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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 영산강 기적…지방이 잘사는 나라 만들겠다”

    “나주 영산강 기적…지방이 잘사는 나라 만들겠다”

    윤병태 나주시장이 최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일 공동 세미나에서 “앞으로 새로운 영산강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구소멸 문제 해결 방안을 소개해 주목받았다. 1일 나주시에 따르면 이 세미나는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주최로 열렸다. 윤 시장은 국제자매결연도시인 일본 돗토리현 구라요시시 히로타 가즈야스 시장과 함께 양국을 대표해 기조강연을 했다. 윤 시장은 ‘새로운 영산강 시대의 개막, 역사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나주’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며 영산강 유역 고대 문화권 중심지, 고려·조선시대 나주목의 역사적 위상과 규모를 재조명했다. 이어 16개 이전공공기관이 이전한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 조성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 설립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성공 모델로 부각되고 있는 현재의 나주를 설명했다. 또 직류산업 글로벌 혁신 규제자유특구와 교육자유특구 선도지역 지정, 푸드테크연구지원센터 건립 공모 선정, 취업 청년 무상임대주택 공급 등 전국 최초 사례와 전남 첫 악취통합관제센터 구축, 전체 마을 경로당 입식테이블·의자 공급 등 민선 8기 전반기 10대 성과를 소개했다. 윤 시장은 나주시가 국가균형발전 거점 도약을 위해 추진 중인 ‘농생명’, ‘에너지신산업’, ‘관광 활성화’ 3대 주축 사업과 ‘귀촌 활성화’, ‘교육환경 개선’, ‘출산육아지원’ 등 인구소멸 문제에 대응한 선도 정책도 발표했다. 특히 에너지밸리 기업 369개사 유치, 에너지국가산단 조기 조성, 켄텍 연계 에너지 클러스터, 초전도 도체 시험 장비 구축 선점에 따른 인공태양연구시설 유치 추진 등 에너지신산업 중심도시 나주의 비전을 설명했다. 윤 시장은 “우리나라 최대 현안은 인구 감소 문제로 해결을 위해선 지속가능한 균형발전 생태계 조성, 지방이 잘사는 나라, 지방으로 사람이 몰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중심은 항상 강을 따라 이뤄졌고 나주시는 국가균형발전 거점을 영산강에서 찾고자 한다”며 “수도권 성장 중심의 한강, 중화학 공업 중심의 낙동강, 대덕특구와 세종시가 위치한 금강에 이어 마지막 퍼즐은 영산강”이라며 나주가 선도하는 새로운 영산강 시대의 포부를 밝혔다.
  • [김동률의 아포리즘] 결국은 사람이다

    [김동률의 아포리즘] 결국은 사람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이다. 평양냉면의 사대천왕으로 꼽히는 유명 냉면집을 찾았다. 뙤약볕이 심벌즈처럼 머리를 꽝꽝 울리는 한여름에는 최소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는 맛집이다. 예약은 불가능에 가깝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은 집이다. 다만 노쇼가 없고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극히 일부’ 고객에게만 예약을 받는다고 했다. 오랜 단골인 나는 기준에 합격했나 보다. 예약을 받아 준다. 그런데 그날 분명히 예약을 한 것 같은데 안 돼 있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대략 난감, 더 따질 것 없어 빈 자리를 기다렸다. 다행히 단체손님 식사가 끝나 큰 방이 비었다. 나와 후배는 그 방으로 안내됐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열 명 정도 식사가 가능한 방인데 손님이 없다. 아니,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받으라고 해도 받지 않는다. 밖에는 수십명이 땡볕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달랑 둘이서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주인이 2인방을 예약하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실수라며 옆자리를 몽땅 비워 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주인의 호의에 감동하면서도 오히려 좌불안석,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일어섰다. 함께 한 후배는 첨 보는 풍경이라며 신기해했다. 연구실에서 멀지 않아 여름이면 이 집을 자주 찾았다. 그럴 때마다 가끔 감동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말투로 미루어 이북이 고향으로 짐작되는 남루한 노인이 소주 한 병과 냉면을 주문한다. 4~5명이 앉는 둥근 탁자를 한 시간 이상 혼자 차지하고 있다. 바깥 줄이 아무리 길어도 직원들은 싫어하는 내색 없이 생글생글 서빙에 열심이다. 또 있다. 이 집 건물 옆 골목길에는 희한한 에어컨이 있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처마 밑에 설치한 수제 에어컨이다. 기다란 쇠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찬 공기를 내보내는 방식이다. 더운 날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 배려다. 나는 그런 풍경을 보면서 이 노포의 위대함에 감격하게 된다.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일본 이야기다. 밤 10시에 가게를 정리하는데 소셜미디어로 메시지가 왔다. 손님이 보낸 항의 문자였다. 거스름돈 500엔을 받지 못했다는 것. 사장 오오야마는 매출부터 확인했다. 손님 말이 맞았다. 곧장 연락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장 500엔을 돌려드리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 주십시오.” “밤도 늦었고 괜찮아요. 실망감을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닙니다. 500엔을 댁 우체통에 넣고 올 테니 좀 부탁드립니다.” 항의한 고객의 집은 차로 90분 거리. 밤길에 서둘러 차를 몰았다. 우체통에 500엔과 메모를 넣고 돌아서는데 그 고객이 나왔다. 500엔이 더 돼 보이는 음료와 과자를 담은 봉투를 건네는 것이었다. “사장님,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아닙니다. 저희 불찰인 걸요. 불쾌하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 후르츠산도(통과일 샌드위치) 개발자 오오야마 고오키가 쓴 ‘오늘부터 제가 사장입니다’에 나오는 일화로 최근 들어 널리 알려지고 있다. 몇 년 전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을 다녀왔다. 유학했던 소도시의 월마트에서 닌텐도 게임기를 99.99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그러나 한국과 버전이 일치하지 않아 작동이 되지 않았다. 2년 후 모교 방문길에 다시 그 월마트에 들렀다. 버전이 틀려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직원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보증기간이 많이 지나 환불은 어려우니 그 가격에 해당하는 물건을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지혜가 생각났다. 전자상거래로 대형마트 폐업이 급증하는 미국에서도 월마트만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은 자영업이 넘친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기 폐업이 가장 많다. 작년 한 해만 98만명이 가게를 접었다. 2006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많고 증가폭도 가장 크다. 그만큼 장사는 어렵다고 한다. 그냥 좋은 재료에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귀하게 여겨야 오래간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그랬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말이다. 성공하는 장사는 사람 장사다. 인생도 그렇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
  • 과거 급제를 꿈꾸던 길, 주흘산 문경새재 [두시기행문]

    과거 급제를 꿈꾸던 길, 주흘산 문경새재 [두시기행문]

    경북 문경시의 진산인 주흘산은 해발 1108.4m로 아름다운 산세와 문경새재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는 곳이다. 특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내려오다 문경에 이르면 웅장하게 치솟아 있는 주흘산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 이라는 뜻으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주산으로 매년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러운 영산으로 받들어졌다. 흔히들 사용하는 ‘영남’이라는 말도 문경새재를 경계로 남쪽을 뜻하는 의미이며 현재 경상도를 뜻하는 의미로 ‘교남’이란 말과 함께 사용되는 것만 봐도 주흘산의 명성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던 길주흘산은 예부터 돌산이 치솟아 그 기세가 웅장하고 뛰어나며, 영남의 산천은 성질이 중후하여 명현(明賢)을 배출한 동반인재의 부고(府庫)라 말을 만큼 위명이 대단했다. 주흘산 동쪽과 서쪽에서는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는 곳곳에 폭포를 형성하여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 중 10m 높이의 여궁, 파랑폭포가 유명하다. 고려말 홍건적이 쳐쳐들 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혜국사는 해발520m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주변 산에 비해 조화롭고 멋진 풍경을 자랑하고 있고 그 기세가 압도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주흘산과 백두대간 조령산 중심에 있는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였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영남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었다. 과거급제를 꿈꾸는 선비들이 오가던 고개현재는 편안함을 위해 자동차 통행길이 발전하여 넓어 졌지만 새재에 설치된 3개의 관문을 비롯해 일부 고갯길은 옛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을 연결하는 고갯길인 새재는 1413년에 개통되었다. 문경새재는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했던 구간에 속하는 길이었는데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했던 고갯길로 알려졌다. 지금의 도시 이름의 문경(聞慶)의 옛 이름은 문희(聞喜)로 ‘경사스러운 소식을 처음 듣는다’ 혹은 ‘기쁜 소식을 처음 듣는다’ 라는 뜻을 갖고 있어 멀리 호남지방에서 과거를 보던 선비들까지 이곳까지 먼 길을 돌아 한양으로 향했다고 전해진다. 문경새재 길을 지나는 길손 들은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탑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에 급제하고 몸이 아픈사람은 쾌차하며, 상인은 장사가 잘되고 아들을 못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한다. 새재의 뜻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국방의 요새로 활용된 문경새재하지만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 민요 등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주흘산과 함께 문경새재를 마주하고 있는 조령산의 뜻은 ‘새도 쉬어 가는곳’ 이라는 뜻으로 어찌보면 문경새재와 같은 뜻을 하고 있다. 문경새재는 국방상의 요충지로 활용되는데 임진왜란 이후 3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국방 요새로 삼았다. 이곳이 산성을 쌓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제1관문 주흘관, 2관문 조곡관, 3관문 조령관을 설치하였고 국립여관으로 활용한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등 주요 관방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자, 주막터, 성황당 그리고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남아 있다. ‘옛길 걷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 열려현재의 문경새재 일대는 주흘산과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숲길 등 경관 가치가 뛰어나고 ‘옛길 걷기 체험’ 등 옛길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다양한 체험행사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곳으로 수안보, 문경온천, 문경도요지, 희양사의 봉암사, 선유동 계곡과도 연계되어 있고 한국방송공사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사극 대하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2000년 문경새재 제1관문 뒤 용사골에 걸립한 촬영징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인근에 식당가도 잘 조성되어 있고 볼거리가 많아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과 선비의 문화도 느끼며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 [길섶에서] 지혜로운 다툼

    [길섶에서] 지혜로운 다툼

    “서울을 벗어나면 짜장면집에 가야 실패가 없다”고 돌아가신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달라졌지만 요즘도 이 가르침을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이 적다. 엊그제 양주시 남면의 중국집에 앉아 있자니 옆자리 어르신 두 분이 ‘우리 동네는 양주 북쪽인데 왜 남면(南面)인가’를 두고 목청을 높였다. 시골 영감님들이 벌이는 수준 높은 역사 논쟁의 주제는 나도 궁금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귀담아듣게 됐다. 한 분은 파주 적성 남면이 양주에 합쳐진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분은 연천 남면이 편입된 것이라고 했다. 심판 없는 입씨름은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조선시대 적성현은 한말 적성군으로 개편됐다. 적성군의 남면은 이후 연천군, 다시 양주군으로 차례로 소속을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양쪽 주장이 모두 옳지만 끼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 분은 다툼을 이어 가다 “진 사람이 막걸리 내기”에 합의하는 것이었다. 동네 역사를 화제로 삼는 영감님들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누가 사든 결국 술 한 잔을 나눈다는 결론은 더욱 지혜로워 혼자 웃었다.
  • Q. 조선시대도 바다가 피서지로 인기였을까

    Q. 조선시대도 바다가 피서지로 인기였을까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는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난다.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름철 국내외 여행지 대부분은 바닷가 지역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생각만 해도 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옛사람들에게도 바다는 낭만적이고 휴식을 주는 공간이었을까. 서양의 경우 근대에 들어 선박 기술이 발달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는 ‘푸른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묘사됐다. 또 거대한 문어같이 생긴 괴물들이 사람과 배를 심해로 끌고 들어가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됐다. 이는 우리 조상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8세기 한중 관계사를 연구하는 이명제 전남대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발행한 웹진 ‘담談’ 최신 호에 ‘목숨을 걸고 배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선조들이 바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광해군 13년(1621년)에는 훗날 청나라로 불리는 후금이 만주 지역 패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조선 개국 이후 처음 바닷길을 통해 명나라로 가는 사행이 있었다. 사신단으로 이 사행에 참여한 안경(1564~1640)이 쓴 ‘가해조천록’에 따르면 바다에 대한 우리 조상의 인식은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멀지 않은 바닷길이었지만 바다는 위험한 곳으로 인식됐다. 광해군이 사신단에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한배에 타지 말라. 혹시 어떤 배가 불행을 겪더라도 다른 배는 도착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내린 명령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과 부기장에게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같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조치라 하겠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신단은 평안도 안주에서 출발해 연안 해역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됐음에도 여름 풍랑을 맞아 많은 배들이 좌초되고, 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는 바닷길에서도 또다시 거센 풍랑을 맞아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표류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요즘 바다는 아름답게, 또는 풍요롭고 신비로운 곳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바다는 죽음과 공포의 대상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조선통신사 1000㎞ 뱃길, 260년 만에 재현

    조선시대 한일 교류 상징인 조선통신사의 일본 시모노세키행 뱃길이 260년 만에 재현된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조선통신사선 재현선이 31일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 쓰시마를 거쳐 시모노세키까지 약 한 달간 항해한다고 30일 밝혔다. 재현선이긴 하지만 조선통신사선이 대한해협과 쓰시마 해협을 건너 시모노세키에 가는 건 1764년 이후 처음이다. 조선통신사선은 지난해 8월 쓰시마에 입항해 이즈하라항 축제와 통신사 재현 행렬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는 부산과 시모노세키 간 1000㎞에 이르는 뱃길 재현에 나선다. 최종 목적지인 시모노세키에서는 조선통신사선을 맞는 여러 행사가 열린다. 다음달 23일에는 한일 관계자들이 모여 ‘260년의 시간을 넘은 내항, 조선통신사로 배우는 문화 교류’를 주제로 공동 학술 토론회를 진행하고 24~25일 이틀간 조선통신사선 입항 환영식과 선상 박물관 행사가 진행된다.
  • ‘색다른 공포에 무더위 싹’ 합천 고스트파크 어웨이크 인기몰이

    ‘색다른 공포에 무더위 싹’ 합천 고스트파크 어웨이크 인기몰이

    경남 합천군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진행 중인 ‘고스트파크 어웨이크’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합천군은 지난 29일 행사 첫날에만 1000명이 찾는 등 합천영상테마파크와 고스트파크 어웨이크가 지역 대표 관광 명소·행사로 주목받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고스트파크 어웨이크’는 8월 18일까지 매일 오후 6시~오후 11시 30분 열린다.코로나19로 잠정 중단했다가 5년만에 재개한 행사는 합천 오광대 가면극 설화에서 착안한 이야기를 입혔다. 전염병과 대홍수 등이 발생했던 조선시대 어느 시기 큰 궤짝에 담긴 가면을 누군가 쓰고 놀았더니 평화가 찾아왔다는 가면극 설화를 본떠 현대에 불어 닥친 재앙을 참가자들이 잠재운다는 설정이다. 행사장은 좀비감옥·비명도시 등 메인 체험시설(어트랙션)과 원혼귀옥·드라큘라저택·고스트케이지·악몽교실 등 서브 체험시설, 의상실과 분장실 등 다양한 호러 테마 공간으로 꾸몄다. 참가자들은 미로처럼 마련된 체험시설에서 12가지 귀신 캐릭터를 피해 여러 가지 미션 등을 수행한다. 서브 체험시설에서 미션을 마치고 나서 메인 체험시설에 도전할 기회를 얻는 방식이다. 방문·관람객에게 더 폭넓은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자 호러 퍼포먼스와 행사 운영사인 SBS 특수분장팀과 의상팀이 주관하는 각종 분장 체험도 유료로 마련했다. 고스트 콘셉트에 맞는 먹거리와 쉼터도 있다.고스트파크 어웨이크 입장권은 온라인(hcgfest.com)·오프라인(현장 발권)에서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예매 때는 최대 30% 할인 혜택을 준다. 김윤철 합천군수는 “고스트파크 어웨이크 축제가 합천군의 문화 콘텐츠 확산과 관광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색다른 공포의 매력을 만끽할 용감한 도전자들이 많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 무대인 합천영상테마파크는 1920~1980년대 거리를 재현한 전국 최대 규모 시대극 촬영지다.
  • 유네스코 ‘산지승원’ 조계산 선암사를 걷다 [두시기행문]

    유네스코 ‘산지승원’ 조계산 선암사를 걷다 [두시기행문]

    전남 순천 조계산은 높이 888m로 소백산맥 끝자락에 솟아 있다.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고 불렸으며 송광산이라고도 한다. 피아골, 홍골 등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폭포, 약수 등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쪽 기슭에는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인 송광사가 있는데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등의 국보들이 있고 곱향나무, 이팝나무 등의 천연기념물과 비룡폭포가 유명하다. 2018년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동쪽 기슭에는 한국의 산지승원 선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 삼층석탑, 아치형 승선교 등의 보물을 간진하고 있다. 산 일대의 워낙 수종들이 다양하게 있어 산전체가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7개의 사찰들은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산사(山寺)로 신앙과 영적 수행, 승려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로 한국의 불교의 역사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곳이다. 다양한 불교신앙이 산사 내에 수용되었는데, 이는 역사적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으로 잘 남아있다. 사찰의 자립성, 승려교육, 한국 선불교의 특징인 영적 수행과 교리 학습의 공존 등을 이어가며 한국 불교의 무형적, 역사적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산지승원은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인해 손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의 살아있는 중심으로 남아 있는 신성한 장소이다.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에서 열린 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결정된 한국의 산지승원으로는 양산시 통도사, 영주시 부석사, 안동시 봉정사, 보은군 법주사, 공주시 마곡사, 해남군 대흥사, 순천시 선암사가 있다. 861년 통일신라 시대 도국선사 창건이중 선암사는 조계산 산기슭 동쪽에 자리하 하고 있으며 백재 성왕 때인 529년 아도화상(삼국시대 승려)이 비로암을 세웠으며, 통일신라 경문왕 때인 861년 도선국사가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하였다. 선암사 반대편 서쪽 산중턱에는 승보사찰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고 선암사 주위로 수백년을 자리를 지켜온 상수리, 동백, 단풍나무 등이 있다.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사찰 중 하나로 보물 7점 외에도 장엄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 등이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선암사 칠전선원은 사찰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일곱채의 참선 장소를 의미하는 곳으로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 총림으로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많은 선승을 배출하였다. 선암사 뒤편으로 800년이 넘은 자생 차 군락지가 있다. 차 배지에서 생산하는 야생차는 안동의 화개차를 으뜸으로 치지지만 순자연산 차로는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친다. 구수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지만 차 밭의 규모가 크지 않아 수확량이 적어 귀한대접 받는다. 불교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책길인근에 지리산과 백운산과 마찬가지로 고로쇠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매년 경칩을 전후로 약수를 맛볼 수 있다. 선암산 도립공원 주차장을 따라 선암사로 가는 길에 위치한 아치형 승선교는 숙종 때 호암화상이 6년만에 완공한 아치형 다리로 길이 14m, 높이 4.7m 폭4m로 시냇물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졌다.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진 다리는 선암사로 향하는 고즈넉한 길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기분이 든다. 불교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조계산 선암사는 주차장부터 천천히 걸으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으며 천년고찰의 모습과 보물, 문화재, 천연기념물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주차장 인근에는 다양한 토속음식을 판매하는 곳까지 있어 식사를 해결하기도 좋으며 무난한 등산코스로 사시사철 변하는 멋진 자연림을 느끼며 등산을 떠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조선시대에도 바다는 피서지로 인기였을까

    조선시대에도 바다는 피서지로 인기였을까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는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다.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국내외 여름철 여행지는 대부분 바닷가 지역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생각만 해도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여름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바다나 보러 갈까’라는 충동이 일기도 한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에게도 바다는 그렇게 낭만적이고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서양의 경우, 근대에 들어 선박 기술이 발달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는 ‘푸른색’이 아닌 ‘검은색’처럼 어두운색으로 묘사됐다. 또, 거대한 문어같이 생긴 괴물들이 사람과 배를 심해로 끌고 들어가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됐다. 이는 우리 조상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8세기 한·중 관계사를 연구하는 이명제 전남대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발행한 웹진 ‘담談’ 7월호에 ‘목숨을 걸고 배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선조들이 바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광해군 13년(1621년)에는 훗날 청나라로 불리는 후금이 만주 지역 패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조선 개국 이후 처음으로 바닷길을 통해 명나라로 가는 사행이 있었다. 사신단으로 이 사행에 참여한 안경(1564~1640)이 쓴 ‘가해조천록’에 따르면 바다에 대한 우리 조상의 인식은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멀지 않은 바닷길이었지만 바다는 항상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광해군이 사신단에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한배에 타지 말라. 혹시 어떤 배가 불행을 겪더라도 다른 배는 도착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내린 명령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요즘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과 부기장에게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같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조치라 하겠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신단은 평안도 안주에서 출발해 연안 해역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됐음에도 여름 풍랑을 맞아 많은 배들이 좌초되고, 살아서 육지로 올라온 이들은 비적 떼들에게 방물과 문서, 행장 등의 짐들을 빼앗겼다. 어렵사리 명나라 황제가 사는 북경까지 갔으나 관원들의 뇌물 요구에 조선 사신단은 몸살을 앓았다. 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는 길도 바닷길을 이용했으나 또다시 거센 풍랑을 맞아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표류하기에 이르렀다. 식량도 떨어져 해초로 연명하던 사람들은 겨우 평안도 철산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고생 때문에 안경은 자손들이 자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자손들은 영원히 문관 벼슬을 하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교수는 “요즘 바다는 아름답게, 또는 풍요롭고 신비로운 곳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선조들에게 바다는 ‘죽음과 공포’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 ‘힐링’ 하면 노원… 녹색 복지 계속된다

    ‘힐링’ 하면 노원… 녹색 복지 계속된다

    서울 노원구가 국토교통부의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4년 연속 수상했다. 초안산 힐링타운, 당현천 수변문화공간, 화랑대 철도공원, 불암산 힐링타운 등 노원 곳곳에 힐링 명소를 만들어 온 쉼 없는 노력의 결과다. 2021년 이후 연속 수상한 지방자치단체는 전국에서 노원구가 유일하다. 국토부는 지난 17일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노원구 초안산 힐링타운을 한국도시설계학회장상에 선정했다. 국토부는 “훼손·방치된 곳을 개선하고 쾌적한 보행로를 제공해 다양한 테마 공간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월계동 비석골 공원 일대에 2만 7000여㎡ 규모로 조성된 초안산 힐링타운은 지난해 여름 문을 열어 주민들의 쉼터가 돼 왔다. 나무 그늘에서 초여름을 알리는 알록달록한 수국동산을 바라보는 재미는 인근 자치구에까지 입소문이 났다. 첫 수국이 개화한 지난달에는 ‘수국동산 작은 음악회’도 열렸다. 조선시대 양반부터 서민까지 다양한 신분계층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비석골 근린공원은 방치된 조형물·석물을 정비해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우러진다. 왕벚나무 군락에 조성된 피크닉장에는 어린이들의 숲속 놀이터와 맨발로 땅을 걸으며 건강까지 다질 수 있는 황톳길도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초안산 힐링타운은 비석골 공원과 수국동산, 피크닉장을 산책로와 데크길로 연결해 걷는 즐거움이 있다”며 “특히 기존 불법 경작, 쓰레기 투기로 훼손된 공간을 재생시킨 사례라 뜻깊다”고 했다. 앞서 구는 국토대전에서 2021년 중계동 불암산 힐링타운으로 학회장상을 받았다. 10여분 도보 거리에 철쭉동산, 나비정원, 전망대 등이 모여 있어 힐링타운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2022년과 지난해에는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화랑대 철도공원과 문화와 예술을 입은 당현천 수변문화공간으로 각각 장관상을 수상했다. 민선 7기 ‘힐링도시 노원’과 민선 8기 ‘정원도시’를 목표로 멀리 가지 않아도 즐거운 노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결실이다. 근린공원에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 정원사와 함께 조성한 휴가든도 호응이 높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녹색 복지의 하나로 힐링 명소를 조성해 온 구의 꾸준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구민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경춘선 숲길 연장, 폭포공원 조성, 중랑천 만남의 광장 조성 등 명품 여가 시설을 완성도 있게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
  • 한강까지 사계절 걷기 좋은 종로 ‘홍제락길’ 재탄생

    한강까지 사계절 걷기 좋은 종로 ‘홍제락길’ 재탄생

    홍제천변 일대가 3년여 간의 공사를 마치고 이달 ‘역사·문화’와 ‘쉼’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서울 종로구는 주민들에게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홍제천 상류부터 홍지문에 이르는 약 2.5㎞ 구간에 일명 물과 바위가 아름다운 ‘홍제락길’을 조성했다고 23일 밝혔다. 홍제천은 한때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해서 이요동(二樂洞)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로 하천길 단절, 도시미관 저해 문제가 발생하며 옛 모습을 잃었다.특히 하류에는 조선시대 숙종 때 축조된 탕춘대성과 홍지문 및 인조반정의 현장인 세검정이, 상류는 가나아트센터와 화정박물관을 포함한 다채로운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문화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종로구 관계자는 “종로의 역사와 문화를 잇는 홍제락길을 만들기 위해 2021년부터 내 산책로를 연결하고 친수공간, 녹지공간을 조성했다”며 “야간 시간대에도 산책할 수 있게 경찰과 협업해 진출입로 대비 바닥유도등 등을 설치했다”고 소개했다. 홍지문~세검1교 구간에 자리했던 낡고 오래된 시설물을 철거하고 새롭게 산책로, 벤치, 안전난간, 옹벽을 설치했다. 세검1교~신영교 내 단절된 하천 산책로를 연결하고자 상부에 보행로를 만들고 세검2교~화정박물관 구간과 평창2교~평창7교에 산책로 및 포토존을 조성한 점 역시 돋보인다. 수십 년간 하천부지를 무단 점용했던 건축물을 철거한 뒤 쉼터까지 조성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홍제락길 완공으로 종로~서대문~마포를 지나 한강까지 이어지는 보행로가 탄생했다”라며 “더 많은 시민들이 산 좋고 물 좋은 홍제천에서 쉬어가며 힐링할 수 있도록 올해도 홍지문 일대 수변공간 조성 사업을 지속하고, 이 일대 문화재와 수변을 활용한 다채로운 콘텐츠 발굴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 화성시, ‘화성 역말 농악’ 제2호 화성시 향토무형문화재 지정

    화성시, ‘화성 역말 농악’ 제2호 화성시 향토무형문화재 지정

    경기 화성시가 ‘화성 역말 농악’을 화성시 향토문화재 제2호로 지정하고 화성 역말 농악 보유단체로 선정된 화성역말농악보존회에 향토문화재 지정서를 전달했다. ‘화성 역말 농악’은 조선시대 화성시 봉담읍 동화리에 있었던 역말인 ‘동화역’ 일대를 중심으로 연행(演行)됐던 농악으로, 진놀이·벅구놀음 등 핵심 부분과 故강은중 상쇠가 새롭게 첨가한 훈련식·까치걸음·앉을상·행진가락 등으로 구성돼 있다. 화성시 향토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봉담 역말의 향토성 ▲공연, 교육 등 다양한 전승 활동 및 전승 의지 ▲농악에 대한 전문성 및 예능적 기량 등을 높게 평가해 화성 역말 농악을 화성시 향토무형문화재로, 화성역말농악보존회를 화성 역말 농악 보유단체로 선정했다. 화성 역말 농악은 교통의 요지였던 역말 인근에서 많은 물자와 사람이 오가는 과정에서 두레·지신밟기 등 다양한 연희문화와 함께 발달해왔으며 마을주민들이 이를 보존하기 위해 1909년 화성역말농악보존회를 조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역말농악보존회는 2000년대에 들어 봉담 지역 신도시 개발 등으로 전승이 끊어질 위험에 처했던 화성 역말 농악의 전승을 위해 노력하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특히 보존회에는 동화리 원주민들뿐만 아니라 이들이 마을의 농악을 교육해 양성한 젊은 세대들도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문성과 기량을 바탕으로 역말문화제, 찾아가는 문화활동 등 전승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2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향토문화재 지정서 전달식에는 손임성 화성시 부시장, 최혜성 화성역말농악보존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손임성 화성부시장은 “화성 역말 농악은 화성을 대표할 만한 역사와 예능적 기량을 갖추고 있고 지역 출신들이 대를 이어 전승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며 “2025년 화성특례시 출범을 앞두고 있는 만큼 화성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더욱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퇴계 이황 가문’ 진성이씨 족보…대구시 문화유산 지정

    ‘퇴계 이황 가문’ 진성이씨 족보…대구시 문화유산 지정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의 가문인 ‘진성이씨 족보’가 대구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2일 대구시에 따르면 계명대 동산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진성이씨 족보는 퇴계 선생의 손자인 이영도(1559년∼1637년) 선생이 1600년 도산서원에서 3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 족보 초간본이다. 책은 목록, 간행 경위를 설명한 서문, 족보도 등으로 이뤄졌다. 아들과 딸을 태어난 순서에 따라 함께 기록했으며, 외손의 혼인관계까지 빠짐없이 수록돼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는 17~18세기 대부분의 족보가 남성 중심으로 족보가 작성됐다는 점과 비교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친족 범위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자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존하는 15~16세기 간행 족보는 진성이씨 족보를 비롯해 안동권씨 성화보(1476년), 문화류씨 가정보(1562년), 강릉김씨 을축보(1565년) 등이 남아있다. 배정식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번에 진성이씨 족보를 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신규 지정하면서, 우리 시는 총 333건의 국가유산을 보유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국가유산을 신규 발굴하고 연구해 더 많은 유무형의 유산들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정여립과 기축옥사에 담긴, 우리들의 욕망 혹은 결핍[세책길]

    정여립과 기축옥사에 담긴, 우리들의 욕망 혹은 결핍[세책길]

    전라도 선비 1000명이 죽었다? 시작은 오래 전에 신문에서 본 책광고였다.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을 다룬 역사소설이었는데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책을 홍보하기 위해 써 놓은 광고문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1589년 발생했던 정여립 모반 사건과, 이 사건이 촉발한 이른바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조선시대 전라도 차별의 시발점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가 나온 시점에서 현실이었던 전라도 차별의 뿌리를 정여립이라는 ‘혁명가’와 연결시켰다. 수십년만에 정여립을 다시 떠올린 건 얼마전 지도교수와 얘기를 나눌 때였다. 지도교수는 최근 충남 논산에서 열린 어떤 유학 관련 학술대회에 참석했는데, 당시 발표자가 “기축옥사 때 전라도 선비가 1000명 넘게 죽었다”면서 “그 사건 때문에 전라도에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같은) 뛰어난 유학자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고 했다. ‘교수님 그 시대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들 다 합쳐도 천 명이 안될 것 같습니다’고 말해줬다. 정여립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다분히 현재진행형이다. 당장 정여립을 검색해보면 정여립이 신분제 철폐와 공화정을 꿈꾼 혁명가였다며 “재평가”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여립 모반 사건 자체가 조작이고 정여립도 자살이 아니라 타살됐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여럿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만 해도 정여립이나 기축옥사 항목을 살펴보면 “이 사건으로 1천여 명에 달하는 동인이 숙청되었고 전라도 전체가 반역향 낙인이 찍혀 호남 출신의 관계 진출이 어려워졌다”고 나와있을 정도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정여립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각자였고 억울하게 죽은 영웅인 셈이다. 급기야 정여립이 태어난 전북 전주시에는 ‘정여립로’라는 도로명주소까지 생겼다. 이런 마당에 전주에 있는 전주대학교에 재직하는 사학과 교수가 정여립 사건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깡그리 뒤집는 책(오항녕, 2024, <사실을 만난 기억>, 흐름출판사)을 출간했다. 거기다 하필이면 정여립과 먼 친척이었고 기축옥사 여파로 우의정에서 파직돼 함경북도 갑산으로 귀양갔던 나암(懶庵) 정언신((鄭彦信, 1527~1591)에서 이름을 딴 ‘정언신로’에 사무실을 둔 출판사라니. 기축옥사 팩트체크, 음모론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일단 사실관계를 정리해보자. 기축옥사 당시부터 시작해 400년 넘게 계속된 논란은 이런 것들이다. 정여립이 반란을 계획했는가, 정여립 사건은 조작됐는가, 기축옥사 피해자들이 전라도에 집중됐는가, 기축옥사가 전라도 차별로 이어졌는가, 기축옥사는 당쟁이 원인이 되어 발생했는가, 기축옥사는 당쟁을 격화시켰는가. 저자는 책 1부에서 사료비판을 통해 정여립 사건과 그 파장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고 많은 논란은 대부분 ‘다소 싱겁게’ 종결된다. 기축옥사는 1589년 10월 황해감사 한준이 비밀보고서를 조정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사건 초기만 해도 반신반의하거나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정여립은 출세코스인 홍문관 수찬까지 지냈고 친하게 지내는 정부고위인사도 많았다. 그런 ‘셀럽’이 모반 용의자가 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진안으로 도망쳤고, 거기다 자살했다는 것은 반란계획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송익필 형제가 정여립 사건 조작의 배후라는 주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랜 음모론이지만 역시 사실로 보기엔 무리다. 기축옥사로 인한 파장은 좀 복잡하다. 왕조국가에서 반란을 모의했다는 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정여립과 평소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들부터 시작해 사건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물들이 체포됐고 억울한 희생자들도 여럿 발생했다. 물론 피해자 규모는 1000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죽은 사람이 70여명이라고 했다고 한다(37쪽). 피해자가 전라도에서 많이 발생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된 결과냐 하면 그렇게 보긴 힘들다고 저자는 말한다. 애초에 정여립 본인이 전라도 전주 출신이었고 주요 활동무대 역시 전주와 그 주변이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전라도에서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축옥사가 이후 조선시대에서 전라도 차별로 이어졌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지역차별 양상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과거급제자 통계다. “기축옥사 전후인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의 변화, 즉 전라도 지역 급제자가 10.98%에서 8.65%로 낮아진 것이 과연 기축옥사 때문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기간 경기가 6.72%에서 2.98%로 전라도보다 더 낮아진 점을 고려하면 이런 변동이 과연 옥사로 인한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전라도 출신의 문과 점유율이 6위로 ‘전락’한 시점[18세기 후반]에 경상도 역시 5위로 ‘전락’했고, 이는 숙종 이후 서울, 경기, 충청의 급제자가 늘고 경화사족이 중앙 조정을 주도했던 현상의 연장이었다(68~69쪽).” 한마디로 말해서, ‘기축옥사와 전라도 차별’이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사실은 분명하다. 정여립이 근대적 공화주의를 지향했다거나, 기축옥사가 조작사건이라거나, 기축옥사가 전라도 차별로 이어졌다고 볼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오히려 정여립이 반란을 모의한 수괴였다고 볼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럼 다 끝난 것일까. 사실관계만 명확하게 정리하면 더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할 필요는 없어지는 것일까. 실제 기축옥사 이후 400년에 걸친 역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 아닐까. 첫번째 질문, 당쟁 프레임을 극복하는 당쟁 인식은? <사실을 만난 기억>은 당대의 구조적 맥락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기축옥사를 ‘당쟁’ 혹은 ‘전라도 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곧 행위자의 의지만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고, 이는 사안의 본질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쟁론을 통해서 기축옥사를 볼지, 모반으로 촉발된 왕조 시대의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에 따라 기축옥사의 성격은 달라질 것(48쪽)”이고, “당색 프레임은 사건을 인간의 의지나 욕망만을 잣대로 설명할 때 나타나는 보편적 오류 중 하나(80~81쪽)”이기 때문이다. 당쟁 프레임이 일제 식민사학의 고질적인 클리셰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행위자의 의지가 역사적 사건에서 일정한 변수인 것은 또한 부정할 수 없다. 16세기 조선을 이끄는 주류 엘리트로 확고히 자리잡은 사림(士林)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하고(동서분당), 상호 불신과 갈등이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기축옥사를 이끈 핵심 동인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일정한 변수로 작용한 것 자체는 사실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동서분당과 갈등 역시 당대의 구조적 맥락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당쟁 프레임”을 비판하는 게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명백한 사실까지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정철이 기축옥사를 비롯한 동서분당 과정을 분석한 <왜 선한 지식인이 왜 나쁜 정치를 할까>(2016, 너머북스)에서 내놓은 해석은 깊이 곱씹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의 시각이 ‘선량한 지식인인데도 나쁜 정치를 한 사림세력’인지 ‘사림이 선한 지식인을 추구할수록 나쁜 정치를 하게 되는 모순’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축옥사는 선조 8년[1575년] 이후 사림세력 분열이 가져온 파국이다. 15년 동안 이어진 갈등은 동서 간 분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2년 넘게 지속된 기축옥사는, 그때까지 당파 간에 나타났었던 상황을 집약적이고 강도 높게 반복했다… 선조를 포함해서 아무도 상황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생각은 없었고, 갈등의 기억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465쪽).” 두번째 질문, 기록과 기억은 만능열쇠일까? <사실을 만난 기억>은 기억과 사실을 대립시킨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령 “사실은 기억되는 과정에서 과장, 왜곡된 기억으로 다시 등장했고, 그 기억은 서로 다른 재현을 낳았다”면서 “그 재현 중 대표적인 것이 동인-서인 프레임으로 기축옥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46쪽). “기억의 혼란 또는 변주는 무엇보다 기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기록이 없으면 기억은 사라지거나 변형된다(162쪽)”도 같은 시각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 연장선에서 저자는 임진왜란으로 인한 기축옥사 관련 기록 손실, 그 영향으로 선조실록과 선소수정실록을 편찬할 때 겪었던 고충 등을 길게 설명한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기억과 사실은 대립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 사실만 있으면 기억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가? 기축옥사에 대한 ‘해석투쟁’과 ‘기억의 정치’가 과연 기록의 부재 때문일까? 기록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기축옥사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박근혜가 탄핵된 게 2017년이었으니 7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억울한 탄핵’이라고 외치는 사람을 찾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두뇌구조를 이해하긴 쉽지 않은 일이지만, 7년 동안 탄핵 관련 기록물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건 매우 명확하다. 1945년 해방 직후 중국에서 귀국한 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는 ‘백마 탄 여장군’으로 기억되고 성대한 환영대회까지 열렸지만 불과 4년만에 ‘무직’으로 기억되며 경찰서에서 죽었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닐 것이다. 세번째 질문, 조선시대에만 적용되는 합리적 행위자 가설? 역사를 공부할 때, 시대의 한계를 탐구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시대를 단순히 절대화하는 것과도 다르고, ‘근대주의’로 꿰어맞추는 것과도 다르다. 기축옥사와 연관된 주요 행위자들, 가해자로 거론되는 사람이나 피해자로 거론되는 사람 모두 대부분 지식인이었다. 저자는 기축옥사를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다문궐의(多聞闕疑)’를 강조한다. “많은 사료를 검토하고 의심스러운 데는 놔두는” 태도다. 의문은 이런 것이다. 기축옥사 당시는 물론 그 이후 기축옥사 관련 논쟁에 뛰어든 사람들이 ‘다문궐의’를 몰랐을까? 다문궐의는 물론 술이부작(述而不作)과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신조로 삼고 평생 그 가치를 체화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이들이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고 특정인을 비난하는 소문을 퍼트리고,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비난과 혐오까지 숨기지 않았다. 단순히 기억을 잘못했거나 제대로 된 기록을 못 봐서 그런 것일까? 혹은 그들이 얼치기 군자였고 사실은 소인이었기 때문일까?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선비들 혹은 우리들의 욕망, 그리고 결핍 혹은 상실. 그들의 세계관이 상황을 특정한 방향으로 인식하게 하고(즉 프레임을 형성하고), 특정하게 재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질문은 ‘기축옥사는 어떻게 시작돼 어떻게 전개됐는가’라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 ‘왜 그렇게 전개됐으며, 왜 그렇게 기억하게 됐는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면 기축옥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질문은 ‘사림은 왜 분열했을까?’ ‘사림은 왜 기축옥사를 통해 대립이 격화됐을까’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정철의 기축옥사 해석은 꽤 유용한 답변이 될 듯 싶다.“사림의 분열은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확신에 기인했다.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시비와 원칙에 민감한 젊고 비타협적인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정철과 최영경은 서로를 미워했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는 비슷하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고, 다른 사람 의견을 구차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비단 두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이 시기 인물들에 대한 평에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쳤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이정철, , 469~470쪽.사족 혹은 네번째 질문: 역사학엔 있고 유사역사학엔 없는 것은? 저자는 <사실을 만난 기억>을 쓰는 계기로 이모씨를 든다. 책을 조금만 읽어보면 그 이모씨가 이덕일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덕일을 비롯한 유사역사학자들은 학계에서 역사연구에 매진하는 이들을 ‘강단사학자’라고 부르며, 강단사학자들이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후예이며, 일본 식민사학자 스승들의 가르침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무리인 듯 매도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학자들이 쓴 논문을 한두편만 읽어봐도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사실을 만난 기억> 역시 논지를 전개하면서 기존 연구를 개괄하고 그 한계와 오류를 지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부족한 글 역시 오항녕의 저술에 빚을 졌고,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몇날며칠을 고민해가며 일부러 ‘까칠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그런 자세야말로 역사학이 추구하는 자세인 동시에, 이덕일이 사학과 대학원에서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오랫동안 잊어버린 ‘역사학 공부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유사역사학자들은 모르는 역사학의 팁 하나. 역사학 저술은 기본적으로 여사 혹은 사단장, 혹은 대통령 같은 직책 생략한다. 사람을 규정하는 건 직책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필자가 존경하는 역사학자도 오항녕이라는 이름으로만 표기했고, 존경하지 않는 유사역사학자 이덕일에게도 이덕일이라는 이름으로만 표기했다. 오항녕 역시 <사실을 만난 기억>을 비롯한 여러 저술에서 본인이 존경하는 학자 이황이나 이이에 굳이 선생이라는 표현을 덧붙이지 않았다.)
  • 팔공산 부인사서 고려 ‘초조대장경’ 봉안처 증거 발견

    팔공산 부인사서 고려 ‘초조대장경’ 봉안처 증거 발견

    대구 동구 팔공산 부인사 옛터에서 우리 역사상 최초 대장경인 ‘고려 초조대장경’의 봉안처임을 증명하는 유물이 발굴됐다. 19일 대구 동구에 따르면 지난달 12일부터 실시한 대한불교조계종 부인사, 세종문화재연구원 등과 실시한 정밀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 ‘부인사(符仁寺□)’ 이름이 새겨진 기와가 발굴됐다. ‘□’표기는 판독이 불가능한 한자를 의미한다. 부인사는 창건 당시인 통일신라시대(夫人寺)를 비롯해 고려시대(夫人寺·符仁寺), 조선시대(夫人寺·夫仁寺) 등 시기별 명칭이 문헌마다 달리 기록돼 있다. 부인사에 대한 앞선 발굴조사는 1989년부터 총 9차례 이뤄졌는데, 그동안 발굴된 유물에서는 명칭이 지아비 부(夫)라고 적혀 있었다. 부호 부(符)라고 적힌 기와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는 ‘(몽골군)이 경유하는 곳에는 불상과 불전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 이에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된 대장경 판본도 또한 남지 않게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동구는 1232년 몽골의 고려 침입 당시 소실된 초조대장경판의 봉안처라는 문헌상 기록을 뒷받침할 자료가 발견된 것으로 보고있다. 발굴조사를 담당한 세종문화재연구원 측은 “그동안 고려사 등 초조대장경 관련 사료에 표기된 부인사(符仁寺)와 팔공산 부인사가 다를 수도 있다는 논쟁이 있었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기와는 사료와 고고 유물 간의 혼돈을 종식시키는 자료로, 현재의 부인사가 고려 최초 대장경의 봉안처임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윤석준 동구청장은 “향후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부인사, 대구시 등과 협의해 부인사지의 국가지정 사적 승격 및 석조 수각 보물 지정 등을 위한 학술 세미나 개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마당놀이 부활, 게임음악 작곡 대전…전통과 동시대 아우른 국립극장 새 시즌 프로그램

    마당놀이 부활, 게임음악 작곡 대전…전통과 동시대 아우른 국립극장 새 시즌 프로그램

    국립극장이 오는 8월 28일부터 내년 6월 29일까지 선보이는 ‘2024-2025 레퍼토리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신작 23편과 다시 보고 싶은 명작들을 엄선한 레퍼토리 공연 8편을 비롯해 상설공연 14편, 외부 단체와의 공동 주최 공연 16편 등 총 61편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3개 전속단체가 다양한 소재와 독창적인 형식으로 준비한 신작들이 우선 눈길을 끈다. 국립창극단은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한 명인 이날치(이경숙·1820~1892)의 삶을 조명한 ‘이날치전’(11월 14~21일)과 조선 7대 왕 세조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다룬 ‘수양’(2025년 3월 13~20일)으로 관객을 맞는다. 국립무용단은 한국 무용계를 선도해온 안애순 안무가의 시선으로 전통춤의 움직임을 재해석한 ‘행 +-’(8월 29~9월 1일)와 연극 연출가 양정웅이 참여하는 ‘파라다이스’ 등을 선보인다.국립국악관현악단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과 협업한 ‘음악오디세이: 천하제일상’(11월 29~30일)도 주목할 만하다. 음악에 맞춰 게임 영상이 상영되는 일반적인 게임음악 콘서트와 달리 작곡가 5명이 만든 음악을 국악관현악으로 재해석해 연주하면 관객이 실시간으로 투표에 참여해 순위를 정하는 작곡 대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술적 완성도와 대중성으로 재공연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명작들도 돌아온다. 국립창극단의 스테디셀러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9월 5~15일)가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14년 초연부터 큰 화제를 모았고, 2016년 프랑스에서도 공연한 작품이다.2015년 초연 이래 3년 연속 매진을 기록한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향연’(12월 19~25일)은 6년 만에 귀환한다. 한국무용계 거장 조흥동이 총예술감독을 맡고, 독보적인 스타일을 자랑하는 정구호가 연출한 작품으로 궁중무용과 종교무용, 민속춤 등 11개의 전통춤을 사계절에 담아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내년 창단 30주년을 맞아 악단의 주요 레퍼토리를 들려주는 ‘베스트 컬렉션’(2025년 3월 12일)을 선보인다. 국립극장 연말 인기 공연이었던 마당놀이도 5년 만에 부활한다. 올해 마당놀이 1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공연한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 ‘춘풍이 온다’ 4편을 엮은 ‘마당놀이 모듬전’(11월 29일~2025년 1월 30일)을 선보인다. 연출가 손진책, 작곡가 박범훈, 안무가 국수호 등 마당놀이 원조 제작진이 참여하고, 윤문식·김성녀·김종엽 등 마당놀이 스타 3인방이 특별출연한다.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이번 시즌 프로그램 구성에 대해 “전통을 기반으로 동시대적인 창작 작품을 선보인다는 국립극장의 정체성과 관객이 다시 보고 싶어하는 공연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장애인 관객의 문화 향유를 지원하기 위해 제작한 연극 ‘헌치백’(2025년 6월 12~15일) 등 4편의 ‘배리어 프리’(무장애) 공연과 세계 공연예술계 최신 화제작을 소개하는 ‘엔톡 라이브 플러스’(10월 16~20일)도 기대할 만하다.
  • 정도전의 민본, 조선을 설계하다

    정도전의 민본, 조선을 설계하다

    창작과비평 창간 60주년 맞아 ‘한국사상선’ 1차분 공개 조선 왕조의 설계자였지만 절대 왕권을 꿈꾸는 태종 이방원의 칼에 쓰러진 삼봉 정도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정작 정도전이 무엇을 꿈꾸며 조선 건국에 참여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 직후 정도전이 쓴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 3권과 고려 말 공양왕 시절 쓴 상소를 통해 그의 정치사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책을 읽다 보면 ‘조선경국전’에서 천명한 “무릇 임금은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하니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라는 말이 정도전의 조선 건국 핵심 이념임을 깨달을 수 있다. 편저자인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조선 건국은 혁명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혁명의 명분으로 삼았던 민본·위민 정치의 출발”이라며 “정도전은 단순히 원칙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민본 정치를 위해 필요한 실천 덕목을 고민한 인물로 ‘권력자의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고 소개했다.이 책은 ‘창작과비평’ 창간 60주년이 되는 2026년까지 진행되는 ‘한국사상선’의 하나다. 한국사상선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정도전, 이이, 이황, 정약용 등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부터 김구, 여운형, 조소앙, 홍명희, 함석헌을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한 시대를 이끌며 큰 울림을 준 사상가 59명의 글과 생각을 상세히 다룬다. 올해 1차분 10권을 발간하고,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10권씩 총 30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정도전은 바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포문을 여는 인물로 선정된 것이다. 계간지 ‘창작과비평’ 명예 편집인으로 한국사상선 간행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상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친 이들을 선정해 조명했다”며 “사상 이론가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인물을 포함하고 정도전으로 시작해 김대중으로 끝나는 구성은 어떻게 보면 특색이 있고,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이라고 이번 시리즈를 소개했다.
  • “국회가 다 쥐고 있으면 싸움만… 시장·공동체·국가 기능 재분배를”[박성원의 직설대담]

    “국회가 다 쥐고 있으면 싸움만… 시장·공동체·국가 기능 재분배를”[박성원의 직설대담]

    여야가 연일 ‘채상병특검법’과 검사 탄핵안,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원 청문회 등을 놓고 극한대결을 벌이고 있다. 국정 운영 자체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캠프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고 학계, 정부, 경제, 정치 현장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으며 국정의 성공과 실패라는 주제와 평생 씨름해 온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만나 본 이유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서울신문 사옥에서 진행됐다.―국회의 파행과 대결로 경제·민생은 물론 국가 미래와 생존에 필요한 정책·법안들이 모두 고사될 상황이다. “의회제도가 갖는 한계가 있다. 저출생·고령화, 금리, 인적자원 양성, 산업 구조조정 문제 등 국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빠르게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국회가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 특히 중앙집권이 강한 한국에선 정부와 국회가 다 쥐고 있으니 문제 해결이 더 안 된다. 서로 네 탓이라며 상대를 비판하는 것으로만 풀려고 한다. 시장, 공동체, 국가의 기능 재분배가 필요하다.” 김 회장은 여야 갈등을 조선시대 당쟁에 비유했다. 조선 중기 이후 유통업,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이를 감당할 수 없던 농경시대형 왕정에서 서로 네 탓을 하면서 당쟁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런 국회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다 들어가도 맨날 저 모양 저 꼴로 싸움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가 시비만 하다 보니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뒤에 가 있고, 항상 앞에는 말꼬리 잡고 싸움하는 꾼들만 나와 있다.” ―민주당은 수사기관 무고죄, 판검사의 법왜곡죄 등 형사사법 입법과 추경 요건 확대를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 행정 각부 시행령의 국회 수정·변경 요구권 도입 등 입법·행정·사법의 거의 모든 시스템을 손볼 기세다. “다수니까 맘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선출된 권력이라고 자기 맘대로 해선 안 된다. 자기들이 수사받고 있다고 검사를 탄핵한다는 게 말이 되나. (한숨을 쉬며) 한쪽(여당)이 성하면 이런 짓 못 하지. 얼마나 얕보였으면…. 이런 짓 해도 또 당선된다고 믿는 거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촉구하는 국회 청원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 모녀까지 증인으로 불러 청문회를 하겠다고 하는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탄핵인가? 지난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뭐가 달라졌나.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이 잘살게 됐나?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나? 산업구조가 강해지고 출산율이 올라가기라도 했나? 진영논리와 패권주의, 대중영합주의만 더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나.” 김 회장은 민주주의 이론의 석학인 필립 슈미터 전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야당의 탄핵 추진 움직임을 비판했다. “국내 어느 인사가 슈미터 교수에게 촛불시위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시민에 의한 명예혁명’이라고 말을 했더니 슈미터 교수는 ‘그건 혁명이 아니라 같은 성격을 가진 정치세력 간의 권력이양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또 다른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뿐이라는 말이다. 서로 상처만 주고, 이념과 지역의 골만 깊게 했을 뿐인 탄핵은 이제 국민을 쉽게 동원할 수도 없다. 헌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됐건 ‘교착정국’을 타개해야 할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결국 대통령인데, 지지도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머물러서는 국정 동력이 생기기 어렵지 않을까.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여대야소라 해도 3년쯤 지나면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을 밀어 주지 않는다.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임기 중간쯤 지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을 믿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설득해서, 그 지지를 획득해서 그걸 갖고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 김 회장은 ‘국민 설득’의 전제조건으로 “대통령에게 시빗거리가 없어야 하고, 그런 것들을 빨리 해소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대한민국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시빗거리를 해소해 주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대통령이 국민을 끌고 가겠나.” ―윤 대통령이 야당에 가장 크게 발목이 잡혀 있는 건 채상병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문제 같은데. “디올백이, 도이치모터스가 사라져도 시비를 계속 걸 것이다. 그런 정도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도덕적 문제가 걸려 있으면 빨리 설명하고, 사과할 건 하고 가야 한다. 더이상 확산될 명분을 없애 버려야 한다.” 김 회장은 ‘물러서는 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과는 내가 잘못해서만 하는 게 아니다. 사법적으로는 내가 잘못한 게 없으면 끝까지 가야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다소 억울하더라도 한발 물러설 때가 있는 게 정치다. 이건 사법의 영역도, 정의의 영역도 아니다. 지금 다른 영역들이 너무 많이 밀려 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정책 면에서도 대국민 설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비에 걸려 휘청거리다 제대로 못한 게 많다. 의사 정원 문제만 해도 의사 숫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몇 명이고 우리는 몇 명이라는 식의 숫자 비교만 할 게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메디컬사이언스·메디컬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 이런 쪽으로 가야 한다, 이런 쪽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길을 터줘 가면서 의사 숫자를 늘려 가면 의사들도 저렇게 저항 안 하고 갈 수 있는데…. 동해 유전도 단순히 얼마짜리 이렇게 갈 게 아니다. 우리가 석유가 필요한 건 경제성도 경제성이지만 무엇보다 에너지안보 차원이다, 이렇게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 지지를 얻어서 정치권을 끌고 가야 한다.”탄핵정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박근혜 탄핵 후 패권주의 기승 네 탓만 하던 조선 당쟁과 비슷이순신·세종대왕 와도 싸울 판 거야, 선출됐다고 맘대로 하나진영 위한 탄핵은 결국엔 실패 자유주의 실현으로 위기 극복을尹, 시빗거리 해소해 국민 설득억울해도 한발 물러서는 게 정치정책기획위 같은 ‘브레인’ 필요철학·깃발 없는 보수 공부할 때규제완화·지방분권 성공시켜야 ―국민의힘의 7·23 전당대회 이후 당정 관계는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는지. “앞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 정기국회 끝나고 다음 대선 구도가 가시화돼 갈 때 대통령 지지도가 안 올라가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다. 대선을 하려는 사람들의 차별화 시도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총선 이후 예고됐던 인적 쇄신이 아직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 “윤 대통령의 철학은 자유주의 원칙, 시장과 공동체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방분권과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그런 철학에서 규제를 완화하는, 그 일에 맞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최근 서방 주요국 선거에서 집권당의 잇따른 패배의 공통 요인으로 경기침체와 고물가, 일자리 쇼크 등 민생·경제 악화를 불러온 경제정책 실패가 지적되고 있다. “국가의 처리 능력은 제한돼 있고 정부의 실패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다. 국가 실패의 가장 뚜렷한 증거는 첫째 국가부채와 통화량 증가, 인플레이션이고, 둘째는 국가 지도자들의 신뢰도, 지지도 하락이다.” 김 회장은 국가 실패의 극복 방법으로 자유주의 정신의 구현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가 35번 들어간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보라. 자유주의 정신이 다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벙벙하게 떠다니니 답답한 거다. 장관들이 내각에서 받쳐 주고 당도 자유주의 입법을 하고, 자유주의로 가면 나라가 어떻게 가는지 설명해 주고, 시장은 어떻게 키우고, 관치는 어떻게 줄일 것인지 설명해 줘야 하는데, 지금은 철학과 깃발이 없는 당 같다. 그걸 제대로 못하니까 저 야당이, 자유주의와 반대로 가는 국가주의 정당이 우습게 알고 멋대로 하는 거다. 국가주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자유주의 접근을 제시해야 한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도 역사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았다. “우리 역사는 자유주의 쪽으로 흐른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이 있고, 결국은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보수가 이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가 공부를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사회적 안전망까지 갖춘 자유주의다. 경제공학만 집어넣거나 반공주의적 자유주의만 넣어서 오염되다 보니 적절한 상징성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 지도자가 나왔는데도 여기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상징성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건가. “과거 정부엔 정책기획위원회가 있었다. 브레인 집단은 있어야 한다. 이런 상태로 가다가 정권을 그냥 넘겨주면 윤석열 정부가 다음 대선에서 심판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기치, 상징,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 정책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지적도 있다. “자유주의 기조와 관련된 것인데, 규제완화와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을 들 수 있다. 규제완화는 시장을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고,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엔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그 역량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최근의 ‘밸류업’ 프로그램 또한 기업 가치 제고를 막고 있는 여러 모순을 바로잡아 시장이 성장과 분배를 위한 순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결국 누가 하느냐 하는 사람의 문제일 텐데. “과거 김영삼·김대중 시대만 해도 가신이라고 해서 주군과 생사를 같이하고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다음 노무현 때는 동지의 시대였다. 분권이다, 균형발전이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서로 이권만 주고받는 권력적 이해관계로만 모여 있게 됐다. 윤 대통령은 가신은 물론 동지를 모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정치는 이상과 명분, 가치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정치를 오래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 김병준 회장은 노무현 정부서 부총리·교육장관 역임 尹후보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1954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정치학과, 한국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낸 뒤 노무현 대선후보 정책자문단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냈다. 2018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2021년 윤석열 대선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거쳐 202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박성원 논설위원
  • 이성과 합리의 시대, 무속에 조아린 이유…욕망하고 불안한 인간의 또 하나의 ‘믿을 구석’

    이성과 합리의 시대, 무속에 조아린 이유…욕망하고 불안한 인간의 또 하나의 ‘믿을 구석’

    현대 과학은 예전 종교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자들을 현시대의 제사장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으로 대표되는 이성과 합리가 미신과 신비를 압도한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은 인간의 착각쯤으로 치부된다. ‘귀신’도 그렇게 인간의 삶에서 멀어져 간다. 하지만 그 세계가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올해 초 관객 수 1191만명을 기록했던 영화 ‘파묘’의 흥행에서 보듯 한국의 오컬트, ‘무속신앙’은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고 있다. 지난 11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샤먼: 귀신전’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현재 총 8화 중 4화까지만 공개됐는데 티빙 실시간 시청자 수 1위에 오르는 등 반응이 뜨겁다. 합리적인 사고만을 강요하는 시대에 왜 우리는 여전히 무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JTBC 소속 제작진을 만났다. 이들이 처음 작품을 기획할 당시 던졌던 질문은 더 간단하다. “사람들은 왜 아직도 귀신을 믿는가.” “귀신과 관련된 현상을 겪은 제보자를 찾았다. 사전 미팅을 진행한 사람만 50명이다. 만나서 묻는 건 ‘병원에 가 봤는지’다. 이미 무속의 세계 안에서 믿음이 생긴 사람은 최대한 배제했다. 정말 관련이 없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을 찾고자 했다.”공동 연출 이민수 프로듀서(PD)의 설명이다. 다큐멘터리는 철저히 사례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귀신을 직접 보기도 하고, 아직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무병’(巫病)을 앓고 신내림을 받기도 한다. 제작진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사례의 진실성이다. 사례가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작품은 ‘커다란 사기극’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일단 ‘연출된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고 보증했다. 오정요 작가는 “굿을 하고 나면 개운해지는 효과가 있는데 이걸 노린 ‘굿 중독자’도 제보자 중에 있었다”면서 “자기가 겪는 현상을 남에게 명확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인지에 문제가 없는 사람을 위주로 뽑았다”고 말했다. “무속신앙이 왜 그렇게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았는지, 왜 지금도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차원이라면 귀신을 믿지 않는 저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마블 시리즈’의 세계관처럼 여기에도 하나의 세계관이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공동 연출 박민혁 PD는 제작 의도를 이렇게 요약했다. 조선시대 이래로 무속신앙은 끊임없이 탄압받았다. 서구식 합리주의를 앞세운 일제강점기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오랜 탄압에도 어떻게 이토록 질기게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왜 아직도 사람들은 무속신앙에 기대는가. 2년간 심도 있는 취재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제작진은 “아직 보여 주지 못한 게 많다”며 향후 시즌 2·3 제작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당을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정치인과 연예인, 사업가라고 한다.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궁금한 사람들이다. 무속에는 치유의 기능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복(복을 비는 것)이다. 단순히 건강뿐만 아니라 돈과 사랑을 비롯한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받아 주는 종교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위로해 주는 동시에 ‘가진 자’들의 불안까지도 상쇄해 줄 수 있는 무속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수 없고 앞으로도 계속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 금천구, 노리개 만들고, 명상 즐기며... 시흥행궁 역사 배우기

    금천구, 노리개 만들고, 명상 즐기며... 시흥행궁 역사 배우기

    서울 금천구는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시흥행궁전시관에서 관내 성인을 대상으로 규방공예와 다도 명상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금천구 관계자는 “조선시대의 효, 예, 예술을 체험할 기회와 정조 대왕이 화성 행차 시 하룻밤 머물던 시흥행궁의 역사적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소개했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매주 화요일은 규방공예 체험 4회, 수요일은 다도 명상 체험 4회로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총 8회 운영된다.체험 전에 시흥행궁전시관을 관람하면서 시흥행궁과 정조대왕 능행차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규방공예 체험은 ‘한 땀에 깃든 정조의 소망’이란 주제로 진행된다. ▲1회차 물고기 키링(7/30) ▲2회차 거북이 매듭팔찌(8/6) ▲3회차 두루주머니(8/13) ▲4회차 괴불노리개(8/20)로 조선시대 전통 공예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다. 다도 명상 체험은 “복사꽃 향기로 가득한 차(茶)”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다도 예절을 배우고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가족 간의 화합을 느껴보는 시간과 정조의 효와 예 정신을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명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참여 신청은 17일부터 문자 접수(010-3370-4043)로 진행되며 각 회당 15명 선착순으로 마감된다. 규방공예는 7/30, 8/6, 8/13, 8/20 총 4회, 다도 명상은 7/31, 8/7, 8/14, 8/21 총 4회로 진행될 예정이다. 참여 희망자는 문자로 <규방공예, 이름, 회차(날짜)> 또는 <다도명상, 이름, 회차(날짜)>로 신청하면 된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시흥행궁전시관에서 처음 진행하는 성인 대상 교육프로그램으로 구민들이 적극 참여하여 정조의 효와 예, 조선시대 예술을 체험하는 뜻깊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구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역사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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