한 고급 비단으로 지은 것이 분명하다.갓끈 역시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서 있는 사람의 갓끈은 밀화(蜜花),곧 호박으로 만든 것으로 당상관 이상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사내의 벼슬은 적어도 정3품 당상관인 것이다.이런 것으로 보아 연못가에 모인 사내들은 모두 고급 관료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금기(琴妓)이고 누가 가기(歌妓)일까 이 그림의 공간은 어디인가? 먼저 오른쪽을 보자.소나무 아래에 기와담장이 보인다.그리고 그림 상단부에는 돌로 축대를 이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었다.그 너머에 다시 돌각담이 보인다.아래로 오면 단정하게 다듬은 돌로 마무리를 한 연못이 있다.이곳을 관청의 정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18세기 이후 서울의 거대한 양반가문이나,역관이나 상인으로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의 저택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맨 왼쪽의 정자관을 벗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아마 자신의 집이기 때문에 관을 벗고 풀어진 자세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연히 기생이다.담뱃대를 쥐고 있는 여자가 쓰고 있는 것은 가리마다.가리마는 기생들이 큰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오른쪽의 악기는 거문고가 아닌 가야금이다.거문고는 현을 뜯는 짤막한 대나무 막대기,곧 술대가 있어야 하지만,이 그림에는 그것이 없고,직접 손가락으로 현을 뜯고 있다.가야금인 것이다.가야금을 특기로 삼는 기생을 금기(琴妓)라 하고,노래를 특기로 삼는 기생을 가기(歌妓)라고 한다.세 기생 중 어떤 기생은 가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에 등장한 3남 3녀 중 가장 웃기는 사람은 맨 왼쪽의 남자다.왼쪽 발을 보건대 남자는 두 다리를 둥글게 벌리고 자신의 몸 위에 기생의 둔부가 올라오도록 앉힌 것이다.그리고 오른손은 기생의 아랫도리에 가 있다.이 양반은 눈동자가 약간 풀린 채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그 일이 정말 어떤 일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이제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검무(劍舞)’(그림 2)를 보자.기생 둘이 공작 깃털을 단 벙거지를 쓰고 붉고 푸른 화려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옷자락을 날리면서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구경꾼들의 면면을 보자.그림의 왼쪽 중간에 있는,왼손에 부채를 쥐고 갓끈을 단정하게 묶고 있는 사람이 이 연회의 주최자일 것이다.아니면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왜냐고? 이 사람이 앉아 있는 돗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럽고,죽부인에 기대어 앉아 있는 품이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다.이 사람 바로 위의 무릎을 세우고 손깍지를 끼고 있는 사람 역시 양반이다.다시 그 위의 갓을 쓰고 있는 앳된 얼굴은,장가를 간지 얼마 안 되는 이 집안의 자제인가 보다.이 햇병아리의 옆에 기생 둘이 있고,다시 그 오른쪽에 초립을 쓴 장가를 가지 않은 젊은이가 앉아 있다.그림 오른쪽의 담뱃대를 들고 오는 아이는 상노다.담뱃대가 없는 기생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아니면 갓을 젖혀 쓴 양반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 ●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춤 춤을 감상하는 양반 관객들은 모두 그림의 상단에 있는데,유독 하단의 악공들이 앉는 줄에 양반 한 사람이 끼어 있다.하단 맨 왼쪽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사내다.이 사내는 왜 구차하게 악공들과 같은 줄에 앉아 있는 것인가? 이 양반이 왼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실마리를 제공한다.이 물건은 사선(紗扇) 또는 차면(遮面)이라는 물건으로 남녀가 내외를 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다.상주가 외출할 때 관원이 길을 나설 때 결혼식을 할 때 남성이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무언가 자기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할 사정이 있는 것인데,춤 구경에 그 사정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아래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사선을 쥐고 있는 양반을 제외하면 모두 악공이다.맨 왼쪽은 해금을 연주하고 있고,그 오른쪽 두 사람은 자세를 보아 아마도 피리를 불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그 다음은 젓대,그 다음은 장고,그 다음은 북이다. 조선후기에는 장악원의 악공과 기생들이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을 받아 영업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이름이 알려진 팀도 있다.예컨대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했던 가기(歌妓) 추월(秋月)과 역시 가곡창(歌曲唱)의 달인이었던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거문고의 명인 금객(琴客) 김철석(哲石),그리고 또 다른 기생인 매월(梅月) 계섬(桂蟾) 등으로 구성된 팀이 가장 유명하였다. 기생 둘이 추는 검무는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더욱이 두 기생의 복색은 색채가 선명하게 대조된다.왼쪽은 청색 벙거지,녹색 저고리,붉은 치마인데,오른쪽은 흑색 전모,청색 저고리,푸른 치마이다.지금 검무는 진주 검무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가 있는 춤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검무는 칼이 작고 또 칼날과 자루가 분리되어 움직이지만,18세기의 검무는 보다시피 그냥 칼이다.어떤 사정이 있어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박제가(1750-1805)는 ‘검무기(劍舞記)’란 글을 써서 검무의 동작을 세밀히 묘사하고,또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이가 당시 검무의 제일인자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혹 아는가,위 검무를 추는 두 기생 중 하나가 운심인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조선 첫 금속활자 ‘계미자’ 복원

    조선 첫 금속활자 ‘계미자’ 복원

    조선시대 첫 금속활자인 계미자 등 임진왜란 이전에 사용된 금속활자들이 복원됐다.청주시는 19일 청주고인쇄박물관,경북대 영남문화원,청주대,한국문화연구소,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실의 공동연구를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 사용된 조선시대 금속활자 복원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시는 이날 ‘2008 조선왕실 주조 금속활자 복원사업 최종보고회’를 갖고 복원한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을 공개했다. 이번에 복원된 금속활자는 계미자(1403년),경자자(1420년),병진자(1436년),경오자(1450년),을해자(1455년),갑진자(1493년),계축자(1493년),을유자(1465년),을유자한글자(1465년),정축자(1457년),병자자(1516년) 등 11종이다.남권희(책임연구원) 교수를 비롯한 공동연구원들은 조선 전기 활자 주조기술과 조판기술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진행했고,이를 토대로 금속활자장 전수조교인 임인호씨가 활자를 복원했다.어미자 제작,활자주조,조판 등의 과정을 거쳐 450여자로 구성된 계미자 인쇄판 하나를 복원하는 데만 한달이 걸렸다.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돌아온 일지매’ 70% 준비 완료 “쪽대본은 없다”

    ‘돌아온 일지매’ 70% 준비 완료 “쪽대본은 없다”

    MBC ‘종합병원2’ 후속으로 방송될 ‘돌아온 일지매’(극본 김광식, 도영명ㆍ연출 김수영, 황인뢰)가 ‘황인뢰표 명품 활극’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치밀한 준비를 마쳤다. 총 24부작인 ‘돌아온 일지매’는 사극으로는 드물게 일본과 대만 로케이션을 일찌감치 마치고 돌아와 전국을 돌며 촬영에 매진해 현재 14부 촬영을 마무리하고 있다. 대본 역시 20부까지 준비된 상태로 제작팀은 격변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방대하게 펼쳐지는 원작의 드라마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대본에 담아냈다.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대본에는 일지매가 조선을 구하기 위해 청나라로 떠난 후 벌이는 활약상이 담길 예정이다. 현재의 속도대로라면 ‘돌아온 일지매’는 1월 중순 방영 시작까지 70% 이상 사전제작을 완료할 수 있게 된다. 오랜 경험을 통해 한국 드라마 제작 과정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전제작을 고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명품 드라마’를 위해 촬영에 급급해 후반작업에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던 것. 대본과 촬영뿐 아니라 편집, CG, 음악 등 후반작업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돌아온 일지매’는 늦어도 2월 말까지 모든 촬영을 종료하고 4월 방영 종료까지 남은 시간을 100% 후반작업에 투자해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명품 활극’을 완성시키겠다는 각오다. 한편 격변의 조선시대, 태어나자 마자 매화가지 아래 버려졌던 갓난 아이가 평민들을 구하는 의적에서 나라의 운명을 수호하는 전설적인 영웅 일지매로 변모하며 펼쳐지는 시대와 운명의 소용돌이를 그린 ‘돌아온 일지매’는 2009년 1월 중순 방영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서 조선시대 성벽 방어시설 첫 발견

    서울서 조선시대 성벽 방어시설 첫 발견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싼 성벽의 방어용 시설인 치성(雉城)이 발견됐다.문헌 기록에만 남아있던 치성이 실제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1926년 일제 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동대문운동장에 투영된,우리 역사의 상처다. ●“4~6군데의 치성 있었을 것” 지난 1월부터 서울 중구 을지로 7가 옛 동대문운동장 일대를 발굴 조사해온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인 중원문화재연구원은 17일 오후 발굴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고 “성곽에서 남북 10.2m,동서 8.3m 크기의 사각형 치성 1개소를 확인했다.”면서 “동대문(흥인지문)에서 광희문까지 모두 4~6 군데의 치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치성은 성벽을 바깥으로 돌출시켜 성벽에 가까이 다가오거나 기어올라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방어시설이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치성뿐 아니라 동대문에서 광희문까지 연결됐던 서울성곽의 성벽터 123m도 확인했다.동대문운동장 축구장이 있던 자리다.성벽의 잔존높이는 최고 4.1m이며,성벽의 폭은 8~9m이다. 또한 남산쪽에서 흘러내린 물을 도성 바깥쪽으로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이간수문(二間水門·두 칸으로 된 수문)은 홍예(虹霓·문 윗 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것)로 만들었음을 확인했다.특히 이간수문은 길이 7.4m,잔존높이 5.4m로서 보존 상태도 홍예 부분을 제외하고는 받침돌, 바닥석 등이 거의 완벽하다.이와 함께 성곽과 가까운 내부에서 건물지 10개소와 집수시설 2개소, 우물 4개소도 확인했다.연구원측은 “조선 태조부터 영조 시대까지 각 시기별 도성 축조의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15~20세기 걸친 다양한 자기도 나와 출토된 유물도 다양하고 사료적 가치가 높다.분청사기,조선청자,무문백자,청화백자,일본과 중국 등 외국 자기 등 15~20세기에 걸쳐 다양한 자기들이 나왔다.특히 축구장 터에서 나온 ‘청자 돈(墩)’,즉 의자로 추정되는 청자편은 출토된 예가 드물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이번에 건물지 도성에서 발견된 10개소의 성격을 해석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측은 “동대문야구장 터에서는 현재 하부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적심석군 및 모래적심과 배수시설 등이 확인됐고 앞으로 정확한 규모 및 성격 규명을 위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의 조성을 추진하는 부지에서 중요유적과 유물이 다수 출토됨에 따라 이 일대에 대한 추가발굴 및 디자인플라자&파크 사업 계획의 변경이 수반되는 원형 보존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구청장이 관리하는 신문고’ 등장

    ‘구청장이 관리하는 신문고’ 등장

    조선시대의 신문고가 서울 도심에 재등장했다. 중구는 이달부터 주민 여론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구청장이 직접 수합하는 신문고’를 15개 동에 2개씩 모두 30개를 운영한다고 16일 밝혔다.구청장이 신문고를 직접 관리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자체들이 운영했던 기존 신문고와 의미가 많이 다르다.신문고에 들어 있는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은 구청장만 볼 수 있다.이와 함께 동 주민센터에서 ‘구청장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에 답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신문고는 130㎝ 높이의 전통 북 형태다.‘고민을 이곳에! 여러분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와 ‘구민의 소리를 모아 행복 중구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동안 주민 민원 청취는 구청 방문이나 전화,인터넷,명예민원 상담실,직소민원실 등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이 같은 방법은 담당자와 해당 부서 등의 검토를 거쳐 전달되다 보니 구청장이 솔직한 주민 여론을 수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동일 구청장은 “형식적으로 신문고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구청장이 직접 열쇠를 관리한다.”면서 주민들의 많은 의견이 제출되기를 기대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춤을 지나치게 좋아한다거나 그래서 ‘춤바람’이 났다면,무언가 온당치 않은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다.그 이유는 아마도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한 가부장제에 있을 것이다.추측건대 ‘춤바람’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20세기 후반 사교춤이 유행하고 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춤을 즐기는 것은 원래 한국인의 오랜 전통이었다.아니 이 세상 모든 나라의 모든 민족은 모두 춤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각설하고,신윤복의 ‘춤’(그림 1)을 보자.그림의 윗부분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고,아래쪽 넓은 공간에 춤을 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다.그림 오른쪽에 네 명의 악공이 있는데,장구를 치는 사람이 하나,피리를 부는 사람이 둘,해금을 켜는 사람이 하나다.춤을 추는 여성은 아마도 이 악공과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기생일 것이다.조선 후기에는 악공과 기생이 한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다.여기서 이 악공과 기생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터인데,당연히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양반과 그 왼쪽의 두 사내다.짙은 나무 잎사귀로 보아,계절은 여름이 틀림없다.어느 여름날 시원한 산그늘을 찾아가 풍악을 잡히고 기생과 춤을 추면서 보내는 한때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양반들이 잔치에서 춤추는 건 흔한 일 그런데 그림 왼쪽에 있는 두 사내의 포즈가 가관이다.한 사내는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 있고,아래쪽 사내는 비스듬히 누워 있다.둘 다 검은 갓끈을 하고 있고,또 아주 젊은 얼굴로 보아 벼슬하지 않은 젊은이다.근엄한 양반들이 어찌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는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남녀 한 쌍의 춤을 감상하고 또 직접 춤을 출 수 있다는 말인가.조선시대 양반에 대해 지금 사람들은 오해가 많다.즉 양반이면 모두가 예를 지키고 법도를 따라 근엄한 표정으로 행동을 삼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옛날 양반이 지금 사람들보다는 유가가 요구하는 윤리와 도덕,그리고 예를 더 지킨 것은 사실이겠지만,그것이 모든 양반들에게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조광조나 율곡이나 퇴계,남명 선생 정도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이 그림에서처럼 더우면 갓끈을 풀고 비스듬히 기대기도 하고 기생과 어울려 춤도 추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찾아보면 춤에 관한 기록은 결코 드물지 않다.예컨대 ‘실록’에는 그런 자료가 적지 않게 나온다.여기서는 조선 후기의 ‘실록’을 몇 구절 읽어보도록 하자.‘사변록’이란 책에다 주자와 다른 경전 해석을 써서,정적들에게 사문난적으로 찍혀 곤욕을 치렀던 박세당은 1703년 귀양살이가 결정되지만,제자 이인엽이 숙종에게 입이 닳도록 간청하여 겨우 유배를 면하고 곧 세상을 뜬다.그날조 ‘숙종실록’의 사신은 박세당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박세당은 젊은 시절 국구(國舅) 김우명(金佑明)의 집안 잔치에 참석했을 때 일어나 춤을 추기까지 하였으므로,사론(士論)이 비루하게 여겨 그를 전랑(銓郞)에 추천하는 것을 막았다.”박세당이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양반들이 잔치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음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氏世傳書畵帖)’에 실린 ‘해영연로도(海營宴老圖)’(그림 2·작자 미상)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1529년 김양진이란 분이 황해도 감사가 되어 감영에서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었을 때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전문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라서 그림은 미숙하지만,기생 두 명의 춤과 노인들이 일어나서 일제히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실록’ 49년 8월 9일 기로소 의정부 중추부 주원(廚院)에서 진찬(進饌)하였을 때다.잔치가 무르익자 영조는 영의정 한익모 부자,판서 조영진 부자,조창규 김사목에게 대무(對舞)하라고 명한다.그들은 왕명에 당연히 일어나 춤을 추었다.왕과 신하가 참석한 잔치에서 신하가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물론 깐깐한 사신은 한마디 한다.“한익모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소매를 들고 너울너울 악공들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또 아버지와 아들은 짝을 지어 춤을 출 수 없는 법인데도 경솔하게 일어나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비웃었다.”한익모가 영의정이라서 비난을 받은 것이지 춤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자는 소매 떨치고 여자는 손 뒤집어 사정이 이러니 조선조의 양반들 역시 당연히 춤을 즐기고,또 여성과도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다.‘영조실록’ 18년 9월 3일조를 보면,대간(臺諫)은 함안군수 이휘진이 악기를 쥐고 악공들과 어울려 연주를 하고,기생과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고 하여,대간 후보에 오른 것을 빼 버리라고 요청하고 있다.여성,특히 기생과 춤을 추는 것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또 영조가 대간의 청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기생과 춤을 추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춤을 어떻게 추었던가.유득공의 ‘경도잡지’는 남녀의 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춤은 반드시 대무(對舞)인데,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대무를 춘다는 것은,춤을 추면 으레 남자와 여자가 같이 춘다는 것을 의미한다.‘경도잡지’는 서울의 풍속에 대해 쓴 책이니, 유득공이 살던 시대,즉 18세기 서울에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그림(1)이 풍습의 증거가 된다.‘경도잡지’의 “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는 구절의 원문은 ‘男拂袖,女?手’인데,무엇이 소매를 떨치고 손을 뒤집는 것인지,또 이 춤이 어떤 춤인지는 견문이 짧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그림(1)을 보면,남자의 옷소매는 손을 감출 정도로 길고,여성은 손을 드러내고 있으니,‘경도잡지’가 말한 바의 춤인 것이다. ●조선전기 여진족의 춤 ‘목후무´ 유행 조선 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만난 여성과 춤을 춘 경우도 발견된다.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이른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인데,그는 1485년 친구들과 개성 일대를 유람하고 ‘송경록(松京錄)’이란 기행문을 남긴다.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양절 날 동서남의 여러 산 곳곳마다 남자 여자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여 자못 태평한 기상이 있었다.…첨성대로 갔다가 우연히 야제(野祭)를 지내는 남녀를 건덕전 터에서 만났다.남녀가 다투어 우리를 맞이했는데,백원(百源·李摠)을 윗자리에 앉히고 우리들은 그 다음 줄에 앉았다.자용(子容)이 맨 처음이었고,정중(正中·李貞恩)이 그 다음,회녕(會寧·宋會寧)이 그 다음,석을산(石乙山)이 그 다음,숙형(叔亨)이 그 다음,내가 그 다음이었다.…백원이 정중을 돌아보며 비파나 금을 타라고 하였다.회녕은 피리를 불고,석을산은 노래를 불렀으며,자용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비파와 노래와 피리가 각기 그 오묘함에 이르자,자용이 남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와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춤이 끝나자 목후무(沐?舞)를 추었는데,모든 동작이 음악에 맞았다.그것을 보고 주인 남녀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목후무란 여진족의 춤이다.성종 당시 공경대부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어쨌거나 좋다.남효온 일행은 개성의 첨성대를 찾아갔다가 굿을 하는 한 무리의 남녀를 만났던 것이고,그 자리에 끼어서 같이 춤을 추며 놀았던 것이다.특히 자용이란 사람은 가장 젊은 여자를 파트너로 하여 춤을 추었고,그 춤에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하니,모르는 여자와 춤을 추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춤을 추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었다.공원에서 얼후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대한민국에는 그런 풍경이 없다.생활에 여유가 없어서인가? 춤은 모두 어두운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으로 퇴각해 버린 것인가.가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이 난 한국인이 어찌 이리되었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유일 돌다리 연구가 손광섭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유일 돌다리 연구가 손광섭

    개울가에 돌 하나만 툭 던져놓아도 징검다리가 된다.그리곤 개울을 건너,가지 않았던 인생길을 걷는다.태초의 어떤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을 터.너와 나의 만남,남녀간의 사랑도 말이다.헤어짐도 당연지사였겠지.올해초 2008년이라는 개울 앞에 하나 둘 돌을 놓기 시작했다.벌써 해가 저문다.지금까지 어떻게 건너왔는지 잠시 되돌아본다.아마 세가지로 분류되지 않을까. 돌다리를 두들겨보지도 않고 천방지축 손오공처럼 건넜을 테다.삼장법사처럼 신중하게 두들겨보고 건너기도 한 것 같다.또 바둑의 이창호 9단처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겠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석두론(石頭論)을 좋아했다.개혁·개방을 설계하면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摸着石頭過河)’고 주창했다.또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웠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덩샤오핑은 이 두 가지로 중국대륙을 호령했다. 이래저래 돌다리는 인생철학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그런데 오랜 세월,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돌다리들이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사라져 가고 있다.여기서 잠깐! #문제1: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징검다리는?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 있으며 수곡리와 추포리를 연결한다.길이 2.5㎞,돌덩이가 무려 3만 6000여개에 이른다.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300여년 전인 조선시대 추포도에 사는 문씨와 장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하나 둘 돌을 던지며 연결했다.옛날에는 이 징검다리로 새색시들이 가마 타고 시집갔다.이때 가마꾼들 사이에 불려진 노래가 지금도 전해진다.‘띄었냐? 띄었다! 뒤쪽의 가마꾼이 띄었냐? 앞쪽의 가마꾼이 띄었다!’ #문제2: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이다.통일신라 때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청운교는 높이 3.82m,너비 5.11m이다.백운교는 높이 3.15m,너비 5.09m,길이 6.3m이다.이름 그대로 푸른 구름과 흰구름 다리를 뜻한다. 다리 위는 천상의 세계요,다리 아래는 속세를 표현한다.하여,이 다리를 건너면 부처의 나라로 들어간다.하지만 기원전 37년에 만들어진 청주 남석교가 가장 오래됐다.애석하게도 이 다리는 일제 때 땅속에 묻혀 여전히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아울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량공사는 신라 실성왕 12년(413년)에 완성된 평양주대교(平壤州大橋)로 위치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발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문제3: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뭐니뭐니 해도 진천의 ‘농()다리’를 꼽는다.고려시대 몽골 침략 때 세워졌으며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됐다. 길이 93.6m,폭 3.6m인 이 다리는 거대한 지네가 물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다리답게 사연도 많다.안질을 앓던 세종대왕이 초정리로 가다가 물을 마셨다는 소습천(어수천·御水川), 많은 장수들과 말발굽의 흔적 등이 남아 있다. 이렇게 돌다리만 고집스럽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손광섭(66) 청주건설박물관장.15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숨어 있는 돌다리를 찾아내 거기에 담긴 천년의 세월을 끄집어내고 있다.다리품을 모아 7년 전 청주에 다리박물관인 ‘건설박물관’을 세웠다.또 2004년 단행본 ‘천년후,다시 다리를 건너다’를 발간했다.책에서 송광사 삼청교,강경 미내다리,함평 고막천 석교,광한루 오작교,논산 원목다리 등 전국 30여개의 돌다리를 소개했다.최근에는 돌다리 연구 완결편인 ‘천년후,다시 다리를 건너다Ⅱ’를 펴냈다.목릉 금천교를 시작으로 제주의 명월교에 이르기까지 전국 27개의 돌다리를 새로 추가했다.특히 보길도 굴뚝다리,봉화 돌다리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거나 훼손돼 위험에 처한 다리까지 실었다.그가 국내 유일의 ‘돌다리 전문가’로 불리는 까닭이다. 청주건설박물관에서 손 관장을 만났다.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진다.전국을 찾아다니며 직접 찍은 돌다리 사진이 사방 벽으로 쭉 전시돼 있었다.유리 전시관 안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됐다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돌다리,당시 유배지로 떠나던 선비가 사용했던 화장실,조선시대 각종 건설장비 등을 비롯해 발해시대의 석등탑과 삼족우,송나라 때 사용됐던 소뿔먹통,타이타닉 배에서 뽑았다는 못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박물관 3개층에 걸쳐 시대별로 진열돼 있었다.예멘의 벽돌,페루 마추픽추의 관련 흔적 등 해외자료까지 합하면 무려 수십만 점은 족히 돼 보였다.이런 소문이 나 외국인들도 이곳을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떻게 해서 돌다리를 연구하게 됐습니까. “원래 아버지로부터 건설회사를 이어받았습니다.자연스럽게 전국을 다니게 됐죠.그때마다 지방 마을에 있는 돌다리를 접하면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다리의 돌 하나하나에 예술이 있고,선조의 삶과 해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1993년쯤부터는 아예 주말마다 거의 전국에 흩어진 돌다리를 만나러 도시락 싸들고 떠났지요.” →세월 속에 없어진 돌다리도 많을 텐데 자료찾기는 쉽던가요. “고서점은 물론 국회도서관에 가도 없더군요.결국 그동안 간간이 소개됐던 도지(道誌)와 군지(郡誌) 등을 뒤졌습니다.그걸 바탕으로 시골동네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밥과 술을 사드리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암태도의 징검다리 돌덩이 숫자가 3만 6000여개인 이유도 일년 365일 평안을 기원하는 속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우리나라 돌다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설화와 전설이 얽혀 있습니다.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무대가 된 남해의 돌다리,형제가 쌀 천섬을 들여 만든 거창의 쌀다리,17세기 우리 교각의 형태를 볼 수 있는 벌교 도마교 등에도 흥미로운 사연이 많습니다.이런 돌다리에 서서 천년 전,누가 무슨 일로,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넜을까 생각하면 막 흥분이 되고 그럽니다.” 처음에는 옛다리들을 보면서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놈,잠 잘생겼다.예술이다.”라고 중얼거리다 보니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술회한다.세계 어느 조각작품에도 뒤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미를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서였다.현실적으로 다리를 한 곳에 옮겨다 놓을 수 없기에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다녔다.또 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된 개성의 선죽교 등 북한에 있는 것은 방북했을 때 어렵게 그림을 얻어다가 전시해 놨다.그는 “수십번 찾아가도 항상 말없이 반겨주는 것이 돌다리였다.”면서 남은 생애에 여건이 된다면 북한의 돌다리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며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1943년 청주에서 태어났다.청주고와 청주대학을 나와 1968년 아버지로부터 건설회사를 이어받았다.그러던 어느 날부터 돌다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1993년부터 본업보다는 아예 돌다리 연구에 매진했다.고서점이나 국회도서관 등에도 돌다리에 관한 자료가 없어 어려움도 많았다.결국 수소문하면서 도지(道誌)나 군지(郡誌) 등을 뒤져 자료추적을 했고 산골마을에 직접 찾아가 동네 어른들을 만나 돌다리에 얽힌 얘기를 기록했다.2001년 1월 청주에 국내 최초의 돌다리박물관인 ‘청주건설박물관’을 설립했다.이어 2004년 산야에 묻혀 사라져 가거나 훼손된 돌다리들을 찾아내 ‘천년후 다시,다리를 건너다’라는 단행본을 펴냈고 최근 돌다리 연구의 완결편인 ‘천년후 다시,다리를 건너다Ⅱ’를 추가로 발간,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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